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근로시간 단축

신세계그룹이 내년 1월부터 근로시간을 단축해 주 35시간 근무제로 전환한다고 8일 밝혔다. 주 35시간 근무는 유럽 및 해외 선진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근무형태로, 국내 대기업에는 처음 도입된다. 주 35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 신세계 임직원은 하루 7시간을 근무하게 된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9-to-5’가 실현되는 것이다. 장시간 근로, 과로 사회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근로문화를 획기적으로 혁신해 임직원들에게 ‘휴식이 있는 삶’과, ‘일과 삶의 균형’을 과감히 제공, 쉴 때는 제대로 쉬고 일할 때는 더 집중력을 갖고 일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겠다고 신세계는 설명했다. 근로시간이 단축되지만, 임금 하락은 없다. 신세계의 파격 발표에 유통업계는 환영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국내 유통업계 현실을 감안할 때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 정부 정책 기조에 코드를 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고 보는 시선도 있다.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휴일근로까지 포함한 법정 최대 근로시간은 주 68시간이다. 우리의 연간 근로시간은 지난해 기준 2천69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300시간 이상 초과해 중하위권인 31위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OECD 선진국 수준인 1천800시간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1주일에 최장 52시간 근로만 허용하자’는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재계에선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도 생산 수준을 유지하려면 추가 고용이 필요하고, ‘주 52시간 근로’ 취지에 따라 휴일근로에 더 많은 수당을 줘야 해 기업 입장에선 추가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 특히 제조업과 중소기업에 이 추가비용의 70%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돼 해당 업체들은 ‘초긴장’ 상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근로시간 단축의 비용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주 최장 근로 52시간 제한’ 규정이 실행된 뒤 기업이 현재 생산량 유지를 위해 추가 부담하는 비용은 연간 12조3천억원에 이른다. 지금도 구인난을 겪는 중소기업은 ‘비용추가 부담’과 ‘인력확충 어려움’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다. 때문에 획일적 근로시간 조정을 강행하기 보다 업종ㆍ규모로 나눠 단계적으로 시행하거나 개별 기업 노사가 근로시간 합의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재량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삼성이 시도했다 여러 부작용에 흐지부지된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제도 도입에 그칠 게 아니라 전반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호스가드 근위병

영국 런던 시내에는 많은 유서 깊은 장소들이 있다.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ㆍ넬슨 제독의 동상이 우뚝 서 있음)을 기점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거주하는 버킹엄 궁, 런더너들의 휴식을 제공하는 왕립공원 세인트 제임스 파크(St. James’ Park)를 지나면 그 옛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 제국 시절 로열 패밀리의 안위를 책임 지던 호스가드(Horse Guard)를 만나볼 수 있다. 매일같이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이 곳에서는 멋진 제복을 차려 입은 근위병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다부진 체격의 근위병들은 자신이 근무를 서는 그 시간 동안 어떤 상황이 연출되더라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일요일(3일) 새벽 인천 영흥도 앞바다에서 또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해상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다. 휴일을 맞아 낚시를 하기 위해 배에 탔던, 그리고 그 배를 운항하는 선장을 포함해 15명의 소중한 생명들이 차디찬 물속에서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희생했던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무색하게 하는, 어찌 보면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고였기에 가슴이 더 아픈 것 일지도 모르겠다. #급유선 명진 15호(336t) 선장과 갑판원이 지난 6일 밤 구속됐다. 구속 사유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통상 급유선 운행 시 새벽이나 야간 시간대에는 2인 1조로 당직 근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조 당직자는 전방을 주시하며 위급 상황 발생 시 선장에게 알리는 보조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갑판원은 해경 조사에서 “몸이 좋지 않아 뜨거운 물을 마시기 위해 조타실을 비웠다”고 진술했다. 자신의 직무를 져버린 것이다. #호스가드 근위병도 사람이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직무에는 충실하다. 그리고 그 행동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운항 전 병가를 냈을 수도 있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보온병에 물을 담아 갈 수도 있었다.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자신의 직무태만이 결국 소중한 목숨만 앗아간 셈이다. 호스가드 근위병의 자부심이 아쉬운 대목이다. 김규태 사회부 차장

[지지대] 명함용 체육단체장

경기도체육회에는 70개의 회원단체가 있다. 이 가운데 정회원단체는 48개, 준회원단체 9개, 인정단체 5개, 등록단체는 8개로 구분돼 있다. 각 단체들은 회장단을 비롯한 이사 등 임원들의 찬조금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도체육회ㆍ중앙경기단체의 보조금 등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일부 단체는 선수ㆍ동호인 등록비, 승단(품) 심사비 등으로 재정을 충당한다. 전국체전과 생활체육대축전 등 전국종합대회 출전비용과 대회 운영비, 행정지원비 등 보편적으로 지원되는 상위 기관의 보조금을 제외하면 경기단체들의 가장 큰 재원은 회장단 출연금이다. ▶이에 각 경기단체들은 임원 선출 시기만 되면 ‘재력 있는 회장님 모시기’에 혈안이 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과 관선시대에는 힘 있는 기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체육단체장 영입이 수월했었다. 하지만 문민시대와 민선 지방자치시대가 도래하면서 단체장 영입은 훨씬 어려워졌고, 이마저도 지난해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기업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36년을 경기도 육상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삼성이 올해를 끝으로 손을 떼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와중에도 일부 종목들은 경선을 통해 단체장을 뽑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언뜻 보기에는 ‘불황 중 호황’인 행복한 고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경기단체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세력 다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에 따른 무리수도 뒤따른다.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약속한 찬조금을 내지 않아 단체 재정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다. ▶회장들의 유형을 보면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먼저 회장직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범형’이 있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출연금은 적지만 다른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해 단체 운영이 원활토록 하는 ‘능력형’, 경제적 능력은 부족하지만 실무에 밝고 활동성 있게 단체를 잘 이끄는 ‘실무형’이 있다. 반면, 경제적인 지원능력과 활동력도 없으면서 오직 개인의 명예만을 추구하는 ‘명함용 회장’이 있다. 대개의 경우 ‘명함형’은 다른 유형들에 비해 상위 단체에 요구하는 것과 불평불만이 유독 많다. 회장으로서 자신의 핸디캡을 감추기 위함이다. ‘체육웅도’를 자부하는 경기도에 있어서 발전을 저해하는 명함용 체육단체장은 더이상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게 대다수 체육인들의 생각이다.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이념과 공무원 數

