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의사들은 ‘단식(斷食)’을 인간이 가지고 태어났지만 잊고 지냈던, 자기 스스로 치료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배고픔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다. 우리 몸은 단식을 ‘비상사태’로 인식한다. 잠들어 있던 자율신경이 깨어난다. 그리고 엄청나게 민감하고 격렬하게 반응한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을 제외한 모든 불필요한 요소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몸에 쌓였던 노폐물과 독소들이 몸에서 빠져나간다”며 단식은 몸을 정화하는 치료법으로 봐야 더 정확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단식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일정 기간 음식 섭취를 끊는 일’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스스로 억제하는, 웬만큼 모질고 독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행위다. 그래서 단식은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독립을 요구하며 영국에 단식으로 맞선 인도의 간디가 대표적이다. 종교계에서는 단식을 수행으로 본다. 석가모니는 6년여간 7일에 한 끼 정도 아주 적은 음식만 섭취하며 단식고행을 하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예수는 서른 살 때 광야에서 40일간 단식기도를 마친 뒤 공적인 삶을 시작했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하마드가 ‘1주일의 단식은 피를 정화하고, 2주일의 단식은 뼈를 정화하며, 3주일의 단식은 마음을 정화한다’고 말했듯이 이슬람에서는 이슬람력(曆)으로 아홉 번째 달인 라마단월(月) 한 달 동안 매일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 것으로 신을 경배하는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경부고속철도 경남 양산 천성산 터널 굴착으로 천성산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지율 스님이 2003년 2월 38일간 단식한 데 이어 다섯 번째 단식 중이다. 지난해 12월초 여주 신륵사로 갔던 지율 스님은 은신처가 노출되자 경북에 있는 도반의 거처로 옮겼다가 지금은 동국대학교 일산 한방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100일이 넘는 단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데 지율 스님의 단식은 120일을 넘겼다. 그러나 복부 통증과 호흡 곤란으로 고통을 겪어 매일 생사를 넘나든다고 한다. 불자의 신분으로 환경운동을 목숨 걸고 계속하는 지율 스님의 저 단식을 그 누가 중단시킬 것인가. / 임병호 논설위원

사학특감 ‘괴담’

‘감사원은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검사와 이 법 및 다른 법률이 정하는 회계를 상시 검사·감독하여 그 적정을 기하고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여 행정운영의 향상을 기한다.’ 감사원법이 정하고 있는 임무(20조) 조항의 내용이다. 이런 감사원이 사학에 대한 전면감사에 나섰다. 그러나 감사원법이 정하고 있는 필요적 검사사항(22조) 1항의 4개 규정과 2항은 물론이고, 선택적 검사사항(23조) 8개 규정 그 어디에도 사학이 감사대상에 든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사학에 대한 정부나 자치단체의 재정지원 집행실태는 감사의 대상이 되고 또 감사를 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국내 초·중·고·대학 등 1천988개 사립학교를 모두 대상으로 하여 ‘사립학교 운영실태 특별감사’란 것을 하기는 처음이다. 감사 내용도 비재정지원분야의 회계집행, 교원채용비리, 편입학과 성적관리 등 감사 대상이 될 수 없는 항목까지 의제적 비리를 예단해 들추는 것은 명백한 자율권 침해다. 감사원도 이를 의식한 듯 각 시·도교육청부터 감사에 나섰다.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될 수는 없으나 교육청은 감사할 수 있는 사학 분야를 들춰 교육청 감사가 미진했다거나 확인한다는 구실을 붙여 사학 전반을 들추는 방식으로 융단 폭격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취모멱자’(吹毛覓疵)란 말이 있다. 중국의 고전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말로 입으로 털을 불어가며 털 사이의 흠집을 일삼아 찾아낸다는 뜻이다. 사학비리를 두둔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감사원이 칼을 빼든 사학특감이란 것은 입으로 털을 불어가며 흠집을 찾는 ‘취모멱자’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개연성만의 저인망형으로 훑어 군데 군데에 투망을 던져 구체적 비리를 건져 모으겠다는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감사 방법이 합당한가는 둘째 치고 왜 이러는가 하는 배경이 궁금하다. 두 말할 것 없이 사학법 반대를 입막음할 요량으로 보는 것이 국민사회의 대체적 정서다.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했다.(감사원법) 이젠 직무에 관해서도 소속의 지위가 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 임양은 주필

유령만이 떠돈다

유령이 맴돈다. 머리는 있어도 형태는 없고, 발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유령이 맴돈다. 그 어디든 가지 못하는 데가 없는 유령은 여기 저길 마구 휘젓고 다닌다. 청와대도, 정계도, 관계도, 법원·검찰도, 경찰도, 군대에도 마구 나타나는 유령은 그리고는 또 사라지고 사라지고 나선 또 나타난다. 유령이 가는 곳엔 또 하나의 전설같은 주인공들이 생긴다. 그 주인공엔 청와대 모 고위 인사도 등장하고, 행세깨나 하는 국회의원들도 등장하고, 잘 나가는 고관도 등장하고, 판사들도 등장하고, 전직 고검장·지검장도 등장하고 별이 번쩍 번쩍하는 장군들도 등장한다. 전방위 로비스트로 알려진 윤상림 사건의 유령은 벌써 이렇게 60일 가까이 떠돈다. 이런 저런 사건을 부탁하기도 하고, 거액을 주기도 하고, 거액을 빌려 떼어 먹기도 했다는 소문만 무성한 채 유령은 오늘도 안 간 데 없이 여전히 맴돈다. 2004년 대검 중수부가 대선자금 수사를 할 땐 재벌기업을 찾아 다니며 “수사를 막아주겠다”고 거액을 요구하기도 하고, 한국마사회장을 지낸 사람에게 수천만원을 받아내는 등 의문의 유령 행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해찬 국무총리가 국회의원으로만 있을 적에 같이 골프회동을 하기도 해 그 수완이 가히 놀랍다. 유령은 마침내 최광식 경찰청 차장의 수행비서 강희도 경위 자살사건으로까지 번져 안갯속같은 배후가 더욱 세인의 관심을 끈다. 그는 지난해 어느 민간업체 회장으로부터 부당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이 나 몸은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떠도는 유령의 발자취는 이토록 끝이 없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세운상가에서 기름장사를 시작하여 자수성가했다는 유령의 행각은, 각계 각층 세도가들을 떡주무르듯이 주물러 온 그 솜씨가 오히려 감탄할 정도다.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검찰이다. 유령의 변죽은 벌써 두 달째 울려 나오는 데 실체 규명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나를 건드리면 다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감옥에서 큰 소리 친다는 그의 말이다. 유령은 결국 유령으로 끝나는 것인가. / 임양은 주필

