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여권신장

일본 사람들은 성(姓)이 많다. 15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 산이나 냇가, 밭, 마을을 딴 성이 유별나게 많다. 야마무라(山村), 이시가와(石川), 다나카(田中), 야마타(山田), 야마시타(山下) 등 이밖에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일본의 상민들은 원래 성이 없었다. 성씨제가 제대로 실시된 것은 19세기 후반 서양문물을 도입한 메이지(明治)유신 때다. 갑자기 성을 만들려다 보니 산마을에 사는 어떤 사람은 山村, 냇가에 사는 또 어떤 사람은 石川, 밭가운데 사는 어떤 농부는 田中, 산에서 밭갈이 하는 어느 화전민은 山田, 산밑에 사는 어느 목부는 山下 등 이런 식으로 짓기 편한대로 지었던 것이다. 동양 삼국중 일본만이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은 성씨제를 하면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같은 부부동성제로 인해 결혼 후에는 친정 아버지의 성, 구성(舊姓)을 괄호안에 쓰기도 한다. 여권신장을 위해 전부터 부부별성제가 주장돼 왔던게 요즘 더욱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같다. 일본정부의 한 조사에 의하면 찬성 42.1%, 반대 29.9% (잘 모르겠다 28%)로 찬성이 처음으로 반대를 추월했다는 것이다. 일본 여성들이 부부별성제에 부담을 갖는 것은 부부의 성이 다르면 마치 결손가정 처럼 보여 자녀들에게 잘못된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지지대子가 18년전 일본 배구월드컵대회에 취재갔을 때다. 당시 남녀 대표팀에 안·권씨 커플이 있어 일본 기자들에게 기사감으로 얘기해 주었더니 한참뒤에 남편 선수는 안씬데 아내 선수는 왜 권씨냐며, 결혼 부부가 아니고 동거부부가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과 달라서 부부별성제를 쓰고 있다는 설명에 수긍은 하면서도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다. 남편 성을 따르는 일본의 민속과 법률은 메이지유신 이후 100년이 훨씬 넘었으니 그들로써는 이해가 선뜻 안됐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국내에서는 보편화된 부부별성제를 여권신장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본 여성계에서는 가히 여권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이를 위한 일본 민법의 개정이 언젠가는 있을지 두고 볼만하다. /白山

무서운 모기

사람에게 말라리아·상피병·일본뇌염·황열병 등 무서운 질병을 옮기는 모기는 파리목 긴뿔파리 아목(亞目)모기과에 속하는 곤충이다. 모기과는 학질모기 아과(亞科)·보통모기아과·왕모기아과의 세 아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에는 9속 47종이 기록돼 있다. 4∼11월에 걸쳐 출현하는 모기는 암놈만이 동물의 피를 빨며, 흡혈을 하여야만 알을 만들 수 있는 종류와 흡혈을 하지 않아도 첫배의 알을 만들 수 있는 종류가 있다. 알·유충·번데기·성충의 네 단계를 거치는 완전변태를 하는데 도랑·늪·논·웅덩이·연못 등에서 알을 낳는다. 모기는 봄·여름·가을에만 살아 있는 것으로 알지만, 동굴·볏짚단·돌담·하수구·지하실·헛간 등에서 성체로 월동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하여 1년 내내 모기를 쫓아내려고 주술적인 행위인 ‘모깃불’을 피웠다. 전라남도에서는 정월 열나흗 날 저녁에 모깃불을 피우고 “모기야, 깔따구야, 다 물러가라 ”고 외친다고 한다. 깔따구는 하지 때부터 해안지방에 나타나는데 곳에 따라서는 눈앞을 가릴 정도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사람의 피를 뜯는다고 한다. 경상남도에서는 대보름 날 새벽에 일어나서 마당에 짚불을 놓는데 이것을 ‘목개불(모깃불)’이라 한다. 여름 내내 모기를 쫓기 위해서인데 아이들이 그 위를 세번 뛰어 넘으면 몸에도 좋다고 한다. 이러한 관습들은 도서지방에 특히 더 많다. 열나흗 날 저녁 보름밥을 해놓고는 방의 먼지를 쓸어 담아 갯가에 가서 날려보내며 “모기·깔따구·벼룩 등아, 경치좋은 데로 날아가라 ”고 외친다. 이를 ‘모기 날리기’라고 한다. 이렇게 옛날에도 모기로 인한 피해는 극심했다. 국립보건원이 지난 6일부로 전국에 일본뇌염 경보를 발령했다. 모기에 물려 발병되는 일본뇌염은 두통, 발열, 구토, 설사 등의 초기 증상이 나타나며 심하면 혼수, 마비 등으로 이어진다. 치사율이 5∼10%나 되는데 환자의 20∼30%에 언어장애와 판단 능력 및 사지운동 저하 등의 후유증이 남는다. 일본뇌염에 걸리기 쉬운 노약자와 어린이는 물론 성인들도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게 최상의 예방책이다. 설마 하다간 큰일 당한다. 모기는 아주 고약하고도 무섭다. /淸河

