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학교생활기록부

학교생활기록부는 말 그대로 초중고교 학생의 학교생활 모습과 발달상황을 기록하는 문서다. 1954년도 이전까진 학적부라고 불렀다. 이후 학적부 양식이 개정되고 이름도 종합생활기록부, 학교생활기록부 등으로 바뀌었다. 학교생활기록부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학생활동 결과를 입력해 학생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자료로 상급학교 진학, 취업 등의 자료로 활용된다. 학교생활기록부를 근거로 뽑는 대학입시 전형 비중이 커지면서 일선 고등학교에서 학생부 기록을 고치는 일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학생부를 무단으로 정정하거나 조작했다가 발각된 건수가 최근 3년간 308건이나 됐다. 그렇잖아도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으로 비판받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더욱 불신을 받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최근 5년간 고등학교 학생부 정정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고등학교에서 학생부를 정정한 건수는 모두 18만2천405건이었다. 2012년 5만6천678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년 새 3.2배나 늘어났다. 올해도 1학기에만 10만7천760건을 정정했다. 기재 영역별로 보면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등을 적는 ‘창의적 체험활동’에서 10만9천18건이 고쳐졌고,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3만6천925건, 인성이나 관심사항을 적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3만6천462건이 수정됐다. 현장 교사들은 “학생부 기록이 워낙 중요해지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가 사소한 내용에도 워낙 민감해해 정정 건수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학원에서 컨설팅받은 내용을 들고 와 학생부를 고쳐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단다. 학생부를 학생과 학부모 입맛대로 수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생부 작성·관리지침에 따르면 해당 학년도 이전 학생부 입력 자료는 원칙적으로 고칠 수 없다. 하지만 기재 실수로 학생의 활동사항이 누락되는 등 수정해야 하면 각 학교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증빙자료 등을 심의해 고쳐 준다. 절차를 지킨 정정은 불법이 아니지만 정정 건수가 20만건에 달할 정도로 늘면서 학생부에 대한 신뢰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학생부는 대학입시의 핵심 전형 자료다. 학생부를 고쳐 내용을 추가한 학생은 합격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학생부를 수정하지 못한 학생은 그 반대라면 심각한 문제다. 학생부 관리가 이런 식이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수능 절대평가 도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험생 사이에 ‘학생부 기재용 스펙쌓기 경쟁’이 사실로 드러난만큼 학종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국정감사

문재인 정부에 대한 첫 국정감사가 12일 시작됐다. 예상대로 여야는 전 정권ㆍ현 정부의 ‘적폐(積弊)’를 놓고 격돌했다. 이미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보수정권 9년간의 적폐, 즉 공영방송 장악 의혹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국가기관을 통한 댓글 공작 등을 낱낱이 파헤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를 통해 국가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거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의 적폐청산 프레임에 맞서 문재인 정부를 ‘신 적폐’,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원조 적폐’로 규정하고 맞불을 놨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국정감사장은 마치 전쟁터를 연상시킨다. 언론들은 여야 간 프레임 전쟁을 혈투로까지 표현했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정기회기 중의 법정 기간에 행정부의 국정 수행이나 예산 집행 등 국정 전반에 대해 벌이는 감사 활동이다. 대상은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등이다. 올해는 701개 기관이 감사를 받는다. 전년 대비 11개 기관이 늘었다. 국정감사는 제헌국회 때 시작돼 제4공화국 당시 국정감사권이 부패와 관계기관의 사무진행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중단됐다가 1987년 헌법에서 부활했다.▶청와대를 비롯한 각 정부 부처를 감사하다 보니 흔히 야당이 주도권을 잡았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권교체로 공수가 바뀐데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아 여야 간 주도권 쟁탈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이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북핵 문제와 한미 FTA 개정협상 문제 등으로 말미암은 현 정부의 외교 안보 무능과 경제 실정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태세여서 자칫 이번에도 정치공방의 장으로 전락할 우려를 낳고 있다.▶국정감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마구잡이 증인 신청과 자료 요구, 설(說)을 토대로 한 폭로와 흠집 내기, 피감기관 장 혼내기로 일관된 모습을 신물 나게 보아온 터다. 이번에도 여야가 준비하고 있는 사안 중 상당수가 상대방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여과 없이 쏟아졌다간 불신의 골만 깊어진다. 지금 우리 앞에는 북핵 문제에 더해 미국발 통상 압력에다 경제침체, 청년 실업, 가계부채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과거를 들추고 헐뜯는 정치공세가 아닌 민생이 먼저인 미래지향적인 국정감사를 벌여주길 바란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국민 생선’ 고등어

“그 전화가 걸려 온 날 오후 명우는 딸아이 명지와 하루를 놀아 주고 오는 길이었다. 사흘째 강행군으로 글을 쓰고 있었지만, 명우의 정신은 말짱했다…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들어가려고 할 때, 수위에게 어느 여자분이 다방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때도 가을이었다.” ▶1980년대 격변의 현대사 한복판에 섰던 젊은이들의 치열한 사랑을 그린 공지영의 단편소설 고등어는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진정한 사랑은 현실에서 잠시 비켜서야만 보인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고등어라는 생선은 질곡의 시간을 보냈던 청년들에게 하찮은 것 같지만, 소중한 그 무엇을 의미한다.▶이 녀석은 200여년 전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유배 시절 기술한 자산어보에도 ‘벽문어(碧紋魚)’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몸은 길고 방추형으로 눈은 크며 기름 눈까풀이 잘 발달됐고 동공 부위는 노출됐으며 두 눈 사이는 평편하다. 위턱의 뒤끝은 동공의 중앙 아래에 이른다. 등지느러미는 2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요즘 유행하는 ‘아재 개그’ 버전으로 풀이하면 고등어는 고졸의 고학력(?) 바닷고기다. 한자로는 ‘언덕에 오르는 고기’라는 뜻으로 ‘皐登魚’라고 쓴다. 좀 생뚱맞다. 봄에 제주 성산포 근해에서 한 무리는 동해, 다른 한 무리는 서해로 올라가는 동선 때문일까. 서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성하면 동으로 올라가는 무리가 쇠하고, 동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성하면 서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쇠해진다.▶최근 우리나라 국민이 즐겨 먹는 생선 가운데 셀레늄 함량이 가장 높은 생선은 고등어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세계보건기구가 필수 영양소로 지정한 셀레늄은 노화 속도를 늦추는 항산화 효과가 높은 물질이다. 고등어를 자주 섭취하면 노화를 방지하고 성인병도 예방한다는 뜻이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고등어 등 어류 13종 620여 건을 조사한 결과 고등어의 셀레늄 평균 함량은 0.66㎎㎏으로 분석 대상 생선 가운데 함량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어가 명쾌하게 ‘국민 생선’으로 등극하고 있다. 명절이 끝나도 온갖 우울한 소식 투성이인 요즘 이래저래 반갑다.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감적호(監的壕)

