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골리앗’

‘K-1’은 서서 하는 입식타격 이종격투기다. 일본 무술인 이시이 가즈요시(石井和義)가 1993년 킥복싱·가라테·쿵푸· 권법 등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알파벳 K를 따서 만들었다. 1993년 이후 해마다 월드 그랑프리대회가 열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북미, 유럽 10개국 이상에서 크고 작은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케이블 방송을 중심으로 소개돼 젊은 층의 관심을 끌어오다가 지난 3월 ’테크노골리앗’이라는 애칭이 붙은 씨름 선수 출신 최홍만이 데뷔하면서 인기가 폭발했다. 특히 지난 23일 저녁 최홍만이 일본 오사카 돔에서 미국의 밥 샙 선수를 제압하는 순간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정문의 대형스크린 앞에서 1천여 명의 응원단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K-1월드컵 그랑프리 개막전은 K-1에서 대표적인 두 거인의 대결로 오래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최홍만은 키 218㎝에 몸무게 160㎏, 밥 샙은 200㎝에 155㎏이다. 전문가들은 경기를 앞두고 최홍만은 체력과 기술에 앞서지만 파워와 순발력에서는 뒤진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이날 벌어진 경기 양상은 그런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켜 주었다. 밥 샙은 미식축구 선수 출신답게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 왔지만 최홍만은 물러나지 않고 맞받아치는 전략으로 나갔다. 최홍만은 밥 샙의 공격에 견고한 수비로 맞서며 스트레이트와 잽으로 포인트를 쌓았다. 최홍만은 2라운드 막판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밥 샙을 몰아 붙이며 수십방의 펀치세레를 퍼부었다. 극적인 장면은 3라운드 25초에 연출됐다. 최홍만이 밥 샙의 머리를 붙잡은 뒤 특기인 강력한 ‘무릎찍기’를 성공시키고 날카로운 펀치를 연이어 던져 심판이 다운을 선언케 만들었다. 이로써 최홍만은 지난 3월 K-1 서울대회에서 우승한 이래 연승행진을 이어가며 6전 전승을 기록, K-1에서 최정상급 선수임을 과시했다. 최홍만은 특히 11월 19일 도쿄 돔에서 K-1최강자를 가리는 월드그랑프리 2005 파이널 8강전에 진출하게 됐다. 특이한 점은 2003년, 2004년 K-1 월드그랑프리를 연속 제패한 네덜란드의 레미 본야스키가 직접 최홍만을 대전 상대로 택한 점이다. 본야스키는 “새롭게 떠오르는 최홍만 선수를 테스트하고 싶었다”고 말했고 최홍만은 “챔피언을 상대로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피를 튀기는 격투기의 폭력성과 상업성이 우려스럽지만 최홍만이 본야스키를 눕혔으면 좋겠다./임병호 논설위원

성장과 분배

‘임대 아파트를 지어 우선 공급한다. 중증 장애인에게 월 7만원의 장애수당을 준다. 치매 중풍 노인의 실비요양시설 이용료를 월 40만원~70만원에서 15만원~30만원으로 내리면서 실비요양시설 110개를 짓는다’ 고위 당정회의는 이같은 차상위빈곤층 지원 방안을 포함한 22개의 사회안전망 강화 대책을 정했다. 당장 내년부터 시작해 2009년까지 마치기로 했다.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돈이 문제다. 자그만치 8조6천억원이 들어간다. 정부 예산에 안 잡힌 3조6천억원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당장 문제다. 내년 세수부족이 올해보다 68% 더 많은 7조8천억원에 이른다. 이를 메우기 위해 서민생활이 즐기는 소주값도 올리고 담배값도 올린다. 보통화한 액화천연가스(LNG)의 특별소비세도 올린다. 환경오염방지를 위해 권장해야 할 LNG를 특별소비 품목으로 정한 것 부터가 모순이다. 이러고도 세금을 짜내기 위한 기업 세무조사를 강화한다. 이밖의 사회보장 대책을 또 강구한다. ‘고령화 대책, 저출산 대책’ ‘사회적 일자리’ 등을 강구할 계획이다. 이 역시 좋은 일이다. 그런데 돈이 또 문제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확대간부회의 자리에서 “공무원 봉급을 동결해서라도 재원을 마련하라”고 말했다. 돈 없는 가장은 가족들에게 아무리 좋은 일을 다짐해도 가족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신뢰를 갖지 못한 그같은 다짐같기만 들린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계획이 불발된 적이 없지 않다. 노동력이 없는 빈곤층은 나라에서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가장 좋은 상지상책(上之上策)의 사회안전망 대책은 경기활성화로 빈곤층이 벌어먹고 살 수 있게 하는 민생경제의 안정이다. 이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성장 없는 분배는 있을 수 없다. 분배없는 성장도 물론 안 된다. 선장과 분배는 양 수레바퀴처럼 균형을 이뤄야 수레가 제대로 굴러간다. 그런데 성장과 분배가 균형을 잃고 있다. 분배에 비해 성장은 뒷전이고 분배에만 치중한다. 사회안전망 대책을 강화하려고 해도 예산이 없어 계획에 그칠 공산이 높은 연유가 이에 있다./ 임양은 주필

부시의 ‘사면초가’

