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이강석 계장’의 기자評

아마 2000년 언저리였을 게다. 정치부장과 도청 공무원이 함께했다. 정치부장은 나, 공무원들은 공보실 직원이다. 순댓국집 낮술이 하염없이 길어졌다. 2차로 옮기자고 간 곳이 방화수류정이다. 세계문화유산인 그 정자 위에 판을 벌였다. 오징어를 안주 삼은 소주 빈병이 쌓여갔다. 틀림없이 되지도 않는 넋두리를 늘어놨을 거다. 그 헛소리를 공무원들은 끝까지 들어줬다. 틈틈이 졸면서 체력을 보충(?)하던 공무원, 이강석 계장이다. ▶대(對) 언론 업무를 그만큼 한 공무원은 없다. 공보실 직원, 공보팀장, 도의회 공보과장, 도청 공보과장. 오죽하면 기자들이 관선 기자라고 불렀다. 그도 이 별칭을 싫어하지 않았다. 지겨울 만도 했지만 늘 즐겼다. 기자들의 말 안 되는 항의도 웃어넘겼다. 비난 기사를 쓴 기자도 끌고 가 자장면을 먹었다. 그가 화내거나 심각해지는 걸 본 기자는 거의 없다. 이제 그가 공직을 떠난다. 부시장과 공기관장을 끝으로 42년 공직을 화려하게 정리한다. ▶어느덧 그때의 기자들도 비슷한 처지다. 퇴임한 기자도 많고, 죽은 기자까지 있다. 용케 남은 주필도 이제 다 돼 간다. 술도 그만큼 먹지 않고, 생떼도 부리지 않고, 깐족대지도 않는다. 퇴직 앞둔 이 계장이 뒷방 지기 김 주필을 찾아왔다. 소주잔이 오가자 옛 얘기가 많아진다. 기자를 미워한 적 없어요. 기자가 공격하는 것은 내 업무지 내가 아니지요. 언론은 피할 게 아니라 이용해야죠. 몇 번이나 들었던 그의 강의(?)다. ▶마지막 술자리일 수 있다. 물어야 할 게 있었다. 어떤 기자 놈이 제일 싫었나요. 없다고 했다. 또 물었다. 한둘이라도 있었을 거 아니에요. 뜸 들이던 그가 말을 시작했다. ○○○기자 그러면 안 됐어. 고인 된 언론계 대선배다. 그에 대한 응어리가 있었던 듯싶다. 도청을 자기 사무실 쓰듯 했다 개인 이익을 위해 기자직을 악용했다 공무원 위에 군림하려 했다. 결국 그가 내린 나쁜 기자는 사익((私益)에 눈먼 기자였다. ▶참된 언론인의 자격은 뭔가. 높은 도덕성? 화려한 말재주? 완벽한 글솜씨? 쉽게 결론 낼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언론인끼리는 쉽게 평한다. 동료의 작은 실수에 잔인한 평가질을 해댄다. 40년 전에도 그랬고, 엊그제도 또 그랬다. 앞으로도 고쳐질 것 같지 않는 언론계의 난치병이다. 그래서 이 계장에게 물었던 것이다. 기자와 40년 살아온 관선기자에게 물었던 것이다. 퇴임식 보름 앞둔 그가 어렵게 내놓은 답이다. 사익에 눈먼 기자가 제일 나쁜 기자입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수저계급론의 고착화

연립주택에 살고있음, 알바 해본 적 있음, 1년 내내 신발 한 두 켤레로 번갈아 신음, 고기 요리를 할때 국으로 된 요리로 자주 먹음, 냉동실 비닐안에 든 뭔가가 많음, 부모님이 정기건강검진 안받음, 집에 비데가 없음, 집에 차가 없거나 연식 7년 이상, 여름에 에어컨을 잘 안틀거나 아예 없음, 본가가 월세이거나 1억이하 전세.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흙수저 빙고게임에 나오는 항목들이다. 가로, 세로 5개씩 모두 25개 예시가 나온다. 이중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든 5개 항목이 한 줄로 연결되면 그 사람은 흙수저란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 이른바 수저계급론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富)에 따라 인간의 계급이 결정된다는 자조적인 표현이다. 수저계급론은 청년실업, 부익부 빈익빈 등의 각종 사회 문제와 맞물리면서 공감을 얻고 있다. 개인의 노력보다 부모 능력으로 사회의 출발선이 결정된다는 씁쓸한 세태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노력하면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최근 4년사이 15% 포인트가량 떨어져 수저 계급론 인식이 고착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3년과 2017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분석해 최근 발표한 결과, 자신의 계층 이동 가능성을 높게 본 30세 미만 청년이 2013년 조사에선 53.2%였지만 2017년 조사에선 38.4%로 14.8% 포인트 감소했다. 청년들의 이런 인식은 가구 소득과 거주 형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계층이 한 단계 상승할 가능성에 대한 청년 인식은 월 가구소득 100만원 미만인 가구보다 500만~700만원인 가구가 3.1배 높았다. 또 임대주택 거주자보다 자가주택 거주자가 1.3배가량 높았다. 이런 경향은 해가 갈수록 뚜렷하다. 월 소득이 700만원 이상인 가구에 속한 청년층은 100만원 미만 가구의 청년층에 비해 주관적 계층의식이 한 단계 높아질 가능성이 2013년 5.2배에서 2017년 8.2배로 크게 증가했다. 청년들에게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진 지 오래다.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청년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 흙수저는 흙수저, 노력해도 흙수저란 인식이 팽배해 있다. 수저계급론의 고착화는 다음 세대의 계층 이동에도 영향을 미쳐 사회발전의 동력을 떨어뜨린다. 청년들의 좌절감이 더 깊어지지 않게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청년들이 현실에 좌절하고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장기 농성

