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경기도정공백특위

2012년 7월 26일. 경기도의회 제270회 임시회에 특별한 안건이 올랐다. 명칭이 길다. ‘김문수 도지사 도정 공백 방지를 위한 특별 위원회 구성 결의안’. 당시 통합민주당이 발의했다. 향후 2개월간 도정 업무 전반의 공백을 조사하기 위해 특위를 구성하자는 안이다. 김 지사 비서실을 비롯한 8천여 개 도정 전반을 조사 대상으로 규정했다. 도가 출연한 산하 기관까지 모두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새누리당이 반대했지만 결국 가결됐다. ▶김문수 지사의 대권 행보가 원인이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아껴뒀던 정기 휴가에 반차 휴가까지 싹 쓸어 사용했다. 통합민주당의 특위 운영도 정치 전술에 맞춰졌다. 8천개 도정을 조사한다고 했지만, 실제 표적은 김 지사 대권 행보였다. 특위가 구성된 뒤 첫 번째 도에 요구한 자료부터 그랬다. 김 지사의 업무추진비 자료를 요구했다. 관용차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휴가는 며칠이나 썼는지를 조사했다. ▶4년 반쯤 흐른 2017년 2월 26일.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자유한국당 대표, 경기도 이재율 행정1부지사와 강득구 연정부지사가 만났다. ‘도정공백방지협의체’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협의체에서는 1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문제와 AIㆍ구제역 등 도정 주요 현안을 집중 논의하기로 했다. 명칭에서는 정당간 이견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이름 가운데 ‘도정 공백’ 부분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반감을 표하고 있어서다. ▶이번에도 도지사의 대권 행보가 원인이다. 남경필 지사가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지 오래다. 거의 모든 언론에 ‘남경필’은 도정이 아닌 대권과 연관 지어지고 있다. 계속되는 도정 위급 현장에서 남 지사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물론 2012년의 ‘김문수 도정 공백… 특별 위원회’와는 다른 점도 있다. 그때와 달리 여야가 별 충돌 없이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그때보다 관심 대상 업무가 비(非) 정치적이다. 도는 이 역시 ‘연정’의 효과라고 설명한다. ▶이인제,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재직 중 대권 논란에 휘말리지 않은 경기지사가 없다. 드러내놓고 임기가 중단된 때도 있었다. 최소한 모든 지사들이 정신줄의 한 쪽을 대권에 두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도정공백 특위’와 ‘도정공백 협의체’가 다를 것도 없다. 이런 기구가 있었던 경기도정과 없었던 경기도정에도 별 차이가 없다. 어쩌면 경기도에는 상설 기구처럼 등장하는 ‘도정공백 위원회’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경기지사 출신 대통령은 없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금요일 조기 퇴근

일본 정부가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도입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3시에 조기 퇴근해 내수를 늘리자는 취지의 제도다. 그 주의 다른 요일에 30분씩 추가 근무를 해 전체 근무시간은 유지하도록 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일본경제단체연합회와 함께 내놓은 정책으로 우리의 불금과 비슷한 ‘꽃금요일’을 노린 것이다. 여행사, 음식점, 백화점, 마트 등은 소비가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24일 프리미엄 프라이데이가 처음 시행됐다. 조기 퇴근한 직장인들은 한 목소리로 “건배!”를 외쳤지만, 그렇지 못한 쪽에선 “먼 세상 이야기”라며 냉소적 반응이었다. 교도통신 등 현지 언론도 환영과 냉담함이 동시에 나왔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일본의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벤치마킹해 금요일 조기 퇴근하는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 우리는 2시간 단축근무를 통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장시간의 경직된 근로 관행을 개선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통해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취지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날’을 만든다는 것이다. 중산층은 지갑을 더 열게 하고, 서민층은 소비 여력을 더 키워 소비 절벽을 막겠다는 정부의 ‘내수 활성화 방안’의 일환이다. 하지만 도입 여부를 놓고 인터넷이 뜨겁다. 내수시장을 살리고 소비를 촉진하자는 취지는 긍정적이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직장인을 돈 쓰는 기계로 보느냐’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 ‘쓸 돈 자체가 없다’는 반응도 있다. 무엇보다 ‘칼퇴근’이 불가능한 기업들에선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가 업종별 상황은 고민하지 않고 설익은 대책을 내놨다. 현실적으로 소수 대기업 사무직이나 공무원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도로 교대제로 일하는 제조업 생산직이나 서비스 업종에선 도입이 어렵다. 금요일 조기 퇴근이 소비 증가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일본은 백화점 등과 함께 대규모 할인 행사를 준비하는 등 동반 대책에 공을 들였지만 우리는 준비없이 일본 흉내만 냈다. 현재 대책만으로는 지갑이 얇은 직장인들의 TV 시청률만 올라가게 될 것이란 예측이다. 20∼40대 직장인 2천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 68%가 “퇴근 후 지쳐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대답이 있었다.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은 평상시 ‘칼퇴근’만이라도 보장받기를 원한다. 유급 휴일ㆍ연차 사용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현장과 민심을 세심하게 반영하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졸업 유예

