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적 의술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5?)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도 서양 의학을 공부한 의과대학 졸업생들은 졸업식장에서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선언하노라…”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낭독한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금언 가운데 “인생은 길고 예술은 길다”는 특히 유명하다. 이 금언의 ‘예술’은 본디 그리스어 ‘테크네’를 가리키는데, 그 말이 영어의 ‘아트’(art)로 옮겨져 오늘날 예술을 지칭하는 것이 되고 말았지만, 애초의 뜻을 말하자면 ‘의술’로 옮겨야 마땅하다. 이 말은 의술을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닌 인간의 ‘기술’ 또는 ‘과학’으로 보는 혁명적 사고를 품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술의 가장 중요한 기초로 ‘임상적 관찰’과 ‘합리적 추론’을 들었다. 그는 그때까지 신의 저주로 여겨졌던 모든 질병의 원인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가 관찰과 추론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는 그의 이름을 딴 의학용어가 지금도 쓰이고 있는 데서 확인된다. 히포크라테스의 집안은 대대로 의술을 업으로 삼은 의사 가문이었다. 다만 히포크라테스가 선조들과 질적으로 달랐던 것은 그의 탁월한 능력 말고도 ‘의술 교육 개방’이라는 전례 없는 결단에 있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이렇게 가문의 비의를 외부로 개방한 히포크라테스가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맹세시키려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나는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이 될 치료를 해 주며, 절대로 해치거나 옳지 않은 일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독약을 처방해 달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조제해 주지 않을 것이며, 그런 방법을 제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인도주의를 가득 담고 있다. 이 선서의 내용대로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은 귀족과 노예를 가리지 않고 모든 환자를 차별 없이 치료했으며 의사의 편의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중심에 둔 휴머니즘적 의술을 실천했다. “만약 돈이 없는 낯선 사람을 진료할 기회가 생긴다면 할 수 있는 한 모든 배려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의술에 대한 사랑도 있기 때문이다”라는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원칙도 오늘날 의사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무지개를 만지는 소녀

‘꽃과 여인’의 화가로 알려진 천경자(千鏡子) 화백은 수필집 ‘천경자 아프리카 기행화문집’과 ‘恨’ 등을 출간한 문인으로도 유명하다. 사십여년 쯤 전에 읽은 것으로 기억되는 千 화백의 수필 가운데 “소녀시절 하늘에 뜬 무지개를 만지고 싶어 언덕에 올랐다”는 내용이 있었다. 크게 공감했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경자 화백은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학생 시절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조부상’, 제23회에 ‘노부’를 출품했고 1944년 졸업했다. 1955년 ‘靜’을 대한미술원협회전에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54~1973)를 역임했고 현재 예술원 회원(1993년~)이다. 1998년 미국의 큰 딸 집으로 건너 간 千 화백은 2003년 봄 뇌일혈로 쓰러져 의식은 있지만 거동은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그 천경자 화백이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02-734-6111)와 두가헌 갤러리에서 지난 8일부터 ‘내 생애 아름다운 82 페이지’를 열고 있는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千 화백의 전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평일에도 줄을 잇는다. 이번 전시에는 초기 화풍을 보여주는 1950~1960대 미공개작 4점, 1970~1990년대 대표작 30여점, 평생 작업한 수채화와 드로잉 180점, 미완성작 42점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즐겨 입던 옷과 쓰던 물건, 여행지의 엽서와 사진, 인형과 장신구 등 각종 수집품도 군데군데 놓여 있어 千 화백의 체취를 전한다. 사람들은 천경자 화백을 ‘정한과 고독의 작가’라고 부른다. 곱고 화려해서 오히려 더 슬프고 쓸쓸한 그림들은 매우 자전적이다. 언젠가 “내 온몸 구석구석에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 있는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 슬픈 전설의 내력에는 아끼던 여동생의 죽음, 유부남과의 사랑 등 개인사도 있겠지만, 스스로 예술의 황홀감을 찾아 고독의 끝까지 치달았던 모진 여정이 깔려 있을 터이다. 46세부터 74세까지 28년간 열두 차례나 해외 스케치 여행을 떠나 지구를 한 바퀴 돌다시피 한 것도 예술가로서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무지개를 만지러 산을 넘던 천경자 화백의 소녀적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내 생애 아름다운 82 페이지’展은 4월 2일까지 열린다./임병호 논설위원

낚시인등록제

낚시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계절이다. 붕어의 산란기다. 상류의 얕은 수초에 드리운 낚싯대 찌를 기분좋게 올려주는 붕어 떼의 식욕이 어느 때보다 왕성하다. 출조 채비로 낚시 도구를 손질하는 조사의 마음은 벌써 물가에 가있다. 그러나 낚시 환경은 예전같지 않다. 수원(水原)은 이름 그대로 물의 고장이다. 국내 농업의 메카로 손색없는 수자원의 개발이 많았다. 그런데 오염될대로 오염되어 마땅한 낚시터가 드물다. 신갈저수지 같은 대물낚시터도 이젠 발길이 끊기다시피 됐다. 이러다 보니 웅덩이 같은 곳에 촘촘히 앉아야하는 유료낚시터를 찾는다. 입어료도 만만치 않지만, 대자연의 호연지기를 만끽하는 낚시의 맛이 많이 갔다. 여기에 향어나 떡붕어 등 외래 어종이 판 친다. 낚시의 진수는 참붕어다. 그런데 참붕어조차 구경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낚시인등록제가 실시될 것이라고 한다. 해양수산부가 이를위해 연내에 ‘낚시관리 및 육성법안’을 만들어 입법화되면 2008년부터 시행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낚시면허제를 시행한다. 면허제도 아닌 등록제를 한다 해서 나쁠 것은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소정의 교육을 받고 등록증을 교부받은 사람이 아닌 사람이 낚시를 하다 적발되면 벌금을 물게 된다. 발급 대상을 만 17세로 한 것은 시골 어린이들이 개천에서 하는 낚시같은 건 예외로 하기 위해서다. 낚시인등록제는 수질 및 환경관리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떡밥 등 미끼, 납추, 쓰레기로 오염되는 낚시터 환경이 말이 아니다. 썩는 냄새가 진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낚시인등록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수질 및 환경이 꼭 개선된다는 보장은 없다. 문제는 낚시인들 스스로의 의식에 달렸다. 되도록이면 떡밥을 덜 쓰고 앉았던 자리 주변은 깨끗이 치우고자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낚시는 자연을 벗하는 레저의 도(道)다. 이래서 잡히면 잡힌대로, 안잡히면 안잡힌대로 낙(樂)이 있다. 붕어 낚시에 가슴 설레게 하는 이 좋은 계절에 많은 낚시인들이 도락(道樂)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좋은 마음을 가질 줄 알면 좋겠다./임양은 주필