높이 75m 굴뚝에서 고공 농성을 이어온 파인텍 노동자들이 지난 11일 마침내 땅을 밟았다. 2017년 11월12일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오른 지 426일 만이다. 1년 2개월 동안 농성자들은 굴뚝위 폭 80㎝ 공간, 하늘감옥에서 두 번의 겨울과 한 번의 여름을 버텨냈고, 이달 6일부터는 단식투쟁까지 들어갔다. 늦었지만 파인텍 노사가 11일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했고, 두 노동자의 고공 농성도 끝이 났다. 이날 오후 땅을 밟은 노동자들은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화학섬유 제조회사인 파인텍의 노사 갈등은 스타플렉스가 2010년 파산기업인 한국합섬을 인수해 스타케미칼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노동자들은 사측이 2년 연속 적자를 이유로 스타케미칼을 청산하고 권고사직ㆍ해고를 감행하자 복직 투쟁을 벌였다. 2014~2015년 408일간 굴뚝농성을 했고, 1년여 만에 공장 가동이 중단되자 2017년 또다시 농성에 돌입했다. 426일 만에 얻어낸 것은 3년간 고용 보장과 최저임금(시급)+1천원의 기본급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두 조합원이 살아 내려와서 천만다행이라면서도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착잡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심 의원은 왜 노동자들이 자꾸 굴뚝 위로 올라가느냐고 묻는다며 땅을 딛고서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존재를 알릴 수 없기 때문이고 삶을 던지는 극한투쟁을 통해서야 세상에 진실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사간 장기간 갈등은 코레일과 쌍용자동차에도 있었다. KTX 승무원 180여 명은 해고 12년 만인 지난해 7월 코레일과 정규직 전환 복직에 합의했다. 쌍용차 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됐다.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2009년 1월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회사는 4월 정리해고를 결정했다. 노조원들은 5월21일 평택공장을 점거하며 맞섰다. 농성 강제 해산과정에서 노조원 64명이 구속되고 경찰도 100여 명 다쳤다. 경영사정이 나아지면서 쌍용차는 해고자를 재고용해오다 지난해 9월 노사가 119명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 그러나 아직도 장기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있다. 기타 생산업체였던 콜텍 노동자들은 13년째 농성 중이다. 콜텍의 모기업 콜트악기는 2006년 당기순손실을 이유로 2007년 4월 인천공장 근로자들을 한꺼번에 정리해고 했다. 구미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린 지 3년 7개월째 찬 바닥에 앉아 복직을 외치고 있다. 전주에선 택시노동자가 20여m 높이 조명탑 위에서 500일 가까이 망루 농성을 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외롭고 눈물겨운 투쟁이다. 이들 문제도 하루빨리 해결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국회의원 막말

새해 들어서도 정치권이 시끄럽다. 청와대 특감반원의 민간인 사찰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적자 국채 폭로를 둘러싼 여야의 진실공방이 뜨겁다. 여기에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제보자에 대해 나쁜 머리, 양아치 등 인격을 모독하는 막말 발언으로 기름을 부었다. 이 국회의원이 경솔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전 대한민국 야구대표팀 감독에게 아시안게임 우승이 그렇게 어려운 우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만 잘하면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다. 이는 좋은 말을 하면 좋은 말대로 되고, 나쁜 말을 하면 나쁜 말대로 된다는 뜻이다. 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선조의 지혜가 담겨 있다. 말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비수(匕首)가 되기도 한다. 함부로 내뱉은 한마디 말이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멍들게 한다. 특히 사람관계가 더욱 복잡해지고 SNS 등 소통방식도 다양화된 현대사회에선 말의 힘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잘못 뱉은 말 한마디는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말은 인격의 거울이다. 말에는 그 사람의 인품과 교양이 그대로 녹아 있다. 세 치 혀를 여하히 놀렸느냐에 따라 인격을 달리 평가받는다. 심지어 일신의 영달과 망신이 극명하게 엇갈리기까지 한다. 사소한 일에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을 주로 하는 사람에게는 화해와 용서가 뒤따르고, 포용과 상생이 논의된다. 이에 반해 입만 열었다 하면 남의 흉을 보거나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남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은 대부분 분란을 일으킨다. 이 두 유형의 사람 중 어느 쪽이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는 분명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에 맞는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다. 이관식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새해 소원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다. 돼지 중에서도 황금 돼지해다. 무릇 돼지는 금전(돈)과 연이 깊다. 어릴 적 부모나 친지들로부터 받은 용돈은 어김없이 돼지 저금통에 들어간다. 가난한 시골출신 대학생의 학비도 돼지와 소를 팔아 충당했던 것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새해가 되면 너나없이 소원을 빈다. 건강과 돈, 그리고 행복 등 이 세 가지는 소원의 최우선 대상이다. 소원을 비는 방법도 다양하다. 불자는 사찰을 찾아 부처님 앞에서, 기독교인은 교회 예배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읍소한다. 대개 무신론자들은 새해 첫날 이른 새벽녘에 산봉우리를 찾아 소원을 빈다. 떠오른 해를 바라보면서 한해 바람을 간절히 염원한다. 때문에 해돋이 현장은 새해 첫날이면 소원을 비는 이들로 북적인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베트남 중부지역에 위치한 다낭 여행길 중 호이안 구시가지 구경은 여행 필수코스다. 이곳에 야경이 찾아들면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투본강에는 연꽃 촛불이 여기저기 떠오른다. 저마다 소원을 담아 연꽃 촛대에 불을 붙여 강에 띄우는 소원행사다. 또 태국에는 이른바 로이 끄라통(Loi Krathong) 축제가 있다. 이 축제 기간에는 전국의 물길이 연꽃 모양으로 만든 배 끄라통으로 가득 찬다. 끄라통에는 불을 밝힌 초와 꽃, 동전 등을 싣고 있다. 작은 배를 띄워 보내면서 소원을 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내재해 있다. 길함과 흉함, 불길함과 복스러움, 저마다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일과 나쁜 일, 재앙과 복을 언제나 체감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살면서 겪게 되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이다. 때문에 우리는 흔히 항상 잘되라는 법도, 잘못되라는 법도 없다고 말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답이 없던 사안이 자고 나면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곧 죽을 듯 보였는데 어느덧 생기가 넘쳐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마음에 따라 좌우되는 것도 많지만, 실제 현실의 운이 찾아오는 때도 있다. 가끔 기적도 일어난다. 기해년 한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축복만 받았으면 좋겠다. 건강과 행복이 충만한 황금 돼지해가 그대로 실현되길 바래본다. 때때로 간절한 소원이 이뤄지는 기적도 기대하면서 말이다. 김동수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전임 시장·후임 시장