졸업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저마다의 목표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출발선에 서는 것이라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해 청년(15~29세)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는 10%를 넘어설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극심한 청년 취업난이 대학 졸업식 풍경을 바꾸고 있다. 졸업식 날 동기끼리 모여 사회 진출을 축하하는 것은 옛말이 됐다. 졸업식 참석을 기피하거나, 참석하더라도 가족 없이 혼자 와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나 홀로 졸업식’이 늘고 있다.졸업 전에 셀카봉을 들고 와서 학교 곳곳을 배경으로 혼자 기념사진을 찍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취업을 못한 상태에서 졸업을 하게 돼 부모님이나 친구들 볼 면목이 없어서란다. 친한 친구 몇 명이 ‘우정 사진’을 찍는 것으로 졸업식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아예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졸업 유예는 사실상 졸업 요건을 충족한 재학생이 해당 학기에 졸업하지 않고 일정 기간 졸업을 미루는 것으로 ‘졸업 연기’ ‘졸업 유보’ ‘계속 수학’ 등으로도 불린다. 법적 근거나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많은 대학이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졸업유예제를 도입하고 있다. 졸업 학점을 다 이수하고도 자발적ㆍ고의적으로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NG(No Graduation)족, 노대딩(노땅 대학생), 대오(대학 오학년) 등의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들은 정규 학기를 다 채우고도 학교를 더 다니기 위해서 최소 한 과목 이상을 듣는 NG족도 있지만 과목당 50만~60만원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이런저런 편법을 이용해 등록금을 안 내면서 졸업만 유예하는 학생들도 많다. 영어 성적이나 졸업 논문 등 졸업 요건을 일부러 채우지 않는 식이다. NG족은 유령과 같은 존재다. 대학 5학년생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학교에서 ‘없는 존재’가 된다. 졸업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수업 1~2과목만 신청하니 선·후배와 동기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으니 의도치 않게 숨어 지내는 모양새가 된다. 재학생들과 종종 갈등도 발생한다. NG족이 도서관 자리를 죄다 차지해 자리다 없다고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씁쓸하고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나마 저소득층은 비용 부담에 졸업 유예도 맘대로 못한다. 졸업 유예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해결할 방법은 일자리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마스크 패션(?)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2015년 여름. 바이러스 방지효과를 앞세운 고가(高價)의 마스크가 품귀현상을 빚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날이 후끈한 초여름인데도 너나 할 것 없이 입을 꽁꽁 막은 마스크 착용자들로 거리가 가득 찼다. 마스크는 외부의 해로운 공기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목적을 한다. 일반적인 마스크부터 수술실 등에서 이용하는 의료용 마스크, 분진이 많은 산업현장에서 착용하는 전용 마스크까지 모두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 마스크는 호흡기 보온·보습에 도움을 주고, 침이나 가래가 밖으로 튀는 것을 막는 용도로 사용한다. 방진 마스크는 코와 입을 보호하는 위생과 밀폐율을 보장하기 위한 특수 마스크로 분류된다. 의료용 마스크는 수술 중 감염과 방사능 노출 등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미세먼지가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극심한 중국이나 꽃가루가 심하게 날리는 일본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훨씬 일상화 돼 있다. ▶마스크가 대한민국에서는 특정집단의 얼굴을 가리는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정농단의 주인공 최순실은 마스크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 특검에 소환될때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가 하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판에도 마스크를 쓴 채 법정에 출석했다. “민주주의 특검이 없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를 때 마스크를 벗은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정유라 특혜 지원 등 월권을 행사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지난해 12월 특검 첫 소환 당시부터 마스크를 착용한 데 이어 조사를 받을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술 더 떠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석한 장시호는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 얼굴을 가린 채 청문회 선서를 하다가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유라 학사 특혜 제공의 윗선으로 꼽히는 김경숙 전 이화여대 학장 등도 마스크를 착용했다. 아마 이들은 마스크를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새로운 패션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마스크가 아픈 사람들이 착용하는 것을 감안해 스스로 동정받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용도인 것 같다. 국민들은 범죄자의 이유 없는 마스크 패션에 또다른 분노가 치민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이용성 사회부장

[지지대] 국가 안보의 가치

조선 후기 숙종(肅宗) 때 군교(軍校) 김체건(金體乾)은 당대 최고의 무사로 손꼽힌다. 숙종은 훈련도감의 대장인 유혁연으로 부터 “검술은 어디에도 있지만 일본 것이 최고이기에 사람을 보내 왜검을 배우게 하고자 합니다. 어떠하겠습니까”라는 충언을 듣고 이를 윤허한다.(승정원일기 숙종 5년). 이 같이 훈련도감에서 군졸들로 하여금 왜검을 익히게 하려는 정책에 의해 차출(?)된 김체건은 신분을 속이고 왜관으로 들어가 스스로 머슴이 된다.그들의 검술을 외부인은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땅에 움을 파고 몸을 숨겨 그들의 검술을 훔쳐 배운다. 3년 만에 왜인의 검술을 모두 터득했다니 그의 실력도 출중한 것 같다. 그들에게서 더 배울 것이 없던 김체건은 임금 앞에서 시범을 보인다. 그의 어전 검술에 대해 무예도보통지, 김광택전은 이렇게 기록했다. ‘환상인 듯하여 사람들을 끝없이 놀라게 하였다. 또한, 재를 땅에 뿌려놓고 맨발로 양쪽 엄지발가락을 이용하여 재를 밟았고, 그리고 나는 듯한 칼춤은 춤의 경지에 이르러, 재에는 발자국이 남지 않으니, 그 몸의 가볍기가 이와 같았다’. 임금이 그를 기특하게 여겨 훈련도감의 교사에 임명했다. 조선이 김체건의 정체를 숨기면서까지 왜의 검술을 익히게 한 것은 다시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지 않으려는 의지로 보인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지난 21일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도 그런 역사가 있어 (북한을) 비난만 할 처지는 아니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두 진보정권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대권에 가장 근접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 공동위원장이라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의 김정은 정권과 대한민국 역사를 동일시하는 듯한 발언은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를 왜곡할 수 있는 만큼 부적절하다.대선 정국으로 어수선한 시국을 틈타 북한의 김정은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이복형인 김정남마저 독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 안보는 진보ㆍ보수를 떠나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다. 대선주자들은 국방ㆍ대북 정책과 대북ㆍ안보관을 국민에게 확실히 밝혀야 한다. 김창학 정치부장

