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에게 재봉틀은 선망의 살림 밑천이었다. 결혼할 땐 단연 혼수감 1호로 꼽혔다. 신혼부부 살림에서 재봉틀이 있으면 은근히 자랑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50대 후반의 어머니들이 처녀적 까지만 해도 그랬다. 가정생활의 필수품이었지만 정작 사들이기에는 서민들로서는 가격이 벅찼다. 지금은 집에 재봉틀을 두는 사람이 없다. 재봉틀 자체가 오히려 촌스러워 보인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갖가지 기성복이 시중에 널려 집에서 옷을 만들 이유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옷이 낡아져 꿰매야 할 만큼 떨어지는 일도 없다. 옷이 낡아 못입는 것이 아니고 너무 오래 입은 탓으로 멀쩡한 옷도 그냥 버린다. 재봉틀을 최초로 고안해낸 것은 1790년 영국의 세인트란 사람이다. 그러나 원시적이어서 실용화되진 못했다. 1834년 미국인 헌트가 비로소 초보적 바느질이 가능하게 만든 재봉틀을 1854년 월슨이 정교한 박음질 재봉틀로 개량했다. 국산 재봉틀이 생산된 것은 1950년대 후반이다. 재봉틀은 이토록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발달을 거듭했다. 지금의 재봉틀에서 예전처럼 발이나 손으로 돌리는 수동식 재봉틀은 없다. 공업용 재봉틀은 물론이고 세탁소 같은데서 쓰는 재봉틀도 전력으로 돌아가는 자동식이다. 재봉틀이 아주 귀한 선물로 여긴 북녘의 물정이 이쪽의 1960년대를 생각나게 한다. 평양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리랑 공연의 대집단체조 참가자 5만2천여 명 모두에게 ‘김일성청년영예상’ ‘공로메달’ 등과 함께 중국서 수입한 수동식 재봉틀을 선물로 주었다. 훈련 기간이 1년 넘게 걸린 대집단체조 훈련과 공연에 학생들이 겪은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겠지만, 전원에게 내린 재봉틀 선물은 귀한 재산으로 뜻밖의 ‘장군님’ 하사품인 것이다. 지난 8월16일부터 시작된 아리랑 공연은 10월30일까지 62차례 가져 연인원 220만명이 관람했다. 이 가운데 남쪽에서 1인당 약 5만원씩의 입장료를 주고 본 관람객 수는 8천여 명이다./임양은 주필
해발 837m의 북한산(北漢山)은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최고봉인 백운대(白雲臺)를 중심으로 북쪽에 인수봉(仁壽峰), 남쪽에 만경대(萬景臺)가 있어 삼각산(三角山)이라고도 한다. 한산(漢山)·화산(華山)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는 부아악(負兒嶽)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부아악에 올라 살 만한 곳을 찾았다는 전설이 있다.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이성계(李成桂)를 위하여 도읍지를 정할 때 백운대에서 맥을 찾아 만경대에 올랐다가 서남쪽으로 비봉(碑峯)에 이르렀다고 하여 만경대는 일명 국망봉(國望峯)이라고도 불린다. 비봉은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국보 제3호)가 정상에 세워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산은 이렇게 서울과 역사가 깊은 산이다. 그런데 북한산의 다른 명칭인 삼각산이 ‘경기도의 노래’에 나온다. “삼각산 솟은 아래 고을 고을이 / 긴 역사 아로 새긴 전통의 터전 / 충의와 학문 예술 빛나는 유적 / 겨레의 얼이 깃든 우리 경기도 / (나라의 힘과 자랑 여기에 있다 / 문화의 낙토건설 우리 손으로 / 통일을 다짐하는 보람찬 행진 / 앞장서 우리 조국 새 역사 짓자) // 한강과 임진강이 감돌아 흘러 / 기름진 마을 마을 생활의 무대 / 너와 나 손목 잡고 한마음 한뜻 / 힘차게 살아가는 우리 경기도”. 이은상 작사, 이홍열 작곡의 ‘경기도의 노래’ 1,2절 전문이다. 지난 8일 사단법인 광교산사랑시민운동본부가 주최한 ‘광교산 생태 보전 및 도립공원화에 따른 제2차 학술세미나’에서 경기도의 노래 가사 첫머리에 나오는 ‘삼각산’이 거론됐다. 초대 경기도박물관장을 지낸 강대욱씨는 이날 ‘광교산의 역사 및 불교 고찰’에 대한 토론 중 “삼각산은 경기도청이 1960년대 초까지 서울에 있었을 때 쓰여진 가사”라며 “1967년 6월23일 경기도청이 원래 있었던 수원으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광교산이 경기도의 진산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경기도의 노래 가사 중 ‘삼각산 솟은 아래 고을 고을’도 역사의 변화에 맞추어 다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수원의 진산 광교산이 경기도의 진산이 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작사자인 노산 이은상 선생이 고인이라는 점이다. 노산 선생이 살아 계신다면 아마 허락하실 것 같다. / 임병호 논설위원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고 준동했던 6·25 당시의 빨치산 출신과 전쟁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전선(前線)에서 활동했던 남파 간첩들이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보광사 경내에 ‘통일 애국투사’ ‘의사(義士)’로 미화된 묘비명과 함께 묻혀 있는 현실이 암울하다. 60여평 규모의 연화공원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묘역’이라는 비석이 있고, 6명의 묘비에는 ‘선생’ ‘의사’라는 호칭과 함께 “마지막 빨치산 영원한 여성전사, 하나 된 조국 산천에 봄꽃으로 돌아오소서!”와 같은 추모문이 비록 강제철거 되긴 했으나 도대체 이 나라의 국기(國基)가 무엇이며 국운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 실로 걱정스럽다. 비전향장기수가 어떤 인물들인가. 그들은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전복시키려고 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까지 우리에게 총검을 들이댔으며 죽는 날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회개하지 않은 골수 공산주의자들이다. 백번을 양보해 인도주의 정신으로 변변히 묻힐 땅 한 평 없이 죽은 장기수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발휘할 수도 있다지만, 묘비문을 생각하면 용납할 여지가 없다. 