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는 떠날 사람이다. 11월9일, 교체가 확정 발표됐다. 후임자까지 이미 결정됐다. 조직 장악력이 있을 리 없다. 책상은 있되 권한이 없는 속칭 식물 임기다. 재임 기간도 그리 편치 않았다. 청와대와의 정책적 잡음이 계속됐다. 김동연-장하성 불협화음이란 기사가 끊이지 않았다. 퇴임의 이유도 명예롭지 않다. 누가 봐도 경질이다. 이쯤 되면 정 떨어질 만도 하다. 팽(烹)의 서운함을 가질 만도 하다. ▶그런 그의 하루하루가 바쁘다. 1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실을 찾았다. 때마침 여야 간사들이 모여 있었다. 새해 예산안을 심의할 소위 구성을 논의 중이었다. 김 부총리가 조속한 소위 구성을 부탁했다. 새해 예산안의 법정기한 통과를 위해 이른 시일 내 심의 시작이 필요함을 설명했다. 제가 이번 정부 예산안을 편성했고과거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아주 성의있게 의원들을 보좌하면서 하겠다고 했다. ▶20일에는 아침부터 세종로 정부 서울청사에서 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했다. 떠날 부총리가 주재하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자리다. 하지만, 그는 과학기술부 장관, 문화체육부 장관, 국토부 장관을 다 불렀다. 새로 취임한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참석시켰다. 여기서 경제활력 저하가 우려된다. 규제개혁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최근 행보만을 놓고 보면 새로 시작하는 각료만큼이나 열정적이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도 비슷한 시기에 교체됐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점에서 김 부총리의 예와 닮았다. 그런데 마무리 모습이 천양지차다. 김 전 장관은 교체 발표 이후 모습을 감췄다. 환경부 국정감사장에도 안 나왔다. 환경부 예산심사장에도 없었다.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도 빠졌다.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경제관계장관회의에는 모두 차관을 내보냈다. 몸이 아파서라더니, 퇴임식은 멀쩡히 치르고 떠났다. ▶공직자는 퇴임일까지 법률적 책임을 진다. 고위 공직자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사 발표부터 사실상 손을 놓는다. 골치 아픈 일정은 외면한다. 대통령의 만찬 초대를 퇴짜 놓는 경우도 있다. 세상이 이러다 보니, 김동연 부총리의 마무리가 더 주목된다. 마지막까지 국회의원 찾아가 머리 조아리고, 장관들 불러 지시하고 당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래서일까 그의 표정도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 김종구 주필
1998년 7월7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블랙울프런 골프장.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여자오픈 연장전 마지막 18번 홀에서 박세리가 드라이버샷을 날렸다. 공이 연못쪽으로 굴러가 경사가 심한 잡초 속에 묻혔다. 박세리는 잠시 망설이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착하게 공을 안전한 쪽으로 빼냈다. 박세리는 이 맨발 샷으로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 정상에 올랐고,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앞서 열린 맥도날드 챔피언십에서 LPGA 첫 우승을 했던 박세리는 그해에만 4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은 한국 여자골프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박세리 이후 많은 선수들이 나도 박세리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LPGA 문을 두드렸다. 박세리를 롤모델로 하는 선수들에게 세리키즈라는 별칭이 붙었다. 세리키즈의 활약은 눈 부셨다. 1998년 박세리부터 지난달 14일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인지까지, 한국 선수들은 LPGA 우승 트로피를 169번이나 들어올렸다. 지난 21년간 박세리와 세리키즈가 벌어들인 누적 상금이 약 2억448만 달러(약 2천321억 원)에 달한다. 골프에 세리 키즈가 있다면 피겨스케이팅엔 연아 키즈가 있다.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며 피겨에 입문한 선수들이다. 연아 키즈 임은수(15)가 1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5차 대회 여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피겨가 김연아 이후 9년 만에 그랑프리 대회에서 메달을 딴 것이다. 2014년 피겨 여왕 김연아 은퇴 이후 한동안 조용했던 피겨계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임은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예닐곱 살 때 연아 언니의 경기를 TV에서 보고 반했다. 연아 언니의 반짝이는 의상이 눈에 들어왔고 피겨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은수의 점프는 시원시원하다. 김연아처럼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도 잘 한다. 어리지만 다양한 표정 연기도 일품이다. 임은수의 가능성을 본 김연아가 틈날 때마다 조언과 지도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에 임은수가 있다면 남자는 차준환(17)이 있다. 시니어 무대 데뷔 1년 조금 넘은 차준환은 지난달과 이달 열린 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2차3차 대회에서 연달아 동메달을 따냈다. 차준환의 상승세는 무서울 정도다. 무럭무럭 자라난 연아 키즈의 목표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메달이다. 나이가 어린 만큼 성장 가능성도 무궁한 연아 키즈들이 한국 피겨의 미래를 밝게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파주시 한 정형외과 병원에서 수술받은 환자 2명이 잇따라 숨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파주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4월 A정형외과에서 70대 이모씨가 척추 수술을 받다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술 기록상 집도의로 돼있던 의사는 자신이 수술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대리수술 의혹이 불거진 상황이다.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수술을 대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씨가 숨지기 이틀 전에도 같은 병원에서 어깨 관절 수술을 받던 안모씨가 사망했다. 수술 기록상 병원 의사가 수술했다고 돼있지만 실제는 병원 행정원장이 수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행정원장은 2011년 리베이트 사건으로 의사면허가 취소된 상태다. 