미국 사회가 꽤나 시끄럽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 남부를 강타한 두 번에 걸친 허리케인 피해지역을 비상재해지역으로 선포했으나 여전히 궁지에 몰리고 있다. 피해 복구에 이라크 전쟁비용 수십억 달러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게되어 반전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이라크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희생된 천명 가까운 전사자보다 허리케인 사망자가 또한 훨씬 더 많다. 외신은 지난 24일만 해도 백악관 주변에서 15만여 명이 운집한 반전 시위가 열린 것으로 전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철수와 부시 탄핵을 요구하는 반전시위는 로스앤젤레스와 센프란시스코 시애틀 등지서도 열렸다. 이런가 하면 ‘미국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말라’며 부시를 옹위하는 맞불 시위도 열려 어수선하다. 허리케인 피해는 지구온난화 방지 협약인 교토의정서를 미국이 탈퇴한 자업자득이라는 비판도 강하게 일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자국의 산업보호를 위해 수년 전에 교통의정서를 탈퇴한 바가 있다. 이로인해 지구상에서 가장 심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면서 무책임하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던 것이 이젠 자국내에서 불똥이 붙었다.허리케인의 이동 경로인 멕시코만 수온이 32도에 이르러 괴물화하는 연유가 지구의 온난화 현상에 기인한다면서 부시 행정부의 환경정책을 ABC 방송 등 언론에서 연일 질타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 지지도가 최하위로 떨어진 부시 미국 대통령은 두 번에 걸친 허리케인 강타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가운데 반한 여론이 만만치 않다. 반미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반한 세력 역시 만만치 않다. 한·미 관계의 전망이 밝은것만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도 부시는 오만한 패권주의자로 비친다. 패권주의는 미국만이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일본 역시 패권주의 경쟁을 벌여 동북아의 미래가 심상치 않다. 꽤나 골치 아프게 된 것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인 부시의 입장이다. 이런데도 “대통령노릇 못해 먹겠다”는 소린 들리지 않는다./ 임양은 주필

전투 로봇

트로이의 목마는 고대형 전투 로봇이다. 그리스의 오디세우스는 난공불락의 트로이성을 함락하기 위해 결사대를 잠입시킨 큰 목마를 만들어 성문앞에 갖다놨다. 트로이성의 시민들은 호기심 끝에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 들였다. 이윽고 목마 속의 결사대가 뛰쳐나와 성문을 열어 숨어있던 그리스군이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BC 1184년의 일이다. 터키 다다넬즈해협 동쪽 연안에 있었던 트로이성 성터가 1882년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발굴됐다. 고대형 전투 로봇은 이외에도 위장술로 많이 사용됐다. 중국 삼국지에서 흔히 나오는 군복입힌 허수아비 군대에 텅빈 군막을 불밝혀 적의 야간 기습을 유도하는 것 등이 다 전투 로봇의 유형이다. 현대형 전투 로봇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무인 정찰기도 전투 로봇이다. 군인이 직접 참전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줄이면서 소기의 군사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전투 로봇이다. 군인 대신 로봇이 전투를 한다. 탱크도 로봇이 운전하고 대포도 로봇이 쏘고 전폭기도 로봇으로 조종하게 된다. 보병 로봇도 나올 공산이 많다. 수비용 로봇은 이미 실용화 됐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에는 적의 침입이 탐지되면 기관총이 자동발사하는 수비용 로봇이 있다. 전투 로봇의 개념은 이제 수비용이 아닌 공격용 로봇의 개발에 있다. 영화 ‘투캅스’는 인공지능을 갖춘 공격형 경찰관으로 실화가 될 수 있다. 화성에 무인 우주선을 쏘아 신비의 세계를 탐지한다. 공격용 로봇의 개발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국내에도 2011년까지 군인을 대신해 전투를 하거나 지뢰 등을 탐지하는 공격용 전투 로봇을 개발한다. 과학기술부와 국방부가 334억원을 들여 추진한다. 무기를 정착한 채 험한 산속을 달릴 수 있는 이 인공지능형 전투 로봇은 무선으로 원격 조정된다. 전쟁을 해도 인명이 덜 다치는 전투 로봇의 등장은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전쟁이 없는 평화다./임양은 주필

장기(臟器)매매

장기의 유상 매매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로 엄격히 규정돼 있다. 그러나 장기 매매가 일부 유명 병원을 무대로 대대적으로 자행돼 온 사실이 경찰수사로 드러났다. 인명을 경시하는 세태도 심각하거니와 그 방법이 비도덕적· 비인간적이어서 충격이 크다. 더구나 병원 관계자까지 낀 알선 브로커들이 급전이 필요한 신용불량자와 영세민들의 장기를 노렸다는 사실에서 참담해지는 심사를 금할 수 없다. 브로커들은 장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만 주면 사람의 장기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유혹해 거액을 챙겼다. 이들 브로커들과 장기매매를 모의한 관련자들의 수법이 너무 교활하다. 브로커들은 환자 정보에 밝은 모 병원 장기 코디네이터 겸 전직 간호사 출신을 통해 병원에서 치료 중인 환자들에게 접근, 장기매매를 제안했다. 이 대가로 코디네이터는 장기 이식 심사 절차를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서류를 허위로 꾸며 주고 그 대가로 거액을 받았다. 브로커들이 종교계를 악용한 것도 문제점이다. 브로커들은 교회나 사찰의 신도에게 장기를 이식해주는 것 처럼 꾸미기 위해 해당 시설의 목사나 승려로 부터 신도증 및 순수 기증 확인서를 발급받아 제출했다. 장기의 유상 매매가 위법이고, 심사를 담당하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가 서류심사만 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를 위해 브로커들은 사찰의 신도로 위장하기 위해 사찰 인근으로 주소지를 옮겼으며 또 인근 회사에 다니는 것으로 속이기 위해 허위 재직증명서를 작성하는 등의 수법을 동원했다. 물론 문제는 불법인줄 알면서 장기를 사고 파는 사람들이다. 장기 제공 뒤 발생하는 고통과 후유증을 감수하면서까지 장기 매매에 나선 사람들은 주로 개인적인 채무, 생활고 등으로 급전이 필요한 저소득층과 신용불량자들이다. 이들이 제공한 신장은 제공자의 연령, 건강상태에 따라 2천만 ~ 4천만원에 거래됐지만 알선 수수료를 제외한 1천만 ~ 2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기 수혜자들이 “돈 주고 샀는 데 무슨 죄가 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신장 뿐 아니라 간도 매매되고 있다는 첩보를 경찰이 입수했다고 한다. 장기를 불법으로 팔고 사는 비정한 세태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의 심사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치매