마가렛 대처가 영국병을 치유했다. 논쟁이 필요 없는 평가다. 그 대처리즘의 중심에 ‘일하는 영국’이 있다. 복지 확대로 대변되던 노동당 세상을 뒤집었다. “단돈 1페니도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구호로 국민을 이끌었다. 대처 스스로 본(本)을 보였다. 공직 부문 다잡기였다. 우군(友軍)이라 할 공조직부터 칼을 댔다. 탄광 노조와의 일전이 상징이었다. 20여 개의 국영 탄광을 폐쇄했다. 2만 명을 해고했다. ▶대처의 ‘공직 잡도리’는 임기 내내 지속됐다. 집권 초기에는 무능ㆍ부패ㆍ부정 공무원 퇴출을 밀어붙였다. 이후에도 공무원 수 감축 정책을 계속했다. 대처 정부 12년 동안 줄어든 공무원만 10만명이다. 국민들이 이런 대처를 ‘철의 여인’이라고 불렀다. 공직사회와 노동계는 물론 다르게 불렀다. ‘악랄한 미녀’. 대처리즘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라 부른다. 너무 어렵다. ‘공직 군기잡기와 공무원 자르기’가 쉽다. ▶이명박 정부도 비슷하게 갔다. ‘철밥통 공무원’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2008년의 지방자치단체 조직개편안이 그랬다. 지방 공무원 인건비 5%를 줄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1만명을 감축하라고 지방에 권고했다. 말이 권고지 재정 패널티를 앞세운 명령이었다. 그렇게 경기도에 하달된 명령이 ‘1천393명 감축’이었다. 국민은 반겼다. ‘공무원 잡도리’라는 게 원래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영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대중성 높은 메뉴다.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1만2천명 증원을 계획했다. 야당이 반대했다. 결국 9천475명으로 타협됐다. 타협안 속에는 몇몇 복지 예산이 섞여 있다. 아동 수당이 신설되고, 기초연금이 5만원 오른다. 자유한국당이 난리다. 공무원 증원과 법인세 인상만 공격한다.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며 반대한다. ▶정말 그런가. 공무원 증감이 ‘돌이킬 수 없는 정책’인가. 영국에서는 진보가 늘렸지만, 보수가 줄였다. 한국에서는 보수-이명박 정부-가 줄였지만, 진보-문재인 정부-가 늘리고 있다. ‘언제든 돌이킬 수 있는 정책’이다. 이걸 모를 한국당이 아니다. 그런데도 유독 공무원 증원에 매달리며 ‘나라 망할 정책’이라며 호들갑이다. ▶이러는 사이 진짜배기 논쟁이 사라졌다.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예산들이 구렁이 담 넘듯 가고 있다. 현금으로 퍼주는 복지 예산이다. 신설되는 아동수당, 인상되는 기초연금, 폭주하는 최저임금. 이번에 결정되면 ‘영원히 뒤로 갈 수 없는’ 예산이다. 그토록 나라가 걱정이라면 이걸 논쟁해야 하는데…. 말 한마디가 없다. 하기야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퍼주기 정치 앞에 이념 정치가 굴복한 게 어제오늘의 일인가. 김종구 주필

[지지대] 주취감형<酒醉減刑> 폐지

조두순 사건은 2008년 12월 안산의 한 교회 화장실에서 조두순이 8세 여아를 강간 상해한 사건이다. 당시 피해 아동은 이 사건으로 생식기와 항문, 대장의 80%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고, 조두순은 징역 12년, 정보공개 5년, 전자발찌 착용 7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1심 재판부는 조두순이 만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 ‘심신미약’을 사유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조두순은 재판부에 “만취를 이유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나영이(가명) 사건’의 조두순이 2020년 12월 출소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난달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주취감형(酒醉減刑·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형벌을 줄여주는 것) 폐지’ 청원 참여자가 3일 21만명을 넘어섰다. 청와대가 공식답변키로 한 기준선인 ‘한 달 내 20만명’을 충족시킨 것이다. 청원자는 “주취감형으로 인해 조두순이 15년 형에서 12년 형으로 단축됐다”며 “술을 먹고 범행을 한다고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봐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행시 음주 상태를 입증하기 힘들다’, ‘형법 무시 행위가 증가한다’, ‘선진국은 음주 제재가 많이 존재한다’고 했다. 잔혹한 범행 후 흉악범들은 조두순처럼 재판부에 ‘범행 당시 음주’를 주장하고 있다. 2010년 서울의 학교에 침입해 초등학생을 납치한 뒤 성폭행한 김수철은 “나는 맥주를 마시면 성욕을 느낀다. (범행 당시에도) 술에 취해 경황이 없었다. 술이 원수다”라고 진술했다. 2011년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을 시도하려다 안되자 살해한 오원춘도 “난 술을 즐기고 범행 날도 술을 먹고 외로움을 느끼다가 멀리서 피해자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숨어 있다가) 일부러 넘어뜨렸다”라고 진술했다. ‘술을 마시고 우발적 범행’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형을 감해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정서다. 2012년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강간, 폭력, 살인 등 취중상태 범죄에 대한 감형 기준을 강화했다. 국회도 2013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을 개정해 음주로 심신장애 상태였다고 해도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경우 감형을 제한하도록 했다. 미국과 영국에선 만취해 저지른 범행은 원칙적으로 감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들 나라는 판례상으로도 ‘주취는 범죄의 변명이 될 수 없다(Drunkness is no excuse for crime)’는 원칙이 있다. 주취감형 폐지 청원에 청와대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젊은 치매

