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구속 대통령들의 건강

1995년 12월 3일 오전 11시. 안양 교도소 본부 2층 분류심사과장실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들어섰다. 김상희 부장검사 등 수사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12ㆍ12와 5ㆍ18에 대해선 진술하지 않겠소.(전)” “주소는 어떻게 되십니까.”(검) “으음, 모르겠는걸”(전). “그럼 전화번호는”(검).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전화 다이얼을 돌려본 적이 없거든”(전). 김 부장이 보리차를 권했다. 그러자 전씨가 말했다. “나 오늘부터 단식을 시작했어.” ▶단식 18일째, 전씨가 경찰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래도 단식은 계속했다. 12월 29일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담당 의사가 전씨에게 말했다. ‘단식을 계속하면 치매가 올 수 있습니다’. 그제야 전씨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27일간의 단식이 그렇게 끝났다. 단식을 끝내며 전씨가 탄식했다. “죽는 것마저도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 이것도 운명이라면 할 수 없지.” -1998년 4월 경향신문 연재 ‘秘錄, 문민검찰 특별 조사실’ 중에서-. ▶언론에는 전씨의 건강이상설이 보도됐다. 구속수감 86일만의 재판정 출석을 앞두고 검찰도 긴장했다. 의사 1명과 간호사 1명이 의료 장구까지 갖추고 법정에 대기했다. 하지만, 막상 취재진 앞에 나타난 전씨는 당당했다. 검찰 측 공소사실에 또렷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돈을 건넨 기업인들에 대해 일일이 인물평까지 내놨다. 기자들이 구치감에 입감되는 전씨에게 물었다. “건강이 어떻습니까.” 전씨가 여유 있게 답했다. “매우 좋습니다.” ▶대선 기간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단식설이 나돌았다. 건강 이상설도 있었다. 모두 일부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가짜뉴스로 판명났다. 그럼에도, 그의 건강 문제는 끊임없이 관심을 끌었다. 재판 직전에는 “얼굴이 심하게 붓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다. 지병인 부신피질기능저하증으로 인한 증상 같다”는 측근의 전언도 있었다. 하지만, 53일만에 모습을 보인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은 특별히 나빠 보이지 않았다. 눈빛은 강했고 자세는 곧았다. ▶재벌 총수들은 구속되면 중환자가 된다.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기 일쑤다. 산소 호흡기를 매단 채 입정(入廷)하기도 한다. 변호인들은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침소봉대한다. 진실 여부를 떠나 국민 눈에는 병보석을 위한 ‘소송 기술’로 비친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달랐다.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랬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아프다’고 하지도, 풀어달라고도 하지도 않는다. 그게 더 굴욕이라 여겨져서일까. 김종구 주필

[지지대] 고졸신화

문재인 정부 경제팀을 이끌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화제다. 언론매체마다 ‘흙수저’ 출신으로 ‘고졸신화’를 쓴 입지전적 인물이라며 대서특필 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11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세 동생을 부양해야 했다.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 살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덕수상고 재학시절인 17살에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했다. 공부에 대한 갈증은 8년간 야간대인 국제대(현 서경대)에 다니며 풀었다.낮엔 은행원으로 일하고 밤엔 공부한 끝에 25살이던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이듬해 3월 경제기획원으로 옮겼고, 경제부처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일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초대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2015년 2월부터는 아주대학교 총장직을 맡았다. 상고, 야간대 출신으로 부총리까지 오른 김 후보자를 두고 ‘흙수저 신화’ ‘고졸신화’ ‘인간승리 드라마’라며 떠드는 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력 지상주의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이 수두룩한 한국사회에서 고졸 출신이 장관직에 오르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김 후보자도 언론 인터뷰에서 “고졸이라는 현실의 벽은 높았고, 100m 달리기에서 50m쯤 뒤처진 채 출발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어 야간대학에 진학했다”고 한 바 있다. 공직에서 인사제도상 학력 차별은 없다. 공채시험의 경우 1973년부터 응시자격에 학력제한을 폐지했으며, 2005년부터는 원서 접수 시 학력 기재란을 없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고졸 이하 학력자 비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는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는 학력 인플레 현상과 공직 선호도 증가 등이 맞물려 과다학력 보유자들의 지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 각 분야에 유입되는 것은 국가적으로 낭비다. 이로 인해 그 자리에서 일해야 할 고졸자들의 기회가 제한되는 것도 문제다. 청년 실업의 원인 중 하나도 ‘학력 과잉’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학력 지상주의를 타파하고 능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우대받는 사회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정부 및 공공 부문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하다. 고졸 출신 채용 우대 및 확대를 위한 다양한 조치가 필요하다. 사회 일각에서 ‘고졸만세(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세상 만들기)’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고졸자들의 성공 사례가 더 이상 신화로 불리지 않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외모 패권주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증세없는 복지’가 화제다. 새 정부의 복지정책과 관련있을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들의 외모가 준수해 이들을 보면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올라간다는 의미다. 누가 처음 이 말을 사용했는지, 기발하고 재밌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즐거워한다. 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등을 일컬어 ‘청와대 F4(flower4)’, ‘꽃보다 청와대’란 별명이 붙었다. ‘친문(親文)패권’을 패러디한 ‘얼굴패권주의’ ‘외모패권주의’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외모가 준수한 사람들이 현 정부의 요직을 선점했다는 것을 긍정적이면서 우스갯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외모 관련 화제가 계속되자 자유한국당은 지난 12일 조국 민정수석을 향해 “조 수석은 잘생긴 것이 콤플렉스라고 해 대다수의 대한민국 남성들을 디스했다”는 논평을 냈다. 즐겁자고 한 얘기에 논평까지 내자 오히려 웃음거리가 됐다. 개그를 다큐로 받은 꼴이다. 13일 봉하마을을 찾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저는 외모가 안 돼서 못 들어갑니다”라며 청와대 입각에 뜻이 없음을 우회적으로 밝혀 웃음을 주기도 했다. 취임 후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친근한 이미지로 호평을 받고 있다. 많게는 20년 이상 젊어진 참모진 발탁 역시 좋은 반응이다.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박근혜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교체하고 새로 들어선 정권인 만큼 기대와 애정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권위의식을 내려놓은 새 정권에 대한 친근감의 표시일 수도 있다. 대통령 스스로 양복 자켓을 벗고, 참모진과 청와대를 산책하며 테이크아웃 커피를 나누고, 직원식당에서 스스로 밥을 퍼 같이 먹고, 시민들과 셀프 카메라를 찍는 인간미에 국민들은 대통령을 더 멋지게 본다. 과거 정부처럼 권위를 내세우고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꽉 막힌 대통령이었다면 외모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이처럼 열광하진 않았을 것이다. 일단, ‘청와대의 남자들’은 성공적인 것 같다. 하지만 결국은 외모가 아닌 정책과 능력을 통해 냉철하게 평가받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잘 생긴 얼굴도 국민을 외면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국정을 잘 수행하지 못하면 꼴 보기 싫은 인물이 된다. 스마트하고 탈권위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준수한 외모만큼 국정수행도 잘해 국민들의 많은 박수를 받길 기대한다. ‘증세없는 복지’가 계속되기를….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파격(破格)

