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삼국지 속 경기지사

위ㆍ촉ㆍ오의 실제 국력은 어땠을까. 면적으로 본 영토는 비슷했다. 그런데 내용이 달랐다. 촉은 산악지대가 많았고, 오는 버려진 땅이 많았다. 위는 알토란 같은 땅으로 꽉 차 있었다. 자연스레 농업생산력도 압도적이었다. 당시 인구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촉은 90만명, 오는 230만명이다. 위는 촉ㆍ오를 합친 인구보다 많은 440만명이다. 삼국지는 조조(위)ㆍ유비(촉)ㆍ손권(오)의 쟁패를 팽팽하게 그렸다. 하지만, 실제 국력으로 본 삼국 구도는 위나라 독주였다. ▶조조는 인재 챙기기가 유별났다. 촉 장수 조자룡이 홀로 들어와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주군인 유비의 부인과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산 위에서 이 싸움을 지켜보던 조조가 지시했다. ‘(조자룡은 인재이니 죽여선 안 되고)화살에 촉을 제거하고 쏘라.’ 황건적과의 싸움에서는 아끼던 장수 포신을 잃었다. 막대한 포상금을 걸고 시체라도 찾으려 했다. 끝내 못 찾자 포신의 얼굴을 조각한 뒤 성대히 장례를 치렀다. 이렇게 얻은 참모 93명이 조조의 힘이었다. ▶조조가 동탁 암살에 실패했다. 도망자 신세인 그를 여백사가 챙겼다. 부친과 의형제를 맺었던 어른이다. 요리하는 칼 소리를 자기를 해하려는 것으로 오해한 조조가 여백사 일가를 몰살했다. 술을 사오던 여백사와 마주치자 그마저 죽이고 불태웠다. 서주 태수 도겸은 조조의 아버지 조숭을 극진히 대접했다. 그런데 인솔하던 부장 장개가 도중에 조숭을 죽이고 재물을 훔쳐 달아났다. 오해한 조조가 도겸의 서주로 쳐들어갔다. 백성을 닥치는 대로 죽여 서주 땅을 피로 물들였다. ▶조조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인재를 쓸 줄 아는 현자라는 평이 있다. 리더십을 배우자고 주장한다. 잔인하고 포악한 군주라는 평도 많다. 자신의 이익 앞에 도리를 저버리는 배신자로 정의된다. 어차피 고대 기록 속 인물이다.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있다. 조조는 강력한 국가를 만든 제후다. 삼국 경쟁에서 맨 윗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탁월한 지도자임엔 틀림없다. ▶경기도지사 선거판에 조조가 등장했다. 남경필 지사가 거론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동탁을 토벌할 수 있다면 기꺼이 조조가 되는 길을 택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반박했다. “(조조보다는) 의탁할 곳을 찾아 옮겨 다닌 여포에 가깝다.” 1월의 일이었는데, 재미있었다. 도민이 생각하는 삼국지 속 도백은 누구일까. 지혜의 조조 정신에 덕치의 유비 정신을 갖춘다면 좋을듯한데. 지금 후보 중에 그런 이가 있을까. 남경필ㆍ전해철ㆍ이재명ㆍ양기대…. 여기에 조조ㆍ유비ㆍ손권…. 어떻게 결론 내든 유권자 맘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올드보이의 귀환

