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온정 가득한 한가위 맞자

추석은 설, 단오절과 함께 우리 민족 3대 명절이다. 추석(秋夕)은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으로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한다. 추석은 농경민족인 우리 민족에게 봄과 여름 두 계절 정성 들여 가꾼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해 조상께 바치고, 1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을 보며 즐겁고 풍족한 마음으로 한 해의 행복을 비는 소망과 희망의 절기이다. 조선 순조 때 김매순(金邁淳)은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 “가위란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됐다. 이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加也勿 減夜勿 但願長似嘉俳日)’라고 한다.”고 적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넉넉한 음식에 마음까지 푸근해지는 한가위를 앞두고 설레고 들뜬 사회분위기와는 달리 공허함과 쓸쓸함으로 추석이 더 외롭고 힘든 우리 이웃이 적지 않다. 찾아올 가족이나 귀성객이 없는 홀몸 어르신과 결손가정 아동 등은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한다. 추석을 앞두고 봉사단체나 각급 기관ㆍ단체, 기업 등이 앞다퉈 사회복지시설이나 경로시설을 찾아 성금품을 전달하는 등 이웃사랑이 줄을 잇고 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은 아직도 일부에 그치고 있다. 소외계층과 불우이웃을 따뜻한 가슴과 배려의 마음으로 보듬으려는 우리 사회의 훈훈한 사랑나눔과 이웃사랑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아무리 복지를 확대해도 어느 사회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나눔문화 확산만이 모두가 풍요로운 한가위를 보낼 수 있다. 추석이 우리에게 넉넉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대자연의 혜택에 감사하고, 이웃끼리 나누며 배려하는 아름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관식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오판(誤判)

‘오판(誤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잘못 보거나 잘못 판단함. 또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명기돼 있다. 왜 갑자기 이 단어를 썼는지 궁금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론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하지만 명백한 오판이 그 속에 내재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글을 써본다. ▶발단은 이랬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4월과 5월에 이어 지난 18일부터 평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수행원 명단을 보고 있자면, 참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4대 그룹 총수가 동행하는 것도 그렇지만, 남북화해무드 속에서 가장 통일에 대한 대표성을 가진 경기도지사의 명단이 포함되지 않은 아이러니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6일 특별수행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접경지역 대표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포함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만족시키는 단체장은 어느 누가봐도 경기도지사 밖에 없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분단 이후 수십 년간 접경지역의 고통을 안고 산 곳도 경기도요, 전국에서 가장 큰 광역자치단체 역시 경기도라는 것에 반론을 펼칠 이가 누가 있으랴. 그런데 경기도지사를 제외시킨다고? 완전한 통일의 전초기지 성격을 띠는 ‘통일경제특구’가 서울 성동구에 만들어질 것도 아니고, 강원도 주문진에 설치될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이름은 명단에서 빠졌단 말인가?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박원순ㆍ최문순’이라는 이름에 해답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이재명 지사에게 개명을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명 대신 순’을 쓰는 건 어떠실른지. 그러면 다음 남북정상회담에는 동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누가봐도 명분이 없는 수행원 명단에 이렇게 어이없는 농담을 해본다. ▶국운이 달린 일에 ‘대결의 구도’도, ‘약육강식의 생태계’도, ‘정치 공학’도 결부돼선 안 된다. 철저한 명분과 실리가 있어야 국민들도 납득할 수 있다. 통일 대한민국의 중심은 경기도다. 과거에 연연하진 않겠다. 다음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그 날에는 경기도지사가 당당히 함께 하길 기대해 본다. 오판(誤判)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김규태 정치부 차장

[지지대] 경기남부권시장협의회

2007년 경기남부권시장협의회가 설립됐다. 수원ㆍ용인ㆍ화성ㆍ평택ㆍ안성ㆍ오산ㆍ의왕시장 7명이 회원이다. 협의회 설립 목적은 시 간 협력을 통한 상생이다. 지근거리에 위치한 탓에 각종 충돌이 잦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화의 창구가 필요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의체였다. 일종의 광역협의기구와 같은 역할이 기대됐다. 실제로 여러 현안들이 이 회의를 통해 논의됐다. 대정부 결의문 채택도 여러 차례 있었다.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10년대 중반 이후다. 회원 시장들 간에 싸워야 하는 갈등이 폭주했다. 수원시와 화성시는 광역 화장장 설치, 공군비행장 이전 문제로 충돌했다. 수원시와 용인시는 시 경계를 두고 갈등했다. 용인ㆍ안성시와 평택시는 상수원보호구역 갈등으로 싸웠다. 상대 시장을 비난하는 성명전이 이어졌다. 막말에 가까운 현수막이 길거리에 나붙었다. 수백 명의 시위대가 상대 시청사를 찾아가 농성을 벌였다. ▶회원인 시장들이 협의회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분기 1회 개최를 원칙으로 했던 회의가 2014년 이후 연 1, 2회로 줄었다. 참석하더라도 눈길 한 번 안주는 시장들의 모습도 언론에 자주 목격됐다. 현안 문제를 의제로 올린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대신 정부나 경기도를 향한 요구 사항을 의결하는 일이 많아졌다. 예민하지 않으면서 선언에 그치는 의제를 고르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협의회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다. ▶올 게 왔다. 17일 의왕시 과학관에서 협의회가 개최됐다. 평범한 정례 회의였다. 민선 7기 1차 회장단 선출이 예정돼 있었다. 드론 비행승인 규제 완화 등의 의제도 채택돼 있었다. 그런데 참석률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안성시장은 불참했고, 수원ㆍ용인ㆍ화성ㆍ오산시장은 부시장을 대신 보냈다. 회장인 정장선 평택시장과 주최지 의왕의 김상돈 시장만 참석했다. 티타임을 마친 김 시장이 폭탄선언을 했다. ‘협의회를 해체한다.’ ▶회원 없는 회의장을 본 정장선ㆍ김상돈 시장의 분노가 짐작 간다. 그럼에도, 조언할 게 있다면 이거다. 11년 전 설립 의지를 한 번 생각하기 바란다. 초심을 돌아가 협의회를 보기 바란다. 지역 갈등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협의체다. 갈등이 더 깊어졌다면 그 필요성도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얼굴도 안 보던 A 시장과 B 시장을 잠시나마 나란히 앉혀놓았던 게 경기남부권시장협의회다. 이마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경기남부권시장협의회는 필요한 기구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가짜 구급차’ 철퇴