‘여장남자’

1755년 프랑스 루이 15세는 러시아에 밀사를 파견했다. 이 밀사의 활약에 힘입어 프랑스·러시아 동맹조약이 체결됐다. ‘에옹 드 보우몽’(1728~1810)이 바로 그 밀사다. ‘에옹’은 밀사 때 여장 남자로 활약했다. 러시아의 조정 신료들을 뇌쇄시켰을 만큼 미모가 뛰어 났다. 루이 15세는 평소에도 그런 ‘에옹’을 총애했던 것으로 전한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국내 영화 ‘왕의 남자’로 비유하면 프랑스판 ‘왕의 남자’였던 것 같다. ‘에옹’은 비밀 임무를 띠고 영국 런던에서 여장남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학문 또한 박식했다. ‘프랑스 외교론’ ‘조세 비교론’ ‘영국 경제사’ 등을 저술했다. 이를테면 재색(才色)을 겸비한 여장남자다. 프랑스 혁명이후 1789년 베르사이유궁전서 열린 국민의회 회의장에서 남성 선언을 하자, 남성 의원들이 “여장 그대로 있으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오는 4월9일 실시되는 이탈리아 총선에 여장남자가 공산당 후보로 나서 화제인 모양이다. ‘블라디미르 룩수리아’란 젊은이로 뛰어난 미모를 과시한다. 여성보다 더 아름다운 여장남자 국회의원 후보로 여성표 남성표를 양수 겸장으로 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1987년 총선 땐 포르노 여배우 ‘치치올리나’를 당선시킨 이색 전력이 있다. 성의 혼돈시대다. 국내에서도 얼른 보아서는 여성인 지 남성인 지 구분이 잘 안가는 사람을 더러 볼 때가 있다. 머리모양 옷차림새로 보아선 여성을 남성으로, 남성을 여성으로 잘못보기가 십상이다. 이런 사람들 중엔 남장여자도 있지만 여장남자가 더 많다. 여장남자의 가슴은 보통 여성보다 더 풍만하고 피부 또한 매끄뤄 보인다. 여성 호르몬을 주입하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이같은 ‘트랜스 젠더’의 전문 유흥업소들이 많다. 그 옛날 ‘에옹’의 후예들이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다. “미친짓”이라는 비판론이 있는가 하면 “선택의 권리”라는 옹호론이 있다. 분명한 것은 타고난 성별을 거부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거역이라는 사실이다./임양은 주필

김형곤씨의 돌연사

현대적 코미디는 근대의 희극이다. 그리고 코미디의 한 분야인 개그는 근대 희극의 한 분야인 재담이다. 이러므로 재담가는 희극배우였던 것 처럼 개그맨은 코미디언이다. 근대의 대표적 희극배우 재담가로 장소팔씨를 꼽을 수가 있다. 현대적 코미디의 대표적 개그맨으로는 김형곤씨를 꼽을 수가 있다. 육중한 몸은 오히려 그의 캐릭터화 했다. 왕년에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가 있었다. 재벌 회장으로 분장한 그의 연기는 웃기면서도 재치가 있었다. 그룹 사장들을 모아놓고 큰 소리 치다가도 부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그만 주눅이 드는 공처가 역할을 그럴싸하게 잘 해냈다. ‘공포의 삼겹살’은 그의 별명이었으며 애칭이었다. 육중한 몸과는 달리 그의 개그는 순발력이 있었고, 그 때마다 시치미를 뚝 뗀 얼굴 표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개그맨 김형곤씨 돌연사’보도는 팬들에게 충격이었다. 엊그제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를 하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진단됐다. 무리한 운동량에 사우나가 가중했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마흔여섯의 나이가 아깝다. 연예생활이 30년 가깝다. 코미디언으로 개그맨으로 대중을 곧 잘 웃기던 그가 일순간의 죽음으로 낙엽처럼 떨어져 갔다. 도대체 생과 사의 경계는 뭣이고 어떤 것일까, 이주일씨에 이은 김형곤씨의 죽음은 코미디계와 개그계의 손실이다. 김형곤씨의 시신이 병원에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됐다는 소식은 듣는 이를 숙연케 한다. 평소의 고인 유지에 따라 유족들이 이행했다는 것이다. 의학 연구용이란 단순한 해부가 아니다. 이를 무릅쓰고 생전에 자신의 시신을 기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죽어서도 남에게 좋은 일을 했다. 인간의 죽음에 영혼이 있다면 그는 죽어서도 예의 그 웃음을 짓고 있을 것만 같다. 명복을 빈다. / 임양은 주필

