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최저임금 갈등 슬기롭게 풀어야

올해 초부터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는 올해 최저임금을 7천530원으로 작년보다 16.4% 인상했다. 지난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이래 역대 최고 인상률이다. 정부는 개혁의 첫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설명과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못해 싸늘했다. 영세업체와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된 부작용에 대한 경제연구단체의 분석 자료와 언론보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면서 가뜩이나 축 처진 국민들의 어깨를 더욱 짓눌렀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된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내년도 인상안을 놓고 파열음이 일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난 5월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법위에 없었던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새롭게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최저임금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다. 노조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없어진다는 게 이유다. 결국, 최저임금 심의를 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조가 속한 근로자위원들은 지난 19일부터 세 차례 열린 최저임금위 회의에 모두 불참하면서 파행에 이르렀다. 양대 노총은 개정 최저임금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최저임금법 폐기를 촉구했다. 27일에서야 한국노동이 최저임금 제도 개선 방안에 합의하고 최저임금위원회에 복귀하기로 했지만, 반쪽 심의가 불가피한 만큼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고시 기한이 8월5일로, 늦어도 7월 중순까지 심의를 마치려면 속도를 내야만 한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5일 대전 현장노동청을 방문했다가 최저임금법 개정안 폐기를 주장한 노동단체의 항의로 쫓기듯 현장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27일 예정이었던 수원역 현장노동청은 이런 노조와의 마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서였는지 하루 전날 저녁 부랴부랴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으로 온 나라가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정부와 노조는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현명한 대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최저임금제란 국가가 근로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해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는 제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모든 국민이 잘 살도록 하는 게 최저임금의 도입 취지 아닌가? 권혁준 경제부 차장

[지지대] 도 넘은 장현수 악플

한국 축구대표팀과 멕시코의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이 치러진 지난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장현수 선수를 비난하는 글이 쇄도했다. 한국대표팀의 리베로 역할을 하는 장현수가 태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공이 손에 닿았고 주심은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결국 한국대표팀은 멕시코에 선취점을 내줬다. 이후 장현수는 상대 공격수의 결정적 기회 때 태클을 시도했고 최종 수비수가 무너진 한국대표팀은 추가 실점을 기록했다. 손흥민이 만회골을 기록했지만 1대2로 멕시코에 무릎을 꿇었다.한국대표팀이 스웨덴전에 이어 멕시코전에서도 패배하면서 2패로 조별리그 탈락의 위기에 내몰리자 비난의 화살이 장현수에게 돌아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장현수 슬라이딩해서 한국까지 오게 해주세요’, ‘장현수 선수의 국가대표 국외로 추방하라’, ‘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태형을 건의한다’, ‘장현수 선수의 국가 대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또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장현수 대표팀 선발 금지 특별법 발의’, ‘장현수 입국 금지’ 청원글을 넘어서 ‘장현수와 그 가족을 추방해달라’ 등 장현수에 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비난까지 올라와 있다.장현수를 비롯한 대표팀을 향한 비난이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국가대표선수나 대표팀은 본인 또는 팀이 최고의 기량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책임이 있다. 해당 선수가 그만한 기량을 선보이지 못하거나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당연히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욕구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어처구니없는 비난의 글을 통해 해당 선수를 고통받게 하여서는 안 된다.이미 장현수는 페널티킥으로 골을 허용했을 때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아프고 넘어져 있는 사람을 발로 차는 것은 정말 비겁한 것 아닌가. 특히 해당 선수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상처 주는 무분별한 악플은 삼가자. 국민의 관심과 경제적 투자 대비 성적이 저조한 분야 증 하나가 축구인 것은 분명하다. 저조한 국가대표팀 성적의 책임을 장현수에게 돌리면 안 된다. 지금은 그를 감싸고 보듬어야 할 때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이철성 빵집?

이철성 빵집? 이철성 식당? 이철성 경찰청장이 퇴임한다. 마지막으로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퇴임 후 계획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특별히 계획이 없다… 퇴직한 선배들이 인생 좀 생각해보라고 하는데, 내가 살아온 게 특별히 계획 세우고 뭐가 되겠다고 산 적은 없다… 이제 좀 쉬고 싶다.” 그러면서 더한 말이 있는데, 이게 재미있다. 제빵과 요리를 배울 예정이라고 했다. “요리는 웬만큼 하는데 더 배워보고 싶다.” ▶그가 말하는 ‘요리’는 왠지 달리 들린다. 그는 1974년 수원 유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다음해인 1975년 자퇴했다. 그때 모친이 수원 지동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했다. 5남매를 키우기에 벅찼다. 지동은 당시 수원의 대표적 달동네였다. 열일곱 소년은 돈을 벌어야 했다. 간 곳이 종이 파이프 공장이다. 이철성은 그렇게 ‘지동의 가난한 식당 아들’이었다. 그가 43년 뒤 청장을 퇴임하며 ‘요리’를 얘기했다. 여운이 남는다. ▶“계획을 세우고 뭐가 되겠다고 산 적은 없다”는 말도 주목된다. 그는 노력파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취득했다. 순경으로 시작해 주경야독으로 간부가 됐다. 하지만, 그의 노력을 따라준 ‘운(運)’도 상당했다. TK가 대세였던 박근혜 정부에서 경찰청장이 됐다. 검찰총장, 국세청장, 전임 경찰청장까지 TK였다. 이른바 ‘역 지역 안배’ 케이스였다. 앞선 두 명의 경찰대 출신도 비(非) 경찰대인 그에겐 운이었다. ▶20대 국회에는 모두 8명의 경찰 출신 국회의원이 있다. 공교롭게 경기도와 연을 맺었던 경찰 출신들이 유독 많다. 이만희(새누리ㆍ경북 영천청도), 윤재옥(새누리ㆍ대구 달서구을), 이철규(무소속ㆍ강원 동해삼척)의원이 모두 경기경찰청장 출신이다. 표창원(민주ㆍ용인정)의원은 용인시에 소재한 경찰대 부교수 출신이다. 고향이 경기도인 의원은 없다. 그런데도 경기도 경찰은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산실이 됐다. ▶이철성 청장이 취임은 모교의 자랑이었다. 유신고 동문들이 크게 기뻐하며 추억을 증언했었다. 그때 그런 얘기가 있었다. ‘유신 출신 예비 정치인 한 명 추가’. 누구는 ‘이철성 시장’이라고 했고, 누구는 ‘이철성 의원’이라고 했다. 이제 이 청장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향후 계획이 동문들의 기대(?)와 다르다. ‘제빵과 요리를 배워보렵니다.’ 하기야 “뭐가 되겠다고 계획 세운 적이 없다”고 했으니 2년쯤은 지켜봐야 할 듯하기도 하고…. 어쨌든 이렇게 경기출신 경찰청장 시대가 끝났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미군 유해 송환

