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잔 할까요?”

‘여유와 낭만의 술’로 알려진 ‘와인(wine)’의 어원은 라틴어로 비넘(vinum), 즉 ‘포도로 만든 술의 뜻’에서 유래됐다. 뱅(프랑스 vin), 비노(이탈리아 vino), 바인(독일 wein)으로 불리는 세계 공통의 대표적인 발효주다. 와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이집트 벽화를 통해 기원전 4000년 경부터 와인을 마셨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포도재배와 와인 양조기술을 통해 와인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은 이집트인들이었다. 이집트인들을 통해 로마인들에게 전파되었고, 로마인들에 의해 프랑스 골지방(지금의 보르도)을 중심으로 와인이 보급됐다. 보급 초기 로마 군인들은 현지의 물이 맞지 않아 배탈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그래서인 지 오늘날까지도 유럽에서는 물보다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음료로 인정받는다. ‘좋은 와인 한잔은 의사의 수입을 줄게 한다’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와인은 우리나라 막걸리나 독일의 맥주처럼 지역적 특산물로 만들어진 하나의 발효주이지만 ‘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와인에 대해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는 살아 숨쉬는 천혜의 음료이기 때문이다. 다른 ‘술’과 달리 제조과정에 일체의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는, 심지어는 물조차 첨가하지 않은 말 그대로 100% 천연 과일음료다. 와인에는 무기질·인·철분·칼슘·칼륨 등 각종 미네랄과 당분, 유기산, 비타민이 녹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와인은 알칼리성 주류이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장복을 하면 산성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소화 흡수를 돕고 이뇨작용, 진정작용, 항 산화 작용의 효과가 있다. 또 심장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와인은 분명 술이다. 그러나 부어라 마셔라 취하는 여느 술과는 다르다. 지나침이 없고 흥분 지수 역시 낮고 부드럽다. 그래서 와인은 경제력을 떠나 ‘여유’와 ‘풍요’ ‘낭만’의 코드로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전세계 50여개 나라에서 연간 350억 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우리나라는 1974년을 시작으로 와인 생산국이 되어 현재 한국산 와인을 생산해 내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와인은 사람의 근심을 쓸어내는 최고의 빗자루’라고 한다. 점점 깊어가는 가을 날 정겨운 사람들과 함께 와인향기에 취해 보는 것도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체육

흔히 체육·스포츠·레크리에이션· 건강 등의 용어들을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협회를 ‘체육회’라 부른다든지 동창회의 축구 및 배구시합을 ‘동창회 체육대회’라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물론 스포츠나 건강, 축구·배구 같은 운동경기는 체육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고 체육의 수단으로서 그 범주에 속할 수는 있지만, 체육 자체가 스포츠나 건강 등과 같은 것은 아니다. ‘체육(體育)’이란 그 용어에 나타나 있듯이 교육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국어사전에 ‘신체운동에 의한 교육, 곧 신체의 건전한 발육을 돕고 건전한 생활 태도의 함양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라고 설명돼 있듯 교육의 목적이 지적·도덕적·신체적 발달을 통한 인격의 완성에 있으므로 체육의 목적 또한 인격의 완성이며 동시에 그 전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체육이란 개인적·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신체활동의 잠재적 가치를 최대한 발휘시킴으로써 참된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애매하게 사용되는 용어 중 하나가 ‘체육’과 ‘스포츠(Sports)’의 개념이다. 스포츠는 ‘운동경기’를 뜻하는 것이며, 이를 더욱 엄밀히 말한다면 ‘경쟁이 따르는 운동’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범위를 넓혀서 자신과의 경쟁이 따르는 사이클링·하이킹·캠핑· 반더포겔과 같은 여가선용활동이나 야외활동도 야외 스포츠(outing sports)라 하여 스포츠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런데도 ‘스포츠’ 라는 용어가 ‘체육’과 같은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스포츠는 체육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공헌도가 크며 그 수단으로서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스포츠가 곧 체육은 아니다. 하지만 스포츠가 교육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가 인간생활을 충족시키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만큼 스포츠 그 자체도 교육적인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에는 운동 실천적인 측면과 사회·문화적 측면이 있는데, 전자는 개인과 개인 또는 집단과 집단이 일정한 규칙 아래서 그 기능을 겨루는 것으로 경쟁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고, 후자는 스포츠맨십이라든지 스포츠가 대중 관객에게 주는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말한다. 따라서 체육과 스포츠의 개념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아토피

‘아토피(Atdpy) 피부염’은 얼굴이 벌겋게 붓고 목에 붉은 발진이 솟아난다. 약을 바를 때면 약간 진정이 되기도 하지만 다리, 겨드랑이 등으로 가려움증이 번져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다. 아토피 환자들은 가려움의 고통과 무서운 합병증에 시달린다. 호흡 곤란이나 쇼크 등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할 수 도 있고, 가려움을 참느라 얼굴을 두드리다 망막분리라는 합병증이 와서 실명을 할 수도 있다. 다섯살 난 아들의 고통에 캐나다로 이민간 가족들도 있을 정도다. 아토피는 그리스어로 ‘기묘해서 알 수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현대 의학에서조차 원인과 치료에 대해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의학계에서는 아토피를 에이즈, 암에 이어 현대 의학이 풀어야 할 과제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명병’ ‘현대병’이라고 불리는 아토피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환자가 200만 명에 이르고 이 중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만도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어린이 5명 중 1명이 아토피와 비슷한 피부염을 앓고 있는 점이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들은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까지 겹치는 경우가 많아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아토피의 원인 가운데 서구화된 생활·식생활·환경오염이 지적된다. 이란과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6~7세 어린이 아토피 피부염 유병률이 2%에도 못미친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영국·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60%에 육박한다. 이래서 아토피가 ‘선진국병’이라는 학설이 나온다. 실제로 대부분의 조사에서 공업국가일수록, 부자나라일수록, 서구국가일수록 유병률이 높게 나온다. 런던 어린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가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개도국인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이주한 어린이들은 자메이카에서 계속 사는 어린이보다 아토피 발생률이 2배나 높았다. 한국이 ‘아토피 대재앙’에 직면한 것도 급격한 서구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엄마젖, 특히 초유에는 아토피를 막아주는 IgA라는 항체가 많이 들어 있는데 엄마젖을 먹지 못하면 IgA 부족으로 아토피에 쉽게 걸린다는 연구도 나왔다. 젊은 엄마들이 새겨 들어야 할 의사의 진단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연개소문의 두 아들 무덤