에너지 안보

만일 지금의 천연가스 공급이 끊긴다면 국내 일상생활이 어떻게 될까? 입식주방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난방은 말할 것 없고 취사가 당장 문제다. 집밖에서 땔감으로 밥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특히 고층 아파트의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석탄이 연료로 다시 뜨고 있다. 국내에서도 올 겨울에 고유가로 연탄 수요가 갑자기 늘었다. 하지만 선진국 등 외국에서 다시 주목받는 연탄수요는 가정용이 아닌 산업용이다. 석탄이 지닌 공해 유발의 취약점을 희석시키는 신기술이 개발된 탓도 기인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요인은 에너지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석유는 매장량이 1조1천477억배럴로 앞으로 42년이면 바닥이 드러난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175조㎥로 69년을 더 쓰면 끝이다. 이에 비해 석탄 매장량은 9천845억t으로 192년을 더 쓸 수가 있다. 이 때문에 강대국들은 자국의 에너지원을 아낀다. 미국도 그렇지만 중국은 노골적으로 에너지원의 무기화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석유 보유국의 5위, 천연가스 보유국의 6위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에너지원의 무기화는 이미 시작됐다. 올 새해들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러시아가 중단했던 사례가 단적으로 말해준다. 국내에서 쓰는 천연가스는 수요량의 약 80%를 인도네시아에서 사들인다. 아직까지는 별 일이 없었지만 앞으로 전쟁 등 어떤 인재나 지진 등 천재의 돌발 사정으로 비상저축용까지 축낼만큼 수송이 지연되면 큰 혼란을 면치 못한다. 석유도 수입하고 가스도 수입하는 국내 실정은 취약점으로 꼽히는 에너지대책이 한마디로 제로다. 이런 가운데 대체에너지 개발도 무대책이다. 세계는 ‘제3의 불’을 찾고 있다. 이런 ‘제3의 불’은 개발하지 못할지언정, 전기 전력이라도 증강해야 하는데도 역시 무신경이다. 석탄 발전도 좋고, 원자력 발전도 좋다. 석유가 바닥나고 가스가 다 떨어지는 42~69년의 세월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에너지 안보대책이 절실하다./임양은 주필

한국 잠수함

중국은 현재 69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7월 사정거리 8천~1만4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쥐랑(巨浪)-2’ 16기를 장착할 수 있는 최신형 094형 전략 미사일 잠수함 1척을 추가 진수했다. 또 최근 러시아 아무르급 잠수함을 본 딴 신형 ‘중화(中華) 아무르급’ 잠수함 및 위안(元)급 디젤 공격용 잠수함 개발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72척의 잠수함 중 절반 가량을 하와이의 태평양함대에 배치하고 있는 미국도 중국에 맞서 핵잠수함 전력을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태평양함대사령부에는 오하이오급(1만6천t) 5척 등 7~8척의 전략 잠수함이 배치돼 있다고 한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성능이 세계 최고 수준인 잠수함 19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1998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최신형 오야시오급 잠수함이 9척, 하루시오급과 유우시오급이 각각 7척과 3척이다. 일본은 매년 1척 꼴로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는데 첨단 기술을 접착시켜 고도의 성능을 자랑한다. 한때 120여 척의 잠수함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던 러시아는 극심한 경제난으로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군사대국의 저력을 유지하며 지역 영향력 확장을 꾀하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8월 중국과 사상 첫 합동 군사훈련을 벌여 미국을 긴장시킨 뒤 지난 10월 인도와 사상 최대 규모의 반테러 훈련을 실시해 주변국들을 긴장시켰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령부를 두고 있는 태평양 함대는 660척의 전함을 이끌며 한반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잠수함을 61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214급과 비슷한 로미오급(1천830t) 잠수함 26척에다 소규모인 상어급(300t) 35척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상어급은 북한 내에서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의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겨우 209급(1천300t) 9척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 바다밑은 아·태 지역의 해양 패권을 차지하려는 ‘잠수함들의 전쟁’이 한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2020년쯤에는 한반도 해역이 전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잠수함 각축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태지역의 잠수함 전력 현황을 보면 국방비 확충에 인색할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 해군의 잠수함 증가가 매우 시급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애국

