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새해 사자성어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새벽의 여명을 알리며 만물을 깨운다는 붉은 닭의 해다. 정치인들은 새해를 맞아 저마다 사자성어를 제시하며 화두를 던지고 있다. 유행이 된 사자성어는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상을 반영해 새해 희망과 각오 등을 담아내고 있다. 올해는 대통령선거가 있어서인지 메시지 경쟁이 더 치열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의 ‘재조산하(再造山河)’를 제시했다. 문 전 대표측은 “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있던 서애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적어준 글귀”라며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만들지 않으면 죽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던 충신들의 마음으로, 지금 우리가 절박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대개조에 나서야 할 때임을 뜻한다”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바르지 못한 것이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한다’는 뜻의 ‘사불범정(邪不犯正)’을 제시했다. 이 시장은 “2016년에는 국민이 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무리를 탄핵했고, 2017년에는 위대한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드는 건국 명예혁명을 성공시킬 것”이라며 “공평한 민주공화국이 우리가 꿈꾸는 새해의 나라”라고 설명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의 ‘마부위침(磨斧爲針)’을 제시했다.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로 성공하고야 만다는 뜻”으로 “마부위침의 자세로 국난을 극복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옛것을 뜯어고치고 새것으로 바꾼다’는 뜻의 ‘혁고정신(革故鼎新)’을 제시했다. 낡은 기득권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았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언급했다. 안 지사는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는 나라, 헌법 정신이 구현되는 나라로 나가야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 의해 설계돼야 한다”고 밝혔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다’는 뜻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제시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쇠퇴하고 어지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라를 건설한다’는 의미의 ‘회천재조(回天再造)’를 꼽았다. 유승민 개혁보수신당 의원은 ‘낡은 것을 깨부수지 않고는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없다’는 뜻으로 ‘불파불립(不破不立)’을 내세웠다. 새해 사자성어는 말의 성찬 같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지난해처럼 살 수는 없으니까.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달걀’의 추억

사상 최악의 AI가 몰아치면서 새삼 ‘달걀’에 대한 관심이 높다. 공급량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귀한 식재료가 됐기 때문일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달걀은 곧 ‘계란(鷄卵)’을 말한다. 달걀은 계란의 순화어이자 우리 고유어다. 달걀은 신화 속에서도 존재한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석탈해, 김수로왕, 주몽 등은 달걀에 얽힌 전설을 갖고 있다. 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 당시, 부장품 상자 안에 장군형 토기에서 천여 년 된 달걀이 출토됐다. 탄생 설화의 매개체로 신성시되면서 무덤 속에 부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서양인이 신성시 여겨온 부활절에도 달걀 먹는 의례가 있다. 달걀은 완전식품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영양 덩어리다. 단순비교 측면에서 천 원으로 구입할 수 있는 단백질의 양이 쇠고기의 5배가 넘는다. 특히 노른자에는 레시틴이 다량 함유돼 있어 뇌의 활성화를 돕는다. 레시틴은 기억력, 집중력, 학습력에 도움을 주는 성분이다. 또 현대인의 관심사인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 만점이다.삶은 달걀은 간식용으로도 제격이다. 필자에게는 달걀에 대한 애틋한 추억이 있다. 오래전 초등학교 때 소풍 가던 날, 어머니께서 도시락과 함께 항상 건네 준 것이 환타 한 병과 삶은 달걀이다. 고향이 반도였기에 소풍 가는 장소는 항상 해변가다.바닷모래사장 그늘진 곳 한켠에서 먹는 달걀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뿐 아니다. 일찍부터 도회지 생활을 했던 탓에 방학 때면 항상 기차편으로 서울과 고향을 오갔다. 고향을 떠날 때마다 어머니께서 손에 쥐어 준 것도 바로 삶은 달걀이다. 그 때문이었던지 시간이 흘러 힘든 군 복무 때에도 달걀 먹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AI가 무섭게 몰아치면서 뜻하지 않게 달걀이 역풍을 맞고 있다. 산란계 상당수가 살처분되면서 달걀 생산이 어려워지고 있다. 시중에서는 4~5천 원 하던 달걀 한 판이 한두 달 사이 1만 원을 넘어설 정도다. 심지어 일부 소형 마트에서는 한 줄(10개)이 9천 원에 팔리고 있다는 소리다. 그동안 별다른 생각 없이 대했던 달걀이 새삼 삶의 곁으로 다가오는 때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블랙리스트

특별히 주의하고 감시해야 할 대상, 요주의 인물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명단을 작성한다. 이 명단을 이른 바 블랙리스트라고 한다. 블랙리스트라는 단어에 연상되는 이미지는 ‘감시’, ‘문제’, ‘저항’, ‘반사회’, ‘비공식’ 등 부정적이다. 블랙리스트는 통상 비공식적으로 작성되는 것이지만 세간에 공개됐을 때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확인되고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또 다른 공분을 사고 있다. 정권에 대해 부정적 발언을 한 인물 등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있는데 무엇을 하려고 작성했는지,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에게 실제 어떤 불이익이 돌아가게 했는지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제5공화국 군사정권 시절 배우 박용식은 전두환 대통령과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이 금지돼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박씨는 이같은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박씨가 수년동안 받은 불이익에 대해서는 결국 보상받지 못했다. 박씨 외에도 정권에 밉보여 불이익을 당한 가수, 배우 등 연예인들의 아픈 사연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이 1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말 그대로 광범위하게 문화계 요주의 인물을 세밀하게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소신 발언한 연예인과 문인 등 대부분이 리스트에 올랐다고 보면 된다. 일반 국민은 단순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발언과 활동을 정부차원에서 리스트까지 작성하며 관리하려 한 것 자체가 전근대적인 발상이었다. 시대는 바뀌었고, 국민 인식 수준도 높아졌다. 더 이상 국민은 관리 대상이 아닌데 통제하려고 하니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 리스트를 누가 작성하게 했는지 드러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동안의 우리의 경험상 모두 발뺌하는 상황에서 리스트는 있지만 작성자는 없는 것으로 결론 날 수 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가수 죽음과 노랫말