지난 9일 ‘장미대선’으로 선출된 문재인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파격행보가 연일 화제다. 신임 참모진과 셔츠 차림으로 청와대 잔디밭에서 커피를 마시며 국정을 논의하는 모습이나, 그동안 권위를 상징했던 청와대 본관 대신 위민관에서 업무를 시작했던 일, 여성 인사를 처음으로 인사수석에 내정했던 일 등등.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파격적 행보에 큰 관심을 보이며,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파격(破格)’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일정한 격식을 깨뜨림. 또는 그 격식’이라고 정의돼 있다. 가장 최근 전 세계적으로 파격 행보의 중심이 된 인물로 꼽을 수 있는 이는 바로 ‘청빈한 교황’의 상징으로 떠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3월 콘클라베로 선출된 후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자신이 머물렀던 호텔에서 숙박료를 직접 계산하고 자신의 가방을 건네받았다.이는 예전 교황들이 바티칸에서 기다리면 교황청 관계자들이 모든 뒤처리를 담당했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으로, 파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에 선출된 후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낼 당시 교황의 위엄을 나타내는 붉은 망토를 걸치지 않았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교통편도 교황 전용차를 마다하고,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에 탑승하기도 했다. ▶파격이 단순히 파격으로만 끝난다면, 그저 바꾸기를 좋아하는 어떤 인물의 아집으로만 일반인들의 뇌리 속에 기억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틀을 깨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시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파격이 변화된 국가의 초석을 다지고, 또 그동안 관례처럼 여겨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기틀로 자리매김할 때 그 파격은 엄청난 파괴력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파격이 정권 연장을 위한 포퓰리즘적 정치 논리이자, 보여주기식 국정 운영이라면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 하지만 진정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조타수 역할을 위한 파격이라면 언제나 응원한다고 말이다. 김규태 사회부 차장

[지지대] 멍 때리기

▶최근 서울 한강에서 특이한 행사가 열렸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제4회 한강 멍 때리기 대회’. 무려 3천여 명이 참석한 이 행사는 직장인, 가정주부를 비롯, 교도관, 삼수생, 지하철 역무원, 취업준비생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아기 엄마는 멍 때릴 시간 없다, 대회 참가 핑계로 멍 좀 때려야겠다”, “게임에만 열중하는 아이에게 멍 때리기의 훌륭함을 알려주고 싶다” 등 참가사유도 다양했다. 돗자리와 편한 옷만 챙기고 무작정 ‘멍 때리기’에 돌입한 수천 명이 넋 나간 표정으로 하늘과 강을 바라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늘 바쁜 일에 쫓기는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하자는 의도로 한 누리꾼이 계획했던 행사는 올해 대전으로 확대되는 등 시민들의 호응 속에 전국으로 퍼져 나갈 기세다. ▶사전적으로 ‘멍’은 ‘얼이 빠진 상태’를 의미한다. 보통 멍하다 혹은 멍 때린다고 표현한다. 멍 때리기가 단순한 시간낭비일까 하는 의구심은 누구나 가질 것이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이 멍 때릴 때의 뇌 활동사진을 MRI와 PET 기법을 통해 촬영한 결과, 아무것도 안 할 때도 뇌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뉴질랜드의 저명한 심리학자 마이클 코벌랜드는 ‘멍 때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저서 ‘딴생각의 힘’에서는 멍 때림의 장점을 크게 4가지로 서술했다. 멍 때림을 통해 기억의 저장과 재생산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으며, 복잡한 생각을 멈추면서 새로운 창의성·아이디어 발굴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 오로지 ‘나’에 집중해 자아를 살펴보는 기회를 갖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근래 들어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면서 일방적으로 퍼부은 스트레스는 과히 메가톤급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초등학생을 살해한 10대 여학생의 엽기 행각 등 갖가지 혐오 범죄 소식에는 분노를 삼켜야만 했다. 게다가 학교와 직장에서 받는 일상적인 스트레스, 취업 문제,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등 정신을 어떻게 붙들어 매야 할지 모를 정도다. 이런 탓인지 지난 90년대 한 세대를 풍미했던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이럴 때일수록 생각을 저 아래에 묶어 놓고 무작정 ‘멍 때리기’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이용성 사회부장