[지지대] 대통령 후보의 애창곡

-다니엘은 목수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심장병이 악화돼 일을 그만둬야 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관공서를 찾았다. 하지만, 복잡한 절차 때문에 번번이 좌절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싱글맘 케이티와 서로를 의지한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다. 현대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그려낸 사회성 짙은 영화다.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조용한 음악이 인상적이다. ▶이 음악이 2017년 대한민국 대선(大選)판에 등장했다. 안철수 후보가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이 음악을 선택했다. 앞서 JTBC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곡을 선택해 네티즌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거론한 후보가 더 있다. 유승민 후보는 경기일보 인터뷰에서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꼽았다. 유력 후보 중 두 명이나 이 영화를 지목했다. 짐작건대 복지 문제가 현안인 우리 정치 현실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대선 후보들이 꼽는 애창곡에는 나름의 정치가 있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화두를 던질 노래를 지목한다. 이런 면에서 ‘나, 다이엘 블레이크’ 못지않은 애창곡이 있다.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다. 보컬 전인권의 야성 짙은 목소리와 희망을 갈구하는 가사가 주는 메시지가 크다. 특히 100만 촛불이 모인 광화문 광장에서 전인권이 부르던 장면이 압권이었다. 촛불 정국에서 이 노래는 양희은의 ‘아침 이슬’과 함께 국민저항가요로 자리매김했다. ▶경기일보 인터뷰에서는 안희정ㆍ남경필 두 지사가 ‘걱정 말아요 그대’를 선택했다. 안 지사는 1등 문재인에 공격하는 더불어민주당 내 도전자다. 남 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기득권에 맞서온 보수 내 도전자다. 같은 50대로서 새로운 질서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연정’으로 묶인 정치적 공통점도 있다. 정서적으로는 들국화 음악 속에 자란 7080세대라는 공통점도 있다. ▶대선 후보들이 밝히는 애창곡은 또 하나의 선거 운동이다. 그래서 서민들이 말하는 ‘18번’과는 다른 개념일 수 있다. 충청도 공략이 시급한 문재인 후보의 ‘꿈꾸는 백마강’, ‘저녁 있는 삶’을 주창해온 손학규 후보의 ‘저녁 있는 삶’, 군 복무 문제를 강조했던 유승민 후보의 ‘이등병의 편지’. 우연일지 모르나 정치적 메시지와 지나치게 맞아떨어진다. 물론 이마저 중요한 선거 운동이라 한다면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면 가장 비정치적(?) 애창곡을 말한 후보는 이재명 시장이다. 그는 경기일보 질문에 ‘밤에 떠난 여인(하남석)’이라고 적었다. 딱히 정치적이지 않아 보이는 노래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호황 누리는 고가 아동용품

구찌 키즈, 버버리 칠드런, 아르마니 주니어, 몽클레르 앙팡, 랄프로렌 칠드런, 펜디 키즈, 겐조 키즈, 타미힐피거 키즈, 빈폴 키즈, 닥스 키즈…. 명품에 ‘○○키즈’ ‘○○칠드런’ 식으로 이름을 붙인 아동용 브랜드들이다. 노스페이스 키즈, 뉴발란스 키즈, 나이키 키즈, 아디다스 키즈, 휠라 키즈처럼 스포츠 브랜드도 아동용 제품을 별도로 내놓았다. 아동용이지만 입이 벌어질 만큼 고가 제품이 많다. 구찌 키즈의 책가방(백팩)은 112만원, 도시락 가방(런치백)은 97만5천원이다. 버버리 칠드런에선 72만원짜리 더플코트도 판매한다. 아르마니 주니어 ‘블랙 라인’의 경우 원피스가 72만8천원, 티셔츠가 18만8천원 수준이다. 몽클레르 앙팡의 겨울 외투는 200만원이 넘는다. 경기불황으로 백화점 전체 매출이 침체돼 있지만 아동용품은 매년 두 자릿수의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입학ㆍ졸업ㆍ새학기 선물 대목을 맞은 백화점에 가보면 ‘신(新) 등골브레이커’를 종종 만난다.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할 만큼 비싼 물건이란 뜻이다. 명품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브랜드 책가방의 평균 가격이 10만~15만원, 실내화 가방은 3만~5만원에 달한다. 값이 좀 나간다 하는 일본산 책가방 ‘란도셀’은 70만원이나 하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불황에도 고가 아동용품 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이유는 요즘 대세인 ‘한 자녀’ 가정에서 아이에 대한 지출을 아끼지 않아서다. 여기에 부모(2)ㆍ양가 조부모(4)ㆍ삼촌 이모(2) 등 8명이 한 명의 아이를 공주ㆍ왕자처럼 챙기는 ‘에잇 포켓(8명의 주머니)’ 현상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주변 지인까지 더해 ‘텐 포켓(10명의 주머니)’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아이 1명에게 10명의 가족 및 친지가 지갑을 열고 있으니 그 후광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일반 서민 가정 부모들에겐 큰 부담이다. 한 자녀 가정의 ‘자식·손주 사랑’ 영향인지, 일부 계층의 ‘과시욕’ 탓인지 한창 예민할 시기의 아이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동용품이 품질에 비해 거품이 많고 턱없이 비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가 친구들과 비교돼 기죽을까봐 무리하는 부모들도 많다. 그런 심리를 과도하게 이용하는 제조ㆍ유통업체들의 상술도 문제다.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고 등골이 휘는데 출산율이 크게 오르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지공족