인신매매국

미국의 평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미 국무부가 발표한 연례 국별 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을 ‘인신매매국’으로 규정한 것은 수치스럽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한국이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고문과 실종 등이 사라졌지만 여성에 대한 성차별, 가정폭력과 강간, 아동학대, 인신매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모두 1만227건의 가정폭력이 보고됐으며 1천114건이 기소됐다는 한국 법무부의 통계를 제시했다. 인권보고서는 또 한국 여성의 전화의 평가치를 인용해 대략 30%의 한국가정에서 폭력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강간은 같은 기간 중 6천620건이 보고됐으며 이 중 2만2천422명이 기소됐다고 열거했다. 특히 한국에는 여전히 매춘이 광범하게 이뤄지고 있고 최근에는 아시아 여성의 인신매매 주요거점이 됐다면서, 중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 여성들이 한국을 거쳐 미국과 다른 나라로 매매되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 한국내에서 국제 결혼이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혈통주의 원칙때문에 외국인이 까다로운 귀화 절차를 통과하지 못해 여전히 ‘외국인’으로 남아 있는 등 소수 인종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탈북자를 제외하고 한국에 난민 신청을 낸 외국인이 지난해 1월부터 8월 사이 326명으로 급증했지만 “한국 정부는 관례적으로 난민자격 부여나 망명처 제공을 잘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정치적 기본권이니 인권문제에 대해선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나 국가보안법의 존폐를 지적하고, 이를 폐지하거나 대폭 개정하는 문제가 국회에서 계속 심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법의 신문시장 독과점 제한 규정에 대해 “이 법이 더 폭 넓게 다양한 관점들에 미디어 시장의 문호를 열어주게 될 것”이라는 한국내 견해와 “이 법이 발행인들과 편집인들의 자유와 자율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이라고 규탄한 또 다른 의견을 나란히 소개하며 미국의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다. ‘북한은 인권유린국’이라는 지적은 그렇다 치고, 한국의 여성차별과 가정폭력, 인신매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중국처럼 “너나 잘 하세요” 식으로 반론하지 못하는 데다 요즘 일어난 국회의원의 성추행 사건과 어린이 성폭행, 살인사건 등을 떠올리면 더욱 참담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꿈꾸는 백마강’

서기 660년 나당(羅唐)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당시 백제의 수도 사비(泗?·현 부여) 부소산 서쪽 끝, 한 바위에서 궁녀 3천명이 백마강에 몸을 던진 것으로 전해 온다. 백제의 여인들이 꽃이 지듯 떨어졌다고 해서 그 바위를 낙화암(落花巖)이라고 부른다. ‘삼국유사’ 등에 나타난 기록으로 볼 때 당시 백제 여인들이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것은 사실이지만 3천명이라는 기록은 없다. ‘삼국유사’에 ‘궁인’으로 기록된 것도 궁에서 일하는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후궁이나 왕의 상적 유희의 대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3천명의 궁녀를 거느린 의자왕(義慈王)의 방탕과 타락이 얘기되는데 그러나 의자왕은 방탕한 왕이 아니었다. 의자왕은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고 행실이 후덕해 ‘해동증자(海東曾子)’로 불렸던 인물이다. 백제 멸망 5년 전에 신라의 30여개 성을 격파하기도 한 의자왕이 갑자기 타락했다는 것은 지나친 편견이다. 수 많은 궁녀를 통해 의자왕의 방탕함을 부각시켜 백제가 멸망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강조하려는 시각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패자인 백제의 시각이 아니라 승자인 신라의 시각이 반영돼 역사를 왜곡한 것이라는 지적이 옳다. 여러 기록과 정황으로 보아 당시 궁녀가 3천명씩이나 존재했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3천명이란 숫자가 들어간 첫 기록은 16세기 조선 명종 때 민재인이 쓴 ‘백마강부(白馬江賦)’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의자왕의 타락을 강조하기 위해 3천명이라고 과장한 것 같다는 주장이 많다. 그런데 왜 하필 3천명인가. 3천은 불교에서 삼라만상을 망라하거나 우주를 상징하는 뜻으로 쓰인다. 궁녀가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3천이란 수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의 평가와 삼천궁녀, 낙화암 이야기는 상당부분 왜곡·과장돼 왔지만 부여(扶餘) 백마강에 가면 신라·백제·고구려의 삼국시대 역사가 떠올라 감회에 젖는다. 부소산에 오르면 황산벌을 지키던 계백(階伯)장군과 백제 군사들의 피어린 함성이 들려 온다. 백마강변 고란사에서 고란초 향기 담긴 약수를 마시면 낙화암에서 강심으로 뛰어 내리던 백제 여인들의 얼굴이 꽃처럼 떠오른다. 흘러갔다가 다시 흘러오는 노래 ‘꿈 꾸는 백마강’이 여울져 온다. / 임병호 논설위원

카사노바의 ‘자유’

