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깡과 소신

어떠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두 종류의 생각을 하게 된다. “에이, 뭘해도 안될거야”, 아니면 “내 생각엔 이건 아니다. 정면 돌파해보자”라는 게 주된 요지일 것이다. 전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이후 ‘후회’라는 악연과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냥 해볼 걸 그랬나? 너무 후회되는데...시간을 다시 돌릴 수만 있다면...” 이같은 꼬리표는 아마도 그 사람이 죽는 그 순간까지 머리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반면 자기 소신이 맞다고 생각해 일을 실행에 옮긴 사람은 두 가지 달콤한 열매를 얻을 확률이 높다. (여기서 확률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꼭 100% 이렇게 된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 하겠다.) “내가 생각할 때 지금의 상황은 잘못됐다. 이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설득이란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내 소신을 명확히 전달할 것이다.” 이 사람은 ‘당당함’이란 1차 열매와 (해본 뒤에 안될 수도 있지만) 어떠한 것을 이루는 ‘성취감’을 얻기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얼마 전 출근을 하는데 염태영 수원시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김 기자, 기사에서 봤지만 난 그 과정과 절차가 맞지 않다고 생각해. 내일 있을 시장군수 간담회에서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할 것이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을 생각이야.” 상황은 이랬다. 염 시장님이 참석하지 못한 당선자 모임에서 3선의 다른 기초단체장이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장으로 내정됐다는 것이 발단이 됐다. 그 과정과 절차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다음날 오전, 후배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염 시장님이 되셨는데요!”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염 시장님이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장 자리는 본인의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보겠다는 깡을 바탕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혔기에 얻은 값진 선물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가슴 속 깊은 곳에 내재된 깡과 소신이 있을 것이다. 특히 정치 또는 광역·기초단체를 이끌어 가는 단체장에게 그 깡과 소신은 정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도민·시민의 삶에 큰 여파를 미치기 때문이다. 염 시장님이 보여준 그 깡과 소신이 수원시민과 더 나아가 경기도민 전체에게 행복이란 귀결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김규태 정치부 차장

[지지대] 가마솥 더위

한여름 찜통더위는 옛날부터 시골집 부엌의 가마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과 수증기를 닮았다 해 가마솥더위라 불렸다.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말 그대로 가마솥더위다. 낮에는 쓰러질까 돌아다니기가 겁날 정도이고, 밤에는 에어컨 등 냉방기기 도움 없인 열대야로 잠도 못 이루는 형국이다. 15일째 펄펄 끓는 이번 더위는 24년 전인 1994년 7월과 비교된다. 당시 한 달간 낮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는 날이 무려 18.3일이나 지속됐다. 이에 1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폐사했고, 수백 t에 달하는 수산물도 죽었다. 불볕더위의 여파로 인한 초과사망자 수도 수천명에 달할 것으로 집계됐었다. 이번 더위도 못지않다. 경기도 31개 시ㆍ군 전역은 물론 전국에 폭염경보가 계속되고 있다. 낮 최고 기온이 35도에 달하는 더위와 열대야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나마 중북부지역에 약한 비 소식이 있기는 하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양이 많이 부족하다. 오히려 습도를 끌어올려서 불쾌감만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특히 이번 더위는 초미세먼지와 높아진 오존지수까지 연계돼 있다. 기상청은 연일 온열질환자 발생 및 농축수산물 피해에 유의해달라고 한다. 또 식중독 위험성도 널리 알리는 등 일상생활 전반에 빨간불이 켜진 모양새로 피해는 날로 커지고 있다. 전력수요 및 수돗물 생산량 증가 등으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바닷물 수온도 올라간다 할 지경이다. 이런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적정한 실내외 온도 차 유지와 잦은 환기, 물이나 과일 및 채소를 통한 충분한 수분섭취, 균형잡힌 식사 및 날음식 먹지 않기 등이다. 비가 간절한 요즘 반가운 태풍 소식은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게 한다. 25일 새벽 괌 북서쪽 해상에서 제12호 태풍 ‘종다리’(JONGDARI)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로서는 경로가 아직 유동적이라 예단할 순 없지만,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마솥 더위를 조금 누그러뜨리지 않을까 잔뜩 기대해본다. 이명관 사회부장

[지지대] 마지막 촌철살인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숨졌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노 의원은 드루킹 측으로부터 금품 수수 의혹을 받아왔다. 드루킹 측근인 도모 변호사가 건넨 5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다. 도 변호사는 노 의원과 경기고등학교 동창이다. 또 드루킹의 인터넷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으로부터 강의료 명목으로 2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받아왔다. 노 의원은 그동안 “어떤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었다. ▶투신 당시 입고 있던 외투에 유서를 넣어 두었다.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지만 청탁이나 대가를 약속하지 않았다”고 썼다.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고도 했다. 정의당에도 말을 남겼다.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가족에는 “미안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애매한 정치적 술사를 쉽고 간단히 푸는 그만의 해석이 있었다. 안철수 전 대표가 “정치 일선 물러날 것. 국민이 소환 안 하면 복귀 못 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를 그는 “국민이 부른다는 이유로 복귀하겠습니다, 언젠가!”라고 번역했다. 홍준표 전 대표의 정치언어도 번역했다. “연말까지 나라가 나가는 방향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을 “연말·연초 정도에 복귀하겠다”로 해석했다. 이른바 ‘노회찬 번역기’로 불렸던 해석이다. ▶생전에 그는 이렇게 주장했었다. “드루킹 측으로부터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바 없다.” 이 말을 ‘노회찬 번역기’에 넣으면 이렇게 들린다. “드루킹에게 돈을 받기는 했다. 그런데 나는 적법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불행히도 이 번역도 맞은 듯하다. 유서에 남긴 글에서 ‘4천만원을 받았지만 청탁이나 대가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한다고 했다. ‘노회찬 번역기’를 만든 자 ‘노회찬 번역기’로 망한 형국이다. ▶무조건 잘못된 선택이다. 어떤 미사여구도 죽음보다 가치 있을 순 없다. 살아서 증명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참혹한 결정이 남겨놓은 의미는 있다. 염치와 책임, 그리고 사과다. 염치없는 정치인, 책임 안 지는 정치인, 사과할 줄 모르는 정치인들이 판치는-지금 이 순간에도- 이승에 던지고 간 마지막 촌철살인이 있다. 그답지 않게 멋도 없고, 기발함도 없지만 전해지는 의미만큼은 그가 했던 어떤 촌철살인보다고 절절하고 크다. “후회한다.” “부끄럽다.” “미안하다.” 새겨들어야 할 정치인이 여럿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휴가철 버려지는 반려동물