최근 의료계에서 대리수술에 따른 환자 사고가 잇따라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5월 울산의 한 병원에선 간호조무사 B씨가 2014년 12월부터 3년6개월가량 제왕절개 봉합 수술, 요실금 수술 등을 710여차례 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의사들 수술 장면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지난 9월 부산의 한 병원에선 원장이 환자 어깨 부위 수술을 의료기기 판매사원과 간호사, 간호조무사에게 시키고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진료기록을 위조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병원 수술실 외부 CCTV에는 영업사원이 수술복을 입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무자격 수술, 대리수술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충격에 말문이 막힌다. 환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어떻게 의료기기 영업사원 등에게 수술을 맡길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의사의 직업윤리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 보여준 대리수술 끝판왕이라 할만하다. 대리수술은 목숨을 담보로 한 범죄다. 당연히 일벌백계해야 한다. 복지부가 대리수술 처벌을 강화했지만 자격정지 1개월이 6개월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면허 영구 박탈로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민형사 책임도 엄하게 물어야 한다.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인 일부 의사들 때문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문제가 공론화됐다. 의료계에선 대부분 반대 입장이지만 대리수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환자의 알권리도 보호할 수 있어 환자단체 등은 찬성하고 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은 국내 처음으로 지난달부터 수술실에 CCTV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안성병원의 CCTV 운영지침은 환자 동의시에만 수술실 CCTV를 촬영녹화하고, 영상은 의료분쟁 등이 발생한 경우에만 공개키로 했다. 환자소비자 단체들은 불법행위를 방지하고 의사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 논평을 냈다. 전국적인 의무화 여부는 지켜봐야하는 상황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덕선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국 사립유치원 관계자 4천여 명이 참석한 대토론회에서 시 한 편을 낭송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중략) 떳떳한 삶을 살겠다는 윤동주의 다짐이 그 어떤 작품보다 잘 드러나는 시가 울려 퍼지자 현장의 많은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렸다. 한유총은 이날 취재진 출입을 막고, 비공개로 행사를 진행해 아쉽게도 학부모, 국민들은 그들의 눈물을 볼 수 없었다. 기자는 목격했다. ▶그들은 눈물을 닦고 토론회 강연을 경청했다. 이덕선 비대위원장은 모세와 같은 리더라 40일 안에 사립유치원 사태를 해결할 것이다. 그가 죽으라면 죽고 똘똘 뭉치자., 콘돔이 왜 걸리고, 루이비통이 왜 걸리냐, 세무사한테 맡겨라., 한 두 명이 무단횡단을 하면 개인의 잘못이지만 70~80%가 무단횡단하면 횡단보도가 잘못된 것이다., 사립유치원 경영자의 동의없이 법인화를 강요할 수 없다. 등의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 이어졌다. 장내는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기자는 이상했다. ▶국내 최대 사립유치원 단체를 이끌고 있는 이덕선 위원장. 그가 설립한 유치원은 교육청 감사결과 2017년에만 모두 13건이나 부적정 판정을 받았다. 이 위원장은 딸이 소유하고 있는 숲 체험장 부지에 대해 3년간 임대차 계약을 맺어 지난해 6월까지 총 1억3천850만원의 임대료를 주고 있었다. 또 체험장에 화장실과 비닐하우스 같은 시설물을 짓는데 유치원 돈 7천500만 원을 갖다 쓰기도 했다. 능력 있는 아버지다. 아버지 이덕선에게 묻고 싶다. 유치원생 1인당 급식비 2천600원을 허투루 쓴 적이 없는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지 말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자 대표적인 민족 시인인 윤동주의 짧은 생애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부끄러움이었다고 기자는 꼭 말해주고 싶다. 강현숙 사회부 차장
영미~ 영미! 영미!.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의 최고 인기 스타는 대회기간 내내 명승부를 연출하며 사상 첫 은메달을 획득한 여자 컬링 대표팀이었다. 팀의 감독에서부터 선수 5명이 모두 김(金)씨 성(姓)을 가진 여자 국가대표팀 경북도청은 그들의 인맥으로 얽힌 컬링 입문 과정에서부터 지역 특산물인 의성 마늘까지 외신에 소개되며 팀 킴, 마늘 소녀로 국내ㆍ외에 소개됐다. 여기에 스킵(주장) 김은정이 불러대는 영미! 영미! 스위핑 주문은 일약 최고의 유행어가 돼 영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팀 킴은 올림픽 이후 여러편의 CF 출연 등으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 여파로 컬링은 국민적 사랑을 받는 인기종목이 됐다. ▶이후 약 8개월이 지난 11월 8일. 팀 킴 선수들이 대한체육회 등에 한국 컬링의 대부로 불렸던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그의 딸인 소속팀 감독, 남자팀 감독인 사위 등 일가의 전횡에 대한 호소문이 접수됐다. 호소문에는 전 부회장의 폭언과 선수들의 사적인 행사 동원, 감독의 올림픽 선수 출전 시도, 올림픽 후 대회 출전 제지, 대회 상금의 착복 의혹 등 포함돼 충격을 던져주었다. ▶국내 여자 컬링은 두 차례의 올림픽 출전에서 기대이상의 선전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발전 기회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를 저버렸다.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대표팀이었던 경기도청이 첫 올림픽 출전서 비록 4강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연이은 선전으로 국민들에게 컬링을 알렸고, 한 달 뒤 열린 세계선수권서 4강 신화를 일구며 평창 희망을 밝혔다. 그러나 당시 인기 걸그룹의 이름을 패러디해 컬스데이로 불렸던 경기도청 팀은 세계선수권 직후 코치의 폭언과 성추행, 포상금 기부 강요를 폭로하며 집단 사표를 제출, 모처럼 일은 컬링 붐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4년 뒤 컬링계의 잘못된 관행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팀 킴 선수들의 눈물 어린 호소에 여론이 들끓자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특정감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컬링계에서는 오래전부터 경북도청 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내 스포츠계가 다시 한번 관행적인 부패 고리를 끊어내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황선학 체육부장