‘삼국사기’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신라 사람 구진천(仇珍川)은 무기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그가 만든 ‘쇠뇌’는 석궁처럼 방아쇠 장치를 달아서 큰 화살을 멀리 쏠 수 있게 만든 활로 1천보(1㎞)가 넘게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669년 겨울, 신라에 온 당나라 사신이 황제의 명령이라 하여 구진천을 당으로 데려가 쇠뇌를 만들게 하였다.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고구려 정복전을 치르면서 쇠뇌의 위력을 실감했었다. 당 고종은 부왕과 김춘추의 약조를 무시하고 백제, 고구려는 물론 신라까지 손아귀에 넣을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 당 고종에게 신라의 쇠뇌는 두렵고 탐나는 무기였다. 구진천을 데려가 그 기술의 비밀을 알면 신라를 무력으로 굴복시키고 나아가 세계제국을 건설하는 데 첨단 무기로 유용하게 쓸 수 있으리라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구진천이 당나라에 가서 만든 쇠뇌는 겨우 40m밖에 나가지 않았다. 고종이 그 이유를 묻자 현지의 재료가 불량해서라고 대답했다. 당나라는 다시 신라에서 재료를 구해 와서 고쳐 만들도록 했다. 이번에는 80m 정도 화살이 날아갔다. 구진천은 이번에는 신라에서 나무를 가져오면서 바다를 건넜기 때문에 나무에 습기가 배어서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은 구진천이 일부러 엉터리 쇠뇌를 만든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고종은 “잘 만들면 큰 상을 내리고, 만약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무거운 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했지만 구진천은 끝내 그 재주를 발휘하지 않았다. 고종의 의심대로 구진천은 일부러 성능 좋은 쇠뇌를 만들지 않았다. 당나라가 신라를 치는 데 자기가 만든 쇠뇌를 사용할 것이 자명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후 일어난 라·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한 데는 구진천의 애국심과 불굴의 의지도 큰 몫을 했다. 구진천은 당나라에서 탐낼 정도로 뛰어난 지식과 기술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조국의 안위와 개인의 편안한 삶을 놓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국을 먼저 걱정했다. 당시 최강의 당나라에 가서, 그것도 황제의 명령과 위협, 회유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저버리지 않았다. ‘과학자에게 조국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구진천의 생애’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고 말한 황석우 교수의 진의는 어디에 있었을까. 개인의 영달인가, 대한민국의 과학을 위함인가. /임병호 논설위원

내각제 실험?

내각제란 엄밀히 말하면 ‘의원내각제’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국회의원이 내각에 들어가 책임을 지고 국정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능력에 따라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1·2 개각’과 ‘유시민 의원 입각’은 현 정권이 내각제를 실험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국무위원 20명 중 국회의원 출신이 이해찬 총리, 김진표 교육부총리, 천정배 법무, 정동채 문화, 박흥수 농림, 정세균 산자, 유시민 복지, 이상수 노동 장관 등 8명(40%)이다. 2003년 2월 출범한 노무현 정부 첫 내각의 국회의원 출신 장관이 김화중 복지, 한명숙 환경, 김영진 농림 등 3명이었던 데 비해 배 이상 늘어났다. 노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5월말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는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국회의원을 얼마든지 장관에 임명할 수 있다. 내각제가 따로 없다. 노 대통령은 이해찬 의원을 국무총리로 임명한 뒤 일상적 내치는 총리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장기적 국정과제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지난해 8월 31일 “자리를 걸고 승부하는 고이즈미 총리와 독일 슈뢰더 총리가 부럽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여서 이렇게 할 방법이 없다”고 내각제를 부러워했다. 9월 17일에도 “정부와 국회의 대립이 더 풀기 쉬운가. 아니면 프랑스 동거정부처럼 총리와 대통령 사이에 갈등관계를 갖고 가며 타협해 나가는 것이 효율적인지 생각해볼 문제”라고 내각제 선호를 비쳤다. 이어 10월에는 각료 인사권을 넘겨주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에 따라 총리실 내 국무조정실은 꾸준히 기구와 인원을 확대해 왔다. 공교롭게도 이 총리는 개각 발표일인 1월 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헌법 개정은 통일 등 국가발전 방향을 잘 반영해야 하고, 내각제를 포함해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각제를 개각 논의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내각제를 하려면 정치권 합의가 필요한데, 현 상황에서 내각제 합의는 쉽지 않은 문제다. 국민 여론도 4년 중임 대통령제 쪽에 가깝다. 그러나 국회의원 출신 장관이 정통 행정관료 장관보다 낫다는 식으로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내각제 실시는 어려운 일도 아니다. 아무래도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깨트린 뒤 다당제 구도를 만들어 내각제를 실험하려고 준비하는 것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W 축구대표팀의 해외훈련