지미 카터

미국의 대통령 가운데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은 5명이다. 닉슨(37대), 포드(38대), 카터(39대), 레이건(40∼41대), 클린턴(42∼43대) 등이다. 포드는 노쇄했고 레이건은 병상의 몸이다. 닉슨은 워터게이터의 불명예 속에서도 왕성한 저술활동을 통해 손상된 이미지를 상당히 회복했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섹스스캔들로 인한 막대한 소송 비용의 빚을 갚기위해 한차례에 10만달러씩 하는 강의행각에 바쁘다. 엊그제는 1천만 달러를 받는 회고록 집필이 계약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카터는 지금 국내에 와있다. 국제 해배타트의 ‘사랑의 집’짓기에 참여, 수석 자원봉사자의 긍지를 안고 직접 노동의 땀을 천안 현장에서 흘리고 있다. 카터는 벌써 77세의 나이다. 노구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함께 건축 현장에서 봉사하고 있다. 흔히 국내 유명인사들처럼 사진만 찍고마는 쇼가 아니고 진실로 도움이 되는 육체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카터는 대통령 당선 직후, 선거공약대로 주한미군 감축을 선언해 한반도 안전보장에 위협적인 사람이었다. 결국은 주한미군 감축은 크게 없었지만 한동안 우리나라에 부정적 이미지를 주었던 그가 한반도에 쏟는 애정은 각별하다. 1995년엔 대동강 유람선에서 고인이된 김일성 북측 주석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남북 정상회담을 주선했던 사람이다. 만일 김주석의 돌연한 유고가 없었던들 DJ가 굳이 펴양에 갈 필요조차 없었을 만큼 YS정권에서 이미 남북문제에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카터가 이국 땅에와서 흘리는 비지땀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전에도 아프리카의 대민 구혈에 참여한 그가 ‘사랑의 집 짓기’에 나선것은 새삼스런 것은 아니지만 전직 대통령이 인류사회의 복지구현을 위해 몸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정말 보기에 너무 좋다. 카터는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평양에 또 갈 용의가 있다고 한다. 우리도 전직대통령이 다섯 분은 못되지만 네분은 있다. 미국의 전직대통령들에 비해 국내 전직 대통령들 몇분이 정치적인 것은 나라를 위해 유감이다. 지미 카터처럼 정치를 초월한 여생의 봉사에 힘쓰는 전직 대통령을 우리도 갖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白山

팔달산 지킴이

수원 팔달산은 서울의 남산과 같다. 시가지 복판에 있으면서 명산의 정기를 뿜어주는 고마운 시민공원인 것이다. 이러한 팔달산이 쓰레기로 더럽혀지는게 안타까워 날마다 줍고 다니는 환경지킴이가 있다. 벌써 10년째다. 더우나 추우나 한결같이 쓰레기 줍기를 거르는 일이 없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고 나서는 이웃간에도 골목길을 쓰는 미풍양속이 사라졌다. 봉지값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지킴이는 대형봉지를 사들고 다니며 팔달산 쓰레기를 열심히 줍는다. 누가 알아주는 이도 없으나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팔달산을 오른김에 여기저기 다니며 쓰레기를 줍는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몰염치는 정말 양심이 쓰레기 같다 할 것이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줍는사람 따로 있어 줍고 주워도 한량없이 쏟아지는 쓰레기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힘닿는데까지 최선을 다해 줍는 것을 마치 소명처럼 알고 군말 한마디 없이 쓰레기를 줍는다. 잘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그만한 가게 하나를 내어 그럭저럭 집안을 꾸려가는 형편이다. 이런데도 날마다 대형 쓰레기봉투 값으로 들이는 돈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누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허허…”하고 웃어넘기곤 한다. 별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또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다. 적어도 쓰레기에 관한한 그는 팔달산의 의인이다. 지난 10년동안 주운 쓰레기를 합치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아마 수십트럭 분은 될 것이다. 사비도 꽤나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어제처럼 쓰레기를 줍고 내일도 주울 것이다. 그것도 일할 수 있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마음으로 줍는다. 그는 굳이 이름을 알아 무엇하느냐며 손사래를 저었다. 이래저래 알아본 이름이 이정규씨(李正揆)다. 환갑을 넘긴지가 한 두해쯤 돼보이는 나이다. 팔달구 남창동에 살고 있는 것으로만 알려졌을뿐 확실한 주소도 전화 번호도 알 수 없다. 팔달산운동회 모임이란 뜻을 가진 ‘팔운회’친목단체 회원인 것만은 분명하다. /白山

흙으로 빚는 미래

1996년 세계도자의 경연장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경기도 광주분원 제작의 17세기 백자항아리(철화백자용문호) 한 점이 841만달러에 경락되면서 세계도자기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한다. 우리도자기의 우월성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유구한 흙의 문화와 전통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를 만들어 낸 우리 선조들이 자랑스럽다. 이러한 한국도자기 예술세계를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세계도자기엑스포’가 마침내 2년여의 준비 끝에 8월 10일 개막식을 갖고 이천, 여주, 광주에서 80일간의 행사에 들어가게 된다. ‘흙으로 빚는 미래’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에서 500만명이 참관하게 된다고 하니 지방에서 열리는 행사로서는 가히 세계적인 행사인 셈이다. 모쪼록 동행사가 계획대로 차질없이 진행되어 한국도자의 전통과 명성을 전세계에 알리고 나아가 우리의 도자상품이 세계시장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유명상ㅍ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현대 도자기 산업은 빛나는 역사와 전통에 비해 세계시장에서는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독일, 영국 등 도자기 선진국 상품과의 경쟁이 힘에 겨운 것이 사실이다. 1988년에 1억7,163만달러 수출을 기록한 도자제품은 계속 감소해 지난해에는 5,947만달러에 그쳐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엑스포는 단순한 문화행사에 그쳐서는 안되고 도자제품의 수출산업화를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첨단 도자 신소재가 개발되어 자동차엔진 제작 등 첨단과학분야에까지도 그 용도가 확대된다고 한다. 신기술 및 디자인 개발과 해외마켓팅 활동에 모든 역량을 모아 이에 적극 대비해야 할 것이다. 가장 한국저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고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이번 엑스포 행사가 국민적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성공리에 개최되어 선조의 혼과 기술이 살아 숨쉬는 경기동부지역이 명실공히 흙으로 빚는 미래산업, 도자산업의 메카로 세계속에 자리잡게 되기를 기대한다. /무역협회 경기지부장 윤재혁

