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儀軌)’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 내용을 정리한 기록이다. 주로 왕실의 혼사, 장례, 건축, 잔치 등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해 유사한 행사가 있을 때 참고하도록 했다. ‘의궤’는 조선 왕실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문화의 꽃으로,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존하는 의궤 중엔 1601년(선조 34)에 만든 의인왕후 장례에 관한 것이 가장 오래됐다. 가장 오래된 한글본 의궤는 ‘정리의궤(整理儀軌ㆍ원이름 뎡니의궤)’다. 120여 년전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정리의궤’는 정조 임금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는 과정을 담은 ‘현륭원 의궤’, 정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8일간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 축조 과정을 담은 ‘화성성역의궤’ 등을 한글로 정리한 의궤로 국내에 없는 판본이다. 한글본 정리의궤는 총 48책 중 13책만 현존한다. 12책이 프랑스 국립동양어대학 언어문명도서관에 있고, 나머지 한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도서관의 채색본 ‘정리의궤(성역도) 39’는 화성행궁도 등 수원화성의 주요 시설물과 행사관련 채색 그림 43장, 한글로 적은 축성(築城) 주요 일지 12장 등 총 55장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화성성역의궤’에 없는 봉수당도, 당낙당도, 복내당도, 유여택도, 낙남헌도, 동장대시열도 등이 수록돼 가치가 매우 크다. 정리의궤와 화성성역의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채색이다. 목판으로 인쇄된 화성성역의궤 속 그림은 훈련도감 소속 마병(馬兵) 엄치욱의 작품인데, 정리의궤는 국가 관청인 도화서(圖畵署) 화원들이 그린 작품이어서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 한글본 정리의궤는 한국의 첫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1835∼1922)의 수집품으로 12책은 국립동양어대학에 기증됐고, 채색본은 경매상을 거쳐 국립도서관이 구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원시는 2016년 6월 한글본 정리의궤의 존재를 알았다. 시가 대여를 요청했지만 ‘외규장각 의궤’ 반환 이후 문화재 환수에 민감한 프랑스 측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프랑스 도서관 측과 협의를 통해 복제본을 제작하기로 했다. 안민석 국회의원, 김준혁 한신대 교수 등의 노고가 컸다. 한글본 정리의궤 13책이 120년만에 다시 태어나 지난 17일 공개됐다. 실물과 거의 똑같은 복제본은 12월16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 특별기획전 ‘수원의 궁궐, 화성행궁’에 전시된다. 정리의궤 복제본은 정조시대와 수원화성 연구에 도움이 되고, 수원화성의 가치를 빛내줄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오피니언
이연섭 논설위원
2018-10-22 2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