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깊어지는 홍준표 딜레마

6·13 지방선거에 나설 자유한국당 후보들이 홍준표 당대표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훈풍 등으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당 지지율 차이가 더 벌어질 위기상황인데 홍 대표의 잇따른 돌출 발언이 부동층과 지지층 표심마저 돌려 세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후보들이 선택할 길은 홍 대표와 함께 가거나, 다른 길을 가는 것뿐인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참다못한 일부 후보들은 공식적인 일침을 가하거나 다른 길로 돌아서고, 대다수 후보는 맘 속으로 홍 대표의 자제를 바라는 형국이다. 자유한국당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2일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판문점 선언을 ‘위장평화쇼’라고 비난한 홍 대표를 향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말씀했으면 한다”, “국민의 생각에서 너무 동떨어지면 지지받기가 어렵다”라고 밝혔다. 같은 당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는 1일 초·중·고교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홍 대표가 경남도지사 시절 중단시켰던 무상급식의 부활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정 반대 길로 가는 셈이다. 유정복 인천시장도 지난 30일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정신 차리고 국민의 언어로 말하라”라며 홍 대표를 항해 직격탄을 날렸다. 홍 대표 등 지도부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몰상식한 발언으로 당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일침을 놓은 것이다. 이 밖에 인천지역 자유한국당 소속의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후보들도 말은 못한 채 냉가슴을 앓고 있다. 후보들과 선거 캠프 주변에서는 ‘선거 운동 기간에는 홍 대표의 인천 지원유세를 금지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웃픈’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홍 대표는 당 안팎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제1야당대표가 자기들과 의견이 다르다고 ‘하이에나’처럼 떼 지어 달려들어 물어뜯는 사례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라며 정면 반박했다. 후보들 입장보다는 내 주장이 옳으니 계속 가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깊어져만 가는 홍 대표 딜레마를 후보들은 어떻게 풀어 나갈까?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웃을 권리

현대인들은 많이 웃지 않는다. 웃을 일이 많으면 좋겠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특히나 몸과 마음이 아플 때는 웃긴 것을 보아도 웃어지지 않는다. 즐거운 감정이 생기지 않는 탓이다. 때로는 하루 이틀 웃지 않고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웃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웃는 법을 잊게 될지 모른다. 웃는 법을 잊은 몸과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져 신체의 병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일이 있어 웃기보다, 웃다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웃는 습관을 가지라한다. ‘웃음치료(laughtertherapy)’도 그런 것이다. 웃음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건강하고 즐겁게 해주고, 그 영향으로 몸이 건강해지도록 돕는다. 웃으면 얼굴이 바뀌고, 얼굴이 바뀌면 건강이 바뀌고, 건강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할 수 있겠다. 웃음치료의 역사는 깊다. 고대의 의사 밀레투스가 쓴 ‘인간의 특성’이라는 의서엔 ‘웃음의 어원은 헬레(hele)이고, 그 의미는 건강(health)’이라고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에 ‘웃음내시’가 있었다. 웃음내시는 임금에게 우스운 이야기를 해주거나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왕의 스트레스와 근심을 날려버리게 도왔다. 쾌활하게 웃을 때 우리 몸의 650개 근육 중 231개가 움직인다고 한다. 실제 웃음은 심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통증도 상당량 줄여준다. 20초 동안 웃으면 심장 박동이 3~5분간 3배로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 자주 웃으면 면역력도 올라간다. 근육의 자연스러운 수축과 이완 효과를 통해 근육의 유연성을 높이고 근육 피로를 푸는 데도 도움이 된다. 웃음만큼 돈 들이지 않고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명약’도 없다. 최근 중국에서 ‘웃을 권리’를 주장하며 전국 곳곳에서 차량 시위가 벌어졌다. 수백만명의 네티즌들에게 웃음을 주던 동영상 앱 ‘네이한돤쯔(內涵段子)’를 중국 당국이 폐쇄하자 분노한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네이한돤쯔는 웃음을 유발하는 코믹한 영상이나 황당한 상황을 담은 짤막한 동영상이 핵심 콘텐츠로, 등록된 사용자가 2천만명에 이른다.광전총국((廣電總局ㆍ미디어 감독 부처)은 “사회주의 가치관을 해치는 저속한 음란물 유통을 단속한다”는 이유로 예고없이 앱을 영구 폐쇄했다. 동영상을 보면서 낄낄대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고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앱을 보고 웃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웃을 자유마저 빼앗은 중국 당국이 큰 실수를 했다. 웃음의 가치를 몰랐지 싶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국민총행복전환포럼

1970년 1인당 국민소득 235달러. 수출 10억 달러. 자동차 등록대수 12만대 2017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수출 5천740억 달러. 자동차 등록대수 2천252만대.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다른 것은 희생해도 좋다’. 우리는 지난 50여 년간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믿고 밤낮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해왔다. 성과는 있었다.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한 만큼 우리는 행복할까? 그렇다, 라고 흔쾌히 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자연 양로원으로 변한 농촌, 유치원부터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아이들, 연애와 결혼ㆍ출산을 포기하고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 언제 직장에서 나오게 될지 불안해하는 중장년들, 홀로 쓸쓸하게 병들어가는 노인들…. 경제성장을 위해 달리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이제는 멈추고, 돌아봐야 할 때다. 성장 중독에 매몰된 사회에 제동을 걸고, ‘성장에서 행복으로’ 나라 발전의 목표를 대전환하자고 기치를 든 사람들이 있다. 경쟁력 제일주의 사회보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추구하는 ‘국민총행복전환포럼(GNH Forum)’이 얼마전 창립대회를 갖고 출범했다. 포럼은 1960~1970년대 개발독재 시대를 지나면서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해질 것’이라 믿으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나라로 성장한 현재 우리의 실상을 묻고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출산율, 가장 낮은 청소년 행복지수와 사회복지 수준, 가장 높은 자살률 등 불행이 만연한 사회로 변모한 상황을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민총행복포럼은 창립선언문에서 “우리는 오늘, 성장지상주의 시대와 결별을 선언한다. 경제 성장에서 사람 행복으로, 나라 발전의 목표를 대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성장률 O%’라는 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복 청사진’을 대통령의 제1 국정목표로 제시하고 실천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은 두 가지를 지향한다. 첫째, 행복을 위해 물질적 조건 외에 교육ㆍ환경ㆍ건강ㆍ문화ㆍ공동체ㆍ여가ㆍ심리적 웰빙ㆍ거버넌스 등 다양한 요소들이 균형있게 발전해야 한다. 둘째,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해야 한다.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과 행복을 공유하는 것이다.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출발과 함께 사회 기본 이념이 모든 분야의 균형발전, 함께하는 행복으로 전환되길 기대한다. 이젠 행복영향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깊이 인식해야 할 사안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스코어는 졌어도 농구는 이겼다