미국 시애틀 출신 루스 허버트의 아버지 칼 세이델은 24세의 나이에 부인과 딸, 태어난 지 몇 달 안된 아들을 남겨둔 채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로 떠났다.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서였다. 미군 기록에 따르면 세이델 중위는1950년 12월7일 장진호 전투 도중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그 무렵, 어린 두 자녀를 돌보며 남편 소식을 기다리던 아내 로잔 세이델에게 남편이 전사했다는 전보가 날아왔다. 몇 개월 뒤인 1951년 다시 날아온 전보에는 ‘세이델 중위는 전투 도중 미사일 공격을 받아 전사했고,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추가적인 소식이 전해지면 바로 알려주겠다’더니 그로부터 5년 뒤, 세이델 중위의 유해에 대한 미군 기록은 ‘회수 가능성 없음’으로 정정됐다.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20대 초 꽃다운 나이에 남편과 헤어진 로잔은 92세의 노인이 됐다. 딸 루스 허버트도 60세를 훌쩍 넘겼다. 두 모녀는 올해 초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지난 12일 북미 정상이 북측에 있는 미군 유해 송환에 전격 합의하자, 세이델의 뼈 한 조각이라도 만날 수 있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CNN 방송에 소개됐다. 허버트는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뜻도 알지도 못한 채 ‘한국(Korea)’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말도 배우기 전에 그 단어를 들었다. 한국은 내 삶의 일부와 같다”고 말했다. 북미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6·25 참전 미군 병사들의 유해 송환 절차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군 유해를 넘겨받기 위한 나무 상자 100여 개가 판문점으로 이송됐고, 유해를 미국으로 이송하기 위한 금속관 158개도 오산기지에 옮겨졌다. 북한에서 유해를 나무상자에 넣어 남쪽으로 반입하면 오산기지에서 하나하나씩 관에 넣는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번에 송환되는 미군 유해가 사상 최대 규모라지만 6·25 때 실종된 전체 미군 전사자 수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전 참전 미군 가운데 7천697명이 실종 상태이며, 이중 5천300명 가량의 유해가 북측에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미 양측은 유해 송환 이후 이들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군 유해 송환은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첫 행보다. 미군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도적인 사안으로 그 자체로도 의미가 깊다. 남과 북이 비무장지대에 묻힌 6·25 전사자 공동 유해발굴 문제를 논의한 만큼 이를 발전시켜 DMZ 유해발굴 작업을 남·북·미 군당국이 함께 진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붉은 불개미의 침입

개미는 아주 작고 약한 미물이다. 그러나 개미에 관한 속담을 보면, 미물로 봐선 안될 것 같다. 작은 사람이 큰 일을 할 때 ‘개미가 절구통을 물고 나간다’고 하고, 부지런하고 저축을 잘 할 때 ‘개미 금탑 모으듯 한다’고 한다. 설화로는 ‘개미와 베짱이’가 유명하다. 여름철 땀 흘리며 부지런히 일해 먹을 걸 저축한 개미가 노래만 부르고 일을 하지 않은 베짱이에게 양식을 꾸어주고 훈계한다는 내용이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개미에게 나뭇잎을 떨구어 구해준 비둘기가 뒷날 포수의 총에 맞게 되는데, 개미가 포수의 다리를 물어 비둘기를 구출했다는 ‘개미와 비둘기’도 있다. 속담과 설화 속 개미는, 부지런하고 일 열심히 하고 의리있는 곤충이다. 개미는 전 세계에 5천여 종 분포한다. 개미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편이지만 일부는 피해를 주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붉은 불개미’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적갈색을 띤 붉은 불개미는 세계자연보호연맹이 지정한 세계 100대 악성 침입외래종에 속한다. 꼬리 부분의 날카로운 침에 찔릴 경우 강한 독성물질이 있어 통증과 가려움증을 동반한다. 심할 경우 현기증과 호흡곤란 등의 과민성 쇼크를 일으켜 사망할 수도 있다. 북미에서는 ‘살인개미’로 불린다. 붉은 불개미는 남미에 서식했으나 북미, 호주, 중국, 동남아, 일본, 한국 등으로 퍼졌다. 홍수나 가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생존력과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고 번식력이 강해 박멸이 쉽지 않다. 농작물 피해와 생태계 교란을 일으켜 환경부가 지난해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했다. 이 붉은 불개미가 국내에 처음 모습을 보인건 지난해 9월 부산항 감만부두에서다. 1천여 마리가 발견돼 소동을 일으켰다. 이후 올해 2월 인천항 보세창고, 5월 부산항 허치슨부두, 이달 18일 평택항 컨테이너부두, 2021일 허치슨 부두 등에서 연이어 발견됐다. 특히 20일 허치슨 부두에선 개미집 11개, 공주개미(여왕개미가 되기 전 미수정 암개미) 11마리를 비롯해 일개미 3천여 마리와 알 150여 개가 대거 발견됐다. 붉은 불개미가 생식과 번식을 위한 ‘결혼 비행’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인데 다행이다. 성공했다면 엄청 번식했을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개미가 섞여 들어올 가능성이 큰 코코넛껍질과 나왕각재 등 32개 품목에 대해 수입 컨테이너를 열어 검사하는 등 검역 절차를 강화키로 했다. 또 항만 바닥 틈새를 메우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개미 서식 환경도 없애기로 했다. 의왕 등 내륙 컨테이너기지의 소독도 한다. 붉은 불개미의 추가 유입과 국내 토착화를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 붉은 불개미와의 전쟁이다.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남북경협 만능론’은 금물

