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쥐 잡기 운동

초등학교 시절, 주변엔 쥐가 많았다. 헛간이나 마루 밑, 화장실, 텃밭 등 곳곳에서 반갑지도 않은데 자주 만났다. 시골집 천정은 쥐들의 놀이터인지, 밤이면 쥐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엄청 시끄러웠다.옆에 있던 책이며 베개를 던지면 잠시 조용한 듯하다 또 찍찍거리며 돌아다녔다. 쥐 오줌에 천정도 얼룩덜룩했다. 잠자는데 어느 날 천정에서 쥐가 뚝,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오싹해졌다. 집 주변엔 쥐약을 놓거나 쥐덫을 놓아 죽은 쥐도 자주 접했다. 다행히 학교에서 쥐꼬리를 가져오게 하진 않았다. 1970년대 농촌엔 쥐가 많았다. 정부에서 매년 가을부터 봄까지 쥐 잡기 운동을 벌였을 정도다. 농가마다 쥐약을 무료로 나눠주고, 쥐 잡는 날을 정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쥐약을 놓도록 했다. 관내 공무원들은 담당마을에 출장을 나가 쥐약 놓기를 독려했다. 며칠 후 마을 이장들은 죽은 쥐꼬리를 잘라 모아 면사무소에서 확인을 받기도 했다. 쥐 잡기 역사는 광복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이승만 정부는 1947년 12월부터 쥐 잡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당시 신문의 쥐약 광고엔 ‘쥐 없는 가정은 명랑한 가정, 조국을 위하여 쥐를 잡자!’라는 문구가 사용됐다. 온 국민이 사활을 걸듯 쥐 잡기에 나선 것은 박정희 정권때였다. 애써 농사 지은 것을 쥐가 먹어 없애니 식량안보 차원에서 범국민운동으로 추진했다. 동네 곳곳엔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한 집에 한 마리만 잡아도 수만 명이 먹고 산다’ 등의 구호가 적힌 선전물이 요란스럽게 나붙었다. 전국 일제 쥐 잡기 운동은 80년대에도 계속됐다. 90년대 들어 쥐 잡기 운동은 사라졌지만 쥐가 없어진 건 아니다. 농촌 환경이 바뀌어 예전보다 줄어든 것이지 쥐는 여전히 번식력 강한 동물로 우리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 고양이가 늘었어도 쥐는 잘 못잡는 것 같다. 일부 농촌에서 최근 쥐 잡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쥐가 야생 조류와 함께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대표적인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벼 낟알이나 콩 등 곡식이 떨어져 있는 논밭에 AI에 감염된 철새가 내려앉게 되고 이 철새의 분변을 묻힌 들쥐가 가금류 농장을 드나들면서 AI를 전파하고 있다. 이에 AI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자체들이 고육지책으로 쥐 소탕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AI 때문에 때 아닌 쥐잡기라니 시계바늘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아이와 함께한 광화문 촛불 집회

매주 주말이면 서울 광화문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의 집회가 열린다. 집회장엔 노인, 청년, 고등학생, 어린이 등 남녀노소 모두가 찾고 있다. 비폭력 등 평화롭고, 질서 정연하게 열리는 탓인지 부쩍 자녀와 함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LED 촛불을 든 어린아이를 목마 태운 아빠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흔할 정도다. 물론 필자도 그중 한 명이다. 사람들은 ‘왜 그런 곳에 아이까지 데리고 갔느냐?’고 묻는다. 여기서 ‘왜 그런 곳에’라는 말은 분명 ‘집회 및 시위 현장이라 위험할 텐데…’라는 걱정 섞인 말일 테다. 또는 위험해서라기보다는 정서 및 교육적인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비폭력 집회 현장이라지만, ‘대통령 하야’라는 부정적인 말이 아이의 정서에 미칠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인 셈이다. 하지만 난 아이들도 이 사회적 현상을 눈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는 못할 테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왜 우리가 그곳에 갔는지, 또 무엇을 외쳤는지 잘 모를 것이다. 단지 사람 많은 곳에 간 데다, 흥겨운 노랫소리 등 때문에 마냥 즐거웠을 것이다. 1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그곳에 모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집회는 결코 폭력적이지도 않고, 불법도 아니다. 그리고 이젠 정치적인 집회도 아니다. 모든 국민이 한목소리를 내는 자리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 같은 집회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향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그들의 세대에서도 만약 비슷한 일이 발생하면 거리로 나와 한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이 같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반드시 꼭 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만약에 아빠가 뭔가 잘못했다면, 동생과 함께 아빠에게 이처럼 떳떳하게 말해라. 그러면 아빠는 네게 ‘왜 이러느냐’며 화를 내지 않을 거야. 대신 잘못된 점을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그리고 그 약속을 꼭 지킬게.” 인천본사 이민우 사회부장

[지지대] 나의 장점속에 나의 행복이

‘자신의 장점을 정리해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삶에 큰 용기가 된다. 매일 자신의 ‘열등감’만 되뇌며 소극적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장점’만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생활한다면 훨씬 삶이 윤택해진다고 한다. 어느 자기계발 강사가 강의 중에 수강생들에게 과제를 내 줬다. “자신의 장점 30가지를 지금 백지에 써서 제출하기 바랍니다. 두 장을 써서 한 장은 자신이 보관하며 매일 아침 낭독해 보세요”라고 했다. 수강생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수강생들은 백지에 하나하나 자신의 장점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10여가지는 다소 쉽게 써 내려가는 듯 했다. 그러나 30가지를 다 채우려니 그리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수강생이 손을 들고 “단점 30가지를 쓰는 게 훨씬 쉬울 것 같아요”라고 강사에게 말했다. 이에 강사는 “오늘 강의에서 단점은 전혀 필요하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이윽고 수강생들은 저마다 30가지씩 장점을 써냈다. 강사는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지금 써낸 장점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 보세요. 그러면 일이 더욱 잘 풀리고, 매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라고 충고했다. 6개월 후 그 강사가 다시 왔다. 한 수강생이 일어나 그 강사에게 큰 절을 했다. 그는 “강사님 덕분에 제 삶에 용기를 얻고 온 가족이 행복하게 되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대부분 수강생들도 “강사님의 말대로 장점만 생각하고 살아보니 좋은 일이 많았다”고 했다.또다른 수강생들은 “그런데 그 충고를 1~2개월 후 잊어버렸다”고 했다. 강사는 웃으며 “오늘부터 꼭 잊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매일 생각하며 즐겁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 열등감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기 쉽다. 사업에 실패하고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과오는 쌓이기 마련이다. 그만큼 번민이 늘어날 수 있다.대학수능시험에서 실패해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못 갔을 경우 평생 스트레스로 남기도 한다. 하지만 잊어야 한다. 잊어야 더욱더 큰일을 만날수 있다. 공부로 안되면 사업에서 성공하면 되지 않는가? 장점만 생각하고 장점을 극대화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자. 김신호 인천본사 경제부 부국장