한국 프로야구 리그가 ‘심판’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스트라이크존 문제, 아웃과 세이프 문제 등 논란은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지만 심판도 사람인지라 찰나의 순간을 판단해야 하는 프로야구에서 심판들의 고충도 이해가 된다.그러나 올해는 조금 다르다. 선수들이 심판에게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항의조차하지 못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는데, 스트라이크존에 대해 항의하는 선수들이 퇴장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항의를 못하게 하는 것은 심판의 ‘권위’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물론 아이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야구에서 불필요한 항의는 사라지는 게 맞다. 그러나 문제는 규정이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이 항의했는데 어떤 선수는 퇴장시키고 어떤 선수는 그냥 넘어간다면, 그것은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 심판에 대한 논란은 프로농구에서도 발생했다. 모든 농구인들의 축제 KBL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말이다. 당시 경기 전반 내내 서울SK에 뒤지던 원주DB는 후반부터 힘을 발휘, 종료 직전 서울SK 턱밑까지 따라붙었지만, 이상범 원주DB 감독이 테크니컬 파울을 받으면서 경기는 그대로 서울SK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당시 심판은 상대선수가 트레블링이라고 항의하던 이 감독에게 테크니컬 파울을 주려다 취소했고, 이를 본 서울SK 측이 항의하자 다시 테크니컬파울을 줬다. 이러한 ‘오락가락’한 모습에 농구팬들이 분노했다. 또 당시 욕을 하지도, 인상을 쓰지도 않은 이 감독에게 경고를 줬어야 했는지, 심판이 경기에 ‘과도하게 개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경기가 끝난 후 이 감독은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스코어는 졌어도 농구는 이겼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6ㆍ13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지방선거에서 심판은 선거관리위원회라고 볼 수 있겠다. 사람들은 선거법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을 한다. 선관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이 말 한마디로 압축된다. 그래서 선관위에 당부하고 싶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권위만 내세우지 않고, 모든 후보에게 공평하고, 오락가락하지 않고, 선거에 지나치게 개입하지도 방관하지도 않는 자세를 보여 이번 선거가 모두에게 축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선거가 끝난 후 “득표는 적었지만 선거는 이겼다”고 말하는 후보는 없었으면 좋겠다. 이호준 사회부 차장

[지지대] 민심은 천심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지난 대선 주자 모두가 함께 약속한 613 지방분권개헌 국민투표가 물 건너갔다. 국회가 반드시 개정했어야 할 국민투표법 개정이 무산된 탓이다. 개헌안을 발의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 단 한 번 논의조차 안 했다며,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와 같은 비상식이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되풀이되고 있는 우리의 정치를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라는 말과 함께다. 이 같은 상황에도 정치권은 “서로 네 탓”이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그간 여념이 없었다. 뒤늦게 개헌안 살리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은 ‘6월 여야 개헌안 합의, 9월 개헌 국민투표’ 시간표를 제시한 바 있고,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도 25일 원내대표 회동을 하고서 “이른 시일 내에 국회 주도의 개헌을 반드시 성사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를 놓고 “또 정치 쇼가 시작됐구만”이라고 보는 실망 섞인, 아니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 듯 담담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정치권이 이 같은 세태를 바라보는 ‘민심’은 알기나 하는지라는 의문과 함께 말이다. 정치권에서 ‘9월 개헌’이나 ‘2020년 총선 동시개헌’ 등의 가능성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개헌하는 것마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흘러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는 말았으면 한다. 수많은 개헌의 쟁점 중 ‘지방분권’에 국한해보자. 그동안 전국 지자체를 비롯한 학계, 시민사회가 지방분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실현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이번 613 지방분권개헌 국민투표는 좌절됐지만, 포기하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국민의 뜻을 모아 모아 다시 한 번 정치권에 이를 전달하려고 하는 움직임이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은 과거 왕권시대부터 전해진다. 하물며 투표라는 참정권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실현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하에서 민심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을 터다. 정치권도 이를 존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명관 사회부장