경기도 광주에 사는 20대 남자가 새벽에 두통이 심하다며 119에 신고했다. 이 남자는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 구급대원을 폭행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는 진료를 받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가짜 환자’ 행세를 한 셈이다. 119구급차는 이 남자를 위해 경광등을 켜고 도로를 질주했다. 새벽시간이라 교통 장애가 별로 없었겠지만 출퇴근이나 대낮이면 복잡한 도로에서 다른 운전자들에게 민폐를 끼쳤을 것이다. 국민안전처는 위급상황을 허위로 신고하고 구급차를 이용해 의료기관으로 이송됐으나 진료를 받지 않은 이 남성에게 처음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했다. 인천 강화에서는 몇 년 전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을 데려와 입원시킨 뒤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급여 15억원을 타 낸 병원장과 사무국장 등이 구속된 사례가 있다. 구속된 이들은 노숙인 300여 명에게 접근해 술을 사준 뒤 취하면 가짜 앰뷸런스에 태워 자신의 병원에 치료 명목으로 입원시켰고, 반항하면 폐쇄병동에 감금하기도 했다. 강화 사례처럼 범죄에 가짜 앰뷸런스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교통체증이 심각한 러시아워에 긴급상황이 아닌데도 경광등과 사이렌을 켜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며 달리는 구급차들이 있다. 불편하고 짜증 나지만 길을 비켜주는 건 응급환자가 타고 있겠거니 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진짜 응급환자가 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가짜 구급차’에 칼을 빼들었다. 이 지사는 지난 14일 SNS 라이브방송에서 “가끔이지만, 가짜 앰뷸런스가 있다 보니 사람들이 길을 안 비켜준다. 이런 불신을 깨야 한다”며 응급환자를 태우지 않고도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가짜 구급차’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행정처분을 담당 부서에 주문했다.운행일지를 허위로 작성하는 구급차에 대해 적발시 과징금 부과에 그치지 말고 영업 정지ㆍ취소 등 법이 허용하는 최대의 행정처분을 하도록 요구했다. 단속도 매년 1회가 아닌 분기별 또는 반기별로 하고, 구급차 불법 운행 신고시 수백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하도록 했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가짜 앰뷸런스 운행과 관련한 수사권을 확보해 나설 계획이다. 이 지사는 “사람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규칙을 이용해 푼돈 벌려고 하면 되겠냐”며 “앞으로는 그런 짓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민간 구급차 운행 현황을 점검, 13개 운행 업체의 불법 15건을 적발해 영업실적에 따라 최대 100여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가짜 구급차 근절이 경기도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명절 좀 없애주세요”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추석을 앞두고 직장인 7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3.1%가 ‘명절 연휴 출근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56.4%)이 남성(47.3%)보다 더, 기혼자(53.5%)가 미혼자(51.4%)보다 더 명절 연휴 출근 의지가 강했다. 출근을 원하는 이유는 ‘명절 음식 등 집안일 스트레스 때문에’(32.5%)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어 ‘지출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29.1%), ‘가족 모임의 부담감’(26.7%), ‘연휴후 밀려있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9.7%) 등의 순이었다. 집안일 스트레스와 경제적 부담 등 ‘명절 증후군’ 때문이다. 여성들의 스트레스는 차례상 준비부터 시작된다. 많은 양의 음식을 하다보니 재료 구입부터 요리, 그리고 먹고 치우기까지 부엌일이 끊이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린다. 남성들은 지출 스트레스에 한숨 짓는다. 양가 부모님과 조카들 용돈, 주변 사람 선물까지 챙겨야 하니 그렇잖아도 얄팍한 지갑이 구멍날까 걱정이 많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명절을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설에도 ‘제사를 없애달라’ ‘명절 연휴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이어졌는데 추석을 앞두고 또다시 올라오고 있다. 명절 스트레스가 심하고 의미도 퇴색했으니 줄이거나 없애자는게 주요 내용이다. 한 청원자는 “현대사회에 더는 추석이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폐지를 요청했다. “한가위는 농경사회에서 한 해 동안 지은 농사의 결과에 감사를 표하는 명절”이라며 “농사 짓는 집이 드문 요즘은 추석이 예전같은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 모임은 설 연휴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명절이 가족 화합을 해친다는 이들도 많았다. 가부장적 요소가 남아있는 명절 풍습 때문에 부부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명절 전후로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결과도 있고, ‘명절 이혼’이란 말도 생겼다. 2016년 기준, 설과 추석 연휴 전후로 하루 평균 577건의 이혼신청서가 접수됐다. 다른 달의 하루 평균 2배 수준으로 연간 이혼의 20%가 이때 집중된다. 갈등과 스트레스는 부부, 기혼자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미혼의 경우 결혼, 출산, 취업, 학업성적 등의 ‘잔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만나는 사람 있냐’ ‘언제 결혼할거냐’ ‘취업이 안돼서 어떻하냐’ 등의 얘기가 짜증 나 친척들을 보고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명절 좀 없애주세요”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하고 있다. 가족ㆍ친지들이 모여 화목을 다지고 즐거워야 할 명절이 ‘폐지’ 청원 대상이 되다니, 명절도 참 안됐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안희정 무죄·김문환 유죄

