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고(故) 김학순(1924~1997) 할머니는 대한민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증언한 인물이다. 잊고 싶고, 숨기고 싶은 과거였겠지만 김 할머니는 당당히 역사의 증언대에 섰다. 1990년 6월 일본이 ‘일본군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하자 이에 격분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폭로하게 된 것이다. 1991년 8월14일, 김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김학순 할머니는 베이징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했다. 다행히 4개월 만에 빠져나왔고, 그때 탈출을 도왔던 평양 출신 조선인과 결혼해 딸, 아들을 낳았다.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었고, 나중에 아들도 잃었다. 서울 종로구의 판잣집에서 궂은일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던 김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부정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의 파렴치한 행태에 화가 나 ‘위안부 범죄’ 폭로를 결심했다. 그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국내 위안부 생존자들의 피해 증언이 이어졌고, 은폐됐던 위안부 문제가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후 김 할머니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는 항의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하는 등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했고, 1991년 12월 일본 도쿄지방법원에 출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등 국제사회 문제로 확대하는데 여생을 바쳤다. 2012년 12월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는 김 할머니의 최초 증언일인 8월14일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날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수요집회를 한 지 25주년을 맞았고,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72주년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다. 범죄자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법적 책임도 부인하고 있다. 망언과 역사왜곡으로 역사의 진실을 축소, 은폐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실을 요구하며 일본정부의 공식 사죄를 기다리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얼마전 8월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림일’로 지정하고 추모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이슈가 됐는데,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한일관계 냉각을 우려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소극적으로 대응해 온 것이 사실이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물 트라우마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세월호 참사는 정말 되새기고 싶지 않은 상처다. 그 어떤 치료제로도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암묵적인 동의. 가슴 아프지만 공론화된 장(場)에서 꺼내기 어려운 화두가 바로 ‘세월호’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서 힘들어했을 그들을 떠올리면 정말이지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우리 기성세대가 마치 ‘금기어’처럼 세월호를 생각하는 것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함이 아닐까. 그런데 놀랍게도 ‘세월호’와 ‘물’을 한데 엮어 치유라는 이름으로 그들에게 또다시 고통을 안긴 단체가 있다. 바로 안산온마음센터 얘기다. ▶트라우마(trauma)는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나,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하며, 보통 후자의 경우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트라우마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극히 많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장기기억되는데, 트라우마의 예로는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불안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그리고 그 친인척 대다수는 지금도 ‘물(水)’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아직 미수습된 9명의 가족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온마음센터는 어떤 곳인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설립돼 국ㆍ도비 40억원을 받아 유가족 등의 트라우마를 치료 지원하는 곳이다. 그들을 위해 많은 것을 고민하고 많은 일을 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핫썸머 수상레저, 캐리비안 베이 물놀이 캠프 등 물(水)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한 마디로 넋이 나간 기획이라고 생각된다. 물로 고통받은 이들에게 고작 치유 방식이 물이라고? ▶20년 전 군대에서 얻은 트라우마로 기자도, 밤에 꼭 불을 켜고 잠드는 습관이 생겼다.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인 셈이다. 트라우마는 좋은 기억으로 덮을 수 있다고 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이제부터라도 ‘온마음센터’가 그 이름처럼 ‘온마음’을 다해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물(水)’ 트라우마를 지우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어떨까. 김규태 사회부 차장

[지지대] 유정복의 사람들

유정복 인천시장의 잔여 임기가 1년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유 시장 측근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자리를 비우고 있다. 지난 6월과 7월에는 인천시의 핵심 산하기관인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과 인천관광공사의 수장이 각각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인천을 떠났다. 앞서서는 인천도시공사 사장이 돌연 사퇴했으며, 최근에는 인천시의 정책 싱크탱크인 인천발전연구원장과 인천 유나이티드 대표이사까지 자리를 비웠다. 주변에서는 내년 지방선거 준비를 위한 조직 재정비 차원이라는 분석과, 성과 미흡 등에 따른 경질성 인사라는 평가 등이 분분하다. 유 시장 측근 인사의 조기 하차는 최근뿐만 아니라 임기 초부터 반복되고 있다. 유 시장이 정무부시장을 경제부시장으로 직책까지 바꿔가며 재정건전화 적임자로 등장시켰던 기획재정부 제2차관 출신인 배국환 첫 경제부시장은 시정과 재정건전화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채 1년 만에 물러났다. 건설교통부 출신으로 제3연육교 건설 해결사로 등장했던 홍순만 2대 경제부시장 역시 뚜렷한 성과도 없이 취임 7개월여 만에 하차했다. 모두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유 시장이 시정을 위해 영입한 인사 대부분이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일부는 역효과까지 내고 있다. 빅5 인사나 주요 산하 기관장의 비정상적인 교체 때 마다 허비되는 시간과 업무 공백은 시장 임기 4년을 감안하면 엄청난 손실이다. 이 같은 손실은 결국 시민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유 시장 주변에서조차 “유 시장을 가장 도와줘야 할 측근 인사들이 오히려 힘을 빼고 있다”라는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제 유 시장에게는 남아있는 사람들과 빈자리에 채워질 사람들, 11개월간의 잔여 임기가 있다. 남은 기간에 이들만이라도 좋은 인천을 만드는 역할을 해주기 기대한다. 좋은 인천을 위해서는 남은 빈자리에 좋은 사람이 채워지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주변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유 시장 역시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처방을 위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시민 삶의 질 향상과 유 시장의 시정 철학인 ‘시민을 위한 행정’을 위해서라도.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염태영·이재명 戰-Ⅲ