아드보카트 감독의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이 오늘(18일)밤 11시30분(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와 현지에서 첫 평가전을 갖는다. 국내파와 J리그를 중심으로 한 대표팀 23명은 41일간의 해외훈련 대장정을 위해 지난 15일 자정 인천공항을 떠났다. UAE와의 경기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4개국대회에 참가한다. 이 대회에서 격돌할 그리스팀은 2004 유럽선수권대회 우승팀으로 뛰어난 조직력이 강점이다. 우리와 월드컵본선 G조에 속해 역시 막강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스위스팀과 간접 비교가 될 수 있는 경기다. 이번에 월드컵 대표팀이 갖는 평가전은 해외전지훈련을 겸한 것이다. 전술과 시스템을 최종 확정하기 위한 실험 무대다. 물론 평가전마다 이기면 좋지만 실험적 전술이나 시스템이 허점을 보이면 질 수도 있다. 따라서 평가전 성적 하나 하나에 따라 일희일비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독일 월드컵대회에선 더 이상의 실험이 있을 수 없다. 이겨야만 한다. G조에서 토고와 스위스를 제물로 삼아 최소한 프랑스에 이어 조 2위로 16강전에 진출한다는 것이 아드보카트 감독의 계략이다. 그러나 세계 축구 수준의 층은 엷다. 강팀이라고 두려워 할 것도 없는 반면에 약팀이라고 가볍게 보아선 큰 코 다친다. 우리가 16강 진출의 제물로 보는 월드컵 처녀 출전팀의 토고가 며칠전에 가진 아프리카의 흑표범 가나(월드컵E조)를 1 대 0으로 격파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다양한 전술개발과 조직력을 구사하여 프랑스·스위스·토고와의 대전에서 구사할 비장의 전술 무기(작전)와 병기(선수)를 개발해야 한다. 대표팀은 방 하나의 숙박비가 하루에 100만원인 두바이 최고의 호텔에 묵고 있다. ‘최고의 대우를 해 준다, 대신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것이 아드보카트 감독의 지론이다. 현재의 대표팀이 독일 본선에 다 진출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 엔트리와 주전 멤버는 추후에 정해진다. 선수들 역시 엔트리와 주전에 들기 위해서는 일생 일대의 운명을 거는 피나는 노력과 정신무장이 있어야 한다. / 임양은 주필

千 법무의 실언

남녀의 성기(性器) 숭배신앙이 있다. 안양시 삼막사 남녀근석(男女根石)은 경기도 민속자료 제13호로 지정됐다. 성기 숭배신앙 중에도 특히 남근(男根) 숭배의 경향이 짙은 것은 씨앗, 즉 생명의 원천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전래의 토속신앙은 야촌(野村) 산촌(山村) 어촌(漁村) 할 것 없이 고루 퍼졌다. 대부분은 자연 암석의 남근상으로 입석(立石)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전국에 120여 개소의 성기신앙 유적이 확인됐다. 풍년이나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에 악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빌었다. 아들 낳기를 바라는 부녀자들의 기자(祈子) 소원 대상이 되기도 했다. 명칭에 ‘자지바위’ 등 성기명을 그대로 붙인 것도 있지만 ‘돛대바위’ ‘삿갓바위’ 등처럼 은유적인 명칭을 붙인 게 훨씬 더 많다. 이런 고담(古談)이 있다. 어느 양반집에 살던 백년 묵은 쥐가 밤엔 바깥 주인으로 둔갑하여 안방마님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가곤 했다. 한 번은 안방마님이 알기로는 바깥 주인이 분명히 사랑채에서 자는 것으로 아는데 들어온 것을 이상히 여겨 혹시나 하고 나갈 때 몰래 실을 꿰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아침 실을 따라 가본 결과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광에서 강아지만한 쥐가 실에 매달린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화가 난 바깥주인이 안방 마님에게 한다는 말이 ‘쥐X도 몰랐느냐?”고 했다. 은유적으로 표현되던 남근을 두고 “X도 모른다”는 육두문자로 쓰이게된 속어의 유래가 이에 기인되었다는 항설이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점잖치 못한 육두문자를 써 구설수에 올랐다. “X도 모르는 놈들이… 칼럼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고 있다”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법무부 간부 몇 명과 기자들이 술 자리를 함께한 비공식 석상에서 나온 말이다. 사석에서 우스갯 소리로 나온 육두문자일 것 같으면 굳이 흠 될 것은 없다. 문제는 대통령과 연관지은 데 있다. 대통령을 위해서 한다는 말이 오히려 욕 보인 결과가 된 것 같아 심히 딱하다./임양은 주필

‘모차르트 효과’

오스트리아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1756~1791)는 설흔다섯 나이에 요절했다. 그래도 여섯살 적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열세살 때 가극을 작곡하는 등 불우하고 짧은 생애 중에 교향악·실내악 등에 걸쳐 6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음악의 장점을 정연하게 종합한 고전파 양식을 확립했다. 그 무렵 프리메이슨(Freemason)이란 게 있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정신에서 생긴 초인종(超人種)·초계급·초국가적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비밀결사(結社)였다. 1717년 런던에서 성립하여 유럽에 퍼진 이 국제적 비밀결사는 오스트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차르트가 이에 가맹했을 당시에는 일정한 수입이 없어 무척 가난하였다. 그의 가난은 오스트리아 궁정과 빈의 대주교와의 불화에 겹쳐 그의 작풍이 청중들의 기호로부터 멀어진 데 기인했으나 굽히지 않았다. 권력과 청중의 기호에 영합을 거부한 채 자신의 작풍을 고집했다. 후세에 걸작으로 평가받은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이어 ‘3대 교향곡’ ‘제 39번 E 장조’ ‘제 40번 G 단조’ ‘제 41번 C 장조:쥬피터 교향곡’등 주옥같은 작품을 가난속에서 배출했다.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샤론 이스라엘 총리 병실에 ‘모차르트 효과’를 위해 그의 음악을 틀어놨다는 외신이 있었다. ‘모차르트 효과’란 1993년 라우셔 미 위스콘신大 교수가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발표한 실험적 이론이다. 즉 모차르트 작품을 비롯한 고전음악이 시공간 지각력과 추리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샤론 총리의 병세는 계속 혼수상태인 가운데 또 하나의 흥미있는 보도가 나왔다. 오는 27일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앞두고 그의 얼굴과 이름을 넣어 만든 각종 관광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것이다. 수출까지 하는 것으로 전한다. 이같은 모차르트 브랜드 가치를 88억 달러로 보고 있다. 미완성곡 ‘레퀴엠’을 남긴 채 가난으로 병사해 빈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 잠든 그가 또 하나의 ‘모차르트 효과’로 후세인들을 크게 돈벌이 시켜주고 있다./ 임양은 주필

