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낮 졸림증

잠은 몸과 마음의 쉼(휴식)이다. 밤에 적당시간 숙면을 취해야 낮동안의 일상생활이 원만하다. 잠이 보약이란 말이 맞다. 하지만 잠이 맘대로 되지 않는 이들이 많다. 낮에 주체할 수 없는 잠이 쏟아져 문제고, 밤에 잠 못 이루는 불면증도 문제다. 병원을 찾는 이들도 있지만, 방치하는 이들도 많다.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이 대형사고로 이어진 사례가 종종 있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양재IC 부근에서 발생한 7중 추돌사고도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이 원인이었다. 사고 전날 16시간을 운전하고 밤 11시30분에 퇴근해 다음날 오전 7시15분부터 다시 버스를 몰았다. 실질적 수면시간이 5시간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버스기사들은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초과근무를 하며, 이로 인한 졸음운전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의 ‘고속도로 졸음운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운전자 중 69.5%가 ‘운전 중 졸음이 온다’고 답했고, 이 중 56.8%는 ‘실제 졸음운전을 경험해 봤다’고 했다. 졸음운전 경험자 5명 중 1명(19%) 꼴로 졸음운전이 실제 교통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나 위험성을 입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화물차와 고속·시외버스 등 대형 차량에서 졸음운전 경험이 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버스 운전기사 10명 중 1명이 ‘낮 졸림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낮 졸림증은 ‘주간 졸림’(daytime hypersomnolence)이라고도 불리는 수면 질환의 일종이다. 낮 졸림증을 앓으면 잠에 취한 것처럼 완전히 깨어 있을 수 없으며, 방향 감각ㆍ운동 조절 기능이 떨어져 사고 위험률이 크게 증가한다. 홍승철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경기도 버스 운전기사 304명을 대상으로 한 낮 졸림증ㆍ불면증ㆍ수면무호흡증에 대한 조사 결과, 낮 졸림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13.2%(40명)로 나타났다.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을 호소하는 운전기사도 40.1%(122명)였다. 이 중 중증도 이상의 불면증 운전기사도 조사 대상자의 10.2%(31명)에 달했다. 불면증을 가진 이들은 낮 졸림증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버스 운전기사 중 68.4%(208명)는 ‘평소 수면의 질이 불량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근무여건 개선이 시급하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아 가는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운수업 종사자의 수면장애 개선을 위한 지원과 제도적 관리를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경기도 광교신청사 착공

현재의 경기도청사가 수원 팔달산 자락에 자리 잡은 건 1967년 6월 23일이다. 경기도에 있던 서울시가 1946년 특별시로 승격하면서 경기도에서 이탈하자 서울 태평로에 있던 경기도청사 위치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역마다 경기도청사 유치를 놓고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인천과 수원이 심했다. 이는 1963년 12월 경기도청사를 수원시로 이전하는 법률 통과로 일단락됐다. 경기도청사 수원 유치에는 7선을 지낸 이병희(1926~1997) 국회의원의 역할이 컸다. 수원 유치를 위해 삭발 투쟁을 하고,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무릎 꿇고 청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4년 10월 15일엔 박 대통령 등 3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수원공설운동장터에서 경기도청사 신축 기공식을 가졌다. 도청사가 1967년에 준공됐으니 수원 이전이 올해로 50주년이다. 경기도가 15일 광교신청사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떴다.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광교신도시 신청사 건립부지에서 ‘경기융합타운 및 신청사 기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광교신청사는 2천915억원을 들여 2만6천227㎡ 부지에 연면적 9만9천127㎡ 규모로 지어진다. 2020년 12월 완공 예정이다. 도 본청 건물(22층)과 도의회 건물(12층)로 구성되며, 두 건물은 사람을 상징하는 시옷(ㅅ)자 형태로 배치된다. 소통·혁신·개방의 콘셉트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곳엔 도민전망대, 스마트오피스, 융합형 프로젝트오피스 등도 들어선다. 신청사를 포함한 11만8천200㎡ 규모의 경기융합타운에는 도교육청, 한국은행 경기본부, 경기도시공사, 경기신용보증재단, 경기도대표도서관, 초등학교, 미디어센터, 주상복합건물 등이 입주한다. 신청사 앞에는 대규모 공원도 조성된다. 이날 기공식은 ‘인인화락(人人和樂)’을 주제로 한 축제로 진행됐다. 인인화락은 1796년 수원화성을 축조한 정조대왕의 ‘戶戶富實 人人和樂(집집마다 부자가 되고 사람마다 화합해 행복해지길 바란다)’에서 따온 것으로 여러 기관과 사람들이 서로 화합해 경기도를 행복하게 하는 경기융합타운의 비전이 담겨 있다. 기공식에선 31개 시·군에서 가져온 흙과 물로 기념식수를 하는 ‘합토합수(合土合水)’ 행사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수원은 광교산의 흙과 수원천의 물을, 김포는 문수산의 흙과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조강의 물을 채취해왔다. 남양주는 천마산의 흙과 왕숙천의 물로, 용인은 석성산의 흙과 경안천의 물로 참여했다. 내년은 ‘경기 1000년의 해’다. 광교신청사가 새로운 경기 천년의 중심지가 돼 경기도와 31개 시ㆍ군이 웅혼(雄渾)하길 기원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갈라파고스 증후군

