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도 더위가 심상치 않다. 온난화 탓인지 갈수록 심하다. 무더위를 넘어 그야말로 폭염이다. 기상청 기준 낮 최고기온이 최고 섭씨 33도 이상, 2일 지속되면 ‘폭염주의보’가 내려진다. 한 단계 높은 ‘폭염경보’는 35도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때를 말한다. 최근 들어 낮 기온이 경보 수준인 35도를 웃돌면서 37도까지 치솟고 있다. 기세가 무섭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더위를 물리치는 지혜로운 방법이 있다. 바로 천렵(川獵)이다. 뜻 맞는 사람끼리 냇가에서 고기 잡으며 하루를 즐기는 놀이다. 특히 여름, 삼복(三伏) 더위 중에 주로 했다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천렵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태종 7년 2월23일(1407년), 완산 부윤(完山府尹)에게 전지(傳旨)하여 “회안대군(懷安大君)이 성밑(城底) 근처에서 천렵(川獵)하는 것을 금(禁)하지 말게 하고, 또 관가(官家)의 작은 말(馬)을 내주게 하여 타게 하였다” 했다. 회안대군(이방간)은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이자, 태종 이방원(정안대군)의 형이다. 1차 왕자의 난 때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권력을 손에 넣었으나 2차 왕자의 난 때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결국, 난을 도모하다 실패한 회안대군은 귀양길에 오르고 완산(전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그곳에서 쳔렵을 허락받았다. 또 연산 1년 8월8일(1495년), 선릉 수릉관(宣陵守陵官) 박안성(朴安性)이 치계(馳啓)하기를, “삭망제 집사(朔望祭執事)들의 공궤(供饋)에 고기를 쓰기 때문에 혹 닭을 잡고 혹은 천렵(川獵)하여 냄새가 재실(齋室) 부엌에 풍기니, 이제부터는 제관(祭官)은 순전히 소식(素食)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는 내용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유천진암기(游天眞菴記)’, 조선 중기 선비이자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정경운의 ‘고대일록’ 등 고서 곳곳에서도 천렵을 찾아볼 수 있다. 삼복더위를 물리치며 풍류의 대명사로 불렸던 천렵, 조상의 지혜로움이 깃든 이른바 더위 퇴치법으로 손색없어 보인다. 올여름 천렵으로 폭염과의 한판 승부도 괜찮을 듯싶다. 지혜로운 조상들은 그렇게 풍류(風流)를 즐겼다. 김동수 지역사회부장
오피니언
김동수 지역사회부장
2018-07-19 2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