한국경제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수출은 줄어들고, 미국의 금리 인상 여파로 금융시장은 자본유출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우리의 주력산업 경쟁력은 중국기업의 거센 추격에 위태롭다. 사면초가에 몰린 한국경제의 돌파구로 남북경제협력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남북경제협력은 1988년 이후 한반도 긴장 상황에서도 꾸준히 확대됐다. 하지만, 상호의존성을 심화시키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고,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2016년 2월엔 개성공단의 불마저 꺼졌다. 3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 상황은 급변했다. 4ㆍ27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남북 평화무드에 걸림돌이 됐던 미국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통해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의 악연을 끊었다는 역사적 의미도 컸지만, 경제적 기대감은 더욱 컸다. 정부는 남북경제협력 방안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여야 각 정당도 국회 차원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기업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하다. 해당 업종의 경우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리는 등 본격적인 남북경협 준비 작업에 나섰다. 남북경협은 단박에 시작할 수 없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야 하고, 글로벌 사회의 지원도 이끌어 내야 한다. 대규모 사업 프로젝트도 바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개성공단 재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기업인들은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정부가 철도 연장부터 러시아 가스관 연결까지 다양한 경협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손에 잡힌 게 아무것도 없다. 지난 10여 년간 남북경협 과정을 보면 타이틀만 바뀌었을 뿐 상호의존성을 심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없었다. 남북경제협력은 언제든 벽에 부딪힐 수 있다.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에 따라, 때론 한반도 정세에 따라 남북경협은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가 구축되어야 진정한 남북경제협력 시대를 열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출발점에 서 있다. 이관식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귀씻이·눈씻이·입씻이

옛날 선비들에게는 ‘귀씻이(洗耳ㆍ세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귀를 씻는다’라는 뜻으로 심한 욕설이나 악담, 음담패설, 불길한 말, 부정하고 부도덕한 말을 들으면 귀가 더럽혀졌다 해서 곧바로 물로 귀를 씻었다. 오염된 말이 마음에 와닿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게 귀씻이의 유래다. 영화 ‘사도’를 보면 귀씻이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조선 21대 왕 영조는 귀에 거슬리거나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면 물로 귀를 씻었다. 특히 사도세자와 극한 대립각을 보일 땐 과할 정도로 ‘귀씻이’를 했다. ▶‘눈씻이(洗目ㆍ세목)’, ‘입씻이(洗口ㆍ세구)’라는 풍습도 있었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부도덕한 행위를 보았거나, 입에 담아서 안 될 말을 했으면 집에 돌아와 오염된 눈과 입을 씻었다. 황해남도 봉천군 봉암리에는 ‘눈씻이바위’가 있다고 전해온다. 서당이 있던 시절, 아이가 험한 말을 하면 훈장이 샘가에 데려가서 세 차례 양치질을 시켜 더러운 입을 씻어내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귀를 씻고, 눈을 씻고, 입을 씻으며 맑고 깨끗하게 살려고 많은 노력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시대엔 너무 많은 비난과 욕같은 험하고 더러운 말들이 난무하고 일상화 됐다. 특히 지난 6.13지방선거에서는 악담과 비방, 폭로 등이 도를 넘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상대후보 헐뜯기로 일관하면서 정책선거, 공약대결은 실종된 채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이 판을 쳤다. 경기도지사 선거가 유난했다. ‘욕설 음성파일’, ‘여배우 스캔들’, ‘땅투기 의혹’ 등이 선거 이슈를 독점하며 선거판은 진흙탕이 됐고, 유권자들에게 스트레스만 안겼다. ▶그렇잖아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정치인들이 희망은커녕 절망과 혐오만 안겨주니 안타깝고 답답하다. 그래도 또 혹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귀 씻고 눈 씻고 입 씻고, 새로운 마음으로 주민과 지역을 잘 보살피기를 기대해 본다. 명나라 시대 관청에 ‘세이대(洗耳臺)’가 있어 관원들은 반드시 여기서 귀를 씻었다고 한다. 세속의 더러움을 깨끗이 없애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백성을 돌보는 일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귀씻이ㆍ눈씻이ㆍ입씻이는 결국 마음을 씻는 일이다. 이는 지도자의 기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당선자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이용성 정치부장

[지지대] 실수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자책골이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나왔다. 콜롬비아 수비수 에스코바르가 주인공이다. 홈팀 미국과의 경기에서 자기 골문에 공을 넣었다. 이 골로 콜롬비아는 1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한 달여 뒤 에스코바르가 숨졌다. 자신의 고향 술집에서 피살됐다. 월드컵 전 펠레는 콜롬비아의 우승을 점쳤다. 혹자는 펠레가 에스코바르를 죽였다고도 했다. ‘펠레의 저주’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1997년 9월. 일본 도쿄에서 한일전이 벌어졌다. 프랑스 월드컵 진출을 위한 중요한 일전이었다. 후반 20분 하프라인 근처에서 고정운이 볼을 잡았다. 마땅히 패스할 곳이 없자 우리 골문 쪽을 향했다. 이때 일본 선수 야마구치가 달려들었고 고정운은 볼을 빼앗겼다. 골키퍼 김병지의 머리를 넘기며 실점으로 연결됐다. ‘원조 역주행’ ‘J 리그 때문에 고의로 뺏겼다’는 비난이 그를 향했다. ‘적토마’라 불리던 고정운은 그때부터 몰락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이 나이지리아와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2대1로 앞서 있던 후반에 김남일이 투입됐다. 문전 근처에서 볼을 잡은 김남일이 이해할 수 없는 실수를 했다. 머뭇거리다가 공을 빼앗기자 상대 선수의 다리를 걷어찼다. 페널티킥. 결국, 2대2로 비겼다. 이후 김남일은 귀국하지 않고 러시아로 갔다. 아나운서였던 부인은 악플에 시달렸고 방송에서 사라졌다. ‘진공청소기’로 불리던 김남일도 그렇게 몰락했다. ▶18일 스웨덴과의 경기에 김민우가 교체 출전했다. 주전 박주호의 부상 때문에 이뤄진 긴급처방이었다. 김민우는 전후방을 오가며 열심히 뛰었다. 사달은 후반 17분에 일어났다. 김민우가 상대 미드필더 빅토르 클라에손에 슬라이드 태클을 가했다. 스웨덴 관중의 엄청난 야유가 이어졌다. 비디오 판독 결과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이 한 골로 한국은 패했다. 어쩌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희망을 빼앗아간 결정적 실수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상황 속에서 목격된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고개 숙인 김민우를 주장 기성용이 끌어안았다. 손흥민도 다가가 얼굴을 감싸주며 위로했다. 경기가 끝난 뒤 김민우가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동료들이 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손흥민은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고 했고, 기성용은 “페널티킥은 충분히 축구 경기서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라고 했다. 나머지 경기에서 더 잘했으면 좋겠다. 김민우 실수가 대표팀 선전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축구는 한 명이 아니라 열한 명이 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허스토리(Herstory)