200㎏이 넘는 거북, 몸길이가 1.5m인 도마뱀…. 한 생물학자가 남아메리카 동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섬에 상륙한 뒤 목격한 너무나 다른 형태의 동물들이었다, 그는 이내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1835년의 일이었다. 대륙의 동물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훨씬 시간이 지난 뒤였다. ‘진화론’은 이렇게 착상됐다. 생물학자 이름은 찰스 다윈이었고, 섬 이름은 ‘갈라파고스’였다. 수온은 15℃ 정도로 낮고, 적도에 있으면서도 산호초가 없다. 해수 온도가 낮아 25℃ 이하이고, 야자수도 자라지 않는다. 화산암질로 이뤄져 민물도 충분하지 않다. ‘갈라파고스’의 척박한 환경이다. 이 섬의 정식 명칭은 ‘콜론’이다. 터줏대감은 덩치 큰 거북들이다. 스페인어로 거북을 ‘갈라파고스’라고 부른다. 이 섬의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후 생물 생태계는 이처럼 특이한 진화 현상을 갈라파고스에 빗대곤 했다. 갈라파고스는 경제 생태계에도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일본은 글로벌 전자업계를 이끌었다. 그랬던 일본의 전자산업은 지금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스마트폰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도 한참 뒤지고 있다. 까닭은 무엇일까. 기술이나 서비스 등을 국제 표준에 맞추지 못하고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하면서 결국 세계시장에서 고립됐기 때문이다. 경제 생태계에선 이 같은 현상을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정치 생태계에서도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때부터 이미 예측 불허의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정치 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라는 얘기다. 아니, 벌써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야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한ㆍ미ㆍ일 대북 공동선언에 박수를 보냈다. 안철수 전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제보 조작과 관련,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바야흐로 국민이 정치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도 한순간에 곤두박질할 수도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처럼 어느 날 한 마리 곤충으로 변할 수도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갈치 풍년

“갈치가 돌아왔다.” 언젠가부터 국민 여행지 ‘제주도’를 찾을 때면 으레 피하는 생선 음식이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겉모습도, 맛도 아닌 그 생선은 정말이지 터무니 없는 가격에 제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곤 한다. 그 생선이 바로 갈치다. 일종의 바가지 상술로 뒤덮인 음식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 소위 ‘돈 자랑’하는 음식의 선두주자 쯤이라고 해 둘까. 그런 갈치가 올해 풍년이란다. ▶얼마 전 지인들과 제주도를 찾았다. 바쁜 일과를 벗어나 모처럼 즐기는 여행.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먹거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앞서 모두들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 장시간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주도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갈치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은빛이라고 하기엔 너무 빛바란, 탱글한 속살 대신 푸석한 식감은 점점 우리로부터 갈치를 멀게 했다. 더욱이 4인 기준 한끼라도 먹을 심산이면 십만 원이 훌쩍 넘는 그 가격에 더 이상 갈치 요리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을 깊게 했다. 여기에 제주도민들의 한 마디는 갈치를 찾지 않는 이유에 방점을 찍었다. ‘중국산’ ▶그런 갈치가 20년 만에 대풍이란다. 갈치의 주 조업 시기는 7∼9월. 제주도 연근해의 수온이 예년보다 높고 갈치 먹이자원도 풍부해지면서 갈치 어장이 많이 형성됐단다.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지역 4개 수협의 6월 갈치 어획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6월 갈치 어획량은 621t에서 올해 같은 기간에는 2천951t까지 늘었다. 어민들 사이에서는 ‘20년 만의 풍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어릴적 어머니가 구워주신 통통한 갈치 한 점은 ‘밥도둑’이었다. 풍년으로 옛맛을 느끼게 하는 갈치구이를 도심에서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20년 만의 갈치 풍년처럼 올해 우리 경제도 모처럼 대풍을 이뤄내 온 국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꿈을 꾸며 오늘 저녁 밥상에서 오통통한 갈치 구이 한점을 만나길 기대해 본다. 김규태 사회부 차장

[지지대] 햄버거 포비아

‘햄버거병’이라는 게 있다. 신장이 불순물을 제대로 거르지 못해 체내에 독이 쌓이면서 신장을 단기간에 망가뜨리는 질환이다. 정식 명칭은 ‘용혈성요독증후군(HUSㆍHemolytic Uremic Syndrome)’이다. 주로 덜 익힌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었을 때 발병하는데, 1982년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은 사람들이 집단 감염된 후 ‘햄버거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당시 햄버거 속 덜 익힌 패티(고기)가 원인으로 드러났고, 후속 연구에 의해 그 원인이 ‘O157 대장균’으로 밝혀졌다. HUS는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 환자 중 2~7%에서 발병한다. 성인보다는 주로 영유아에게서 발병 빈도가 높다. 이 병에 걸리면 심한 설사와 구토, 복통 등과 함께 경련, 혼수 등이 일어난다. 아직까지 적절한 예방법 및 치료법은 없으며 신장 기능이 손상된 경우 투석, 수혈 등의 조치가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사망률은 발생 환자의 5~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국내에서 햄버거병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발단은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걸린 4살 아이의 엄마가 지난 5일 “덜 익은 패티 때문”이라며 맥도날드 한국지사를 식품안전법 위반 등으로 고소한 이후다. 그의 딸은 지난해 9월 평택에 있는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고 2∼3시간 뒤 복통을 느꼈다고 한다. 상태가 심각해져 설사에 피가 섞여 나오자 3일 뒤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HUS 진단을 받았다고 피해자 가족 측은 주장했다. 아이가 신장 기능의 90%를 잃고 하루 10시간씩 투석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맥도날드 측은 “발병 원인으로 수입 쇠고기를 언급했지만, 사건 당일 고객이 먹은 제품에 사용된 패티의 원재료는 국산 돈육이고 내장 등이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이런 내용들이 인터넷과 SNS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햄버거 포비아(공포증)’가 확산돼 패스트푸드점마다 고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불안해 아이한테 햄버거를 못먹이겠다’ ‘맥도날드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등의 글도 퍼지고 있다. 햄버거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어른들도 간편식으로 즐겨 먹는다. 햄버거 포비아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보건당국이 직접 나서야 한다. 식중독균 감염 원인부터 인과관계까지 밝혀내야 할게 많다. 사건이 불거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햄버거 업체들에 “패티를 잘 익혀 내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이한 대응이다. 보건당국은 국민 건강을 위해, 불안감 해소를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출산장려금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에 사는 신재섭(49)·이혜은(40) 부부는 지난 5월6일 일곱번째 아기를 낳았다. ‘정답게 나누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딸 이름을 ‘정담’이라 지었다. 지방직 공무원인 신씨는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낳겠다는 생각과 국가적 문제인 출산율 증가에 일조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여덟째도 주시면 기쁘게 맞이하겠다”고 했다. 김선교 양평군수는 5월25일 신씨 집을 방문, 2천만원의 출산장려금 증서를 전달하며 아기의 출생을 축하했다. 지난 3년간 양평군의 다자녀 출생은 넷째아 94명, 다섯째아 18명, 여섯째아 7명, 일곱째아 5명으로 경기도내 다자녀 출산율 1위다. 양평군은 2012년부터 출산장려금을 대폭 상향조정했다. 2017년에는 조례를 개정해 둘째아부터 지원하던 출산장려금을 첫째아부터 지원하도록 확대했다.양평군의 출산장려금은 첫째아 200만원, 둘째아 300만원, 셋째아 500만원, 넷째아 700만원, 다섯째아 1천만원, 여섯째아 이상 2천만원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예방접종, 영양플러스사업지원,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지원, 신생아청각선별검사, 산모 건강회복과 신생아의 성장발달을 돕는 철분제 지원 등 적극적인 출산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지원하는 출산장려금은 시ㆍ군마다 제각각이다. 양평군(200만원)과 연천군(100만원), 김포시(5만원)는 첫째아이만 낳아도 장려금을 준다. 둘째 때는 18개 시ㆍ군이 장려금을 준다. 최저 10만원(여주시ㆍ김포시)부터 500만원(양평군), 300만원(연천군), 200만원(가평군), 100만원(부천시) 등 금액이 다르다. 인구가 많아서일까. 수원시와 고양시, 용인시 등 10개 시ㆍ군은 둘째 출산까진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다. 지원금 차이가 나다보니 출산장려금이 많은 곳으로 주소지를 잠시 옮겨 아이를 낳는 사례도 있다. 전남지역에선 22개 시ㆍ군에서 최근 5년간 출산장려금만 받아 챙긴 뒤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이른바 ‘먹튀 출산’이 1천584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도의회 우승희 의원이 조사한 자료다. 지자체들이 적극 나서 출산을 장려하고, 특히 농촌지역에서 어려운 재정형편에 출산장려금을 더 많이 주는 것은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위기일 정도로 심각한 건 맞다. 하지만 지자체들의 출산장려금으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출산율 증가를 돈으로 해결하기 보다 일자리 창출을 기반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교육환경 개선 등 근본적인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카페의 진화

