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교실만 지어라?

행정에는 법과 원칙과 예규란 것이 있다. 이를테면 기존의 가치 기준이다. 교육행정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정부의 ‘교육여건 개선 추진계획’이 지닌 졸속성은 이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 대통령의 분부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심된다. 후닥닥 해치워서 되는 일이 있고 안되는 일이 있다. 교육여건 개선도 마찬가지다. 교실만 벼락치기로 많이 짓는다고 해서 선진국 수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03년까지 교원수를 2만3천600명가량 늘린다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으로 잡는 그 해에 가면 충원이 불가능하다. 전국 시·도교육감회의에서 제기된 문제점이다. 또 학급을 늘리면 교무실 증축등 증설 수요 또한 감안해야 하는데도 간과했다. 이는 계획결함 이다. 여기에 겹친 졸속성은 불안할 정도다. 전국의 고등학교는 공사판이 될판이다. 도내에는 310개 고교에서 1천60개 교실을 지어야 한다. 오는 9월20일 일제히 착공, 내년 2월까지 완공하라는게 교육부의 지시다. 학교마다 7∼8개 교실에서 15∼16개 교실을 더 지어야 하는데 부지가 마땅치 않은 학교가 대부분이다. 담벽사이 공간이나 운동장을 잠식해 지어야할 학교가 있다. 심지어는 체육관, 과학실험실을 교실로 바꿔야할 지경인 학교도 있다. 운동장, 체육관, 실험실 등을 없애가며 교실만 증축하는 것이 선진국 수준의 교육여건 개선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약에 이같은 교실증축이 실정법에 저촉돼 무허가 공사로 짓게 된다면 정부가 불법을 조장하는게 된다. 도대체가 갈팡질팡이다. 언제는 교원을 감축한다며 학급수를 줄이더니 이제는 학급 수를 늘리려니까 교실을 지으라고 야단이다. 그것도 6개월 안에 마치라니 학생들은 2학기 내내 공사속에 시달릴 판이다. 평소에는 학교에서 교실 한 칸을 더 지으려 해도 으례 예산이 없다며 외면해 오던 정부가 대통령 임기내에 17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재원은 갑자기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교육환경 개선이나 교실증축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절실하다. 문제는 물리적으로 밀어붙이고자 하는 경직된 인식에 있다. 그보다는 안정된 교원수급, 내실있는 공교육과 더불어 교실 개선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까지 뭣하고 있다가 뒤늦게 벼락치기로 서두르느냐는 말을 들어서는 오히려 역기능이 우려된다. 재임중 치적사업으로 매달리지 말고 짜임새 있는 거시적 안목으로 추진해야 평가받는다.

대우車 독자생존의 길

대우자동차가 엊그제 인천지법에 제출한 정리계획안은 회사의 자력갱생을 위한 구조조정안에 기초한 것으로 독자생존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게 한다. 특히 이 정리계획안은 현재 진행중인 제너럴모터스(GM) 등 제3자와의 매각협상을 고려하지 아니한 독자생존 방안으로 매각협상 결렬에 따른 회사처리 정책방향 등의 혼선을 막고 회사의 급격한 신인도와 가치하락과 같은 과오를 미리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 하다. 이는 또 GM과의 매각협상에서 유리한 요소로 작용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우차는 정리계획사업 추정기간을 2011년말까지 10년으로 잡고 매출규모는 우선 2005년까지 국내시장 점유율을 98년의 34%, 세계시장 점유율은 99년의 2.6% 수준으로 회복하고 그 이후는 전체시장 성장률에 비례한 매출물량을 계획하고 있다. 이 기간중 현재까지 인정된 부채 17조1천976억원은 출자전환(8조2천632억원), 변제(4조3천740억원), 주식소각 등 (4조5천595억원) 방법으로 정리하도록 되어 있다. 대우자동차가 제출한 정리계획안은 앞으로 법원의 심리를 거쳐 승인여부가 결정되겠지만 대우차 노사가 정리계획안의 실행을 위해 합심해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충분히 독자생존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GM과의 매각협상에서 최대의 쟁점인 부평공장이 그동안 과감한 구조조정과 노사간 무분규 선언 등 뼈를 깎는 노력으로 98년 6월 이후 3년만에 51억원의 흑자를 낸 사실이 이를 실증해 주고 있다. 대우차 전체로는 지난달에도 132억원의 영업이익을 나타내 4월 67억원, 5월 135억원, 6월 17억원에 이어 4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 말부터 자구계획에 돌입한 대우차가 정리해고 등을 통해 전체인원의 30%가 넘는 7천410명(부평공장 4천156명)을 줄이는 등 인건비와 재료비·경상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파멸과 회생의 기로에 선 노사가 허리띠를 졸라 매고 노력한 결과로 전 산업계에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우차는 앞으로 이같은 흑자전환의 교훈을 거울삼아 한층 더 분발해야 한다.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경영합리화로 독자생존 기반을 구축하고 매출증대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과 함께 기술혁신과 원가절감으로 영업이익을 극대화함으로써 부채상환 재원확보에 힘써야할 것이다. 이것만이 대우차가 회생할 수 있는 길임을 명념해야 한다.