역사는 영어로 ‘히스토리(History)’다. 근래까지의 역사는 남성의 입장에서 남성의 경험을 기록해 왔다. 때문에 전통적 역사 기록이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고 편파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20세기 후반 ‘허스토리(Herstory)’란 용어가 만들어졌다. 허스토리는 여성에 의해 쓰여진 역사로, 여성 입장에서 여성이 인간 역사에 기여하고 참여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역사는 남자만의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또 하나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영화 ‘허스토리’가 다음주 27일 개봉된다. ‘허스토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의 이야기(herstory)’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남성들의 사관인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써 내려간 역사 이야기다.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지나가는 역사가 아닌, 뜨거운 용기로 역사를 만들어낸 위안부할머니와 그들을 위해 애쓴 사람들의 연대와 공감이 진정성 있게 그려졌다.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 ‘낮은 목소리2’(1997), ‘숨결-낮은 목소리3’(1999),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7), ‘그리고 싶은 것’(2013), ‘마지막 위안부’(2014), ‘소리굽쇠’(2014), ‘눈길’(2015), ‘귀향’(2016),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아이 캔 스피크’(2017).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끝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고 증언한 영화들이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일본 시모노세키(下關ㆍ하관)와 부산(부)을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법정투쟁(일명 ‘관부재판’)을 벌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이들의 승소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10인의 원고단과 13인의 변호인이 6년간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23번의 재판을 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재판이지만, 잘 알려지진 않았다. 작품은 실화의 묵직한 힘과 관록의 여배우들이 뿜어내는 연기력을 무기로 관객에게 뜨거운 울림과 위로를 전할 것이다. 영화는 위안부의 처절한 삶을 재연하진 않았다. 법정 증언대에 앉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증거가 없다”고 발뺌하는 일본 정부 앞에 할머니들은 흉터투성이인 맨몸을 드러내며 “내가 곧 증거이자 증인”이라 말한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싸움을 이어간다. 그런 그녀들의 이야기, 그녀들의 목소리, 그녀들의 몸짓이 바로 ‘역사’다. 잊지 말아야 할,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herstory)’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노인학대 신고기간

매년 수천명의 노인이 자녀나 배우자 등으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학대 신고 건수 1만3천309건 가운데 노인보호전문기관이 학대로 판정한 사례는 4천622건이었다. 2016년 대비 신고는 10.8%, 학대 판정은 8.0% 각각 증가했다. 노인학대는 전체의 89.3%인 4천129건이 가정 내에서 발생했다. 가해자는 5천101명 중에 아들이 37.5%인 1천913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배우자 1천263명(24.8%), 의료인·노인복지시설 종사자 704명(13.8%), 딸 424명(8.3%) 등의 순이었다. 가구 형태로 보면 자녀동거 가구(1천536건, 33.2%)에서 노인학대 피해가 가장 컸다. 학대 유형은 비난·모욕·위협 등 언어 및 비언어적 행위로 고통을 주는 정서적 학대 42.0%(3천64건), 신체적 학대 36.4%(2천651건), 방임 8.9%(649건), 경제적 학대 5.6%(411건), 자기방임 4.0%(291건), 성적 학대 2.1%(150건), 유기 1.0%(71건) 순이었다. 고령화 사회로 급격히 접어들면서 노인학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특히나 아들과 딸, 배우자 등 가족에 의한 가정내 학대가 90%에 육박한다니 놀랍다. 문제는 피해 노인이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학대 행위자가 자녀들인 경우 자식이 불이익을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노인학대 신고의 51.7%인 2천388건은 경찰 등 관련 기관에서 이뤄졌다. 신고되지 않은 노인학대까지 고려하면 피해자는 훨씬 많다. 노인학대는 엄연한 범죄행위임에도 피해노인은 물론 가해자도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여 학대 수위가 갈수록 높아가고 상습적으로 행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노인학대 문제가 심각해 UN이 매년 6월15일을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부터 이 날을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지정했다. 국민들이 주변 노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노인학대가 더이상 가정이나 시설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하려는 취지다. 경찰청이 ‘노인학대 예방의 날’인 15일부터 30일까지 노인학대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 중이다. 경찰은 노인을 상대로 한 폭행, 성폭력, 유기, 방임, 구걸 강요, 금품 갈취, 폭언·협박 등 신체·정신·정서·성적 폭력과 경제적 착취, 가혹 행위 신고 접수에 주력하고 있다. 더 이상 학대 당하고 살지 않으려면 아들이나 딸, 배우자도 신고해야 한다. 노인학대는 가정사가 아니라 심각한 범죄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경기도의 미래먹거리와 1천300만 도민의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광역ㆍ기초의원 그리고 교육감 선거가 마무리됐다. 헌정 사상 초유의 특정 정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는 사실은 이제 중요한 얘기가 아니다. 완승을 한 정당은 그 여세를 몰아 더욱 정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완패를 한 정당은 다시 민심을 얻기 위해 환골탈태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등 저마다의 정치 공학이 가동될 것이다.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우선돼야 한다는 대전제가 반드시 깔려 있어야 한다. ▶13일간의 공식 축제 기간이 끝났다. 정책은 사라지고, 상호 비방전이 난무한 ‘깜깜이 선거’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각 진영을 대표하는 후보들은 네거티브에 묻혔을 뿐, 저마다의 색깔에 맞는 공약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 부분을 평가절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보수 정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큰 헤게모니 속에서 투표를 했다는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곳에 대한 미래 비전’ 역시 염두에 두고 그것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으레 각종 선거가 끝나면 ‘후폭풍이 거셀 것’, ‘살생부가 돌 것’, ‘관계 정리가 쉽지 않을 것’ 등의 얘기가 등장한다. 축제 기간에 내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아서, 그 사람의 성격이 너무 세서 어울리기 어려워 등등 이유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선거가 끝나는 동시에 사라져야 할 진짜 ‘적폐’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이런 ‘칼질’을 하라고 민주주의의 대의를 넘겨주지 않았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가 진짜다. 국민들의 삶을 걱정하고, 내가 살아온 고향 발전을 위해 1분 1초가 아까운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정치와 민심은 그야말로 ‘생물’이다. 언제 어떻게 또다시 변화될 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선택을 받고 더 큰 정치의 실현을 이끌어 낸 분들은 이 점을 반드시 가슴 속에 묻어야 한다. 국민들이 일방향적으로 주는 것만 받는 반쪽짜리 유권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지켜볼 것이다. 김규태 정치부 차장