지난 6월 ‘팝의 전설’ 스팅이 내한공연을 가졌다. 1996년 첫 내한을 시작으로 올해가 다섯번째다. 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스팅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올 때마다 시내를 돌아다녀 문화를 많이 알게 됐다”면서 “시내에 커피전문점이 정말 많아졌다. 한국 사람들은 커피로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팅의 말처럼 한국 사람들은 커피를 많이 먹는다. 카페도 엄청 많다. 농림식품부가 최근 내놓은 커피류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명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377잔에 달한다. 하루에 1잔 이상 커피를 즐기는 셈이다. 국내 커피숍 개수는 약 10만개로 전국의 편의점(약 5만4천여개)보다 2배쯤 더 많다. 골목마다 카페요, 고개를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 게 카페다. 카페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사교의 장에서 요즘은 먹고 자고 공부하는 ‘또 하나의 집’으로 바뀌었다. 누굴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 홀로 찾는 경우도 많다. 어떤 커피숍은 1인 고객을 위해 1인 좌석 및 도서관 형태의 분리형 좌석을 설치해놨다. 인공지능(AI)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카페 문화를 분석하기 위해 2014년 1월부터 지난 7일까지 블로그(5억1천84만건), 트위터(94억3천762만건) 내 카페 관련 게시글을 살펴봤다. 카페에 머무는 시간대 파악을 위해 시간별 카페 언급량(버즈량)을 분석한 결과 저녁(71만5천516건)이 가장 많았고 아침(57만7천188건), 점심(49만2천657건)이 뒤를 이었다. 월별로는 더위를 피할 수 있어서인지 7월(85만3천474건), 8월(84만9천341건), 6월(82만1천520건) 순으로 나타났다. 카페에서 많이 즐기는 활동은 타인과의 대화가 아닌 ‘쉼’과 ‘공부’였다. 직장인 사이에선 쪽잠을 잘 수 있는 ‘수면카페’가 인기였다. 수면카페 언급량은 2011년 22건이었으나 지난해 4천403건까지 늘어났다. 조용한 곳보다 적당한 소음이 있는 트인 공간에서 공부나 일을 하면 집중이 더 잘 된다는 인식 속에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코피스족’(카페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카공족과 코피스족 언급량은 2014년 494건에서 2016년 2천233건으로 약 7배 증가했다. 카페가 많다 보니 차별화를 시도하는 곳들이 많다. 북카페ㆍ갤러리카페는 흔해졌고 만화카페ㆍ네일카페ㆍ고양이카페ㆍ숙뜸카페 등 테마 카페가 다양하게 등장했다. 지자체 등에선 취업준비생을 위한 ‘일자리카페’도 마련했다. 사진 무료촬영부터 일자리 정보와 취업특강, 스터디룸 등을 제공하고 있다. 카페가 어디까지 진화할지 궁금하다.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낭만과 사명