‘반려동물,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20일부터 ‘휴가철 유기동물 방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한국도로공사 협조로 전국 휴게소 120개소에 ‘동물유기가 불법’임을 알리는 포스터와 현수막을 게시했다. 여름 휴가철만 지나면 유기동물 숫자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유기동물 10만2천593마리 가운데 32.3%인 3만2천384마리가 6월부터 8월에 버려졌다. 월별로 따져봐도 7월이 1만1천260마리로 가장 많았고, 8월이 1만1천259마리로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연간 수치도 유실·유기동물 구조 건수가 2015년 8만2천 건, 2016년 8만9천 건에서 지난해 10만 건을 넘어서는 등 증가세다. 실시간 유기동물 통계 앱·사이트 ‘포인핸드(Paw in Hand)’에 따르면 이달 3~10일 전국 각지 보호소가 보호 중인 유기동물은 3천336마리다. 지난달 13~23일 1천669마리에서 20일 만에 2배로 늘었다. 버려지는 반려동물들은 주로 개, 고양이다. 휴가철마다 버려지는 동물이 급증하는 현상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새끼였을 때는 한없이 귀엽던 동물들이 막상 키우다보니 싫증 나거나 늙고 병들었다고 휴가지에 슬쩍 버리는 경우가 적잖다. 많은 이들이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반려동물을 데려가기도, 어디 맡기기도 마땅찮기 때문에 버리기도 한다.비용 부담이 만만치않고, 동물을 버려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누군가 대신 키워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와 맞물려 휴가철 반려동물 유기로 이어지고 있다. 휴가 전 다른 동네에 버리고 오거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휴가지에 놓고 오는 사례가 많다. 이는 ‘동물판 고려장’이나 다름없다. 우리사회 반려동물 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을 버리면 3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물리게 돼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동물보호 전담인력 부족으로 단속이 쉽지 않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라고 하지만 동물유기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미비하다. 유기동물이 늘어나는 건 공장제품 찍어내듯 무차별 공급되는 실태가 한몫한다. 또 누구라도 돈만 있으면 충동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버리는 것도 쉽게 생각한다.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의 무분별한 구입을 막을 필요가 있다.반려동물 등록제 시행을 철저히 하고 관리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동물의 생산ㆍ판매를 규제하고 소유자의 책임 및 유기 시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등 유기동물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동고동락하던 동물을 버리는 무책임한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슬리핑 차일드 체크(Sleeping Child Check)

2013년 3월 충북 청주에서 김세림 양(당시 3세)이 자신이 다니는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세림 양의 아버지는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강력한 법을 만들어 달라며 대통령에게 눈물의 편지를 썼다. 이후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이 만들어졌다. 세림이법은 어린이나 유아 통학차량에 운전자 외에 승하차를 도울 보호자가 1명 더 탑승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운전자는 승차한 어린이가 안전띠를 맺는지 확인 후 출발하도록 했다. 이 법은 2015년 1월 29일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시행됐고, 2017년 1월부터는 학원에도 적용됐다. 세림이 사건은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부주의로 인한 어린이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세림이를 막기 위해 세림이법이 만들어졌지만 법이 유명무실할 정도로 끔찍한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2016년 7월 광주광역시에선 당시 4세인 최모 양이 35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유치원 통학버스에 8시간이나 방치된 사건이 있었다. 최모 양은 그때 후유증으로 2년이 지난 지금도 의식불명 상태다. 지난 17일엔 동두천에서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4세 여자아이가 7시간 동안 갇혀있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폭염 속 숨 막히는 차량에서 몸부림쳤을 아이 생각에 국민들의 공분이 대단하다. 9인승 차량이면 운전자가 고개만 한번 돌려 확인했어도 아이를 발견했을 것이다. 인솔교사가 동승했는데 역시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과 캐나다에는 ‘슬리핑 차일드 체크(Sleeping Child Check)’ 시스템이 있다. ‘잠들어 있는 아이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이 제도는 통학차량 맨 뒷자리에 버튼을 설치해 운전자가 이를 눌러야만 시동을 끌 수 있도록 해 아이들의 하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이 21일 ‘슬리핑 차일드 체크 시스템’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어린이 통학버스를 운영하는 사람은 어린이나 영유아의 하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부주의로 발생하는 인재(人災)를 막을 수 없다면 차량 내 방치 사고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도 도입해 아이들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뒤늦게 발의된 법률안이 잠자도록 방치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천렵(川獵)

