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정착 대책 세워라

“첫 직장에서 동료직원들이 ‘왜 남한에 왔느냐. 탈북자들 때문에 세금을 더 내지 않느냐”는 탈북자들의 고백은 ‘설마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문제로 탈북자들이 동료직원들에게 대응하면 직장에서 철저히 왕따를 당하거나 직장을 그만 둔 일이 적지 않았다니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과거의 이데올로기 차이를 떠나서 실로 난감하다. 현재 정부는 탈북자들에게 2개월간의 사회적응교육을 실시한 뒤 1인당 3천600여만원의 정착 지원금과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얼마 전 까지 전혀 다른 사회체제에서 살아온 탈북자들이 이 정도의 ‘배려’로 남한사회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000년부터 탈북자에 대한 자활 및 자립을 돕는다는 취지로 노동부 산하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탈북자의 취업을 도와 주는 ‘취업보호 담당관’을 배정하고 있지만, 이 곳의 소개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탈북자가 북한에서의 직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소위 ‘3D’ 업종에서 일하고 있고 직업이 없는 탈북자도 상당수에 이르는 게 작금의 실정이다. 게다가 이들이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범죄의 길로 빠져 드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탈북자가 연루된 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올 들어서도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대형 범죄만 3건이나 발생했다. 과거에는 국내에 들어오는 탈북자가 대단한 뉴스의 초점이었으나 1998년부터 매년 두배씩 급증, 지난 6월 현재 국내 거주 탈북자는 3천400여명에 달해 국민적 관심이 적어졌다. 문제는 나날이 증가하는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이 미흡해 범죄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인데도 국회에서 외국인고용 허가제가 통과돼 22만여명의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한국땅에 살게되고 정작 사선을 넘어 한국에 온 동포 탈북자들이 생활고에 허덕인다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탈북자들의 원만한 정착을 위한 실질적인 직업훈련은 물론, 탈북자들이 중범죄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재활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동포애가 정치적인 구호가 돼서는 안된다.

외국인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외국인고용허가제가 3년여의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했으나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많다. 이의 입법이 필요했지만 선뜻 법제화하지 못했던 연유가 이에 있다. 우선 산업연수생제의 병행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큰 과제다. 노동부는 ‘1사업장 1제도’ 원칙 적용으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이 약40% 차이가 나는 점에서 갖가지 혼선이 예상된다. 이를 조화시킬 수 있는 보완 조치가 있어야 한다. 기업측의 임금 부담 우려엔 이유가 있다. “국내 취업을 희망하는 외국인 수가 수요보다 많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주고 채용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정부측 견해는 단견의 낙관이다. 당장은 별 차이가 없을 지 모르지만 갈수록이 임금 상승폭은 높아질 게 분명하다. 또 산재보험, 퇴직금에 연월차수당 등이 지급된다. 임금 부담이 높아질 이유는 또 있다. 외국인근로자들에게 내국인과 동등하게 부여되는 노동3권 보장은 장차 내국인 임금에 버금가는 고소득을 유발할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 개선 차원의 노동권 보장은 물론 환영한다. 하지만 외국인 고용이 언젠가는 국내 실업자를 증가케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 외국인근로자가 허가 기간을 지나고도 국내에 그대로 눌러앉는 새로운 불법 체류의 파생이 전망된다. 무엇보다 우려스런 것은 외국인근로자들의 집단 분규다. 그들은 그간 내국인 노조의 과격투쟁을 보아 왔다. 만약 외국인 근로자들이 걸핏하면 먼저 파업부터 해놓고 보곤 했던 내국인 노조의 불법양상 모방을 일삼는다면 적잖은 골칫거리다. 험상궂은 불법적 과격 양상의 노동운동을 외국인 노조에서까지 보는 것은 실로 인내하기 어려운 사회정서다. 그렇다고 내국인 노조의 불법엔 관대하고 외국인 노조의 불법은 엄정하게 대처하는 것은 노동운동 차별로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문제화가 가능하다. 앞으로 내국인 노조의 적법한 노동운동, 아울러 내국인 노조의 불법 엄단만이 외국인 노조의 준법을 가져올 수 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외국인고용허가제 입법으로 당장의 인력난을 모면하는 것은 우선 먹기엔 단 곶감과 같다. 이에 따른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시행에 앞서 충분한 대책을 지금부터 강구해야 한다.