[지지대] 최종건·종현 형제

최종건 회장과 최종현 회장. 오늘날의 SK 그룹을 만든 형제다. 형 최종건은 창업 설립자다. 동생 최종현은 기틀을 마련한 주역이다. 누가 SK 그룹의 주류인가. 간혹 이런 논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심사위원회의 고민도 거기 있었다. 수원 명예의 전당에 한 사람만 선정해야 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종건ㆍ종현 형제 선정’이다. 나머지 헌정자 6명이 개별 선정인 것과 달랐다. ‘종건ㆍ종현 형제’에만은 ‘1건 2인 선정’이라는 예외를 적용했다. ▶형 최종건의 출발은 선경직물에 견습기사다. 광복 이전에 입사해 일을 배웠다. 8ㆍ15 이후 적산(敵産)이 된 선경을 인수했다. 부품을 조립해 직기 4대를 만들었다. 이 4대가 12년 뒤 1천대로 늘었다. 1973년에는 선경석유까지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짧은 역사는 거기서 끝났다. 선경석유 설립 반년 만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48세의 젊은 나이였다. 마지막 순간, 그는 SK 역사에 남을 선택을 했다. SK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결정이다. ▶동생 최종현에게 기업을 맡겼다. 지역 사회엔 둘의 아름다운 형제애가 전해진다. 형 최종건의 아우 사랑은 남달랐다. 동생 최종현을 유학시키며 뒷바라지했다. ‘너는 공부를 많이 한 기업인이 돼야 한다’는 게 형 최종건의 주문이었다. 최종현 회장의 위스콘신대학교ㆍ시카고 대학교 경제학 학위는 그래서 가능했다. 최종현 회장도 형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세계 석학들과의 교류를 현장에 접목한 최초의 1세대 기업인이 됐다. ▶최종건ㆍ종현 형제의 정신이 곧 SK 정신이 됐다. 지역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소중하게 이어가고 있다. 1995년에 대형 도서관을 지어 수원지역에 기부했다. 최신원씨(최종건 회장 아들ㆍ현 SK네트워크 회장)는 기부왕이다. 역대 기부액 37억원으로 1위다. 세계공동모금회(UWW) 최고액 기부 클럽인 ‘1000만 달러 라운드테이블’에 가입했다. 아시아인 최초다. 경영적 손해에도 불구하고 ‘창업 고향’을 지키고 있다. 70년 된 수원 터다. ▶대기업 후세들의 일탈이 논란이다. 땅콩 회항, 물벼락 파문, 욕설 경영…. 끝이 없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인성 교육’을 말하고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 하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 농사’라 했다. 말처럼 쉽지는 않아 보인다. 본을 보일 수 있다면 제일 좋겠는데…. SK 그룹 역사에서 그런 단면을 볼 수 있다. 감동적인 형제애로 키워온 기업, 사회적 책임으로 그 정신을 잇는 2세. 이런 기업을 향토기업으로 갖고 있는 것도 시민의 행복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반타작 ‘쌀 생산조정제’

쌀이 남아 돌아 문제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은 2000년 이후 19년째 과잉 상태다. 쌀 생산량은 1998년 510만t에서 지난해 397만t으로 22.2% 줄었으나, 같은 기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37.7% 줄었다. 2000년 이후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다. 쌀 의무수입량 40만9천t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매년 30만t의 쌀이 남아돌 판이다. 시장 논리대로라면 쌀값은 진작에 폭락해야 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틀어막아 왔다. 쌀은 우리의 주식이자 식량 안보의 핵심이라는 이유에서다. 1990년대 말 자유무역으로 대부분 농산물의 수입 장벽이 헐렸으나 쌀만은 513%(2015년 이후 기준)의 높은 관세를 매기고 있다. 농가 소득을 보전해 주기 위해 각종 보조금을 주고,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과잉 공급량을 직접 사들여 비축하고 있다. 정부 재고량은 매년 늘어 올 2월 말 기준 230만t이 됐다. 문제는 정부 부담이 매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쌀 생산과잉 속 가격이 급락하면 농업인은 생계 보장을 위해 거리로 나서고, 정부는 세금으로 농업계 손실을 막아주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벼 농가를 보호하고 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들인 예산은 직불금(1조4천900억원)과 쌀 매입(7천677억원), 공공비축(2천532억원) 등 2조5천억원을 넘는다. 정부가 쌀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고육책으로 ‘쌀 생산조정제’를 실시하고 있다. 쌀 생산조정제는 벼농사를 콩 옥수수 등 다른 작물 농사로 전환하면 정부가 보조금(㏊당 평균 340만원)을 주는 제도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총 1천708억원의 재원을 투입했다.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농가 참여가 저조한 탓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올 1월 말부터 쌀 생산조정제 신청 농가를 접수한 결과 지난 20일 마감까지의 신청 면적은 목표했던 5만㏊의 65%인 3만2천500㏊에 그쳤다. 농가들이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쌀값이 크게 올라 다른 작물로 전환을 꺼리기 때문이다. 쌀은 남아도는데 쌀값은 오르니 기현상이다. 농가들에선 벼농사가 밭농사보다 익숙하고 편하다. 쌀이 과잉생산되거나 쌀값이 폭락하면 정부가 ‘보호’를 해주는데 골치 아프게 다른 작물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 쌀농사를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에도 5만㏊ 규모의 쌀 생산을 조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올해 결과를 보면 내년 역시 만만치 않다. 정부가 실패를 자초한 쌀 생산조정제는 이래저래 성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쌀 생산 대책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남북 정상 핫라인

핫라인(Hot line)은 미국과 옛 소련 사이에 개설된 긴급연락용 직통 통신선이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고 나서 1963년 7월 미국의 제안으로 정상 간 핫라인을 개설했다. 케네디와 후루시초프의 합의로 설치돼 두 사람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KK라인’이라고도 했다. 당시엔 대서양에 깔린 전용선을 통해 미 국방부와 소련 공산당 본부에 설치된 전신 타자기로 전문(電文)을 주고받아 이를 백악관과 크렘린궁에 전달했다. 현대 외교에서 정상 간 핫라인은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소통 채널로 활용돼 왔다. 미ㆍ소의 핫라인은 1967년 6월 중동전쟁이 일어났을 때 소련이 이 통신선을 이용해 미국에 평화를 위한 협력을 요청하면서 처음 사용됐다. 1990년대부터는 전신 대신 전화 통화를 더 자주 했다. 핫라인은 1966년 6월 프랑스와 소련 정부 간에 설치됐고, 1967년 2월엔 영국과 소련 정부 간에도 설치됐다. 1972년에는 미ㆍ중국 간, 동ㆍ서독 간에도 설치됐다. 한국과 중국은 작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정상 간 핫라인 가동에 합의했고, 올해 1월 핫라인으로 첫 통화를 했다. 남ㆍ북 간 직통전화는 1971년에 처음 생겼다. 정상 간 핫라인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6월에 설치됐다. 당시 ‘국정원-노동당 통일전선부’에 설치됐으나 실제 정상 간 통화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핫라인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강경정책으로 올해까지 완전히 불통상태였다. 그러다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특사의 방남을 계기로 복원됐다. 올해 1월부터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끊겼던 판문점 채널을 시작으로 군 통신선, 국정원과 통일전선부 등 남북 간 연락 채널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20일 청와대와 북한 국무위원회 간 핫라인이 개설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무실에 직통전화가 놓이고 언제든 통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 개통은 분단 70년 만에 처음있는 ‘의미있는 사건’이다. 이날 남북 실무자들은 두 차례에 걸쳐 4분 19초 동안 시험 통화를 했다. 양 정상은 판문점에서 가질 4ㆍ27 남북정상회담 전에 첫 직접 통화를 할 계획이다. 정상 간 핫라인 개통은 남과 북이 신뢰 구축을 향해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섰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 핫라인이 ‘M(문재인)-K(김정은) 라인’이 돼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간 충돌 예방은 물론 여러 현안을 놓고 대화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4월하라