회사 대표에게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고, 편의점 음식을 먹는 숙식 생활 및 학업 포기를 강요받았다. 개인적인 물품을 소유할 수 없게 했는데, 미니 선풍기를 샀다는 이유로 맞았다. 다른 직원은 셔츠 색상을 잘못 입고 출근했다는 이유로 골프채로 맞았다. 한 팀원이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로 다른 동료에게 이 팀원의 뺨을 주먹으로 치라고 시키고, 약하게 때리면 다시 시키기도 했다-IT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디자이너 김연우- ▶마트 쇼핑몰에서 근무하던 중 직원들에게 온갖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수십 명이 보는 앞에서 발생해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었다. 마트로부터 사과를 받았고, 가해자 두 사람을 직위해제해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두 사람을 다시는 복귀시키지 않는다는 약속도 받았다. 하지만 마트는 올해 2월 가해자 두 명을 모두 복귀시키고 심지어 내 근처에 배치해서 충격을 받았다-L마트 쇼핑몰에서 근무했던 양도수- ▶상급자가 업무가 끝난 뒤 자아비판이나 반성문 형식의 업무 보고를 제출하도록 했다. 채식주의자임에도 계속 육식을 강요했다. 결국, 근로자는 올해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언니는 동생이 2년 8개월간 근무하면서 46주 동안 주 12시간 이상 연장 근로를 했다며 과로 자살은 회사가 개인에게 가한 극한의 폭력이며, 죽음에 이르게 만든 회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교육콘텐츠 업체 S사 근로자-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IT 노조와 함께 IT 업계 노동실태 조사를 했다.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지키는 근로자는 응답자의 12.4%에 불과했다.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노동자가 25%를 넘었다. 23.26%는 상사로부터 언어폭력을, 20.28%는 위협 또는 굴욕적 행동을 당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가 503명이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지난 1년 내 자살을 한 번 이상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IT 업계 종사자들의 고통은 미국에서도 사회문제다. 미국의 기술 미디어 웹사이트 씨넷이 IT 업계 종사자가 회사를 떠나고 싶어 하는 10가지 이유를 보도한 적이 있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과중한 근무 시간, 반복적인 임금체불, 부당한 명령계통 등이 있다. 우리 IT 업계 근로자들에겐 여기에 상관 또는 대표자의 폭행까지 더해져 있는 셈이다. 4차산업 혁명의 선두업종이라는 IT 안에서 군림하고 있는 양진호類다. 김종구 주필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2001년 개봉돼 인기를 모은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다. 담임선생(김광규)이 학생을 혼내며 묻자, 그 학생(류오성)이 “건달입니더”라고 답한다. 우리는 개인 신상에 대해 불쑥, 묻곤 한다. ‘아버지는 뭐 하시냐’ ‘나이는 몇이냐’ ‘무슨 일하냐’ ‘결혼은 했냐’라고. 하지만 무심코 내뱉는 이런 말들이 때론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없이 하는 습관적인 행동과, 관습에 따라 내려온 조직내 제도가 불합리한 차별이 되기도 한다. 정부가 공공기관ㆍ공기업의 채용에 ‘블라인드(Blind)’ 채용을 의무화 한 것도 ‘평등한 기회ㆍ공정한 과정’을 통해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입사시 지원자의 나이와 외모, 출신지역, 최종학력, 가족관계 등을 보지않고 개인의 직무 능력과 역량으로만 채용하는 방식이다. 1990년대부터 일부 기업에서 실시했는데 정부가 2015년 모든 공공기관ㆍ공기업에 전면 도입하면서 확산됐다. 예전엔 이력서나 입사지원서에 사진과 함께 신체조건(키ㆍ체중), 출신지역, 가족관계, 학력 등을 적도록 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심지어 아버지의 학력과 직업, 직위, 재산까지 기재토록 했다. 이런 내용이 편견과 차별의 요소가 된건 사실이다. 이에 부모 지위에 따라서 청년들의 입사지원이 차별받아선 안된다며, 2014년 박병석 의원이 ‘부모스펙 기재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제 블라인드 채용은 민간기업에서도 일반화 됐다. 입사지원자의 배경과 스펙보다, 직무 역량과 잠재력에 집중해 인재를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부 기업에선 아직도 개인 인적 정보는 물론 부모의 직장과 직위를 묻는 입사지원서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대표 제과업체인 오리온이 신입사원을 모집하면서 입사지원서에 부모의 최종 직장과 직위를 묻는 항목을 필수 기재사항으로 했다가 비난을 샀다.‘금수저’로 불리는 배경 좋은 지원자만 골라서 채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거세자 오리온측은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수정했지만 항목을 없애진 않았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이력서에 부모님 직업 물어보는 나쁜 기업 오리온 처벌해주세요’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해당 글엔 ‘우리 부모님은 농사지으시는데 그럼 최종직장에 밭이라고 적어야 하나’ ‘국가인권위원회나 지상파 방송에서 공론화해야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오리온측의 말대로 ‘부모의 직업과 직위 기재 항목이 그냥 관행적인 것’이라면 당장 삭제해야 한다. 이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구태로, 누가 봐도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기업 이미지만 훼손시킬 뿐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 혹은 ‘가래떡데이’ 정도로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날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다. 인류에게 첫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으로 기록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됐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한 선전포고로 시작돼 1918년 11월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났다. 도화선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의 한 청년에게 암살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전 유럽으로 확산돼 영국·프랑스·러시아·세르비아 등 연합국 세력과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동맹국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1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역사적 참상이 빚어졌다. 미국과 일본까지 참전한 전쟁은 1918년 11월 11일 종전까지 4년 반만에 끝났다. 1차 대전 교전중지 시점은 영국이 제안했다. 사실 독일은 11월 11일 오전 5시 페르디낭 포슈 연합군 총사령관 앞에서 정전 문서에 서명했다. 장소는 파리에서 60㎞ 떨어진 콩피에뉴 숲의 포슈 사령관 전용 기차 안에서다. 교전중지 시간은 ‘즉각’이 아니고 6시간 뒤인 오전 11시였다. 영국인들이 ‘11번째 달, 11번째 날, 11번째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이 시점은 11이 세 차례나 겹쳐 쉽게 잊히지 않는다. 전쟁의 참극도 함께 기억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가 반영됐다. 이로써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이라는 1차 세계대전의 포성은 멈췄다.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아 주요 참전국이자 승전국인 프랑스가 11일 11시 파리 개선문에서 대대적인 기념식을 열었다. 