광명에서 도는 소문이다. 전임 시장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고 한다. 소문의 주어(主語)는 현 시장이다. 현 시장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한다. 증거라고 거론되는 몇 가지가 있다. 북방 진출은 전임 시장의 숙원이었다. 단둥ㆍ훈춘ㆍ하산군과 함께 하는 축전이 그 구체적 사업이다. 시가 이 사업비 1억5천만 원을 반납하기로 했다. 시의회에 보고한 관광과 업무도 과거 12건에서 6건으로 팍 줄었다. 양기대 전 시장의 공식 반응은 없다. ▶양평에는 이런 소문이 있다. 김선기 전임 군수가 소문의 주어다. 다시 군수에 도전할 것이라고 한다. 김 전 군수가 지역위원장에 재선임됐다. 대외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면장 이취임식에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김 전 군수가 여의치 않으면 차기 군수에 출마하려는 것이란 소문이 생겼다. 현 시장 체제에서 소외된 인사들 쪽에서 주로 나오는듯하다. 현 시장이 자신들-김 군수 사람들-을 배척한다는 불만이 배어 있다. ▶민선 7기 출범이 7개월 됐다. 민선 6기의 퇴장도 그만큼 됐다. 전임 시장이란 호칭이 익숙해질 만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 퇴임의 허전함을 가장 느낄 때가 지금이다. 홀가분함이 허전함으로, 외로움이 섭섭함으로 바뀌어 갈 때다. 이쯤 되면 현 시장들의 자기 색깔 내기도 본격화된다. 그래서 나오는 소문들이다. 전임자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 다시 출마한다더라. ▶고(故) 심재덕 수원시장은 3선에 실패했다. 국회의원으로 재기할 때까지 칩거했다. 시정(市政)에선 그의 흔적이 사라졌다. 기억도 희미해진 술자리가 있었다.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보면 화나. 안 보는 게 상책이지. 그래서 약속도 수원에서 안 잡아. 정찬민 전 용인시장은 재선에 실패했다. 선전했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그가 말했다. 나는 너무 좋아. 내가 정치를 다시 할 수도 있지만, 완전히 자연인으로 살 수도 있어. 지금이 행복해. ▶전임 시장의 미덕은 뭘까. 후임 시장을 묵묵히 돕는 것, 후임 시장을 위해 비켜주는 것. 이 미덕을 실천할 때 전임 시장은 어른스러워진다. 후임 시장의 미덕은 뭘까. 전임 시장을 인정하는 것, 전임 시장을 위해 배려하는 것. 이 미덕을 실천할 때 후임 시장은 아름다워진다. 그런데 잘 안 되는 듯하다. 양기대 전 시장ㆍ김선기 전 군수라면 일 잘하기로 정평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 주변에서 흔적 지우기, 재출마설이 나돌 줄은 몰랐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삼성 ‘미세먼지연구소’

한파가 한풀 꺾였나 했더니 미세먼지가 다시 나쁨이다. 뿌연 하늘은 시야뿐 아니라 가슴까지 답답하게 한다. 여기에 중국발 황사까지 더해져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예전엔 겨울 날씨를 삼한사온(三寒四溫)으로 표현했는데 요즘은 삼한사미라 할 정도로 미세먼지가 극성이다. 이젠 일기예보를 볼 때 기온보다 미세먼지 농도를 먼저 본다. 추위야 옷을 더 껴입으면 되지만 미세먼지 농도가 높으면 숨쉬기부터 일상생활이 불편하다 보니 예민할 수밖에 없다. 내륙을 넘어 청정지역 제주까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국민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공기 중에 아주 작은 먼지로 머물러 있다가 인간의 체내에 침투해 혈관을 더럽히고 우리 몸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알레르기 비염, 기관지염, 폐기종, 천식 등 호흡기질환은 물론 심혈관질환, 피부질환, 안구질환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또 발암물질이 폐포와 혈관으로 들어가 치매나 동맥경화증을 유발하고, 암도 불러온다. 때문에 미세먼지를 은밀한 살인자라고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런저런 대책에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국민들이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실효성이 없다. 미세먼지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면 정부나 지자체는 외출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창문을 닫고, 마스크를 한다고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대책이 미세먼지 만큼이나 답답하게 느껴진다. 삼성전자가 지난주 수원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내에 미세먼지연구소를 신설했다. 미세먼지 문제가 우리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것인 만큼, 선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혁신적인 연구 역량을 투입해 사회적 난제 해결에 일조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미세먼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인력뿐 아니라 화학ㆍ물리ㆍ생물ㆍ의학 등 관련 분야 국내외 전문가들과도 협업하기로 했다. 미세먼지연구소는 미세먼지의 생성 원인부터 측정ㆍ분석ㆍ포집ㆍ분해까지 전체 사이클을 분석하고, 단계별로 기술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술과 솔루션을 확보하는 것이 연구소의 목표다. 삼성이 사회적 난제 해결에 나선 것에 반가움을 표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공헌 활동은 불우이웃 돕기나 사회복지시설 운영 등 자선활동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이를 뛰어넘어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공익활동에도 나서야 한다. 미세먼지 문제, 삼성이 하니까 역시 다르다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2019 새해소망