이탈리아 사람 자고모 지롤라모 카사노바(1725 ~ 1798)를 사람들은 ‘세기의 로맨티스트’ ‘쾌락주의자’ ‘희대의 호색한’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불가사의한 생애를 살았다. 카사노바의 삶을 연구하는 김준목씨는 그를 ‘감각의 순례자’라고 표현했다. 희극배우인 아버지와 구두수선공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그는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신분의 제약을 극복하고 상류사회로 직행했다. 18세에 명문 바도바대에서 법학박사가 됐고 히브리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를 구사했으며 문학, 신학, 법학, 자연과학, 예능, 의학, 패션, 스포츠, 요리, 마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200㎝의 장신에 직업도 외교관, 재무관, 저술가, 연극배우에서 도박사와 스파이까지 실로 다양했다. 황금구슬과 오렌지 껍질을 이용한 피임술의 대가였고 파리에서 복권사업을 처음 시도한 벤처사업가이기도 하다. 한때 신부(神父)수업을 쌓았으며 또 군인, 바이올리니스타가 되려고도 했지만 추문에 연루돼 투옥됐다가 1756년 탈옥한 뒤 방랑생활을 하며 모든 재능을 여인의 마음을 빼앗는 데 쏟아 부었다. 카사노바는 일찍이 이성에 눈을 떴다. 갓 열 살에 스승의 여동생과의 사랑을 시작으로 수녀와의 금지된 관계, 친딸에게 구혼을 하는 광기에 이르기까지 그는 40여 년간 100여 명의 여인과 외줄타기 로맨스를 벌였다. 다른 바람둥이인 모차르트나 볼테르와 카사노바가 다른 점은 모든 연애사를 서술해 후세에 기록으로 남긴 점인다. 로마와 파리에서의 화려했던 젊은 날을 뒤로 하고 프라하에서 도서관 사서로 40여 권의 책을 집필하며 인생의 황혼기를 보낸 카사노바는 73세에 누구 하나 지켜주는 이 없이 홀로 생애를 마감했는데 그는 “나는 여인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는 말을 남겼다. “즐겁게 보낸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권태로운 시간만이 낭비일 뿐이다”라는 말도 세상에 던지고 떠났다. 한 인간이 어떻게 그처럼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 상상하기 조차 힘든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카사노바와 사랑을 나눈 100여 명의 여인들은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는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 임병호 논설위원

‘사인 볼’ 시비

1895년(고종 32년) 서구식 이발이 시작된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의 머리는 가위로 상투를 잘랐다. 이해 11월 단발령을 반포한 고종은 스스로 제일 먼저 상투를 잘랐다. 이 무렵에 이발 기구로 들어온 바리캉(Bariguand)은 프랑스어로 그 나라의 ‘바리캉 마르’회사가 제작한 명칭을 따서 부른 것이 오늘날까지 머리깎는 이발 기구를 바리캉이라고 부르게 됐다. 서양에서는 원래 이발은 외과의원에서 겸했던 걸로 전한다. 지금의 진료과목으로 보면 머리털은 피부과에 속하는 데 예전엔 진료과목이 세분화되지 않아 외과 소관이 됐던 것 같다. 그런데 옛 서구사회의 외과의원은 간판이 적색 백색 청색으로 되었다고 한다. 이발소의 간판격인 지금의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 줄 무늬가 비스듬히 표시되어 불이 켜진 가운데 돌아가는 원통형 사인 볼이 그같은 옛 외과의원 간판에서 유래한다. 사인 볼은 이제 외과의원에선 오래전에 사라진 대신에 이발소의 국제적 공용기호가 됐다. 한국이용사회가 사인 볼 문제를 들고 나왔다. 안마시술소나 남성 휴게텔 같은 데서도 사인 볼을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모범 이용업소마저 부정적 이미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가 전통적인 사인 볼을 이발소만 쓸 수 있도록 공중위생관리법을 개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요즘은 남자들이 이발소가 아닌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는 사람이 많다. 이용업계로 보면 업권을 침해 당했다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발하는 데 필요한 바리캉을 미장원에서 사용하는 것은 위법행위라는 주장이 한때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미장원측에서도 할 말은 있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 것이나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이나 그게 그것으로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시대는 달라지는 가운데, 경기 불황이 오래 가다보니 이런 업권 다툼도 나오고 이발소 아닌 업소의 사인 볼 시비도 나온다. 참 딱한 일이다. / 임양은 주필

최 의원의 성희롱

여기자 성희롱 사건의 장본인, 최연희 국회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머뭇거리고 있다. 그는 젊은 여성의 가슴을 한 번 만지고 당하는 사회적 압박이 가혹하다고 여길 지 모르겠다. 이미 한나라당 사무총장직 사퇴에 이어 탈당까지 했다.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다시피 했고, 가정적으로는 아내나 자녀들에게 얼굴을 들 면목이 없게 됐다. 이런 마당에 어렵게 된 국회의원직까지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은 너무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긴 있다. 최 의원은 또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남자들 치고 성희롱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말할 수가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더욱이 성인군자가 못되어 ‘음욕을 갖는 것도 간음이다’라는 계명대로 하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래도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절제의 차이다. 최 의원의 성희롱은 충분히 짐작은 간다. 순간의 우발적 취중행위로 본다. 그리고 이런 우발적 행위는 많은 남성이 다 저지를 수 있는 요인이긴 해도, 최 의원은 절제하지 못한 점에서 응분의 책임이 돌아간다. 성희롱 상대가 여기자여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희롱의 엄단이 필요한 것은 그 대상이 되는 여성이 자신의 아내며, 딸이며, 며느리 등인 곧 자신의 여성가족을 아울러 보호하기 위하는 데 있다. 남의 여성가족은 희롱해도 되고, 자기의 여성가족은 희롱해서 안 된다는 생각은 있을 수 없다. 뭣보다 여성을 성희롱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인간다움의 인간 가치를 제대로 형성하는 데 있다. 예전같으면 그리 대수롭지 않던 성희롱이 크게 말썽이 되는 이즈음 세태는 그만큼 인간의 인성 가치 수준이 높아졌다고 보아야 한다. 최 의원이 여론의 지탄이 수그러들기를 기다려 사퇴를 미루면 정말 아주 매장된다. 그보단 자신의 경험을 성희롱 추방의 제물로 삼는 반성과 함께 의원직 사퇴로 과감히 털고 나서 재선거에 나서는 새출발을 기하는 것이 떳떳하다. 물론 어려운 결단이긴 하다. 하지만 어려운 결단이기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 최의원의 이번 사건은 본인에겐 불행하지만 남성사회엔 일깨움이 크다. 순간의 실수가 평생의 공을 무너뜨린다. 남의 일이라고 입방아만 찧을 일이 아니다./ 임양은 주필

