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공석(空席)

자유한국당의 수원시장 후보가 안 보인다. 예비 후보 등록이 시작됐어도 여전히 비어 있다. 현역 염태영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한국당 후보에겐 현역 극복이란 장벽이 없다. 그런데도 후보자가 없다. 하겠다는 이가 없는 것이다. 1년여 전만 해도 달랐다. 자타천 후보군들이 넘쳤다. 20대 총선의 낙선자들도 후보군에 있었다. 시장 선거가 ‘권토중래’의 장(場)이 될 거라 여겨졌다. 박종희ㆍ김용남ㆍ김상민 전 의원, 박수영 전 위원장 등이 그렇게 꼽혔다. 지금은 한 명도 없다. 1년여 만에 이렇게 됐다. ▶공석이 길어지면서 ‘설’이 나돈다. 도지사 후보의 이른바 ‘시장 U턴 설’이다. 지역 정가가 내놓는 시나리오는 그럴듯하다. 도지사 출마는 정치인 개인의 몸값을 높인다. 언론 노출도나 정치적 중량감이 시장 후보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이런 전술적 팽창기를 거쳐 시장 선거전에 뛰어들 거라는 분석이다. 설의 대상은 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박종희ㆍ김용남 전 의원이다. 당사자들은 펄쩍 뛴다. 박 전 의원은 “절차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한다. 김 전 의원은 “꼭 도지사가 되겠다”며 일축한다. ▶냉정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시장 U턴 설’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당이 고의로 수원시장 후보를 고르지 않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부작위에 의한 공석 유도의 정황이라도 목격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행안부 김희겸 기획실장에게 출마 권유가 갔었다. 방문규 전 기재부 차관에게도 권유가 있었다. 안완기 전 가스공사 부사장에도 같은 제의가 있었다. 지역 정치권 또는 중앙 정치권이 대화의 창구였다. 찾기는 했다는 얘기다. 거절당한 것이다. 지금의 공석은 그렇게 빚어진 결과다. ▶한국당은 명색이 제1야당이다. 수원은 한때 보수의 상징이라 여겨졌다. 8년 전 이맘때만 해도 딴 세상이었다. 11명의 후보가 파란 점퍼를 입고 길거리를 누볐다. 그랬던 한국당이 지금은 후보를 못 찾고 있다. ‘일부러 비워뒀다’는 추측도 당의 속앓이를 모르는 소리다. 그래서 사그라들지 않는 게 도지사 후보의 ‘시장 U턴 설’이다. 본인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하기야 우리네 경선 역사를 보면 그런 소리가 나돌 만도 하다. 막판으로 갈수록 뒤죽박죽된 공천 역사가 어디 한두 번이었나. 김종구 주필

[지지대] 정치인 출판기념회

지난주, 경기지역에서도 여러 건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2일 이필운 안양시장의 ‘안양 누리기’ 출판기념회엔 2천500여 명이 참석, 현직 시장의 세를 당당히 과시했다. 3월3일은 날이 좋아서일까, 더 많은 행사가 열렸다. 재선에 도전하는 정찬민 용인시장의 ‘수퍼맨 정찬민’ 출판기념회가 강남대에서 열렸고, 김성제 의왕시장의 ‘김성제, 희망을 꽃 피우다’ 출판기념회가 계원예술대에서 개최됐다. 다시 화성시장에 도전하는 최영근 전 화성시장의 ‘최영근 레시피’ 출판기념회도 같은 날 협성대에서 열렸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6·13 지방선거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출판기념회가 봇물이다. 광역ㆍ기초단체장, 교육감 출마 예정자들이 너도나도 열고 있다. 오는 14일까지 전국에서 하루가 멀다고 열린다. 공직선거법상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90일 전까지는 횟수와 관계없이 열 수 있어 이때가 절정이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문자로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초대장에 짜증이 난다는 사람들도 많다. 초대장이 무슨 세금 고지서를 받는 느낌이란다. 선거에 나서는 출마 예정자가 자신의 인생 역정과 행정 비전, 가치관이 담긴 책으로 유권자와 소통하려는 걸 무조건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수 정치인의 책이 큼지막한 표지 얼굴 사진만 돋보일 뿐 제대로 된 책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직접 쓴 건지 의문이 드는 것은 물론 허술하고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책들을 내놓고 버젓이 출판기념회를 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세 과시를 할 수 있고, 인지도도 높일 수 있고, 또 하나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출판기념회는 법적인 문제는 없다. 개인 후원금은 정치자금법 규제를 받지만, 책값 명목의 축하금품은 기부 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 수입 내용 자체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행사에 보내는 화환만 10만원 제한이 있을 뿐 책값은 기준 자체가 없어 한권에 보통 1만5천~2만원 하는 책을 얼마 주고 사는지 깜깜이다. 책값 명목으로 출마 예정자들에게 돈 봉투가 전달되지만, 얼마가 들어있으며 누가 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정치자금 모금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충전용’이란 비판이 거센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통한 정치자금 수수를 제한하는 별도 입법과 정치권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금 청구서’나 다름없는 초대장을 받아들고 마지못해 눈도장을 찍으며, 현금 봉투로 ‘보험’ 드는 이들이 많은 정치판, 정상은 아니다. 이런게 바로 민폐요 적폐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고은 시인 흔적지우기

