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손학규의 참 고된 정치

2006년 10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탄광을 찾았다. 아침 일찍 인부들과 갱으로 들어갔다. 궤도차로 들어간 곳은 지하 200m 막장이다. 일이 시작되자 서슴없이 삽을 들었다. 채굴기를 들고 갱 벽을 부쉈다. 자기 키보다 큰 지지목을 지고 옮겼다. 이렇게 8시간의 노동을 모두 끝냈다. 때마침 취재차 현장에 있었다. 막걸리를 곁들인 저녁 식사가 마련됐다. 옆에 앉은 인부가 내게 말했다. 탄광 일을 해본 모양이다. 정말 독한 사람이다. ▶잘 나가는 대권 후보였다. 당연히 여의도행을 택할 거라 봤다. 하지만, 그는 고된 정치를 택했다. 퇴임 당일 남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일행이라야 초라했다. 부인과 김 비서, 그리고 자원 봉사에 나선 대학생이 전부였다. 그래도 끝까지 했다. 탄광, 농사, 건설현장 등을 그렇게 찾아다녔다. 대장정 마지막 날 지지자들이 서울역에 집결했다. 하필 북한의 핵실험 특보(特報)가 터졌다. 모든 게 묻혀버렸다. 대통령 후보도 되지 못했다. ▶2014년 8월, 그가 또다시 고된 선택을 했다. 앞선 재보궐 선거에서 낙선했다. 지사를 지냈던 경기도(수원병)에서의 충격적 패배였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가 간 곳은 전남 강진이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토굴이라 알려진 집은 폐가에 가깝다. 뱀이 우글거려 백반 가루를 뿌려야 했다. 이번에는 김 비서도 가지 않았고 자원 봉사자도 없었다. 부인과 단둘이 그렇게 2년을 보냈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견디기 힘들었을 생활이다. ▶그가 또 고된 선택을 했다. 이번에는 단식이다.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 앉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했다. 추운 날씨 속 건강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의료진이 수시로 건강을 체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찾았다. 손 전 지사가 웃으며 말했다. 난 괜찮다. (단식을)오래 하겠다. 결국 거대 양당이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단식은 중단됐다. 열흘여나 굶었다. 이번에는 얻어낸 게 있을까. 언론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가능성에 여전히 회의적이다. ▶손학규는 경기도지사 출신이다.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부침은 있으나 여전히 경기도를 대표한다. 정치 쇼라는 지적이 있다. 정치 꼼수라는 비난도 있다. 그런데 경기도민-모두는 아닐지라도-의 눈엔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지역적 뿌리 없는 경기도 정치인의 어쩔 수 없는 생존기랄까. 그렇더라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고된 정치를 버리고, 평범한 정치를 해야 한다. 그가 평생 말해왔던 가치가 진정성이다. 진정성이야말로 튀는 비범함이 아닌 조용한 평범함에 더 어울릴 수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달력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달력은 큰 선물이었다. 대표적인 경조사 답례품이기도 했다. 집안의 벽은 달력이 장식했다. 멋진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간 12장짜리 달력이 붙기도 했고, 매일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이 걸리기도 했다. 국회의원 얼굴을 중심으로 12달이 모두 들어간 한 장짜리 달력이 붙여질 때도 있었다. 어떤 집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 사진이, 어떤 가게에는 비키니를 입은 여배우 사진이 실린 달력이 걸렸다. 달력에는 생일과 제사 등 집안의 기념일이 표시됐다. 이웃집의 잔칫날이 표시되기도 했고, 곗날이나 공과금 수납일이 적히기도 했다. 종이가 귀했던 때라 달력은 다 쓴 다음에도 유용했다. 비교적 두툼한 12장짜리는 교과서 덮개로 썼다. 때때로 윷놀이나 장기 판을 그리기도 했고, 만두나 칼국수를 만들 때는 바닥에 깔고 밀가루 반죽을 밀었다. 주로 귀금속점에서 만들던 일력은 얇아서 화장실 휴지로 쓰기에 적당했다. 한때 기업 홍보용으로 적극 활용되면서 연말이면 달력이 넘쳤다. 은행에 가면 고객들에게 그냥 몇 개씩 나눠주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달력은 크게 줄어들었고, 전통적인 벽걸이보다 탁상용 소형 달력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요즘엔 이 마저도 잘 만들지 않아 달력 구하기가 쉽지 않다. 연말 달력인심은 옛말이다. 달력이 사라진 것은 스마트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중장년층도 대부분의 일정을 스마트폰으로 관리한다. 그래서 탁상용 소형 달력이면 모를까, 벽에 거는 큰 달력을 구하려는 이가 별로 없다. 선물용으로 제작해왔던 기업들도 이젠 대량으로 달력을 만들지 않는다. 달력 말고도 기업 홍보수단이 다양해진 데다 비용절감 등의 이유 때문이다. 공짜 달력이 줄면서 온라인 등을 통해 달력을 직접 사서 쓰는 사람들이 늘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 G마켓은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최근 한 달 동안 달력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했다고 밝혔다. 가장 일반적인 벽걸이 달력 판매량이 29% 늘었다. 매일 사용할 돈과 영수증 등을 관리할 수 있게 만든 생활비 달력도 93% 증가했다. 달력을 하나의 인테리어 요소로 보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사서 쓰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가족사진이나 원하는 그림 등을 넣어 제작할 수 있는 DIY 달력은 매출이 70%, 개인 일정 관리에 편리한 탁상용 달력은 6% 증가했다. 많은 이들이 달력을 보면서 한 해 계획을 세우고, 새 결심을 다진다. 종이 달력의 퇴조는 디지털시대의 자연스런 현상이겠지만 새 달력을 보며 갖던 꿈과 희망은 사그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남성 육아휴직

