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수원 최동원’

한국 프로야구에 이런 기록이 있다. 최다 이닝, 최다 승리, 최다 선발등판, 최다 선발승리, 최다 완투, 최다 완투승, 최다 완봉승, 최다 탈삼진. 무려 8개다. 코리안시리즈만 따진 기록이다. 최동원이다. 이런저런 라이벌은 있었다. 하지만, 이 기록에 견줄 상대는 없다. 훗날 야구인 이순철이 이렇게 회상했다. “타석에 들어섰는데 최동원의 공이 안 보였다. 삼진 먹고 들어온 내게 선배들이 얘기했다. ‘요즘 동원이 구위가 떨어졌어’”. ▶야구 말년은 쓸쓸했다. 고향이 그를 버렸다. 롯데 자이언트에서 방출됐다. 은퇴 후에도 돌아가지 못했다. 한화에서 2군 감독으로 마쳤다. 1991년 도전한 정치에서도 부산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54세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그제야 부산이 눈물을 흘렸다. ‘영원한 롯데 투수, 최동원’으로 기렸다. 그의 등번호 11번이 영원한 최동원으로 남았다. 이제 그는 동상이 되어 고향을 지키고 있다. ▶팬은 영웅을 그리워한다. 영웅을 만들 때 행복해 한다. 거기에 ‘내 고향’이라는 조건이 있다. 부산 야구에 최동원이 그랬다. 부산 출생-구덕초-경남중-경남고다. 광주 야구에 선동렬도 그렇게 가는 중이다. 광주 출생-송정초-무등중-광주일고다. 대구 야구에 이승엽도 그렇게 가는 중이다. 대구 출생-중앙초-경상중-경북고다. 지역 연고를 뿌리에 둔 한국 야구다. 흥행의 조건이기도 하다. 내 고향 선수를 찾는 건 필연적 선택일 수 있다. ▶프로야구 KT 위즈가 사람을 바꿨다. 단장에 이숭용 전 타격 코치를, 감독에 이강철 전 두산 베어스 코치를 임명했다. 시즌 성적이 꼴찌를 맴돌 때부터 인사설은 있었다. 탈꼴찌에 성공했지만 인적 쇄신의 요구는 여전했다. 이 단장 임명은 ‘선수 출신 단장’이라는 최근 트렌드로 해석됐다. 이 감독 임명은 ‘투수 출신의 최강 베어스 살림꾼’이라는 경험이 평가된 듯하다. 많은 팬이 기대를 보낸다. 2019 시즌의 도약을 부탁하는 소리가 높다. ▶그 속에 이런 팬들이 있다. “수원 야구팀인데 수원 사람이 왜 없나”. 이 단장은 현대 유니폼을 입고 수원에서 뛰었다. 수원 야구장을 2구장으로 쓰던 시절이다. 그 스스로 이런 연고를 얘기하곤 한다. 코치로 영입되던 2017년 “수원은 제2의 고향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제1의 고향’이 되는 건 아니다. 이 감독에게는 특별한 수원 연고를 찾을 수 없다. 그 스스로 수원을 말한 기록도 없다. 비(非) 수원 두 명에 맡겨진 KT의 2019년이다. ▶욕심이다. 수원의 야구 역사는 짧다. 부산, 광주, 대구, 인천의 그것과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하물며 단장ㆍ감독에 오를 경륜 있는 야구인은 더 없다. 야구와 출신지역을 엮는 게 옳은지도 따져볼 일이다. 그렇더라도 수원시민들에겐 소박한 꿈이 있다. 영웅 단장, 영웅 감독, 영웅 선수를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없는 지역 출신을 눈 씻고 찾는 것인지 모른다. 유한준이 홈런치고, 김민이 역투하던 날, 수원 유신고 동문들이 난리 났었다는 것 아닌가. ‘수원의 최동원’, 언젠가 나오겠지…. 김종구 주필

[지지대] 한글본 ‘정리의궤’

‘의궤(儀軌)’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 내용을 정리한 기록이다. 주로 왕실의 혼사, 장례, 건축, 잔치 등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해 유사한 행사가 있을 때 참고하도록 했다. ‘의궤’는 조선 왕실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문화의 꽃으로,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존하는 의궤 중엔 1601년(선조 34)에 만든 의인왕후 장례에 관한 것이 가장 오래됐다. 가장 오래된 한글본 의궤는 ‘정리의궤(整理儀軌ㆍ원이름 뎡니의궤)’다. 120여 년전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정리의궤’는 정조 임금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는 과정을 담은 ‘현륭원 의궤’, 정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8일간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 축조 과정을 담은 ‘화성성역의궤’ 등을 한글로 정리한 의궤로 국내에 없는 판본이다. 한글본 정리의궤는 총 48책 중 13책만 현존한다. 12책이 프랑스 국립동양어대학 언어문명도서관에 있고, 나머지 한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도서관의 채색본 ‘정리의궤(성역도) 39’는 화성행궁도 등 수원화성의 주요 시설물과 행사관련 채색 그림 43장, 한글로 적은 축성(築城) 주요 일지 12장 등 총 55장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화성성역의궤’에 없는 봉수당도, 당낙당도, 복내당도, 유여택도, 낙남헌도, 동장대시열도 등이 수록돼 가치가 매우 크다. 정리의궤와 화성성역의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채색이다. 목판으로 인쇄된 화성성역의궤 속 그림은 훈련도감 소속 마병(馬兵) 엄치욱의 작품인데, 정리의궤는 국가 관청인 도화서(圖畵署) 화원들이 그린 작품이어서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 한글본 정리의궤는 한국의 첫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1835∼1922)의 수집품으로 12책은 국립동양어대학에 기증됐고, 채색본은 경매상을 거쳐 국립도서관이 구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원시는 2016년 6월 한글본 정리의궤의 존재를 알았다. 시가 대여를 요청했지만 ‘외규장각 의궤’ 반환 이후 문화재 환수에 민감한 프랑스 측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프랑스 도서관 측과 협의를 통해 복제본을 제작하기로 했다. 안민석 국회의원, 김준혁 한신대 교수 등의 노고가 컸다. 한글본 정리의궤 13책이 120년만에 다시 태어나 지난 17일 공개됐다. 실물과 거의 똑같은 복제본은 12월16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 특별기획전 ‘수원의 궁궐, 화성행궁’에 전시된다. 정리의궤 복제본은 정조시대와 수원화성 연구에 도움이 되고, 수원화성의 가치를 빛내줄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맘 카페