2019년 기해(己亥)년 황금돼지해가 밝았고, 많은 사람들이 새해 다짐한 계획들을 실천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새해 계획을 세운다. 취업을 꼭 하겠다, 결혼을 하겠다,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 금연을 하겠다, 술을 줄이겠다, 살을 빼겠다, 영어회화(외국어)를 공부 하겠다, 책을 많이 읽겠다 등등. 대부분 지난해에도 세운 계획이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새해를 맞아 또 다시 계획을 세우고 맘을 다잡는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지만, 새롭게 맘을 먹고 다시 시작한다는 면에서 새해는 의미가 있다. 최근엔 새해 계획 풍속이 바뀌고 있다. 다이어트나 외국어 공부, 독서 등은 전통적인 올드한 버전이고, 요즘은 성형 수술이나 문신 제거, 국내외 여행 등이 유행하고 있다. 특히 젊은층에선 남녀 할 것 없이 외모에 관심이 많다보니 성형외과에 사람이 몰리고 있다. 실제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는 1월에 평소보다 20% 정도 고객이 증가한다고 한다. 한편 취준생들은 새해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반응이다. 오로지 취업만을 생각하는 이들은 제발 시험에 붙기만을 바랄 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씁쓸해 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성인 남녀 2천31명을 대상으로 새해 소망(복수응답)을 조사한 결과 취준생은 취업(73.4%)을, 대학생(48.3%)과 직장인(42.1%)은 경제적 여유를 꼽았다. 수년째 얼어붙은 청년취업 시장과 학자금, 주거ㆍ결혼 비용 마련 등에 대한 20, 30대의 어려움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직장인들은 저축ㆍ절약, 대출 상환을, 대학생들은 외국어 공부, 자격증 취득을 새해 소망으로 꼽기도 했다. 역시 경제적 어려움과 취업난을 반영한 것들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도 미혼남녀 340명을 대상으로 새해 목표를 조사했다. 전체 응답자 중 26.5%가 취업을 새해 목표로 세웠다. 그 뒤를 이어 남성은 합격(21.4%), 연애(13.1%), 금연(10.1%)을, 여성은 다이어트(19.2%), 연애(16.9%), 합격(12.8%)을 새해 목표로 삼았다. 결혼은 전체 응답자의 9.7%만이 선택했다. 취업 한파에 미혼남녀의 새해 목표 역시 연애, 결혼보다 취업이 앞서고 있다. 젊은이들에겐 모든 것이 기승전취업이다. 취업이 돼야 연애고 결혼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저출산 문제도 결국은 취업난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들의 새해 소망이 꼭 이뤄지도록, 그 소망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정부ㆍ정치인ㆍ기업 모두 청년취업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양면성

2019년 기해년(己亥年)의 새해가 밝았다. 특히 올해는 돼지의 긍정적인 힘이 무한대로 발현되는 황금돼지의 해라고들 한다. 사람들은 흔히 돼지라는 동물을 다산과 재물, 복과 연관 짓는 등 풍요로움의 대명사로 인식한다. 지극히 상징적이긴 해도 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돼지의 전 부위를 섭취한다. 한 마리의 돼지는 그렇게 삼겹살과 족발, 돼지머리, 순대, 부속고기 등으로 대표되는 음식물로 산화된다. 성선설, 성악설 등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필요라는 명분을 내세워 잔인함 또는 잔혹함 마저도 때론 합리화 시키곤 한다. ▶또 다른 면도 있다. 12년에 한번 그렇게도 돼지에게 수많은 미사여구를 사용해 훌륭함을 내세워 칭송하면서도 여전히 돼지를 탐욕과 게으름, 지저분함과 연결 짓는다. 그런데 그런 좋지 않은 모습들 마저도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그렇게 키워 온 과정에서 나온 파생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더 많은 돼지를 내다 팔기 위해 좁은 막사에, 위생은 뒷전인 상황에서 연출된 불명예가 꼬리표처럼 돼지에겐 숙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선 적어도 행정가를 꿈꾸는 정치인은 유명세를 타지 말아야 한다. 유권자들의 인식은 성숙해 있는데도,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유명세를 탄 정치인에게 불명예스러운 족쇄를 먼저 채우려 한다. 결국 화살은 그런 정치인을 뽑은 유권자들에게 되돌아오고, 유권자는 바보다라는 명제로 귀결시킨다. 그런데 그렇게 뽑힌 정치인이 일을 엄청 잘한다면? 혁명적인 수준에서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래도 안된다. 이미 미사여구로 칭송하면서도 돼지의 불명예를 꼬리표처럼 달았기 때문이다. ▶국외로 눈을 돌려보면 그 나라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정치인의 사생활에 지극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 개인사이니까 말이다. No Way 인 것이다. 그런데 일과 연관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폭동 수준까지 들고 일어나 결국 투표로 응징한다. 우리는 일 잘하는 행정가를 원한다. 돼지가 주는 풍요로움을 얻고 싶다면 적어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양면성인 불명예는 훌훌 털어 버리자.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규태 정치부 차장

[지지대] 경제야 다시 뛰자

기해년 새해 첫 태양이 떠올랐다. 지난 한 해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참 다사다난했다. 정치는 당리당략에 파묻혀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고 사회는 갑질과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경제는 주 52시간 적용과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서민경제의 한 축을 지탱하는 자영업자를 비롯해 중소기업, 중소상공인들이 거리로 나왔다. 일부 단체는 삭발까지 감행하며 정부 정책에 맞섰다. 여기에 취업률은 역대 최저, 실업률은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대한민국의 암울한 경제 상황을 그대로 대변했다. 경제사정은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벌써 우울하다. 우리 경제가 2%대로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잠재성장률을 밑돌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고용, 투자, 소비 등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전망치를 찾기 어렵다. 정부는 새해를 맞아 경제회복과 산업 활력을 위해 각종 지원정책을 내놓았다. 자영업자 채무를 탕감하고 정책기금을 지원을 통해 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도 굳건하다. 그럼에도 경제 전문가들은 물론, 국민조차 경제가 좋아지고 기업의 투자가 늘 거라는 기대심리는 상대적으로 낮다. 국내는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불안, 내수 부진으로 국외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글로벌 불확실성 등 우리 경제의 부담이 불가피한 탓이다. 그래도 2019년 기해년 한국경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힘을 모아 근본적 체질개선에 나서야 한다. 한강의 기적을 만든 대한민국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일깨워야 할 때다. 정부는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혁파와 시장 친화적 체계를 구축하고 기업은 수출 효자종목인 반도체 산업을 비롯해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등 미래 융합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특히 남북경협은 대북인프라 투자 사업의 귀한 자산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정치권도 이념 정쟁의 구태를 반드시 버리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존경영도 기업경제를 살리는 희망의 불씨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 및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동반성장이 좋은 예다. 무엇보다 경제 실핏줄인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생존이 보장돼야 한다. 예산 지원과 규모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정부 정책기조를 그들의 시선에 맞춰야 한다. 김창학 경제부장