두 번 썼다. 첫 번째는 ‘염태영ㆍ이재명 戰-Ⅰ’이었고, 두 번째는 ‘염태영ㆍ이재명 戰-Ⅱ’였다. 그럴 만했다. 둘은 전국 최대 지자체 장(長)들이다. 나란히 시장 두 번을 연임했다. 행정 스타일은 전혀 달라 더 재미있다. 염 시장이 안정적이라면 이 시장은 공격적이다. ‘염태영ㆍ이재명 戰-Ⅰ’을 쓴 것은 2016년 1월 14일이다. 누리 예산 논란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을 때였다. 염 시장은 ‘시민 불편을 막자’며 시비 159억원을 투입했다. 이 시장은 ‘지방비를 쓸 수 없다’며 정부에 맞섰다. ▶‘염태영ㆍ이재명 戰-Ⅱ’(2016년 3월 9일)에서 이렇게 예고했다. -하지만, 둘은 충돌할 것이다. 2년 또는 그 언저리에서 충돌할 것이다. 입은 다물고 있지만 둘의 눈과 발이 비슷한 곳을 향하고 있어서다. 지금의 정(情)과 여유가 그때도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때 충돌의 내용이 뭐가 될지는 필자는 모른다-. 그 후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2년 뒤 또는 그 언저리’에 왔다. 과연 둘은 충돌하고 있는가. ▶이 시장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물을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도 나가 존재감을 발휘했다. 많은 이들이 차기 서울 시장 또는 경기도지사라고 말하고 있다. 잇따른 방송 출연으로 대중 지지도도 높고, 시장ㆍ군수 회동 불참으로 차별화도 확실하다. 1년 뒤 정치 일정에 대해 입을 다물면서 언론의 궁금증까지 증폭되고 있다. ▶이런 때 이 시장이 기자들과 만났다. 아주 오랜만에 마련된 경기도 언론과의 간담회다. 말 중간에 “(경기도지사를) 대선 주자의 무덤이라는 얘기를 하지만 서울과 경기도는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경기도지사 출마에 무게를 실은 발언으로 풀이됐다. 대화 중에 나온 ‘염태영 시장’ 언급이 있다. 경기도지사 경쟁자를 묻자 ‘남경필 지사’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는 염태영 수원시장, 양기대 광명시장, 김만수 부천시장, 김윤식 시흥시장, 최성 고양시장 등이…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강력한 경쟁자는 남경필 지사, 염태영 시장은 나머지 후보군 중 ‘One of them’에 넣었다. ▶염 시장으로서는 기분 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의 구분이 틀린 것도 아니다. 염 시장은 1년 뒤 행보에 대해 입을 연 적이 없다. ‘연임도전’ ‘도지사 도전’ 등이 회자되지만 따지고 들어가 보면 ‘주변 얘기’다. 이러니 ‘염태영ㆍ이재명 戰-Ⅱ’의 예고를 유보할 수밖에 없다. ‘2년 뒤 언저리에서 둘은 충돌할 것’-모두 도지사 출마의 경우-일지, ‘2년 뒤 언저리에서 둘은 협조할 것’-도지사와 시장 출마로 나뉠 경우-일지 알 수 없다. 한 쪽(이재명)이 ‘경기지사 출마’로 입을 연 듯하니, 다른 쪽(염태영)이 입을 열 때가 온 듯하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코리아 패싱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은 말 그대로 ‘한국 건너뛰기’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이슈인 북한ㆍ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데 한국을 배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한국 무시, 한국 왕따다. 지난 일주일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와 맞물려 국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던 말이 ‘코리아 패싱’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2차 시험 발사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1시간 가까이 통화하며 북한 미사일 발사 대응책을 협의했다.반면 문 대통령은 주변국과 소통을 하지 않았고, 휴가에 들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면서 야당이 들고 나선 게 코리아 패싱이다. 야당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중 빅딜설, 대북 선제타격론, 미북 대화설 등 여러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한국은 북핵 해결 과정에서 별 존재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고 공언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코리아 패싱은 대선 정국 때 여러 차례 등장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임박설, 사드 배치를 둘러싼 대선 후보 간 공방이 커지면서 우리 뜻에 반해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한다는 설이 나돌았다. 코리아 패싱론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한반도 ‘4월 위기설’도 나왔다. 최근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발언으로 코리아 패싱론이 확산됐다. ‘중국이 북한 붕괴에 협조하고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키신저의 아이디어가 단초였다. 논란이 심해지자 마크 내퍼 주한 미대사 대리가 나서 “한ㆍ미 동맹은 튼튼하며 코리아 패싱은 없다”고 했다. 청와대에서도 “한·미 간에 거의 매일 대화가 이뤄진다”며 코리아 패싱론을 일축했다. 우리끼리, 코리아 패싱 운운하며 정치 공세를 펼치는 모습을 미·중·일·러 주변국들은 어떻게 볼까. 코리아 패싱을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지만, 대책을 세워야지 논쟁만 펼칠 일도 아니다.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해방, 남북 분단 등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사를 강대국들이 결정하면서 코리아 패싱을 경험한 바 있다. 작금의 현실을 다시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 수출의 33% 차단 등 강력한 대북 제재를 내놓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는 ‘전략적 중요성이 큰 한국을 미국이 쉽게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란 인식을 접고, 북핵ㆍ북한 문제와 관련 긴밀한 공조를 통해 코리아 패싱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스몸비족(族)

