북측은 신뢰를 보여야 한다

“북의 정권은 가만 놔두면 붕괴될 것인데도 남쪽에서 도와 정권을 연장케한다”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충고를 우리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래도 동포애로 인도적 지원을 비롯하여 경협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관점을 재고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수한 인민들이 굶어죽고 수많은 인민들이 탈북하는 가운데 요인들 망명까지 잇따르고 있다. 이러다가 사선의 장벽을 무너뜨린 흡사 동독 붕괴 직전의 피난민 대열같은 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된다. 물론 한반도 분단과 독일 분단은 그 성격이 다르지만 그런 게 연상될 정도다. 하지만 작금의 일이 아닌 탈북 사태를 두고 새삼 북측 정권을 의심하는 게 아니다. 수 많은 정치범 집단수용소 등으로 인민의 자유를 유린하는 인권탄압 때문도 아니다. 자기네 인민들을 제대로 못먹여 살리는 것에 조금도 수치심을 느낄 줄 모르는 부도덕성 때문만도 아니다. 국제 마약상으로까지 전락한 정권의 범죄조직성만도 역시 아니다. 보다 절실한 것은 북측 정권에 더이상 신뢰를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우여곡절에도 그같은 북측 정권이지만 달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당장은 믿을 수 없어도 장차 언젠가는 믿을 수 있게 된다고 보아 기대해 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면 지금이 그 고비다. 북측이 진정 평화와 번영을 위한다면 핵 카드를 더 고집하지 말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만이 우리의 신뢰를 충족할 수 있다. 미국을 압박하고 남쪽을 불안하게 하면서 무한한 흥정거리로 일삼는 핵 카드는 남북 공존의 번영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 북측의 그간 온갖 위협적 요구에 많은 것을 수용하였지만 핵 문제엔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은 일찍이 약속한 비핵화 선언에 위배되는 신뢰의 본질적 상실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핵)협상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도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 갈 수는 없다”고 밝힌 노무현 대통령의 귀국길 기내 기자간담회 발언은 북측을 더 신뢰할 수 없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 역시 동의하는 것이다. 전쟁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만 그 방법이 이젠 달라져야 한다. 무작정 끌려만 가는 것이 해결책이기 보다는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게 그간 북측을 상대하면서 터득한 경험법칙이기 때문이다. 북측 정권은 이제 생존 수단을 바꾸어야 한다. 국제사회의 트러블 메이커로써는 갈수록 인식만 나빠져 힘겨울 뿐 실익이 없다. 그보다는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신뢰를 쌓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우리들은 북측과 계속 교류하면서 협력관계를 갖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신뢰성을 담보해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의 이같은 요구는 전적으로 북측의 책임에 속한다.

공중전화

세계적으로 전화기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변신’을 거쳤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1876년 처음 개발한 전화기는 자석식이다. 교환원이 통화를 성사시켜 주는 수동교환 방식이다. 1980년 나온 공전식은 전화국의 축전지에서 가입자에게 일괄적으로 전류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전화를 걸 때마다 발전기를 힘들게 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자동식은 1891년 개발됐다. 교환원이 수동으로 통화를 연결시키는 불편함을 없애준 전화기다. 한국 최초의 전화 통화는 1896년 한성 궁내부(임금이 살던 곳)에 자석식 전화기가 설치되면서 이뤄졌다. 1902년 한성~인천간 전화가 개설되고 한성전화소에서 전화 업무를 개시함으로써 비로소 일반인들도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당시 교환수는 신(新)문명을 다루는 엘리트로서 자긍심이 대단한 높은 직업에 속했다. 1908년 공전식, 1935년 자동식이 도입됐지만 당시 전화기는 총독부의 관용이거나 일부 특권층의 사치품이었다. 전화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체신부가 국산 최초 전화기 ‘체신1호’ 시리즈를 개발하면서 부터다. 1980년대 들어 국가가 보급하던 전화기의 구입 절차가 개인이 직접 구입하는 자급제로 바뀌면서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의 전화기들이 속속 등장했다.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과거의 ‘영화’를 잃은 공중전화도 한국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처음 보급될 때에는 자석식으로 교환원을 불러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들려준 후 원하는 상대방과 통화하는 방식이었다. 옥외 무인 공중전화는 1962년 서울 산업박람회장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당시 통화료는 5원이었다. 시내 통화만 가능했던 공중전화는 1978년 시내외 겸용 체제로 바뀌었고 1983년 시외용 DDD 방식을 거쳐 1986년 아시아경기를 계기로 카드식 공중전화가 등장했다. 요즘 핸드폰시대가 됐다고 공중전화 설치수를 줄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용론은 더 더욱 그러하다. 핸드폰이 있어 공중전화를 사용하려고 줄지어 서 있지 않는 것은 좋다. 또 앞사람이 길게 통화하면 ‘짧게 하자’고 말해 시비가 붙곤 하던 일이 지금은 추억거리가 됐다. 문득 공중전화로 추억 저 편에 있는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은 날이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기 고/변화의 시대 ‘상공회의소의 역할’