하급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문환 전 에티오피아 대사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최근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1심 재판을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무죄 판결과 대비된 결과라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가 피해자의 상급자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가 적용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건 전후 사정과 피해자의 태도 등을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따라 두 사건의 유ㆍ무죄 판단을 달리했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김 전 대사가 현지 직원을 업무상 위력에 의해 간음한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김 전 대사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성관계가 합의 하에 이뤄졌으며, 업무상 지위나 위세를 이용해 간음하지도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그러나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전 지사가 비서를 간음한 혐의를 두고 “‘위력’이라 볼만한 지위와 권세는 있었으나 이를 통해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것과는 상반된 결론이다. 안 전 지사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해자가 우호적 표현을 하는 등 적극적인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라고 판단했다. 반면 김문환 전 대사의 경우 재판부는 “평소 피고인의 지위와 피해자와의 관계 등에 비춰보면 성추행을 지적하며 단호하게 항의하기 어려웠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수긍이 간다”고 밝혔다.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피해자의 태도를 ‘받아준다’고 생각했다는 김 전 대사 측의 주장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불안과 공포로 얼어붙은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갑자기 이성적 호감이 생겼을 만한 사정이 없는데, 과연 피해자의 어떤 행동으로 ‘받아줬다’고 생각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길거리에서 깡패를 만났는데 아무 말도 못 하고 폭행을 당했다. 저항하지 않았으니 폭행이 아닌 것인가. 길거리에서 깡패를 만나면 일반 사람이라면 심신이 얼어붙는다. 일반적인 상하관계라면 상급자의 지시에 대부분 순응한다.최근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두 사건에서 일부 표현이나 감정적인 부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의 해석 차이가 너무 크다. 사법부가 판결의 균형을 찾아 국민 신뢰를 회복하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난민, 문제 아닌 대응이다

제주 입국 예멘 난민 500여 명으로부터 시작된 난민 문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이들을 도우려는 단체와 막으려는 단체가 각각 맞불집회까지 계획하고 있어 충돌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와 난민인권센터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오는 16일 일요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난민연대행동 집회를 열기로 예고했다. MAP는 ‘문제는 난민이 아니라 난민혐오’라는 슬로건으로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를 통해 한국은 지난 25년간 고작 839명의 난민만 인정할 정도로 인색했던 만큼 이제라도 근거 없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난민반대 주요단체인 난민대책 국민행동도 같은 시간에 보신각 바로 맞은 편인 종로타워빌딩 앞에서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자국민 차별·자국민 혐오를 넘어, 제6차 난민반대집회’를 통해 난민법 폐지와 가짜난민 송환, 무비자제도 폐지, 불법체류자 추방을 주요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출도 제한 조치 이후 현재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예멘인 400여 명을 난민으로 인정할 것인가는 조만간 결론이 난다. 이미 난민법을 폐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 법무부는 이들에 대해 늦어도 10월까지는 난민지위 심사를 마친다는 구상이다.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된다면, 아니 난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도적 체류 허가자로만 인정된다면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제주도에 묶어놨던 출도 제한 조치가 풀린다. 즉 이들이 제주도를 벗어나 수도권으로 몰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때야말로 난민 문제가 대다수의 국민에게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국내 최대 다문화도시인 안산시가 새 정착지로 주목받자 일부 안산시민들이 반대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안산 난민 절대 반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안산시에도 ‘난민 수용 반대’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부담을 느끼는 안산시가 이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기초지자체로서 할 수 있는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경기도가 강 건너 불구경 할 때가 아니다. 정부와 광역지자체인 경기도가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이명관 사회부장

[지지대] ‘임양은 주필’

같은 사무실에서 모신 게 2011년부터다. 이미 건강은 많이 악화돼 있었다. 몸의 균형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만성적 청각 장애로 대화가 불편했다. 병원에서도 딱히 병명을 잡아내지 못했다. 한 번은 그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난 약물 중독이야.” 그가 지목한 약은 ‘명○’이다. 70년대 만병 통치약으로 통했던 가루약이다. 젊은 시절부터 이 약을 버릇처럼 복용했다고 했다. ‘소송을 하시라’는 말에 “다 늙었는데 뭘”하고 웃어넘겼다.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청소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주필님 넘어지셨어요.” 이어 비틀거리며 그가 들어섰다.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래층 편집부로 내려가던 중 쓰러진 거였다. 피묻은 원고를 건네며 말했다. “마감해야 돼. 이거 좀 갖다 줘.” 직원들이 달려와 옆 병원으로 업고 뛰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치료를 받은 그가 창백한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말없이 허리 굽혀 손을 잡았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괜히 나 때문에….” ▶그의 글은 강했다. 철저하게 보수주의를 지향했다. 남북문제에 관한 사고는 철저하게 반공(反共)주의였다. 6ㆍ25동란 중 겪은 공산주의 현실을 자주 얘기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인공(인민공화국) 치하’라는 단어도 고집했다. 항의 전화도 숱했다. 그때마다 웃어넘겼다. 한 번은 ‘괜찮으시냐’는 걱정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더기로 몰려와도 좋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게 내 꿈이다.” ▶2014년 3월 퇴임했다. 25년 4개월간의 경기일보 생활이었다. 1963년 조선일보 입사로 보면 51년 언론 생활의 마무리였다. 감회가 남달랐을 터지만 인사말은 짧았다. “서로 화합하세요.” 단문(短文)의 명수다운 인사였다. 이후 소(小)칼럼을 간헐적으로 연재했다. 1주일에 한 번꼴로 회사에 들렀다. 하지만, 구내식당에서는 볼 수 없었다. 함께 가자고 권해도 한사코 거절했다. 그가 말한 이유가 이랬다. “(퇴임했으니까) 회사에는 내 숟가락이 없는 거야.” ▶2018년 9월7일. 그의 마지막 기명(記名)이 보도됐다. ‘부음: 임양은 前 경기일보 주필 별세.’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조문객도 거의 없었다. 경기도 최고의 글쟁이, 보수논객의 상징이던 그를 보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돌아보면 이런 쓸쓸한 마무리까지도 예언했었다. 2012년 어느 날, 논설위원 셋이 벌인 ‘낮 술판’에서였다. “종교? 저승? 그런 게 어딨어. 사람은 죽으면 그냥 없어지는 거야. 그냥 무(無)야. 조용히 가는 거지 뭐.” 김종구 주필