올여름도 더위가 심상치 않다. 온난화 탓인지 갈수록 심하다. 무더위를 넘어 그야말로 폭염이다. 기상청 기준 낮 최고기온이 최고 섭씨 33도 이상, 2일 지속되면 ‘폭염주의보’가 내려진다. 한 단계 높은 ‘폭염경보’는 35도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때를 말한다. 최근 들어 낮 기온이 경보 수준인 35도를 웃돌면서 37도까지 치솟고 있다. 기세가 무섭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더위를 물리치는 지혜로운 방법이 있다. 바로 천렵(川獵)이다. 뜻 맞는 사람끼리 냇가에서 고기 잡으며 하루를 즐기는 놀이다. 특히 여름, 삼복(三伏) 더위 중에 주로 했다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천렵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태종 7년 2월23일(1407년), 완산 부윤(完山府尹)에게 전지(傳旨)하여 “회안대군(懷安大君)이 성밑(城底) 근처에서 천렵(川獵)하는 것을 금(禁)하지 말게 하고, 또 관가(官家)의 작은 말(馬)을 내주게 하여 타게 하였다” 했다. 회안대군(이방간)은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이자, 태종 이방원(정안대군)의 형이다. 1차 왕자의 난 때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권력을 손에 넣었으나 2차 왕자의 난 때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결국, 난을 도모하다 실패한 회안대군은 귀양길에 오르고 완산(전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그곳에서 쳔렵을 허락받았다. 또 연산 1년 8월8일(1495년), 선릉 수릉관(宣陵守陵官) 박안성(朴安性)이 치계(馳啓)하기를, “삭망제 집사(朔望祭執事)들의 공궤(供饋)에 고기를 쓰기 때문에 혹 닭을 잡고 혹은 천렵(川獵)하여 냄새가 재실(齋室) 부엌에 풍기니, 이제부터는 제관(祭官)은 순전히 소식(素食)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는 내용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유천진암기(游天眞菴記)’, 조선 중기 선비이자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정경운의 ‘고대일록’ 등 고서 곳곳에서도 천렵을 찾아볼 수 있다. 삼복더위를 물리치며 풍류의 대명사로 불렸던 천렵, 조상의 지혜로움이 깃든 이른바 더위 퇴치법으로 손색없어 보인다. 올여름 천렵으로 폭염과의 한판 승부도 괜찮을 듯싶다. 지혜로운 조상들은 그렇게 풍류(風流)를 즐겼다. 김동수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시장논리와 제이노믹스

1978년 2차 석유 파동 당시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은 상태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기업 규제를 풀고 세금을 깎는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를 펼쳤다. ‘레이거노믹스’는 정부가 기업의 세금을 깎고 규제를 없애면 기업 이익이 늘고, 투자를 확대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기 때문에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레이거노믹스는 1980년대 초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호황을 누릴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영국의 대처 총리 역시 집권 초기인 1979년 15%대를 넘나드는 물가상승과 7%의 실업률을 잡기 위해 복지제도를 축소하는 ‘대처노믹스’를 시행했다.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 공기업을 민간기업으로 전환하고 세금감면 등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은 대처 총리는 영국의 플러스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베노믹스’를 들 수 있다. 아베 총리는 20여 년간 이어진 저성장 기조 탈피를 위해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엔화 가치를 내려 수출을 살렸다. 이와 함께 물가 상승률을 2~3%대를 유지 일본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제이노믹스(J-nomics)는 서민경제에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자리 창출, 소득기반 성장, 복지 강화로 3% 선에 그쳤던 재정지출 증가율을 7% 선까지 끌어올려 소비의 탄력적 성장을 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2019년 최저임금 시급이 8천350원으로 인상되자 제조업계와 소상공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정부의 특단 대책을 요구하며 단체행동 불사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오래전부터 공장을 외국으로 옮기겠다는 제조업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정부는 급기야 노동계에 소상공인 제품 구매운동에 나서달라고 호소하면서도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서민지갑 빵빵론’을 거론하며 “소득주도성장론을 부정하는 건 서민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정부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경제는 ’시장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수레바퀴이다. 정치 지도자의 잘 못 된 선택은 모든 국민은 물론, 국가 경제에 큰 손실을 끼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제이노믹스 가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끈 업적으로 기억되길 바랄 따름이다. 한동헌 인천 경제부장

[지지대] 거물 이해찬의 옷

故 김종필 총재는 기록의 정치인이다. 아홉 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30대에 국가정보기관-중앙정보부- 수장을 지냈다. 당 의장ㆍ총재ㆍ당 대표 등 당의 책임자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오래 역임했다. 국무총리도 40대와 70대 두 번이나 했다. 정치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그런데 국회의장만은 안 했다. 그 스스로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 여겼다. 국민의 정부 시절, 정치 기자들 사이에 ‘JP 국회의장설’이 돌았다. 그가 단 한 마디로 모른 걸 정리했다. “누가 장난쳤구먼….” ▶경기도지사 후보로 유시민은 어색했다. 3년 앞선 2007년에는 대통령 경선장에 있었다. 2년 앞선 18대 총선에는 대구 수성을에 있었다. 그랬던 유시민이 2010년 경기지사 후보로 나섰다. 인사차 들르겠다고 했다. 작정하고 질문을 준비했다. 들어서는 그에게 물었다. “몸에 맞는 옷이 아닌 거 같은데, 입어보는 척만 하시는 거 아닌가요.” 역시 언어의 마술사였다.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단추까지 다 채울 겁니다.” ▶‘입어 보는 척’-나름 선문(禪問)이랍시고 던진 질문이었다. ‘단추까지 끼우겠다’-즉석에서 튀어나온 선답(禪答)이었다. 그냥 웃어넘겼다. “하도 말씀을 잘하셔서 나름 준비했던 질문인데, 내가 졌네요.” 그 선거에서 유시민은 선전했다. 재선에 나선 김문수와 박빙의 승부를 폈다.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역시 몸에 맞는 옷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그 후로 방송인, 작가로 살고 있다. “누가 장난쳤구먼”이라며 몸값을 지켰으면 어땠을까. ▶이해찬 의원은 7선 의원이다. 친노ㆍ친문의 좌장으로 통한다. 당 대표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교육부 장관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총리까지 했다. 적어도 정치ㆍ행정 이력에 관해서 그와 견줄 여당 의원은 없다. 8월 전당 대회 기사가 온통 그의 기사다. 당 대표 경선판이 그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이해찬 의원이 나서면 모두 정리될 것’ ‘이해찬 의원의 경쟁자는 없다’는 논조다. 실제로 그와 각을 세울 ‘배짱 좋은’ 후보가 당에 있을까 싶다. ▶문제는 ‘옷’이다. 당 대표라는 ‘옷’이 그와 맞는가. 민주당 대표는 집권 여당 대표다. 대통령을 받치는 가장 큰 버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가 총리 할 때 대통령실장이었다. 경력, 선수(選數)에서도 비교가 안 된다. 대통령보다 훨씬 무거운 ‘몸’이다. 경선이라는 것도 그와는 영 어색하다. 격(格)이 다른 후배들과 ‘지지고 볶아야’ 한다. 최고 윗사람인 그만 손해다. 맞는 옷이 아니다. 그런 거 같다. 그에게 준비된 옷은 두 벌이다. ‘추대’라는 옷 한 벌과 ‘불출마’라는 옷 한 벌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극단적인 혐오