구관이 명관인가? 자유한국당에 ‘올드 보이’ 바람이 불고 있다. 6ㆍ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단체장 후보에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태호 전 경남지사, 이인제 전 최고위원을 전진 배치하고 있다. 올드 보이 차출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인재영입 전략(?)이었던 모양이다. 홍 대표는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이인제 고문에게 “JP(김종필 전 총리) 이래 충청도가 낳은 가장 큰 인물”이라며 충남도지사 출마를 요청했다. 이 고문은 “홍 대표가 간곡하게 요청하고, 당 재건을 위해 한점의 풀뿌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가운데 지금 이 시간 여기 있다”며 수락 의사를 밝혔다. 3일 국회에서 출마 수락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이 고문은 6선 의원에 경기도지사, 노동부 장관을 역임하고 대선 후보도 2번 한 인물이긴 하다.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경기도지사를 지낸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는 것이 확정적이다. 홍 대표의 전략공천에 마음을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지사는 지난달 SNS에 “선당후사의 각오로 6월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선전하도록 힘껏 노력하겠다”며 자발적으로(?)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현재 ‘태극기 세력’의 대표주자인 김 전 지사는 당내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홍정욱 전 의원, 이석연 전 법제처장,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 등 새인물 영입이 잇따라 실패하자 김 전 지사까지 콜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과연 우파를 결집시킬 카드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간다는 사람이 없으니 너라도 나가라’는 식으로 비쳐지는 것도 마다않는 김문수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한국당 경남지사 후보에는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내정했다.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김 전 지사 역시 출마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탄핵 정국에서 탈당했다 한국당에 복귀한 김무성 의원은 북핵폐기추진특별위원장과 개헌저지 투쟁본부 공동위원장이라는 두 개의 감투를 썼다. 정진석 의원은 경제파탄대책특별위원장을 맡았다.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전 의원도 개헌저지 투쟁본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야당을 경험했던 인사들로 홍 대표와 함께 투쟁했던 인연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정부 심판론을 앞세워 투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올드 보이의 귀환을 바라보는 당 안팎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이들의 재등장엔 참신한 인물을 영입하지 못한 인물난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중량감 있는’ 올드 보이의 귀환이라는데, 6ㆍ13선거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게 될지…. 왠지,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제주4·3과 동백

꽃들이 난리가 났다. 산수유ㆍ매화에 이어 개나리ㆍ진달래ㆍ벚꽃이 빵, 빵, 터지고 있다. 미세먼지가 극성이지만 꽃축제를 찾는 인파로 전국이 들썩거리고 있다. 봄꽃 중엔 동백도 있다. 동백하면 제주가 떠오른다. 올해는 유난히 더 그렇다. 슬픈 동백, 핏빛 동백이다. 꽃잎 하나 시들지 않은 절정의 순간에 모가지째 툭,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은 아프고 시리다. 처연하게 꽃 모가지를 떨구며 지는 모습은 비극적 죽음을 연상시킨다. 제주 출신 강요배 화백은 4·3 당시 희생당한 이들을 선홍빛 동백꽃으로 그려냈다. 제주4·3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해방 직후 이념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주도 전체가 국가의 부당한 폭력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붉은 동백꽃이 4·3의 상징 꽃이 된데는 이런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제주도가 동백꽃 배지 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가슴에 핀 동백꽃은 4ㆍ3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이자 4·3의 아픔을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승화시키자는 4·3유족과 제주도민의 마음이 담겨있다. 제주4ㆍ3 70주년 범국민위원회와 기념사업회는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제주4ㆍ3이 대한민국의 역사로 온전히 자리잡지 못한 현실을 드러내는 역설적 표현이다. 4·3은 ‘제주만의 역사’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1948년 4월, 제주 전체 인구의 10%가량인 3만명 정도가 희생된 ‘제주4ㆍ3’이 일어났다. 해방정국 혼란기 속 국가 권력에 의한 무자비한 학살이었다.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던 참극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은 수십 년간 제주도민에게 4·3에 대한 침묵을 강요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울음마저 죄가 됐다. 진실은 왜곡·은폐됐다. 80년대 군사독재 시절까지만 해도 4·3에는 ‘빨갱이 폭동’이란 딱지가 붙었다. 금기시되던 4·3을 세상에 알린 건, 1978년 발표된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이다. 북촌리 집단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4·3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그려냈다. 현기영 작가는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캠페인 구호에 대해 “제주4·3이 제주만의 역사가 아니기에 분단과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고 기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4ㆍ3은 온갖 질곡 속에서도 한 걸음씩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나아가 2014년 국가추념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제주 4ㆍ3평화기념관 입구엔 아무것도 새기지 못한 ‘백비(白碑)’가 그대로 놓여있다. 한때 폭동으로 일컫던 4ㆍ3이 사건인지, 항쟁인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우리는 그 백비에 뭐라고 새길 것인가?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워라밸과 가치관