학창시절 4월은 무척이나 바쁜 달이었다. 매년 4월 어린이는 ‘장애인의 달’, ‘식목일의 달’, ‘과학의 달’, ‘지구의 달’을 맞아 각종 글짓기,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갔다. 나무를 심고, 물을 아껴쓰고, 몸이 불편한 친구들 돕겠다고 원고지 쓰고,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는 장면을 스케치북에 그리던 어린이는 수 년의 4월을 걸치면서 어른이 됐다. ▶2014년 4월16일 오전, ‘세월호 승객 전원 구조’ 속보가 떴다. 어른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취재차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오보’였다. 시신이 한구, 한구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때마다 어른은 (속으로)통곡했다. 그렇게 눈과 가슴으로 깊게 새겨진 2014년 4월. 어른은 2014년 4월16일 이전에도 4월 안에는 아픈 날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4월은 잔인하리만치 아픈 달이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제주 4·3사건, 4·16 세월호 참사 4주기, 4·19혁명 기념일에 이르기까지 기억해야 할 죽음들이 많다. 국가 권력에 의한 민간인의 희생과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비극들이 존재한다고 왜 아무도 어린이에게 일러주지 않았을까.▶매섭던 북풍한설이 따뜻한 남풍에 밀려나면서 꽃피는 4월. 우리나라 날씨 중 가장 온화하고 살기좋은 때가 꽃피는 4월이라 할 만큼 따스하고 좋은 때다. 그런 4월에 수많은 죽음이 꽃이 되었고,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에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하늘의 별이 된 304명의 희생자가 별이 되어 4월을 채우고 있다.▶4월이 가기 전 어른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아홉 살 딸아이에게 ‘4월’을 알려줘야 하고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함부로 나뭇가지를 꺾지 말자,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는 그림을 그려볼까 등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숫자놀이다. 4·3, 4·16, 4·19를 가지고 더하기와 빼기를 하며 4월을 말하고, 그리고 싶다. 그래야 앞으로의 4월을 기억하며 4월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다. 아픔은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니까.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과욕보다 응원을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정현 선수가 테니스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어렸을 때 ‘약시’ 치료를 위해 당시 의사의 권유로 이뤄졌다는 것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아버지가 테니스 지도자였고, 세 살 터울의 형이 먼저 테니스를 시작한 영향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건 정현이 약시 치료를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테니스에 대한 남다른 재능이 있었기에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는 것이다.▶또한 한국 수영이 배출한 불세출의 스타인 박태환 선수 역시 유년시절 몸이 허약하고 천식을 자주 앓다가 ‘수영이 천식에 좋다’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입문했다. 그 역시 타고난 기량을 바탕으로 중학생 때 국가대표에 발탁돼 기량이 일취월장한 끝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대한민국 선수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현과 박태환의 공통점은 병 치료를 위해 유년시절에 시작한 운동이 잠재돼 있던 재능의 발견으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대개 성공한 운동 선수들의 경우 두 선수처럼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성실한 노력이 어우러져 빛을 발하는 사례가 많지만,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성공의 길을 가는 경우도 있다. ‘짝발’을 딛고 한국 최고의 마라토너로 성장한 이봉주 선수가 그러하고, 고교시절까지 평범한 선수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국제적인 축구 스타로 성장한 박지성 선수, 한 가지 기술 완성을 위해 1천번이 넘게 점프했다는 ‘피겨 퀸’ 김연아 선수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 주변에는 이들처럼 세계적인 스타를 꿈꾸며 운동하는 어린 선수들이 많다. 선수 본인의 호기심이나 운동이 좋아서 하는 경우도 많지만,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입문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얼마 전 만난 한 지인이 축구선수로 활동하는 아들을 위해 자기의 생업을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지인은 자신의 아들이 공을 잘 차는데 감독이 주전으로 기용을 안한다고 하소연했다. 이 모두가 부모의 과욕이다. ▶운동을 좀 잘 한다고 해서 모두 박지성이 되고, 정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자녀의 소질과 적성을 먼저 파악한 뒤 좌절하지 않도록 응원하며, 부모의 욕심이 아닌 본인이 목표의식을 갖고 정진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건강상의 이유로…’