[지지대] 민정수석의 힘

자네는 뭘 하고 싶어. 저는 맨날 수사만 하던 가락이 있어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리, 자네도 청와대로 들어가야지자네는 성격이 좋잖아. 민정수석이 딱이야. 우리 가족들도 자네가 책임을 좀 져줘야겠어. 다른 놈들은 미덥지가 않아. 대신 화평이처럼 너무 설치진 말아.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이학봉 대공 처장의 대화다. 실세라던 허화평을 견제하려는 전두환의 수가 엿보인다.(드라마 5공화국 중에서) ▶5공화국 초 실세는 허화평, 허삼수였다. 이들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냥 보아 넘길 전두환이 아니다. 청와대 수석직에서 둘을 해고했다. 자칭 실세에 대한 전두환의 경고였다. 이후 누구도 실세를 자임하지 못했다. 단 한 명, 예외가 이학봉이다. 10ㆍ26 때 김재규를 수사한 당사자다. 이때부터 전두환은 이학봉을 곁에 뒀다. 초대 민정수석직을 맡겼다. 5년4개월 동안 유임시켰다. 민정수석이 대통령의 최고의 복심임을 보여준 사례다. ▶또 한 명의 민정수석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민정수석, 문재인이다. 노무현 변호사 시절부터 동고동락을 같이했다. 노동 운동을 할 때도 함께 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문재인은 두 번이나 민정수석을 맡았다. 위기 때마다 그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이른바 왕 수석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노무현 사후에는 둘의 신뢰 관계는 계속됐다. 노무현 죽음을 발표한 것도, 훗날 노무현 재단을 꾸려 간 것도 문재인이다. ▶민정수석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민정, 공직기강, 법무, 반부패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대통령비서실 소속 민정수석비서관을 일컫는 말. 업무 자체에서 오는 권력이 막강하다. 권력의 중심이라 할 인사(人事)와 사정(司正)을 총괄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표현 안 될 심오한 뜻도 있다.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자 또는 대통령이 가장 의지하는 자다. 다른 놈들은 미덥지가 않아. 전두환의 이 대사가 더 없는 증명이다. ▶국회 운영위원회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출석시켰다. 이른바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업무 보고였다. 단단히 별렀던 야권이 총 공세에 나섰다. 그런데 얻어낸 소득이 없다. 헛심 공방만 오갔다. 야당이 무기력해진 이유가 뭘까. 민정수석실의 방대한 업무영역이다. 민정, 공직기강, 법무, 반부패가 업무다. 여기에 주요 인사에 대한 인사 검증도 있다. 야당이 트집 잡는 모든 활동이 법적으로는 정당한 업무 영역이다. ▶이른바 조국 청문회가 남긴 교훈을 굳이 찾자면 이거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권한이 너무 크다. 인사는 인사부처에, 정보는 정보기관에, 수사는 수사기관에 넘길 필요가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장발장은행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장발장은 돈도, 힘도 없어서 지은 죄에 비해 가혹한 옥살이를 하게 된 사람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벼랑 끝에 내몰려 경미한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다가 받은 벌금형 때문에 노역장(勞役場)으로 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벌금 미납으로 노역장에 유치되는 사례는 연 평균 4만여 건에 이른다. 경기침체 속 생활고에 음식이나 생필품 등을 훔치는 장발장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대학교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A씨는 손님들이 받지 않고 두고 간 쿠폰을 챙겼다가 절도죄로 신고당했다. 월급이 몇 달째 밀려 남는 쿠폰으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을 사 먹은 게 죄가 됐다.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을 신고한 A씨를 눈엣가시로 생각했던 주유소 사장이 그를 절도혐의로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A씨는 결국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벌금낼 돈이 없는 A씨를 도운 건 장발장은행이었다. 장발장은행은 경범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생활고 등 어려운 형편으로 벌금을 낼 수 없는 빈곤ㆍ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2015년 3월 출범했다. 현행 형법상 벌금은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 내에 현금으로 한 번에 내야 하며, 벌금 미납자의 경우 최장 3년간 노역을 해야 한다. 장발장은행은 생계 곤란으로 감옥살이를 해야하는 이들에게 신용조회 없이 무담보무이자로 벌금을 빌려준다. 자체심사를 거쳐 소년소녀가장,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장애인 등 빈곤ㆍ취약계층에게 최대 300만 원까지 무이자로 대출해주고 있다. 장발장은행은 그동안 개인, 기관, 종교단체 등에서 5천여 명이 후원해 626명에게 11억7천303만7천 원을 대출해줬다. 대출금이 10억 원을 넘어설 정도로 성장했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생계형 범죄로 구치소에 갇힐 걱정을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인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은 평소 장발장은행이 빨리 문을 닫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장발장은행이 필요 없는 세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장발장은행은 범죄자 경제력에 따라 벌금을 정하는 일수벌금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유럽 여러 국가에서 실시하는 제도로 고소득자가 죄를 저지르면 더 큰 벌금을 내야 한다. 반면 한국 형법은 총액벌금제를 적용해 서민이든 재벌이든 같은 잣대가 적용된다. 새해엔 우리 사회 장발장이 크게 줄고, 장발장은행의 대출도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2018년 유행어

