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과 ‘나비’

‘주 방위군에 난동자·약탈자 사살권 부여’ ‘하천엔 시체 둥둥, 도심선 총격전’ ‘생존자 구하느라 시신수습 엄두도 못내’ ‘폭발·약탈·뉴올리언스시 시가전 방불’ 본 지지대(8월31일자)에 ‘허리케인’ 제하로 보도한 뉴올리언스시 피해지역의 참사 속보가 한 마디로 지옥이다. 위에 예로 든 것은 중앙지들의 현지 특파원 보도 제목이다. CNN, BBC 등 텔레비전 보도 역시 참상을 연일 속보로 내보낸다. 도시의 80%를 파도가 덮쳐 바닷물에 할퀴고 씻긴 뉴올리언스시는 이재민이 수십 만명인 가운데 아직도 정확한 사망자를 파악지 못하고 있을만큼 모든 것이 엉망이다. 무법천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데도 질서가 무질서이다. 이런 와중에 지역차별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차별은 곧 인종차별이다. 뉴올리언스시엔 인구의 65%가 흑인이 살고 있다. 백인이 많이 살고 있었을 것 같으면 이토록 늑장 대응을 했겠느냐는 비난이 부시에게 쏠리는 모양이다. 이라크전 탓으로 재해대책 예산도 턱없이 모자라 미 언론의 공격을 거세게 당하는 것으로 전한다. ‘테러 막다가 허리케인에게 강타 당했다’는 말이 나왔다. 부시 행정부는 뒤늦게 육군·공군을 동원, 구호활동에 나섰으나 재해 수습은 진척이 더뎌 여전히 아비규환 속이다. 2천500여 명이 사는 교민사회의 점포 역시 많이 털리고 상당수의 교민은 아직껏 행방이 묘연해 외교통상부엔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 이런 가운데 허리케인이 또 불어닥칠 가능성이 45%라는 예보로 엎친데다가 덮치지 않을까 하여 전전긍긍이다. 초대형 ‘나비’가 북상중이다. 2002년 태풍 ‘루사’와 맞먹는 규모다. 시속 17㎞의 속도로 올라오고 있는 ‘나비’는 내일 모레쯤 한국에 상륙할 것이라는 게 기상대 예보다. 많은 비를 동반하고 있어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게 된다. 대자연은 인간의 오만을 응징한다. 정부는 뉴올리언스시 참변에 인력과 지원금품을 보낸다. 남의 나라에 대한 구휼도 좋지만, 제 나라에 대한 대비를 더 잘 해야 할 줄로 안다./임양은 주필

盧·朴 ‘밀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왜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논의회동 제의를 받아들였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체면 불고하고 결혼(연정)하자며 하루가 멀다하고 졸라대는 것이 우선 부담이 됐을 것이다. 청혼(연정)제의는 듣지 않았던 일로 치부했지만 집요한 대통령의 스토킹은 “(자기)말 (연정)을 박 대표가 듣지 않으면 수세에 몰릴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연정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 그런 그가 노 대통령의 청와대 초청을 수락한 것은 연정(聯政)인 지, 연정(戀情)인 지 아무튼 공개적으로 치근덕 거림을 당하는 것이 이젠 귀찮게 여길 수 있게 됐다. 박 대표의 입장에선 “그래? 정 그렇다면 만나서(거부하는 쪽으로) 따지겠다”는 작심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생각은 그게 아닐 것이 분명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여자)가 없다’고 했으니, 드디어 안방까지 오기로 된 박 대표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저의에 골몰할 것이다. 이미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는 말은 했으니, 만나는 자리에선 더한 유혹의 말이 없지않을 공산이 짙다. 그러나 재산 많은 남편이 아내에게 아무리 잘 해주겠다고 한다 해도 남편 명의의 재산은 아내의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남편의 소유다. 노 대통령이 박 대표를 국무총리 자리에 앉혀 자기 명의의 권력을 아무리 통째 이상으로 내준다 해도, 그 권력은 박근혜의 것이 아닌 노무현의 것이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끈질긴 구혼을 물리치고 오히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 세계 제해권을 장악함으로써 대영제국의 위업을 닦았다. 촉망받았던 재원 황진이는 짝사랑 끝에 상사병으로 죽은 이웃집 총각의 관에 자신의 치마를 덮어준 감상적 행위로 끝내 인생이 바뀌고 말았다.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굴(청와대)에 들어가는 박 대표가 (엘리자베스 1세처럼) 호랑이를 잡을 것인 지, (황진이처럼) 잡아 먹힐것인 지가 주목된다. 오는 6일로 예상되는 회동은 단 둘이 만나는 밀담에 가까운 단독 대면이다. / 임양은 주필