약 1천300년전 고구려 망국의 주역인 연개소문의 아들들 무덤이 중국에서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지린(吉林)성 사회과학원의 고고학 계간지 ‘둥베이스지’(東北史地)가 최근호에서 이같이 밝혔다.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가진 발굴 조사과정에서 뤄양(洛陽)시 링터우촌 등에 있는 고분이 남생·남산의 무덤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남생은 연개소문 사후 아버지를 이어 최고 실권자 자리인 막리지에 올랐으나 동생 남건·남산이 반란을 일으켜 당나라로 도망가 고구려 침공에 앞장섰다. 형의 자리에 오른 막리지 남건은 당군과 끝까지 싸워 유배 당했으나 남산은 항복해 관직을 받았다. 남생의 아들 무덤도 링터우촌 일원에서 함께 발견됐는 데도 남건의 무덤이 없는 것은 유배지에서 죽었고, 또 항복하지 않은 죄인 취급을 당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망국의 보장왕 무덤 역시 시안(西安)에서 위치는 찾았지만 도시개발로 인해 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남생·남산의 무덤은 직경 16m 높이 6m의 원형으로 고구려 기와와 당삼채 등 당나라 도기 등이 출토되고 누구의 무덤인 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석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무덤이 비교적 화려한 것은 당나라에 항복해 벼슬을 지낸 연유로 해석된다. 이 발굴 보도가 눈길을 끈 것은 대하역사소설 ‘渤海始皇 대조영’(갑을패 발행)에서 망국의 원인이 된 남생·남건·남산의 권력 투쟁이 묘사된 근래의 독후감 때문이다. 소설은 1·2·3권으로 모두 802쪽에 대조영을 중심으로 통한의 고구려 망국에서 대당(對唐) 저항운동에 이은 발해 건국 과정이 백두산에서 요동성에 이르는 광활한 무대위에 간결한 문체, 재치있는 구성으로 스펙터클하게 되살렸다. 발해 건국을 고구려의 부활로 본 작가 이기담씨는 집필에 앞서 대조영의 흔적을 찾아 동모산 육정산고분군 돈화 등 많은 유적지를 현지 답사하는 고행을 감수했다. 그런데 중국의 남생·남산의 무덤 발굴은 예의 ‘동북공정’ 일환이다. 1천300년 전의 무덤까지 자국의 역사로 삼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고구려의 망국만큼이나 뼈아프다.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임양은 주필

중국의 공동부유론

펄·벅의 대하소설 ‘대지’(大地)는 193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성장하고 어른이 되고도 중국에서 살면서 목격한 중국의 농촌 얘기를 묘사한 역작이다. 빈농인 왕롱(王龍)이 갖은 고생을 다 해가며 벌어 절약한 돈으로 농토를 조금씩 사들인 게 말년엔 지주가 된다. 그러나 아들과 손자대에 이르러 집안이 전란속에 재산 분쟁으로 분열되면서 몰락해 간다. 중국 농촌의 빈부를 3대에 걸쳐 서사시적으로 묘사한 중국 근대사의 한 단면이다. 당시 사회는 실제로 마차를 타고 한 나절을 달려도 자기 땅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의 대지주가 있었는가 하면 자기 땅이라고는 한 뼘도 없는 소작농이 수두룩했다. 처·첩을 열 명씩 데리고 사는 부호가 있었는가 하면 나이 40이 넘도록 장가 한 번 들지못하는 가난뱅이 노총각이 수두룩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주의 혁명은 무력도 무력이지만 이처럼 빈부의 격차가 심한 다대수의 무산계급이 들고 일어나 대륙이 공산화됐다. 중국의 개혁 개방과 함께 20여년 주도되어온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이 지난 11일 폐막된 공산당 16기 5차 중앙위전체회의에서 균부론으로 수정됐다. 일부가 먼저 부유해진 뒤 이를 확산한다는 것이 선부론이고, 모두 다 같이 잘 살자는 것이 균부론이다. 수정된 배경은 격심한 빈부의 차이 때문이다. 산업사회의 눈부신 발달은 30대 재벌 40대 재벌이 역시 수두룩할 만큼 많이 나왔지만 옛 농경사회에서처럼 아직도 가난한 계층이 많아 균부론, 즉 다같이 잘 살자는 ‘공동부유 5개년 계획’을 채택하게 됐다. 특이한 것은 농민의 수입 증대 및 농촌생활 향상, 빈곤계층 재정지원 등과 함께 개방형 시장경제 체제 완성 등 분배와 성장을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는 점이다. 오는 2010년까지 통제형 계획경제 체제를 완전히 개방형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기업활성화를 적극 돕는다는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빈부의 격차, 사회 양극화 현상은 우리 국내도 위기수준이다. 그러나 중국에 비해 해법이 다르다. 성장보다 분배에 치우치고, 상향 평준화가 아닌 하향 평준화, 기업정서 조장이 아닌 반기업정서 조장으로 비유된다. 이 정권의 실책이 크다. /임양은 주필