‘스몸비족(smombie族)’이라는 게 있다.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를 합성한 신조어다.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을 넋 빠진 시체 걸음걸이에 빗대어 일컫는 말이다.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매인 세태를 풍자한 것으로 2015년 독일에서 처음 사용됐다. 중국에선 ‘고개를 숙이고 다닌다’고 해서 저두족(低頭族)이라 부른다. 현대인들의 스마트폰 사용은 지나치다. 상당수가 중독자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해 밥을 먹으면서, 지하철에서,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걸으면서, 화장실에서, 잠들기 전 침대에서까지 스마트폰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전 세계가 지금 스몸비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엔 중국 저장성에서 스마트폰을 보 며 귀가하던 주부가 연못을 보지 못해 빠져 익사했고, 독일 바이에른 주에선 휴대전화 게임에 빠져있던 열차 신호제어 담당자가 신호를 잘못 보내는 바람에 열차가 충돌해 11명이 숨 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6월엔 미국 뉴저지주에서 거리를 걷던 흑인 여성이 스마트폰을 하느라 길을 제대로 보지 못해 2m 아래 지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스몸비족 문제는 우리나라도 심각하다. 국내에서 2016년에 발생한 스몸비 관련 교통사고는 1천360건으로 2011년보다 배 이상 늘었다. 지자체 등에선 시민이 많이 오가는 길바닥 또는 횡단보도에 ‘보행 중 스마트폰 주의’ 교통안전표지를 설치하고 있으나 별 효과는 없다. 미국 하와이 호놀롤루시에선 길을 건널 때 스마트폰을 보는 시민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호놀룰루 시의회는 최근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며 걷는 ‘산만한 보행’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스몸비들에게 15달러(약 1만7천원)에서 130달러(약 14만6천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전자기기 보행자 안전법안’을 통과시켰다.다만 보행 중 통화를 하거나 인도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허용된다. 법안은 10월 25일부터 발효된다. 스몸비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호놀롤루시가 처음이다. 주민 권리를 침해하는 지나친 입법이라는 반대 여론도 있지만 시는 ‘안전 우선’을 내세워 강행할 방침이다. 세계 각국은 금지법 입안뿐 아니라 스몸비 관련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영국 런던은 가로등의 기둥을 패딩으로 감싸 스몸비들이 부딪혀도 다치지 않게 했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시는 철길 인근 땅바닥에 신호등을 설치해 아래쪽만 보며 걷는 스몸비들도 신호를 볼 수 있게 했다. 우리도 스몸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ㆍ행정적 조치 강화가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경기農業 에피소드 2

지난번 ‘경기농업에는 수장이 없다’는 말을 했다. 고구려 을파소란 재상으로 한 걸음 더 나가보자.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대국이다. 9대 고국천왕(179~197) 때다. 고국천왕은 키가 9척이나 되고 힘이 대단히 세며,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했다. 삼국사기는 결단력과 관대함, 예리함을 두루 갖춘 리더의 자질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인재를 알아본 왕이었다. 즉위 초 어수선한 국내외 사정을 물리치고 새로운 정치를 하려고 할 때다. 부족들에게 인재 추천을 권유했고 안유를 통해 을파소를 소개받았다. 시골 촌부로 농사일에 전념했던 을파소는 고국천왕을 믿고 국상에 올라 함께 이상을 실현해 갔다. 물론 시기꾼들도 많았지만, 고국천왕은 “귀천을 막론하고 만일 국상을 따르지 않는 자는 친족까지 벌을 줄 것이다”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을파소는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을 막고 인재를 고루 등용했다. 결국, 그가 꿈꿔왔던 진대법을 세상에 내놨다. 봄철 춘궁기에 식량을 백성들에게 빌려주고 대신, 10월 추수 후 되돌려 받는 제도다. 진대법이 실시되자, 온 나라 사람들은 기뻐하고 고국천왕과 을파소를 칭송했다. 진대법은 국력증진의 발판이 됐고 태평성대의 단초가 됐다. 고구려의 수장이었던 고국천왕과 을파소의 이야기다. 되돌아 경기농업 수장에 대해 직설화법으로 가보자. 현재 경기농업을 총괄하고 있는 농정국장은 농업직이 아니다. 일반 행정직 출신이다. 이런 관행은 지난 2년 동안 계속돼 왔다. 그 사이 국장은 4명이나 바뀌었다. 평균 6개월 동안 잠시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농업 정책에 일관성이 있겠는가? 한시적 성과에 급급하면서 거쳐가는 자리였다 해도 이견이 없을 듯하다.수장은 폭넓은 식견과 그 분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 경기농업 예산이 일반회계대비 3%대를 넘어섰다. 다원적 사회속에 날로 증대해지는 농업 위상에 맞춰 시의적절한 대처다. 그러나 이를 이끌고 책임져야 할 수장은 아직도 요원한 듯하다.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욱더 가관이 아닐 수 없다. ‘3급 부이사관 이상 농업직 2자리 원칙’ 때문이란 말도 있다. 인사원칙상, 4급이면 기술직렬이 통합되고 3급 직렬은 구분이 없어지는데도 말이다. 농업직 2명 이상 안 된다는 논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국천왕과 을파소가 아쉬운 대목이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군함도와 스크린 독과점