고양이와 생선

예상은 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시민단체 등이 제안한 정치관계법 개정안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의원 상당수가 ‘개혁’에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신문이 정개특위 소속 여야 의원 20명을 상대로 실시한 정책 설문조사 결과다. 여야 의원들의 태도는 한 마디로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다’로 요약된다. 고양이에 생선가게 맡긴 격이다. 주된 반대논리는 “개정 의견이 한국 정치의 현실과 너무 떨어져 있다”이다. 특히 최근 정치개혁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정치자금 기부자의 신상 공개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의원 7명 전원이 “사실상 야당의 정치자금 모금을 막겠다는 발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의정보고회 등을 통한 상시적인 선거운동을 하면서 정치신인들의 등장을 의식해 선거일 180일 전부터 허용하는 선거운동을 반대하는 것도 ‘억지논리’다. 다만 선거자금 수입·지출 때 단일계좌 사용을 비롯, 국외 거주자 우편 투표제 도입, 선거나이 19세로 낮추기, 당내 경선 관리업무 중앙선관위 위탁, 당내 경선 낙선자 본선출마 금지, 비례대표 후보 3명마다 여성 1명 포함 등은 대다수가 찬성했다. 현역 의원들에 유리하거나 생색낼 수 있는 사항인데 반대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정치관계법은 일부 제도만 고쳐서는 정치개혁의 실효성을 높일 수 없다. 정치자금 투명화를 비롯해 각 개혁방안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사안만 제·개정 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더구나 국회의석 과반을 차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정치개혁법안을 반대한다면 본회의 처리 전망은 어둡다. 정치개혁특위가 완전 개혁을 원치 않는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원 중심의 국회 정개특위를 즉각 해체하고 시민단체 등의 참여를 통해 정치개혁 특위를 재구성하면 된다. “범국민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여기에서 논의된 모든 사안에 무조건 승복하겠다”고 공언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의지’가 생각나서다. 고지식해서 그런지 그 말을 지지대子는 유효한 것으로 믿고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광교산의 아침/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행보를 보며

나이 58세. 최종 학력 초등학교 졸업. 경력 금속노동조합 위원장. 4수 끝에 대통령 당선. 우리와 정확하게 지구 맞은 편에 위치한 나라인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이력서다. 그의 정식 이름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하지만 흔히 브라질 국민들은 그를 룰라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쯤에서 갑자기 남의 나라, 그것도 지구 맞은 편 아주 먼 나라의 대통령 이력을 엉뚱하게 꺼내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우리들의 코도 석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고 재미없는 얘기지만 계속 얘기하는 결례를 범하겠다. 룰라 대통령이 당선된 게 지난해 후반기이고 지난 1월1일 취임한만큼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재임기간이 서너달 많은 편이다. 그런 그가 요즘 그야말로 브라질에 일대 개혁의 ‘바람’을 몰아 오고 있다. 4차례 출마 끝에 대통령에 오른 그에 대해선 사실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기대를 해온 측은 물론 1억명에 가까운 서민층, 더구나 빈곤층과 노동자들이었다. 지난 70~80년대 군사정권 치하에서 민주화를 열망했던 우리와도 흡사한 경험을 갖고 있는 브라질 대다수 국민들 입장에선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자 출신, 서민 출신, 초등학교 졸업장만 있는 그가 대통령에 오른 만큼 이와 비례해 참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쯤까지 얘기도 많이 지루할듯 싶다. 우리 현실과 참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들어 주신다면 다음 대목으로 넘어 가겠다. 대통령 취임 후 그의 행보에 대해 우려의 시선으로 보는 층은 물론 기득권층이고 보수세력들임엔 틀림이 없다. 그동안 그들이 향유해왔던 기득권을 노동자 출신 대통령 집권으로 잃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건 당연한 귀결일 듯 싶다. 수십년간 독식해왔으니 그만큼 빼앗길 것도 많을듯 싶다. 그러나 빼앗길 것 없는 그는 이러한 기대와 우려를 극복하고 나름대로 우직할 정도로 밀어 붙이고 있다. 며칠전 브라질에선 공무원 노조의 대대적인 파업이 진행됐다. 룰라 정부의 공무원 연금 축소에 대해 선거기간중 룰라에게 지지를 보냈던 공무원 노조가 반기를 든 것이다. 외신을 타고 전해진 이들의 파업은 강경했다. 그러나 룰라는 단 한마디로 이들을 잠재웠다. “저에게 보내주는 지지 속에는 애정도 있고 애증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은 어느 특정 계층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계층의 국민들을 포용하는 대통령이란 의미가 담겨져 있다. 노조위원장 출신답게 달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현란한 수식어나 대중을 휘어 잡는 ‘사자후’는 더욱 아니다. 다만 힘을 줘야 할 부분에는 힘을 싣고 부드럽고 섬세한 부분은 자상하게 설명하는듯한 어조다. 한 대목만 더 들겠다. 브라질은 수도인 브라질시티를 제외하고 나머지 지방들은 여전히 황폐하고 발전이 더딘 편이다. 이런 점도 우리와 흡사하다. 그래서 그는 공무원 노조 파업 이후 지방을 순회하며 지역간 균형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지방 방문에는 장관들이 함께 하고 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모인 연단에서 룰라 대통령은 제일 먼저 빈곤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어떠한 역경이 닥쳐도 이 점만은 꼭 해결하겠다”고 호소하고 있다. 기자의 따분한 사설은 여기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아주 잘 만든 연속극이나 드라마를 보고 난 뒤처럼 가슴이 퀭하다. 출범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참여정부 주변에서 벌써부터 삐끄덕 거리는 소음이 들려 오고 모 단체장이 대권선언을 시사하는 현실이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허행윤 제2사회부장