이른바 통일애국투사묘역 준공식 때 범민련남측본부 명예의장이라는 사람이 “보광사 이 땅은 미제국주의자가 점령하고 있는 점령지인데 동지들을 이곳에 모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반드시 진정한 우리 조국 땅에 모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 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더구나 비전향장기수 묘역은 묘지설치 허가 없이 산림을 불법으로 훼손했을 뿐 아니라 문화재보호구역주변 300m 이내는 형상변경허가를 받아야 하는 데도 보광사 경내에 설치, 문화재보호법과 산림법을 위반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법률을 무시’하는 전형을 보여준 셈이다. 지난해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간첩 출신을 민주화운동가로 인식할 때 이미 이런 일은 예견됐었다. 아무리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추모공원 조성과 묘비, 표석의 문구 작성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천주교장기수가족후원회, KNCC인권위 등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대하는 지 주시하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광교산은 수원의 북쪽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해발 582m의 광교산 자락은 동쪽으로 성남시를 지나 과천시 청계산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백운산을 거쳐 광주시 고분현(古分峴)에 닿는다. 동남쪽으로는 용인시 수지, 서쪽으로는 의왕시 일대의 지맥과 닿는다. 광교산 주봉은 시루봉과 형제봉인데 날씨 좋은 날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멀리 여주·이천까지, 서쪽으로는 경기만(京畿灣)의 서해오도(西海五島), 남쪽으로는 용인·평택·안성까지, 북쪽으로는 서울의 북한산이 보인다. 광교산 아래의 소류지(일명 소름못)와 광교저수지와 파장저수지는 수심이 깊고 맑다. 광교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동서남북으로 흘러 내린다. 동쪽으로는 동막천, 풍덕천을 이루고 숯내(탄천)에 합류하면서 남한강으로 흘러간다. 서쪽은 미륵골과 일림으로 흘러 만석거(북지)와 서호에 머물다 장지천을 지나 오목천, 황구지천과 합류해 서해로 들어간다. 남쪽으로 흐른 물은 소류지와 광교저수지에 고였다가 수원천 화홍문(華虹門) 칠간수문을 지나 남쪽의 황구지천과 한몸을 이뤄 바다로 흘러간다. 남서쪽 계곡에서 비롯되는 물줄기는 이의동 산의실을 지나 원천저수지를 이뤘다가 원천천을 흘러 황구지천과 합류한다. 북쪽으로는 왕곡동과 지지대에서 발원한 물이 고천에서 맑은 내를 이루다가 안양천에 닿는다. 광교산은 이처럼 풍부한 산림과 수자원(水資源)을 품고 있는 명산이다. 수원팔경(水原八景) 중 하나인 ‘광교적설’은 겨울철 광교산에 백설이 쌓인 풍경이다. 광교산 연봉(連峰)을 하얗게 덮은 순결(純潔)·무구(無垢)한 백설은 열두 폭 병풍 그림이다. 이 적설(積雪)은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물줄기의 시원(始原)이 되고 특히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수원천을 이루어 시가지 중심을 적신다. 수원(水原)을 예부터 ‘물골’ ‘水城’으로 부른 연유는 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천여년 전 이 산에서 빛이 솟구쳐 올라 사람들은 ‘부처님의 영(靈)이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으며, 빛이 하늘로 향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믿었다. ‘불교를 빛낼 산’이라 하여 고려태조 이성계가 광교산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사시사철 사람들이 찾아 오는 광교산을 도립공원화하기 위한 학술세미나가 사단법인 광교산사랑시민운동본부 주최로 오늘 오후 2시 경기문화재단 다산홀에서 열린다./임병호 논설위원
아들 제리는 아버지에겐 애물단지다. 히피 흉내나 내고 좀도둑질까지 한다. 이런 제리가 돈을 벌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아일랜드 시골을 떠나 런던으로 갔다. 그런데 천만 뜻밖으로 어느 식당에서 일어난 폭발사건 용의자로 체포된다. 혼자만이 아니다. 시골의 부모 등 가족이 폭탄 제조의 테러리스트 조직원으로 몰려 15~30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범인이 아니라는 물증도, 알리바이도 제시했지만 영국의 공권력은 위압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영국의 아일랜드 탄압 정책의 일환인 것이다. 아들의 눈에 비친 교도소에서의 아버지는 경이적이었다. 모범수이면서도 무저항 반항으로 무죄를 확신하며 아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모습이 잔소리나 하는 권위주의자로만 보았던 예전의 아버지와는 판이했다. 부자 간에 대화가 없던 그들에게 가장 많은 대화가 있었던 것도 이 때였다. 마침내 정의로운 여변호사의 끈기있는 추적으로 제리는 무죄를 확정받지만 이미 아버지는 옥중에서 세상을 떠난 뒤다. 평소에 우습게 보았던 아버지의 위대한 면을 보게된 아들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 정의를 되찾는 길이라며 사회에 떨쳐 나선다. 1994년도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차지한 캐나다 출신 짐 쉐리던 감독의 ‘아버지의 이름으로’란 영화 내용이다. 엠마 톰슨이 아버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아들역을 맡은 이 영화는 1975년에 영국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가족간의 대화가 예전같지 않고 많이 단절된 세태다. 이런 가운데 특히 부자 간의 대화는 거의 없다시피 돼 간다. 가정생활, 사회생활의 변화가 이렇게 만들고 있다. 어느 보도에 의하면 연세리더스클럽이 연세대 재학생 3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아버지와 대화를 갖는 시간이 하루에 5분도 안되는 수가 50%를 넘어 선다고 한다. 고민이 되는 문제를 상담하는 상대 또한 어머니는 64%인데 비해 아버지는 11%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는 서로의 이해를 촉진시킨다. 대화는 아들의 자랑스런 점, 아버지의 장한 점을 발견하게 해준다. 기왕이면 제리의 부자처럼 사후가 아닌 아버지 생전에 아들과의 대화 시간을 많이 갖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가정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임양은 주필