중앙극장, 대한극장 등 동네 번화가에 있던 향토극장들은 나름 지역의 랜드마크였다. 누구나 한번쯤 중ㆍ고등학교 시절 시험이 끝나면 이들 극장에서 단체관람을 하고, 극장매점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따끈따끈하게 구운 오징어를 사 영화 보는 내내 씹어 먹던 추억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이 달라졌다. 대기업들이 영화산업에 뛰어들면서 최신 시설을 자랑하는 이른바 멀티플렉스 극장이 등장했다.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밀린 향토 극장들은 설자리를 잃었고 결국 문을 닫아야만 했다. ▶최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를 놓고 말들이 많다. 군함도는 개봉 8일만(2일)에 관객 50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최단기간 500만 돌파 기록이라고 한다. 군함도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멀티플렉스 극장도 운영하는 대기업이다. 군함도 개봉시 스크린 수가 2천여 개가 넘었다. 한 영화가 스크린 수 2천개 이상을 기록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논란이 될 만하다. 일부 영화계에서는 영화 개봉시 스크린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80년대 다국적 직배사들이 한국영화 시장에 진출하자 영화인들이 크게 반발한 적이 있다. 당시 직배사가 배급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뱀을 풀어놓는 등 저항은 대단했다. 모두 우리 영화를 지키자는 논리였다. 이렇게 해서 스크린쿼터제가 강화됐는데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한국영화 의무 상영일수는 73일로 완화했다. 스크린쿼터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이제 관객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만을 찾지 않는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고 되레 극장에서 강세를 보인다. 군함도는 한국 영화지만 대기업이 제작과 배급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다. 대기업이 투자ㆍ배급하지 않았다면 그 많은 스크린을 잡을 수 있었을까?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다양성 영화관을 운영하는 등 다양성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지만, 이는 구색 맞추기에 그치고 있다. 500만, 1천만 관객이 본 한국영화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 어두운 그림자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대통령의 휴가와 책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서광으로 유명했다. 개인 서고에 3만여권의 책을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된 뒤 여름휴가 때면 그의 도서 목록이 공개됐다. 2000년 여름휴가 때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해리포터’ 1ㆍ2ㆍ3권을 포함해 10여권을 독파했다고 공개됐다. 그가 재임 기간 중 읽었다고 전해지는 휴가 도서 목록은 매번 출판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정치권에는 휴가 후 정국을 가늠케 하는 잣대로 해석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책 사랑도 대단했다. 여름휴가를 따로 떠나지 않고 관저에서 온종일 책을 읽기도 했다. 취임 첫 여름휴가였던 2003년에는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주 5일 트랜드’ 등이 도서 목록으로 공개됐다. 탄핵 당시 직무 정지 기간에도 ‘칼의 노래’ ‘마거릿 대처’ ‘이제는 지역이다’를 정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정책적 패러다임이나 정치 이상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 다수 포함됐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 때다. 1996년 정무수석실이 대통령이 휴가 중 읽었다며 5권을 추천했다. ‘21세기 예측’ ‘미래의 결단’ ‘동아시아의 전통과 변용’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 등이다. 제목에서부터 정치적 뉘앙스가 물씬 풍긴다. ‘과거 청산’ ‘세계화’ 등을 정책 목표로 했던 문민정부의 색채가 그대로 배어 있다. 추천 도서라기보다 책 제목 자체가 전하는 정치적 메시지였다.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이 화제로 등장하는 역사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1961년 한 잡지에 케네디 대통령의 애독서 10권이 소개됐다. 이게 대박이 됐다. 해당 도서 판매량이 급증하며 출판계를 기쁘게 했다. 이후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 공개는 백악관에도 관행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여름휴가를 떠났다. 청와대는 별도의 도서 목록을 발표하지 않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겐 이 자체가 기사였다. 휴가 도서 목록을 공개하던 관행이 깨졌다고 썼다. ▶글쎄다. 피서지에서 책을 읽고 있는 휴양객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산이나 바다에서 책을 읽고 있다면 어색해 보이는 게 오히려 현실이다. 그런데 대통령에게는 휴가철 독서가 당연한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공개된 책에 의미를 부여해 ‘향후 정국 구상’이라는 상상력을 풀어간다. 여러 가지 실없는 생각을 하게 한다. ‘대통령들이 그 책을 정말 정독했을까?’ ‘비서진이 내용만 요약해 주지는 않았을까?’…. 돌이켜 보면 그다지 부질 있어 보이는 관행은 아닌 듯 하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블라인드 채용의 이면

정부가 공공기관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다. 학력ㆍ지역 등의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기회ㆍ공정한 과정’을 통해 외형보다는 내실있는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취업용 이력서에 학력ㆍ출신지역ㆍ종교ㆍ가족관계ㆍ신체조건ㆍ증명사진 등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했다. 면접에서 인적사항에 대한 질문도 없으며, 직무관련 질문만 받게 된다. 민간기업들도 정부 방침에 따라 블라인드 채용 계획을 세웠다. 롯데는 능력중심 채용을 위해 ‘스펙 태클 오디션’을 한다. 무분별한 스펙 쌓기에 태클을 건다(Spec-tackle)는 의미로 직무수행에 적합한 능력만 평가, 인재를 선발한다. 입사 지원서엔 기본 인적사항만을 기재토록 하고, 해당 직무와 관련된 주제의 에세이나 자기 홍보 동영상만을 받아 서류합격자를 선발한다.신세계는 드림스테이지를 통해 면접을 오디션방식으로 한다. 스펙 중심의 평가방식에서 탈피, 열정과 직무 역량만 평가하는 블라인드 면접이다. CJ그룹도 대졸자 공채에서 서류 전형 과정을 100% 블라인드로 진행한다. CJ는 특히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인드 채용이 ‘뒷배경’을 보지 않고 실력만으로 인재를 채용한다는 면에서 공감을 얻고 있으나 한쪽에선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당장 ‘동네사진관’들이 굶어 죽겠다며 일어났다. 사진관 업주 등이 회원인 한국프로사진협회는 최근 서울에서 총궐기대회를 통해 “이력서 사진 부착 금지 철회를 강력히 주장한다”며 “증명사진으로 생업을 유지하는 사진관은 폐업하게 되고 사진사 수만명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다”고 주장했다.그렇잖아도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동네사진관이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다. 사진관 수는 2007년 3만여 곳에서 10년 만에 8천여 곳으로 줄었다. 반려동물 전용사진관 등 특화로 살길을 모색하는 이도 있지만 극히 일부 얘기다. 이들은 사진관 수입의 70~80%를 차지하는 증명사진 일감이 끊기면 생계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반면 면접의 비중이 커지다보니 성형외과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호감있는 외모를 갖추기 위한 ‘취업 성형’ 때문이다. 이에 성형수술 비용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무리하게 대출을 받는 젊은이들이 많단다. 면접은 인상 좋고 언변 좋은 사람이 유리하다 보니 ‘표정 성형’도 한다. 말과 표정, 손짓, 아이콘택트까지 가르치는 면접학원들이 인기다. 발성 연습과 밝은 표정, 예상 질문 답변 등 마치 배우수업 하듯 한다. 자기소개서 등을 작품처럼 만들어내는 학원들도 있다. 취업은, 이래저래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강제전학법

