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분노 조절장애 범죄

지난 16일 충주의 한 원룸에서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을 방문한 수리 기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평소 인터넷 속도가 느린 것에 불만을 품었던 이 남성은 수리 기사를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지난 8일에는 경남 양산에서 40대 남성이 15층 아파트에서 밧줄에 의지해 외벽 도색 작업을 하던 작업자의 밧줄을 끊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작업자의 휴대전화 음악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는 게 이유였다. 피해자는 아내와 고교 2학년생부터 27개월 유아까지 5남매, 칠순 노모 등 7식구를 부양하는 가장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두 사건 모두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저지른 범죄다. 최근 30대 여성이 헤어진 남자친구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의정부 사건도 그렇고, 연세대 대학원생이 텀블러에 못과 전선을 넣어 만든 사제 폭탄을 교수를 향해 터트린 사건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충동 범죄였다. ‘욱’ 하고 치밀어 오르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흉기를 휘두르는 분노 조절 장애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진 사회에 살면서 누적된 불만과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하다가 극단적인 형태로 분출해 발생하는 범죄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한국 사회의 분노 지수가 이미 끓는 점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 피해는 쉽게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노약자, 여성, 아동, 힘없는 근로자 등 대부분 사회적 약자가 받고 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상해나 폭행 등 폭력범죄 37만2천723건 중 범행 동기가 우발적이거나 현실 불만에 있는 경우가 41.3%(14만8천35건)를 차지했다. 살인이나 살인미수 범죄 건수 975건 중 우발적이거나 현실 불만이 원인인 범죄도 41.3%(403건)에 달했다. 경쟁이 심할수록, 실직률이 높고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불평등하다는 피해 의식이 강해질수록, 누군가가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는 자기 비하가 심해질수록 이런 종류의 범죄가 많아진다. 분노 조절 장애형 범죄가 많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어렵고 각박해졌다는 뜻이다. 미국의 의학박사이자 심리학자인 해리 밀리스는 ‘분노 비용’이란 책에서 “사회구조와 인간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조울증, 행동 장애, 분노 조절 장애 환자가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고 했다. 불만과 스트레스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방관할 게 아니라 분노 조절 장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허위 혼인신고

혼인신고는 법률적으로 정당한 부부로 인정을 받기 위한 절차다. 법률상 정당한 부부로 인정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당사자가 부부로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부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실혼주의(事實婚主義)’, 법률이 요구하는 혼인방식을 이행하는 ‘법률혼주의(法律婚主義)’, 법률이 정한 신고를 이행함으로써 부부로 인정받는 ‘신고혼주의(申告婚主義)’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민법 제812조 제1항에서 2007년까지는 ‘호적법’, 2008년부터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변함에 따라 혼인신고에 대한 의식도 달라졌다. 결혼식을 하고 부부가 함께 살면서도 혼인신고를 미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거하면서 서로를 확인한 다음 혼인신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외국에 비해 혼인신고를 한 부부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런가 하면 ‘몰래’ 혼인신고를 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허위’ ‘강제’ 혼인신고도 있다. 이럴 경우 현행법 기준 혼인 관련 사문서를 위조한 사람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적용된다. 지난해 9월 전 부인 몰래 혼인 신고서를 위조해 다시 혼인신고를 한 60대 남성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의식불명인 상태의 남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위조해 혼인신고를 한 사실혼 아내에게도 벌금형이 내려졌다.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음에도 사문서 위조가 가볍지 않은 죄라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허위 혼인신고 행위가 핫이슈가 됐다. 안 후보자가 42년 전 교제하던 여성의 동의없이 도장을 위조해 혼인신고를 했다가 1년여 뒤 이를 알게 된 여성이 소송을 제기해 혼인 무효 판결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서울가정법원의 1976년 3월 11일자 판결문에 따르면, 안 후보자는 “혼인신고가 되면 O씨가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는 취지로 변론했다. 안 후보자의 행위는 ‘사인(개인 도장) 등의 위조, 부정사용(형법 제239조)’과 ‘공정증서원본 등의 부실기재(형법 제228조)’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다. 공소시효(각각 5년, 7년)는 지났지만 각각 3년 이하의 징역,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법무부 장관 후보라면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범죄행위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안 후보자는 16일 결국 자진 사퇴했다. 20대 중반 청년시절의 그릇된 행동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줬다. 그의 ‘운명’이지 싶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인사청문회 무용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내각 구성으로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다. 대한민국의 인사청문회는 제16대 국회가 지난 2000년 6월 23일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구성ㆍ운영과 인사청문회의 절차ㆍ운영 등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률인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함으로써 도입됐다. 공정하고 철저한 인사검증을 통해 흠결이 있는 인사는 모두 자진해서 물러나든가 임명권자가 지명을 철회해 깨끗한 사람들이 공직후보자가 돼야 한다는 견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서로 흠집만 내려는 예절을 벗어난 수준 이하의 소모적ㆍ정략적 의도의 인사청문회가 매번 이뤄지면서 여야간의 정쟁만 유발하고 임명권자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하게 하는 등 “청문회 필요 없다”는 무용론이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14일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에 야당은 초법적이라며 ‘청문회 무용론’을 제기했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실시된 이후에 국회의 반대로 인해 임명 동의를 받지 못한 후보자는 총 34명이다. 이 가운데 31명이 임명되고 단 3명이 낙마했다. 이 결과를 보면 인사청문회의 무용론이 설득이 있어 보인다. 국회가 반대하더라도 임명하면 그만인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 중에서 인사청문회를 도입해서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 미국, 필리핀이다. 이 중에서 미국이 1787년부터 청문회제도를 만들었는데 우리나라가 이 제도의 일부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청문회 대상 전원이 국회의 동의를 반드시 받도록 돼 있는데 낙마의 비율은 2% 미만으로 거의 통과가 된다. 이같이 인사청문회 통과 비율이 높은 것은 미국 공직 후보자들이 흠결 없이 깨끗한 사람들만 추천돼서가 아니다. 백악관은 FBI, 공직자윤리국, 국세청 등과 함께 6개월 정도 사전검증을 하고 이를 통해서 걸러져야만 청문회에 나갈 수 있게 돼 있다. 이미 충분한 검증 절차를 갖고 적격자를 후보자로 내세운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벌어지는 야당의 발목 잡기, 청와대의 졸속 추천 등 되풀이되는 여야간 정쟁으로 ‘부적격자’가 임용돼 국민이 피해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근본적인 청문제도의 보완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 차장