중국의 여섯 나라를 통일한 뒤 사상 처음으로 황제가 된 진(秦)나라 시황제는 자초(子楚)의 아들인 영(?)씨가 아닌 여불위의 아들로 여(呂)씨 일 수 있다고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는 말하고 있다. 원래가 거상이었던 여불위가 조(趙)나라 수도 한단에 장사일로 갔다가 진나라 태자인 안국군의 서자(庶子) 자초가 볼모로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여불위는 자초를 찾아가 많은 돈까지 주면서 장차 왕위에 오를 수 있다며 희망을 심어주었다. 또 진나라로 가서는 공작금을 뿌려 안국군이 왕위에 오르면 자초를 태자로 삼도록 만들었다. 그러던 한 날 여불위는 한단에서 자신의 별장으로 자초를 초대해 융숭한 술대접 끝에 무희 조희(趙姬)를 잠자리에 들여보내 나중에 옥동자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후일의 진시황이다. 그런데 조희는 여불위의 정부(情婦)로 이미 그의 씨를 잉태했을 때라는 것이다. BC 257년 진나라가 드디어 조나라와 전쟁을 일으켜 볼모로 있던 자초의 신변이 위험해지자 여불위는 약 150㎏ 분량인 황금 600근으로 조나라 벼슬아치들을 매수해 자초를 자기 나라로 무사히 탈출시켰다. 후에 자초는 왕위에 올랐으나 병약하여 이내 죽어 조희의 아들 정(政·진시황)이 열세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여불위는 이미 왕의 숙부 대우를 받으며 승상으로 문신후(文信候)의 봉작까지 받았다. 여불위의 투자(投資)와 영화(榮華)는 당장엔 별 가치가 없더라도 사두면 큰 이문이 남는다는 뜻으로 ‘기화가거’(奇貨可居)란 고사를 낳았다.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진시황릉에 부장품으로 유명한 병마용(兵馬俑) 군단의 주인이 진시황이 아니라는 주장이 중국 고고학계에서 제기됐다. 병마용의 전차 바퀴 등 모양새가 진시황대 보다 100여년 전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병마용이 든 창에서 진시황대의 인물인 여불위의 이름이 새겨진 게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진시황대의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의문의 부자 관계인 진시황과 여불위가 시황제 사후 2천215년이 되는데도 무덤에서까지 서로 얽혀있는 사실이 흥미롭다./임양은 주필
오스트리아 빈의 ‘월드 어워드’(World Awards)는 며칠전 올해의 ‘세계여성상’ 성취 부문에 영국의 구족 화가이며 사진작가인 엘리슨 래퍼(40)를 선정했다. 그녀는 두 팔이 없어 ‘살아있는 비너스’로 불린다. 비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와 사랑의 여신이다. 지금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비너스상이 발견된 것은 1920년 4월8일 에게해 어느 작은 섬의 농부에 의해서였다. 농부가 밭갈이를 하다가 나온 비너스상을 그 부근을 지나가던 프랑스 해군 함정의 함장이 알고 입수하여 루이 18세에 헌납한 것이 루브르박물관에 소장하게 됐다. 상반신의 비너스상 높이는 2m로 대리석에 조각된 풍만한 가슴은 관능적 매력이 꽉 찼으나, 불행히도 발견 당시부터 두 팔과 하반신이 떨어져 나가 하반신의 미가 상상속의 화제로 남아 있다. 제작 연대는 BC 100~200년으로 알려졌지만 작가는 미상이다. 루브르박물관은 비너스상의 해외전시는 일절 금지하고 있을만큼 소중하게 보존하고 있다. 선천성 단지증으로 태어날때부터 두 팔이 없는 래퍼는 소녀시절까지 겪은 절망의 세월을 접고, 1994년 브라튼대학 미술학부를 우등으로 졸업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개척했다. 스물두살 때 미혼모로 낳은 아들이 있다. 강철같은 의지와 불꽃같은 예술혼으로 작품활동을 하면서 여권신장을 위한 사회활동에도 앞장서 대영제국국민훈장(MBE)을 받기도 했다. 임신모가 신경계통의 약을 많이 복용하면 태아가 선천성 단지증이 된다고 보는 것이 의학계의 통설이다. 하지만 그녀가 왜 단지증이 됐는지에 대한 연유는 알려지 지 않았다. 삶의 악조건에서도 맑은 심성으로 예술의 영감과 교감해온 래퍼는 “육체적 정상과 미의 개념이 장애인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상을 설립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트로피를 수여하는 시상대로 가슴팍이 파인 드레스차림에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나오면서도 ‘살아있는 비너스’는 매우 당당하였다. / 임양은 주필
가정 폭력은 단순폭력의 정도를 넘어 반인륜적인 흉악범죄에 이르기도 한다. 가족관계마저 끊을 수밖에 없는 한계에 처한 가정이 적지 않지만 사회는 ‘남의집안 일에 왜 사회가 끼어드냐’는 식으로 못본 체 한다. 20여년 간 술 마시고 때리는 남편을 목졸라 살해한 주부가 여러 차례 경찰에 폭력신고를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 한 사례다. “엄마와 이혼한 아빠가 툭하면 술을 먹고 와 나를 성폭행하겠다고 협박하고 엄마를 성폭행했다”는 ‘모자가정’의 소녀가 있는가 하면, “아버지가 죽을 때 까지 영원히 어느 곳에 감금하고 싶다”는 고교생 아들도 있다. 그러나 “남편이 칼을 들고 죽이니 살리니 하며 폭행을 해 이혼을 열두 번도 생각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참고 있다”고 한다. 주부(어머니)의 가정폭력도 그냥 지나칠 수준은 아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처 소생의 아이들을 남편 모르게 폭력을 일삼는가 하면 심지어 교묘한 방법으로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도 술을 마시면 폭언과 폭력을 일 삼아 자살을 생각한다”는 여대생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가정폭력이 늘고 있는 1차적인 원인은 물론 악독한 개개인의 인성(人性) 탓이다. 그러나 법치사회에서 무력한 관련법의 문제도 크다. 1998년 7월 ‘가정폭력 특례법’이 시행되면서 가정폭력은 사적 문제에서 사회적 범죄 영역으로 들어 왔지만 ‘남의 집안 일’로 보는 인식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범좌자에게 피해자가 할 수 있는 1차적 대응수단은 가족 접근금지 신청이다. 그러나 이 조치를 취하기 위해 검사를 통해 법원 결정을 받는 데 까지는 보통 8~9일이 걸린다. 