이 총리 사퇴론

이해찬 총리가 악습 골프행태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철도노조 파업으로 국민사회가 불안해 했던 지난 1일 부산서 한가하게 골프를 즐겼다. 함께 3·1절 골프를 쳤던 사람은 2002년 대선 전후에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물의를 일으켰던 대통령 측근 최모씨와 이에 관련된 기업인들로 알려졌다. 이 총리는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골프 사과도 한 두 번이어야지 벌써 세 번째다. 강원도 산불 그리고 남부지역 수해 때도 골프를 즐긴 게 잘못이라 해놓고, 3·1절 골프를 파업소동 속에 그도 적절치 않은 사람들과 함께 또 즐겼다. 전엔 거물 브로커 윤모씨하고도 골프회동이 잦았던 모양인 데 “총리가 되고 나선 그와 한 번도 안 쳤다”고 큰 소리 친다. 하긴, 불용 용지를 사둔 게 수억대의 시세 차익이 났는데도 “난 투기 안 한다”는 강변을 일삼으니 더 말할 게 없다. 3·1절 골프회동이 말썽이 되자 “그 시점에서 총리가 할 일이 뭐가 있느냐”는 총리실측 해명은 할 말을 잃게 했다. 강변과 궤변이 난무한다. 중국 총리 얘기를 다시 하겠다. 원자바오(溫家寶)중국 총리는 민생 탐방에 바쁘다. 민생 현장을 찾곤하는 총리의 허름한 점퍼가 11년째 입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런 검소한 총리가 있어 우리 인민은 행복하다”는 칭송이 자자하다. 대한민국 총리는 철도 파업으로 민생이 아우성인 데도 현장 탐방은 커녕, ‘하릴 없다’며 느긋이 골프 회동을 탐닉했다. “우리 국민은 이런 총리가 있어 불행하다”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삼 세 번’이란 말이 있다. 골프 사과도 세 번이고 보면 믿을 수 없다. 앞서 가진 두 번의 사과가 가식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총리를 가리켜 자신과 ‘천생연분’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코드가 맞다는 얘기일 것이다. 삼 세 번에 이른 골프 구설수를 부적절하지 않다고 우기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노 대통령이 오늘 떠나는 아프리카 순방길에서 돌아오면 이 총리에 대한 사퇴 압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 지 두고 봐야 겠다. / 임양은 주필

‘유사강간죄’

매년 1천건 정도의 성범죄가 미제사건으로 묻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신고건수와 인지사건건수 등을 합한 성범죄는 모두 1만3천446건이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범인이 잡혀 해결된 것은 1만2천105건이다. 지난해 한해만 성범죄 1천341건이 해결되지 않고 해를 넘긴 셈이다.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수치심 등으로 실제 발생건수의 10% 정도만 신고된다는 학계 연구결과를 감안하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성범죄는 경찰조사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그 수법이 잔혹해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이 더욱 처참하다. 그동안 아동 성폭력 범죄는 대부분 강간죄(징역 5년 이상)가 아닌 강제추행죄(징역 1년 이상 또는 벌금 500만~2천만원)로 처벌돼 가해자가 집행유예 등으로 석방되는 사례가 많았다. 법무부가 아동에 대한 강제추행 행위를 ‘강간죄’에 준해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또 일부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친고죄 규정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도 바람직하다. 특히 아동을 손이나 입 등으로 성추행하는 것 만으로도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유사강간죄’를 신설하는 것은 크게 환영할 방안이다. 유사강간죄가 확정되면 징역 15년(가중 처벌되면 최대 22년 6개월)까지 선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성폭력범의 인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다. “성폭력범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것은 이중처벌금지 원칙에 위배되며 전과자일망정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란다. 지난해 전자팔찌 법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밝혔던 어떤 인권단체는 “정치권이 정서와 인기에 영합해 전자팔찌 법안 등 각종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면서도 “전자팔찌 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또 “전자감시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특정 성폭력범죄자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법안’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단체도 있어 실소를 짓게 한다. 그러나 이른바 ‘화학적 거세법’ 도입도 찬성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하기 좋은 말’과 ‘듣기 좋은 말’은 국민적 여론에서 이미 밀려났다. 아동 성폭행은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부류들의 만행이다. ‘유사강간죄’의 처벌 규정을 극형으로 해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 임병호 논설위원

사순절

‘부활절(復活節)’을 앞둔 ‘사순절(四旬節)’이 기독교에서 3월1일부터 시작됐다. 사순절은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죄와의 결별과 경건한 삶을 다짐하는 ‘40일 간의 기념일’이다. 올해 부활절은 4월 16일이다. 사순절을 계산할 때는 주일을 제외한다. 사순절은 항상 수요일부터 시작한다. 이 날을 ‘재(참회)의 수요일’ ‘성회 수요일’ ‘ 속죄일’ 등이라고 한다. ‘재의 수요일’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사람들이 참회의 뜻에서 종려나무를 태운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린 풍습 때문이었다. 이는 풀이 마르고 꽃이 지듯 흙으로 태어난 인간도, 인간의 영화도 한 줌 흙으로 사라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기독교에서 ‘40’은 섭리의 숫자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보냈다. 구약시대 모세도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금식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승천까지 기간도 40일 이었다. 성경에서 나타난 40이란 숫자는 고난과 갱생의 상징이다. 초대교회 이후 신자들은 사순절을 보낼 때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경건하게 생활했다. 그들은 성찬식을 준비하는 한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금식하며 불우한 이웃을 위해 선행을 베풀었다. 경건과 성결, 절제와 사랑, 나눔과 섬김, 평화와 소망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간이 사순절이다. 올해는 3·1절이 사순절 시작일이어서 목회자들은 “내 이익보다는 민족과 공동체를 생각하며 보내야 한다”고 기독교인들에게 주문한다. 아울러 “‘옷만 찢지 말고 심장(마음)을 찢어라…’(요엘 2:13)는 말씀처럼 흩어진 마음을 모아 주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리현상, 즉 정치불안, 경제위기, 도덕적 타락, 급속한 가정 붕괴 등은 극단적인 이기주의, 향락주의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욕망의 수레바퀴에 갇혀 살던 몸과 마음을 스스로 자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목회자들의 설교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일상생활 중의 과오를 참회하라는 사순절의 의미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실행되었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개점휴업 정부 위원회