[지지대] 부국원(富國園)의 재탄생

수원시 팔달구 교동에 100여 년을 지켜 온 교동 터줏대감 ‘부국원(富國園)’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옛 부국원이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지어진 2층 콘크리트 건물이다. 1920년대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독특한 외관이 멋스럽다. 정면은 튀지 않는 색깔의 타일을 붙였고, 삼각형의 아치형 박공지붕은 안정감이 돋보인다. 부국원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곳’이란 뜻이다. 매력적인 이름처럼 보이지만, 그 나라라는 것이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이다. 농업의 기초가 되는 종자와 비료 같은 물품을 판매하던 ‘주식회사 부국원’이 사용하던 건물로, 식민지시대 일제의 농업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1920년대 수원지역의 종묘와 종자 보급은 거의 부국원에서 이뤄졌다. 건물은 해방 후 1952년~1956년 수원지방법원 청사로도 임시 사용됐다. 1974년에는 공화당 경기도당 사무실로, 1979년에는 수원예총이 사용했다. 그러다가 개인에게 팔려 1981년부터 오랫동안 박내과 의원으로 쓰였다. 박내과 의원은 개원 후 용하다는 소문이 나며 수원은 물론 인근 용인과 화성 등지에서 환자들이 몰리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소독약 풀풀 날리던 ‘유명한 동네의원’ 박내과는 수원에서의 성공을 등에 업고 서울로 진출했고, 병원이 떠나자 한 인쇄소가 이사와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 간판이 이 질곡 많았던 건물의 마지막 명패가 됐다. 부국원 건물은 주변 땅과 함께 개인에게 팔리며 2015년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일제강점기 수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수원시가 매입했다. 수원 근현대사의 질곡을 함께 하며 버텨온 건물이 철거되지 않게 한 것은 수원시의 훌륭한 선택이었다. 옛 부국원 건물은 지난해 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됐다. 이 건물 근처엔 일제강점기 금융업을 했던 조선중앙무진회사 건물 ‘구 수원문화원’이 등록문화재 제597호로 지정돼 남아있다. 1929년에 지어진 성공회 수원교회도 있다.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이자 근대 문화유산인 부국원 건물이 역사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근대역사문화 전시관으로 꾸며 지난 주말 오픈, ‘신작로, 근대를 걷다’ 전시와 함께 ‘신작로옆 모단길 콘서트’를 열어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화성행궁 옆 공방거리부터 부국원을 지나 수원역 급수탑까지, 옛 신작로는 근대역사문화 탐방로로 조성했다. 옛 신작로를 걸으며 근대문화를 접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시대 역사와 문화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도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생명존중 1000인 선언문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0년 넘게 자살률 1위를 기록하며 ‘자살 공화국’이란 오명을 갖고 있다. 2016년 기준 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2.1명, 우리는 25.8명이다. 2016년 한해 1만3천92명이 자살했다. 하루 평균 36명, 40분마다 1명이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한 셈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은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 등의 잇단 자살이 사회적 충격을 주는가 하면 일반 청소년ㆍ노인 자살도 늘고 있다. 자살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자살은 자살자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한 가정이 불행에 빠지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자살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원인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옳은 처방전이 나올 것이고, 자살률도 낮출 수 있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원인이 크다. 사회와 국가가 나서 생명경시풍조를 바로잡고 어린이집에서부터 노인정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에 맞는 생명존중교육을 통해 생명존중문화를 확립해야 한다. 한국에선 걸음마 단계지만, 외국에선 자살 예방을 위한 민관 협력이 활발하다. 최근 12년새 자살률을 30% 감소시킨 일본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직능 단체와 민간단체를 자살예방사업에 참여시키고 있다. 미국은 2025년까지 연간 자살률 20% 감소라는 목표 아래 민관 협력체 ‘The National Action Alliance for Suicide Prevention’에 250개 넘는 기관이 동참하고 있다. 지난 4일, 자살 방지 및 생명 존중을 실천하기 위해 종교 지도자와 시민사회 원로 등으로 출범한 생명존중시민회의가 ‘생명 존중 1000인 선언문’을 발표했다. 생명존중시민회의는 선언문을 통해 “하루 36명, 1년에 1만3천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극은 해결을 늦출 수 없는 우리의 과제”라며 “정부와 기업, 학교, 언론, 시민사회가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촉구했다. △폭력 자극하는 드라마ㆍ게임ㆍ웹툰 적극 제재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무분별한 자살 보도 금지 △집단 따돌림과 약자 괴롭히기 추방 △소외된 이웃의 가난과 궁핍 보듬기 △악성 댓글 막는 댓글 실명제 시행 △배려ㆍ공감ㆍ경청으로 공동체성 확립 △권한ㆍ권력 남용 방지 등 7개 대안도 제시했다. 시민회의는 9~15일을 ‘생명 주간’으로 선포, 생명 존중 의식을 확산시키기로 했다. 오늘, 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생명 존중 선언문을 새기며, 자살 예방에 사회와 국가가 적극 동참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치사하고 이기적인 어른