그 사이 ‘순간의 잘못’을 운운하며 용서를 빌면 흐지부지 되지만, 얼마 뒤 폭력이 재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행법은 피해자 접근제한, 친권행사 제한 등 보호기간을 6개월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가정 폭력 범죄자를 교화시키는 데 6개월은 너무 짧다. 접근금지 및 친권행사 제한 처분을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나 역시 너무 약하다. 보호기간이 끝나면 보복심리가 발동해 가족에 대해 더 심한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의 심리는 더욱 큰 문제다. 가정,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지구에서 떠나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이건희 삼성 회장의 좌우명(座右銘)은 ‘경청(敬聽)’이다. 1979년 그룹 부회장으로 취임할 때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써준 휘호다. 단순히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사물은 물론 사람까지 꿰뚫어 보라는 의미이다. 구본무 LG 회장의 좌우명은 ‘약속은 지킨다’이다. LG 그룹을 공동 창업했던 능성 구씨 가문과 김해 허씨 가문이 잡음 없이 계열 분리를 한 것도 언젠가 때가 되면 사업을 나누기로 했던 집안끼리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다.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다닌다. 박정희 대통령이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주에게 써준 휘호를 이어 받았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좌우명은 ‘거화취실(去華就實)’이다. 겉치레를 삼가고 실질을 추구한다는 총수의 좌우명을 반영하듯 롯데는 유통을 주력으로 한 우물을 파오며 내실을 다져왔다. SK최태원 회장은 ‘실천이 중요하다’이고,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다. 노기호 LG화학 사장은 ‘선한 것을 따르면 모든 것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從善如流’이다. 팀워크에 의한 시너지 창출을 중요한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는 SK텔레콤의 김선배 사장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가 더 멀리 본다’가 좌우명이고, 황영기 우리은행장의 신념은 ‘CEO는 검투사와 같다’이다. 우리 기업인들의 경영철학이 엿보인다. 최근 미국의 경제잡지가 소개한 미국 유명인사들의 좌우명은 좀 특이하다. 투자의 귀재로 통하는 워런 버핏(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좌우명은 ‘당신은 둘일 수는 없다’인데 그는 “아침에 일어나 오늘 무슨 일을 할 지를 생각하고, 그 일이 다음 날 신문 1면에 날 만한 일인지 고민하라”고 주장한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인 만큼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뜻이다. 앤디 그로브(인텔 전 회장)의 좌우명은 ‘지나치게 의심이 많은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이고, 작가 포 브론슨은 ‘아내와 늘 상의하라’가 좌우명이다.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론슨은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어도 두 번째 기회는 주어라’이다. 크게 공감이 가는 좌우명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당뇨병 환자 급증으로 200년 만에 평균수명 단축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제이 올섄스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 연구팀은 당뇨병 등 만성질환 증가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30년 뒤에는 영국인의 평균 수명이 5년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국 보건 당국도 당뇨는 수명을 10년 이상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폴 지메트 세계보건기구(WHO) 당뇨병협력센터 소장은 “특히 미국 생활양식을 따르는 ‘아메리카화’ 등의 영향으로 아시아가 지구촌 건강 위기의 중심이 됐다”고 우려했다. 중국의 경우, 이런 상태가 방치되면 당뇨병 환자 수가 현재 3천500만명에서 2010년에는 약 8천만~1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중국 ‘청년보’가 보도했다. 그런데 4분의 3 이상의 중국인들이 당뇨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지낸다고 한다. 국제당뇨연맹(IDF)이 추정하는 20세 이상 성인 당뇨병 환자는 2003년 현재 1억9천400만명이다. 지구촌 전체 성인 인구의 5%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1955년 5천500만명이었던 당뇨병 환자가 2배인 1억명으로 늘어나는 데는 40년이 걸렸지만, 1995년 1억명에서 2배로 늘어나는 데는 불과 10년이 채 안 걸렸다. 2025년에는 3억명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환자의 연령층이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콜로라도대학 보건과학센터가 1978~2004년 세계 각국 110건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새로 당뇨병 진단을 받은 어린이와 10대 청소년 가운데 제2형(성인) 당뇨병이 최고 45%에 이른다. 이 비율은 15년전 3% 미만이었다. 청소년 14명당 1명 꼴이다. 중·저소득 국가에서의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 남서태평양의 나우루에서는 성인 중 당뇨병 환자 비율(2003년 기준)이 30%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가 예측한 당뇨병 환자 증가율은 2025년까지 개발도상국이 170%로, 선진국(42%)의 4배를 웃돈다. 우리나라도 2004년 현재 400만명을 넘어섰고 2025년엔 68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고령화, 인스턴트 음식 섭취, 운동 부족, 비만이 당뇨병의 원인이라지만 이제 당뇨병은 정부차원의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게 됐다./임병호 논설위원
