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당시 7살이었던 ‘메건 캔카’라는 여자 어린이가 성폭행 전과가 두 번이나 있는 이웃집 어른에게 성폭행 당한 뒤 피살됐으나, 이전에 누구도 범인이 어린이 성범죄 전력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든 부모는 자녀에게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는 메건 부모의 주장에 찬성 여론이 들끓었고, 성범죄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범죄자의 신상 관련 정보의 공개를 규정한 법이 1996년 제정됐다. 성폭행범이 출소 뒤 이주를 할 경우 새로 이사한 마을 주민들에게 이를 알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 법이 ‘메건 법(Megan’s Law)’이다. 영국과 프랑스도 아동 성범죄자들에 대해선 관대하지 않지만, 미국은 특히 강력하다. 미시시피주는 아동 성폭력 혐의로 복역 중인 기결수의 얼굴과 이름을 지방고속도로 주변 광고판에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AP통신이 지난 20일 보도했다. 또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성폭행범에게 평생 ‘족쇄’를 채우는 내용으로 강화된 처벌법을 마련중이다. 성폭행범, 특히 아동 성폭행범의 도심 거주를 금지하고 이동 상황을 체크할 수 있도록 전자족쇄를 채우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발의에 필요한 37만3천명을 훨씬 넘긴 60여만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주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다. 플로리다주가 도입한 ‘제시카 법’은 아동 성폭행범에게 ‘재범이 불가능할 정도로’ 처벌 강도가 높다. 제시카 런스폰드라는 여아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 일어나 주민들의 공분이 거세게 일자 주의회가 13세 미만 아동 성폭행범에게 최소 25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평생 감시하는 내용의 ‘제시카 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한국은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을 이웃 신발가게 주인 50대 남자가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뒤 불태워 버린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성범죄자의 주소와 사진 등 자세한 신상공개는 성범죄자의 재사회화를 가로막고 인권을 침해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니 괴이한 나라다. 지난해만 해도 만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700여 건이나 됐고, 성범죄의 특성상 10% 미만의 낮은 신고율을 감안하면 희생자는 엄청날텐데 성범죄자에게 왜 이렇게 너그러운지 도대체 모르겠다. 범행 현장검증을 지켜보는 많은 주민들이 “재판도 필요없다. 여기서 사형시키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고 또 그것이 대체적인 국민정서다. 짐승에게 인권을 부여할 수는 없다. / 임병호 논설위원
한나라당 소속 서울 모 구청장의 음식 접대를 받은 주민들이 선관위로부터 거액의 과태료 처분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는 대구에서 민주당 위원장 취임행사 동원에 아르바이트 삼아 참석한 대학생들이 무더기로 과태료 처분을 받아 울상이라고 한다. 구청장 음식 접대를 받은 56명 가운데 5만여원 상당의 뷔페식사만 한 사람은 50배인 266만원씩, 2차로 유흥주점으로 가 술대접까지 받은 사람은 각 401만원의 과태료 처분 통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또 당 행사에 참석한 대학생 180여 명은 일당으로 2만원을 준다는 바람에 행사장에 참석해 돈만 받은 학생은 100만원씩, 음식까지 제공받은 학생은 각 18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별 생각없이 당 행사장에 갔다가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큰 과태료 벼락에 아연실색하는 것 같다. 대학생들의 실수도 실수지만 돈 2만원을 내걸고 사람을 동원한 당 관계자들이 참으로 한심하다. 구청장 접대 주민도 그렇다. 구청장 초청으로 밥 먹으러 갔다가 밥값을 여간 비싸지 않게 치르는 봉변을 당한 셈이다. 이런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식사 대접이나 군중 동원 등은 으레 일삼는 선거판의 기본이다. 과거에는 그랬다. 멋 모르고 떼지어 밥 먹으러 다니거나 정당 행사 동원에 참석했다 가는 큰 코 다치기에 딱 알맞다. 그까짓 밥 한끼, 만원짜리 두어 장을 탐내다 높은 과태료를 물게 되어선 후회해도 늦다. 식사 미끼, 일당 미끼를 내거는 정당 관계자들도 나쁜 사람들이지만 먼저 유권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같은 유혹이 있으면 선관위에 고발해야 할 일이다. 과태료가 가혹하다는 말도 없진 않다. 과태료 50배 부과는 가혹한 건 사실이다. 아르바이트 일당으로 생각하고 2만원 받은 학생이 100만원을 내려면 벅찬 건 맞다. 하지만 이런 개별적 사안을 고려하여 공명선거의 본질적 취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치사한 선거판의 먹자판, 동원판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과태료가 가혹하긴 해도 아직은 할 수 없을 것 같다./임양은 주필