기념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전 세계 70여 명의 정상급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0일 오르세미술관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우리 중 일부는 당시 적국이었으나 오늘 밤엔 다시 뭉쳤다”며 “이는 1차 대전에서 사망한 이들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경의”라고 강조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정전협정이 이뤄졌던 콩피에뉴 숲에서 진행된 기념식에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참석해 손 잡고 우호를 과시했다. 1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이것이 전쟁의 끝은 아니었다. 새로운 폭력의 논리가 유럽을 지배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새로운 비극을 불렀고 21세기에도 폭력과 분쟁은 계속 이어졌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식은 단순한 기념식이 아닌, 참혹한 전쟁을 반성하며 전쟁없는 지구촌을 다짐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한 달쯤 전이었다. 어머니, 아내와 주말을 맞아 수원 인계동에서 점심을 한 후 산책을 하고 있는데 거리에 ‘수원시민과 함께 반드시 특례시를 실현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그걸 본 어머니와 아내는 나에게 “특례시가 뭐야”라고 물었고, 난 “광역시는 아니고, 경기도 소속 시ㆍ군으로 있으면서 다른 지역보다 조금 더 권한을 갖는… 뭐 그런 게 있어”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 어머니와 아내는 심드렁한 말투로 질문을 쏟아냈다. “광역시면 광역시지 특례시는 또 뭐래”ㆍ“괜히 공무원만 늘어나는 거 아니야?”ㆍ“특례시가 된다고 우리 생활이 달라질 게 뭐가 있나”ㆍ“사람이 적게 사는 지역도 배려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등등. 그 질문 속에 “아! 일반 시민들에게 ‘특례시’는 아직 이 정도 밖에 다가가지 못했구나”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2주 후인 지난달 30일, 정부가 ‘제6회 지방자치의 날’을 맞아 인구 100만 이상 도시에 ‘특례시’ 명칭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과 재정분권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시민들에게는 아직 멀게만 느껴졌던 특례시가, 그렇게 어느 날 실현됐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특례시가 전혀 준비 없이 맞이한, ‘도적같이 찾아온 해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례시가 첫발을 내디딘 만큼 해당 지역도 특례시가 되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례시 탄생에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는 수원시는 그동안 특례시가 되기 위한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수원시의회 역시 최근 ‘수원특례시 추진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채택하고 특례시에 걸맞은 지방의회의 역할 등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수원시 뿐만 아니라 앞으로 특례시 대상 지역들은 다양한 준비 작업을 펼칠 것이다. 그러한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특례시민’이다. 시민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특례시를 알리고, 지지를 얻어 ‘시민들에게 환영받는 특례시’ㆍ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을 수 있는 특례시’가 되길 기대한다. 이호준 사회부 차장
최근 후배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사촌동생이 정말 억울한 죽음을 당해다면서 가해자가 제대로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사촌 여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예비신랑으로부터 최근 살해를 당했는데 살인 피의자가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계획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에 따르면 예비신랑은 서울에서 일하는 예비신부를 춘천 국밥집으로 불러 들였고, 이곳에서 목 졸라 살해했다. 예비신부가 숨지자 그는 30cm 흉기로 시신을 훼손하는 엽기성을 보였다. 피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혼수문제로 다투다 우발적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계획 범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예비신랑은 연인이 목 졸려 쓰러지자 흉기로 급소를 수 차례 찌르면서 사망 사실을 ‘재확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는 자신의 살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면서 형량을 최대한 줄이고자하는 의도로 보인다. 최근 살인·강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후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사례가 늘면서 심신미약이 형량 감경에 악용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씨가 공주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로 보내졌다. 김씨 측이 수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진단서를 경찰에 제출했고, 법원이 김 씨에 대한 감정유치 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이다. 조두순 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등 실제로 정신장애 범죄자의 ‘우발적 범죄’는 과거에 비해 증가했다. 국회가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신장애 범죄자의 범행동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우발적 동기’의 경우 2013년 1천920명에서 2016년 2천765명으로 845명 늘었다. 이같은 사례가 늘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심신미약 범죄에 대한 면죄부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범죄자의 심신미약을 판단하는 기준을 더욱 엄격히 하고 양형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사법당국은 심신미약 여부를 좀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또 심신미약 판단 사유를 좀 더 구체화·단계화해야 한다. 특히 심신미약 범죄 살인의 경중에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형량을 줄여서 안된다. 심신미약 범죄로 처참하게 살해된 나의 딸, 아들, 친구는 영원히 그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최원재 문화부장