천자춘추/池魚之殃

요즈음 제조업을 하는 중소기업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분들로부터 노조 때문에 회사 문을 닫고 싶다는 하소연을 듣게 된다. 물론 투명경영을 실천하고 솔선수범하여 근로자의 복지에 우선을 두는 기업들은 비교적 노조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긴 하지만 영세기업들의 경우 심각한 노사분규를 겪게 되면 경영위기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경기도에는 제조업을 포기하고 공장건물을 남에게 빌려주어 임대료를 받는 쪽으로 나가거나 중국 등으로 공장이전을 서두르는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이, 근로자에게는 일터의 소멸이 우려되고 있다. 최근의 노조활동은 근로자의 복지향상이라는 차원을 떠나 노조단체간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해당기업의 노조보다 상급 노조단체의 경쟁적인 개입으로 노사협의가 파국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한푼이라도 임금을 올려 받고 복지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일터 자체가 없어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춘추시대 송(宋)나라에 환퇴라는 사람이 천하에 진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었다. 환퇴는 왕이 그 보석을 탐내자 보석을 가지고 종적을 감춰 버렸다. 왕은 환관에게 속히 환퇴를 찾아내 보석을 감춰 둔 장소를 알아보라고 명했다. 환관이 어렵사리 찾아가자 환퇴는 서슴없이 말했다. “아, 그 보석 말인가? 그건 내가 도망칠 때 궁궐 앞 연못 속에 던져 버렸네” 환관이 그대로 보고하자 왕은 신하에게 당장 연못의 물을 다 퍼내고 보석을 찾으라고 명했다. 그러나 보석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애꿎은 물고기들만 다 말라죽고 말았다. 池魚之殃이라는 중국고사의 한토막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엔진은 수출이며 수출의 근본은 제조업이다. 중소기업 경영자는 노사문제 말고도 자금경색, 인력난, 환율불안, 내수위축, 환경규제 등 신경써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다른 모든 어려움은 경영자된 죄(?)로 어떻게든 버텨 볼 수 있겠지만 노조에만은 더 이상 해 볼 도리가 없다는 하소연은 이제 그냥 흘려들을 단계가 아닌 것 같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향해 노사가 어느때보다 힘을 모아야 할 시점에 池魚之殃의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철.한국무역협회 경기지부장