[지지대] 일자리 천국과 호사다마(好事多魔)

새 정부 들어온 나라가 일자리 만들기로 들썩이고 있다. 이 추세라면 머지않아 대한민국이 일자리 천국이 될 기세이다. 새 정부가 청년들이 울부짖는 헬조선(살기 힘들고 희망이 없는 나라)의 주범인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선정한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는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년실업 방치가 국가적 재난이 될 수 있다”라며 범 국가적 차원의 일자리 정책을 호소하고, 오늘(14일)은 전국 시·도지사를 초청해 일자리를 주제로 간담회를 갖는다 하니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다. 인천시도 이미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일자리경제국’까지 신설해 일자리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 최저시급 1만원시대까지 예고된 상황이니 청춘들이 살만한 나라가 돼가는 모양새이다. 모두가 잘 될 것만 같은 순간,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왜 일까. 기억 한 켠에서는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당시의 좋지 않은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정부가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를 위해 시행한 이 법은 ‘비정규직 근로자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2년 이상 고용 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골자다. 당시 노동계와 경제계에서는 이 법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때 비정규직 근로자 상당수는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10년이 지난 현재 인력용역회사 소속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추락했다. 공공기관 곳곳에서도 적지 않은 1~2년짜리 계약직 근로자들이 재 취업 걱정으로 한숨 속에 보내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더 추운 곳으로 밀어낸 셈이다. 새 정부 취임 이후 일부 지자체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일 자리 숫자에 연연한 실적용 일자리 만들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저시급 1만원을 견디지 못해 폐업하는 영세상인이 속출하고, 기업들까지 인건비 부담으로 근로자 수를 줄여 있던 일자리까지 사라진다는 ‘최저시급 1만원의 저주설’이 나돌고 있다. 물론 새 정부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같은 예상도 못한 채 일자리 정책을 준비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새 정부는 부디 근로자가 행복한 일 자리를 내놓기를 기대한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으면 근로자는 행복하다. 가족이 행복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 호사가들의 각종 입담과 호사다마가 한낱 기우이기를….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주군과 측근의 꿈

지난해 연말 ‘시장’이 측근들을 불렀다. 때마침 정국은 대선으로 가고 있었다. 현역 도지사와 현역 시장들이 전례 없이 뛰어든 판이었다. 그날 자리에서 ‘시장’이 던진 화두는 이랬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의견들을 내보라.’ 질문의 핵심이 ‘연임’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전언에 따르면 참석한 측근 다수가 ‘연임하셔야 합니다’고 했다. 한 참석자는 “연임 주장만 이어지자 시장님이 짜증스런 반응을 보였다”고 귀띔했다. ▶별로 특별하거나 낯선 광경이 아니다. 선거가 1년 앞으로 오면서 곳곳에서 전해오는 모습이다. 주군(主君)의 질문에 측근들 답은 대부분 ‘계속 하셔야 합니다’다. A시의 a시장도 그랬다고 하고, B시의 b시장ㆍC시의 c시장도 그랬다고 한다. 불평이 쌓이는 쪽은 그 의견에 반대하거나 침묵하는 측근들이다. “측근들이 제 살 궁리만 하면서 시장님 판단을 흐리게 한다”며 투덜댄다. 이런 투덜거림이 그들만의 밀담을 바깥세상에 흘려준다. ▶남 지사의 재선 도전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연임필승(連任必勝)의 의지를 불태우는 측근들이 보인다. 조직을 정비하고, 언론 접촉을 늘려가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어느덧 ‘연임 도전’의 목소리가 측근 여론의 대세를 이뤘다. 이런 분위기가 알음알음 바깥으로 전해졌다. 오늘 현재-2017년 6월- 여론은 ‘남 지사 연임 도전’이다. ‘더 큰 정치에 도전하자’거나 ‘중앙무대로 진출하자’는 측근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침묵하거나 묻혀 버린다. ▶지방선거가 1년 남았다. 광폭의 변동이 예상되는 선거다. 시장ㆍ군수와 도지사를 지방 정치와 중앙 정치의 몫으로 양분하던 경계가 깨질 것으로 보인다. 여론도 그런 쪽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양기대 광명시장, 이석우 남양주 시장, 김윤식 시흥시장이 거론된다. 출마 여부를 묻는 말에 부인하지 않는 시장들이다. 염태영 수원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도 꼽힌다. 본인 뜻과 상관없이 언론이 확정(?)해버린 시장들이다. ‘결정’을 위한 ‘측근 회의’가 유독 많아진 이유다. ▶어차피 주군과 측근의 관계란 게 그렇다. 목표 전까지는 같은 곳을 보지만, 목표 후부터는 다른 곳을 본다. 주군은 꿈을 미래에 두지만, 측근은 꿈을 현실에 둔다. 주군은 더 앞으로 가고 싶어 하고, 측근은 그 자리에 앉고 싶어한다. 모든 측근은 아니어도 대개의 측근이 이렇다. 하기야, 승리의 열매는 만인의 몫이지만 실패의 책임은 혼자의 몫인 게 정치 아닌가. 이래저래 몇몇 시장ㆍ도지사들에겐 외로운 결정의 시간이 왔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연결되지 않을 권리