한 제약회사에 다니던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회사로부터 불합리한 징계를 받았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아이 둘을 키우는 강모씨는 부인의 육아휴직이 끝난 시점에 맞춰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로부터 원칙대로 육아휴직을 법적인 부분과 현상태를 고려하여 반려하였음을 알립니다.ㅋㅋ라는 문자를 받았다. 회사 측에 항의하자, 임원은 차라리 마음 편하게 사직서 쓰고 평생 육아를 해. 회사가 문 닫았으면 닫았지 네 육아휴직은 안 내줄거다라고 했다. 이어 강씨가 근무태만이라며 정규직에서 계약직 전환을 강요했고, 감봉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강씨는 서울지방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 양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이를 허용해야 한다. 여성이 전적으로 책임지던 육아는 남녀 모두의 일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남성 육아휴직이 크게 늘었다. 2008년 1.2%이던 것이 지난해엔 10배가 넘는 13.4%로 상승, 사상 처음 1만명을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육아휴직 사용자는 9만123명으로 전년(8만9천795명)보다 0.4%(328명) 증가했다. 이중 86.6%인 7만8천80명이 여성이다. 1년 전보다 5.0%(4천99명) 줄어 2년 연속 감소세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은 1만2천43명으로 58.1%(4천427명) 증가했다. 그러나 가파른 증가세에도 여성 육아휴직자의 6분의 1 수준이다. 아이슬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40% 넘는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참 멀었다. 남성 육아휴직자의 상당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 근무자다. 중소기업과 자영업, 비정규직 근로자에겐 먼나라 얘기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위해 정부가 아빠들의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있지만, 기업 현장에선 아직도 주변 눈총과 인사상 불이익 등으로 쉽지 않다. 낮은 소득대체율과 휴직자 대체 문제도 남성 육아휴직 확산의 걸림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자의 소득대체율은 노르웨이가 97.9%, 스웨덴 76.0%, 독일 65.0%인데, 우리나라는 32.8%에 그친다. 생계에 지장이 생길 것을 감수해야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합계출산율이 올해 3분기 0.95명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0.10명 낮아졌다. 육아휴직 기간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부모가 육아휴직을 나눠쓰는 남녀 육아휴직 할당제 남성 참여 인센티브제 등의 정책이 절실하다. 남성의 육아 참여는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적극 장려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위기의 중장년 독거가구

영하권의 추위가 지속되고 있다. 출근길 시민들은 저마다 두꺼운 옷으로 몸을 감싸고 종종걸음을 옮긴다. 없는 사람이 살기에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는 말이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난방비 부담까지 늘어 소외계층의 겨울나기는 더욱 힘겹다. 누구 하나 찾는 이 없는 독거가구에게 겨울은 시련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중장년 남성 독거가구의 겨울나기는 더욱 혹독하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5년 사이에 무연고 사망이 가장 많은 연령대가 40~50대 중년층으로 나타났다. 무연고 사망자 5천183명 중 40~50대가 2천98명으로 40.4%를 차지했다. 65세 이상 노년층 1천512명(29.2%)에 비하면 10% 이상 많은 수치다. 40~50대 사망자 중에서도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열에 아홉이나 된다. 집계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중년 위기남성이 겪는 어려움은 훨씬 더 심각하다. 지방자치단체가 고립된 중장년층에 관심을 쏟고 있지만, 대부분 사회복지서비스는 65세 이상 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위기 중장년 독거가구에 경제적ㆍ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이들이 세상과 접촉하고 소통할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어르신의 경우 경로당이나 복지관처럼 정기적으로 타인과 접촉할 수 있는 창구가 있지만, 중장년 독거가구는 직장이 없으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 외에는 정기적으로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그렇다고 중년 독거남성이 먼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가부장 사회의 특성상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러한 위기 중장년 독거가구를 발굴해 맞춤형 서비스로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어 지속적인 돌봄 활동을 통해 이들을 건강한 사회공동체 일원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정부의 힘만으로 숨겨진 위기의 중장년 독거가구를 발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민ㆍ관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사회 복지 안전망을 구축해 지역사회가 함께 대처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역주민의 참여와 관심이 필요하다. 지역주민이 위기의 중장년 독거가구를 함께 찾고 다 같이 돕는다면 소외받는 이웃이 없는 따뜻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가 아닐까. 이관식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투신자살(投身自殺)

지난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뇌물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자신의 자택 인근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했다. 또 안상영 전 부산시장, 임상규 전 농림부장관, 박태영 전 건보공단 이사장 등이 검찰에 범죄 피의자로 조사를 받던 중 투신자살했다. 필자가 수원지방검찰청 출입 당시 공안부장으로 재임했던 변창훈 전 서울고검 검사도 지난해 11월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수사를 은폐하려 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지인의 사무실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수원지검 출입 당시 변창훈 검사를 떠올리면 항상 웃음 띤 모습에 차분한 목소리로 응대해 주던 기억이 있다. 당시 경기지역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선거법 위반과 비리 혐의 등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특정 사안에 대해 일희일비 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일을 처리하는 검사로 알려졌었다. 최근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투신 소식이 전해지면서 변창훈 검사가 생각나 그의 카카오톡 계정을 조심스럽게 열어봤다. 2017년 11월10일 올려진 프로필 사진에 변창훈 검사님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그가 2017년 11월6일 숨졌으니 사망 이후 작성된 글인듯하다. 내용은 이러했다. ▶한평생 오직 바르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자,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도 일상도 뒤로 한 채 검사로서의 직분에 충실하시며 헌신하셨던 진정으로 검사의 표상과 같은 분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드리게 되어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매우 존경했던 선배님께서 소탈하게 웃으시던 평소의 모습을 평생 제 가슴속에 간직한 채 소중한 유지를 받들고 따르겠습니다. 좋은 곳에서 영면하옵소서. 필자가 알기로도 변창훈은 이런 사람이다. 평생 나라를 위해 검사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이 몸담은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는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사망한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도 마찬가지다. 그를 잘 아는 고위공직자 출신 인사의 SNS 글이 인상적이다. 대한민국을 늘 걱정하신 고인의 평소 성품으로 보아 부하들을 포함, 주변 분들께 폐 끼치는 걸 못 견뎌 하셨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대한민국을 그리도 걱정한 그들이 왜 죽어야만 했을까. 검찰 수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범죄 혐의에 대한 진위를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들이 허무하게 자신의 삶을 내던지게 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로또 외교(外交)