마약근절은 강력한 단속뿐이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마약은 소수의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만 인식됐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마약사범이 급속히 늘어나 지난해 이미 20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요자가 있어 공급이 있는 것이지만 밀수 대규모화와 밀수조직의 다변화, 그리고 사라졌던 국내 마약공장의 재등장 등으로 국내 마약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심히 불안한 사회현상이다. 한국인이 90년대 초반부터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 마약제조 공장을 차려놓고 그동안 50여㎏의 히로뽕을 국내로 밀반입해왔는가 하면 국내에도 다량의 히로뽕을 제조하는 마약 공장이 재등장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신종 마약류가 올해에만 엑스터시(일명 도리도리) 338정, 야바 2천95정이 압수됐으며 신종 마약류사범 적발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70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국내 거주 외국인에 의한 마약범죄도 지난해에 비해 15배나 증가했다니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추세로 나가다간 한국 사회가 마약 천국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해 6월 대검에 마약부가 신설돼 검찰의 마약사범 일괄 단속 체계는 마련됐지만 국정원 및 관세청 등 유관 기관들과의 일원화된 조직없이는 지능화·조직화되고 있는 마약조직에 대한 체계적인 단속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더구나 마약 수사의 특수성을 감안, 현재 4억원으로 책정돼 있는 ‘수사비’가 턱없이 부족해 효과적인 단속이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점조직화된 마약사범 단속에 투입되는 최소비용을 3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한 건당 1천만원을 넘지 못하도록 돼있는 예산 배정이 검찰 수사력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어 특단의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현재 수사당국의 제1차 목표는 이른바 ‘백색 삼각지대(white Triangle)로 불리는 한·중·일간 마약류 거래 차단이다. 일본 당국의 적극적인 단속으로 동북아 최대 마약 생산국인 중국의 마약이 한국으로 역류되고 있어 국제협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검찰은 중국 공안부 금독국(禁毒局)과 공조체제를 추진하는 동시에 일본 경시청과의 연례회의 정착 방안도 마련중이라고 한다. 모든 범법행위가 그러하지만 특히 마약퇴치의 지름길은 달리 있을 수 없다. 계몽도 필요하지만 우선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검찰·경찰·국가정보원·관세청 등 수사 유관기관의 유기적인 통합이 속히 이루어져 마약사범 단속에 더욱 개가를 올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제조업 살려야 경제가 산다

제조업의 위축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큰 걱정이다. 지난 40년동안 줄곧 경제성장의 주도역할을 해왔던 제조업이 최근 침체현상이 두드러져 물가불안·수출부진과 함께 성장기반의 약화에 대한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본보 보도를 보면 해를 거듭할수록 경기·인천지역의 제조업이 위축되고 있으나 서비스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환란 직전인 97년 11월말 경기·인천의 접객업소가 13만4천87개소에서 올 6월말 현재 15만735개소로 1만6천648개소나 늘었다. 이같은 서비스산업의 비대현상은 노동인구의 ‘제조업 이탈·서비스업 전향’추세로 이어져 제조업체들이 구인난을 겪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을 떠난 근로자들이 노동강도가 낮은 서비스업으로 옮겨가고 있고 해마다 노동시장에 공급되고 있는 신규 노동인력 가운데 대부분이 서비스업에 취업함으로써 산업의 구조적 파행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또 만성적인 자금난도 여전하다. 정부의 각종 정책자금은 담보력이 약한 중소업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밖에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공장건설총량제 등 각종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울며 겨자먹기로 내야 하는 준조세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사분규로 인한 생산차질은 물론 노동생산성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지 않은 과다한 임금인상요구도 제조업 위축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근로자들의 제조업 기피현상이나 기업의 투자의욕 감퇴,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 등 일련의 현상은 한때의 걱정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거듭 강조할 필요도 없이 한 나라 경제의 기초는 제조업이다. 서비스산업은 제조업의 바탕위에서만 제대로 설자리를 찾을 수 있음은 다른 나라들에서 이미 충분히 입증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가 그 반대의 상황에 처해 있다면 이는 모든 일에 앞서 바로 잡아야할 문제다. 근로자들은 힘든 일이라 해서 무조건 기피할게 아니라 근로환경개선을 통해 산업현장을 지키는 일이 실업을 피하는 일임을 자각해야 한다. 기업주 또한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처우와 복지개선을 통해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북돋워 주어야할 것이다. 정부도 서비스업의 이상비대화를 막는 본원적인 대책과 함께 제조업체의 기를 살려주는 정책들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원로들 苦言 새겨 들어야