지난 11일 ‘김포맘들의 진짜 나눔(김진나)’ 카페에는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원생을 밀쳤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카페 회원이 어린이집 이름과 해당 보육교사의 신상정보를 회원들에게 알렸다. 글을 본 사람들은 어린이집에 항의 전화를 했고, 아이의 이모는 보육교사를 찾아가 폭언을 하기도 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13일 보육교사는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내가 다 짊어지고 갈테니 여기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홀로 계신 어머니와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적혀 있었다. 아동학대 가해자로 몰린 보육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김포 맘 카페 사건’을 계기로 맘 카페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경찰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자로 단정지어 신상을 털고 악성 댓글을 퍼부어 보육교사를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것이다. 마녀사냥이란 비난과 함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보육교사 실명을 공개한 사람을 처벌해달라’ ‘맘 카페를 모두 폐쇄시켜야 한다’ 등 강력한 처분을 촉구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아동학대 교사라는 오해를 사 ‘맘 카페’에서 신상이 털릴 뿐만 아니라 CCTV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아이를 좋아해 보육교사가 된 이들이 자괴감에 빠져 일을 관두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맘 카페는 엄마들의 주된 관심사인 육아와 교육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모임으로 출발했다. 초기엔 정보 공유가 활발했지만 점차 거대화ㆍ권력화 됐다. 김포 맘 카페만 해도 회원이 3만 명을 넘는다. 그러다보니 온라인 커뮤니티가 막강한 힘을 갖게 됐고,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부정적인 면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여름 ‘태권도 맘충 사건’은 맘 카페의 영향력을 이용해 거짓 정보를 퍼뜨린 대표적인 경우다. 태권도 학원 차량이 난폭운전을 했다고 거짓폭로와 신상털이를 했던 사건으로 학원은 폐업 위기까지 몰렸다. 거짓이 드러나 글쓴이는 자필 사과문까지 올렸지만 일부 맘 카페의 경솔한 행동이 엄마들을 ‘맘충(엄마들을 벌레에 빗댄 혐오 표현)’으로 만들었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의혹’은 강남 학원 정보 커뮤니티에서 촉발돼 맘 카페를 중심으로 퍼졌다. 사립유치원 비리 역시 맘 카페에서 형성된 공분이 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역기능도 있고 순기능도 있다. 맘 카페의 순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회원들 스스로 정보 왜곡과 신상털기, 마녀사냥를 경계해야 한다.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원탁토론&광명시

원탁(圓卓), 영자는 ‘round table’이다. 쉽게 말해 ‘둥그런 탁자’를 말한다. 자칫 무의미해 보일지 몰라도 원탁에는 전설이 있다. 아더왕은 중세 유럽사에 있어 영웅으로 꼽힌다. 바위에 꽂혀 있는 엑스칼리버란 성검을 뽑아든 신비한 인물이다. 브리튼의 왕으로 추대된 그는 색슨족을 쳐부순 켈트의 전설적 영웅이다. 아더왕과 원탁의 이야기는 12세기 중반에 쓰인 ‘브뤼 이야기’에서 전한다. 브리튼 왕이 된 후 색슨족과의 전투가 한창이던 때였다.아더를 따르는 기사들이 어느 날 식사 시간, 자리 순서 때문에 다툼이 발생했다. 언쟁은 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해결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아더는 묘수를 찾는다. 바로 원형 테이블을 마련해 앉는 방법이다. 자연스레 테이블에 앉을 때는 왕인 자신과 기사들 간 상하 구분도 없어졌다. 이후 서로의 격차가 해소되면서 더 이상의 다툼은 없었다 한다. 이후 영국에서는 모든 왕과 귀족이 나름의 원탁을 제작한 게 유행이 됐다. 가장 유명한 것이 윈체스터 성벽에 걸린 목제 원탁이다. 직경 6m, 중량 1.25t의 테이블로 중앙에 ‘켈트, 브리튼, 로마의 지배자 아더’ 등이 쓰여 있다. 원탁토론은 이 같은 원탁에서 유래했다 볼 수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당선자들은 너나없이 원탁 의미의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심지어 모 시장은 직원 명단을 자신 이름보다 위에 표기하면서 소통을 넘어 섬김을 강조했다. 100여 일이 지난 현재, 과연 그 초심이 그대로인지 의문이다. 소통 소식이 ‘뜸뜸이’가 됐기 때문이다. 서서히 권력에 취해 갈만한 시간도 됐다 싶다. 광명시는 최근 박승원 시장이 주관한 500인 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일자리 등 먹고사는 문제에서부터 교통, 보육과 교육, 의료와 복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10명씩 50개의 원탁에 둘러앉아 토론이 진행됐다. 참가자 전원에게 무선 투표기를 지급,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출할 수 있게 했다. 투표 결과는 현장에서 바로 공개했다. 또 각 원탁의 진행자들은 시민들의 의견을 즉석에서 기록, 대형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띄워 모두가 볼 수 있게 했다. 중세 원탁의 전설이 광명시에서 현대판 원탁으로 실현되는 듯하다. 김동수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갯벌의 기적’ 인천경제자유구역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축구 서포터스 붉은악마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카드섹션을 펼치는 장관을 연출하며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에 대한 희망에 불을 지폈다. 이들의 염원이 통했던지 인천에서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대한민국 대표팀은 포르투갈을 1-0으로 누르고 문학경기장에 ‘16강의 성지’라는 닉네임을 선사했다. 16강의 감동을 거침없이 이어간 대표팀은 16강전 이탈리아를, 8강전 스페인을 꺾고 4강 진출이라는 꿈 같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16년이 지난 인천에선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2003년 8월 대한민국 최초의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인천경제자유구역이 과거 ‘한강의 기적’에 견줄만한 ‘갯벌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지난 15년간 인천의 스카이라인을 뒤바꿔 놓았다. 갯벌을 메워 만들어낸 송도국제도시는 단일도시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 의약품 56만ℓ의 생산역량을 보유한 바이오 허브로 성장하는 한편, 누적 외국인 직접투자 신고액이 118억3천1백만 달러로 우리나라 경제자유구역 외국인 직접투자의 67%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도시로 성장했다. 또한, 한국뉴욕주립대, 한국조지메이슨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등 세계의 명문대학을 유치하는데 이어 스탠퍼드대 부설 스마트시티 연구소, 케임브리지대 의약 바이오연구소, 암스테르담 콘서바토리가 속속 입주를 앞두고 있어 인재 육성을 위한 ‘글로벌 교육 허브’로의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청라지역은 국제업무(금융)·R&D·의료·첨단산업·유통, 영종은 항공물류·관광·복합 레저 도시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개청 15주년을 맞은 인천경제청은 최근 2030년까지 국제기구 35개를 추가로 유치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5대 목표 4대 실천전략’을 발표했다. 실천전략에는 인천~개성~해주와 연계한 평화협력 특별지대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송도 4·5·7 공구와 11공구를 연계한 세계 최대 바이오·헬스케어 단지 확대 조성· 콤플렉스 개념의 메디컬타운과 연구중심 병원 설립· 글로벌 경제 플랫폼 구축을 위한 산업생태계 조성 등의 야심 찬 계획들을 담아냈다. 2002년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신화의 감동 드라마를 엮어 낼지는 상상도 못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역시 이처럼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될 줄은 나 같은 필부에겐 꿈조차 꾸지도 못했던 이야기였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착공 당시 “20년 후 이곳이 미국 뉴욕과 같은 도시로 변하게 될 것”이라던 동료 기자의 혜안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한동헌 인천본사 경제부장

