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은 성(姓)이 많다. 15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 산이나 냇가, 밭, 마을을 딴 성이 유별나게 많다. 야마무라(山村), 이시가와(石川), 다나카(田中), 야마타(山田), 야마시타(山下) 등 이밖에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일본의 상민들은 원래 성이 없었다. 성씨제가 제대로 실시된 것은 19세기 후반 서양문물을 도입한 메이지(明治)유신 때다. 갑자기 성을 만들려다 보니 산마을에 사는 어떤 사람은 山村, 냇가에 사는 또 어떤 사람은 石川, 밭가운데 사는 어떤 농부는 田中, 산에서 밭갈이 하는 어느 화전민은 山田, 산밑에 사는 어느 목부는 山下 등 이런 식으로 짓기 편한대로 지었던 것이다. 동양 삼국중 일본만이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은 성씨제를 하면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같은 부부동성제로 인해 결혼 후에는 친정 아버지의 성, 구성(舊姓)을 괄호안에 쓰기도 한다. 여권신장을 위해 전부터 부부별성제가 주장돼 왔던게 요즘 더욱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같다. 일본정부의 한 조사에 의하면 찬성 42.1%, 반대 29.9% (잘 모르겠다 28%)로 찬성이 처음으로 반대를 추월했다는 것이다. 일본 여성들이 부부별성제에 부담을 갖는 것은 부부의 성이 다르면 마치 결손가정 처럼 보여 자녀들에게 잘못된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지지대子가 18년전 일본 배구월드컵대회에 취재갔을 때다. 당시 남녀 대표팀에 안·권씨 커플이 있어 일본 기자들에게 기사감으로 얘기해 주었더니 한참뒤에 남편 선수는 안씬데 아내 선수는 왜 권씨냐며, 결혼 부부가 아니고 동거부부가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과 달라서 부부별성제를 쓰고 있다는 설명에 수긍은 하면서도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다. 남편 성을 따르는 일본의 민속과 법률은 메이지유신 이후 100년이 훨씬 넘었으니 그들로써는 이해가 선뜻 안됐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국내에서는 보편화된 부부별성제를 여권신장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본 여성계에서는 가히 여권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이를 위한 일본 민법의 개정이 언젠가는 있을지 두고 볼만하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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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1-08-1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