프랑스에서 올해 1월1일부터 발효된 새 근로계약법은 근로자들의 ‘접속 차단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보장한다. 업무시간 외 퇴근 후나 휴일에 직장 상사로부터 온 업무 관련 전화나 이메일,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권리가 법적으로 명시된 것이다. 독일 폴크스바겐, 다임러 등 일부 회사가 노사협약을 통해 퇴근 이후 이메일·메신저 사용을 제한한 사례가 있지만, 프랑스의 새 노동법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돼 의미와 파장이 크다. 국내에서도 퇴근하면 SNS를 금지하는 기업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4월부터 밤 10시 이후 카카오톡으로 업무지시를 하지 않기로 정하고 어길 시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CJ그룹도 최근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퇴근 이후와 주말에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통한 업무지시를 금지했다. 7개 증권 회사는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포함시켰다. 퇴근 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 등의 업무 지시는 근로자 일상생활에 스트레스를 준다.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ㆍSNS 보편화로 이른 새벽이나 늦은 저녁, 심지어 휴일에도 업무지시가 이어지면서 근로자들은 핸드폰 보기가 무서워지는 이른바 ‘메신저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때문에 근무시간 이외에 직장 상사로부터 온 업무 관련 전화, 메일,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권리, 일명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높다. 지난해 6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을 대표 발의,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 소위에 회부돼 있다. 별 진척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에 대한 공약을 내놨다.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많아지자 대선 당시 근로시간 외 전화·문자메시지·SNS 등을 통한 업무 지시를 제한해 근로자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공약을 빠르게 이행하고 있어 지지부진했던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 법안도 빠르게 처리될지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에 맞춰 퇴근 후 업무 지시 제한을 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해 질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근로시간 보다 상당히 길다. 퇴근 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주말이나 휴일에도 이어지는 업무 관련 메시지와 이메일. 근로자들의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고 사생활 존중 차원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윤달

막냇동생 생일은 음력 5월 10일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윤달’ 음력 5월 10일이다. 매년 음력 5월 10일에 가족끼리 생일파티를 하긴 한다. 그런데 올해는 ‘진짜’ 생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윤오월이 있는 거다. 얼마 만에 ‘진짜’ 생일을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윤달이 몇 년에 한번 오는 데다 윤삼월이 될 수도, 윤사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윤달생(生)은 진짜 생일을 평생 몇 번 못하게 된다. 윤달은 음력에서 계절과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끼워 넣는 여벌 달이다.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초승달·상현달·보름달·하현달·그믐달로 변하는 주기, 즉 약 29.5305일을 한 달로 본다. 음력에서는 29일 달과 30일 달로 날짜와 달의 모양을 맞춘다. 우수리 0.0305일은 33개월간 모았다가 29일인 달에 하루를 더한다. 이렇게 하면 1년 날짜 수가 354일밖에 되지 않아 매년 양력과 약 11일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 오차를 줄이려고 2∼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두는 것이다. 지난 윤달은 2014년 9월이었고, 다음 윤달은 2020년 4월이다. 윤달은 덤으로 생겼다 해서 ‘공달’ ‘썩은 달’ ‘손 없는 달’이라 한다. 윤달에는 신들이 휴가를 떠난다고 한다. ‘하늘과 땅을 감시하는 신이 없는 달’이어서 궂은일을 해도 탈이 없다는 속설이 있다. 이 때문에 윤달에 무덤을 파 이장하거나 수의를 장만하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3년 만에 돌아오는 윤달(양력 6월 24일~7월 5일)을 앞두고 ‘화장(火葬)전쟁’이 한창이다. 묘지를 개장해 화장한 뒤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자연장을 하려는 수요가 몰려서다. 용인 평온의숲, 고양 서울시립승화원, 수원시연화장, 성남 영생관리사업소 등 경기도내 4개 화장장은 윤달 화장시설 예약이 100% 완료됐다. 경기도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화장수요가 급증해 윤달 운영시간을 늘렸는데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화장이 급증하는 것은 묘로 덮여있는 산의 모습이 미관상 안 좋기도 하지만 벌초 등 묘를 관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관리가 어려운 묘지를 없애 후손들의 수고를 덜어주려는 어르신들의 배려도 한몫했다. 장묘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음도 보여준다. 반면 윤달에 출산과 결혼 같은 경사는 꺼리는 분위기다. 조상들의 음덕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 정상적인 기간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란다. 한참 시즌에 예식장과 신부화장하는 미용실 등은 파리 날리는 신세가 됐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대한민국의 독특한 윤달 풍경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지금 현재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인생선배의 개념주례사(결혼을 해서 해야 할 일 & 하지 말아야 할 일)’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접하고 갖게 된 고민거리다. 꽤 젊은 사람이 주례를 서는 동영상으로 ‘이건 뭐지’라는 호기심에서 보기 시작했지만, 동영상을 다 본 후엔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동영상 속 주례의 메시지는 결혼에 꼭 필요한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졌다. 첫째는 부부싸움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을 살았기에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다툼과 싸움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법은 뭘까. 서로 안 싸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왜 싸웠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이다. 이어진 얘기는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그 기준은 ‘꿈’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에게 질문했다. “사위와 며느리의 꿈을 아는지? 어느 학교를 졸업했고, 어느 직장을 다니는지는 알겠지만 자식들의 꿈은 모를 것이다. 아니 모를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물어봤지만 당사자도 몰랐기 때문이다”라고 했다.이후 신랑과 신부의 꿈을 소개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꿈을 이룬 사람보다 꿈을 이뤄가는 사람이다. 개인의 꿈이 중요한 만큼 결혼은 서로가 서로의 꿈을 존중하고 그 꿈을 이루게 도와주는 사람이 돼야한다”라고 마무리했다. 두 번째는 더 단순하다. 바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행시로 많은 것을 표현했다. ‘비-비참해지거나, 교-교만해지거나’ 비교의 끝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어 만일 비교를 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어제의 나 자신’이며, 그것은 비교가 아니라 반성이고 성찰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꿈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나이에 관계없이,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다시 한 번 나의 꿈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내 주변 소중한 이들의 꿈은 무엇인지 알아봐야겠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고은 시인