[지지대] KT 위즈 팬

“이게 뭐라고, 손에 땀을 쥐면서 경기를 봤다” “연장 10회 말 맘 ‘쫄아서’ 채널을 살짝 다른 데로 돌렸다”. 10월13일 밤 8시40분에 오고 간 카톡이다. 평범한 시민인 이들에겐 더 없이 중요한 하루였다. 프로야구 KT 위즈의 마지막 경기였다. 상대는 시즌 1위 팀 두산 베어스였다. 물론 이긴다고 우승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을 야구’-플레이오프-로 가는 것도 아니었다. 겨우 꼴찌를 면하는 거였다. 그런데도 ‘50대 수원시민’ 둘에겐 더 없이 마음 졸인 경기였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는 ‘죽’을 쑤었다. 적어도 팬에게는 그랬다. 5년 만에 관중이 줄었다. 누적 관중 807만 3천742명이다. 애초 목표 879만 명에 훨씬 못 미친다. 경기장 밖 팬심은 더 싸늘하다. 청와대 게시판이 비난 글도 도배됐다. 야구인 선동렬은 국정 감사장에 불려 나왔다. 야구계 스스로 초래한 패착이다. 아시안 게임에서 병역 논란이 일었다. 병역을 피하려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렸다.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국민 비난이 쏟아졌다. ▶구단별 관중도 대부분 급감했다. 야구 도시 부산의 롯데 경기장은 전년보다 12% 줄었다. 한국 야구의 전설 KIA의 홈경기장도 16%나 줄었다. 국내 유일의 넥센 돔구장에는 무려 35%가 줄었다. 성적이 좋아진 대전 한화(+24)와 인천 SK(+16)가 늘어난 정도다. 그에 비하면 KT 위즈파크 관중은 특별하다. 시즌 초 반짝 이후 계속 내리막이었다. 여름 들면서는 탈꼴찌 걱정에 매달렸다. 그런데도 관중은 크게 줄지 않았다. 67만여 명의 시민이 찾았다. ▶창단 4년밖에 안 된 팀이다. 다른 팀과는 의미가 다르다. 굳이 경기결과를 따지지 않는다. 홈런 한 방에 눈물을 쏟는 여성 관중도 있다. 앞치마 아줌마 부대의 열띤 응원도 있다. 여름철 ‘서머페스티벌’은 그 중에도 압권이다. ‘물을 뿌린다’는 발상이 콜럼버스 달걀처럼 됐다. 폭염 속 경기장은 즐거운 워터파크였다. 세계 야구사에 없던 이 모습에 ‘특허 출원’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면서 시민은 KT에 젖어들었다. 생활 속에서 야구를 말하기 시작했다. ▶‘탈꼴찌’가 뭐 그리 중요한가. 2018 시즌을 통해 KT가 얻은 건 팬과 지역이다. 원정 떠난 마지막 ‘그 날’, 이 사실이 증명됐다. 응원 못 간 팬과 시민들이 TV 앞에 앉았다. 월드컵 축구 독일전 때처럼 긴장했다. 대한민국이 이겼을 때처럼 환호했다. 두산 팬이 보면 우스울 수 있고, 광주 시민이 보면 의아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4년짜리’ KT 팬과 수원시민에겐 더 없이 행복한 마지막이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빚내는 대학생들

‘청년실신’이라는 말이 있다. 비싼 등록금 부담에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졸업 후 취업을 못해 실업자가 되는 동시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빚에 허덕이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청년이란 단어에다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앞 글자를 딴 ‘실신(失信)’이라는 단어를 붙여 ‘청년실신’이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대학생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한 슬픈 신조어다.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빚에 짓눌린 대학생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청년실신시대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라니 안타깝고 답답하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학자금 목적 제외 은행권 대학생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17개 은행의 대학생 대출 규모는 올 7월말 기준 10만2천755건, 1조1천억 원에 달했다. 2014년 말과 비교해보면 대출 건수로 197.5%, 금액으로 77.7% 늘어났다. 대출뿐 아니라 연체액도 증가했다. 2014년 말 21억 원이던 대학생 연체액은 이듬해까지 동일했으나 2016년 말 28억 원, 지난해 37억 원으로 늘었고 올해 7월 말 기준으로 55억 원까지 불어났다. 연체 건수도 2014년 486건에서 2015년 682건, 2016년 1천48건, 지난해 1천605건, 올해 2천136건으로 크게 늘었다. 놀라운 것은 학자금과 관계없는 대학생 빚이 1조 원을 넘었다는 점이다. 4년 만에 약 3배로 증가한 것은 ‘고용 절벽’에 내몰린 청년층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취업 비용과 준비 기간이 늘면서 청년·대학생 햇살론 등 정책성 대출을 받은 대학생이 늘어난 것이다. 청년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빚을 내 생활비를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학자금 대출을 포함한다면 빚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은 훨씬 많다. 빚은 자꾸 늘어나고 취업난은 사상 최악인 상황이라면 청년세대들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대학생들이 빚의 노예가 되고 있다니 앞날이 얼마나 암담할까? 대학 졸업장이 빚문서라는 말이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1조 원이 넘는 대학생 빚은 대체로 악성이라는 점에서 향후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취업문이 넓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있어야 대출을 조금씩 갚겠지만 이마저도 최저임금 인상 여파 등으로 더 어려워졌다. 상당수 대학생이 취업도 하기 전에 진짜 신용불량자가 될 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떻게 결혼 생각을 하고, 아이를 낳겠는가.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헬조선’이란 자조섞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산이 된 사람들