재해관리청

미국의 경우 국가차원의 재해와 재난은 대통령직속 전담기구인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관리한다. 미국 각 주에 10곳의 지부를 두고 있는 연방재난관리청은 재해·재난을 포함한 민방위 활동을 총괄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연방재난관리청도 재해 발생시 담당분야별로 업무를 관장하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재해·재난대책 수립시 상부에 일일이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야 하는 우리와는 달리 담당부서가 전결권을 행사한다. 일본의 방재 관련 최고기구는 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중앙방재회의로 한국과 비슷한데 1960년대부터 꾸준히 예방위주의 정책을 집행하여 왔다. 최근 들어서야 사후복구에서 사전예방 차원의 방재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다. 그런데 재해·재난관리 체계가 전시사태·자연재해·인위재난으로 구분된 우리나라는 자연재해와 인위재난의 법적 체제 내용이 중복되고 업무가 여러 부처로 분산돼 있어 일관된 정책 수립과 집행이 어렵다. 수해방지 대책의 경우 자연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대책법을 근간으로 기타 개별법에 의해 규정돼 있으나 자연재해대책법에는 행정자치부가, 농어업재해대책법에는 농림부와 해양수산부가 업무를 총괄토록 돼 있어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인위재난 관리도 마찬가지다. 재난완화 기능은 각 소관부처가, 재난준비 및 대응 기능은 행정자치부, 재난 후 복구 기능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뤄지는 등 3원화 돼 있어 일괄된 재난관리를 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자연재해는 홍수가 95% 이상을 차지했으나 재해유형이 과거에 비해 다양해졌다. 특히 올해는 1·2월에 2회에 걸쳐 30여년만의 폭설이 내렸고 5·6월에는 90여년만의 가뭄으로 또 최근에는 폭우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재해는 날로 대형화·다양화 돼 가는데 예방·복구는 ‘중구난방’이라 눈·비가 조금만 와도 그야말로 난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거기다가 모호한 관련법 때문에 업무가 분산돼 있고‘영(令)’이 제대로 안서 허둥지둥대다 보면 재해민만 통곡을 하게 된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재해·재난의 종합적 관리를 위한 가칭 ‘국가재해·재난관리법’제정과 재해·재난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독립기구로 ‘국가재해관리청’신설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淸河

풍뎅이같은 사람들

프랑스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1712∼1778)는 “민주주의에선 법을 준수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롭다” 말했다. 민주주의에서 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한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인본주의적 근거가 있다. 약속은 물론 지켜져야 한다. 조조(曹操)가 형주의 남양(南陽)에 근거지를 뒀던 장수(張繡)를 공격할 때였다. 군사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보리밭을 밟지 말라고 명했다. 물론 전장의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조조 자신이 타고 있던 말(馬)이 갑자기 무언가에 놀라 보리밭을 밟았다. 이에 조조는 군법을 어겼다 하여 스스로를 목베려 하였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만류해 상투를 베는 것으로 벌을 대신했다. 군법을 지키기 위해 솔선한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법치국가의 목적은 법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지난해 4·13 총선 때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며 낙천·낙선운동을 벌였던 총선연대 지도부 7명에게 법원이 선거법 위반협의를 인정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악법도 법’임을 입증한 셈이다. 자신의 말이 보리밭을 밟았다하여 목 대신 상투를 벤 조조는 그래도 준법주의자다. 우리 주위엔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지탄을 받아야 할 인사를 들라치면 아마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절차를 무시하고 서로 잘났다고 멱살잡이하는 국회의원들일 것이다. 체코 속담에 ‘법은 거미줄이다. 파리는 걸리고 풍뎅이는 빠져 나간다 ’는 말이 있다. 파리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이다. 배경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풍뎅이는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앞 뒤를 봐주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법망이 아무리 거미줄처럼 짜여 있어도 그 힘으로 뚫고 나간다. 풍뎅이같은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경쟁력은 떨어지고 행복지수가 낮아진다. 풍뎅이같은 사람들이 활개치는 이 세상에서 파란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한 손을 높이 들고 건너가는 서너살쯤된 어린이들을 보면 눈물겹도록 고맙다. /청하

늑대

식육목 개과에 속하는 동물인 늑대는 말승냥이라고 하며, 한자어로는 이리·승냥이와 함께 시랑(豺狼)으로 통칭된다. 우리나라의 늑대는 몸의 크기에 비하여 매우 강하다. 염소와 같은 동물을 물고 달아나도 사람이 잡을 수 없을 정도이다. 식욕도 왕성하여 송아지·산양 같은 것은 앉은자리에서 한 마리를 전부 먹을 수 있다. 이는 짐승의 뼈를 부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며 5,6일간 굶어도 살 수 있다. 늑대는 휴식하는 시간이 거의 없고 먹이를 구할 자신이 있을 때에는 어디든지 질주하는 습성이 있다. 낮에는 산림이 무성한 숲 또는 산림지대에 가까운 관목숲에서 가수면(假睡眠)상태로 휴식한다. 시각·청각·후각이 발달되어 있는데 특히 후각은 죽은 동물체의 냄새를 2k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죽은 동물의 고기도 잘 먹지만 들쭉과 같은 과실도 즐겨 먹으며, 들꿩·멧닭과 같은 야생조류도 잘 잡아 먹는다. 겨울이 되어 먹이가 부족해지면 인가 근처까지 내려와서 양·돼지·개 등을 잡아 먹는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늑대를 흉포하고 잔인한 맹수이면서도 어리석은 면을 가지고 있는 짐승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늑대가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이 혼자 넘지 못한다는 ‘ 늑대고개 ’가 있었던 반면에, 토끼·거북·늑대가 먹을 것을 놓고 높은 곳에 오르기와 나이 등을 견주었는데 거북에게 번번이 졌다는 민담이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또 음흉하면서도 어리숙한 남성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는 여우가 약삭빠르고 꾀많은 여자에 비유되는 것과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02학년도 고등학교 2종 교과서 중 한 사회과목 교과서 Ⅶ단원 ‘ 정치생활과 국가 ’1장 ‘ 현대정치의 과제 ’에서 정치를 늑대의 영역 다툼에 비유, 정치인들을 지나치게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록 이전투구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영역다툼을 벌이는 늑대로 비유할만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일찍부터 정치 혐오감을 심어줄 우려가 있어서라고 한다. 교과서에서 정치인을 늑대로 비유하다니, 기분이야 몹씨 나쁘겠지만 한국 정치인들로 하여금 크게 각성케 하는 대목임에는 분명하다. /淸河