영국의 첩보원 제임스 본드는 이안 플레밍의 소설에 나오는 가상 인물이다. 본드의 살인면허 ‘007’은 로마의 시저가 거느렸던 비밀 정보부대 암호숫자라고 작가는 말한 적이 있다. 기상천외의 본드 활약상 그리고 기기묘묘한 첨단 장비에 팝계의 ‘다이너마이트’로 불렸던 탐 존스 등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들이 주제가를 부른 007 시리즈 영화는 40여 년을 이어온다. 1963년 테렌스 영 감독 숀 코넬리 주연의 ‘007 위기일발’로 시작된 시리즈는 무려 20여 편에 이른다. 본드 역으로는 초대 숀 코넬리 외에 피터 샐러즈, 조지 래전비,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난 등이 출연했다. 그러나 이중 본드 역으로 무명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숀 코넬리가 7편 출연한데 이어 9대 본드 역부터 시작된 로저 무어가 역시 7편으로 타이 기록이다. 007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본드의 상대역 여배우다. 본드 걸로 불리는 상대 여배우는 늘씬한 팔등신 미녀로서 적과 동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분장으로 영화속의 본드를 헷갈리게 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 또한 헷갈리게 하곤 한다. 본드걸은 본드보다 더 많은 여배우가 출연했다. 초대 본드 걸 다니엘라 비안키에 이어 설리 이튼, 클라우딘 어거, 에이코 하야시, 우술라 안드레스 등이 출연했다. 본드 걸의 특징은 티모시 달튼이 1987년·1989년 제작의 두 편에 잇달아 출연한 것 외에는 모두 한 번에 그친 점이다. 본드 걸 역할의 연기가 여성으로서는 그만큼 힘들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외신은 2006년판 새 007 시리즈가 촬영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뉴질랜드 출신의 마틴 캠벨은 1995년 ‘골든아이’를 맡았던 감독으로 이번에 ‘카지노 로열’을 또 맡았다. 영국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가 본드역을 하는 상대역의 본드걸 캐스팅에 감독은 꽤나 고심한 끝에 스물다섯 살의 프랑스 여배우 에바 그린을 선정했다. 제작비 1억달러가 투입되는 ‘카지노 로열’촬영이 체코의 프라하에서 시작된 지가 3주가 되도록 본드걸을 캐스팅하지 못했다가 이제 겨우 선정했다는 후문이다. / 임양은 주필
안현수·진선유 선수 0.01초의 시간은 도대체 얼마만의 시공(時空)일까, 일상 생활로는 체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이 시간에 승부가 엇갈린다. 이 때문에 각 국마다 선수들의 유니폼에 신경을 많이 쓴다. 되도록이면 공기의 저항을 덜 받기 위해서다. 스케이트화도 과학화 한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 트랙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은 이색소재의 유니폼에 코너링에서 스피드를 높일 수 있는 밴딩 스케이트화를 착용했다. 지난 19일 안현수(21·한국체대)가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어 1500m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오는 26일 5000m 계주, 500m까지 석권하는 쇼트트랙 전관왕의 위업에 도전하는 야심에 차 있다. 안현수와 같은날 진선유(17·광문고)도 여자 1500m에서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유니폼이며 스케이팅화의 과학화가 크게 도움이 됐다. 그러나 순발력 훈련 등 과학적 지도가 크게 주효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루 8시간에 걸친 강훈을 이겨낸 선수들의 불굴의 투혼이다. 경기실황을 텔레비전 중계로 집에서 초조히 지켜본 김포의 안 선수, 고양의 진 선수 부모와 동네 사람들이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안현수, 진선유 두 선수가 경기도의 아들·딸인 것이 자랑스럽다. 이용훈 대법원장 이용훈 대법원장의 재판관계 튀는 발언은 과학화되지 못한 점에서 아쉽다. 두산사건 변호인단 구성으로 보아 문제가 없지않아 찬·반 의견이 있지만, 그의 구체적 비판은 발언의 진의보단 법관의 독립을 해치는 재판권 침해의 선례가 될 우려가 높은 쪽으로 무게가 쏠린다. 화이트칼라 범죄가 관대하게 처리되는 경향은 유감인 게 맞다. 여기엔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 남용도 한 몫 한다. 대법원장은 화이트칼라 범죄의 엄단을 강조하는 정도로 끝냈어야 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가 과학화다. 사법부 수장의 감정 노출은 실체 추구에 도움이 안 된다./ 임양은 주필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 강도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인질들은 사건 초반엔 강도들을 두려워했으나 인질극이 진행될수록 강도들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6일간의 인질극이 끝난 뒤 실시된 경찰 조사에서 인질들은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한 여성 인질은 강도 한 명에게 애정을 느껴 이미 약혼한 남성과 파혼하기도 했다. 인질극 상황에서 인질들이 그들을 풀어 주려는 군이나 경찰보다 인질범에게 동조하는 심리상태를 말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은 이때 생겨났다. 얼마 전 ‘아이러브 황우석’ ‘한국척수장애인협회’등 5개 단체로 구성된 ‘황우석연구재개국민연합’이 서울 광화문 앞에서 주최한 촛불집회 때 참석자들은 “당신 하나만 매장시키면 된다는 그 무리와 끝까지 싸워 이길 것”이라고 선포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황우석교수 지지자 2천500여 명은 태극기를 흔들며 ‘연구 재개’ ‘특허수호’ 등의 구호를 외쳤고, 어떤 여성은 “나라 위해 일하신 당신의 손 / 사랑스럽습니다 / 당신의 손 외면하는 자 / 거짓을 말하는 자 / 죽을 것입니다”라는 글을 낭독하기도 했다. 재미 과학자로 소개된 조 모씨가 단상에 올라 “난자 공여 등 소모적인 윤리논쟁을 중단하고 우리의 생존권을 사수하자”고 소리치자 박수로 환호했다. 황 교수 지지자들은 “저명한 해외 학자들도 평가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일반 교수들이 평가할 수 있느냐”고 주장하며 황 교수의 논문 조작 사실을 발표한 서울대 조사위원장을 황 교수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그들에게 논문조작은 지엽적인 문제인 모양이다. “도공이 훌륭한 작품을 만든 뒤 이 사람 저 사람 보다가 깨져버린 상황인데 도공의 기술은 인정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의대 측의 기득권 수호 책략이나 미국과의 특허관계에 얽힌 음모론이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는 주장도 한다. 