최근 친정엄마가 가출했다. 이유는 아홉 살 손녀 때문. 평소 엄마 아빠 말은 잘 듣고 본인 말은 귓등으로 듣는 손녀의 태도에 화가 나 밤 10시에 집을 나가셨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혼자 일어나 8시30분 학교에 갔다. 4교시 수업 후 ‘12시40분’ 학교 정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를 보고 아이는 안도하고, 사과했다. “앞으로 말 잘 듣고, 재미있게 놀아요”하며 할머니와 새끼손가락 걸며 가출사건은 우선 일단락됐다. ▶초등학생 2학년 딸 아이는 월ㆍ수는 4교시, 화ㆍ목ㆍ금요일은 5교시를 하고 오후 1시50분에 하교한다. 그 다음 학교 방과후 수업 후 발레, 미술 등의 학원을 돌고 나면 빠르면 3시30분, 늦은 날은 6시에 집에 온다. 아직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아 그나마 여유로운 편에 속한다. 아이는 오후 남는 시간 대부분을 할머니와 놀고, 친구와 논다. 항상 놀궁리를 한다. 워낙 노는 걸 좋아해 때론 급한 화장실도 참고, 밥도 안 먹고 논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초등학교 저학년(1∼4학년)의 하교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추는 방안을 내놨다. 교과 학습량은 현재와 동일하게 유지하되 휴식·놀이시간을 늘려 고학년과 같이 하교하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아이들과 학교 현장을 모르는 무서운 그리고 이상한 발상이다. 학부모, 교사 그리고 교육감들이 반대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도 ‘초교 3시 하교 절대 반대’, ‘아이들을 더 이상 사육하지 마라’ 등 반대 의견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에서 전국 초등학생 1천2명에게 ‘매일 6교시를 하고 오후 3시에 집에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78.3%가 ‘싫다’고 답했다. 어떤 아이들은 어른들이 ‘치사’하고 ‘이기적’이라고 적었다. 자녀들이 오후 3시까지 학교에 있는다고 과연 아이를 많이 낳을까? 아이들은 오후 3시까지 학교에 있으면 행복할까? 개인적으로 일하는 엄마 입장에선 ‘턱도 없는 소리’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놀궁리를 할 시간을 주는 것이 우선이다. 노는 게 공부다. 같이 놀아주지는 못할망정 노는 거 방해하는 거 진짜 치사한 거 아닌가.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군 복무 기간 단축 역사

군 의무복무기간 단축안이 지난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10월부터 적용된다. 군 복무기간은 △육군·해병대·의무경찰·상근예비역은 21개월에서 18개월 △해군·의무해양경찰·의무소방은 23개월에서 20개월 △공군은 24개월에서 22개월 △사회복무요원은 24개월에서 21개월까지 줄어든다. 우리 군 복무기간은 지난 60년간 육군과 해병대를 기준으로 8차례 변경됐다.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기습 침투해 복무기간이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7차례 단축이 이뤄졌다. 군 복무기간이 정해진 것은 지난 1953년 휴전 이후부터이다. 당시 육·해·공군·해병대의 복무기간은 모두 동일하게 만 3년인 36개월이었다. 이후 육군과 해병대는 복무기간이 동일하게 변했다. 육군과 해병대는 1956년 33개월로 단축한 후 1962년 30개월로 줄었다. 공군과 해군은 36개월을 유지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8년 무장공비 기습 사건으로 육군·해병대 복무기간을 다시 36개월로 늘리고, 해군과 공군은 39개월로 연장시켰다. 이후 1977년 베이비부머 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병역 자원이 늘어나 육군·해병대는 다시 33개월로, 1984년 30개월로 점차 줄였다. 해군과 공군은 1979년 35개월로 단축됐고 해군은 1990년 32개월로 한차례 더 줄었다. 이후 1993년 방위병제도 폐지에 따른 잉여자원 해소 차원에서 육군·해병대는 26개월로 해군과 공군은 30개월로 단축했다. 지난 2003년 참여정부 들어 육군·해병대 24개월, 해군 26개월, 공군 28개월로 줄였고 2004년 공군 복무기간이 27개월로 1개월 더 감소했다. 이어 국방부는 육군을 6개월 더 단축하는 18개월안을 세웠으나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의 사건으로 지난 2011년 3개월만 단축해 지금까지 21개월로 유지됐다. 같은해 해군은 23개월 공군은 24개월로 줄었다. 군 복무 기간이 단축되면서 우리 군의 전력 약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국방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군 첨단화를 통한 질적 강군을 육성해 국방력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기우에 그치길 바란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교도소 개(犬)