몇년 전 한 방송에서 서른 살에 유전성 치매에 걸린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이 공개된 적이 있다. 10분마다 기억이 흐려져 직장은 물론 일상생활도 불가능해 집 안의 화장실도 못 찾을 정도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려 동네 공원에서 보름 동안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다. 서른살 치매 청년과 같이 20~30대 치매는 유전적 요인이 강하다. 뇌 기능이 손상돼 걸리게 되는 치매는 현재로서는 병의 진전을 늦추는 정도밖에 할 수 없어 젊은 나이부터 신경 써 관리하는 것이 좋다. 치매는 대표적 노인성 질환이지만 노인만 걸리는 병은 아니다. ‘젊은 치매’를 앓는 청·장년층 환자도 늘었다. 의학계에서는 만 65세 미만 치매를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발병한 ‘초로(初老)기 치매’로 판단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병원을 찾아 진료받은 치매 환자 42만4천239명 중 1만9천665명(약 4.6%, 남성 8천724명·여성 1만941명)이 초로기 치매 환자였다. 30~50대 환자도 2006년 4천55명에서 지난해 8천521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실제 병원 신경과엔 심한 건망증이 단순 건망증인지 초로기 치매 전조 증상인지 알아보려고 검사를 받는 40~50대가 많아졌다고 한다. 특별한 발병 원인이 생겨난 게 아니라 치매에 대한 전반적 관심이 늘면서 잠재돼 있던 환자들이 병원을 찾고, 이에 따라 초로기 치매 환자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전체 치매 환자 중 약 84%는 노화와 유전적 요인으로 발병하는 알츠하이머 치매다. 하지만 나이와 큰 상관없이 뇌출혈·뇌졸중 등 뇌 질환 후유증으로 생기는 ‘혈관성 치매’, 머리에 잦은 타박상을 입는 권투 선수처럼 외부의 물리적 충격으로 생기는 ‘외상성 치매’도 있다. 지나친 음주로 뇌세포 손상이 누적되면서 발병하는 ‘알코올성 치매’도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과음으로 필름이 끊기면서 기억을 잃는 블랙아웃 현상이 잦은 경우 알코올성 치매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폰·컴퓨터 등 전자기기에 익숙한 10~30대의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저하되는 ‘디지털 치매’도 있다. 뇌 손상으로 생기는 치매와 달리 일시적 현상으로 전자 기기 의존도를 줄이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치매 질환에 포함되진 않는다. 노인이 아닌 연령대의 치매는 드문 일이다. 하지만 20대라도 건망증이 심하고 치매 가족력, 특히 초로기 치매 환자가 있는 경우엔 조기 검진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알코올이나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소탐대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손실을 입는다’는 뜻이다. 중국 진(秦)나라 시대 혜왕(惠王)이 있었다. 촉(蜀)나라를 점령하기 위해 계략을 짰는데 촉후(蜀侯)가 욕심이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신하들로 하여금 소를 조각하게 한 다음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 넣어 촉후에 예물로 보낸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을 전해 들은 촉후는 신하들의 간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진나라 사신을 접견했다. 진의 사신이 올린 헌상품의 목록을 본 촉후는 사리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백성을 징발, 보석으로 채워진 소를 맞을 길을 만들었다. 촉후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도성의 교외까지 몸소 나와 사신을 맞이했다. 그러나 갑자기 진나라 병사들은 숨겨 두었던 무기를 꺼내 촉을 공격했고 결국 촉후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촉은 망하고 보석의 소는 촉에게는 치욕의 상징으로 남았다. 촉후의 소탐대실이 나라를 잃게 만든 것이다. 북제 유주(北齊 劉晝)의 ‘신론(新論)’에 나오는 말이다. 30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0.25%p를 인상했다. 저금리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실로 6년5개월 만에 일이다. 동결을 주장한 1인의 소수의견도 나왔지만, 대다수가 인상에 찬성했다. 이런 기세라면 내년 중 1~2회 추가 인상도 전망된다. 이런 데는 일단 경기회복 기조가 바탕이 됐다. 게다가 갈수록 압박이 되고 있는 美 금리인상 등 회복세의 글로벌 경기추세의 영향이 컸다. 그동안 한은은 지루하게 계속된 경기 부진에다 1천400조에 이른 가계부채에 얽매어 꼼짝 못했다. 우선, 장기간 침체돼 온 경기가 무서웠다. 특히 어려운 가계형편에 빚 내가면서 집 사고 생계를 꾸려 온 영세 서민들의 고민도 저버릴 수 없었다. ‘소탐대실’이란 말이 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금리인상은 이에 부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더 이상 글로벌 경제에서 외톨이가 될 수 없다. 당장의 현안에 머무르다 미래를 저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동안 금리인상 시그널은 도처에서 제기돼 왔다. 상당수는 금리인상 시대를 맞춰 준비도 했을 것이다. 덩치가 너무나 커버린 가계부채가 무겁게 보이지만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각자 저금리 시대 종식에 맞춘 현명한 지혜가 요구된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대한민국 안보, 용장과 지장