[지지대] 서랍 속 공소사실·대통령 하야

꽤 유명한 의료계 사건이었다. 명문대 출신의 병원장이 기소됐다. 호화 증인단이 법정을 장악했다. 복잡한 의학적 변론에 검찰이 고전을 거듭했다. 그때 단 한 명의 증인이 끝까지 검찰 측 주장을 지원했다. 경영과 진료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간호사였다. 병원장 유무죄에 가장 큰 비중이 있던 증인이었다. 그 간호사는 검사가 묻는 말에 처음부터 끝까지 “맞습니다”로 일관했다. ▶검찰 주변에서 소문이 돌았다. 간호사와 병원장의 ‘관계’였다. 평소에도 동료 간호사들 사이에 둘의 관계는 ‘뒷담화’의 대상이었다. 취재 기자들도 그런 뒷담화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검사가 둘의 관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했다. 하지만, 공소장에는 넣지 않았다. 간호사를 압박하는 용도로 썼다. 간호사가 검찰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결국 병원장은 유죄가 됐고 병원은 문을 닫았다. ▶‘서랍 속 공소장’이란 말이 있다. 서랍이란 ‘검사 책상 서랍’을, 공소장이란 ‘숨겨진 비리’를 말한다. 당사자들에겐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 무엇’이 불법인 경우도 있지만, 부도덕인 경우가 더 많다. 그 사건에서 검사가 쥐고 있던 ‘서랍 속 공소장’도 불륜이었다는 것이 검찰 주변의 중론이었다. ▶‘정호성 녹음 파일’이 관심을 끌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적 범죄 증거가 포함됐다는 얘기도 있고, 국정 무능의 실상이 포함됐다는 얘기도 있다. 대통령이 최순실을 ‘선생님’이라 불렀고, 최순실은 대통령에게 ‘지시’를 했다는 얘기도 있다. 내용은 이미 찌라시로 돌았다. 국민 서너명만 모이면 이 얘기를 했다. ▶여기엔 검찰발(發)로 포장된 언론 보도도 한몫했다. 어느 방송사는 통화 내용이 10초만 공개돼도 촛불이 횃불 될 것이라고 했다. 어느 신문은 통화 내용을 들은 검사들이 대통령의 무능함에 분노했다고도 썼다. 모두 익명의 검찰 관계자를 출처라고 소개했다. 급기야 언론 보도는 통화 내용의 공개 시기를 점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현직 검사 A는 ‘미친 소리’라고 일갈했다. 검찰에게 현행법-형법 126조 피의사실공포죄-을 위반하는 범죄자가 되라는 얘기라고 했다. 특별수사본부도 진화에 나섰다. 항간의 떠도는 통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런데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정호성 녹음 파일’이 회자된 지 이미 4, 5일이 지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 번 방향을 튼 여론은 되돌아가지 않았다. 앞서의 찌라시와 검찰발 보도가 진실일 거라고 모두가 믿었다. ▶이러면서 ‘정호성 녹음 파일’은 박 대통령 사건의 ‘서랍 속 공소장’이 돼버렸다. 박 대통령 측을 압박하는 ‘그 무엇’이 돼버렸다. 그리고 오늘(29일), 대통령은 하야를 얘기했다. 그 옛날, ‘서랍 속 공소장’ 앞에 병원장이 병원문을 닫은 것처럼 ‘정호성 녹음 파일’ 앞에 대통령이 청와대 문을 떠나기로 했다. 역시 ‘공개된 공소장’보다 무서운 ‘서랍 속 공소장’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연탄 가뭄

‘연탄’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월동준비로 김장과 함께 연탄을 들여 놓으면 뿌듯했던 일,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연탄불을 갈아야 했던 일, 연탄 구멍을 맞추려다 가스를 마셔 캑캑대던 일, 연탄불을 꺼뜨려 덜덜 떨며 번개탄 피우던 일, 연탄불에 달고나를 만들어 먹던 일 등 저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민의 애환이 서린 연탄 한 장에도 삶의 교훈이 담겨 있다. 남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불태우는 연탄처럼 우리 몸도 남을 위해 불사를 열정이 있다면 이 사회가 춥거나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연탄은 아련한 추억이고 낭만이다. 이젠 뒷전으로 밀려난 연탄이지만 또 다른 이들에겐 아직도 절박한 현실이다. 연탄이 없어 올겨울 추위가 걱정이고, 오늘도 차디찬 방에서 떨고 있다. 현재 연탄 한 장의 소비자 가격은 573원이다. 지난달 초 500원에서 14.6%나 인상했다. 운송비를 포함하면 장당 600원은 된다. 전국에서 15만 가구가 연탄을 난방 연료로 사용한다. 주로 쪽방, 홀몸노인, 노숙인 등 저소득층이다. 연탄값을 꼭 올려야 했는지 의문이다. 연탄값 상승도 부담이지만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에 따른 기부 한파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블랙홀이 되면서 사회적 관심이 줄어 연탄 후원이 급감했다. 특히 전체 연탄 후원의 70% 정도를 차지했던 공공기관과 기업 참여가 줄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부터 개인·기업·공공기관 등의 후원을 받아 저소득층에 연탄을 무료로 나눠줘 온 비영리법인 ‘연탄은행’ 관계자들의 표정이 요즘 많이 어둡다. 연탄 후원이 크게 줄어 빈곤층 한 가구당 한 달에 150장의 연탄을 보내야 하는데 올해는 120장으로 줄여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시행 초기라 기준이 애매해 혼란을 빚거나 직무관련성ㆍ대가성 같은 요인들이 엉뚱하게 해석돼 연탄 후원이 급감한다면 빨리 명쾌한 유권해석을 내려 빈곤층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해야 한다. 또 국민 관심사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촛불집회에만 쏠리고 있는데 추위에 떠는 어려운 이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박 대통령 때문에 춥고 배고픈 사람들만 더 힘들게 됐다”는 어느 쪽방촌 할머니 말씀이 가슴 아프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동전없는 사회