서민부담 또 는다

서민 및 중산층 세부담 등이 내년엔 더 늘어난다. 부동산 취득·등록세의 실거래가 적용으로 늘어나는 부담은 그렇다고 치자. 농어촌 주택 양도세가 올해 말로 과세특례를 폐지하게 된다. 8년 자경농지 양도세감면에 상속인도 3년 이상 경작 요건을 추가해 양도세가 또 는다. LNG 가격은 특별소비세 인상으로 월 1천300원이 더 부담되고, 중·대형 아파트 관리비가 공동주택 관리비 부가세 감면 폐지로 월 5만원의 부담을 더 안게 된다. 전기요금 인상은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유보됐으나 또 언제 기습 인상될 지 모른다. 금융부문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액 소득공제가 20%에서 15%로 축소되어 세금 증가가 불가피해진다. 장기주식형 저축 이자에 대한 비과세가 올 연말로 폐지된다. 자동차 보험료가 인상되고 화물자동차로 구분되던 무쏘 픽업·코란도 밴 등이 승용자동차로 전환되어 내년은 아니지만 세금 인상을 앞두게 된다. 경유값 역시 2차 에너지 세제 개편으로 세금인상이 예견된다. 이는 지지대子가 멋대로 예시한 게 아니다. 재정경제부, 보건복지부, 금융감독원 등의 자료가 이렇게 돼 있다. 또다른 자료를 보면 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소주값, 담뱃값 인상이다. 담배는 담배소비세를 인상, 갑당 균일 500원이 더 오른다. 담뱃값 올린지가 불과 몇 달됐다고 또 500원이나 올리려고 한다. 소주값은 주세율을 인상, 병당 100원에서 200원이 오른다. 그러니까 동네 가게에서 병당 지금 1천100원하는 소주값이 1천200~1천300원으로 오른다. 100~200원도 서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크다. 담뱃값 올리고 소주값 올리고 하면 살기에 지쳐 화나는 서민들이 울화통을 달래는 비용도 더 는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 “개뿔 같으면서 서민물가 올리는 덴 선수들이다”라고. 이러고도 잘 한다고 우기며 큰 소리치는 것이 이 정권이다. / 임양은주필

지방의원 유급화

지방자치 이후 주민부담의 자치비용에 비해 주민혜택의 자치실익이 과연 얼마나 되는 가는 항상 의문이다. 이에 관한 손익계산서가 나온 예가 없어 과제로 남아있다. 지방자치로 주민부담만 가중됐을 뿐 주민혜택은 별로 없다는 세간의 의문에 언젠가는 설득력있는 해답이 나와야 한다. 자치비 가중은 주로 지방의회 부담이 차지한다. 지방의원 유급화는 설상가상의 자치비 부담이다. 광역의원은 연간 7천만원, 기초의원은 5천만원 쯤 될 모양이다.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많아도 훨씬 많다. 새로운 선망의 직종이 됐다. 이러다 보니 지방의원 지망생이 벌써부터 사태가 나 물밑 경쟁이 여간 치열하지 않은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저러나 ‘지방의원님’들 월급 바람에 지역주민의 혈세가 크게 작살 날 판이다. 경기도의회의 경우, 120명에게 7천만원씩을 주면 연간 84억원이 들어간다. 수원시의회는 의원 40명에게 5천만원씩 치면 연간 20억원이 소요된다. 지금도 돈을 주긴 준다. 수당이라고 하여 광역의원은 연간 2천400만원, 기초의원은 연간 1천800만원 가량을 받는다. 보통 월급쟁이만 한 이 돈을 의회 출석 여부에 상관없이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궁금한 것은 유급화되면 수당은 안 주게 되는지, 아니면 월급에 수당도 얹혀주는 것인 지 이 대목이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지방의원 유급화는 정원 감축이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기초의원은 선거구를 늘렸다. 정당공천제 도입과 함께 이렇게 고친 것을 극력 반대하는 것은 일종의 집단이기다. 정당 공천제가 중앙의 예속화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논리의 비약이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가 지방의원 유급화 비용을 중앙정부에 요청한 것은 공연한 짓이다. 물론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에선 문제이긴 하다. 그렇지만 지방자치 비용을 중앙정부가 부담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애시당초 유급화가 잘못된 일이다./ 임양은 주필

허리케인

북대서양 서인도 제도 멕시코만에서 발생, 미국 동해안을 강타하는 열대성 폭풍우가 허리케인(hurricane)이다. 스페인어의 우라칸(huracan)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우라칸은 카리브해 연안에 살던 원주민들의 말이다. ‘폭풍의 신’이란 뜻이다. 이 ‘폭풍의 신’은 미국으로서는 정말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여름이면 열대성 저기압이 계절풍을 타고 북상하곤 한다. 폭풍우의 중심에 들면 나무가 뿌리 째 뽑히고 집이 날아가고 자동차가 뒤집히기도 한다. 일시에 홍수가 일어나 범람하는 황토물로 아수라장을 이룬다. 영화 ‘트위스터’(1996년)에서 기상 과학자들이 강력한 회오리바람을 진압하기 위해 애쓰는 무용담은 허리케인의 천재로부터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는 미 동부지역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퍼펙트 스톰’(2000년)은 북대서양으로 조업나갔다가 해마다 폭풍우로 많은 인명 피해를 당하는 매사추세츠주 게일 지방 주민들의 재난을 묘사했다.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현지 시간으로 지난 29일 오전 미국 루이지애나주와 미시시피주를 강타한 외신 보도가 처참하다. 시속 300㎞에 육박하는 태풍은 8.4m 높이의 해수면 상승을 가져왔다. 이 바람에 뉴올리언스시는 70%가 해수면에 잠기고 전기가 다 끊겼으며, 도로란 도로는 탈출행렬로 마비됐던 것으로 전한다. 주민들이 대피중이던 미식축구경기장 수퍼돔의 지붕이 떨어져 날아가기도 했다. 허리케인이 휩쓴 미국 남부 멕시코만 해안지역은 곳곳에 이같은 참상이 벌어져 바다에 정박해 있던 배가 파도에 떠밀려 고속도로에 놓인 보도사진이 생뚱맞게 보였다. 설상가상의 오일 쇼크가 걱정된다. 가뜩이나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판에 미국 정유시설의 30%가 모여있는 멕시코만이 허리케인의 예상 진로로 지목되고 있다. 한동안은 10월 인도분 선물가격이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70, 80달러까지 기록했다. 미국 정유시설이 강타 당하면 당장 배럴당 100달러대로 치솟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허리케인은 미국만이 아닌 세계인이 두렵게 여기는 불청객이 된것 같다. /임양은 주필

‘불멸의 이순신’