▶꼬맹이 시절 판사가 되기를 꿈꿨다. 드라마 에피소드 같은, 이제는 흐릿한 기억 하나 때문이다. 지지리 궁상떨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난했던 우리 네 식구는 단칸방에 살았다. 전화도 없었다. 일터에 나가신 아빠는 주인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와 통화하곤 했다. 무전유죄. 사달이 났다. 주인집 여자가 남편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 온 시계가 없어졌는데, 그날 집에 들어온 사람은 아빠 전화를 받으러 왔던 우리 엄마뿐이라며 도둑으로 몰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이웃들이 몰려왔고 엄마는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부랴부랴 달려온 아빠의 호통에 주인집 여자는 쓸데없는 짓이라면서 제 집을 뒤졌다. 장롱 속 두 번째 서랍(아버지는 그 장소를 결코 잊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에서 문제의 시계가 나왔다. 그 길로 우리 가족은 또 다른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그때에 가난하고 힘없어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참 낭만적으로 탄생한 장래희망을 이루진 못했지만, 내 안의 낭만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20대에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미담(美談) 전문 기자를 꿈꿨다. 마음이 부자인 아름다운 사람들을 찾고 이를 읽는 독자가 행복해지는, 그런 기사를 쓰고 싶었다. 현실은 달랐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경찰서를 돌며 미담과는 거리가 먼 범죄자들을 만나야 했고, 낮이면 기삿거리를 찾아 나쁘고 잘못된 곳만 찾아다녔다. 낭만이 끼어들 틈 없는 현실, 그곳에서 마주하는 비 낭만적인 사람들. 내가 그렸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삶이었지만 반드시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지적기사를 쓰고 나면, 힘없는 이들에게 희망이 돌아갔다. 낭만은 사명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최근 전국의 뛰어난 인재들이 본보 입사시험을 치렀다. 경쟁률이 25:1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제 곧 서류심사와 논술, 면접까지 치열한 과정을 통과한 ‘후배님’들이 들어온다. 드디어 직장인이 된 그들은 얼마나 많은 꿈을 꾸고 있을까. 그러나 입사 후 생각과 다른 생활에 자진 퇴사를 결정하는 신입 기자를 숱하게 봐왔던 나로선 축하보다는 당부하고 싶다.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나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중) 류설아 문화부차장

[지지대] 용기있는 지도자 신태용

대한축구협회가 위기에 빠진 2018 러시아 월드컵 축구 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신태용(47) 전 20세이하(U-20) 대표팀 감독을 선임했다. 임기는 러시아 월드컵 본선까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인해 경질된 A대표팀 감독 자리는 당초 허정무, 정해성, 김학범 등 화려한 경력과 경험을 갖춘 50~60대의 지도자들이 물망에 올랐었다. 그러나, 축구협회 기술위원들은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적신호가 켜진 대표팀을 이끌 적임자로 40대의 젊은 지도자 신태용을 선택했다. 기술위원들이 신 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소통’이었다.▶화려한 선수생활을 거쳐 30대 후반에 성남 감독을 시작으로, A대표팀 코치와 올림픽대표팀 감독, U-20 대표팀 감독을 거친 신 감독은 ‘형님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수들과 소통하며 자신이 맡은 팀을 모두 무난하게 이끌었다. 신 감독의 ‘소방수’ 출격은 2016 리우 올림픽과 2017 U-20 월드컵 감독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외적으로는 화려한 자리처럼 보이지만 이번 그가 잡은 지휘봉은 ‘독이 든 성배’와도 같은 그 힘의 무게가 엄청나다.▶한국 축구가 아시아 최초로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기까지 그가 치러야 할 아시아 최종예선은 단 두 경기에 불과하다. 그것도 상대가 A조 1위로 일찌감치 본선 진출을 확정한 이란(승점 20)과 2위 한국(13점)을 승점 1차로 맹추격하고 있는 3위 우즈베키스탄이다. 자칫 한 경기라도 삐끗하는 날에는 조 3위로 추락해 본선 직행이 어려워진다. 더욱이 대표팀 전력의 주축인 손흥민과 기성용이 잇따라 부상을 입어 이란전 출전도 불투명하는 등 제반 여건이 최악이다. ▶신태용 감독으로서는 자칫 지도자 생명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큰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그는 이를 감수하고 흔쾌히 감독직을 수락했다. 이제 한국 축구의 운명은 그의 지략과 전술에 달려있다. 스포츠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지도자는 힘들고 외로운 자리다. 상황에 따라 큰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엄청난 중압감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용기 있는 지도자 신태용 감독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그의 능력을 믿는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대화합 소나무

‘이 몸이 죽거가서 무어시 될꼬하니/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야 이셔…’(박팽년). ‘간 밤의 부던 바람에 눈 서리 치던 말가/낙락장송이 다 기우러 가노매라…’(유응부). ‘더우면 곳 픠고 치우면 닙 디거늘/솔아, 너는 얻디 눈서리를 모르난다…’(윤선도). 소나무를 소재로 한 시조들이다. 작가의 청렴결백을 표현하고 있다. 소나무의 이런 상징성은 오늘날까지 통한다. 소나무의 꽃 말이 정절(貞節), 장수(長壽)다.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하고 있었다. 가지가 처져 있어 가마에 닿으려 했다. 세조가 ‘연(輦)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스로 가지가 올라가 길을 내주었다. 세조가 이를 기특히 여겨 정2품의 벼슬을 하사했다. 소나무의 이미지를 ‘충성’으로 설명하는 일화다. 지금도 충북 보은군 상판리에 살아 있다.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소중히 관리된다.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집무실의 배경 사진으로 걸렸다. 개혁과 사정을 모토로 했던 시대정신과 연결 지어졌다. ▶3일 독특한 소나무가 등장했다. 정우규 박사가 울산 생명의숲에서 발견했다. 줄기가 스프링 모양으로 자라는 일명 ‘뱀송’이다. 밑동 둘레 2m, 가슴둘레 1.8m, 키 20m 크기다. 11그루가 서로 붙어 마치 1그루처럼 자라고 있다. 정 박사는 “한 개의 솔방울에서 싹이 난 11그루의 쌍둥이 유묘가 지표면부터 서로 줄기를 감고 자라다가 2m 지점에서 생장점 분열조직이 서로 합쳐져 150~200년 동안 한 몸으로 자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라고 생명의숲 측은 설명했다. 식물학적으로 명명되는 나무의 이름은 ‘11주유 합동체 소나무’다. 그런데 언론은 이와 다른 이름을 붙였다. ‘대화합 소나무’. 출발을 달리하는 객체가 합쳐 하나를 이뤘다는 뜻이다. ‘소통과 화합이 필요한 시대적 사조가 표현된 소나무’라는 주석(註釋)을 붙인 언론도 있다. 200년도 더 됐을 소나무에 갑작스레 부여된 사회ㆍ정치적 의미다. ▶박팽년에게 소나무는 폐위된 단종을 향한 절개(節槪)였다. 그 박팽년을 죽인 세조에게 소나무는 본인을 향한 충성(忠誠)이었다. 바로 그 소나무는 400년 뒤 문민정부에서 개혁(改革)의 상징이 됐다. 소나무에 투영하려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즈음해 발견된 ‘11주유 합동체 소나무’. 사람들은 이번에는 ‘대화합 소나무’라며 소동이다. 아마도 소나무에라도 담고 싶은 ‘화합(和合)’에의 바램일 듯하다. 박팽년이 그랬고, 세조가 그랬고, 문민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김종구 주필

