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노동

양말공장을 하던 중소기업인이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그의 말로는 “노조 등쌀에 국내 가동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사정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그 사정이란 게 중국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물론 중국의 투자 매력도가 많이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을 나쁘게 길들이는 것이 바로 한국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같은 한국 기업인끼리 상대를 모함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가령 양말을 어떤 업체에 납품하게 되면 같은 한국의 중국 진출 양말공장 기업인이 여러가지로 헐뜯어 납품을 방해하기가 일쑤라는 것이다. 다 같이 이국땅에 나가 고생하면서 서로 도와야 할 처지에 돕지는 않을 지언정 모함을 일삼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해외에 나간 기업 중 95%가 국내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진출 기업은 중국이 단연 1위를 차지한다. 모두 206개로 해외진출 기업의 67.5%에 이른다. 법률관계 등 제도적 환경, 인건비 및 인력 확보가 유리한 점이 비록 전 같진 않지만 중국 투자의 매력 포인트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해외로 나간 우리의 기업이 돌아오기를 싫어하는 것은 근래 본국 이전의 경향이 두드러져 가고 있는 일본의 해외진출 기업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우리의 해외진출 기업이 국내로 들어오기 위해서 꼽는 것으로는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각종 기업규제의 해소다. 그리고 또 하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다.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말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오래됐다. 이런데도 기업을 거미줄처럼 얽어매어 기회만 닿으면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려고 든다.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은 그만큼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가 중엔 노동운동을 팔아 호사하는 ‘귀족’들이 많아 참 노동운동을 어렵게 만든다. 그 양말공장 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같은 한국 기업인의 모함을 받고는 있지만 억지 부리는 노조가 없어 그래도 낫다고…” 자본이 없으면 노동도 없다./ 임양은 주필

미국판 만리장성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애리조나주 일부인 멕시코 국경 139㎞에는 높이가 약 3m인 담장이 세워져 있다. 멕시코인의 밀입국을 막기 위해서다. 이 담장을 넘다가 떨어져 숨지는 수가 연간 수백명인 데도 멕시코인의 담장 넘기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이다. 이래서 미국과 멕시코 국경 3천200㎞ 중 험준한 산골 등을 제외한 1천130㎞에 높이 3m의 이중장벽을 설치키로 했다. 이에 드는 소요 예산이 우리 돈으로 2조2천억원이다. 미국 하원이 근래 이같은 법안을 통과시켜 상원으로 넘겼다. 이러자 멕시코 정부는 ‘치욕스런 인종차별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나서 때아닌 국경분쟁 양상이 됐다. 그러나 멕시코 체류인 1천만명 가운데 약 절반이 불법 체류자로 골치를 앓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것 같다. 미국에 있는 멕시코 사람들이 벌어 본국에 부치는 돈이 연간 16조9천억원이라니 상당한 외화 벌이다. 장벽을 말하다 보니 베를린장벽이 생각난다. 1961년 8월 동독이 서독으로의 탈출을 막기위해 베를린 시가지 동·서독 경계에 쌓은 것이 베를린 장벽이다. 그러나 베를린장벽은 동독 사람들의 연이은 집단탈출 행로로 결국 30여년 만에 무너졌다. 남북간엔 155마일의 휴전선 철책이 설치돼 있다. 아마 휴전선에 군사대치 없이 그냥 철책만 있다면 베를린장벽처럼 무너졌을 지 모른다. 중국의 진시황은 북방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하북성 산해관에서 감숙성 가욕관에 이르는 만리장성은 자그마치 2천400㎞다. 원래 춘추전국시대에 연·제·조·위나라가 일부 쌓은 것을 진시황이 크게 증축했고 뒤에 명나라가 보수했다. 그러나 중국의 중원은 흉노족으로부터 늘 시달림을 받았다. 미국이 멕시코 국경에 쌓기로 하는 장벽은 미국판 만리장성이다. 단, 길이가 만리장성에 비해 약 절반 정도이므로 ‘반만리장성’인 셈이다. 2천200여년 전의 장성 같은 장벽이 이 시대에 등장한다는 사실이 연유가 어떻든 흥미롭다. / 임양은 주필

무속신앙

문전 성시를 이루는 점집, 즉 역술가 집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세대 차이가 없이 찾아드는 곳이 점집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대학 진학이나 취직 때문에, 장년들은 사업운이나 직장운 등, 노년층은 여생과 자녀의 운세 등을 많이 묻는다고 한다. 남녀의 구별도 없다. 증권투자, 부동산투자 같은 것도 점을 본다고 한다. 올해는 또 지방선거가 있어 각급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입후보 예정자들 가운데 점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이만이 아니다. 기성 정치인들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사람들 역시 점 집을 즐겨찾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들린다. 내국인만이 아니고 외국인도 점을 치는 모양이다. 이 때문에 서울에선 영어나 일어 통역자를 고용하는 점집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점을 보려면 꼭 점집에 가야만하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 점집들이 급성장한다는 소식이다. 온라인이 발달한 첨단 정보화시대에 무속신앙이 온라인을 이용해번창하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현상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통역을 고용하고 온라인망을 설치하면 가히 기업형이다. 하기는 대학에 관상을 보는 ‘얼굴경영학과’ 풍수지리를 보는 ‘장례풍수학과’ ‘풍수명리학과’를 둔 학교도 있다니 세상 참 묘하게 돌아간다. 보도에 의하면 한국역술인협회는 전국적으로 약 45만명의 역술인, 무속인들이 있는 데 연간 시장 규모가 2조원 대로 추산된다니 정말 대단하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무속신앙의 번창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 듯 싶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무속신앙을 찾는다는 데 현세가 시끄러운 세상인가 보다. 자연법칙과의 조화를 확인하는 것이 운세철학의 원리라는 말을 듣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오죽이나 답답하면 점집을 찾을까마는, 자신의 마음 가짐이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새로운 한 해가 또 시작되는 2006년 연초다. / 임양은 주필