1986년. ‘키가 크고 인물이 좋았던 훈련병’이 있었다. 모든 훈련에 특출했다. 제식(制式)도, 구보(驅步)도 1등이었다. 특히 사격(射擊)이 남달랐다. 20발을 쏜 1차 실사(實射)에서 20발 모두를 맞췄다. 남들이 ‘뺑뺑이’를 돌 때 감적호에 배치됐다. 동료들이 쏜 탄환의 적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깊이 파인 땅속에 몸을 숨겼다가, 사격이 끝나면 뛰어나와 표적지를 확인했다. 180명쯤 되는 중대원의 사격 점수를 그렇게 확인했다. ▶야외 실탄사격장에서 통제관의 지휘에 따라 표적을 조작하고 운영하는 병사가 감적수(監的手)다. 이 감적수의 안전을 위하여 만든 땅 구덩이가 감적호다. 소름 돋는 탄환 굉음이 스친다. 돌에 튄 탄환이 사방에서 튄다. 그런 구덩이에 훈련병을 넣어(?) 두고 표적지를 확인시켰다. 자동화 사격장이 일반화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그 훈련병의 퇴소 소감에 모두가 웃었던 기억이 있다. “훈련소에서 제일 무서웠던 때가 감적호 들어갔을 때다.” ▶1987년. 이정○ 상병. 파주시 문산읍 어느 부대 소속이었다. 그해 가을 인근 야산에서 작업하다가 실탄에 맞았다. 인접한 부대 사격장에서 날아든 총알이었다. 부대에서 그렇다고 밝혔다. 군 병원으로 이송된 뒤 곧바로 제대했고 ‘상병’은 그의 마지막 계급이 됐다. 수원 출신인 그를 몇 달 뒤 만났다. 커피숍에서 만난 그가 웃으며 말했다. “김 일병, 너 로보트 태권 브이 한번 볼래?” 걷어 올린 윗옷 사이로 ‘V’자 흉터가 끔찍하게 남아 있었다. ▶‘사격장 군기’라는 게 있다. 유독 독한 사격장에서의 군기 잡기를 일컫는 말이다. 그만큼 사격은 위험한 훈련이다. 내 실수로 죽을 수도, 남의 실수로 죽을 수도 있다. 그 시절, 혹여 사고라도 나면 그건 병사의 잘못이었다. ‘군기가 빠져서’ 발생한 사고라고 몰면 그만이었다. 총탄이 빗발치는 위험천만한 감적호에 들어갔던 ‘키 크고 인물 좋았던 훈련병’, 갑자기 날아든 총알에 가슴을 맞고 제대한 ‘이정○ 상병’. 모두 당사자 탓이라고 몰아붙였고, 그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지난달 26일 6사단에서 작업 중이던 병사가 사망했다. 군(軍)이 ‘도비탄’에 의한 사고라고 결론 냈다. 사격장 실탄이 바위 등에 맞아 ‘재수 없이’ 방향이 바뀐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유족이 항의했고 국방부 장관이 재조사를 지시했다. 그러자 군이 재수사 결과를 내놨다. 도비탄이 아니라 유탄이라고 정정했다. ‘튀어 날아온 총알’이 아니라 ‘직접 날아온 총알’이라는 것이다. 장관 지시 한 마디에 뒤바뀌어 버린 사인(死因)이다. 유족의 눈에 대한민국 군대가 어떻게 보이겠는가. 이런 군을 믿고 지금도 63만의 장병이 공포의 사대(射臺)에 오르고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추석연휴 119 전화

추석 연휴 기간 중인 지난 5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저는 소방관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한 지역 소방서 119 상황실에 근무하는 현직 소방관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여러분… 119는 부른다고 무조건 가야 하는 머슴이 아닙니다”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추석 연휴에 신고된 몇 가지 내용을 공개했다. ‘휴대폰을 산에서 잃어버렸는데 중요한 문서가 저장돼 있으니 찾아달라’ ‘다리가 아프니 집까지 데려다 달라’ ‘김치냉장고 작동이 잘 안되니 와서 봐달라’ 같은 내용이었다. 소방관이 ‘그런 사안으로는 출동하지 못한다’고 하니, 신고자가 ‘세금 꼬박꼬박 내는데 국민이 필요해서 부르면 와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며 호통을 쳤다고도 했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열흘간 이어지면서 119에 접수된 신고 전화가 평소보다 크게 늘었다. 소방 본연의 임무인 화제, 구조, 구급출동부터 당직 약국, 병원 안내 및 응급처치 안내까지 다양한 전화가 접수됐다. 이런 ‘당연한 업무’에 대해선 친절하게 응대하고, 필요하면 긴급 출동을 한다. 하지만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는 ‘민폐 전화’도 많았다. ‘술을 많이 마셨으니 집에 데려다 달라’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서 귀가가 늦는데 휴대폰 위치 추적 좀 해달라’ ‘명절 음식을 하다 손을 데었다’ 등 119를 개인 비서처럼, 가전회사 AS기사처럼 대한다. 물론 소방관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관련 법에 근거해 출동하게 돼있다. 실제 단순 출동으로 관할 소방력이 투입돼 그 관할에 분ㆍ초를 다투는 긴급출동이 생길 경우 제때 출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인근 소방력이 도착할 때까지 상황실에선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한다. 현행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허위 신고’를 하는 사람에겐 1회 100만원, 2회 150만원, 3회 이상은 200만원 등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악의적이거나 거짓 신고 이외에는 처벌할 수 없다. 소방청에 따르면 119 구조대가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했다가 응급 상황이 아니어서 그냥 복귀한 건수가 2010년 8만3천44건에서 2015년 10만9천62건으로 늘었다. 국민이 119를 너무 편하게, 때론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112에 신고해야 할 사안도 119로 하는 경우가 있다. 잦은 민원으로 소방관들이 헛걸음을 자주 하다 보면 정작 위급한 순간에 구조대가 투입되지 못한다. 그 위급한 상황이 내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119 이용은 꼭 필요할 때만 해야 한다. 소방관들의 간곡한 당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혼추족