몇 년 전 상영한 영화 ‘국제시장’은 격동의 한국사 속에서 가장의 헌신과 희생을 그려 노년층과 장년층의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 덕수는 6ㆍ25 때 흥남에서 넘어와 서독 광부, 월남전 군수물자사업 등으로 치열하게 가족을 먹여 살렸다.영화의 마지막은 늙은 덕수가 아버지 사진을 보며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라는 독백으로 끝난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을 잘 돌보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지켰지만, 그의 삶은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 전부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에서 직장생활은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부모님과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선 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어떤 직업을 갖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지금껏 기성세대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이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예전에는 높은 연봉이 꿈의 직장이었다면 이제는 복지가 좋은 직장이 꿈의 직장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등장한 것이 ‘워라밸(Work-Life-Balance)’이다. 일(work)과 개인의 삶(life)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렇다 보니 직장인도, 기업도, 정부도 워라밸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분주하다. 정부는 ‘일가정 양립과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무혁신 10대 제안’을 제시하면서 워라밸의 확산을 독려하고, 기업들은 유연근무제, 재택근무제, 원격근무제 등을 도입해 직장인의 업무 능률을 제고하고 있다. 직장인은 ‘저녁이 있는 삶’에서 새로운 소비 패턴을 만들어 냄으로써 내수 진작의 효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러나 여가 시간을 확보한다고 해서 삶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진정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은 가치관의 소관이다. 왜 사는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이 무엇인지를 정립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그래서 쉴 때도 행복해질 수 있다. 왜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 가치관도 없는 사람은 여가 시간이 늘어났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이관식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약관(弱冠)