서울시가 지난해 11월21일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사) 3층에 ‘만인의 방’을 개관했다. 만인의 방은 ‘만인보(萬人譜)’를 집필했던 고은 시인의 안성 서재를 그대로 재현한 특별한 방이다. 육필원고, 탁자, 메모, 안경 등 관련 자료들이 모두 전시돼 있다. ‘만인보’는 시 4천1편, 총 30권으로 발간된 고은 시인의 연작시다. 집필 기간만 30년이며, 5천6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서울시가 ‘만인의 방’을 조성한 것은 만인보가 3ㆍ1운동 정신과 닿아있다고 보고, 내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3억 원의 예산을 들였다. 개관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연작시 만인보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시대를 이끌어왔다. 서울시도 시민들 힘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만인보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며 ‘만인의 방’ 개관 의의를 밝혔다. ‘만인의 방’이 개관 몇개월만인 지난달 27일 철거에 들어갔다.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겠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전시됐던 물품은 시인에게 돌려줄 예정이다. 서울시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고은 시인의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고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면서 철거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 모시기에 공을 들였던 수원시도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수원시는 2013년 광교산 자락의 문화향수의 집을 9억5천만원 들여 리모델링 해 고은 시인의 거처로 제공했다. 고은 시인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뒤 5년여간 거주해온 광교산 집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수원시에 밝혔다. 수원에 건립하려던 고은 문학관도 무산됐다. 수원시는 팔달구 장안동 한옥기술전시관 뒤편 시유지 6천㎡에 문학관을 건립 계획이었다. 200억원의 건립비는 고은재단이 내고, 시는 부지를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을 반영해” 고은 문학관 건립계획을 최종 철회했다. 고은 시인은 최근 단국대 석좌교수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지난해부터 맡고 있던 KAIST 초빙석좌교수직에서도 물러났다. 교육부는 ‘사회적 논란’이 된 고은 시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고은 시인의 시·수필 등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 11종에 실려 있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거론됐고, 그래서 모시기 경쟁이 치열했던 시인의 성추행 파문으로 이젠 흔적 지우기 경쟁이다. 미투 운동에 따른 부정 여론과 비판을 거스를 수 없어서다. 시인의 ‘그 꽃’(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누가 패러디 했다. ‘추행’(내려갈 때 들켰네 올라갈 때 생각 못한 추행)이란 제목으로.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한반도 평화, 비핵화가 답이다

2000년 6월13일. 북한 평양 순안 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오자 김정일 위원장이 아래까지 나와 영접했다. 두 정상은 두 손을 포개 잡고 한참 동안 인사말을 나눴다. 이 순간 북한의 환영 인파는 양손에 든 꽃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며 김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했다.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 대통령의 방북에 따른 남북정상회담은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회담에 대한 기대도 대단했다. 두 정상은 두 차례의 회담을 통해 어깨를 나란히 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8ㆍ15 광복 이후 남북 최고 지도자가 합의, 발표한 최초의 선언이다. 회담 결과로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북으로 헤어진 가족들이 상봉했다. 당시 나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렸던 남북 이산가족 간 상봉 현장에 있었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국 언론들도 희망에 부풀어 남북 교착 상태가 끝날 것으로 전망했다. 2007년 10월2일. 평양 4ㆍ25문화회관앞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났다. 6ㆍ15 남북공동선언을 재확인했고 한국전쟁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와 남북 육로 재개방에 대해 동의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DJ 대북정책을 기꺼이 이어갔다. 김ㆍ노 대통령의 두 차례 방북으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화해를 가져오지 못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통 큰 협력을 약속했지만 대한민국에 돌아온 것은 핵무기였다. 북한은 2006년 첫 번째 핵실험을 했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연거푸 핵미사일을 발사했다. 결국 남북정상들의 회담에서 얻어진 합의는 이행을 위한 실제적인 내용이나 보장 없이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남북 화해를 위한 역대 대통령들의 노력은 북한에 대한 불신과 환멸, 남북 관계의 악화만을 가져왔다. 국민을 열광케 한 17일간의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 정신에 동떨어진 정치적 잡음도 있었지만 김여정, 김영철의 방남으로 북미 간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조만간 미국을 방문한다. 북미대화를 중재하는 문 대통령의 의지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담보되지 않는 대화는 의미가 없다. 김창학 경제부장

[지지대] 3·1절과 태극기

3월1일은 아흔아홉 번째 맞는 3·1절이다. 31절은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우리나라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3·1절은 1919년 3월1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 발표를 통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린 날을 기념하고자 제정됐다. 우리가 매년 3·1절을 기념하는 것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을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에만 머물게 하고자 함이 아니다. 3·1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나라 사랑 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지난해 3·1절은 서울광장과 광화문 인근 등 서울 도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태극기집회)와 탄핵을 촉구하는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촛불집회)로 국론이 분열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이로 말미암아 자긍심의 상징이자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태극기를 달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놓여었다.순국선열을 추모하며 태극기를 내걸었다가 탄핵기각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 그렇다고 노란 리본을 단들 달리 보일까 하는 생각에 태극기를 달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올해도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알려진 김영철의 방남으로 정국이 급랭하면서 국회 민생법안 처리는 올스톱 됐고, 국론마저 분열 양상을 보이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번 3·1절에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대규모 태극기 집회가 열리지만, 지난해와 같은 태극기 게양을 망설이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이번만큼은 3·1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나라 사랑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태극기를 달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왕이면 가족과 함께 3·1절의 의미와 대한민국 역사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독립기념관, 안중근 의사 기념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등을 찾아보면 더 좋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는 의미다.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조상이 해온 일들을 추모하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역사를 지키고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빛낼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관식 디지털콘텐츠부장

[지지대] 스토킹 처벌법

스토킹(stalking)은 ‘은밀히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란 뜻의 스토크(stalk)에서 파생된 용어다.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속 따라다니며 남을 괴롭히는 행위다. 물리적으로 남을 따라다니는 것뿐 아니라 전화ㆍ이메일ㆍSNS 등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괴롭히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것을 사이버 스토킹, 또는 온라인 스토킹이라고 한다. 온라인 스토킹은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 연락이 오거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온라인 행적을 추적하거나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요구하는 것이다. 스토커(stalkerㆍ스토킹하는 사람)는 표적으로 삼은 사람을 인격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기분ㆍ의지ㆍ감정 등은 배려 않고 따라다니며 정신적ㆍ신체적 피해를 입힌다. 스토커는 대부분 인격 장애가 있으며, ‘상대도 나를 좋아하고 있거나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일방적인 환상을 갖고 접근해 반복적으로 공포와 불안감을 준다. 스토킹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생활 침해이며 초기 단계에서 저지하지 않으면 이후 폭행ㆍ납치ㆍ살인 등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미국에선 비틀즈 멤버였던 존 레넌과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가 스토커에 의해 살해됐고, 배우 조디 포스터의 극성팬이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저격한 사건도 있었다. 1989년에는 여배우 레베카 쉐퍼가 남성 스토커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이 같은 스토킹의 위험성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에선 오래전부터 사회적ㆍ법률적 대책이 마련됐다. 미국에선 1990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모든 주가 반(反)스토킹법을 제정했다. 일본도 2000년 스토커 규제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에선 스토킹에 대한 법률이 없어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 정부가 상반기 중에 스토킹 행위에 대해 징역형까지 가능하도록 형벌 기준을 높이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그동안 법적 근거가 미비해 경범죄처벌법(지속적 괴롭힘)에 따라 최대 10만원의 법칙금만 부과해 왔는데 앞으로 범죄 경중을 가려 징역형 또는 벌금을 물린다는 것이다. 정부는 스토킹 범죄의 정의와 범죄 유형 등을 명확히 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스토킹 처벌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스토킹은 엄연한 사회범죄다. 납치ㆍ감금ㆍ폭행ㆍ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범죄다. 피해자들의 공포와 불안감을 덜어 줄 수 있게 접근 금지와 통신 금지 등의 안전조치까지 포함하는 세심한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모든 걸 (안) 내려놓겠다’