북한이 29일 새벽 3시17분께 동해 상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1번째다. 내심 ‘새삼스럽지도 않다’고 여길 국민의 ‘안보 무감각’이 걱정된다. 지난 1970년 3월 북 도발에 통쾌하게 보복 응징한 용맹한 장군이 오버랩된다. 훗날 ‘풍운의 별’, ‘왕별’로 불리는 박정인 장군. 그는 함남 신흥 출신의 반공투사로 1972년 백골사단으로 불린 3사단장에 취임한다. 박 장군의 전설은 다음해 3월7일 시작된다. 철책을 맡고 있는 백골사단은 DMZ 표지판 보수를 위해 정전협정 절차에 따라 북측에 통보한 뒤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는 남북협상이 진행 중이라 상호 비방방송마저 중단했다. 그럼에도 북측은 남북 분계선 바로 앞에 GP를 설치, 대남 비난 심리전을 펴고 심지어 귀대 장병에게 기습 사격을 가했다. 우리 측은 대위와 하사 등 2명이 중상을 입었다. 휴전상황에서 총격을 가했으니 정전협정 위반이며 전쟁도발이나 마찬가지다. 박 장군은 북의 도발에 즉각 대응했다. 사단 관측기를 공중에 띄워 북한 초소에 105밀리, 155밀리 곡사포를 조준, 포격했다. 이어 연막탄을 발사해 부상 장병을 구출, 귀대시켰다. 한 걸음 더 나가 이날 밤 사단 트럭들을 동원, 전조등을 밝힌 채 DMZ 남방 한계선까지 돌진했다. 놀란 북한 병사는 혼비백산 도주하고 김일성도 급박했는지 전군에 비상 동원령을 내렸다. 이 사건은 6·25전쟁 이후 북측에 포 사격을 한 최초의 사례가 됐다. 뼛속까지 군인인 그는 그 해 4월 보직 해임, 전역했다. 그로부터 44년이 지난 13일 오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측 반자동화기인 AK-47 소총 수십 발의 총성이 정적을 깨트린다. 우리 군의 권총 소리가 아니니 장병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의 머릿속엔 ‘전쟁’이라 두 글자가 스쳤을 것이다. 후방에서 뉴스로 접하는 국민의 놀람과는 천지차이. 당시 급박한 상황에도 권영환 경비대대장은 차분한 판단과 현명하게 대응, 북한 귀순병을 무사히 후송했다. 세계는 권 대대장의 대처와 경비대대원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박 장군이 용장(勇將)이라면 권 대대장은 지장(智將)이다. 북 미사일 위협은 이제 미 워싱턴DC에 도달하고도 남을 만큼 영역을 확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가 처리하겠다”고 말했지만 대한민국의 독자적 제재가 필요하다. 김창학 정치부장

[지지대] 여배우의 고독

하라 세쓰코(原節子)는 일본의 국민 배우다. 1935년 영화계에 입문했다. 일본ㆍ독일의 최초 합작 영화 ‘사무라이의 딸’에 출연했다. 일본 패전 이후에는 ‘우리 청춘 후회 없다’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운명에 맞서는 당찬 여성 역할이었다. ‘푸른 산맥’에서는 지적이고 밝은 교사를 연기했다. 미모에 시대정신까지 겸비한 배우였다. 42세 되던 1962년, ‘주신구라(忠臣藏)’를 끝으로 세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53년 만에 일본 언론에 등장했다. 그의 나이 95세 되던 2015년 11월 초다. ‘국민 배우 하라 세쓰코, 사망.’ 사망일은 두 달 전인 그해 9월5일이다. 가나가와현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의 그레타 가르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레타 가르보는 영화 ‘마타하리’로 유명한 세기의 배우다. 1941년 갑작스레 은퇴했다. 그리고 숨지기 전까지 50년간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많이 닮은 두 인생이다. ▶영화 ‘페도라(Fedora)’는 여배우의 은둔 생활이 소재다. 빌리 와일더 감독이 1978년에 만들었다. 그레타 가르보를 모델로 삼았다는 게 영화계 정설이다. -주인공 페도라는 은막의 대스타다. 늙어가는 모습을 숨기려 외딴섬에서 생활한다. 60세가 넘어서도 30대 같은 젊음을 유지한다. 영화감독이 그를 복귀시키려 섬을 찾아간다. 뜻은 이뤄지지 않았고 주인공은 열차에 몸을 던진다.- 젊음을 지키려는 애착의 허망함으로 영화는 맺는다. ▶하라 세쓰코, 그레타 가르보, 그리고 영화 ‘페도라’. 공통점은 여배우와 세월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배우에게 늙어감은 고통일 수 있다. 세월의 뒤로 숨어 영원한 젊음으로 남고 싶어 한다. 여성의 본능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엔 고독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한때의 기억으로 남기 위해 세상과 담을 쌓아야 하는 고통이다. 하물며 그 은둔이 인기 추락과 현실 속 가난 때문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그런 추락과 가난 속에 쓸쓸히 죽어가야 한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배우 이미지(57ㆍ본명 김정미)씨가 숨졌다. ‘서울의 달’(1994), ‘파랑새는 있다’(1997) 등 수십 편의 드라마ㆍ영화에 출연했다. 젊은 누리꾼들이 사진을 본 뒤 ‘아 이분이군요’라며 알아본다. 이 중견 여배우의 마지막이 안타깝다.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서 숨졌다. 2주일쯤 지나고야 발견됐다. 하라 세쓰코, 그레타 가르보의 고독이 차라리 사치라 여겨진다. 우리나라 배우와 탤런트 10명 가운데 9명이 월수입 60만원 미만의 극빈층이라는 통계가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사회적 참사법

▲ 이연섭 논설위원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회적 참사’다. 어처구니없게도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고, 아직까지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며, 해결 과제도 많다. 이 두 사건은 각각 국회 차원의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와 특별위원회(특위)가 출범해 진상규명 활동 등에 나섰으나 여러 과제를 남긴 채 종료됐다. 피해 가족들은 여전히 해결 과제가 많다면서 제2 특조위, 제2 특위 연장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기 세월호 특조위는 지난해 6월 정부의 강제종료로 사실상 활동이 정지됐다. 당시 특조위는 세 차례에 걸쳐 특조위 차원의 청문위를 개최하고 229개의 조사과제를 채택하는 등 진상규명에 나섰지만 많은 부족함을 남기고 활동이 종료됐다. 이후 세월호가 인양됐고 유해 수색 작업도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지난 18일 희생자 305명 중 미수습자 5인의 유가족이 합동 추모식을 가졌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 많다. 특히 미수습자 5인에 대한 합동 추모식이 있던 다음날 해수부가 사람의 뼛조각을 새로 발견했음에도 은폐한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에 대한 많은 사실들이 감춰져 있는 느낌이다.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과 책임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종료된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정해진 기간이 다 되면서 종료됐다. 가족들은 특위 활동 연장을 강력 요구했으나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반대로 끝났다. 가습기 특위도 진상 규명과 피해자 구제, 재발 방지책 등 아쉬움이 너무 많다. 이달 17일 기준으로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5천918명이며, 이 중 21.6%인 1천278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피해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가 지난 24일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 참사법)을 제정했다. 사회적 참사법은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발생 원인, 수습 과정, 후속 조치 등을 규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현재진행형이라고 웅변한다. 국민적 슬픔과 공분을 불러온 두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제도적ㆍ법률적 장치가 마련돼 다행스럽다. 사회적 참사법은 2012년 5월 도입된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에 규정된 신속처리안건, 즉 패스트트랙 제도의 첫 입법사례다. 이 법이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살아있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후진적 재난의 악순환을 막는 계기도 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소방관 응원’ 크리스마스 씰