고은 시인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관심은 남다르다. 매년 가을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되며 언젠가는 대한민국 사람 중 한 명이 노벨상을 탄다면 고은 시인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만인보’ 등은 노벨문학상에 거론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수원에 자리 잡은 시점은 2013년 8월이다. 수십 년 동안 부인과 함께 안성에 거주하던 고은 시인. 그가 안성을 떠나기로 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모시기 경쟁이 벌어졌다. 당시 수원시는 물론 파주, 김포, 강원도 철원, 동해, 전라남도 군산 등 전국 지자체가 고은 시인을 모시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냈다. 특히 인문 도시를 꿈꾸던 염태영 수원시장은 고은 시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시 관계자를 10여 차례 이상 안성으로 보내 고인 시인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전까지 수원이란 곳은 고은 시인과 인연을 찾아 볼 수 없다. 어쩌면 고은 시인이 수원으로 이사하는 것은 의외의 선택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염태영 시장을 비롯한 수원시의 노력에 감동한 고은 시인은 광교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지금의 수원은 노벨문학상 후보 고은 시인이 사는 도시가 됐다. 수원시는 고은문학관 건립을 추진하는 등 인문 도시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수원시가 인문 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고은 시인은 상징적 인물이 됐다. ▶그러나 최근 수원 광교산 자락에 거주 중인 고은 시인을 놓고 수원 지역사회가 어수선하다. 일부 광교 주민들이 ‘고은 시인은 수원시를 떠나라’며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는 자신들은 상수원보호구역 등으로 개발제한되고 있는데 시가 고은 시인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재산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여기저기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재산권 문제에 고은 시인을 끌어들이는 것을 이해해 줄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창작활동을 돕겠다며 어렵게 모신 세계적인 노(老)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여성 편견 - 편견 여성

1975년 10월 8일. 정기국회 단상에 양복 차림의 의원이 섰다. 마이크 앞에 선 그가 시작한 연설은 반(反) 유신헌법이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이어지던 관제(管制) 데모를 맹 비난했다. 베트남 공산화 이후 계속된 안보 행사였다. 정부가 전쟁심리를 조성해 영구집권을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로써는 금기와도 같았던 유신헌법 비판이었다. 연설은 여권인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의 야유로 중단됐다. 속기록도 다 삭제됐다. ▶정일권 국회의장은 징계안을 회부했다.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국회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이적(利敵)행위였다는 이유였다. 의원제명이 결정됐고 여야의 대치가 계속됐다. 이때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당을 위해 사퇴하라’고 권고했다. 소속 의원을 보호하는 대신 출당을 명한 것이다. ‘김옥선 파동’이다. 그 남장(男裝) 국회의원은 김옥선(83)이었다. 김영삼 총재에게는 여성 단체가 보낸 면도칼이 배달됐다. 면도칼이 상징하는 바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남장 여성 의원’ 김옥선의 도전은 계속됐다. 10년간의 공민권 박탈이 끝나자 대통령에도 도전했다. ‘3김’(김대중ㆍ김영삼ㆍ김종필)으로 상징되는 남성 정치판에서 여성 정치인의 도전은 그렇게 외로웠다. 그리고 30여 년, 세상이 달라졌다. 여성 공천 비율이 당헌으로 보장되는 시대다. 여성 당대표의 당무 수행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여성 대통령 밑에 남성 총리가 일상의 모습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이제 ‘결혼 안 한 남장 여성 정치인 김옥선’의 얘기는 흑백 화면 속 ‘대한 늬우스’로만 남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경화씨를 최초의 여성 외교부 장관에 지명했다. 그런데 잡음이 많다. 자녀의 이중 국적,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등등이다. 오늘부터 시작될 청문회에서 야당은 독하게 물고 늘어질 태세다. ‘반드시 낙마시키겠다’며 벼르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은 ‘비고시 출신의 능력자’라며 임명을 강행할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얘기가 나온다. ‘강 후보자 낙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다’는 주장이다. ▶정말 그런가. 강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제기가 여성이기 때문에 제기되는 공세인가. 그렇다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지명자의 경우가 설명 안 된다. 국토교통부 장관에 여성이 지명된 것도 최초다. 외교부 못지않게 금녀의 벽이 높던 곳이다. 그런데 지명 일주일이 되도록 김 지명자에 대한 의혹은 한 건도 없다. 위장 전입 논란도, 부동산 투기 논란도, 이중국적 논란도 없다. 여성 편견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편견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치매 국가책임제