1926년 8월4일, 가수 윤심덕이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일본을 출발해 부산으로 오던 배(船)에서다. 함께 투신한 사람은 극작가 김우진이다. 당대 최고 미녀 가수와 최고 엘리트의 동반 자살이 던진 충격이 컸다. 더 극적인 건 노래 ‘사의 찬미’다. 윤심덕이 마지막으로 녹음한 노래다. 이바노비치의 왈츠 ‘다뉴브 강의 잔물결’에 그녀가 직접 노랫말을 붙였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1971년 11월 7일. 가수 배호가 2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1964년 ‘두메산골’로 데뷔한 이래 그는 최고였다.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비 내리는 명동’ ‘당신’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그의 마지막 노래가 ‘마지막 잎새’다. ‘야윈 두 뺨에 흘러내리는…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가사 곳곳에서 애절함이 묻어난다. 특히 후반부 ‘흐느끼며’ 부분에서 표현한 그의 호흡법이 슬프다. ▶가수 인생이 노랫말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눈감아 드리리’(남인수ㆍ44),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차중락ㆍ26), ‘님’(김정호ㆍ33)이 그렇다. ‘내 사랑 내 곁에’(김현식ㆍ32),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김광석ㆍ32)도 그렇게 얘기된다. 대개의 경우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수들이다. 짧은 생애와 슬픈 유작에 대한 팬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팝 스타 조지 마이클이 53세로 사망했다. 87년 솔로로 독립한 후 총 1억 장의 앨범을 판매했다. 영국 UK 차트에 12곡, 미국 빌보드 차트에 10곡을 1위에 올렸다. ‘Last Christmas’도 그 중 하나다. 그의 사망일은 12월 25일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더 안타까워한다. 윤심덕, 배호에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도 노랫말을 따라 세상을 떴다고 말한다. ▶꼭 옳은 분석은 아니다. 윤심덕의 마지막 앨범에는 24곡이나 있었다. ‘사의 찬미’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배호의 죽음은 오랜 투병에서 왔다. 마지막 3년은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에 의지해 활동했다. 폐결핵을 앓았던 김정호는 모든 노래가 애처롭다. 기타와 바이올린으로 엮어내는 슬픈 노랫말들이다. 조지 마이클의 노랫말도 사실은 ‘마지막(The last)’이 아니라 ‘지나간(Last)’이다. 죽음을 예언한 어떤 단어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가수 생애와 노랫말을 엮어 말한다. 노랫말 속에서 죽음의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아마도 사랑했던 스타를 보내지 않으려 영원한 스토리를 만들려는 심리일 게다. 그렇다면, 그대로 존중해도 좋을 일이다. 구태여 의미를 따지고, 사인(死因)을 분석할 필요는 없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용감한 시민들

#1. 보안업체 직원인 박모씨(23)는 지난달 13일 새벽 대구 수성구 범어동 회사에서 야근을 하던 중 ‘사람 살려’라는 다급한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간 박씨의 눈앞에 불에 타고 있는 원룸 주택이 보였다. 박씨는 즉시 119에 신고했지만 그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소방대원들이 도착하기 전 사다리를 이용해 2층 난간에 매달린 남성을 구조했다. 이어 건물로 들어가 각 방마다 문을 두드리며 잠자고 있던 주민들을 깨워 대피시켰다. #2. 지난 6월 19일 새벽 부산 북구 구포동 한 아파트에서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집에서 잠을 자다 놀란 정모씨(42)는 밖으로 나왔고, 피를 흘리고 있는 20대 여성을 발견했다. 여성은 아파트 입구까지 뒤따라온 남성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고 성폭행을 당했다. 도주하는 남성을 발견한 정씨는 300m 가량 추격해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3. 지난해 12월, 대학생 엄모씨(24)는 서울 서대문구 귀금속점에 침입한 강도를 목격했다. 강도는 흉기를 든 채 귀금속점 주인을 위협하며 폭행하고 있었다. 엄씨는 현장에 들어가 강도를 제지하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제압했다. 우리 주변의 용감한 시민들 얘기다. 경찰청이 이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경찰청은 올 한해 각종 사건ㆍ사고 현장에서 경찰관 못지않은 활약으로 범인 검거나 위험 예방, 인명 구호 등에 기여한 16명을 ‘2016 경찰청 용감한 시민’으로 처음 선정, 포상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우리사회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용감한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시민들을 지속 발굴해 포상하겠다”고 말했다. 용감한 시민으로 선정된 사람들 중엔 지난 9월 2일 부산의 곰내터널에서 유치원 통학버스가 전도된 사고가 나자 망치로 유리를 깨고 어린이를 구조한 김모씨(63)도 있다. 올해 5월 19일 화성시의 한 저수지에 여성이 들어가는 것을 목격, 뛰어들어 가슴 부위까지 물속에 잠긴 자살 기도자를 구한 자영업자 이모씨(44)도 있다. 높은 곳에 우뚝 서서 무리를 이끄는 장군만이 영웅은 아니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용기와 희생정신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한 시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이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더 정의롭고 안전하고 따뜻했다. 용감한 시민들에게 감사의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군주민수

