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1건’ 잡고, ‘농민’ 잡고

경기도 조사담당관실이 24일 김영란법 접수 통계를 발표했다. 지난해 9월 시행 이후 7개월간의 결과다. 경기도의 모든 기관에서 접수된 위반 신고가 9건이다. 부정청탁이 2건, 금품수수가 7건이다. 이 중 8건은 본인이 직접 신고한 것이다. ‘적발’이라는 의미에 부합하는 제3자 신고는 1건에 불과하다. 7건은 무혐의 처리됐고 1건은 처리 중이다. 2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사건은 1건이다. 접수통계는 결국 ‘1건 신고’에 ‘1건 처벌’이다. ▶경기문화재단 소속 문화재 돌보미가 종교단체로부터 10만원을 받았다. 이 돈을 팀 직원 2명에게 5만원씩 나눠줬다. 법원이 그에게 2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것이 도내에서 9개월간 처리된 유일한 김영란법 위반 사건 내용이다. A 소방서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한 상가건물의 소방시설 완공승인에 편의를 봐주라고 지시했다. 이를 직원들이 신고했고, A 서장에 대한 처분은 현재 진행 중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24일) 통계청이 또 다른 자료를 발표했다. 농가의 수입 추이를 나타내는 농가소득 통계다. 평균 3천720만원으로 전년 대비 2만원 감소했다. 농가소득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그중에 농업소득의 감소폭이 특히 컸다. 지난해 1천7만원으로 1년 전보다 10.6%나 감소했다. 역시 2011년 이후 5년 만의 첫 마이너스 성장이다. ▶담당자인 통계청 김진 농어업동향과장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는 쌀값이 전년 대비 14% 떨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축산수입이 12.4% 떨어진 것이다. 축산수입 감소의 직접적 이유에 대해서는 “축산수입은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소고기 소비가 위축되고 조류인플루엔자ㆍ구제역 파동까지 겹쳤다”고 설명했다. 정부 기관인 통계청의 담당 공무원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축산수입 감소의 이유다. ▶‘그런 것까지 수사할 검사는 없다’는 칼럼(2016년 10월 6일 자)을 썼다. “(김영란법에 대해)우리 사회가 너무 걱정을 하는 듯하다. 장담하는 데 그런 것까지 기소할 검사는 없다”는 현직 검사장의 의견을 소개했다. 법 시행 7개월 뒤 통계가 그 예상 그대로다. 과태료 처분율 11%, 무혐의 처분율 88.9%. 칼럼 속에는 이런 예상도 있다. “농민에겐 이제 화훼밭ㆍ축산농장이 애물단지다.” 7개월 뒤, 농가 소득이 5년 만에 뒷걸음질 쳤다. 통계청 공무원이 “김영란법 때문에 농가소득이 감소했다”고 단정적으로 밝혔다. ‘과태료 부과 1건’ 대(對) ‘농가 소득 5년 만의 최악’. 깨끗함으로 덮고 가기엔 농가 피해가 너무 크지 않나. 김종구 주필

[지지대] 대선 로고송

5ㆍ9 대통령 선거 운동이 치열한 가운데 유세 현장에선 로고송 전쟁이 한창이다. 로고송은 딱딱할 수 있는 후보들의 공약을 쉽게 전달하고 표심을 흔드는 효과까지 있어 ‘잘 만든 로고송 하나, 열 정책 안 부럽다’는 말까지 나왔다.‘유세 로고송이 히트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음악에 끌려 유권자들이 발걸음을 멈춘 채 선거운동원들을 따라 자기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거나 따라 부르다 보면 후보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로고송이 본격 등장한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그룹 DJ DOC의 히트곡에서 따온 김대중 후보의 로고송 ‘DJ와 춤을’은 로고송의 승리라 할 만큼 흥행에 성공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직접 기타를 치고 눈물을 흘리며 불렀던 ‘상록수’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19대 대선에서도 후보마다 차별화된 로고송으로 유권자를 유혹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로고송은 안철수 후보의 록 버전 ‘국민의당 당가(黨歌)’다. 네티즌들은 이 당가가 90년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연상케 한다며 “내가 살다 살다 지지하지도 않는 정당 당가를 듣다가 눈물이 고이네”, “욕하려고 들어왔는데 취향 저격 당하고 갑니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모두 로고송으로 택한 인기 아이돌그룹 트와이스의 ‘Cheer Up’도 큰 인기다. 후렴구 ‘샤샤샤(Shy Shy Shy)’에 대한 패러디가 눈길을 끈다. 문 후보는 “투표를 안 한다면 샤샤샤(부끄러워)”라고 개사한 반면, 유 후보는 “유승민 기호 4번 사사사”라고 바꿨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 측은 인상적인 후렴구나 널리 알려진 멜로디 중심의 전통적 로고송 전략을 택했다. 홍 후보는 중장년층에게 인기있는 트로트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을, 심 후보는 인기 애니메이션 ‘쾌걸 근육맨 2세’ OST로 쓰인 ‘질풍가도’와 이문세의 ‘붉은 노을’ 등을 정했다. 친박단체가 결성한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는 존재감이 별로 없지만 로고송은 주목받고 있다. 동요 ‘곰 세마리’를 개사해 ‘정희곰 근혜곰 원진곰아빠곰은 위대해근혜곰은 깨끗해원진곰은 의리 사나이’라며 박 전 대통령 부녀 지지자를 겨냥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풉! 포스터에 이어 로고송까지!”라고 평했다. 로고송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볼륨이 높아지고, 대형 확성기도 등장했다. ‘시끄러워 못 살겠다’는 민원도 나오는 만큼 역효과 나지 않게 수위조절은 해야 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학생 행복’ OECD 꼴찌

