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한강에서 특이한 행사가 열렸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제4회 한강 멍 때리기 대회’. 무려 3천여 명이 참석한 이 행사는 직장인, 가정주부를 비롯, 교도관, 삼수생, 지하철 역무원, 취업준비생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아기 엄마는 멍 때릴 시간 없다, 대회 참가 핑계로 멍 좀 때려야겠다”, “게임에만 열중하는 아이에게 멍 때리기의 훌륭함을 알려주고 싶다” 등 참가사유도 다양했다. 돗자리와 편한 옷만 챙기고 무작정 ‘멍 때리기’에 돌입한 수천 명이 넋 나간 표정으로 하늘과 강을 바라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늘 바쁜 일에 쫓기는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하자는 의도로 한 누리꾼이 계획했던 행사는 올해 대전으로 확대되는 등 시민들의 호응 속에 전국으로 퍼져 나갈 기세다. ▶사전적으로 ‘멍’은 ‘얼이 빠진 상태’를 의미한다. 보통 멍하다 혹은 멍 때린다고 표현한다. 멍 때리기가 단순한 시간낭비일까 하는 의구심은 누구나 가질 것이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이 멍 때릴 때의 뇌 활동사진을 MRI와 PET 기법을 통해 촬영한 결과, 아무것도 안 할 때도 뇌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뉴질랜드의 저명한 심리학자 마이클 코벌랜드는 ‘멍 때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저서 ‘딴생각의 힘’에서는 멍 때림의 장점을 크게 4가지로 서술했다. 멍 때림을 통해 기억의 저장과 재생산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으며, 복잡한 생각을 멈추면서 새로운 창의성·아이디어 발굴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 오로지 ‘나’에 집중해 자아를 살펴보는 기회를 갖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근래 들어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면서 일방적으로 퍼부은 스트레스는 과히 메가톤급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초등학생을 살해한 10대 여학생의 엽기 행각 등 갖가지 혐오 범죄 소식에는 분노를 삼켜야만 했다. 게다가 학교와 직장에서 받는 일상적인 스트레스, 취업 문제,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등 정신을 어떻게 붙들어 매야 할지 모를 정도다. 이런 탓인지 지난 90년대 한 세대를 풍미했던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이럴 때일수록 생각을 저 아래에 묶어 놓고 무작정 ‘멍 때리기’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이용성 사회부장
오피니언
이용성 사회부장
2017-05-17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