쌀쌀한 날씨에도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엔 60만 국민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이날 촛불집회엔 산타 복장이나 루돌프 머리띠를 한 가족이나 연인 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도 등장했다. 촛불 든 산타와 함께 한 크리스마스 이브의 9차 촛불집회는 축제같았다. 이날 경찰 차벽에는 ‘군주민수’(君舟民水)라 쓴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군주민수’는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다.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뜻으로 ‘순자’의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君者舟也 庶人者水也(군자주야 서인자수야) 水則載舟 水則覆舟(수즉재주 수즉복주)’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엎을 수도 있다”는 표현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촛불민심과 통하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교수(역사학)는 “분노한 국민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재확인하며 박근혜 선장이 지휘하는 배를 흔들고 침몰시키려 한다”며 “박근혜 정권의 행로와 결말은 유신정권의 역사적 성격과 한계를 계승하려는 욕심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말했다. 교수신문은 매년 한해를 마감하며 교수 추천을 받아 설문을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올해 2위에는 ‘逆天者亡(역천자망)’이 뽑혔다. ‘맹자’에 나오는 말로,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다’라는 뜻이다. 3위는 ‘露積成海(노적성해)’로 ‘작은 이슬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모두 세태를 적확히 반영한 성어들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성난 민심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촛불을 밝혀 들고, 박 대통령 탄핵안까지 가결된 상황을 빗대고 있다. 교수신문은 지난해엔 ‘세상이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엔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 정치계의 온갖 갈등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대통령 스스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형국을 빚댔다. 2013년 박 대통령 재임 첫 1년의 평가는 ‘도행역시(倒行逆施)’였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이다. 교수신문의 사자성어를 토대로 보면, 박 대통령 재임 4년은 순리를 거스르고, 진실이 왜곡되고, 그래서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웠다. 결국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그 촛불의 물결은 지금 거대한 강물을 이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한 해의 반성(反省)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매년 1월 탁상용 달력이 생기면 12월 달력에 연필로 한 해의 목표를 기록한다. 큰 포부 그런 거 아니고 그냥 소소한 목표다.저물어 가는 올해 12월 달력을 보니 비자금 1천500만 원 모으기와 당화혈색소 7.0 이하가 기록돼 있다. 웃음이 나온다. 한 해를 시작하며 돈과 건강을 목표로 삼았다. 이런 걸 왜 목표로 세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작은 목표도 결국 달성하지 못하고 한 해를 마무리한다.진짜 반성은 지금부터다. 얼마 전 SNS에 남긴 후배 기자의 자기반성(反省)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후배의 글은 수원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분양권 현장을 취재하면서 오늘처럼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로 시작된다.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50대 남성 △대구에서 수원까지 먼 길을 왔다는 맞벌이 부부 △어린 딸아이를 품에 안은 채 울먹이는 주부까지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를 에워싼 채 “기자님 억울함 좀 들어주세요”라고 말하던 순간, 내가 글을 조금 더 잘 썼더라면, 내가 조금 더 그들의 이야기를 잘 담을 수 있는 기자였다면 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오늘 같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를 주목했던 적이 없었던 같다. 그 광경이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마무리된다. 이 글이 자꾸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반성의 글을 남긴 후배에게 댓글을 남겼다. “완벽한 기자는 없다.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그걸 안 하면 선배 같이 바보 된다”라고 올렸다. 충고보다는 자기 반성의 의미로 올린 댓글이다. 그런데 이놈이 ‘좋아요’를 안 달아 준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런데 나쁘다고 손가락질하는 분들만 계시고 자신의 주변을 반성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언론도 있다.사태를 방관한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깊이 반성한다. 후배의 말처럼 사람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기자로 돌아가고 싶다. 2016년 마지막 한 주가 남았다. 각자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생각해보는 남은 한 주가 되길 바란다. 최원재 정치부차장

[지지대] 눈물

일반적으로 의학계에서는 눈물을 3가지로 분류한다. 지속적으로 눈물 막을 형성해 눈을 촉촉하게 유지시켜 주는 ‘기저눈물’과, 담배연기나 이물질이 눈에 들어갔을 때 눈을 보호하고자 반사적으로 흘러나오는 ‘반사적 눈물’이 있다.또 기쁨 또는 슬픔, 분노 같은 감정에 반응해 흘러내리는 ‘감정적인 눈물’ 이다. 이 중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눈물은 대부분 세 번째의 눈물이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다양한 감정에 따라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때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 있는가 하면 지난날 잘못을 뉘우치는 참회의 눈물, 노력 끝에 영광을 차지한 승리의 눈물, 억울한 일을 당하고 괴로워하는 원한의 눈물, 이별의 눈물까지 감정적인 눈물의 성격은 무수히 다양하다. 이들 눈물 대부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 내 함께 눈물을 흘리거나 애석해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눈물이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보고 싶지 않은 눈물이다.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전 국민 앞에서 흘린 눈물은 보고 싶지 않고 봐서는 안 될 눈물의 최고조였다. 대국민담화를 통해 최순실 운운하며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라는 발언 후 글썽인 눈물을 시작으로 탄핵 소추안 국회 통과 이후 권한정지 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국정을 당부한 뒤 붉힌 눈시울 등이다. 게다가 문고리 3인방 등 핵심 참모들이 모두 떠난 상황에서 홀로 고심하다 감정이 복받쳐 한광옥 비서실장 앞에서 펑펑 울었다는 소식은 상당수 국민이 답답함을 넘어 숨이 꽉 막히게 했을 것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국정농단을 주도한 최순실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억울해하고, 구치소 수감중 대통령 담화를 보며 흘린 눈물은 물론, 문화계의 황태자 차은택 역시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국민께 죄송하다며 눈시울을 붉힌 것도 국민은 보고 싶지 않은 눈물이다. 죄와 벌의 원작자로 유명한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세상의 죄악을 씻어낸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이 명언이 가지고 있는 참회의 눈물을 보고 싶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을 번복하고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하는 가증스러운 눈물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이용성 사회부장

[지지대] ‘먹방’ 망국(亡國)