‘엄마 100원만…’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동전을 쓰는 사람도 들고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집안이나 사무실 서랍 여기저기 처박혀 있는 신세가 됐다. 동전을 모으던 돼지저금통도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동전 사용이 줄면서 한국은행은 2006년부터 1원과 5원짜리 동전 발행을 중단했다. 정부가 ‘동전없는 사회(coinless society)’를 만들겠다고 한다. 일상 경제생활에서 동전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거스름돈을 계좌 이체, 충전식 선불카드, 카드 포인트 등으로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천원을 내고 500원짜리 껌 한 통을 구입했다면 거스름돈 500원을 지금의 동전이 아닌 다른 수단, 즉 카드 포인트나 마일리지, 전자화폐 등으로 거슬러 주는 방식이다. 선불카드나 사이버머니 등 다양한 형태의 지급 수단을 통해 사용하기 불편하고 관리 비용이 많이 드는 동전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동전은 새로 만드는데 필요한 비용 대비 사용빈도와 효율성을 고려하면 경제적 부담이 크다. 실제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발행하는 데 30원 정도 든다. 동전이 잘 회수되지 않아 매년 동전 발행에만 500억원이 소요된다. 파손된 동전을 폐기하는 비용으로도 100억원을 지출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은행은 2020년까지 ‘동전없는 사회’를 구현할 계획이다. 이는 ‘현금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로 가는 중간 단계라고 봐도 된다. 한국은행은 당장 내년 초부터 편의점에서 상품을 사고 지불한 현금의 거스름돈을 교통카드에 충전해 주는 식으로 시범사업을 한다. 이후 동전을 많이 쓰는 마트ㆍ약국 등 소매업종 전반으로 늘릴 계획이다. 거스름돈도 교통카드뿐 아니라 신용카드 충전이나 본인의 은행계좌 송금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라오스에서는 이미 ‘동전없는 사회’의 시스템 적용을 시작했다. 유럽의 일부 국가는 금융거래의 투명성, 금융기관의 비용 절감, 지하경제 축소 등을 위해 현금 사용을 제한해 ‘현금없는 사회’로 가고 있다. 동전없는 사회는 지폐 단위에 따른 물가 상승, 전산 및 보안문제가 생길 수 있어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노인 등 금융거래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이제 동전은 공중전화 걸 때, 즉석복권 긁을 때, 대형마트에서 카트 꺼낼 때 사용하던 ‘추억의 동전’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뛰는 영란이, 나는 순실이

사회적 이슈는 또 다른 이슈가 묻는다고들 한다.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공직사회와 경제계, 언론계, 교육계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주목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었다. 점심은 물론 저녁 약속과 술자리는 남의 나라 얘기였고, 그에 따른 여가 시간은 가족과 함께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 나갈 것 같은 ‘장밋빛 청사진’이 곳곳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영란이’를 한방에 무너뜨린, 더 센 녀석이 나타나 대한민국을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었다. ‘최순실’. 그녀는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그 공간에, 측천무후와 서태후를 능가하는 장악력을 보이며 ‘여성 상위 시대’의 방점을 찍은 인물이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화계를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도 모자라 이 나라 스포츠계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박태환’과 ‘김연아’까지 간섭하는 남다른 오지랖을 발휘했다. 2016년 11월, 이제 완벽하게 ‘순실이’는 ‘영란이’를 이 사회에서 지워 버렸다. ▶“오늘 저녁에 번개 어때요?” 전 출입처 홍보 담당자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도통 연락이 없던 터라 서운함과 반가움이 적절히 배합된 묘한 기분이었다. 마감을 하고 회사 앞 선술집에서 만난 우리 둘의 화제는 단연 ‘최순실 게이트’였다. 세세한 안줏거리 내용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 시간 가까운 번개팅은 줄곧 최순실 얘기로 귀결됐다. 두 달 전에 만나 김영란법을 고민하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 이제 자주 만나 이 답답한 대한민국 사회를 걱정하며 술 한잔하자고요” 헤어짐 속에 우리가 나눈 인사말이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세상의 부조리를 없애겠다고 뛰던 ‘영란이’는 종적을 감췄다. 대신 그 자리 위에선 ‘순실이’가 날고 있다. ‘권불십년(막강한 권력도 10년을 가지 못함)’이라고 했던가. 이제 우리는 제트 엔진을 달고 한없이 박근혜 정부에서 고공행진을 한 최순실의 모든 실체를 밝혀 다시는 쓸데없이 나는 일이 없도록 그 날개를 꺾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촛불로 태우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김규태 사회부 차장