영국 불멸의 제독 넬슨은 1793년 프랑스군과의 해전에서 오른 눈과 오른 팔을 잃었으나 퇴역하지 않았다. 1798년엔 마침내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함대를 전멸시켰다. 이어 무적을 자랑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트라팔가 앞바다에서 궤멸하면서 전사했다. 이 때가 1805년으로 나이는 47세다. 넬슨은 “웨스트민스터냐, 승리냐”는 말로 기함 빅토리호에서 진두 지휘했다.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여 국립묘지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힐 각오로 승리를 쟁취하자는 뜻이었다. 그 자신은 승리를 쟁취하고 사원에 묻혔다. 이순신은 서양의 넬슨이고 넬슨은 동양의 이순신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 28일 104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KBS1-TV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 마지막 장면이 가벼운 논쟁이 됐다. 노량해전은 왜함을 궤멸시켜 임진왜란 7년을 마무리 지은 대첩이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은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면서 몸소 독전함을 앞세워 진두 지휘했다. 드라마는 “저 바다는 내 피도 원한다”는 은유적 대사로 적의 유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의 죽음을 자살로 암시했다. 1598년의 일로 이 때 나이가 53세다. 자신의 죽음으로 승리를 쟁취한 이순신은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추서받았다. 그러나 이순신의 종군은 평탄한 것이 아니다. 조정의 모함으로 주리를 틀고 인두로 지지는 참혹한 고문을 당하고 한동안은 백의종군했다. 전세가 다시 위기에 처해 선조가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킬 땐 “신의 배가 아직 열두 척이 있나이다”하는 비장한 다짐으로 전의를 불태웠다.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은 독전은 전사를 자초한 자살로 비유할 수 있는 것은 드라마나 소설로서는 있을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러나 자살설은 무리한 추측으로 보아 전사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국난을 맞아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나라를 구한 이순신은 불멸의 성웅이다. KBS가 참으로 오랜만에 정통 대하사극의 수작을 만든 것은 마땅히 칭찬 받을만 하다. 이순신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김영민씨(33)의 노고가 컸다./ 임양은 주필

개성관광

개성시는 경기도 땅이다. 지금은 비무장지대가 되어 잡초더미에 묻힌 장단군을 거쳐 개성시 외곽 도시인 개풍군으로 해 개성역에 다다르곤 했다. 경의선인 서울역~개성역 간 운행열차가 멈춘지 55년이 된다. 1950년 6월25일 아침에 개성역을 떠난 통학열차가 마지막이다. 그 통학열차를 탄 학생들은 저녁 통학열차를 타고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날 새벽 4시, 38선 일원에 걸쳐 남침한 북의 인민군에게 국군이 밀려 전황이 불리한 바람에 아침 통학열차 이후엔 운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고려 오백년 왕도, 개성시는 유서깊은 도시다. 이런 왕도를 잃은 경기도 땅, 개성에 육로를 통한 첫 시범 관광객 500여 명이 지난 26일 다녀왔다. 선죽교, 정몽주의 집터, 박연폭포 등을 돌아보는 관광객들의 감격이 꽤나 깊었던 것 같다. 어찌 그만이겠는가, 개성시와 개풍군 일대엔 고려의 사적지가 무수히 많다. 한 마디로 고려 유적지의 보고다. 자유로를 따라 파주시 장단콩마을을 지나면 ‘개성 18㎞’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다. 여기서 비무장지대를 달려 중앙군사분계선을 넘으면 북녘 땅에 들어선다. 이윽고 북방한계선에 이르면 북쪽 안내원의 안내를 받게 된다. 여기서 몸 수색과 소지품 검사를 받는데 카메라 룸렌즈 160㎜, 24배 줌 비디오 카메라는 제지당한다. 신문 책자 휴대전화도 가져갈 수 없다. 절차가 복잡하긴 하지만 시간은 얼마 안 걸린다. 서울 경복궁 앞에서 버스로 불과 두 시간 남짓 밖에 안 걸린다. 수원서 출발해도 역시 두 시간이면 갈 수가 있다. 전쟁이 있기 전에는 수원에서 점심 먹고 개성에서 술을 마시거나, 개성에서 자고 아침이면 서울·경기도로 출근하기도 했다. 의정부나 고양에서는 훨씬 더 가까워 한시간 남짓되는 거리다. 휴전선 넘어 북녘 땅이 된 뒤에는 잃었던 경기도 땅, 개성을 관광객으로나마 가볼 수 있다는 것은 감회를 새롭게 한다. 그 옛날처럼 경의선 열차를 타고 왕래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생각해본다. / 임양은 주필