교육부 간부 공무원이 자리를 옮겼다. 대입 개편안을 담당하던 실무 국장이다. 새로운 보직은 지방 대학 사무국장이다. 정기 인사철도 아닌데 이뤄진 발령이다. 누가 보더라도 좌천이다. 언론이 문책성 인사로 규정했다. 대입 개편안 혼란의 책임을 물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장관의 책임을 밑에 떠넘겼다’는 비난도 섞었다. 그러자 교육부가 해명하고 나섰다. “당사자가 건강 문제로 인사이동을 요청했다”고 했다. 정말 ‘건강상 이유’일까. ▶2012년 12월, 이런 일이 있었다. 검찰 고위직 몇 명이 갑자기 자리를 옮겼다. 대검 기조실장이던 정인창 검사장이 대구고검 차장으로, 대검 박계현 대변인이 서울남부지검 형사 2부장으로 발령났다. 잘 나가던 대검 간부들의 난데없는 좌천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항명 사건’에 대한 조치였다. 정 검사장 등이 검찰총장에게 ‘들이받았던’ 사건이다. 법무부가 출입 기자들에 설명했다. “정 검사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전출을 희망했다.” 정말 그랬을까. ▶얼마 뒤 통화했다. 짐작했지만 물었다. “어디가 많이 아프냐.” 웃으며 답했다. “아픈 데 없다.” 다시 물었다. “아파서 자청했다던데.” 더 익살스럽게 웃었다. “시골에 온 것도 억울한데, 이제 병자까지 됐다. 미치겠다.” 엄밀히 문책성 인사는 아니었다. 애초 항명이라 볼 수 없었던 일이다. 현장 검사들의 목소리를 총장에게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총장의 입장이 우습게 됐다. 그 분위기를 쇄신할 필요가 있었다. 그 대가로 정 검사장은 ‘병명도 없는 환자’가 된 것이다. ▶비슷한 용도로 ‘일신상의 이유’란 말이 있다. 의외의 인사 때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 ‘건강상의 이유’보다 범위가 넓다. 그만큼 해석의 여지도 많다. ‘여자 문제’ ‘금전 문제’ ‘송사 문제’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해석의 폭을 확 줄인 게 ‘건강상의 이유’다. ‘아프다’는 어감에서 오는 동정론도 있다. 그래서인지 자주 쓰인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아프지 않다’고 하니 그게 문제다. ▶교육부의 혼란은 이번만이 아니다. 유치원의 ‘방과 후 영어 수업 금지’ 때는 4, 5일에 한 번씩 입장을 바꿨다. 장관이 ‘수능 절대 평가 도입 필요성’이란 말을 했느니 안 했느니 논란도 있었다. 전(前)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수사 의뢰도 대상을 잘못 선정하는 소동도 벌였다. 공직사회의 ‘책임 의식’은 더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책임이 특정 계급에만 강요된다면 그건 잘못이다. 정부 부처 국장급이 언제부터 책임 전문 직책이었나. ‘위’를 보호하려고 멀쩡한 공무원들을 ‘환자’로 만드는 거짓말도 적폐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새 ‘공무원 행동강령’

‘공무원 행동강령’은 부패방지법 제8조에 근거해 대통령령으로 제정한, 법적 구속력을 갖춘 공무원 윤리규범이다. 정식 명칭은 ‘공무원의 청렴유지 등을 위한 행동강령’으로 2003년 5월 19일부터 시행됐다. 각급 기관의 공무원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 행동강령 위반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견책 등 경징계부터 파면 등의 중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 새로운 공무원 행동강령이 오늘부터 시행된다. 새 행동강령은 열 번째 개정판이다. 2016년 공무원에 대한 청탁을 금지하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된 데 이어 공무원의 행동 기준도 엄격해지는 것이다. 국민권익위는 지난해 공공기관 채용 비리, ‘공관병 갑질’ 논란 등 공직자가 지위나 권한을 남용해 사익을 추구한 사태들이 잇따라 터지자 이를 근절하기 위해 행동강령을 개정했다. 새 행동강령은 민간 부문에 대한 공직자의 부정 청탁, 즉 직무 권한이나 영향력을 행사해 민간에 알선·청탁하는 것을 금지했다. 부하 직원이나 직무 관련 업체에 개인적인 업무를 시키는 등 사적 노무를 요구하는 행위도 금지 대상에 포함했다.이 밖에도 자신 및 친인척 관련 회사와 관련된 업무를 맡았을 경우 기관장에 신고, 고위 공직자 임용시 3년간의 민간분야 활동내역 제출, 직무 관련 민간업체에 대한 자문 제공 등 영리행위 금지, 관련 기관 또는 산하기관의 공무원 가족 채용 또는 수의계약 금지, 자신 또는 가족과 직무관련자와의 금전 및 재산 거래, 계약체결 내역 신고 등의 규정을 신설했다. 이 중 공무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건 선배 공직자와의 사적인 만남을 갖지 말라는 조항이다. 새 강령은 공무원이 퇴임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소속 기관의 퇴직자와 골프, 여행, 사행성 오락을 같이하는 행위 등 사적 접촉 시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도록 했다. 퇴직 공무원과의 접촉이 ‘전관예우’ 등의 비리나 불법 유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사전 차단한다는 차원에서 만든 규정이다. 오늘부터 시행되는 새 행동강령에 퇴직 선배와 점심 약속을 잡았던 공무원들이 약속을 취소하는 사례들이 있다는 보도다. 기준이 모호해 당분간 선배들을 아예 만나지 않을 생각이라는 이도 여럿이다. 제도 시행 초기라 더욱 몸조심하는 분위기다. 한쪽에선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만나는 것까지 금지하는 건 지나친 사생활 침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반응도 있다. 일부 규정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긴 하지만 새 공무원 행동강령은 환영할 만하다. 공직윤리를 강화하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끝 모르는 재벌가 갑질

