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자살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다. 인간은 스스로의 생사에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는 40초당 1명이 자살하여 매년 100만여명이 숨진다. 전쟁보다 자살로 더 죽는다. 우리나라는 특히 심각하다. 지난해 자살자가 1만2천293명(남성 9천385명, 여성 3천908명)이었다. 하루 평균 3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가 25.2명으로, 10년 전(1994년)의 10.5명에 견줘 2.4배나 늘어났다. 이 때만 해도 자살은 사망원인 9위에 머물렀으나 지난해에는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중 자살 사망률이 가장 높다. 자살 동기로는 염세·비관이 43%로 가장 높고, 병고(26%), 치정·실연·부정(9%), 빈곤·사업실패(8%), 가정불화(7%), 정신이상(6%) 등 순이다. 올해 초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비롯해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유태흥 전 대법원장, 정몽헌 전 현대 회장 등 유명인들의 자살 원인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목숨을 건지기는 했으나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까지 생각하면, 자살은 사회적 위기다. 연령대별로는 40대가 지난해 전체 21%를 차지하는 등 가장 많다. 40대의 경우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과 생활고 등에 따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창 일 할 나이인 30 ~50대가 전체의 62.7%에 이르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과 가계파산 등으로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남성 자살자가 여성 자살자의 3배가 되는 것도 심상찮다. 자살이 옳은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동기도 있지만 천박하게 승자논리를 앞세우는 사회 탓도 크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자기의 문을 두드릴 권리가 없는 수인이다. 인간은 신이 소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스스로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자살은 육체의 종말일 뿐 아니라 정신적 생명의 죽음이다”라고 자살의 옳지 않음을 탄식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다. 무신론자들인가. 스스로 죽음을 계획하는 사람들 앞에 희망의 등불이 되어줄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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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5-10-0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