화투

화투(花鬪)는 19세기말경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쓰시마섬 상인들이 장사차 왕래하면서 퍼뜨렸다는 설이 있지만 누가 어떻게 들여왔는지는 정확지 않다. 아무튼 화투는 국내에 상륙하자마자 급속히 전파돼 사회 상층부 사람들까지도 화투를 가지고 노는 풍조에 휩쓸렸다. 화투는 그림의 내용이 일본 풍속을 따르고 있는 데다 그림의 도안이나 색채도 전적으로 왜색이다. 일제가 화투를 일본문화 전파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화투용어도 온통 왜색이다. ‘고도리’는 다섯 마리의 새라는 일본말이며 민화투에서 점수가 되는 ‘약’은 일본어의 세금, 부역 등을 의미하는 ‘역(役)’을 일본식(야쿠)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리’는 자른다는 뜻의 일본어다. 무산됐다는 일본어 ‘나가레’에서 온 ‘나가리’, ‘고리뗀다’는 ‘고리’는 금품을 받는다는 일본어의 ‘고오리카’에서 온 것이다. 돈을 내지 않고 미뤄두는 ‘가리’는 빚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짓고땡’ ‘장땡’ ‘구삥’ ‘가보’ 같은 말은 물론 ‘땡잡았다’ ‘삥땅치다’ 등은 아예 관용어처럼 우리 일상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48장의 화투 속에 담겨 있는 그림들도 모두 왜풍이다. 화투패 중 1월, 3월, 8월, 11월, 12월에만 광이 있는 이유는 이 다섯 달이 일본의 대표적인 명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설날(1월)을 비롯해 벚꽃축제(3월), 오봉제 및 달구경(7, 8월), 어린이 명절(11월), ‘도시코시 소바’라는 국수를 나눠 먹는 세모(12월)가 그것이다. 1월의 소나무는 설날부터 1주일간 집 앞에 꽂아두고 조상신과 복을 맞는다는 일본의 세시풍속을 그린 것이고, 9월 국화는 헤이안 시대부터 9월 9일에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 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전통의 방식이다. 술잔에 목숨 ‘壽(수)’자가 적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인이라면 화투를 이용해 놀이를 할 수 있겠지만 온통 왜색문화 일색인 화투를 우리가 계속 쥐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투전을 부활시키거나 골패, 윷놀이만 고집할 수는 없지만 화투를 사용하는 ‘고스톱 공화국’ 소리를 듣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 식구들과 함께 고스톱을 치면서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패도 안 좋은데 죽으세요’라고 말 하는 것은 아무리 놀이라고 하지만 듣기에 좋지 않다. / 임병호 논설위원

여성과 술

음주 능력은 개인마다 차이가 나지만 성별 격차도 현저하다.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여성이 더 취한다. 남녀가 똑 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음주 측정기에 기록되는 여성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남성보다 높다. 여성의 체내 수분 비율(약 50%)이 남성(약 65%)보다 낮고 지방 비율은 높아서다. 알코올은 수용성이므로 몸안의 물엔 녹지만 지방엔 용해되지 않는다. 술을 담는 몸의 용적도 남성보다 적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작용도 남성의 30~50% 수준이다. 남성보다 술이 센 여성은 알코올 분해능력의 유전적인 차이이거나 술자리에서 긴장한 것으로 풀이 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설정한 여성의 안전한 하루 알코올 섭취량은 소주·위스키·와인 한잔, 맥주 한캔, 막걸리 한사발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과음하면 간기능이 떨어지고 자율신경 기능에 이상이 생겨 ‘피부꽝’이 된다. 과음한 다음날엔 진피의 탄력이 떨어져 피부가 거칠고 처져 보이며 여드름이 악화된다. ‘몸짱’도 물 건너 간다. 알코올과 안주의 높은 열량 탓이다. 음주를 즐기면 체중이 줄고 복부·엉덩이에 지방이 쌓인다. 머릿결도 푸석해지고 탄력이 사라진다. 머리카락의 영양소인 비타민·칼슘의 흡수·활용을 알코올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규칙한 생리, 생리량 증가, 생리통, 불임, 조기 폐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과음은 프로게스테론(황체를 형성하고 임신을 유지시키는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한다. 임신 초기에 과음하면 유산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이래서다. 임신을 준비 중인 여성이 음주를 즐기면 배란 뒤 다음 생리 시작까지 기간이 짧아져 임신 가능성이 낮아진다. 간도 잘 망가진다. 음주 여성의 간질환(알코올성 지방간·간경화·간염) 발생 위험은 음주 남성보다 훨씬 높고, 병의 진행 속도도 더 빠르다. 알코올성 간염으로 생명을 잃는 여성 음주자가 적지 않다. 특히 임신부 음주는 태아 알코올증후군(소두증·안면 기형· 성장, 발달 장애·심장 기형)을 유발한다. 남성이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되는 데는 보통 10여 년의 음주 경력이 필요하지만 여성은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2~4년 안에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다. 이렇다면 여성에게 술 권하는 남성은 신사가 아니다. 아내나 연인에게 술 권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세종은 뚱보 임금님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 역대 27명의 왕들 중 21대 영조(英祖)는 가장 장수했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47세, 환갑을 넘긴 사람은 6명밖에 되지 않는데 83세까지 살았다. 장수 비결은 ‘소박한 생활’과 ‘인삼 보양법’으로 전해온다. 어린 시절 대궐 밖에서 자란 경험이 있는 영조는, 여느 왕과는 달리 침실 안에 화려하고 몸을 편하게 하는 물건을 두지 않았으며 창호의 틈을 바르지 않은 채 바람을 맞고 지냈다. 72세 때 1년에 20여 근의 인삼을 먹었고, 73세 때는 검은 머리가 다시 났다고 한다. 최근 서울대 대학원에서 의사학(醫史學)을 전공하는 김정선씨가 쓴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이란 박사논문을 보면, 조선 왕들에게 가장 흔하면서도 치명적인 질병이 손을 안씻는 데서 비롯된 ‘종기’였다니 괴이하다. 왕들의 수명이 짧았던 큰 이유로는 영양 과다섭취, 운동 부족, 과로가 꼽혀 현대 성인병과 일치한다. 문종은 종기가 심해 환부에 고약이나 거머리를 붙였고, 중종은 인분을 물에 녹인 ‘야인건수(野人乾水)’를 해열제로 마셨다. 태종은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추정되는 ‘풍질(風疾)’을 앓아 손으로 물건을 잡을 수 없었고, 세종은 젊은 시절 육식을 매우 즐겼으나 운동을 싫어해 비만이었다. 하루에 물을 한 동이 넘게 마실 정도였다는 기록으로 봐 당뇨병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뇨 합병증으로 당뇨 망막병증(안질), 두통과 이질, 부종, 수종다리, 풍증, 수전증 등 잔병을 달고 살아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 나의 쇠로함이 심하다”고 스스로 한탄했다. 연산군은 주색에 빠져 번열증까지 있었으며, 의원들은 ‘음욕을 채우려는’ 왕의 비위를 맞추려고 양기를 돕는다는 풀벌레와 뱀을 진상했다. 인종은 아버지 중종의 상중에 너무 슬퍼한 탓으로 왕에 오른 지 8개월만에 사망했고,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는 양쪽 귀가 먹고 심병(心病)이 깊었다. 광해군은 추위를 잘 타고 화병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질병과 수명을 보면 호의호식이 장수의 비결은 아니다. 시골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은 기름진 음식 덜 먹고 소박하게 사는 덕분이다. 가난이 좋은 점도 있음은 다행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중국의 산업스파이