밭도둑

가마니 곡식은 훔쳐가도 늘어놓은 곡식은 안훔쳤다. 늦가을 논바닥 곁에 타작한 벼를 말리기 위해 멍석에 늘어놓곤 했다. 며칠동안 말려야할 벼를 날마다 퍼담기가 번잡하므로 밤엔 멍석 한쪽으로 뒤덮어 놓곤 했다. 그시절 이라고 밤도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멍석의 벼를 훔쳐가는 일이란 없었다. 만일에 가마니에 담아 두었다면 그때도 손을 타기가 십상이었다. 가마니에 담은 곡식은 수확이 완전히 끝난 것을 의미한다. 도둑인심이라 하면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수확이전의 곡식은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그 무렵의 도둑 인심이었다. 무슨 소리냐며 요즘 시절이 한창인 참외 수박밭의 도둑을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참외 수박 도둑이 아니고 ‘참외서리’라고 하는 아이들의 장난으로 치부했다. 지금보다 못먹고 못살던 때도 그런 인심의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의 ‘참외서리’는 어김없이 절도로 몰린다. 어쨌든 늘어놓은 곡식은 손을 대지않던 도둑인심이 사나워져 이젠 영락없이 손 타는 것으로도 모자라 밭도둑까지 생겼다. 밭에서 한참 자라는 고추나 깨같은 곡식을 차량까지 대놓고 송두리채 뽑아 실어가는 천하에 몹쓸 도둑이 생긴지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점점 더해가는게 사회 병리현상의 심각성이 있다. 요즘은 인삼밭 도둑이 설치는 모양이다. 이런 도둑은 남이 애써 가꿔놓은 농사를 일시에 폐농시켜 살림을 거덜나게 만든다. 죄질이 나빠도 아주 나쁜 악질사범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밭도둑 때문에 농사를 짓지 못할 판이라는 말이 안나온다는 보장이 없을 것같다. 주인이 지킨다지만 지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속담에 ‘도둑 하나를 열이 지키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회병리현상이 어쩌다가 이토록 타락했는지 위정자들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경찰의 방범활동 강화다. 밭도둑을 방범활동의 정식 항목으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제한된 경찰 인력에 광활한 밭도둑 우범지대를 차량순찰 하기란 물론 어려울 것이다. 애로가 많겠지만 그래도 농민이 의지할 곳이란 경찰밖에 없다. /白山

보신탕

일본이나 몽골 사람들은 말 고기를 먹는다. 지구촌은 저마다 이처럼 고유한 음식문화가 있다. 인도는 암소를 신성시 한다. 숫소만 먹는다. 근래엔 암소를 밀도살한다는 것으로 보아 금기가 조금씩 깨지는듯 싶다. 인간이 육식을 포기하지 않는한 모든 동물은 결국 인간의 먹이다. 다만 선별하고 있을 뿐이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다른 선별의 차이가 이질감을 낳을 때가 있다. 개고기도 마찬가지다. 작고한 지학순 대주교가 어느 외국의 모임에서 “한국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다지요?”하는 힐난조 물음에 “식용 개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자신도 개고기를 무척 좋아했던 그분은 “외국인 들은 우리가 애완용 개를 먹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뭏든 보신탕이 외국인, 특히 서구인들에게 입방아 감이 되곤 한다. 프랑스의 육체파 여배우 B·B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개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라’는 편지를 보낸적이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때 보신탕집을 한동안 억제했던 것은 이런 영향도 없지 않았다. 얼마전에는 영국의 어느 텔레비젼 방송이 우리의 개고기 식품문화를 방영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한국 대사관 앞에서 ‘보신문화 척결하라’는 등의 피킷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시위를 벌인 이들은 동물보호주의자들 이라는 것이다. 육식을 주식삼아 서구인들이 즐기는 쇠고기도 동물이긴 매한가지다. 멸종돼가는 희귀 동물이 아니고는 특별히 보호받을 동물이 따로 구분되기가 어렵다. 개나 소같은 일상적 동물을 보호하기는 동물보호주의자들이라 해서 일반인과 다를게 없다. 잘은 몰라도 내년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올림픽때처럼 또 한차례 보신탕 시비가 외국인들 사이에 일것 같다. 하긴 국내에서도 보신탕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적잖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따지면 식성의 차별이다. 안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먹는 사람이 있기는 어느 음식이든 다 있는 현상이다. 외국사람 눈치 보느라고 개고기 처리가 법의 사각지대가 돼있다. 지난해인가 국회에서 식품위생법을 고쳐 명화화 하려했으나 좀더 두고 보자는 식으로 유보됐다. 하다못해 닭같은 것도 처리하는 도계장이 있는데 개고기 처리장은 없는 것이다. /白山