전 세계 산악인들이 끊임없이 ‘신들의 산’ 히말라야에 오른다. 히말라야는 8천848m의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천m 봉우리 14개가 모여있는 산맥이다. 19세기부터 히말라야를 향한 탐험가들의 도전이 본격 시작됐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네팔이 문호를 개방해 히말라야 등반이 활발해졌다. 한국의 많은 산악인들도 히말라야 봉우리 정상에 올라 태극기를 휘날렸다. 엄홍길 대장은 1985년 히말라야에 처음 오른 후 22년 동안 38번의 도전을 했다. 엄 대장과 후배 산악인 박무택은 2000년 칸첸중가와 K2, 2001년 시샤팡마, 2002년 에베레스트까지 히말라야 4좌를 등반하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박무택은 이후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하다 조난을 당해 히말라야에 묻혔고, 2005년 엄 대장은 박무택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휴먼원정대를 꾸려 8천750m 에베레스트 데스존으로 등반에 나섰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2015년 개봉한 영화가 ‘히말라야’다.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엄 대장과 휴먼원정대의 순수한 도전, 산 사나이들의 뜨거운 우정이 감동을 안겼다.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우리 산악인들이 90여 명에 이른다. 한국 원정대의 첫 조난 사고는, 1971년 5월 김기섭 대원이 마나슬루 7천600m 지점에서 캠프 설치 중 돌풍을 만나 40m 빙벽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것이다. 이듬해인 1972년 김 대원을 떠나보낸 김정섭·호섭 형제는 다시 마나슬루 등정에 나섰고, 대원 6명과 셰르파 12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6천500m에 캠프를 차렸다가 눈사태를 만나 15명이 숨지는 참사를 당했다. 한국 히말라야 등반의 개척자였던 김정섭·기섭·호섭 형제가 모두 히말라야에 잠들었다. 한국인 여성 최초로 1993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던 지현옥 대장도 1999년 안나푸르나에 오른 뒤 히말라야에서 영면했다. 여성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고미영 대장도 2009년 낭가파르밧(8천125m)을 등정하고 하산하다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19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박영석 대장도 2011년 히말라야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에 빛나는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지난 13일 다울라기리산 구르자히말(7천193m) 원정 도중 베이스캠프에서 눈 폭풍에 휩쓸려 사망했다. 이 사고로 김 대장을 비롯해 영화 ‘히말라야’ 특수촬영을 맡았던 산악영화 전문 임일진 감독 등 한국인 원정대원 5명과 네팔 가이드 4명이 숨졌다. 누구보다 산을 사랑한, 그래서 결국 산이 된 사람들. 히말라야 품안에서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공군 출신 국방부 장관

참으로 오랜만이다.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창군 이후 두 번째이자 이양호 전 장관 이후 24년 만에 나온 공군 출신 국방부 장관이다.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정 장관은 제1전투비행단 단장, 공군 전력기획참모부장, 공군 남부전투사령부 사령관, 공군 참모차장,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인사다. 이러한 정 장관을 바라보는 수원시민과 화성시민의 시선은 여타 다른 국방부 장관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르다. 벌써 수년째 지역 간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는 ‘수원군공항 이전’ 문제를 ‘공군 출신 국방부 장관’이라면 어떻게든 결론을 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섞인 시선이 그것이다. 국방부가 수원군공항 이전을 결정한 지 벌써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수원군공항 이전은 화성 화옹지구를 예비 이전 후보지로 선정한 이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화성시가 군공항 이전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인데, 군공항은 국가 안보에 직결된 국가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어느 지자체의 편도 들지 않겠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 사이 수원군공항 이전 사업보다 뒤늦게 출발했던 대구 군공항 이전 사업은 ‘예비’ 자를 떼고 군위ㆍ의성을 이전후보지로 최종 결정했다. 수원시민들은 거리로 나서 1인 시위를 한 지 150일가량이 됐다. 지난 9월29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화성시민입니다. 수원비행장 이전 촉구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수원 비행장은 화성 동부지역ㆍ봉담ㆍ병점ㆍ동탄1에 걸쳐 20만 주민에 수십 년간 매일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음에도 화성시는 아무런 대책 없이 수수방관에, 이전 반대를 마치 화성시민 전체 의견인 양 왜곡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이 청원에는 이미 3천600여 명이 청원에 동의, 화성시민간 민-민 갈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 이상 국방부가 모른 척하고 있기에는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이 됐다. 공군 출신으로서 공군 작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정 장관이, 정 장관이 개혁해 나갈 새로운 국방부가 이제는 수원군공항 이전 사업을 공론화시켜 치열하게 논의하고, 어떠한 방향이든 서둘러 결정해 주길 바란다. 이호준 사회부 차장

[지지대] 평양 옥류관 1호점

2007년 3월 남북 변화의 바람을 전 세계 알리는 평화 전달자 역할을 위해 IFJ(국제기자연맹) 소속 기자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특별총회는 IFJ 창립 이래 처음이다. 총회에는 70여 개국 200여 명의 세계 언론인들이 이념과 체제를 떠나 서울을 비롯해 북한 금강산, 개성에서 3박4일간의 일정을 소화했다. 주제는 ‘한반도 평화와 화해’. 이 행사는 그해 2월 6자회담에서 2·13 합의를 도출한 이후 남북 장관급회담 등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에서 열려 더욱 특별했다. 전 세계 기자들은 남과 북을 오가며 한민족의 분단 현실을 직접 확인하면서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에 대해 깊은 이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전 세계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지만 만찬장에서 먹은 금강산 옥류관 냉면 역시 잊지 못한다. 금강산 관광특구에는 많은 음식점이 있지만, 이곳 옥류관은 북한 측에서 직접 운영한다. 기억을 더듬자면 북한의 옥류관 면발 색은 짙었고 맑은 육수를 담은 놋그릇에 층층이 올린 고명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냉면은 역시 육수 맛. 두 손으로 그릇을 잡고 한 모금 크게 들이키자 웬걸, 맛이 굉장히 밍밍했다. 하지만, 입맛을 계속 당기는 깊은 맛의 마력이 있었다. 식초를 육수에 부으려 하자 안내원이 면발에 식초를 부어야 부드러워져 먹는 느낌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 날 이후 나는 꼭 식초를 면발에 붓는다.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7일 북한에서 열린 ‘10·4 정상선언 11주년 공동기념행사’에 참석한 결과를 브리핑했다. 이 자리에서 이 평화부지사는 북측과의 교류협력 합의사항 6개를 발표하면서 북한 옥류관의 경기도 내 유치를 위해 남북 관계자들이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협의내용이 이뤄진다면 경기도에 ‘평양 옥류관 1호점’이 세워지게 된다. 통일부도 경기도의 옥류관 유치 등 북한과의 교류협력사업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양시는 벌써 유치전에 나섰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연내 경기도-북한 간 협력사업에 대한 서면 합의를 위해 방북한다. 머지않아 북한 요리사가 직접 만든 ‘평양냉면’을 먹는 상상이 ‘새로운 경기’에서 현실이 된다. 김창학 경제부장