한국 학생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세계 꼴찌 수준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가 나왔다. OECD가 지난 21일 공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15년 학생 행복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 지수는 10점 만점에 6.36점을 기록했다. 이번 행복도 조사는 2015년 OECD가 각국 만 15세 학생들에게 자기 삶의 만족도를 0점에서 10점까지 점수를 매기도록 하는 방식으로 실시됐다. OECD 35개 회원국을 비롯해 모두 72개국이 참여했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나라는 멕시코로 8.27점을 받았다. 이어 핀란드(7.89점), 네덜란드(7.83점), 아이슬란드(7.80점), 스위스 (7.72점) 순이었다. 한국 학생들의 만족도 지수는 OECD 회원국 평균(7.31점)보다 낮았다. 한국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한 회원국은 오랜 반정부 시위로 정국이 불안한 터키(6.12점) 뿐이었다. 한국 학생의 22%는 가장 낮은 만족도를 뜻하는 4 이하 점수를 줬다. 이는 OECD 평균(12%)보다 2배가량 높은 수치다. 또 한국 학생의 75%는 ‘학교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것에 대해 걱정한다’고 답해 OECD 평균(66%)보다 9%p 높았다. 한국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한국 학생들의 학습 성취 욕구는 다른 국가에 비해 높았다. ‘무엇을 하던 최고가 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이 80%에 달해 OECD 평균(65%)보다 높았다. ‘반에서 가장 잘하고 싶다’는 응답도 82%로 역시 OECD 평균(59%)을 훨씬 넘어섰다. 학습 성취 욕구는 높지만 삶의 만족도는 낮은 학생들, 한국의 교육 현실이다. 어릴 때부터 입시 경쟁에 내몰려 사교육에 파김치가 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안쓰럽다. 한국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 역시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보도가 있었다. 교사도 학생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 우리 교육에 큰 문제가 있는게 틀림없다. 학생들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 부모와 학교, 사회가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5ㆍ9 대선에 나선 대선 후보들이 하나같이 공교육을 정상화 해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한다. 복잡한 대학입시 제도가 사교육을 부추긴다며 제도의 간소화를 공약했다. 늘 말뿐이라 얼마나 달라질 지 모르겠다.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이들이 어른이 된다고 행복할까. 학생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고민과 대책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아로니아·구아바·나디아에 대한 보고서

선거철이어서 좀 생뚱맞지만,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읽으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패, 경, 목 이런 이국 소녀들의…” 어렸을 적 시인과 책상을 같이 썼던 중국 소녀들의 이름이다. 반면 아로니아와 구아바, 나디아 등에선 서양식 뉘앙스가 풍긴다. 요즘 우리 식탁 위에 오르는 과일들 이름인데 말이다. 북미가 고향인 아로니아는 잎이 타원형이나 가장자리가 톱날 모양으로 파여 있다. 누르면 강한 향기가 난다. 중미가 친정인 구아바도 꽃은 흰색을 띠고 열매는 둥글고 과육은 달콤하다. 머나먼 타국에서 시집온 과일이지만 어느덧 이 땅에 자리를 잡았다. 경기도 내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어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호주에서 체리와 자두를 부모로 태어난 나디아도 서양에서 왔지만, 이 땅에서 예쁘게 자라고 있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경기도 내에서 새로운 품종의 과일 생산이 느는 것으로 집계됐다. 과일 생산 지도가 바뀌고 있다. 경기도의 과실 생산량 통계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아로니아도 경기도 내 연간 생산량이 지난 2013년 8t에서 지난해 267.2t으로 크게 늘었다. 생산 농가도 지난 2013년 12가구에서 지난해 128가구로 급증했다. 나디아도 지난 2014년 1t에서 지난해 78t으로 껑충 뛰었다. 사과하면 으레 대구가 연상됐지만, 경기도 내 생산량 변화가 만만찮다. 지난 2014년 5천689t에서 지난해 7천369t으로 29.5%(1천680t) 늘었다. 남녘에서 많이 생산되던 매실도 경기도 내 연간 생산량이 같은 기간 722t에서 804t으로 11.6%(82t) 증가했다. 물론, 생산량이 줄어든 과일도 있다. 경기도 내에서 많이 재배되던 배는 지난 2014년 6만3천112t에서 지난해 5만9천181t으로 6.2%(3천931t) 감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다문화 여성의 60% 이상이 수도권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서양에서 들어온 아로니아 같은 과일들의 생산지역도 경기도 내로 바뀌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소학교 시절 짝꿍이었던 이국 소녀들처럼 이젠 경기도에서 더 친숙한 과일이다.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경기도 내에서 아로니아와 다문화 여성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선거 운동과 SNS

장미대선(5월9일)을 앞둔 지난 17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공식 선거운동 돌입 이후 각 대통령 후보들은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운동 기간에 최대한 자신을 알리려고 안간힘이다. 시대가 바뀌듯 선거운동 문화도 변화한다. ▶과거에는 선거에 고무신 선물 등 지금은 있을 수 없는 방식도 이뤄졌다. 옆집 아저씨, 아줌마 등 알음알음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뒷거래(?)가 당연시되던 시절이다. ▶관권 선거 시절도 있다. 군사정권 때 공무원들은 공공연히 여당 후보를 밀어줬다. 당시 상명하복의 군사 문화가 접목된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한 선거에서는 수백억 원대 선거 자금을 화물차로 실어 나른 것이 들통났다. 이른바 차떼기 선거로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처럼 당선되고 싶은 욕망이 부정 선거로 이어지는 사례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부정선거가 있을 때마다 국민의 자정 목소리가 나왔고, 이로 인해 지금의 비교적 공정한 선거 방식이 자리잡았다. 최근의 선거운동 중 눈에 띄는 방식은 단연 페이스북 등 SNS(인간관계망 서비스)를 이용한 방식이다. 후보의 활동과 이미지를 SNS에 올려 이슈를 만든다. SNS 선거운동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선거 운동방식으로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각 후보 캠프에서 공을 들인다. 하지만 SNS 선거운동의 폐해가 또 다른 문제로 등장했다. SNS 상에 지나치게 이미지만 홍보하고 선정적인 내용과 상호 비방만 난무하는 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정작 정책 검증 등은 소홀해질 수 있다. 또 상대후보를 비난하는 가짜뉴스가 양산되는 것은 심각한 폐해다. 무서운 속도로 퍼지는 SNS상에 가짜뉴스가 유포될 경우 가짜 뉴스 생산자는 나중에 처벌할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의 명예훼손은 복구하기 어렵다. 특히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 발생하는 피해는 복구할 방법도 없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투명한 선거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새롭게 등장한 SNS를 통한 선거운동 방식과 규칙에 대해서는 보다 꼼꼼하게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개헌의 추억