2017년 7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했다. 이른바 ‘문준용 의혹 조작 사건’에 대한 사과였다. 여기서 그가 말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 언뜻 ‘정계 은퇴’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안 대표가 내려놓은 것은 없었다. 2018년 2월. 그가 또 한 번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던진 승부수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특별히 내려놓는 건 이번에도 없을 듯하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 평범한 단어다. 그런 만큼 최초의 화자(話者)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단지, 정치인들이 즐겨 쓴다는 건 분명하다. 어디 안 전 대표뿐이겠나. 많은 정치인들이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산다.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시기다. 정치적 위기 때 등장한다. 다른 하나는 결과다. 나중에 보면 던진 게 없다. 정치인들의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말은 그래서 이렇게 정리된다. ‘일단 눈앞의 위기를 극복하겠다. 그런 연후에 재기를 노리겠다.’ ▶사람들은 정치를 욕한다. 그러면서도 정치를 흉내 낸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말이 지금 그렇다. 배우 조재현의 성추행 논란이 충격을 줬다.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아빠 이미지가 컸던 그다. 그래서 충격이 크다. 출연 중이던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영화제 집행위원과 교수직도 사퇴한다고 했다. 논란에 대해 그가 남긴 말이 있다. “잘못 살아온 죄인이다…모든 걸 내려놓겠다”. ▶멋있게 보였나. ‘미 투 범죄자’들의 유행어가 됐다. 배우 최일화씨도 성폭력 논란에 휘말렸다. 사과를 했는데 똑같은 말을 했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 배우 한명구씨도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었다. 교수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역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말을 했다. 어떤 네티즌이 댓글을 남겼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이제 그만..지겨워요..너도나도 다 내려놓은 다네..”(jisu****). ▶2007년 신정아 사건이 연예계로 번졌다. 방송인ㆍ연예인들의 허위 학력이 무더기로 들통났다. 흡사 지금의 ‘미투 광풍’과도 같았다. 많은 유명인이 사과하며 은퇴를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남았다. 여전히 라디오 진행하고, 주연 배우하고, 개그계 대부고, 연극계 대모다. 독자(讀者)가 문자를 보냈다. “(학력 위조 때 떠난다던 사람들) 다 복귀했지요?” 지금의 성추행 책임자들도 결국 돌아올 것이라는 단언이다. 그렇다. ‘모든 걸 내려놓겠습니다’엔 숨겨진 말이 따로 있다. ‘모든 걸 안 내려놓겠습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새 학기 증후군

직장인들에게 ‘월요병’이란게 있다. 휴일이 끝나고 월요일이 되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일하기 싫어지는 증세다. 주말에 흐트러진 생체리듬 때문에 원래 리듬으로 적응해 가는데 나타나는 신체적인 현상과, 주말 동안의 휴식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해야 한다는 심리적 긴장감으로 스트레스성 두통이나 피곤함, 우울함 등을 유발한다. 월요병은 정식 질병이 아닌 일종의 부정적 심리상태다. 영어로도 병, 질환, 증상, 증후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고 우울감 정도의 뜻을 가진 ‘먼데이 블루스(Monday blues)’라 한다. 직장인에게 월요병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새 학기 증후군(new semester blues)’이 있다. 긴 겨울방학을 보낸 아이들이 새 학기를 맞아 학교에 갈 시기가 되면 감기가 쉽게 걸리고 두통이나 복통을 호소하며, 짜증을 부리거나 이상한 버릇을 반복한다. 두려움과 중압감이 스트레스로 작용해 정신 상태와 면역체계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새학기지만 처음 학교에 들어가는 어린이는 물론, 학년이 올라가는 어린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은 모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분주하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이면 학부모들의 한숨 소리가 커진다. 책가방만 메면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리지만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 있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지기 때문이다. 두통, 수면 장애, 소화 불량을 호소하거나 눈을 반복적으로 깜빡이는 틱 증후군을 보이기도 한다. 틱 장애는 매년 3월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새 학기 증후군은 수줍음이 많고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이 자주 호소한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업시간이 많아지고 교과목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도 새 학기 증후군과 관련이 높다. 새 학기 증후군은 공부, 친구, 통학거리, 선생님, 부모님 모두가 원인일 수 있다. 새 학기가 되기도 전에 ‘학년이 바뀌니 더 열심히 공부하라’거나 ‘이제 노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에 집중하라’는 식으로 부담을 주면 스트레스가 커진다. ‘걱정하지 말라’ ‘잘할 수 있다’고 안심시키거나 자신감을 심어주고, 학교생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갖을 수 있게 해야 한다.학기 시작 전에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찾도록 해주고, 새 학기 계획 수립을 도와주는 등 새로운 학급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게 좋다. 그래야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 낯선 교실에 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새 학기 증후군은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에 적응하게 되면 사라지나, 부모 관심만으로도 빨리 해소할 수 있다. 역시 관심과 배려가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안경 선배’의 리더십