치매는 고령화 사회의 그늘이자 재앙이다. ‘철학적 죽음’이라고도 표현하는 치매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 큰 고통을 준다. 치매 환자를 혼자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한데 환자는 가족도 몰라보기 때문에 가족의 삶을 황폐화 시킨다. 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는 72만5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노인 10명 중 1명(유병률 10.2%)이 치매 환자다. 치매 환자 중 15.5%에 해당하는 11만2천여 명은 중증 환자다. 2050년에는 치매 환자가 27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1천418억원을 들여 47곳에 불과한 치매안심센터를 전국 시군구 252곳으로 확대한다. 34곳인 치매안심병원도 605억원을 들여 79곳으로 늘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서울의 한 요양원을 방문해 치매 환자와 가족, 요양업무 종사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이들이 겪는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치매 진료비의 90%를 국가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포함한 ‘치매 국가책임제’도 선언했다.인천공항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대책을, 초등학교에서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한데 이은 ‘찾아가는 대통령’의 세 번째 행사에서 치매를 화두로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에게만 맡겨져 있던 치매 치료와 간병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나눠지겠다니 반길 일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치매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문제”라며 ‘치매 국가책임제’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치매 국가책임제 공약은 장모가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문 대통령이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약은 후보 시절 정책 홍보 사이트인 ‘문재인 1번가’에서 ‘좋아요’를 10만건 이상 받았다. 청와대 사회수석실은 6월 말까지 이행 계획을 보고하고, 내년부터 제도를 본격 시행키로 했다. 치매 국가책임제는 ‘치매지원센터 확대 설치’ ‘치매 안심병원 설립’ ‘노인 장기요양보험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 ‘치매 의료비 90% 건강보험 적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70만명이 넘는 치매 환자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고 돌보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인프라 재정비, 특히 치매 전문 의료시설 확대, 요양 서비스 종사자의 전문성 강화 등이 동반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향후엔 치매 예방과 조기발견 치료까지를 포함한 전방위적인 치매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층견(犬)소음

아파트나 다세대 등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층간소음으로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층간소음으로 인해 욕설과 폭행은 다반사고 종종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요즘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층간소음 못지않게 개ㆍ고양이 등 반려동물로 인한 ‘층견(犬)소음’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1천만을 넘어섰다. 관련 산업도 크게 발전했다. 반려견의 경우 전용 유치원에다 병원, 미용실, 호텔, 장례식장까지 등장했다. 현재 2조 원 규모인 반려동물 시장은 2020년엔 지금보다 3배가량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문제는 반려동물이 느는 만큼 이웃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목줄 미착용이나 배설물 방치 등으로 종종 다툼이 일어난다. 서로가 얼굴을 붉히는 선에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폭력으로 번지기도 한다. 공동주택의 반려동물 소음은 더욱 심각하다.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못 살겠다는 민원이 층간소음 민원을 크게 앞질렀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는 ‘반려동물 관리 철저’ 공지문이 붙었다.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특별 조치할 것’ 등의 주의사항과 함께 이를 위반할 경우 과징금 10만원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이 적혔다. ‘저희 아파트는 사람이 사는 아파트지 동물을 키우는 애완견센터나 보호건물이 아니다’라며 ‘빠른 시일 내에 반려동물을 처분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반려동물은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처분하라는 내용은 황당하다. 아파트 관리규약에 반려동물과 관련된 조항이 주민 합의로 포함돼 있지 않으면 입주자 대표가 과징금을 물릴 수도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이웃간 분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반려동물 소음으로 인한 민원과 분쟁이 늘자 일부 자치단체에선 반려동물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청은 반려견 문화교실 ‘서당개’(서툰 당신의 개)를 열어 반려견과 개 주인을 상대로 문제행동 교정 실습, 산책 요령, 페티켓(반려동물 에티켓) 등을 교육했다. 반려동물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기 위해 동물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등을 교육하는 것이다. 서울시에선 반려동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을 중재하는 ‘동물갈등조정관’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공존해 살아가려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의 페티켓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냄새나 소음을 관리하는 등 동물보호법에 나오는 사항을 지키기만 해도 민원 발생이 줄어든다. 이웃에 대한 불편함뿐 아니라 나와 가족이 같이 살기 위해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일본의 민낯