치매를 ‘영혼을 갉아 먹는 병’이라고 한다. “암 보다도 무서운 게 치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매로 인하여 개인·가족·사회전체가 치러야 하는 비용은 막대하다. 암은 환자 스스로 겪는 고통이 가장 크지만 치매는 환자보다는 부양 가족, 나아가서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경제적·정서적 파탄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가족관계마저 해체되는 불행을 맞기도 한다. 이 치매 환자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 정도라니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 관리를 필요로 하는 치매환자는 36만여명이다. 그러나 10년 뒤엔 이 수치가 58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조기치매는 일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심하진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 등 인지기능이 떨어지다가 치매로 진행된다. 조기 치매 노인은 정상 노인보다 치매로 악화될 가능성이 10배 가까이 높다. 최종적인 진단은 정신과 전문의의 심층면담을 통해 이뤄지지만 일찍 손 쓰면 15%는 예방이 가능하다. 흔히 “건망증이겠지”하고 방심하다가 조기 발견 기회를 놓친다. 조기치매가 노인들의 가벼운 건망증 정도로 경시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치매에 걸리면 병원보다 바로 보호시설을 생각하는 인식이다. 조기 또는 가벼운 치매의 경우 의학적 치료가 큰 도움이 된다. 정부가 치매 대책을 과거 보호시설 확충에서 조기발견·치료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이유다. 시설 수용 이외의 대책이 없는 중증 환자보다 예방과 치료를 겸한 조기 발견이 훨씬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치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암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이 혜택이 확대되고 있지만 고령화로 눈앞에 다가온 치매는 아직도 먼 일로 생각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체계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8년 전 작성된 치매관리 통계가 활용되고 있는 등 예방과 치료를 위한 기본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등록된 환자도 8년 동안 1만 6천명에 불과하다. 노인수발보장법 제정이 수용시설 미비와 보험료 부담 등의 문제로 연기된 것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치매는 누구나 걸릴 위험이 있고 누구나 치매 환자를 돌볼 처지에 처할 수 있는 만큼 절박한 사회문제다. 엊그제 세계 치매의 날을 맞아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제부터는 국가가 치매를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 국민이 지켜볼 일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시인 이기와

이기와 시인의 인생살이는 37세라는 나이에 비해 고통과 질곡으로 점철됐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서울 서대문구 굴레방 다리 밑 거적때기 움막에서 해녀 출신인 한 여인의 막내로 태어났다. 언니는 식모살이 가고 오빠는 양자로 갔다. 어머니는 새 아버지를 세번 얻었는데 그 중 두 명이 죽었다. “나는 써먹을 데가 없어서 어머니가 데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상복을 입고 상 치르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기와 시인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리어카에 텐트를 싣고 다닌 떠돌이 삶 때문에 초등학교를 다니지도 못했다. 어렸을 때 봉제인형·가발공장 등에서 일했고 식모살이와 중국집 서빙 등을 전전했다. 20대 초반엔 포장마차를 거쳐 술 파는 카페와 1급 유흥업소(룸 살롱) 마담직도 경험했다. 카페에서 책 보며 시를 쓰기 시작한 후 검정고시를 거쳐 24세에 한양여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포장마차에서 꽁치 굽고 곰장어 무치면서 새벽 4시까지 시를 썼다”는 그는 19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지하역’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는데 방송통신대 국문과를 거쳐 중앙대학원을 졸업했다. 못 배운 한을 풀었다. 2001년 시집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를 냈는데 “고통스런 삶의 기억을 치열한 언어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한 이기와 시인이 농협에서 집을 담보로 800만원을 빌려 150만원짜리 카메라 텐디(10-D)캐논을 사들고 1년 6개월동안 詩를 따라 전국을 다녔다. 신경림 시인의 ‘산동네에 오는 눈’을 따라 울며 헤맨 서울 홍은동 산 1번지, 그리고 황청포구, 내장산, 마곡사, 제주, 소록도, 구절리 등을 돌아 다녔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터득한 또 다른 삶을 ‘詩가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붙여 산문집을 냈다. 물론 사진을 직접 찍었다. 그의 산문엔 익살과 풍자가 넘치는가 하면 깊은 사유(思惟)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잠언(箴言)이 담겨 있다. 구룡사 등산로를 맨발로 사풋사풋 걷는 여자 등산객으로부터 그는 ‘아프게 걷지 말고 춤추듯 생의 길을 가라’는 법을 배웠다.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 박수를 받기보다는 자연과 친해져 그들로부터 칭찬받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전국 곳곳을 돌아 다니며 새삼 깨닫고 한 말이다. 과거를 굳이 숨기지도 않고 밝히지도 않으며 지금 김포의 한 농촌에서 살고 있다./임병호 논설위원

화제 두 가지

경기엔 상대성이 있다. 이 상대성을 천적(天敵)이라고 부른다. 여자 테니스의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18·러시아), ‘흑진주’ 비너스 윌리암스(25·미국)가 이런 사이다. 세계랭킹 1위인 샤라포바는 세계랭킹 7위인 윌리암스에게 공식경기에서 2승1패로 앞서고 있지만 힘겨운 상대다. 샤라포바는 지난 7월 윌리암스가 우승한 윔블던 여자단식챔피언전 4강에서 윌리암스에게 뼈아픈 패배를 겪었다. 지난 19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특설코트에서 가진 두 선수의 친선경기는 윌리암스가 세트스코어 2-0으로 이겼으나 내용은 꽤나 박진감이 넘쳤던 것 같다. 시속 190㎞가 넘는 윌리암스의 폭발적 서비스나 샤라포바의 멋진 스트로크 반격이나 다 관중의 뜨거운 열광을 자아낸 것으로 전한다. 게임을 잘해서 미인인 지, 미인이어서 게임을 잘 하는 지는 몰라도 두 선수의 마음은 더 미인이다. 윌리암스는 상금 2만달러(약 2천만원), 샤라포바는 1만달러(약 1천만원)를 불우이웃돕기에 써달라며 전액 기탁하고 떠났다. 지난 9·18 독일 조기총선 결과가 ‘여소야소’로 끝나 대연정(大聯政)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사민당·녹색당 집권 연정이 과반수 의석 확보가 무산돼 집권 연장이 암초에 부딪혔다. 중도우파 기독민주당이 제1당이 됐으나 기민당 역시 과반수 의석엔 미달해 단독집권은 불가능하다. 기민당은 기사당연합과 2당인 중도좌파 사민당 간에 대연정을 놓고 협상중이나 문제는 총리 자리다. 기민당의 메르켈 당수가 여성 총리가 되느냐, 아니면 사민당의 슈뢰더 당수가 총리가 되어 세 번째 연임하느냐가 주목된다. 일본 총선은 고이즈미가 어려울 것으로 보았던 당초 예상을 깨어 공명당과의 연정 계획은 없었던 일이 됐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는 연정, 대연정의 실체다. 내각책임제가 아닌 대통령중심제에서 연립정부란 아무 의미가 없다./임양은 주필