[지지대] 律士 대통령과 檢事長 인사 -Ⅱ-

전(前) 검사장 A는 대표적인 특수통이다. 특별 수사본부가 꾸려지면 단골로 차출됐다. 그가 수원지검장 시절-결국 마지막 근무지가 됐던-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 정부 때 대선자금 수사는 잘못된 수사다. 단서가 포착된 것은 ○○그룹 한 곳이었다. 이를 근거로 모든 기업을 압박해 대선자금 실토를 받아냈다. 기업들이 살아 있는 권력에 건넨 대선자금을 제대로 밝혔겠는가. 수사의 원칙, 정치적 중립 모두 문제 있는 수사였다.” ▶‘차떼기’로 유명했던 수사다. 성역(聖域)이던 대선자금을 파헤쳤던 최초의 수사다. 노무현 정부의 치적 가운데 하나가 금권(金權) 정치 철폐다. 돈 안 드는 선거가 정착한 것도 그때다. 그 신호탄이 바로 대선자금 수사였다. 약관의 강금실 장관 임명, 검찰총장 퇴출 등을 통해 구성된 개혁 검찰이 휘두른 검찰권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수사’로 남아 있다. 그런 수사에 대한 A 검사장의 의외 평(評)이었다. 특수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던 전문가가 내린 비판이었다. ▶2015년 12월 말. 그에게 전화가 왔다. “하루 이틀 내로 인사가 날 듯하다. 얼굴을 보고 싶으면 지금 들어오라.” 다들 좋은 곳(?)으로 영전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도 그렇게 기대하는 듯 보였다. “서울지검장으로 가면…”이라는 인사말을 당연하듯 받았다. 그런데 사흘쯤 뒤, 그가 사표를 냈다. 이른바 ‘PK 대학살’에 걸려들었다. 새누리당 내 비주류 좌장인 김무성을 견제하려는 인사라고 해석됐다. 차떼기 수사를 정치 수사라며 지적하던 그였다. 공교롭게도 그 역시 ‘PK’라는 정치 분류로 옷을 벗었다. ▶돌아보면 그렇다. 어느 검사든 다른 누군가에겐 정치 검사다. 차떼기를 수사해도 한나라당에겐 참여정부 검사다. 평생을 특수통으로 살았어도 새누리당 주류에겐 김무성파 검사다. 19대 대선에 나선 모든 후보들이 정치 검사 척결을 말했다. 같은 말 다른 뜻이었을 게다. 문재인 후보의 정치검사와 홍준표 후보의 정치 검사는 달랐을 게 틀림없다. 이제 승자(勝者)가 문재인이니 척결 대상 검사도 문재인식 기준이 될 것이다. ▶예상대로-율사 대통령과 검사장 인사(5월10일자 지지대)-문재인 대통령의 첫 개혁 대상에 검찰이 올랐다. 이제, 누구는 좌천돼 옷을 벗고, 누구는 발탁돼 영전할 것이다. 좌천되면 정치 탄압이라 할 것이고, 발탁되면 실력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두 정치 검사다. 그게 대한민국 검찰 조직이다. 백 번을 바꿔봐야 정권 바뀌면 정치 검찰이다. 바꿔야 할 것은 인사(人事)가 아니라 조직(組織)이다. 사람을 바꾸는 검찰개혁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는 검찰개혁이 돼야 한다. 아직 이런 개혁을 이룬 정권은 없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기간제 교사

15일 스승의 날, 올해는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학생들은 담임 교사에게 개인적으로 카네이션 한 송이도 줄 수 없었다. 공개된 자리에서 학생 대표만 교사에게 꽃을 줄 수 있었다. 이에 많은 학교들에서 공개적으로 ‘카네이션 달아주기 행사’를 가졌다. 스승의 날이 서러운 교사들이 있다. 기간제 교사들이다. 어느 학교에선 ‘카네이션 달아주기 행사’에 기간제 교사를 참석시킬지 여부를 교감 선생이 고민 중이란 얘기를 듣고 집안 사정을 핑계로 휴가를 냈다는 기간제 교사도 있다. 똑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불안정한 신분 탓에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지시에 시달리기 일쑤지만 정작 교사 대접은 해주지 않는 탓에 스승의 날 같은 때는 더 설움을 겪기 때문이다. 기간제 교사는 정규직 교사 중 휴직과 파견, 연수 등을 이유로 결원이 생겨 특정 교과를 한시적으로 담당할 인력이 필요할 경우 임용하는 교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국 초·중·고의 기간제 교원 수는 4만6천60명으로 전체 교원(49만1천152명)의 9.4%를 차지한다. 수업 진행과 각종 행정 업무는 기본이고 시험 문제 출제에도 직접 관여하는 등 업무는 정규직 교사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정교사 전환이나 계약 연장 등을 빌미로 불합리한 대우를 해도 쉽게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게 기간제 교사들의 현실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꺼리는 공개 수업이나 담임 직책이 기간제 교사에게 떠넘겨지는 경우가 많다. 또 ‘계약제 교원 운영지침’에 1년 단위로 근무한 기간제 교사에게 ‘정교사와 같이 방학 때도 월급을 줄 것’ ‘퇴직금을 지급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으나 일부 학교에선 예산을 핑계로 1년에서 하루를 뺀 계약서에 서명을 강요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스승의 날인 15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2명의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단원고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4층 선실로 내려갔다가 희생됐으나 기간제라는 이유로 순직이 인정되지 않았다. 인사혁신처는 그동안 ‘정교사가 아니고 비정규직 교사이기 때문에 교육공무원이 아니며 그들이 하는 일도 상시적 공무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에 유족과 기간제 교사들은 두 교사의 순직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과 서명운동을 진행해왔다. 국가인권위도 순직 인정을 권고했다. 새 정부가 두 선생의 순직을 인정해 스승에 대한 국가적 예우를 다하려 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 교사로의 전환에도 새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스승의 날과 카네이션