새해 기원

“어제 저녁엔 / 노을 지는 붉은 바다 속에 / 시름을 모두 잠재웠다 // 미움도 설움도 절망도 떠나 보냈다 // 그리움처럼 함박눈 쌓이는 밤 / 꿈을 꾸었다 / 은하수 강변에 살고 있는 / 견우성(牽牛星), 직녀성(織女星)을 만났다 // 백마들을 앞세우고 / 봉황, 공작과 함께 / 오작교를 건너오고 있었다 // 춤 추는 나무들, / 노래하며 꽃들이 / 견우, 직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 오늘 새벽 / 하늘門이 열리며 / 산천초목이 탄생하고 / 도도히 강물이 흘러왔다 // 어제여, 잘 갔느냐, / 반갑다, 오늘아, / 기다려라, 내일이여 // 오늘 아침에는 / 세상이 싱그럽다 / 사람들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2006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문단의 말석에 있는 지지대子가 오래 전에 쓴 졸시 ‘오늘 아침처럼’이 생각나서 옮겨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새해를 맞이하면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어제 저녁에 미움도 설움도 절망도 모두 노을 지는 바다에 던졌으므로 아침 태양처럼 떠오른 희망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싱그럽습니다. 종교계 지도자들의 신년사가 떠오릅니다. “ 이 밝고 아름다운 새 아침 진실된 마음으로 발원합시다. 슬픔과 아픔을 여의고 누구나 다 행복해지도록 행복의 씨앗을 심읍시다. 분별하고 차별하는 마음을 버리고 평등한 세상이 되도록 평등의 씨앗을 심읍시다. 무명의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도록 정진하는 씨앗을 마음 모아 심읍시다.” 진각종 혜일 총인의 신년 메시지 입니다. “ 우리는 불공의 정신을 크게 일깨워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살려내야 합니다. 사람은 물론 물도 살리고, 땅도 살리고, 공기도 살리고, 금수초목도 살리고, 미물곤충, 미생물까지도 모두 살려내야 합니다. 개인도 살리고, 국가도 살리고, 기업도 살려내야 합니다. 이 모두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가 됩니다.” 원불교 이광정 종법사의 말씀입니다. “올해는 힘 있는 분들이 그 힘을 자제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분들이 소외되는 일이 없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천도교 한광도 교령의 기원입니다. “편견이 사람을 해친다”는 조계종 법전 종정의 신년사는 올바로 가야 할 길을 일러 줍니다. 미생물까지도 살리기 위한 사람들이 날마다 눈부시게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공범자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대학 연구실’과 ‘연구원’의 실체도 함께 드러났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실험실이나 연구실에서 지도교수는 ‘제왕’이다. 지도교수의 눈 밖에 나면 당장 주요 연구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 학위논문 심사나 취업 등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 대학원생이나 연구원들이 지도교수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든 이유다. 특히 이공계에선 현장에서 쌓은 오랜 경험보다는 학위가 우선이다. 학사 출신으로 10년 넘게 일한 연구원의 경우, 석·박사 후배들보다 인건비가 낮게 책정되는 실정이다. 연구원(대학원생)들이 하루 빨리 학위를 마치고 교수 자리를 잡거나, 사이언스·네이처·셀 등 유명 과학잡지에 단독으로 또는 공저자로 논문을 싣는 데 열을 올리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폐쇄적인 연구실 환경도 공개됐다. 서울대 수의대 생명공학연구팀 연구원은 31명이다. 미즈메디병원 의과학연구소 연구원 4, 5명도 황 교수 연구팀에 속한다. 그러나 연구팀은 서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구조다. 황 교수 연구팀은 줄기세포·동물복제·이종장기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줄기세포 연구의 경우, 체세포 핵은 서울대가, 배양이나 DNA 검증 등은 미즈메디 연구소가 맡았다. 이 같은 분업체제에서는 다른 파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논문조작을 방조·은폐한 ‘공범들’의 책임이 없다할 수 없다. “지도교수에게 찍히면 평생 고생”이라며 불합리한 지시를 참는 것은 한 개인의 사생활에 지나지 않는다.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행위다. 당장 논문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김선종 연구원이 “황 교수의 지시로 줄기 세포 2개를 11개로 늘렸으며 (서울대 수의대)강성근 교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실토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발족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몰랐을 ‘공모’ 사실이 계속 드러난다. 따라서 황 교수는 물론 논문 공저자 24명 그리고 논문 조작을 가능케 하고, 방관·묵인, 나아가 은폐를 시도한 사람들도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계, 언론계, 정계, 과학기술계 인사들과 주무부처인 과학기술부는 이 사건의 또 다른 종범”이라는 서울대 교수협의 지적은 옳다. 황 교수는 국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국민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했으나 그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자서전