[지지대] 돌아온 문정왕후 어보

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던 ‘문정왕후 어보(御寶)’와 ‘현종 어보’가 65년여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3박 5일간의 미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2일 오후 대통령 전용기편으로 들어왔다. 어보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이다. 외교문서나 행정에 사용했던 임금의 도장인 국새(國璽)와는 구분된다. 문정왕후(1501∼1565)는 조선시대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다.문정왕후 어보는 1547년(명종 2년) 중종비인 문정왕후에게 ‘성렬대왕대비(聖烈大王大妃)’라는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해 제작됐다. 가로·세로 10.1㎝, 높이 7.2㎝ 크기에 거북 손잡이가 달린 금보(金寶)다. 현종 어보는 1651년(효종 2년) 현종이 왕세자로 책봉됐을 때 제작됐다. ‘왕세자지인(王世子之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옥으로 만들어졌다. 두 어보는 1943년까지 종묘에 보관됐다는 기록이 있다. 문정왕후 어보는 6ㆍ25 전쟁 중에 미군이 종묘에서 훔쳐 본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된다. 존재가 알려진 건 한국 고미술 수집가인 미국인 로버트 무어가 소장하던 어보를 2000년 LA카운티 박물관이 사들여 전시하면서였다.이후 어보가 밀반출 됐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고, ‘문화재 제자리찾기’(대표 혜문 스님)를 중심으로 2009년부터 환수 운동이 벌어졌다. 한국 약탈 문화재 목록이 담긴 미 국무부 문서 등을 근거로 전쟁 때 미국 병사가 어보를 훔쳐 간 것인 만큼 원래 주인인 한국에 돌려주는 게 맞다는 논리를 폈다. 2013년 7월 LA카운티 박물관은 어보를 한국에 반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은 도난물이라는 이유로 2013년 9월 압수했다. 로버트 무어가 계속 소장하고 있던 현종 어보도 그때 압수했다. 긴 협상에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두 어보가 드디어 돌아왔다. 고국 품에 안기기까지 혜문 스님과 안민석 국회의원, 김준혁 한신대 교수의 역할이 컸다. 대통령 전용기편에 실려온 어보 보관함이 입국장에 들어서자 문재인 대통령은 허리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돌아온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오는 8월 특별전을 열어 공개할 예정이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과 대한제국이 만든 어보 375점 가운데 40여 점은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분실과 훼손을 겪었고 한국전쟁으로 상당수 외국으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문정왕후 어보를 계기로 해외에 있는 한국문화재 환수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길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호식이 방지법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포함해 600만에 육박한다. 자영업자 수가 많다는 것은 높은 실업률과 조기 퇴직 등 고용환경이 열악함을 말해준다. 문제는 한국은 ‘자영업자의 무덤’이라고 할 만큼 생존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자영업자의 1년 평균 생존율은 62%, 5년 생존율은 27.3%였다. 특히 음식ㆍ숙박업은 1년과 5년 생존율이 각각 59%, 17%에 불과했다. 식당을 열면 5년 후엔 10곳 중 8곳 이상이 문을 닫는다. 그나마 안정적일 것으로 기대하는 프랜차이즈 업종도 어려움이 많다.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와 취업난 속 청년층의 창업이 늘면서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지난해 말 현재 21만9천곳에 이른다. 많은 이들이 최근 화제가 된 것처럼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과 ‘착취’로 고통을 겪고 있다. 본사들이 일방적인 계약 해제, 필수물품 구매 강제, 매장 인테리어 재시공 등 별의별 방법으로 가맹점의 이익을 갉아먹는다. 본사 오너들의 추문이나 일탈로 가맹점주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owner risk)’다. 최근 ‘호식이두마리치킨’의 최호식 전 회장이 20대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건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가맹점이 1천여 곳인데 최 전 회장의 추문이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이어져 매출 급감이란 직격탄을 맞았다.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MP그룹 전 회장도 지난 26일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정 전 회장은 지난해 경비원을 폭행해 미스터피자 불매운동이 벌어져 문을 닫은 가맹점이 속출했었다. 이번엔 ‘치즈 통행세’와 ‘보복 영업’ 등 고약하기 이를데 없는 갖가지 갑질 행태가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미스터피자의 사례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본사의 갑질에 소비자 불매운동까지 이어지면서 가맹점들은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권이 나섰다.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최근 ‘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명 ‘호식이 방지법’으로 불리는 법률안은 프랜차이즈 본사 또는 경영진 개인 잘못으로 가맹점주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이 골자다. 속앓이를 하던 가맹점주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국회가 빠른 시일내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보다 세심한 정책으로 불공정 행위를 차단해야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사에서 “우리 사회 ‘을(乙)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고 했잖은가.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참 스승