연초 KBS가 보도한 여론조사다. -전국 성인남녀 중 개헌 찬성 65.4%, 개헌 반대 28.2%. 개헌 찬성자 중 대선 이전 개헌 51.8%, 대선 이후 개헌 45.3%.(조사기관 코리아리서치ㆍ조사시기 2016년 12월 28~29일ㆍ조사대상 전국 성인남녀 2천22명ㆍ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 ±2.2%)-. 여론은 대체로 비슷했다. 국민 60~70%가 찬성했고 반대는 20%대였다. 5월로 예상됐던 대통령 선거 전에 개헌하자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이런 여론을 믿고 개헌론을 설파한 정치인들이 꽤 된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스스로 개헌 전도사임을 자처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더불어민주당)도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을 밀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개헌을 말했다. 새누리당(당시)도 개헌에 적극적이었다. 제도권에서 개헌에 미온적인-혹은 미온적으로 보인- 정치인은 문재인 전 대표뿐이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만 개헌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2017년 1월 대한민국 여론은 그렇게 ‘개헌’에 가 있었다. ▶그랬던 개헌 여론이 사라졌다. 더 이상 개헌은 여론조사 항목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개헌 전도사들도 사라졌다. 손학규 전 지사는 경선 패배 이후 모습이 뜸하다. 개헌을 걸고 출마했던 김종인 전 대표도 일찌감치 짐을 쌌다. 유일하게 안철수 전 대표만 잘 나간다. 한 자리에 머물던 지지율이 선두와 박빙에 이르렀다. 그래서일까, 안 후보도 더 이상 개헌을 말하지 않는다. 개헌은 불과 3개월 만에 과거의 일이 됐다. 꺼내기도 쑥스러운 ‘개헌의 추억’이 됐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아마도 대통령은 이 중에 나올 듯하다. 개헌을 추진할 사람도 이 중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5명 누구도 개헌을 말하지 않는다. 이 5명이 차지하는 지지율이 80% 정도다. 그 80%의 국민이 지지후보를 따라 덩달아 입을 닫았다. 개헌 대신 대선을 말하고 있다. 3개월 전 바꾸자던 바로 그 자리-제왕적이고 부패온상인 대통령직-를 차지하려고 만인 대 만인이 싸우고 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말했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도 경쟁이 과열되면 떠밀려 개헌 약속을 할 것이다.” 노련한 킹-메이커의 예언이다. 여기에 더해지는 평범한 이들의 예상도 있다. ‘2등의 막판 뒤집기로 등장할 것이다’ ‘차기 정부는 곧바로 개헌 레임덕에 빠져들 것이다’ ‘결국 내년 지방선거가 개헌의 시한이다’…. 하기야, ‘개헌 찬성’이 ‘개헌 반대’로 바뀌었다는 여론조사를 본 기억은 없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대통령 후보 선거벽보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선거 벽보가 16일 공개됐다. 주요 5당 후보들은 저마다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벽보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기호는 원내 의석이 있는 정당 후보가 우선순위를 받고, 이 가운데 의석수에 따라 순번이 정해지는 선거법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기호 1번을 달았다. 이어 2번 자유한국당 홍준표, 3번 국민의당 안철수, 4번 바른정당 유승민, 5번 정의당 심상정 후보 순이다. 문 후보 벽보의 슬로건은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으로 정철 카피라이터가 만들었다. 사진은 오하루 작가가 찍었다. 민주당 측은 “중후하면서 믿음직한 이미지, 국민을 향한 따뜻한 이미지, 늘 국민과 시선을 맞추는 대통령을 표현했다”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뽀샵’(사진 보정) 없이 흰머리 한 가닥, 잔주름까지 보이도록 했다”고 밝혔다. 문 후보가 맨 넥타이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승리의 넥타이’다. 자유한국당은 홍 후보가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대통령의 안정감과 책임감을 겸비한 후보임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선거 벽보에 사용한 슬로건은 ‘당당한 서민 대통령’이다. ‘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이라는 문구로 보수 후보가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안 후보 벽보는 국민의당 경선 현장 사진을 쓴 것이 특징이다. 어깨띠에는 ‘국민이 이깁니다’라는 슬로건이 담겼다. 두 팔을 들어 올린 모습은 승리를 의미하는 ‘V’를 형상화했으며, 안랩에서 만든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 ‘V3’를 의미하기도 해 후보의 국민 봉사 이력을 강조했다. 당 이름을 뺀 것이 독특한데 어깨띠에 ‘국민’이 들어간만큼 중복을 피하고 메시지를 간명하게 해 후보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라는 게 국민의당 설명이다. 유 후보는 벽보 사진에서 정면을 보는 사진을 사용했다. 바른정당의 색깔인 하늘색 넥타이와 ‘보수의 새희망’이라는 문장으로 당의 정체성을 담았다. 심 후보도 스튜디오 사진이 아닌 시민들과 함께 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심 후보가 걸어온 길을 있는 그대로 보고 선택해달라는 의미로 구로공단 미싱사 등 노동운동 경력을 이력에 넣었다. 메인 슬로건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다. 17일부터 대선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저마다 독특한 슬로건과 특징을 지닌 선거 벽보가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어필하게 될지 결과가 주목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1865년생