보통 ‘자서전’은 한 생애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저술한다. 평생이 파란만장했거나 큰 족적을 남긴 명사들이 대부분 과거사를 회고하며 직접 쓰는 게 상례다. 일기나 자료를 중심으로 엮는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문장력이 부족한 사람은 구술(口述)을 통해 평생을 정리한다. 그래서 전기작가, 또는 대필작가라는 직업이 생겨났다. 정치인들이 자서전을 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저명한 사람은 인세 계약을 하고 정상적인 출판을 한다. 어느 정도 팔릴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는 경우다. 서울시장에 출마하려고 책을 낸 한나라당 홍준표, 박진 의원은 이 경우다. 두 의원이 낸 책은 출판기념회 한번으로 손익 분기점인 3천부를 넘겼다고 한다. 출판사는 제작비용을 뽑았고 의원들은 돈 안내고 홍보한데다 이후 판매량에 따라 인세도 받는다. 이런 경우는 극소수다. 그러나 판매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미리 출판비조로 권당 소정액을 지불하고 한정판을 찍는다. 이후 팔리는 만큼 출판사로부터 다시 돈을 가져오는 식이다. 미리 현찰을 지불하고 일정 분량을 찍어 출마할 지역구에 뿌린다. 그래서 매번 선거 때만 되면 자서전이 쏟아져 나온다. 자서전 만이 아니다. 지역이나 국가가 나아갈 비전, 정책을 담은 책까지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내년 5월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둔 요즘은 더욱 많다. 공식 선거운동기간 전 출판기념회가 유일한 합법적 선거운동 수단이기 때문이다. 공직자선거법에 의해 출판기념회가 금지되는 내년 3월2일 이전까지 정치인들의 이름으로 나오는 책 발간과 출판기념회는 계속될 게 분명하다. 문제는 자서전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구분이 안되는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후보가 원하는대로 대필작가에 의해 과거사가 미화되고 각색되는 자서전은 소설이지 인생회고가 아니다. 자신의 이미지와 경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책은 오히려 불신감을 줄 수도 있다. 지난 17대 총선 당시 어떤 후보는 한달 만에 급조한 자서전 3만5천부를 무더기로 살포했다. 책 살포는 선거법상 기부행위이지만 선관위가 일일이 단속하기 어려운 점을 후보들은 최대한 이용한다. 그러나 선거 때면 쏟아져 나온 자서전이나 정책집들은 대부분이 쓰레기장으로 직행한다. 정치인들이 두고 두고 보전될 자서전을 냈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실학사상의 자원화

바로크(baroque)는 17~18세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유행된 회화·조각·건축·문학·음악 장식미술의 양식으로 바로크 예술의 장르를 형성한다. 안정감이 있는 클래식(classic)과는 달리 발랄한 동감(動感)을 지닌 것이 바로크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바로크 양식의 건축은 원형이나 사각형 같은 정형(定型)이 아니고 불규칙한 모양에 안팎이 눈부시도록 화려하다. 교회 건물로는 바티칸시의 산 피에트르 대성당, 속세의 건물로는 프랑스 루이 왕조의 베르사유궁전이 대표적이다. 루이 13세의 이궁(離宮)으로 세워진 것을 루이 14세가 1664년부터 1714년까지 무려 50년에 걸친 역사(役事)끝에 대궁전으로 완성했다. ‘왕의 거실’ ‘궁정 예배당’ ‘거울의 방’ 등은 웅대 장려한 바로크 미술이 집대성 돼 있다. 1783년 미국 독립전쟁 종결에 따른 영국과 프랑스의 조인식, 1919년 1차대전 후의 베르사유조약 및 베르사유체제 등 많은 역사적 사실이 이 고궁에서 이루어졌다. 이 외에 베르사유궁전을 중심으로 17~18세기에 활약한 궁정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베르사유 악파(樂派), 궁중 정원을 모방하는 베르사유 조경(造景) 등 많은 유파를 남겼다. 관광명소가 된 베르사유궁전 ‘거울의 방’이 1차 보수공사를 끝내고 지난 19일 공개됐다. 국왕 접견실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던 ‘거울의 방’은 길이 73m이며, 루이 14세의 업적을 묘사한 궁정화가 르브링의 그림이 천장 가득히 그려져 있다. 주목되는 것은 2차 보수공사가 끝나는 2007년 4월부터는 예약된 관광객만이 구경할 수 있다는 베르사유궁전측의 발표다. 우리의 문화재도 좀 더 적극적으로 관광자원화 할 필요성을 갖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華城)도 그렇고 행궁(行宮)도 그렇다. 정조대왕의 이궁인 행궁은 바로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안정감 넘치는 대표적 클래식 고궁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화성과 행궁이 간직하고 있는 정조대왕의 실학사상이다. 실학사상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한 무형 문화재로 소중한 자원이다.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실학사상을 인식시키는 것은 고유한 우리의 관광산업이다./임양은 주필

‘노 터치’(No touch)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조 말 외세가 국내에 와서 금광 채굴권을 가졌을 때다. 금맥이 발견되면 서양인 광주(鑛主)가 손대지 말라는 뜻으로 ‘노 터치!’하고 외쳤던 게 ‘노다지’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설일 뿐, 노다지는 금맥을 일컫는 순수한 우리 말이라고 믿는다. 50~60년 전까지만 해도 금광이 있었다. 전 재산을 다 털어 금광 채굴에 나서 노다지를 발견하면 일시에 거부(巨富)가 되지만, 끝내 노다지를 찾지 못하면 알거지가 되는 게 금광사업이었다. 국내에 금광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한지가 벌써 수십년 됐다. 국내 금 수요량은 모두가 수입품이다. 금은 시국이 혼란스럽거나 전쟁시엔 가변성이 많은 화폐가치보다 절대치가 더 높아 가격이 앙등한다. 얼마전에 본지 경제면에 금값이 치솟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시국이 그럴만큼 혼란스런 것도 아니고 전쟁시는 더욱 아니다. 이런데도 금값이 오르는 것은 세계 시장의 영향 때문이다. 세계 최대 금 생산국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그런데 이제 거의 바닥이 났다. 전에는 채굴이 어려워 외면했던 험준한 곳으로 금광 채굴의 눈을 돌리다 보니 생산비가 점점 더 높아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올 금 생산량은 80년만에 가장 낮은데다가 생산비용은 껑충뛰었다. 온스(31.103g)당 362달러가 먹혀 2년전 300달러를 밑돌던 것에 비해 62달러 이상이나 올랐다. 여기에 중국 등 여러나라의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을 줄여 금 투자 비중을 높여 가수요를 부채질하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는 최근 금값이 온스당 519달러까지 치솟은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1~2년 사이에 600달러 선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 원유가격이 날마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판에 금속산업의 대표격인 금값마저 불안하다. 지하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새해엔 어느 시추공에서 기름이 솟구쳤다거나 아니면 어느 산에서 노다지가 터졌다는 기적같은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임양은 주필