3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스포츠 대전이 열리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유치 과정부터, 또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기까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분단 국가라는 핸디캡을 하루하루 깨면서 가장 안전한 올림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평창올림픽에서 모든 사람들은 쇼트트랙의 ‘괴물’ 최민정,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아이언맨’ 윤성빈, ‘7전8기의 신화’를 보여준 쇼트트랙 임효준 선수 등에게 열광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정말 기적과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팀은 따로 있다. ▶‘컬링’. 이 경기는 컬링 스톤을 빙판 위에서 번갈아 던져 ‘하우스(house)’라 불리는 표적 중심에 가장 가까이 넣는 팀이 점수를 얻는 경기다. 팀에서 스톤을 가장 먼저 던지는 선수를 ‘리드’라고 한다. 그 다음은 ‘세컨드’, ‘서드’, ‘스킵’ 순으로 스톤을 투구한다. 그 가운데 ‘스킵’은 팀에서 가장 마지막 순서로 스톤을 던지며 주장을 겸한다. 실력과 정신력을 하나로 모으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동계올림픽이 시작되면서 금메달을 딴 국가적 영웅 만큼 세간의 이목을 끄는 선수가 있다. 컬링의 ‘스킵’인 김은정 선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안경 선배’라고도 불리는 김 선수는 ‘영미야~’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경기마다 세계적인 강호를 연파하고 있다. 김 선수는 경기 내내 무표정과 날카롭고 카리스마 넘치는 열정, 뿔테 안경 넘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팀원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을 선보이며 전 국민을 열광케 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은 이렇다. 친구이자 팀 동료인 김영미 선수에게 작전을 지시하기 위해 외치는 “영미, 기다려∼”, “영미, 가야 돼!”, “영미, 헐” 등 시시때때로 바뀌는 표정과 억양, 표현으로 팀을 완전히 장악하며, 상대방이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지방분권의 미래를 결정할 6ㆍ13 지방선거가 3개월 여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들은 특정 정당의 독주도, 포퓰리즘의 달인도, 자신의 영달을 채우기 위한 리더를 원치 않는다. 지자체의 발전을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며, 시민 모두를 행복감에 빠지게 하는 리더를 원할 뿐이다. 정상을 향해 정진하는 여자 컬링팀. 그 팀의 스킵인 김은정 선수의 해맑은 웃음이 기억되는 건, 그 속에 감춰진 행복한 리더십 때문이 아닐까. 김규태 사회부차장

[지지대] 폴링 인 컬링

한국 여자컬링 대표팀이 20일 미국을 이겼다. 세계랭킹 1위 캐나다, 2위 스위스, 4위 영국, 5위 스웨덴을 잇달아 무너트리며 거둔 승리다. 한국 컬링 사상 올림픽 4강 진출이라는 신화도 썼다. 21일 오전 열린 예선 8차전서는 OAR(3위)에 11대1로 대승했다. 남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4강 진출을 확정한 후 얻은 승리여서 더 짜릿했다. 준결승은 23일, 결승전은 25일 열린다.▶컬링(Curling)은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스포츠였다. 국민 대부분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서 처음 본 셈이다. 당시 맷돌 모양의 돌덩이(스톤)로 상대 돌덩이를 밀어내거나 교묘히 비켜가며 가장 안쪽에 있는 원(버튼)을 차지하려 빗자루질을 해대는 선수들에 이목이 쏠렸다. 소치 동계올림픽엔 경기도청 팀이 출전했다. 그때가 첫 올림픽 진출이었다.▶컬링은 4명의 선수가 한 팀을 이룬다. 고도의 전략싸움이 필요해 ‘빙판 위의 체스’라고도 불린다. 경기는 길이 45.72m, 너비 5m의 직사각형 모양인 ‘컬링 시트(sheet)‘에서 총 10엔드로 진행된다. 두 팀이 공 역할을 하는 스톤을 빙판 위에서 번갈아 던진다. 이 스톤을 ‘하우스(house)’라 불리는 표적 중앙에 가장 가까이 넣는 팀이 점수를 얻는다. 각 엔드마다 팀당 8번씩 스톤을 던져 얻은 점수를 합해 많은 팀이 이긴다.▶지난 1541년경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얼어붙은 강이나 호수에서 돌을 미끄러뜨려 시합하던 것에서 컬링은 유래했다. 이름도 돌덩이가 얼음 위를 굽어지며 나가는 모습에서 따왔다. 투구자가 스톤을 던지면 2명의 스위퍼(sweeper)가 브룸(broom)으로 쉴 새 없이 바닥을 닦는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빗자루 형태의 도구가 브룸(broom)이다. 흔히 빗자루질이라고 말하는 스위핑(sweeping)은 스톤의 속도와 진로를 조절한다. ▶한국 여자컬링 대표팀은 기량도 뛰어나지만 완벽한 팀워크가 압권이다. 이대로라면 세계를 제패할 일만 남았다. ‘대한민국은 폴링 인 컬링(falling in curling)’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동안 사랑을 독차지했던 몇몇 종목이 불협화음을 내는 상황에서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끈한 동지애로 뭉친 이들의 매력에 풍덩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아름다운 한일전