1990년대 초 얘기다. 지역 내 한 기관 소속원에게 지시가 내려졌다. “교도소 개를 구해 오라.” 소속원은 그때 처음으로 ‘교도소 개’를 알았다. 말 그대로 교도소에서 키우는 개를 말했다. 재소자들이 버리는 ‘잔밥’을 먹여 키운 개다. 사료를 먹여 키운 시중 개와 달랐다.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이었다. 소속원이 교도소를 찾아가 사정을 말했다. “개가 작은데, 돼지는 어떻겠냐.” “안된다. 반드시 교도소 개를 구해야 할 중요한 모임이다.” ▶그 ‘중요한 모임’은 기우회였다. 기우회(畿友會)는 경기도 주요 기관ㆍ단체 대표자들 모임이다. 법적 근거는 없지만 모임 자체의 상징성은 컸다. 현직 도지사가 전체를 관장했다. 조별(組別)로 편성된 모임에 각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도지사 외에도 검찰ㆍ경찰 등 사법기관과 정보기관 등 대표가 다 회원이었다. 가히 경기도의 ‘파워그룹’ 이었다. 그 기관이 조별 모임을 주관하는 차례였다. ‘교도소 개’를 찾아야 할 이유로 충분했다. ▶기우회의 기원은 박정희 정부로 올라간다. 지역의 기관장들이 친목을 위해 만들었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 모든 지역에 등장했다. 공화당 정부가 지역 통제를 위해 결성을 조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면면이 주는 아우라가 대단했다. 기업인들이 다 가입하고 싶어했다. 그 문호가 열린 것은 민주화 이후다. 그즈음 모임 성격도 변했다. 권력 모임보다는 사교 모임 성격이 커졌다. 이 모임에서 시작된 인맥이 비리로 불거지기도 했다. ▶인천 지역 모임의 이름은 인화회(仁和會)다. 박남춘 시장이 29일 특별한 선언을 했다. “인화회가 시민의 자리에서 시민을 대변하는 모임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는 마음으로 회장직 사퇴와 모임 탈퇴를 결정했다.” 인화회에는 즉각적인 변화가 감지됐다. 박 시장 탈퇴 이후 모임에 기관장 다수가 불참했다. 앞으로 모임 탈퇴를 선언하는 기관장이 더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제는 전국의 모든 모임이 뒤숭숭해졌다. ▶기우회, 인화회는 박정희 정부 시절 그것과 다르다. 적어도 권력을 찬동하는 통치의 수단은 아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대로(大怒)할 회원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왜일까. 혹시 이 때문 아닐까. 돌아보면 기우회든 인화회든 딱히 한 게 없다. 그 막강한 ‘힘’들이 모였는데 무엇을 해놨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니 시민들이 곱지 않게 본다. ‘힘 있는 사람들 만나 웃고 거들먹거리는 모임’. 자업자득(自業自得)일 수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형사 미성년자’ 연령 하향

또래 여중생을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폭행한 뒤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 ‘부산 여중생 폭행’, 초등학생을 유괴해 잔인하게 살인한 ‘인천 초등생 살인’, 여고생을 노래방과 관악산에 끌고 다니며 각목 등으로 때리고 담뱃불로 지진 ‘관악산 집단 폭행’ 등 청소년 범죄 양상이 끔찍하다. 갈수록 흉포화되고 저연령화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최근 발생하는 소년범죄의 가장 큰 특징은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범죄의 증가다. 그러나 살인을 저지르고도 일부 가해자는 ‘형사 미성년자’에 해당돼 처벌받지 않는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9월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2012년 이후 촉법소년 범죄현황’ 자료에 따르면 5년간 강력범죄에 연루된 만 14세 미만 ‘촉법소년’의 수는 총 1천674명이다.2012년 336명(20.1%), 2013년 353명(21.1%), 2014년 378명(22.6%), 2015년 318명(19.0%), 2016년 8월 말 289명(17.3%)으로 해마다 300명 이상 발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10~13세 청소년 범죄의 증가율은 7.9%에 달한다. 13세 아동만 보면 범죄 증가율이 14.7%나 된다. 정부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분을 받지 않는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기로 했다. 지난달 31일 대책 회의를 열어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하향 조정하는 형법ㆍ소년법 개정이 올해 안에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전보다 청소년의 신체적ㆍ정신적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연령이 낮아지는 현상을 고려한 현실적 판단으로 보인다.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의 연령이 낮아지고 범죄 형태가 흉포화되는 현실은 충격적이다. 남에게 씻지 못할 피해를 준 만큼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형사처분 가능 연령을 낮춘다고 범죄가 줄어들 지도 미지수다. 청소년폭력 문제는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 빈곤, 가족의 해체,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관리 소홀 등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을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교육을 통해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하향하는 제도만으로 부족하다.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의 범죄 예방교육을 활성화하고 다른 제도적 장치들도 마련하는 등 근본 대책이 있다면 효과가 있겠지만 법 적용 나이만 바꾼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청소년폭력은 가정과 학교,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

빨래, 청소, 음식 준비, 설거지 같은 가사노동은 일인데 일 취급을 못 받았다. 노동력은 쓰이는데 유상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일로 보지 않았다. 전업주부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됐고, 임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GDP는 시장에서 화폐가치로 거래되는 후생 수준과 생산적 활동만 계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 41분, 여성 3시간13분으로 조사된 바 있다(2014년 생활시간조사). 가사노동은 ‘부불(否拂)노동(unpaid labor)’ 또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으로 불린다. 미국 여성사회학자 낸시 초도로우는 ‘어머니노릇의 재생산’이란 책에서 이를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날카롭게 비판했다.가사노동은 누군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적이고 유용한 것임에도 ‘어머니다움’이란 오도된 인식이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고 했다. 그 잉여의 몫은 철저히 남성들이 나눠 갖는다고 지적했다. 남성의 노동은 가치있는 경제적 투입 요소로 인정받는 반면 아이 돌보기를 포함한 여성의 가정 일은 모성으로 포장돼 억압 수단으로 간주됐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이 가격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주로 담당해온 가사노동이 모성 또는 가족애라는 이름 하에 값어치가 매겨지지 못하고 소외돼 왔던 게 사실이다. 맞벌이 가정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가사 및 아이 돌봄 노동 시간은 여성이 5배나 많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정년도 없어 죽을 때까지 일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직장을 다녀도, 은퇴를 해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많은 주부들이 ‘가사노동은 정년이 없는가’라는 탄식을 한다. 정부가 가족을 위해 ‘무급’으로 하는 가사노동의 값을 측정해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통계지표를 개발한다. 여성가족부가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을 통해 ‘가계생산 위성계정’을 개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화폐적으로 측량해 양성평등한 가족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가사노동의 성별 분업 실태를 조사하고, 평등한 가사분담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가족평등지수’를 만드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번 조치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가사노동의 값을 처음으로 공식화함으로써 사회 정의를 확보하고, 가정 내 불평등을 완화하는 의미가 있다. 가사노동이 제대로 평가돼 값어치를 인정받고,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도 확산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울타리’의 미학