성탄일의 소망

서울 견지동 우정국로에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조계사가 건 성탄 축하 메시지다. 조계사 경내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됐다. 대구시 봉덕동 관음사에서도 산타 모자를 쓴 스님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보도사진에 나타난 산타모 스님들의 미소가 무척이나 해맑아 보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성탄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예수의 탄생은 우리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가르쳤다”며 “이는 부처가 가르친 지혜와 자비의 실천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주교에서 석가 탄신을 기리는 석탄일에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한 적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성철 스님이 해인사에서 열반했을 때 정중한 조의를 표했었다. 종교마다 의식(儀式)과 교리(敎理)가 다르다. 문화의 충돌은 대부분이 종교간의 충돌이다. 중동분쟁도 이에 속한다. 이런 가운데 보여주는 성탄일, 석탄일의 상호 축하 메시지는 보기에 참 좋다. ‘기쁘도다 성은이 가득찬 마리아 / 주님과 함께 하시도다 / 당신께서는 여자들 중에서 축복받으시고 / 태내의 아기 예수님도 축복받으시도다…’ 이는 성모 마리아를 찬미하는 ‘천사축사’(天使祝詞)의 첫 머리다. 예수(Jesus)는 히브리어로 ‘신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졌다. 그리스도(Christ)는 ‘구세주’ ‘왕’의 의미가 담긴 최고 호칭이다. 예수는 서른살 때 까지 나자렛에서 양부 요셉을 도우며 목수일을 하다가 신의 계시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팔레스티나 각지를 돌며 백성들을 일깨우고 이적을 창조하곤 했다. 이윽고 바리세인들에게 국사범으로 잡혀 골고다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지 사흘만에 부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람산에서 승천하셨다. 예수의 공생애 3년은 인류 구원의 고행이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이룩하는 크리스마스는 어제로 지났지만 그 소망은 영원한 인류의 소망이다. / 임양은 주필

예비 살인행위

미국의 경우,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벌금액이 변호사비 등을 포함해 700만원이 넘는다. 또 음주운전으로 인해 사상자가 생겼을 때는 최고 종신형의 무거운 형량이 뒤따른다. 음주 가능성이 있을 경우 단속경찰 직권으로 유치장에 구금할 수 있는 등 경찰의 권한도 강력하다. 이탈리아는 면허정지자의 경우 아예 차량을 국가가 압수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2002년 대통령 직속기구까지 만들어 교통경찰의 권한을 강화하고 음주운전을 대대적으로 단속한 결과 7천242명에 달하던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2003년에는 5천217명으로 28%나 감소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음주운전에 적발되면 벌금이 100만~300만원이다. 음주운전은 뺑소니, 무면허운전과 함께 ‘교통의 3대악’으로 손꼽히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운전자 본인 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재산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교통사고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많은 음주운전자들이 ‘사고만 안 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음주운전을 가볍게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잦은 ‘사면’이다. 올해 실시된 8·15 특별사면 이후 한 광역시에서 실시한 음주단속에 적발된 운전자의 60%가 사면받은 사람들이었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어느 선진국에서도 음주운전자들에 대한 사면은 찾아볼 수 없다. 호주의 경우 사업용으로 등록된 차량을 음주상태에서 운전하다 적발되면 가중처벌을 하고 있다. 생계형 운전자 구제를 구실로 때만 되면 음주운전자를 구제해 주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다. 음주운전 사고자는 ‘저승사자’와 다름 없다. 음주운전자는 사고 때 혼자 죽지 않고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간다.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인해 사망한 875명 중 508명(58%)은 지나가던 행인이나 피해차량의 운전자들이었다. 반면 사고로 죽는 음주운전자는 그보다 적은 367명에 불과했다. 음주운전 피해를 막기 위해선 처벌규정이 강화돼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음주운전은 사실상 예비 살인행위다. 사면과 같은 선심성 정책은 음주운전자를 양산해 선의의 피해자를 늘려갈 뿐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동시에 요구된다. 연말을 맞아 발생할 음주운전 사고가 걱정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충견·의견