우연한 이익을 얻고자 요행을 바라거나 노리는 성질. 또는 그러한 특성. 사행성(射倖性)의 사전적 의미다. 말 그대로 우연한 이익에 기대는 승부다. 대표적인 사행성 놀이가 도박(賭博)이다. 승패가 우연성에 의해 좌우된다. 당연히 정상적인 경쟁이 아니다. 도박은 물론 모든 사행행위가 불법이다. 카지노, 경마, 경륜ㆍ경정, 복권, 체육진행투표권, 소싸움으로 한정하면서 엄격히 틀어막는 이유다. ▶최대 관심사가 김정은 답방이다. 연일 머리기사로 보도된다. 출발은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까운 시일 내란 연내를 말한다고 했다. 흔히 있는 정상 간의 합의문 발표다. 국가 원수의 타 국가 방문이다.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구체적 방문 시기 또한 언제든 바뀐다. 연내 올 수도, 내년에 올 수도 있다. ▶뜨거워진 건 시기를 연내로 못 박으면서다. 진원지는 우리 쪽이다. G20 정상회의 방문차 해외 순방 중이던 문 대통령이 시작했다. 김 위원장 답방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국민이 쌍수로 환영할 것이라는 투박한 표현까지 썼다. 김 위원장에게 전할 트럼프 메시지도 거론했다. 김 위원장 결단에 달린 문제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누가 들어도 연내 답방에 비중을 둔 말이다. 관심이 시작됐다. ▶청와대 상춘재가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국빈이 머물거나 대담을 하는 장소다. 청와대는 의례적 보수라고 했다. 이어 청와대 사랑채에는 김 위원장 그림까지 붙었다. 정기적인 교체라는 설명을 믿는 국민이 없다. 누가 보더라도 답방 임박의 신호였다. 김 위원장 환영을 위한 준비였다. 관심은 어느덧 답방 날짜로 옮아갔다. 13일 설, 17일 설. 언론의 단독 보도가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우리 측 발언을 보자. 김 위원장 서울 답방, 파악된 것 없다(국정원장ㆍ5일). 김 위원장 연내 답방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조명균 통일부 장관ㆍ7일). 북쪽이랑 전화가 되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요(임종석 실장ㆍ7일 오후). 연내 답방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청와대 고위 관계자ㆍ11일).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말들이다. 그 속에 변하지 않는 게 있다. 희망이라는 기대다. ▶사행성 게임에서 본인은 하나만 할 수 있다. 이겼으면 좋겠다는 기대다. 나머지 요건은 타인 또는 우연이 결정한다. 김 위원장 답방을 풀어가는 우리 모습이 딱 그렇다. 그저 희망만을 말하고 있다. 결과를 정할 변수는 오로지 북측이 쥐고 있다. 북에 따라 대박 또는 쪽박이 결정 난다. 이쯤 되면 로또 외교 아닌가. 물론 김 위원장은 느닷없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닌 건 아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기부 에티켓

우리 국민의 에티켓 수준은 그리 높게 평가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수준 이하 행동을 해 국제적 망신을 당한 사례가 종종 보도된다. 한국관광공사가 올 1~9월 해외여행을 다녀온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 에티켓 수준은 5점 만점에 2.75점으로 보통 이하로 집계됐다. 전체 응답자 중 37.4%가 에티켓이 부족하다고 응답했고, 에티켓이 우수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17.6%에 그쳤다. 해외에서 우리나라 여행객의 부끄러운 행동 1위는 공공장소에서 시끄러움이 차지했다. 그 다음이 유흥업소 출입성매매, 현지 에티켓매너를 인지하지 못함, 개발도상국 여행 때 현지인에게 거만한 태도를 보임이었다. 이 밖에도 뷔페 음식이나 호텔 비품 가져가기, 차량 탑승 시 차례를 지키지 않는 행동, 현지인 또는 현지문화 비하 등이 꼽혔다. 에티켓 부족은 다른 곳에도 나타난다. 얼마전 한 일간지에 기부 물품의 상당수가 쓰레기 수준이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곰팡이 같은 때가 찌든 코트, 삭아서 겉감이 가루로 부서지는 가죽 재킷, 보기도 민망한 입던 팬티, 안창이 너덜너덜한 구두 등 재활용이 불가능한 물품이 수북했다. 잡화, 주방용품, 전자제품 등도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 절반을 넘었다. 누군가는 선의로 기부했을지도 모르는 물품의 상당수는 다시 폐기물장으로 보내진다. 아름다운가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기부 물품 중 67.6%가 재사용이 불가능해 폐기 처리됐다고 한다. 기부를 가장한 쓰레기 투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높은 폐기율이다. 폐기물품 기부가 많은 것에 대해, 복지단체 관계자들은 기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올바른 기부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남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인지 살피기보다 처치 곤란한 물건을 처리하는 차원에서 기부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버리느니 남 준다는 식이다. 중고거래 사이트가 활성화하면서 쓸 만한 물건은 팔고, 팔지 못하는 물품은 기부하는 사례도 있다. 연말정산 시 기부금 환급 혜택이나 기업 법인세 감면을 노린 얌체 기부도 적지 않다. 이는 엄밀히 기부가 아니다. 기부의 기본은 남이 사용할 수 있는가다. 이웃에게 내가 직접 전달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인지 살펴보는 것이 기부 예절의 시작이다. 구입 가격과 상관없이 본인이 지금 쓸 수 없는 물건은 남들 역시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진정 아끼는 것을 기부할 때 상대방도 고마운 마음이 들 것이다. 온정의 손길이 절실한 연말, 기부도 에티켓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재개발의 이면