해마다 10월이면 크리스마스 씰(Seal)이 나온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점점 사라지면서 우표 옆에 나란히 붙였던 씰이 예전보다 관심이 덜해졌지만 크리스마스 씰은 올해도 새 디자인으로 발행됐다. 크리스마스 씰은 유럽에 결핵이 만연할 때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이던 아니날 홀벨이 결핵퇴치 기금 마련을 위해 1904년 12월10일 세계 최초로 발행했다. 결핵은 산업화가 본격화된 18~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 사람들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건강이 나쁜데다 작업환경이 좋지 않은 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결핵이 극성을 부렸다. 결핵은 공기로 전염되기 때문에 공장, 학교, 군대처럼 사람이 집단을 이룬 곳에서 많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전쟁 후 가난으로 결핵환자가 대량 발생했다. 정부가 결핵퇴치사업을 펼치고, 경제성장과 국민 식생활 개선 등으로 보건의식이 향상됐지만 아직도 인구 10만명당 100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중 결핵발생률, 유병률, 사망률 모두 1위다. 우리나라에 크리스마스 씰이 처음 도입된 건 1932년이다. 이후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씰은 국가 주도의 국민 성금 운동으로 확대됐다. 씰 발행량은 1997년 3천800만장에서 2006년 2천200만장으로 줄어들더니 2014년 1천59만장까지 감소했다. 모금액도 2006년 61억원에서 2014년 34억원으로 급감했다. 편지나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가 사라져 씰을 쓸 곳이 없는데다 공공기관 등에서 단체구입도 줄었고, 결핵에 대한 국민 관심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김구ㆍ유관순ㆍ안중근ㆍ윤봉길ㆍ김좌진 등 독립운동가 10인의 초상을 씰에 담은 ‘독립을 향한 열망-대한민국 독립운동가 10인’이 폭발적 반응을 보이며 온라인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 등으로 시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국가를 생각했던 독립운동가들이 국민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씰 판매가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됐다. 올해는 ‘우리시대의 영웅, 소방’을 주제로 한 씰이 나왔다. 결핵협회는 사회 전반적으로 소방관에 대한 인식 및 처우 개선 목소리가 커 씰을 통해 힘을 보태고 의미를 짚어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씰 뒷면엔 ‘대한결핵협회는 대한민국 소방관을 응원합니다’라는 응원문구도 넣었다. 크리스마스 씰 모금은 취약계층의 결핵 발견 및 지원, 학생 결핵환자 지원, 결핵균 검사, 연구, 저개발국 지원 등 결핵퇴치사업을 위해 사용된다. 올해 씰 모금 목표액은 46억원이다. 씰 한 장 구입으로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연말이면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남경필의 눈물

남경필 경기지사가 지난 9일 경기도 소방학교에서 열린 ‘제65기 신임 소방공무원 임용식’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민선 6기 경기지사 재임 기간 공식적인 자리는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도 남 지사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신임 소방공무원 임용식에서 인사말 도중 말을 잇지 못했다. 남 지사의 눈물은 2015년 12월 서해대교 화재현장에서 안타깝게 순직한 故 이병곤 소방령의 미망인이 건네준 손 편지에서 비롯됐다. 남 지사는 인사말 서두에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로 시작하는 정현종시인의‘방문객’이라는시를 낭독했다. 곧이어 남 지사는 미망인의 사연을 얘기하려는 순간 감정에 복받쳐 단상에서 돌아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야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절대로 목숨을 잃으면 안 됩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남 지사는 “철저하게 안전을 지켜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으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임용식에 참석한 399명의 경기 소방관의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눈망울이 일순간에 붉어졌다. 남 지사는 평소에도 그의 갈색 가방 속에 미망인의 손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다닌다.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남 지사는 지난해 11월 故 이병곤 소방관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병곤 플랜’을 추진했다. ‘이병곤 플랜’에는 △소방관이 행복한 근무환경 △도민을 위해 희생하는 소방관에 대한 지원 △일류장비 및 인력 확충 △지진 등 특수재난에 대한 대응능력 강화 △소방 사각지대 해소 △소방안전특별회계 설치 등 6가지 목표와 세부계획이 담겼다. 실제로 경기도는 지난해와 올해 1천299명의 소방공무원을 증원했다. 상당수 소방서가 3교대 근무로 전환됐고 노후소방차가 교체됐다. 이 같은 노력으로 소방관들의 근무환경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물론 장기적인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기도가 소방공무원 처우 개선을 위한 큰 걸음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남 지사의 말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던져 일하는 공직자가 부족한 인력과 노후화된 장비로 인해 희생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원재 정치부 차장

[지지대] 시래기

박정임 부장 무에서 나온 이파리를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말린 게 시래기다. 배추 잎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싱싱한 무에서 나온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 궁핍했던 시절, 김장철 나온 무청을 새끼에 꾀어 처마 밑에 널어두면 겨우내 요긴하게 쓰였다. 고령의 6ㆍ25세대에겐 전쟁과 가난의 상징이었다. 끼니마저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은 시래기에 된장을 풀고 거기에 보리쌀이나 찬밥 한두 덩이를 넣어 푹 끓인 시래기죽으로 긴 겨울을 버텼다. ▶허기진 배를 달래던 구황식품이 최근 웰빙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겨울철 결핍되기 쉬운 비타민 A와 C가 풍부한데다 항암효과까지 입증되면서다. 무청에 있는 칼슘 함량은 무뿌리보다 무려 열 배가량 많고, 철분과 미네랄이 풍부해 골다공증과 빈혈 예방에 좋다고 한다. 특히 말리는 과정에서 수분 함량은 크게 줄고 무기질이나 섬유질 함량은 훨씬 높아져 변비로 고생하는 여성들에게 인기다. 식이섬유소는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려 동맥경화를 억제하고 대장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일원에선 단무지용 무를 수확하면서 나온 무청을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수확 후 발생한 무청은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대로 버려졌다. 하지만, 농한기를 활용한 틈새 사업으로 시래기로 건조해 팔면서 농가마다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도산면에서 생산하고 있는 시래기는 자연건조 방식인데, 올해는 예년과 비교하면 건조시기에 기온이 낮아지면서 더욱 질 좋은 시래기가 생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래기는 밥도 되고, 죽도 되고, 국도 되고, 나물도 된다. 푹 삶은 시래기를 잘게 썬 후 들기름과 조선간장으로 밑간해 양념이 고루 배게 두었다가 쌀 위에 올려 밥을 지으면 시래기 밥이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낸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시래기를 된장과 다진 마늘을 넣고 무쳐 보글보글 끓여낸 국은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나물은 푹 삶은 시래기에 된장과 다진 마늘, 파, 들깻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고등어 같은 생선을 조릴 때 곁들여도 별미다. 때 이른 추위에 날씨마저 스산해서 그런지 온종일 뜨끈한 시래기죽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수험생 체감 공포