‘국민대통합연석회의’

‘국민대통합연석회의’란 것이 오는 12월 생길 모양이다. 국무총리 주도아래 경제·노동·여성·시민사회·종교·정당 등 각계인사 50여명 내외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사회양극화, 노사문제, 국민연금 등 경제 및 사회 문제에 대한 구조적 해결 방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대통령 소속의 열 대여섯 개쯤 되는 옥상옥 투성인 ‘위원회공화국’으로도 모자라 총리 산하에 또 매머드 기구를 둔다는 것인 지, 도대체 하는 일마다 왜 이 지경인 지 시답지 않다. 사회양극화 등 사회위기 수준이 심각한 줄은 알긴 아는 모양이지만, ‘국민대통합연석회의’를 만든다고 국민대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법률이나 기구를 만든다고 문제 해결이 다 되면 국정이 어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생각한다는 것이 이토록 구상유취하다 보니 민중사회만 살기가 더 어려워 진다. 민주노총은 벌써 참여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아닌게 아니라 참여해봐야 말로는 안되는 일 없고 되는 일도 없이 실속없는 들러리 노릇이나 할 게 뻔하다. 기껏 감투 좋아하는 사람들의 감투잔치 판이 되겠지만 그런 감투를 잘못 썼다가는 욕얻어 먹기 십상이다. 이 정부는 간판 달기를 겁낼줄 모른다. 새 간판을 다는 것은 책임이 수반되는 데도 책임감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저 안되면 말고 식이다. 간판만 번지레 하는 ‘국민대통합연석회의’ 같은 법외 기구를 두느니 보다는 법정 기구를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국정의 효율을 기하는 길이다. 사회양극화만 해도 이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더 심화한 현상이다.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 가를 알아내어 고치는 데 해소 방안의 진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각계 각층으로 구성한다는 ‘국민대통합연석회의’ 발상은 사회위기 수준의 책임을 국민사회에 떠넘기는 듯한 인상이 없지 않다. 이런 얄팍한 술수는 부리지 않는 게 좋다. 政治(정치)의 요체는 바르게 다스리는 ‘正治’(정치)에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사라져가는 것들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폴리시’ 최신호가 창간 35주년을 맞아 앞으로 35년 이내에 사라질 것으로 보이는 사상·가치·제도를 열거한 내용이 흥미롭다.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라와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장, 신학자 하비 콕스 등 각계 사상가 16명이 하나씩 꼽은 ‘멸종위기의 16가지’는 윤리·종교에서 지정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예사롭지가 않다. 오늘날 일부일처제의 실용적인 이유는 재산의 대물림이나 여성의 보호에 있다. 하지만 사회적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여러 명의 연인(multiple partners)을 갖고 있는 실상이 폭로되고 있다. 자유의 신장, 수명 연장과 함께 한 사람과의 연애에 만족하지 않는다. 기술 발달로 인해 성·사랑·출산 간의 연계고리도 더욱 느슨해진다. 남녀는 각각 동시에 여러 명의 연인을 갖는 형태로 옮겨 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생명의 신성함이 사라진다. 착상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명은 신성불가침이란 생각이 점점 무너진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로 일반세포의 핵을 이용한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인간 배아에 대한 존엄성 개념도 흔들린다. 미국의 식물인간 테리 시아보의 경우에서 봤듯이 사람들은 이들의 생명 연장에도 더 이상 동정적이지 않다. 영국 왕실이 머잖아 사라진다. 과거 영국 왕실은 모범이자 이상이었지만 지금은 시트콤의 가족처럼 돼 버렸다. 품격과 위엄보다 세속과 배신, 부정으로 얼룩졌다. 왕실 사람들 눈에도 더 이상 영국은 왕실이 대변하는 전통·가치에 동조하지 않는다. 왕실 스스로 그 책무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는 경제 성장의 희생물이 된다. 중국처럼 거대한 사회가 근대화된 후에도 권위주의 정부가 모든 것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이미 당 기율이 무너졌고 매관매직이 확산됐다. 종교도 뷔페식으로 고르는 소비자 시대를 맞아 교계 위계질서가 급격히 무너질 우려가 크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제 설득하고 서로 경쟁해야 할 처지가 된다. 오늘날 메가 처치(초대형교회)의 성공이 시장 수요에 따른 결과다. 전화나 인터넷 등 온라인으로 맞춤식 건강계획을 서비스 받게 돼 의사 진료실이 없어지는 등 35년 내에 없어질 것들을 열거했지만, 그러나 일부일처제와 생명의 신성함은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가을남자