38살의 철거민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2 재개발 지역에서 어머니와 함께 쫓겨난 박모씨가 거리와 빈집을 전전하다 한강에 투신했다. 박씨의 시신은 지난 4일 한강수색대에 의해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발견됐다. 박씨는 유서에 아현동 OOO-OO호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다라며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한다고 썼다. 이어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리고 싶다며 어머니를 걱정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었는데 임대아파트가 무슨 소용이냐며 통곡했다. 시민단체들은 주택 철거과정에서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거용역 일꾼들이 물리력을 행사했는데 현장에는 강제집행을 관리감독하는 집행관도 없었고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재건축조합이 강제집행 이틀 전에 계획을 미리 알리는 사전 통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관계자들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실행했는지 진상을 파악하고, 관련 규정을 어겼다면 엄중히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잘잘못을 떠나 앞날이 창창한 한 젊은이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앞선다. 얼마나 절망했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홀로 남겨진 노모는 또 어찌 살아갈까. 한겨울 맹추위만큼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용산참사가 우리 사회를 할퀴고 간지 10년이다. 당시 용산 재개발 보상문제를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다쳤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전국에서 철거민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죽음으로 내몰린 박씨 사건이 단적인 예다. 경기, 서울 할 것 없이 도심 곳곳에서 재개발 붐이 일고 있다. 수원만 해도 재개발 사업지구가 10곳이 넘는다. 재개발사업은 비능률적이고 수준 미달인 도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도시 내 오래된 주택이나 미관을 해치는 건물 등을 헐고 아파트나 상가 등을 새로 건설하는 사업이라고 말한다. 옛 동네를 싹 밀어버린 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업시설이 빼곡히 들어설 것이다. 추진하는 측에선 상권이 활성화되고 주민 편의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 말한다. 재개발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 쫓겨나듯 떠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이중엔 다른 곳에서 정주할 형편이 안되는 사람도 많다. 철거민을 위한 주거대책이 절실하다. 어디에 박씨처럼 극단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공허한 메아리로 그친 그들만의 원팀

오는 13일은 613 지방선거와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명운이 갈림길에 서는 날이라고들 한다. 올해는 4년마다 찾아오는 온 국민의 축제, 지방선거가 있던 해다.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지방선거를 축제라고 부르곤 한다. 내가 사는 고장을 위해 더 나은 일꾼을 뽑아 행복한 지방자치를 이루자는 뜻에서 그렇게들 외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축제는 남북평화무드와 국정농단 등의 여파에 따른 기존 보수당의 곤두박질 속에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렇게 우리들의 축제는 또다른 4년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이번 축제에서 민주당의 외침 중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원팀(One Team)이었다. 말 그대로 하나로 뭉쳐 더 나은 시대를 준비하자는 뜻인 줄 알았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그 원팀은 공천만 받으면 거진 단체장이라는 선거 분위기가 만든 내부용 선거캐치프레이즈라는 생각으로 귀결되고 있다. 확실한 분위기 속 자칫 과열 양상에 따른 내부 총질을 걱정한 내부 단속용으로 사용됐다는 의미라고나 할까. 선거가 6개월 가까이 지난 현재, 민주당의 원팀은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반문을 하게 된다. ▶어느 조직이든, 가장 치명적인 적은 내부에 있다고들 한다. 비단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1천300만 경기도민을 위해 혁명 중인 경기도에 직격탄을 날린 것은 원팀의 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국회에서도, 경기도의회에서도 같은 당 지사를 위한 원팀 정신은 사라졌고, 각자의 목적의식에 기반한 버라이어티한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난 경기도의 한 공무원은 푸념부터 내놓았다. 민선 7기가 시작되고, 밤낮으로 더 나은 경기도, 새로운 경기도를 위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왔는데 이 지사의 기소가 기정사실화되면 모든 것이 추진 동력을 잃지 않을까 해서란다. 충분히 그럴 여지가 있음은 분명하다. 연일 쏟아지는 드라마와 영화가 관객들의 흥미를 끄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반전 때문일 것이다. 법적 해석에 따라 잘못이 있다면, 법에 의해 처벌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아직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들은 아직 원팀일 것이다. 그것이 상도덕과 같은 정치도덕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규태 정치부 차장

[지지대] 다문화 가정지도사의 상대적 박탈감

2007년 월 급여 80만 원으로 시작한 이래 단 한 번의 급여인상도, 처우개선도 없었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급여가 올랐다. 그러나 공무원 임금 평균인상률 2.6%를 적용해 시급 325원을 인상하는데 그쳤다. 오른 월 급여는 82만 800원이다. 100만 3천263원의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10년간 전혀 오르지 않던 임금에 대한 고려나 배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문화가정의 국내 정착을 도와주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방문교육지도사의 현실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주 15시간 이상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근로기준법상 주휴수당, 연차수당도 받지 못했다. 더욱이 2016년부터는 전년도에 비해 임금은 오르지 않았는데 주휴수당이 포함된 임금이라고 근로계약서에 명시까지 했다. 주휴수당을 안주는 것은 불법이므로, 이를 모면하려고 꼼수를 부린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이런 꼼수를 부린 주체가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라는 사실에 더욱 낯이 뜨거워진다. 2.8%, 5.1%, 6.0%, 6.1%, 7.2%, 8.1%, 7.3%, 16.4%. 2010년부터 올해까지 연도별 최저임금 인상률이다. 해마다 인상률은 급등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자 오른 최저임금 인상률에는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 같은 인상률과 대비되는 임금을 받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방문교육지도사의 상대적 박탈감은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지난 2007년부터 도입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방문교육지도사는 결혼여성이민자와 그 자녀에게 한국어교육, 부모교육, 자녀교육을 해오고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낯선 나라 한국에 와서 적응할 시간도 없이 임신을 하게 되고 출산한다. 또 시댁과의 갈등, 남편과의 문화적 차이, 자녀양육의 어려움에 부딪힌다. 방문교육지도사는 이들의 자녀 학습과 생활지도는 물론 조력자로서 한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때로는 친정엄마 같은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그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10여 년의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냈다. 귀를 한번 기울여 그들이 받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은 어떨까. 이명관 사회부장