은퇴한 노인들은 딱히 할 일이 없다. 하루가 길고 무료하다. 특별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니 더 그렇다. 하루를 또 어찌 보낼까 궁리하다 종종 지하철을 탄다. 서울쪽으로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도 가고, 아래로는 온양온천에도 간다. 만 65세 이상은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으니 교통비 부담은 없다. 이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들을 ‘지공족(族)’이라 부른다. 장애인·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은 노인이다. 지난해 전국 지하철 승객 24억2천만명(중복 집계) 가운데 4억1천만명(17.0%)은 무료로 개찰구를 통과했다. 지공족때문에 지하철 운영기관은 매년 수천억원의 무임 수송 손실을 짊어져 울상이다. 서울메트로의 경우 2011년 1천437억원이던 무임 수송 손실이 2015년 1천894억원으로 31.8% 증가했다. 전국 지하철의 손실액은 2015년 기준 4천939억원으로, 당기순손실 중 61.2%가 무임 수송 탓에 발생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등 전국의 지하철 운영사 16개 기관이 “무임승차 비용을 중앙정부가 보전하라”며 헌법소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코레일에만 무임 수송 비용의 70%를 지원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주장이다. 이들 기관은 최근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국가보훈처 등에 관련법 개정안 통과와 재정 지원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지하철 운영기관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만 65세 이상의 노인 등이 도시철도(지하철)를 무료로 타는 것은 노인복지법에 따른 국가의 보편적 복지정책이니, 원인 제공자인 정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코레일은 수도권 지하철 1·3·4호선의 일부 구간(서울 외곽지역 노선)을 담당하는데 무임 수송 비용의 약 70%를 정부로부터 받고 있다. 국가공기업(코레일)은 지원하고 지방공기업(각 지하철 운영사)은 하지 않는다면 명백한 차별이다. 지하철 손실의 대안으로 지공족을 만 70세로 상향하든지, 현재 100% 면제를 50% 면제로 조정하자는 말도 나온다. 반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어 소일거리로 지하철을 타는데 이를 제한하면 운동 부족과 외로움 등으로 병원치레가 잦아져 더 손해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는 무임수송에 따른 손실을 도시철도와 지자체에만 떠넘겨선 안된다. 노인들이 지공족 때문에 지하철 적자폭이 늘어 골칫거리라는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정부가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복수초(福壽草)

봄의 최전선에는 항상 복수초(福壽草)가 있다. 복(福)과 장수(長壽)를, 부유와 행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이른 봄 눈과 얼음 사이를 뚫고 또 새해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복수초다. 생각만 해도 봄의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복수초에는 슬프면서 아름다운 일본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오랜 옛날 일본 안개의 성에 아름다운 여신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여신을 토룡의 신에게 시집 보내려 했다. 하지만 여신은 토룡의 신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결혼식 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아버지는 사방으로 찾아 헤매다가 며칠 만에 여신을 발견했다. 화가 난 나머지 여신을 한 포기 풀로 만들어 버렸다. 이듬해 이 풀에서는 여신처럼 아름답고 가녀린 노란 꽃이 피어났다. 바로 복수초에 얽힌 이야기다. 복수초와 함께 봄기운이 방긋방긋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가슴 속 복수초는 아직도 요원하다. 혼란스런 정치에다 삶을 옥죄고 있는 경제난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닥까지 가라앉은 소비와 투자가 문제다. 기업들은 벌어들인 돈을 풀지 않고 금고에 쌓아두는 듯하다. 과감한 투자가 없기에 생산도 고용도 뒤따르지 않고 있다. 고용이 증가하면 투자와 기업들의 매출 또한 덩달아 늘어난다. 이는 곧 소비로 연결돼 경제 선순환을 이끌어 간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장보기가 겁이 난다. 생필품 값은 물론 공공재도 일제히 오르고 있다. 경제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1월 소비자심리지수는(CCSI) 전월 대비 0.8%포인트 하락한 93.3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내수시장 위축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봄은 저 멀리서 손짓하는데 마음은 한겨울이다. 그래도 봄은 찾아온다. 빠르고 늦음의 차이일 게다. 빗장을 풀어가는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봄기운이 돌고 새싹이 싹튼다’는 우수(18일)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따뜻한 남쪽 제주도와 내장산 일대에 복수초가 활짝 폈다는 소식이다. 반가운 손님 복수초처럼, 얼어붙은 우리 가슴도 녹아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반갑지 않은 목화의 귀환

졸업식장에 난데없는 목화 열풍이 불고 있다. 그동안 졸업식의 대표 꽃은 안개나 프리지어, 튤립, 장미였다. 그런데 올핸 물량이 달려 대량으로 준비하진 못해도 목화 꽃다발이 다 팔리고 나서야 다른 꽃다발이 팔릴 정도란다. 평소 목화 꽃송이 10개가 달린 나뭇가지 1개에 2만 원 하던 것이 최근엔 두 배 가격에 팔리고 있단다. ▶얼마 전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도깨비’는 최근 대선 주자들마저도 SNS에 패러디 사진을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어려서 엄마를 잃고 이모네 가족에게 구박을 받으며 자란 여주인공 지은탁(김고은 분)은 고교 졸업식장에도 찾아올 가족이 없다. 그때 삼신할미(이엘 분)가 나타나 따스하게 안아주고서 전해준 꽃다발이 목화다.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드라마의 흥행과 졸업시즌이 맞물리면서 졸업의 꽃으로 급부상했다.▶목화는 봄에 씨를 뿌리면 8월 초부터 꽃망울을 터뜨린다. 꽃은 순백으로 피어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분홍으로 변하고 짙어져 붉은색에 가깝다. 여름이 다 갈 무렵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는데 이를 ‘다래’라고 부른다. 열매가 익으면 겉껍질이 터지면서 속살을 드러낸다. 목화 솜이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목화 꽃다발이 아니라 목화 솜다발이라 부르는 게 맞다.▶목화는 70년대까지만 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오죽하면 남성 듀엣 ‘하사와 병장’이 1976년에 발표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 ‘목화밭’에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곳도, 사랑을 나눈 곳도, 헤어진 곳도 목화밭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재배가 까다로운 데다 씨를 뿌리고 솜을 거둘 때까지 일일이 손을 거쳐야만 한다. 미국 남부에선 노동력 부족에 대거 투입됐던 흑인 노예들이 남북전쟁의 단초가 됐다.▶고려 때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이 씨앗을 붓두껍에 숨겨 들여와 전파된 걸로 알려진 목화는 의생활과 주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된거다. 하지만, 수입 목화와 화학솜에 자리를 내주면서 국내선 거의 재배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목화 꽃다발 열풍이 위기에 처한 화훼 농가엔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나마 대목인 졸업 시즌마저도 수입산 목화에 치이면서 이래저래 걱정만 더하고 있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경기지사 팔이