지난 2014년 작고한 할리우드의 흥행보증 수표 배우인 로빈 윌리엄스를 떠올리면 꼭 생각나는 영화 한편이 있다. 영화는 미국 최고의 명문고교이자 아이비리그를 가장 많이 보내는 윌튼 아카데미를 무대로 하고 있다. 항상 강한 압박감에 사로잡혀 ‘성공’이라는 결론에 도달해야만 하는 학생들은 세상에 대한 문을 굳게 닫은 채 각기 다른 이유로 공부에 매진하는, 지루한 일상에 빠져 지낸다.이때 이 학교 출신인 괴짜 선생님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이 부임하면서 후배이자 자신의 제자인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을 외치며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전파, 그들의 마음속에 진정한 선생님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다. ▶누구에게나, 학창 시절 생각나는 선생님이 있을 것이다. 기자 역시 지금과 같은 직업을 갖고 사회적 역할을 맡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신 많은 선생님들이 있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감사함과 고마움을 지니고 있지만, 현실에선 잘 표현하지 못하고 살고 있어 죄송할 따름이다. ▶제자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분들이 바로 선생님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 교단에 서 계신 선생님의 권위와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학부모에게 시달리는, 기자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럼에도 제자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계신 수많은 선생님들이 있어, 대한민국의 교육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경기일보는 매년 이러한 선생님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사회적 존경심을 북돋기 위해 사도대상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도 총 8명의 선생님과 교육공무원이 이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잠시나마 휴식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 기자가 동행한다. 그분들과 함께 하는 동안 다시 한번 참 스승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있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직 밝다고,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김규태 사회부 차장

[지지대] 모래톱에 걸린 퇴역함정, 서울시의 모순

서울시가 망원한강공원에 전시 예정인 1천400t급 해군 퇴역함정이 지난 27일 오전 11시30분쯤 경인아라뱃길 아라한강갑문 통과 후 한강합류지점에서 모래톱에 걸려 이틀째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와 한강사업본부 측은 예인을 앞두고 지난주 아라한강갑문 주변에 대한 준설 작업을 수일간 실시했다. 그러나 한강항로의 준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서울함이 모래톱에 걸린 것으로 한강 운항 관련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서울함은 지난 23일 경남 통영에서 예인선과 함께 출발했다. 당초 이날 오전 아라뱃길을 통해 한강으로 진입한 뒤 서울 망원 한강공원에 조성 중인 함상공원에 도착 예정이었다. 한강사업본부 측은 높이 28m인 퇴역함정이 경인아라뱃길과 한강 교량을 통과할 수 있도록 배 윗부분의 구조물을 떼어내기도 했다. 한강사업본부 측은 사고 다음 날인 28일 밤까지 서울함과 예인선을 모래톱에서 빼내지 못했다. 그동안 서울시는 아라뱃길~한강의 선박 진입을 불허해 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측은 한강시민위원회의 핑계를 대며 수 년 간 유람선취항 등 정상적인 선박출입을 불허해 왔다. 인천의 한 유람선 회사는 아라뱃길~한강 유람선항로에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도 배 한 번 제대로 띄우지 못했다. 그러던 서울시가 정작 자신들이 필요하자 경인아라뱃길과 한강을 이용해 대형선박을 이동시키려 한 것이다. 큰 모순이 아닌가? 올해 초 한국수자원공사(K-Water)의 한 임원은 아라뱃길~한강뱃길의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 관련부서를 방문했다가 “왜 왔어요?”라며 핀잔을 주어, 망신만 당하고 돌아오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퇴역함정의 경인아라뱃길 통과예정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유선업중앙회 인천지부는 지난 22일 인천 서구 경인아라뱃길 입구 쪽 바다에서 유람선 8척을 동원해 해상시위를 벌였다. 서울시가 서해~한강 유람선 사업면허를 반대하면서 인천 앞바다를 통해 퇴역함정을 이송하는 것은 모순된 행정이라는 이유에서다. 굴포천방수로 공사가 확대된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 경인운하는 고려 때 최이가 처음 추진했던 토목공사이기도 하다. 지난주엔 경인아라뱃길에 서해5도수산센터가 개장했다. 경인아라뱃길의 부정ㆍ긍정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토론해 봐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김신호 인천본사 경제부 부국장

[지지대] 양승태 대법원장의 수원고법 功

이런 걸 ‘이제야 밝힌다’고 하나. 2013년 3월 21일 오전. 대법원 기획조정실장 ‘임 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새벽에 보도된 내 칼럼 관련해서다. “김 실장님, 내가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셔서 언론에서 확인 전화가 오고 그럽니다.” 사실 그랬다. 그가 말한 것은 “영통에 기재부 땅 있지요?”였다. 그걸 ‘우리가 영통 기재부 땅을 보고 있다’고 썼다. 엄밀히 말해 ‘임 판사’의 항의는 옳았다. ▶그때 경기고법은 수년째 답보였다. 대법원의 미온적 태도가 특히 벽이었다. 그 해 그 달 13일, 대법원장 초청 방송 토론회가 있었다. 패널로 참가해 의견을 물었지만, 원론적 답변만 들었다. 이어진 오찬장의 옆자리가 ‘임 판사’였다. 여러 얘기 중 그가 한 말이 “영통에 기재부 땅 있지요?”였다. ‘이거다’ 싶었다. 기억에 담아뒀고 그 칼럼을 썼다. 2천 자 칼럼 중 필요한 부분은 그 한 마디였다. ‘대법원이 경기고법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전달하고 싶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임 판사’가 갑자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전화가 없었다. 언론은 ‘칼럼’의 진위를 파악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사실무근’이라는 대법원 답변을 예상하고 있었을 수 있다. 경기고법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가 그때까지는 그랬다. 늦은 오후, 연합뉴스에서 대법원 발 속보가 떴다. ‘대법원이 경기고법 부지로 영통 기재부 땅을 검토하고 있다고 확인했다’는 기사였다. 그날-2013년 3월21일-부터 수원고법 역사는 급물살을 탔다. ▶대법원이 ‘그렇게 말한 적 없다’거나 ‘검토한 사실 없다’고 잡아뗐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영통 땅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격 발표했다. 여기에 양승태 대법원장의 결단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발표의 파괴력을 알면서도 그가 내린 결단이었다. 수원고법 설치의 1등 공신은 많다. 저마다 ‘내가 해냈다’며 공적을 자랑한다. 하지만, 결코 스스로 말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공(功)은 알려지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요즘 위기를 맞고 있다. 법원 행정처 간부들의 사법 권한 남용 논란이 불거졌다. 일부 판사들은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양승태씨’라는 막말을 퍼붓는 익명의 판사도 있다. 남은 임기 3개월이 불투명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래저래 그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경기도민의 숙원이던 수원고법 설치에 더 없이 힘을 보탰던 그다. 그의 ‘수원고법 일화’를 늦기전에 소개해두는 이유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블라인드 채용

