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 역대 27명의 왕들 중 21대 영조(英祖)는 가장 장수했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47세, 환갑을 넘긴 사람은 6명밖에 되지 않는데 83세까지 살았다. 장수 비결은 ‘소박한 생활’과 ‘인삼 보양법’으로 전해온다. 어린 시절 대궐 밖에서 자란 경험이 있는 영조는, 여느 왕과는 달리 침실 안에 화려하고 몸을 편하게 하는 물건을 두지 않았으며 창호의 틈을 바르지 않은 채 바람을 맞고 지냈다. 72세 때 1년에 20여 근의 인삼을 먹었고, 73세 때는 검은 머리가 다시 났다고 한다. 최근 서울대 대학원에서 의사학(醫史學)을 전공하는 김정선씨가 쓴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이란 박사논문을 보면, 조선 왕들에게 가장 흔하면서도 치명적인 질병이 손을 안씻는 데서 비롯된 ‘종기’였다니 괴이하다. 왕들의 수명이 짧았던 큰 이유로는 영양 과다섭취, 운동 부족, 과로가 꼽혀 현대 성인병과 일치한다. 문종은 종기가 심해 환부에 고약이나 거머리를 붙였고, 중종은 인분을 물에 녹인 ‘야인건수(野人乾水)’를 해열제로 마셨다. 태종은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추정되는 ‘풍질(風疾)’을 앓아 손으로 물건을 잡을 수 없었고, 세종은 젊은 시절 육식을 매우 즐겼으나 운동을 싫어해 비만이었다. 하루에 물을 한 동이 넘게 마실 정도였다는 기록으로 봐 당뇨병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뇨 합병증으로 당뇨 망막병증(안질), 두통과 이질, 부종, 수종다리, 풍증, 수전증 등 잔병을 달고 살아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 나의 쇠로함이 심하다”고 스스로 한탄했다. 연산군은 주색에 빠져 번열증까지 있었으며, 의원들은 ‘음욕을 채우려는’ 왕의 비위를 맞추려고 양기를 돕는다는 풀벌레와 뱀을 진상했다. 인종은 아버지 중종의 상중에 너무 슬퍼한 탓으로 왕에 오른 지 8개월만에 사망했고,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는 양쪽 귀가 먹고 심병(心病)이 깊었다. 광해군은 추위를 잘 타고 화병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질병과 수명을 보면 호의호식이 장수의 비결은 아니다. 시골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은 기름진 음식 덜 먹고 소박하게 사는 덕분이다. 가난이 좋은 점도 있음은 다행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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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5-08-2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