‘독도는 일본땅이다.’ 몇 년 전 찾은 일본 시마네(島根) 현 앞바다 섬 오키(隱岐) 선착장에 내걸린 플래카드 문구다. 오키는 독도와 근접한 섬이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일본인들에게 문구의 의미를 물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역사적인 사료도 제시했지만, 답변은 변함이 없었다. 참담했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지하고 환영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담을 통해 아베 총리에게 이처럼 밝혀 파문이 일었다. 그러자, 유엔이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아니라, 위안부 해법의 본질과 내용은 양국에 달렸다는 원칙에 동의한 것”이라고 에둘러 해명했다. 외신의 보도 내용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5년 12월 한ㆍ일 정부 간 타결된 위안부 합의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아베 총리와의 취임 후 첫 전화 통화를 통해서도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태평양전쟁을 보는 시각이 상식적인 선에서 정착되려면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와타나베 기요시라는 일본인이 쓴 ‘산산조각 난 神’의 줄거리가 불현듯 떠오른다. 저자는 1940년대 일왕 명령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 청정무구하게 몸을 간직하다 일왕을 위해 몸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에 군인 위안소도 찾지 않았다.패전 후에는 일왕이 당연히 책임을 질 것으로 생각했다. 전쟁이 일왕의 명령에 따라 시작됐고 일왕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왕은 전쟁 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적장 맥아더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와타나베는 “나의 일왕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분노와 배신에 치를 떨었다. 새삼스럽지 않은 질문이지만, 우리는 일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인류학적으로 일본이란 민족의 정서에 대해선 얼마나 섬세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와타나베 기요시 같은 일본인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5년 내내 일본과 머리를 맞대면서 풀어가야 할 일본의 민 낯들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내각 후보자 위장전입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험하려고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이렇게 물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이 질문에는 바둑 세계랭킹 1위 커제를 울린 알파고의 ‘신의 한 수’가 숨어 있다. 예수께서 용서하라시면 율법을 어기게 된 거고 용서하지 말라시면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스스로 거스르기 때문이다. 어떤 답변도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다. 아마도 그들은 이번엔 예수를 죽일 수 있다. 생각했을 것이다.모두가 숨죽여 예수의 입만 쳐다볼 때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고서 일어나 말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은 이들이 하나씩 나가고 간음한 여자만 남자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 말씀은 이 시대에도 큰 의미를 준다. 자신을 돌아보아 반성하고 살피는 자아성찰(自我省察)이 있어야 비로써 내 입장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 이를 수 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위장전입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여기에 조국 민정수석의 옛 칼럼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위장전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조 수석이기에 남불 내로(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의 비판까지 감내해야 했다. 비록 갑작스런 대선으로 인사 검증에 한계가 있고 사전에 공개했더라도 국무총리 내정자를 비롯한 내각 후보자들의 과거 행태는 충분히 논란거리다. 그러나 현 정부를 비판하는 그들 또한 자유롭지 않다.여당 시절 도덕성 검증은 넘지 못한 인사가 어디 한둘인가. 후보자들의 임명동의안은 정치 논리로 결정되겠지만 국민은 여전히 언짢고 짜증 난다. 이해하기 싫다. 다른 이의 허물이나 단점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나의 잘못된 점을 알기란 어렵다.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현 정부는 인사 검증에 좀 더 철두철미해야 한다. 여야는 자아성찰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소통, 협치의 정치를 통해 국민을 편안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김창학 정치부장

[지지대] 대통령 벽상공신(壁上功臣)

1170년(의종 24). 정중부·이의방·이고가 난을 일으켰다. 사흘 만에 의종을 내쫓고 동생 호(皓)를 추대했다. 호-명종-는 난 주동자 3인의 초상을 조정 벽에 붙였다. 이후 이고는 이의방에게, 이의방은 정중부에게, 정중부는 경대승에게 각각 제거됐다. 이 과정에서 왕이 행사한 권한은 없다. 그저 벽상공신끼리의 권력 다툼을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100년이 고려 무인시대(武人時代)다. ▶조선조 태종은 개국공신에 대한 정반대 역사를 남겼다. 태조 7년(1398년), 이방원이 무인정사(戊寅靖社)를 일으켰다. 왕-태종-에 오른 그가 개국공신들을 숙청했다. 이숙번, 이거이 등 공신들을 귀향 보내고 처형했다. 공신 반열에 있던 처남 민무구ㆍ민무질 형제도 처형했다. 사료(史料)로 남은 기록 가운데 가장 냉정한 토사구팽이다. 세자 이도-세종-의 장인이던 심온까지 제거했다. 후임 세종은 우리 역사 최고의 성군이 됐다. 아버지 태종의 공신 퇴출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견해가 많다. ▶2012년 12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선인 캠프로부터 흘러나온 한 마디가 측근 모두를 긴장시켰다. 인사 청탁을 하는 측근에게 했다는 “이러려고 그러셨어요”라는 한 마디다. 이후 박 전 대통령 주변에선 배신의 역사가 시작됐다. 경제 민주화를 학습시켰던 김종인, 학자 출신의 특등 공신 이상돈 등이 줄줄이 퇴출됐다. 혈육(血肉)들의 청와대 출입도 금지됐다. 많은 언론이 ‘공신 배격’ ‘측근 퇴출’이라고 썼다. ‘적어도 공신이나 측근에 의한 비리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진짜 공신이 숨어 있었다. 40년 지기 특등 공신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를 제거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정권 공신보다 막강한 권력을 거기에 흘렸다. 그리고 그 권력은 과거 어떤 공신보다 거대한 비리를 저질렀다. ‘이러려고 그러셨어요’로 시작한 박근혜 정부. 가혹하리만큼 공신 척결에 칼을 휘둘렀다던 박근혜 정부. 돌이켜 보면 그 작업은 ‘특등 공신’을 위한 가지치기였다. 흉내는 세조의 공신 숙청이었지만, 결과는 명종의 공신 휘둘리기였다. 임기 중 퇴출과 구속이라는 참담한 결과만 안았다. ▶고금의 모든 권력은 출발과 함께 ‘공신 관리’라는 숙제를 안는다. 이 숙제에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굳이 교훈을 찾는다면 ‘중용’(重用)이 아닌 ‘중용’(中庸)을 택하라는 것 정도다. ‘권력의 중심에 기용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밖에 머물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취임 20일을 지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이런 공신 세력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저마다 ‘우리가 도왔으니 빚을 갚으라’며 청구서를 들이미는 모양이다. ‘重用’ 아닌 ‘中庸’의 묘(妙)가 필요해 보인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세비 반납 약속