60년대 시골에서 태어난 필자는 ‘울타리’가 기억난다. 이제는 ‘담장’으로 변했지만, 그때만 해도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대체로 울타리는 내 집이란 경계표시로 쳐졌다. 또 울타리 대문도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이제 생각하면 기분 나쁘지 않은 영역 표시였고 소박함의 미학이었다. 사전에는 울타리를 ‘풀이나 나무 따위를 얽거나 엮어서 담 대신에 경계를 지어 막는 물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담장은 어떤가? 경계를 넘어 방어의 개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울타리가 담장으로 변하고 있는 세상이다. 높아져 가는 담장은 현 세태의 한 단면이다.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기에는 좀 거시기(?) 하다. 눈으로 보이는 담장만 있는 게 아니다. 마음속 담장도 상당수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안주하려는 현대적 삶의 한 방법일 것이다. 가끔 소통이란 단어로 이를 깨뜨려 보려 하지만 이 또한 녹록지가 않다. 담장이 울타리로 변해가는 현장이 있어 주목된다. 경기도 포천시와 인근 강원도 철원군이다. 포천 관인면 탄동ㆍ냉정리 주민들은 철원군에서 풍겨오는 악취로 그동안 고통이 많았다. 철원 동송읍 오지리에 위치한 32개소의 축사(돈사)가 원인이었다.그렇다고 포천시는 지자체 영역을 달리한지라 뚜렷한 방안을 찾을 수 없었다. 철원군에 협조를 요구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포천시가 철원군에 합동점검을 제안하자 철원군이 이를 수용하고 나섰다.합동단속을 벌여 위반업소 8개소를 적발했다. 배출처리시설 인ㆍ허가, 악취 등 관리기준 준수 여부를 따져 얻은 결과물이다. 물론 앞으로 악취가 어느 정도 반감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실타래를 풀지 못해왔던 전례를 비춰볼 때 의미 있는 행보임에 틀림없다.이것저것, 내 것 네 것을 따지지 않아 가능했다 판단된다. 소위 님비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소각장이나 화장장 설치 등이 대표적이다. 그때마다 주변 지자체는 ‘여기는 안된다’면서 갈등을 겪고 있다. 이제부터 높아진 담장을 조금씩 걷어내자. 담장을 울타리로 바꿔보자. 울타리 미학은 삶의 즐거움을 되찾는 내비게이션으로 손색없어 보이기 때문이다.김동수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박남춘 인천시장의 빅데이터 소통

조선 제14대 선조 때 왜군의 공격으로 나라가 풍전등화 처지에 몰렸다. 때마침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원군을 이끌고 조선에 도착했다. 선조는 절체절명(絶體絶命)에 나타난 원군인 만큼 조선 최고 음식 중 하나인 문어를 명나라 장수들에게 대접했다. 하지만 명나라 장수들은 문어 먹을 엄두조차 못 냈다고 한다. 다리 넷 달린 것은 식탁 빼고 모두 먹는다는 중국인이지만 못 먹는 음식도 있었던 것이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자기가 좋아하는 그릇인 접시와 호리병에 음식을 각각 담아 내 손님이 먹지도 못했다는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가 된 격이다. 민선 7기 박남춘 인천시장이 올인하고 있는 빅데이터 소통이 관심을 끌고 있다. ‘박남춘 표’ 빅데이터의 핵심은 시민이 체감하는 신뢰와 효율성이다. 정확한 빅데이터 자료를 활용한 시민 우선 소통으로 시민이 필요하고, 편리한 정보와 행정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인천 시민만큼은 이솝 우화의 주인공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박 시장은 28일 ‘인처너카드 연계 시책발굴 보고회’에서 IC카드 사용이 어려운 노인들의 복지사업에 인처너카드를 연계하는 방안을 질타했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을 인처너카드로 대체하는 방안도 IC카드 단말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통시장 상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했다. 접시나 호리병 음식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대안으로 IC카드나 애플리케이션에 익숙한 청년 관련 사업과 ‘인처너카드’ 연계를 제안했다. 적재적소 정책을 통한 시민 편의와 효율성 극대화를 요구한 것이다. 박 시장은 빅데이터 기반의 행정 시스템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정확한 빅데이터 없이는 효율적 시정이 불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미 인천시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행정에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 수요자인 시민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작동하는 ‘시민 편 빅데이터’는 신선하다. “시민이 반응하지 않는 소통은 의미가 없다.” ‘박남춘 표’ 빅데이터 소통을 지켜 볼 일이다.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바위 날리기