Q: 학생이 스승의 날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이 가능한가? A: 학생 대표(전교 회장이나 학급 반장 등)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교사에게 주는 것만 허용된다. 학생 개인이 주는 것은 안된다. Q: 생화(生花) 대신 종이 카네이션이면 괜찮은가? A: 종이꽃도 안된다. Q: 학부모가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주는 것은 가능한가? A: 카네이션 제공 주체는 ‘학생 대표’로 한정돼 있어 학부모는 원칙적으로 안된다. Q: 학급 학생들이 돈을 모아 교사에게 5만원 이하의 선물을 할 수 있나? A: 안된다. 학생에 대한 평가·지도를 상시적으로 담당하는 담임교사 및 교과 담당교사와 학생 사이의 선물은 청탁금지법 위반이다. Q: 교사에게 감사의 손편지를 쓰는 것은 가능한가? A: 가능하다. 15일은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후 처음 맞는 스승의 날이다. 각 교육청에선 ‘학교에서 꼭 알아야 하는 청탁금지법 Q&A’ 자료를 배포했다. “학교는 청탁금지법 상 공공기관에 속하고, 교사들은 법 적용대상인 공직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학부모가 교사에게 전달하는 일체의 선물행위는 안 된다”고 알리고 있지만 그 적용 대상이나 기준이 모호해 여전히 혼란스러워한다. 국민권익위 홈페이지에는 어디까지가 법 위반이고, 아닌지 헷갈려 청탁금지법 관련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학생 개인이 담임교사에게 카네이션을 주는 것은 법 위반이다. 학부모가 주는 것도 안된다. 심지어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도 안된다. 케이크 한 조각도, 음료 한 잔도 안된다. 담임교사의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교·의례적 목적 등 청탁금지법의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손편지의 경우 사회 통념상 ‘금품’이라고 볼 수 없어 가능하다. 졸업생이 모교 은사를 찾아가 소액의 선물을 하는 것은, 이미 학교를 졸업한 상황이라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가능하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우리 사회에 관행적으로 반복돼 왔던 금품수수와 청탁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국민의식의 전환은 큰 성과다. 권력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봐주고 챙기는 청탁문화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도 의미있는 성과다. 하지만 학생이 담임선생님에게 개별적으로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드리는 것까지 뇌물이나 청탁으로 보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한 송이 카네이션이 청탁금지법의 근본정신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꽃 한 송이로 교사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마음까지 막아서야 되겠는가. 화훼농가의 숨통을 열어 주고 최소한의 미풍양속은 보존될 수 있도록 법이 보완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체육계에 훈풍 부나?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號를 이끌고 갈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더욱이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접한 국민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불 것이란 기대가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유독 체육계는 대선 등 주요 선거때마다 공약에 거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체육정책이 소외받은 탓에 큰 기대감을 갖지 않았다.▶그러나, 이번만은 체육계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체육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직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체육 특기자 입시부정과 ‘왕차관’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체육을 쥐락펴락했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의 비리로 인해 촉발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체육계가 블랙홀로 빠져들면서 유명 선수를 비롯, 많은 체육인들이 여느 대선보다도 적극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피력했다.▶그동안 보수 성향이 강했던 체육계에 전에 볼 수 없었던 개혁 지향적인 바람이 몰아치며 진보 성향의 문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이에 문 후보 측은 공부하는 운동선수 육성과 공정한 스포츠 생태계 조성 및 정부의 간섭 없는 체육단체 자율성 보장 등의 공약을 제시해 체육계의 지지 선언에 화답했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는 역대 대통령 선거 사상 가장 큰 표차로 당선돼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했든 안 했든 이제 체육계와 대다수 체육인들은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개혁 이미지가 강한 새 대통령에게 체육계의 고질적인 적폐 청산과 함께 정부의 과도한 간섭 없이 체육계 스스로 성장하고 정책을 수립해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체육은 항상 국가와 국민이 어려울 때마다 큰 힘이 돼왔고, 100세 시대의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첨병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된 체육계에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으로 훈풍이 불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2017 & 대통령

정유년(丁酉年)은 육십갑자 중 34번째 해다. 뜻대로라면 정(丁)은 붉은색, 유(酉)는 닭을 의미한다. 붉은 닭의 해를 지칭한다. 하지만, 정유년은 또 다른 의미의 해석이 있다. 정은 불(火)을, 유는 금(金)을 상징한다. 불이 쇠를 달군다? 언뜻 보아 강대 강 국면이다. 역사는 정유년을 시련과 변화의 해로 기록하고 있다. 60년 전인 1957년은 한국전쟁이 휩쓸고 간 황폐화된 땅에 변화의 욕구가 용트림했다. 1897년은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변경된 후 근대화 의지가 봇물처럼 표출됐고 1837년은 세도정치란 극도로 혼란스런 정세에 민중봉기(동학혁명) 의지가 솟아났던 때로 기록된다. 1597년은 정유재란으로 힘들었지만 세계전쟁사에 기록될 명 승전보 명량대첩을 일궈냈다. 정유년에 일어난 이 모두 시련과 변화의 산물이다. 되돌아 2017년은 어떠했는가. 대한민국 최전선인 광화문이 촛불 민심으로 들끓었다.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건이 있었고 민심은 2대에 걸쳐 집권해 온 보수당에 여지없이 등을 돌렸다. 권불 10년이라 했던가. 또다시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는 변화가 되풀이됐다. 글로벌 정치사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선에서는 보수당 주자로 나선 트럼프가 예상 밖으로 승리를 차지했다. 애초 민주당 후보로 나선 힐러리의 당선이 유력시됐지만, 미 국민들은 새로운 변화의 카드를 택했다. 또 유럽도 이런 도도한 물결을 피해가지 못했다. 프랑스 국민은 우파도 좌파도 아닌 중도 노선의 앙마르슈의 마크롱을 지도자로 선출했다. 30대 후반 약관의 정치가다. 시련은 컸지만, 역사는 변화로 채워졌다. 해마다 봄이 되면 겨우내 숨 죽였던 생명의 씨앗이 활짝 돋아난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희망 속에 탈바꿈을 시도한다. 구태는 훨훨 벗어버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다. 2017년 대통령은 시련과 변화의 역사 한복판에 서 있다. 불과 쇠가 함께하는 강대 강 국면, 해결책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역사와 민심은 변화를 원하고 있다. 이게 바로 2017년 정유년, 새 대통령의 사명인듯 하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律士 대통령과 檢事長 인사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율사 출신이다. 검찰과의 악연도 컸다. 재야 시절 정치 검찰에 의해 감옥에 갔다. 그런 만큼 그 스스로 가장 자신 있고 확신에 찬 개혁 대상을 검찰로 꼽았던 듯하다. 첫 번째 내각에서 그 의중이 드러났다. 40대 여자 변호사 강금실을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당시 검찰 총장의 사법시험 11년 후배였다. 검찰 경험이 없는 평판사 출신이기도 했다. ‘검찰 조직을 뒤집어 놓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의중은 이미 이 인사로 예고된 셈이었다. ▶며칠 뒤,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가 마련됐다. 취임 12일 된 노 전 대통령의 결단으로 성사됐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 조직을 긴장하게 한 일성은 따로 있었다. “(지금의) 검찰 수뇌부를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이 말이 검찰 조직에 던진 충격은 컸다. 임기가 한참 남았던 김각영 검찰총장이 즉시 사표를 내고 떠났다. 그 후 검찰에는 유례없는 변혁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2010년 12월 20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 입구에 문재인 변호사가 서 있었다. 조현오 경찰청장 소환을 촉구하는 1인 시위였다. 시위는 2011년 4월 26일에도 있었다. 이번에는 ‘차라리 검찰은 문 닫아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었다. 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인권 변호사로 젊음을 보냈다. 검찰에 대한 둘의 인식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2월, 민주평화국민연대 초청 모임에서 그 일단을 보여줬다. “(대통령이 되면) 정치 검찰 행태 밝히고 인적 청산할 것이다.” ▶이래저래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개혁 작업도 검찰을 향할 가능성이 있다. 하필 검사장 인사가 시급하다. 현직 검사장들은 통상 임기인 1년을 훌쩍 넘긴 채 같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정기 인사가 있어야 했지만 없었다. 검사장 인사권자인 대통령-박근혜-이 식물 대통령에 빠지면서 초래된 일이다. 노 전 대통령처럼 “나는 검찰 수뇌부를 못 믿는다”며 퇴출을 암시할 필요도 없다. 밀린 검사장급 인사를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이 단행하면 된다. ▶권력 교체는 필연적으로 사정 기관 수뇌부의 교체를 가져온다. 검찰, 경찰, 국세청, 그리고 국정원이 4대 핵심 사정기관이다. 율사 출신 대통령에겐 검찰 개혁이 가장 우선해 처리된다. 검찰을 잘 알고 법조계 개인 인맥이 그만큼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드러낸 밑그림이 향후 권력 지형의 줄기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 PK(고향), 경희대(학연), 친노(정치)…. 문재인 대통령의 검사장급 이상 인사가 주목된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위안부 민간보고서