독자투고/주민투표제 시행 아직은 시기상조

최근 정부가 발표한 주민투표제 시안은 15대 국회 당시 법제정이 한차례 논의된 바가 있으나 국회의 임기만료로 법안이 자동 폐기되고, 이후 행정자치부에서 주민투표법 제정이 추진되었으나 여의치 않아 중단된 바 있다. 국민의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치지 못한 주민투표제는 투표관리를 지방자치단체에 맡김으로써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정책결정 기능 이외에 제도 자체의 성격상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을 일정부분 제한하게 되는 주민투표의 관리를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산하기구인 주민투표관리위원회에서 담당할 경우 공정성의 훼손은 뻔하다. 또한 설치와 사무기구의 기능이 기존의 공직선거관리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와 상당 부분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관리기구인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중복설치토록 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주민투표운동의 명목으로 공직선거운동을 하는 사전선거운동과 주민투표가 함께 이루어질 경우 단속이 어려워 자칫 주민투표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주민투표는 직접민주정치 제도의 근간이다. 이 제도는 1994년 지방자치법 개정시 도입근거가 마련된 이후 후속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실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준비가 부족하다면 제도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시행에 앞서 정부는 주민투표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면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도 동시에 예방하는 양자의 균형있는 조화를 위해 심층적인 논의과정을 통해 각계각층의 중지를 모으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박태은·양주군 회천읍 덕정리

8월 1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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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성 정부기금, 통·폐합해야 한다

감사원이 최근 공개한 정부기금 관리 실태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국민 세금이나 다름없는 출연금·부담금으로 구성된 정부기금이 효율도 떨어지고 목적에도 맞지 않는 사업에 지출됐다니 어이가 없다. 24개 정부 기금을 중·장기 단계적으로 폐지해 정부 예산에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감사원의 권고는 타당하다. 이유는 명백하다. 기금 설립 목적이 소멸됐는데도 여전히 운용하고 있거나 기금의 설립목적과 무관한 다른 사람들이 수혜대상이 돼 있는 등 운영실태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23개 부처가 58개 기금을 개별적으로 운용하면서 동일한 사업에 2개 부처 이상이 기금을 중복 지원했는가 하면 정작 자금이 필요한 사업에는 지원되지 않는 등 운용의 효율성도 크게 떨어진다. 감사원이 폐지를 권고한 내용은 14개 부처에서 운용중인 24개 기금이다. 소요 금액이 무려 20조 2천 396억원이다. 이 중 문화관광부가 5개로 폐지권고 대상이 가장 많다. 예컨대 문화예술진흥기금을 통해 471억8천900만원을 지원하고 있는 상태에서 방송위원회도 같은 목적으로 방송발전기금 94억7천9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수산발전기금으로 올해 수산물 가격안정, 유통구조 개선 사업에 420억원을 지원하는데 농림부에서도 같은 목적 사업에 농수산물가격 안정기금 3천612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운용하는 ‘농어가 목돈마련 저축장려기금’은 농어민들에 한정해 지원돼야 한다. 그러나 수혜자 중 절반 이상이 농어민이 아닌 사람들인데다 심지어 직장인이 자신의 집에서 개 두 마리를 기르면서 농어민으로 위장, 혜택 보는 사례도 적발됐다. 총 운용 규모가 191조원에 달하는 정부 기금 가운데 비효율 운영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는데도 감사원의 폐지권고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다. 구속력이 없는 권고를 받고 관련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기금개혁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기금들은 사업들을 단계적으로 통폐합하거나 예산사업으로 마땅히 전환해야 한다. 목적과 필요성이 불분명한 기금운용은 세금 낭비는 물론 전체적인 국가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떨어뜨린다. 부처 이익만을 챙길 때가 아니다.