1980년 프로야구가 생길 때의 일이다. 당시 재벌들이 프로야구단을 두고 싶어서 둔 게 아니다. 전두환 정권의 강압에 의해 창단했다. 실업팀 선수를 갑자기 프로 선수로 바꾼다고 하여 프로야구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의 지적도 많았다. 그러나 프로야구는 성공했다. 구단의 지역 연고제가 큰 요인이기도 했지만 초창기 프로야구 선수들의 노력이 그만큼 컸다. 처음엔 마지 못해서 시작했던 프로야구단 운영이 스포츠 팬들의 인기를 끌게되자 잇따라 창단을 희망하는 재벌이 나왔다. 이 무렵 88서울올림픽 유치 또한 전두환 정권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총력전을 펴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정권의 정통성이 떳떳하지 못했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국민사회의 불평 불만을 스포츠로 희석시키려고 했고 이러한 스포츠정책은 효과를 보았다. 야간 통행금지시간 철폐, 교복자율화 같은 것도 인기 영합을 의도했던 대중요법의 산물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생긴 프로야구가 벌써 25년의 연륜을 기록하면서 한국프로야구는 반석위에 올랐다. 그런데 요즘 한국야구위원회(KBO)후임 총재를 둔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 인사가 시비의 도마위에 올랐다. 박용오 총재(전 두산구단주)가 내년 3월까지의 임기를 못채우고 갑자기 중도 사퇴하더니,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 그 자리에 간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코드인사가 스포츠단체까지 뻗쳐 프로야구도 한참 문외한인 대통령 선배가 KBO 총재가 된다는 말에 스포츠계의 반발이 꽤나 심하다. 노 대통령은 국회 5공청문회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군사독재자로 지목하면서 맹렬히 추궁하여 ‘청문회스타’로 떠올랐던 적이 있다. 전두환씨는 노무현 의원이 조목조목 따지는 말에 얼굴만 벌겋게 달아오를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참, 이상하다. 전두환 정권이 강압적으로 만들었던 프로야구의 KBO 총재로 노무현 정권이 대통령 사람으로 앉히려는 강압적 처사는 25년의 세월을 무상케 한다. 신상우씨는 벌써부터 취임사를 방불케하는 인터뷰를 어느 스포츠신문과 가져 처신에 더욱 빈축을 사고 있다./ 임양은 주필
여인네의 화장(化粧)이란 말은 개화기 이후 일본에서 유래된 말이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면 ‘화장’의 어휘도 없애야 한다. 원래의 우리 말은 단장(端裝)이다. 몸 치장과 옷 치장을 통틀어 일컬는다. 여기에 육감적인 몸 치장을 담장(淡粧)이라 하였고 이보다 색채를 곁들이는 것을 농장(濃粧), 더 요염한 치장을 염장(艶粧)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신부의 얼굴 치장을 응장(凝粧)이라고 하였는데, 몸치장의 성장(盛粧)을 복합하여 ‘응장성식’이라고 했다. 단장은 남자들도 하지만 특히 여자들은 원시시대부터 시작된 본능적 장식문화다. 상고시대에 나오는 쑥과 마늘은 먹을거리이면서 단장의 재료이기도 했다. 쑥을 달인 물에 목욕하면 피부가 고와지고, 짓찧은 마늘을 물에 풀어 얼굴에 골고루 바른뒤 씻어내면 잡티나 기미 주근깨 등을 없애는 것은 상고시대의 단장법이었다. 여인네들의 단장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거듭하면서 발달하였지만, 그 주성분은 자연 식물이었다. 지금의 할머니들이 소녀시절에 봉숭아 꽃을 손끝에 물들인 단장법은 자연요법의 매니큐어였다. ‘동동크림’은 화학성분의 화장품으로는 원시적인 것이었다. 그 옛날 등에 짊어진 북을 발로 연결된 줄을 통해 퉁퉁치면서 길바닥에서 팔았던 ‘동동크림’은 처녀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화공학적 화장품이 발달해도 꽤나 발달하여 현대 여성들은 화장품 속에 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여성들의 화장을 이단시하는 곳이 있다. ‘눈과 입술을 인위적으로 진하게 그리고 다니는 것은 도덕적으로 몰상식한 현상이다’라며 짙은 화장을 이단시했다. 평양에서 발행되는 ‘월간 조선여성’ 10월호에 나온 내용이다. 중국과 남쪽이 많이 왕래하면서 나타난 북측 여성 화장의 변화에 ‘우리식 사회주의’ 의식의 붕괴를 우려한 경고인 것 같다. /임양은 주필
H건설이 국방부로부터 수주한 인천국제공항 외곽 경계공사와 관련해 군 장성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있던 K경위(39)가 이를 수사에 나서 수 명의 장성들을 구속해 ‘장군잡는 여경’으로 평판이 났다. 2003년 6월의 일이다. 그런데 이의 배경이 최근에 드러났다. H건설의 비리를 탐지한 Y씨(53)가 장성들의 뇌물수수 정보와 증거물을 K경위에게 준 것이다. 그리고는 Y씨는 H건설을 찾아가 경찰수사를 축소시켜 주겠다며 10억원을 요구해 9억원을 받아냈다. 지금 Y씨는 검찰에 의해 구속됐다. Y씨의 이상한 행적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2003~2005년 사이에 강원랜드에서 자기앞 수표로 칩을 산 게 자그마치 83억원에 이른다. 검찰은 돈세탁을 한 것으로 보고 여러 방면으로 계좌추적을 하고 있다. 물론 강원랜드에서 잃은 돈도 있겠지만 어디에 썼는지를 출처와 함께 조사 중이다. 이상한 것은 또 있다. 그를 체포할 당시 압수한 수첩에 내노라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빽빽이 적혀 있는 게 나왔다. 검찰·경찰·정치인 등의 전화번호 등이 적혀있는 이름이 수백명에 이른다. 검찰은 이로 미루어 수사 대상의 기업인이나 지도층 인사를 상대로 로비를 해주겠다며 돈을 울거냈을 것으로 보고 캐고 있다. 1996년에도 변호사법위반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요즘 ‘브로커 사건’으로 불리는 윤모씨의 비리 행각이다. 그런데 아직은 입을 다물고 있는 그의 말이 가관이다. “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여러 사람이 다친다”는 것이다. 진짜 으름장인 지 허풍인 지는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했던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말이 생각난다. 이 브로커 사건이 또 하나의 게이트로 번질 공산이 없지 않다. ‘장군잡는 여경’을 연출했을만큼 놀라운 이면 거래 솜씨는 가히 태풍의 눈이다. 