2014년 8월 정부는 광복 70주년, 한ㆍ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2015년 말 ‘위안부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아베 정권이 그해 6월 ‘고노 담화 검증보고서’를 작성해 위안부 피해자 강제동원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대한 맞대응 성격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180도 달라졌다. ‘발간 형태를 다시 검토 중’이라며 발을 뺐다. 대신 지난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당초 정부 계획대로 ‘백서’로 발간되지 않고 민간 연구용역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여성가족부는 보고서 앞쪽에 “보고서의 내용은 연구진의 의견이며, 여성가족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님을 밝혀둡니다”라고 했다. 여가부가 ‘위안부 백서’를 철회하고, 민간 연구용역 형태로 발간한 것은 한일 위안부 합의 때문일 것이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부 장관 회담을 통해 타결된 위안부 합의는 양측 합의사항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합의사항은 일본 정부의 책임인정과 아베 신조 총리의 사죄, 한국 정부 주관의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 설립 및 일본 정부예산 투입,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의 적절한 해결 등이다. 합의사항이 이행되면 향후 유엔이나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상호 비난이나 비판을 자제키로 했다. 이 합의와 관련해 각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에 위안부 합의에 대해 ‘과거 민간모금액 위주였던 아시아 여성 기금보다 진전된 내용’ ‘아베 내각을 상대로 정부의 책임 통감, 정부 예산에 의한 금전 조치 등의 약속을 받아낸 것은 높이 평가’ 등으로 적어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합의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과 나눔의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이 1년 넘게 반발 시위를 하고 있음은 다루지도 않았다. 위안부 관련 정부 차원의 보고서가 나온 건 1992년 외무부 보고서 이후 25년 만이다. 그런데 정부가 백서 하나 제대로 발간하지 못하고 민간보고서 형식으로 논란거리만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런 정부가 부끄럽다. 이번 민간보고서는 내용도, 공개 시점도 문제다. 주요 대통령 후보 대부분이 위안부 합의 재협상 뜻을 밝혔는데, 선거 며칠 전 공개한 의도가 좋지 않아 보인다. 새 정부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해 백서 형태로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미세먼지 공약

황금연휴 막판 주말에 미세먼지가 우리나라를 뒤덮었다. 중국발 황사가 한반도를 강타해 전국 대부분 지역의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을 기록했다. 6일 오전엔 ‘오늘 02시부터 미세먼지 경보 발령. 어린이·노약자 실외활동 금지, 마스크 착용하세요’라는 재난문자까지 날아들었다. 많은 시민들이 나들이 계획을 접거나 마스크로 무장한 채 나섰다. 이제 마스크 쓴 모습은 일상의 풍경이 됐다. 미세먼지는 우리나라의 큰 사회문제가 됐다. 미세먼지에는 중금속·발암물질 등 여러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어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장기간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돼 천식·기관지염 등의 호흡기질환을 비롯해 심혈관 질환·피부질환·안질환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때문에 호흡기나 심혈관이 안 좋은 어르신들에겐 독이나 다름없다. 올해 어버이날엔 미세먼지 때문에 카네이션 대신 공기정화식물 선물이 인기다. 호흡기 질환에 도움이 되는 배즙과 도라지즙 같은 건강식품도 잘 팔린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안마의자가 인기였지만 올해는 공기청정기 인기가 더 높다. 미세먼지가 어버이날 선물까지 바꿔놓았다.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미세먼지 대책을 내놨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임기 안에 미세먼지를 30% 줄이겠다고 했다. 석탄 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중단과 2030년까지 개인용 경유차 퇴출, 대통령 직속 미세먼지 특별대책기구의 설립 구상도 밝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석탄 발전소의 오염 물질 배출 기준 강화와 고농도 미세먼지 경보제 시행을 제안했다. 2022년까지 신차 판매 중 친환경 차 비율도 35%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미세먼지를 국가 재난으로 규정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미세먼지 환경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석탄발전소 신규 승인을 취소하고, 미세먼지가 집중되는 11월부터 4월까지는 석탄발전소 가동률을 70% 정도로 낮출 계획이다.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미세먼지를 국가 재난에 포함하고, 주의보가 발령되면 석탄발전소 가동률을 낮추겠다고 했다. 또 미세먼지 대응 컨트롤타워를 총리로 격상하고, 연간 관련 예산 2배 증액도 공약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미세먼지 관리 기준을 세계보건기구 수준으로 올릴 계획이며, ‘기후 정의세’ 도입도 내놨다. 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공약이 급조돼 구체적 기대효과를 가늠하기 힘들어 보인다. 대체 에너지 생산으로 인한 전기세 인상 가능성이라든지 구체적 재원 대책이 언급되지 않았다. 차기 정권은 미세먼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 실행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영혼(靈魂) 없는 정치판