부천지역 상공인들의 대변기관이자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수를 담당하고 있는 부천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의 중책을 맡은지 1개월여가 지나갔다. 짧은 기간동안이지만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산업현장의 어려움을 새롭게 체험하면서 우리 기업인과 근로자의 피나는 노력과 땀의 귀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1인 3역, 4역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기업인과 위험하고 힘든 작업환경에서도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근로자가 있기에 오늘날과 같은 풍요와 행복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발전을 선도하는 기업인과 근로자 여러분들을 위해 상공회의소의 역할과 노력이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해 전국 64개 지역 그중 경기도 관내에 16개시군에 설립운영되고 있는 지방상공회의소는 우리나라 경제계를 대표하는 5단체중 가장 맏형격으로 12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타 경제단체와는 달리 상공회의소법에 의하여 설립, 운영되고 있는 법정 민간경제단체로서 모든 업종(농·수산업 등 1차산업은 제외)의 대·중소기업을 총망라하여 상공업자 모두를 회원으로 하고 있다. 120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상공회의소가 우리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해 온 바는 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1970년대 공장새마을운동을 전개하여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던 공장들을 현대와 같은 과학적, 합리적 공장으로 만들어 놓는데 기여를 했고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도록 중간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는데 적지않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 상공인의 대변기관으로서 기업경영의 애로요인들을 해소하는데 일익을 담당해 왔고 개별기업의 힘으로 하기 어려운 각종 교육, 설명회를 개최했다. 아울러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민주화과정에서 노사안정과 산업평화를 지키기 위한 중재자 및 조정자 역할도 해나가고 있다. 이처럼 국가경제발전과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적지않은 기여를 해 온 상공회의소가 21세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공회의소를 잘 이끌어 온 선후배 임직원 여러분들의 노고와 공로에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리며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전국 64개 상공회의소도 새로운 자세와 아이디어로 지역의 경제발전과 상공업의 진흥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찾아가는 상공회의소가 되어야 한다. 기업현장에 직접 찾아감으로써 상공회의소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것을 할 것인지를 이해시키고 왜 상공회의소에 참여해야하는지를 설득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실제로 보고 체험해야 한다. 사무국장으로 취임한 이후 1일1사 방문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접하면서 향후 상공회의소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기업인이여 이제 상공회의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상공회의소를 심부름꾼으로 적극 활용해보세요.기업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사업,윈-윈(Win-Win)전략을 달성할 수 있는 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제 상공회의소 모든 임직원들도 환골탈태의 모습과 각고의 노력으로 기업의 발전과 지역경제의 발전 그리고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민간 경제단체로 자리잡아 갈 것이다. /천 인 기.부천상공회의소 사무국장

천자춘추/아시아! 아시아!