‘먹방’(먹는 방송) 인기가 끝이 없다. 2000년대 들어 꾸준히 형성됐다. ‘6시 내 고향’(KBS), ‘생방송 투데이’(SBS) 등의 단골 소재도 ‘먹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열풍이 2014년쯤부터 광풍으로 바뀌었다. 요식업자 백종원씨의 요리 예능-MBC- 출연이 결정적이었다. 이제 처음부터 끝까지 먹는 것으로 승부하는 ‘먹방’이 대세다.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TV까지 합하면 수십 개 ‘먹방’이 방송된다. 재방송을 계산하면 대한민국 TV는 하루 종일 ‘먹방’이다. ▶‘이코노미스트’나 ‘월스트레이트저널’ 등 외신이 한국의 먹방을 취재한 것도 꽤 됐다. 한국 사회의 불안 심리가 ‘먹방’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CNN은 ‘한국의 먹방이 왜 세계로 확산되는가’를 취재 보도했다.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식사법’(social eating)이라고 소개하며 ‘이런 트랜드가 세계인에게 먹혀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Mukbang’이라는 고유명사가 상징하듯 ‘먹방’은 이제 또 하나의 한류 품목이다. ▶이런 이면에서 쌓여가는 우울한 통계가 있다. 국세청의 2015년 통계연보를 보면 2014년에 폐업한 자영업자가 68만604명이다. 이 가운데 식당업자는 15만6천453명이다. 그중 절반 넘는 50.7%가 영업 부진을 폐업 이유로 꼽았다. 그런데도 식당은 늘어난다. 같은 2014년 기준 음식점(주점업 포함)수는 65만 개다. 전년 대비 2.4%p 늘었다. 인구 5천133만명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대한민국 국민 78명당 1명이 식당 주인인 셈이다.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00년대 초, 식당 간판마다 유행처럼 번진 문구가 있었다. ‘TV에 나온 집’이다. 그 후 일부 식당에서 ‘TV에 안 나온 집’이란 익살스런 문구를 써 붙였다. 이어 등장한 ‘TV에 나올 집’이란 문구는 그중에도 압권이다. ‘먹방’이 음식점 경영에 미치는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던 ‘먹방’이 이제 업계 공멸(共滅)의 원인이 돼가고 있다. 모두를 뛰어들게 해 모두가 망하는 길로 유혹하고 있다. 각종 통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쯤 되면 세계로 뻗어가는 ‘mukbang’ 한류를 마냥 즐거워만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심야시간대 ‘먹방’ 프로그램은 제한된다. 야식을 부추긴다는 국민건강 차원의 제한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국민경제를 걱정하는 정책은 없다. ‘한 해 매출 50억원 식당’ ‘100m 줄 서서 들어가는 식당’ ‘인생 역전에 성공한 식당’…. 수많은 베이비부머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이는 프로그램이다. 몇 푼 안 되는 퇴직금을 쏟아 넣게 하는 유혹이다. 그냥 두고 봐도 괜찮은 걸까. ‘먹방 망국론’이라 하면 과한 표현일까.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나 홀로 연말족

혼자서 밥을 먹고(혼밥), 혼자서 술을 마시고(혼술), 혼자서 영화를 보는(혼영) ‘나홀로족’이 크게 늘어났다. 혼자서 여행을 하고(혼행), 혼자서 캠핑을 하는(혼캠) 이들도 많고, 혼자서 연말을 보내겠다는 ‘혼말족’도 있다. 예전 같으면 지인들과 송년회 자리를 만들어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거나,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거나, 크리스마스·연말연시를 함께 보낼 애인을 찾기 위해 소개팅에 나서는 것이 젊은이들의 흔한 연말 풍경이었다.하지만 요즘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서 홀로 가는 해를 정리하고 오는 해를 맞이하겠다는 ‘나 홀로 연말족’이 늘고 있다. 운동ㆍ여행ㆍ취미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휴식과 재충전을 통해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이유로 ‘혼자 술을 마시는’ 이들을 그린 tvN드라마 ‘혼술남녀’가 2030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얼마전 종영했다. 개인 인터넷방송에선 혼자 음식을 시켜놓고 먹는 모습을 찍어 방송하는 ‘먹방’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혼밥ㆍ혼술ㆍ혼행 등의 신조어에는 변화하는 가구 구성 세태가 그대로 묻어 나온다. 바로 1인 가구의 증가다. 통계청이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6’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된 가구 유형은 ‘1인 가구’로 나타났다. 지난해 1인 가구는 520만3천440명으로 전체 가구의 27.2%를 차지해 2010년 23.9%보다 3.3%포인트 증가했다. 통계청은 이런 추세라면 20년 뒤인 2035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4.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젊은 연령층의 미혼율 증가와 노년층의 독거가구 증가가 가장 큰 이유다. 청년층의 만혼(晩婚)ㆍ비혼(非婚)의 급속한 증가는 결혼을 해 2인 이상의 가구를 형성하는 대신 독신으로 남아 1인 가구를 형성하고 있다. 이 같은 사회 구조의 변화로 나홀로족은 우리사회의 흔한 풍경이 됐다. 1인 가구와 경제 불황, 개인주의, 개성, 더치페이 등의 트렌드가 혼밥ㆍ혼술 문화를 만들었다. 젊은 세대에서 시작된 혼밥ㆍ혼술은 중년에서도 거부감 없는 현실이 됐다. 혼밥ㆍ혼술ㆍ혼행이 멋있어 보일 수도 있지만 함께 할 누군가가 없어 혼술ㆍ혼말일 수도 있다. 그 이면은 우울하고 외로울 수 있다. 나홀로족을 사회현상이겠거니 방관만 해선 안될 것 같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수원인문기행특구