또 재벌가의 ‘갑(甲)질’ 논란이다. 또 대한항공이다. 이번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다. ‘땅콩 회항’ 사건의 주인공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동생이기도 하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지난달 16일 광고대행업체 직원을 향해 위협적인 태도로 소리를 지르고 물이 든 컵을 집어 던졌다고 한다. ‘회의중 조 전무의 질문에 해당 팀장이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소리를 지르며 질책했고, 뚜껑을 따지 않은 유리로 된 음료수병을 던졌고, 이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물을 뿌렸다’. 당시 광고대행업체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려졌다가 삭제된 글이다. 조 전무는 12일 자신의 SNS에 “어리섞고 경솔한 제 행동에 고개 숙여 사과 드린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해서는 안될 행동으로 더 할 말이 없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나 조 전무의 과거 부적절한 행동들이 연이어 도마 위에 오르며 비난 여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조 전무는 휴가를 내고 해외로 나갔다가 분위기가 심상치않자 15일 급히 귀국했다. 조 전무 사건이 시끄러워지자 언니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조 회장의 장녀인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12월 뉴욕 JFK국제공항에서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아 이륙 준비 중이던 대한항공 여객기를 돌려 세우고 사무장을 강제로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다. 이 사건으로 조 전 부사장은 구속됐고,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법원은 “돈과 지위로 인간의 자존감을 짓밟고, 조직이 한 개인을 희생시키려 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조 전무는 언니가 검찰에 출두한 날,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대한항공 자녀의 갑질은 두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조 전무의 오빠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도 뺑소니 운전과 폭언, 폭행 등 혐의로 경찰에 수차례 입건됐다. ‘조양호 회장이 기업 경영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자식농사는 실패했다’는 얘기가 틀리지 않는다. 재벌 2·3세들의 ‘갑질’ 행태가 끊이지 않는다. 해외에서도 종종 비웃음을 산다. ‘재벌’은 한국에만 있는 개념이라 외국에서 ‘chaebol’이라는 고유명사로 번역해 쓰고 있다. 물론 좋지않은 일에 주로 거론된다. 재벌가의 ‘무조건 경영세습’은 한국 기업문화의 병폐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재벌 2ㆍ3세들의 폭행과 폭언은 국민들에게 분노와 박탈감을 준다. 일탈을 반복하는 이런 사람들이 기업을 경영할 자격이 있을까. 경영에 앞서 인성교육부터 받아야 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헛소리는 더 이상 듣고싶지 않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엄마들 ‘미세먼지와의 전쟁’

“동후 아빠 미세먼지 수치 좀 봐줘요.” 지난 한 달간, 아니 거의 올 들어 아내한테 가장 많이 들은 소리 중 하나다. 요즘 아내는 자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수시로 휴대전화 어플을 이용해 동네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고 또 내게 묻는 게 일상이다.하루는 미세먼지 때문에 6살짜리 큰아들 유치원 등원 문제를 놓고 아내와 의견이 충돌했다. 유치원을 보내지 않겠다는 아내와 결석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내 의견이 맞선 것이다. 모처럼 주말을 맞아 가족들과 가까운 곳에 나가 외식이라도 하자고 하면 먼지가 이렇게 심한데 어딜 나가겠느냐며 사람 무안하게 면박을 준다. “밖에 사람들은 잘만 다니는 데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니야.”란 말에 억지로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기까지 한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미세먼지란 녀석 때문에 언쟁을 벌이며 부부싸움을 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다. 이렇듯 부부 사이도 갈라놓는 미세먼지가 오는 6ㆍ13 지방선거의 주요 쟁점으로까지 떠올랐다. 각 후보는 저마다 미세먼지 대책을 내세우며 여론몰이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남경필 경기지사는 미세먼지 줄이기 대책인 ‘알프스 프로젝트’ 추진사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 40개 사업에 마스크 무상공급 등 6개 사업을 추가했다.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미세먼지종합상황실을 설치하고 정확한 측정 강화 등을, 이재명 예비후보는 노후 경유차 운행 제한과 미세먼지 저감시설 지원 등을 내세웠다. 또 양기대 예비후보는 중국의 책임 있는 조치 요구 및 환경부지사 임명 등을 약속했다. 지난 6일 높은 미세먼지 농도 탓에 수원을 비롯한 몇몇 지역의 프로야구 경기가 전면 취소되면서 아들들과 야구장을 가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미세먼지 때문에 경기가 취소된 건 37년 만에 처음이란다. 충격적이었다. 그간 크게 문제 인식을 하지 못했을 뿐 미세먼지 문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요즘 미세먼지가 최대 이슈거리란다. 두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깨끗한 환경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미세먼지 해결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과 대책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권혁준 경제부 차장

[지지대] 내년에는 어버이날을 공식 공휴일로 하자

1907년 미국 버지니아주의 안나 자비스라는 소녀는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다녔다. 카네이션은 그녀의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한 꽃이다. 안나는 추념식에 모인 이들에게도 카네이션을 나눠주며 어머니를 기억해주길 바랐다. 안나의 동화 같은 감동 스토리가 미 전역에 전해지면서 의회는 1914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했고 이후 세계 각국으로 전파됐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때로 기억한다. 선생님의 말씀과 손동작을 따라 준비해 온 빨간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접었다. 서툰 솜씨 탓인지 꽃 모양이 참 어수룩하고 볼품없었다. 하지만 뿌듯한 마음에 학교를 마치고 한걸음에 집으로 뛰어가 어머니에게 카네이션을 드렸다. 환하게 웃으시며 흐뭇해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어느덧 중년이 됐지만 어버이날은 가슴이 먹먹하다. 일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네요라고 안부전화를 드리지만 어쨌든 게으름 탓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버이날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카네이션이다. 왜 많은 꽃 중에서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게 된 걸까. 바로 ‘모정’, ‘사랑’, ‘부인의 애정’이라는 꽃말 때문이다. 각국마다 카네이션의 의미는 다르지만 부모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담는다. 우리나라는 1956년 5월8일을 ‘어머니 날’로 정했다. 이에 서운함(?)을 느낀 아버지들이 ‘아버지의 날’도 제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자 1973년 ‘어버이날’로 변경했다. 어제(11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올해 어버이날은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에는 최대 나흘 황금연휴지만 휴가나 소비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정부는 국내 소비 진작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임시공휴일을 지정한 바 있기에 공감이 된다. 비록 임시공휴일로 지정이 안 됐지만 어버이날과 카네이션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따뜻한 포옹과 함께 부모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자. 365일 중 어버이날은 누구에게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든 가장 중요한 날이다. 내년에는 다른 휴일을 줄여서라도 공식 공휴일이 됐으면 한다. 김창학 경제부장

[지지대] 남경필·이언주 ‘식사’