[지지대] 대한민국이 살아야 한다

나라 꼴이 우습다.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법을 수호해야 할 법무부 장관은 사의를 표명했다. 최순실 게이트 한 달만이다. 최 씨의 국정농단 사태는 블랙홀이 되어 대한민국의 국정을 마비시키고 결국,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빨아들였다. ‘박근혜 = 원칙’ 공식은 무너진 지 오래고 국민의 절망감과 분노는 100만 촛불집회로 증명됐다. 전국 곳곳에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해외 집회도 확산하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버틴다.성난 민심을 외면하고 정치적 중립 의심이 된다며 검찰 조사까지 거부했다. 특검의 배수진을 치고 자발적 퇴진 대신 탄핵 절차를 밟는다. 왜일까. 하야 선택은 죽음보다 수치스럽고 치욕스럽기 때문이다. 장군의 딸로, 대통령의 영애로, 대한민국 첫 여성대통령으로서의 삶은 영예 그 자체였다. 직선제 개헌 이후 첫 과반 득표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여기에 특검ㆍ탄핵정국으로 갈수록 보수층은 재결집함으로써 지지율 회복도 기대할 수 있다. 자발적 퇴진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그래도 자신을 스스로 내려놔야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결단해야 한다. 그 길만이 자신을 믿고 국가운영을 맡긴 국민에 대한 예의이다. 당시 당선인 신분으로서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축하 무대에 올라 “이번 선거는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려는 열망이 가져온 국민 마음의 승리”, “민생 대통령, 약속대통령, 대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국민은 숨이 막히고 지친다. 미국 대선 결과로 국제정세는 불안한 가운데 급변하고 북핵 위협도 여전한데 우리만 ‘최순실 게이트’에 갇혀 제자리다.정치권과 국민은 흥분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가야 할 때다. 우선 박 대통령은 어수선한 정국타개를 위해 국회 추천 총리를 받아들이고 국회도 정치성을 배제, 경제를 살릴 인물을 총리로 추천해야 한다. 동시에 거국중립내각을 통한 개헌도 추진해야 한다. 전제가 있다. 정치권은 박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 약속이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탄핵이 꼭 해법은 아니다. 김창학 정치부장

[지지대] ‘박정희’ 휴교령·‘박근혜’ 동맹 휴업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선언이 나왔다.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 정지 등이 골자였다. 10여 일 뒤 이 선언에 ‘10월 유신(維新)’이란 명칭이 붙었다. 갖가지 형태의 압제 수단이 동원됐다. 정치활동 목적의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됐다.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에 대한 검열이 시행됐다. 여기에 대학생들을 억압할 수단, 즉 캠퍼스 안정화 방안도 포함됐다. 그 중 하나가 휴교령(休校令)이다. 주요 대학이 휴교령으로 교실문을 잠갔다. ▶공교롭게 ‘유신’의 몰락은 그 대학에서 시작됐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에서 시위가 시작됐다. 학생 5천여 명이 시작한 교내 시위가 저녁 무렵 시내로 번졌다. 다음 날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관공서가 공격받았고 인근 마산으로 확산됐다. 19일 마산대와 경남대 학생들이 시위에 가세했다. 여기에 노동자와 고등학생까지 나섰다. 이른바 ‘부마 항쟁’이다. 그리고 10여 일 뒤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살해됐다. ▶‘유신’ 이후 44년. 서울대 총학생회가 동맹 휴업을 선언했다. 목적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이다. 결정에 앞서 총학생회는 동맹휴업 발의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여기에 33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도 오는 25일 동맹휴업에 들어간다. 역시 학생을 대상으로 의견을 묻는 절차를 거쳤다. 전국적으로 대학생들의 동맹 휴업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학마다 내건 동맹 휴업의 목표는 같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세월의 길이만큼 많이 다른 휴교ㆍ휴업이다. 40년 전 휴교는 국가 권력이 결정했고, 40년 뒤 휴업은 학생이 결정했다. 40년 전 휴교는 입을 막는 것이고, 40년 뒤 휴업은 입을 여는 것이다. 40년 전 휴교 때는 무대 뒤에서 말했지만, 40년 뒤 휴업 때는 무대 위에서 말한다. 40년 전 휴교는 경찰이 주인이었고, 40년 뒤 휴업은 학생이 주인이다. 40년 전 목표는 아버지 대통령이었는데, 40년 뒤 목표는 딸 대통령이다. ▶그제나 지금이나 닮은 것은 학생들이다. 부패 없는 세상을 향한 목적이 같다. 부패 권력자를 끌어내리겠다는 목표가 같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도 그래서다. 결과까지 같아질까 봐 걱정이다. 40년 전 권력자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40년 뒤 권력자의 마지막이 어찌 될지 걱정이다. 영화롭고 행복한 마지막은 어차피 멀어진 듯하다. 그렇더라도 법과 원칙에 따른 ‘질서 있는 정리’ 정도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결정의 절반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달렸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수능 수험표 매매

‘2017 수험표(남자) 판매합니다. 그냥 사진만 교체하시면 돼요. 가격은 7만원입니다’ ‘수능 수험표 대여합니다. 사시는 지역 말씀해 주시면 물건 살때 동행해서 수험표 확인 가능합니다’ ‘여학생 수험표 급구!! 판매도 좋구 판매 부담스러우면 대여도 좋습니다. 가격은 5만원 이상 생각합니다’ 네이버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는 이 같은 수험표 매매 관련 글이 수십개 올라와 있다. 좀 황당하긴 하지만, 지난 17일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끝나고 수험표 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능 수험표를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고, 또 대여도 하고 있다. 중고나라 카페에서 수험표는 보통 4~5만원선에 거래되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당 2~3만원을 받고 동행하며 수험표를 빌려주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도 등장했다. 공부에 지친 수험생들을 격려한다는 취지로 수능 이후 업계마다 큰 폭의 할인 행사와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이런 각종 할인 혜택을 노리고 수험표를 사거나 대여하는 것이다. 수험표를 제시할 경우 패밀리 레스토랑, 커피숍, 영화관, 미용실, 안경점, 각종 의류브랜드, 놀이공원, 여행사 등에서 많게는 50% 이상 할인을 받을 수 있다.노트북 등을 살때는 몇십만원 싸게 살 수도 있고, 성형외과 같은 곳은 50~60% 할인이면 100만원 넘는 금액을 할인 받을 수도 있다. 수능 수험표가 만능 할인쿠폰이 되는 셈이다. 몇만원을 주고 수험표를 사도 충분히 남은 장사가 된다. 수능 수험표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증명사진 등 개인정보가 수록돼 있다. 자칫 개인정보 유출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범죄 등에 활용되면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수험표를 산 사람들은 수험생의 증명사진을 떼고 자신의 사진을 붙여 사용한다. 하지만 사진을 바꿔 붙이면 공문서 위조 처벌을 받게 된다. 또 수험표가 마치 자신의 것인양 물건을 사는데 이용했다면 할인받은 금액만큼 사기죄가 적용된다. 수험표를 거래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구입한 타인의 수험표로 이득을 보는 것은 범법 행위에 해당된다. 수험표를 구입해 할인 혜택을 보려다가 자칫 범법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험보느라 고생한 수험생들을 위한 선의의 할인 행사가 한쪽에선 돈벌이로 악용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할인 업체들에서도 일일이 본인 확인을 하지않는 경우가 많다. 불경기 탓에 알면서도 수능 특수를 노리는 듯해 보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포토라인