올해 하반기부터 공무원과 공공기관 이력서에 학력과 출신지, 신체조건 등을 적는 칸이 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 회의에서 공공부문의 ‘블라인드(blind) 채용’을 지시하면서다. 블라인드 채용은 인사담당자가 지원자의 신원이나 배경 등과 관련된 조항을 모르게 하고 실력이나 인성 등 객관적 평가기준에 따라서만 채용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현재 공무원 시험 응시 원서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자우편, 전화번호, 국적을 적고 사진을 붙이게 돼있다. 공무원 일반 채용에는 2005년부터 원서에 학력란 등을 없앴고, 면접 때 시험관들에게 응시자의 학력·연령·시험 성적 등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도입해왔다. 몇몇 기업들에서도 이력서를 없애고 학력이나 학점·영어점수·사진을 기재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탈스펙 채용 전형인 ‘바이킹 챌린지’를 2013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이는 학력 등 스펙 기재 없이 ‘자기 소개’ 자료만 업로드하면 서류 심사가 끝나는 방식이다. 오디션과 심층면접을 통해서만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롯데그룹도 ‘스펙태클’이라는 블라인드 채용제를 운영하는데 서류 심사는 ‘직무 관련 에세이’로만 평가한다. 샘표도 2012년부터 성별·나이·종교·출신학교·학점·어학점수 등 스펙을 보지 않는 ‘열린 채용’을 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 방식은 실력을 갖추고도 학벌이나 스펙이 달려서 사회 첫 출발부터 공정하게 겨룰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긍정적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구직자 3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4%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선입견을 배제할 수 있어서’ ‘실무에 필요한 역량에 집중할 수 있어서’ ‘학벌 등 불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돼서’ 등을 이유로 꼽았다. 반면 우려 섞인 목소리들도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 모든 취업 준비생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이력서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끼와 재능을 검증할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채용 과정에서 변별력을 키우기 위해 기업이 또 다른 검증장치를 만들어야 하는 등 비효율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오랜 시간 자기 계발에 투자하면서 ‘스펙’을 쌓아온 취업준비생들에겐 또 다른 의미의 역차별일 수도 있다. 블라인드 채용에 맞춘 사교육이나 전문업체가 성행하는 등의 폐해도 벌써 발생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의 확산을 위해선 지원자에 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기준으로 실력을 평가하고 선발할 것이냐 등 현실적인 실행방안이 필요하다. 법으로 강제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지난 4월 서울 숭의초등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들 4명이 한 친구를 담요 아래 밀어 넣어 야구방망이, 나무막대 등으로 집단 구타하고 물비누를 음료수로 속여 마시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연예인 아들, 대기업 총수 손자 등 4명의 아이들에게 맞았다 주장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은 “담요 아래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 “그냥 장난이었다”고 주장했다. 숭의초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의도성과 고의성을 인정할 수 없어 조치할 수 없다”며 징계 대신 ‘사과하고 화해하라’는 뜻의 ‘권고’만 했다. 한마디로 ‘장난’이었다는 얘기다. 피해자 유모 군은 충격으로 근육 세포가 손상되는 횡문근 융해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한동안 등교하지 못했다. 피해 학생 상태는 심각한데,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부터가 ‘폭력’일까. 2012년 학교폭력으로 목숨을 끊은 대구 중학생 권모 군을 폭행한 가해자들도 조사에서 “장난이었다”, “친해서 그랬다”고 했다. 2014년 교육부가 발간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개정판’에선 ‘사소한 괴롭힘’이나 학생들이 ‘장난’이라고 여기는 꼬집기, 때리기, 힘껏 밀치기 등도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숭의초 학폭위가 목격 학생의 증언, 피해 학생의 증언이 모두 ‘학교폭력’ 조항과 일치하는데도 ‘장난’이라는 가해자의 말만 받아들인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학폭위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그동안 학교 폭력 사건을 자체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학폭위가 학부모들간 갈등을 부추긴 사례가 많다. 학폭위 제도는 미성년자의 학교 폭력이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것을 줄이고 학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로 2012년 도입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폭위 처분을 신뢰하지 못해 학부모들이 경찰서로 가거나 재심을 청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학폭위 의결에 불복해 피해·가해 학생이 교육청 등에 재심을 청구한 건수는 2015년 979건에서 작년 1천299건으로 급증했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학폭위 위원은 50% 이상을 학부모로 구성하게 돼있으며 교원 외에 법조인, 경찰, 의료인 등 전문위원을 참여시키도록 했으나 비율이 전체 위원의 15.5%에 불과하다. 선진국에선 학교 폭력에 학교가 주도적으로 나서되 경찰 등 사법기관이 긴밀히 관여해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도 전문위원 비율을 높이는 등 학폭위 제도에 대한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경기農業 에피소드 1