남성 혐오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가 성체(聖體)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며칠 전 워마드 사이트엔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성체에다 빨간 펜으로 예수를 모독하는 욕설을 쓴 뒤 이를 불태우는 사진이 게재됐다.천주교의 낙태죄 폐지 반대 입장과 여성 사제를 두지 않는 남성 중심 교리를 정면으로 조롱한 것이다. 이어 14일엔 버스 안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탑승객들의 목과 허리 등에 흉기를 겨냥하고 촬영한 사진이 올라왔다. 촬영 대상은 모두 남성들이다. 게시물 작성자는 “날이 너무 덥다. 그러다 보니까 짜증나서 한남을 찌르기도 한다”고 적었다. ‘워마드(Womad)’는 여성(Woman)과 유목민(nomad)이란 단어가 합성된 것이다. ‘오직 여성 인권만을 위한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워마드는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한다. 워마드는 2016년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윤봉길을 비하하는 게시물로, 지난해엔 교통사고로 사망한 배우 김주혁을 조롱하는 글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남성 알몸사진 유포 사건, 호주 남자 어린이 성폭행 사건, 홍대 누드모델 사진 유포 사건 등으로도 몇 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성체 훼손 외에도 예수상으로 수음 행위를 하거나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불태우는 등 종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논란이 이어지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온라인상의 차별·비하 표현의 경우 혐오 풍토 조장을 넘어 자칫 현실범죄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며 워마드에 대한 단속을 하기로 했다. 워마드에서 유통되는 차별·비하, 모욕, 반인류·패륜적 정보를 중점 살펴보고 시정 요구 등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이다. 예멘 난민 문제, 양심적 병역 거부 논란, 혜화역 시위…. 요즘 사회 전반에 난민 혐오, 종교 혐오, 성 혐오 등 ‘혐오’가 넘쳐나고 있다. 한때 문학작품이나 신문기사에나 등장하던 ‘혐오(嫌惡)’라는 한자어는 ‘극혐(극도로 혐오한다)’이란 말로 확대돼 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됐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의 역사는 짧지 않다.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는 반공을 둘러싼 이념 갈등에서 주로 나타났지만, 그 이후 에이즈, 환경, 정치, 테러 등으로 확산했다. 지금은 성, 난민, 세대, 무슬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분출되고 있다. 혐오 확산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성화가 한 몫하고 있다. 문제는 혐오가 상대적 소수자나 약자를 겨냥한다는 것이다. 또 기존 질서와 충돌하며 새로운 혐오와 차별을 낳는다. 집단으로 표출되는 혐오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혐오 표출이 매우 우려스럽다. 사회병리 현상이 된 극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펄펄 끓는 폭염

전국이 연일 펄펄 끓는다.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어서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구, 경주 등 일부 지역은 37도까지 올라가는 등 숨이 턱턱 막힌다. 경기지역도 15일 올해 첫 폭염(暴炎) 경보가 내려졌다. 수도권기상청은 이날 오전 11시를 기해 여주, 안성, 평택에 내려진 폭염 주의보를 폭염 경보로 격상했다. 이들 지역은 낮 최고기온이 35도 이상 오를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도내 대부분 지역도 폭염 주의보가 내려졌다. 폭염 주의보는 하루 최고 기온이 33도, 폭염 경보는 35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한반도 전체가 펄펄 끓는 가운데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주의보 내지 폭염 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국민들은 더워서 못 살겠다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푹푹 찌는 가마솥 더위에 환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폭염에 열대야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일사병,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가 한 주 사이 3배 규모로 급증했다. 7월 첫째주 집계 52명이던 온열질환자는 한주 사이 145명으로 늘었다. 환자는 고령자에서 많이 나와 50세 이상 환자가 306명으로 83.6%를 차지했다. 열사병으로 숨진 사람도 3명이나 된다. 경남 김해에선 한 낮에 텃밭에서 일하던 80대 할머니가 쓰러져 숨졌는가 하면, 3살바기 어린이가 자동차 뒷차석에 방치됐다가 숨진 사례도 있다. ‘사람잡는 폭염’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땐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인체에 해가 된다. 고령자들은 특히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위험 시간대’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물을 많이 마시며 적절한 휴식을 취하는게 좋다. 뜨거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 시 두통, 어지러움, 근육경련, 피로감, 의식저하 증상이 나타나고, 방치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폭염은 소리없는 살인자다. 태풍이나 집중호우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낸다. 서울 최고 기온이 38.4도를 기록했던 1994년엔 더위로 사망한 사람이 3천384명이나 됐다. 노인과 어린이, 만성질환자에게 폭염은 치명적이다. 냉방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홀로사는 노인, 쪽방촌 사람들 등 에너지 빈곤층도 위험에 처해있다. 이들은 올 여름도 폭염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여름나기가 목숨을 건 사투일 수 있다. 폭염이 당분간 계속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화되는’ 폭염을 재난으로 인식하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 이웃 간에 서로 살피는 배려도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지방의원 활동, ‘공약 공개’부터 시작하자