약관(弱冠)은 20대 전후의 남자를 말한다. 비슷한 나이의 여자에게는 방년(芳年)이란 표현을 쓴다. 이들 모두 20대 전후의 왕성한 때를 의미한다. 사서오경 가운데 하나인 ‘예기(禮記)’에 나오는 표현이다. ‘예기’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예의 이론과 실제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한나라 때 편집된 간행물이다. 우리 정치사에는 ‘386세대’란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조어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인 세대’를 말한다. 주로 1980년대에 학생운동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다. 그 주역들이 하나 둘 정치에 입문하면서 기존 정치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흔히 한국 정치는 늙었다고들 말한다. 젊음의 상징인 용기와 패기, 신선함이 실종됐다는 의미일게다. 정치는 무릇 경륜과 노련미도 필요하다. 옛것을 배우고 답습해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역사는 항상 진화의 길을 걷듯 정치도 새로운 바람이 절실하다. 글로벌 정치사에는 약관의 40대 걸출한 인물을 손꼽아 볼 수 있다. 미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하원의장 후보로 확정된 폴 라이언,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 폴란드 역대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된 안드레이 두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매력은 기성 정치인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라이언 의원은 가난한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지만, 결코 가난에 얽매어 대사를 그르치지 않았다 전해진다. 4년마다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젊은 정치에 대한 기대는 역시나 실망이 되고 있다. 이번 경기지역 기초ㆍ광역의원 예비후보 중 30대 미만이 14명 선이다. 30~40대를 보더라도 44여 명 수준이다. 너무 적은 숫자다. 정치에 실망한 젊은 표심을 방증하는 결과다. 그나마 부천지역에서 들려온 기분 좋은 소식이 있어 위안이 된다. 약관의 25세 청년 오윤상씨가 도의원 출마를 선언한 사실이다. 아마 최연소 후보가 아닐 듯하다. 지역정가에서도 일찌감치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는 모양새다. 청년 정치인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치출발선에 올랐다 말하고 있다. 오로지 그 힘은 젊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노쇠함이 엄습해 있는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파다. 좋은 결과로 약관의 용기있는 정치를 기대해 본다. 김동수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용서(容恕)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3월. 김진표 의원을 향한 비난이 뿌려졌다. 경제연구소를 운영하던 선대인 소장의 글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를 김 의원 책임으로 몰았다. 법인세 인하 철회, 주공 분양 원가 공개 무산, 사립대 등록금 인상 방조, 한미 FTA 추진 등을 다 김 의원 탓으로 돌렸다. 표현도 가혹(?)했다. ‘모피아 정치인의 대표’ ‘경제민주화 걸림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진표 의원 공천을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김진표 의원은 고위 관료 출신이다. 투쟁적 정치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 피 튀기는 성명전과 익숙하지 않다. 그만큼 선 소장의 글은 지역에서도 충격이었다. 그리고 6년여가 흘렀다. 오랜만에 선 소장과 김 의원에 얽힌 정보가 들어온다. 용인 시장에 출마한 선 소장이 사과했다고 한다. 수원에 있는 김 의원 사무실을 찾아간 모양이다. ‘(과거의) 과한 표현에 사과드린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이런 뜻을 공개했다. ▶김 의원 측 인사들의 노기는 남아 있는 듯 보인다. 사과의 뜻을 SNS에 공개해줬으면 하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기야, 당시 글을 기억하는 측근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 더구나 그 글은 여전히 인터넷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전해지는 정보의 핵심은 다음에 있다. 김 의원이 모든 걸 용서했다고 한다. ‘정책과 관련해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는 전언이다. 정치부 기자는 정보 보고서 말미에 ‘대인배답다’는 주석을 달았다. ▶23일 0시쯤, 이명박 대통령이 집을 나섰다. 교도소로 가기 위해서다. 전송하던 아들 이시형씨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렸다. 노구의 아버지를 감옥에 보내는 아들의 심정일 게다.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다. 2009년 5월 29일 오후, 수원 연화장 8호 분향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입고되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아들 노건호씨가 눈물을 쏟아냈다. 입술을 깨문 모습이 참담했다. ▶과거사 바로 세우기, 적폐 비리 청산…. 누군가에겐 보복이다. 그때는 노무현에 구박받던 이명박 권력의 보복이었고, 지금은 이명박에 목숨 잃은 노무현 정신의 보복이다. 아닌가? 대단한 금기어라도 되는 양 입 막을 필요 없다. 반대로 자신들만 억울한 듯 십자가 코스프레를 펼 일도 아니다. 어차피 이게 한국 정치다. 기억도 희미해진 오랜 업(業)이다. 죽이고, 죽고…죽고, 죽이고…. 지역 정치에는 ‘용서’가 있는데, 중앙 정치로 가면 달라지는 이유가 뭘까. 그게 권력일까. 김종구 주필

[지지대] 미세먼지에 빼앗긴 봄

26일 오전 수도권은 고농도 미세먼지가 자욱한 짙은 잿빛이었다. 24, 25일 전국을 뒤덮었던 초미세먼지로 휴일 내내 ‘셀프 감금’을 당했던 시민들은 26일에도 시커먼 미세먼지에 마스크로 얼굴을 덮고 출근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미세먼지보다 입자가 더 작아 건강에 치명적 피해를 주는 초미세먼지 농도는 25일 경기도가 ㎥당 118㎍을 기록하는 등 평소의 3배를 넘었다. 2015년 관측 이래 역대 최악의 농도였다. 26일엔 고농도 미세먼지에 안개까지 더해져 일부 지역에선 한 치 앞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했다. 뿌연 창밖을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숨막히는 답답함이 엄습했다. 회색빛 공포다. 경기도는 이날 수도권 지역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됨에 따라 간선급행버스 16개 노선 185대에 1회용 미세먼지 마스크 1만8천매를 긴급 배포했다. 물론 공짜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전날 16시간 동안 미세먼지 평균농도가 모두 ‘나쁨’ 수준(50㎍㎥ 초과)이고, 다음 날에도 ‘나쁨’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돼 발령됐다. 도는 올해 22억원의 예산을 추가 확보해 미세먼지 마스크 375만매를 도내 시내ㆍ시외버스 1만2천500대에 비치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정책 수립을 위해 도민 아이디어 공모를 진행 중이다. 28일 마감을 앞두고 80여 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그 중엔 ‘곳곳에 나무를 심자’는 제안이 많았고, ‘중국과 같이 높이 100m의 초대형 공기청정기를 곳곳에 설치하자’ ‘드론으로 서해안 하늘에 물을 뿌려 먼지를 제거하자’ ‘높은 빌딩이나 교량에 분무 시설을 설치해 미세먼지를 제거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모든 차량의 2부제 운행을 강제 시행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접수된 내용은 현재 시행 중인 대책과 비슷한 것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미세먼지에 대한 도민 관심은 더 커졌을 것이다. 날로 심각성을 더해 가는 미세먼지에 대한 근본 해결책 없이 길에 물을 뿌리고 마스크를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지금 상황에선 외출을 안하던가, 마스크를 쓰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니 속 터지는 대책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선 노약자는 외출을 하지 말고 집안에 처박혀 있으라는 식이다.이젠 미세먼지가 재앙 수준이 돼 마스크가 아닌 방독면이라도 써야 할 판이다. 마스크 쓰라고 강조하기 전에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숨 쉴 권리를 달라’는 국민들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실천·지속 가능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처방으로 미세먼지에 빼앗긴 봄을 되찾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대나무숲