중소기업청에서 지정하는 지역특구 제도라는게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특화사업을 발굴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되면 해당 지자체는 사업 진행에 필요한 사항과 관련해 법적 규제에서 선택적 특례를 받게 된다. 지역에 필요한 규제 특례와 특화사업을 통해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으로 지자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중소기업청이 지난 7일 ‘수원인문기행특구’를 지정했다. 수원인문기행특구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 종묘회사였던 부국원 건물, 옛 농촌진흥청 부지, 세계관개시설유산인 축만제 일원 등 총 140만4천148㎡ 규모에 달한다. 수원시는 오는 2021년까지 국비와 지방비 568억여원을 들여 인문기행 콘텐츠를 개발해 관광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4개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왕이 만든 도시 역사기행’ 사업을 통해선 정조대왕 무예 24기 공연의 상설화, 수원화성문화제와 팔달문시장의 세계화, 궁중 식생활 및 예절 문화의 관광 상품화 등을 진행한다. ‘근대 역사기행’ 사업은 2021년까지 8억 원을 들여 행궁동 동신교회~수원역~옛 농촌진흥청~축만제(서호) 약 6㎞ 구간을 근대 역사기행 탐방로로 만든다. 또 부국원 부지에 8억8천만 원을 들여 지상 3층 규모의 근대 역사전시관을 건립한다. ‘문학기행’ 사업으로는 인계동 나혜석 거리 일대에 예술시장과 작은 도서관을 설치하고 다양한 인문 콘텐츠를 확충해 당대 여성 예술계를 이끌었던 나혜석 선생을 기리게 된다. 시는 이 세가지 사업 홍보를 위해 탐방코스를 만들고 인문도시대축제도 개최하는 등 ‘인문기행특구 홍보마케팅’ 사업도 추진한다. 인문기행특구로 지정되면서 수원시는 도로교통법과 옥외광고물 관련 법에서 특례를 받게 돼 수원화성문화제의 메인이벤트인 정조대왕 능행차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종합운동장∼지동초등학교 3.2㎞ 구간에 대해 차량통제를 할 수 있다. 시는 인문기행특구로 인한 생산유발 효과가 3천239억 원, 부가가치유발 효과가 1천847억 원, 취업유발 효과가 8천985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수원인문기행특구를 통해 수원화성을 기반으로 근대건축물, 농업 역사, 인문 자원까지 아우르는 문화관광벨트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인문도시의 위상을 높이고 경제효과도 톡톡히 누릴 것으로 예상되는 수원인문기행특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通하였느냐?

“경제 부흥과 국민 행복, 문화 융성을 통해 부강하고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25일 취임사에서 천명한 내용이다. 그러나 4년이 흐른 작금의 시점에 국민은 충격과 실망, 분노를 참지 못하고 촛불 하나에 의지해 거리로 나섰다. 박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의 결과물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한 후 박 대통령은 3번의 국민담화를 했다. 그러나 국정담화 때마다 촛불집회의 인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심지어 미소까지 띄운 채 임했던 마지막 3차 담화는 수천만 국민들의 의지를 담아 200만이 넘는 국민들을 결집시켰다. 국민담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기자단의 질문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만약 국민의 궁금증을 대신한 기자의 질문에 진심으로 대답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했다면 현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과론적인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최근 화마로 삶의 터전을 잃어 실의에 빠진 상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박 대통령의 대구 서문시장 방문은 또 다른 불통의 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4지구 일부를 둘러본 뒤 10여 분 만에 시장을 나왔다고 한다. 대통령이 전하는 위로의 말 한마디를 직접 듣고자 했던 상인들이 실망감에 분노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며칠 전 국정조사에서 조원동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대통령 말에 토 달기 쉽지 않았다”는 증언이나,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기로 했지만 바리케이트를 치며 접근을 어렵게 했던 상황 등 불통의 흔적은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시기 벌어졌던 촛불집회는 소통의 힘이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마음속에 담았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2만여 명이 모인 첫 촛불집회는 200만 명이 넘는 촛불집회까지 이어지며 누적인원 748만 명(서울 586만 명)을 기록했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수백만 명이 모였음에도 질서정연하고 평화롭게 이뤄졌던 이번 집회는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 잔잔한 감동까지 전했다. 결국 국회에서도 이 같은 민심을 받들어 탄핵 소추를 통과시켰다. 조금은 늦었지만 검찰도 박 대통령의 중대범죄 혐의에 대해 공모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의 신뢰성을 등에 업은 특검이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이다. 소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때이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김진욱 색깔의 ‘kt 야구’

2015년 1군 무대에 데뷔한 프로야구 kt wiz가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며 기존 구단과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이에 kt는 3년 동안 팀을 이끈 조범현 창단 감독을 대신해 김진욱 전 두산 베어스 감독에게 새 지휘봉을 맡겼다.신임 김진욱 감독과 조범현 전 감독은 과거 OB 베어스(현 두산)에서 투수와 포수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다. 그러나 두 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조범현 감독이 과묵하고 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지도하는 스타일인 반면, 김진욱 감독은 화통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지도자다.▶지난 10월 18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은 “김진욱의 야구가 아닌 kt만의 틀을 만들겠다”고 했다. 자신의 지도스타일을 반영한 야구가 아닌 신생구단 kt의 고유 색깔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는 사령탑 부임 후 수원과 익산에서 한 달여의 마무리 훈련을 통해 팀 분위기를 바꾸는데 주력했다. 방송 해설자로 두 시즌을 지켜보며 kt의 팀 분위기가 신생팀다운 활기와 패기가 실종됐다는 판단에서다.▶김 감독이 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시도한 첫 선택은 선수들과의 모바일 메신저 소통이다. 처음에는 낯설어했던 선수들이 이제는 주저없이 감독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달라졌다고 한다. 또한 김 감독은 코치들에게 “선수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주문했다. 선수를 지도하는 것이 직업인 코치들에게 가르치지 말도록 주문한 것은 ‘주입(注入)’이 아닌 ‘선수 스스로 터득하도록 도우라’는 의미란다.▶지난달 16일 필자와의 첫 만남에서 김진욱 감독은 “선수들이 눈치 보지 않고 야생마처럼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운동을 즐기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덧붙여 “성향이 좋은 선수가 성공한다. 성향의 기본은 인성이다. 인성이 되면 좋은 성향이 만들어지고, 좋은 야구를 한다”고 강조했다. 스포츠에 있어서 감독의 성향은 팀컬러의 형성과 성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조범현 감독이 지난 3년 동안 팀 골격을 만들었다면, kt의 인성(팀 컬러)을 만드는 몫은 김진욱 감독의 것이다. ‘자율야구’를 강조한 김진욱 감독과 함께하는 kt의 새로운 야구가 내년 시즌 어떤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설 지 기대가 된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헌재 재판·여론 재판