중국에 삼성·LG 등 세계적 유명 브랜드의 위조상품이 대거 나돈다. 휴대전화로부터 시작된 위조상품은 갖가지 가전 제품에 확대돼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중국내에서만 나돌던 게 이제는 중남미로 수출까지 하는 모양이다. 위조상품도 전자제품 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부품·화장품·식품 등 이름있는 국내 메이커를 도용한 위조상품이 봇물을 이룬다. 국내 현지 법인이 중국 당국에 신고를 해도 어물쩍 눈감아 넘어간다. 광둥(廣東)성은 관내에 대규모 위조 한국산 에어컨 공장이 있는 것을 확인했는 데도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상품만이 아니라 디자인 도용도 예사로 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05 국제가전쇼’(CES)에서 중국 업체가 국내 레인콤의 MP3플레이어(모델명 N10)와 똑같은 것을 내놔 레인콤이 항의를 제기했으나 좀처럼 시정되지 않고 있다. 중국이 외국 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내 외국인 기업의 지적재산을 자국민이 훔치는 덴 이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하면서 미국에서 자국민의 기술 절취에는 혈안인 것이 중국이다.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미국서 설쳐대는 중국의 산업스파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 과거 냉전시대에 소련 스파이보다 중국 스파이 잡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중국의 이 스파이들은 유학생·연구원·회사원 등 명목으로 잠입해 민간인과 정보요원의 경계선을 교묘히 오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노리는 정보는 두말할 것 없이 미국 정부 및 기업의 각종 첨단 기술이다. 그건 그렇고, 중국에서 국내의 위조상품이 홍수사태 속에 상표가 도용당하는 데도 정부가 보호할 엄두를 안내는 것은 자국민 보호를 외면하는 처사다. 북 핵 문제로 아무리 중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다 해도 그렇지, 지적재산을 절취당하는 자국민 하나를 보호 못한다면 주권국가로서 정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임양은 주필

일본의 9·11 총선

오는 9월11일 총선을 앞둔 일본 정가가 여름날씨 만큼 달아 올랐다. 우정(郵政)민영화 법안이 부결된 고이즈미 내각의 치명타가 집권당인 자민당 당내 반란표에 기인하여 더욱 뜨겁다. 고이즈미는 이에 의회를 해산, 정치 명운의 승부수를 걸었다. 이에 얽힌 사연도 많다. 나카소네 전 총리의 장남 나카소네 참의원은 고이즈미가 아버지를 팽했던 보복으로 법안 부결에 영향력을 크게 발휘했다.2003년 중의원 선거 때 나카소네 전 총리는 후배인 고이즈미 자민당 총재에게 비례대표 1번 자리를 박탈당했던 것이다. 우정민영화법안 표결을 앞두고 다급해진 고이즈미는 사람을 나카소네 전 총리에게 보내어 아들을 설득 시켜달라고 애원했으나 한 마디로 거절당했다. 쓰루후 참의원은 아내가 중의원인 의원 부부다. 법안 표결에서 남편은 찬성, 아내는 반대표를 던졌다. 금실이 좋기로 소문났지만 당내 파벌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이즈미가 반대파에 대한 보복으로 공천을 안주어 아내가 무소속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 남편은 아내의 선거운동을 돕기위해 고이즈미 계보 탈퇴를 선언했다. 고이즈미는 공천을 안 준 반대파 37개 선거구에 여성 인기인을 대거 투입했다. 전직 고위관료, 요리연구가, 여배우 등이다. 이를테면 정적 제거의 자객으로 미인계를 썼다. 이런 가운데 반대파 낙천자 일각에서는 신당을 추진하고 나서 세를 규합중이다. 일본 정계는 요즘 이래 저래 어수선하다.고이즈미 총리가 반대파를 제외한 자파 세력의 자민당만으로 단독정권 수립이 가능한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 일본 정가의 관측이다. 이에 고이즈미는 공명당과의 연립정권을 제휴해놓고 있다. 고이즈미 정권이 붕괴되면 약진세를 보이고 있는 민주당이 집권할 공산이 높다. 민주당 의원들은 우정 민영화 법안 부결로 의회 해산이 확실해지자 의회에서 만세를 불렀다. 고이즈미 정권의 향배가 판가름 나는 일본의 9·11 총선은 여러모로 우리의 입장에서도 주목된다. / 임양은 주필