지난해 일본인 다나베 도모지(田鍋友時)씨가 사망했다. 사망 당시 113세였다.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노인이다. 일본 언론이 이를 크게 보도했다. 최고령 생존자가 기무라 지로우에몬(木村次右衛門·당시 112세)로 바뀌었다는 보도도 함께 나왔다. 그도 그럴게. 일본은 장수국가다. 이를 통해 일본이 얻는 유무형의 이익이 상당하다. 스시로 대변되는 생선요리, 삶아 먹는 돼지고기 요리 등이 세계로 전파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그랬던 일본이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113세로 주민등록부에 올라 있던 노인이 이미 30년 전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후생노동성이 전국의 110세 이상 노인에 대해 대면조사를 실시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허위 생존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재가 불명했던 사망자가 다수였지만 가족들이 연금 혜택을 보기 위해 고의로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이 일로 장관 등 고위직 관리들이 무더기로 옷을 벗었다. ▶당시 사건을 보면서 국내 언론이 주민등록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우리와 같은 형식의 주민등록증이 없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침해한다는 대의명분 때문이다. 주민등록증 제도가 있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들 했다. 더구나 각종 연금 등 복지 혜택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주민등록증 제도의 필요성은 더 강조된다는 점도 함께 자랑했다. ‘허위로 쌓아 올린 장수국가’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그런데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 화서1동에 등록된 주민은 1865년생이다. 올해 153세다. 1868년생, 1869년생도 있다. 100세 이상 노인이 10여 명에 이른다. 사실이라면 153세 노인은 세계 최고령으로 등재돼야 할 것이고, 수원은 세계 최고 장수마을로 불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2명을 제외하면 모두 사망했다. 주민등록부에만 살아 있는 것으로 돼 있는 것이다. ▶수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현재 경기도에 거주하는 100세 이상 고령자는 3천305명이다. 이 가운데 2천420명이 거주불명자다. 80% 가까운 노인들이 사실은 사망했거나 행방불명 상태다. 이런 엉성한 관리가 여태껏 공문서의 형태로 존재해왔다는 점이 놀랍다. 사망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사망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엉터리 문서를 근거로 각종 복지혜택을 집행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우리와 똑같은 일이 세상에 알려졌던 일본, 그들은 장관 등 고위직 인사들의 사직으로 잘못을 반성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대선과 축제

▶‘축제(祝祭)’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전국 기초지자체, 심지어 작은 마을과 공동체도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축제를 연다. 축제의 사전적 의미는 ‘축하하여 벌이는 큰 규모의 행사’ 또는 ‘축하와 제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 정의가 알려주듯이 축제는 종교 의례에 기원을 둔다. 고대사회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늘에 제를 올리며 한마음으로 풍년을 기원하고, 동시에 감사했다. 고대의 전통적인 축제는 공동체의 번성을 간절히 바라는 성스러운 종교 의례의 일종이었다. ▶현대사회가 되면서 축제는 종교적 의례와 구분돼 유희 수단으로 부상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각 지역을 기반한 다양한 형태의 축제가 출현했다. 광주 토마토 축제, 이천 산수유 축제, 가평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등 그 지역만의 자연, 역사, 특산물, 예술 등을 부각시킨 축제들이 전국에서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 확보하는 한편, 지역 경제 활성화 도모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천편일률적이고 ‘과잉공급’이라는 비난에도 매년 새로운 축제가 등장하는 이유다. ▶봄은 축제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이맘때면 아름다운 꽃축제를 시작으로 5월이면 각종 문화예술 페스티벌로 정점을 향한다. 도내에서도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수원연극축제, 의정부음악극축제 등이 잇달아 열린다. 이번 주에는 각 축제의 주최 측이 이를 홍보하는 기자간담회를 앞다퉈 마련했다. 주제와 소재는 상이했지만,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향유를 위한 프로그램을 강조하는 것은 동일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일방적인 공급이 가치없으며 바라던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한 효과다. ▶올해 더 중요한 축제가 열린다. ‘장미대선’이다. 축제의 기원을 따졌을 때, 선거야말로 가장 크고 의미있는 축제다. 전 국민이 자신과 나라의 안녕을 소망하며 공평하게 한 표씩 행사하는 진정한 참여형 축제다. 조기 대선으로 5월에 치러지는 도내 각종 축제 중 20%가량이 취소되거나 연기됐지만, 영향력을 따졌을 때 불가피한 상황이다. 장미대선만큼은 국민이 주인되어 참여하는 축제로 진행돼 앞으로 맘 편히 각종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류설아 문화부 차장

[지지대] 재보선과 공직자의 자세

지난 2015년 1월 그리고 10월. 경기도 내 현역단체장 두 명이 구속되고 다음해 각각 형 확정으로 시장직을 상실했다. 이들은 ‘2014 지방선거’에 출마해 시민들의 기대감 속에 지역 일꾼으로 뽑혔지만 결국, 당선증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 시장직에서 내려온 꼴이 됐다.선거로 선출된 시장은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공직자 윤리 요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공직 요강 중에는 ‘공직자는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국민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에 임해야 한다’며 법 준수와 국민봉사의 덕목을 요구하고 있다.그런데도 한 단체장은 힘없는 한 여성을 강제추행하고 무고한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됐고 또 다른 지자체장은 뇌물을 받고 특정 사업자의 인·허가 선정을 지시(수뢰 후 부정처사 등의 혐의)해 사회와 격리됐었다. 해당 지역 시민으로서는 부끄럽고 치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그 결과 어제 경기 지역에서 치르지 않아도 될 보궐선거를 치렀다. 문제는 비용이다. 이들 때문에 재선거에 들어간 수십억 원의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보선이 자의든 타의든 선출직 공직자의 재임 중 부정부패나 비리에 연루돼 민ㆍ형사상의 범죄행위로 치러지게 된다면 얘기는 다르다.당선자 본인의 사유로 선거를 다시 할 경우 그 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치러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당사자에게 선거 비용의 책임을 물지 못하니 이치에 맞지 않고 비상식적이다. 이 같은 제도적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선거법을 개정, 정치인과 선출직 공직자의 부정부패 비리는 물론, 범법행위를 사전에 막아야 한다.다산 정약용 선생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외침(外侵)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의 이반(離反)이다’고 했다. 이는 공직자의 청렴을 강조함으로써 국민적 신뢰와 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들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보선에서 주민들의 선택을 받은 당선인은 그 임기가 14개월을 조금 넘는 짧은 기간이지만, 정말 주민을 위해 초심을 잃지 않는 성실한 공복(公僕)이 되길 바란다. 김창학 정치부장