[지지대] 대안 못 낸 영화 IMF

한시현(김혜수 분) 팀장은 끝까지 반대한다. IMF로 가는 것은 경제 주권을 빼앗기는 것이다.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이 그러면 무슨 대안이 있느냐며 비아냥댄다. 외국에 사정을 설명하고 돈을 빌리자고 한다. 100억 달러는 빌릴 수 있다. IMF에서 빌리려던 돈은 300억 달러다. 실제로 1997년 IMF와 협약된 자금은 550억 달러(IMF 210억 달러ㆍIBRD 세계은행 100억 달러ㆍADB 아시아 개발은행 40억 달러 등)였다. 부족하기 짝없는 대안이다. ▶한 팀장의 노력은 계속 된다. 대책을 묻는 팀원들에게 말한다. 차라리 국가 부도로 가면 된다. 부채 상환이 동결되는 모라토리엄 선언이다. 당시 가장 큰 채권국은 미국이다. 모라토리엄의 가장 큰 피해자도 미국이다. 미국이 안달 날 것이고, 한국 위기를 불구경하듯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구상은 협상 테이블에 올려보지도 못했다. IMF 구제 금융은 그 후 4년 만에 끝났다. 국가 부도는 끝이 없는 구렁텅이다. 돈 없으니 배 째라는 선언은 국가가 할 선택이 아니다. ▶한 팀장의 마지막 승부수는 폭로다. 국가 부도 위기의 경제 상황을 공개하는 것이다. 무책임한 정치권의 실정(失政)도 낱낱이 터뜨리기로 작정한다. 이렇게 해서 국민이 IMF로 가려는 권력에 제동을 걸어줄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언론은 보도하지 않았다. 팀원의 푸념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언론) 정말 너무들 하네. 한국 경제 문제없다던 언론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이게 IMF로 안 갈 대안이었나. 아니다. ▶영화는 IMF로 간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고 단정한다. 그러면서 뼛속까지 시장주의자인 재정국 차관의 오판이라고 말한다. IMF로 가서 미국 자본의 배만 불렸다고 말한다. 국민이 모은 금을 대기업 빚 갚는데 썼다고 말한다. 그런데 관객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엔 답하지 못한다. 그러면 IMF 가지 말고 어떻게 했어야 옳았는가. 어느 평론 글에 이렇게 적혔다. 주인공(한시현)은 영화 내내 IMF 대안을 내지 못했다. ▶영화 탓할 거 없다. 대안이 없었다. 대기업의 차입경영과 금융 기관 부실, 원화가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 외환보유고의 비상식적인 운용, 외화자산과 부채의 만기 갭. 오만가지 요인이 망쳐놓은 마지막 1주일이었다. 그 시간에 굴욕적인 꿈 질 말고 뭘 할 수 있었겠나. 이제 초로가 된 그 시절 장년들이다. 대안이 없음을 잘 안다. 그러면서도 숨죽이고 본다. 비참하게 끝날 결론도 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눈을 못 뗀다. 너무도 잔인한 추억 팔이, 그게 IMF 영화의 전부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장애인 의무고용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취업이 힘들다. 정부는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사용자에게 일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화 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부담금을 내도록 했다. 1991년부터 시행 중인 이 장애인 의무고용제에 따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장애인을 소속 공무원 정원의 3.2% 비율로 고용해야 하고, 상시 50인 이상의 민간기업은 2.9%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공공기관도 3.2%를 고용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의무고용률이 0.2% 포인트씩 높아진다. 정부는 2008년부터 장애인 고용 실적이 저조한 기업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장애인 고용의무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실은 법으로 정한 장애인 의무고용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32017) 전체 공공기관이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아 납부한 부담금이 607억 원을 넘었다. 부담금은 2013년 143개 기관에 총 66억5천400만 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74개 기관 총 167억6천200만 원으로 늘었다. 경기도내 공공기관도 장애인 의무고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올해 19곳중 9곳이 의무고용 비율 3.2%를 지키지 않아 도민 세금으로 부담금을 내게 생겼다. 경기테크노파크와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은 장애인을 1명도 고용하지 않았고, 경기연구원ㆍ경기도문화의전당 등은 3년 연속 의무고용률을 채우지 않았다. 이에 따라 매년 1억 원가량 벌금을 물고 있다. 올해 부담금(지난해 미이행에 따른)은 9천500만여 원, 지난해는 1억3천100만여 원이었다. 제도 정착을 선도해야 할 공공기관들이 의무고용을 위반하는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부담금을 납부했다고 책임을 다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 부담금도 세금을 쓰고 있으니 혈세 낭비다. 부담금 납부로 할 일 다했다는 듯 손을 놓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의 취지는 장애인 고용을 늘리는 데 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 공공기관들에서 장애인 의무고용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민간에 지키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이 낸 부담금은 2015년 3천966억 원, 2016년 4천129억 원, 2017년 4천329억 원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이나 부담금 납부로 장애인 의무고용을 대체해선 안된다. 돈으로 때우겠다는 생각이라면 나쁘다. 장애인에게 일자리란 소득보장 차원을 넘어, 노동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통로와 같다. 장애인 복지의 기본은 고용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남북 잇는 철도