이해찬의 투기

투자(投資)는 경영이익을 위해 자본재로 출자하는 것을 말한다. 투기(投機)는 기회를 엿보아 시세차익을 노리는 사행적 가수요를 말한다. 전자는 대가(對價)소득인 데 비해 후자는 불로(不勞)소득이다. 속세의 투기 개념과는 전혀 다른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또 다른 투기(投機)가 있다. 선종(禪宗)은 불경보다 이심전심의 참선 묘법으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을 지표로 삼는 종파다. 이러한 선종은 수행자가 불도의 가르침에 요체를 이루어 (直指人心하여) 크게 깨닫는 (見性成佛하는) 경지에 이른것을 투기라고 말한다. 즉 학인(學人)의 기(機)와 사가(師家)의 기가 교법(敎法)에 의해 투합되는 심기(心氣)상태를 투기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다. 이해찬 국무총리의 부동산 투기가 말썽이다. 그의 처 이름으로 농지를 사면서 농업경력 15년이라고 허위사실을 적어냈다. 주말농장 상한선인 603평보다 80평이나 더 많은 683평을 주말농장을 한답시고 사놨다. 아무 연고가 없는 안산 대부도에 땅을 산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땅의 60%는 놀려 잡초만 무성하다. 2002년에 1억6천500만원을 주고 산 땅이 지금은 배 이상이나 올랐다. 그런데 “나는 부동산 투기 같은 건 안한다”고 우긴다. 그럼 불가에서 말하는 투기란 말인가, 아니다. 경영이익을 위해 자본재로 출자한 투자란 말인가, 아니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사행적 가수요란 말인가, 그렇다. 이 총리는 하찮은 손바닥(권력)으로 해(진실)를 가린다. 그의 입에서 “부동산 투기는 사회적 암”이란 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 지 의아스럽다. 개혁정권 실세의 도덕성 수준이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유한한 권력에 심취된 그가 권력이 떨어지면 어떤 몰골이 될 것인가를 상상해 본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제가 하면 로맨스란 건가?’ 성난 추석민심의 소리다. 이 총리는 불자가 아닐지라도 불가의 투기를 생각해보는 진솔한 자아성찰이 있어야 한다. / 임양은 주필

표절상자

방송 프로그램의 표절 및 모방 문제는 이제 현상에 대한 문제제기로 그칠 사안이 아니다. 지금까지 방송사의 제작환경을 바꾸고 제작진의 윤리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숱한 지적에도 표절 의혹이 끊임 없이 제기돼 온 것은 차별화된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제작이 그만큼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표절 범람의 배경에는 방송위원회의 느슨한 판정 기준이 한몫한다. 2004년 개정된 방송심의규정 제33조 ‘표절금지’ 조항을 보면 ‘방송은 국내·외의 타 작품을 표절하거나 현저하게 모방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돼 있다. 기준이 이처럼 애매하다보니 그동안 표절에 대한 심의건수도 2003년 이래 한 차례도 없었다. 방송사끼리만 서로 설전을 주고 받는 게 고작이다. 구성 및 진행방식, 아이디어 등을 일일이 법규에 규정할 순 없지만 현재의 심의규정은 좀 더 명확하게 다듬어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잦은 논란에도 표절 의혹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시간, 제작비 등 열악한 방송 제작여건이 꼽힌다. 그러나 언제까지 환경을 탓할 수는 없다. 연예·오락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전세계에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드라마를 주목해 볼 만하다. 방송시장 규모나 제작여건 면에서 드라마 장르는 연예· 오락 장르만큼 열악하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로 제작한 콘텐츠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수많은 드라마가 10 ~ 2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반면 지금까지 해외에 포맷 및 판권을 수출한 연예·오락 프로그램은 ‘도전 골든벨’(KBS)과 ‘일밤’(MBC)의 ‘러브하우스’ 단 두 개에 불과하다. 특유의 콘텐츠를 개발하려는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노력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또 판권을 구입해 떳떳하게 리메이크하는 방법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브레인 서바이버’(MBC ‘일밤’) 등은 일본에서 포맷을 수입한 뒤 다시 우리 정서에 맞게 발전시킨 코너로 큰 인기를 모았다. 최근들어 중국과 대만 등이 우리나라의 상품을 비롯해 아이디어, 아이템 등을 고스란히 베낀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도 언젠가 표절 및 모방의 피해국이 될 수 있다. 문화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정상적인 유통구조 정착이 시급하다. ‘바보 상자’가 ‘표절 상자’까지 되지는 말아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대한축구협회의 무행정