올 한해 최고의 유행어로 소확행(小確幸)이 뽑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설문조사 플랫폼 두잇서베이와 공동으로 최근 진행한 2018 유행어 설문조사 결과, 소확행이 28.8%로 1위를 차지했다.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준말이다. 지난해 욜로(YOLO: 한 번뿐인 인생 최대한 즐기기)가 인기를 끌었다면, 올해는 일상에서의 여유와 소박함을 강조하는 소확행이 단연 화제였다. 소확행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나오는 말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돼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은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한다. 한국인들에게 소확행은 어떤 것일까? 정보분석기업 닐슨코리아가 소확행 관련 5만5천건(2018년 1월~7월)의 버즈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최다 관련 키워드로 책(4천167건)이 올랐다. 이어 여행(3천224건), 영화(2천722건), 커피(2천331건) 등의 순이었다. 거창한 목표나 성취감, 출세보다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소확행은 소박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생활방식이 각광받는 현실과 맥을 같이 한다. 미래보다 현재가 소중하고,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을 중시하며, 행복의 강도가 아닌 빈도를 중시하는 세계적 추세와도 일치한다. 이는 올해 소비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올해 유행어 2위는 갑분싸(18.5%)가 꼽혔다. 갑자기 분위기 싸늘해짐의 준말이다. 대화 중 누군가 분위기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발언을 하거나, 정적이 흘렀을 때 사용된다. 3위에는 인싸(16.0%)가 올랐다. 인싸이더(Insider)의 준말로, 타인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뜻한다. 특히 조직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항상 무리의 중심이 되는 주도적인 사람을 말한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인싸는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혼용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뒤를 이어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대표팀이 나은 유행어 영미, 과잉 정보를 의미하는 TMI(Too Much Information의 준말), 강하게 버티라는 의미의 비속어 존버 등이 순위에 올랐다. 순위권에 오른 유행어들은 대개 줄임말이다. SNS가 현대인의 필수 앱으로 자리하면서 인터넷 용어와 줄임말이 생활 깊이 파고든 탓이다. 방송 예능프로그램이 단순한 재미를 위해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유행어는 그 사회의 흐름과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새해에는 밝고 긍정적인 말들이 많이 유행했으면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새해 우리 경제 다시 일어서자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어느덧 저물어 간다. 돌이켜보면 올 한해는 어느 해보다 경제적으로 큰 이슈가 많았고 또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한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새해 벽두부터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위기를 느낀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 제도를 도입해 대대적인 홍보를 벌이며 부랴부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반발을 잠재우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소상공인들은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삭발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7월에는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제도 도입 여파가 기업들에게 들이닥쳤다. 중소기업인들은 왜 우리만 희생해야 되느냐며 성토했고, 혼란스러워하기는 대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달성해 국민들 삶이 나아지도록 추진한 소득주도성장의 정책들이 오히려 국민에게서 신뢰를 잃고 경제위기론을 부추긴 원인으로 많은 논란을 빚은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올 한해를 소득불평등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내년엔 시간당 8천350원으로 올해보다 10.9% 인상되는데다 주휴수당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타격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여기에 이번에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폭탄까지 덮쳤다.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는 게 주요 골자인데 경영계는 기업을 경영하지 말라는 소리냐며 반발해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힘겨운 한해가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내년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시장 신뢰를 잃어 더 암울해질 가능성도 커 보인다. 많은 기업인을 만나본 결과, 기업 환경도 각종 악재로 사상 최악의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비관적인 전망만 쏟아낸다. 심지어 내년에는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않은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최근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는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과거를 통해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을 판단하고 올바른 경제정책이 절실해 보인다. 2019년 기해년 황금돼지해에는 우리 경제가 조금은 나아져 모두가 좀 더 웃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권혁준 경제부 차장

[지지대] 타인능해(他人能解)