인생이 연극이라면 참으로 요지경속 같은 연극이란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국회가 지난 23일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협상에 대한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켜 내년 3~4월이면 미국산과 중국산, 태국의 안남미(安南米), 인도와 파키스탄의 향미(香米) 등 수입쌀이 슈퍼마켓, 할인점 등에 진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수입쌀은 중국산과 미국산이 대종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과 미국산은 우리의 주식 쌀과 같아 국내산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산은 일반 식당이나 대형 급식업체 등에서 소비될 것으로 보인다. 고품질 쌀로 알려진 미국 칼로스쌀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될 가능성이 크다. 태국 안남미는 밥을 지으면 푸슬푸슬한 인디카 장립종 쌀로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지만 최근 들어 동남아요리 전문점 등에서 인기가 있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의 향미도 일부 애호가를 중심으로 소비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외국쌀이 들어오는 것은 불가피해졌는데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 일본과 대만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농민단체의 격렬한 반대로 쌀 시장 개방은 엄두도 못 냈다. 결국 일본은 2000년까지 6년간 쌀 시장 개방을 유예받았고, 대만도 2002년 말까지 시장 개방을 미뤘다. 그러나 일본은 늘어나는 정부의 쌀 재고와 재정부담 때문에 1999년 자진하여 관세화를 선택했다. 수입쌀에 관세를 물리는 대신 시장을 연 것이다. 1999년 4월부터 수입쌀에 ㎏당 315.7엔의 종량세를 관세로 부과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농촌 구조개선 사업에 집중 투자했다. 농민들도 살아남기 위해 고급 품종 개발에 전력 투구했다. 그 결과 일본 농민들은 세계 최고급 쌀 품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니가타현에서 생산하는 고시히카리 쌀은 중국·대만·싱가포르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의 서울 강남 부유층을 겨냥한 수출도 계획 중이다. 최고급 쌀로 꼽히는 니가타 오우누마 쌀은 60㎏짜리가 100만원에 육박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이번 쌀협상 비준 동의안 통과는 쌀 시장의 완전 개방(관세화)을 앞으로 10년간 늦출 수 있는 공식적인 절차를 마친 것이다. 우리나라 쌀이 고품질인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일본처럼 국내산 쌀을 수출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농촌·농민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부터다. / 임병호 논설위원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은 지역구가 농촌인 강원 홍천-횡성이다. 재선인 조 의원은 14대 국회 때 농림해양수산위 간사를 맡았고, 17대 국회에서도 농해수위 간사다. 조 의원의 지역구는 공무원과 자영업자를 빼면 거의 전부가 농민이다. 선거 때 농민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런데 조일현 의원이 ‘쌀협상 비준안’이 통과되던 날 찬성표를 던졌다. 뿐만 아니라 찬반토론 때 혼자 나서 찬성 발언을 했다. 보도된대로 조 의원은 “쌀협상이 잘못됐으니 재협상하라고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이번 쌀 관세유예 10년 연장 협상 결과는 최고는 아니지만 안 받는 것 보다 낫다. (민노당)강기갑 의원은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뒤에 처리하자고 하는데, 미뤄서 국민에게 득이 된다면 왜 안 하겠나. 지금 비준을 안 하고 DDA 협상에 임한다면 우리 입장은 더 불리해진다. 대한민국의 쌀 한 가마 값이면 중국·미국 쌀은 4~5 가마를, 태국 쌀은 6~7 가마를 살 수 있다. 일반 관세화가 되면 최대 10가마까지도 들여 올 수 있다. 그러면 우리 농촌이 살아 남을 수가 없다. 밀려서 개방하면 (그 피해는)농민이 먼저 받는다. 농민들이 10년이라는 시간을 벌고, 그 기간 동안 경쟁 농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서 한국의 농업 시장이 개방화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쌀값 하락 등 농민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됐다. 그러나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쌀 협상 비준안에 따른 후속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하면 난관을 극복할 길이 없지는 않다. 알려지기로 조일현 의원은 쌀 비준안 통과를 주장하다 농민단체들로부터 여러번 봉변을 당했다. 고향집과 지역구에 ‘매국노’ ‘역적’ ‘의원직 사퇴하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조 의원 역시 “농사꾼의 자식”이다. 조 의원은 “지금까지 여섯 번 출마해 네 번 떨어지고 두 번 당선됐는데 이번 일로 다음에 낙선한다 해도 후회는 없다”고 토로했다.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나머지 정책 결정이나 법령 제정 때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의원들이 많은 정치판에 조일현 의원은 소신이 뚜렷해 믿음직스럽다. 