지난 2일 사회원로, 시민단체 인사 32인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성명서 발표가 사회에 큰 반응을 불러온데 이어 광복절을 맞이하여 학술원 회원 등을 비롯한 원로 지성인 115인이 ‘광복의 날에 즈음하여 오늘의 난국을 생각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시민들로부터 상당한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광복절을 맞이하여 사회의 극심한 분열 현상을 우려하여 원로들이 사회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된다고 하는 고언(苦言)은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표출되는 갈등의 분출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복잡화된 산업사회 구조하에서 다양화된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이해관계의 표출이라는 현상을 넘어 극도의 양분적 사고에 의한 사회분열 현상까지 야기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말로만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뿐 실제 생활에 있어서 민주적 생활양식이 정착되지 않아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나 이념적 차이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속에 여과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론화시키기 보다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극단의 표현을 통하여 목적을 달성시키려 함으로써 해결점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사회분열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모든 것을 이분법적 사고에 의하여 갈등을 재단하려고 하면 사회는 통합보다는 분열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최근 야기되고 있는 이념논쟁은 사회발전 양식에 대한 논쟁이기보다는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고도로 획책된 전략적 차원의 양태이기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합리적 토론을 통하여 갈등을 공론화시킬 수 있는 민주적 생활양식의 제도화가 시급하다. 더 이상 구시대적 유물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시대적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된다. 토론과 타협에 의한 공동체적 생활 양식을 제도화시킴으로써 원로들의 고언이 극도로 분열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현재의 사회적 위기를 타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접경지역 개발에 유념할 일

경기북부 휴전선 접경지역 개발계획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경기도가 수립한 접경지역 개발계획안은 문산∼전곡∼포천의 휴전선 남부를 동서로 횡단하는 평화관광도로 건설 등 10대 핵심전략사업을 비롯 모두 100여개의 각종 개발사업으로 짜여져 있다. 앞으로 각 지역별로 열리는 공청회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 연말까지 계획안이 확정되면 부처간 협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에는 종합계획이 최종 수립될 예정이다. 2003년부터 10년간 10조원이 투입될 의욕적인 이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경기북부지역 발전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50년간 개발억제로 낙후된 포천·연천·파주 등 도내 7개 시·군 접경지역들로서는 남북분단 이후 최대 숙원인 개발계획의 틀이 잡혀감으로써 비로소 획기적인 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발효과에 대한 기대못지 않게 개발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된다. 원래 휴전선 일대 접경지역 개발은 지난 정권에서도 여러차례 추진됐었으나 접경지역의 자연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여론에 부딪쳐 번번히 백지화되곤 했었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선 후 통일에 대비해서 접경지역의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산업능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명분에 따라 법제화한 만큼 자연보전과 개발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느 지역보다 양호하게 보전돼온 생태계와 자연환경이 개발에 밀려 훼손되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아울러 50년간 개발욕구가 억눌렸던 지역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 반작용으로 무질서하고 무분별한 개발이 우려되기도 한다. 난개발에 대한 폐해는 특히 수도권지역에서 수없이 경험한 바 있다. 그같은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개발권역은 물론 개발지역 주변에 대해서도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도시계획과 국토건설계획은 한번 실행돼 그 골격이 완성되면 뜯어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백년의 대계일 수 밖에 없다. 접경지역 개발욕구가 아무리 강하고 화급해도 신중히 추진되어야 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계획만 그럴듯한 공공보육정책