기고/예술문화단체 새해인사회를 개최하고

지난 5일 수원 예술문화인 200여 명이 모여 2006년 새해인사회를 가졌다. 수원의 대표적인 5개 예술문화단체인 수원예총, 수원문화원, 화성연구회, 수원화성문화재단, 수원민예총 등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예술문화인들간 새해인사와 덕담, 그동안 궁금했던 이야기 등을 풀어놓는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몇 년 전만 해도 각 단체간 모임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문화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를 찾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각자의 활동범위가 자신이 소속한 단체에 국한되는 경우들이 많아 서로간 의견 교환이나 이해가 부족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예술문화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이끌고 있는 예술문화계 사람들이 각자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2년 전, 5개 예술문화단체 대표들이 모임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수원 예술문화계는 다소 냉랭한 분위기였다. 이들이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충분한 대화와 정보를 교환하면서 닫혀졌던 단체간 빗장을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 더구나 지금은 그 자리에서 각 단체 이해관계를 떠나 ‘수원예술문화 발전’이란 공통된 화두로 깊이 있는 토론의 장을 펼치고 있는데, 실은 이번에 개최된 예술문화단체 새해인사회도 이 과정에서 시작됐다. 어떠한 집단이든 얽혀져 있는 문제는 그 안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해답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문제 그 자체보다도 ‘마음을 여는 일’ 혹은 ‘마음을 나누는 일’ 등이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술문화계 사람들이 각자의 벽을 허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건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야말로 수원의 예술문화계가 더욱 풍요로워지는 계기이기에 하는 말이다. 새해 벽두에 예술문화단체 새해인사회에 참석한 200여 명은 어떠했을까. 비록 그 자리가 서로의 마음을 열고 나누는데는 시간이 부족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지역에서 예술문화의 터를 일궈온 그들이기에 신선한 앞날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예술문화를 일구는 건 어디까지나 그 주체인 예술문화인들이다. 올해를 도약점으로 그들이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갔으면 한다. /김 정 숙 수원예총 사무국장

德(덕)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은 원래 천하의 건달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농사일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놀기만 했다. 덕(德)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한나라와 초(楚)나라 군대가 대치할 때 초왕 항우(項羽)는 유방의 아버지를 사로 잡아 군진(軍陣) 앞에 세워 놓고 말했다. “철수하지 않으면 네 아버지를 삶아 먹겠다” 유방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가 내 아버지를 삶아 먹겠다면 내게도 한 그릇 보내주기 바란다” 항우는 하도 어이가 없어 유방의 아버지를 그냥 풀어 주었다. 항우는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 힘은 산이라도 뽑을 듯 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했다. 자애로운 인덕도 갖추고 있어 병사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주기도 했다. 그런데 항우는 건달에 불과한 유방에게 패하고 말았다. 항우는 벼슬을 아껴 현명한 인재를 중용하는 데 인색했지만, 유방은 소하·장량·한신 같은 재사(才士)를 부릴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의 영웅 제갈량과 조조의 경우도 비슷하다. 제갈량은 능력과 재주는 탁월했지만 부하들을 믿지 못했다. 그는 매번 혼자 전략을 세우고 직접 전쟁을 감독하고 수행하려 했다. 반면 조조는 용인술이 뛰어났다. 그의 주변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조조는 옳고 그름을 떠나 남을 속이기를 꺼리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복종감을 느끼게 했다. 여덟 황제를 모신 당나라 재상 장전의(張全義)는 권력의 중심에 상존하는 방법을 “‘옳고 그름을 논하지 말고 양심을 저버려라’ ‘ 시류에 따라 움직이며 새로운 군주에게 잘 의탁하라’ 이때 범해선 안 되는 절대 금기가 있다. ‘너무 큰 공을 세워 군주를 불안하게 하는 것’, ‘권세가 너무 큰 나머지 군주를 업신여기는 것’, ‘재능이 너무 탁월하여 주인을 압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춘추 전국시대 진나라 문공은 19년간 망명생활을 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끝내 왕위에 올랐다. 후퇴를 거듭하면서도 병사들을 격려하고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며 신망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맹자는 “힘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진정으로 복종시키는 게 아니다. 덕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이 마음속으로부터 기뻐서 정말로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덕이 아닌 힘으로 따르게 하려는 권력자들이 주위에 많아서 중국 고사 몇 가지를 생각해 봤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누르는 세상이 언제나 올까. /임병호 논설위원