느낌표(!)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오락프로그램이 이렇게 공익성을 띨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즐겨 보고 있다. 책과 도서관 건립에 관한 코너나, 청소년 문제에 관한 코너도 정말 괜찮지만, ‘아시아! 아시아!’라는 코너는 그 관심과 애정의 영역을 우리 아시아 이웃들에게까지 넓혔다는데서 한 단계 더 성숙된 감동을 주고 있다. 이 프로를 보면서 새삼 우리 이웃에 많은 아시아 각국의 젊은이들이 들어와 있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가족 사랑이라는 것은 국가와 인종이 달라도 아름답게 간직되는 소중한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면서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가족간의 유대관계는 엷어지고 사랑과 관심이 식어가는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한다. 몇주전 방영분에서는 뿌삐라는 방글라데시 청년의 어머니를 모셔오려고 하는 장면을 방영하였는데, 우리 MC가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화면에 비쳐지는 방글라데시 빈민촌은 어쩜 저런 데서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하는데, MC의 말에 따르면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제일 높은 나라가 방글라데시라는 것이다(우리나라는 32위). 그 말을 들으면서 화면을 보아서인지 화면에 등장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가난한 환경에도 미소와 따뜻한 정을 잊지 않고 있었다. 나도 어렸을 때를 돌아보면 양말을 기어신고, 겨울에도 찬물에 움츠리며 세수를 하고, 차비를 아끼느라고 먼 거리를 걸어 다니는 등 분명 지금보다 더 불편한 삶을 살았지만 가족과 이웃간의 오가는 사랑이나 정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살가웠던 것 같다. 그리고 이 프로를 보면서 저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격과 피를 가진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산재사고 현장검증을 갔다가 마주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은연중에 깔보는 감정을 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을 못한다던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자신들이 미래의 나은 삶을 위해 독일의 광부로·간호사로, 남미의 황무지 개척자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향하지 않았던가. 그 동안 심심찮게 외국인 노동자들을 학대하고 차별하는 기사가 나오곤 했는데, 이 프로를 보면서 그래도 우리 주위에는 따뜻한 가슴으로 이네들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이 프로가 우리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데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양 승 국 변호사

독자투고/국민에 피해주지 않는 시위를…

요즘은 시위문화도 많이 변화됐다. ‘시위’는 곧 최루탄과 각목 등이 연상될 만큼 폭력적이었지만 요즘은 점차 줄고 법에 따라 자신들의 요구를 밝히는 시위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법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시위도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여전하다. 이는 시위문화가 앞으로 더 변화되어야 한다는 반증이다. 과천은 연 150여회 정도 집회가 열린다. 정부청사가 위치해 있어 1만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도 자주 열리고 있다. 시위문화가 변화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최근 과천시는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열리는 각종 집회 및 시위로 인한 소음으로 학생들과 주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며 시위문화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집회가 열리는 정부청사앞 잔디마당은 주택가와 10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과천중앙고등학교도 집회장소 인근에 위치해 있어 고성능 확성기를 사용할 경우 심각한 소음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시위는 개인과 단체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폭력과 고성능 확성기 사용, 교통을 마비할 정도의 거리시위 등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같이 강한 투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의사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도 집회시 폴리스 라인(Police-line)을 설치하는 등 평화적 시위를 유도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시위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준법의식이라고 본다.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는 정당성이 희석될 뿐만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 김운선·과천경찰서장

5월 17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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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 등록폐지 공론화 앞당겨라

정부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제도인 ‘신용불량자 등록제도’ 폐지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획기적인 일이다. 개인신용 불량자수가 300만 명에 육박하는 현실도 그렇거니와 ‘신용불량자=경제범죄자=사회부적응자’라는 획일적 이분법을 불식하고 금융시스템 선진화를 위해서도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30만원 이상, 3개월 이상 연체’라는 획일적 기준을 정해 신용불량자 딱지를 붙이고 모든 금융기관이 이들을 경제적 금치산자로 취급, 대출·만기 연장을 해주지 않는 것은 횡포라고도 할 수 있다. 예컨대 20대가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히면 취업 등 사회적 활동이 제약될 수도 있는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서는 물론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신용불량자 등록제를 폐지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 뿐이며 오히려 ‘배째라’식 연체자들을 양산, 금융기관이 부실화할 수 있다는 게 반대 이유다. 신용불량자라는 표현이 사라지면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채권추심을 위한 유력한 수단을 잃게 되고 그러잖아도 회수율이 낮은 연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체 - 회수압력’이라는 실질적 굴레는 계속된다고 해도 신용불량자라는 이름만이라도 없어질 것을 서민들이 바라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용불량자 등록제가 없어져도 연체정보를 은행연합회나 크레딧부(CB)로 집중, 모든 금융기관이 이를 공유하면서 대출여부는 금융기관이 알아서 판단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떼주고 불량 고객에 대한 페널티는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법을 바꾸지 않더라도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은행연합회 규약만 바꾸면 능히 가능하다. 이를 신용불량자 대사면으로 오인될 수도 있지만 소득이 있으면서도 돈을 안갚는 연체자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는 시그널을 분명히 해두면 문제될 게 없다. 신용불량자 급증에 따른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정부가 이미 내부적으로 내린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공론화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금융기관에서도 반대만을 고집할 일이 아니다.