[지지대] 풍등 혐오

휘발유 260만 리터가 17시간이나 탔다. 시뻘건 불기둥이 TV로 중계됐다. 소방관들은 접근도 하지 못했다. 쉽게 접하던 화재 현장이 아니었다. 불안감도 커졌다. 저유소는 전국 곳곳에 있다. 상당수가 도심 가까운 곳에 있다. 주변 저유소를 확인하려는 문의도 많다. 그만큼 국민에 준 불안감이 크다. 원인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경찰이 화재 하루 만에 용의자를 검거했다. 27살의 남자인데 외국인이다. 스리랑카 국적의 근로자다. ▶발화 원인이 어이없다. 풍등에서 옮겨붙었다고 한다. 용의자는 이렇게 진술했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에 문방구에서 구매해 풍등을 날렸다.” 경찰은 CCTV를 통해 확인했다고 한다. 풍등 날린 시각과 화재 시각도 일치한다고 한다. 중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 이런 기사가 났다. ‘동남아 일대에서 소원을 비는 풍습으로 풍등을 날린다.’ ▶인터넷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번졌다. ‘스리랑카 근로자가 자기 나라 풍습을 따라 하다가 대형 화재를 냈다’는 투의 반응이다. 논지의 방향이 외국인 혐오로 옮겨가고 있음은 물론이다. 일단 풍등이 동남아만의 풍습이라는 지적이 틀렸다.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신라 시대부터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도 곳곳에 있다. 대구 달구벌 관등놀이 풍등 축제는 5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참가자가 수천명이다. ▶풍등으로 인한 화재도 처음이 아니다. 2017년 2월 부산 광안리에서 있었다. 정월 대보름 행사를 하면서 띄운 풍등이 상가 건물에 옮겨붙었다. 2013년에는 충남 논산시에서도 있었다. 풍등에서 시작된 산불로 7ha를 태웠다. 2017년 정월 대보름 행사 중 화재가 315건인데 상당수가 풍등에 의한 것이다. 화재가 빈발하자 소방기본법까지 바뀌었다. 풍등을 띄우는 행위를 아예 못하게 했다. 적발되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도 부과한다. ▶실화(失火)에 관한 처벌은 결과와 연계된다. 화재 피해가 클수록 처벌이 강해진다. 고양 저유소 화재는 인명 피해는 없다. 재산 피해가 컸고 사회적 반향이 컸다. 구속 여부는 재판부가 결정할 것이다. 다만, 풍등을 타고 오르듯 꿈틀대는 외국인 혐오는 경계돼야 한다. 그냥 자연인 한 사람의 부주의에 대한 비난 정도에 그쳐야 한다. 풍등을 판매한 한국인 문방구 주인 잘못도 있다. 허술하기 짝없는 저유소 소방 정책은 더 큰 죄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무퀘게와 무라드

올해 노벨평화상은 전쟁 성범죄의 잔혹성을 알리고 피해자를 돕는데 앞장선 인물 2명에게 돌아갔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의사 데니스 무퀘게(63)와 이라크 소수민족 야디지족 여성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25)가 영예의 수상자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은 전쟁과 무력분쟁의 무기로서 성폭력을 사용하는 일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노력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무퀘게는 콩고 동부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던 평범한 의사였다. 내전 중이던 1998년 ‘판지(Panzi) 병원’을 세워 생식기와 허벅지 등에 총상을 입은 많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치료해왔다. 이때부터 무퀘게는 전쟁 중 여성 피해자들을 치료하고 재활을 돕는 일에 일생을 바치고 있다. 피해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기술을 가르치고 법률 조언을 해줬다. 숙소, 심리 상담, 직업 훈련, 교육 등도 지원했다. 무케게는 2012년 9월 유엔 연설에서 성폭력을 자행하는 무장세력을 척결하는데 국제사회가 나서야 하고, 콩고 내전을 끝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행보에 무장세력으로부터 습격을 받는 등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무케게는 2016년 서울평화상, 2008년 유엔인권상, 2014년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았다. 무라드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성노예 피해자다. 21세였던 2014년 IS 대원들에게 납치돼 3개월간 집단 성폭행과 고문, 구타를 당했다. 이후 가까스로 탈출해 전세계에 IS의 성폭력 만행을 고발했다.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그는 2015년 9월 민족학살 혐의로 IS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했다. 2016년엔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인신매매 생존자 존엄성’을 위한 첫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2017년엔 자서전 ‘마지막 소녀(The Last Girl)’를 펴내며 “나는 세계에서 나같은 일을 겪은 마지막 소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무라드는 유럽평의회 인권상과 사하로프 인권상 등을 받았다. 전쟁 중 여성들이 성폭행 당하는 일은 빈번하다. 성폭력은 인간을 철저히 파괴하고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준다. 하지만 국제사회 및 각국 정부의 해결 노력은 미흡하다. 개인이 하기엔 역부족이지만, 무퀘게와 무라드가 이를 해왔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수난을 당했던 한국에 이번 노벨평화상은 각별하다. 무퀘게는 7일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일본을 비롯한 세계인에게는 성폭력과 맞설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 가해국인 일본을 언급한 것은 의미가 크다. 전쟁 중 성폭력을 제도화했던 일본의 진정한 반성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앉을 권리