1954년 3월7일. 해방 후 9년만에 축구 한일전이 벌어졌다. 양국 국가대표가 맞붙는 첫 경기였다. 온 국민이 일본전 승리를 기원했다. 일본으로 떠나는 선수단은 차라리 전쟁에 나서는 군인이었다. 이승만 대통령도 가세했다.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질 각오로 싸우라.’ 결과는 5 대 1 대승이었다. 이후의 한일전이 전부 그랬다. 선수도, 감독도 전투의식을 말해야 했다. 그래야 국민이 좋아했다. 1998년 일본으로 떠나던 차범근 감독의 한 마디도 유명했다. “나는 일본에게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예외는 아니다. 양국 모두에서 상대를 향한 적의(敵意)가 난무한다. 쇼트트랙 여자 계주 예선전에서 한국 선수가 넘어졌다. 일본 인터넷에 실황 스레드가 들끓었다. ‘한국 넘어졌다’, ‘만세’, ‘한국 푸하하하’…. 한국 선수들이 점차 간격을 좁혔다. ‘다시 굴러라 조선인’ ‘캐나다 힘내라’…. 며칠 뒤 이상화 선수가 출전했다. 사전 인터뷰에서 ’일본 선수가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전혀(신경 쓰지 않는다), 그 선수는 아직 올림픽 금메달도 없고’…. 방송은 이 멘트를 계속 내보내며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18일 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 고다이라 나오가 출발했다. 놀라운 스피드로 치고 나갔다. 500m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관중석에서 탄식이 나왔다. 36초 94,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이어 이상화가 출전했다. 부상 후유증을 이겨낸 출발이었다. 100m까지 1위, 200m도 1위였다. 3코너를 도는 순간 사달이 났다. 삐끗하며 속도가 떨어졌다. 37초33, 은메달이었다. 이상화가 울었다. 트랙을 도는 그를 보며 관중도 울었다. 안쓰럽게도 예상이 맞았다(본보 2월 6일자 지지대, ‘3연패의 무게-이상화’). ▶그 순간,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울며 트랙을 돌던 이상화 앞을 일장기를 두른 나오가 막아섰다. 다가가더니 이상화를 안았다. 이상화도 나오 품에 안겼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함께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태극기와 일장기가 함께 휘날렸다. 이때 시작된 박수가 한동안 경기장을 메웠다. 나오는 “상화는 내게 친구 이상의 존재”라고 했다. 이상화도 ‘멋진 한일전이었다’고 했다. ▶현해탄에 뛰어들 필요도, 증오를 퍼부을 이유도 없는 둘이었다. 그저 10년을 얼음판에서 마주쳐온 친구였다. 적어도 그 순간, 두 선수를 본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일전이라면 왜 이를 부득부득 갈아야 했을까…’. 하지만 한일전은 과거로 돌아갈 것이다. 또다시 증오하며 서로를 트집잡을 것이다.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 소중해지는 그날 밤의 추억이다. ‘한일전도 아름다울 수 있다’.김종구 주필

[지지대] 무인(無人) 점포시대

결제전문기업 다날이 운영하는 커피전문브랜드 ‘달콤커피’가 지난달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국내 커피업계 최초로 무인 로봇카페 ‘비트’를 선보였다. 비트는 달콤커피의 카페운영 노하우,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최첨단 로봇, 다날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융합해 만든 ‘스마트 카페’다.모바일앱이나 부스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면 로봇이 커피머신을 작동시켜 커피를 내리고, 픽업 공간으로 옮겨준다. 달콤커피는 올해 은행, 대형쇼핑몰, 대학교 등 공공장소 위주로 비트를 1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편의점에도 무인화(無人化) 바람이 불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5월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무인형 편의점 ‘시그니처’를 처음 선보인 데 이어 이달 서울 롯데손해보험빌딩에 2호점을 열었다. 시그니처에는 손의 정맥을 인식해 결제가 이뤄지는 핸드페이와 바코드를 360도 모든 방향에서 읽는 자동 스캔 무인계산대가 도입됐다. 이마트 24도 지난해 6월 무인편의점을 선보인 이후 현재 6개 무인점포를 운영 중이다. CU는 모바일 기반의 셀프결제 앱 ‘CU 바이셀프’를 선보였다. 점원 없는 무인점포까지는 아니어도, 무인 주문기기 도입은 업종을 불문하고 확산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인 롯데리아와 맥도날드의 경우 전체 운영 매장 가운데 무인주문기를 도입한 매장이 절반 가까이 된다. 농협은 IoT 스마트 판매 시스템을 접목한 ‘고기 자판기’를 선보였다. 고기 자판기는 생고기, 양념고기 등을 소단위로 진공 포장해 판매하며, 무인으로 신선도 관리를 한다. 셀프 주유소, 셀프 빨래방에 이어 편의점, 은행, 카페, 패스트푸드점, 서점, 우체국까지 ‘무인(無人)’ 열풍이다. 무인화 바람은 유통ㆍ서비스를 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무인점포의 빠른 확산은 세계적인 추세다. 중국엔 ‘2무 시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과 점원이 없다는 뜻이다. 중국의 무인편의점 시장 규모는 2017년 389억 위안인데 2022년이 되면 1조8천105억 위안을 넘어설 예정이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5개 편의점은 2025년까지 모든 점포에 무인계산대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최저임금 인상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무인기기 도입에 더 속도를 낼 것 같다. 무인화 추세는 기술 개발과 최저임금 상승에 기반한 측면이 크다. 무인화 바람이 일자리 축소를 비롯한 각종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무인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장기적인 일자리 예측과 준비가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더치페이

네덜란드는 ‘더치페이(Dutch pay)’의 나라다. 교수와 학생이 밥을 먹을 때도 자연스럽게 따로 계산한다. 음식값이 비싼 것도 이유지만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이유다. 지나치게 타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서로 부담을 안 주니 오히려 편안하게 느낀다.네덜란드는 개인의 자립심이나 남녀 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다. 18세 이상이면 대개 집에서 독립하는데, 부모 집에 얹혀 살 경우 임대비용을 지불한다. 데이트 할 때도 남자가 모든 비용을 내거나 더 내는 경우는 드물다. 남자가 돈을 더 내면 ‘내가 뭐가 부족해 얻어 먹어야 하나’라며 여성이 자존심 상해한다. 일본도 ‘뿜빠이(分配)’라고 하는 더치페이 문화가 일상이다.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땐 비용을 절반씩 부담한다. 부부, 친구, 가족 사이에서도 더치페이 문화가 자리 잡았다. 남한테 폐 끼치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일본인들은 밥이나 술을 얻어먹으면 빚지는 것 같아 불편해한다. 중국에는 ‘AA제(制)’라는 게 있다. 대수 평균(Algebraic Average)이라는 영어단어를 줄인 말이다. ‘AA제 생활’이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 정도로 중국에서도 더치페이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더치페이의 한국식 표현은 ‘각자 내기’다. 우리 문화는 함께 식사를 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사는 게 관례였다. 친구들 모임에서도 한 사람이 비용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근래 많이 바뀌어 젊은층에겐 더치페이가 더 익숙하다. 데이트 비용도 나눠내고, 친구나 직장 모임에서도 1n 하는 경우가 많다. 2030세대는 더치페이를 ‘N빵’이라 부른다. N빵은 딱 떨어지지 않는 몇백원의 금액도 정확하게 나눈다. ‘토스’와 ‘카카오페이 송금’ 같은 간편 계좌이체 앱을 비롯한 핀테크 기술이 2030세대의 더치페이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 동계올림픽 특수를 맞은 평창·강릉의 식당들이 외국인들의 더치페이로 진땀을 흘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식당에서 거의 각자 계산한다. 술과 음식을 테이블이 아닌, 손님별로 주문하고 계산하다 보니 외국인 단체손님이 20명이면 20번 계산을 해야 하는 것이다. 편의점에서도 여러 명이 단체로 와서 각자가 든 물건만 계산한다. 1천~2천원의 소액도 예외가 없다. 동전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계산할 때도 있어 손님이 몰리는 시간엔 계산대 앞에 5~6m까지 줄을 서는 모습도 연출된다. 더치페이는 세계인들에게 체면과 관계없는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문화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1988년 NBC, 2018년 NBC