참여정부 출범 전인 2002년말 364개였던 정부 위원회가 지난해말 현재 381개로 17개 늘었다. 이 가운데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2002년말 18개에서 지난해말 25개로 참여정부 들어 38.8%가 늘었다. 국무총리 직속 위원회 역시 34개에서 47개로 38.2% 증가했다. 위원회는 법률이나 대통령령 등에 의해 설립되는데 행정기관 성격을 띤 행정위원회는 중앙인사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39개, 자문위원회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정책평가위원회 등 342개다. 참여정부는 효율성 있는 정부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역대 정권 중 가장 위원회가 많고 공무원 수도 과거 정권보다 늘어나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는 유명무실하거나 기능이 비슷한 위원회가 많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더구나 381개 정부 위원회 중 32개는 2003년과 2004년 2년 연속 단 한 번도 회의를 열지 않았으며 이 가운데 10개는 지난해 10억원의 예산을 배정 받아 국민 혈세를 원칙없이 낭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자치부 산하의 문서감축위원회는 아예 위원회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 국무조정실과 총리실 직속 위원회 상당수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규제개혁위원회를 제외한 48개 위원회가 처음 구성된 후 지금까지 진행한 회의건수는 총 501건이며 이 중 서면으로 회의를 대체한 건수가 40%에 달한다. 규개위를 포함하면 서면 회의건수는 약 27%다. 2000년 구성된 국가표준심의위원회를 비롯, 일부 위원회는 설립연도에 단 한 차례 회의를 연 뒤 지금까지 회의실적이 전혀 없으며 전체 위원회 중 20% 가량은 지난해 한 번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최근 국무조정실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및 국무총리 직속 위원회의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423억원이 늘었다. 행정자치부가 올 상반기 중 설치목적을 달성했거나 운영실적이 저조한 25개 위원회를 폐지하는 등 40개 위원회를 통폐합하고 26개 위원회는 위원 직급을 하향조정한다는 계획을 밝힌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인데 문제는 실천이다. 참여정부 들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정부 산하 위원회를 대수술하는 것은 국가재정 지출을 줄이는 일이다. 빠를 수록 좋다./임병호 논설위원

통계질서 문란

대량(大量) 관찰의 결과로 얻어지는 구체적 수치가 곧 통계다. 통계의 생명은 진실성과 효율성이다. 각종 정책 입안의 기초가 되는 판단 자료가 통계이기 때문이다. 통계가 잘못되거나 통계를 왜곡해서는 정책 결함을 가져온다. 지정통계·일반통계·조사통계·보고통계 할 것 없이 다 마찬가지다. 이래서 정부 통계는 통계법에 의한 체제정비 규범의 통계청 규제를 받는다. 그런데 정부가 통계법을 위반하기가 일쑤다. 예를 들면 산업자원부는 지난 7월 통계청으로부터 기술이전사회화통계가 무단작성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행정자치부가 8·31 부동산대책 일환으로 공개했던 부동산소유실태통계는 내용이나 절차상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있었다. 부실통계로 신뢰성을 추락시켰다. 정부 부처의 이런 통계질서 문란은 지난 2003년 2월부터 올 2월까지 32건이나 된다. 단 1건이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통계질서 문란이다. 통계는 비단 한 가지 정책에만 인용되는 게 아니다. 직·간접으로 여러 분야에 이용되는 것이 통계다. 통계질서 문란이 32건이고 보면 영향을 끼쳤을 그 오류는 상상을 불허한다. 통계는 건축물의 기초와 같다. 기초가 튼튼해야 튼튼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 반면에 기초가 부실하면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다. 부실한 통게를 바탕으로 하는 정책이 비유컨대 기초가 튼튼한 건축물일 순 없다. 정부 통계 중 왜 이 모양인 게 많은 진 잘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해볼 수 있다. 발에 신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고 신발에 발을 맞추는 일이다. 세금 증세론을 놓고 ‘누가 얼마나 더 내고, 누가 얼마나 혜택을 보게 될 것인 지를 계산해 보자’고 한다. 무슨 통계를 또 어떻게 내놓고 큰 소리 치는 것인 지 알 수 없으나 무척 난해한 계산이다. 통계는 요술이 아니다. 통계는 진실이다. ‘콩으로 매주를 쑨다’해도 안 믿는 사람이 많다. 이 정권은 국민사회의 신뢰를 먼저 얻는 것이 급선무다. / 임양은 주필

영담스님의 풍경소리/네가 지은 공덕이 없구나!