최근 뉴스 중 눈에 띄는 소식이 있다. 지난달 치러진 6ㆍ13 지방선거를 통해 경기도민들의 선택을 받은 제10대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공약 실천을 위해 TF를 구성한다는 소식이다. 경기도민으로서 참 오랜만에 반갑고 기대되는 뉴스다. 도의원뿐만 아니라 시ㆍ군 기초의원들 모두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ㆍ군수와 마찬가지로 각자 다양한 공약을 내걸고 주민들의 선택을 받아 선출된다. 그러나 현재 광역ㆍ기초 등 지방의원들은 어디에서도 공약이행실태를 평가받지 않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국회의원들과 시장ㆍ군수들에 대한 공약이행 실태 평가는 진행하고 있지만 지방의원들은 평가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더욱이 지방의원들이 무엇을 내걸고 선거에 나섰는지 ‘공약을 찾아보는 것’조차 어렵다. 5년 전인 2013년 7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4년 6월4일 실시)를 1년 남겨 놓고 ‘사라진 1천500개의 약속’이라는 기획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이 기획기사는 “우리 동네 도의원은 공약을 얼마나 지켰을까”라는 본 기자의 아주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취재를 하면서 굉장히 난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공약 이행 실태를 분석해야 하는데, 도의원 공약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기도의원뿐만 아니라 전국 17개 시ㆍ도중 인천시를 제외한 16개 지역 광역의원들이 모두 공약을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선거관리위원회 전자도서관을 뒤져 도의원들이 후보시절 선관위에 제출한 공보물을 토대로 공약을 분석했고, 그 결과 당시 130명이었던 경기도의원들이 제시했던 공약은 총 1천555개이며 이중 21%가량만 이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5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도의회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많은 시ㆍ군의회 홈페이지에서 지방의원들의 공약은 찾아 볼 수 없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전 간절한 마음으로 선거에 나섰던 지방의원들이 각자 원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지방의원으로서 활동에 나서기 전, 일단 자신이 주민들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선택을 받았는지 홈페이지에 공약을 공개하는 것부터 첫 의정 활동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호준 사회부 차장

[지지대] 청년, 일자리가 없나?

1970년대 누나들은 서울 구로공단, 영등포 가발공장에서 쉼 없이 일했다. 월급을 받으면 자신이 쓸 최소 비용만 남기고 고스란히 부모님께 보냈다. 동생들 학비와 생활비였다. 누나들은 노처녀 나이를 훌쩍 넘을 때까지 몸이 부서져라 일 만했다. 산업역군이라는 미명하에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열악한 노동환경 속이지만 우리 사회 여성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기반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970~1980년대 이른바 ‘중동 붐’은 토목, 건설 등 제한된 분야였지만 ‘열사의 중동 사막’ 근로자들은 한국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도 돈을 벌겠다는 결심으로 중동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국 만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했지만 급여는 한국에서의 두 배였다. 그야말로 기회의 땅, 엘도라도(El Dorado)였다. 이들이 흘린 사막의 비지땀은 1인당 국민소득을 1만 달러 시대를 여는 디딤돌이 됐다. 올해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악이란 통계로 우리 사회가 우울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10.5%로 1년 전보다 1.3%포인트나 상승했다. 다행히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9.0%로 1.4%포인트 하락하고 고용률은 42.9%로 전년동월 대비 0.2%포인트 상승했다. 실업률이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고용난 쇼크는 여전하다. 이처럼 청년실업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정말 일자리가 없어서일까. 현 상황에 대해 청년들은 사회ㆍ경제적 상황이 아버지 시대와 다르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취업 경쟁이 치열하지도 않았고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여서 일자리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아버지 시대도 현시대만큼 어려웠다. 다른 점이 있다면 책임감과 도전정신이 좀 더 강했다는 것이다. 공장에 다니고 이국 땅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는 돈 벌어 생활에 보탬이 되겠다는 의지의 결과였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일하지 않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라”며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일침을 가한다. 경기도가 기본소득 정책일환으로 ‘청년배당’ 연 100만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4년 뒤 정책 결과가 궁금하다. 김창학 경제부장