정치철학이 확실한 의원들이 국회를 계속 지켜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기도는 나의 음악 / 가슴 한 복판에 꽂아 놓은 / 사랑은 단 하나의 / 성스러운 깃발 //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 좁은 길이었다 해도 / 고독의 진주를 캐며 / 내가 /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 애처로이 쳐다보는 / 인정의 고움도 / 나는 싫어 // 바람이 스쳐가며 / 노래를 하면 / 푸른 하늘에게 / 피리를 불었지 // 태양에 쫓기어 / 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 /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 노오란 내 가슴이 / 하얗게 여위기 전 / 그이는 오실까 // 당신의 맑은 눈물 / 내 땅에 떨어지면 / 바람에 날려 보낼 / 기쁨의 꽃씨 // 흐려오는 / 세월의 눈시울에 / 원색의 아픔을 씹는 / 내 조용한 숨소리 // 보고싶은 얼굴이여” 스무 살 즈음의 예비수녀 시절, 이해인 수녀가 부산 성베네딕수녀원 베란다 틈새에 핀 민들레 한 떨기를 보고 쓴 詩 ‘민들레의 영토’다. 이 시는 10년쯤 뒤인 1976년 2월, 박두진 시인(작고) 등의 눈에 들어 시집으로 출판됐다. 초판 1천500부의 소박한 ‘민들레의 영토’가 30년을 이어오며 50쇄라는 기록적인 발행부수와 부수 이상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시집이 되어 오늘도 널리 애송된다. ‘민들레의 영토’ 출간 30년을 맞이해 정호승 시인은 ‘꽃들의 영토로 알았던 ‘민들레의 영토’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영토인줄 이제야 알겠다”고 칭송했다. 이해인 수녀는 “쓰는 시간보다 쓴 것들을 돌아보고 익히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한다. 종이가 아닌 삶에 시를 쓰겠다는, 삶 자체를 시로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최근 발간한 영역시선집 ‘눈꽃아가’에서도 이해인 수녀는 서문에서 “고독과 침묵의 수도생활을 통해서 나 자신도 조금씩 ‘버릴 것은 버리고’ 한 편의 시가 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적었다. 리모컨으로 자동차 문을 여는 일도 신용카드가 돈을 대신하는 일도, 놀랍고 신기해서 그 일상의 새로움에 늘 감탄하느라 지루한 줄 모른다는 이해인 수녀가 어느새 갓 환갑을 맞았다. 시인 이해인 수녀, 수녀 이해인 시인, 두 이름이 모두 아름다운데, 10여년 전 봄날 안양 수리산 성지(聖地)에서 한국가톨릭문인회가 마련한 ‘피정(避靜)’ 때 문인들과 함께 ‘고향의 봄’을 낮은 목소리로 부르던 이해인 수녀의 모습이 생각난다. / 임병호 논설위원
자신의 장기 및 시신의 사후 기증을 등록한 사람이 등록된 해당 병원에 입원하는 수가 있다. 이럴 경우 특혜가 있을 것 같지만 특혜란 눈곱만큼도 없다. 대체적으로 기증 등록자들 역시 혜택을 바라지도 않지만, 만약 그같은 눈치를 보이면 병원에선 당장 등록을 취소할 것이다. 특혜나 편익의 다소 간에 병원과 기증자 간에 그같은 이면 거래가 있게 되면 순수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또 장기 및 시신 매매 의혹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과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함께 해 온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줄기세포 연구용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에게 보상금을 주었다고 밝혀 파문이 있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의 난자제공자 20여 명에게 난자 채취에 소요되는 15일간의 교통비 등 실비 보상조로 사비에서 150만원씩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생명윤리법이 발효된 올 1월1일 이전의 일이어서 법률상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어떻든 돈이 거래된 점에서 윤리상의 흠은 부정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본다. 그 무렵의 배아줄기 세포 연구는 간곤하여 가장 힘들 때다. 그렇게 해서라도 난자를 채취한 노성일 이사장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오늘의 황 교수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보기가 어렵다. 그만한 위로금으로 만족하고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 또한 고마운 일이다.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과정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들이 꽤나 많다. 안타까운 것은 외국에까지 대고 헐뜯는 사례가 없지않은 점이다. 이를 부채질하는 언론도 있다. 연구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헐뜯는 덴 누구보다 앞장선다. 황 교수의 학구적 적은 외국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국내에 있는 사실이 부끄럽다. 무엇이 국익을 위한 길인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 할지라도 국보적 학자를 보호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제 난자를 자진해 기증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많아진 건 반가운 일이다. 이면 거래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다. /임양은 주필
중국은 미국에 3만여 명, 유럽에 2만여 명 등 모두 5만여 명의 첨단산업분야 인재들을 보내어 공부시키고 있다. 이들이 권위있는 현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것은 물론이다. 학위를 따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우수 기관이나 업체에서 다년간 실무를 경험케 한다. 벌써 십 수년 전부터 이렇게 해온 이들 인재 중 일부가 중국에 돌아가 일을 하고 있다. 첨단 분야별로 집단화된 이들은 정부로부터 최고 대우를 받으면서 오직 연구에만 몰두한다. 사례를 들면 두 번에 걸친 유인유주선 발사가 이같은 노력의 결실이다. 이에 비해 국내 실정은 사정이 다르다. 외국으로 공부갔던 고급 두뇌가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다. 일자리도 마땅치 않고 대우 또한 시원찮기 때문이다. 국내에 있는 고급 두뇌도 기회만 있으면 외국으로 나가려고 한다. 2003~2004년 미국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7천290명으로 2000~2001년의 5천830명보다 무려 25%나 증가했다. 귀국을 기피하고 있는 이같은 심각한 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 나타났다. 이만이 아니다. 