이같은 황 교수 지지자들의 주장에 대해 사회심리 전문가들은 “ ‘스톡홀름 증후군’ 일 수도 있다”고 보는가 하면 “종말론자들이 종말이 온다고 했다가 안 오면 낙담을 하기보다 ‘이번이 아니라 10년 후에 온다더라’하고 또 다른 희망을 갖게 되는 데 이번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는 진단도 한다. 제럴드 섀튼 교수가 논문조작을 사전에 알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도대체 황우석 교수의 진실은 정말 어디에 있을까. 재삼 궁금해진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조선 정조(正祖) 때의 실학자다. 근세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박학 다식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글씨·그림에도 능했으나 서출(庶出)이었기 때문에 크게 등용되지는 못하고 벼슬이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적성(積城) 현감에 그쳤다. 청나라에 가서 그곳 학자들과 교우하고 고증학(考證學)을 배워 왔다. 이덕무가 도덕과 예절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쓴 ‘사소절(士小節·선비들이 지켜야 할 작은 예절)’이 있는데 이 책에 ‘불긍세행 종루대덕(不矜細行 終累大德)’이라는 말이 나온다. ‘작은 행실을 조심하지 않으면 결국 큰 덕을 허물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겠다. ‘사소절’에 담긴 예절들이 조선시대 선비나 양반가문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와 사회적 지위를 넘어 충분히 공감하고 본받을 만 하다. 이덕무는 특히 말을 할 때 주의해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새가 지저귀듯이 수다스럽게 재잘거리지 말라(여성)’ ‘ 소란스럽게 큰 소리로 떠들지 말라(남성)’ 등의 훈계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 또는 음식점이나 술집 등에서 눈살을 찌푸르게 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주의 깊게 듣고 있다 대답이 필요한 경우 지체하지 말고 대답하라’ ‘ 상대방이 말을 마무리하기 전에 중간에 끼어들지 말라’ 등 대화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권한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위엄과 권위를 상하게 되고’ ‘스스로 쌓은 정성을 깎아 먹으며’ ‘몸의 기(氣)를 해치게 돼’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된다’”고 말을 아끼라고 강조했다. ‘술자리에 가자마자 이전의 실수와 낭패를 기억하라’ ‘약간 얼근해진 상태가 되었을 때 얼른 술을 그만두어야 한다’ ‘술을 억지로 권하지 말라’ ‘급하게 빨리 마시지 말라’는 ‘주당’들이 명심해야 할 충고다. ‘사치스러운 자는 스스로 씀씀이가 큰 생활을 즐겨 하므로 항상 돈이 부족하여 오히려 인색해진다’고 꼬집었고, ‘검소한 자는 항상 남는 것이 있어 남을 도울 수 있다’고 하였다. ‘말을 타고 가다가 농부들이 새참을 먹는 곳을 지나칠 때는 말에서 내려라’한 얘기는 이덕무의 인간미가 보인다. ‘사소절’엔 수백 가지 예절이 나오는데 과연 이덕무는 얼마나 지켰을까. 그러나 작은 행실을 조심하라고 스스로 타일렀으니 평생 큰 덕을 행하였을 게 분명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이달 초 고려대 국제관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인권포럼’에서 제기된 아시아 각국 특히 북한 주민의 인권유린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시아 지역의 아동노동과 인신매매’를 주제로 한 인권포럼에서 노마 강 뮤코 국제반노예연대 교육담당자는 “북한 어린이 4만명이 매년 영양실조와 이에 따른 질병으로 사망한다”는 충격적인 실상을 밝혔다. 또 “북한의 기아와 경제위기가 (북한주민의) 중국으로의 대이동을 불러 왔고 이에 따른 가족 해체가 일상화됐다”며 “중국에 있는 북한 아이들은 언제 송환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정상적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참상을 폭로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침해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을 수억 달러를 들여 지었던 그 시점이 바로 수백만 동포가 굶어 죽었던 때였음을 생각하면 말이 무용해진다. 2000년 아들과 함께 북한을 탈출했다가 중국 공안원에게 잡혀 강제 북송됐던 40대 여인이 그후 온갖 고생을 하며 다시 아들과 남한으로 오는 데 성공은 했지만 그 대가로 두 다리를 잃었다. 탈북한 죄로 보위부원에게 모진 고문을 당해 그렇다. 물론 지금도 생존의 절박한 요구에 의해 탈북한 사람들에 대한 가혹한 보복은 중단되지 않았다. 일종의 인신매매도 심각한 일이다. 주로 탈북 여성들이 400~1만 위안(약 5만~120만원)에 강제결혼 형식으로 중국의 농촌 남성에게 팔려간다고 한다. 이런 사례 말고도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는 탈북자들에 의해 수없이 증언되고 있다. 공개처형, 강제노동 등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계속되고 심지어 거주이전의 자유까지 제한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북한은 유엔의 회원국이며, 여러 가지 인권규약에 가입돼 있다. 따라서 유엔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감시할 수 있고, 인권 유린이 심각하면 제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유엔의 인권실태 파악마저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우리 정부까지 남북관계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지난해 유엔 총회의 대북인권결의안 표결 때 기권했다. 하기야 우리나라도 인권이 완전히 보장된 나라는 아직 아니므로 착잡하다./임병호 논설위원