[지지대] 삼성 채용 ‘대통령 효과’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다. 차기 대통령 선거는 5월 9일로 잡혔다. 이 두 달이 우리 역사에 전례 없던 ‘합법적 권력 공백기’였다. 바로 이런 때 대기업의 채용 의지를 알아본 통계가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4월 18일 발표한 자료다. 100인 이상 기업 258개를 대상으로 채용 계획을 조사했다. 채용 규모가 전년대비 6.6%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원 1천명 이상의 대기업 신규 채용도 3.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서 기업들은 ‘경기 침체와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내린 해석은 달랐다. 전년도인 2016년 기업 활동은 대체로 호황이었다. 대기업의 60%가량이 개선된 실적을 보였다. ‘경기 침체’가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봤다. ‘대통령(정부)의 압력 감소’다. 대통령의 압박이 없으니 뽑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건의 불확실성’은 차기 정부에서 왕창 뽑으라 할 테니 아껴두자는 뜻이었다. ▶괜한 분석이 아니다. 근래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이 가장 늘었던 구간은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다. 2008년 2월에서 2013년 2월까지 5년이 취업 호황기였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기업에는 더 없는 채용 압박이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부작용이 나타났다. 과도하게 뽑은 직원 규모에 정부 압박까지 느슨해지면서 ‘고용 절벽’이 생겼다. “기업의 채용 규모는 대통령 말에 좌우된다”는 채용시장에서는 오랜 정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9일 인도 현지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에서다. 예정에 없던 접견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적폐 청산 수장 문 대통령과 적폐 연루 피고인 이 부회장의 만남이니 그럴 만도 하다. 5분짜리 둘의 대화가 덩달아 관심을 끌었다. 문 대통령이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언론은 ‘일자리를 위한 대통령의 행보’라며 이날 접견에 의미를 달았다. ▶삼성은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을 늘릴 것인가. 삼성전자의 지난해 말 직원 수는 9만9천784명이다. 전년도에 비해 6천584명이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직원은 계속 늘었다. 현재 10만명을 넘은 것으로 알려진다. 대규모 채용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건 ‘문 대통령ㆍ이 부회장 접견’이 없을 때의 분석이다. 대통령의 삼성에 ‘채용 확대’를 당부했다. 삼성에는 채용 확대에 대한 압력이다. 정경유착? 취준생들의 눈이 모처럼 커지고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대체복무제

‘불살생계(不殺生戒)’는 불교신자가 지켜야 할 계율 중 으뜸이다.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는 뜻이다. 일찍이 출가한 스님들은 군대 생활이 고통이었다. 강제적 육식과 음주, 살생의 기술을 포함하는 군사훈련은 수행의 단절을 넘어 생명과도 같은 계율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일어섰던 한국불교는 계율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진 않았다.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 이슈가 된 것은 2001년 불교신자 오태양씨 사건이 처음이다. 오씨는 ‘불살생계’라는 불교적 신념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하며, 대체복무할 자유를 요구했다.2006년엔 불자 김도형씨도 병역을 거부했다. 이들은 병역법 위반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병역을 거부하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는데 ‘여호와의 증인’이 대부분이다. 매년 500여 명이 교도소로 보내지지만 소수종교이다 보니 별난 종교의 매국행위 정도로 매도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8일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한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내년 12월31일까지 대체복무제 입법을 요구했다.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체복무제는 군 입영 기피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사람들이 군과 관련없는 시설에서 군 복무를 대신해 근무하는 것이다.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국가는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 대만 등 20여 개국에 달한다.이들 국가의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의 1.5~2배다. 현역 복무 기간이 9개월인 그리스의 대체복무 기간은 17개월이고, 현역 복무가 165일인 핀란드는 347일을 대체 복무해야 한다. 병역거부 사유에 대한 심사도 까다롭다. 대체복무 근무지는 우체국이나 법원 같은 행정부처, 소방·경찰 등의 치안·안전 관련 분야 등을 망라한다. 특히 사회복지 분야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대체복무제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현역병 복무기간은 육군 21개월, 해군 23개월, 공군 24개월이다. 대체복무 기간은 당연히 길어야 할 것이며, 심사 또한 까다롭고 철저해야 한다. 대체복무가 인정되면 양심적이지 않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급증할 수 있다.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게 걸러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병역 의무에 있어 중요한 것은 형평성이다. 현역 복무자들이 상실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군대 가는 것은 비양심적인가’라는 비아냥이 나오면 안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불편한 교복

여고시절 허리라인이 들어간 흰색 셔츠에 자주색 플레어스커트를 교복으로 입었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플레어스커트는 펑퍼짐해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스커트로 덮어도 될 정도로 편했다. 셔츠는 몸에 맞게 입어 활동이 불편했지만 여름엔 학교 측 배려로 카라가 달린 흰색 면티를 입었다. 여름 교복 상의는 통학할 때만 입었다. 교복은 고3을 끝으로 이후 없어졌다. 1983년부터 교복자율화 조치로 교복 대신 자유복을 입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교복자율화를 통해 학생들의 개성과 자율성이 중시된 반면 사복 착용으로 교사들의 학생지도가 어려워지고,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과 학생간 빈부격차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이에 1986년부터 교복이 다시 등장하게 됐고, 학교장 재량이긴 하나 1990년 이후 대부분의 학교가 교복을 입고 있다. 새로운 교복은 이전보다 세련되고 다양한 디자인이 선보여졌는데 대기업의 교복시장 진출로 교복 가격이 크게 오르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최근 여학생들의 교복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몸에 꽉 낀다. 상의는 배꼽을 간신히 덮을 정로도 짧고 타이트하다. 스커트도 팬티가 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짧고 좁다. 대형 교복업체들은 더 짧게, 더 좁게 ‘라인’을 강조하며 아이돌스타를 모델로 내세워 마케팅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학생들은 광고 속 아이돌처럼 ‘핏’을 살리기 위해 품을 줄이고 길이를 줄여 입는다. 그렇다고 모든 여학생들이 핏을 살린 교복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여학생 하복 상의가 너무 작고 불편하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학생들의 교복을 바꿔달라’는 등의 청원 게시글이 여럿 올라왔다. 여중생의 경우 기성교복 자체가 7세 아동복 사이즈 정도로 작게 나와 코르셋처럼 불편하다고 한다. 일부 학교에선 상의 바깥으로 비칠까봐 여학생들의 속옷 색도 규정하고 있다. 남녀 교복에 차별을 두지 말라는 청원글도 올라왔다. 이 같은 청원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김상곤 교육부장관에게 여학생 교복을 편안한 옷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일부 학교이긴 하지만 경직된 교복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광주 송광중학교는 활동성이 높고 세탁이 편리한 생활복을 하복으로 채택해 남녀 구분 없이 입도록 했고, 서울 한가람고에선 봄가을엔 헐렁한 후드티를, 여름에는 반바지와 면 티셔츠를 교복으로 해 호응을 얻고 있다. 입시 스트레스에 숨 막히는 학생들이 교복까지 불편해 숨을 제대로 못 쉬어서 되겠는가. 이참에 교복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 남녀 구분을 없애는 ‘성 중립 교복’도 고려해볼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맙소사, 누가 저 학생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나