南 아마, 北 프로

북의 대남담당 김중린 노동당 비서는 27년동안 맡아오고 있다. 남쪽의 대북 창구인 통일부 정동영 장관은 이제 1년을 갓 넘겼다. 이렇다 보니 북의 실세는 고령층이다. 63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보다 연로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권력구조의 핵심인사 30명 중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77세, 연형묵 국방부위원장은 74세 등으로 무려 15명이 70대다. 김국태, 김중린 노동당 비서는 80대다. 김 위원장과 같은 60대는 66세의 박봉주 내각총리 등 9명이다. 남쪽의 권력체계 연령층 나이는 이 보다 훨씬 젊다. 이런데도 나이가 많다며 여권에서 40대 장관론을 제기한 바가 있다. 북의 권력 체계가 고령화되도록 전문화가 되다 보니 전략이 노련하다. 빈번한 핵 문제의 벼랑 끝 전술이 먹혀들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북 송전은 정부 발표만으로도 당장 2조5천억원이 투입된다. 정부는 이런 거액이 드는 선심 제의를 하면 북이 반색을 할 줄 알았지만 최종 공식 반응은 유보하고 있는 것이 노련한 북의 전술이다. 반대로 북은 돈 한 푼 안 들이는 현충원 참배로 남남 갈등을 부추기면서 김일성 궁전 참배 요청의 기득권을 확보했다. 이처럼 북은 모든 전략이 전문화가 돼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변재정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예컨대 북의 해킹 능력은 미국 CIA 수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의 전문인력이 500여명이다. 변 박사는 도·감청 기지도 운용, 남쪽의 교신내용 등 신호정보를 수집까지 한다고 어느 발표회에서 밝힌 바가 있다. 체제상 영구집권이 가능한 북측과는 달라서 여기선 집권층의 장기적 전문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권차원이 아닌 국가기관의 각 분야 전문가들을 길러 정권교체에 구애됨이 없이 도울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런 전문 인력을 키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남북 관계에서 저들은 대남문제의 프로 고수인 데 비해, 이쪽은 권력층이나 하부구조나 모두 한시적 아마추어들 뿐이다. 어설픈 패기는 숙련된 노회에 판판이 당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저들 노인네들이 볼 땐 ‘웃긴다’할 때가 많을 것이다. /임양은 주필

세월이 가면

박인환(朴寅煥·1926~1956)은 20세에 “나의 시간에 스코올과 같은 슬픔이 있다”는 시작되는 ‘거리’라는 시로 시인이 됐다. 중학생 때부터 영화광이었던 그는 한국 최초로 ‘영화평론가협회’를 발족한 영화평론가이며 번역가였다. 그러나 박인환은 문단에 여러 화제를 뿌린 만큼 시인으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특히 프랑스의 시인 장 콕토를 정신적 지주로 삼을 만큼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인지 박인환의 꿈은 ‘한국의 장 콕토'가 되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였지만 시집은 ‘박인환 선시집’ 한 권 밖에 없다. 그 시집의 원제목은 ‘검은 준열시대’였으나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스팬더의 선시집을 본따 ‘박인환 선시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의 일화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명동에 있는 술집 ‘경상도 집’에서 즉흥적으로 쓴 ‘세월이 가면’에 이진섭이 곡을 부쳐, 나애심이 노래 부른 사실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 눈동자 입술은 / 내 가슴에 있네. // 바람이 불고 / 비가 올 때도 /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로 시작되는 그 노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 부르는 애창곡이다. 외상 술을 마실 때에도 시인답게 “꽃피기 전에 갚을게”라고 말한 그의 별명은 ‘명동의 연인’이었다. “아, 답답해”란 마지막 말을 남긴 채 31세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6·25 한국전쟁 후 폐허와 무질서, 불안과 허무 등 시대적 고뇌를 신선한 언어로 노래한 서정시인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란 자작시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올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하략)”고 하였다. ‘세월이 가면’에서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 그 벤취 위에 / 나뭇잎은 떨어지고 / 나뭇잎은 흙이 되고 / 나뭇잎에 덮여서 / 우리들 사랑이 / 사라진다 해도.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 눈동자 입술은 / 내 가슴에 있네. /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라고 노래하였다. 그의 시처럼 ‘세월은 가고 오는 것’이어서 그런가. 박인환 시인이 정말 가슴에 살아 있다. / 임병호 논설위원

국토순례

육군은 혹서기에 섭씨 26.5도를 넘으면 신병훈련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29.5도가 되면 탈수위험이 있어 행군을 자제토록 한다. 31도를 넘으면 지휘관 판단하에 옥외훈련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 논산 신병훈련소는 신병들의 행군은 주간 15㎞, 야간 30㎞ 거리로 나눠서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요즘 주로 중·고·대학생들이 참가하는 국토순례 행진이 군 훈련보다 혹독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얼마전 어느 재단이 주최했던 국토순례는 극기훈련으로 변질된 국토순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다. 참가했던 대학생 조 대장들은 “행군 중 탈진해 쇼크로 쓰러진 아이를 응급차에 태우는 순간부터 책임자는 폭언과 함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했다”며 “응급처치라면서 숨을 못 쉬는 아이의 배를 때리며 숨을 쉬라고 고함을 쳤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또 다른 조대장은 “하루 30㎞ 이상 도보로 행진하는 강행군을 하느라 반 이상의 아이들 신발 밑창이 다 떨어져 나갔는데 총대장은 ‘맨발로 걷게 하라’고 말했다”며 “행진 도중 비가 왔는데 비옷이 모자라 일부 아이들은 비를 다 맞아야 했다”고 밝혔다. 국토순례 행사는 성추행 의혹까지 제기돼 곤욕을 치렀다.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 길을 계속해서 걷다 보니 쪄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장을 맡았던 대학생 누나를 비롯해 몇 명이 탈진했고 나도 너무 힘들어서 신기루같은 것이 보인 기분이었다”는 중학생의 말은 충격적이다. 말이 좋아 참가 경험담이지 생지옥에서 탈출한 느낌이었을 게 분명하다. 비를 맞고 장시간 걷는 것도 문제다. 탈진한 상태에서 비를 맞으며 걸어 의식이 몽롱한 중학생들을 등산객이 구해준 사례도 많다. 이렇게 일부 국토순례단이나 동호회가 소위 ‘울트라 행군’이라고 해서 짧은 기간 내에 몇백㎞주파를 목표로 한다고 한다. 하루 30~40㎞가 넘는 강행진을 하면 탈진 등 안전사고를 유발한다. 국토순례는 산천경개를 구경하며 나라 사랑을 느끼는 걷기 운동이다. 극기훈련이나 병영 체험이 결코 아니다. 힘들어 쓰러지면 욕설을 퍼붓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토순례의 참뜻이 변질, 왜곡돼서는 안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安山 시정홍보