주막이 없어졌다. 젊은이들은 젊은층대로, 노인들은 노인네대로 막걸리에 밤낮동안 찌들어 살던 주막이 없어졌다. 노름방이 없어졌다. 겨우내 도박으로 살림을 거덜내곤 하여 고향을 떠나게하는 예가 잦았던 농촌의 노름방이 없어졌다. 초가지붕이 없어졌다. 지금은 초가를 옛 정취의 정서로 보지만 그 무렵의 초가는 찌든 가난의 상징이었다. 동네길을 넓히고 농로를 만들어 영농 기계화가 시작된 것도, 영농의 과학화와 특용작물 재배에 눈뜬것도 그 때부터다. 새마을운동은 이토록 농·어촌의 의식구조와 생활구조를 바꿔놨다. 수 천년동안 그렇게만 살아왔던 전래의 농촌구조를 현대의 농·어촌으로 탈바꿈한 시발점이 새마을운동이다. 1970년 4월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시·도지사회의에서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새마을운동을 제창,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면서 농촌개혁의 신화가 창조됐다. 노무현 정권 치하는 새마을운동을 유신독재 수단으로 폄훼하지만 당치않다. 국회를 해산하는 등 유신독재가 자행된 것은 1972년 10월 27일이다. 중국 공산당이 어제 공산당 중앙학교에서 한국의 새마을운동 학습회를 가졌다. 후진타오(胡錦濤)국가 주석과 31개 성 대표, 인민해방군 주요 지휘관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이미 수년 전 새마을운동을 도입, 이를 모델로 한 ‘신농촌운동’을 세워 올해부터 2010년까지 본격화하기에 앞서 고위층 학습회를 먼저 가진 것이다. 중국 9억 농민들에게 지난날의 우리처럼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하는 중국판 새마을운동의 열기가 확산될 전망이다. 새마을운동은 중국만이 아니고 동남아 여러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온 연구의 대상이다. 박정희가 유신독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새마을운동을 그가 시작했기 때문에 부정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은 치졸하다. 이 정권의 과거사 정리는 역사를 거꾸로 뒤집으려고 하는 아주 위험한 함정이 있다. 중국 공산당까지 배우고 연구하는 새마을운동을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인 것이 협량한 이 정권의 좌파 성향이다./ 임양은 주필
‘천인 공노할 일이다’ ‘인면수심이다’ 이런 수사적 용어로는 듣는 사람이 동의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그런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혀 듣는 사람 스스로가 먼저 그토록 느끼게 해야 된다. 근대인은 감상적이었지만 현대인은 이성적이다. 감상적 호소보단 이성적 설득이 앞서는 시대다. 현대인의 경쟁사회에서 브랜드 전략이 주요시 되는 게 이 때문이다. 자기의 것을 고유 상표화함으로써 남의 것에 비해 경쟁상 유리한 위치에 서고자하는 다양한 마케팅활동이 브랜드 전략이다. 자치단체가 자기 고장 출신의 문인을 마케팅하는 근래의 추세도 브랜드 전략이다. 경남 통영시가 박경리씨, 전남 장흥군이 이청준씨, 강원 화천군이 이외수씨 등 소설가 그리고 경남 남해군이 시인 고두현씨의 작품 등을 중심으로 회관을 건립하는 등 자원화 한다는 소식이다. 도내 양평군은 황순원씨 소설 ‘소나기’의 작품 현지 무대에 ‘소나기 마을’ 조성을 이미 시작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전남 장성군은 홍길동을 브랜드화 한 생가 복원 등으로 톡톡한 관광자원의 재미를 보고 있는지가 오래다. 도내에도 브랜드화 할 소재가 양평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찾아보면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수원시의 경우는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이 있다. 그러나 화성에 대한 대외인식 홍보에는 무척 미흡하다. 민주적 계몽군주인 정조대왕, 정조조에 꽃피운 실학사상 이런 것도 브랜드화 할 관광 및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현대사적 조명의 재평가가 능히 가능하다. 이를 알기 쉽게 요약, 집대성하는 관광자원 개발은 역사의 교장이 되면서 지역사회의 이미지를 드높이는 일거양득인 데도 소홀한 감이 적잖다. 수원이 낳은 국내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도 브랜드 가치가 아주 크다. 이런데도 겨우 나혜석 거리만 두어 방치한 가운데, 나혜석 민간사업만 고군분투하고 있다. 수원시와 경기관광공사 같은데서 좀 더 깊이 연구하면 화성이나 정조대왕, 실학사상 그리고 나혜석 등을 브랜드화 할 수 있는데도 겉무늬만 들출 뿐 정작 알맹이는 묵히고 있다. 마케팅 작업이 요구된다. 현대의 경쟁사회에서는 감상적 호소의 겉무늬만으로는 앞설 수가 없다./ 임양은 주필
무당이 귀신에게 치성 드리는 굿은 원시적 종교인 샤머니즘의 일종이다. 그러니까 원류는 원시적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기록에 나타나기는 삼국유사가 처음이다. 신라 2대 남해왕은 ‘차차웅’으로 불렸는데 당시 방언으로 무당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또 고구려 2대 유리왕은 득병의 원인을 무당이 알아내서 낫게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무당굿, 즉 굿판은 크게 나누면 무신제(巫神祭), 가제(家祭), 동제(洞祭) 등 세 가지 이지만 세분하면 열세 가지로 나뉜다. 무신제는 무당의 내림굿 등이며, 가제는 집안의 산자에 대한 기복이나 죽은자에 대한 천도 등이며, 동제는 풍농·풍어·마을의 무사안일 등을 비는 굿이다. 춤과 노래 및 언어 촌극 등 형태로 구성되는 굿판은 악귀를 몰아내고 부정을 예방하는 길운의 발원으로 집약된다. 이런 무당굿은 수천년동안 이어온 농경사회선 무속신앙으로 민간사회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심지어는 유교적 법도가 엄중했던 궁중에까지 침투했다. 궁내에서 저주의 상징으로 상대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땅속에 파묻곤했던 주술이 이같은 것이었다. 가장 심했던 궁중 굿판은 조선조 숙종 때 있었던 장희빈이 민 중전을 저주키위해 무당과 함께 살다시피하며 벌인 굿판이다. 서울 삼청공원 위에 있는 숙정문(肅靖門)은 서울의 북문이다. 그러나 열어두면 음풍(淫風)이 장안에 들어온다는 풍수설이 있어 순조 때 폐문할 때까지도 항상 닫아두었다. 그런가하면 한편 정월 대보름 전에 부녀자들이 이 문에 세 번 다녀오면 그 해의 액운을 면한다는 세시풍속이 있어 설을 쇠고 난 부녀자들의 왕래가 빈번했던 것으로 전한다. 청와대가 숙정문 개방을 앞두고 대보름인 지난 12일 숙정문에서 굿판을 벌일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태평성대를 비는 것이겠지만 웬지 미신인 무속신앙에 의지하는 것 같아 듣기에 영 개운치 않다. 태평성대는 정치를 바르게 해야지 굿을 잘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어제 실제로 굿판을 벌였는 지는 잘 모르겠다. 오보가 아니면 취소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임양은 주필