“국민 여러분, 이 광고를 1년 동안 보관해 주세요.” 지난해 3월 4·13 총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신문에 실은 광고다. 광고엔 ‘대한민국과의 계약’이라는 제목과 함께 5대 개혁 과제를 제시하면서 2017년 5월 31일까지 이행하지 않을 경우 1년 치 세비를 국가에 기부형태로 반납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이 제시한 개혁과제는 △특권을 없애기 위한 갑을개혁 △일자리 규제 개혁 △청년 지원 등을 위한 청년독립 △40·50 자유학기제 △육아 지원 등을 위한 마더센터 설립 등이다. 여기엔 국회의원 후보자 56명이 이름을 올렸고,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자필 서명까지 했다. 경기ㆍ인천지역에선 원유철(평택갑)ㆍ김명연(안산 단원갑)ㆍ이우현(용인갑)ㆍ정유섭(인천 부평갑)ㆍ정병국(여주·양평)ㆍ유의동(평택을)ㆍ홍철호(김포을) 의원 등 7명이 참여했다.‘정치쇼’라며 반신반의 하는 이가 많았지만, 지지를 보낸 국민들도 상당수 있다. 국회의원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임금을 받지 않겠다는, ‘무노동=무임금’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고 그 이면엔 일할 기회를 달라는 절박한 호소가 담겨 있어서다. 하지만 ‘역시나’, 약속한 날짜가 임박했는데 아무런 액션이 없다. 공약 이행률은 0%에 가깝다. 계약서에는 “5대 개혁과제를 당장 시작하여 1년 안에 법안 발의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제시한 개혁과제 법안이 모두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법안이 발의됐다 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휴지조각에 불과해 무용지물이다. 법안 발의 자체가 보여주기식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옛 새누리당은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해체됐다. 약속했던 의원들은 상당수가 당명을 바꾼 자유한국당에서, 일부는 바른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당이 없어졌으니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국민들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그렇잖아도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가득한데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해선 안 된다. 궁색한 변명은 필요없다. 국민과 약속을 했으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온라인상에는 지난해 3월의 광고가 떠다닌다.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31명의 이름과 함께. 의원 연봉이 1억원이 넘으니 반납되는 세비가 30억원 이상은 될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국민과 약속했던 의원들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국회의원이 쇼하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나.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마약풍선

‘청소년들이 환각효과를 얻기 위해 부탄가스를 흡입하다 담뱃불로 폭발, 화재를 일으키는 사례가 급증함에 따라 정부가 비상대책에 나섰다. 내무부는 25일 금년들어 지난 8월까지 부탄가스로 인한 화재가 64건에 이르고 이로 인한 사상자만도 55명에 이르는 등 사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교육부, 문화체육부, 상공자원부 등 관계부처에 이 같은 실정을 통보하고 공조체제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1993년 9월25일 연합뉴스 기사의 일부다. 청소년들의 부탄가스 흡입 피해가 급증하는데다 저연령화되고 여학생 사고도 늘어 사회문제가 됐던 때다. 이에 내무부가 부탄가스 사고 위험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줄 것을 교육부에 요청했다. 상공자원부엔 ‘흡입할 경우 질식 등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오며 청소년의 정서와 건강을 해칩니다’라고 가스 용기의 경고문 강화를 요청했다. 문화체육부는 부탄가스에 악취나는 혐오제를 첨가해 판매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 연구용역을 줬다. 한때 부탄가스는 공업용 본드와 함께 소위 ‘문제’ 청소년들의 애용품이었다. 일시적 환각상태에 빠질 수 있고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많은 청소년들이 손을 댔다. 환각상태에서 강도, 강간 등 강력사건이 발생했고, 흡입하다 숨지거나 중화상을 입는 사고도 속출했다. 요즘 대학가와 인근 유흥가에서 해피벌룬, 일명 ‘마약풍선’이 화제다. 해피벌룬은 아산화질소(N2O)가 들어간 풍선인데 그 안에 든 가스를 마시면 웃음이 나고 행복해진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해피벌룬 가스를 들이마신 사람들은 20∼30초간 정신이 몽롱해지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에 취한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풍선 하나에 4천~5천원 정도여서 호기심에 너도나도 풍선 가스를 들이마시고 있다. 아산화질소는 마취 보조 가스의 주성분이다. 치과 수술 등 국소마취제로도 사용한다. ‘중독성이 없다’는 이유로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과도하게 흡입할 경우 호흡곤란이나 일시적 기억상실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심하면 질식사 위험도 있다. 해외에서는 아산화질소를 흡입한 사람이 사망한 사례까지 나오면서 구입 및 사용을 규제하는 추세다. 영국에선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아산화질소 흡입으로 17명이 숨지자 지난해 5월부터 허가된 용도 외 아산화질소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우리도 아산화질소 오남용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 ‘일시적 몽롱함’을 맛보려 건강을 해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지휘자의 리더십