2013년 10월8일, 태풍 ‘다나스’가 다가오고 있다. 모 방송의 저녁 뉴스가 속보를 내보낸다. 태풍의 최대 풍속이 초속 25~30m급이라고 전한다. 실험에 의한 결과라며 강풍의 위력을 소개한다. “커다란 바위까지 날려버릴 정도입니다.” 기자 멘트와 함께 자료 영상이 나간다. 화분이 쓰러지는 장면, 입간판이 넘어지고 우산을 든 기자가 비틀거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바위가 날아가는 모습은 없다. 물론 그 해 날아간 바위는 없다. ▶2018년 8월23일 자정, 태풍 솔릭 소식에 전 국민이 불안했다. 모 방송이 속보를 내보낸다. 해안에는 초속 40m, 내륙에도 초속 30m의 강풍이 예상된다고 전한다. 이번에도 강풍의 위력이 소개된다. “초속 40m의 바람은 큰 바위도 날려 버릴 수 있습니다.” 화면에는 강풍 피해를 보여주는 자료 화면이 나간다. 부러지는 가로수, 범람하는 강물, 부서진 전봇대, 날아가는 비닐하우스 등이 방영된다. 이번에도 바위가 날아가는 모습은 없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수변 공원에는 일명 ‘매미 바위’라는 게 있다. 바위에 이런 표식이 붙어 있다. ‘이 바위는 태풍 매미가 왔을 때 바다에서 밀려온 것입니다2003년 9월12일 19시30분경’. 당시 풍속이 ‘41m/sec’였다고 적혀 있다. 태풍의 위력을 상징하는 명물이 됐다. 하지만, 이 역시 ‘날아온 바위’는 아니다. 파고가 높아지면서 바닷물에 의해 이동한 것이다. ‘바다에서 날아온’이 아니라 ‘바닷물에 밀려온’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역대급 태풍에 루사(2002년), 매미(2003년), 곤파스(2010년)가 있다. 기록된 최대 풍속은 각각 39.7m/sec, 60.0m/sec, 40.0m/sec다. 모두 ‘바위를 날려버릴 정도’라는 초속 40m/sec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바위가 날아갔다는 기록은 없다. 물론 바위가 날아가는 영상도 없다. 주택이 날아가고, 승용차가 뒤집히는 미국의 허리케인 역사에도 바위가 날아갔다는 기록은 없다. 기록에 관한 한 지구 상에서 바위를 날린 태풍은 없었다. ▶태풍 보도에 대한 비난이 높다. 공포심 유발 지적이 특히 많다. 표현 경쟁이 빚은 오류다. ‘간판’에서 ‘가로수’, 다시 ‘자동차’에서 ‘사람’으로 바람세기의 소재를 끌어올렸다.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자 마지막으로 등장한 소재가 ‘바위 날리기’다. “큰 바위를 날릴 태풍이 옵니다.” 이보다 자극적인 표현이 있을까. 그 덕에(?) 조회수를 늘린 언론이 이번에도 꽤 된다. ‘바위 날리기’ 보도가 그치지 않는 이유다. ‘기레기’ 취급엔 때로 근거가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국군포로 송환

지난 1일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가 도착했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전사해 6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유해 55구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최고 예우를 갖춰 맞이했다.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미군 유해 송환에 합의한 지 두달 만이다. 펜스 부통령은 “모두가 6·25를 잊힌 전쟁이라고 했지만, 오늘 우리는 이 영웅들이 절대 잊히지 않았음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6·25전쟁 때 실종된 5천500여 명의 유해가 북한에 묻혀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1990년부터 북한과 유해 송환 회담을 벌여 지금까지 500여 구의 유해를 돌려받았다. 미국은 전쟁에서 싸우다 포로가 됐거나 실종된 미군을 끝까지 찾아내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국가의 사명으로 여긴다. 미 국방부 산하 전쟁 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모토가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다. 미군 유해 송환을 지켜보며 눈물 짓는 이들이 많았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북으로 끌려갔고, 돌아오지 못해 그곳에 잠든 이들이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생사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8만2천명의 한국군이 한국전쟁 이후 실종됐고, 5만~7만명이 북한과 그 동맹 국가(중국)에 억류됐다”고 추정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탄광 등에 배치돼 평생 고된 노동을 했고, 남쪽 고향을 그리다 눈을 감았다. 지난 20일 금강산에서 열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에서도 남쪽의 이달영씨(82)는 국군 포로로 북에 간 아버지가 숨진 바람에 그 이복동생들과 만나 그리움을 달랬다. 현재 북한에 생존해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군 포로 숫자는 500명 정도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80세를 넘었다. 이산가족과 마찬가지로 가족 상봉이 시급하다. 나아가 국내 송환 협의도 서둘러야 한다. 역대 많은 대통령들이 공약이나 국정 과제 등을 통해 국군 포로와 납북자의 송환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감언(甘言)일 뿐이었다. 미국은 사망한 군인의 유해라도 찾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4·27 판문점 선언’에서 유해는 고사하고 살아있는 국군 포로 문제도 거론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국군 포로 송환을 위한 특단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북한이 군군 포로 문제에 민감한 반응이긴 하지만 협상을 잘 해야 한다.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외면해선 안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긴급조치 위반’ 무죄

1972년 제정한 제4공화국 유신헌법 53조는 ‘대통령이 국가위기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를 근거로 단행된 조치가 ‘긴급조치’다.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은 단순한 행정명령 하나만으로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무제한 제약할 수 있는 초헌법적 권한이다. 국가위기 상황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내릴 수 있어 사실상 반유신세력의 탄압도구로 악용됐다. 대통령 긴급조치는 1974년 1월 8일 일체의 헌법개정 논의를 금지하는 내용의 1호와 2호를 시작으로, 1974년 4월 민청학련사건을 빌미로 4호가 선포됐다. 이어 1975년 가속화된 유신철폐운동에 대처해 고대 휴교령 및 군대 투입을 내용으로 하는 7호, 그리고 1975년 5월 유신헌법의 부정·반대·왜곡·비방·개정 및 폐기 주장이나 청원·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없이 체포한다는 내용의 9호가 선포됐다. ‘긴급조치 종합판’으로 통한 긴급조치 9호는 10·26사태 후 폐기될 때까지 4년 이상 지속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고 800여 명에 달하는 지식인·청년학생 구속자를 낳았다. 2013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정부 비판 일체를 원천 배제한 긴급조치 1·2호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고, 긴급조치 9호에 대해선 “헌법 개정 권력자인 국민은 당연히 유신헌법의 문제점을 주장하고 청원할 수 있는데 이를 금지한 9호는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4일 유죄가 확정된 지 40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는 “당시 판결받은 죄목인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은 헌법에 위반돼 무효이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김 장관은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77년 11월 학내에서 유신 헌법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을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은 후 재심을 청구하지 않은 145명에 대해 직접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김 장관도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1970년대 국민의 입과 귀를 틀어막았던 ‘긴급조치’가 이제야 청산되는가 보다. 어찌됐든,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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