많은 사람들이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가을 남자’의 연관성을 동양에선 음양오행원리(陰陽五行原理)로 설명한다. 가을은 ‘금(金)’ 기운이 많아 만물이 ‘움츠러드는(肅)’계절이라 양기 많은 남성이 가을의 이 음(陰) 기운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한방에선 “상반된 기운에 이끌려 감정이 동(動)하는 자석 효과”라고 설명한다. 같은 이치로 ‘목(木)’에 해당하는 봄에는 만물이 움트기(生) 때문에 음기 많은 여성이 봄만 되면 좋아하는 것도 다 그 양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의학 전문가들은 특별히 남자만 가을을 탄다는 통념은 학술적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낮이 점점 짧아지는 가을엔 일조량이 줄고 수면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많아지면서 무기력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남녀 차이는 크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춘곤증’은 있는데 ‘추곤증’이란 말은 없다. 봄이나 가을은 기온이 비슷한데 가을에는 봄처럼 입맛이 없어지거나 졸음이 오진 않는다. “춘곤증은 인체가 환경 변화에 일시적으로 적응하지 못해 나타나는 증세로, 현재보다 이전 계절과 관계가 깊다”고 한다. 즉 겨울동안 운동량과 야채(비타민·미네랄) 섭취량이 줄었다가, 봄에 기온이 높아지고 일조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체온도 높아지고 신진대사가 갑자기 증가해 피로를 느낀다는 것이다. 반면 가을에는 낮이 길고 무더운 여름 날씨에 적응이 된 상태에서 날씨가 쾌적해지기 때문에 춘곤증처럼 심한 부적응 자세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기온이 떨어지고 일교차가 커지기 때문에 감기 등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봄이든 가을이든 환절기 기후 변화에 빨리 생체리듬을 맞추려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해주는 게 좋다. 단백질 식품이나 제철 해물, 녹황색 야채가 여름내 지친 몸을 회복시켜 주는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다. 햇빛을 덜 받아 생긴 ‘계절적 우울증’에는 산책이나 가벼운 일광욕이 심신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남자만 가을을 타는 건 아니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정신적으론 오히려 더 깊은 가을앓이를 할는지도 모른다. 고독도 즐기면 약이 된다고 하였다. 혼자서도 좋고, 둘이면 어울려 보이고, 서넛이 함께면 즐거워진다. 혼자서면 어떠랴. 햇살 맑은 이 가을 날, 단풍이 고운 산길이나 억새꽃 휘날리는 들길을 걷자. 낭만에 취해보자. / 임병호 논설위원

‘논개’ 異說

論介(?~1592)는 임진왜란 때의 기생으로 성은 주(朱)씨, 장수(長水)사람이다. 진주병사 최경회의 애기(愛妓)였는데 진주성이 함락된 후 진주 촉석루의 술자리에서 왜장(倭將)을 껴안고 남강에 같이 떨어져 죽은 것으로 전해지는 여인이다. 의녀(義女) 또는 의기(義妓)로 추앙될 뿐 아니라 문학작품을 통해 칭송돼오는 역사 속의 인물이다. “거룩한 분노는 / 종교보다도 깊고 / 불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하다. /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불은 / 그 마음 흘러라. //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 높게 흔들리우며 /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 죽음을 입맞추었네! /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 흐르는 강물은 / 길이길이 푸르리니 / 그대의 꽃다운 혼 / 어이 아니 붉으랴. /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시인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1897~1961) 선생이 논개를 기린 詩 ‘논개’다. 1924년 발간한 시집 ‘조선의 마음’에 실려 후세에 널리 애송되는 명시다. 그런데 지난 9월 26일자 교수신문 ‘화제의 논문’란에 논개와 얽힌 일화가 과장된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규무 광주대(한국사) 교수는 논개 일화는 한자 ‘將’을 잘못 해석한 결과로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 했다. 즉 ‘왜장유이인지(倭將誘而引之)’에서 ‘장’은 통솔자인 ‘장사(將師)’가 아니라 ‘장차 ~하려하니’로 해석해야 문맥이 맞는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논개가 왜장과 살림을 차리자고 약속을 해 유혹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이런 잘못된 해독을 기반으로 해서 윤색된 것”이며 “촉석루 축하연에 논개가 참석했다는 것, 투신할 때 열손가락에 반지를 끼었다는 것, 논개가 신안 주씨였으며 진주 기생이 아니라 최경회의 소실이라는 내용 등은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모든 윤색의 과정은 뼈대 있는 가문의 뛰어난 자색이 양반의 소실이 되어 극적인 최후로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게 된다는 ‘열녀 이야기’의 한 정형을 형성한다는 것은 지적하기도 머쓱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한 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여인상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놓고 논란이 뜨거워지겠지만, 글쎄,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은 일이 아닌가 싶다./임병호 논설위원

배신의 계절

뉴욕타임스가 근래 흥미있는 보도를 했다. 중국의 장쩌민(江澤民)이 국가주석을 후진타오(胡錦濤)에게 내준 데 이어 마지막으로 하나 지녔던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에서까지 마저 물러나게 됐던 비화가 소개됐다.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지난 해 6월경의 일이다. 쩡칭홍(曾慶紅)국가 부주석은 장쩌민에게 9월 당대회에서 중앙군사위 주석직의 자진 사임을 밝히도록 권고했다. 당내 추종 세력이 거부할 것으로 계산된 일종의 쇼 연출 제의였다. 이럼으로써 군통수권 지위를 공고히 거듭 굳히고, 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장쩌민은 흔쾌히 따랐다. 무엇보다 쩡칭홍은 후진타오의 견제를 위해 자신이 국가 부주석으로 키운 사람이어서 심복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빗나갔다. 후진타오는 장쩌민의 사임안을 당(정치국)에 넘기지 않고 자신의 기반 세력이 깊은 군(고위층)에 넘겼다. 군에서 당으로 사임안이 넘어갈 즈음의 공론은 이미 사임이 기정사실화되어 장쩌민은 후진타오에게 할 수 없이 군사위 주석까지 자진해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장쩌민은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것이 정계를 완전히 은퇴하게 된 배경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장쩌민이 믿었던 쩡칭홍의 배신에 있다. 뉴욕타임스는 장쩌민의 심복이었던 쩡칭홍이 후진타오의 심복으로 돌아서 그같은 간계를 부린 것으로 분석했다. 정치인을 두고 오인환 전 공보처장관이 한 말이 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 출신의 오 전 장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5년의 재임기간을 같이한 최장수 장관이다. 그는 “금방 육두문자를 써가며 욕했던 상대 정치인이 나타나면, 우리가 소원한 사이가 아닌데…하며 너털웃음으로 가면극을 벌이는 것을 보면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신군부 세력으로 명운을 함께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전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에 3년이나 유배시켰다. 비록 불가피한 조치이긴 했으나 당자는 생각이 다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세동) (안기)부장을 후계자로 앉혔을 것인 데’하고 당시 부부가 후회했다는 항설이 있었다. 정치인 세계가 배신의 계절인 것은 이즈음도 다를 바가 없다./ 임양은 주필