신라 경문왕은 당나귀 귀를 가졌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왕의 복건을 만드는 복두장(頭匠)뿐이었다.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한 복두장이는 입이 근질거려 미칠 것 같았다. 죽을 때야 그는 도림사 대나무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화가 나 대숲을 베어내고 산수유를 심게 했다. 바람이 불자 산수유 나뭇가지에서 이상한 소리가 또 들렸다. “임금님 귀는 길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얘기다. 삼국유사의 일화에서 유래한 ‘대나무숲’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속내를 털어놓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익명으로 소통하는 게시판으로, 2012년 출판업계 익명 게시판에 ‘출판사 옆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이후 ‘방송사 옆 대나무 숲’ ‘여의도 옆 대나무숲’ ‘시댁 옆 대나무숲’ 등 각 분야에 유사한 이름이 속속 등장했다. 대나무숲은 특히 대학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대나무숲은 초기에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소통의 장 역할을 했으나 점차 사회 현안에 대한 토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장으로 확장됐다. 대학의 대나무숲은 대학생들의 고민이나 비밀을 털어놓는 공간이다. 최근 대학가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 폭로는 주로 대나무숲을 통해 나왔다. 이용자가 많고, 피해자들이 그곳에 댓글을 달면서 폭발력이 커졌다. 이달 초 서울 명지전문대 대나무숲에 연극영상학과 교수들이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폭로 글이 이어져 해당 과 남성 교수 5명이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중순엔 한국외국어대 대나무숲에 한 교수의 성폭력 폭로 글이 올라와 학교가 진상 파악에 나서자, 해당 교수가 자살한 사건도 있다. 지난 22일엔 이화여대 음대 관현악과 교수가 학생 수십명을 성추행해 왔다는 글이 대나무숲에 올라왔다. 주로 익명 폭로 글이 올라오다 보니 가해자 신원을 놓고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엉뚱한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될 위험도 생겼다. 미투 글 때문에 운영자들이 명예훼손 당사자로 연루되는 일이 잦아지고, 올라온 글마다 진위 논쟁이 벌어지자 대학 게시판 운영자들이 더 이상 ‘익명 미투’ 제보 글을 게시하지 않거나 가려서 올리겠다는 뜻을 잇따라 밝히고 있다. 내용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제보는 올리지 않겠다며 ‘자체 검열’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일부 대학생들은 익명 소통 창구로서의 역할을 저버렸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래저래 대나무숲은 시끌시끌, 바람 잘 날이 없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마더