침수소동

어제 자정부터 오전 11시까지 내린 비로 또한번 침수 소동을 빚었다. 광명, 시흥, 안산, 부천등지서 363가구가 물에 잠겼다. 이가운데 170가구가 침수한 광명에는 112mm, 110가구가 침수한 시흥은 148mm로 도내 평균 강우량 76.7mm에 비해서 훨씬 많은 비가 내렸다. 그러나 11시간동안에 내린 112∼148mm의 비로 그많은 집이 침수재난을 겪은 것은 배수시설의 결함 때문이다. 어느 도시라 할것 없이 하수구 등 배수시설이 일제때 수준에서 탈피치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심히 우려한다. 국토의 도시화 심화로 도시면적은 예전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광대해졌다. 이 광대한 도시는 또 95%이상이 포장화돼 비가 쏟아져도 스며들 땅이 별로 없다. 도시에 내린 비가 빠질 곳이라고는 하수구 뿐이다. 이런데도 배수시설 규모는 예전 수준인 것이다. 이나마 준설도 잘 안돼 빗물이 빠지기에 무척 벅차다. 미처 빠지지 못한 물이 낮은 지대로 흘러 비가 올 때마다 으례 겪는 것이 침수 소동이다. 이를테면 한국형 관재인 것이다. 그것도 1시간에 장대비로 100∼200mm쯤 한꺼번에 쏟아졌다 하면 또 모를 일이다. 보통비에도 비만 왔다하면 주택가가 침수되는 판이니 주민이 마음편히 살수가 없다. 서울시는 앞으로 반지하주택을 짓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한동안 검토했던 모양이다. 침수피해의 대부분이 반지하 주택이고 보면 오죽 했으면 그렇겠나 하는 딱한 심정은 짐작 하지만 될 일도 아니고 또 그런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응급대책으로는 취약지마다 기동력 있는 양수기팀 가동으로 비가 많이 올때면 가옥이 침수되기 전에 물을 빼돌리는 일이다. 다음으로는 하수구의 철저한 준설이다. 준설을 몇해째 안한 지역이 수두룩 하다. 장기대책으로는 하수구시설의 확대다. 현재뿐만이 아니고 장차 도시규모가 커질 것을 예상, 일정수준 이상으로 규모를 확대하는 단계적 추진이 요구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단체장들은 이런 일엔 신경을 안쓴다. 당장은 눈에 띄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수구 설계 및 지도나 제대로 갖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白山

伏음식

남한 사람들이 특히 여름철에 즐겨 먹는 개고기를 북한에서는 ‘단고기’라고 말한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개기름이 발 뒤축에 떨어져도 몸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름철 건강관리에 좋다는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1993년 2월에 발간한 ‘조선요리’에 ‘단고기는 말 그대로 그 맛이 달고 영양가가 높을 뿐만 아니라 소화흡수가 잘 돼 건강에 대단히 좋다’고 표현돼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개 한마리값이 5백∼6백원이나 될 뿐만아니라 식당에서 파는 1인분 개고기 가격이 2원50전이어서 노동자들은 월급(한달 평균 봉급 1백원)에 비해 비싼 편이라 먹기가 쉽지 않다. 여름철에 북한 주민들이 가장 즐겨먹는 대중음식으로는 냉면이다. 북한 냉면이 크게 평양·함흥냉면으로 나눠지는 것는 남한 주민들도 거의 알고 있지만 북한에서 냉면집으로는 평양의 옥류관·청류관, 함흥의 신흥관이 유명하다. 이들 냉면집은 요즘같은 삼복중에는 냉면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하지만 옥류관의 냉면가격이 한그릇에 5원50전이어서 일반 주민들이 자주 먹기에는 부담이 된다. 그렇게 건강관리에 좋다는 단고기보다 배가 비싼 셈이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은 여름철 별식으로 ‘토끼곰’‘닭곰’‘단고기’등을 찾는다는데 ‘곰’은 남한의 ‘탕(湯)에 해당하는 말이다. 토끼곰이 애용되는 것는 평양시내를 제외한 북한 전 지역의 기업소·학교·가정에서 주민들이 길러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계탕과 비슷하게 밤·인삼·찹쌀 등을 토끼고기와 넣어 만드는 것으로 여름철뿐 아니라 1년 내내 집에서 먹을 수 있다. 삼계탕에 해당하는 ‘닭곰’은 남한과 달리 인삼을 넣지 않고 어린 닭 대신 주로 다 자란 큰 닭을 고아 만든다. 사위가 오면 장모가 닭곰을 해주는 것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 같다. 같은 민족이라 하여도 음식을 내는 맛은 남한에서도 경상도·전라도·제주도·충청도·강원도·경기도가 조금씩 다르고 또 그에 따라 맛도 특색이 있다. 북한이라고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삼복중이어서 그런지 평양의 옥류관·청류관이나 함흥의 신흥관에 가서 맛있는 냉면을, 토끼곰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날이 더욱 기다려진다. /淸河

가로등 감전사

관용 승용차만 타고 다니는 벼슬아치들은 아마 서민들 사정을 모를 것이다. 가로등에 언제 또 감전사할 줄 모르는 우중 행보의 불안을. 지난번 호우때 수도권 일원에서 발생한 어처구니 없는 감전사 사고투성이 이후 “이젠 길 걷기도 겁이 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가로등 없는 길이 없으니 그렇다고 가로등을 피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자의 이동으로 생기는 에너지, 즉 전기가 도체사이의 절연이 잘못 됐거나 손상돼 전류가 새어 흐르는 현상이 누전이다. 살다보니 어쩌다가 이젠 가로등 누전으로 생목숨을 잃는 험한 지경이 다 됐다. 더욱 한심한 것은 책임회피다. ‘익사했다’느니, ‘누전이 아니다’느니, 심지어는 ‘불가피했다’느니 하는 별 희한한 소리가 다 나온다. 백주 대낮에 무고한 시민들이 대로상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비명횡사 했다. 그런데도 책임지겠다는 데가 단 한군데도 없다. 재수없는 팔자 소관으로 돌리란 말인지, 도대체가 뻔뻔스러워도 너무 뻔뻔하다. 전기안전공사 자료에 의하면 올들어 지난 6월 말까지 전국의 가로등 8천755개소를 점검. 38.8%가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호등의 부적합 판정률은 이보다 많아 4천510개소중 57.6%나 된다. 가로등이나 신호등 관리는 기초자치단체의 소관이다. ‘설마’하고 그대로 놔두었다가 참변을 일으키고 만 것이다. 앞으로 또 사고가 안난다는 보장이 없다. 지역주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치단체가 주민 생명의 위협요인을 묵과하였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혐의 성립 여부를 검토해볼만 하다. 대저 가로등이나 신호등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대서야 말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변명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서민들이 여전히 불안해 하는 것은 사고이후 안전대책을 강구 했다는 후속조치를 아직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되지도 않은 책임회피에 급급하기 보단 다시는 이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성실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白山