롯데관광

개성 상인들의 단결력은 일본 강점기 당시의 일제조차 꼼짝 못했다. 식민지 수탈정책도 결국 개성 상권 앞에서는 두 손 들고 말았다. 이런 단결력은 두 가지 점에서 나왔다. 첫째는 신용이다. 돈 거래나 약속을 정확히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상품 자체의 품질도 철저히 신용위주로 일관했다. 또 하나는 의리다. 남의 장사에 지장을 주는 유사행위나 남의 장사를 빼앗는 일은 배신으로 규정했다. 오직 자기 방식의 장사 기술, 즉 독자성을 창출하기에 서로가 노력했다. 이런 개성의 훌륭한 상인 정신이 깃들었던 개성관광이 배신의 상품으로 둔갑되고 있다. 개성관광사업은 원래 현대가 맡아 이미 시범관광까지 마쳤다. 이랬던 게 김윤규 전 현대아산 사장의 퇴진에 이어 부회장 자리에서도 밀려나게 되자 북측은 현대를 ‘왕따’시키고 롯데관광에 추파를 던져 끌어 들였다. 김씨를 다시 복직시킬 것을 요구했으나 들어주긴 고사하고 현대에서 아주 몰아내려고 해 현대의 기득권을 일방적으로 박탈하고 나선 것이다. 김씨는 대북 관련 자금의 상당액을 횡령했다는 것이 현대측의 자체 감사 내용이다. 북측이 김씨와 어떤 개인 관계를 맺고 있는 진 알 수 없으나 누굴 어떤 자리에 앉히라 마라 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이런 북새통을 틈타 개성관광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롯데관광의 자세도 괴이하다. 북에선 벌써부터 덤으로 비료와 아스팔트 재료를 1천만 달러(103억원) 상당의 지원을 요구했다. 사업이 시작도 되기전에 이런 가외 요구를 해오면 나중에 투자되고 나서는 또 뭣을 달라고 할 지 모른다. 롯데관광이 밝힌 개성관광사업 참여 의사는 잘못된 것이다. 대북사업 파트너를 북쪽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하게 습관을 들여서는 결국 죽도 밥도 안 된다. 당장은 개성관광사업을 따낼 지 몰라도 뒷날엔 현대 보다 더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롯데관광은 현대가 연고권을 가진 개성관광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어야 옳은 일이다. 이래야 북이 남쪽 기업을 만만히 볼 수 없는 데 안타깝게 됐다. 롯데관광은 그 옛날 개성 상인의 정신을 본받어야 한다./임양은 주필

조류독감 주범 ‘철새’

세계적으로 조류독감 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인도네시아에선 7월 이후 6명이 조류독감으로 사망했다. 유엔 인플루엔자 담당 조정관 나바로 박사가 “조류 독감으로 최대 1억5천만 명의 인류가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최근이다. 미국은 2천만 명에서 1억5천만 명 분의 백신 확보를 위해 60억달러에서 100억달러의 투자에 나섰다. 가난한 나라는 백신 확보도 어렵다. 한국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백신 70만 명 분을 확보해 놨다. 그러나 백신이 능사가 아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베트남과 중국에서 일어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기존의 백신에 내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조류독감의 확산 주범이 철새다. 들오리를 비롯한 야생 조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강하다. 이에 비해 닭이나 집오리 등 가금류는 조류독감에 걸리면 이내 죽는다. 철새의 배설물이 조류독감 대륙간 이동의 매체가 되고 있다. 한반도 역시 조류독감 안전지대가 아니다. 본격적인 철새 이동시기가 다가온다. 농림부는 겨울 철새를 통해 조류독감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류독감 발생주의보를 곧 발령하기로 했다. 이어 오는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를 특별방역대책기간으로 정할 예정이다. 조류독감이 퍼진 동아시아와 지난 7월 이후 역시 조류독감이 발생한 시베리아 카자흐스탄 몽골 등지의 철새 이동경로가 한반도여서 안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농림부의 판단이다. 여름 철새 겨울 철새 할 것 없이 수 만리를 날아 찾아오고 떠나는 철새는 계절의 진객이다. 서식지를 찾아 무리를 지어 군무를 이루는 철새떼 모습은 장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철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세상 많이 달라져간다. 이런 계절의 진객으로 보호받는 철새가 무서운 조류독감의 대륙간 이동의 주범이 됐으니 철새도 이젠 달리 보아야 하는 것인 지, 자연의 정서마저 삭막해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 임양은 주필