포토라인은 신문ㆍ방송사 사진·카메라 기자들이 더 이상 취재원에 접근하지 않기로 약속한 일종의 취재 경계선이다. 유명인사에 대한 과열 취재 경쟁으로 인한 몸싸움과 이에 따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설정한 것이다. 포토라인 설정은 1993년 1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검찰 소환이 계기가 됐다. 당시 정 회장은 국민당 대표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려 나왔는데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이 됐고,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정 회장 이마가 부딪혀 찢어지는 상처가 났다. 이후 무질서한 취재 현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질서유지 차원에서 포토라인이 설정됐다. 사진기자나 카메라 기자들은 포토라인의 약속을 지킨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갑작스런 시위나 시민들의 돌출 행동이 발생할 경우 포토라인이 무너지기도 한다. 포토라인은 우리 사회만의 독특한 관행이다. 피의자나 참고인을 검찰청사 앞에 잠깐 멈추게 한 뒤 사진을 촬영하고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것은 대중의 분노를 풀어주는 짧은 의식이기도 하다. 보통 검찰청사 1층 차에서 내려 포토라인 앞까지 걸어서 10초도 안걸리는 시간이지만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이 짧은 시간이 피의자들에겐 조사받는 시간보다 더 길고 치욕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사적(私的) 형벌’ 또는 ‘현대판 단두대’라고도 한다. 이에 어떤 피의자들은 플래시 세례를 피하기 위해, 눈빛과 표정을 숨기기 위해 모자나 마스크를 쓰고 포토라인을 지나기도 한다. 검찰청 포토라인이 설정된 이후 지난 22년간 권력형 비리사건에 연루된 거물들이 줄줄이 이곳에 섰다. 전두환·노태우·노무현 등은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나왔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들과 형이 포토라인에 섰다. 이젠, 현직 박근혜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서느냐 마느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관련해 최씨를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 사건 당사자들이 줄줄이 소환돼 포토라인에 섰다. 검찰은 수사 결과 최씨와 안 전 수석의 공소장 범죄 사실에 ‘대통령과 공모하여’라고 적시했다.박 대통령이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해 범죄 혐의 전반에 상당한 공모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직도 규명해야 할 의혹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쌀

농업은 미래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다. ‘농자지천하대본’이란 옛말이 있다. 농업ㆍ농촌이 모든 산업의 근본임을 말하는 것이다. 산업의 흐름 속에 뒤처져가는 형국이지만 그래도 보호돼야 할 최후의 산업이다. 최근 쌀 문제가 농업ㆍ농촌을 어둡게 하고 있다.수매현장에 나선 농가들의 표정은 무겁다.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꾸만 떨어져 가는 쌀 농사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한숨만 연발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결과, 올해 국내 쌀 생산량은 420만t으로 추정되고 있다. 4년 연속 420만t를 넘나들며 대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양곡재고량이 미운 오리 새끼처럼 늘고 있다. 지난 8월 기준 175만t에 달하고 있다. 매년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매입,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소비가 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1985년 128.1㎏이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이 지난해 62.9㎏까지 줄었다. 국민 1인당 하루 두 공기(밥 한 공기 100g 기준)도 먹지 않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정부는 농지를 줄이는데 혈안이다. 농지를 줄여서라도 쌀 생산을 억제해 보겠다는 발상이다. 경기도 또한 정부 정책에 부응, 1만 2천ha의 농지를 농업진흥지역에서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논을 밭으로 전환하는 등 타 용도의 전환도 장려하고 있다. 면적을 줄이다 보니 수치상으로는 생산량 감소가 예상된다. 하지만 이게 장기적 대책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우리의 식량자급에 문제는 없는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농업농촌을 걱정하는 많은 이들은 쌀에 대한 정책 변화와 공세적 소비책을 촉구하고 있다. FTA 협상을 다시 해서라도 쌀 문제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 및 지방 기관 단체 등 사회 모든 곳에서 쌀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는 범국민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지금의 경제적 논리(돈)에 봉착, 쉽지 않은 정책이다. 그렇지만 손해를 감내하더라도 지금부터 꼼꼼히 챙겨볼 문제다. 이런 자세변화가 최순실 게이트를 하나둘 헤쳐가는 경제 대안이 아닐까 싶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수능 대박 기원