헌법재판소가 2009년 혼인빙자간음죄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특정 행위를 국가가 규제할 것인지 아니면 도덕률에 맡길 것인지는 결국 사회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등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혼빙간죄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워졌다.”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위헌 판단의 근거로 택했음을 분명히 했다.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과학화한 수치는 여론조사다. ▶헌재의 결정이 대개 이렇다. 여론과 일치하는 결론을 내린다. 동성동본금혼제(위헌), 간통죄(위헌), 사형제도(합헌), 낙태금지(합헌) 등이 모두 당시 여론에 부합한 결론이었다. 참여정부 최대 이슈였던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위헌)도 그랬다. 정부 의지와 달리 국민 여론의 다수가 수도이전에 반대했다. 최근 김영란 법(부정청탁 방지법)의 합헌 결정에도 여론은 그대로 반영됐다. 사립학교, 언론계를 공직자와 동일시한 오류가 학계에서 지적됐지만, 여론은 김영란 법에 우호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결정에도 같은 흐름이 적용됐다. 한나라당에 의해 탄핵이 결정되면서 일시에 탄핵 역풍이 불었다. 총선을 앞둔 여론조사에서 10여 곳을 제외한 모든 지역구가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갔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탄핵에 반대하는 답변이 70%를 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헌재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결정문에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누가 보더라도 여론을 좇은 결정이었다. ▶대법원은 법전을 놓고 판결한다. 범죄구성 요건, 가벌성, 판례 등을 엄격하게 대입해 결론을 도출한다. 이러다 보니 의외와 반전이 속출한다. 하지만, 헌재에는 법전이 없다. 범죄구성 요건, 가벌성, 판례 등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이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기준은 ‘시대 상황’이다. 그 시대를 구성하는 가치관이 기준이다. 이러다 보니 충격적 결과나 반전이 없다. 국민 다수의 생각이 그대로 옮겨진다. 이상할 건 없다. 그게 법원과 독립된 헌재의 존재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대략 5~10% 선이다. 탄핵 의결 직전 조사에서 국민 80%가 탄핵에 찬성했다. 여론을 좇는 헌재의 관행을 그대로 적용하면 박 대통령에겐 절망적이다. 극적 반전의 가능성이 없다. 전혀 반대의 상황도 가능하다. 박 대통령 쪽으로 여론이 반전된다면 헌재 결정은 기각으로 급격히 기울 것이다.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재 결론. 따지고 보면 이 결론도 여론조사, 촛불 참가자 수, 언론 논조가 좌우할 판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전경련, 환골탈태 아니면 해체

한국의 간판급 대기업들로 구성된 전국경제인연합회(약칭 전경련)는 1961년 설립됐다. 5·16 쿠데타 직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다른 대기업 오너들과 함께 한국경제인협회를 만들었다. 이 회장이 초대회장을 맡았다. 설립 배경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대기업들이 공동의 구심점을 필요로 해 만든 단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당시 부정축재 문제로 단죄를 받을 처지에 놓인 대기업들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급조한 단체라는 시각도 있다. 이후 1968년 주요 민간기업, 금융회사,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회원을 늘리면서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명칭도 현재의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바꿨다. 전경련은 정관에서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데 설립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전경련의 회원사 수는 600여 개다. 법적으로는 비영리 사단법인의 지위를 갖고 있다. 회원 가입은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회원사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된다. 전경련은 지난 55년간 국가경제 성장에 나름 기여를 했다. 기업 애로사항을 호소하거나 정책을 개발·제안하는 경제단체 본연의 활동 외에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주도적 역할도 했다. 하지만 현재 전경련은 국가 경제정책에 참여는 커녕 기업을 대변하는 기본적인 역할조차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경유착의 통로, 부패한 권력을 위한 모금창구 역할을 하면서 망가져 버렸다.전경련은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주도적으로 모금했고, 이후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 모금,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 등에 연루됐다. 그때마다 사과와 윤리선언 등으로 위기를 넘겼으나 구태를 떨치지 못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또다시 ‘최순실 국정농단’의 앞잡이 역할을 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전경련 해체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주 열린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전경련 해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밝혔고, 다른 그룹 회장들도 탈퇴 의사가 있다고 했다. 해체 위기에 놓인 전경련은 이번에 전면 쇄신을 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겉치레 개혁으로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환골탈태 아니면 해체, 전경련이 가야 할 길은 둘 중 하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촛불혁명