88 서울 올림픽 복싱 경기장. 변정일 선수가 67분간 링을 점거했다. 판정 결과에 불복한 농성이었다. 볼썽사나운 장면들이 이어졌다. 주최 측이 서둘러 조명을 껐다. 하지만, NBC는 어둠 속 장면을 모두 생중계했다. 서울 올림픽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알권리 충족을 위한 선택이겠거니 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NBC 직원들의 돌출 행동이 우리 국민을 분노케 했다. 태극기를 모독하는 행동이었다. ▶이태원의 한 옷가게를 찾아 그들이 도안한 문양의 티셔츠를 주문했다. 태극기 태극 안에 권투 선수의 모습을 그렸다. ‘우리는 복싱을 한다’ ‘우리는 나쁘다’는 영문 표기를 넣었다. 옷 가게 주인이 거부했다. 다른 가게를 찾아 기어코 200벌을 만들었다. 국내 언론이 이를 보도하자 국민이 분노했다. 국내 한 언론이 미국 성조기에 ‘AIDS’라고 써넣어진 만화를 보도했다. 그러면서 질병(AIDS)이 아니라 원조(AID)를 좋아하는 나라라는 뜻이라고 비꼬았다. 이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다. ▶한국 언론이 일제히 미국 때리기에 나섰다. 때마침 꼬투리가 있었다. 미국 수영선수단의 트로이 델비 선수와 어니스트 맨덤 코치의 절도 행각이었다. 묵고 있던 호텔에서 석고 사자상을 훔친 혐의였다. 결국, 둘은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한국 언론은 이 둘의 모습을 끝까지 보도했다. 경찰에 체포돼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 쫓겨나듯 공항을 떠나는 모습이 다 공개됐다. 올림픽 기간에 벌어진 한미 언론전(戰)이였다. ▶악화된 국민감정이 폭발했다. 미국과 소련의 남자배구 결승전이 벌어지던 체육관. 한국 관중은 일제히 소련을 응원했다. 모두 소련 국기를 손에 들고 흔들었다. 소련 선수들조차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한국 사회의 반미 목소리는 그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울림은 제한적이었다. 일부 극단적 단체의 선동 구호 정도였다. 그랬던 반미(反美)가 공개된 장소에서, 그것도 평범한 한국 시민들로부터 터져 나온 것이다. ▶NBC가 30년 만에 또 ‘한 건’했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 방송에서 한국인을 언짢게 했다. 중계진 조슈아 쿠퍼 라모가 한국을 비하했다. ‘일본이 한국 발전의 모델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조직위가 항의하자 NBC는 곧바로 사과했다. 라모를 방송에서 제외했다. 우리 언론도 다르다. 필요 이상 여론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평창 올림픽은 순조롭게 가고 있다. 여전히 많은 한국 관중은 미국 선수들에 박수를 보낸다. 언론의 역할이 이렇게 중하다. 국가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 수도, 우호로 이끌 수도 있다. 하물며 남북 관계를 끌어가는 논조는 어떻겠나. 30년을 사이에 두고 재연된 ‘NBC 사태’에서 우리 언론이 배울 교훈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명절 스트레스 줄이기

목요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가족ㆍ친지들이 모여 즐거워야 할 설 명절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가족에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평소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신체적ㆍ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명절에 묵은 감정들이 폭발한다. 명절을 지내고 사이가 극도로 나빠지는 부부들도 많다. 시가 및 처가와의 갈등이 불화의 원인이 되고, 깊어진 갈등의 골은 이혼으로 이어져 ‘명절 이혼’이란 말까지 생겼다. 이혼이 아니더라도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주부들은 여성에게 집중되는 가사 노동과 이로 인한 피로감, 고부갈등 등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남편들은 장시간 운전에 처가와의 갈등, 경제적 부담 등으로 힘겨워한다. 취업준비생이나 결혼 못한 젊은이들도 명절이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최근 성인남녀 1천959명을 대상으로 ‘명절 스트레스’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3%가 “설을 앞두고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유는 직업에 따라 달랐다. 직장인들의 경우 ‘부담스러운 설 경비(명절 분위기를 내기에 부족한 상여금)’가 59.1%(복수응답)로 1위에 올랐다. 대학생·취준생들은 ‘취업에 대한 친척들의 잔소리’(45.2%)를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았다. 설 명절에 듣기 싫어하는 말 역시 직업별로 차이를 보였다. 대학생·취준생들은 ‘취업과 관련된 잔소리’(누구네 자녀는 어떤 회사 다닌다더라, 31.2%),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얘기다’(26.7%)에 거부감을 표했다. 직장인들은 ‘결혼은 언제 하니’(37.9%), ‘연봉은 얼마나 받니’(25.4%) 등을 듣기 싫어하는 말로 꼽았다. 그래서일까. 응답자의 35%가 올 설에 친지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명절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명절이 모두에게 즐거운 날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말 조심을 해야 한다. 무심코 던진 말이 듣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므로 상대 입장을 배려해야 한다. ‘누구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더라’ ‘아직도 취직 못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등 별 생각없이 던지는 말들이 구직자나 미혼남녀에겐 큰 스트레스다. 만약, 가족 사이에 예전부터 갈등이 있었다면 명절 기간엔 되도록 이를 언급하지 말고 명절 이후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도록 미루는 게 현명하다. 명절엔 가족ㆍ친지끼리 좋았던 일이나 어려웠던 일을 같이 나누며, 비교나 걱정보다는 덕담을 해주는 것이 좋다. 명절 스트레스는 심리적 불안과 갈등 제거가 중요한 만큼 서로 이해하고 보듬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황혼 알바