여성 해방주의자/ 신여성 나혜석은/ 용산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샀다// 기차는 40㎞의 속도로 평양을 지나/ 신의주/ 압록강 건너/ 옛 부여의 수도 창춘/ 시베리아 평원을 거쳐 페테르부르크/ 베를린 그리고, 파리/ 파리에서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였다// 용산역 매표 창구에서/ 파리라고 말하는 그녀의/ 입 모양을 상상하면서 나도 입술을 붙였다 벌리며/ 툭 뱉어 본다/ 파리// -후략- 조영옥의 시 파리 나혜석의 일부다. 수원 출신의 한국 최초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은 31살이던 1927년 용산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샀다. 평범한 어머니이길 거부하고 불꽃같은 삶을 산 그녀는 철의 실크로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에 도착,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을 두루 여행한다. 1936년 마라토너 손기정도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해 올림픽에 참가했다. 부산에서 열차를 탄 그는 경성-평양-신의주를 거치고 만주를 지나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베를린에 도착했다. 당시만 해도 부산에서 베를린까지 기차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유정의 이광수도, 순애보의 작가 박계주도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했고 그곳 풍광을 소설에 담아냈다. 유라시아대륙으로 이어졌던 남북의 철길은 한국전쟁으로 끊겼다. 경의선도 경원선도 두동강이 났다. 철도종단점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판이 세워졌고, 열차는 허리 잘린 한반도의 남단에 섬처럼 갇혔다. 그동안 남북 철길을 잇자는 합의가 있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지난 30일 서울신의주를 새긴 남측 열차가 북녘땅을 향해 기적을 울리며 군사분계선(MDL) 인근 도라산역을 출발했다. 북측 철도 구간 남북 공동조사를 위해서다. 남측 도라산역과 북측 판문역을 주 5회 오가던 화물열차 운행이 중단된 2008년 11월28일 이후 10년 만이다. 17일까지 진행되는 조사는 개성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400㎞ 구간, 금강산에서 두만강까지 이어지는 동해선 800㎞ 구간에서 이뤄진다. 북측 철도의 노후화, 문제점을 살펴보게 된다. 현재 북한 철도는 노반과 레일 등 기반시설이 노후화했고 관리가 안돼 시속 40㎞ 정도 저속 운행만 가능하다. 철도 공동조사가 남북의 철길을 하나로 이어 평화 협력은 물론 경제 번영의 혈맥을 뚫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철길을 잇는 것은 분단된 남과 북을 연결하는 의미 그 이상이다. 한반도 남단에 갇혀있던 우리를 유라시아 대륙으로 연결시켜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나혜석, 손기정처럼 북한을 지나 시베리아횡단열차 타고 유럽 갈 날도 멀지 않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성숙한 노조원의 모습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장은 한 달째 자신의 집무실이 아닌 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한 달 이상 지청장실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어서다. 지청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쫓겨난 신세가 된 셈이다. 이들은 왜 노동청장 집무실 점거에 나섰을까? 발단은 이렇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잡월드(성남 분당 소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놓고 노사간 대립이 격화됐다. 잡월드에서는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 방식을 주장한 반면 노조에서는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부딪힌 것이다. 결국, 잡월드 비정규직 노조 일부는 지금껏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민주노총이 이들을 돕겠다며 가세했다. 결국, 두 노조가 합세해 경기 남부지역 대표 노동지청인 경기지청의 지청장실까지 점거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경기지청장실 진입 과정부터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본다. 비정규직 노조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지난달 26일 경기지청장을 면담하러 갔다가 지청장실 문이 잠기자 비밀번호를 열고 들어갔고, 그대로 장판을 펼치고 점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재까지 한 달 이상 매일 교대로 3~8명가량이 번갈아가며 24시간 불법 점거를 벌이고 있다. 폭력 사태가 빚어지지 않는다면 강제 퇴거 명령을 내리기 어렵다는 게 경찰의 입장으로, 경기지청은 직원 80여 명이 매일 2명씩 번갈아가며 24시간 당직 근무를 서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제대로 된 공무수행을 하는데 큰 지장이 있다는 게 지청 직원들의 말이다. 제 집 안방에 남이 문을 열고 들어와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고, 또 가만있겠는가? 대한민국은 지금 온 나라 곳곳에서 노조와 관련된 잡음이 끊이질 않는 게 현실이다. 며칠 전 충남 아산의 한 기업에서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회사 사무실을 점거하고 임원을 집단으로 폭행해 국민에게 공분을 산 일마저 벌어졌다. 기자 역시 민주노총 언론노동조합 조합원이다. 정당한 노조 활동을 지지한다. 하지만, 불법 행위를 자행하는 노조원들의 행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은 어떨까? 과연 이들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성숙한 노조원들의 행동을 기대하고 있다. 또 그래야만 힘을 실어줄 것이다. 권혁준 경제부차장

[지지대] 광명시 에피소드 1

아집(我執)과 독선(獨善), 그리고 불통(不通), 이는 현대인들이 경계해야 할 부문이다. 특히 조직의 리더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지나치면 불행이 된다. 아집과 불통에 얽매인 리더는 세상이 온통 자신 중심이다. 자신이 법이자 정의고 올바름이다. 때문에 매사 일처리가 일방통행이고 그 조직이나 단체는 토론이나 경쟁의 문화는 찾아볼 수가 없다. 주위 의견이나 충고 또한 귀담아 듣질 않는다. 오히려 경계하면서 배척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사례는 동서고금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소통과 토론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기원전 221년,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통일국가가 탄생한다. 시황제(始皇帝)로 일컫는 진나라(B.C 221B.C 206)다. 이때 나타난 이른바 사상 통제 책이 분서갱유(焚書坑儒)다. 모든 사상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사건이다. 자신만의 세상을 이루려 했던 시황제 진나라는 결국 15여 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조선 제10대의 왕인 연산군(재위 14941506) 때다. 연산군은 우리 역사에서 대표적 폭군 중 한 인물이다. 패륜과 폭정, 그리고 악행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그는 수대째 선왕 곁을 지켜온 내시 김처선을 무참히 살해한다. 악행을 더 이상 지켜보기가 어려웠던 김처선이 이를 간언하면서 빚어진 참사다. 결국, 그는 중종반정으로 권좌에서 탄핵되기에 이른다. 광명시정이 민선 7기 박승원 호 출범 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100일을 맞아 진행한 500인 시민원탁회의 행정이 대표적이다. 대내외적 호응, 평가가 기대 이상으로 나타나면서 곧바로 특수시책이 됐다. 시민 공론화장으로 500인 원탁회의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정례화를 위해 조례를 제정하고 분야별 전문가 20명 이내의 운영위원회까지 구성하고 나섰다. 시민과의 소통에 목말라 하는 박 시장과 주위 참모들의 빠른 결단과 의지로 보여진다. 다양한 생각이 허심탄회하게 오갈 수 있는 장소로 기대된다. 내재돼 있거나 아님 표출된 갈등이나 주장을 속시원하게 따져보고 주고 받는 그런 장소. 직접 민주주의의 표상인 그리스 아고라 광장을 연상케 한다. 박승원 호에 사뭇 기대감이 앞서는 이유다. 김동수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한국 우주 과학의 꿈