‘아는 형님’의 문자다. ‘점심을 ○○○(호텔)에서 먹는데, 다른 방에서 남경필 지사와 이언주 의원이 나와. 선거 앞두고 합종연횡? 하여튼 맘 편히 밥 먹을 데가 없네.’ 날짜는 식목일 4월5일이고, 수원의 유명 호텔 중식당이다. 남 지사는 자유한국당 후보, 이 의원은 바른미래당 예비 후보다. 두 정당의 연합은 이번 선거 최대 관심사다. 하필 이런 때 두 경쟁자가 식당에서 목격됐다. ‘아는 형님’ 눈에도 기삿거리로 보인 모양이다. ▶정치인의 밥 한 끼라는 게 그렇다. 매력 있는 취재 거리다. 비공개 밥 자리라면 더 그렇다. “왜 먹었느냐” “무슨 얘기를 했느냐”며 질문이 따라붙는다. 돌아올 답변은 대개 싱겁다. “잘 아는 사이에 밥 한 끼 했다”거나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고 한다. 곧이곧대로 믿을 정치 기자들이 아니다. 대화를 추측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정치인의 밥 자리는 그만큼 ‘사건’의 출발인 경우가 많다. 구상에서 실행으로 옮겨가는 획기적 전환점일 수 있다. ▶아예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밥상’도 있다. 2015년 7월,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초청했다. 유승민 원내 대표 축출로 서먹할 때였다. 찻잔과 물컵만 덩그러니 놓였다. 여당 대표에게 내놓기엔 초라한 접대였다. 1년 뒤, 이번에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초청했다. 서민은 구경도 못할 코스 요리가 차려졌다. 송로버섯, 케비어, 바닷가재, 샥스핀…. 두 대표가 받은 밥상의 차이가 곧 기사(記事)였다. 박 대통령은 속내를 그렇게 밥상으로 표시 냈다. ▶‘합종연횡’ ‘한국당 남경필 후보와 바른미래당 이언주 예비 후보의 단일화 논의’. 비공개 밥 자리를 보고 내린 ‘아는 형님’의 해석이다. 신문 좀 읽는 시민이라면 다 그렇게 봤을 거다. 그런데 정작 둘의 대화를 확인할 길은 없다. 남 지사든, 이 의원이든 속 시원히 답해 줄 리 없다. ‘단순한 만남’ ‘오래된 약속’…. 그것도 아니면 ‘노 코멘트’(말할 수 없다)…. 이게 밥 자리 취재의 한계다. ▶6개월 전 쓴 글이 있다. ‘남경필式 판짜기 정치’(2017년 10월 25일자 김종구 칼럼)다. ‘남경필은 사전에 선거판을 잘 만든다’ ‘한국당 후보판도 만들어가고 있다’. 당시는 홍준표 대표가 ‘절대로 南은 안 받는다’라며 이를 갈 때다. 그 후 6개월, 실제로 남 지사는 후보가 됐다. 우연일지 몰라도 맞았다. 그 논리라면 남 지사는 또 다른 판을 만들고 있지 않겠나. 아마도 그 판은 범(凡) 보수 단일화일 것이라. 성미 급한 인간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 마감 바쁜 기자는 ‘자장면 점심’ 보고 ‘단일화 논의’라고 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수도 사용량 ‘0’

지난 6일 충북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41세 여성이 4살 짜리 딸과 함께 숨진 지 4개월여 만에 발견됐다. 경찰은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12월 수도 사용량이 ‘0’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넉 달 전쯤 정씨 모녀가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파트 우편함에는 카드 연체료와 수도요금ㆍ전기료 체납고지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녀의 죽음은 관리비가 수개월째 연체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관리사무소 관계자에 의해 발견됐다. 현장에 남겨진 정씨의 유서에는 “남편이 숨진 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혼자 살기 너무 어렵다. 딸을 데려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씨의 남편은 지난해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얼마 후 친정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숨질 당시 빚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정씨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는 외부와 접촉이 거의 없었다. 아파트의 이웃 주민들은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대화를 한 적은 없다” “아파트 주민과 왕래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이웃들은 “서로 알고만 지냈어도 이렇게까지 늦게 발견되지 않았을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정씨 모녀 사망 사건은 2014년의 송파 세 모녀 사건과 여러모로 닮았다. 당시 서울 송파구의 지하에서 살던 60대 노모와 두 딸이 생활고 끝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며 현금 70만원을 넣은 봉투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가 복지 시스템을 점검하고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정씨 모녀 사건은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 받는 이웃이 얼마나 많은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채 하루하루 어렵사리 살아가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은 아직도 취약하다. 시민단체 빈곤사회연대는 지난 2월23일 ‘송파 세 모녀 4주기 추모제’를 열어 이런 점을 꼬집은 바 있다. 이 단체는 “복지 대상자 선정 기준이 까다로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며 “송파 세 모녀의 죽음으로부터 4년이 지나고 정권도 바뀌었지만, 복지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증평 모녀와 같은 비극적인 죽음이 더 이상 없도록 좀 더 촘촘하고 세심한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관리비나 수도요금ㆍ전기료가 몇개월 밀리면 주민센터에 알리는 시스템을 갖추는 등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죽음을 맞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이번 사건도 행정과 이웃의 관심이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상태의 비극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적당히 둘러댄 사과