[지지대] 60%의 의미

경기도민의 미래를 좌우할 6ㆍ1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당초 우려와 달리 60%가 넘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에이브러험 링컨이나, 르네상스의 여명을 밝힌 선구자 단테 알리기에리의 “기권은 중립이 아니다. 암묵적 동조다”라는 명언을 실천하려는 듯이 말이다. 선거 전날까지 주변에서는 “정책ㆍ공약 대결은 보이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나는 전형적인 네거티브 선거라 귀와 입은 물론 마음마저 닫았다”, “누가 나오는지 관심도 없고, 그나마 들여다봐도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고 찍을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자주 들렸다. 심지어 한 지인은 “저번 대선에 박근혜 뽑은 ‘똥 손’이라 도저히 투표할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며 투표하기 싫다는 의사를 에둘러 표현했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표심을 움직일 정책과 공약의 부족, 네거티브와 막말 공방 등으로 유권자들의 회의를 가져왔다. 특히 경기도지사 선거는 ‘욕설 파일’로 시작해 ‘스캔들’로 끝났다고 할 정도의 역대급 진흙탕 선거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마지막까지 누굴 찍어야 할지 갈팡질팡했던 부동층이 많았던 선거이기도 했다. 도교육감 선거 여론조사에서 많게는 50%에 이르는 부동층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은 지난 6·4선거보다 조금 높은 투표율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나온 투표율은 전국 60.2%로 나타났다. 4년 전 6·4 지방선거의 전국 투표율인 56.8%보다 3.4%p 높은 수치다. 경기도로 좁혀보면 57.8%로 4년 전 53.3%보다 4.5%p나 올랐다. 이를 통해 도내에서는 도지사와 도교육감, 기초단체장 31명, 광역의원 142명, 기초의원 447명 등 622명이 뽑혔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이들이 민의를 제대로 파악하고 반영하기를…. 또 지난달 말까지 개헌 논의 과정에서 추진됐던 독립적 지방분권 실현은 물론 한 단계 높은 지방자치 발전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가 완성되길 기대해 본다. 이명관 사회부장

[지지대] 1표=목숨

1913년. 잉글랜드 엡섬의 경주로에 한 여성이 뛰어들었다. 곧바로 경주마로 돌진했다. 여성 참정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1872~1913)이었다. 하필 조지 5세의 애마, 앤머였다. 여성은 말에 짓밟혔다. 경찰이 신문으로 피를 막아 봤다. 하지만 출혈이 계속됐고 여성은 결국 숨졌다. 그의 외투 안쪽에서는 ‘여성사회정치 연합’이라고 쓴 깃발 두 개가 발견됐다. 남성들은 비웃었다. “말은 괜찮냐”고도 했다. 그에게 표는 곧 목숨이었다. ▶1916년. 미국 백악관 밖에 쇠사슬 시위대가 등장했다. 재선에 성공한 윌슨을 반대하는 행동이었다. 윌슨은 여성 참정권 반대론자였다. 시위대를 이끈 건 엘리스 폴(1885~1977)이었다. 백악관 시위 도중 경찰에 체포당했다. 그러자 단식투쟁으로 권력에 맞섰다. 1913년 윌슨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여성 1만명 시위를 이끌었다. 결국, 1920년 미국의 여성 투표권이 생겼다. 그에게 표는 쇠사슬과 단식으로 싸운 투쟁이었다. ▶1990년 2월. 넬슨 만델라가 출소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을 복역했다. 그의 출소는 인종차별 종식을 의미했다. 350년을 지배해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변화였다. 1994년 4월 27일 역사적인 총선이 실시됐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저항이 여전히 살벌했다. 9천개 투표소에 10만명의 군경이 배치됐다. 그래도 흑인들은 새벽부터 한 표를 행사했다. 투표하는 만델라 사진이 세계로 타전됐다. 그에게 표는 징역 27년이었다. ▶2015년. 대한민국에는 선거로 뽑힌 여성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처음으로 투표장을 찾았다.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였다. 1893년 뉴질랜드에서 여성 참정권이 부여된 뒤 122년 만이고, 사우디아라비아가 건국된 지 83년 만이다. 이 선거에서 20명의 여성 지방 의원들도 탄생했다. 이슬람권의 많은 국가들이 여성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이들에게 표는 이슬람 여성계의 인권 상징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13 선거의 표 한 장 가격을 매겼다. 2천891만원이라고 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4년 예산 1천240조원을 유권자 수 4천300만여명으로 나눈 수치다. 비교의 설득력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다. 그만큼 한 표의 소중함을 설명하려는 선관위의 노력으로 보면 된다. 목숨과 바꿨던 에밀리 데이비슨, 쇠사슬과 단식으로 저항했던 엘리스 폴, 27년의 징역과 바꿨던 넬슨 만델라. 더 설명이 필요한가. 투표하러 가자. 김종구 주필