헷갈리는 진실게임

서울대조사위원회의 최종보고로 ‘황우석 사태’의 전모가 드러난 지 이틀 뒤인 어제 황 교수가 세번째 대국민 사과 겸 기자회견을 가졌다. 황 교수는 “복제 개 ‘스너피’만 빼놓고는 전부 허구이며 2004·2005년 시이언스 게재 논문은 조작된 것이고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한 서울대조사위의 활동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연구원들이 좌우에 배석 또는 의자뒤에 도열한 가운데 사과문을 낭독한 뒤 그 현란한 말솜씨로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했다. 황 교수는 10일 발표된 서울대조사위원회 보고서의 과학적 내용과 허위 데이터 부분만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았을 뿐 다른 평가에 대해서는 반발·부인했다. 서울대조사위가 “연구의 독창성은 인정되나 기술 수준의 독보성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평가한 데 대해 박을순 연구원이 파견돼 성공한 피츠버그대 섀튼 교수의 원숭이배아복제 사례 등을 들어 “핵이식 기술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논문조작 지시’도 서울대조사위는 학내조사라는 한계때문에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는데 황 교수는 조작자료를 낸 사람의 실명을 밝히고 “나는 일을 맡기고 점검하지 않은 책임만 있을 뿐이다. 미즈메디의 누군가가 그 결과를 조작하지 않았다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조사위가 공개한 자료를 반박하거나 ‘핵이식 실험 성공’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황 교수는 동석한 연구원의 입을 빌려 ‘처녀생식’과 ‘난자 개수’ 등 의혹에서 비켜 나갔다. 더구나 황 교수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판교 프로젝트’나 ‘사이언스 논문 제2저자 요구’ 등을 밝혀 오히려 몇가지 문제점을 추가시켰다. 황 교수의 기자회견에 대해 서울대조사위가 “최대한 공정하고 과학적으로 검증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덧붙이거나 발표할 내용은 없다”는 입장을 보여 결국 ‘황우석 사태’의 진실 규명 역할은 검찰의 몫으로 넘어갔다. 황 교수가 줄기세포 조작의 ‘몸통’은 미즈메디병원이라는 의혹을 제기했고 또 수사를 의뢰한 이상 황 교수와 미즈메디간 ‘진실게임’은 검찰이 실체를 가리게 됐다. 이제 정말 추악한 얼굴은 검찰에 의해 드러나겠지만 황 교수의 말마따나 ‘줄기세포 논쟁’을 빨리 끝내고 ‘한국의 생명과학’이 새롭게 본궤도에 들어서야 한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황 교수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라는 말이 듣기에 심히 착잡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유엔 사무총장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들인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다섯 나라의 비공개 협의회에서 사실상 선출된다. 안보리 상임 이사국들인 비밀 협의회에서 후보들을 검토한 뒤 단일 후보를 유엔 총회에 추천하기 때문이다. 또 전체 상임이사국 15개국 중 3분의 2, 즉 9개국 이상의 찬성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대목은 상임 5개국 모두의 찬성이다. 일례로 6대 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이집트)는 제3세계와 프랑스· 중국· 러시아의 지지를 과신해 재선에 도전, 1996년 11월 안보리 투표에서 14개국의 찬성을 확보했으나 미국의 거부권으로 탈락했다. 유엔 사무총장 자리는 전통적으로 대륙별 지역안배에 따라 이뤄졌다. 노르웨이(1대)·스웨덴(2대)·미얀마(3대)·오스트리아(4대)·폐루(5대)·이집트(6대)·가나(7대)에 이어 다음 8대는 아시아 지역의 차례다. 현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차기 사무총장은 아시아 국가들에 돌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여론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 지도자들도 지난 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정상회의 때 순번제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동의했었다. 하지만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의 그린넬 대변인이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사항은 출신 지역에 관계 없이 훌륭한 관리자이면서 개혁자이냐는 점”이라고 강조해 변수가 생길 경우도 없지 않다. 유엔 안팎에서 폴란드의 알렉산데르 크바시나 에프스키 전 대통령과 라트비아의 여성 정치인 바이라 비케 프라이베르 대통령이 사무총장 후보로 거명되는 연유다. 현재 아사아에서는 태국의 수라키앗트 사티라타이 부총리와 스리랑카의 평화협상 대표인 자얀타 다나팔라가 뛰고 있으나 국제적 호응은 못 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유력한 아시아후보는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꿈 꾸는 사람이 여러 명 있을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 자리는 국제적으로 대단한 직위다. 국가적으로도 영예롭다.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다면 국위도 크게 선양된다. 미국이 연말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6, 7월에 미리 선출하자고 제의한 만큼 정부에서도 명망 높은 인사를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일찍암치 내정, 적극 후원해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서울大 조사결론

‘2004년 논문도 조작됐다.’ ‘줄기세포는 없었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서울대조사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최종 결론이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같이 요약된 조사 내용의 최종 결론은 허탈감을 준다. 서울대는 이제 황 교수에 대한 징계 절차만 남았다. 공은 사실상 검찰로 넘어갔다. 정부가 황 교수팀에 지원한 연구비는 지난 7년동안 84억원 대로 확인됐다. 고능력 젖소 복제생산, 광우병 내성소 개발비, 장기이식용 복제돼지 연구비 등도 포함된 금액이다. 이 가운데 8억원의 사용처가 분명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돈 관계도 그렇지만 그동안 얽히고 설킨 팀 내분의 진실 또한 규명돼야 할 필요가 있다. 책임 소재도 밝혀내야 한다. 알려지기로는 청와대도 이에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과학기술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 내부적으로는 이미 오래 전에 제기됐던 의문을 쉬쉬해왔던 것으로 전한다. 이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것도 검찰의 몫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가 국내 학계의 생명공학 연구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인내와 지혜가 요구된다. 후진들의 분발이 당부된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외국의 학계에서는 황우석 사태에 내심 쾌재를 부른다. 생명공학 연구는 이만큼 국제사회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황 교수의 향후 행보가 또한 주목된다. 그는 “줄기세포의 기술을 원천적으로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비록 논문에 제시된 줄기세포는 가짜일 지라도 만들 수 있는 원천적 기술은 가졌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객관적 신뢰가 문제다. 황 교수 사태 이후 후원회 회원들이 더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래도 그만한 학자가 없다고 보고 지속적인 연구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보아진다. 만신창이가 된 황 교수의 재기 여부가 관심사다. / 임양은 주필