‘혼족’이라 일컬어지는 신(新)인류가 있다.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혼자 여가생활과 쇼핑을 즐기며, 혼자 여행도 하는 등 혼자 활동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을 통칭한다.거주의 개념에서 혼자 집에 머무는 사람을 지칭하는 1인 가구와 달리 혼족은 사회적ㆍ문화적으로 보다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 의식주 활동은 물론 문화생활과 놀이, 여가활동 및 여행ㆍ자기계발 등 모든 부문에서 혼자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혼족은 1인 가구가 늘면서 더 뚜렸해졌다. 현재 우리나라 1인 가구는 530만명에 달한다. 전체 가구의 27.9%를 차지한다. 통계청은 2035년엔 76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1인 가구가 가장 보편적인 가족 형태인 2세대 가구에 육박하는 수치다.1인 가구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이어지던 전통적 가족의 형태를 깼다. 혼밥ㆍ혼술ㆍ혼영ㆍ혼놀ㆍ혼행이 더이상 독특하거나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현대인들은 ‘함께’가 아닌 ‘혼자’를 즐기거나 일상생활로 받아들인다. 취업난과 경제불황,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혼족 증가에 한몫했다. 1인 가구 급증으로 사회 트렌드가 바뀌었다. 혼족은 타인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가족보다 자신의 건강과 경험을 중요시하며 인생을 즐긴다. 취미나 자기계발 등을 위해서 과감하게 지갑을 열어 관련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래서 ‘1인’과 ‘경제’(economy)를 합친 ‘일코노미(1conomy)’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2020년이면 1인 가구를 위한 시장 규모가 120조원 정도로 성장할 것이란 예측이다. 지난 주말부터 최장 10일간의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모처럼 긴 연휴를 맞아 여유롭게 고향집에 다녀올 수도 있지만, 국내외 여행을 떠나거나 취업ㆍ결혼 등을 묻는 명절 스트레스를 피해 나홀로 명절을 보내는 ‘혼추족’도 많다. 혼추족을 위한 소용량, 간편식 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돼 경쟁이 치열하다. 한 편의점은 ‘추석반상 도시락’을 새로 내놨다.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전과 양념갈비구이, 송편, 명태식해 등으로 구성했다. 백화점 선물세트도 혼추족을 겨냥해 S백화점은 문배주, 이강주 등 전통주를 125mL짜리 작은 병에 담은 ‘술방 미니어처 세트’를 선보였다. 혼자를 여유롭게 즐기는 혼추족도 있지만 취업ㆍ결혼 등의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고향에 가지 않는 혼추족도 있다. 평소보다 급여가 높기에 연휴에 아르바이트를 뛰는 혼추족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어쩔 수 없이 혼자여서 외롭고 우울한 혼추족도 있다. 혼추족이 모두 멋있다거나 부러운 건 아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최근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조선시대 으뜸가는 침의로 추앙받는 허임(許任, 1570 ~ 1647년)과 21세기 대한민국의 뛰어난 여외과의사와의 로맨스를 다룬 명불허전이다. 한의사 허임이 실존인물이어서 놀랐고, 그가 신의 조화(造化) 속에 현대로 이동해 좌충우돌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하지만 기자가 더 흥미롭게 보는 대목은 현실과 닮은꼴인 한의와 양의계 경쟁과 첨예한 갈등, 그럼에도 두 의학분야가 융합할 가능성을 제시하는 에피소드들이다. 허임은 각종 현대 의료 장비와 수술에 감탄하고, 외과의사도 침술과 한약재의 도움으로 환자를 구하며 비과학적이라 무시했던 편견을 내려놓는다. 드라마 속 한의사와 양의사는 환자에만 집중한다. 반목 대신 더 나은 치료법을 함께 찾아, 인술(仁術)을 펼친다.▶지난해 한의사의 진단 의료기기 사용 법안을 놓고 빚어진 한의와 양의 간 갈등이 해소되기도 전에, 또 난리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 외래정액제 개선방안’ 탓이다. 만 65세 이상 노인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았을 때 진료비가 1만5천원 이하면 1천500원만 청구하는 정액제를 진료비에 따라 정률제로 전환하는 내용이다.하지만 의과에 한해서만 개선안을 적용키로 해 한의계의 반발을 샀다. 한의사들의 단식 농성, 일인 시위가 이어졌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22일 노인 외래정액제 한·양방 동시 개선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뿌린 갈등의 씨앗은 여전하다. ▶중국은 전통의학을 현대 의학과 접목하며 자국 대표 콘텐츠로 키워냈다. 2010년 중국 침구(鍼灸)는 UN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난해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발표한 ‘중국 중의학 백서’에 따르면 중의학과 중약이 전 세계 183개국에 전해졌다. 중의사가 노벨생리의학상도 탔다.프랑스에는 30여 개의 중의학 학교가 설립됐고, 독일에는 보험사의 인정받는 중의학 병원이 있을 정도로 세계화에 성공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얕잡아봤던 중의학을 이제는 부러워하는 신세가 됐다. 중의학과의 경쟁이나 국민의 건강권 확보 등 한의와 양의가 화합해야 할 이유는 많다. 보건복지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실은 스스로 각성해 상생발전의 길을 찾는 드라마와 달라도 한참 다르니 말이다. 류설아 문화부 차장