경기도 공직자들이 말하는 역대 지사들의 스타일이 있다. ‘임사빈은 정이 많았던 도지사다’ ‘임창렬은 일을 많이 했던 도지사다’ ‘김문수는 부지런했던 도지사다’…. 모두가 동의하는 정의(定義)는 아니다. 다수가 내리는 중론(衆論)일 뿐이다. 그래도 이런 평들이 모여 도백의 야사(野史)를 이룬다. 이인제 전 지사에 내려지는 중론도 있다. ‘가장 일하기 편했던 지사’다. 서류 대신 얼굴을 보며 결제했다는 일화가 많다. 서류 검토를 대신한 “잘 한 거지?”라는 덕담을 전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그가 남긴 또 다른 기록이 있다. 경기도지사를 처음으로 소권(小權)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YS(김영삼 대통령)의 ‘깜짝 놀랄 40대 후보’ 발언이 단초였다. 경기도지사 관사는 대선 후보의 캠프였다. 모든 일정은 도지사 아닌 대권 후보의 것으로 채워졌다. 결국, 임기를 중단하고 대선판으로 갔다. 경기도민에겐 느닷없이 닥친 도백 없는 도정이었다. ‘가장 일하기 편했던 이인제 시절’에는 그렇게 ‘가장 정치로 뒤흔들렸던 이인제 시절’이란 이면이 있다. ▶그 후 정치인 이인제가 만들어온 이력은 화려하다. 네번의 국회의원을 했다. 집권당의 최고위원도 했다.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마다 자타칭 후보로 거론됐다. 그 중 두 번은 본선까지 갔다. 그에겐 이제 ‘전 국회의원’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전 대선 후보’라는 중량감 있는 이력이 붙어 있다. 이번에도 출마했다. 어제(13일), TV 토론회에 나왔다. MBC ‘대선 후보를 검증한다’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에 따라붙은 대표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틀림없이 그가 방송사에 요구해서 선택됐을 대표 이력이다. ‘이인제-전 경기도지사’. ▶강산이 두 번 변했을 20년 전의 경기지사다. 막 투표권을 얻은 20대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도지사다. 그렇게 오래된 과거의 직함을 그가 들고 나왔다. 국회의원, 최고위원, 대선 후보 등 화려한 이력을 제쳐 두고 선택한 이력이다. 민선 중 가장 오래전 지사, 임기를 가장 빨리 그만둔 도지사, 도정에 가장 관심 없던 도지사가 20년 만에 꺼내 든 ‘전 경기도지사’라는 이력이다. 많은 이들이 어색하다고 말한다. ▶지금 대선은 전직 경기도지사들 판이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 손학규 전 경기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그리고 남경필 현 경기지사가 후보다. 출신별 점유율에선 타 업종을 압도한다. 아마도 그도 이런 흐름을 따른 듯 보인다. 욕 듣는 새누리당 최고위원보다 1,300만 인구를 가진 경기도 경력이 무난하다고 본 모양이다. 누가 뭐랄 수 없는 그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런 대선판을 보는 도민 마음이 편치 않다. 지지율 1~2%마다 따라붙은 ‘전 경기지사’를 보는 도민 마음이 편치 않다. 신물을 내는 도민이 많다. ‘제발 경기지사 팔이 좀 그만하라’는 도민도 많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저커버그의 기부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그룹인 페이스북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부부가 바이오분야에 5천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저커버그와 부인 프리실라 챈은 지난해 9월 질병의 치료·예방·통제를 위해 6억달러를 투자해 ‘챈 저커버그 바이오허브’라는 비영리 의료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에서는 인체 주요 기관을 움직이는 세포 지도 ‘셀 아틀라스’를 제작하고, 에이즈·지카·에볼라·알츠하이머 등 난치병에 대해 연구한다. 연구소 측은 지난 8일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버클리),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립대(UCSF), 스탠퍼드대 등의 연구자 47명에게 향후 5년간 연구주제나 분야, 성과를 요구하지 않고 총 5천만달러(약 573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컴퓨터과학, 생화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은 1인당 최대 150만달러(약 17억원)를 지원받으면서 조건 없이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질병 퇴치를 위한 연구에 엄청난 금액을 지원하면서 연구자들이 마음껏 창의성과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떤 제한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커버그는 “실패해도 좋다. 가장 위험하고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연구하라”고 말했다. 돈을 주는 대신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연구자를 통제하는 통상적인 후원 방식과 달라, “저커버그는 창의적 기업인답게 기부 방식도 창의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저커버그 부부는 2015년 12월 딸 맥스가 태어난 것을 계기로 450억달러(약 52조원)에 해당하는 페이스북 지분 99%를 살아있을 때 기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약속의 이행을 위해 지난해 9월 인류의 모든 질병을 금세기 말까지 치료ㆍ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10년간 30억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번에 5천만달러를 지원하게 된 것이다. 저커버그의 과감한 기부와 그 방식이 부럽다. 인류를 위해 통 큰 기부를 하는 CEO,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맘껏 연구에 몰두하라는 열린 사고가 그렇다. 우리나라였다면 주제, 기간, 연구방식 등을 까다롭게 정해 연구자를 공모한 뒤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일정기간 내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중단하거나 연구비 환수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현실이 이러니 연구 성과에는 관심이 없고 정부 지원금을 적당히 나눠먹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저커버그의 기부가 국내의 열악한 기초과학 연구 환경과 극명히 대조돼 더욱 부럽게 다가온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고졸만세운동