타인능해는 전남 구례에 있는 운조루의 쌀뒤주 마개에 새겨진 글자다. 아무나 열 수 있다는 의미로 운조루의 주인이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커다란 뒤주를 사랑채 옆 부엌에 놓아두고 끼니가 없는 마을 사람들이 쌀을 가져가 굶주림을 면할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쌀을 퍼줄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의 자존심을 생각해 슬그머니 퍼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배려는 운조루의 굴뚝에서도 드러난다. 부잣집에서 밥 짓는 연기를 펑펑 피우는 것이 미안해 굴뚝을 낮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뒤주는 열고 굴뚝은 낮춘 운조루는 625전쟁 때 빨치산의 본거지였던 지리산 자락에 있었지만 화를 당하지 않았으니 대대로 나눔을 실천했던 정신이 운조루를 지킨 셈이다. 또 300년 넘게 14대째 내려오는 경주의 유명한 최부자 집의 가훈(家訓)을 보면 여섯 번째로 십리 안에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이 있다. 옛날 부자는 이렇게 가훈으로 정하여 부자의 도리를 후손들에게 가르쳐왔다. 그래서 역사 있는 부자는 자신이 사는 고을 주민들은 절대 굶기지 않았다. 그들은 흉년으로 기근이 닥치면 반드시 큰 굿을 올렸다. 굿을 올려 마을의 평안을 빌고, 더 나아가 떡, 과일 등 굿에 쓸 음식들과 제수용품을 사들여서 마을 경기를 좋게 했다. 굿이 끝나면 노인부터 아이까지 배불리 먹지 못한 주민들에게 쌀과 떡을 나눠줬다. 수원 경기도청 오거리에는 사랑의 온도탑이 있다. 이 온도탑은 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달 20일 설치한 것으로 목표액의 1%가 모금될 때마다 1도씩 오른다. 지난 19일 기준으로 25도를 기록 중인데 올해 목표액이 316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약 79억 원이 모금된 것이다. 지난해 캠페인 기간 316억 원 모금을 목표로 했으나 277억여 원 모금에 그쳐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최종 87.6℃에 머물렀다. 작년에 급격히 식었던 온정이 올해도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남을 돕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추운 겨울 소외계층들에게 온정의 손길이 끊어진다면 그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날 수 있을 것인가. 다들 어렵지만 조금씩 나누고 배려하는 온정의 손길이 되살아 나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로베스피에르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일, 그것은 자비다. 그런 자들을 용서하는 일, 그것은 야만이다. 폭군의 잔인함은 그저 잔인함일 뿐이지만, 공화국의 잔인함은 미덕이다. 로베스피에르의 말이다. 반혁명 분자들을 무자비하게 처단했다. 공포정치 1년간 1만 7천 명을 단두대로 보냈다. 지방 반란 과정에서 3만 명을 학살했다. 방데의 반정부 운동 진압 때는 25만 명을 학살했다는 기록도 있다. ▶공포 정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로베스피에르 자신이 피의자가 됐다. 그가 했던 방식 그대로 그도 재판을 받았다. 사실 관계 조사도 없었고, 변론 기회도 없었다. 그의 죄를 고발한 검사는 그의 심복이던 푸키에 탕빌이었다. 사형 집행은 오히려 가혹했다. 오전에 선고받고 오후에 단두대로 갔다.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이 그의 일행을 조롱했다. 이 자식들아 무슨 말이라도 해 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칼은 떨어졌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로베스피에르를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과도한 적폐청산의 칼춤을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한다. 더 이상의 집착은 새로운 적폐로 남아 결국 자신들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로베스피에르의 단두대가 생각난다.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자살 직후 SNS에 남긴 글이다. 문재인 정부에 던지는 정치적 언어다. 그 말고도 여러 정치인들이 써먹는다. 굳이 꼬투리를 잡을 필요는 없다. ▶따져 볼 건 누가 로베스피에르를 처단했던 가다. 테르미도르의 반동은 공포정치에 반발한 또 다른 혁명이었다. 나폴레옹에 이르는 변화의 한 과정이었다. 시민 혁명의 퇴보는 맞다. 하지만 구(舊) 권력의 부활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 공공의 적(敵)은 왕정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루이 16세를 향한 봉기였다. 로베스피에르 때도, 그 이후에도 이 적이 바뀐 적은 없다. 구 권력,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이후 사라졌다. ▶박정희는 5ㆍ16혁명, 전두환은 정의사회 혁명, 노태우는 보통사람 혁명, 김영삼은 문민 혁명, 김대중은 국민 혁명, 노무현은 진보 혁명, 이명박은 경제혁명, 박근혜는 보수혁명을 말했다. 대부분 로베스피에르처럼 됐다. 감옥 가거나, 비참하게 끝났다. 문재인 정부의 촛불 혁명도 그렇게 갈 수 있다. 나경원 대표 주장이 믿는 역사적 법칙이다. 다만, 그 칼자루가 누구에 주어질지는 다른 문제다. 부패했던 루이 16세는 영원히 부활하지 못했음도 새길 필요가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기부 한파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는 해마다 연말이면 수천만원을 놓고 가는 기부자가 있다. 2000년 58만4천원을 시작으로 금액이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6천27만9천210원을 기부했다. 그동안 기부액이 5억813만8천810원에 달한다. 돈을 놓고간 이는 정체를 철저하게 숨겨 얼굴 없는 천사란 별명이 붙었다. 처음엔 초등학생을 시켜 돼지저금통을 주민센터에 전달했고, 다음해부터는 각기 다른 사람이 전화를 해서 ○○에 돈을 놓아뒀으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했다. 연말이면 전국 곳곳에 이런 얼굴 없는 천사들이 나타난다. 충북 제천에선 어떤 이가 17년간 매년 연탄 1만~2만장을 기부하고, 경기도 파주와 광주광역시에선 1t 트럭을 몰고 와 쌀 수백㎏을 놔두고 사라지는 이가 있다. 경남 합천에는 2015년부터 우체통에 현금 수십만~수백만원과 메모가 담긴 봉투를 넣는 우체통 천사도 있다. 이런 익명의 기부자들도 있지만 기부가 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는 기부 한파가 매섭다. 연말연시는 기부의 계절이라지만 예년과 달리 싸늘한 분위기다.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관리하는 사랑의 온도탑은 수은주가 얼어붙은 듯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다. 지난 23일까지의 모금액은 내년 1월 말까지 목표액의 36.7%인 1천508억원에 그쳤다. 작년 같은 기간 모금액의 85% 선이다. 경기도공동모금회도 올해 모금 목표액이 316억800만원이지만 기부 민심이 얼어붙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손길도 줄었고, 취약계층에 연탄 지원을 하는 연탄은행도 예전 같지 않다. 이는 계속되는 경기불황으로 기부활동이 위축된데다 각종 기부금 비리로 불신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불우아동을 위한 기부금 128억원을 유용한 새희망씨앗 사건, 딸의 희소병 치료를 도와달라며 모은 후원금 12억원을 챙겨 엉뚱한 곳에 탕진한 이영학 사건 등이 심각한 기부 불신을 낳았다. 이런 부정적 인식에 기부 포비아(phobia공포증)란 말까지 생겼다. 지난해 국민기부 참여율이 2010년 이후 최저치인 26.7%로 뚝 떨어졌다는 통계 역시 기부에 인색해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기부 불신으로 인해 기업이나 시민들의 나눔 문화가 식어선 안된다. 기부 한파가 불신에서 비롯된 만큼 기부금 관련 조직의 신뢰를 담보할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깜깜이로 불리는 모금단체들의 회계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기부는 남을 행복하게 하지만 자신도 행복해진다. 따뜻한 기부문화가 살아나 사랑의 온기가 전국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시간강사