경부운하

서울 ‘청계천 복원’이라는 대역사를 마무리한 이명박 서울시장이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될 경우 ‘경부운하(京釜運河)건설’을 공약으로 제시하겠다”고 시사했다. 한강과 낙동강의 상류를 잇는 경부운하론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1990년대 초부터 세종대 경제학·토목공학팀 등 소수의 전문가가 주창했고, 이명박 시장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1996년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제시했었다. 이 시장의 ‘포부’와 ‘계획’대로라면 경부운하는 장장 500㎞에 이른다. 이 시장은 1999년 미국 보스턴의 고가도로 철거를 보고 청계천 복원을 생각했고, 현대건설 사장 시절 독일 라인강의 운하를 보고 경부운하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독일은 1820년부터 라인강에 171㎞의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해 흑해와 북해를 이었다. 경부운하의 경우 일단 경제성이 떠오른다. 물류이동비용을 줄일 수 있고,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으며, 미래 레저산업의 기반이 된다. 내륙인 청주와 충주에 항구도 생긴다. “도심 한 가운데서 공사한 청계천 복원보다 경부운하 건설이 더 쉽다”는 게 이명박 시장의 경험론이다. 자연의 강을 그대로 잇는 일이므로 요즘 기술로는 “아무 것도 아니다”란다. 운하를 건설하면 모래와 자갈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채취할 수 있는 모래와 자갈로 공사비의 약 70%를 충당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시장은 50% 정도로 본다. 독일이 라인강을 개발할 때 주식회사를 만들어 채권을 발행한 것처럼 그 방식으로 예산문제를 해결하고, 큰 댐을 만들 때는 다소 환경파괴가 우려되지만 물이 적은 곳에 작은 댐을 만들면 호수가 된다고 친환경적인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물론 반대와 이론이 없을 리 없다. 벌써부터 일각에서 “현실성 없는 구름 같은 얘기”라고 비판한다. “김영삼 정부 때 민간에서 경부운하 주장이 나와 정부에서 검토했는 데 얘기가 안 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배가 오르내리려면 수 많은 갑문을 새로 만들고 댐을 뜯어 고쳐야 한다. 다리도 다 새로 건설해야 하고 게다가 한강과 낙동강은 식수원이어서 오염이라도 되면 큰일 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이 시장은 불가능할 것 같은 청계천을 복원했다. 정치적으로 비판할 게 아니라 국토 균형개발, 국민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심도있게 연구· 검토할 만한 일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자장면 축제’

어른을 위한 동화집 ‘짜장면’을 출간한 안도현 시인은 1994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언론이 보도용어를 통일한 ‘자장면’을 쓰지 않는다. 그는 “국어의 표기 문제에 시비를 걸자는 게 아니다. ‘짜’라는 된소리로 인해 우리의 기억 속에 배어 있는 그 냄새가 훨씬 그윽하게, 더욱 적극적으로 코를 자극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라고 말한다. “맞춤법에 따라 벽에다 착하게 ‘자장면’이라고 써놓은 중국집을 가도 기분이 개운치 않다”고 한다. 정호승 시인도 ‘짜장면을 먹으며’라는 詩에서 “비 젖어 꺼진 등불 흔들리는 이 세상 / 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 있는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 봐야겠다”고 노래했다. 국립국어연구원은 ‘작장(炸醬)’의 원어는 ‘zhajiang’으로 발음되는 말로 외래어 표기법대로 적을 때 자장면으로 적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짜장면’이라고 해야 더 자연스러운 건 사실이다. 자장면은 중국 음식에서 비롯됐지만 국민적 사랑을 받는 ‘우리의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국내 중국식당은 2만5천80여 곳이고 하루 평균 700만 그릇이 넘는 자장면이 팔린다고 한다. 한 그릇에 3천원으로 치면 하루 210억원어치가 팔리는 셈이다. 과연 ‘우리의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자장면은 중국 음식이 아니라 엄연한 인천의 향토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1883년 개항하면서 상하이 등의 큰 무역상이 드나들던 인천 부두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고국에서처럼 붉은 춘장(醬·장)을 볶아(炸·작) 국수(麵·면) 위에 얹어 먹었다. 고기, 양파를 넣고 볶은 한국식 자장면은 ‘공화춘’에서 ‘짜장미엔·炸醬麵’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팔았다. ‘공화춘’은 인천에 형성된 차이나타운에 1905년 자리잡은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 음식점이다. 화폐 가치가 다르지만 1960년엔 자장면 한 그릇 값이 15원, 1971년엔 110원, 1900년대 천원을 넘어섰다. 자장면은 주로 생일, 졸업, 결혼을 축하할 때 먹었지만 연인들이 데이트할 때도 즐겨 먹었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은 자장면을 좋아하면서도 춘장이 입가에 묻는 것을 걱정해 먹기를 꺼려했다. 애환이 깃든 자장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7일부터 9일까지 인천 북성동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축제가 열린다. 가족들과 ‘짜장면’을 먹는 것은 즐겁다. /임병호 논설위원

원구단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옆에 있는 ‘원구단(圓丘壇)’은 청나라 천자에게 빼앗긴 천제(天祭)를 433년 만에 회복하여 고종이 1897년 10월11일 대한제국의 독립선언과 함께 황제 즉위를 하늘에 알리는 고제(告祭)를 올렸던 곳이다. 제를 올리는 단(壇)이 원형으로 되어 있다고 하여 통상 원구단으로 불려왔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성종 2년(서기 983년) 정월 황천 상제인 삼신과 흑제·적제·청제·백제·황제, 즉 오방위의 신위를 모시고 왕이 친히 ‘원구제’를 올렸다. 또 ‘조선왕조실록’엔 태조 3년(1394년)과 세종 원년(1419년)에 원구제를 올렸고, 세조 3년(1457년)부터 매년 ‘원구제’를 올렸다. 그러나 “천자가 아닌 조선 왕이 하늘에 제를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중국(청나라)의 강압에 의해 1464년 마지막 원구제를 봉행했다. 이후 고종에 이르러 천제를 복원하여 명당·명소·길지로 알려진 소공동에 원구단을 세웠으나 1913년 일제와 친일파들이 또 “조선의 왕이 천제를 지내는 것은 하늘에 대한 불충이므로 일본 천황이 지내야 한다”며 ‘황궁우(皇穹宇)’만 남겨 놓고 원구단을 철거하여 ‘원구단 천제’가 사라졌다. 일제는 원구단 자리에 지금의 조선호텔 전신인 ‘철도호텔’을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호텔이 신성한 제사터를 깔고 앉아 있는 셈이다. 서울 종로구 종로2가 39번지 뉴파고다빌딩 211호(전화 02-747-9611)에 사무실을 둔 ‘원구단천제복원위원회’는 원구단 복원을 추진하는 단체다. ‘황궁우’를 보살피고 있는 원구단복원위의 한 회원을 만났을 때 “아마 우리 국민 누구라도 이 기막힌 사실을 알고나서도 ‘조선호텔’이 이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분도 없을 것이다. 또한 본의 아니게 이 자리를 소유하게 된 삼성재단측도 국가의 자존과 천손민족(天孫民族)의 명예를 위해서도 아마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 것으로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원구단 3동(棟) 지붕은 天·地·人 삼합 일체의 천제의식을 우주 빛의 상징인 황금으로 장식했다. 그 찬란한 빛이 온 천하를 밝혀 전 세계인이 우러러 경배하는 원구단은 인류 최고의 장엄한 제천성지”라고 한다. 조선호텔이 다른 곳으로 이전해도 복원될 지 미지수인 ‘고독한 운동’을 하고 있는 원구단천제복원봉헌회의 염원이 언제쯤 이루어질까. 이런 사람들이 있어 역사는 흐른다. / 임병호 논설위원