경기도의회 당시 바른정당 천동현 의원(안성1)은 지난달 25일 ‘국민의당ㆍ바른정당 연합’의 대표의원으로 추대됐다. 이어 지난달 27일 천 의원은 경기도의회 개원 이후 사상 초유의 제3교섭단체인 ‘국민바른연합’의 대표로 등록서류를 의회사무처에 직접 제출하기도 했다. 천 의원의 국민바른정당연합 대표 선임은 3선 의원 경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당시 같은 지역구의 김학용 바른정당 경기도당위원장을 주군(?)으로 모셨던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5일 천 의원은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도의회 제3교섭단체의 첫 대표로서 “교섭단체를 구성한 만큼 경기 연정(聯政) 참여가 핵심 과제”라며 “명실상부 집권 여당으로서 연정 참여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10여 년 의정 활동 중에 지금 남은 1년이 가장 어렵고 힘들 것으로 예상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오직 도민만을 바라본다는 생각으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직 도민만을 바라보고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천 의원은 지난 2일 바른정당 국회의원 13명이 집단 탈당을 선언하자 망설임 없이 바로 탈당했다. 탈당 선언 국회의원 가운데 자신의 주군인 김학용 의원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 과연 ‘영혼(靈魂)’이라는 것이 있을까. 정치적 이념,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적 가치관이 있기는 하는 것일까.천 의원의 탈당으로 국민바른연합은 출범을 하자마자 대표를 교체하는 상황에 놓였다. 양당의 전격적인 의기투합도 자력으로 교섭단체 구성이 무산되면서 운영경비, 인력, 사무실 지원과 함께 연정실행위원회 공동위원장 배분 등을 노린 ‘궁여지책’으로 ‘한지붕 두 가족’을 선택했던 것이다.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며 새로운 개혁보수를 만들겠다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4개월 만에 복당을 하겠다고 한다. 같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탈당하니 바로 탈당하겠다는 도의원의 모습이 ‘우리 정치판’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한탄스럽다. ‘이합집산’의 ‘영혼 없는 정치판’에 신념과 정의가 있는 ‘불굴의 투혼’을 가진 정치인들이 넘쳐 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 차장

[지지대] 이데올로기 논쟁

한반도에는 지금도 좌ㆍ우파 및 진보ㆍ보수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현실정치 속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 북한은 여전히 주체사상과 마르크스 주의에 입각한 남조선혁명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사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이데올로기 논쟁.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이 논쟁은 ‘안보’를 둘러싸고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대통령선거 기간인 요즈음은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1950년 살육전쟁을 경험하며 ‘사회주의자=좌파=빨갱이’ 라는 등식을 받아들였다. 한국전쟁은 해방전후 좌우파의 철학적 논쟁의 자리에 ‘적과 원수’를 대치시켰다. 원래 보수ㆍ진보의 기원은 프랑스대혁명 때 의회에서 ‘평민대표(자코뱅파)’ 의원들은 좌측, ‘귀족대표(지롱드파)’ 의원들이 우측에 앉아 좌ㆍ우파로 불리며 시작됐다고 한다. 급진 개혁적 진보 성향을 지닌 파들은 ‘좌파’, 반면 점진적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파들은 ‘우파’라고 한 것. 훗날 국제사회에서 공산주의혁명을 주창하던 세력은 당연히 ‘좌파’로 분류됐다. 해방전후사에서 한국의 공산주의자들도 당연 ‘좌파’로 등장했다. 지난 세기 국제사회에서 진보(좌파)와 보수(우파)의 기준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더 확실하게 구분되었다. 시장의 원리에 맡기고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유 경제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을 우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파 사람들은 정부는 개인이 부를 축적하도록 자유롭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는 반대로 자유 시장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가 경제에 간섭하고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유럽에서는 좌파정당에서 대통령이나 수상이 배출되어 복지 확대, 사회 재분배, 공공 의료, 서민을 위한 주택 정책 등을 내걸고 국민의 지지를 얻어 왔다. 진보와 보수의 좋은 점만 합칠 수는 없을까? 실제로 한국사회에서도 ‘진보성향의 보수정치인’, ‘보수적인 진보정치인’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나름 합리성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십 년 후, 언젠가는 여야를 통틀어 존경받는 인물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때쯤엔 자유(보수)와 평등(진보)도 동시에 추구되지 않을까? 김신호 인천본사 경제부 부국장