9월27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말했다. “우리나라의 건실한 경제 기반이나 과거 사례를 고려할 때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 같은 시장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우리 주식시장 전망이었다. 미국 금리 인상은 필연적으로 우리 주식 시장에 변동을 가져 온다. 가장 큰 요소는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이다. 투자자들이 이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 때 김 부총리가 내놓은 전망이다.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주식시장이 곧바로 무너졌다. 10월 대폭락이 닥쳤다. 10월 한 달 코스피가 -13.37%, 코스닥은 -21.11%를 기록했다. 한 달 새 ‘반 토막’이 났다고 보면 된다. ‘8월의 저주’라고 불렸던 2011년 8월의 -11.86%보다 악화한 하락률이다. 이탈리아(-7.35%), 터키(-8.11%)보다도 나빴다. 하필 김 부총리 발언 직후부터 이렇게 됐다. 주식 시장을 예언할 순 없다. 그렇더라도 “제한적”이라는 예언과 ‘대폭락’이라는 결과 사이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8월13일 터키 위기가 닥쳤을 때도 김 부총리는 같은 말을 썼다. “신흥국 전이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다.” 9월22일에는 뉴욕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관계자에게 이 단어를 썼다. “한국 경제의 탄탄한 펀더멘털을 바탕으로 금융, 실물 시장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으므로 그 영향-북 리스크-은 제한적일 것이다.” 김 부총리가 ‘제한적’이라는 단어를 쓸 때 던지려는 메시지는 이렇게 짐작된다. ‘부정적 영향이 크지 않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실제는 안 그러니 그게 걱정이다. ‘제한적’이 다분히 다의적(多義的)이다. 주식 시장이 나빠진다는 것일 수도, 괜찮다는 것일 수도 있다. 북한 리스크가 있다는 것일 수도,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결과를 놓고 보면 면피적(面皮적)이기까지 하다. 붕괴된 주식 시장에는 ‘폭락 안 한다고 한 적 없다’고 할 수 있고, 북한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영향 없다고 한 적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게 김 부총리는 물론 많은 경제 관료들이 버릇처럼 말하는 ‘제한적’이란 말의 경제학적 의미다. ▶눈치 빠른 시장은 이제 믿지 않는다. 경제 관료가 말한 ‘제한적’의 뜻을 나쁜 방향으로의 경고라고 해석한다. ‘주식 시장 영향이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면 ‘주식 시장이 폭락할 것이다’라고 받는다. ‘북한 리스크가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면 ‘북한 리스크가 엄청날 것이다’라고 받는다. 불신이다. 경제관료들의 무책임한 단어 선택이 자초한 불신이다. 경제 관료들은 ‘제한적’이라는 용어를 오늘도 쓰고 있다. 미국 중간 선거 결과가 남북 경협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제한적일 것’이라고 답했다. 영향이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없어져야 할 경제 불신 용어, ‘제한적’이다. 김종구 주필
지난 9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던 윤창호씨가 만취한 운전자의 차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진 사고가 있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윤씨의 친구들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청원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리며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윤창호법’을 만들자는 입법청원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윤창호법’이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가중처벌 기준과 음주 수치 기준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과,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할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최소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 등 여야 의원 103명이 발의했다. 이용주 의원은 블로그에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닌 살인행위”라며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과 의식을 바꾸자는 바람에서 시작된 법”이라고 했다. 그런 이 의원이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여의도에서 술을 마시고 15㎞가량 혼자 운전했는데 혈중알코올농도가 0.089%로 면허정지 수준이다. 윤창호법 발의에 참여하고 음주운전을 한 이 의원의 언행 불일치에 국민 비판이 거세다. 청와대 게시판엔 ‘이용주 의원의 국회의원 자격 박탈을 청원합니다’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이 의원 음주운전과 관련해 정치권은 조용하다. 침묵하고 있다.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현역 의원들이 상당수 있어 큰 소리 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전과 현황’에 따르면 음주운전 전과를 가진 의원은 모두 18명이다.자유한국당은 김기선ㆍ김용태ㆍ김성원ㆍ백승주ㆍ유재중ㆍ유민봉ㆍ이양수ㆍ한선교ㆍ홍철호 의원 등 9명이나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철민(2회)ㆍ박용진ㆍ설훈ㆍ이상민ㆍ최인호 의원 등 5명이다. 바른미래당 유의동 의원, 민중당 김종훈 의원도 음주운전 전과가 있다. 민주당 소병훈ㆍ조정식 의원은 음주 측정을 거부해 벌금 처분을 받았다. 국회가 음주운전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는 각 당 공천 기준에서 잘 드러난다. 민주당은 10년 내 2회, 15년 내 3회 음주운전을 해야 공천에서 배제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은 10년 내 3회이며, 평화당은 15년 내 3회 적발돼야 공천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음주문화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음주운전 처벌 또한 너무 약하다. 그러다보니 이용주 의원 사건처럼 코미디 같은, 어이없고 기막힌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음주운전은 남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 범죄로, 한 번이라도 저질러선 안 된다. 민주평화당과 국회가 이번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ME TOO(나도 겪었다), #WITH YOU(당신과 함께), #WE CAN DO ANYTHING(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지난 4월 6일 서울 용화여고 학생들이 접착식 메모지에 이런 문구를 적어 창문에 붙였다. 이 학교 남자 교사들의 상습적 성희롱과 성추행을 폭로한 것이다. 졸업생들이 적극 나섰고, 재학생들이 가세했다. 학교 측은 처음에 “포스트잇을 당장 떼라”며 강압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나는 당당하다, 자랑스럽다’며 떼지 않았다. 서울교육청이 조사에 나섰고, 교사 18명이 파면·해임·정직·견책 등 징계를 받았다. 용화여고에서 시작된 ‘스쿨미투’ 운동은 60여 개 학교로 퍼져 나갔다.