최근 tvN에서 방영한 ‘마더’라는 드라마에 며칠을 푹 빠져 지냈다.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이 드라마는 학교 선생님인 주인공이 자신의 반 학생이 가정에서 학대당하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학생을 데리고 떠나 ‘엄마와 딸’의 인연까지 맺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으로 열연한 이보영의 가슴 절절한 연기는 물론이고, 아역 배우인 허율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허율이 연기한 윤복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판 마더는 일본판 마더와는 다른 결말을 맺었다. 유괴죄가 인정돼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 2년을 받은 주인공은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후 정식으로 윤복이를 입양, 가슴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윤복이의 엄마가 되는 ‘해피엔딩’이 그려졌다. 이 드라마에는 많은 ‘엄마’가 등장한다. 원치 않던 아이(윤복)를 낳은 후 결국 자기 손으로 자신의 아이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린 엄마,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살해한 뒤 경찰에 붙잡혀가는 모습을 딸에게 보여줄 수 없어 보호기관에 딸을 버리고 떠나는 엄마, 아이를 낳지 못해 3명의 여자아이를 입양해 친딸 이상의 사랑을 쏟으며 평생을 키워온 엄마, 그리고 친엄마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입양이 돼서도 행복하지 못했지만 결국 윤복이를 만나 진정한 모성애와 행복을 깨닫게 되는 주인공까지. 드라마 속 사연과 상처가 많은 엄마들을 보면서 ‘엄마’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됐던 것 같다. 극 중 3명의 입양아를 키우는 엄마는 유괴죄로 법정에 선 자신의 딸을 위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배로 낳았다고 다 엄마인 것은 아니다.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건 다른 작은 존재한테 자기를 다 내어줄 때”라고 말이다. ‘엄마’다운 ‘엄마’는 이러한 엄마 아닐까. 최근 사회가 많이 어지럽다. 대통령이 대통령다웠다면, 도지사가 도지사다웠다면, 스승이 스승다웠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언론이 언론다웠다면. 처음 기사를 작성한 지 10년 만에 첫 번째 ‘지지대’를 쓰는 영광스러운(?!) 이 자리를 빌려 스스로 다시 한 번 가슴에 이 말을 새겨 본다. “기자다운 기자”. 이호준 사회부 차장

[지지대] 동상이몽(同床異夢)

‘같은 잠자리에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자주 사용하는 고사성어 중 하나다. 요즘엔 다양한 분야의 커플들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을 ‘남자’와 ‘여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모 공중파의 예능 프로그램 이름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서로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그 생각이나 이상이 다르거나 겉으로는 함께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갖는다는 것. 이것이 이 고사성어의 요지인 셈이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태어난 곳, 굳이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살아가면서 삶의 터전이 된 곳의 발전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포부를 밝히며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그들이 맞춰 입은 선거용 윈드점퍼와 예비후보 명함은 같은 포맷을 사용하지만, 그들이 가진 속내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기지역의 한 선거구에 광역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한 A씨는 자신이 몸 담았던 기관에서 습득한 전문지식을 토대로 지역 발전에 공헌하겠다며 야심차게 이번 선거에 도전장을 냈다. 그런데 A씨의 지인들은 다른 의견을 밝히고 있다. A씨가 좋지 않게 나온 그 기관을 향해 칼날을 대기 위해 이번 선거에 나왔다고 말이다. 이들의 표현대로 라면 이번 선거가 A씨에게는 ‘복수는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다른 꿈을 꾼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특권 중에 하나일 것이다. 꿈 속에서는 대통령이 될 수도, 연예인이 될 수도, 아니면 리오넬 메시 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스포츠 스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선거에 나온 이들이 꾸는 꿈은 이런 것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선거는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과거처럼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하는 도구도 아니다. 오로지 그들이 꾸어야 하는 ‘꿈’은 시민들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내줄 수 있는 ‘현실’이 돼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그들이 ‘선거’라는 ‘같은 침상’에서 잠을 잘 수는 있지만, 다른 꿈을 꾸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거에 나온 모든 이들이 시민들에게 ‘동상이몽(同床利夢·같은 침상에서 꾸는 모두에게 이로운 꿈)’이 되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김규태 정치부 차장