[지지대] 황금연휴가 마냥 즐겁지 않은 까닭

몇 년 전 유머러스한 글과 함께 빨간 날이 표시된 달력이 인터넷을 달궜다. 2017년, 2044년까지 꼭 살아야 할 이유였다. 내용은 이렇다. 2017년은 징검다리 휴일이 끼면 무려 10일간의 황금연휴며 2044년 역시 열흘간의 휴무가 가능하니 여행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아마도 생활이 무미건조하고 퍽퍽한 서민들에게 어린 시절 소풍을 기다리듯 그날(?)을 기다리며 즐겁게 살라는 위로인 듯 싶다. 올해 어김없이 추석 명절이 다가온 데다 하루만 지나면 그토록 고대하던 열흘간의 휴식시간이 생긴다. 긴 연휴로 이미 국내ㆍ외 항공의 예약률이 90%가 넘고 미국,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의 경우 예약률 100%를 보이며 좌석 품귀현상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연휴가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 가족, 친지 중에 있을 수도 있는 취업준비생. 일하고 싶어도 취업이 되지 않은 취준생에게는 추석연휴의 쉼보다도 친지와의 만남 자체가 불편하다. 혹여 자신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말도 결국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고용동향’을 보면 8월 취업자 증가 폭은 지난 2013년 2월 이후 최저인 21만2천명에 불과했다. 고령층을 제외한 전 연령대가 고용절벽에 가로막혔다. 특히 청년실업률이 9.4%로 8월 기준 통계로는 18년 만에 최악이다. 무엇보다 취준생을 포함한 청년층 체감실업률(고용보조지표 3)이 22.5%(114만여 명)로 1년 전보다 1%p 높아졌다. 이는 취업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년들이 ‘기-승-전-취업’을 외치는 까닭이다. 정부가 지난달 공무원 충원을 위한 원서 접수를 시작했다. 인원은 2천500여 명.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 있는 숫자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은 청년들로 하여금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 신분의 매력이 자칫 청년실업을 가중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최근 경기도와 성남시도 청년 일자리 정책을 놓고 ‘포퓰리즘’ 논쟁을 벌였다. 취준생에게 정치적 잣대는 무의미하다. 정책 판단은 청년들의 몫이다. 김창학 정치부장

[지지대] 정조 소통 222년 뒤

제54회 수원화성 문화제가 끝났다. 정조대왕능행차도 끝났다. 서울에서 화성에 이르는 59.2㎞에서 재연됐다. 4천400여명이 참가했고, 700여필의 말이 동원됐다. 1795년 이후 222년 만에 완벽 재연이다. 행사가 끝나고 염태영 수원시장이 감사를 표했다. 폐막일 밤 11시7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다. ‘수원시민에 감사한다’고 했다. 플래시몹 참가 시민들, 쓰레기 치운 청소년들, 교통 안내 봉사자들에도 꼼꼼히 감사를 표했다. ▶글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님, 채인석 화성시장님 고맙습니다.” 수원시민에 전하는 글이다. 굳이 두 시장의 실명을 넣어 감사를 표했다. 그럴 만도 하다. 이번 완벽 재연에는 서울시와 화성시의 참여가 컸다. 특히 화성시의 참여가 화룡점정이었다. 이번 행사를 위해 3억여원의 자체 예산도 들였다. 행사를 주관한 염 시장이 특별히 감사할 만했다. 그 마음을 팔로어 2만7천명인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그런데 두어 시간 전에도 비슷한 ‘인사’가 있었다. 수원 창룡문에서 있었던 폐막식 인사말에서다. 국회의원, 기관장 등 귀빈들의 인사말은 생략됐다.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다. 시장도 짧게 했다. 그런데 그 정리된 말 속에도 ‘채인석 시장’을 얘기했다. “이 자리에는 안 계시지만 박원순 시장님과 채인석 시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라며 시민들의 박수까지 청했다. 신문ㆍ방송 카메라와 3천여 시민이 보는 앞에서 한 인사다. ▶김성제 의왕시장도 열심히 했다. 지난해에는 수원시청에서 열린 준비 모임에 시간을 쪼개 가며 참석하기도 했다. 올해는 행렬 맨 앞에서 직접 재연단이 되어 행진했다. 이필운 안양시장도 2년째 행차에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염 시장은 유독 채인석 시장에만 감사를 반복했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그 뜻을 알고 있다. 수원시와 화성시의 갈등, 지역민에게는 더 이상의 뉴스거리도 아니다. 이를 풀려는 뜻이 있음을 시민이 안다. ▶1795년. 정조는 행차를 끝내고 창덕궁에 도착하자마자 격쟁(擊錚) 상언을 정리했다. 모든 상언을 3일 내 처리하라고 명했다. 신하들이 ‘격쟁이 남발되면 계급제도와 사회 기강이 무너진다’고 반대하자 이렇게 꾸짖었다. “불쌍한 저 고할 데 없는 백성들이 가슴에 깊은 원한을 품고 분주히 와서 호소하는 것이니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하소연하는 것과 같다.” 정조의 소통은 그랬다. 백성과 정적(政敵)을 가리지 않았다. ▶지척에 있는 두 시장(市長)이다. 올해는 정조 능행차까지 함께 치렀다. ‘정조 행차를 완벽히 재연했다’는 소회를 말하기 전에 ‘정조 정신과 너무도 다르다’는 고민을 해야 한다. 한쪽의 ‘감사’가 있었으니 다른 쪽의 ‘답사’가 있으면 보기에 좋을 듯하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개천용론 대신 수저론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을 그렇게 표현한다. 예전엔 개인이 노력하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이른바 ‘계층 이동’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옛날 얘기가 됐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구조다. 소득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세습화돼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부모 잘 만나면 용 난다’는 말로 변했다. ‘개천용론’ 대신 태어날 때 어떤 수저를 물고 나오느냐가 중요해졌다. 금수저냐, 흙수저냐 하는 ‘수저론’이 대세다.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 신청자 소득분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 전체 재학생 중 국가장학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학생이 73.1%로 집계됐다. 10명 중 7명이 ‘금수저’라는 것이다. 금수저로 태어난 학생들은 사교육을 많이 받아 소위 일류대에 입학하고, 흙수저로 태어난 학생들은 대학에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통해 등록금을 조달하고 생활비를 벌고 있다. 교육격차에 의한 학벌은 사회적 성공의 대물림으로도 이어진다. 부모의 소득 격차가 학교도, 성공도 좌우하는 사회구조가 되고 있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부모의 사회적 배경과 경제력이 성공을 좌우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붕괴되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재정학연구 최근호에 실린 서울대 경제학부 박사과정 오성재씨와 같은 학부 주병기 교수의 ‘한국의 소득기회불평등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13년 사이 계층 이동에 성공한 이들의 숫자가 2배 이상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뜻이다.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환경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금수저가 득세하고 개천용이 사라지고 있다는 세간의 인식이 실제 연구 결과로도 입증됐다. 최저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는 10명 중 2001년에는 1∼2명이 기회불평등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2014년에는 4명 가까이 성공하지 못했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저’(주어진 환경)가 그만큼 주요한 요인이 됐다는 의미다. 논문은 “높은 불평등과 양극화로 기회평등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악화했고 자녀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회불평등,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 불안을 초래하게 된다. 양극화 해소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올림픽 메달