요즘 출판 기념회가 러시를 이룬다. 다가오는 지방 선거를 앞두고 얼굴을 알리거나 세를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또는 기금 마련을 위해 출판 기념회를 많이 한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출판기념회 초대장에 난감할 때가 많다. 어디는 가고 어디는 안가면 괜히 오해받기 십상인데 이런 저런 일정을 챙기다 보면 다 찾아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는 시·도의원도 유급화가 된다고 하니 지방선거에 출마를 하려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 같다. 시·도의원 유급화의 취지가 가급적 각 방면의 전문 인력들을 충원하여 지방정부의 살림과 정책을 올바로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것인데, 과연 그렇게 될 지는 각 당의 공천 과정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유급화를 하면서 기초의원 까지도 정당 공천을 해 버리니 아직까지 정치 문화가 썩 발전되지 않은 우리 환경에서 얼마나 참신한 전문 인력들이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을 지는 참으로 의문이기 때문이다. 전국 정당이 부재하고 지역별 편차가 심한 우리의 정치 풍토 속에서 지방자치선거 마저도 정당정치에 편입시킨 처사는 다음 번 선거부터는 분명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참신성이나 전문성 여부를 떠나 정당 선호도에 따른 표 쏠림 현상이 불을 보듯 뻔하게 일터이고 이는 중앙 정당정치에 지방자치가 예속되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또 지역에서 쌓은 기반이나 노력 없이 잘 나가는 정당의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인연에 의해 공천을 받는 경우도 있을 터이니 이러한 경우는 더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방의원들은 평소 지역주민들로부터 신망 받고 검증받은 사람들이 진출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도덕성이나 전문성 그리고 참신성 등에 대해 어느 정도는 검증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한데 이러한 과정들이 생략된 채 중앙 정치인들에게 줄을 잘 서야만 하는 오늘날의 세태는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부처님께서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어떤 비구가 병에 걸려 일어나지도 못하고 똥과 오줌을 싸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물었다. “너를 돌보아 주는 사람은 어디 있느냐?” “이렇게 앓고 있어도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네가 병들기 전에 다른 사람을 문병한 일이 있느냐?” “그런 일이 없었나이다.” “네가 지은 공덕이 없구나. 다른 사람의 병을 문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지금 두려워하고 걱정하지 말라. 내가 친히 공양하여 불편함이 없게 해주리라.” 원래 이 말씀은 아함경의 가르침으로 대중들이 병들고 힘든 사람을 서로 돌보고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 더 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남을 위해 지은 공덕이 없는 사람이 남을 대표하여 나서려함을 경계하려 함이다. 지역 주민들을 위하여 그동안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사람이 유급화를 계기로 중앙 정치에 기대어 주민들을 대표하고자 한다면 그 폐단이 자못 심각할 것이다. 때문에 1차적으로는 각 정당의 공천과정이 얼마나 공정했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만약 각 정당들의 공천이 지역 주민들의 대표성을 무시했다면 나머지 옥석을 가리는 일은 이제 모두 지역 주민들의 몫이 된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은 이번 지방 선거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부천 석왕사 주지

총리론(總理論)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겨울 점퍼가 인민들의 화제가 된 것 같다. 정치국 후보위원이던 1995년 겨울부터, 그러니까 11년 째 된 허름한 점퍼를 아직도 입고 있는 사실이 그의 민생탐방 사진으로 한 네티즌에 의해 확인되면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것이다. ‘주름지고 해진 녹색 점퍼를 입은 보통노인 같은 총리…’라며, 중국 인민들로부터 최고의 총리로 숭앙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버금가는 존경을 받는 것 같다. 고관대작이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례로 고전(十八史略)에 나오는 ‘안영호구’(晏?狐?)라는 고사가 생각난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이던 안영은 호구를 30년동안 입어 ‘일호구 삼십년’이란 말이 생겼다. 호구는 여우 겨드랑이 밑에 있는 하얀 털가죽으로 안을 댄 갖옷이다. 귀중한 옷이긴 해도 무려 30년이나 입은 건 여간 검소한 품성이 아니고는 어려운 노릇이다. 조선의 명재상 황희(黃喜) 또한 청백리다. 세종조 때 영상(총리) 자리에 있으면서 하루는 밤에 갑자기 왕의 부름을 받아 덜 마른 빨래 옷의 단벌 관복을 입고 입궁한 일화가 있을 정도다. 세종의 선왕인 태종조부터 사사(仕事)한 그는 양녕대군의 폐세자를 극력 반대하다가 귀양을 가는 등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중국 고전의 안영을 방불케하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에 대한 인민들의 존경은 대단하다. ‘나도 모르게 감동적인 눈물을 흘린다. 우리가 이런 총리를 가지고 있다는 게 행복하다. 조국과 인민에게 희망이 있다’며 극찬하고 있다. 고인인 중국 최고의 총리 저우언라이는 유산으로 남긴 게 약 60만원인 5천위안에 불과했다. 우리의 이해찬 총리는 땅 투자로 수억대의 시세 차익을 보고 있으면서도 “난 투기는 안 한다”고 강변한다. 중국의 인민들처럼 우리 국민은 행복한 총리를 갖고 있다고 여길 것인 지, 조국과 국민에게 희망이 있는 것으로 믿는 총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할 것인 지가 궁금하다. 중국엔 안영의 후예들이 있는데, 우리에겐 황희의 후예가 없다. /임양은 주필