우리는 10년 안에 달에 갈 작정입니다. 그 일들이 수월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일들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가 우리의 에너지와 기량의 최고치를 조직하고 가능하는데 이바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는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도전이고,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은 과업입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다. 그는 암살당했지만 약속은 이뤄졌다. 1969년 7월 21일 닐 암스트롱이 달을 밟았다. ▶아이젠아워는 케네디의 아폴로 계획을 공격했다. 혈세 400억 달러나 퍼붓는 얼빠진 짓이라고 단정했다. 그때, 미국인의 자존심을 상처 내는 일이 생겼다. 소련의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이다. 일본인의 69%, 프랑스인의 68%, 영국인의 59%가 과학 기술 1위 국가는 소련이라고 답했다. 케네디의 한 마디가 아이젠아워의 말문을 막았다. 우주는 군사적, 정치적, 심리적으로 너무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2009년 8월 25일 전남 고흥에서 나로호가 발사됐다. 100㎏급 인공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발사체였다. 1단은 러시아와 공동 개발했고, 2단은 한국화약이 독자 개발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발사체였다. 국민의 시선이 온통 나로호 발사에 모아졌다. 지표면을 떠나는 순간 성급한 축하의 환호도 있었다. 하지만 215초가 지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결국 타원 궤도를 그리면서 추락해 버렸다. ▶위성 발사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 첫 번째 위성 발사에서 성공한 나라는 소련, 프랑스, 이스라엘뿐이다. 미국, 영국, 일본, 이란 등 10개 나라가 첫 번째 도전에서 실패했다. 전체 성공률도 대단히 낮다. 미국은 무려 137회나 실패했고 러시아도 112회 실패했다. 일본이 11회, 중국도 9회의 실패 역사가 있다. 결코 나로호 발사 실패에 좌절할 일이 아니다. 그만큼 우주공학이 갖는 의미가 어렵고도 위대하다. ▶한국형발사체가 날아오른다. 오늘(28일) 예정돼 있다. 당초 예정은 10월이었다. 점검 과정에서 추진제 가압계통 배관 연결부의 압력 감소 현상 등 문제가 발견됐다. 이 문제를 수정했고 드디어 오늘로 발사일이 결정됐다. 50여 년 전 케네디의 표현을 되살려 보자. 우리가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은 과업입니다 성공을 기원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자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국적 포기자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또 튀는 발언을 했다. 김 전 지사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폭정ㆍ적폐 때문에 한국을 탈출한 국적포기자가 10년 만에 최고기록을 세웠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올해 국적 포기 증가는 김정은의 핵 위협과 경제난ㆍ일자리 부족 때문에 외국에서 새로운 삶을 찾으려는 사람이 늘고있기 때문입니다라며 국적 포기자가 늘어나는 추세인 반면 귀화나 국적회복으로 한국에 유입되는 수는 감소세입니다. 문제는 문재인이야!라고 했다. 수긍 가는 내용도 있지만 문재인 폭정 문제는 문재인이야라는 대목에선 쓴 웃음이 나온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1~10월 한국 국적을 상실(2만3천791명)하거나 이탈(6천493명)한 국적 포기자가 총 3만284명으로 집계됐다. 국적 포기자는 이민 등을 통해 외국 국적을 자진 취득해 자동으로 우리나라 국적이 상실되는 국적 상실과 선천적으로 복수 국적인 사람이 법정 기간 내 외국 국적을 선택하는 국적 이탈로 나뉜다. 올해 국적 포기자가 늘어난 것은 병역의무가 강화된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지난 5월부터 시행되면서 국적 이탈이 급증한 영향이 크다는 게 법무부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민 등 한국인이 자발적으로 국적을 포기한 경우도 많았다. 올 1~10월 귀화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은 2만1천22명으로 지난해 대비 3천305명, 2008~2017년 평균 1만8천925명에 비해 2천97명 늘었다. 자유한국당은 논평을 내고 청와대와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소득주도성장의 여파로 인한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 각박한 사회 현실 등 부정적 요인때문에 외국에서 새로운 삶과 가능성을 찾으려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송희경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소득주도성장이 단단히 고장났다는 징표가 확실한데도 청와대는 정책수정은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귀머거리 철면피 정부라고 비판했다. 국적 포기자가 늘어난데는 병역 문제, 일자리 부족, 교육 문제 등 여러 원인이 있다. 헬조선 탈출 행렬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보다, 국적을 포기하고 해외국적을 취득한 사람이 증가하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 국내 인구감소는 물론 국가경쟁력에도 손실이 우려된다. 하지만 현 정권 탓으로만 보기 어렵다.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6년에도 국적 포기자는 3만6천404명이나 됐다. 당연히 자유한국당도 책임이 크다. 문재인 정권만 욕하고 탓할게 아니다. 대한민국을 떠나는(Bye Korea) 국민들이 더 늘지 않도록 여야 모두 정치, 제대로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고래 배 속