[지지대] 前 대통령들의 사과

“정말 송구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내 혼자서 모든 책임을 다 안고, 어떤 처벌도 달게 받을 각오입니다.” 1995년 11월1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사 앞에서 한 얘기다. 수감을 위해 교도소로 떠나는 자리였다. 기업에서 수천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당시로서는 첫 번째 전직 대통령 구속이었다. 외신까지 비상한 관심을 보일 ‘사건’이었다. 온 국민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온 말은 시인과 사과였다. ▶“다분히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 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 1995년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택 골목에서 밝힌 소감이다. 그 유명한 ‘골목 성명’이다. 보름여 전, 노 전 대통령과는 많이 달랐다. 현 정권과 맞붙겠다는 결기가 확연했다. 하지만, 내용을 따지고 들어가면 역시 범죄 시인이었다. ‘끝난 사건을 왜 다시 하느냐’는 투정이었다.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기자단 앞에 섰다. 뇌물 등 혐의로 검찰에 불려가는 길이었다. 진보의 더 없는 가치였던 노 전 대통령이었다. 재임 내내 정치 부패와 전쟁을 치른 그였다. “노무현”을 연호하는 노란색 물결이 여전히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사과했다. ‘면목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7년 3월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국정 농단으로 통칭되는 다양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었다. 도로변에 태극기가 나부꼈다. 그의 무죄를 확신하는 연호도 이어졌다. 얼마 전까지 ‘(특검이 나의 혐의를) 엮었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던 그다. 하지만, 그 역시 검찰청에 들어서면서는 ‘송구스럽다’며 사과했다.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는 이제 사건일 뿐이다. 여전히 1면 머리에는 오르지만 과거와 같은 흥분이 없다. 헬기까지 띄우던 취재 열기도 사라졌다. 지켜보는 국민의 관심도 많이 시들해졌다. 새삼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되레 짜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그 짜증 속에는 ‘실망’이 섞여 있다. 왜 하나같이 검찰청에만 가면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하느냐는 것이다. ‘결백하다’며 배짱부리는 대통령이 왜 없느냐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가 오늘 또는 내일 새벽 결정된다. 이미 검찰 조사에 앞서 소감을 밝혔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혹여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수감에 앞선 마지막 말을 할 것이다. 어떤 말을 할까. 역시 ‘죄를 인정한다’며 사과할까. 사과하는 전 대통령들의 ‘검찰 발언’에 신물이 난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한 푼도 받은 적 없다’고 큰소리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오늘, 세계 행복의 날