잣나무는 한자어로 백자목(栢子木)·과송(果松)·홍송(紅松)·신라송(新羅松)·해송(海松)·유송(油松)·오수송(五鬚松)·오엽송(五葉松)·오립송(五粒松)·송자송(松子松) 등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백(栢)이 쓰인다. 하지만 ‘훈몽자회’에서는 백을 측백나무로 풀이하고 있다. 오자(五字)가 들어간 명칭은 한 다발에 침엽이 5개인 것에 연유하고, 해송의 해는 외국산이라는 뜻인데 중국 쪽에서 부른 이름이다. 신라송은 신라 때 잣종자가 중국에 들어가게 된 까닭에 얻은 이름이고, 홍송은 목재의 붉은 빛깔에 착안해서 붙인 이름으로 중국측에서 부른 명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이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잎이 5개씩 모여나는 소나무 종류를 합쳐 잣나무류라고 말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잣나무·눈잣나무·섬잣나무의 3종이 있다. 잣나무의 종자인 잣은 송자(松子)·백자(栢子)·실백(實栢)이라고도 하는데 약으로 사용할 때는 해송자(海松子)라고 한다. 잣은 우리나라의 특산으로 명성이 높아 예로부터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당나라 때 ‘해약본초(海藥本草)’에 그 생산지를 신라로 기재하였다. 또 명나라 때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신라송자라고 칭했다. 잣에는 지방유가 약 74% 들어 있고 그 주성분은 올레인산·리놀렌산이다. 약성은 온화하고 맛이 달다. 오래 먹으면 노인성변비에 장의 유동운동을 촉진시키면서 배변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가래가 나오지 않는 이른바 마른기침을 하는 사람이 복용하면 폐의 기능을 정상으로 이끌면서 기침을 멈추게 한다. 또 허약한 사람이 먹으면 기운이 소생하며 피부가 윤택해지고 탄력을 얻게 되므로 미용에도 좋다. 그러나 설사와 물변을 보는 사람은 먹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변비치료제로 활용돼 왔으나 주로 식용으로 쓰여왔다. 각종 음식에 고명으로 들어가며 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잣을 갈아서 쌀앙금이나 쌀가루와 함께 끓이는 잣죽은 보양성이 클 뿐 아니라 소화가 잘 되고 좋은 향과 맛이 첨가된 고급 음식이다. 잣은 예전부터 선물로 애용됐는데 지난 2월4일 한국유네스코경기도협회 신년하례회에서 김순태 회장이 80세(1926년 생) 이상된 회원들에게 ‘가평 잣’을 선물하여 참석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잣나무처럼 곧게 장수하시어 유네스코 발전에 더욱 기여해 달라”던 김순태 회장의 덕담이 떠오른다. /임병호 논설위원
‘들불 축제’는 원래 가축방목을 위해 들판에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고자 마을별로 겨울철에 불을 놓았던 제주도의 옛 목축문화인 ‘들불놓기(제주어로 ‘방애’)’를 현대적 감각으로 승화시킨 문화관광축제다. 정월대보름을 대표하는 전국적 축제로 자리매김한 북제주군 들불축제가 그 중 유명하다. “모든 고통과 재앙, 액운일랑 불기둥 속에 모조리 태워버리고 올 한해는 보름달 같은 희망만 두둥실 솟아라”고 기원하며 불을 지른다. 북제주군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10만여 평의 대지를 태울 새별오름들불축제는 9일부터 11일까지 펼쳐지는데 올해 10회째다. ‘2006년 제주방문의 해’가 겹쳐 그 어느 때 보다 화려하고 웅장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는 소식이 전해 온다. 또 제주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초가 집줄놓기체험과 밭갈이 농경문화체험 마당을 확대하고, 오름 오르기와 달집태우기 참여 기회도 확대했다고 한다. 특히 새별오름은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원나라 목호(牧胡)를 무찌른 전적지임을 기념해 최영 장군 사당이 있는 추자도(楸子島)에서 불씨를 채화해 봉송한다. 경남 창녕군의 ‘화왕산(火旺山)억새태우기축제’도 정월대보름 행사로 유명하다. 원래 창녕군은 불과 관련된 지명인 비자화군(比自火郡)이라 불렀다. ‘큰불의 뫼’로 이름을 떨쳐온 화왕산의 유래처럼 화왕산에 불기운이 들어야 풍년이 들고 재앙이 물러간다는 속설이 전해 온다. 전국 유일의 산상축제인 화왕산억새태우기축제는 12일 밤 대보름달이 떠오르는 시간에 맞춰 하늘을 진동하는 북이 울리는 가운데 대형 달집과 둘레 2.7㎞의 화왕산성 내 마른 억새밭(5만6천여 평)을 불바다로 만든다. “그대 가슴에 / 들불 질렀다. // 제주섬에 와서 // 봄 기다리는 / 들풀에 / 불 질렀다. // 불타 죽은 / 자리, / 그 들판에 // 새풀 / 솟아 난다면 / 백 번인들 / 죽지 못하랴 // 그대 / 들판에서 // 오늘도 / 들불꽃이 / 활활 피어난다. // 내 인생이 / 들불처럼 / 들불처럼 번져간다.” (詩 ‘들불축제’) 북제주군 겨울 들녘의 마른 풀을 활화산처럼 사르는 불꽃이 두둥실 뜬 보름달에 가 닿는 순간과 화왕산 불기둥을 상상하면 가슴이 설렌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마음 속 근심을 활활 태워버리자./임병호 논설위원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 연(鳶)은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친구였던 알투스가 만든 것이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200년경 중국 한나라 장수 한신이 군사용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최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기록은 <삼국사기> ‘열전’에 나온다. 647년 신라 진성여왕이 즉위하자 비담과 염종 등이 군사를 일으켜 여왕을 폐하려 했다. 당시 큰 별똥별이 여왕이 주둔한 월성 쪽으로 떨어지자 “여왕이 패망할 징조”라며 백성들이 동요했다. 