2018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이 공개됐다. 지난 21일 서울과 뉴욕에서 동시에 메달 공개행사가 펼쳐졌다. 평창올림픽 메달 디자인의 콘셉트는 우리 언어인 ‘한글’이 바탕이 됐다. 메달은 역동적인 사선을 배경으로 앞면에 오륜이, 뒷면엔 대회 엠블럼과 종목명이 들어간 비교적 단순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측면에 ‘평창동계올림픽이공일팔’의 자음과 모음의 조합 중 자음의 ‘ㅍㅇㅊㅇㄷㅇㄱㅇㄹㄹㅁㅍㄱㅇㄱㅇㅇㄹㅍㄹ’을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메달을 목에 걸 리본(스트랩)은 전통한복 소재인 갑사를 활용, 한글 눈꽃 패턴과 자수를 적용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메달 케이스도 전통 기와지붕의 곡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원목으로 제작했다. 올림픽 메달은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올림픽부터 종목별 상위 선수들에게 금·은·동메달을 수여한 것이 굳어져 대회마다 다른 디자인의 메달이 올림픽의 또 하나의 상징이 됐다. 올림픽 메달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한 규정에 맞춰 주최국이 올림픽 정신을 살리면서도 저마다의 특징을 담아 디자인한다. IOC는 올림픽 메달을 보통 원형에 체인이나 리본에 매달려있는 형태로 제시했다. 지름은 60㎜, 두께는 3㎜ 이상이어야 하고 종목명이 새겨져야 한다. 금ㆍ은메달은 순은으로 제작하고 금메달에는 순금 6g 이상을 도금하도록 했다. 하계올림픽은 표준 디자인도 있다. IOC가 1928년부터는 적용한 표준 디자인은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 니케가 로마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월계관을 들어 올린 모습이다.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부터는 앞면엔 이러한 표준 디자인을 쓰고, 뒷면에 개최국의 특징을 담은 개성있는 디자인을 하는 관행이 굳어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경우 뒷면에 월계수를 물고 날아가는 비둘기와 태극 무늬를 응용한 서울올림픽의 엠블럼이 들어갔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는 앞면 디자인에 일부 변형이 허용됐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는 새로운 표준 디자인이 도입됐다. 동계올림픽 메달에는 표준 디자인이 없다. 그래서 개성있는 디자인이 가능하다.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메달은 사다리꼴에 가까운 울퉁불퉁한 모양이었고, 1984년 사라예보 대회 메달은 둥근 메달이 큰 사각형 틀에 갇힌 형태였으며,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대회 메달은 도넛 모양으로 가운데가 뚫렸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선 운석이 들어간 7개의 특별 금메달도 제작했다. 평창올림픽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 한반도 정세 불안으로 참석 여부를 고민하는 나라가 있는 것 같다. 평창올림픽에 북한까지 참석해 북한 선수 목에도 평창 메달이 걸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킬리만자로의 희망연가

지난 13일 이른 아침 시간. 카톡 한 통이 날아왔다. “김 기자님이 써 주신 기사를 읽고 많은 절단 장애인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질 겁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절단 장애인 14명과 함께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스와힐리어로 ‘번쩍이는 산’이라는 뜻) 정상 등정에 성공한 ‘2017 킬리만자로 희망원정대’ 이병국 대장(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리계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이번 원정대에 참여한 14명의 장애대원들은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고교생 대원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통사고 등 불의의 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이다. 후천적 절단 장애인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과거의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 사회로부터 스스로 벽을 쌓아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 비슷한 처지에 놓인 장애대원들이 6천m에 육박하는, 험중한 산 킬리만자로 정상에 우뚝 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 용기를 주기에 충분한 자양분이 됐을 것이라는 게 이 대장의 설명이다. ▶사실 히말라야 8천m급 14좌 봉과 북미 최고봉 매킨리(6천194m),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천895m) 등은 각 대륙의 가장 높은 산이라는 자부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등반 및 등정이 어렵거나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전 세계 수많은 산악인들이 이들 최고봉을 오르다 혹은 내려오다가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만큼 일반인들에게 쉽게 등정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그런 킬리만자로에 절단 장애를 가진 대원들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죽음의 문턱을 경험케 한다’는 고산병마저 넘어선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절단 장애대원들이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던 날. 서울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과 관련된 주민설명회에서 장애우 부모들이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일반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호소해 사회적 이슈가 됐다. 신체의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비보’가 될 수 있다. 누구도 미래의 일은 모르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두가 하나 되는 사회, 그 속에 또 다른 대한민국의 희망이 싹튼다는 것을 우리 모두 가슴속에 새겨보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김규태 사회부 차장

[지지대] 독립운동가 후손의 눈물

제72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지난 8월15일 오전. 수원시 파장동 한 작은 빌라의 반지하 방에선 구순(九旬)인 김혜경 할머니(90)의 한 서린 탄식이 흘러나왔다. 무심코 본 TV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 고(故) 김용관 선생의 이름이 불려서다. 김 할머니는 당시 문 대통령이 거론한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 5명 중 한 명으로 아버지가 언급되자 수십년간 쌓인 한이 녹아내린 듯해 펑펑 울었다고 한다. 눈물의 이유는 이랬다. 그렇게나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그토록 맹목적으로 사랑한 나라에서 업적을 인정해주지 않은데 대한 서러움이 복받친 데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어려운 삶이 주마등처럼 스쳤기 때문이다. 이렇듯 본보가 단독 및 기획보도한 고(故) 김용관 선생 가족들 외에도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펼치고도 제대로 된 예우를 못 받은 채 국가의 외면에,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광복 70주년이던 지난 2015년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광복회 회원 1천115명 대상으로 생활실태를 설문한 결과 독립유공자 가족의 월 개인소득은 200만원 미만이 75.2%에 달했다. 세분해서 보면 100만~200만원(43.0%), 50만~100만(20.9%), 50만원 미만(10.3%) 등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이 ‘하층’에 속한다는 인식도 73.7%에 달할 정도였다. 이런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힘든 삶 뒤에는 시작부터 뒤틀린 대한민국의 보훈제도가 있었다. 국내 보훈업무는 1961년 군사원호청 설치가 시작, 해방 이후 17년이 지나서야 보훈업무가 시작됐다. 그마저도 한국전쟁 유공자에 집중돼 실질적인 보훈은 해방 20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 후 2년 만인 1947년부터 나치에 맞섰던 유공자 보훈을 착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제와 맞섰던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광복 후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생활고에 시달렸고 2세와 3세까지 그 영향이 미친 것. 가난이 대물림되는 구조 속에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가 3대까지 예우하겠다”고 밝힌 만큼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체계적인 국가 차원의 지원책이 나와야만 한다. 이와 함께 고(故) 김용관 선생을 비롯해 여전히 국가 인정을 못 받은 5천575명에 대한 발굴 및 인정, 재조명을 통해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것을 시작으로 악순환의 고리도 끊어야 할 때다. 이용성 사회부장