개를 영물(靈物)이라고 한다. 주인 가족들을 알아 보고 따르는 모습을 보면 그렇기는 하다. 주인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구별할 줄 안다거나 아파트 15층에 사는 애완견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주인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문쪽을 바라보며 짖는 모습은 신기하다. 우리나라 민속·설화에 나오는 개들의 행적이 꾸며낸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준다. 경상북도 선산군 도개면 신림동, 평안남도 용강군 귀성면 토성리, 평양 선교리,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전남 승주군 낙안읍 교촌리, 전북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 등에 남아 있는 의구총(義狗塚)·의구비(義狗碑)·의견비(義犬碑)가 개를 인간과 상통하는 영감적인 동물로 본 증거다. 이들 개는 화재로 부터 주인을 구하고 대신 죽었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고려 충렬왕 8년(1282)에는 개성의 진고개에서 개가 사고무친의 눈먼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밥을 얻어 먹이고 물을 먹여 키워 관청에서 개에 벼슬을 내리고 그 충직함을 기렸다고 한다. 전생에 사람이었던 여인이 개로 환생했다는 설화도 전한다. 옛날 경주 고을에 아들 딸 두 자식을 키워 시집·장가 보내느라 먹을 것도 못 먹고 고생을 일삼다가 죽은 최씨댁 과부가 개로 환생하여 자식들의 집을 지키며 살았다. 어느 날 한 중이 와서 그 개는 바로 당신의 어머니가 환생한 것이니 잘 먹이고 유람을 시켜 주라고 하였다. 팔도유람을 마치고 경주집에 돌아오는 도중에 어느 장소에 도착하자 그 개는 발로 땅을 헤치면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 사람들이 그 곳에 개를 묻었는데, 그 무덤의 발복(發福)으로 최씨집이 자자손손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또 조선시대 중종 때의 전라감사 정엄(鄭掩)은 통신업무에 토종개를 이용하여 막대한 통신비를 절약했다고 전해 온다. 개는 십이지(十二支) 동물 가운데 11번째 지킴이로 사람과 가장 가깝고 사랑 받는 동반자로 인식돼 왔다. 개는 우리 조상에게 잡귀와 액운을 물리쳐 집안의 행복을 지켜주는 동물로 인식돼 왔다. 나쁜 액을 막기 위해 집 대문이나 광문에 붙이는 문배도(門排圖)에도 개를 그려 넣었고, 작게 접을 수 있는 종이에 그린 개는 몸의 안전을 위한 부적으로 가지고 다녔다. 2006년 병술년 개띠해가 기다려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개(犬) 학대

우리의 선조들은 주둥이가 뾰족하여 사냥을 잘 하는 사냥개를 전견(田犬), 주둥이가 짧고 잘 짖어서 집을 지키는 개를 폐견(吠犬), 살이 많아 잡아먹기에 알맞은 개를 식견(食犬)으로 불렀다. 개는 주로 수렵·목양·경주·수색·애완 등을 목적으로 길렀지만, 에스키모인·아메리카 인디언·아시아의 동북 및 시베리아 북부지방 등에서는 썰매를 끄는 데, 티베트에서는 짐을 실어 나르는 데 개를 많이 이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개가죽으로 장구를 만들었고 꼬리로는 비를, 털가죽으로는 방한용 외투와 모자 등을 만들었다. 개는 이렇게 사람에게 순응하고 이용 당하는 동물로 인식돼 왔는데 요즘은 개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 졌고 심지어 어린이나 노약자의 경우 개에 물려 숨지거나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개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는 것은 사전지식 없이 맹견 또는 맹견 잡종을 사육하기 때문이라고 동물학자들은 말한다. 개를 학대하는 것이 개가 사람을 공격하는 주된 이유라는 분석도 나왔다. 어린 아이가 집에서 기르던 개에 물려 죽은 경우, 가족이 집을 비우는 바람에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했고, 이같은 관리 부실(학대)이 주인을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얘기다. 특히 저소득층에서 식용으로 팔기 위해 개를 열악한 환경에서 키우는 것도 사고를 부추긴다고 한다. 식용견들은 대부분 몸집을 부풀리기 위해 철창에 가둬 사육하는 데 이는 개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 줘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밥을 제때 주지 않거나 자주 때리는 일상적 학대도 개를 공격형으로 만든다고 한다. 버려진 개도 잠재적인 위협이다. 우리나라의 애완견이 300만마리로 알려졌는데 이 중 버려진 개가 5만여 마리나 된다. 애완견 붐이 일면서 개를 기르는 가정이 급증하고 있으나 사육 요령도 모르는 채 무턱대고 기르는 것도 문제점이다. 특히 버려진 개는 자칫 광견병 등 치명적인 동물 전염병의 인체 감염이 우려된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애완견을 만질 때 갑자기 공격하는 건 어린이가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개가 사람을 공격하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개를 학대하지 말라’는 논리다. 사람이 견권(犬權)을 존중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임병호 논설위원

동지(冬至)

음력 동짓달은 밤이 유난히 길다. 황진이는 동짓달 밤을 두고 이런 고시조를 남겼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둘러내어 / 춘풍 이불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 어루신님 오신날 밤 구비구비 펴리라.’ 여기서 ‘어루신’은 ‘얼다’의 의미어로 ‘교합’을 뜻한다. 당대의 도학자며 풍류객이던 서화담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조다. 송악산 동굴에서 10년이나 면벽(벽을 마주하며) 참선한 지족 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케 함으로써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속담을 낳게 한 황진이도 서화담을 유혹하는 덴 성공하지 못했다. 황진이 얘기를 하다보니 고시조 한 수를 더 인용할 생각이 난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누었는다 /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슬어 하노라’ 이 역시 그 무렵의 풍류시인 임백호가 황진이 묘소 앞에서 지은 시조다. 여기서 ‘자는다’ ‘누었는다’는 ‘자는구나’ 누웠구나’ 하는 감탄사가 아니다. 옛글(고어)의 어법상 “ㄴ다” 법으로 ‘자느냐’ ‘누웠느냐’하는 의문사다. 황진이가 독수공방으로 모질도록 길게 느낀 동짓달 밤도 동짓날을 고비로 차츰 짧아지기 시작해 여름철 하지가 되면 한해 중 가장 짧은 밤이 된다. 그러니까 내일 22일 밤은 동짓달 중에도 가장 밤이 긴 동짓날이다. 동짓날은 음력이지만 동짓달 며칠이 동짓날인 지는 지구의 자전에 따라 해마다 다르다. 하지만 양력으로는 어느 해가 되든 12월22일이 동짓날이다. 그래서 음력 동짓달 10일 안에 동짓날이 들면 ‘아기동지’라고 하여 동지죽을 쑤어먹지 않는다. 올 동짓날은 장년과 노년 사이인 음력 21일이므로 동지죽을 쑤어먹는 동짓날이다. 햇찹쌀로 빚은 새알을 햇 팥을 삶아 으깬 물에 쑤는 동지죽은 탄수화물 등이 풍부해 이를테면 겨울철 보양식이다. 전래 풍습은 잡귀를 쫓는다고 믿어 동지죽을 쑤면 집 바깥 기둥뿌리 등 곳곳에 뿌렸다. 동지죽 새알 만드는 것을 거들면서 싫증이 나면 반죽을 빨리 없애려고 크게 만들다가 “그렇게 하려면 그만 두라”는 아내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동지죽을 먹으면 설을 쇠지 않았어도 벌써 한 살 더 먹은 것으로 치는 걸로 전해진다. / 임양은 주필