포크나 모형 도끼, 족집게, 두루마리 휴지, 북, 손거울 등을 선물한다. 포크나 모형 도끼는 정답을 ‘잘 찍으라’는 것이고, 족집게는 ‘잘 맞추라’는 것이고, 휴지는 ‘잘 풀라’, 북은 ‘잘 쳐라’, 손거울은 ‘잘 보라’는 의미다. ‘시험에 확 붙어라’라는 소망으로 성냥을 주기도 한다. 풍선껌은 ‘점수가 한껏 부풀어 나기’를 바라는 맘이 담겼고, 주사위는 ‘잘 굴리라’는 기원이 담겼다. 젖 먹던 힘까지 내라는 의미로 ‘젖병’을 선물하기도 한다.▶인생을 좌우할 만한 시험을 앞둔 이에게 줄 선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엿이다. 엿은 시험을 잘 치라는 뜻도 있지만 원하는 곳에 떡 하니 붙으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70~80년대 고사장 정문은 물론 담벼락까지도 자식이 대학에 붙기를 희망하는 부모들이 붙여 놓은 엿들도 빼곡했던 이유다. 예비 및 본고사가 있던 시절이니 대학을 먼저 지원하고 나서 지원한 학교나 학교가 지정한 곳에서 시험을 봤다. 엿이나 찹쌀떡의 성분이 주는 ‘(찰싹) 붙다’의 선물이 대세였다.▶1980년 7·30 교육개혁에 의한 대학입시제도의 변화는 수능 선물마저 변화시킨다. 대학입시선발을 예비고사와 고교내신성적으로 하고 대학별 본고사를 폐지하면서 ‘선시험 후지원’이냐, ‘선지원 후시험’이냐 하는 지원시기 등이 달라졌다. 1994년 ‘선시험 후지원’ 형식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등장하면서 수능 선물은 더욱 다양해진다. 우선 시험을 잘 치러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품들이 기업의 상술과 맞물려 특수를 누리게 된다.▶최근엔 기분 전환과 집중력 향상에 효과적인 ‘초콜릿’부터 두뇌 발달을 돕는 호두, 검은콩을 비롯한 집중력 강화 패치, 아로마 양초, 비타민제, 홍삼, 수능사과에 이르기까지 수험생 건강과 상태를 고려한 실용적인 선물이 대세다. 선물은 한층 다양해졌지만, 한결같은 건 수험생이 시험을 잘 치르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겼다는 거다. 묵묵히 학업에 정진해 온 수험생들이 ‘잘 풀고, 잘 찍고, 대박 나라’고 전해준 선물의 효과를 톡톡히 보길 바란다. 거기에 더해 운까지 따라준다면 더없이 좋겠다. 오늘, 60만5천987명 수학능력시험 응시생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박수영 불출석

경기도의회가 박수영 전 경기도 행정 1부지사를 부른다고 했다. K컬처밸리 조사특별위원회의 증인 자격이다. 박 전 부지사로부터 K컬처밸리 사업의 전모를 듣기 위해서다. 박 전 부지사는 이 사업을 청와대로부터 직접 제안받은 당사자다. 부지 임대 방법, 사업자 선정 등 행정적 업무를 총괄했다. 특위로서는 사업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한 증인이라 판단한 듯하다. ‘안 나오면 남경필 지사를 물고 늘어지겠다’며 으름장도 내비쳤다. ▶박 전 부지사의 공식 입장은 ‘고민해 보겠다’다. “(도의회로부터) 공식적인 요구가 오면 고민해보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하지만,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스스로 ‘나의 역할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미 다 공개됐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다.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지난해 2월 초 사업 제안 전화를 받았다’거나 ‘경기도 발전을 위해 기꺼이 받아들였다’거나 ‘주변 토지 규제 완화라는 반대급부까지 얻어냈다’는 얘기가 대부분 공개됐다. ‘그가 했던’ 일은 새롭게 공개될 일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특위는 박 전 부지사 출석에 매달린다. ‘그가 했던’ 일을 묻겠다는 게 아니다. ‘그가 봤던’ 일을 묻겠다는 것이다. ‘사업 특혜와 남 지사 역할’ ‘안종범 수석과 남 지사 관계’를 묻겠다는 것이다. ‘남 지사의 부적절한 처신을 말해보라’는 청문(聽聞)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빤히 읽고 있을 박 전 부지사다. 출석 요구에 응할 리 없다. 15일 통화에서도 “(남 지사는) 내가 부지사로 있으면서 모셨던 분 아닌가”라며 고민을 얘기했다. ▶시간 낭비다. K컬처밸리 사업의 논쟁 상대는 특위와 남 지사다. 특위는 전직 부지사를 통해 남 지사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을 버려야 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남 지사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 남 지사는 시간과 망각의 커튼 뒤에서 침묵하는 모습을 버려야 한다. 억울한 게 있으면 직접 특위에 해명해야 한다. 양쪽 모두 괜스레 빙빙 돌고 있다. 피해자는 경기도민이고 속 타는 건 고양시민이다. 흔들리는 조(兆) 단위 사업을 조마조마하게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국민이 궁금해한다. 2년 반 동안 계속된 침묵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안타까운 상황까지 왔다. 일찍 고백했더라면 지금의 ‘참담한 추측’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고백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이해 못 할 침묵이 만든 감당 못할 상황이다. 보름 여를 끌고 있는 K컬처밸리 논란이 그렇게 가고 있다. 도대체 K컬처밸리에 무슨 곡절이 있는 건가. 공개되면 남 지사가 큰일 날 뭔가가 있기는 한 건가.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치킨 런