가로등 감전사

관용 승용차만 타고 다니는 벼슬아치들은 아마 서민들 사정을 모를 것이다. 가로등에 언제 또 감전사할 줄 모르는 우중 행보의 불안을. 지난번 호우때 수도권 일원에서 발생한 어처구니 없는 감전사 사고투성이 이후 “이젠 길 걷기도 겁이 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가로등 없는 길이 없으니 그렇다고 가로등을 피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자의 이동으로 생기는 에너지, 즉 전기가 도체사이의 절연이 잘못 됐거나 손상돼 전류가 새어 흐르는 현상이 누전이다. 살다보니 어쩌다가 이젠 가로등 누전으로 생목숨을 잃는 험한 지경이 다 됐다. 더욱 한심한 것은 책임회피다. ‘익사했다’느니, ‘누전이 아니다’느니, 심지어는 ‘불가피했다’느니 하는 별 희한한 소리가 다 나온다. 백주 대낮에 무고한 시민들이 대로상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비명횡사 했다. 그런데도 책임지겠다는 데가 단 한군데도 없다. 재수없는 팔자 소관으로 돌리란 말인지, 도대체가 뻔뻔스러워도 너무 뻔뻔하다. 전기안전공사 자료에 의하면 올들어 지난 6월 말까지 전국의 가로등 8천755개소를 점검. 38.8%가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호등의 부적합 판정률은 이보다 많아 4천510개소중 57.6%나 된다. 가로등이나 신호등 관리는 기초자치단체의 소관이다. ‘설마’하고 그대로 놔두었다가 참변을 일으키고 만 것이다. 앞으로 또 사고가 안난다는 보장이 없다. 지역주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치단체가 주민 생명의 위협요인을 묵과하였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혐의 성립 여부를 검토해볼만 하다. 대저 가로등이나 신호등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대서야 말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변명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서민들이 여전히 불안해 하는 것은 사고이후 안전대책을 강구 했다는 후속조치를 아직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되지도 않은 책임회피에 급급하기 보단 다시는 이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성실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白山

시전에서 홈쇼핑까지

서울 종로거리의 시전은 독점판매권을 지닌 일종의 이권이었다. 예를들면 입전은 비단, 싸전은 쌀을 독과점해 도·산매 했다. 어떤 상품이든 서울에 들어오면 일단 시전을 거쳐서 나갔다. 물론 많은 세금을 냈다. 시전에 속하는 상인이 낸 개별 점포를 방이라고 했다. 상점을 가리키는 전방이란 말은 시전의 전과 시전에 속한 방의 합성어다. 이러한 시전은 물론 제대로 된 건물에서 장사를 했으나 조선조말 서울 인구가 늘고 유통량이 많아지면서 가가(假家), 즉 임시건물을 지어 장사하는 곳이 많아졌다. 가게란 말은 가가에서 유래됐다. 구멍가게란 것이 있었다. 집에서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화 가게다. 영세자본이므로 기초 일용품에 아이들 과자 부스러기를 파는게 고작이었다. 주인은 가게 안방에 있으면서 창호지 문에 붙인 손바닥만한 유리조각을 통해 가게를 살피곤 했다. 한때 명예퇴직 바람이 불때 “그만두면 구멍가게나 하지!”하고 자조섞인 푸념을 더러 했지만 1970년대말 무렵에 구멍가게는 사라졌다. 물론 예전같은 구멍가게가 아니고 무슨 전방이든 장사를 해보겠다는 뜻이지만 잘되는 장사가 별로 있는 것같지 않다. 현대판 구멍가게라 할 동네 슈퍼마켓도 왠만해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업체가 마구 들어서 이들의 자본공세에 경쟁이 안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대형 유통업체끼리의 경쟁이 불꽃튀는 실정이다. 백화점의 셔틀버스 운행이 중단된 후 매상에 지장이 있다지만 대형 유통업체는 그래도 아직은 호황을 누린다. 그러나 조만간 홈쇼핑시대를 예고하고 있어 백화점 판매전략도 달라져야할 판이다. 컴퓨터를 통한 재택거래가 머지않아 이루어질 전망인 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이처럼 시류의 변천을 병행해 간다. 이바람에 밑천이 적은 사람은 뭘 해먹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져 간다. 사람살기가 편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살기가 삭막해지는 것인지 도시 종잡기가 어렵다. 시전이 자취를 감춘지는 100년이 채 안된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궁금하다. /白山