[지지대] 항공모함 의미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은 한반도 최대 위기였다.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이 휘두른 도끼에 살해됐다.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중 일어난 참극이었다. 전군에 데프콘 3(경계상태 돌입)가 발령됐다. 한반도가 한순간 전운에 휩싸였다. 온 국민이 전쟁의 공포로 빠져들었다. 이때 등장한 게 미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다. 그 위용 앞에 버티던 김일성이 사과했다. ‘원자폭탄을 싣고 다닌다’는 이 거함(巨艦)이 우리 국민에 준 위로가 컸다. ▶연평도가 포격을 당했다. 북한군이 우리 영토에 가한 휴전 후 첫 공격이었다. 해병대원과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우리 군의 정례 훈련을 트집 잡은 북한의 도발이었다. 긴장은 이어졌다. 한국군이 나머지 포격 훈련을 강행하기로 하면서다. 생중계된 화면을 보며 국민이 긴장했다. 이때도 미 항공모함이 나타났다. 조지워싱턴호가 서해로 들어왔다. 미 항공모함을 등 뒤에 둔 한국군의 포 사격 훈련은 아무 제재도 받지 않았다. ▶“연평도 사건으로 남한 쪽 사람들이 다친 것으로 알고 있다. 남북간에 군사적 충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AP 텔레비전 네트워크와 인터뷰를 자처한 판문점 근무 북한 장교의 발언이다. 이번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감사를 표했다. “조지 워싱턴 호를 비롯한 미 해군 함정이 (연평도 도발 후) 신속하게 (서해로) 와서 연합훈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데 대해 치하하고 고맙다”. 조지워싱턴호와 화상 연결을 통해 직접 전한 말이다. ▶오래된 신문 속에서 간혹 이런 흑백사진들이 목격된다. -한복 차림의 한국 여성이 항공모함 앞에 선 미군에게 꽃다발을 걸어 주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항공모함을 환영하고 있다-. 우리 국민과 정부에게 갖는 미 항공모함의 의미였다. 한반도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구세주였다. 북한의 모든 도발을 잠재우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기사 대부분은 ‘항공모함이 우리 해역에 들어왔다’다. ‘항공모함이 떠났다’는 기사는 거의 없다. ▶오랜만에 미 항공모함이 또 들어왔다. 칼빈슨 항모전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민 반응이 다르다. 환영보다는 우려가 많다. 이번 작전을 전하는 외신의 설명 때문이다. CNN 등은 ‘미국의 북한 포격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히고 있다. 미 항공모함이 주는 의미가 과거의 그것과 이렇듯 다르다. 결국, 이것이 미 항공모함의 진정한 의미 아니겠는가. 평화와 전쟁, 전쟁 억지와 전쟁 발발의 모든 상징이 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모든 결정을 미국이 한다. 우리는 그저 구경꾼일 수밖에 없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일(1)코노미

1인 가구 비율이 520만을 넘어섰다. 전체 가구의 27%를 차지, 세 집 중 한 집은 ‘싱글족’인 셈이다. 통계청은 2035년엔 763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1인 가구의 급증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혼밥, 혼술, 혼영, 혼행, 혼캠 등 ‘혼자서’ 밥 먹고 술 먹고 영화 보고 여행하고 캠핑하는 ‘혼족’이 늘었다. 취업난과 경제불황,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혼족 증가에 한몫했다. 이들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가족보다 자신의 건강과 경험을 중요시하면서 인생을 즐긴다. 취미나 자기계발 등을 위한 지출을 아끼지 않아 관련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1인’과 ‘경제’(economy)를 합친 ‘일코노미(1conomy)’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나를 위한 소비에 적극적인 사람을 뜻하는 ‘포미(FORME)족’이란 말도 있다. ‘For Health(건강)’ ‘One(1인 가구)’ ‘Recreation(여가)’ ‘More Convenient(편의)’ ‘Expensive(고가)’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 ‘나를 위한 선물’에 재정을 아끼지 않는 이들을 말한다. 1인 가구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란 예측이다. 이에 1인 가구를 겨냥한 각종 상품과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가전업계는 소형주택에 사는 1인 가구를 겨냥해 작지만 실용적인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가구도 1인용이 각광받고 있다.‘작게, 혼자만, 고급스럽게, 화려하게’는 1인 가구의 리빙문화로 대변하는 키워드다. 외식업계에선 1인용 좌석이나 안주를 제공하는 업소가 늘었다. 또 1인 가구 전용 이사업체나, 혼족끼리 모여 밥을 먹거나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중개하는 모바일 앱 ‘혼밥인의 만찬’ 등의 서비스도 등장했다. 금융권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KB금융은 KB경영연구소에 ‘1인 가구 연구센터’를 설립, ‘2017 한국 1인 가구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위험한 투자보다 예·적금 등 안전자산 투자 비중이 높고, 거주 안정을 위한 ‘주택구입 및 전세 자금 대출’, 건강 및 노후를 위한 ‘암·연금·질병보험’에 대한 요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금융권에선 이런 니즈에 맞게 ‘1코노미 카드’ ‘1코노미 암보장 건강보험’ ‘1코노미 주식형 펀드’ 등을 출시해 히트를 쳤다. 1코노미의 키워드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할랄 인증