지하철 출구 근처에서 전단지 돌리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 한 장씩을 건넨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 받아가는 사람, 받아서 바로 버리는 사람 등 반응이 제각각이다. 지하철 역사내 쓰레기통엔 전단지가 수북이 버려져있다.기온이 뚝 떨어진 추운 날엔 웅크린 사람들이 전단지를 외면하기 일쑤다. 전단지 아르바이트(알바)는 한때 10대의 전유물이었다. 알바를 하고 싶은 학생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전단지 배포였다. 최근엔 전단지를 배포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아졌다. 50대 이상 ‘황혼 알바’가 5년 동안 7배 증가하는 등 빠르게 늘고 있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에 따르면 50대 이상 고령자가 1월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새로 등록한 이력서 수는 2014년 768건에서 2017년 5천403건으로 603% 늘었다. 전체 신규 이력서 중 50대 황혼 알바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불과하지만 다른 연령층보다 증가세가 뚜렷하다. 알바몬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희망 근무기간이 길어진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전체 이력서 중 1년 이상 장기 알바를 희망하는 이력서 비중은 13.2%다. 이 중 50대 이상에선 1년 이상 근무 희망 비중이 3배 수준인 45%로 나타났다. 10대나 20대 비율은 각각 2.8%, 9.2%에 그쳤다. 50대 이상 알바 구직 분포가 가장 높은 직종은 공인중개사(12.5%)로 나타났다. 성별로 살펴보면 50대 이상 남성은 운전ㆍ대리운전(8.4%), 화물ㆍ중장비ㆍ특수차(8%), 주차관리ㆍ주차도우미(5.5%), 배달(5.4%), 공인중개사(4.9%) 순이다. 50대 이상 여성은 가구ㆍ침구ㆍ생활소품(7.8%), 공인중개사(7.6%), 텔레마케팅ㆍ아웃바운드(7.3%), 고객상담ㆍ인바운드(6.2%), 베이비시터ㆍ가사도우미(5.5%) 순이다. 알바가 부수입 마련을 위한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는 다른 연령층과 달리 50대 이상 장년층에선 은퇴 후 일정한 소득을 기대하는 생계유지의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황혼 알바생 이력서에선 ‘꾸준히,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알바를 찾는 경향이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기간을 늘리지 않으면 노후 생활고를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사회상 2016’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48.8%로 OECD 평균(12.1%)의 4배가 넘는다.황혼 알바의 증가는 오래 사는 데 따르는 ‘리스크’가 원인이다. 50대 초에 은퇴해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 하다보니 알바를 찾아나서는 것인데 시니어들의 알바 전쟁,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고향(故鄕)

K의 고향은 머나먼 남쪽 땅이다. 사방이 바다와 야산으로 뒤덮여 있는 정감 어린 시골동네다. 그곳의 풍경은 조용하다 못해 한적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이른 봄이면 야산 이곳저곳 봄나물 지천이며 저만치 허공에는 아지랑이 만발한다. 가을이면 동네 곳곳에서 영글어 가는 땡감이 맛깔스럽다. 그곳을 떠난 지 40여 년이 넘어간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때가 엊그제 같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다는 시간 동안 K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항상 그곳이 있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던 동네 뒷동산, 또 인근 마을 친구들과 함께했던 토끼몰이가 그리웠다. 한겨울 얼어 붙은 논에서 썰매 타던 때가, 한여름 동네 뒤편 바다에서 수영하던 겁 없던 시절이 정겹다. 생각만 해도 포근하고 기분 좋은 추억이다. K는 설 명절을 앞두고 일찌감치 마음이 설렌다. 그곳에 갈 수 있다는 마음에서 일까? 평소 잊고 지냈던 친구도 만날 수 있고 항상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한 노모도 찾아뵐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이 모두 고향이 전해주고 있는 K만의 위안이자 행복이다. 옛부터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라 했다. 또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 속담에 ‘고향을 떠나면 천하다’는 말이 있다. 제 고향이나 제 집을 떠나 낯선 고장에 가면 고생이 심하고 외롭다는 의미다. 때문에 선인들은 고향에서 위안을 찾아왔고 급기야 예찬론까지 펼쳐왔다. 신라시대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이란 시가 있다. 당나라에 있을 때 쓴 고향을 그리는 시다. “가을 바람에 홀로 시를 읊으니/ 세상에 내 마음 아는 이 없네/ 창밖에는 밤이 깊도록 비가 내리고/ 등 앞에 앉은 이내 마음은 만리고향으로 달리네”. 또 이은상의 ‘가고파’란 시조가 있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이뿐 아니다. 노래가사로 널리 알려진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도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며칠 후면 무술년 설이 찾아온다. 고향을 찾는 모두가 그리운 그곳에서 위안과 소중한 추억을 되찾길 소원해 본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저격수

사격의 달인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표적을 명중할 수 있는 ‘저격수’ 역사는 1870년대 영국령 인도에서 출발했다. 빠르게 날아다녀 쉽게 맞출 수 없던 도요새를 사격해 명중시킬 만큼 뛰어난 사수를 저격수, 스나이퍼(Sniper)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때 ‘길리 슈트(ghillie suit)’라는 저격수 위장복을 처음으로 입은 영국의 로뱃 정찰대는 최초로 저격수를 부대에 편제, 전선에서 활약토록 했다. 저격수의 전성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1~2명의 저격수가 여러 중대를 꼼짝 못하게 발을 묶는가 하면, 저격수 1명이 무려 수백 명의 적군을 사살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주요 기록으로는 핀란드 방위군의 저격수인 시모 하이하가 소련과 핀란드의 분쟁인 겨울전쟁에서 542명의 사살 기록을 세웠고, 최장거리로는 영국 육군의 크레이그 해리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천475m의 저격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런 저격수의 중요성은 베트남전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미군 병사가 적군 1명을 사살하기 위해 20만 발 이상의 총알을 쏴야 했다. 그러나 뛰어난 저격수들이 적 1명을 사살하고자 사용한 탄환은 평균 1.3발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사람들이었던 최측근들이 자신의 주군을 향해 저격수로 변신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국정농단 사건 초기 혐의를 부인해오다 “대통령이 모두 시켰다”고 진술을 번복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시작으로,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도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검찰 소환을 앞둔 것으로 알려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최측근 저격수들로 코너에 몰렸다. 특히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은 “국정원 특활비를 달러로 바꿔 대통령과 영부인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하는 등 검찰에 적극적으로 협조, 수사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는 활약상(?)을 펼쳤다. 물론 각자의 사정은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살아있는 권력에 편승하며, 절대적 충성심을 보여 온 충신들의 저격수 변신에 대다수 국민들은 통쾌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다만, 충신들의 고해성사가 그들의 죗값까지 씻어줄 수는 없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동료애로 떳떳한 한발을 쏜 전장의 저격수와 달리,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한발을 적중했기 때문이다. 이용성 사회부장