‘10大 가수’

인기가요 순위를 선정하는 절차가 꽤나 복잡했다. 말로는 시청자의 투표에 의해 시청자가 뽑는다고 했다. 시청자의 표수를 산정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변수가 있다. 디스크 시장 점유율 조사가 포함되는 데 이의 조사가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다. 더 큰 변수가 또 있다. 방송사 가요 담당팀이 구성한 자체 ‘위원회’에서 위원들이 선정한 한 표는 전문가라는 구실로 시청자의 한 표보다 몇 십배나 더 많게 환산됐다. 이러다 보니 방송사가 발표하는 인기 순위가 이상하다는 시청자들의 의문이 빗발치곤 했다. 이런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이 지금은 없어진 건 당연하다. 텔레비전 방송의 ‘10대가수 가요제’가 해마다 있어왔다. ‘10대가수’에 드는 것은 가수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해의 ‘가수왕’이 되면 밤무대 출연료가 껑충 뛰곤했다. 노래 한 곡으로 ‘가수왕’ 자리에 오른 가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10대가수’ 행사의 권위가 이젠 위협받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SG워너비가 한 번도 출연하지 않은 방송사에서 주는 상을 받을 수 없다며 수상 거부를 선언한 데 이어 보아, 윤도현, 동방신기 등 네팀이 불참하겠다고 밝혀와 MBC는 올 10대가수 가요제를 취소했다’는 것이다. MBC측은 SG워너비의 출연은 없었지만 앨범 등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공정하게 조사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국내 가요의 연말을 결산하는 흥행에는 결국 실패했다. 수상 거부의 이유가 어떻든 간에 감히 텔레비전 방송에서 주겠다는 상을 가수가 거부하는 것은 놀라운 변화다. 이는 한류 열풍으로 스타급 가수들의 위상이 높아진데다가 가요팬들은 인터넷을 통해 마음대로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가수나 가수가 소속된 프로덕션이 방송사 관계자들의 눈치를 봐야했던 게 이제는 달라져가는 추세가 됐다. 물론 모든 가수가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조짐이 괜찮다. 영향력 높은 가수를 둔 프로덕션의 눈치를 되레 방송사가 살펴야 하는 지상파의 변화는 시장주의가 제대로 형성돼가는 것으로 보아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 임양은 주필

LA갈비

미국산 갈비가 LA갈비다. 국내에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LA갈비로 불리게 됐는진 알 수 없다. LA갈비는 깊은 맛은 없지만 값이 비교적 저렴해 많이 소비됐다. LA갈비가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광우병 소동으로 막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해제는 미국 정부가 끈질기게 요구해온 일이다. 하긴, 이제 광우병 파동도 끝난지가 꽤 됐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재개를 원칙적으로 동의하긴 했다. 그런데 LA갈비를 두고 두 나라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LA갈비까지 수입을 재개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광우병의 위험이 높은 뼈에 붙은 부위이기 때문인 것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광우병 안전 쇠고기 기준은 ‘뼈가 제거된 생후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로 규정해놓고 있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살코기만 수입을 허용할 방침인데 반해 미국은 LA갈비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LA갈비를 제외하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가 별 뜻이 없다고 보는 것이 미국측 생각이다. 예컨대 2003년의 국내 쇠고기 수입량 29만3천653t 가운데 68%에 해당하는 물량을 미국 쇠고기가 차지했다. 이토록 많은 미국산 수입 물량 19만9천428t 중 43%(8만6천100t)가 LA갈비였다. 이로 보아 LA갈비를 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미국으로선 반쪽수출밖에 안 되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는 일본도 취했다가 근래 LA갈비를 포함시켜 해제했다. 다만 갈비든 살코기든 수입 조건을 OIE의 생후 30개월 기준보다 높은 생후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로 한정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싼 한·미간 협상이 곧 속개된다. 생각같아서는 정부 생각대로 LA갈비는 수입에서 제외되는 방침이 관철되면 좋겠다. 만부득이 해서 LA갈비를 수입한다 해도 그렇다. 진짜 한우 갈비를 맛보기도 어렵지만 갈비먹기가 호주머니 사정상 어려운 서민들은 돼지갈비 맛이 차라리 LA갈비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임양은 주필