이때 김유신 장군이 연에 허수아비를 달아 불을 질러 올려 보내면서 “어젯밤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내 사기를 올려 반란군을 진압했다. 연을 군사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충무공은 임진왜란 당시 연에 여러가지 모양과 색깔을 넣어 전투명령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충무공 전술비연’은 총 55종의 문양과 뜻이 전해진다. 군사적으로 사용되던 연이 민간에 널리 퍼진 것은 조선조 영조때부터다. 영조가 연 날리기와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 탓에 정월대보름이 되면 전국에서 연 날리는 사람들이 한양 수표교에 모여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이렇게 퍼진 연 날리기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겨울철 민속놀이로 자리잡았다. 특히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가장 많이 날렸으며 연에 ‘액(厄)’자를 써서 다가올 액운과 함께 날려보내는 액막이연으로 연날리기를 마쳤다. 연의 종류는 세계적으로 꽤 많다. 그 중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은 방패연과 가오리연이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연의 99%를 차지하는 방패연은 가운데 방구멍이 뚫려 있어 약한 바람에는 바람의 힘을 모아주고, 강한 바람에도 연이 상하지 않게 해주는 과학이 담겨 있다. 방패연은 연에 새긴 무늬와 그림의 색과 모양에 따라 꼭지연, 반달연, 치마연, 동이연 등 8가지로 나뉜다. 방구멍이 없어 꼬리를 길게 붙여 만드는 가오리연은 제작이 쉬운데다 바람에 쉽게 띄울 수 있어 어린이들이 많이 날린다. 가오리연은 연의 형태에 따라 마름모꼴인 가오리연과 부채꼴인 문어연으로 나뉜다. 바람 부는 날, 언덕이나 둔치에서 하늘에 연을 날리면 잡념이 사라졌다. 더 높이, 더 멀리 날리는 ‘연내기’도 재미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연에 소망을 실어 하늘 높이 날려봐야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안산시의 수억원대 카드깡 의혹 사건은 정말 희한한 사건이다. 카드깡은 개인신용에서만 있는 줄 알았던 사회적 상식이 무너졌다. 공공단체가 법인카드로 카드깡을 했다는 것은 전대미문의 진문이다. 주로 유흥음식점 등을 이용해 카드깡을 했다고 보는 것이 경찰 수사의 초점이다. 개인신용에서도 이같은 카드깡을 하려면 많은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우선 카드깡 금액에 대한 세금이 추가되므로 이를 보전해줘야 하는데 보전금액이 적잖다. 여기에 또 이자가 붙는다. 이래 저래 떼는 돈이 수월치 않다. 수억대를 카드깡 했으면 아마 수천만원이 이렇게 떼었을 것이다. 개인신용에선 빚을 낼 겨를이 없을 만큼 다급할 때 카드깡을 하는 이들이 있다. 명색이 예산을 집행하는 자치단체가 어떤 일로 얼마나 화급한 사정이 있어서 카드깡을 했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없다. 각 실·과마다 과비(課費)란 것을 두고 쓰던 시절에 돈이 떨어지면 다음 추경에서 갚을 요량으로 사채를 쓰는 것은 보았지만 카드깡을 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카드깡 혐의가 수억원대면 개인의 범행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구조적 비리라면 이같은 비자금 조성이 왜 필요했는 지가 규명돼야 할 과제다. 불법적인 카드깡을 일삼아가며 비자금을 만들어야 했던 속사정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당초 안산지역 유흥업소의 카드깡을 수사하다가 안산시의 법인카드 불법 사용의 단서를 잡았다니, 경찰도 처음엔 적잖이 놀랐을 것 같다. 이 때문에 경찰이 시청을 수색에 나서 회계 장부 등 관련 서류를 압수당한 것은 자치단체의 체면이 아니다. 그나 저나, 카드깡을 한 수억원대의 원리금(元利金)이 시 예산으로 지출됐을 것이고 보면, 시민이 시청의 카드깡 수수료며 이자까지 세금으로 물어준 셈이 된다. 공무원의 비리를 여러가지로 많이 보아 왔지만, 희한한 법인카드 카드깡 의혹 사건은 듣기에도 민망하고 답답하다. 카드깡 의혹이 비단 안산시에만 국한하는 일 인지도 잘 알 수 없다. / 임양은 주필
‘생고생만 톡톡히 했다’면서 분노를 터뜨렸다. 저가 공세의 어느 여행사 외국 관광단 틈에 끼어 다녀온 사람의 말이다. 그러면서 ‘싼 게 비지떡’이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어떻게 된 노릇인지, 국내 관광업계의 대외 신인도가 형편없는 것으로 들린다. 예컨대 캄보디아 같은 데서까지 현찰 거래가 아니면 그곳 관광업소에서 한국 여행사 업체와 거래를 피한다는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해외 여행업에도 조직폭력이 개입됐다고 한다. 설사 조폭이 개입됐다 해도 그렇다. 같은 예로 일본의 ‘야쿠자’가 자국의 관광업에 개입했다 해도 그들은 대외 신인도에 흠집을 내진 않는다. 해마다 느는 해외관광에 이렇듯 대외 신인도가 떨어져서는 신용에 미래가 없다. 비단 관광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인 이미지가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서는 어딜 가든 대우를 받지 못한다. 지구촌을 한 마당 삼는 개방화시대에 신용이 떨어져선 행세를 할 수 없다. 선진국일수록 대외 신인도를 중시하는 이유는 신용이 곧 무형자산이기 때문이다. 국내 생활에 신용이 없는 사람은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처럼, 해외 생활에서 신용이 없는 국민은 제대로 인간 대접을 받기가 어렵다. 문제는 신용을 쌓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다는 점이다. 또 많은 국민은 신용을 얻어도 일부가 신용을 떨어뜨리면 싸잡아 신용불량자 국민이 되고 만다. 얄팍한 상혼이 신용을 망가뜨리는 공공의 적이다. 한탕주의가 해외 신용을 망치고 있다. 그 옛적 일상생필품까지 가짜 외국산이 판치던 시절에 가짜 외제 만드는 악습을 ‘엽전근성’이라고 했다. 해외 관광업에 한탕주의 ‘엽전근성’이 되살아 난 것은 불행한 현상이다. 정부 당국의 실태조사와 더불어 철저한 지도단속에 의한 개선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 임양은 주필