지난달 21일 대전의 한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남학생 10명이 수업 중인 30대 여교사를 앞에 놓고 자기 자리에서 자위행위를 했다. 충격을 받은 여교사는 이를 학교에 알렸다. 이 학교 교권보호위원회와 선도위원회는 아이들의 집단적ㆍ고의적 음란 행위에 대해 ‘사춘기 학생들의 장난’으로 치부했던 것 같다. 학생들은 ‘특별교육 5일’ 처분을 받고 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난해 4월 20대의 고교 여교사는 남학생 한 명이 수업 중 계속 심하게 떠들자 교실 밖으로 나가게 했다. 잠시 뒤 학생은 창문을 열고 교과서를 던져 교사 얼굴에 피가 나게 했다. 교사가 피를 닦는 사이 학생은 달려와 교사의 머리를 가격했다. 교사는 학생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으나 주변 설득에 취하하고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학생들에 의한 교권침해가 심각하다. 여교사를 상대로 한 성희롱도 도를 넘었다. 수업 시간에 콘돔으로 풍선을 만들고, 칠판에 생리대를 붙이고, 음담패설도 비일비재하다. 초·중·고 교사들이 ‘학생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신고한 건수는 2011년 52건에서 지난해 112건으로 늘었다. 밝히기 부끄러워 숨긴 사례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이제는 초등학교까지 번진,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폭력·폭언·성희롱에 여교사들은 교단에 서기 두렵다고 한다. 문제가 생기면 피해 교사가 전근을 가던가, 교단을 떠나던가 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9~2015년 학생으로부터 교권이 침해당한 사례는 2만9천127건에 이른다. 폭언·욕설이 1만8천346건으로 제일 많고 이어 수업진행 방해 6천224건, 폭행 507건, 성희롱 449건, 기타 3천601건 등이다. 최근 3년간 교권 침해를 당한 피해 교사 중 1천364명이 학교를 옮겼다. 교권 침해를 막기 위한 ‘교권 보호법’이 있다. 하지만 현장 교사들은 “‘사후약방문’식의 법이고, 학생 처벌 수준이 낮아 실효성이 없다”고 한다. ‘학생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며 교사를 탓하거나,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다’는 식으로 덮어버리기도 한다. 지난 2월 교권을 침해한 학생을 전학 보낼 수 있는 내용으로 발의된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법안 처리는 아직 진전되지 않았으나 무너진 교단의 현실을 감안할 때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독일에선 초등학생이라도 교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면 정학·강제전학을 시킨다. 법이 통과될지 모르겠으나, 통과된다면 강제 전학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보완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남경필 지사의 푸쉬업

최근 SNS를 통해 생중계되는 남경필 경기지사의 푸쉬업(push-upㆍ팔굽혀펴기)이 관심을 받고 있다. 남 지사는 지난 10일 오전 7시20분께 페이스북을 통해 푸쉬업 장면을 생중계했다. 이날 남 지사는 “월요일 아침인데요. 장마철이고 해서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10개부터 시작해 매일 10개씩 늘려 300개까지 도전해 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작은 시작인데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하다”며 “간단한 운동이지만 모두 도전해서 건강한 모습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도전을 시작했다. 첫날 30개를 성공했던 남 지사는 푸쉬업을 한지 18일째인 27일 280개에 도전하고 있다. 1일 평균 조회 수는 1천~3천회 정도이며 100개에서 200여개의 ‘좋아요’가 달리고 있다. 매일 아침 집에서 시작했던 푸쉬업이 횟수가 늘어나면서 집무실, 식당, 행사장 등으로 장소도 다양해지고 배경음악과 도정 관련 멘트가 추가되는 등 진화(?)되고 있다. 이같이 남 지사의 푸쉬업이 화제가 되면서 SNS를 통한 생중계 시도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휴가를 앞두고 휴가지에서 몸매를 과시하기 위함이라는 설과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이 공중파 예능방송에 출연하면서 위기감(?)을 느껴 관심을 끌기 위해 시작했다는 설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던 시간과 지난 일요일 경기북부 폭우 피해 속 푸쉬업를 하면서 유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푸쉬업은 자신의 신체를 단련하는 아주 기본적인 근력 운동이다. 남 지사는 도민과의 소통 수단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기본인 푸쉬업을 선택했다.남 지사는 참된 보수의 길을 선택했지만 바른정당의 앞날은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그의 정치적 행보도 순탄치 않다. 그런 그에게 푸쉬업은 정치적 행보의 돌파구일까. 불과 20여일 전에 시작한 운동으로 남 지사의 팔뚝과 가슴이 단단하고 커지고 있다. 단단해 지는 그의 팔뚝 처럼 정치적 내공과 영향력이 더욱 단단해지고 커져 도민의 삶이 나아지는 ‘바른 정치’를 통해 큰 정치인으로 도민 속에 우뚝 서길 기대해본다. 최원재 정치부차장

[지지대] 대한민국을 가슴 뭉클하게 한 사진 한 장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마솥더위와 열대야로 은행창구가 피서지(?)로 주목받고 대형쇼핑몰의 올빼미 쇼핑족이 뉴스거리가 된 적도 있다. 그래도 변함없는 큰 돈 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여름철 피서공간은 단연코 극장이다.냉방시설이 잘 돼 시원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힐링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팝콘을 먹으며 본다면 금상첨화.최근 극장가 최고 대목인 여름시즌을 맞아 핫한 국내영화가 줄줄이 개봉한다. 그 중 관심이 쏠리는 영화는 ‘택시운전사’. 대강 스토리는 이렇다. 1980년 5월,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광주? 돈 워리, 돈 워리! 아이 베스트 드라이버”라며 막무가내로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거금 1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 만섭은 그렇게 ‘5.18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로 향하고 그곳에서 광주의 비극을 온몸으로 느낀다. 아직 개봉전이라 결말을 알 수 없으나 대중의 기대를 받는 건 확실하다. 흐릿하나마 기억난다. 고등학생 시절이었다.버스 안 라디오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꽤 단호하고 비장감마저 드는 목소리였다. “현재 광주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불온세력들이 폭도로 변해 도심이 극도로 혼란스럽다. 국민은 흑색선전에 흔들리지 말아달라”. 왜곡된 보도와 통제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던 시대였다.남의 일처럼 타지역의 사건으로 여기며,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무책임한 시절이었다. 광주의 처절한 아픔이 어느덧 37년이 흘렀지만 광주시민은 물론,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감동적인 사진 한 장이 가슴한 켠에 남았다.유가족을 꼭 껴안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다. 국민의 눈시울이 적었으며 울대를 먹먹하게 했다. 그 오랜 시간 서러움과 울분을 고스란히 삼켜야 했던 광주시민에겐 말할 수 없는 벅참이었고 국민에겐 시대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던 용기를 주었다.광주는 현대사의 비극이지만 자유민주국가로 나가는 희망이고 빛이며 디딤돌이었다. 내 것을 나눈다는 것,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져주는 것, 상대의 처지에서 상처를 감싸주는 것. 아픔을 함께 공감한다는 것만큼 큰 위안이 또 있을까. 문 대통령과 소형 씨의 사진 한 컷은 대한민국의 치유이며 화해였다. 김창학 정치부장