부족한 축구외교력

한국 축구가 ‘아시아 맹주’를 자부하면서 정작 아시아축구연맹(AFC) 무대에서는 변방에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 더구나 한국은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를 개최한 국가이다. 아시아지역 축구를 무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라면 당치 않다. 아시아축구연맹은 올림픽과 월드컵 아시아 예선의 경기를 조직하고, 심판을 배정하는 등 각국 협회에 대해 유·무형의 힘을 발휘하는 국제기구다. 가능한 한 각 위원회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들어 갈수록 한국축구 발전에 유리하다. 그러나 현재 아시아축구연맹 심판위원회에 2명, 경기위원회에 1명이 겨우 진출했다. 외교력을 발휘하기에는 인원상으로 역부족이다. 대한축구협회장이 아시아 무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관계망을 넓혀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 겸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 2년 연속 아시아축구연맹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다른 업무가 바빴다 해도 직무수행을 제대로 했다 할 수 없다. 한국이 아시아축구연맹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연유가 될 수 있다. 실례로 지난 11월 3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2005 아시아축구연맹 총회 시상식 때 한국 축구는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했다. 올해 국제대회에서 확실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축구 외교력과 위상이 낮은 탓이다. 아시아축구연맹의 든든한 스폰서인 일본이 올해의 국가대표팀, 올해의 여자선수, 올해의 여자국가대표팀, 다이아몬드상 등 4개 부문 상을 휩쓴 것이 그를 입증한다. 가와부치 사부로 일본축구협회 회장이 받은 다이아몬드상은 올해 처음 제정된 특별상이지만, 아시아 축구 무대에서의 일본 입김을 반영하는 것이다. 중동지역도 올해의 클럽팀, 올해의 선수, 올해의 풋살팀을 휩쓸었고, 북한의 최명호도 올해의 청소년 선수로 선정됐다. 한국 축구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한국 축구가 상을 하나도 받지 못한 것은 문제가 적지 않다. 알려지기로 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은 말레이시아인 출신으로 오랫 동안 연맹을 좌지우지해 왔으며 일본쪽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지역에서 따돌림 당하면서 월드컵경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정몽준 회장은 물론 대한축구협회는 아시아 축구 외교에도 관심을 갖기 바란다. 지나친 자만은 거만(倨慢)으로 보일 수가 있다./임병호 의원

眞覺國師

진각국사(1307·충렬왕 33~1382·우왕 8)는 고려시대의 고승이다. 흥해(지금의 경주)출신으로 1319년 출가하여 화엄종 반룡사주(盤龍社主) 일비(一非)를 은사로 득도하였다. 이때 화엄종뿐만 아니라 참선에도 힘써 선지(禪旨)에도 통달하였다. 1325년 승과에 급제하였고 그 뒤 김생사·부인사·덕천사·개태사 등지에서 수행하다가 1364년(공민왕 13) 중국 항저우(杭州) 소재 휴휴암(休休庵)에 이르렀다. 1366년 성안사의 만봉시위를 만나 가사(袈娑)와 선봉(禪棒)을 전해 받고 귀국, 치악산에 머물렀다. 1367년 공민왕이 사신을 보내 ‘대화엄종사 선교도총섭 전불심인 대지무애 성상원융(大華嚴宗師 禪敎都摠攝 傳佛心印 大智無碍 性相圓融)’이라는 법호를 내리고 국사(國師)로 봉하였다. 당시 왕사(王師)였던 나옹(懶翁)과 함께 선교(禪敎)의 공부시관(功夫試官)을 맡았으며, 신돈(辛旽)과도 친분이 깊었다. 1372년 공민왕의 명으로 경북 영주 부석사(浮石寺)의 주지가 되어 무량수전(無量壽殿) 등 퇴락한 당우와 가람을 보수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 뒤 금강산·오대산 등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382년(우왕 8) 수원 광교산 창성사(彰盛寺)에서 입적하였다. 광교산에는 ‘여든 아홉 암자’가 있었다. 지금의 용인시 신봉동쪽 광교산중에 있었던 서봉사(瑞峯寺)에서 고려 인종의 아들이었으나 승려가 된 현오국사(玄梧國師·1127~1179)가 일찍이 불사를 마련했고, 수원쪽 창성사에는 진각국사가 생애 마지막까지 거처하였으니 광교산에 ‘89암자’가 있었음은 전설이 아니다. 더구나 현오국사와 진각국사 두 고승은 부석사 출신이다. 지금은 절터와 현오국사탑비(보물 제9호), 진각국사탑비(보물 제14호)만 남아 있지만, 서봉사와 창성사의 규모가 우리나라 고건축물 중 최고로 꼽히는 부석사와 비견될 만하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의상대사가 화엄사상을 펼치기 위해 왕명으로 세운 부석사 주지를 진각국사가 역임했기 때문이다. 광교산사랑 시민운동본부가 최근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염상균 역사탐방연구회 이사가 밝힌 영상자료를 보면 창성사터 주위에서 대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축대가 분명한 석재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감로수가 마르지 않고 샘 솟는다. 광교산을 길이 보전해야 할 당위성이 진각국사탑비와 창성사터에도 서려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한남정맥의 주봉 광교산

한남정맥(漢南正脈)은 우리나라 산줄기 이름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였던 산줄기 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이로부터 가지친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 졌다. ‘산경표(山經表)’에 근거를 둔 이들 산줄기의 특징은 모두 강을 기준한 분수산맥으로 그 이름도 대부분 강이름에서 비롯됐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속리산에서 갈라진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의 끝인 안성 칠장산에서 시작된 한남정맥은 서북쪽으로 김포의 문수산까지 평야지대의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졌다. 이름 그대로 경기도의 한강본류와 남한강의 남쪽 유역의 분수령으로 해발 100m 미만의 낮은 등성이의 연결로서 서쪽에 위치한 인천·시흥·안산·수원·오산·평택· 천안 등 아산만을 중심한 해안평야와의 경계를 이룬 산줄기다. 한남정맥을 이룬 주요산은 칠현산·백운산·구봉산·대소곡둔현·석륜산·수유산·부아산·보개산·석성산·객망현·광교산(光敎山)·사근현·오봉산·수리산·오자산·소래산·성현·주안산·원적산·경명산·북성산·가현산·약산·문수산 등으로 ‘산경표’에 기록되었다. 현대지도에서의 산이름은 칠장산·도덕산·국사봉·상봉·달기봉·무너미고개·함박산·학고개·부아산·메주고개·할미성·응봉(鷹峰)·형제봉·광교산·백운산·수리산·소래산·성주산·철마산·계양산·가현산·필봉산·학운산·것고개·문수산 등이다. 이 많은 산들을 거느린 한남정맥의 주봉은 광교산이다. 이렇게 한남정맥은 경기수부지역인 수원을 비롯, 용인·광주·과천· 안양·의왕·부천·시흥·김포·화성·오산·평택·안성 등 경기남부권 일원을 포용하면서 한강수계(漢江水系)와 서해수계(西海水系)의 분수령을 이룬 경기산하(京畿山河)의 모체(母體)이다. 한양(漢陽)에 경기도 행정의 본산인 관찰부와 도청이 자리하고 있을 때인 조선왕조와 일제강점기, 해방정국, 1960년대는 삼각산 (북한산)이 경기도의 진산(鎭山)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경기도청이 수원에 있는 지금은 광교산이 경기도의 진산이 돼야 한다고 사단법인 광교산사랑 시민운동본부가 주장했다. 설득력이 있다. 지리적·역사적인 정리가 요구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25시’