“권한대행 체제는 이유야 어떻든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한층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안산시장 권한대행 권두현(權斗鉉) 부시장의 말이다. 그제 안산예총 회의실에서 있은 제26회 ‘경기종합예술제’ 및 제19회 ‘안산 별망성예술제’ 추진위원회 회의에 인사차 참석한 권 시장대행은 예술인들이 모인 자리를 최대 활용하려는지 시정홍보부터 시작했다. 먼저 시화호 얘기를 꺼냈다. 죽음의 호수라던 시화호가 이제는 아주 맑아졌을 뿐 아니라 특히 전국 최대규모의 갈대습지공원은 자연 속에서의 휴식은 물론 생태계를 관찰·학습할 수 있는 자연학습 공원이라고 자랑했다. 25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120여종의 철새가 찾아오는가 하면 시화호로 유입되는 지천의 수질을 갈대와 각종 수생식물이 자연정화 처리하고 세계 최대규모인 25만 2천㎾의 조력발전소도 건설한다고 설명했다. 반월·시화산업단지가 있지만, 시가지 녹지율이 전국 최고(녹지율 63%, 공원화율 6·1%),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전국 최소, 소각장 다이옥신 배출량 전국 최소, 자원회수시설 가동률은 가장 우수하단다. 인구 70만 명이 넘는 대도시에 경찰서는 한 곳 밖에 없지만 사건율은 점점 줄어들고, 3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 근로자도 우리 국민 , 안산시민이란다. 9개의 고등학교에서 올해 1천394명이 명문대학에 진학, 타 시·군에서 유학을 온단다. 나중에지만 실학자 이익, 시·서·화의 대가 강세황,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 등의 문화·예술혼이 살아 숨쉬는 도시라는 말을 놓지 않았다. 권두현 안산시장 권한대행은 경기도청의 요직을 두루 거쳤고, 관선시절엔 여러 곳의 군수를 역임한 공직자다. 그런 사람이 부족한 예산으로 고민, 고민하고 있는 예총 관계자 회의 그것도 회의 도중 나타나 시정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에 참석자들은 미소만 지었다. 김인숙 안산예총 회장이 “크게 부족한 별망성예술제 행사비를 해결해 달라”고 건의하자 인사치레인 지는 모르지만 선뜻 약속했다. 예산이 부족함을 알았다는 건 지, 예산을 증액하겠다는 것인 지 두고 봐야겠지만 아무튼 쟘버 차림으로 나타나서 시정홍보만 잔뜩 하고 다른 행사장으로 급히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성실한 공복’이라고 생각했다. 안산시장 권한대행이 市 행정처럼 예술계에도 보다 많은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정치인의 거짓말

영국 스트라스클 라이드대학 글랜 뉴이 정치학 교수팀이 최근 발표한 정치인의 거짓말에 관한 연구가 흥미롭다. “정치인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유권자들이 너무 많은 질문(주문)을 하기 때문”이라면서 “이는 유권자의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는 거짓말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대가로서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진실한 발표보다는(카드를 숨기려고 하는) 포커게임 능력이 중하다”고 했다. 물론 이 역시 공공의 이익이 전제되지만 함정은 있다. 공공의 이익을 말하는 기준이 정치인의 이해관계 입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정치인에게 너무 많은 주문을 한다지만, 정치인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위해 가당치 않은 공약을 되레 내놓은 것이 한국의 정치인들이다. 이 연구팀은 거짓말의 사례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스코틀랜드 의사당의 건립 비용을 들었다. 부시는 대량살상무기를 빙자해 후세인 정권을 제거했지만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의사당 건립 비용은 처음에 4천만 파운드라고 해서 시작한 것이 4억 파운드나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4억 파운드가 든다고 하면 유권자가 과연 동의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고 보니 행정도시 건설 비용이 생각난다. 이 정부는 당초 3~4조원이면 행정도시를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십 수조원으로도 안 되어 수 십조원이 들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 바가 있다. 아무튼 정부가 행정도시 비용을 턱없이 낮춰 발표한 것은 분명하다. 악의 없는 정치인의 거짓말로는 “나는 그 여성(르윈스키)과 성적 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클린턴의 말을 들었다. ‘민주정치에서 진솔과 기만’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연구 논문은 그들의 정치풍토를 토대로 한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들어 둘만한 말도 있고, 귓등으로 넘길 말도 있다. / 임양은 주필

일제 잔재

일제 강점 36년은 참 무서운 세월이다. 그 잔재는 36년보다 더한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곳곳에 배어 있다. 심지어는 역사관(歷史觀)도 일제 잔재를 면치 못한다. 조선조의 사색당파는 왕조 시대의 고전적 정당정치다. 이를 하릴없는 붕당 싸움으로 비하시킨 것이 일본의 식민지사관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일제 잔재는 부지부식 간에 많다. 예컨대 토목공사 판은 일제용어 투성이다. 이에 종사하는 막벌이 노동자를 일컫는 ‘노가다’는 외래어로 국어대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다. 일제는 성명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했다. 일제가 멋대로 지명을 바꾼 창지개명(創地改名)을 바로 잡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그 예로 광복 60주년 기념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전라남도에 있는 영산강(榮山江)은 일제가 만든 이름이라며 이의를 제기, 문화관광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이는 일제문화 잔재 제거 사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영산강은 조선조 영조실록 등 다수의 고문헌과 대한제국 관보에도 나오는 전통 명칭이라는 학계의 이의가 제기되어 문광부 선정이 취소돼야 할 판이다. 인천의 송도(松島)가 일제 지명의 논란에 휩싸였다. 이 역시 문광부가 선정한 모양이다. 일제 지명이라는 주장과 아니라는 주장이 있어 진위를 여기서 단정키는 어렵다. 일제 지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식미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오욕을 대물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크게 볼 필요가 있다. 분명치 않은 일을 두고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것이 과연 유익한가도 고려할 여지가 있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가장 좋은 길은 국력을 키우는 일이다. 우리가 일본에 먹힌 불행한 과거사는 국력이 없었기 때문에 당한 것이었다. 일본보다 더 센 국력을 배양하는 것이 일제 청산은 물론이고 극일(克日)로 가는 길이다. 문광부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다는 일제 잔재 청산이 고작 불분명한 지명 소동인 것은 유감이다./임양은 주필