수원 성곽지역 옛모습 복원화

수원시가 계획하는 성곽내 시가지 일부의 정조시대 옛모습 복원은 능히 평가되는 사업이다. 유서깊은 화성이 이미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으므로 성내 40만여평 중 도로 등을 제외한 20만여평을 대상으로 200여년전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려는 복원사업은 성격상 앞뒤가 맞다. 화성과 어울리는 18세기의 도시면모는 지역사회의 새로운 명소로 관광자원화 하기에 충분하다. 장안문·창용문 일대의 공원화, 화서문·동장대·동남각루·동지주변 정비, 전통거리, 화홍문앞 전수관, 장안문앞 문화시설, 행궁앞 광장조성 등 10대사업도 일단은 이해가 된다. 다만 이는 2020년까지 1조원을 들여 추진하는 장기사업인 점에서 일관성의 담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아직 이를 위한 조례 제정이 안됐으면 조례로 제정해 추진함으로써 앞으로 단체장이 바뀜에 따라 시책이 왔다갔다하는 폐단을 제도적으로 막아 두어야 한다. 아울러 미리 사업 전반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고증을 위한 전문가와 지역사회의 공청회 등을 거친 다음에 상세한 내용을 확정짓는 신중성이 요구된다. 화성 성곽도시는 정조대왕이 심혈을 기울여 남긴 조선조 최초의 지방 도시계획 도시다. 이에 비해 오늘의 성곽도시는 영통권, 동수원권, 북수원권 등 위성도심권의 급진적 발달로 조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성곽도심권의 구도시를 신흥도심권처럼 덩달아 무리하게 현대화 하기보단 복원화 해볼만 하다. 하지만 옛모습 복원화는 말로는 쉽지만 말처럼 결코 쉽지 않은 아주 어려운 사업이다. 현대와 조선시대가 공존하는 옛도시 재현을 자칫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기형적 형태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이는 복원사업 내용면에서도 그러하지만 도시설계 지구로 지정해 추진할 성곽내 건물의 높이·도색·지붕·외장 등 규제도 복원 내용과 조화를 이루는 부단한 연구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업추진은 이미 밝힌대로 조례로 추진하되 사업내용은 도시계획으로 정해야 하는 것이 이 사업의 특성이다. 이같은 복원화는 일찍이 전례없는 일로 전국에서 수원시가 처음 기도하는 의욕적인 사업이다. 그렇지만 행여라도 의욕만 지나치는 잘못으로 실패하여서는 안된다. 선망의 대상으로 성공해야 한다고 믿어 이를 위한 좀 더 깊은 검토가 있기를 당부해 둔다.