올해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은 사상 최악의 ‘취업 빙하기’를 겪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3년간 4년제 대학 졸업생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취업 시장에 쏟아져 나오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등 여파로 대졸 공채 규모를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직 행렬은 갈수록 길어지는데 취업 시장의 문은 더 좁아져 ‘고용 절벽’이 계속되고 있다. 4년제 대학 졸업생을 포함한 청년(15~29세) 실업률이 올해 10%를 돌파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청년 실업의 여러 원인 중 하나는 ‘학력 과잉’이다. 대학졸업자는 넘쳐 흐르는데 이들이 갈만한 마땅한 일자리는 없다. 그러다보니 9급 공무원시험 합격자 대부분이 대학졸업자다. 편의점이나 커피숍 알바생도 거의 대졸자다. 대학졸업자가 다시 기술을 배워 기능직에 종사하기도 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할 수 있는 일을 대학졸업생이 하게 되면서 우리사회의 성장능력이 약화됐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70%가 넘는다.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높은 대학진학률과 부실한 대학 교육은 여러 면에서 한국경제를 어렵게 한다.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 부담에 비싼 등록금 등으로 가계 허리가 휘고 빚도 얻지만 졸업을 해도 취업을 못하니 국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너도 나도 대학에 가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적기 때문이다. 고졸자는 취업을 해도 보수와 차별대우 등으로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생활도 어렵다. 때문에 배우겠다는 욕망보다는 간판이 필요해 대학에 간다. 청년 실업, 저출산, 노인 빈곤 등 각종 사회문제의 시작이 ‘대학은 나와야지’하는 인식 때문에 생긴 학력 과잉투자에서 비롯됐다. 직업을 갖는 시기를 고교 졸업 뒤로 당기면 사교육 등 대입경쟁 비용이 사라지고 젊은이들의 결혼이나 출산이 빨라진다. 노후자금을 자녀 뒷바라지에 쓰는 문화가 줄면서 청년ㆍ장년ㆍ노년 전 세대에 이르는 사회적 고통도 줄게 된다. 다른 나라들처럼 고졸만으로도 직업을 갖고 사는데 문제가 없도록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때마침 높은 대학진학률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교육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고졸 만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세상 만들기’ 운동이다. 대선주자들은 허황된 일자리 숫자 경쟁만 할게 아니라 ‘고졸 만세’를 위해 사회시스템을 바꾸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관권선거(官權選擧)

관권선거는 관의 권한으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이다. 즉 정부기관 또는 종사자(공직자)가 선거에 개입해 여당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선거를 관권선거라 한다. 관권선거가 비난받는 이유는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정부기관이 민생에 신경 쓰지 않고 선거에만 매달리는 것은 도의상 옳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남경필 경기지사는 자신의 대선 캠프를 ‘경기도 서울사무소’ 옆에 마련했다. 캠프가 차려진 직후 기자들 사이에서는 캠프를 서울사무소 옆에 차린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정무직 도 공무원과 도 산하 공공기관 낙하산 임직원들이 캠프를 드나든다는 소문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소문이 도는 것일까. 본보 경기도 출입기자는 금요일 오전 캠프를 방문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직 공무원이 캠프에서 일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최측근 고위직 공무원은 캠프 복도에서 기자를 만나 본보 지난 6일자 기사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캠프 한 관계자는 “아파트의 옆집처럼 캠프와 서울사무소는 전혀 다른 집이다”라고 해명했다. 전혀 다른 집이긴 하지만 캠프와 서울사무소 직원들은 마치 아파트의 친한 이웃집처럼 자유롭게 사무실을 드나들고, 물건도 나눠쓰고, 음식도 나눠 먹고 그렇게 지냈나 보다.남경필 지사는 대권에 도전하면서 “현실정치에서 합리적 중도세력으로 낡은 ‘올드’를 밀어내고 미래를 위한 ‘뉴’를 건설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받들어 더욱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1950년대 선거는 막걸리와 고무신선거, 관권선거, 정치 테러가 자행됐다. 1960년대 선거는 대구에서 이기붕 부통령이 투표자보다 더 많은 표를 얻는 등 정부의 조직적 개표조작이 이뤄졌다.1970년대 선거는 반상회 선거로 대표된다. 관권선거와 금권선거에 지역감정이 보태진다. 2000년 이전 관권, 금권선거, 지역감정은 선거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지역 언론인으로서 남경필 경기지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유력 정치인으로, 지도자로 성장하길 간절히 바란다. ‘뉴’를 건설하겠다는 남 지사의 ‘대선 캠프’가 서울사무소의 이웃으로 여전히 남아 있을지 눈여겨볼 것이다. 최원재 정치부 차장

[지지대] 인재(人災) 공화국

‘이번에도 인재(人災)다.’ 지난 4일 오전 경기남부지역 최대 신도시인 동탄의 랜드마크 메타폴리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4명의 소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고, 47명이 부상을 당했다. 상가동 3층 철거 작업이 진행되던 뽀로로파크에서의 최초 발화 시간은 오전 10시 58분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이에 앞서 관리업체는 지난 1일 철거공사 중 오작동을 우려해 불이 난 상가 B동의 스프링클러와 경보기, 배기팬 등 소방시설 작동을 정지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 사고를 스스로 자처한 셈이다. 결국 관리업체 직원들이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를 켜는 데만 최소 7분이 소요됐다는 얘기마저 나오면서 이번 화재는 예고된 인재(人災)임이 명백해지고 있다. ▶2014년 4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식의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 대한민국은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사고로 몸살을 앓았음에도 정부가 그토록 떠들어댄 예방대책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게 주먹구구식으로,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모든 사고의 발단은 결국 인재(人災)로 확인되는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불과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4년 10월 17일 오후. 다시는 상기하고 싶지 않은 인재(人災)로 인한 대형 참극이 또다시 벌어지고 말았다.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장에서 축하공연을 관람하던 시민 16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 이는 환풍구 덮개가 꺼지면서 관람하던 시민들이 추락해 벌어진 참사였다. 충분히 사전 예방이 가능했던 일이다. ▶세월호 선장이 제 역할을 하고, ‘탈출명령’만 내렸더라면, 공연 주최 측 관계자가 “위험하니 내려오라”고 강권했더라면, 관리업체 직원들이 소방시설만 제대로 작동시켰더라면, 소중한 생명들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늦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빠른 시기’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은 인재(人災)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국가는 국가의 책무를, 국민 개개인은 모두가 소임을 다해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김규태 사회부 차장