[지지대] 아들과 아버지

태종 18년(1418년) 6월6일. 아버지 태종이 신하 문귀(文貴)에게 하교했다. 세자를 폐하고 광주로 보낸 아들 양녕에게 전하는 말이다. “중궁(中宮)이 울면서 나에게 청하기를 ‘이제(李)가 어린 아이들을 거느리고 먼 지방으로 간다면 안부(安否)를 통하지 못할 것이니, 빌건대, 가까운 곳에 두소서’라고 했다. 나도 또한 목석(木石)이 아닌데 어찌 무심(無心)하겠는가? 이에 군신(群臣)에게 청하여 너를 광주(廣州)에 안치(安置)하는 것이다.” ▶아들 양녕에 챙겨줄 목록까지 열거한다. “비자(婢子ㆍ노비)는 13구(口)를 거느리되, 네가 사랑하던 자들을 모두 거느리고 살라. 노자(奴子)는 장차 적당히 헤아려서 다시 보내겠다. 전(殿) 안의 잡물(雜物)을 모조리 다 가지고 가도 방해될 것은 없다. 비록 후회하더라도 어찌 미칠 수가 있겠는가마는, 그러나 지금 부모(父母)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좋은 이름이 들리면 좋겠다.” 실록은 ‘왕이 통곡(痛哭)하면서 목이 메었다’고 적고 있다. ▶세종 즉위년(1418년) 11월1일.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명이 또 등장한다. “상왕이 말하기를, ‘양녕의 죄는 종사(宗社)에는 관계되지 않고, 오로지 이것은 김한로(金漢老)의 한 짓이다. 그 아들은 죄가 없는데도 아버지를 따라 작은 집에 있으니, 화재(火災)가 두려우므로 내가 이를 심히 불쌍하게 여긴다…강화(江華)에 집 백여 칸을 지어 들어가 거처하게 하도록 하라.” 둘째 아들 세종이 즉위하는 경사스러운 해에도 태종은 쫓겨난 아들 양녕을 챙기고 있었다. ▶조정 대신들에게 양녕대군은 금기어였다. 언제든 복위하면 피바람이 불 화근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태종도 눈치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아들 챙기기는 멈추지 않았다. 아들의 모든 걸 직접 챙겼고, 실록 곳곳에 기록으로 남았다. ‘양녕대군에게 은기와 주기 1벌을 보내다’(태종 18년)-‘월봉을 양녕대군에게 주도록 명하다’(태종 18년)-‘상왕이 양녕대군과 회안대군을 농사짓고 사냥하게 해 주는 것에 대해 묻다’(세종 즉위년). ▶태종은 잔인한 군주다. 공신들부터 처남까지 모두 죽였다. 하지만, 그가 어찌하지 못한 딱 한 사람, 그건 패륜아 아들 양녕이었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아들의 일탈로 또 곤경에 처했다. 군 복무 시절 비리에 이어 두 번째다. 선거에 관한 한 무패(無敗)의 신화를 써온 그다. 다섯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1번의 도지사 선거에서 모두 이겼다. 하지만, 그도 극복하지 못하는 벽이 있음을 본다. 말 잘하던 그가 이틀째 같은 말만 반복한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제대로 못 가르친 저의 불찰입니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운명은 600년 전에도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청탁금지법 1년

최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ㆍ일명 김영란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이 확정된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법 시행 이후 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은 있었지만 검찰 기소로 형사처벌이 이뤄진 건 처음이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형사2단독 이수웅 판사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한국도로공사 도로개량사업단장 김모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도로개량사업단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10월 도로 포장공사를 하는 A업체 회장으로부터 현금 200만원을 받았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성이나 기부·후원·증여 등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원, 1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및 약속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오는 28일이면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이다. 그동안 국민권익위원회에 법 위반으로 신고 접수된 사항은 다양하다. 도내에선 양주시의회 의원 8명이 지난 3월 양주축산농업협동조합으로부터 1인당 3만원을 초과하는 점심을 제공받았다가 적발됐다. 오산의 편의점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70대가 업무방해 혐의로 자신을 조사하는 경찰관 책상에 현금 100만원이 든 봉투를 놓고 갔다가 과태료 300만원의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학교에서는 학부모 면담 시 촌지나 케이크 등 선물이 사라지고, 병원에서는 진료·수술 날짜를 앞당겨 달라는 등의 민원이 줄었다. 공직사회에서도 접대문화가 확연히 줄었다. 기업 입장에선 불필요한 접대를 줄일 수 있게 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6월 성인 1천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8%가 청탁금지법 시행에 대해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응답자들은 부정부패와 비리, 부정청탁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부작용과 불편을 얘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음식물(3만원)·선물(5만원)·경조사비(10만원) 상한액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식사비에 제한을 두는 바람에 관공서 주변 식당들이 경영이 어려워 줄줄이 문을 닫았으며, 화훼 농가들도 판로가 끊어졌다며 아우성이다. 추석을 앞둔 농축산 농가들에서도 불만 섞인 한숨이 나온다. 학생들이 담임교사에게 캔커피 하나, 카네이션 한 송이 건넬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정도가 지나친 것은 중지를 모아 고치는 게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김영란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병역 면탈