대체복무설의 허구

군 복무는 목숨을 나라에 내놓는다. 목숨을 나라에 내놓는 대체복무로 뭣이 있다는 말인가, 없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말은 이 점에서 말이 안 된다. 윤 장관이 “대체복무를 심도있게 연구하겠다”고 한 것은 대체복무를 긍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다. 광범위한 검토를 의미한 것이지만 원천적으로 당치 않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신나간 대체복무 권고는 법률적으로 효력이 있을 수 없다. 대법원에서 특정 종교를 빙자한 병역 기피는 유죄 확정 판결이 났고, 헌법재판소에서도 현행 병역법의 합헌 결정이 난 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보다 상위 개념의 기속력을 지닌 기관은 아니다. 법률 적용은 어디까지나 대법원, 법률 해석은 헌법재판소가 최고의 권능을 가진 헌법 기관이다. 주관적 양심의 자유는 그 가치가 객관화 되어야 보호가 가능하다. 객관화되지 못한 주관적 양심의 자유를 너도 나도 주장하는 것은 질서부재의 무법천지다.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에 우선할 수도 없다. 이만이 아니다. 국방의 의무는 국방의 양심이다. 이런 양면성을 지닌 국방의 의무가 단순히 특정 종교의 교리를 들어 부인되는 것은 국교(國敎)를 인정하지 않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병역의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특정 종교를 국교로 본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협의로 보면 이렇다. 그러나 광의로 보면 국가가 특정 종교에 한해 특혜를 주는 것은 국교를 부인하는 헌법 정신에 비추어 완전히 위배된다. 군대 가는 것 빼고 뭣이든 다 대체복무를 하겠다지만 이미 밝힌 것 처럼 군대에서 목숨을 내놓고 복무하는 것과 똑같이 목숨 내놓고 복무할 대체복무는 없다. 다른 나라의 예를 들지만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와 같은 나라가 아니다. 비무장지대(DMZ)는 잠재적 전선이다. 세상이 아무리 이상하게 돌아간다 하여도 할 소리, 안 할 소리가 있다. 법리에도 사리에도 맞지 않은 중구난방 같은 소릴 귀담아 듣는 국방부 장관이란 사람이 걱정된다. / 임양은 주필

공적자금 백서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방출된 공적자금의 회수율이 결국 45.1%로 그쳤다. 공적자금 투입 총액 167조8천억원 중 회수된 총액은 75조8천억원에 불과하다. 회수금 내역은 예금보험공사 32조2천억원, 자산관리공사 35조5천억원, 기타 8조1천억원이다. 대검 중수부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이 미회수된 공적자금 수사에 나섰다. 이에 따라 지난 4년동안에 부실기업주들로부터 568억6천만원을 회수했다. 회수금의 자체 규모로 보아서는 상당한 성과의 금액이다. 그러나 미회수 총액 92조원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기업체 임원 167명, 주주 33명, 공무원 21명, 금융기관 임원 5명, 법인 14개 등 290명이 사법처리됐다.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에 검찰수사는 2001년 12월에 시작됐다. 이 바람에 재산을 빼돌린 기업인들이 해외로 도피한 사례가 많아 수사에 애로가 많았던 것으로 전한다. 공적자금을 쓰고도 도덕적 해이가 심한 기업인들도 많이 적발됐다. 회사돈 207억원을 빼돌리고 4천200억원을 사기대출한 S토건 전 회장은 700평 규모의 집에 실내골프장과 개인 법당까지 두는 호화생활을 누렸다. 전 D그룹 C 회장은 1조5천억원의 부실채권을 발생시켰으면서 전처에 대한 위자료 수십억원을 회사돈으로 주었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흥한다’는 기업윤리 실종의 극단적 사례는 이밖에도 많은 것으로 보도됐다. 중수부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은 근래 해산됐다. 해외도피 기업인 중 죄질이 특히 나쁜 21명은 외국과의 사법공조로 계속 추적한다지만 미회수금 92조원은 거의 그대로 남을 전망이다. 결국 떼인 공적자금 92조원은 올 정부 예산 144조8천억원의 약 63%다. 그리고 떼인 공적자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갚는다. 국민에게 이토록 큰 피해를 입히고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외환위기가 났을 당시의 강 모 전 경제부총리가 기소됐으나 정책판단의 결함엔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었다. / 임양은 주필

‘피노키오의 코’

1921년쯤 등장한 ‘거짓말 탐지기’는 언론이나 영화, 소설 등에서 애용돼 왔지만, 대다수 과학자들은 과학 도구보다는 ‘오락기기’로 취급한다. 거짓말 탐지기가 측정하는 심장박동, 피부전도율, 호흡 등 심리반응들이 부정직과 반드시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 탐지기의 오류는 25~75%에 이른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거짓말쟁이들을 찾아내는 다른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한 연구에서 60개국 2천명에게 거짓말쟁이들을 찾는 방법을 물었더니 “거짓말쟁이들은 시선을 돌린다”가 제일 많이 꼽혔다. 일부 실험실 연구에서는 코 만지기, 목소리 가다듬기, 이야기 멈추는 횟수, 눈깜박이기 등으로 거짓말과 참말을 하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티머시 레빈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이런 것들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지표일 뿐 일 대 일로 얼굴을 맞댄 실생활에서도 유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거짓말을 나타내는 특별한 자동신호 곧 ’피노키오의 코’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벨라 데파울로 버지니아대 교수는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속임수와 권모술수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는 경향이 있다”고 ‘개인과 사회 심리학’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그는 “그러나 거짓말쟁이들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틀지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다른 연구들도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들이 거짓말 하기가 더 쉽고, 자신감이나 신체적 매력이 거짓말 능력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의기소침한 사람들은 상황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나 다른 사람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 면에서 자신에 대해 덜 ‘착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정도 자기 기만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이론도 있다. ‘친절한 거짓말’은 사회생활의 윤활유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 심리학자가 18~71살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일 대 일로 만난 이들을 평균 30% 속였다. 그러나 거짓말도 심하면 병이다. 병리학적 거짓말쟁이는 ‘정상적인’ 거짓말쟁이와 달리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모른다. 궁극적으로 거짓말은 사기(詐欺)와 기만(欺瞞)으로 연결된다. 최근 거짓말을 할 때 뇌가 평상시와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을 재는 방법이 나왔다고 하는데 병리학적 거짓말쟁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해 봤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지구의 사막화