[지지대] 생계형 프리터족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한시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프리터족(族)이라 한다. 프리터(freeter)는 프리(free)와 아르바이트(Arbeit)의 합성어로 일본에서 처음 생겨난 개념이다. 프리터란 말이 등장한 1987년에는 기업에 고용돼 일하기보다 알바로 돈을 벌면서 남는 시간에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는 청년들의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장기불황이 시작되면서는 불안정 고용의 대명사,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용어가 됐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부터 프리터족이 급증했다. 프리터족이 늘어난데는 높은 최저임금이 영향을 미쳤다. 현재 일본의 전국 평균 시간당 최저임금은 823엔(약 8천348원).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6천470원)보다 1천878원 많다. 이후 일본의 경제사정은 나아졌지만 청년들이 여전히 취업을 포기하면서 노동력 부족 사태까지 불러왔다. 일본 정부가 2000년대 중반부터 프리터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뒤늦은 대응으로 해결이 잘 안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프리터족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예측이다.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천60원 오른 7천530원으로 결정된데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된다. 그땐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일하면(유급 주휴수당을 포함) 월 209만원을 벌 수 있다. 최저임금이 7천530원으로 오르는 내년부터는 같은 조건에서 월 157만원 정도 벌 수 있다.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 152만880원(직급 보조비 12만5000원 포함·각종 수당은 제외)보다 많다. 그러니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하루 종일 주민센터에 앉아 민원 업무를 하는 것보다 알바하고 사는 게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우리나라 청년(만 15~29세) 실업률은 지난 4월 기준 11.2%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취업난이 더 극심해지면,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 자체를 직업으로 갖는 젊은이들이 늘 것이다. 예전엔 알바를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하는 일로 여겼으나, 일본처럼 알바를 하며 보다 자유롭게 사는 ‘자발적’ 프리터족이 증가하게 되리라 본다.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프리터 시대’가 열리게 되면 고용시장뿐 아니라 사회·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알바를 전전하며 결혼을 미루는 만혼(晩婚) 현상이 나타나고, 이는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산업현장의 노동력 부족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일본과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搜査와 國益

“이○○ 기자, 어디 있어.” 기자실 문이 부서질 뻔했다. 난입(?) 주인공은 수원지검 이정수 차장 검사였다. 당황해하는 이 기자에게 달려들어 옷깃을 잡아챘다. 옆자리 기자들이 몸싸움을 벌여가며 둘을 떼어 놓았다. 양팔을 붙잡히고도 이 차장의 노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야, 너만 사명감 있어? 우리 검찰도 국익 생각해.” 1998년 2월 중순 어느 날 수원지검 기자실이었다. 꽤 된 일이다. 현장에 있던 10여명의 기자들은 요즘도 가끔 얘기한다. ▶당시 수원지검에서는 특별한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삼성 반도체 연구원들이 기술을 빼냈다. 64 메가 D램의 회로도, 디자인룰 등이 대상이었다. 이렇게 기술이 빠져나간 곳은 대만의 N사였다. 세계 시장에서 삼성과 경쟁 중이던 대만이었다. 검찰은 ‘국익’이라는 가치를 수사에 부여했다. 그러면서 ‘엠바고’(비보도)를 요청했다. 이 요청을 이○○기자가 어겼고, 이 차장이 기자실에 ‘난입’한 거였다. ▶‘엠바고’는 한번 깨지면 봇물이 터진다. 하지만, 그땐 달랐다. 그 후에도 보도는 차분했다. 검찰 수사를 결코 앞서가지 않았다. 기자들 역시 반도체 기술 유출이 갖는 ‘국익’이란 가치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한달여만에 수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기술 유출을 총괄했던 15명이 구속됐고, 기술을 빼낸 전 삼성 연구원 등 4명도 구속됐다. ‘결정적 기술 유출을 방어했다’는 업계 평가도 나왔다. 돌아보면 검찰과 ‘국익’으로 하나됐던 유일한 경험이다. ▶그 ‘수사’와 ‘국익’의 연결 논리를 오랜만에 들었다. 문무일 검찰총장 청문회에서다. 자유한국당 여상규 의원이 “수사의 초점을 방산비리에 맞춰야지 수리온 헬기의 하자를 부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훈련기 교체 사업 추진이나 동남아 수출 MOU 체결 등을 알고 있느냐”고도 물었다. 문 후보자는 “총장에 취임한다면 해당 수사가 공정하게, 국가 미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치적 중립 자세를 지키며 잘 관리하겠다”라고 답했다. ▶사실 그렇다. KAI(한국항공우주산업)는 국내 유일의 방산 우주 기업이다. T-50 초음속 고등훈련기는 미 공군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APT)에 도전장을 내놓고 있다. 다목적 헬기 수리온은 우리가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한 헬기다. 검찰 수사 이후 수리온 등의 결함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다. ‘원가 부풀리기’ 수사도 국제 거래에 어울리지 않는 수사 쟁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충분히 이유 있는 지적이다. 참고할 만한 지적이다. ‘국가 미래에 도움되는 수사’를 약속한 검찰총장 후보자의 답변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데이트 폭력