네덜란드사람 딕 아드보카트가 한국축구대표팀의 새 감독이 됐다. 이미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 지은 대표팀에 ‘무임승차’했기 때문에 꽤 운이 좋은 사람이다. 급여도 연봉으로 환산하면 100만 달러(약 10억원) 수준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의 연봉과 비슷하다. 독일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면 20만 달러 이상의 옵션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움베르트 코엘류( 70만 달러)나 본프레레(65만 달러) 등 전임 감독들보다 후한 대접이다. 축구협회가 “여러 면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듯이 이왕 뽑힌 아드보카트가 한국축구를 잘 이끌어 줄 것을 바란다. 그러나 축구협회의 매끄럽지 못한 협상과정의 문제점은 따져 볼 일이다. ‘딕 아드보카트 - 팀 베어백’ 카드를 두고 다른 후보들과는 아예 접촉도 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지난 2일 후보군 7명을 발표하면서 비공개원칙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날 후보군 발표는 당초 계획에 없었다. 이회택 기술위원장과 강신우 부위원장의 ‘입’이 맞지 않은 데 따른 실언의 결과다. 10일에는 네덜란드의 한 축구 전문지에 의해 아드보카트 감독과 베어백 코치가 한국 대표팀을 이끌게 됐다고 사전 보도되기까지 했다. 애당초 아드보카트 감독을 내정해놓고 비공개 원칙을 방패로 보비 롭슨(잉글랜드), 마르셀로 비엘사(아르헨티나) 등 세계적인 명장들을 들러리로 세웠다는 후문이다. 감독과 아예 접촉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 후보로 거론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행정 절차도 아니지만 거론된 후보들의 자존심과 명예에 손상을 입힌 행위다. 영국에 기반을 둔 스포츠 에이전트 업체인 KAM에만 의존한 것도 축구협회의 협상력과 정보력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KAM은 2001년 히딩크 감독부터 코엘류, 본프레레 감독에 이어 아드보카트 감독과의 계약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사령탑을 데려올 때마다 에이전트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 4명의 감독이 모두 KAM 소속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감독을 맡을 사람이 없지 않은데 구태여 외국인을 감독으로 ‘모시는’ 것도 마땅치 않다. / 임병호 논설위원

법장 스님의 布施

지난 11일 새벽에 입적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法長) 스님의 법구가 의학 연구실험용으로 기증됐다는 보도는 경외롭다. 1994년 3월 불교 재단인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해놨다니 이미 10년이 넘는다. 조계종은 유지를 받들어 다비식을 취소하고 법구를 일산병원으로 모셨다. 스님은 생전에 생명나눔운동을 벌인 바가 있다. 그렇긴 해도 자신의 사후 육신을 의학 발전을 위해 보시(布施)한 중생 제도는 놀랍다. 의학 연구실험용이란 뭔가, 한 마디로 시신이 메스에 의해 갈래 갈래 해부된다.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시신이 뭔가, 영혼이 입던 옷이다. 육신이 입던 옷이 육신을 떠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영혼이 입던 육신이 영혼을 떠나 보내면 입던 옷과 같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고 죽은 육신은 매장하거나 화장하거나 흙으로 다 돌아간다. 의학 연구실험을 거쳐 화장되어도 역시 흙으로 돌아가기는 같다. 유명 인사들이 더러 시신을 기증해 화제가 되곤 했다. 어느 해부학 교수는 운명하면서 자신의 육신을 후학을 위해 기증한 적이 있다. 가진 것 없는 무명의 서민들도 시신을 기증하는 사례가 적잖다. 가톨릭의과대학에서는 기증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미사를 매월 목요일에 갖는다. 연구실험을 마치고 화장할 때까지 갖는 위령미사에 참석하는 유족들은 거의가 이름없는 서민이다. 부부가 함께 기증해놓고 먼저 간 아내를 위해 뒤따를 남편이 참석하기도 하고,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역시 뒤따를 아내가 참석하기도 한다. 세상을 살려면 미워할 때도, 다툴 때도, 싸울 때도 있지만 삶의 실체가 뭣인가를 헤아리고자 하는 부단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지나고 보면 허무하다. 허무한 가운데 실상이 있고 실상이 있는 가운데 허무한 것이 인생이다. 법장스님은 개인 통장 하나를 지니지 않은 것으로 전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 육신마저 연구실험용으로 공양했다. 정부는 민간인 최고의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그렇지만 스님의 영혼은 한낱 쇠붙이로 볼 것 같다. 왕생극락 하소서./ 임양은 주필

孔子부활의 배경

공자(孔子·BC 552~479)는 정치가로서는 실패했다. 춘추시대 말 제후들은 부국강병에만 힘썼을 뿐, 공자의 인의덕치(仁義德治)주의 설교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고 애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향하고 말았다. 그의 고향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에서 어느날 냇물가를 거닐다가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냇물처럼 밤낮 구별없이 세월도 흘러 이제 나도 늙었구나!”하고 한탄했다.(논어·자한편) 이때 공자 나이가 이미 칠십이었다. 그가 학문으로 유가(儒家)를 정립하는 데 성공한 것은 일흔셋으로 세상을 뜨기까지 고향에서 보낸 삼년 기간이었다. 정치가로서 실패한 평생을 말년에 학자로서 대성한 것이다. 한날 제자인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중 어느 쪽이 더 현명합니까”하고. 자장과 자하는 자공의 선배격이었다. “자장은 너무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했구나”하는 스승의 말에 “그러면 자장이 위라는 말씀입니까?”하고 반문했으나 공자는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보다 못하느니라”라고 말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것이다.(논어·선진편) 공자는 중국의 공산화 혁명 이후 타도 대상이었다. 문화혁명 땐 봉건노예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 악질 사상가로 매도됐다. 혁명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부패 지식인으로 취급 당했다. 이토록 짓밟혔던 공자가 중국의 전통문화 핵심으로 찬란하게 부활하고 있다. 대표적 중화사상을 표방하는 ‘공자학교’의 외국 설립을 추진하고, 공자사당을 중수하여 제사를 거창하게 지낸다. 국영방송인 CCTV는 오는 28일에 있을 공자 탄신 2556주년 맞이 기념행사를 무려 4시간에 걸쳐 생중계할 예정이다. 개혁 개방으로 자본주의화한 중국의 현대사회에서 사회주의 이념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고 보는 것이 공자 부활의 배경이다. 전통적 공자 사상으로 중국 문화의 우수성을 드높이는 것이 인민의 애국심을 유발하는 데, 한물 간 이념보다 더 낫다고 본 게 중국 정부의 판단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주정꾼