당·정의 중국산 김치 비호

중국산 김치의 납 함유량이 국산의 최고 5배에 이른다는 발표(고경화 의원·한나라당)에 당·정이 반박하고 나섰다. 고 의원이 밝힌 최대 검출량 0.57을 하루 세 번 먹어도 인체 노출은 허용량의 28.8% 수준이라는 주장이다.(정부·열린우리당 정책협의회) 그러나 김치의 납 허용 기준이란 건 없다.(당·정은 연말까지 마련키로 했다) 당·정의 반발을 반박하는 주장이 또 있다. 현재 식의약청의 각종 유해성 판단 기준은 시대에 맞지않게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다.(서울환경운동연합) 그렇지 않아도 중국산 유해식품 소동에 대형 유통업체의 상당수가 중국산 농수산물을 매장에서 철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산 장어·농어·도미·새우살·쥐포·고사리·숙주나물 등 이밖에도 많다. 고객의 신뢰에 흠이 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선 팔리지 않는 중국산을 굳이 매장에 내놓을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소비자들은 중국산 유해식품의 공포 속에 있다. 이것도 저것도 중국산이 아닌가 싶어 외식을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 보면 무리가 아니다. 중국산 납 성분의 유해식품을 모르고 잘못 먹은 것이 건강에 화근이 된 사례가 몰라서 그냥 넘어간 것이지 알고보면 없다할 수 없을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싼 것도 좋지만 유해식품은 국민건강의 공적이다. 이 기회에 국산 농수산물을 애용하는 마음이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책임은 정부에 있다. 수입 먹거리로부터 제 나라 국민을 이처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유해식품 수출을 수입해들인 것 부터가 잘못이다. 중국산 수입식품을 산 업자가 유해식품으로 알려져 팔리지 않아 손해를 본 사람은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가 있다. 어느 대형유통업체 식품 코너에서다. “중국산 김치를 하루 세끼 다 먹어도 괜찮다며?”(당·정 발표에 대한 주부들의 화제다) “웃긴다! 저네들이나 먹으라지… 귀한 목숨 잘못될까봐 먹으라면 아마 도망갈끼다” /임양은 주필

터키와 EU

터키공화국은 극동지역인 한반도와는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아시아 나라다. 아시아 서쪽 끝, 그러니까 극서지역이다. 6·25 한국전쟁 땐 5천400여 명의 지상군이 참전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선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나라끼리 한국과 터키가 4강전을 가졌다. 동으로 이란, 서쪽으로 에게해, 남으로 시리아와 지중해, 북으로 흑해 등과 인접한 국토 면적이 78만576㎢로 한반도의 3배를 좀 넘는다. 터키의 일부 지역인 애나톨리아는 옛날 동로마제국의 영토였다. 13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에서 서진한 오스만투르크제국의 터키인이 90%를 차지하며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도다. 1차 대전에 참전해 패전한 후, 오늘날 국부로 숭앙받는 케말 파샤가 이끈 국민운동이 일어나 쇠퇴한 제정을 폐한 데 이어 영국과 그리스군을 격파한 1923년 공화제를 선포했다. 터키의 26번 째 유럽연합(EU) 가입이 막판 난항을 겪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겉으로는 가입을 환영한다면서도 속으로는 껄끄럽게 여기던 게 반대 여론이 마침내 노골적으로 터졌다. 쉬셀 오스트리아 총리가 지난달 30일 “터키를 정식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히자 이에 동조하는 회원국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독일의 반대에 이어 가입을 지지하던 프랑스도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협상은 계속되고 있지만 EU의 전반적 분위기가 좋지않게 돌아간다. 압돌라 터키 외무부장관은 “터키를 2등 국가로 차별화하는 협상안은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영국의 BBC 방송은 “터키의 EU 가입 가능성은 절반 이하로 보도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터키가 EU 가입에 곤혹을 겪고 있는 것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아시아 나라라는 것과 이슬람국가라는 이유때문이다. 지구촌의 블록화 경향이 점점 심각해진다. 미국 중심의 북미권, 브라질 중심의 남미권 그리고 유럽의 EU권에서 아시아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지구촌의 지역차별·문화차별에서 아시아의 대응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만이 있다. 아시아권 연합은 형성될 수 없는 것일까./ 임양은 주필

