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새벽 한 수영장 탈의실. 새벽 수영을 마친 초등학생 10여 명이 옷을 갈아입으며 재갈재갈 대는 수다로 탈의실 전체가 시끌벅적하다. 아침잠 부족 불만이나, 수영 선생님에 대한 뒷담화나 하겠거니 했던 수다 내용이 내 귀를 의심케 한다. A학생=“탄핵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야, 결정 이후가 더 큰 문제이지” B학생=“결정 후에도 싸움이 계속되겠지?” A학생=“당연히 그렇겠지, 왜 (어른들은)이런 일을 만들어 가지고 난리 들이야” B학생=“맞아, 그리고 왜 거기(검찰)만 들어가면 공항장애가 생기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거야?, 일반 병원에 가면 정상인데 하하하~” C학생=“이제 부터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가 더 큰 문제 일 걸” D학생=“그러면 이제부터 우리가 중국하고 싸워야 하는 것 아냐?” C학생=“우리나라가 중국하고 싸울 힘이 있을까?” 탄핵과 사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뒤섞인 수다가 옷을 모두 갈아입고 탈의실을 나서기까지 10여 분간 이어졌다. 초등학생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대화 내용이 당황스러웠고, 이 같은 주제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에 또 한번 놀랐다. 초등학생들의 대화 내용이 이 정도라면 온 나라가 탄핵과 사드뿐이라는 생각에 겁이 덜컥 들기도 했다. 탄핵 여부 결정이 초읽기에 돌입하고, 사드 장비가 국내로 반입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찬·반 목소리가 두 갈래로 갈라서는 모양새이다. ‘땡! 탄핵’, ‘땡! 사드’ 뉴스가 수개월째 반복되면서 어린이들까지도 탄핵과 사드라는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쩌다 이 모양까지 됐을까. 이 어린이들의 미래는 어디 가서 찾을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탄핵이나 사드 같은 무서운 단어가 어린이들의 수다거리로 등장하는 대한민국의 한 어른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딱지·구슬치기, 썰매, 달고나 뽑기, 뻔데기 등 우리 어릴 적 수다거리가 문득 그리워진다. 유제홍 인천본사 정치부국장
오피니언
유제홍 인천본사 정치부국장
2017-03-08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