“민중의 지팡이가 뭐가 이래!?” “민주가 술에 취했으면 경찰이 보살펴야 하는 게 민주경찰 아냐?” 수원시내 어느 파출소에서 있었던 취객들의 주정담이다. 그래도 이건 약과다. 경찰관이 “집에 가 주무시라”며 문밖으로 끌고가면 제풀에 넘어지고는 왜 “떠미느냐…”면서 “경찰관이 시민을 폭행한다”고 트집 잡는다. 간신히 달래어 보내면 또 찾아들어 다시 횡설수설 해대곤 한다. 파출소만이 아니다. 사정은 지구대도 마찬가지다. 수원만도 아니다. 도시는 전국의 어디든 비슷하다. “밤만 되면 취객이 겁난다”는 게 일선 경찰관들의 하소연이다. 취객과의 전쟁이 무섭다고들 말한다. 경찰관서만도 또 아니다. 공원 같은 다중이용시설, 버스 같은 다중교통수단, 병원 같은 다중공공시설 등지서 술에 취해 주변 사람들을 불안케 하는 사례가 적잖다. 이런 취객을 ‘주취자 안정실’에 24시간까지 격리해 둘 수 있는 ‘주취자보호등에관한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인권침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경찰의 자의적 판단만으로 가두는 것은 경찰편의 위주의 인권침해’라는 것이다. 그럴 수는 있다. 멀쩡한 사람을 술 좀 마셨다고 취객으로 몰아 가두는 폐단도 생각할 수가 있다. 하지만 술 주정으로 인해 당하는 인권침해도 생각해봐야 한다. 경찰관서에서의 술 주정도 주정이지만, 공공의 장소에서 시민이 당하는 술 주정 불안은 정말 난감하다. 술 주정꾼들로 인한 경찰의 행정비용 감당이 연간 44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주정은 난동으로 번지기 쉽고, 난동은 우발적 범행으로 번지기가 쉽다. 술취한 개인적 인권이 더 중한가, 아니면 그로인해 폐해를 보는 사회적 인권이 더 중한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술 주정은 버릇이다. 주정 부리기 위해 술을 먹는 사람은 술을 마실 자격이 없다. ‘술취한 개’라는 속담이 있다. 돈 들여 술 마시고 그런 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임양은 주필

수목장

우리나라 묘지 면적은 998㎢로 전국토의 약 1%에 해당된다. 전국 주택·대지면적(2천177㎢)의 절반 정도다. 매년 20만기의 묘지가 들어서는 것으로 보건복지부는 추산하고 있지만 묘지설치 신고접수는 5천건에 불과해 불법 묘지로 인한 산림훼손이 막대한 실정이다. 산사태, 산불도 대개 묘지로 인해 발생한다. ‘수목장(樹木葬)’은 이래서 필요하다. 수목장은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와 최근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대형 납골묘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자연 친화적인 새로운 장묘문화를 조성하는 장점이 있다. 수목장 개념을 최초로 고안해 낸 스위스의 우엘리 자우터는 “나무를 심고 주변에 유골을 뿌리면 나무뿌리가 친구의 재를 양분처럼 빨아들이고 소중한 내 친구는 나무가 돼 영원히 내곁에 머물 수 있다”고 말했다. 수목장은 유골이 묻히고 나무가 심어지면 나무 자체가 무덤이 되기 때문에 쉽사리 나무를 베어낼 수 없다. 개발 압력이 거세져도 수목장이 된 산림은 훼손을 피할 수 있다. 나무에서 피어난 꽃과 열매는 곤충과 작은 동물의 먹이가 된다. 결국 죽은 자가 산을 지키는 셈이다. 사람과 산이 건강하게 교류한다. 고인의 영혼이 스며있는 나무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신체같다. 국내 수목장 확산에 힘쓰고 있는 고려대 변우혁(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공유림에 있는 30~40년생 나무를 이용, 수목장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독일의 경우 지난해 1천여건, 올해 1천800여건의 장례가 수목장림에서 치러졌으며 예약된 수목장이 4만5천개에 이를 정도로 국민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얼마 전 한국산지보전협회와 산림포럼 주최로 ‘산림내 수목장림 조성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조연환 산림청장과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등이 자신들의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서약서에 서명했다. 좁은 국토를 넓게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자연친화적 장묘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목장이 좋은 방안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크게 부족한 화장(火葬)시설이다. 수목장을 치르기 위해서는 화장장(火葬場)이 반드시 필요한데 각 지역마다 화장장 건립을 반대한다. 엄숙하고 비통한 게 화장인데 화장장을 혐오시설이라 함은 잘못된 인식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문화카페/가을바람의 위무 혹은 죽비