‘할랄(halal)’은 아랍어로 ‘신이 허용한 것’이란 뜻이다. 과일ㆍ야채ㆍ곡류 등 모든 식물성 음식과 어류ㆍ어패류 등의 모든 해산물과 같이 이슬람 율법 하에서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을 총칭하는 용어다. 육류 중에서는 이슬람식 알라의 이름으로 도살된 고기(염소고기ㆍ닭고기ㆍ쇠고기 등), 이를 원료로 한 화장품 등이 할랄 제품에 해당한다. 반면 술과 마약류처럼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 돼지고기ㆍ개ㆍ고양이 등의 동물, 자연사했거나 잔인하게 도살된 짐승의 고기 등과 같이 무슬림에게 금지된 음식은 ‘하람(haram)’ 푸드라고 한다. ‘신이 허용하지 않은 것’이란 뜻으로 이슬람교도는 이런 식품을 섭취하면 안 된다. 할랄은 허용되는 음식을 가리키지만 인간의 행동, 말, 옷 등 보다 넓은 의미로 허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하람 또한 금지된 모든 것을 말한다. 할랄 시장은 급격히 팽창하고 있다. 2015년 기준 할랄 시장은 1조8천900억 달러(약 2천166조원) 규모였다. 오는 2021년엔 3조 달러(3천438조원)까지 팽창할 전망이다. 할랄산업에선 할랄 식품(음료 포함)의 비중이 62.1%(2015년 기준 1조1천730억 달러)로 가장 크다. 전 세계 식품시장의 16%를 차지한다. 이어 의류(12.9%), 미디어·레저(10%), 관광·여행(8%) 순이다. 무슬림이 20억명에 달하고, 할랄 시장 규모가 크다 보니 할랄 인증을 두고 전 세계 경쟁이 치열하다. 세계에서 통용되는 할랄 인증으로는 말레이시아 이슬람개발부(JAKIM)의 인증, 인도네시아 울라마협회(MUI) 인증, 싱가포르 이슬람 종교위원회(MUIS) 인증, 미국 이슬람 식품영양협회(IFANCA) 인증 등이 있다.이 중 말레이시아가 할랄 인증 관련 산업이 가장 활발한 편이다. 중동의 부호들 사이에서 말레이시아는 ‘고급스러운 관광 인프라가 있으면서 할랄 인증이 확실한 국가’라는 이유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무슬림 인구가 14만명선에 불과해 ‘변방’으로 취급된다. 할랄 인증 품목도 아직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국내 식품업체들의 할랄 기술 개발이 활발한 편으로 점차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 경제 피해가 심각하다. 중국 의존적인 수출 구조를 다변화할 대안, 새로운 돌파구가 바로 ‘할랄’이다. 식품뿐 아니라 할랄 화장품, 할랄 관광, 할랄 의약품, 할랄 물류 등도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백목련

▶3~4월 개화하는 목련은 봄을 대표하는 꽃이다. 특히 우리 주위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백목련은 하얗고 풍성한 꽃잎을 뽐내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러나 이를 시샘한 봄비를 맞고 힘없이 땅에 떨어진 목련은 이내 누렇게 변해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린다. 바나나 껍질처럼 추적추적하게 변해버리는 것이다. 꽃을 사랑하는 동호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사한 만큼 ‘뒤끝 나쁜 꽃’이 바로 목련이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백목련의 꽃말도 비교적 좋지만은 않다.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는 꽃말은 봄에만 잠깐 사랑받는 백목련의 가련한 운명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목련의 꽃말이 조금 다르다. 미국 제7대 대통령이자 20달러 지폐 초상화 모델인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백악관에 목련 한 그루를 심었다. ‘잭슨목련’으로 불리는 이 꽃은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는 꽃말과 동시에 ‘위로’와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단원고에 잭슨목련을 전달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사고를 당한 학생과 교사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부활을 기원하는 뜻이다. ▶미국 목련의 상징이 잭슨 대통령이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고(故) 육영수 여사다. 육 여사는 백목련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서거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목련하면 육 여사를 떠올리는 데에는 생전 육 여사의 자애로운 ‘어머니’같은 모습이 여전히 여러 사람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록파’로 유명한 박목월 시인이 1975년 육 여사 서거를 추모하며 작사한 노래 ‘가신 님을’을 봐도 그렇다. ‘온 겨레 가슴에 피었던 목련꽃/홀연히 바람에 지고 말았네/우아한 그모습 잔잔한 미소/지금도 들리는 다정한 그 음성/우리는 그님을 잊지 못하리라’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에도 ‘어머니의 꽃’이 활짝 피었다. 기약 없는 길을 걷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집을 나서기 전 이 목련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다. 꽃말 그대로 이루지 못할 사랑이 될지, 아니면 잭슨목련처럼 부활의 의미를 담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 세상살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백목련은 그렇게 또 한 차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고 쓸쓸히 지고 있다. 이용성 사회부장