대환대출

신용불량자가 300만명에 육박하면서 ‘대환대출 확대론’이 나왔다. 연체대금을 신규대출로 전환해 연체를 해소해 주는 방법이다. 일시에 카드대금을 다 갚기 어려운 사람에게 장기간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게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이다. 일단은 연체자의 숨통을 틔어주는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금 신용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 등 사용한도를 너무 급격히 줄였기 때문에 신용불량 문제가 심각해졌다. 따라서 급격한 환경변화로 어려움에 처한 연체자들을 연착륙 시킬 필요가 있다. 신용불량자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팔라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환대출이 신용불량자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덮어두고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것일 뿐 이라며 오히려 더 큰 부실과 위기만 불러온다는 반대 입장도 있다. 대부분 대환대출을 받는 10명 중 8명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이므로 결국 대환대출은 한 사람을 보증한 친척과 친구 등 여러 사람의 파산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용불량을 막기 위해 금리가 살인적인 사채를 쓰는 것 보다는 대환대출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2개월 미만의 단기 연체자에게 대환대출을 해주면 회수율이 70∼80%에 이른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은 9개 전업계 카드사의 3월말 현재 대환대출 규모가 10조5천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말 (4조7천억원)에 비해 6개월 만에 2.23배로 증가한 것이다. 연체율이 올라가면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하지만 대환대출은 신규대출로 분류돼 연체율 상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선호한다. 문제는 대환대출 때 세우는 보증인 제도다. 대다수가 보증인을 구하지 못해 대환대출을 못 받는다. 신용카드사들이 보증인 제도를 없애고 대출금 중 본인이 원하는 만큼 매월 갚아나가는 리볼빙 제도를 활발히 도입한다면 대환대출은 신용불량자를 구제하는 좋은 제도가 될 것 같다. 이제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는 폐지해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기고/‘가정의 달’ 小考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녀들로 구성되는 가족은 1차적 혈연관계이며, 이의 공동체 생활단위가 바로 불가침의 성역인 가정이다. 그리고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적 요소다. 그래서 ‘한 다리가 천리’라는 옛 속담대로 가족은 삼촌이나 사촌이며 외가 등 2차적 혈연보다 더욱 진하고, 이같은 가정을 형성하는 부부는 남남으로 만나 부모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가정의 실체인 집은 곧 가족의 안식처다. 집은 모든 가족의 보금자리로 함께 돼야한다.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간, 형제자매 누구든 서로가 상대를 불편하게 할 권리는 없다. 가족간에 상대를 위하는 타이름도 그 과정이 괴롭히는 방법이어서는 안된다. 남편이 아내를 위하고 아내가 남편을 위하고 부모가 자식들을 위하고 형제자매끼리 위하는 것 모두가 이해심 속에 행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집에 돌아가길 싫어하는 이유는 부모의 잘못에 있고 남편이 그러는덴 아내의 잘못에 있으며 아내가 그러는덴 남편의 잘못에 있다. 그 잘못이 본의가 아니고 방법에 문제가 있다 하여도 잘못은 역시 잘못이다. 그러므로 가족을 위하는 좋은 목적이 있으면 방법도 좋아야 한다. 이해심은 그 중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며, 가족간에 이해못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 이 한마디 속엔 무한한 이해가 움 틔우는 사랑과 희생이 영롱하게 농축돼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딴 남들도 이해해야 할 일이 많은 터에 하물며 가족끼리는 더 말할 게 없다. ‘가정의 달’ 들어 숨겨졌던 가족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신문에서 볼 수 있었다. 스물한살의 의무경찰관과 군복무 중인 아들의 두 젊은이가 각기 간 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에게 간을 60%나 떼어준 이식수술을 자청했다. 갓난 아이적부터 정박아가 되어 평생 누워있는 50대 딸을 지금껏 보살피고 있는 백살 넘은 어머니의 애틋한 모정도 있다. 부모 자식간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뜨거운 사연은 이밖에도 많다. 우렁이의 모성애가 생각난다. 체내수정을 하는 우렁이는 새끼들이 어미의 몸을 갉아먹고 자라 세상 밖으로 나온다. 어미 우렁이는 빈 껍질만이 남는다. 바닷고기에 가시고기란 게 있다. 평생 한번 알을 낳는 암컷은 있는 힘을 다해 알을 낳고는 이내 죽는다. 그 알을 수컷이 또 부화하는데 있는 힘을 다 쏟고는 기진맥진하여 죽고 나면 갓 부화된 새끼들은 애비 고기를 먹으며 자란다. 미물의 가족관계엔 이처럼 비정한 것도 있다. 인간의 가족관계는 조물주에게 참으로 선택받았다는 생각을 갖는다. 만물의 영장다운 인간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역시 인간다워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자식을 버리거나 학대하는 미물보다 못한 부모가 돼서는 인간됨의 축복을 받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가정의 단위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대가족에서 중가족, 핵가족으로 변천하였지만 가족의 공동선은 달라짐이 없다.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효도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도리를 다 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다움의 공동선이다. 효의 개념 또한 달라져 예전같지 않으나 효는 부모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녀되는 자신들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효하는 사람 치고 잘된 집안 없고 효도하는 사람치고 복되지 않은 집안이 없다. 효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몸 건강하고 부모 속 썩히지 않으며 제 앞가림하고 살면 그 자체가 훌륭한 효도다. ‘가정의 달’은 생활에 쫓겨 황망간에 잊었던 주변을 돌아보도록해 의미가 깊다. 설사, 가족 중 누군가가 섭섭하게 했다 하여도 이해하려 들면 못할 게 없다. “우리는 한 가족이니까-”문제의 해답은 이 속에 다 있다. 건강한 가정이 많으면 사회 또한 건강해진다. 가정문제는 곧 사회문제이기도 한 연유가 이에 있다. /이지현.(사)한길봉사회 경기도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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