[지지대] 남경필의 선택·침묵

“이상득 부의장의 불출마가 총선승리를 위한 새 출발이 될 것이다. 이것이 수도권의 민심이다.” 남경필 의원이 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1년이 조금 넘은 2008년 3월21일이었다. 서슬 퍼렇던 정권을 향한 도전이었다. 당시 그는 정치 인생 최대 위기였다. 정권에 밉보이면서 이른바 ‘남경필 사람들’이 줄줄이 낙천됐다. ‘남경필 끝났다’는 평이 지역 정가에 파다했다. 그런 때 그가 던진 승부수였다. 결국, 그는 화려하게 살아남았다. ▶“내 선택은 원내대표다. 경기도지사에 출마하지 않겠다.” 남경필 의원이 말했다. 2014년 2월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다. 그럴수록 당(黨)은 매달렸다. 공천 시한을 앞두고 불쑥 외국으로 갔다. 이번엔 보수 표심까지 그를 향했다. ‘안 하겠다’는 그의 지지율이 ‘하겠다’는 입후보자들의 그것을 압도했다. 귀국 후 그가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이미 2014년 경기도지사 선거는 절반쯤 끝나 있었다. ▶“새누리당이 재창당 안 되면 중대결심을 하겠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말했다. 2016년 11월 16일, 독일 뒤셀도르프발(發) 뉴스였다. 최순실 게이트로 새누리당은 빈사상태였다. 잠룡(潛龍)인 남 지사가 독일에서 던진 승부수였다. 정계은퇴 불사라는 배수의 진까지 쳤다. 그 후 정치 일정이 그에게로 흘러갔다. 새누리당 탈당, 바른정당 창당, 당내 대선 경선 후보로 이어졌다. 또 한 번 그의 승부수는 통했다. ▶‘….’ 그런 그가 침묵하고 있다. 동료 유승민 후보의 경기도 방문 때도 침묵했다. 당내에서 유 후보 사퇴 촉구가 빗발칠 때도 침묵했다. 급기야 어제는 바른정당 소속 의원 13명이 탈당했다. 붕당(朋黨)의 위기에 놓였다. 그런데도 침묵하고 있다. 동남아 순방을 마친 뒤 기우회-경기도 기관장 모임-에 참석했다. 지역 정치권이 그의 입을 주시했다. 하지만, 정치와 관련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의 동남아시장 개척과 국제자본 확보 지원이 절실하다.” ▶그의 속을 알 길이 없다. 다만, 주섬주섬 전해들어 만들어보는 추측은 이렇다. -연임에 대한 미련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앞날을 알 수 없다. 서울 종로 등 상징적인 곳으로의 총선 출마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소속 정당이라는 문제가 남는다. 내심 국민의당과의 연대를 기대했다. 그런데 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기울었다. 대선이 원치 않은 판으로 흘러간다.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적 혼란기마다 주목받았던 남 지사의 ‘입’, 어쩌면 그의 ‘입’은 5월9일 대선까지 절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군소후보들의 튀는 공약

5월9일 치러질 19대 대통령선거에는 1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이중 군소 후보들이 10명이나 된다. 주요 후보 5명을 제외한 9명의 후보가 지난달 24일 TV토론에 나와 정책대결을 벌였다. 이번 선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토론이다. 이들은 국회 5석 이상 정당, 직전 선거 3% 이상 득표 정당, 3월 18일~4월 16일 여론조사에서 평균 지지율 5% 이상에 해당하지 못해 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초청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후보다. 군소 후보들은 눈길을 끌기 위해 튀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들의 공약 또한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취지로 ‘이색과 황당 사이’를 오가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도 튀는 공약이 많았다. ‘카이젤 수염’으로 얼굴을 알린 진복기 후보는 “신안 앞바다에 보물이 있다. 이것을 캐내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했다. 당시는 신안 앞바다의 국보급 도자기가 발견 전이었는데 5년 뒤 진짜 해저 유물이 발견돼 관심을 끌었다. 양복 차림의 ‘남장 여자’로 유명한 김옥선 후보는 14대 대선에서 ‘무공약이 공약’이라는 공약을 내세웠다. “지키지 않을 바에는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거였다. 김 후보는 1975년 국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 칭하고, 유신정권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이라고 비판해 의원직을 박탈당한 바 있다. 튀는 공약하면 허경영 후보다. 그는 “결혼하면 수당 1억원을 지급하겠다” “불효자는 사형에 처하며 전국을 4개 도로 축소해 지역감정을 없애겠다”는 등의 공약을 했다. 이번에도 출마하려던 허씨는 17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결혼을 약속했다고 주장,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출마 자격을 잃었다. 19대 대선에도 이색 공약이 많다. 하하그룹 회장인 경제애국당 오영국 후보는 1천300만 개 일자리를 만들고 신용불량자 700만 명의 신용을 회복시키겠다고 공약했다. 국민한국당 이경희 후보는 자녀를 3명 낳으면 막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79㎡(24평) 아파트를 무상 임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넷째를 낳으면 109㎡, 다섯째 출산 시 138㎡로 면적이 커진다. 출산장려지원금도 셋째 출산 시 5천만 원, 넷째 이상은 1억 원을 공약했다. 장성민 후보는 국회의원 수를 절반으로, 봉급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는 20억 원 이하 재산 상속·증여세 폐지를 공약했다. 군소 후보들의 공약은 비현실적인 게 많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을 떠나 유권자들의 공감을 살만한 것들도 꽤 있다. 어차피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도 지켜지지 않는 게 많지 않은가.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황금연휴의 이면