지난 18일 새벽 서울 한복판에서 20대 남성이 일주일 전 헤어진 여자친구를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개된 CCTV 영상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남성은 여성을 벽으로 밀어붙인 뒤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여성이 쓰러지자 발길질을 해댔다. 시민들이 달려들어 피투성이가 된 피해 여성을 떼어놨다. 그러자 남성은 인근에 세워 둔 1t 트럭을 몰고와 시민들을 향해 돌진했다. 피해 여성은 치아 5개가 부러졌고, 얼굴엔 타박상을 입었다. 연인간 폭력인 ‘데이트 폭력(Dating Abuse)’ 문제가 심각하다. 데이트 폭력은 서로 교제를 인정하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위협이나 폭력행위 등을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연인관계에 있거나 연인관계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해를 끼칠 의도를 갖고 행하는 신체적ㆍ정서적ㆍ언어적ㆍ성적 폭력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흔히 폭언ㆍ폭행ㆍ협박ㆍ성폭행ㆍ성희롱ㆍ스토킹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데이트 폭력 발생 건수에 비해 실제 신고율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수사기관이 데이트 폭력을 사랑싸움으로 치부하는 등 대수롭지 않게 여겨 적극 대응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다. 경찰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2015까지 해마다 100여명의 피해자들이 데이트 폭력에 의해 사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만 해도 데이트 폭력으로 8천367명이 형사 입건됐다. 폭언, 폭행을 넘어 살인사건까지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볼때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데이트 폭력을 막을 수단은 가정폭력에 비해 제한적이다. 가정폭력은 ‘가정폭력범죄특례법’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긴급임시조치로 격리조치를 할 수 있지만 데이트 폭력은 이같은 법이 따로 없어 살인·성폭행·상해 등 일반 형사사건으로 분류 처리된다. 박남춘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2월 ‘데이트폭력처벌특례법’을 발의했지만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며 폐기됐다. 경찰이 오늘부터 데이트 폭력, 성추행 등 젠더 폭력을 막기 위한 ‘여성 폭력 근절 100일 계획’을 10월 31일까지 추진키로 했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민생치안 확립 및 사회적 약자 보호’의 일환이다. 이와 함께 데이트 폭력을 막기 위해 한국판 ‘클레어법(가정폭력전과공개제도)’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클레어법은 남자친구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끝내 살해된 ‘클레어 우드’의 이름을 딴 영국 법으로 지난 2014년 시행됐다.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의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감사합니다”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늘을 원망하면 했지, 더 이상 구청은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폭우만 쏟아지면 물에 잠기는 수원시의 대표적인 상습침체구역인 권선구 고색동 혜성주택 주민들의 말이다. 21개동 26세대의 다세대주택인 혜성주택은 1990년에 준공, 27년이나 됐다. 당시에 주변지역은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농경지였지만, 이후 지속적인 개발이 이뤄지며 주거지역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주변지역의 지반이 높아져 혜성주택 일대는 저지대로 바뀌게 되며 상습침수구역으로 전락했다. 해마다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면 집의 바닥이 물에 차는 것은 기본이었다. 최근 가장 큰 피해는 2013년에 발생했다. 당시 집집마다 장롱 높이까지 물이 찼고, 냉장고 등 가전제품은 물에 둥둥 떠다니기까지 했다. 목진분 통장은 “집에 물이 들어오면 가전제품은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만큼 1년에 한 번씩 살림살이를 새롭게 장만해야 한다”라며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중고로 제품을 사들일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인근 아파트에서 버린 가전제품을 가져다 쓰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랬던 혜성주택 일대가 올해는 바뀌었다. 권선구청이 앞장서 주변도로 내 하수관로를 만들고, 모터 펌프를 수리 및 교체와 함께 빗물받이를 새롭게 만들었다. 우수유입 방지턱 설치, 진입로 차수거 설치, 도로 횡단구배 조정 등도 진행했다. 특히 주택 지붕면적이 부지 면적의 50~60%를 차지하는 점에 착안해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단지 내 배수설비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도로로 배수될 수 있도록 정비했다. 그 결과 얼마 전 발생했던 국지성 집중호우에도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 다가올 여름 장마와 태풍 등으로 인한 침수 피해를 입지 않으리라 장담은 못한다. 그러나 이같이 지역을 잘 아는 공무원의 적극적인 행정에 주민들은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 “나라를 나라답게, 권선구가 함께 하겠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제19대 대통령 취임사 中”이라는 권선구청에 붙어 있는 현수막의 내용이 유독 와닿는 이유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찜통 급식실

어릴 적엔 왜 그렇게 냄새에 민감했는지 모르겠다. 겨울철엔 문을 꼭 닫아 덜하지만, 여름철엔 실바람에 실려오는 냄새도 기막히게 알고 맞췄다. 음식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옥수수나 감자, 단호박을 찜통에 쪄내는 게 고작이었지만, 적당히 익어갈 때의 냄새는 군침을 돌게 했다. 뚜껑을 열면 뻔한데도 몰래 열어보다 얼굴로 확 뿜어오는 열기에 깜짝 놀랄 때도 많았다. 군것질거리가 귀하던 시절 얘기다.▶찜통은 뜨거운 김으로 음식을 찌는 조리 기구다. 지금이야 전자레인지 등이 있어 몇 분만에도 후딱 익힐 수 있지만, 당시는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찜통은 고대에는 토기로 만든 시루가 쓰였다. 이후 나무나 대나무 등이 쓰이다가 근래에는 알루미늄이나 스텐을 이용한 제품이 주를 이룬다. 원통형의 찜통에 물이 적당히 담길 정도의 공간을 두고 그 위에 구멍이 송송 뚫린 판을 얹어 수증기로 음식을 익히는 방법이다.▶흔히 장마가 끝나면 찾아오는 무더위를 찜통더위로 부르는데 한동안 기승을 부릴 거란 예보다. 19일에도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폭염주의보는 낮 최고기온이 33도 이상, 폭염경보는 35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효된다. 낮에 달궈진 열기가 지속하는 열대야는 잠을 설치게 한다. 낮에 조는 ‘주간 졸음증’을 유발해 작업 능률을 떨어뜨리고 각종 사고를 유발한다.▶당장, 수험생을 둔 부모들의 시름이 깊어진다. 자칫 건강을 해치면 10년 노력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시설들은 냉방비 걱정이 태산이다.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은 폭염 속 탈진 사고가 잇따른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급식실을 찜통에 비유했다. 실제 안양의 한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닭을 삶던 조리사가 쓰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급식실 온도는 50도를 넘었다.▶폭염주의보가 발효되면 야외활동을 삼가는 등 조심하면 된다. 지자체별 더위를 피하도록 마련한 ‘무더위 쉼터’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잠 못 이룰 땐 멜라토닌과 마그네슘이 풍부해 불면을 줄여주는 상추나 체리, 바나나, 키위 같은 채소나 과일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있다. 조리사들이 냉방병을 사치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찜통 급식실은 꼭 학교가 아니어도 이참에 개선돼야 한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복지 떠돌이