2010년 조선대 서정민 강사가 열악한 시간강사 처우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교양필수 영어를 1주일에 10시간씩 강의하고 월 100만 원을 받았다. 교수 논문을 대신 써주며 버텼지만, 대학은 이마저 냉정하게 잘라버렸다. 서 박사는 결국 자살을 했고, 유서에 저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라고 밝혔다. 전국에 시간강사가 7만5천여 명에 이른다. 2017년 기준 대학 강의의 34.2%를 맡고 있다. 이 대학 저 대학 옮겨 다니며 강의하느라 학교내 연구실도 없어 보따리 장사로 불린다. 시간강사의 신분은 불안하고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에 따르면 1주일에 6시간 강의하는 사립대 시간강사가 퇴직금까지 합쳐 연봉이 900만 원 정도다. 이들은 전임교수들의 잡무에 동원되거나 논문 대필을 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노예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서 박사의 죽음을 계기로 대학강사의 참담한 실태가 알려지면서 2011년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보장하는 강사법(고등교육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대학들이 재정난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법 시행이 계속 유예됐다. 8년 간의 유예를 거듭하다가 지난달 개정안이 다시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 8월 강사법이 시행되면 대학은 시간강사에게 법적으로 교원 지위를 주고, 임용 기간은 1년 이상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방학 중에도 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그런데 결과는 역설적으로 시간강사를 대거 해고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대학이 감당해야 할 재정 부담 때문이다. 여러 대학이 시간강사를 줄이고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강의 대형화, 사이버 강의 확대, 과목 통폐합 및 학점 축소, 전임교수 강의 늘리기, 졸업학점 축소 등을 준비하고 있다. 강사법 통과로 처우개선과 신분보장을 기대했던 시간강사들이 오히려 실직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시간강사들은 그동안 대학이 헐값에 부려먹고 이제 인건비가 좀 든다는 이유로 내팽개치는 행태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부산대에선 시간강사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이 대학 시간강사는 1천100여 명에 이른다. 대학이 강사법을 빌미로 강좌를 축소하거나 시간강사를 대량 해고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강사들의 생존권도 문제이고, 학생들 또한 교육의 질 저하에 따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저임금과 힘든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시간강사들이다. 이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개선은 필요하다. 정부와 대학은 비용문제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그들은 왜 독립운동을 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최근 경기동부보훈지청에서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경기동부보훈지청과 민간단체, 공공기관, 학계 등으로 구성된 보훈혁신자문단은 지난달 14일 용인 수지구청 문서고에 보관돼 있던 1919년 당시 범죄인명부를 찾았고, 범죄인명부에서 머내 만세운동에 참여해 일본 순사들에게 태형(곤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16명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난 12일 경기동부보훈지청은 이렇게 발굴된 독립유공자 분들의 후손을 모시고 보훈혁신단의 이름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하는 신청식을 가졌다. 신청식 현장을 직접 찾아 독립유공자 후손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포상 신청식에는 머내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권병선 선생의 증손인 권영재 할아버지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권 할아버지는 자신의 증조부가 일본 순사들에게 매를 많이 맞았다는 것은 들었지만 이렇게 큰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몰랐다고 했다. 자신이 증조부의 독립운동에 대해 몰랐던 것은, 증조부인 권병선 선생이 살아있을 당시 자신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고, 또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 전문가는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가 혹시라도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독립운동 사실을 밝히는 것을 꺼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독립이 된 이후에도 독립운동 사실을 후손들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는 독립을 해 정권이 들어서고 정치인들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주민들과 직접적으로 만나고 생활하는 경찰 및 지역의 유지ㆍ권력자들은 친일행적을 했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남아 이어졌다며 아마도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 선조들은 해방은 됐지만 여전히 자신의 독립운동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그러한 사회라고 인식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했다. 또 선조들에게 죄송했다. 2019년 새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부와 많은 시민단체가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당신들이 목숨을 걸고 했던 그 독립운동을 우리 사회가, 후손들이 이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제대로 보여 드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호준 사회부 차장

[지지대] 잃어버린 낭만

다사다난했던 2018년도 이제 열흘 남짓 남았다. 30년 만에 한반도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남북 정상의 세 차례 만남을 통한 화해무드 조성 등 올 한 해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스포츠 등 각 분야에 걸쳐 참 많은 일들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그 과정에는 감동과 기쁨, 슬픔과 분노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함께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우리 곁에는 한 해의 끝자락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밑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나라 안팎으로 어려워진 경제 상황과 점점 각박해지는 사회 분위기가 가뜩이나 추운 겨울에 마음마저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연말이면 거리에 넘쳐났던 크리스마스 캐럴과 성탄카드, 연하장, 크리스마스 씰 등 연말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많은 것들이 우리 곁에서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송년모임 또한 대폭 축소되는 등 송년특수가 실종된 지 오래다. ▶이처럼 예전의 성탄절ㆍ송년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거나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은 경기침체가 가장 큰 이유다. 치솟는 물가에 날로 늘어나고 있는 청년실업 등으로 연말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차가운 분위기다. 또한 올해 들불처럼 번졌던 미투운동에 일명 김영란법 등으로 인해 회식문화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와 함께 저작권 문제 등으로 거리에 캐럴 소리가 사라진지 오래고, IT산업의 발전은 성탄절과 세밑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요즘 세태를 보면서 기성세대들은 예전보다 살기는 좋아졌지만 낭만은 없어졌다고 아쉬워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60~70년대에 비해 물질적 풍요는 누리고 있는 반면, 마음은 더 빈곤해졌다는 뜻이다. 지난 세월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생활고 속에서도 가끔씩 휴식을 통해 지친 마음을 달래며 이웃과 정감을 나누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연말 역시 마찬가지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가까운 사람들에게 성탄카드ㆍ연하장을 통해 안부를 나누고, 캐럴을 흥얼거리며 즐거워 했다. 작은 실비집에서 기울이는 송년회 술잔에는 정감이 가득했다. 세태는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점점 각박해지는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낭만을 즐기는 세밑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선학 체육부장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