[지지대] 핵가방

핵보유국 정상들은 해외 순방이나 지방 시찰 때 핵무기 발사용 위성통신 장비가 담긴 ‘핵(核)가방’을 가져간다. 유사시 핵무기를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10일 싱가포르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핵가방을 지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방한 때도 해군 장교가 검은색 핵 가방을 들고 다니는 장면이 목격됐다. 핵가방은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0년대에 만든 ‘뉴클리어 풋볼(Nuclear Football)’이 원조다. 구체적인 사용법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졌다. 무게 20㎏의 서류가방인 핵가방은 미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 이동할 때, 군사보좌관의 손에 들려 항상 따라다닌다. 영화처럼 핵가방에 발사 버튼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블랙북으로 알려진 핵공격 옵션 책자와 대통령 진위 식별카드, 행동지침, 핵 공격명령을 전파할 수 있는 소형 통신장치 등이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핵공격 명령 인증코드가 담긴 비스킷으로 불리는 보안카드도 있다. 잘못된 발사명령을 막기 위해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도 비스킷을 소지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명이 추가로 동의해야 유효한 공격명령이 된다. CNN은 “핵 공격에 대한 반격은 15분이면 충분하며, 대통령이 발사를 명령하는 순간부터 첫 번째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사일로를 벗어나는 데는 대략 4분이 걸린다”고 전했다. 핵가방은 러시아에도 있다. 러시아 핵가방은 ‘체게트(Cheget)’라 불리는데 1983년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때 만들어졌다. 핵가방은 핵 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 간의 ‘공포의 핵균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단이다. ‘우리에게 핵무기가 있으니 우리를 핵 공격하면 우리도 핵무기로 공격한다’는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을 과시하는 수단이다. 북한에도 핵가방이 있을까? 있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싱가포르에 핵가방을 가져갔을까? 관심사지만 알려진 바는 없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고 했지만 핵가방의 존재 여부는 모른다. 지난 3월과 5월 방중 때도 김 위원장 수행원 중에 핵가방으로 짐작될 만한 가방을 든 인물은 포착되지 않았다. 설사 핵가방이 있다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 만나는 자리인 만큼 핵가방을 들고 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오늘 ‘세기의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역사적 회담이다. ‘완전한 비핵화’ 합의가 이뤄져 한반도 나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반려동물 공약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섰다. 1인 가구의 증가, 출산율 하락과 고령화 등 다양한 사회적 영향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동물 보유 가구는 전체 가구의 28.1%로 약 593만 가구에 달한다. 네 가구당 한 집 꼴이다. 그러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동물’에서 ‘가족’으로 바뀌고, 반려동물 관련 정책이나 복지에 민감한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를 의식한 듯 6·13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반려동물 공약’을 쏟아냈다. 반려동물 테마파크나 놀이터 조성부터 반려견 문화·복지센터 건립, 반려동물 관련 기업 유치, 동물보호교육 실시 등의 공약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1천만인에 표를 호소하고 있다. 반려동물 가구가 가장 많은 경기도 역시 공약 전쟁이 치열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는 ‘동물과 공존하는 경기’를 만들겠다며 6가지 반려동물 공약을 내놨다. 이 후보는 먼저 반려동물이 목줄 없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확충하고 ‘경기도형 페티켓’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 길고양이 수가 번식으로 지나치게 늘어 민원이나 혐오 범죄가 증가함에 따라 중성화수술(TNR) 지원도 공약했다. 반려동물을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 확대, 승인기간 단축 등 반려동물 등록제 실효성 강화 등도 약속했다. 남경필 자유한국당 경기지사 후보도 경기지사 시절부터 이어온 동물복지 정책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남 후보는 반려동물종합센터 건립, 반려동물테마파크 조성, 동물 약품·백신 연구개발센터 등 지역발전 선도 혁신클러스터 육성·지원 등을 공약했다. 유기견 입양비 지원 확대, 불법 강아지 공장 집중 단속 등도 약속했다. 기초단체장의 경우 민주당 정장선 평택시장 후보, 자유한국당 정찬민 용인시장 후보, 이필운 안양시장 후보 등도 반려동물 놀이터 조성 등을 공약으로 내놨다. 경기지사ㆍ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해 전국의 광역ㆍ기초단체장, 교육감 후보까지 많은 후보들이 반려동물 공약을 내놓자 반려인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려동물이 맘놓고 놀 수 있는 공간이나 의료관련 복지 등이 필요하다며 긍정적이다. 최근 동물자유연대가 실시한 ‘동물정책 수요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반려동물 정책과 관련해 ‘불법 개농장에 대한 단속ㆍ관리 미흡’(90.1%), ‘불필요한 생체해부실습’(88%), ‘공장식 축산 환경’(83.5%) 등에 문제의식을 보였다. 반면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반려견 놀이터나 테마파크 등 편의시설 건립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동물복지 전반에 걸친 문제 해결을 중요시하는 반려인들을 보며, 후보자들보다 한발 더 앞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한국 전쟁(戰爭)