통계

박정희 정권은 중화학 공업의 고도성장과 함께 식량증산을 녹색혁명으로 추진했다. 그 무렵의 논 농사는 농민이 지었다기 보단 군수가 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지정리 현장에 텐트를 치고 군수가 먹고자며 공사를 독려했고 농구화 바람으로 논두렁을 타고 다니며 병해충을 살피는 등 작황에 신경깨나 썼다. 물론 병해충 피해면적 같은 불리한 내용은 줄여서 보고하는 사례가 많았다. 작황이 나쁘면 십중팔구 좌천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식량증산에 괄목할 실적을 올리면 영전되는 바람에 과장해 보고 하기도 했다. 우리의 농업통계에 신뢰성이 의심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 시작됐다. 또 지난번 같은 수해가 나면 문책이 두려워 피해규모를 줄여서 보고하는 통에 재해대책비를 제대로 지원 받지 못하는 수가 잦았다. 사령장 한장으로 자리를 박탈 당하는 관선단체장들의 폐습이긴 했으나, 요즘 민선단체장들 가운데서는 자리가 보전된 것을 빌미삼아 숫제 주민피해에 배짱을 내미는 시장·군수가 적잖아 탈이다. 역시 박정희 정권때 얘기다. 경제동향 보고를 며칠 앞둔 X경제기획원 장관이 고민에 빠진 일이 있었다. 박대통령이 추상같이 엄명한 물가안정 대책이 예상치 보다 올라 마지노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생 병이 나다시피한 X장관에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이 있어 질책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물가관리 품목의 재정비였다. 관리대상 품목을 마지노선에 맞추어 선정함으로써 만일의 경우에도 허위보고는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재선정의 이유는 그럴사한 구실을 달았을 것이다. 지난 6월 중 실업률이 3.3%로 실업자는 74만5천명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1997년12월의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다는 것이다. 취업자는 줄었는데 실업률은 낮아졌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정부가 다짐한 일자리 200만개 창출도 공염불이 된지 오래다. 젊은 IT기술자가 취업을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실정이다. 졸업을 앞둔 대학 4년생들은 취업을 위해 혈안인 판이다. 실업률이 준 것은 일자리가 늘어서가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 아예 구직을 포기한 바람에 통계대상에서 뺐기때문이라고 한다. 국가 정책의 기조가 되는 각종 통계라는 것이 자고로 이 모양이다. /白山

위험한 부업

직장인들이 퇴근후 술을 마시고 2차로 노래방에 갔다가 그곳에서 소위‘아줌마 도우미’로 일하는 아내를 만나 질겁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화제거리에서 멀어졌다. 변태영업을 하는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에 가면 짙은 화장에 곱게 차려입은 아줌마들이 접대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줌마 접대부가 대기하고 있지 않더라고 업주에게 요구만 하면 10∼20분안에 화려하게 나타난다. 부업전선에 나서는 30∼40대 여성들이 식당 종업원이나 파출부 일을 그만두고 노래방이나 단란주점 등으로 진출(?)하는 이유는 힘들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룻밤에 3∼4시간만 술시중 들면 5만∼6만원 정도의 수입이 된다고 한다. 유부녀의 경우는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식당일을 한다고 속인다. 정신이상자 아닌 바에야 제 아내가 노래방이나 단란주점 접대부로 나간다면 동의할 리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도우미’가 윤락행위로 이어지는 소위 ‘2차’까지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화상방’나체쇼와 ‘묻지마 미팅’에도 아줌마들이 나타난다. 지난 해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화상방은 아줌마들을 탈선으로 내모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아줌마들이 대개 낮시간에 비디오를 통해 알몸을 보여주고 시간당 2만∼3만원을 받는다. 심지어는 10∼15만원대의 돈을 받고 윤락행위까지 망설이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4만원인 식당 종업원의 일당을 인상한다 해도 문의전화가 걸려 오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탈선부업 경험 아줌마가 미경험 아줌마에게 부업을 권유하는 것이다. 생활경제가 별로 어렵지 않은데도 호기심이 발동해 권고를 뿌리치지 못하는 어리석거나 끼(?)있는 아줌마들이 유혹에 넘어간다. 꿩 먹고 알 먹고, 뽕도 따고 임도 보자는 속셈이다. 그렇게 부업을 하여 번 돈을 어디에 쓰겠는가. 억울한 사람은 성실하고 알뜰하게 부업을 하는 아줌마들과 법규를 준수하는 업소들이다. 그렇다고 아줌마들만 탓하는 것은 아니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있는 것이다. 아줌마들의 ‘ 위험한 부업’을 부추기는 것은 사실 남성들이다. 남성들이 더 많이 반성해야 된다. 탈선 부업하는 아줌마 도우미에 내 아내, 내 딸, 내 누이, 내 형수, 내 제수씨가 등장할는지 누가 아는가. / 淸河

탁족

한여름철 심산유곡에서 즐기는 ‘탁족(濯足)’은 산중에서의 피서로는 최고의 방법이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시원하다 못해 발이 시렵기까지 하다. 한방에선 탁족이 건강에도 매우 좋다고 본다. 발은 온도에 민감해 찬물에 담그면 온몸이 시원해진다. 또 흐르는 물은 간장·신장·방광·위장 등의 기(氣)가 흐르는 길을 자극한다고 한다. 탁족을 소재로 한 ‘탁족도(濯足圖)’를 보면 정신이 맑아진다.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 화제(畵題)중의 하나인 탁족도는 흐르는 강물이나 계곡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선비나 은사(隱士)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발을 씻는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속을 떠난 은일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면에 술을 받쳐들고 있는 동자와 함께 그려지는 경우, 먼 여행에서 돌아와 발에 묻은 흙과 먼지를 씻어낸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간소한 자연경(自然景)을 배경으로 하여 인물 중심으로 구성되며, 인물은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린 다리를 꼬아 물에 담그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상체에 비하여 하체가 빈약하게 묘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를 중심으로 그려졌다. 조선 중기 이경윤(李慶胤)의 ‘고사(高士)탁족도’와 ‘탁족도, 이정(李湞)의 ‘노옹탁족도’, 작자 미상의 ‘고승탁족도’, 그리고 조선 후기 최북(崔北)의 ‘고사탁족도’등이 유명하다. 예전 수원사람들은 수원의 주산 광교산 계곡에서 탁족을 즐겼다. 아니면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시가지 중심을 흐르는 망천(忘川·수원천의 옛 이름)에서 탁족을 하며 여름을 났다. 부녀자들은 밤이 깊어지면 삼삼오오 수원천에서 등목을 했었다. 수원시가 전개한 ‘수원천 살리기’운동이 성공하여 지금도 국립보훈원 앞 수원천에는 밤이 되면 주민들이 탁족을 즐기는데 그 모습이 보기에 아름답다. 그런데 탁족은 꼭 계곡의 물이 아니어도 된다고 한다. 샤워기의 찬물로 발바닥을 골고루 자극해도 고인물로 씻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 부부간에는 찬물로 상대방의 발을 씻어주면서 발바닥을 두드려주면 좋다고 한다. 한여름 밤 탁족으로 부부의 정을 더욱 도탑게 하는 것도 소박한 사랑법 이겠다. / 淸河