군대 갈 나이의 젊은 남성들은 흔쾌히 군대에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쩔 수 없어, 끌려가는 기분으로 입대한다. 그러다보니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병역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병역 면탈(兵役免脫)은 국가가 의무적으로 부과하는 병역(징병)을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피하거나 달아나는 행위다. 징병 거부, 병역 거부, 병역 회피 등이 같은 말이다. 병역 면탈을 받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시대마다 변했다. 1960년대 병역을 회피하는 방법은 대학에 들어가 징집 연기를 받는 것이었다. 1962년 박정희 정부가 대학 정비를 단행한 직후 대학생 수가 정원의 175%나 됐다. 장기간 병역을 피한 뒤 고령(만 30세)을 사유로 면제받기도 했다. 허위로 학력을 대학이나 대학원 재학 이상으로 높이면 입영제한 연령까지 입영이 연기된다는 점을 이용했다. 징병검사 전날 밤부터 전등을 끄고 촛불을 밤새 계속 응시하면 일시적으로 사시가 되거나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면제받을 수 있다는 설에 이런 짓도 했다. 석회가루를 마시면 폐질환을 앓는 환자처럼 엑스선 사진이 하얗게 나온다는 이유로 석회가루를 물에 타 마시기도 했고, 엑스선 사진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나타난다고 해 가슴에 쇳가루를 바르기도 했다. 1980년대엔 최신 검사장비가 도입돼 결핵이나 간염으로 위장해 병역을 면제받는 방법이 어려워졌다. 새로 시력이나 정신질환을 위장하거나 체중을 줄이거나 늘이는 방법으로 면제받는 방법이 등장했다. 운동선수들이 고의로 무릎 연골을 제거하고 병역을 면제받은 것이 적발되기도 했다. 해외 이민이나 유학을 하며 영주권 혹은 외국 국적을 얻어 병역을 회피하기도 했다. 병역 면탈은 여전하다. 국방부의 ‘최근 5년간 병역면탈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적발된 병역 면탈은 총 227건이다. 2013년 45명, 2014년 43명, 2015년 47명, 2016년 54명 등으로 2014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38명이 적발됐다. 면탈 사유별로는 고의 체중 변화가 57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정신질환 위장과 고의 문신이 각 52건, 안과 질환 위장이 22건 등의 순이었다. 기타 어깨 탈구, 수지 절단, 척추 질환, 고아 위장 등도 40건이나 됐다. 병역처분 기준을 강화해도 병역면탈 행위가 날로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한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이런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 각종 사고와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군대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경기農業 에피소드 3

새 정부의 화두는 단연 ‘청년 일자리’다. 더불어 최근 남경필 경기지사의 관심사도 청년정책으로 대변되고 있다. 금번 경기도 2017년도 추경예산안을 둘러싸고 집행부와 의회가 갈등을 겪었던 것도 청년예산이다. 바야흐로 청년문제는 중앙뿐 아니라 경기도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다.필자는 지난번 글을 통해 ‘청년농부’의 현실을 꼬집으며 몇몇 현안을 지적했다. 그동안 경기농정은 청년농부에 대해 그리 녹록한 편은 아니었다. 이는 곧 농정에 대한 남 지사의 인식에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남 지사가 최근 청년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청년농부에 대해 관심을 드러냈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남 지사는 경기도의회 322회 임시회 중 도정 질의 답변을 통해 청년농부에 대해 처음 언급했다. 원대식ㆍ염동식 의원이 경기농정의 현안을 캐묻자 청년농부 문제를 꺼냈다. 그는 “4차 산업혁명도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젊은 인재들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청년농부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한발 더 나아가 그 해법을 찾는데 집행부와 도의회가 머리를 맞대자고까지 제안했다. 그동안 먼 산 보듯 했던 경기도 행정수장이 청년농부로 농업을 이야기한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도의회 의사당에서 그의 입을 통해 청년농부가 언급됐다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청년농부에 대한 문제는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경기도 농업인 수는 31만1천명으로 전국의 12.2%다. 이를 연령대별로 분류하면 65세 이상자는 12만5천명으로 40.2%를 차지한 반면 29세 미만은 1천597명으로 0.7% 수준이다.이게 경기도 청년농부의 현주소다. 이래 놓고 어찌 미래먹거리 산업을 경기도가 담당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경기도 농업예산은 일반회계대비 3%를 넘어선 7천여억원대다. 이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농업직은 60여 명 안팎이고 사실상 실질적 수장은 4급 서기관에 그치고 있다.여기에다 예산과 기획 등 주요 부서에는 단 한 명의 농업직도 찾아볼 수 없다. 농업이 완전 별동대로 분리돼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농업을 따로 떼내 경기도농업기술원과 통합하자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경기농정이 제대로 도정에 투영될 수 없는 이유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구호 뿐인 ‘관광도시 인천’

“타 도시에 없는 관광 시설은 고사하고 그 흔한 케이블카나 물놀이 시설 하나 없는 곳이 인천입니다.” 얼마 전 모임에서 한 참석자가 ‘인천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는 타 시도에 없는 인천만의 특화된 관광 시설이나 인프라가 필요하다’ 라는 의견을 내놓자 동석한 시 공무원이 인천 관광의 현주소를 명확하게 정리한다. 한 마디로 ‘관광 목적으로는 인천을 방문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이다. 인천관광공사가 추천한 ‘9월의 인천 가볼 만한 곳’ 중에는 개항장과 드라마 ‘도깨비’ 촬영으로 알려진 배다리 헌책방, 9·15 인천상륙작전 명소인 팔미도와 월미도, 섬 트레킹 등이다. 2017년 가을에 가볼 만한 곳으로 이곳들을 선정한 관광공사도 참 고민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천상륙작전 관련 장소는 70~80년대 수학여행 장소이며, 배다리 헌책방 거리 역시 같은 시절 전성기를 누린 이후 시나브로 사라져 가는 골목이다. 섬 트레킹 코스 또한 70~8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 1년에 한번 정도 친구들과 함께 망둥어 낚시를 다녔던 그 섬들 그대로이다. 30~40년 전 그대로인 그곳들이 오늘까지 인천의 대표 관광지이다. 부산바다축제, 통영 ‘동피랑 마을’ 등 인천처럼 바다를 품은 크고 작은 해양 도시들은 각각의 지리적 특성을 접목해 연 수십만명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인천시가 새로운 관광 인프라 활용을 위해 수년째 추진하고 ‘168개 인천 섬 보석’ 프로젝트는 아직 빛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년 ‘관광도시 인천’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재출범한 인천관광공사도 인천시와 산하기관들이 주관하는 관광행사의 대행기관 수준에 그치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아니, 인천관광공사의 행사 대행 수익만큼 행사의 질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 관광공사의 자체 사업예산이 전무하다보니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인천에서만 보고 즐길 수 있는 ‘인천 표 관광’을 만들어야 한다. 인천시와 관광공사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광공사가 자체 관광 사업을 개발할 수 있는 관련 예산 확보 등 기본 여건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인천시의 관광도시 프로젝트와 관광공사의 재출범이 실패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웰컴 투 동막골 감독