지난 19일 인도네시아 와카토비 국립공원 안 카포타섬 해변에서 몸길이 9.5m의 고래가 발견됐다. 이미 부패가 진행된 상태지만 섬 주민들이 살을 떼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국립공원 측이 출동해 사인을 조사했다. 향유고래인 이 고래의 위장에선 플라스틱 컵 115개(750g)를 비롯해 5.9㎏에 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컵 이외에 하드 플라스틱 19개, 플라스틱병 4개, 샌들 2개, 플라스틱백 25개, 나일론 가방 1개, 기타 플라스틱 1천여 개가 나왔다. 고래 배 속이 플라스틱 쓰레기 하치장을 방불케 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잔뜩 먹은 고래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스페인 남부 해안에선 길이 약 10m의 향유고래가 죽은 채 발견됐는데 배 속에서 무려 29㎏의 쓰레기가 나왔다. 부검 결과 이 고래의 위장과 소장 등 내장 곳곳에 비닐봉지와 그물 조각, 플라스틱 물통들이 가득했다. 지난 6월 태국 연안에서 발견된 둥근머리돌고래 배 속에서도 80여 개의 플라스틱백이 나왔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고래뿐 아니라 다른 바다생물들도 수난을 겪고 있다. 스페인의 한 매립지에선 비닐봉지에 온 몸이 갇혀버린 황새가 발견됐고, 코스타리카 연안에선 바다거북 코에 12㎝ 플라스틱 빨대가 깊숙이 박혀 고통받는 것을 구조대가 뽑아낸 적이 있다. 비닐을 해파리로 오인해 먹는 바다거북의 피해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올해 초 발표된 해양 오염에 관한 한 보고서는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10년 안에 3배로 불어날 것으로 경고했다. 유엔도 지난해 말 매년 바다로 흘러드는 약 1천만t의 플라스틱 쓰레기로 해양생물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에 당면해 있다며 해양 플라스틱 오염 줄이기 노력을 촉구했다. 이 속도로 쓰레기가 계속 배출되면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9일 부안 앞바다에서 잡은 아귀의 배에서 500㎖ 페트병이 나왔다. 위산에 녹지 않는 일회용 생수병이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 전에도 아귀, 물메기 등에서 플라스틱 조각이나 비닐 등이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우리가 버린 것일 수도 있고, 중국 등 인근에서 흘러온 것일 수도 있다. 지구가 플라스틱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동물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위협한다. 지구촌이 일회용 플라스틱 줄이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고래가 속 편한 세상이어야 인간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눈만 껌벅해도 150만원?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1963년 생)의 끝 자락에 걸치다 보니 또래 모임마다 퇴직과 인생 2막 이야기가 단골 메뉴가 됐다. 당연히 든든한 연금이 보장되는 공무원 친구가 가장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가. 우리 취직할 때(1980년대말)는 공무원은 시켜줘도 안 했다라는 30년 전 시대 상황을 억지로 끄집어내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부러움이 가시질 않는다. 모여 앉은 또래 친구 중 한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퇴직 이야기 끝에 하는 말이 퇴직 후 도시에서 부부가 살려면 눈만 껌벅거리고 살아도 한 달에 150만 원은 있어야 한다라며 혀를 찬다. 눈만 껌벅해도~라는 말에 한바탕 웃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웃을 이야기가 아니다. 기본 생활비, 주택 대출이자와 관리비, 늘어나는 병원비에다 의료보험료까지 구경도 못하고 통장만 통해 빠져나갈 돈이 줄을 서 있다. 승용차 운행과 경조사 챙기기는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 그 친구의 치밀한(?) 분석이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눈만 껌뻑거리며 살아도 150만 원 정도는 훌쩍 사라질 듯하다. 정말 그럴까라는 두려움에 에~이 아무것도 않고 사는데 꼭 150만 원씩이나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라고 반문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문득 각 TV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제작하고 있는 인생 2막의 자연생활 프로그램이 40~50대에서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자연생활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시청자이다. 아마도 도시생활의 피곤함이 베이비부머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리는 가는가 보다. 답답함에 자연에 시선을 돌려보지만 정작 자연의 품에 안길 용기를 내기 또한 쉽지 않다. 베이비부머들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기업가 정신

나의 국가적 봉사와 책임은 사업의 길에 투신하는 것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湖巖) 이병철 전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그의 일생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의 기업가 정신으로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삼성전자의 전신은 지난 196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성사(현 LG전자)와 대한전선(대우그룹에 매각)이 쌍두마차로 가전업계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수원에 삼성전자공업을 창립하며 후발주자로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가 1970년에 내놓은 첫 번째 제품은 흑백TV와 선풍기였다. 이후 국가 경제 백년대계를 위해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며 상호를 지금의 삼성전자로 변경한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전자회사로 처음 등극한 일은 매출 153조 원을 돌파한 2010년이다. 2017년 12월 말에는 매출액 239조 5천억여 원을 기록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 정부예산 400조 7천억여 원의 절반을 훨씬 웃도는 액수다. 최근 삼성전자가 유럽브랜드연구소(EBI) 선정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19위에 올랐다. EBI의 글로벌 100대 브랜드 기업 순위는 전 세계 16개 업종의 3천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브랜드 가치를 산정해 매긴다. 지난해 23위에서 4계단 뛰어오르며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최대 경쟁자인 인텔(21위)도 제쳤다. 올해의 브랜드 가치는 392억 7천500만 유로(약 50조 4천200억 원)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인 인터브랜드의 2018년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 보고서에서 브랜드 가치 598억 9천만 달러로 전 세계 6위에 올랐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대한 국내 현실은 냉혹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특허침해 소송, 독과점 의혹을 제기하며 끊임없이 견제구를 날린다. 특히 중국은 200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며 삼성 따라잡기에 올인하고 있다. 지난 19일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이병철 전 회장의 3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오너가(家)는 주말에 미리 다녀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 자리에서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행히 나는 기업을 인생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에 있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다(1976년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보에서 호암). 나라 경제가 어렵다. 보국하는 기업가들이 어느 때보다 존중받아야 한다. 김창학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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