보건복지부가 핑크빛 청사진을 공개했다. 2010년까지 공공보육시설이 100% 확충되고 취학 이전인 만5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완전 무상교육이 실시된다는 내용이다. 이 계획이 사실로 실천된다면 실로 선진국을 능가하는 경이로운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보건복지부 산하 보육발전위원회가 마련, 지난 8일 보건사회연구원 공청회에서 공개한 ‘보육사업 종합발전계획’을 보면 가히 획기적이다. 오는 2010년까지 원하는 모든 5세 미만 어린이 134만2천명이 보육서비스를 받도록 하고 연간 총보육료 3조535억원의 50%인 1조5천268억원을 매년 정부가 분담해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또 국공립 보육시설을 현재 1천295개소에서 2005년 3천425개소로, 2010년에는 6천975개소로 대폭 확충해 5세 미만 어린이의 40%를 국공립 보육시설에서 보육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어찌 쌍수를 들어 환호할 일이 아닌가. 그러나 수조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이 발전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예산당국과 협의하지 않았다니 ‘무책임한 선심성 발표’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매년 수조원에 달하는 국고와 지방비 투입이 불가피한데도 계획안 수입과정에서 예산당국과의 협의는 물론 예산관련 정부부처에 계획안조차 통보하지 않았다니 쌀도 땔감도 없는데 밥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복지부 내부에서조차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니 ‘보육사업 종합발전계획’최종결재자는 무엇을 믿고 확정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획예산처에서도 보육사업에 대한 정부지원 확대문제와 관련해 복지부가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협의를 요청한 적이 없고 그같은 보육사업 발전계획안이 있다는 내용을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보육료 지원을 위해 매년 1조5천억원을 투입한다는 내용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최종 확정되지 않은 검토안이라는 복지부 관계자의 변명도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예산부처와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하면서 앞으로 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과 부처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지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대책없는 말잔치’이긴 하지만 국민 복지를 지향하는 국가사업으로는 반드시 이룩해야 할 사업이다. 이왕 공론(公論)으로 부상한 만큼 복지부와 기획예산처는 지금부터라도 진지한 협의를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화성시민의 新克日 선언

광복 56주년을 맞아 화성시민이 벌이는 신극일(新克日) 운동이 우리에게 민족적 각성과 함께 진한 공감을 안겨준다. 더욱이 최근 일본은 그동안 쟁점이 돼온 역사교과서 왜곡의 시정에도 계속 등을 돌리고 있으며, 우리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터에 3·1운동의 중심지였던 제암리에서 극일운동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한층 더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어제 각계 대표 33인과 화성시민이 참석한 신극일 선언식에서 이들은 패전이후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일본의 철면피한 자세를 규탄하고 이제라도 식민통치의 폭압과 수탈의 만행을 참회하고 우호 선린의 동반자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이와함께 우리 국민도 제국주의 침략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본의 과거 만행을 되새기며 후손들이 선조들의 애국애족의 민족정기를 이어 받아 민족자존을 회복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극일운동을 실천할 것을 선언했다. 오늘날의 한일관계는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제사회의 동반자로 공존해야 하는 역사적 명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자란 일본은 자신들의 죄과는 금방 잊어버린채 정치·군사대국화의 길로 나서며 스스로의 성공에 도취되어 오만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을 진정한 이웃으로, 새 시대의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한국을 지난 역사의 종속관계로서 혹은 미래의 귀찮은 경쟁자로서만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극일운동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면 일본제품의 불매운동 등에 그쳐서는 안된다. 그들이 어떤 사고와 행동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며 국가 사회의 미래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을 알려고 하는 우리의 노력은 미약했다. 우리는 항용 일본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허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 안다는 것은 고작 우리를 괴롭혀온 간교하고 잔혹한 행위와 이에 대한 증오의 감정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같은 묵은 감정을 버리고 일본에 대해 객관적·학문적 연구를 깊이 해야 한다. 우리의 구석구석을 알고 접근하는 저들 이상으로 우리의 일본연구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극일도 하고 양국의 선린 동반자관계가 수평을 이룰 수 있다.