태어날 땐 양평! 첫째 아이를 낳으려면 양평군이 좋다. 200만원의 출산 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연천군도 괜찮다. 1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둘째를 낳을 때쯤엔 약간의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제일 좋은 곳은 역시 양평군으로 500만원이나 받을 수 있다. 연천군도 역시 300만원을 받는다. 가평군(200만원)이나 부천시(100만원)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래저래 아기가 태어나기 가장 좋은 동네는 양평군이다. ▶고등학교 입학 땐 용인ㆍ성남! 다만, 현시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성남시는 이재명 시장의 3대 복지 공약으로 고교 무상교복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세 번이나 시의회가 반대하면서 시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뒤늦게 뛰어든 용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채무 제로 선언으로 탄력받은 정찬민 시장이 내년부터 고교무상교복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예산도 준비해놨다고 한다. 성남이든 용인이든 선택은 당사자들의 몫이다. ▶청년기에는 성남! 성남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에겐 돈이 주어진다. 성남시에서 주는 청년배당이다. 분기별로 25만원이니까 1년이면 100만원이다. 결코, 푼돈이라 할 수 없다. 성남사랑상품권이라 지역 내에서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21세 때 미리 이사해야 한다는 유의점이 있다.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혜택은 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큰 금액을 원한다면 성남시를 택하는 것이 좋다. ▶연로한 유공자에겐 이천ㆍ양평! 모든 국가유공자에게는 경기도가 지급하는 수당이 있다. 매년 12만원씩으로 지역별 차이가 없다. 이와 별개로 시ㆍ군이 지급하는 수당이 있는데 이게 천차만별이다. 이천시와 양평군이 매달 10만원씩 준다. 국가 유공자이면서 80세 이상일 경우다. 80세 이상 유공자가 이천이나 양평으로 이사하면 매년 120만원씩의 지역 혜택을 받게 되는 셈이다. 특별한 소득이 없는 어르신들에게는 중요한 거주 기준이 될 수 있다. ▶‘양평에서 태어나, 용인에서 고교 생활하고, 성남에서 청년기 보내고, 이천에서 노후를 보낸다!’. 지역별 복지항목을 쫓아 그려본 ‘복지 떠돌이’ 가설이다.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상상이다. 결국,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모든 복지가 고르게 잘 된 곳이다. 특정 복지 우수 지역이 아니라 종합복지 우수 지역이 좋은 곳이다. 이제 복지 경쟁에 대한 평가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할 듯하다. 한두 가지 복지가 유명한 곳이 아니라 전체적인 복지가 우수한 곳이다. 종합복지평가 1등이 어디인지를 따져야 할 때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낮 졸림증

잠은 몸과 마음의 쉼(휴식)이다. 밤에 적당시간 숙면을 취해야 낮동안의 일상생활이 원만하다. 잠이 보약이란 말이 맞다. 하지만 잠이 맘대로 되지 않는 이들이 많다. 낮에 주체할 수 없는 잠이 쏟아져 문제고, 밤에 잠 못 이루는 불면증도 문제다. 병원을 찾는 이들도 있지만, 방치하는 이들도 많다.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이 대형사고로 이어진 사례가 종종 있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양재IC 부근에서 발생한 7중 추돌사고도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이 원인이었다. 사고 전날 16시간을 운전하고 밤 11시30분에 퇴근해 다음날 오전 7시15분부터 다시 버스를 몰았다. 실질적 수면시간이 5시간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버스기사들은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초과근무를 하며, 이로 인한 졸음운전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의 ‘고속도로 졸음운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운전자 중 69.5%가 ‘운전 중 졸음이 온다’고 답했고, 이 중 56.8%는 ‘실제 졸음운전을 경험해 봤다’고 했다. 졸음운전 경험자 5명 중 1명(19%) 꼴로 졸음운전이 실제 교통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나 위험성을 입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화물차와 고속·시외버스 등 대형 차량에서 졸음운전 경험이 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버스 운전기사 10명 중 1명이 ‘낮 졸림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낮 졸림증은 ‘주간 졸림’(daytime hypersomnolence)이라고도 불리는 수면 질환의 일종이다. 낮 졸림증을 앓으면 잠에 취한 것처럼 완전히 깨어 있을 수 없으며, 방향 감각ㆍ운동 조절 기능이 떨어져 사고 위험률이 크게 증가한다. 홍승철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경기도 버스 운전기사 304명을 대상으로 한 낮 졸림증ㆍ불면증ㆍ수면무호흡증에 대한 조사 결과, 낮 졸림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13.2%(40명)로 나타났다.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을 호소하는 운전기사도 40.1%(122명)였다. 이 중 중증도 이상의 불면증 운전기사도 조사 대상자의 10.2%(31명)에 달했다. 불면증을 가진 이들은 낮 졸림증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버스 운전기사 중 68.4%(208명)는 ‘평소 수면의 질이 불량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근무여건 개선이 시급하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아 가는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운수업 종사자의 수면장애 개선을 위한 지원과 제도적 관리를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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