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인 3일에는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전국 중·고교 여학생 모임 등 30여 개 단체가 ‘스쿨미투 집회’를 열었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집회에선 여학생들의 미투 발언이 이어졌다. 전북의 한 공동체 대안학교에 다녔다는 여성은 “가족보다 더 신뢰하던 교사한테 성추행과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다”며 “선생님은 ‘자유로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했고 나는 거기서 계속 생활하려면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 여성은 “몇 달 지나고서야 상담치료로 그게 성폭력인 줄 알았다”며 “그가 교육관련 일을 하는 것을 막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교사들이 “여자는 허리를 잘 돌려야 한다” “10개월 생리 안하게 해줄까?” “여자는 아프로디테처럼 쭉쭉빵빵해야 한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성폭력을 당하는 거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스쿨미투 고발은 여학생의 일상이 얼마나 차별, 혐오, 폭력에 노출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스쿨미투가 고발한 것은 ‘일부 교사의 비상식적 만행’이 아니라 성폭력이 상식이 돼버린 학교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집회에선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 정기적인 페미니즘교육 시행 △학생들이 안심하고 말할 수 있도록 2차 가해를 중단할 것 △학내 성폭력 전국 실태조사 △성별 이분법에 따른 학생 구분·차별 금지 △사립학교법 개정과 학생인권법 제정으로 민주적 학교 조성 등 5개 요구안을 제시했다. 스쿨미투 집회를 통해 교사들의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 언어와 신체접촉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음이 폭로됐다. 하지만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해당 학교는 숨기기에 급급했다. 학생들 또한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기록이 남지 않을까 걱정돼 침묵했고, 참아왔다. 그러나 상처는 곪아 터지는 법, 이제 수술을 해야 할 때다. 이연섭 논설위원
11월3일은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89주년이 되는 날이다. 민족적 차별 교육과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며 학생들이 벌였던 11ㆍ3 학생독립운동은 규모나 역사적인 의미에서 3ㆍ1운동, 6ㆍ10만세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으로 꼽힌다.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30일 전남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이 우리나라 여학생을 희롱한 사건이 발단이 돼 한ㆍ일 학생 간 충돌로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일방적인 한국 학생 탄압은 억눌려 있던 학생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민족 감정을 자극하게 됐다. 반일 감정이 커지면서 메이지 일왕의 생일인 11월3일 광주에서 시작된 거리 시위와 동맹 휴교는 이듬해 3월까지 서울과 개성, 부산, 대구 등지로 확산됐다. 당시 거리 시위에는 전국 300여 학교 5만 4천여 명의 학생이 참가해 1천600명이 넘는 학생이 구속됐고 2천900여 명이 퇴학이나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일제강점기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ㆍ발전시켜 학생들에게 자율역량과 애국심을 함양시키고자 1953년 11월3일을 ‘학생의 날’로 제정했다. 그러나 ‘학생의 날’은 1973년 유신정권 때 폐지됐다가 1984년 부활된 뒤 2006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명칭이 변경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2의 3ㆍ1운동이었던 학생독립운동은 그 중심에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음에도 한ㆍ일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우발적이고 지역적 사건으로 국한되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3대 항일 운동으로 평가받는 학생독립운동 기념식이 그동안 교육부 주관으로 각 지방교육청이 돌아가며 개최해 지역행사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학생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기리고자 정부 주관 행사로 격상돼 기념식을 치른다. 일제에 항거한 학생들의 의기와 희생, 영향을 고려할 때 국가가 기념하는 것은 당연한 조처다. 이제라도 학술연구를 통해 민족운동 차원에서 학생독립운동을 재조명하고 역사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학생독립운동 89주년을 맞아 민족적 차별 교육과 식민지 교육에 맞서 싸운 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보자. 이관식 지역사회부 부장
세계적인 명상 스승인 영국인 승려 아잔 브라흐마가 저자인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의 마음은 술 취한 코끼리만큼 위험하다고 해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선배의 강추로 읽게 된 이 책은 아잔 브라흐마가 소개한 108가지 일화가 담겨 있다. 여기서 기자 마음으로 훅 다가온 짧은 우화를 소개한다. 코끼리 한 마리를 키우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코끼리를 키우기 위해선 넓은 공간의 집과 땅이 있어야 했고, 집과 땅을 사자니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다. 한두 푼 모으는 동안 집과 땅을 마련할 돈을 모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거리만 쌓여갔다. 언제부터 시작된 지 모를 코끼리 한 마리에 대한 욕심으로 삶은 점점 힘들어져만 갔다. 계속되는 심적 고생 끝에 그는 ‘코끼리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받아 들였고, 비로소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삶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원하는 어떤 것을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선택한 길이 평화롭지 않고 힘들게 만든다면 그 길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음으로써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말 많고 탈 많은 국정감사가 마무리됐다. 올해 국감도 ‘맹탕국감’, ‘파행국감’을 여실히 보여주며 여야의 이전투구가 이어졌다. 특히 의원들의 질의 수준도 여전히 문제점을 드러냈다. 피감기관 문제점을 파고드는 전문성 질의보다는 호통과 윽박지르기, 질의 도중 끼어들기, 고성 등 구태가 여전했다. 일부 의원은 존재감을 부각시키고자 벵갈 고양이, 맷돌 등 이벤트성 연출로 빈축을 샀다. 행안위 경기도 국감에서 한 의원은 이재명 지사 가족 관련 녹취록을 틀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여배우 문제를 얘기하며 “누가 ‘이 지사와 악연인데 목욕탕을 같이 한번 갔다 오라’고 하더라”고 말해 폭소와 실소를 자아냈다. 국감NGO모니터단은 이번 국감에 대해 ‘야당의 무능과 여당의 지나친 감싸기’를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나 하나 유명해지고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이전투구다. 의원들의 각기 다른 욕망이 국민의 평화를 위협한다. 우리의 행복을 비틀거리게 하는 정치인들이여, 제발 마음 속 ‘술 취한 코끼리’는 재우고 코끼리의 주인이 되길 바란다. 이용성 정치부장