가을은 바람으로부터 온다. 바람의 갈피마다 물기가 말끔 걷히나 싶으면 가을이 어느덧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이다. 그 감촉을 즐기느라 ‘나혜석 거리’로의 저녁 마실이 잦아진다. 검게 탄 팔이며 목덜미를 쓸고 가는 바람의 손길이 사뭇 감미롭다. 여름은 이제 갔다고, 더위와 싸우느라 수고했다고, 바람은 지친 나무와 풀, 곡식 등속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다닌다. 찐득찐득한 더위 속의 무기력에 빠져있을 동안도 시간은 끊임없이 가서 어느덧 가을의 바람이며 햇살을 데려온 것이다. 그러니 힘들다고 투덜댄 여름을 멀리 보내는 초가을의 바람이 그저 황홀할 밖에. 이렇듯 시간은 때로 큰 위로가 되지만, 흔적 또한 만들게 마련이다. 여름은 특히 휴가가 있어 더 많은 시간의 자취를 남기고 간다. 여행 중에 만난 수려한 풍광이나 낯선 길에서의 설렘, 가슴에 잠깐 무지개를 걸고 간 사람에 대한 기억도 모두 그런 흔적이다. 누군가는 여름날의 휴가처럼 짧고 달콤한 사랑을 막 끝냈을지 모르고,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 두근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흔적들은 딱지가 앉았건 아직 진행 중이건 모두 시간을 약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줄 것이다. 그래서인가, 이즈음엔 뜸하던 벗의 전화가 느닷없이 오곤 한다. 청첩이나 부고가 부쩍 많아진다 싶더니,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새 달라졌다. 역시 시간의 수레바퀴는 그냥 굴러가는 게 아닌가 보다. 문득 해야 할 일이나 미뤄둔 일, 하고 싶었던 일들이 두서없이 몰려든다. 여름내 불어난 옆구리 군살부터 얼른 버려야지, 몸의 군살을 빼듯 정신의 군살도 차근히 빼야지, 하다 보면 걸음이 먼저 바빠진다. 그렇더라도 뺄 수 없는 즐거움이 있으니, 바로 나혜석 거리에서의 ‘바람맞이’다. 그곳의 저녁 바람과 맥주 한 잔은 정말 뿌리치기 싫은 유혹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노천카페가 되면서 술과 함께 ‘고담준론’의 난장이 서는 나혜석 거리는 그런 대로 수원의 문화거리 역할을 한다. 근처에 편하게 놀 만한 소극장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그런 공간이 있다면 연극이나 영화, 음악 등의 조촐한 모임을 갖고 ‘술’과 더불어 ‘예술’을 더 즐겁게 논할 수 있지 않을까. 운영이라는 걱정 없이 좋은 프로그램만으로 가꿔나갈 문화공간은 아직 요원한 건지, 쓸쓸한 노릇이다. 바람이 다시 주당들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아, 초가을의 이 바람이 너무 달콤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무슨 귀엣말이 문득문득 스치니, 여름이 가면 올해도 벌써 삼분의 이나 간 것이다. 하여 단전에 모이는 긴장의 강도가 슬슬 높아진다. 나의 여름은 과연 ‘참으로 위대’했는지, ‘이틀만 더 남극의 햇볕을 주시어’(릴케의 ‘가을날’) 완성시켜 달라고 할 열매 또한 예비했는지, 나도 도르게 마음이 다급해지는 것이다. 이제 시간의 죽비가 도처에서 등을 친다. 삶은 때때로 고삐를 죄어야 나아가는 것, 바람의 애무 속에서 시간의 죽비를 달게 맞는다. 명치까지 서늘해진다. 이런 죽비로 하여 시간의 속살들이 또 가을날의 과일처럼 여물어 가리라. /정 수 자 시인

性 풍속도

1995년 TV 드라마 <사랑과 결혼>이 ‘혼전 성관계’를 다뤘다. 약혼자에게 ‘순결’을 바친 여성이 새로 나타난 남자 앞에서 갈등하는 줄거리였다. 그런데 방송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 비디오를 보던 여성이 남성의 허벅지 위에 놓인 손을 살짝 빼는 장면때문이었다. 성은 그 자체로 금기였다. 2000년 들어서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 2002년 <고백>과 2003년 <앞집 여자>는 부부의 성 문제를 다뤘다. <고백>이 진지하게 접근했다면, <앞집 여자>는 다소 가벼웠다. 코믹 터치 방식의 <앞집 여자>는 순항했지만, <고백>은 외설 논란 속에 정공법을 포기했다. 젊은이들의 성을 다루기는 2003년 <옥탑방 고양이>가 대표적이다. ‘동거’가 일대 화두였다. 술에 취해 성관계를 맺는 젊은이들의 모습까지 나왔다. 같은해 <결혼 이야기>나 <연인>도 동거를 다뤘다. ‘연상녀·연하남’의 연애담인 2004년 <천생연분>은 성을 표현했지만 암시적이었다. 지난해까지도 ‘성’은 주로 양념이나 소품의 구실이었거나, 조심스럽게 에둘러 스쳐지났다. 또는 완충제로서 코믹한 설정을 집어 넣었다. 또 작심하고 다루려는 시도는 사회적 저항에 쉽게 꺾였다. ‘동거’ 바람을 부른 <옥탑방 고양이>조차도 성을 그리는 방식에 매우 수줍었다. 변화라면, 1995년의 ‘약혼녀’가 “순결을 잃었다”고 울부짖던 모습과 달리 <옥탑방 고양이>는 “괜한 실수를 했다”고 한숨짓는 정도였다. 2005년은 드라마의 성 표현과 수위, 방식이 변화한 해로 방송사에 기록될 만하다. 연인간의 혼전 성관계는 당연한 일인 듯 전제되고 ‘하룻밤 사랑’도 쉽게 표현된다. 미혼모도 줄줄이 등장한다. 순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던 드라마들이 10년여의 진통과 변화 끝에, 동거와 혼전 성관계, 미혼모 문제 등을 그대로 드러내는 지점에 이르렀다. 성 담론의 부담감을 덜기 위해 사용하던 장치들도 이제 거의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시청자 일반의 반감도 예전에 견줘 상당히 사라졌다. 그러나 이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 성적 소재를 무조건 ‘성문란’으로 몰아가는 구태의연한 시각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더욱 위험하다. 성은 은밀한 관계이 지 노골적인 개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TV드라마가 요즘 그 한계를 넘고 있어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사형제 존치론