최근에 방 한 칸을 점하고 있던 책장을 정리한 기억이 있다. 빼곡히 꽂힌 책은 주로 대학 때 공부했던 전공서적. 버리기 아까워 오랜 기간 책장 속에 묻어 두었다. 깊숙이 꽂힌 책을 하나 둘 들춰내자 케케묵은 냄새와 함께 먼지까지 날렸다. 참 시간도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던 중 눈에 띈 책 두 권이 있었다. 한 권은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다. 새내기 대학시절 참으로 많이 읊조렸던 구절이다. 나머지 한 권은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이란 책자였다. 허름한 책자를 집어들고 페이지를 넘기자 밑줄 쳐 읽어갔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지금은 페이지마다 빛이 바래 읽기조차 어렵게 됐지만 말이다. 남북간 평화무드가 한국사회의 최대 화두다. 비단 우리뿐 아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한반도 정세를 둘러싸고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과거 구한말 세계열강들의 침략 상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오고 있다. 그 중심은 물론 한반도다. ‘종전(終戰)’, 얼마나 바랬던가. 한국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상처일지도 모른다. 그 폐해가 실로 참혹했기 때문이다. 각종 통계 자료를 보자.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투하한 폭탄은 무려 63만5천t 규모.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구역 전체 투하 분량 50만3천t을 넘어선다. 이 기간 중 남쪽 민간인 사망자수 37만여 명, 군인 사망자 13만여 명. 여기에 실종자 및 부상자수까지 합하면 160만여 명이 피해를 입었다. 북쪽은 더 심하다. 민간인 사망자 40만여 명, 군인 사망 52만여 명 등 무려 350만여 명이 전쟁 피해 당사자다. 게다가 UN군 사망자수 3만여 명, 중국군 사망자수 11만여 명 등 실로 참혹했던 한국전쟁이다. 산업, 사회적 피해도 막대하다. 남쪽은 일반공업시설 40%, 주택 16%가 파괴됐다. 북쪽은 전력 74%, 연료 공업 89%, 야금업 90%, 화학공업 70%가 피해를 입었다. 전쟁이 낸 이산가족수는 무려 1천여만명에 이른다. 그런 한국전쟁이 이제 종지부를 찍는단다. 종전선언의 실현 여부는 조만간 판가름 날 듯하다. 설령 지금 그 뜻을 이루지 못해도 9부 능선을 넘어선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제는 종전을 넘어 통일이다. 평양과 백두산, 금강산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날이 기대된다. 김동수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인천시장 후보들의 마지막 한 방

6·13 지방선거가 6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인천시장 후보들이 마지막 한 방을 노리고 있다. 운명의 날이 다가올수록 앞서가는 후보는 ‘빨리 골인선으로’, 추격하는 후보는 ‘따라잡을 수 있을까’라는 조바심이 커진다. 후보 마음이 바빠지니 마지막 한 방 생각이 굴뚝같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후보는 자신의 1호 공약인 ‘서해평화협력시대 동북아경제중시도시’를 지방선거 전날인 12일 열릴 예정인 북미회담 효과와 연결하는 마지막 한방을 준비 중이다. 여기에 ‘친문 vs 친박’ 프레임까지 보태 추격 중인 자유한국당 유정복 후보를 제치고 인천시 입성을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자유한국당 유정복 후보는 ‘정당? NO, 일 잘하는 시장? OK’로 역전 한 방을 노리고 있다. 대표 성과는 역시 재정건전화다. 유 후보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감축한 채무 3조원과 숨겨진 채무 6천920억 원까지 합치면 지난 3년간 3조7천억 원 이상의 부채를 감축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재정건전화가 그저 운 때가 맞았거나,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결과로 폄훼하는 허리띠를 졸라맸던 1만5천명의 공직자와 300만 인천시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타 후보들의 경계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문병호 후보는 송도 6·8공구 개발사업의 앞, 뒤 줄거리를 다 잘라낸 ‘6·8공구 땅값 수익 10~30조원 어디로 갔나’ 프레임 한 방으로 현재 민주, 한국당 시장 후보 2명과 전임 시장 2명 등 4명을 싸잡아 공격한다. 진행 특성상 상대 후보들의 반박 시간이 부족한 방송 토론회에서는 치고 빠지는 공격용으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정의당 김응호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의 최저임금 짬짜미 개악’ 한 방으로 두 정당 소속 후보를 막판까지 공략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국회에서 최저 임금에 밥값 교통비, 식비까지 포함해 실질 임금을 하락시켜 중저소득층의 생계를 위협했으니 두 후보가 책임지고 사과하라는 것이다. 시장후보들이 저마다 마지막 한방에 승부를 걸고 있다. 인천 시민은 어떤 한 방을 선택할까?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학원비 범죄

2016년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잡혔다. 평범해 보이는 50대 여성이었다. 역할은 돈을 찾는 인출책이었다. 1건당 10만여 원의 돈을 받았다. 잡히기 전까지 1년여간 일을 했다. 1건당 받은 돈은 10만여 원이다. 여기까지는 흔한 보이스피싱 범죄다. 수사관들을 놀라게 한 건 남편의 직업이었다. 현직 경찰이 여성의 남편이었다. 왜 했는지 추궁하자 아이들 학원비 얘기가 나왔다. 안 그대로 어려운 살림에 아이들 학원비라도 대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십수년 전 이런 일도 있었다. 경기도 산하기관의 한 간부가 검찰에 구속됐다. 업자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동료 공무원들이 의아해했다. 평소 평판이 좋기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검찰이 언론에 혐의 내용을 공개했다.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받았다. 그런데 수신처가 공무원이 아니었다. 골프 연습장 강사였다. 자녀를 가르치는 레슨비로 지불된 것이다. 골프 특기생으로 대학을 가려는 아들을 위한 ‘학원비 대납’이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말이 있었다. ‘공무원이 첩이나 도박에 빠지면 뇌물을 받는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가 그랬다. ‘첩 살림’을 챙기거나, ‘도박 자금’을 충당하려고 검은돈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2000년대 들어 확연히 바뀌었다. ‘자녀 학원비’가 범죄의 출발로 등장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경기북부경찰청이 검거한 50대 여성도, 수원지검이 구속한 경기도 공무원도 모두 그런 경우였다. 꼭 그래야 했을까. ▶5일 통계청이 주목되는 자료를 냈다. 소득에 따른 학원비 지출 비교다. 상위 20%(5분위) 가구의 월평균 ‘학생학원 교육비’는 24만2천600원이다. 하위 20%(1분위) 가구는 8천925원이다. 27배의 차이가 난다. 전체 소비지출 차이는 많이 다르다. 상위 20% 가구가 433만원, 하위 20% 가구가 115만원이다. 3.8배 차이밖에 안 된다. ‘있는 집’과 ‘없는 집’의 가장 큰 차이가 교육비다. 갈수록 심해지는 교육 양극화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최익현은 악의 축이다. 뇌물 먹다 들켜 공무원에서 잘렸다. 폭력 조직과 결탁해 도박장 돈을 챙겼다. 검사까지 매수하는 수단까지 부렸다. 그런 최익현에게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키운 아들이 검사가 됐다. 어쩌면 이게 현실일 수 있다. 돈 없으면 아이도 못 가르치고, 그러니 검은돈이라도 챙기려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위안 삼을지 모른다. ‘다 아이를 위한 부모의 사랑이다’라고.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김종구 주필