작은 마을로 통하는 도로가 있다. 길이 50m, 폭 5m의 작은 도로다. 마을 주민 8명이 소유주인 사유지다. 10여 년 전부터 공동으로 조성해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 이 도로를 진입로로 인정하는 건축허가가 났다. 건축주는 도로 소유주가 아니다. 부지도 마을과 떨어져 있다. 도로 소유주들이 항의했다. 답변이 이랬다. ‘건축주가 도로에 지분이 없고, 마을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건축허가는 적법하다.’ 건축허가과가 내린 ‘해석’이다. ▶건축 막바지, 상수도 연결 공사를 할 때가 됐다. 기존 상수도관은 도로에 매설돼 있다. 건축주가 도로를 굴착하려고 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굴착을 막아섰다. 굴착허가를 내준 곳은 상수도사업소다. 주민들의 이의제기에 답변이 돌아왔다. “건축주가 도로에 지분이 없고, 마을에 거주하지도 않으므로 주민 허락 없이 굴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내줬던 굴착 허가를 ‘실수’라며 취소했다. 상수도사업소의 ‘해석’이다. ▶그 도로의 맨홀 뚜껑이 깨졌다. 추운 겨울과 여름 장마철을 지나면서 깨진듯했다. 담뱃값만 한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밑이 훤히 보이는 구멍에 마을 주민들이 불안했다. 동물이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맨홀 뚜껑만 교체하면 되는 간단한 보수였다. 주민들이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건설도로과 답변은 이랬다. “그 도로는 사유도로이므로 행정기관이 시설을 보수해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건설도로과의 ‘해석’이다. ▶건축허가과는 사유 도로를 진입로로 하는 건축허가를 내줬다. 도로 소유주들의 사유재산권이 침해당했다. 상수도사업소는 도로 소유주들의 허락이 없었다며 상수도 굴착공사를 불허했다. 건축주가 수억원 들여 지은 건물이 무허가로 전락했다. 건설도로과는 사유도로 시설은 보수할 수 없다며 민원 해결을 거부했다. 구청이 살펴주지 않는 안전 사각 도로다. 용인시 수지구에서 진행 중인 어느 ‘도로 이야기’다. ▶건축주는 불법 사전 입주로 범법자가 됐다. 마을 주민들은 도로 점용권을 빼앗겼다. 건축주와 주민들은 법원에서 싸우는 중이다. 관할 구청은 ‘판결에 따르겠다’며 반년째 손을 놓고 있다. 법이 엉성한 것인가. 아니면 공무원이 무책임한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법도 엉성하고 공무원도 무책임한 것인가. 규제 개혁이 늦다며 대통령은 노발대발하는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정신없는’ 규제가 국민을 혼란케 하고 있다. 김종구 주필
지난 9월 세계 최대의 상용차(商用車) 전시회인 ‘2018 하노버국제상용차박람회’가 독일 하노버시에서 열렸다. 세계 유명 상용차 브랜드가 대거 참가한 박람회는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가 대세였다. 현대차는 차세대 수소전기 트럭을 선보여 호평을 얻었다.전 세계가 새로운 친환경 자동차로 전기차보다 한 단계 진일보한 ‘수소전기차’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데 현대차 역시 ‘투싼’ ‘넥쏘’ 등 세계 최초의 수소전기차 SUV에 이어 수소전기 버스와 트럭까지 전 라인업에 걸쳐 수소전기차 혁명을 꾀하고 있다. 하노버박람회에서 현대차는 스위스에 수소전기 트럭 1천대를 판매 계약하는 성과를 올렸다. 현대차는 프랑스에도 승용차ㆍ버스ㆍ화물차 등 수소전기차 5천대를 2025년까지 수출하기로 했다. 수소차 분야에서 한국차가 세계 최첨단 기술력을 갖췄음을 보여준 쾌거다. 수소전기차는, 1769년 프랑스의 니콜라 퀴노가 증기자동차를 발명한 이래 세계 자동차산업계가 이끌어 온 혁신 중 한국이 최초로 주도권을 갖고 개발한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다. 신속한 후발자(Fast Follower)로 경쟁력을 유지해 왔던 한국 자동차산업이 처음으로 선도자(First Mover)가 된 것으로 상당히 의미있고 기분 좋은 일이다. 10월 중순 프랑스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파리 시내에서 현대 수소전기차 ‘넥쏘’를 시승했다. 에펠탑이 보이는 충전소에서 ‘투싼’ 수소전기 택시의 충전 과정도 참관했다. 현대의 수소전기 택시는 현재 62대가 파리 시내를 달리고 있다. 프랑스가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세계화 전략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안심은 금물이다. 세계적으로 수소차 출시가 본격화됐고, 최대 경쟁자인 일본은 수소전기차 대중화에서 한국을 앞서고 있다. 한국에 8개소에 불과한 수소전기차 충전소가 일본에는 90개소 이상 설치돼 있다. 정부는 2~3년내 100개로 늘린다는데 그때 가면 일본은 500개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속도전이 필요하다. 현대차가 2013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양산형 수소차를 선보였으나 일본이 범정부적 수소차 지원에 나서면서 지금은 도요타ㆍ혼다 등과 초기 시장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러다간 기술만 개발해놓고 양산체제를 갖추지 못해 중국 등 후발국에 따라잡힐 우려도 있다. 충전소 등 수소차 인프라 구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의 과감한 규제 혁신과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수소차는 미래산업 아이템이고 대규모 수출과 양질의 일자리로 연결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은 2017년 10월 미국에서 시작됐다.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을 폭로하고 비난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MeTooㆍ나도 당했다)를 다는 행동에서 출발했다. 하비 와인스타인이 수십 년간 여배우와 여직원들에게 성폭력을 가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투는 급속도로 퍼졌다. 할리우드발 미투는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는 올해 초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미투 운동을 촉발시켰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고발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 고발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시인 고은, 극작가 오태석, 배우 조민기ㆍ조재현, 정치인 안희정 등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이 수십여 명으로 늘어났다. 최근의 미투는 실제 행동(Movement)으로 옮겨지는 페미니즘 운동 양상이다. 혜화역에 모여 사회 병폐인 몰카나 여성혐오 등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일각에선 거짓 미투와 관련된 논란도 일고있다. 미국에선 힘투(#HimToo)란 이름으로 성폭력 무고로 피해를 본 남성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힘투는 여성들이 성폭행ㆍ성추행 사례를 고발하는 미투에 빗대, 성폭행 무고로 피해를 입은 남성의 사례를 고발하는 온라인 운동이다. 