지구의 사막화는 이제 더 이상 ‘잠재적인 위협’이 아니다. 이미 100여 개국 이상 전세계 인구 5분의 1인 12억 명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고, 1억3천500만여 명이 물을 찾아 당장 고향을 떠나야 할 판이다. 지표면의 41%를 잠식한 건조지대는 지금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중이다. 영국 BBC는 매년 지구상의 토지 1천만 헥타르가 사막화하고 있으며, 농경지 3분의 2가 사막화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적으로 2억5천만여 명이 직접 피해를 입고 있으며, 매년 42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데, 과거 농작이 가능했던 52억 헥타르의 건조지대 가운데 약 70%가 생산기능을 상실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구 사막화의 주요 원인은 물론 인간이다. 과잉 방목, 삼림 파괴, 토지를 혹사시키는 집약 경작, 관개시설 빈약 등이 토지 황폐화의 주범이다. 수요 증가에 따라 급증한 방목 가축들이 땅 위의 풀들을 모두 먹어 치우고, 남아 있는 삼림은 땔감용으로 뿌리째 남벌되는 바람에 토질이 점점 나빠져 급기야는 쓸모 없게 돼 버린다. 사막화의 또 다른 원인인 지구 온난화의 원죄 역시 인간의 몫이다. 재앙의 피해는 당장 인간에게 돌아 온다. 우선 빈곤층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토지에서 식량, 에너지, 주거 및 수입을 모두 해결해야 하지만 토지 혹사화에 비례해 황폐화도 빨라지면서 땅에 모든 것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빈곤층의 삶은 더욱 극단적으로 전락한다. 지구의 사막화는 가난한 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의 코아첼라 계곡을 포함해 전체 면적 중 30%가 사막화로 신음하고 있는 중이다. 아프리카는 1억3천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아시아도 전체 면적 43억 헥타르 중 17억 헥타르가 사막화 위험에 노출된 상태며 특히 북한도 산림 916만 헥타르 중 163만 헥타르가 황폐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사막화방지협약(UNCCD)은 1994년 6월 채택돼 1996년 12월에 발효됐는데 우리나라는 1999년 156번째로 가입했다. 유엔은 2006년을 ‘사막과 사막의 해’로 선언했다. 초록색 지구에 적신호가 왔기 때문이다. 지구의 사막화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녹지를 마구 파헤치고 갯벌을 분별 없이 매립하는 우리 환경정책에 들려 주는 경종이다./임병호 논설위원

小寒

“2005년은 최악의 기상이변의 해”라는 기후학자들의 주장은 한반도에서도 잦은 폭설과 강추위로 입증됐다. 지난 초겨울 10여일 동안 호남·서해안 지역에 시간당 최고 12㎝의 폭설이 쏟아졌고 전국 곳곳에 대설경보 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호남, 충청 지역은 특히 폭설로 피해가 막심했다. 전국 대부분이 영하 10 ~ 20도의 매서운 날씨를 보였다. 기상청은 북반구 고위도 지역에 예년보다 크게 발달한 고기압이 폭설과 강추위의 주요 원인이라고 꼽았다. 해마다 겨울이면 “바이칼호 주변에서 발달한 차가운 대륙성 고기압이 우리나라로 접근하면서 …”로 시작되는 일기예보대로 한파가 몰려 왔다. 북극에서 영하 45도의 찬 공기주머니가 한반도 상공으로 내려와 전국을 한동안 꽁공 얼려 놓았다. ‘15한(寒) 0온(溫)’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인간은 추위에도 적응하는 동물이지만 환경에 따라 다르다. 인도에선 지난해 12월 중순 “영상 3도의 살인적인 한파의 습격으로 1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됐지만, 시베리아에선 영하 20도는 추위도 아니어서 해만 뜨면 어린이들이 길가에서 뛰논다. 1960년 8월 24일 남극 대륙의 러시아 실험 기지인 보스토크(해발 3488m)에선 영하 88.3도가 관측됐고, 시베리아 동부의 베르호안스크 주변은 영하 68도였다. 그러나 한반도의 겨울 추위는 삼한사온이 존재해 견딜만 하다. 오늘이 24절기의 하나인 ‘소한(小寒)’이지만 지난 12월 중순처럼 그렇게 춥지는 않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 때가 가장 추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선 소한 때가 가장 추웠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는 속담이 나온 연유다. 옛날의 중국 사람들은 소한으로부터 대한까지의 15일 간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후에는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고, 중후에는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며, 말후에는 꿩이 운다고 하였다. 소한은 동지(冬至)와 대한 사이에 있다. 태양이 황경 285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입춘이 멀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한해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지만 지나면 봄이 왔다고 생각한다. 일년 365일 중 가장 춥다는 소한을 녹여줄 온정이 그리워진다. / 임병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