이 정권은 한반도의 전쟁 재발을 부정한다. 북의 남침 재발을 우려하면 “정신나간 소릴 한다”고 한다. “지금이 어느 시댄 데 꼴통 보수같은 말을 또 한다”며 비웃는다. 산업화 세력의 정권에서 자행된 의문의 사건을 규명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불확실한 정황을 자의적 구미에 맞추어 꿰맞추는 추정 시나리오는 옳은 과거사 재평가가 아니다. 이 정권은 모순 투성이다. 북이 전쟁을 일으킬 염려는 없다면서, 북녘 동포의 인권 문제보다는 한반도 평화가 우선이라고 우긴다. 뒤집어 말하면 이북 동포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전쟁이 난다는 것이다. 의문의 과거사는 인권에 초점을 맞춰 재단하면서 현대사의 잔혹한 북녘 동포의 인권 유린엔 묵과하는 의도적 모순은 인식의 불균형이다. 행여 평양정권의 비위를 거스를세라, 이리 저리 눈치를 보아가며 올해도 1조5천억원 상당이나 퍼 준 대북지원은 봉(鳳)노릇 한 것이지 상대가 진정으로 고맙게 여기는 도움을 준 것이 못된다. 전쟁의 염려가 없는 진정한 남북 평화, 참다운 대북 지원은 따질 건 따져가며 추진해야 신뢰관계가 제대로 형성된다. 지금 우릴 먹여 살리는 것은 이 정권이 아니고 세계 11대(大) 경제규모에 드는 기업이다. 이런데도 정권은 기업을 박대한다. 기업의 투명성 요구가 기업의 적대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3년 가깝도록 기업을 위해 해 준 것은 법인세율을 2% 포인트 낮춰준 것 뿐, 권력의 칼날을 휘두른 온갖 규제로 주눅들게 만들었다. 사학(私學)의 비리를 예방한답시고 수백억, 수천억원의 사재를 들여 세운 사립학교 재단에 백수의 개방형 이사를 끼워들여 ‘감 놔라 배 놔라’하게 됐다. 자율성과 재산권의 침해가 사회주의를 방불케 한다. ‘25시’는 2차대전 후에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가 쓴 소설 제목이다. 획일주의의 인간사회 위기를 비판하고 나섰다. 1일 24시간이 아닌 ‘25시’는 해방되지 못한 인간사회의 절망적 시공(時空)을 뜻한다. 우린 지금 ‘25시’에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구원의 시공으로 탈출해야 한다. / 임양은 주필

거물 브로커의 검찰수사

‘판·검사와의 친분을 내세워 수사 대상이 된 기업체 등 세 곳으로부터 수 억원을 받은 혐의가 밝혀졌다’ ‘H건설 청탁수사와 관련해 경찰청 특수수사과 일부 경찰관의 계좌에 뭉칫돈이 입금된 사실을 포착해 대가성 여부를 수사 중이다’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산재사고로 구속 위기에 몰린 현장소장 구명을 위한 로비자금으로 수 억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경무관 이상 승진 대상자의 인사 청탁 한 건에 2억원 이상이 건네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은 이른바 정·관계 로비의 거물 법조 브로커로 불리는 윤상림씨(53·지리산스위스관광호텔회장)에 대한 검찰수사의 혐의 내용 중 몇 가지다. 그런데 검찰수사는 3주 째 접어들도록 변죽만 울릴 뿐 실체 규명은 영 지지부진하다. 윤씨는 카지노업체인 강원랜드에서 사용한 83억원 상당의 수표 출처도 추적조사를 받고 있다. 체포될 당시 압수된 수첩에는 수 백명의 정·관계 거물급 인사 명단이 전화번호와 함께 빽빽이 적혀있는 것이 발견됐다.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측 말에 의하면 ‘태도가 비협조적이고 불손하다’는 것이다. 윤씨는 검찰에서 “경찰서장들이 나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섰지만 (서장은) 급수가 낮아 내가 잘 상대해주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만이 아니다. “나는 아무리 (수사를 하여) 벗기고 벗겨도 드러나지 않는 양파와 같다”고도 했다. “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수많은 사람이 다친다”고도 말했다. 평소 유력인사의 혼사가 있으면 축의금으로 내놓은 돈이 자그마치 5천만원일만큼 거물 브로커다운 인맥 관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입을 여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은 재앙의 연속일 지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지지부진한 검찰수사가 이상하다. 수사에 어려움이 있는 것인 지, 다칠 사람이 많아서 처리에 어려움이 있는 것인 지 도시 이해가 안 된다. 덮어둘 수도 터뜨릴 수도 없어서 고심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임양은 주필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