[지지대] 대선주자의 ‘화수분’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책만 보는 샌님이라 명절이 돼도 쌀 한 톨을 구해오지 못했다. 아내가 도둑질이라도 해 오라 하니 하는 수 없이 남의 벼를 훔치러 갔지만 망설일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친 천둥소리에 놀라 달아나다 발에 걸리는 뚝배기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을 가져와 집에 남아 있던 한 줌의 쌀을 넣어뒀는데, 금세 쌀이 뚝배기에 가득 찼다. 꺼내도 꺼내도 재물이 나온다는 ‘화수분’에 얽힌 설화다.▶화수분은 욕심을 부리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뚝배기로 부자가 된 남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뚝배기는 혼자만 사용하고 아내에게는 보여주지도 말라고 한다. 벽장에 감춰둔 뚝배기의 정체를 부인이 알면서 산통이 깨진다. 오랜만에 친정을 찾은 딸에게 뚝배기를 빌려준 것이다. 딸이 뚝배기에 쌀을 넣었지만 몇 날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효능이 사라진 것이다.▶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인 흥보가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가난하지만 착한 흥보가 부러진 제비다리를 고쳐주고 대가로 받은 박씨를 심어 거둔 열매를 쪼갠다. 박속이라도 끓여 먹을 요량이었는데 박 통 속에서 쌀과 돈이 끝이 없이 나온다. 욕심 많은 형 놀보는 아우를 샘내 제비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리고 박씨를 얻는 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박 통에서 나온 건 괴물들이었고 있던 재물마저도 빼앗긴다.▶조기 대선에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후보들과 이참에 줄이라도 잘 서서 권력의 단맛을 보겠다는 사람들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짧은 기간 유권자의 마음을 잡으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203만 명, 22조 6천억 원의 채무를 갚아 주겠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대기업 임금의 80% 수준을 보장해 주겠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전업주부에게도 출산수당을 주겠다’라는 등 솔깃한 공약들이 줄을 잇는다.▶공약만 봐서는 대선 후보마다 재물이 쏟아지는 보물단지 하나씩을 가진 모양새다. 단지에서 나오게 될 돈은 국민이 낸 세금일 테니 끝도 없이 나올 리 만무하다. 설화처럼 국민에게 풍족한 삶은 아니어도 최소한 사람답게 살 정도는 해주겠다는 착함에 하늘이 감동해 화수분을 내려줄 리도 없다. 검증 없이 남발한 선심성 공약에 자칫 나라 살림마저 거덜 날까 걱정이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치매안심마을

NHK가 최근 특집 방송을 통해 ‘치매사회’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일본의 고령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8년 후인 2025년, 국민의 10% 이상이 치매 또는 치매 예비군인 ‘치매사회’에 돌입할 전망이라며 치매사회의 모습이 어떨지를 짚어봤다.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세대(1947~1949년생)가 모두 75세 이상이 되는 2025년을 시작으로 치매사회에 돌입하면 일본 국민 9명 중 1명, 65세 이상 연령대에선 3명 중 1명이 치매 혹은 치매 예비군으로 분류된다. 벌써 고독사,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 증가 등 초고령사회의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치매 노인을 위한 수용시설, 치매 노인 간병 인력 부족 등 심각한 문제들이 예견된다. 치매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2012년 치매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는 72만5천명, 유병률은 10.2%로 추산된다.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2050년에는 노인 치매 인구가 271만명까지 늘고 유병률은 15.1%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가 치매 관리 종합계획의 일부로 ‘치매안심마을’을 시범 조성키로 했다. 치매환자와 가족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원래 살던 마을에서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지역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치매안심마을’ 사업은 고령ㆍ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선진국들에서 이미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선 2004년부터 ‘도쿄치매돌봄연구연수센터’ 주도로 ‘치매라도 괜찮아, 지역 만들기’ 사업이 진행 중이다. 치매 환자에 대한 성년 후견인 제도 확대를 위한 교육과 치매 서포터 양성사업이 실시된다.영국도 영국알츠하이머학회와 정부가 나서 2012년부터 ‘치매 친화 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원봉사자가 치매 환자와 1대 1로 동행해 공원이나 상점, 카페를 방문하는 등 평소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교통경찰관들도 대중교통 승차권 구매 등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선 용인시가 전국 최초로 ‘치매행복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후원을 받아 시행하는데 2014년 처인구 역삼동, 기흥구 기흥동에서 시작해 올해는 수지구 신봉동이 추가됐다. 치매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고 치매환자가 마을에서 원활하게 생활하도록 지원해 주민 반응이 좋다. 치매가 본인과 가족의 고통을 넘어 사회의 고통이자 심각한 문제가 되기 전 해법을 마련해 확산시켜야 한다. 치매 해결책은 빠를수록 좋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조현병 범죄

조현병은 망상, 환청, 언어 와해, 정서 둔감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전형적인 정신과 질환이다. 원래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는데 ‘분열’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부정적이라는 지적이 많아 2011년부터 병명이 바뀌었다.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처럼 환자가 혼란스러운 증세를 보이는 데서 병명이 유래했다. 뇌 속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이상으로 발병한다고 한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살인ㆍ상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주 인천에서 한동네 사는 8세 여아를 유괴ㆍ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17세 소녀가 조현병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지난달 화성에서 20대 남성이 1시간여 동안 범행 대상을 물색하며 거리를 배회하다 20대 여성을 발견하고 100여m 뒤쫓아가 흉기를 휘두른 사건, 남양주에서 10대 아들이 50대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 모두 조현병 환자에 의한 것이었다. 지난해 5월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의 범인도 조현병이 있었다. 일련의 범죄 모두 ‘묻지마식’ 사건이어서 두려움이 더 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현병 환자는 2015년 기준 10만6천100명이다. 2010년 9만4천명, 2013년 10만2천700명, 2014년에는 10만4천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조현병 유병률은 지리·문화적 차이에 관계없이 세계적으로 인구의 1% 정도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병원기록이 없는 환자를 포함하면 국내에 50만명 정도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현병은 환청이나 망상 등에 의해 충동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조절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지만 치료가 늦거나 중간에 중단하면 악화된다. 인천 사건의 10대 소녀도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가 조현병으로 악화된 사례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조기발견’과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현병 환자가 저지르는 범죄는 대부분 치료를 중단하거나 전혀 받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유사한 사건이 꼬리를 무는데도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공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정신질환자의 관리를 더 이상 방관해선 안된다. 낙후된 정신질환 치료 환경을 개선하고, 의료급여 지원 등 적절한 치료와 관리가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펭귄 프로젝트