2009년 8월 미국 샌디에이고 고속도로에서 렉서스 ES350에 탄 일가족 사망 사고가 있었다. 가속페달 결함으로 차가 질주하면서 시속 190㎞로 충돌했다. 도요타는 운전 미숙을 탓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3개월 뒤 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을 했지만 차량 결함은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의회는 청문회를 여는 등 미국 정부가 압박했다. 도요타는 2010년 1월 가속페달 문제를 인정하며 또다시 리콜을 했고, 침묵을 지키던 아키오 CEO는 청문회장에서 울먹이며 사죄했다.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였던 도요타는 2011년 4위로 내려앉았다. 미 시카고에서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사람이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1982년 10월1일 지역 일간지에 실렸다. 존슨앤존슨은 즉시 위기관리팀을 구성하고 시카고의 모든 마트에서 타이레놀을 전량 리콜했다. 회사 측은 주요 매체에 ‘경고! 가족과 삶을 지키기 위해 타이레놀을 절대 복용하지 마십시오’라는 광고까지 냈다.연방수사국(FBI)과 식품의약처(FDA)는 청산가리가 약국 유통과정에서 들어갔다는 결론을 내렸다. 존슨앤존슨은 미 전역으로 리콜을 했고, 이후 제품을 변조할 수 없게 3중 포장된 타이레놀 제품을 다시 판매했다. 10주가 걸렸다. 7%까지 곤두박칠 쳤던 타이레놀 시장 점유율은 3년 만에 예전 수준인 35%를 회복했다. 도요타 사례에서 보듯 ‘때늦은 사과’는 위기 상황을 악화시킨다. 반대로 존슨앤존슨은 초기 적극적 대응과 솔직함이 소비자들에게 ‘진솔한 기업’이란 메시지를 줘 빠른 시간에 위기를 극복했다. 어느 기업이나 위기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와도 ‘나쁜 기업’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주지 않는게 중요하다.그러려면 진정성 있는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때늦은 사과, 적당히 둘러댄 사과, 반성 없는 사과는 역효과를 불러온다. 2014년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도 그랬다.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댄 입장문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조현아 부사장의 복귀설이 나오자 아직도 여론은 싸늘하다. 최근 페이스북의 추락이 끝이 없다. 전 세계적 파문을 낳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오랜 침묵과 책임 전가, 불충분한 사과가 화를 키우고 있다. SNS에선 ‘#deletefacebook’ 해시태그를 다는 페이스북 삭제운동이 한창이고, 경제적 타격과 기업 이미지 훼손도 심각하다. 저커버그는 10∼11일 미국 상·하원 증언대에도 선다. ‘적당히 둘러댄 사과’나 ‘진정성 없는 사과’는 결국 자신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자기 함정의 계절

제7회 6·1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당 간, 후보 간 선거전이 뜨겁다. 지방선거 때마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예비 후보들이 자기가 빠질 함정 파기에 여념이 없다. 상대후보 비방, 음해부터 지키지도 못할 공약 남발, 불법 선거운동에 불법 선거자금 동원 등등… 할 수 있는 자기 함정 파기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기를 쓴다. 지난 선거까지 그랬고 이번 선거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을 써야 승리할 수 있고, 뒤탈도 없을 것으로 굳게 믿으며 말이다. 내가 빠질 함정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벌써 인천 정가에는 실현 가능성 떨어지는 공약이 남발되고, 상대후보에 대한 흑색선전, 금전 가짜뉴스 등이 나돌고 있다. 인천시장 예비 후보들은 한결같이 원도심 활성화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업성 부족 등으로 수십 년째 제자리인 원도심의 조기 활성화 가능성은 희박하다 못해 없다시피 하다. 정부 주도로 추진 중이거나 구상 수준의 철도망 사업, 대규모 개발사업 등을 모두 내 공약 사업을 둔갑시킨다. 같은 사업을 놓고 3~4명의 시장 예비후보가 모두 자기 공약이고, 자기가 사업을 마무리한다고 큰소리친다. 기초단체장이나 시의원, 구의원이라 해서 공약 사업 규모가 축소되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도 우리 동네에 있으면 내 공약이고, 시비 사업이라도 우리 집 앞이면 내가 만든 사업이다. ‘숟가락 얹기 식’ 공약 남발이다. 차라리 선거에 떨어지면 잊혀지겠지만, 당선되면 감당 못할 공약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원히 감춰질 것으로 믿는 불법 선거와 검은 선거자금이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자기들 함정을 열심히 파고 있는 것이다. 후보자 주변이 함정 투성이라면 유권자들 역시 좋은 일꾼을 골라 뽑는 선택의 즐거움보다는 덜 나쁜 후보를 골라내야 하는 고충이 클 수밖에 없다. 많은 유권자가 “이~그 이놈의 선거 빨리 끝나야지 원”하며 혀를 차는 이유다. 후보들이여. 4년 지방선거에서 자기 함정에 빠져 아직까지 곤욕을 치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라.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양질의 응급 의료서비스

지난해 12월 겨울만 되면 코를 훌쩍거리는 아들에게 코 세척을 시도했다. 그날 밤 아들은 귀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포털사이트에 ‘코 세척 후 귀 통증’을 검색했다. 코 세척을 하다가 압력이 너무 높으면 귀로 물이 들어가 염증을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검색됐다.아들을 데리고 가까운 수원의료원 응급실을 찾았다. 1분가량 대기한 후 당직 의사가 진료에 들어갔다. 당직 의사는 “우리 병원에는 이비인후과가 없어서 전문적 치료가 어렵다”고 말한 후 아들의 귀를 봐줬다. 이때 간호사는 아내에게 원무과에 가서 접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사이 진료는 계속 이뤄졌고 당직 의사는 귀에 염증이 있으니 항생제 주사와 약을 처방하겠다고 말하고 날이 밝으면 이비인후과에 가라고 안내했다.이 모든 과정이 불과 30여 분 만에 끝났다. 최근 아들을 목욕탕에 데리고 갔다가 귀에 또 탈이 났다. 귀에 물이 들어가 심야에 통증이 발생한 것이다. 수원의료원에 이비인후과가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수원의료원보다 당연히 질 높은 응급 의료서비스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이 크게 빗나갔다. 환자를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원무과에 접수를 먼저 해야 했고 환자가 많아 대기하는 시간만 30여 분에 달했다.아들이 고통을 호소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막상 소아과 당직의사도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아니었고 항생제 약을 받는데 1시간 이상 소요됐다. 수원의료원보다 시간도 4~5배 이상 소요됐고 비용도 3배 이상 들었다.얼마 전 한 지역 정치인이 SNS를 통해 발에 염증이 있어 아주대병원 응급실을 갔다가 환자를 장시간 방치했다며 불만을 토로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가벼운 응급 상황(?)이면 가까운 중소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댓글을 남겼다.막연히 대학원병원 응급실의 의료서비스가 좋으리라 생각하고 무조건 그곳을 찾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환자의 상태가 어느 정도 위중한지 따져보고 그에 맞는 응급 의료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이 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길이다. 최원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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