닭장 속의 닭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닭장 속에서 사육당하며 살다가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을 모아 스스로 닭장을 벗어나는 것, ‘치킨 런’이다. 2000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치킨 런’은 영국의 한 닭 농장을 배경으로 닭들이 잡아먹히기 전에 탈주를 시도하는 이야기다. 한국사회의 소비 트렌드를 연구해 온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2017년 키워드로 ‘치킨 런’(CHICKEN RUN)을 제시했다. 닭 띠 해인 내년 정유년(丁酉年) 키워드로 ‘치킨 런’을 선정한 이유는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든 날아서 탈출하려는 닭들처럼 한국 경제도 위기에서 벗어나 비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치킨 런’은 10개 소비트렌드의 영문 앞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10개 트렌드는 △욜로 라이프(C’mon, YOLO) △새로운 B+ 프리미엄(Heading to B+ Premium) △나는 픽미세대(I am the Pick-me Generation) △캄테크(Calm-Tech, Felt but not seen) △영업의 시대가 온다(Key to success: Sales) △내멋대로 1코노미(Era of ‘Aloners’) △버려야 산다, 바이바이 센세이션(No Give up, no live up) △소비자가 만드는 수요중심시장(Rebuilding Consumertopia) △경험 is 뭔들(User Experience Matters) △각자도생의 시대(No one backs you up) 등이다. 이 가운데 주목하는 트렌드는 제각기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한다는 의미의 ‘각자도생의 시대’다.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각자도생을 얘기한다. 생존배낭은 각자도생의 대표적 상품이다. 믿을 건 나 자신 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은 현재 지향적인 소비생활을 뜻하는 ‘욜로 라이프’로 이어지고 있다. ‘욜로(YOLO)’는 한 번뿐인 인생을 뜻하는 ‘You Only Live Once’를 줄인 용어로 미래보다는 현재 느끼는 ‘즉시적 행복’을 중요시한다. 김 교수는 한국 경제를 ‘엔진이 고장 난 조각배’에 비유하며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는데 선장도 구명정도 보이지 않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야말로 치킨 런이 필요한데 결코 쉽지 않다.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야 겨우 탈출할 수 있을까 말까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 희망이 없다면 치킨 런은 없을 테니까.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집단 우울증

“세금을 낸 줄 알았는데 복채를 내고 있었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비탄과 허탈함을 국민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설마 했던 최순실의 국정 농단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자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까지 대규모 촛불집회에 나섰다. 대통령의 뒤에 숨어 국정을 농단해온 한 정체불명의 여인 때문에 대한민국은 지금 분노와 허탈감, 무기력증에 빠졌다. TV에서 반복돼 나오는 ‘최순실 국정 농단’ 보도를 볼 때마다 속에서 뭔가 치밀어올라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진다.시간이 갈수록 비리가 쏟아지고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허탈감을 느낀다. 믿었던 사람한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아 배신감을 느낀다. 홧김에 자꾸 술을 먹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집단 우울증’으로 진단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한을 ‘비선 실세’인 최순실이 휘둘렀고, 국민의 세금과 각종 이권사업도 최순실의 먹잇감이 됐다. 대기업들은 그녀에게 돈을 싸들고 줄을 대기 바빴다. 국민들은 ‘도대체 이 여자가 뭐길래?’하며 믿기지 않는 상황에 집단 패닉에 빠졌다.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다. 최순실 사태로 ‘순실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최씨 일가의 국정 농단과 함께 축적 과정이 불명확한 재산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상실감과 무력감은 더욱 커졌다. 검찰에 소환되던 날, 최씨의 명품 신발과 가방이 종일 SNS를 달궜던 것도 ‘순실증’과 무관치 않다. “어렵게 취업해 생활하고 있는데 ‘돈도 실력이다. 부모를 원망하라’는 정유라의 말을 생각하면 열심히 일해 뭐하나 하는 좌절에 빠진다”는 직장인의 고백이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몇 년간 공부했는데 이제는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공시족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믿고 수십 년간 지지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려고 지지했나 하는 생각에 잠이 안온다”는 노인도 있다. 많은 국민이 허탈함을 표출하고, 청년층은 원칙이 무너진 사회를 빗대 ‘이게 나라냐’며 울분을 터트리고 있다. 2년 전 세월호 참사 때도 우리 국민은 집단 우울증에 시달렸다. 집단 우울증은 국민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 사회가 다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포함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해서 관련자를 엄정하게 처벌,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것이 상처받은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위로이자 치유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트럼프 쇼크의 교훈

지난주 투자한 주식이 30%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상종가를 치다 트럼프에 일격을 맞았다. 힐러리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상한가를 치겠지’라는 생각으로 빼지 않고 욕심을 부렸는데, 이거 ‘웬걸’ 하한가 직전으로 곤두박질 쳤다.‘젠장’, 오랜만에 투자한 주식이 트럼프에 덜미를 잡힐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9일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전 세계 언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연일 ‘국정 농단 최순실 사태’로 제기된 각종 의혹을 다루던 종편을 비롯한 공중파 뉴스, 신문사의 지면도 트럼프 기사로 도배됐다. 사실상 ‘최순실 사태’로 미국 대선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대한민국은 ‘불의의 일격’을 맞았다.경제가 요동치고 안보가 흔들리며 트럼프의 당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대안을 찾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트럼프가 후보시절 주장한 대로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고립주의ㆍ보호무역이 추진되면 전 세계에 거대한 충격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동북아시아 끝자락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의 운명이 미국 대통령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국정 농단 최순실’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 당선의 높은 파고가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앵그리 화이트’ , 미국인들의 기성정치를 향한 분노가 이번 대선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세계 정치가 바뀌고 문명이 바뀌는 분위기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구한말시대로 보다 더 못한 상황인듯하다.미국 대통령이 당선됐을 뿐인데 대한민국이 요동친다. 초강대국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민국의 정치ㆍ경제ㆍ외교ㆍ안보가 흔들린다. 조선 후기 기득권 세력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지 못했다.19세기 후반 조선의 실패는 우리 민족 역량의 한계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다만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문명의 변화’를 바로 읽고 새로운 세상을 제대로 준비해 과거의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원재 정치부차장