“근데요. 우리도 연합군입니까. 지금 우리도 북남 합작부대 아닙니까. 내 말 틀리요?”(북한 인민군 소년병 택기ㆍ류덕환 扮). 북한 인민군과 남한 국군은 적이다. 하지만, 동막골에서는 서로 도우며 지낸다. 적어도 이 마을에서 남ㆍ북한의 대립은 없다. 서로 마주 앉아 멧돼지 고기를 뜯고, 풀로 엮어 만든 공으로 놀이도 한다. 마을을 구하기 위해 국군의 포격에 함께 맞서기도 한다. 그렇게 동막골에서는 이념이 사라졌다. ▶“저 쪽방에 코 이래 큰 쟈는 누구 편이래요. 그러면 2대 1이잖아요. 이 사람들 치사하다야”(동막골 아낙). 국군이 미군과 한 편임을 나무란다. 미군의 개입이 공정하지 않은 싸움이라고 꼬집는다. “종로에 미군 구락부라는 데가 있는데, 제가 거기 지배인 되는 게 꿈이잖아요. 지배인은 양쪽으로 여자 딱~~끼고 죽이겠죠.”(국군 위생병 문상상ㆍ서재경 扮). 해방 공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미국 문화를 빗댄다. 미군, 술집, 지배인, 여자라는 향락적 단어가 엮여진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다. 박광현 감독의 작품이다. 6ㆍ25전쟁에 대한 접근 시각부터 이전 영화와 달랐다. ‘국군=선, 인민군=악’이라는 이분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나이 많은 마을 어르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쪽은 국군이다. 영화는 ‘미군=영원한 우군’이라는 공식도 깼다. 국군과 인민군이 맞서는 곳에 미군이 개입하는 것을 부당한 개입이라고 묘사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 개봉된 영화다. ▶박광현 감독의 이름이 오랜만에 회자된다.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다. MB 정부 국정원이 만들었다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 박 감독 외에도 52명의 영화감독이 거론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이름도 보인다. 명단에는 가요계, 방송계, 배우들도 있지만, 영화감독의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수 정권의 시각에 영화감독들이 눈엣가시였던 모양이다. 영화가 주는 파괴력이 그만큼 크다. 정치가 외치는 구호 수십번보다 영화 한 편이 끌고 가는 선동이 무섭다. ▶보수 권력의 눈에 웰컴 투 동막골은 ‘좌빨’ 영화였을 듯하다. 북한 인민군을 화합의 대상으로 묘사한 게 거슬렸을 게다. 미군을 불법 전쟁 개입자로 묘사한 게 거슬렸을 게다. 국군이 민간인을 폭행하는 장면을 넣은 게 거슬렸을 게다. 그런 보수 권력의 기준으로 만들어졌을 블랙리스트다. ‘웰컴 투 동막골’의 감독이 포함된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요즘 영화 ‘택시 운전사’와 ‘노무현입니다’가 있다. 훗날 이 영화들은 또 어떻게 평가될까. 김종구 주필

[지지대] 생존배낭

경주에 사는 한 지인은 집 현관 안쪽에 늘 배낭을 꾸려 놓고 산다. 가로 50㎝, 세로 30㎝ 크기의 ‘생존배낭’이다. 배낭 안에는 생수병과 구급약, 손전등, 헬멧, 비상식량, 여권 등이 들어있다. 이 배낭은 1년여간 그 자리에 있다. 언제 또 지진이 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상당수 경주 시민들이 집집마다 배낭을 꾸려놓고 산다고 한다. 지난해 9월12일 규모 5.1과 5.8의 지진이 경주를 덮쳤고, 이후 크고 작은 여진이 600회 넘게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인 강유미씨가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 올린 생존배낭이 화제다. 강씨는 지난달 29일 ‘전쟁가방 샀어요!’라는 제목의 영상물에 자신이 구입한 방독면과 전투식량, 구급용품 등을 이용해 비상시 사용할 생존배낭을 만드는 장면을 올렸다. 직접 방독면을 쓰고 전투식량을 먹어보며 생생한 느낌을 전했다. 그의 영상은 지난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계기로 찾아보는 누리꾼이 늘면서 11일 오전 현재 조회 수 46만건을 넘었다. 1년 전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반짝 늘어났던 생존배낭이 최근 북핵 위기 고조로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의 도발 위험이 예사롭지 않자 주변에 지하대피소 위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고, 비상시 대응 요령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늘었다. 과거의 사재기 같은 혼란 대신 각자의 일상에서 정보를 확인하며 준비하는 분위기다. 생존배낭 챙기는 방법이나 유사시 대처요령 등이 정리된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지인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유튜브에도 생존배낭 준비를 소재로 한 영상이 4천700여 개에 이른다. 인터넷 쇼핑몰엔 방독면, 비상식량, 구급함, 손전등, 휴대용 라디오 등 재난 대비용 물품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이 같은 물품을 세트로 한 ‘전쟁 대비 생존배낭’을 판매하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지난주 초 휴대용 라디오 판매가 전주 대비 40% 정도 증가했고, 전투식량 판매량도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재해ㆍ재난을 대비해 생존배낭을 준비하는 것은 유용하다.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생존배낭에 대한 안내가 있다. 행안부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개인당 1개씩 비상용 백(Go Bag)을 준비해야 한다고 권한다. 생존배낭은 기본 72시간(3일) 기준으로 준비하면 좋다. 집에서 나갈 때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연중 언제나 준비해 둬야 한다. 생존가방을 준비하되 제발,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모든 국민의 생각이다. 업체 등에서 괜시리 전쟁 마케팅으로 불안감을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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