인간과 기계

18세기 영국의 방직기계 등 기계의 등장은 수천년 전래돼온 수공업 제조형태를 일시에 바꾸는 1차산업혁명을 일으켰다. 기계설비에 의한 자본주의 경제가 확립된 게 이 무렵이다. 19세기 후반의 전기, 석유에 의한 2차산업혁명에 이어 원자력으로 이행되는 3차산업혁명 단계에 이미 들어섰다. 이처럼 인간은 기계를 다루면서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 그러나 기계의 발달은 마침내 주종관계가 뒤바뀌어 인간이 기계를 지배하기 보다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단계를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핵무기가 그러하고 컴퓨터가 또한 그러하다. 불행하게도 언젠가는 있을지 모를 핵무기 발사는 물론 인간이 버튼을 누르겠지만 인간 의지가 아닌 핵무기의 무언의 명령이 그렇게 만들 것으로 보는 미래학적 관측이 있다. 현대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컴퓨터도 결국 인류에 재앙을 안겨주고 말것으로 보는 전망이 있다. 바이러스 침입으로 인한 중대한 에러발생은 장차 그같은 재앙을 부르는 하나의 예로 들 수가 있다. 인간이 컴퓨터에 지배당해 본의아닌 핵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컴퓨터도 기계다. 요즘 아이들은 틈만나면 동네 PC방 아니면 골목가게 오락기 앞에서 즐긴다. 물론 컴퓨터 오락도 밤이 깊은줄 모르도록 즐겨 부모들을 걱정시키기도 한다. 시류가 변한 마당에 옛날 예기를 하는 것은 고리타분 하겠지만 남자 아이들은 자치기,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놀이, 남자 여자아이 가리지 않는 물놀이 같은 자연친화적 놀이를 즐기던 예전에 비하면 노는게 천양지차이다. 기계놀이에 매혹돼 점차 기계에 빠져드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새삼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른들이라고 다른 것도 아니다. 어른들 역시 기계속에 살면서 인성이 기계화 해가고 있다. 극성스런 인간은 조만간에 인간복제를 보편화시키고 말 것이다. 기계화 돼가는 인간은 공상 과학영화에 나오는 인조인간에게 호되게 당하는 것처럼 인간이 저지른 실책으로 공포의 재앙을 가져올 수가 있다. 기계가 무섭다는 생각을 갖는다. 4차산업혁명은 무엇일까. /白山

헌법

우리 헌법만큼 팔자가 드새기도 아마 드물 것이다. 그동안 8차례나 개헌했다. 건국이후 그만큼 권력구도가 불안했다는 얘기가 된다. 헌법에 사람이 맞추는 것이 아니고 헌법을 사람에다 맞추려고 했기 때문이다. 1948년7월17일 대통령중심제(국회간접선거)의 헌법 제정으로 그해 8월15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제1공화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독재정치로 국회에서 다시 대통령으로 뽑힐 수 없게되자 1952년 7월7일 대통령 직접선거제를 골자로 하는 1차개헌(발췌개헌)이후, 1954년11월29일 3선 연임조항을 철폐한 2차 사사오입 개헌을 했다. 사사오입 개헌이란 의결정족수 3분의2에서 1표가 미달해 부결로 선포됐던 것을 밤새 이승만이 “정확하게 계산하면 소수점 이하 수치의 반올림에 따라 통과된 것”이라고 우겨 이튿날 국회에서 번복한 희대의 날치기 통과를 말한다. 그렇지만 3·15 정·부통령 부정선거에 민중이 항거한 4·19의거로 이승만은 마침내 하야하고 말았다. 1960년6월15일 3차개헌으로 대통령을 국회에서 간선하는 의원내각제 개헌이 이루어져 장면총리 정권의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그러나 박정희소장이 이끈 5·16군사쿠데타로 1962년12월26일 대통령 직선제의 4차개헌에 의해 박정희 정권의 제3공화국이 시작됐다. 1969년10월27일 대통령의 3선을 허용하는 5차개헌후, 1972년12월27일 이른바 6차 유신헌법 개헌에 의해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는 제4공화국 시대가 됐다. 1979년 10·26사건으로 박정희 사후 1980년10월27일 신군부 주도의 7차개헌으로 통령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게 돼 전두환의 제5공화국의 막이 올랐다. 통일주체국민회의나 대통령선거인단의 대통령선거는 장충체육관에서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이루어져 ‘체육관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왔다. 1987년의 줄기찬 6월항쟁으로 드디어 그해 10월27일 대통령 직선제를 중심으로 하는 여·야합의의 8차 개헌안이 국민투표 끝에 통과됐다. 이에따라 제6공화국이 시작돼 노태우, 김영삼에 이어 김대중 정권의 오늘에 이르렀다. 개헌논의가 14년동안 잠잠하는가 싶더니 얼마전엔 민주당안에서 대통령임기 4년의 중임제, 부통령제 개헌론이 제기됐었다. 최근에는 민주당 김원길의원이 주도하는 무슨 단체에서 난데없는 통일헌법 세미나를 열어 어리둥절케 했다. 개헌논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정권욕에 맞추는 개헌은 더욱 금물이다. 오늘은 제헌절이다. /白山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