“1234567. ‘우주의 기운’이 담긴 투표다”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인터넷과 SNS에는 ‘숫자 패러디’가 화제였다. 박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기권표만 제외하고 숫자로 정리하면 신기하게도 숫자 1234567이 차례로 나온다.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명(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찬성 의원 234명, 반대 의원 56명, 무효 7개를 연결하면 이렇게 된다. 네티즌들은 “숫자 1234567이 다 나왔다”며 “운명이다” “신기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 판결은 (그 다음 숫자인) 89일 만에 나오는건가”라고 했다. 89일째 되는 날은 내년 3월 7일이다. 이날 국회 표결에서 국회의원 찬성 비율도 화제가 됐다. 8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응답자가 78.2%였다. 9일 국회 정족수인 300명 의원 중 찬성표를 던진 234명(78%)과 비율이 같다. 국민 여론이 그대로 표결에 반영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은 1개의 촛불이 50일 만에 230만 개로 번지면서 이뤄낸 ‘촛불혁명’이다. 국정을 농단한 부정한 권력을 권좌에서 끌어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는 국회 탄핵안 표결에서 압도적 결과로 나타났다.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넘실거렸던 거대한 촛불의 파도와, 청와대를 둘러싼 분노의 함성이 이뤄낸 성과다. 불의에 맞서 함께 뜻을 모을 때 더 커지는 촛불의 힘은 칼바람에도 꺼지기는커녕 횃불이 됐고, 들불처럼 번졌다. 탄핵이 가결됐음에도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7차 촛불집회가 10일 전국에서 열렸다. 탄핵 가결로 성남 민심이 다소 누그러지고 매서운 추위에 열기가 식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촛불은 여전히 활활 타올랐고 열기도 뜨거웠다. 이번엔 헌재 앞에서 ‘탄핵을 인용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국민의 명령이다’ 등의 구호도 연호했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은 전적으로 국민의 힘이자 촛불 시민혁명의 승리다. 오늘의 촛불은 4·19혁명, 6·29항쟁에 이은 12·9혁명으로 한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할 것이다. 국회 탄핵은 가결됐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국회는 박 대통령 퇴진 이후 진짜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함께 할 것이다.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를 노래하며.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가족과는 밥도 먹지 말라’ 상피제

조선시대 이조판서 율곡 이이는 “이순신이 덕수 이씨로 ‘같은 집안’인데 만나보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같은 문중으로서 인사권을 가진 이조판서에 있는 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도 광화문 거리에서 촛불 민심을 굽어보는 이순신 장군, 그만 유독 이리 강직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려,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온 ‘상피제(相避制)’만 봐도 ‘녹(祿)’을 받는 사람이라면 응당 가족까지 멀리하며 청렴하게 일할 것을 추구했다.상피제는 일정범위 내 친족 간에는 같은 관서 또는 통속관계에 있는 관서에 근무하지 못하게 하고, 연고가 있는 관직에도 일하지 못하게 했던 법이다. 권력 집중·전횡을 막는 장치였다. 혈세를 월급으로 받아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만큼의 책임의식과 청렴함을 요구하는 사회적 합의다. 그 함의 때문인지 상피제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내각에 지시해 장ㆍ차관과 같은 지역, 같은 대학 출신을 배제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본부 직원을 지방사무소에 배치할 때 해당 지역 연고자를 배제하는 상피제 도입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 7일 본보가 보도한 기사 고색뉴지엄 사업 위탁 운영하면서… 수원시美協회장, 딸 특별채용 ‘구설수’를 보며, 상피제를 떠올린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수원시는 방치돼 있던 폐수처리장을 복합문화공간 ‘고색뉴지엄’으로 조성, 운영할 계획이다. 국비와 시비 총 20억원을 투입했다. 시는 미술인들로 구성된 매홀자유창작네트워크를 주관단체로 선정했다. 문제는 매홀의 대표인 이영길 수원시미술협회장이 총괄기획자로서 공식절차 없이 자신의 딸을 채용, 지난 9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200여만 원의 월급을 지급했다. 수원의 일부 미술인들이 ‘제2 최순실’이냐고 비난할 정도의 공분을 사고 있다. 기자는 더 큰 문제점이 보인다. 시 공무원이나 매홀 소속 미술인, 이 대표까지 딸 채용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껏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가 지원하는 예산은 혈세요, 이 대표나 매홀 미술인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공공시설이다. 바르지 않은 윤리의식에서 올바른 공공사업이 진행될 리 만무하다. 먼 친척임에도 얼굴 한 번 보지 않겠다던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는 듯하다. 류설아 문화부차장

[지지대] 멈춰선 최순실 고통 시계

군대에는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병사들이 군 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아무리 힘들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고 제대할 날이 온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말이다. 박근혜-최순실 비선 정국이 벌써 몇 달째 국민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대고 있지만, 찢어진 가슴을 어루만져 줄 치유의 시계는 도무지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대통령 지지도 4%라는 충격적인 민심에도 비박 친박간의 네 탓 공방을 멈추지 않고 있다.야당 역시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으로부터 탄핵당한 국가적인 비상사태에도 뚜렷한 대안 제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모두 촛불 민심의 뒷켠에 숨어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계산만 하고 있다. 그 많다던 잠룡들 중 누구 한명 앞으로 나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책임지겠다는 이도 없다. 국민의 알권리 해갈을 기대했던 국회 청문회는 주요 증인 불참과 대기업 총수들의 성의없고 형식적인 답변으로 찢어진 상처에 소금만 뿌리는 격이 되고 말았다. 인천지역 정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지역 정당과 정치인들은 민심의 상처보다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이 끼칠 2018년 지방선거에 벌써 셈이 가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측은 이 정국이 2018년 재선 도전에 미치게 될 영향 분석과 대책 마련에 분주하고, 야당에서는 차기 시장 유력후보의 당선론과 프로필이 일찌감치 나돌고 있다. 광역·기초의원들도 여야 할 것 없이 차기 지방선거에만 모든 촛점을 맞추고 있다. 여당 소속 지방의원은 어떻게 이 정국을 빠져 나갈 수 있을까에 골몰해 있다. 야당 소속 의원들은 이 분위기에 편승해 다음 지방 선거에서 좀 더 편한 당선을 기대하며 표정 관리를 하고있다. 공직사회조차 민심 걱정보다는 최순실 정국이 차기 지방선거 미치는 영향과 판세 전망에 관심 더 많다. 아픈 민심을 아우르는 손길은 정가 어디 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멈춰선 이 고통의 정국에서 국민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까를 생각하면 태산같은 답답함이 숨통을 조여온다. 결국 멈춰선 최순실 고통 시계는 그 누구도 아닌 국민 스스로 해결하고 치유해야하는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유제홍 인천본사 정치부국장