[지지대] 우울한 월동준비

독거노인이나 복지시설에 후원하는 연탄, 김장 김치는 소외계층들이 한겨울을 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아직도 세상은 따뜻하구나’하는 생각에 후원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곤 한다. 연말에 집중되는 이 같은 기부는 우리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각박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유독 소외계층들을 대상으로 한 후원이나 봉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들에게 올해 월동준비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 시행에,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초겨울 바람이 더 차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의 취지는 부정청탁 근절, 부패 방지다. 이 같은 긍정적인 취지에 대한민국 대부분 국민들이 동의했다. 이제 세상이 좀 더 청렴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했다. 그런데 시행 초기 김영란법이 엉뚱한 곳에 피해를 주는 현상이 나타났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전국 31곳의 연탄은행이 확보한 연탄이 약 40%나 감소했다고 한다. 연탄은행은 이 같은 현상을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법 시행 초기 구설에 오를 수 있다며 바짝 웅크리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문화계도 한겨울 찬바람이 불기는 마찬가지다. 각종 문화사업이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예산을 환수당할 위기에 놓여 있고, 사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직접적인 잘못은 물론, 연관이 없는데도 공공기관과 공무원들은 사업지원에 ‘주저주저’한다. 기업들의 ‘괜한 오해를 받지 않을까’하는 눈치 보기가 길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타격을 입는 사람들은 금수저들이 아니라 없는 사람들 이른 바 흙수저들이라 안타깝다.비단 연탄을 지원받아야 할 소외계층뿐만 아니라 불경기 탓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 등 우리 주변에 보이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피해 당사자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핑계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주변을 돌아보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보면 어떨까?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검사의 째려보기

“나는 또라이다. 들어오는 건 자유지만 나가는 건 맘대로 안 된다.” “질문을 이해할 수준이 안 되나. 당신은 모르잖아.” 검사가 피의자 또는 증인에게 했다는 말이다. 심지어 입회 변호사에 대한 막말도 있다. “대신 처벌받을 거 아니면 조용하라.” 이런 고압적 태도에 피조사자들은 기겁한다. 한 증인은 “검사가 무섭게 해서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올 초 대한변호사협회가 공개한 검사평가 자료 속 사례들이다. ▶이런 막말 못지않은 수사 폐습이 ‘째려보기’다. 조사에 앞서 검사 앞에 피의자가 앉고, 검사는 아무 말없이 피의자 눈을 째려보고, 만 가지 생각에 빠진 피의자가 눈길 둘 곳을 모른다. 수사를 받은 피의자들이 자주 털어놓는 경험담이다. 피의자가 받는 순간 모멸감이 막말 못지않게 크다. 차라리 막말은 인권침해라며 항의라도 할 수 있다. 째려보기는 그럴 수도 없다. ‘검사가 째려봐서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진정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막말 검사’는 많이 줄었지만 ‘째려보기 검사’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수사관 출신의 P씨는 이런 말을 한다. “뇌물 수사는 기싸움이고 말싸움이다. 기싸움으로 기선을 제압한 뒤 말싸움으로 조서를 완성해가는 작업이다.” 수원지검 특수부와 대검중수부에서 이름을 날렸던 그다. 현역 시절, ‘거물 낚는 낚시꾼’으로 불렸었다. 그런 그가 자주 얘기하는 경험담이다. 사실 그렇다. 피의자의 기를 꺾는 것은 수사의 시작이다. 그 방법으로 막말과 째려보기가 사용돼온 것도 사실이다. ▶검찰에 출석하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째려보기가 논란이다. 째려본 상대는 처가 회사의 횡령 여부를 묻던 여기자였다. 질문을 받은 우 전 수석이 갑자기 여기자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리곤 ‘들어갑시다’라며 청사 안으로 사라졌다. 이 장면이 TV를 통해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지켜보던 국민이 분노했다. ‘저 눈○을 파버리고 싶다’는 댓글에서 분노의 정도가 느껴진다. ▶막말과 째려보기를 불가피한 수사상 기싸움이라고 치자. 범죄를 파헤친다는 명분은 있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의 째려보기는 이도 저도 아니다. 잘못을 따져 묻는 여기자를 범죄자 취급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국민에 모멸감을 줬다. 변협의 올 초 자료에는 이런 사례도 있다. ‘검사의 배려에 감동한 피의자가 스스로 죄를 자백했다.’ 이제 검찰에서조차 막말과 째려보기는 없어져야 할 악습으로 취급받는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국정 망치는 폴리페서

세계 어느 대학교수 사회를 봐도 우리나라만큼 교수가 현실정치에 관심이 많은 곳도 드물다. 교수직을 발판 삼아 정치에 나서는 ‘폴리페서(polifessor)’들이 부지기수다. 폴리페서는 정치를 뜻하는 영어 ‘폴리틱스(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프로페서(professor)’를 합한 조어(造語)다.흔히 ‘정치교수’로 불리는데 그리 좋은 의미로 쓰이진 않는다. ‘교수의 직위를 이용해 정치권에 진출하려 하거나 진출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만큼 부정적인 의미가 더 크다. 폴리페서의 목표는 권력이다. 각 대선후보 캠프에 교수들이 몰리는 것은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 공공기관 등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이것이 아니더라도 연구용역, 연구비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폴리페서들은 대학사회를 어지럽히고 정치를 타락시킨다.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학교수 출신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폴리페서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6일 검찰에 구속된 안종범 전 대통령 정책조정수석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출국 금지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출신이다. 차은택 사람으로 알려진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도 각각 홍익대와 숙명여대 교수 출신이다.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도 연세대 교수다. 이 가운데 안 전 수석은 지난달 31일 성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 이전인 27일 성대엔 ‘학교는 안종범 교수를 파면해야 한다’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여기엔 “더 이상 학교와 경제대학의 명예가 짓밟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한양대 교수였던 김 전 차관은 사표를 내지 않아 다시 학교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학생들은 ‘국정 망친 폴리페서는 대학복귀 절대 불가’ 입장이다. 김 전 차관의 수업을 들었다는 한 학생은 SNS에 “교수시절 수업보다 딸랑딸랑 거리며 대외 인맥 쌓기에만 치중해 별명이 ‘벨(bell) 킴’이었을 정도였다”며 복귀를 반대했다. 폴리페서의 폐해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예비주자들의 진영에는 벌써부터 줄을 서는 교수들이 엄청 많다. 학교와 정치판에 동시에 적을 뒀다가 불리하면 회귀하는 폴리페서들의 양다리 걸치기는 학생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 국정을 망치고 비리를 저지른 교수가 대학으로 돌아가는 폐단을 막을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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