정보기술(IT)등 첨단산업 분야의 국내 두뇌 유출이 크게 우려된다. 연구개발(R&D)인력에 대한 외국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가 심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기업이 국내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를 두어 허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공략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최근 반도체 5개사가 차세대 반도체공장을 공동으로 세우기로 했다. 히타치제작소·도시바·NEC일렉트로닉스·마쓰시타전기·르네사스테크놀리지 등이 2천억엔(약 2조원)을 투입, 내년에 합작 반도체공장 건립에 나서 2007년부터 생산을 시작한다. 일본 반도체의 부활을 위한 야심찬 공동 포석인 것이다. 세계 반도체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 반도체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외국에서는 이처럼 차세대 첨단산업을 위해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너무도 태평스럽다. 고급 두뇌를 보호할 줄도 모르고 첨단산업을 아낄줄도 모른다. 정치판의 치사한 얘기들이 현 세대는 물론이고 후 세대를 먹여살리는 삶의 자원이 될 수는 없다. / 임양은 주필
돌아보면 민선 도지사들이 다 괜찮았다. 1기 민선 도지사 이인제, 2기 임창열 도지사 등 모두 훌륭했다. 3기인 손학규 도지사 역시 대체로 잘 하고 있다. 내년 6월 제4기 민선 도지사 등을 선출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여권은 비교적 조용한데 야당에선 벌써부터 입맛 다시는 자천 후보들이 많다. 서로 물밑 경쟁까지 벌이는 판이다. 이런 한나라당 당내 자천 후보가 대여섯명이나 된다. 출마야 본인의 자유이겠지만 “푼수를 모른다”는 지역사회의 빈축을 받는 자천 후보가 몇몇이 있다. 심지어 “출마선언” 자체에 의의를 두고 출마설을 퍼뜨리는 사람도 없지 않다고 보는 관측이 있다. 한나라당이 벌써부터 도지사 출마에 당내 열기가 오른덴 짐작되는 대목이 있다. 4·30 재·보궐선거 완승, 10·26 재선거의 싹쓸이로 고무된 듯 싶다. 한나라당 간판만 업고 나오면 누가 나오든 당선될 것처럼 여길지 몰라도 천만의 말씀이다. 유권자들은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다. 도지사는 국회의원과는 또 다른 광역단체장이다. 정치판에서는 건달이 통할 수 있어도 지방정부의 건달 수장은 안 통한다. 인생의 경험도 풍부해야 하고, 경륜도 있어야 하고, 행정력도 있어야 하고, 폭넓은 식견과 안목도 있어야 하고, 포용력과 리더십도 있어야 하는 등 이밖에도 지녀야할 덕목이 많다. 선거엔 또 상대가 있다. 열린우리당에서 누가 나오게 될 것인가도 고려해봐야 한다. 무작정 필마단기의 일방적 만용을 부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속담에 ‘이부자릴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있다. 한나라당 당내 자천 후보자들 중엔 내년의 경기도지사 민선 무대가 과연 자신의 무대가 될 수 있는지를 먼저 깊이 돌아봐야 할 사람들이 많다. 도지사 선거구역은 국회의원 선거구역의 30배가 넘는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몇번 당선됐다 하여 도지사 선거를 그런 식으로 여겨선 큰 오산이다. 여·야 할것없이 역대 민선 도지사의 맥을 이을만한 그럴듯한 후보들이 맞붙어 자웅을 겨루는 멋있는 선거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양은 주필
우리나라에서 작금 실시여부를 놓고 쟁점이 되고 있는 교원평가 제도는 여러 외국에서 이미 시작했다. 미국, 일본은 교원평가 결과, 개선 등급(3등급)을 받을 경우 1년간 재교육을 받는다. 이후 모범(1등급)이나 숙련(2등급)등급을 받지 못하면 교단을 떠나야 한다. 이보다 아래인 자질부족 등급(4등급)을 받을 경우엔 아예 사직권고를 받는다. 전문지식·학생 지도 능력·학급 경영 능력 등이 부족하다고 평가된 교사는 최장 2년 간 연수를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지도력 부족 교사로 판정된다면 역시 떠나야 한다.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 보면 가혹해 보이지만 이 제도는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와 일본 도쿄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원 평가 방식이다. 페어팩스 카운티에선 재교육 받는 교사 중 불과 65%만 임용된다고 한다. 1~2등급을 받기 전까진 임금도 동결될 정도로 엄격하다. 신참 교사는 아예 3년간 ‘견습’신분이어서 매년 평가를 받고 1년 단위로 계약한다. 미국의 다른 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엄격한 평가에서 자질 부족으로 판정된 교사에게는 재교육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래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 교직을 떠나도록 한다. 공교육 붕괴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이 마련한 해법도 유사하다. 2000년 도쿄를 시작으로 교원평가제 채택 지역이 늘고 있는데 2003년에만 149명이 교사직을 그만 뒀다고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학교 평가를 하는 곳도 있다. 영국의 교육기준청(OFSTED)이 9월, 86개 학교를 평가, 7개교에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 중 6개교엔 개선 경고가 나갔고 1개교는 특별조치 대상으로 분류했다. 예전엔 조사하겠다는 사실을 10주 전에 알렸는데 지금은 이틀 전에 알린다. 그래야 학교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개선이 어려운 학교는 아예 전 교직원을 바꾸는 일도 있다. 우리나라의 학교 환경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도 우여곡절 끝에 교원평가제 시범실시 학교 신청을 한 전국 116개학교 중 48개 초·중·고등학교를 최종 선정하고 18일부터 교원평가제 시범실시에 들어갔다. 전교조의 연가투쟁이 우려되지만 그러나 교원평가는 궁극적으로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전교조가 시·도 교육청과 시범실시 선정학교 앞에서 매일 시위를 벌이겠다니 그것도 걱정스럽다./임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