미국의 힘투 바람은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원 대법관 지명 과정에서 시작됐다. 5건의 성폭행 미수 혐의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캐버노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는데, 캐버노가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는데도 유죄로 몰아간다며 남성들이 힘투 해시태그를 SNS에 연달아 올렸다. 캐버노는 최근 연방대법관으로 취임했고, 혐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한쪽에선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9월 일명 곰탕집 성추행 사건으로 힘투에 불이 붙었다. 지난해 한 남성이 대전의 곰탕집에서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에 대해 그의 아내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글을 올렸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인터넷카페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가 만들어졌고, 미투 폭로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는 남성들의 사례가 잇따랐다. 거짓 미투는 가려져야 한다. 하지만 힘투 운동이 성범죄를 당했다는 주장에 대해 의심부터 하게 만들어 미투 운동의 순기능을 해쳐선 안 된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미투 Vs 힘투라는 성대결 구도로 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가히 ‘역대급 흔들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경기도와 이재명 도지사에 관한 얘기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1천300만 경기도민은 이재명 후보를 민선 7기 경기도를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 압도적인 지지로 도백(道伯)으로 선출했다. 여배우 스캔들 등 ‘인간 이재명’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전국에 생방송됐는데도, 도민들은 일하는 도지사로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 민주당에 대한 높은 지지율도 한몫 했겠지만, 증명되지 않은 것보다는 증명된 업무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이른 태풍의 북상 속에 선서로 취임식을 대신하며 경기도 재난안전을 총괄 지휘한 것을 시작으로, 110여 일을 쉼없이 달려왔다. 그 기간동안 도정 파악을 위해 ‘김밥 스터디’도 마다하지 않았고, 새롭고 공정한 경기도를 만들기 위해 도민의 편, 낮은 곳에 있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각종 정책들을 내놓았다. 물론, 일부 정책 추진과정에서 관련 단체들과의 마찰이 있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일하는 도지사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줬다. 그런데 요즘 일하는 도지사 이재명이 사라졌다. 대신 이슈메이커 이재명만이 부각되고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유독 이재명 도지사에게만은 적용되지 않는 모양새다.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찾아간 병원 검증도, 매 선거마다 이슈가 됐어도 문제시 되지 않았던 스토리들이 지독하게 회자되고 최근 들어서는 무섭게 급부상되고 있다. 그리고 압수수색에 이어 개인 이메일 해킹까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법에 의해 처벌받으면 된다.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이재명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민의 선택을 받은 경기號의 선장이다.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선장을 흔들면 배에 탄 사람들은 극도의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고마해라. 마이 먹었따 아이가”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가 있다. 이제 ‘마이 먹은’ 도지사 이재명을 경기도의 발전과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진정한 ‘머슴’으로 만들어보자. 그것이 도지사 이재명을 도민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규태 정치부 차장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성역처럼 여겨졌던 사립유치원에 대한 봉인이 해제된 듯하다. “사립유치원 감사하면서 이렇게 많은 이렇게 많은 명품 브랜드가 있는지, 이렇게 많은 유명 맛집이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라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의 말은 이 모든 것을 압축하고 있다. 최근 드러난 사립유치원 비리 행태는 천태만상이다. 골프 치고 명품ㆍ보석 사고, 가족 해외여행 가서 쇼핑하고, 집세를 냈다. 심지어 성인용품까지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교육청의 전담팀과 시민감사관이 지난 3년간 92곳의 사립유치원을 특정감사한 결과물이다. 유치원 폐쇄 명령이라는 가장 강력한 조치까지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현실적인 한계 속에 주어진 인력을 가지고 사립유치원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밝혀낸 노력까지 깎아내려서는 안된다. 물론 이 같은 속도라면 경기도 내 사립유치원을 감사하는 데 30년이 걸린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세종시의 경우 사립유치원이 단 3곳인 반면 1천100개가 넘는 경기도의 현실도 도외시할 수 없다. 경기도에만 50%가 넘는 사립유치원이 존재한다. 현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씁쓸한 상황이다.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 국민의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을 해소시켜야 하는 시점이다. 이제껏 사립유치원에 대한 관리ㆍ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문제점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이 같은 문제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고 해결되도록 제도적 보완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 오늘 정부가 발표하는 종합대책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정부의 종합대책에 못지않게, 이를 실제로 이뤄낼 수 있는 시스템과 힘,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1천100개가 넘는 도내 사립유치원의 감사를 겨우 6명의 공무원이 전담해야 하는 현실이 보완돼야 한다. 경기도교육청도 이를 강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교육청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교육부 등 정부, 경기도 등 지자체와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한 경기도만의 시스템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명관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