[지지대] ‘탈(脫)코르셋’ 바람

‘긴머리를 잘랐습니다. 미니스커트를 버렸습니다. 제모를 하지 않았습니다. 립스틱을 부러뜨렸습니다. 렌즈 대신 안경을 썼습니다.…’ 10~20대 여성들 사이에 짙은 화장·긴 생머리 등을 거부하는 ‘탈(脫) 코르셋’ 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른 긴 머리카락, 화장 안한 민낯, 부순 화장품 등의 인증샷을 올리며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코르셋은 여성의 몸을 날씬하게 보일 수 있도록 상반신을 조여주는 보정 속옷이다. 최근엔 긴 생머리, 날씬한 몸매, 짧은 치마, 화장한 얼굴 등 그동안 여성에게 가해진 모든 고정관념을 뜻한다. 이 모든 걸 벗어던지자는 의미로 ‘탈코르셋’ 운동이 생겼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가부장적 억압을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SNS에는 ‘#학생이 겪는 코르셋’이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10대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코르셋’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13세 여자 중학생이다. 요즘엔 학교에서 틴트나 미백 선크림 등 화장을 하지 않으면 찐따 취급을 당한다. 빠르면 4학년, 느려도 6학년쯤에는 다들 화장을 시작한다” “여고 1학년이다. 반 친구들이 아침마다 와서 화장하는데 다들 눈물 흘리면서 렌즈 끼고 있다. 왜 그렇게 힘들게 화장을 하냐고 물어보면 여자는 예뻐야 한다고 말한다.” 수면 부족과 식이 장애, 결막염 등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화장과 다이어트를 계속할 만큼 코르셋의 압박을 받고있는 10대 여학생들이 애처롭다. 실제 요즘 중ㆍ고 여학생들은 ‘풀 메이크업’을 한다. 맨 얼굴로 학교 가는 것은 ‘창피한 일’로 여기기 때문에 매일 아침 30분 정도 화장을 하거나, 화장을 못했을 경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 해시태그 운동은 이런 것을 ‘불편한 제약’ ‘부당한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여학생들이 늘면서 번지고 있다. 20대 여성들도 탈코르셋에 적극적이다. 탈코르셋 운동에 불씨를 지핀 건 ‘홍대 몰카 편파수사’ 논란이다. 피해자가 남성이란 이유로 경찰이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반발하며 거리로 나와 시위를 했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확산됐다. 1020여성들은 외모 치장을 ‘여성이기에 부당하게 감내해야 했던 성차별적인 노동이자 의무’라고 비판한다. ‘꾸밈노동’, ‘꾸밈노역’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코르셋 운동은 지난 주말 서울 강남에서 여성 10명이 상의를 탈의하는 시위로까지 번졌다. 그들은 ‘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몸에 적었다. 상의 탈의에 논란이 있지만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억압을 벗겠다는 ‘탈코르셋’은 시대 흐름이다. 여성들의 자기성찰 운동이기도 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선파라치

지난 6월2일, 제809회 나눔로또 1등 당첨자는 6명으로 1인당 29억2천여만원씩 당첨금을 받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주 복권을 사지만 ‘역시나, 꽝’이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일주일의 낙(樂)으로 생각하며 또 로또를 산다. 깊어지는 불황 속에 로또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로또 판매액은 약 3조7천948억원으로, 하루 평균 104억원어치가 팔렸다. 선거 때는 ‘선파라치’도 로또다. 선파라치는 선거와 파파라치의 합성어로, 포상금을 노리고 선거 현장을 쫓아다니며 선거법을 위반한 사람이나 사례를 적발해 신고하는 사람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 위반 사례를 신고한 사람, 즉 선거범죄 신고자에게 건당 최대 5억원의 포상금을 준다. 각종 신고 포상금 가운데 건당 최고금액일 뿐 아니라 개인별 한도액이 없어 파파라치 사이에선 지방선거 날짜에 빗대 ‘6ㆍ13 특수’, ‘6ㆍ13 로또’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선파라치 1명이 2건의 선거범죄를 신고할 경우 1건당 5억원씩, 최대 10억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선파라치들이 선거판에 몰려드는 이유다. 선거범죄 신고 포상금 지급 근거는 2004년에 처음 마련됐다. 당시 포상금 최고액은 5천만원이었다. 이후 공직선거관리규칙이 개정되면서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대 포상금을 5억원으로 10배 올렸다. 포상금이 뛰면서 지방선거 때마다 지급된 신고 포상액 규모도 늘었다.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6억2천만원이던 포상액은 4년 뒤 6·4 지방선거땐 약 9억원으로 1.5배 증가했다. 최대 포상금이 5억원으로 상향된 이후 지난 12년간 치러진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 선거범죄 신고 포상금으로 5억원을 타간 사람은 없다. 역대 포상금 최고액은 3억원으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받으려던 사람이 특정 정당 공천심사위원에 3억원을 건넨 사실이 선파라치에 걸렸다. 선파라치 성공의 관건은 단연 정보력이다. 이들은 정당 당원을 사귀는 것은 물론 친목회장과 반상회장, 통ㆍ반장 등 가능한 모든 인맥을 동원해 한 선거구역에 여러명의 정보원을 심어둔다. 정보를 얻어내면 현장에 잠입해 후보자 얼굴은 물론 음식값을 계산하거나 봉투를 나눠주는 장면 등 결정적인 증거자료를 몰래 촬영해 선관위에 제출한다. 요즘은 몰래카메라 종류가 다양하고 성능도 좋아 정보만 있으면 증거 잡기는 어렵지 않다. 6·13 지방선거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선관위도 선파라치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 지방선거에선 선파라치 로또가 나오게 될지.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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