우리는 청소년기부터 ‘주변인’이란 어휘를 배워 왔다. 사회학적 개념으로 주변인은 어느 한 가치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주변성(marginality)이란 개념에서 파생됐다. 이는 팍(R. E. Park)이 처음으로 발전시킨 용어다. 팍은 주변인을 문화적 잡종(cultural hybrid)으로서 현재의 당면문화와 전통 속에 어느 하나에도 통합하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이방인’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즉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마디로 낯선 사람을 뜻한다. 즉 주변인과 이방인은 소속감이 없고, 동떨어져 사회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부류로 정의할 수 있다. 역사서를 들여다보면 ‘변방(邊方)’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흔히 북쪽 소위 오랑캐와 접한 지역을 지칭한다. 관리들이 이곳 변방 근무를 명받았을 때는 곧 좌천을 의미했다. 경기도에서 농업(농업인)이 바로 변방(주변인, 이방인) 아닌가 싶다. 예부터 선조들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농업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표현이다. 지금도 농업은 인류 최후의 생명산업으로 불린다. 모두가 그 소중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농업은 제 산업 중 우선순위에서 항상 후순위로 취급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기도 또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도는 올해 농정예산이 사상 처음 6천억 원을 돌파했다고 설레발을 쳤다. 물론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사업을 다룰 농업 선장이 경기도에는 없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선장 없는 배가 제대로 항해를 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가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이때, 남경필 지사의 현장 행보가 그렇게 반가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일거리를 찾아 청년들은 이미 농업ㆍ농촌을 등진지 오래됐다. 떠난 이들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 늦었지만, 청년들이 농업ㆍ농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여건조성이 절실하다. 농촌의 현안을 공론화하고 해결방안을 찾는 한마당이 필요하다. 미래 청년 농부들이 변방이나 주변인이 아닌 주체로 느끼고 인정받는 그런 날을 경기도가 만들어줘야 한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다 보면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리스 이티카의 강도로 아테나 교외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는 길을 지나는 여행객이나 상인들을 협박하거나 꾀어 자기 집에 머물도록 했다.그리고는 자신이 끌고 온 행인을 자신의 철제 침대에 강제로 눕혔다.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큰 만큼 잘라내 살해했다. 또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도록 키를 늘려 죽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침대가 모든 사람의 키에 적용하는 기준이었다.이러한 악행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아테나의 영웅 테세우스가 그를 만난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그의 집으로 끌고 가 프로크루스테스가 행인들에게 한 행위와 똑같은 방법으로 그를 처치했다. 이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말은 자기 생각에 맞춰 남의 생각을 뜯어고치려는 행위로 여겨지고 있는 말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관철시키려는 횡포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고 있다. 장관 후보자 가운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만이 자진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를 지켜보던 야당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각각의 흠결을 내세우며 날을 세우고 있다. 협치는 깨졌다는 입장이다. 급기야 야당은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파행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을 향해 발목잡기를 멈추라고 맞서고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다른 주장을 내놓는 것은 민주정치에서 당연한 정치행위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국민 다수의 지지 없이 국민들에게 고통만 주는 경우라면, 그것은 횡포다. 여야 모두 자신들만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가지고 있는지 뒤돌아 볼 때다. 이영수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황희(黃喜) 청문회

-(황희는) 김익정(金益精)과 더불어 서로 잇달아 대사헌이 되어서 둘 다 중 설우(雪牛)의 금을 받았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황금(黃金) 대사헌」이라고 하였다-. 형법 제129조 뇌물죄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청문회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 정치권 또는 시민단체가 그를 고발할 것이다. 신분은 후보자에서 피의자로 바뀔 것이다. ▶-박포(朴苞)의 아내가 그 우두머리 종을 죽여 연못 속에 집어넣었는데…정상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도망하여 서울에 들어와 황희의 집 마당 북쪽 토굴 속에 숨어 여러 해 동안 살았는데, 황희가 이때 간통하였다-. 형법 제151조 범인 은닉죄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형법 제299조 준(準)강간죄다. 도망자라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강간이다. 형량도 무거워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황희가 장인 양진(楊震)에게서 노비(奴婢)를 물려받은 것이 단지 3명뿐이었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도 많지 않았는데, 집안에서 부리는 자와 농막(農幕)에 흩어져 사는 자가 많았다-. 5ㆍ16 군부가 만든 부정축재처리법 위반 소지가 많다. 1980년 신군부가 만든 정치풍토쇄신특별조치법에도 걸릴 수 있다. 많은 정치인이 여기에 걸려 재산 몰수ㆍ공민권 박탈 등의 처벌을 받았다. ▶-박용의 아내가 말(馬)을 뇌물로 주고 잔치를 베풀었다는 일은 본래 허언(虛言)이 아니다. 임금이 대신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의금부가 임금의 뜻을 받들어 추국한 것이고, 대원(臺員)들이 거짓 복죄(服罪)한 것이다-. 권력의 비호다. 수사를 맡은 의금부가 권력의 입맛에 따라 죄를 덮었다. 뇌물을 고백한 고발자가 가해자가 됐고, 뇌물을 받은 피고발자가 피해자가 됐다. ▶그런데도 황희는 잘 나갔다. 56년 관직 생활을 하며 24년간 재상에 있었다. 농사, 국방, 외교, 행정, 인권에 걸쳐 많은 업적이 그의 공(功)으로 남았다. 법무부 장관에서 낙마한 안경환 전 후보자가 이런 황희를 언급했었다. 칼럼을 통해 “황희 정승도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며 청문회의 경직성을 지적했다. 이제 보니 자신의 얘기였다. 허위 혼인신고라는 주홍글씨를 덮어보려는 논리였다. ▶하지만, 그가 보지 못한-혹은 일부러 외면한- 기록이 있다. 마치 몰래 적듯이 실록 귀퉁이에 남겨 놓은 사관(史官)의 한 줄 평(評)이다. -그러나 그의 심술(心術)은 바르지 아니하니, 혹시 자기에게 거스리는 자가 있으면 몰래 중상하였다-. ‘청백리가 아니었다’고 분명히 적어놨다. 사실상 ‘부적격’으로 결론난 실록 속 ‘황희 청문회’다. 그런 황희를 예로 든 것부터가 안경환 낙마의 예고였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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