행담도 의혹 사건

결국은 용두사미가 됐다. 검찰의 행담도 의혹 사건 수사가 그렇다. 사건관련의 청와대 3인방 중 정찬용 전 인사수석은 무혐의 처리됐다. 직권남용 의혹이 있지만 퇴직 후 행위여서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무혐의 처분 사유는 설득력이 빈약하다.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 등 두명만이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에게 자금 조달을 도운 혐의 내용으로 재판에 돌려졌으나 이도 불구속 기소다. 이 과정에서 대가성 있는 돈의 거래가 있었는 지 여부를 밝혀내지 못한 건 수사 미진이다.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도마뱀 꼬리 자르기다. 정찬용 전 인사수석이 직책과 관련없는 행담도 사건에 개입한 단초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해안 활성화대책 일환의 지시였던 것으로 안다. 서해안의 호남 출신이니까 직분에 관계없이 관심을 촉구했다는 것으로 들었다. 정찬용 전 인사수석은 그래서 노 대통령이 행담도 사업을 딱 집어 말한 건 아니지만, 서해안 개발사업의 시범사업 삼아 적극 간여한 게 맞다고 한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토록 위에서 관심 갖는 사업을 맡아 했는데, 보고를 했는지 안 했는 진 몰라도 대통령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앙일간지 사장으로 귀가 어두운 이가 있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이로운 말은 짐작으로 용케 알아듣는 반면, 해로운 말은 짐작으로 알아들어도 모른 채 하기가 일쑤인 것으로 소문났다. 누가 달갑지 않은 얘길하면 “뭐?” “뭐라고?”하다가 “모르겠다 나중에 얘기하자!”며 잘라버리기가 예사였다. 기자에게 월급도 안 주었던 그 신문사는 신군부의 언론사 통폐합 때 없어졌다. ‘태산명동’에 어떻다니 행담도 의혹 사건이 그 모양이다. 당초 알려진 권력형 비리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한 사업자의 사기 농간에 공직자들이 이용 당했다는 게 검찰수사 결과의 요지다. 청와대가 어딘가, 그토록 허술한 곳인가, 청와대가 사기 당했다는 것도 듣기가 영 찜찜한 것은 웬 일일까. /임양은 주필

캐디헌장

“캐디(caddie)는 골퍼에게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유일한 우군(友軍)이다. 캐디는 플레이어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영국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클럽이 1775년 제정한 ‘캐디헌장’의 일부다. 골프장의 경기보조원인 ‘캐디’는 16세기 영국에서 ‘포터’처럼 짐꾼이나 잔심부름을 하는 젊은 사내(cadet)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프로골프 경기가 활성화되고 골프가 대중화되면서 캐디의 역할과 비중이 점점 커졌다. 여자골프의 1인자인 아니카 소렌스탐이 말했듯이 골퍼와 캐디의 호흡은 경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캐디들은 골프에 대한 실전경험이나 전문지식이 없으면 일하기 어려울 뿐더러 체력소모도 크다. 천차만별인 골퍼 수준에 맞춰 원만한 경기를 유도하는 인간관리법까지 터득해야 한다. 그래서 힘들지만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이 크다. 그러나 한국 골프 문화는 ‘수준 미달’이다. 골프가 ‘특권층의 스포츠’로 인식돼서인 지 캐디를 마치 하인 취급을 하는 부류들이 적지 않다. 막말과 희롱을 서슴지 않는다. 최근에 일어난 두 사례만 봐도 그렇다. 골프를 하던 현직 은행장이 캐디에게 욕설을 하며 왼쪽 대퇴부를 걷어찼다. 다른 팀의 경기자가 친 볼이 은행장 근처까지 날아 온 것을 사과하러 온 캐디는 발길질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골프를 신사의 스포츠로 여기는 다른 많은 골퍼와 캐디들의 얼굴에 먹칠을 한 꼴이다. SBS- TV 드라마 ‘루루공주’도 마찬가지다. 지난 3일 방송에서 정준호의 계략에 말려 1일 캐디로 나선 김정은을 두고 골퍼들이 “어디서 저렇게 예쁘고 몸매 좋은 캐디를 구했느냐” “돈 좀 썼다. 쟤가 좀 비싸다”는 등의 대화를 나눴다. 여성을 성적으로 상품화하는 대사를 그냥 내보냈다. 요즘 몇몇 텔레비전들은 드라마나 생방송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때리질 않나, 남자연예인들이 공연도중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시키질 않나, 아무튼 정신이 나갔다. SBS가 10일 ‘루루공주’ 방송 전 사과방송을 했지만 그렇다고 실추된 캐디의 이미지가 회복됐다고는 볼 수 없다. 미국처럼 골퍼가 라운딩 도중 규칙을 어기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가차없이 시정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 “캐디는 플레이어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캐디헌장’을 한국의 골퍼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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