봄으로 접어드는 입춘(立春)은 ‘24절기(二十四節氣)’ 중 첫번째라는 점에서 해마다 새롭다. 농경사회의 일정표 역할을 하는 24절기는 고대부터 태양력을 기준으로 삼았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달의 운동에 근거한 음력은 오차가 커서 고대인들은 일찍부터 24절기를 양력으로 산정했다. 24절기는 중국 주나라(BC 1046~771)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입춘은 음력으로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한다.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우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입춘을 음력으로 오해하는 까닭은 음력이 상세히 표기된 달력에 절기가 빠지지 않고 기재됐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는 순수한 의미의 음력은 사용된 적이 없다. 신라시대의 역법(曆法)이 처음 전해졌을 때부터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동시에 감안한 ‘태양태음력’을 사용했다. 음력으로 쇠는 명절은 날짜가 들쭉날쭉하지만 양력 기준인 24절기는 날짜 변동이 거의 없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여서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를 펼쳤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입춘첩을 써붙이는 일이다. 춘축(春祝)·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도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인다. 대개 입춘대길(立春大吉)·국태민안(國泰民安)·건양다경(建陽多慶)·만사형통(萬事亨通) 등을 써붙였다. 이 글을 입춘서라고 하였다.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 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썼다. 제주도에서는 농경의례로 ‘입춘굿’이라는 큰굿을 했다. 입춘날부터 봄이 시작된다지만 사람들은 동지(冬至)만 지나면 봄이 온다는 생각을 한다. “동지를 건너/소한, 대한을 지나/남녘에서 오는/봄을 보았다.//그리워 하면서/잠시/잊기도 했었는데//봄은/나를 위하여/꿈길을 열었나 보다”라는 임수향 시인의 詩 ‘봄을 기다리면’ 일부를 음미하면 봄은 이미 입춘 전에 사람들 마음 속에 와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 모든 사람들이 가슴벽에 입춘첩을 써 붙였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깊은 계곡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맑은 물이 흐르면 버들강아지가 부끄러운듯 이른 봄을 알린다. 갯버들·키버들 등도 다투어 봄소식을 알린다. 명자나무꽃은 붉으면서도 앳되다. 아가씨꽃이라고도 하는데 그 별명처럼 봄과 더불어 생리의 절정을 상징한다. 횟잎나무와 두릅나무의 새순은 그 독특한 향기와 맛으로 봄의 정취를 느끼게 하고, 패랭이꽃·씨름꽃(제비꽃)은 가냘픈 아름다움으로 봄을 장식한다. 패랭이꽃은 산뜻하고 깨끗하여 구김새 없는 젊음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화개월령’을 보면 정월에는 매화·동백꽃·두견화가 피며, 2월에는 매화·홍벽도(紅碧桃)·춘백·산수유꽃, 3월에는 두견·앵도·살구·복숭아·배·사계화(四季花)·해당·청향·능금·사과꽃이 핀다고 하였다. 3월3일은 삼짇날이다. 강남에 갔던 제비도 이 날이 되면 옛집을 찾아 온다. 옛날에는 제비가 마음씨 좋은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추녀 밑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깐다고 믿었다. 이처럼 제비는 항상 반가운 남녘의 봄손님이었다. 두견새의 애달픈 부르짖음이 노래가 되고, 鶴들이 모여 들면 봄들판은 어제보다 더 푸르러진다.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 곤충들이 탄생한다. 갓 피어난 꽃, 꽃 사이를 노랑나비·흰나비·벌 등이 날아 다니고 노고지리도 보리밭에서 노래 부른다. 전설과 동요·동화에 잘나오는 할미꽃은 호젓한 산기슭과 잔디밭 또는 풀밭에서 고개를 내민다. 눈부셔 태양을 쳐다보지 못하면서 고개 숙여 수줍어하는 모양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사랑해 왔다. 꽃잎 바깥쪽이 흰 털로 덮여 있어서 할미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꽃이 지면 긴 흰 털을 덮어쓰는 모습이 늙은이를 닮았다고 해서 백두옹(白頭翁)이라고도 한다. 할미꽃은 외양이 화려한 장미나 모란보다도 사랑을 받았다고 옛 문헌에 나온다. 할미꽃의 꽃잎은 여섯개의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지 식물학상으로는 진정한 꽃잎은 아니다. 높은 산에는 눈녹은 틈을 찾아 얼레지꽃이 피어나는데, 이 또한 할미꽃처럼 고개 숙여 피는 모습이 엄청난 자연의 장엄성에 외경(畏敬)을 표하는 모습이다. 낙엽수의 잎이 돋아나기 전 양지 바른 곳에서는 바람개비꽃이 신화처럼 산과 숲을 단장하고, 들과 길가에서 민들레꽃이 나그네를 불러 세워 봄이 왔다고 속삭인다. / 임병호 논설위원
“종일토록 청려장(靑藜杖) 지팡이를 짚고 봄을 찾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매화나무 가지 끝에 봄이 와 있더라”는 글처럼 매화(梅花)는 봄을 알리는 꽃이다. 맑은 향기와 청아한 자태로 봄소식을 전한다. 매화는 가난하여도 그 향기를 파는 일이 없다는 맑고 지조 높은 마음씨를 우리 민족에게 심어 주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라는 가사에 나오는 살구꽃과 복숭아꽃은 우리 민족이 꽃피는 궁궐 안에서 봄이라는 시간을 보내었음을 말해 준다. 여기에 오얏꽃이 뒤질세라 피어난다. 복숭아꽃은 “도화는 흩날리고 녹음은 퍼져 온다/ 꾀꼬리 새 노래는 연우(烟雨)에 구을거다/맞추어 잔 들어 권하 제 담장가인(淡粧佳人) 오도다”라는 옛시조를 생각나게 한다. 살구꽃은 그 화사한 꽃색과 향기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고 겨우내 음산하게 웅크려 있던 마음과 몸을 밖으로 끌어낸다. 산수유의 노란 꽃은 낮게 떠 있는 구름같다. 경기도 등지의 중부지방에서는 이 나무를 동백나무라고도 불렀다. 