[지지대] 할아버지 복서

조지 포먼에겐 ‘할아버지 복서’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온 지 10년 만에 복귀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지만 그 용도가 남달랐다. 자신의 ‘조지 포먼 청소년 센터’의 운영비를 위해서였다. 그는 진지했고 최선을 다했다. 1994년, 드디어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마이클 무어의 얼굴에 강력한 펀치를 적중시켰다. 예나 지금이나 복싱계는 20대 혈기 왕성한 살인 주먹들의 세계다. 그 속에서 45세 포먼은 챔피언에 올랐다. ▶사실, 그의 복귀 후 경기는 하나같이 감동이었다. 전에 봤던 살기 어린 표정은 없었다. 한없이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의 그것이었다. 충격에 휘청거리는 상대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세계인을 향한 설교였다. 특히 중ㆍ장년과 고통받는 이들에게 주는 희망이 컸다. “패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패배는 인생에서 단 하루 벌어진 일일뿐이다.” “인생이란 링에서 선수로 뛰는 한 고통은 불가피하며 목표를 위해서 이 고통의 벽을 넘어야 한다.” ▶최용수(45)는 한국인 복서다. 현역 시절 그는 신세대 복서라 불렸다. 치렁치렁한 운동복을 입었고, 머리카락은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1995년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우고 파스’를 KO로 눕히고 세계 챔피언이 됐다. 이후 7차례나 방어전에 성공했다. 기울어가던 한국 복싱을 떠받쳤다. 그가 은퇴한 것은 1999년이다. 1998년 일본 ‘미타니 야마토’에게 타이틀을 잃었고 이듬해 링을 떠났다. 그가 43살 되던 2014년 복귀했다. ▶엊그제(5일) 그의 복귀 2차전이 열렸다. 필리핀의 ‘넬슨 티남파이’(24)와의 대결이었다. 21살이나 젊은 상대를 그는 밀어붙였다. 3라운드에서 다운을 빼앗는 등 일방적으로 앞섰다. 심판이 10라운드에 경기를 중단시키고 최용수의 TKO 승을 선언했다. 지난해 4월 일본 선수와 첫 복귀전 이후 2연속 TKO 승이다. 많은 팬들이 ‘45세 할아버지 복서’의 이날 경기를 TV로 지켜봤다. ▶팬들이 그의 입을 쳐다봤다. 그런 팬들에게 그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소감을 전했다. ‘압도적인 경기였다’는 칭찬에 “압도적이었으면 초반에 끝났겠죠”라며 겸손해했다. ‘40대 선수라고 믿기지 않는다’는 격려에 “나도 힘듭니다. 1라운드를 뛰든 12라운드를 뛰든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라고 솔직히 말했다. “이벤트 하려고 복귀한 게 아닙니다. 2년 안에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겠습니다”고도 했다. 희망에 끝자락에 선 많은 대한민국 중ㆍ장년들. 이들에겐 ‘45세 복서’ 최용수의 존재 자체가 위로일지 모른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새누리 당명 개정

당명(黨名)은 정당의 철학과 이념을 담은 간판이다. 그러므로 당명을 정할때는 당의 정체성과 지지자들을 고려한다. 당명 개정이 사실상 해당 정당의 해체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100년 넘게 양당제를 유지해온 미국의 경우 ‘공화당=보수, 민주당=진보’ 이미지가 정착돼 있다. 이 때문에 미 공화당은 자당 소속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라는 미 정치사상 최악의 스캔들에 휘말렸지만 당명을 바꾸지 않았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남북전쟁에서 남부를 대변했던 민주당측이 전쟁에서 패했지만 당명을 유지했다. 반면 우리나라 정치에서 정당명은 수시로 변했다. 당명의 평균 수명이 고작 2.6년이다. 가장 길게 유지된 당명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창당한 민주공화당(1963~1980년)으로 17년 동안 불렸다. 이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만들어진 한나라당(1997~2012년)이 가장 오래 이름을 이어갔지만 14년에 불과했다. 이처럼 정당명이 자주 바뀌는 이유는 정치철학이나 이념이 아니라 인물 위주로 정치 지형이 재편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정당명은 대선을 전후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1997년 ‘국민승리 21’, 2002년 ‘국민통합21’,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등은 대선 직전 만들어졌다가 몇 달도 안돼 사라졌다. 새누리당이 5년 만에 당명을 바꾸기로 했다. 비상대책위에서 당명 후보로 ‘보수의 힘’ ‘국민제일당’ ‘행복한국당’ 등 3가지로 최종 압축했다. 이중 ‘보수의 힘’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종 단일안은 조만간 전국위원회에서 확정된다. 새누리당은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이래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의 이름을 거쳤다. 새누리당이란 당명은 박근혜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이던 2012년 2월 13일 당 전국위원회에서 결정됐다.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는 것은 국정농단 사태의 사실상 공범인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지고 전면 쇄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당명 개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죽은 시신에 화장한다고 다시 살아날 리 없다”면서 “새누리의 당명 개정은 최순실의 개명과 뭐가 다른가”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당명을 자주 바꾸기보다 올바른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이고 실천이다. 간판만 바꿔 다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인권영향평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을 추진할 때 그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ㆍ평가해 환경보전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환경영향평가제’다. 우리나라에선 1977년 환경보전법을 제정ㆍ공포하면서 환경영향평가제가 도입됐다. ‘인권영향평가제’는 인권도 환경처럼, 국가나 지자체가 주요 법령과 정책을 마련할 때 인권에 끼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제도다. 정책이나 사업 추진시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 인권침해로 인한 사회갈등 및 위험요인을 예방하는 장치다. 인권영향평가제는 우리나라에서 서울 성북구가 유일하게 시행 중이다. 성북구는 2013년 노후한 청사를 새로 지으면서 공공건물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했다. 설계부터 시공·준공·운영에 이르는 전 단계에 인권침해 요소를 없앴다. 흔히 주민센터 1층에 자리한 민원실을 2층으로 옮기는 대신 1층을 카페 등 주민소통 공간으로 꾸몄다. 사회적 약자가 주민센터를 편하게 이용하도록 화장실 동선까지 고려했다. 수원시가 올해부터 행정 전반에 인권영향평가제를 도입키로 했다. 조례와 규칙에만 적용하던 인권영향평가를 정책·사업·공공시설물 등 시의 전반적인 행정에 적용, 시민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 모니터링을 통해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올해 ‘수원 시민의 정부’를 선포한 시의 핵심 추진 과제다. 수원시는 2015년 5월 ‘수원시인권센터’를 개소했다. 그동안 성과도 있었다. 일례로 수원시 4개 구청 세무과에서 발송하는 지방세 체납안내문 겉면에서 ‘체납사실’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안내문 우측 상단에 붉은 글씨로 ‘자동차세 1회 이상 체납차량 현재 번호판 영치 중’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 수원시인권센터는 제3자가 볼 경우 체납자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구청에 제도개선을 요청했고, 구청은 이를 받아들여 8월부터 안내문에 체납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있다. 또 지난해 4월 영통구 쓰레기봉투 실명제 논란 때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는 주민 이름 대신 아파트 동을 표기하는 것으로 바꾸면서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는 동시에 쓰레기 감량 효과까지 얻었다. 수원시는 인권영향평가 도입에 앞서 시인권위원회 산하 인권영향평가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시정연구원에 관련 연구용역도 의뢰했다. 시는 내년부터 인권영향평가 적용 대상을 도로·공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수원시의 인권영향평가제가 성공을 거둬 우리나라 국가 제도로 정착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양파의 진실은?