북관대첩비

북관(北關)은 함경북도에 있는 땅으로 무역이 성행했다. 조선조 초기에는 여진족이 두만강을 건너와 소금과 쇠 등을 사갔다. 청나라와 교역을 갖기 시작한 것은 중기에 들어서다. 교역은 철따라 일정 기간에만 열렸다. 교역이 열린 것을 일컬어 ‘북관개시’(北關開市)라고 했다. 임진왜란 당시 승승장구하던 가토 가요마사(加藤淸正)의 군대가 대패한 곳이 북관이다. 이 장거는 정규군이 아닌 수 백명의 함경도 의병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의병은 정문부 이붕수 등이 주도했다. 이를 기리는 ‘북관대첩비’가 세워진 것은 그후 숙종 때다. 북평사 최창대가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에 세웠다. 비의 크기는 높이 190㎝ 폭 66㎝에 두께가 13㎝다. 그런데 ‘북관대첩비’가 없어졌다.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가져갔다. 일본군이 가져간 것은 알았지만 행방은 묘연했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서 발견된 것은 1978년이다. 정부는 줄곧 반환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거절했다. ‘남쪽에 줘야 하는 건지, 북에 줘야 하는 건지 몰라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올 6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관대첩비’ 반환요구가 합의된 덴 이런 배경이 깔렸다. 북측은 일본과 국교가 없어 직접 요구하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 마침내 ‘북관대첩비’가 올해 100년만에 돌아온다. 정부는 일본측의 이런 최종 통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되돌려 받으면 보존처리에 이어 일반인에게 공개 전시된다. 그리고는 북측에 넘겨줄 예정이다. 북으로 되돌아 가면 당초에 건립됐던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의 기단석 제자리에 다시 세워질 것이다. 한데 좀 꺼림칙한 게 있다. 돌려받는 덴 야스쿠니 신사의 이사회 격인 총대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총대회가 소집되는 게 바로 오늘이다. 우리는 우리 문화재를 찾아온다. 저들은 빼앗은 문화재를 돌려준다. 이런 데도 절차가 꽤나 까다롭다. 이런 것을 생각해서라도 더는 빼앗기지 않는 힘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북관대첩비’는 이제 100년의 외출을 마쳐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의 총대회를 주목한다./임양은 주필

자 살

기독교에서 자살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다. 인간은 스스로의 생사에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는 40초당 1명이 자살하여 매년 100만여명이 숨진다. 전쟁보다 자살로 더 죽는다. 우리나라는 특히 심각하다. 지난해 자살자가 1만2천293명(남성 9천385명, 여성 3천908명)이었다. 하루 평균 3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가 25.2명으로, 10년 전(1994년)의 10.5명에 견줘 2.4배나 늘어났다. 이 때만 해도 자살은 사망원인 9위에 머물렀으나 지난해에는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중 자살 사망률이 가장 높다. 자살 동기로는 염세·비관이 43%로 가장 높고, 병고(26%), 치정·실연·부정(9%), 빈곤·사업실패(8%), 가정불화(7%), 정신이상(6%) 등 순이다. 올해 초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비롯해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유태흥 전 대법원장, 정몽헌 전 현대 회장 등 유명인들의 자살 원인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목숨을 건지기는 했으나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까지 생각하면, 자살은 사회적 위기다. 연령대별로는 40대가 지난해 전체 21%를 차지하는 등 가장 많다. 40대의 경우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과 생활고 등에 따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창 일 할 나이인 30 ~50대가 전체의 62.7%에 이르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과 가계파산 등으로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남성 자살자가 여성 자살자의 3배가 되는 것도 심상찮다. 자살이 옳은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동기도 있지만 천박하게 승자논리를 앞세우는 사회 탓도 크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자기의 문을 두드릴 권리가 없는 수인이다. 인간은 신이 소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스스로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자살은 육체의 종말일 뿐 아니라 정신적 생명의 죽음이다”라고 자살의 옳지 않음을 탄식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다. 무신론자들인가. 스스로 죽음을 계획하는 사람들 앞에 희망의 등불이 되어줄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ICAO 회장

국제협동조합농업기구(ICAO)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분과기구로 1951년 설립됐다. 지난해 말 현재 세계 38개국 48개 농업 및 농업인 관련 협동조합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회원기관의 공통 관심분야 세미나 개최, 조사연구사업, 개발도상국 및 체제전환국의 농협운동 장려 등이 주요 활동이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그런데 지난 20일(현지 시각)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열린 ICAO 정기총회에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이 만장일치로 ICAO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정 회장 개인의 영광일 뿐 아니라 한국 농협의 경사다. 현재 세계농업생산자연맹(IFAP)의 농협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정 회장이 ICAO 회장에 선출됨으로써 세계 협동조합 양대 기구의 주요 직책을 겸하는 막중한 위치에 올랐다. 이는 한국 농협이 세계 협동조합을 주도하는 핵심 국가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음을 뜻한다. 또 성격과 지향점이 비슷한 양 기관을 한국 농협이 함께 운영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배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 농협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오는 12월 세계무역기구(WTO) 홍콩 각료회의 개최를 앞뒀다는 점이다. 농산물 수출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농업의 다목적 기능을 포함한 공정한 농산물 무역규범을 촉구하는 비정부기구(NGO) 연대활동에서 한국 농협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에서 식량 수입국인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그 전망이 유리해졌다. 세계무대에 한국 농협의 존재를 각인시킨 것은 큰 성과다. 한국 농협이 국제농업기구 회의를 잇따라 개최하는 원천이 돼 올 들어서만 지난 5월 세계농업생산자연맹 아시아위원회, 8월에는 동아시아농업기구(EAOC) 회장단 회의를 이미 주도했다. 내년에는 세계농업생산자연맹 서울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농협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세계 농협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 또한 고무적이다. 정 회장은 “빈곤문제, 농촌고용 창출, 여성농업인 참여 확대, 청소년 농업후계자 양성을 비롯, 지구의 사막화, 수자원 부족, 온난화 등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고 활동영역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자못 기대가 크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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