인도 케랄라주 트리반드룸에 사는 시빌 윌슨이란 여성은 전통의상 사리를 판매하는 상점에서 10년간 일했다. 이 기간 월슨은 상점 안에 앉아 쉬어본 적이 없다. 종업원들이 의자에 앉는 것을 고용주가 금지했기 때문이다. 시빌 윌슨은 하루 12~14시간 근무하는 내내 서 있어야 했다. 4개층이 있는 건물에서 일하지만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었다. 손님이 계산대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갈 때 걸어서 동행하고, 손님이 떠난 후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케랄라주의 소매점 대부분은 여성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고용주들은 CCTV를 통해 직원들이 앉거나 벽에 기대지 않는지 감시한다. 점심 시간은 30분이고, 화장실에 가는 횟수도 제한한다. 동료 직원과 얘기를 하면 월급을 삭감하기도 한다. 한 여직원은 손님이 옷을 고르는 동안 벽에 기댔다는 이유로 100루피(약 1천600원)의 임금을 삭감당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돼 여성노조 ‘암투’가 여성 노동자의 ‘앉을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나섰다. 이들은 “여직원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갈 수 없는 탓에 물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소변을 참고, 서서 일하기 때문에 요로감염, 신장질환, 정맥류 등의 질환을 앓는다”고 주장했다. 투쟁을 벌인 지 8년, 케랄라 주정부는 지난 7월 노동법에 직원의 ‘앉을 권리’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윌슨도 이제 상점에서 앉아서 쉴 수 있다. ‘앉을 권리’는 인도만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의 백화점이나 면세점, 대형유통점에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들도 ‘앉을 권리’를 유통업체와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 2일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유통서비스노동자 건강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가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대형유통매장에 의자를 비치토록 한 지 10년이 됐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며 “서비스업 노동자들은 의자 외에 화장실과 휴게실 등 노동자 건강을 위한 시설도 이용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연맹 산하 노동자들은 1일부터 ‘의자 앉기 공동행동’에 들어갔다. 각자 일하는 곳에서 손님이 없을 때만큼은 의자에 앉아 쉬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서서 일하다보니 발가락이 휘는 무지외반증, 족저근막염, 하지정맥류, 디스크 등 건강문제까지 겪고 있다. 여기에 갑질하는 고객까지 만나면 정신건강까지 황폐해진다. 백화점이나 면세점 등 화려한 건물과 달리 그 안의 노동자들은 병들어 가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숍의 아르바이트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앉을 권리, 쉴 권리, 존중받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두 유 스피킹 잉글리쉬

▶어느날, 초등학교 2학년인 딸 아이의 포동포동한 얼굴이 시무룩해 있었다. 친구랑 놀고 싶은데 그 친구가 영어학원에 가서 못 논 게 이유였다. 순간, 영어학원을 보내지 않아 내 아이가 뒤처지진 않을까 고민하는데 친구따라 영어학원을 다닐까 고민하는 아이를 보면서 웃고 말았다. 주변엔 영어유치원을 보내면서 조기영어교육에 집중하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의외로 적기영어교육에 중점을 두고 영어교육을 시키지 않는 엄마들도 의외로 많다. 그럼 난 어떤 엄마인가.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 배우고 싶다고 할 때 논의하고 결정하는 스타일이다. 단, 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선 전폭적으로 지지ㆍ지원한다.(뭐든 시작하면 최소 3년은 배워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붙긴 하지만) ▶교육부가 올해 초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방과후 영어교육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역풍으로 1년 유예결정을 내렸다. 최근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여부를 ‘공론화’를 통해 올해 안에 결론을 내기로 했다. 앞서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학교에서 정규 교육 과정에 앞서는 교육을 금지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영어 수업은 정규 교육과정이 들어가는 초등학교 3학년 이전인 1~2학년은 방과후 영어교육이 금지된 상태다. 일부 학부모들은 ‘영어 교육 수요는 많은데 교육부가 이를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등의 불만과 함께 실제 사교육시장에서 영어교육을 맡기고 있다. ▶만약 이번에 공론화를 통해 유치원과 어린이집 영어교육이 허용되면 초등학교 저학년의 방과 후 영어교육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억지로 되는 건 없다. 할 놈이면 뜯어 말려도 하고 안 할 놈이면 때려 죽여도 안 한다. 공부든 뭐든 하고 싶을 때 해야지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영어교육을 ‘제한’하나 마나를 공론화하기 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적기의 영어교육을 차별없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제안’을 제시하는 교육부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불공정을 딛고 쓰는 ‘17연패 신화’

“새로운 경기도가 추구하는 도정의 핵심가치는 ‘공정’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도시 경기도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그동안 흘린 땀의 대가를 결과로 인정받기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2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체전 경기도 선수단 결단식에서 경기도체육회장인 이재명 도지사가 선수단에게 전한 메시지다. 이 지사가 전한 짧은 메시지는 스포츠 정신에 입각해 정당하게 기량을 겨뤄 그 결과를 인정받으라는 것이다.▶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오는 12일부터 7일간 전라북도에서 열릴 전국체전에서 경기도는 ‘전인미답’의 종합우승 17연패 달성에 도전한다. 그동안의 기록은 서울시가 지난 1952년부터 1967년 대회까지 이룬 16연패다. 이후, 40년동안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던 이 기록은 지난해 경기도가 따라잡았고, 이번 전북 대회에서 전국체전 역사의 기념비가 될 17연패 신화가 창조될 전망이다.▶경기도는 지난 1981년 인천시 분리 이후 우수선수 육성과 전국 최초의 지방자치단체 직장운동부 운영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96년부터 5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2001년 충남 대회 때 사상 최악의 불공정 운영으로 연승행진이 멈춰섰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16년 연속 정상을 질주했다. ▶어려움도 많았다. 경기도의 연승 저지를 위해 개최지에 많은 특혜를 주는 불공정 행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2009년 대전 체전부터는 개최지에 대한 토너먼트 종목의 시드배정 외에도 기록종목 가산점을 10%에서 20%로 상향 조정했다. 이듬해 경남 대회에서는 메달점수를 50%로 줄여 경기도를 견제했다. 같은 해 체급 종목에 쿼터제를 도입해 개최지 만이 전 체급에 출전토록 하고, 타 시ㆍ도는 일부 체급의 출전을 제한했다. 그 결과 개최지에는 평균 1만5천점 안팎의 가산점이 주어져 ‘100m 달리기를 개최지는 10m이상 앞서 출발하게 한다’는 비판을 사고있다.▶이 같은 불공정 속에서도 경기도는 끊임없는 노력과 페어플레이로 꿋꿋이 정상을 지키며 ‘체육웅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영원히 깨지지 않을 17연패의 신화 창조를 위해 1천500여 선수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정당한 승리로 새로운 금자탑을 쌓으려는 경기도 대표 선수들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도민의 큰 격려와 성원이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김상곤 역사

