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조판서 율곡 이이는 “이순신이 덕수 이씨로 ‘같은 집안’인데 만나보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같은 문중으로서 인사권을 가진 이조판서에 있는 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도 광화문 거리에서 촛불 민심을 굽어보는 이순신 장군, 그만 유독 이리 강직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려,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온 ‘상피제(相避制)’만 봐도 ‘녹(祿)’을 받는 사람이라면 응당 가족까지 멀리하며 청렴하게 일할 것을 추구했다.상피제는 일정범위 내 친족 간에는 같은 관서 또는 통속관계에 있는 관서에 근무하지 못하게 하고, 연고가 있는 관직에도 일하지 못하게 했던 법이다. 권력 집중·전횡을 막는 장치였다. 혈세를 월급으로 받아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만큼의 책임의식과 청렴함을 요구하는 사회적 합의다. 그 함의 때문인지 상피제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내각에 지시해 장ㆍ차관과 같은 지역, 같은 대학 출신을 배제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본부 직원을 지방사무소에 배치할 때 해당 지역 연고자를 배제하는 상피제 도입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 7일 본보가 보도한 기사 고색뉴지엄 사업 위탁 운영하면서… 수원시美協회장, 딸 특별채용 ‘구설수’를 보며, 상피제를 떠올린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수원시는 방치돼 있던 폐수처리장을 복합문화공간 ‘고색뉴지엄’으로 조성, 운영할 계획이다. 국비와 시비 총 20억원을 투입했다. 시는 미술인들로 구성된 매홀자유창작네트워크를 주관단체로 선정했다. 문제는 매홀의 대표인 이영길 수원시미술협회장이 총괄기획자로서 공식절차 없이 자신의 딸을 채용, 지난 9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200여만 원의 월급을 지급했다. 수원의 일부 미술인들이 ‘제2 최순실’이냐고 비난할 정도의 공분을 사고 있다. 기자는 더 큰 문제점이 보인다. 시 공무원이나 매홀 소속 미술인, 이 대표까지 딸 채용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껏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가 지원하는 예산은 혈세요, 이 대표나 매홀 미술인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공공시설이다. 바르지 않은 윤리의식에서 올바른 공공사업이 진행될 리 만무하다. 먼 친척임에도 얼굴 한 번 보지 않겠다던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는 듯하다. 류설아 문화부차장
오피니언
류설아 문화부차장
2016-12-08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