‘근로자의 날(1일), 석가탄신일(3일), 어린이날(5일), 대통령 선거(9일)’. 이틀(2ㆍ4일) 휴가를 내면 9일, 사흘(2ㆍ4ㆍ8일) 휴가를 내면 11일까지 쉴 수 있는 황금연휴다.드디어 긴 휴가가 시작됐지만 모든 이들이 즐거운 건 아니다. 출근하는 맞벌이 가정은 5월 봄방학에 들어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걱정이고,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쉬는데 빨간 날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는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도내 초·중·고교는 5월 첫째 주 ‘샌드위치 데이’를 재량 휴업일로 정해 일제히 봄방학에 들어갔다. 봄방학이 없는 학교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각 1개교뿐이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들은 주로 4일을 재량 휴업일로 정해 3∼7일 쉬거나, 1∼2일까지 재량 휴업일로 정해 1∼7일을 봄방학으로 지정했다. 방학일수가 긴 여름·겨울방학과 달리 봄방학은 짧아서 초등학교 돌봄교실도 운영되지 않고 도서관을 개방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학교가 많다. 초등학교와 학사일정을 공유하는 병설유치원 1천82곳 역시 같은 기간 대체로 쉰다. 일부 공립 단설유치원, 사립유치원, 어린이집 등은 법정 공휴일이 아닌 평일엔 정상 운영 또는 부분 운영을 한다지만 연휴 기간 등원 수요조사 자체가 맞벌이 가정엔 압박으로 다가온다. 아이를 맡기는 부모 입장에선 교사 눈치를 보기 마련인데, ‘그날 어머님 자녀만 나온다’ ‘혹시 아이 봐줄 사람이 없느냐’고 하면 그게 압박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아이를 보내지 말라는 뜻인거다. 갑자기 보낼 학원이나 아이를 맡아줄 곳을 알아보는 것도 여의치 않고, 시댁 또는 친정 부모 등 친인척 도움조차 받기 어려운 가정은 눈앞이 깜깜하다. 황금 연휴가 아닌 ‘황당 연휴’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도 연휴는 ‘그림의 떡’이다. 제품 납기와 매출, 인력난 등 여러 이유로 하루나 이틀 쉴 뿐 계속 근무다. 연휴마저 양극화에 중기 근로자들은 마음의 상처만 입게 된다. 생산직 근로자뿐 아니라 리조트나 백화점·마트 직원 등 연휴나 공휴일에 더 바쁜 직종의 근로자들도 황금연휴는 언감생심이다. 이번 연휴에 가족들과 여행을 계획한 사람도 있지만 사정이 다른 맞벌이 가정, 자영업자, 중기 근로자들은 황금연휴를 맘껏 누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황금연휴의 이면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들 가정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도시형생활주택의 후폭풍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시형생활주택’이 수원시에서 또다시 뜨거운 감자다. 수원시가 도시형생활주택에 대한 주차장 요건 강화를 추진하면서다. 이에 도시형생활주택을 만들려던 수십여 명이 집단으로 민원제기에 나선 상태다.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수원에서 발생한 이 같은 유형의 민원들은 적어도 수도권 지자체마다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도시형생활주택 주차요건을 강화한 용인, 고양, 안산, 오산시는 제외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단지형 연립과 다세대 전용면적 85㎡ 이하, 원룸형 12~50㎡ 이하 300가구 미만으로 구성된 초소형 주택이다. 늘어나는 1~2인 가구와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MB 정부 때인 2009년 5월 주택법 개정을 통해 도시형생활주택이 법제화됐다. 그러나 법제화 당시에도 부족한 주차공간으로 인한 동네의 슬럼화 우려, 채광 및 환기, 소음, 일조권 및 프라이버시 침해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건설사업을 통해 경제를 부양하려는 지극히 포퓰리즘에 편승한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는 의견이 팽배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후폭풍이 거세다. 무엇보다 부족한 주차공간은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선 동네의 심각한 주차장 부족현상을 야기했다. 주거환경의 악화는 말할 것도 없다. 정권이 박근혜 정부로 바뀐 지난 2013년 5월이 돼서야 정부는 도시형생활주택의 주차기준을 지자체가 2분의 1 범위내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칼을 빼들었다. 이를 토대로 수원시는 도시형생활주택의 주차기준을 강화한 수원시 주차장조례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이에 따르면 가구당 0.6대에 불과하던 주차장 요건이 0.9대로 높아졌다. 이로 인한 개인의 재산권 침해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의 재산권 행사 등 사익과 주거환경 등 공익의 충돌을 놓고 고민한 끝에 내린 수원시의 결론이다. 또한 아직도 현실에 적용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물론 소급 적용되지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이 정답인지 명쾌한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현명한 결과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300만 인천은 종이호랑이

300만 인천의 대선이 무색하다. 5·9 대선이 12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인천에서 대선 분위기를 느껴보기란 좀처럼 어렵다. 하루에 1~2번 정도 아르바이트 운동원의 길거리 유세를 보거나 아예 한 번도 못 보거나 정도이다. 아무리 미디어 중심 선거에 따른 현상이라고 해도 썰렁하기가 심하다. 인천시는 지난해부터 인구 300만을 돌파해 서울과 부산에 이어 3번째 대도시라는 점과 전국 8대 특별시와 광역시 중에 면적(1천62.5㎢)이 가장 넓은 도시라는 점을 마치 ‘캐치프레이즈’처럼 홍보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지역 언론도 ‘300만 인천을 우습게 보지 마라’는 압박 수준의 메시지를 대선후보들에게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목이 터져라 인천을 부르짖어도 메아리는 허공만 가른 채 돌아오지 않는다. 26일 현재 인천에는 주요 정당 후보 5명 중에 3명만이 한 번씩 얼굴 도장을 찍었을 뿐이다. 그 많고 많은 인천의 현안 중에 어느 후보 하나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라고 약속하며 나서는 이도 없다. 각 정당의 인천시당들이 지역 공약을 각 대선캠프 공약에 포함 시키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역 정가마저도 각 중앙당과 대선 캠프로부터 찬밥 신세를 당하는 모양새이다. 마치 내 몸집(인천)이 이만큼 커졌으니 무시하지 말라고 한껏 힘을 줘도 상대방(대선후보)은 눈길도 주지 않는 형국이다. 물론 대한민국 대선 후보가 17개 시·도중에 인천 현안만을 꼼꼼히 챙기고 해결을 약속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인천이 대한민국 17개 시·도중에 중요 도시 중에 한 곳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하튼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허공에만 날리는 일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큰 선거 때마다 ‘인천 홀대론’을 꺼내 들기도 민망하고, 부끄럽다. 다만, 꼭 한 가지 ‘투표율 만년 꼴찌 인천’이라는 오명 만큼은 이번 대선부터 벗어 버려야 한다. 인천은 지난 제18대 대선에서 74%투표율로 전국 17개 시도 중 하위권인 14위, 17대 대선에서는 60.3%의 투표율에 그치며 전국 16개 시도 중 충남과 함께 공동 꼴찌를 했다. 제20대 총선 14위, 제19대 총선 투표율 17위 꼴찌, 제6회 지방선거 15위 등 저조한 투표율 만큼은 타 시도의 추종을 불허 하고 있다. 인구가 300만이면 무엇 하나. 투표율 만년 꼴찌인 종이호랑이 인걸. 가자 인천! 투표율 1등의 진짜 호랑이를 향해. 유제홍 인천본사 정치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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