수출 감소에 물가까지 상승

최근 경제 상황이 삼상찮다. 정부는 오는 23일이면 IMF에서 빌린 차입금 잔액 65억달러를 갚아 IMF를 졸업하게 되고 은행 금리는 저금리 추세를 지속하고 있어 기업들이 금융경색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후반기 경제전망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서민들이 느끼는 경기체감 온도는 결코 따뜻하지 않다. 오히려 수출도 악화되고 물가는 오르고 빈곤층은 증가하고 있다. 수출이 34년만에 최악의 감소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67년 수출에 관한 월별통계를 낸 이후 월 20%를 감소하여 최악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으며, 연속 5개월의 적자 행진을 하고 있다. 또한 수입조차 감소추세에 있어 앞으로 무역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은 기업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경제전망이 어둡다고 분석하고 있어 극히 우려된다. 더욱 큰 문제는 최근 물가까지 상승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요금의 인상을 억제하고 있으나 지방자치단체는 열악한 재정을 이유로 쓰레기 봉투와 수도요금을 최고 90%까지 인상하는가 하면, 서울의 택시요금이 오는 30일부터 무려 28%가 인상될 계획이어서 물가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물가를 중앙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특히 열악한 재정을 이유로 공공요금의 인상을 요구하는 지자체를 나무랄 수 만은 없다. 이와같은 경제상황은 무엇보다도 서민들의 삶을 어렵게 하고 있다. IMF이후 형성된 현격한 빈부차이로 사회적 이질감까지 생기고 있는 상황에서 어려운 경제상황은 서민들에게 좌절감마저 주고 있다. 서민들은 이유야 어떻든 우선 의식주에 있어 큰 불편이 없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서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대책이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여야는 정쟁만 일삼지 말고 기업인들이 안심하고 신규투자도 하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만은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된다. 지난주 기대를 모았던 여야정책협의회는 겉모양만 요란했지 실제는 알맹이도 없이 끝났다. 조속히 휴회중인 국회를 열어 민생문제 해결에 적극 대처하고 정부는 수출 회생을 위하여 업계의 의견을 수렴, 효과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수출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는 과감하게 푸는 등 수출 촉진의 경제환경을 조성, 침체된 경기를 회복해야 된다.

공직비리 신고보상제

공직비리 고발에 최고 10억원까지의 보상금을 주는 부패방지법 시행령안이 성안됐다. 부패방지법 공포에 따라 예정된 것이긴 하나 내년 1월 대통령 직속 부패방지위원회 출범과 함께 시행되기에 앞서 최종안 확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뇌물 추징액이나 국고손실 예방액 규모에 따라 보상금을 차등 정률 방식으로 결정하고, 공직 내부고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신고자에 대한 신분상 불이익은 회복시키며 신분을 노출하거나 불이익을 준 사람은 징계한다는 것이 시행령안의 주요 골자다. 뇌물 추징금이나 비용절감액의 2∼10%를 보상하는 가운데 설정한 상한선에 반대, 상한선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보상금 수준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부패방지법의 목적이라 할 공직사회의 지하부패 및 준공식부패 추방의 실효성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예컨대 추징액에서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결국 보상금을 지급못하는 경우가 적잖게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추징금이 징수 안되거나 무작정 지연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신고의 실효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법원의 추징금 확정판결이 나면 징수에 상관없이 국비로 선불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그러나 우려되는 점도 있다. 일반인 신고를 포함, 내부고발을 활성화하여 부정부패를 근절한다는 취지는 능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실효성 없는 교통위반 신고보상의 재판이 된다. 지난 3월 교통위반 신고보상제 실시이후 전문 몰카족까지 등장, 직업적으로 신고하고 있으나 자동차문화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직사회 부패 역시 투서만 난무한 가운데 부정부패 방지의 소기 목적은 기대만큼 기할 수 없을 것이 우려된다. 그렇지 않아도 공직사회 투서는 공무원 조직에 폐해가 있을만큼 심하다. 여기에 현상금까지 걸고 신고란 이름으로 투서행위를 조장하는 것은 그 방법에 깊은 사려가 요구된다. 무고성 짙은 근거없는 신고는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엄중조치 하는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 또 공직사회의 부패추방은 상층구조, 권력형 부패척결부터 앞서야 비로소 가능하다. 직업공무원만을 대상 삼을 일이 아니다. 공직사회 조직의 전통적 덕목이었던 인간관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내부조직에 권장하고자 하는 현상금 신고제로 인해 행여 공무원 조직이 더이상의 비인간관계화 하는 역기능을 가져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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