“아무리 술을 먹여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아주 독한 인간이다.” 삼금회-경기도 기관장들이 매달 세 번째 금요일에 만나는 모임-가 있었던 모양이다. 보수 일색인 그 자리에 김상곤 교육감이 있었다고 했다. 폭탄주가 돌았고 김 교육감도 마셨다고 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했다고 했다. 하지만, 본인의 주관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고 했다. 참석했던 정보기관 책임자가 전한 후일담이다. ▶무상급식은 그렇게 독하게 출발했다. 교육감 후보 때만 해도 몰랐다. 그저 흔한 선심성 공약쯤으로 여겼다. 돈이 없어 못할 거라고들 봤다. 하지만, 김상곤은 달랐다. 취임과 동시에 강행에 들어갔다. 경기도에 600억 원이 넘는 ‘고지서’를 제출했다. 김문수 도지사가 펄쩍 뛰었다. ‘김상곤은 사회주의자’라며 공격했다. 경기도의회는 한 수 더 떴다. 증언대에 선 김상곤을 사정없이 몰아세웠다. 하지만, 김상곤은 독하게 버텼다. ▶2010년 지방선거가 시작됐고, 여론이 뒤집혔다. 김상곤은 ‘밥 주는 착한 아저씨’가 됐고, 한나라당은 ‘밥 굶기는 나쁜 집단’이 됐다. 전국의 모든 진보진영 후보들이 ‘무상급식’을 공약했다. 김상곤을 원하는 곳이 많아졌다. 내 선거를 팽개치고 남 선거를 돕고 다녀야 했다. 선거는 진보 진영 완승, 한나라당 참패였다. 폐족(廢族)으로 전락해 숨도 못 쉬던 진보진영이었다. 김상곤 표 무상급식이 만든 기적 같은 회생이었다. ▶그즈음 한국 정치도 뒤집혔다. 더 정확히는 한국 사회가 뒤집혔다. 전혀 다른 복지가 세상을 지배했다. 선택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였다. ‘없는 자에게 나누어 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나누어 줌’이었다. 교복, 교통비에도 ‘무상’이 붙었고 등록금, 각종 요금에는 ‘반값’이 붙었다. 이제 무상복지를 비난하는 ‘간 큰’ 사람도 없다. 표(票)를 구해야 하는 정치인이라면 더 했다. 복지 공약만으로 보면 보ㆍ혁 구분이 안 됐다. ▶김상곤 부총리가 퇴임했다. 대화를 통한 정책 결정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무책임의 극치라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남겼다. 그 스스로도 아쉬움이 컸던 모양이다. “새로운 일은 새벽처럼 등장하지만 해 떨어지는 것은 갑작스럽게 다가온다”는 말을 남겼다. 해 떨어지는? 은퇴인가. 그렇다면, 서둘러 남겨놓을 평(評)이 있다. -김상곤은 독했다. 독해서 큰 역사를 만들었다. 김상곤 전과 김상곤 후로 나뉜 대한민국 복지 역사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DMZ 지뢰 제거

지뢰(地雷)는 전쟁 중은 물론이고 전쟁 후에도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인명 피해를 주기 때문에 비열한 무기로 꼽힌다. 땅 속에 매설해 놓아 발견하기 어려운데 폭발시 살상ㆍ파괴력은 엄청나다. 인간의 신체를 파괴하고, 토지와 자연의 평화적 이용을 방해하기 때문에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 1996년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전세계 60여 개국에 약 1억1천만개의 지뢰가 묻혀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같은 해 제네바에서 열린 ‘비인도적 무기금지 및 제한조약’ 회의에선 23개국이 지뢰의 생산과 사용, 판매를 일체 금지할 것을 선언했다. 이후 1997년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121개국이 대인지뢰 사용의 전면 금지를 골자로 한 ‘오타와 협약’에 서명했으나 남과 북은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군사강국 역시 가입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 양측이 DMZ(비무장지대) 일대에 약 300만개의 지뢰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인통제구역 주변에도 지뢰가 상당수 매설돼있어 인명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DMZ와 민간인통제선의 지뢰지대 면적은 112.58㎢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의도 면적의 38배다. 군사적 목적에 의해 지뢰지도를 통해 매설된 계획지뢰와 달리 무차별 살포된 미확인 지뢰지대(90.7㎢)는 어디에 얼마나 많은 양의 지뢰가 묻혀있는지 알 수 없다. 군 장병은 물론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DMZ은 비무장지대라는 이름과 달리 곳곳이 지뢰밭이다.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원천적으로 금지된 곳이 DMZ다. 남북은 휴전 당시 휴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씩 병력 등을 배치하지 않는 비무장지대로 남겨놓기로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남과 북은 지뢰를 마구 뿌려 놓았고, 지뢰밭을 분단의 벽 삼아 수십 년간 대치해 왔다. 최근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DMZ내 지뢰 제거 목소리가 높아졌다. 남북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강원도 철원의 DMZ 일대에서 1일부터 지뢰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남북 정상회담의 ‘군사 분야 합의서’ 이행에 따른 조치다. 판문점 JSA는 오는 20일까지, 전쟁이 치열했던 철원 화살머리고지는 11월 30일까지 지뢰 제거를 완료할 예정이다. 지뢰 제거 후에는 6·25 전사자 유해 발굴에 나설 계획이다. 국군의 날에 시작된 의미있는 이 작업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평화, 새로운 시작’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건군 70주년 국군의날