까도 까도 끝이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의혹이 제기된다. 박영수 특별검사의 활동기간 마감이 2월 말로 임박했지만,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가 특검으로 이어지고 있고 법원의 재판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도 진행 중인 가운데, 그간 드러난 혐의를 우선적으로 살펴보자.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해 11월 최순실에 직권남용, 사기미수, 강요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최씨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앞세워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800억 원가량의 대기업 모금을 강요하고, 개인 회사 더블루케이를 통해 용역ㆍ사업비 명목으로 K스포츠재단에서 7억 원의 기금을 빼가려 한 것을 파악했다. 최씨가 청와대ㆍ정부의 비밀 문건을 받아온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최씨 등과 공범 관계로 판단, 피의자로 정식 입건했다. 이어진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통해 또 다른 최씨의 각종 비위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학사부정 특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씨의 입학 면접부터 ‘금메달 학생을 선발하라’는 윗선의 입김이 작용했고, 수업 출석도 하지 않은 학생을 위해 교수는 성적을 조작했다.최씨 본인 소유의 독일법인을 비롯해 조카 장시호가 실소유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이 삼성그룹으로부터 430억 원대의 금전적 지원을 받은 것도 확인됐다. 박 대통령의 ‘대리 처방ㆍ비선 진료’에 관여한 사실도 파악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최근에는 ‘삼성맨’ 출신이 최순실의 추천으로 미얀마 대사에 임명됐다는 것과 관련해 특검이 수사 중이다. 760억 원 규모의 컨벤션센터를 무상으로 건립하는 ‘미얀마 K타운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뒤 그 이권을 최순실이 챙기기 위한 수순이 아니었냐고 특검은 보고 있다. 김기춘과 우병우는 물론 박대통령 수사 등 아직도 밝혀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도 많은 현실에 직면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알고 싶다. 그 실체적 진실을. 단순히 궁금해서가 아니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이미 벌어진 일인 만큼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동계스포츠의 숨은 공로자

70억 지구촌의 축제인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개최국 대한민국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 등 총 20개의 메달을 수확해 역대 최고인 종합 4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개최국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도가 배어있지만 그만큼 우리나라의 동계 스포츠가 눈부신 성장을 이뤄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한국은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대회 때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후 6·25전쟁 중이던 1952년 대회를 제외하고는 2014년 소치 대회까지 총 17회에 참가해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대회 쇼트트랙에서 김기훈, 이준호가 금메달을 따낸 이후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다. 쇼트트랙이 단골로 금메달을 쏟아낸 가운데 2010년 밴쿠버 대회서는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에서도 금메달을 보태며 세계 5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만큼 동계 종목의 다변화가 이뤄진 것이다.▶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썰매 종목과 스키 등 설상(雪上)종목에 4년 전 소치 대회에서 여자 대표팀이 선전을 펼쳤던 컬링에서도 메달을 기대케 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1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경기력향상지원단’을 출범시키고, 각 분야의 외국인 전문인력을 영입해 지원키로 하는 등 경기력 향상을 위한 총력 지원태세에 들어갔다. 목표대로 이뤄진다면 내년 평창에서 한국 스포츠의 새역사가 쓰이게 된다.▶이 모든 영광 뒤에는 정부와 각 경기단체의 지원,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지도가 어우러져야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 해온 선수 부모들의 숨은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하계 종목보다도 훈련 시설이 열악한 동계 종목의 경우 학부모들은 자식의 훈련과 대회 출전을 위해 겨우내 빙판과 설원을 찾아 뒷바라지하느라 등골이 빠질 지경이다. 이 같은 부모들의 희생이 있기에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동계종목 선수가 모두 1천600여 명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올림픽 4강을 넘보는 힘의 원천인 것이다. 황선학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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