N은 친구다. 30년 전 전 뉴질랜드로 갔다. 십수 년 전부터는 호주시민이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옆 호텔이 직장이다. 아들 둘이 호주 유명 대학교 법대생이다. 젊은 시절 고생 덕에 생긴 여유다. 이제는 가끔 한국에 들른다. 9월 중순에도 왔었다. 국내외적으로 한참 전쟁 위기설이 돌 때였다. 호주 친구들이 걱정해 준다고 했다. ‘걱정 안 한다’고 하면 그네들이 되레 이상하게 본다고 했다. ‘군 출신-병장-이라 그러냐’는 소리도 듣는다고 했다. ▶그런 한국인 N조차 기죽게(?) 하는 친구가 있다고 한다. 레바논에서 온 이주자란다. 가족들이 모두 레바논에 있다고 한다. 레바논은 중동의 화약고다. 인접한 사우디, 이란, 바레인조차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할 정도다. 그런데 정작 ‘바레인 친구’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N이 말했다. “호주인들이 보기엔 한국인인 내가 무사태평이라겠지만, 내가 보기엔 바레인 친구가 진짜 강적이야.” 호주인, 한국인, 레바논인이 느끼는 전쟁의 체감 공포가 그렇게 다르다. ▶‘수능 핑계’는 언제나 있었다. 문제가 쉬우면 ‘물 수능’이라 핑계 댔다. 어려우면 ‘불 수능’ 핑계였다. 날이 추우면 ‘입시 추위’로, 더우면 ‘집중력 저하’로 핑계 댔다. 그런데 올해는 차원이 다르다. 핑계를 넘어서 공포다. 지진으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됐다. 여진이 이어지며 여전히 불안하다. 아직은 말들이 없다. 내일이면 터져 나올 것이다. ‘컨디션 난조’ ‘리듬 파괴’라는 핑계가 폭주할 것이다. 수능을 연기한 정부 결정에도 원성이 쏟아질 것이다. ▶오늘쯤 이런 훈계를 하는 부모들이 있을지 모른다. ‘일본 수험생들은 지진 따위엔 눈도 끔뻑 않는다. 그러니 핑계 댈 생각 마라’. 해서는 안 될 말이다. 한국은 지진이 없는 나라다.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다. 진도 6 이상 강진의 20.8%가 일본에서 발생한다. 한국인의 지진 체감 공포와 일본인의 그것이 같을 수 없다. 하물며 안 그래도 떨고 있을 수험생들이다. 난데없이 연기된 일주일이 이미 공포와 불안의 시간이었다. ▶일본은 지진으로 시험을 치르지 못한 학생만 골라 다시 치른다. 그 일정이 예비로 잡혀 있다. 재시험 문제 출제를 위한 문제은행식 시스템도 완벽하다. 우리가 배웠어야 할 지진 대책이다. 올해는 이미 늦었다. 이대로 치를 수밖에 없다. 교육부 장관도 ‘더 이상 연기는 없다’고 못 박았다. ‘지진 걱정 마라’는 훈계가 아니라, ‘지진 걱정 안 해도 될’ 제도가 필요했었는데…. 수험생들-특히 포항지역-에게 어른들이 죄스러운 올 수능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경기-서울 먼지전쟁

미세먼지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미세먼지에 급성 노출시 기침과 호흡 곤란이 발생하며, 천식이 악화되고 부정맥이 발생한다. 만성 노출시에는 폐기능이 감소하고 만성 기관지염이 증가해 사망률을 높일 수 있다.특히 심장이나 폐질환자, 아이와 노인, 임산부는 미세먼지 노출에 의한 영향이 더 크다. 미국의 일리노이지역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10㎍㎥ 증가할 때 심근경색이 있었던 사람은 2.7배, 당뇨병을 가진 사람은 2.0배 사망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우리나라 연구에서도 심부전환자의 사망위험이 약 2.5배 높았다.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자동차의 배기가스, 도로 주행과정 중 발생하는 먼지 때문이다. 서울시가 20일부터 당일(0시~오후 4시) 초미세먼지(PM 2.5) 평균 농도가 ‘나쁨’ 수준(50㎍㎥)을 넘고, 다음 날도 같은 수준으로 예상되는 경우 출퇴근 시간 시내버스, 마을버스, 지하철, 경전철을 무료로 운행하는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요금 면제는 출근 시간인 첫차 출발 때부터 오전 9시까지, 퇴근 시간인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적용된다. 서울시는 수도권 통합환승제를 적용받는 경기·인천 버스도 참여할지를 두고 수도권 지자체들과 협의를 해왔다. 하지만 협의가 제대로 안돼 서울시만 단독으로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시작하게 됐다. 서울시는 대중교통 무임승차에 따른 경기도 등 수도권 버스회사의 환승 요금 손실을 서울시 재난관리기금에서 보전해 줄 계획이다. 서울시 정책에 경기도는 불참 의사를 밝혔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대중교통 무료 운행을 연간 15일 실시한다고 했을 때 예산이 연간 1천억원을 넘어서고, 경기도는 이 중 367억원을 부담해야 하는데,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정책에 혈세를 투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의 미세먼지 정책은 포퓰리즘적 미봉책”이라고 비판하며 “경기도는 경유 버스를 모두 친환경 전기 버스로 대체하는 등 독자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대중교통 무료 운행을 실시하면서 시민들은 서울 버스는 무료로 탈 수 있지만, 경기·인천 버스는 돈을 내고 타야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통근·통학하는 인구는 2015년 기준 127만7천명이다.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미세먼지 대책이 시급하고 중요하지만 지자체 제각각 따로 펴는 정책은 실효성이 낮다. 수도권 3개 지자체의 교통정책과 맞물려 미세먼지 대책도 함께 풀어 나가야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서울시만 앞서 나간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협치가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기생충 감염