보수적 성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최근 세미나와 성명서 등을 통해 사형제의 존치를 주장한데 대해, 이미 1998년부터 사형제 폐지운동을 벌여온 진보 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반박하고 나섰다. 한기총은 지난 8월 19일 열린 ‘사형제도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인간 생명 존중을 위해 사형제도는 유지돼야 하며 사형폐지론은 성서적이지 않다”고 결론 지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은 지었음이니라”는 성경 창세기 9장 6절을 앞세웠다. 인간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이므로 어떤 사람이 고의로 다른 사람을 죽였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도 사형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값은 사망이라”도 이같은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하는 구절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 볼 때 엄격히 규정된 (인간의) 법에 따라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은 국가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또 사형을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사형보다도 더 잔인한 형벌”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KNCC는 “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마태복음 5장을 들어 사형 불가론의 근거를 들고 있다. 더욱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두면서도 하나님에게 자신을 죽인 자를 용서해 달라고 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극악무도한 흉악범의 생명이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 즉 생명권은 박탈될 수 없다면서 “하나님께서도 성경에 사형을 인정하셨으므로 사형제도는 성서적”이라는 한기총의 주장은 성서문자주의적, 그것도 단편적 이해이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깨닫지 못한 무지의 발로”라고 비판했다. 모두 성경에 근거한, 따라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양측의 논쟁이지만 그러나 법은 인간적이어야 한다. 사형제도를 폐지할 경우 날뛸 살인 흉악범들을 상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 임병호 논설위원

40대 늦둥이

농경사회에선 대체로 신랑은 노총각인 반면에 신부는 어렸다. 가난한 형편에 혼사를 치르기가 어려워 신랑은 늦장가를 들고 가난한 형편에 식구를 덜기위해 딸은 일찍 시집을 보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나서 자녀가 너무 많은 것도 걱정이었다. 말은 ‘아들 딸 많이 낳으라’는 덕담도 있었고, ‘제 먹을 것은 하늘에서 타고 난다’는 속담도 있었고, 특히 아들이 많은 것은 농경사회의 인력 자산이 되기도 했지만 당장은 입 하나 느는 것을 그토록 어렵게 알았다. 그땐 피임이란 것도 할 줄 몰랐고 중절수술도 할 줄 몰라 아기를 가지면 갖는대로 다 낳았다. 그러다보니 40대에 임신하면 요즘의 40대와는 달라서 늘그막에 아이를 갖는 것이 다 자란 아들 딸 보기에 민망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40대에 아이를 가져 쑥스럽기도 하고 입이 또 느는게 두렵기도 해서 간장을 사발로 마시고 초가지붕에서 일부러 굴러 떨어지곤 했다. 그런데도 모진 생명은 어머니 뱃속에서 떨어지 지 않고 태어난 것이 전 대통령 박정희다. 박 대통령의 맏형 되는 박동희 옹의 부인으로부터 그러니까 아랫 동서의 막내아들 되는 박정희 출생담을 구미 생가에서 옛날에 직접 들었던 얘기다. 아이 갖는 게 크게 걱정되지 않게 된 것은 절대빈곤이 사라진 산업사회 들어서였으나 이 무렵에는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이 시작됐다. 정보사회 들어서는 아예 결혼을 않는 독신이 늘고 결혼을 해도 늦게 결혼해 아이를 갖지 않거나 가져도 하나만 낳는 것이 거의 보편화됐다. 지난해 40대 여성의 출산이 5천787명으로 1982년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난 통계청 자료가 나왔다. 출산기피 풍조로 인구가 줄어드는 걱정이 큰 판에 40대 산모가 많아진 것은 그래도 다행이다. 늦게 결혼해 늦게 아이를 가져 늦둥이를 낳는 것도 행복을 추구하는 인생설계의 한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일찍 결혼해 적당히 가진 자녀를 일찍 자립하도록 키워 부부가 여생을 일찍이 여유있게 보내는 것도 행복추구의 인생설계다. 인생을 오래 산 경험에 비추어 이즈음 젊은이들에게 되도록이면 후자를 권하고 싶다./ 임양은 주필

공자와 노자의 ‘道’

인의도덕(仁義道德)을 주장한 공자(孔子)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숭상하는 노자(老子)를 찾아가 예(禮)에 대해 물었다. 이에 노자는 ‘양고심장’(良賈深藏)이라고 한마디로 답했다. ‘장사를 잘하는 상인은 좋은 물건을 밖에 진열하지 않고 깊이 간수한다’는 해석이 된다. 이 말을 풀면 지덕이 높은 사람은 겉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된다. 오만과 과욕을 경계하는 의미가 담겼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전해진 고사다. 노(魯)나라 사람이던 공자를 윤리주의자라 하면 주(周)나라 사람이던 노자는 자연주의자로 비유할 수가 있다. 노자가 말한 ‘양고심장’이 약 2천500년이 지난 지금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직역한 대로 ‘좋은 물건을 깊이 감춰 두는 게 좋은 장수이다’라는 고전적 해석이 통하지 않는게 현대적 개념이다. 농경사회의 탐문거래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정보사회의 광고거래 시대에선 좋은 물건일수록이 밖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양고심장’을 의역한대로 ‘지덕이 높은 사람은 겉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말은 2천5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맞는 말이다. 지덕은 인격체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지, 밖으로 드러내어 억지로 장식되는 것은 아니다. 과욕과 오만을 경계하는 경구의 의미 역시 틀림이 없다. 인격체의 내면이 아닌 밖에서 장식되는 지덕은 결국 과욕과 오만으로 흘러 예(禮)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인의(仁義)의 조화로 본 공자의 윤리관이나 예를 탐욕이 제거된 무아(無我)로 본 자연관이나 도달하는 관점은 달라도 실체를 보는 눈은 일치한다. 공자와 노자의 이런 선문답은 정치를 두고 나눴던 얘기다. 현세의 국내 권력자들을 보는 공자와 노자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잘은 몰라도 인의의 예도 없고 무아의 예도 없는 것 같다. 오직 탐욕과 오만만이 가득할 뿐이다. 좋은 물건을 감춰두기 보다는 가슴 속에 나쁜 물건을 감춰둔다. 진실보다는 과장을 일삼는 것이 권력자들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사람들의 지배속에 살고 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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