[지지대] 한한령(限韓令)

지난봄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중국에서 방영될 때 유시진 대위 역을 맡은 송중기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열광하며 중국 대륙을 뜨겁게 달궜다.난징에 사는 20세 여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속으로 드라마를 몰아 보는 바람에 급성 녹내장으로 실명 위기에 처해 중국 정부가 자제령을 내리기도 했다. SNS엔 송중기와 연인인 듯 갖가지 합성사진이 올라왔고, 심지어 송중기와의 가짜 ‘혼인증명서’까지 나돌았다. 당시 송중기는 중국의 10억대 CF 제의만 10건 넘게 받을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최근 송중기가 출연한 중국 휴대폰 광고 모델이 대만 배우 펑위옌으로 교체됐다. 전지현, 이영애 광고도 사라졌다. ‘한한령(限韓令)’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한류 연예인의 드라마·예능 출연과 중국 현지 공연을 제한하고 한국산 제품의 TV 광고도 금지한다’는 내용의 한한령을 내린 것이다. 이후 아이돌 스타의 중국 공연이 취소됐고, 한국음악 방송도 중단됐다. 한국 TV 드라마도 중국 방송에서 사라졌다.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본격적인 보복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9월 한국산 설탕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사, 10월 한국산 폴리아세탈에 대한 반(反)덤핑 조사, 11월 한국산 폴리실리콘에 대한 반덤핑 재조사에 착수했다.지난 8월까지 한국 대상 반덤핑·세이프가드 조사가 한 건도 없었다는 점에서 사드 관련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더니 지난달부터는 한류 연예인과 한국음악 방송 금지 조치에 나섰다. 중국 당국은 주요 도시 홈쇼핑 업체에 ‘한국 제품 편성을 줄이고 방송에 한국인 모델을 쓰면 안 된다’는 지시도 내렸다. 사실상 홈쇼핑에서 한국 제품 판매 방송을 중단하라는 얘기다. 중국은 롯데그룹에 대해선 전 사업장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세무·소방·위생 조사를 벌였다. 이례적인 조치로 성주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제공한데 따른 보복 성격이 짙어 보인다. 중국의 이런저런 규제 조치로 한국기업의 활동이 위축돼 피해가 가시화 되고 있다. 중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한ㆍ미 군 당국의 사드 배치에 반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업과 연예인 등 사드와 무관한 약자를 타깃으로 분풀이하는 보복은 치졸하다. 정부는 중국의 부당한 압력에 항의하면서, 한편으론 문화ㆍ경제 분야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대중국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오~ 필스(pills) 코리아

‘오 필승(必勝) 코리아’는 월드컵 구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우리의 것이 됐다. 당시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응원단이 합창했다. 이후 한국 축구가 가는 곳마다 울려 퍼졌다. ‘The Reds’ 티셔츠, ‘대~한민국’ 구호와 함께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3대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노래의 원곡, 가사 등을 둘러싼 잡음은 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상징 노래인 것만은 틀림없다. 뜻도 모르는 외국인들도 덩달아 불러준다. ▶‘푸른 집 안 푸른 알약(Blue pills in Blue House).’ AP통신이 지난달 23일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푸른 집(Blue House)은 청와대, 푸른 알약(Blue pills)은 비아그라를 가리킨다. AP통신은 청와대가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와 그 복제약 360정을 구매했다고 썼다. 아프리카 순방 시 고산병 예방을 위해 구매했다는 청와대 해명도 소개했다. AFP통신은 비아그라 논란을 보도하며 ‘박 대통령은 결혼하지 않았으며 알려진 파트너도 없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최순실 게이트 초기, 국민을 참담하게 했던 외신의 단어는 ‘샤머니즘’이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이번 스캔들에는 한국의 ‘라스푸틴’에 성추문, 8선녀까지 등장한다”고 보도했고,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도 “이번 스캔들에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무속인’이 등장한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추락시키는 단어였다. 그랬던 외신에 11월 이후 더 참담한 단어가 등장했다. ‘Pills’(알약)다. AP 통신이 제목에 쓴 ‘Blue pills’는 비아그라다. ▶지난 주말, 검찰 고위관계자가 내게 물었다. “검찰이 수사 초기에 압수수색에 나서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다. 인정한다. 그런데 언론은 도대체 왜 이러느냐. 언제까지 저급한 얘기로 국격을 떨어뜨릴 거냐.” 그가 말한 저급한 얘기가 바로 ‘Pills’다. 비아그라, 프로포폴, 프로스카로 이어지는 보도다. 답하기 어려웠다. 그의 말이 옳았다. 외신의 주요 출처는 우리 언론보도다. 대한민국 국격 추락의 단초는 대한민국 언론이 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해명이 듣고 싶다. “비아그라, 프로포폴, 프로스카는 한 번도 쓴 적 없다”는 말을 듣고 싶다. “허위 보도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으름장을 듣고 싶다. 그런데 그 간단한 말 한마디를 못한다. 이러니 가설(假說)이 정설(定說)로 바뀌고, 찌라시가 신문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축구장에 외국인들이 ‘필승’의 뜻을 알 리 없다. 그저 발음을 따라 부른다. 그들의 귀에 ‘오 필승 코리아’가 ‘오 필스 코리아’로 들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답답하고 참담한 현실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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