수원시장의 과실, 시장이 책임져야

행정은 투명해야 한다. 행정의 기초가 되는 법률적, 사실적 판단은 객관화 돼야한다. 행정이 이에 부응하지 못하면 행정결정 병폐의 특성 중 하나로 꼽히는 권력 남용의 지탄을 면치 못한다. 수원시장이 대규모 건축허가를 내준 문제의 연무동 땅을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에 공원 부지로 용도지역 변경을 진달키로 결정한 것은 재량권 남용이다. 원래 이 부지는 시유지였던 것을 불하했다. 공원을 조성하려면 시유지 때 했어야 옳다. 이어 시가 매각한 땅에 대규모 건축허가 신청이 있어 시는 건축을 허가했다. 용도지역 변경을 할 요량이면 건축허가를 유보했어야 했다. 건축공사는 시작되고 분양계약이 이루어 졌다. 이러한 땅을 이제 와서 공원으로 조성한다고 한다. 그럼 수원시장은 건축허가의 책임을 어떻게 지겠다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 행정의 공신력 추락도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건축주와 분양계약자들의 재산권 침해로 인한 피해가 실로 막심하다. 시장 자신이 허가하여 건축중인 땅을 두고 시장이 뒤늦게 용도지역 변경에 나서는 이런 엉터리 행정이 또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한다지만 시장의 과실로 인해 수십억원대로 추정되는 손실 보상을 시비로 하라고 시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은 아니다. 보상을 하려면 시장 이하 관련 공무원들이 개인 돈으로 보상해야 한다. 공원 조성의 명분이 능사가 아니다. 방법이 옳아야 한다. 리어카 행상인의 치부책보다 못한 하자 투성이의 이러한 행정은 행정편의도 아닌 행정독재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수원시의 태도다. 지역사회와 지역주민들에게 더 할 수 없는 심려를 끼치고 있으면서도 시장은 물론이고 누구 한 사람 공식 사과를 하는 공무원이 없는 것은 일말의 도덕성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사태 해결을 위해 누구 하나 정면으로 나서고자 하는 공무원이 없는 것은 책임 회피 행태의 극치다. 수원시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정말 걱정된다. 사태는 어차피 법정으로까지 갈 전망이다. 시장의 현저한 과실이 엉뚱한 시민의 손실로 돌아오면 시장에게 변상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보아 앞으로 이 점을 크게 주목하고자 한다.

어린이 도박게임

사행성 게임기 앞에 아이들이 몰려 있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사행성 게임기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성인 카지노 형식을 본뜬 게임기들이 잇따라 등장하는데다 돈처럼 쓸 수 있는 ‘칩’까지 도입하고 있어 더욱 걱정된다. 펀치게임은 원래 목표물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쳐 재미로 자신의 펀치력을 확인해 보는 게임이지만 여기에 ‘도박성’을 곁들여 666, 777, 888 등 같은 점수가 나오면 메달이 쏟아지도록 기계를 개조했다. 점수만큼 구슬이 나오게 돼 있는 ‘미니사격기’도 나왔다. 게임기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단추를 누르면 게임기 안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원 안에 배열된 0~25까지의 숫자 중 한 곳에 화살표가 멈추면 해당 숫자만큼 금속메달이 게임기 밖으로 쏟아진다. 메달은 문구점에서 현금 100원과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회전판을 돌려주는 ‘딜러’만 없을 뿐 성인 카지노의 ‘룰렛’과 다를 게 없다. 대부분 ‘0’이란 숫자에 멈추기 일쑤지만, 간혹 ‘5’나 ‘7’앞에 멈출 때면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이렇게 한 아이가 100원짜리 동전 20개를 모두 탕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5분 안팎이다. 처음에는 5~6학년 남학생들이 주로 했는데 요즘엔 2~3학년들이나 여자애들도 즐긴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상혼이 초등학교 앞이나 동네 문구점 앞에서 아이들에게 사실상의 ‘카지노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문구점들간의 경쟁이 심해져 일부에서는 메달 대신 돈이 나오는 게임기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 게임기들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정식 등급허가를 받기는 했다. 그러나 게임기 업체들이 허가를 받은 뒤 게임기에 사행성을 가미해 제조하거나 일반 문구점 주인들이 게임상품을 돈으로 바꿔주는 등 불법 변칙운용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단속 주체가 모호해 어떤 행정기관도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단속이 실시되는 경우도 없다. 학교측이 어린이게임기 철거를 요구하는 게 효과적인 대응책이지만 그런 일을 할 훌륭한 학교가 있을 리 만무다. 오락의 탈을 쓴 도박게임에 물들고 있는 아이들의 장래가 염려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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