“미래 우리 아이들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안 나오게 해주세요” 재선에 성공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지난 2일 광명 운산고교를 방문했을 때 한 학생이 남긴 메모다. 여고생은 26자에 불과한 짧은 문장 속에서 ‘죽음’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맙소사, 누가 저 학생에게 저런 말을 가르쳐 주었을까. ▶이재정 교육감과 운산고 학생들이 교육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취임식을 대신한 그 시간, 도내 한 지역에선 2005년생의 한 여중생이 투신 자살했다. 또 5일에도 고3 수험생이 죽었다. 기자는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학생의 자살 기사를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다.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원인 중 1위가 자살이고 도내에서 한 여학생이 자해를 반복하다 결국 집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육하원칙에 맞춰 빨리 적을 자신이 없었다. ▶경기도교육청 학생 자살 사망 실태 보고에 따르면 2015년 24명, 2016년 27명의 학생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또 2016년에 자살을 시도한 학생도 82명이 된다. 2017년도에는 더욱 심화돼 2017년 5월 기준으로 경기도 학생 자살 사망자는 17명, 자살시도자는 46명에 이른다. 이렇듯 학생 자살 사안이 전년에 비해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학교 현장에선 학생 자살 위기에 대한 이해 부족 및 체계적인 예방이나 대응 절차를 갖추고 있지 못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부족한 상태다. 경기도교육청이 목표로 하는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을 이루기 위해서는 위기 학생에 대한 학교의 대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가장 극단적인 위기 상황인 경기도 학생의 자살 현황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자살 위험 요인 및 현행 대응 정책에 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계급화된 입시경쟁에서 각자 살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제는 앞만 보고 오르는 법이 아닌 실패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법,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르칠 때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 이 언어유희가 경기도교육청과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전쟁’과 ‘축제’의 월드컵

지구촌 최대 축제인 ‘꿈의 구연(球宴)’ 월드컵은 4년마다 지구촌 사람들을 한 달간 뜨거운 축구의 열기로 몰아넣는다. 6월15일 개막한 2018 러시아 월드컵도 치열했던 조별리그를 거쳐 8강 진출팀이 모두 가려진 가운데 종착역인 마지막 우승 경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수많은 스포츠 종목 가운데 단일 종목으로 지구촌을 열광시키는 종목은 축구 밖에 없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월드컵에 비견되지만 세계 모든 나라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누리는 축구만은 못하다.▶월드컵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축구가 지구촌 모든 국가의 사랑을 받고 있고, 국력의 강ㆍ약을 떠나 오히려 경제ㆍ군사적 약소국이 강대국을 꺾을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또한 월드컵 본선무대에는 32개국 만이 출전하지만, 대륙별 예선에는 211개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 모두가 참여하는 사실상 모든 국가의 축제다. 여기에 월드컵은 각본 없이 치러지는 스펙터클한 드라마이자 거대한 블록버스터로 월드컵 기간동안 출전국 국민들을 축구공 하나로 응집시키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월드컵은 ‘축제’와 ‘전쟁’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에게는 반드시 승리만이 필요한 ‘전쟁’이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과 TV를 통해 지켜보는 연인원 600억여 명의 지구촌 사람들에게는 승패도 중요하지만 대리만족과 이를 통해 감동과 희열을 느끼는 ‘축제’인 것이다. 월드컵 대회기간 경기장 및 주변 도시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축제가 펼쳐진다. 특히, 역대 최다 출전국(20회)이자 최다 우승국(5회)인 브라질이 경기를 하는 곳에는 항상 삼바리듬에 맞춘 흥겨운 축제의 장이 마련된다.▶우리나라 역시 이번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은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죽음의 F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결국 1승 2패로 목표했던 16강 진출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서 ‘거함’ 독일을 2-0으로 꺾음으로써 국민들은 축제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축제의 끝에 태극전사들에 대한 ‘공항 계란 투척사건’이 찬물을 끼얹었다. 축제는 도외시한 채 전쟁의 결과에만 몰입한 사람들의 행동 때문으로 9회 연속 본선 무대에 오른 아시아 유일 국가 축구팬으로서의 성숙된 모습이 아쉬운 대목이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항공사와 권력