▶김대진 수원시립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의 사표가 수리됐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그가 수원시향 상임 지휘자로 활약한 지 9년 만이다. 내년 4월까지 임기가 남아있음에도 사표를 낸 배경에 이목이 쏠렸다. 김 감독의 운영 방식과 단원을 대하는 태도가 발단이었다. 수원시향 노조는 김 감독의 고함과 ‘박치’라는 모욕적 언행 등에 ‘폭력적인 리허설, 수준 미달의 리더십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며 항의했다. 이에 김 감독은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사표를 제출했다. 김 지휘자는 수원시향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진정한 하모니를 이루지 못해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게 됐다. ▶‘지휘자(conductor)’라면 보면대 앞에서 지휘봉을 흔드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 같은 근대적인 지휘자가 출현한 것은 19세기 초다. 그리스 시대에는 발로 박자를 통일시키고, 훗날 손의 움직임으로 박자와 선율의 상하를 지휘하는 카이로노미(chironomy), 17~18세기 긴 막대로 마룻바닥을 쳐서 지휘하는 등 다양한 형식이 존재했다. 작곡자나 수석 연주자들이 그 역할을 맡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그러나 악기의 발달과 더불어 지휘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직업인으로서의 지휘자가 등장했다. 단순히 집단적 연주의 시작과 끝, 박자, 리듬을 통일시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해석하고 이를 ‘연주자들을 통해’ 재창조하는 전문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연주단원들과 소통하고 하모니를 이루는 것은 지휘자를 진짜 지휘자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역량인 셈이다. ▶최근 지휘자의 리더십을 가장 요구받는 인물은 단연,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보름 동안 탈권위, 파격적인 스킨십, 공격적인 개혁 등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나 정부 정책 등에 대한 글을 쉽게 찾기 어려웠던 한 육아 커뮤니티 카페가 ‘달(문ㆍmoom)님’ 팬을 자처하는 게시글로 도배되는 것이 방증한다.문 대통령이 선택한 내각과 청와대 입성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한창이다. 어떤 오케스트라가 꾸려질 것인가. 지휘자든 연주자든 최종 목적은 관객의 감동이다. 문 대통령이 현명한 지휘자의 리더십을 발휘해 훌륭한 연주자들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국민을 감동시킬 날을 기다린다.류설아 문화부 차장

[지지대] 탕평 비빔밥

한국인의 밥상은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다. 반찬의 수에 따라 3첩 반상도 되고 임금님의 밥상인 수라상(12첩 반상)도 된다. 비빔밥은 반찬을 따로 차리는 번거로움을 줄여주는 음식이다.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갖가지 나물과 양념을 넣고 비벼 먹는 식이다. 우리나라 대표 음식으로 1990년대 초반 대한항공 기내식으로 채택되면서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비빔밥은 여러 유래가 있다. 밥, 고기, 생선, 나물 등을 준비해 정성껏 제사를 지내고서 후손들이 나눠 먹는 과정에서 밥과 반찬을 섞어 먹었던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묵은 것을 없애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에서 섣달 그믐날 밤에 남은 음식을 모두 넣어 비벼 먹었다는 풍습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조선시대 왕이 점심때 먹는 가벼운 식사인 ‘비빔’이라는 게 있었는데, 거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비빔밥은 있는 반찬을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우리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영양소가 한 그릇에 담겼다는 장점이 있다. 얹어 먹는 쇠고기와 계란 등에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고 각각의 재료를 조리할 때 사용하는 기름에서 지방을 보충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나물에는 비타민과 식이 섬유소가 풍부하다. 고추장 양념에 들어 있는 캡사이신은 암을 예방하고 스트레스를 없애 준다.▶영조가 즉위했을 때 조선의 붕당 정치의 폐해는 극에 달했다. 영조는 신하들끼리 편을 갈라 자신들의 이익만 좇는 붕당 간 싸움이 왕권을 약화시키고 백성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당시 붕당을 상징하는 색과 음식이 있었는데 북인은 김(검은색), 동인은 미나리(초록색), 서인은 청포묵(흰색), 남인은 쇠고기(붉은색)였다. 각 붕당을 상징하는 음식을 넣고 무쳐서 먹는 음식이 탕평채(蕩平菜)다.▶영조는 당파 간 싸우지 말고 협력하라는 뜻에서 손수 탕평채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자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재료들을 섞어 무쳐서는 함께 먹자고 권했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의 회동에서는 ‘통합’에 대한 의지를 담은 비빔밥이 주 메뉴로 나왔다고 한다. 대통령이 바라는 ‘협치’가 밥 비비는 것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