초등학교 시절 대변을 콩알만큼 채취해 조그마한 비닐봉투에 담아 학교에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 후쯤 선생님은 회충, 편충 등 기생충이 있는 아이들에게 구충제를 나눠줬다. 구충제 먹는 아이 명단에 이름이 끼어있을까 조마조마했다. 이름이 불린 아이들은 창피해 하며 약을 받았다. 1970년대만 해도 기생충 감염은 흔한 일이었다. 1971년 한국인의 기생충 감염률은 84.3%였다. 간편한 대변검사법이 도입되고 각종 구충제가 보급되면서 감염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2012년 기생충 감염 실태조사에서는 2.6%로 낮아졌다. 질병관리본부가 2014년 4만1천9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는 장내 기생충 양성률이 6.6%로 조사됐다. 1960, 1970년대 회충이 흔했던 것은 인분을 퇴비로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회충 알이 있는 대변을 거름으로 밭에 뿌리면 땅에 남아있다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퍼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후 인분 퇴비를 쓰지 않고 땅도 대부분 포장을 하면서 회충 같은 토양 매개성 기생충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줄어들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기생충은 간흡충이다. 올해 11월 현재 신고된 기생충 감염 건수는 회충 1건, 편충 65건, 요충 120건, 간흡충 841건, 폐흡충 2건, 장흡충 205건 등 1천200건이 넘는다. 전체의 70%가 간흡충 감염이다. 간흡충은 간디스토마로 알려진 기생충으로 민물고기가 매개체다. 간흡충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원인 생물체로 담석, 담도염, 담관암의 원인이 된다. 얼마 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의 몸에서 최장 27㎝에 달하는 기생충 수십 마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는 북한 병사에 대한 2차 수술 뒤 “외과 의사 경력 2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큰 기생충을 장관(腸管·소장과 대장)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귀순 병사의 키는 170㎝, 몸무게는 60㎏으로 측정됐는데, 남한 고3 남학생의 평균치(173.5㎝, 70㎏)에 못 미친다. 복강의 음식물도 대부분 옥수수였다. 북한의 지속되는 식량난 때문에 북한주민 영양상태가 나빠지면서 체격이 왜소해졌다는 보도가 실제로 확인됐다. 출신 성분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JSA 근무 군인조차 옥수수로 연명하고, 몸에 기생충이 우글거린다면 다른 부대의 식량 사정 및 건강 상태는 더 열악할 것이다. 김씨 일가의 세습 독재가 지속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몸은 쪼그라들고,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남북 관계가 회복돼 기생충 약이라도 보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최저임금 보장, 을과 을의 아웅다웅

정부의 영세사업장 근로자 최저임금 지원이 내년부터 이뤄진다. 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설왕설래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이른바 을과 을의 아웅다웅이다. 최저임금을 줬던 이들과 받았던 이들 모두 그들만의 리그에서 허덕이는 탓이다. 진정한 갑은 쏙 빠진 채로…. 이번에 간접적으로 혜택을 받는 이들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은 소상공인, 프랜차이즈 업주, 편의점주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인건비를 줄이려고 본인과 가족들이 직접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일부는 현재의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못하거나 안 한 채 근로자들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반대로 직접적 수혜자인 근로자들은 이제까지는 최저임금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고용노동부가 올 상반기 전국 대형마트,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등 사업장 3천991곳을 점검한 결과, 233곳이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다가 적발됐다. 음식점, 미용실, 주유소 등 청소년과 젊은 층이 근무하는 곳에서 최저임금을 주지 않다가 적발된 사례가 훨씬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정부가 나선 이유다. 정부가 2018년에 고용보험에 가입한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월급 190만 원 미만 근로자에게 1인당 월 13만 원까지 지원한다. 시장의 경제논리에 따라 을과 을이 아웅다웅하는 그들만의 리그에 가장 덩치가 큰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이다. 물론 국민의 혈세로 말이다. 이제껏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직접적 지원이다. 더욱이 이 같은 정책이 한시적이라는 문제 때문에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반면 사회적 최약자인 영세사업장의 근로자를 보호하는데 정부가 나선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같이 처음 시작하는 정책이기에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이제 첫걸음이다. 이를 발전시켜 다시는 을과 을의 아웅다웅이나, 이들의 애환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또 하나, 작금의 현실에 이웃집 불구경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그러나 진정한 힘을 가진 갑도 어떤 식으로든 이번 판에 들어와 함께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자 당연한 명제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말투 고치기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가 요즘 회사 다닐 맛이 안 난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올해 초 회사를 옮긴 한 선배,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선배의 말투가 그리워서라는 생뚱맞은 답변이 돌아왔다.사연인즉 그 선배는 항상 지위 고하를 떠나 상대방을 믿고 편안하게 만드는 말투로 인정받는 주인공이었다. 동료가 갈등 끝에 파기될 뻔한 계약건을 차분하면서도 힘 있고 자신을 내세우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대화로 끝내 성사시킨 일화도 있다고 했다. 그 장점 덕분인지 줄곧 실적 1등만 하다가 남들은 명예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시점에 대기업으로 스카우트됐다는 것이다. 말투는 사전적 정의인 ‘말을 하는 버릇이나 본새’를 넘어 말하는 이의 ‘감정 전달자’ 역할을 한다. 똑같은 말이어도 말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른 말투가 되고 이를 듣는 사람의 감정도 달라지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강조해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속담인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와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가 그렇다. 성경 잠언에는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멈추게 하고, 사나운 말은 노여움을 불러일으킨다’고 경고했고 ‘상냥한 혓바닥은 목숨의 나무로다’라며 좋은 말투의 가치를 강조했다.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분야별 화법 분석 및 향상 방안 연구(직장 내 대화법)’ 자료를 보면 직장 업무수행이나 지시 상황에서 말로 인해 갈등을 빚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갈등 발생은 모두 불쾌한 언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상사와 부하 관계뿐 아니라 동료 사이에도 빈번하고, 이에 직장 내 화법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80% 수준으로 나타났다. 유명 결혼정보회사가 데이트폭력이 사회문제화된 시점에 ‘연인의 말투’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 결과는 어떤 것이 좋은 말투인지 유추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당시 응답자들은 기분 나쁜 말투의 유형으로 시니컬하거나 성의없는 무시성, 직설적인, 단호한 말투 등을 꼽았다. 이를 거꾸로 실행하면 누구나 호감 느끼는 좋은 말투의 소유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전문가들은 일단 녹음기로 자신의 언어습관을 확인하고 장단점을 분석하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자신의 말은 아끼라고도 조언한다. 좋은 말투는 결국 나와 남의 말을 듣는 것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유념해야겠다. 이용성 사회부장