대한항공 창업자(인수자)는 故 조중훈이다. 서울 출신으로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9년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5ㆍ16 군부 세력이 서슬 퍼렇던 시절이었다. 권력의 배려 없이는 공사(公私) 인수가 설명 안 된다. 아시아나 항공의 모체 금호그룹 창업자는 故 박인천이다. 전남 나주 출신으로 나주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3남이 현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 박삼구다. 두 항공사의 배경을 영남과 호남으로 나누는 출발 조건이다. ▶물론 아시아나 항공의 출현을 보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8년에 제2 민간항공이 됐다. 사업권 허가를 받은 날이 1988년 2월 23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퇴임 하루 전이다. 2007년에는 이른바 ‘전두환 공짜 비행기표’ 논란이 일었다. 77회 생일을 앞두고 미국으로 출국한 전 전 대통령 일행에 아시아나 측이 왕복 티켓을 제공한 사실이 알려졌다. 군사 정권과의 연을 따지면 아시아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작 두 항공사에 정치적 색깔을 입힌 건 대통령 전용기 역사다. 영남 출신 노태우ㆍ김영삼 대통령이 대한항공 전용기를 썼다. 호남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나 항공으로 바꾸었다. 영남 출신ㆍ호남 지지 노무현 대통령은 두 항공사를 교대로 이용했다. 영남 출신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항공과 5년 계약을 맺었다. 이어진 영남 출신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항공과의 이 계약을 2020년까지 연장했다. 대통령과 항공사의 묘한 역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조현아 물벼락 사건이 터졌다. 경찰 수사, 국세청 조사, 관세청 수사가 파상적으로 이어졌다. 어머니 이명희씨의 욕설 파문도 터졌다. 연거푸 두 번이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급기야 사정 칼날은 조양호 회장에까지 향했다. ‘있는 자’의 갑질에 대한 여론의 분노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시아나 키워주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조씨 일가의 혐의가 구속영장을 청구하기에는 과하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이런 때, 아시아나 항공의 대형 악재가 터졌다. 협력사와의 문제로 기내식이 공급되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협력사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 재계약 과정에서 무리한 투자 압박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살인 갑질, 조사 요구합니다’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대한항공의 업체 관계자 물벼락, 사모님 기사 막말 등에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이다. ▶일부 여론이 빈정댄다. ‘정부가 봐주려던 아시아나가 사고를 쳤다’. 정부로서는 그대로 둘 수 없는 일이다. 사실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대한항공과 똑같은 강도로 수사하면 된다. 사무실 압수하고, 총수 집 뒤져야 한다. 회사 돈 횡령, 총수 일가 비자금, 총수 가족 외국 계좌 등을 다 조사해야 한다. 혐의자가 드러날 때 구속영장 청구는 기본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폭주노인’의 그늘

지난주 성남시 수정구의 한 주택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74세 남성이 형사 입건됐다.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로 이유로 72세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행을 말리던 또 다른 여성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했다. 노인 강력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 예전엔 주로 범죄 피해자였던 이들이 가해자로 변하고 있다. 노인 범죄는 10대 청소년 범죄를 앞질러 이젠 골목길 비행 청소년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노인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력범죄로 법정에 서는 노인들도 급증했다. 부인을 여러차례 흉기로 찔러 살인미수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98세 노인에게 법원이 징역 4년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 감옥에서 100세를 맞아야 하지만 고령임에도 죄질이 무거워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 2월 서울고법에선 76세 남성이 살인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배가 나왔다’고 놀리던 이웃을 죽인 혐의다. 같은 달 80세 남성도 살인미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6년간 만나던 여성이 다른 남자를 만나자 음료수 병에 제초제를 넣어서였다. 법무부에 따르면 범죄로 수감 중인 만 65세 이상 수용자가 2016년 2천434명으로 2007년(782명)보다 3배 이상 늘었다. 강제추행, 강간 등이 많고 살인·방화 등 강력 범죄로 수감된 이도 상당수다. 노인 살인범들의 특징은 대부분 초범이고, 순간의 화를 억누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쌓여있는 분노가 폭발하면서 살인 및 성범죄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일본과 비슷하다. 일본에선 고령 범죄자 문제를 진단한 ‘폭주노인(暴走老人)’이란 책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은 노인 범죄의 원인을 정서적 좌절에서 찾는다. 은퇴 후 사회적 고립감과 경제적 빈곤 등에서 오는 정서적 좌절과 사회 불만이 폭력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폭주 노인은 개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큰 틀에선 고령화 사회의 그늘로 봐야 한다. 노인 강력범죄는 몇몇 폭주 노인을 엄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노인범죄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먼저, 국가적 차원에서 노인이 최저 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보장 제도를 마련해줘야 한다. 노인에 대한 정서적 지원을 통해 노인들의 고립감과 상실감을 해소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빨대와의 전쟁

지난 5월 태국 해변에서 구조돼 치료를 받다 숨진 돌고래의 뱃속에서 80여 장의 비닐봉지가 나왔다. 비닐봉지를 토해내며 죽어가던 돌고래를 부검해보니 배 속에 비닐이 가득했다. 비닐을 먹이로 착각해 삼킨 것이다. 스페인의 한 매립지에선 투명한 푸른색 비닐봉지에 온몸이 갇혀버린 황새가 발견됐다. 2015년 코스타리카 연안에선 바다거북의 한쪽 코에 12cm 길이의 플라스틱 빨대가 깊숙이 박혀 고통받고 있는 것을 구조대가 펜치로 뽑아낸 적이 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거북은 극심한 고통에 눈물을 흘리며 입을 쩍쩍 벌릴 뿐 어찌하질 못했다. 이 동영상을 보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크게 확산되진 못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매년 800만톤 이상 바다로 흘러가 해양생물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북태평양에서 한반도 7배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섬이 발견됐다. 2015년 기준 한국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연간 132.7㎏으로 미국 93.8㎏이나 일본 65.8㎏보다 많다. 그만큼 많이 버린다는 얘기도 된다. 지구가 플라스틱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동물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제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올해 환경의 날 주제를 ‘플라스틱 오염 퇴치’로 정하고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일회용 플라스틱이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미국과 유럽에선 정부와 기업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빨대 퇴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플라스틱 중에서도 ‘빨대’가 타깃이 된 것은 가볍고 작아서 재활용이 어려운 데다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잠깐 사용한 빨대 하나가 분해되는데 500년 이상 걸린다니 끔찍한 일이다. 유럽연합(EU)은 오는 2021년까지 빨대와 페트병, 면봉 등 10여 종의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스위스, 캐나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도 식당과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 커피스틱을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는 영국과 네덜란드 등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고 종이나 친환경 소재 빨대로 대체하는 사업을 시범 시행하고 있다.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이 세계 2위 수준인 우리는 플라스틱 빨대 관련 대책이 없다. 환경부 주도로 재활용폐기물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줄이겠다고 하나, 빨대는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줄이기는 캠페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 세계가 선포한 ‘빨대와의 전쟁’, 우리도 시작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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