1948년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이 올해로 건군(建軍) 70돌을 맞았다.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한 것은 1956년이어서 국군 창설과 국군의 날 주년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지난 수십 년간 이 날을 국군 생일로 기념해왔다.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은 1950년 6ㆍ25전쟁 당시 국군이 38선을 넘어선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다. 제3사단 23연대 3대대가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최초로 북한공산군을 반격하고 38선을 돌파했다. 한국전쟁에서 사망·부상·행방불명된 국군은 98만7천명으로 민간인 피해(80만4천600명)보다 많았다. 육탄으로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국군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 국군의 날은 한국군의 위용과 전투력을 국내외에 과시하고 국군 장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기념일이기도 하다. 국군의 날 행사는 1993년 이후로 통상 5주년 단위로 성대하게 열려왔다. 1998년 건군 50주년, 2008년 60주년, 2013년 65주년 행사 때 모두 도심 시가행진을 했다. 육·해·공군의 무장을 동반한 군사 행진을 통해 국가 방위 능력을 국민에게 선보이고 국민은 국군에 대한 신뢰와 성원을 보내는 축제 마당이었다. 건군 70주년을 맞은 오늘 국군의 날 행사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야간 실내행사로 열린다.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시가행진은 없고, 대신 가수 싸이와 걸그룹 축하공연 등이 펼쳐진다. 식전ㆍ식후 행사가 아닌 본행사가 연예인 축하공연으로 꾸려지는 건 처음이다. 70주년 행사를 조용하고 조촐하게 치루는 건, 행사 동원 장병들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것이다. 남북 화해 국면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군사 퍼레이드는 과거 소련이나 중국, 북한 같은 국가들에서 체제 결속을 도모하고 도발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활용했다. 예전 우리의 행사도 많은 경비가 들고 장병들의 고생도 많기는 했다. 대신 국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사기를 높이는데 역할도 했다.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대규모 퍼레이드는 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를 지켜온 호국영령, 국방의 의무를 다한 국민, 또한 지금도 불철주야 고생하는 60만 장병들에 대해선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군은 남북관계가 호전돼도 대한민국의 존속과 함께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강군 건설과 사기 진작은 필요하다. 평화도 힘이 있어야 지킨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정부는 지난 13일 고강도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추석 연휴 전날인 21일에는 수도권 30만 가구 주택 공급 방안에 대해서도 내놨다. 광명과 하남을 투기과열지구로 묶고, 광교신도시와 안양시 동안구, 구리시 등을 조정대상지역을 포함하는 내용의 8ㆍ27대책을 발표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서다. 투기수요 억제와 서울과 수도권 신도시 등지에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댔다. 정부는 이번 9ㆍ13대책을 발표하면서 투기수요 근절과 실수요자 보호, 맞춤형 대책 등 3대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9ㆍ13대책의 핵심은 ‘빚내서 집 살 생각 마라’란다. 따라서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3주택 이상 보유자와 분당과 광교, 안양시 동안구와 같은 도내 규제지역(투기지역ㆍ투기과열지구ㆍ조정대상지역) 등에 집을 2채 이상 소유하고 있는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등 세금을 추가로 물리도록 했다. 또 규제지역에서는 사실상 무주택자를 제외하고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아예 집을 사지 못하도록 대출 규제를 더욱 조였다. 부동산 시장은 곧바로 매도자와 매수자들의 관망세로 돌아서며 꽁꽁 얼어붙은 모습이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9ㆍ13대책이 발표된 직후인 9월 셋째 주 수도권 신도시의 아파트값은 0.15% 오르는 데 그쳐 둘째 주 0.31%보다 절반 이상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 1년 반 동안에만 8차례나 발표된 부동산 대책 때문일까? 오락가락 정부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인 견해를 가진 국민이 우리 주변에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기관이 시행한 조사에서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들이 평가는 부정이 긍정보다 4배나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정부는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오히려 정부 의도와 정반대로 집값이 오르는 역효과를 내는 데 그쳤다. “올 한 해 규제지역만 집값이 다 올랐네요! 어떻게 정부가 이렇게 콕콕 잘 찍어줄 수 있을까요?” 집값 잡기에 나섰다가 되려 집값만 올린 무능한 정부를 마치 비웃기라도 한 한 부동산 정보 서비스의 여성 진행자 말이 새삼 피부로 와닿는다. 권혁준 경제부 차장

[지지대] 남편들의 명절 증후군

추석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추석 연휴 때 명절 음식 장만하느라 아내들이 고생이 많았다. 남편들 모두 아내에게 고생 많았다고 한마디 해 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지인이 카톡을 통해 보내 준 공감 가는 글이 있어 소개한다. 이 글은 ‘아내들은 모른다. 남편 증후군을….’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됐다. 명절 때마다 남편들은 그냥 넘기자니 서운한 곳이 너무 많고 적게라도 명절 인사를 하자니 주머니 사정이 허락지 않아 명절 증후군을 겪는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직장상사, 동료, 친척, 친한 이웃 등 그냥 지나치기가 정말 만만치 않다. 고향에 가면 인사를 곱게 하는 조카들 그냥 넘길 수가 없다. 만 원짜리 한 장씩, 그것도 몇 명씩이나 되고 대학 다니는 동생, 조카는 만 원짜리로 통하지 않는다. 자네 왔는가. 먼저 아는 체를 하는 이웃 어르신, 잘나간다고 소문만 무성한 처지에 어르신 약주 한 잔 하시라고 기분 좋게 용돈도 드렸으면 좋겠지만 망설여진다. 적어도 몇 달에 걸쳐 조금씩 혼자만의 비자금을 모아둬야 명절 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 세상 살다 보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명절, 여자들은 모른다. 남자들이 무슨 명절 증후군이냐고. 세상살이 사람 노릇하다 보면 명절증후군이 남자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남편들은 명절이 즐겁지만은 않다. 여자들은 모른다. 남자의 명절증후군을. 지금 부엌일이 명절증후군이라고 떠들어 대는 판에 무슨 남자들이 명절증후군이 있어라고 쉽게 말하지만 진짜 골치 아파하는 건 남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줘요. 거기다 아내들의 잔소리, 정말 속태우는 남편 남자들의 명절증후군. 설날 추석 정말 안 반갑다. 안 반가워 남편들은 말한다. 속말로 설날 추석날 없어졌으면 좋겠다. 남편의 하소연 소리다. 아내, 자식, 부모 명절이면 내 얼굴만 쳐다보는데 난 어떡해! 그래도 옛날엔 가장이라고 큰소리라도 쳤는데…. 이렇게 끝이 난다. 남편들도 명절 때 남한테 얘기 못 하는 고민이 있다. 풍성하고 풍요롭게 주위 사람들과 명절을 보내고 싶은데 사람 구실 못하는 것 같을 때 남편들은 속이 상한다. 아내들도 속이 상한 남편들에게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한 마디 해주면 어떨까. 최원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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