역시 노란꽃으로 산을 수놓는 생강나무는 크게 자라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산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노란 꽃의 모임은 산속에 감추어져 있던 정열이 밖으로 터져나오는 봄의 아름다운 아픔이다. 봄을 수놓는 노란 꽃에는 개나리와 황매화도 어여쁘다. 개나리는 왕성한 번식력과 토질을 가리지 않아 어디에서나 군집을 이루며 피어 난다. 개나리꽃을 입에 물고 노는 병아리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꿈과 평화를 심어준다. 진달래는 우리나라 산야에 특히 많아서 노래와 詩에 많이 등장할 뿐 아니라 화전놀이 등의 세시풍속과도 관련이 깊다. 철쭉은 설악산·한라산·소백산 등지의 꽃이 유명하며 이른바 ‘철쭉제’는 산신제를 겸한 등산인들의 연례행사로 치러진다. 초봄을 장식하는 목련은 우아하다. 목련은 우리나라 산에서 자생하는 나무이지만, 외국에서 들여온 백목련도 목련처럼 깨끗한 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꽃다운 애정과 향기로운 생각이 얼마인지 아는가, 집을 떠난 산승이 목련꽃으로 인하여 출가를 후회하더라(芳情香思知多少 惱得山僧悔出家)”는 목련꽃이 지닌 가치를 표현한 詩다. 목련은 절에 많이 심는 자목련과 함께 종교적인 분위기를 은은히 풍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삼순이’가 있었다.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공순이’ ‘차순이’ ‘식순이’로 불린 세 가지 직업을 합친 약칭이다. 1950년의 6·25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50년대엔 식모살이 하기에도 어려웠다. 전쟁통에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감지덕지였다. 덤으로 옷가지나 사주면 고마웠고, 지금으로 말해 월급같은 건 아예 상상도 못했다. 지금 70대의 할머니들 가운데는 처녀적에 이런 ‘식순이’ 고생을 했거나, 안했어도 그같은 세태를 보아온 세대들이다. ‘공순이’는 1960년대 산업화시대의 여공들이다. 노조가 있었던 시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인권부재 속에서도 열심히 일해가며 돈을 모은 알뜰한 인생들이었다. 지금의 60대 할머니들은 그같은 세상을 보아온 세대들이다. ‘차순이’는 버스 안내양들이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버스 안내는 ‘차순이’들이 도맡았다. 특히 서울 시내버스의 경우, 출퇴근 시간이면 승객들로 버스가 미어 터졌다. 정류장마다 그 많은 승객들을 하차 시키고 승차 시키면서 곡예를 하기가 일쑤였다. ‘차순이’마다 몸으로 승객을 밀어붙여 가까스로 태우고는 자신은 승강대에 매달린 채 ‘오라잇!” 소리와 함께 차체를 ‘탕! 탕!’ 두드리고는, 운행 중에 틈새를 만들어 들어가 문을 닫곤하는 개문발차가 다반사였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1965년도 전국의 버스 안내양 수는 1만7천160명으로 전한다. 대개는 스무살 미만의 ‘차순이’들은 가난으로 배울 때 못배우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같은 삶의 현장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삼순이’는 근대화의 역군들이다. 오늘의 경제 기반에는 이들의 피땀이 배어 있다. 충남 태안군이 월급을 지원하는 버스 안내양을 두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끈다는 보도가 흥미롭다. 물론 이 안내양들은 옛날의 ‘차순이’와는 다르다. 현대사회는 사람의 육성이 아닌 녹음에 의한 기계가 대신한다. 편리한 것도 좋지만 인성이 그립다. 태안군의 버스 안내양들처럼 예쁜 제복을 입고 승하차와 정류장 이름을 친절하게 들려주는 사람의 육성이 듣고 싶어 진다./임양은 주필
얼마 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일부 논객을 겨냥, “X도 아닌 XX 네 놈이 말도 안 되는 칼럼으로 대통령을 조롱하고 있다”고 욕했었다. 술만 먹으면(취하면) 욕지거리를 퍼붓는 주사(酒邪)꾼이 더러 있지만, 그래도 한 국가의 법무장관이라는 인사가 한 주정치고는 심하긴 했다. 파문이 일자 사과는 했지만 천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점수를 땄을 게 분명하다. 소설 ‘어머니’로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는 “욕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자는 욕을 한 당사자”라고 했지만 욕 가운데 가장 더러운 욕은 당사자가 없는 데서 얼굴과 이름을 감추고 하는 욕이다. 예컨대 요즘 유행하는 소위 ‘악플’이다. ‘악플’은 ‘악성(惡性)’과 ‘리플(reply· 댓글이라는 의미)’을 합성한 ‘악성리플’의 줄임말이다. 인터넷상의 게시물에 악의적인 욕설이나 비방이 담긴 댓글을 다는 행위 혹은 그런 댓글을 뜻하는 신조어인 악플은 비겁하다. 1989년 북한을 방문했던 임수경씨의 아들이 지난해 7월 필리핀에서 익사했다는 보도에 악플을 단 네티즌들의 만행은 너무 심했다. 임씨는 그들을 고발했는데 알고 보니 검찰청에 불려온 사람들이 3 ~4명을 빼고는 모두 불혹을 넘긴 중년이었고, 60세 이상도 5~6명이나 됐다. 대학 교수와 금융기관의 중견간부, 대기업 회사원, 전직 공무원 등 이었다. 또 미국 시카고에서 15세 한인 소녀가 계부의 칼에 찔려 숨진 사건을 두고 “요즘 싸가지 없는 종자들은 칼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 “한국이 싫다고 떠난 X끼들 어떻게 뒈X든 뭐가 대단하냐”라거나, 호남 지방폭설에 대해 “전라도에 내린 하늘의 저주다”, “ DJ 따라 다니던 인간들게 하늘이 노했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댓글은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특정 사안에 대해 안목을 넓히는 등 긍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인터넷에 뜨는 사이버 테러에 버금갈 정도의 악플은 용납이 안 된다. 욕에도 품격이 있다. 욕은 욕이로되 욕 같지 않은 말이 있는가 하면 들으면 바로 귀를 씻어야 할 상스럽고 더러운 욕이 있다, 댓글 처벌을 놓고 ‘표현자유 위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익명의 ‘욕’은 정당치 못하다. 악플 보다는 차라리 천정배 장관처럼 대놓고 이 놈 저 놈 하는 게 낫다. / 임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