[지지대] 3연패의 무게-이상화

2012 런던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장미란이 있었다. 언론은 그의 역도 금메달이 확실하다고 점쳤다. 하지만 실패했다. 바벨에 작별 인사를 한 뒤 내려왔다. 울먹이는 인터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 걱정이었다. “(결과가) 국민에게 실망을 드렸을까 봐 그게 가장 염려가 돼요.” 몸 상태가 이미 좋지 않았음도 고백했다. “준비하기 전부터 어려움은 있었고…사실 연습 때보다는 잘했어요.” 장미란은 그렇게 올림픽 2연패 실패를 국민 앞에 사과했다.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김연아가 있었다. 언론은 ‘피겨여왕의 2연패 대관식 준비 끝’이라고 썼다. 하지만 은메달에 머물렀다. 편파 판정 논란 속에 인터뷰를 했다. “쇼트 롱 프로그램 모두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돼서 기분 좋고 홀가분합니다…저는 아무 미련도 없고 끝이 났으니까 그걸로 그냥 끝이라고 생각합니다…끝났다는 게 만족스럽습니다.” 김연아는 그렇게 올림픽 2연패 실패를 부담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여겼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장미란도 못했고, 김연아도 못한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가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이상화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여자 선수로는 첫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이다. 4년 뒤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또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4년을 연습했고 또 얼음판에 선다. 올림픽 3연패 도전이다. 장미란ㆍ김연아 때처럼 또 국내 언론이 군불을 지핀다. ‘빙상 여제, 3연패 등극 준비 끝.’ ▶그런데 외신의 전망은 다르다. 이상화의 우승을 점치지 않는다. 미국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이상화의 은메달을 예상했다. ‘두 차례 올림픽을 제패한 챔피언 이상화가 세리머니를 멈출 만 29세에 접어들었다’고 평했다. 1989년생이다. 순간 근력에 의존하는 이 종목에서는 거의 ‘환갑’이다. 경쟁자인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를 근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SI 분석이 현실일 수 있다. 이상화에겐 왕관을 넘겨주는 올림픽일 수도 있다. ▶장미란은 교통사고 후유증을 겪었다. 연습 때부터 이미 메달을 딸 수 없음을 알았다고 했다. 김연아도 부상에 시달렸다. 허리를 젖히는 동작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3연패에 도전하는 이상화다. 체력적 한계에서 오는 고통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다만, 장미란이 그랬고, 김연아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없이 출전일을 기다리는 것일 게다. 그 짐이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의 도전은 그래서 위대하다. ‘이상화 감동’은 이미 완성됐다. 함께 응원하며 행복해지면 된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화장하는 아이들

10대들의 화장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초등학생까지 보편화됐다. 메이크업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색깔 있는 립밤이나 틴트, 피부 색조를 보정해주는 비비크림 등으로 가볍게 메이크업하는 남학생까지 늘었다. 미디어를 통해 남성 아이돌의 메이크업이 노출되면서 화장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것이다. 10대에게 화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안 하면 부끄러운 것’이 됐다. 녹색소비자연대의 2016년 청소년 화장품 사용 실태조사를 보면, 초등학생 24.2%, 중학생 52.1%, 고등학생 68.9%가 눈 화장이나 입술 화장 등의 색조화장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 색조화장을 한다는 비율도 초등학생 12.1%, 중학생 42.9%, 고등학생 32.3%로 나타났다. 극소수의 불량스러운 학생들만 화장을 한다는 기성세대의 생각이 틀렸다. 어린이용 화장품 판매도 크게 늘고 있다. 기존 스킨케어 제품 외에 립스틱, 매니큐어 등 색조제품까지 품목이 확대되고 있다. 인터넷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용 화장품 매출은 2016년보다 29%가 증가했다. 2015년에는 전년대비 94% 증가한데 이어 2016년에는 251%가 늘어나는 등 계속 성장세다. 교사들은 10대 사회에서 화장은 꼭 해야 하는 기본값이 됐다고 말한다. 일부 학교에선 화장을 금지하고 벌점을 주기도 하지만 별 소용없다. 아이들이 ‘화장을 안 하면 창피해서 밖에 나갈 수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제재가 유명무실해 차라리 화장을 허용하는게 낫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어른들의 우려와 달리 화장하는 10대의 주장은 당당하다. 화장은 개성의 표현이고 이뻐지고 싶은 욕구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잘 보이고 싶고 이뻐지고 싶은 욕구 자체를 나쁘게 볼 수는 없다. 다만 화장하고 싶지 않은데도 타인의 시선 때문에 화장을 한다면 이는 강박이다. 자신의 개성을 무시하고 유행을 좇아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해 차라리 조언이 필요하다. 화장하는 아이들이 늘고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화장품 안전성이 논란이다. 어린이용 화장품에 대한 성분과 표시기준 등이 없어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어린이용 화장품에 대한 관리 강화방안을 마련해 7월부터 시행 방침이라고 5일 밝혔다. 알레르기 유발성분이 들어 있으면 겉면에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하고, 발암논란이 있는 타르색소 등은 사용이 금지된다. 10대들의 화장에 대한 찬반 논란보다 화장품 안전성을 강화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관을 키워주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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