[지지대] 박정희·전태일-對話

인간 박정희는 대통령이었다. 가장 강력한 권력이었다. 그 권력 때문에 산업화를 밀고 나갔다. 인간 전태일은 노동자였다. 가장 초라한 미싱공이었다. 그 기술 때문에 산업화의 희생양이 됐다.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극명했던 두 삶이다. 그러면서도 비참한 마지막이 닮았다. 박정희는 믿었던 부하가 쏜 총탄에 숨졌다. 전태일은 온몸에 불을 붙이고 숨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것이 11월14일이고, 전태일 열사가 사망한 것이 11월13일이다. ▶전 열사가 박 전 대통령에 쓴 편지가 남아 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시다공이)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1970년 쓴 이 편지는 끝내 전달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답(答)이 있다. ‘매월 정기적으로 전국의 노임상태를 보고받고 있다…노동단체가 파업 등을 벌이기 시작하면 나라의 산업발전은 저해 받게 마련이나 노동단체가 나서기 전에 기업인들은 근로자의 적정임금 및 후생 등에 유의, 품질관리나 품질향상 등에도 이바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만일 부당하게 낮은 임금을 주는 기업체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해서 적정임금을 주도록 유도하라’. 1973년 6월5일, 수출공단에서 한 말이다. ▶전 열사의 편지는 박 전 대통령에 전달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는 전 열사가 숨진 뒤에 내려졌다. 시공(時空)을 달리하는 이 ‘편지’와 ‘지시’를 ‘대화’(對話)라 칭하는 건 지나친 감상이다. 전 열사는 편지에서 최저임금제, 근로시간 단축을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시에서 최저임금제, 근로 시간 단축을 거론하지 않는다. 둘이 말하는 방향까지도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박 전 대통령 지시가 전 열사 죽음에서 기인하고 있음은 추론해도 좋을 듯하다. 그만큼 전태일 분신이 정부에 준 충격이 컸다.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38년 됐다. 전 열사가 사망한 지 47년 됐다. 그 둘의 생일과 사망일이 겹치는 요즘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종로 5가 전태일 동산 앞에서 추모식이 거행했다. 상암동 박정희도서관 앞에는 박정희 동상 기증식이 열렸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박정희 추모’와 ‘전태일 추모’가 충돌했다. ‘만일 둘이 살았더라도 47년을 충돌했을까.’ 두 고인(故人)의 이름을 빌린 ‘반세기 갈등’을 보며 하게 되는 부질없는 상상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수면장애

잠이 보약이란 말이 있다. 일정시간 숙면을 해야 몸도 정신도 건강하고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잠을 제대로 못 이룬다. 잠 잘 시간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피곤함에 쓰러지듯 눕지만 잠 속으로 빠져들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면장애다. ‘2014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성인 한국인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8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잠을 가장 적게 자는 나라로 평가된다. 이마저도 얼마나 양질의 잠을 자느냐가 중요하다. 국민들이 희망하는 수면시간은 7~8시간이다. 하지만 평소 습관이 희망하는 수면시간을 채우지 못하게 한다. 늦은 시간까지 TV시청, 무의식으로 만지는 스마트폰 등으로 늦게 자는 습관이 체화돼 있다. 잠을 줄여서 뭔가 해야한다는 잘못된 강박관념에 늦게 자기도 한다. 수면장애를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스트레스 등을 받아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면 숙면은커녕 잠들기도 어렵다. 취업난에 괴로운 청년층,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 경기불황으로 얇아진 지갑에 우울한 직장인들은 잠재적 수면장애 환자다. 나이가 들수록 깊은 잠을 못자는 중ㆍ장년층, 갱년기를 겪는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수면장애가 증가하면서 수면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기동민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2012∼2016년 수면장애 진료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년 35만8천명이던 수면장애 환자는 2013년 38만4천명, 2014년 41만5천명, 2015년 46만3천명, 2016년 49만4천명 등으로 해마다 증가세다. 최근 5년간 수면장애로 병원을 방문해 진료받은 인원은 총 211만명에 달했다. 여성이 125만명(59%)으로 남성 86만1천명(41%)보다 39만2천명이 더 많았다. 연령별로는 50대가 전체의 21.1%로 가장 많았고, 이어 70대 18.2%, 60대 17.9%, 40대 15.2% 등의 순이었다. 2012년 각각 4만1천명, 2만2천명이던 30대와 20대 수면장애 환자는 2016년 각각 5만4천명, 2만8천명으로 늘어났다. 30대는 31.4%, 20대는 28.4%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수면장애 진료비로 지출한 금액은 2천352억원에 달했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국민들이 수면제에 의존해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375만명이던 수면제 복용 환자는 2015년 376만명, 2016년 395만명으로 늘었다. 수면장애가 단순한 질병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적절한 보건의료 정책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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