‘악어 프로젝트’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폭력과 성차별을 담아낸 그래픽 북이다. 양성 평등 사회로 알려진 프랑스에서 논란이 될 만큼 성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책으로 공공장소 성추행, 직장 성희롱, 데이트 폭력 등 다양한 성폭력 상황을 50여 개의 에피소드로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남성을 모두 악어로 그렸다는 점이다.세상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그 여성을 대상화하는 포식자인 남성, 즉 ‘악어’들이 있다고 말한다. 작품 속 여성들은 때로 은근하고 때로는 노골적인 악어들의 언행에 격렬하게 저항하기도 하지만 충격을 받거나 상처를 입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대학생들이 대학 내부의 성폭력ㆍ성차별 문화를 바꾸기 위해 대학연합 ‘평등한 대학생을 위한 펭귄프로젝트’(일명 펭귄 프로젝트)를 구성했다. 지난해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 혐오 문화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만든 단체다. 실제 지난해 많은 대학에서 페미니즘 학회와 소모임, 동아리가 새로 생겼다. 펭귄 프로젝트는 ‘악어 프로젝트’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대학 내 성차별적 문화를 뜻하는 ‘악어’에 반(反) 성폭력 활동을 벌이는 학생(펭귄)이 맞선다는 의미를 담았다. 혹독한 겨울을 나려고 체온을 나누는 펭귄의 ‘허들링’은 여성 혐오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의 연대를 의미한다. 펭귄 프로젝트는 지난달 30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서울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수도권 12개 대학 20여 개 단체와 연대해 반(反) 성폭력 문화제인 ‘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을 개최했다. 문화제에선 불평등한 대학 문화와 성폭력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평등’이라는 가치에 입각해 대학 공동체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등한 대학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내용의 선언문도 발표했다. 이들은 행사 이후 성폭력 문화 개선 캠페인을 대학 내에서 사회 전반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우리사회 전반, 특히 20대 젊은이들이 모인 대학 캠퍼스에서 성희롱ㆍ성폭력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가운데 대학생들이 나서서 대학 내부의 성폭력·성차별 문화를 바꾸기 위해 연합운동을 펼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대학 캠퍼스를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성평등한 사회로 바꾸려는 학생들의 운동에 응원을 보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뒷간’의 진화

얼마 전 아이 엄마가 통영에 다녀온 적 있었다. 여행담을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 도중 느닷없이 화장실이 화두가 됐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듯했다. “음악과 향기, 그리고 쾌적함이 하나의 문화공간이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도 웃으면서… 맞는 말인 듯하다. 필자는 지난주 2년 만에 서해안고속도로에 위치한 화성휴게소(하행)를 찾았다. 휴게소 화장실에 들어선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2년 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목재문으로 단장된 화장실은 고풍스러운 멋에다 쾌적함을 더했다. 수원의 자랑이란 화성행궁을 본 떠 화장실을 리모델링 한 듯했다. 이 때문인지 그저 그런 화장실이기보다는 뭔가 특별한 문화공간으로 다가왔다. 알고 보니 이뿐 아니었다. 용인휴게소(영동고속도로), 이천휴게소 상ㆍ하행선(중부고속도로) 등 수도권 내 20여 고속도로 휴게소가 마찬 가지였다. 지난해 전면적 리모델링으로 화장실을 휴게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해 놓고 있었다. 화장실은 옛날 뒷간, 측간(厠間)으로 불리웠다. 방언으로 칙간(호남), ‘정랑’(영남)으로도 명명됐다. 점잖은 한자말로는 정방(淨房), 절에서는 근심을 더는 곳이라 해서 해우소(解憂所)로 칭했다. ‘잿간’, 회간(灰間), 신간(燼間) 등도 같은 말이다. 뒷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뒤를 보는 집’, 그리고 ‘뒷마당에 자리한 집’이란 뜻이다. ‘사람 똥’을 점잖게 에둘러 표현한 말이 ‘뒤’로 유교적 의미로 은밀성을 담고 있다. 여기에다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다소 무서움과 혐오스러운 의미까지 내포돼 있다. 이런 의미의 뒷간은 1459년 ‘월인석보’에서 처음 등장한다. 뒷간은 일제강점기, 변소에서 서양문물 유입과 함께 지금은 화장실로 개명되면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하지만 변신의 역사 속에 수원출신 심재덕 전 시장을 배제할 수 없다. 심 전 시장은 화장실을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정착했던 장본인이다. 세계화에도 앞장선 화장실 문화 선구자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런 역사를 지닌 뒷간, 시간이 지나 바야흐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꽃 피우고 있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하늘에서도 기다리는 진실

▶마냥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의 얼굴만 봐도 웃음보가 터지고, 시시콜콜한 얘기마저 행복이라는 것으로 귀결되는 그런 시간.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넘어버린 필자의 고교 시절 얘기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수학여행. 관광버스를 타고 설악산으로 향하던 우리들은 그저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된다. 하루 종일 말해도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 지 밤새워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그 시절. 타 지역에서 수학여행 온 동년배 여고생들과 ‘썸 아닌 썸’도, 이불 속에서 친구와 몰래 마시던 맥주도 이젠 다 ‘추억’이라는 단어로 축약돼 뇌리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2017년 3월22일, 세월호가 차디찬 바닷물 속에 형체를 감춘 지 1천72일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9명의 미수습자 귀환과 더불어 이번 인양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진실을 위한 판도라 상자의 열림이 그것이다. 미수습자를 찾는다고, 그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분명 우리들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지만 진실을 우리에게 직접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그 진실. 그렇게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진실의 첫 실타래를 풀기 위한 세월호의 인양이, 그리고 육지로의 귀환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 3년간 깊은 바닷속에 묻혀 있던 진실이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오고 있다. 과적에 의한, 외부 충돌에 의한, 아님 조작에 의한 것인지 어떤 형태로든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그 진실은 우리의 알 권리 만을 위한 진실이 아님을 국민 모두는 알고 있다. ▶2014년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떠나는 세월호 안에서 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던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여러 이유를 안고 제주로 향하던 이들의 밝은 얼굴이 필자의 상상 속에 펼쳐진다. 그들은 최종 행선지인 제주도에는 닿지 못했지만, 그들의 영혼에 남아 있을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채워주기 위해 단 하나의 의혹도 없는 진실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해야 한다. ‘그 진실’을 하늘에서 기다릴 그들을 위해서라도. 김규태 사회부 차장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