5·31 선거용 개각

강금실 전 법무가 현직 장관이던 때, 여권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총선 차출의 러브 콜이 심했었다. 이엔 청와대의 작용이 적잖았던 걸로 전해졌다. 5·31 지방선거용 개각의 폭이 설왕설래한다. 청와대 뜻대로 광역단체장에 나가고 싶어하는 장관들이 있는 반면에, 나가기 싫은데도 떠밀림을 당하는 장관들이 있는 것 같다. 오영교 행자(충남지사), 이재용 환경(대구시장), 오거돈 해양수산(부산시장) 등은 출마 의지가 있는 장관들이다. 그러나 경북지사, 광주시장, 경남지사 후보로 각각 낙점된 추병직 건교·정동채 문광, 박흥수 농림부 장관 등은 나가고 싶지 않은 데도 출마를 독려받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열린우리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가장 유력시 됐던 김진표 부총리가 원래부터 출마를 원치 않았던 데다, 여권내에서도 문제점이 없지않은 것으로 판단되어 유보한 것으로 들린다. 그런데 이같은 후문 속에 대타로 찍힌 진대제 정통부 장관 역시 경기도지사 후보를 고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용 개각의 폭이 중폭이 될 것인지, 아니면 소폭이 될 것인지에 관측통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제는 장관 자리가 이력서에 경력 한 줄 넣기위한 몸집 불리기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을 굳이 보사부 장관 자리에 앉힌 것도 그를 키우기 위한 배려인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하긴, 노 대통령도 그런 전력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번이나 떨어져 백두이던 그(노)에게 해양수산부 장관을 제수하던 때가 당내 대권 후보설이 나돌 무렵이었다. “본인이 하도 원해서 기용한 것으로 안다”는 말은 당시 청와대측에서 나온 얘기다. 내각은 국정의 중심이고 장관은 내각의 구성원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에 전문성과 연속성을 살리기 위해 장관을 자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 바가 있다. 그 다짐이 헛 것이 된 노무현 정부의 국정 중심이 내각에 있다고 볼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임양은 주필

정진석 추기경

추기경(樞機卿·Cardinal)은 가톨릭에서 교황(敎皇)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갖는 성직이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중추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돌쩌귀’를 뜻하는 라틴어 ‘카르도(cardo)’에서 유래했다. 교황이 황제라면 추기경은 ‘교황청의 원로의원’으로 비유된다. 추기경은 가톨릭 주요 교구의 대주교를 맡거나 바티칸의 교황청에서 봉직한다. 바티칸에 상주하지 않더라도 바티칸시국(市國)의 시민권을 갖는다. 교황의 왕자 신분이기 때문에 ‘전하(殿下)’로 불린다. 추기경은 순교의 피를 상징하는 진홍색의 ‘수단(Soutane·발목까지 오는 예복)’을 입는다. 추기경단이 구성된 것은 12세기 중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세기까지 추기경 수는 24명으로 제한됐으나 16세기 들어 그 제한이 70명으로 늘었다. 추기경 정원 제도가 폐지된 것은 1962년 요한 23세 때의 일이다. 그뒤 사제인 부제 계층의 추기경 임명, 동방 가톨릭 교회(로마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동방교회의 독자적인 전례를 지키는 교회) 총주교들의 추기경단 영입 등으로 1974년 144명으로 늘었다. 올 2월 22일 15명의 새 추기경 서임으로 전 세계 추기경은 193명이 됐다. 이번에 정진석(75) 천주교서울대교구장이 한국인 두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돼 한국천주교는 1969년 서임된 김수환 추기경 이후 37년 만에 새 추기경을 맞았다. 정진석 추기경은 ‘옴니버스 옴니아(모든 이에 모든 것이)’라는 성 바오로의 말을 사목 지표로 삼아 교회 안팎의 화합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39세 되던 1970년 국내 최연소 주교 서품을 받았다. 정진석 추기경 서임은 450만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오랜 숙원이 이뤄진 경사다. 정 추기경은 서울대 공대생 시절 6·25 한국전쟁을 겪으며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원만하고 온후한 성품이지만 사제로서의 삶과 철학에 관한 한 타협을 불허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정 추기경은 “백성들에게 빵을 주는 게 정치의 본질이며, 생명의 빵이 되는 게 정치의 임무다. 정치인들은 봉사하라고 선택된 것이며, 봉사란 자기를 희생하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가까운 앞만 보지 말고 먼 후손을 생각하는 긴 역사적 안목을 갖고 정치를 하라”고 강조했었다. 정치를 권력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꼭 명심해야 할 금언이다./임병호 논설위원

적십자회비

우리나라 적십자회비 모금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부터 전쟁고아와 전상자들의 구호를 위해 시작됐다. 초기에는 지방행정기관에서 회비 모금 업무를 대신 수행했으나 1991년부터는 통·반장이 자원봉사차원에서 회비 모금위원으로 위촉돼 모금에 협조했고, 2000년부터 현재의 지로 자진 납부제로 바뀌었다. 적십자회비는 고액을 내는 소수의 회원보다는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데 그 의의를 두고 있다. 적십자 정신을 널리 전파해 인류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적십자회비는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절차나 조건 없이 긴급하게 전해져 고통을 덜어준다. 뿐만 아니라 재해 이재민과 일반 저소득층 구호, 독거노인, 장애인을 위한 사랑의 도시락 배달, 지역주민을 위한 보건 안전, 외국인 근로자 무료 진료, 장의차 운행, 행려자 구호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이는 소중한 성금이다. 그런데 매년 1월 20일부터 2월 28일까지를 납부기간으로 정한 적십자회비 모금 실적이 근래 극히 저조하다고 한다. 올해 모금목표액을 259억여 원으로 정한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적십자사는 각종 구호 봉사활동 비용 대부분을 적십자회비에 의존하고 있어 국민들의 협조가 없이는 존립자체가 어렵다. 적십자회비 모금이 저조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적십자사를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정부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는 데다 특히 적십자회비가 북한에 식량·비료 등을 지원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비료 지원, 이산가족 교환 방문 등에 관한 예산은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에서 충당하고 있는 것이지 적십자회비를 쓰는 것은 아니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며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나눔의 사랑’이 절실히 기다려지는데 마침 가평군 전체 공무원 551명과 의정부시 신곡2동 드림밸리 아파트 주민 900가구가 적십자회비를 완납했다는 소식(본보 22일자 4면 보도)은 무척 반갑다. 적십자회비 납부는 더불어 살아가는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의무’다. 여유가 있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눌 때 여유가 생긴다. 오는 28일 마감하는 적십자회비 모금에 모두 동참하자. / 임병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