나는 지금 행복한가? 누구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을 것이다. 자신있게 ‘예스(Yes)’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 하다. 저마다 이유는 많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행복은 무엇일까? 베스트셀러 ‘꾸베씨의 행복여행’에서 파리의 ‘잘 사는 동네’ 정신과 의사 꾸베씨도 많은 환자를 만나며 행복이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어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꾸베씨는 여러 나라에서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어떤 때 웃음짓고 행복해하며, 어떤 상황에서 불행해지는 지 본다. 그리고 행복의 조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간다. 꾸베씨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첫번째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다. 그는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라고도 했다.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있다’는 얘기도 한다.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는 잘못된 인식이라 말한다. 행복에 관한 명언들은 무수히 많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자각한 사람은 곧 행복해진다’라고 말했고, 틱낫한은 ‘행복은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오고 여러 모습을 띤다. 네모라는 행복을 꿈꾸는 당신에게 지금 곁에 다가온 동그란 행복의 미소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삶에 힘을 내고 싶다면 우선 자신의 발 밑에 있는 행복부터 잡아야 한다’고 했다. 여러 얘기를 종합해 보면, 행복이란 가까이 있고, 긍정적인 생각에 있다고 말한다.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라고 한다. 거창하게, 어렵게, 복잡하게가 아니라 단순하게, 일상의 소소함에서 행복을 찾으라 한다. 3월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다.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전 세계 156개국을 상대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해 ‘2018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했다. SDSN은 국내총생산(GDP),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부패에 대한 인식, 사회의 너그러움 등을 기준으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산출했다. 1위는 북유럽의 핀란드가 차지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57번째로 행복한 나라로 조사됐다. 오늘 하루, 나는 행복한가, 아니라면 왜?라는 물음을 갖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5060의 더블 케어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부모에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많다. 독립할 나이에도 부모와 함께 살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캥거루족은 여러 부류다. 심각한 취업난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얹혀 사는 경우, 취업은 했지만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 함께 사는 경우, 결혼을 했어도 내집 마련이 힘들어 함께 사는 경우 등 다양하다. 부모 집에 함께 거주하지 않아도 생활비에 반찬까지 지원받는 새로운 캥거루족도 생겼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캥거루족’을 주제로 2030 직장인 979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54.2%가 ‘(부모로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 1년간 지원받은 금액은 평균 944만 원으로 집계됐다. 결혼한 직장인일수록 지원 액수도 높았다. 기혼자는 평균 1천402만 원, 미혼자는 757만 원이었다. 이들이 취업ㆍ결혼으로 자립했음에도 부모 지원을 받는 것은 높은 주거비용과 고물가 등이 큰 이유다. 캥거루족 자녀는 5060세대에겐 큰 부담이다. 5060세대는 아래로는 성인 자녀를, 위로는 노부모를 동시에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더블 케어(Double Care)’ 상황에 놓여 삶이 버겁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행복한 은퇴발전소 4호’에 따르면 5060세대 세 집 가운데 한 집(34.5%)이 자녀·부모를 동시에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성인 자녀를 두고 있으면서 양가 부모님 중 한 분 이상이 살아있는 50~69세 남녀 2천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더블 케어의 원인은 기대수명 증가와 저성장으로 요약된다. 더블 케어 가구 중 71.1%는 성인 자녀와 노부모 모두에게 매달 생활비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목돈·간병 지원 제외). 성인 자녀에겐 월 평균 78만 원, 노부모엔 월 40만 원을 주고 있다고 답했다. 월 평균 소득(579만 원)의 20.4%를 더블 케어에 쓰고 있다. 특히 50대(자녀 75만 원, 노부모 39만 원)보다 60대(자녀 89만 원, 노부모 42만 원)가 더 많은 생활비를 지원했다. 노부모를 간병해야 하는 더블 케어 가구의 부담은 이보다 더 컸다. 5060세대의 더블 케어 부담은 크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황혼 육아’라는 새로운 부양 부담을 지고 있다. 실제 현재 손주가 있는 더블 케어 가구로 좁혀 보면, 10가구 중 4가구꼴로 ‘자녀 부양+노부모 부양+손주 양육’의 트리플 케어 상태로 나타났다. 내 한몸 건사도 쉽지 않은데, 더블 케어 내지 트리플 케어의 늪에 빠져있는 5060세대가 안쓰럽다. 캥거루족이나 노부모 케어는 개인 가정의 문제라기 보다 사회 문제다. 정부가 나서 그들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청소부가 꿈이 될 수 있어요?”

지난해 연말 딸과 함께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팜플렛에 소개된 합창단원들의 프로필이 인상적이었다. 단원 24명의 나이, 별자리, 장래희망, 취미, 좋아하는 음식ㆍ색깔ㆍ동물ㆍ숫자ㆍ예술가 등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신기하게도 장래희망이 다 달랐다. 열네 살 폴 트리야드(Paul Trillard)는 ‘청소부’가 꿈이었다. 열세 살 막상스 겐스(Maxence Gence)는 ‘너무 많음’, 암브로와즈 마레샬(Ambroise Marechal)은 ‘아직 못 정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딸 아이가 “엄마, 청소부가 꿈이 될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초코렛→삼겹살→뽑기왕→문방구 주인’. 딸 아이의 꿈의 변천사다. 올해 아홉 살이 된 아이는 현재 꿈이 없다. 찾고 있는 중이다. 올해 1학기 ‘경기꿈의대학’ 수강신청이 한창이다. 도교육청이 지난해 개교 당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과 달리 올해는 수강신청 나흘 만에 1만여 명의 고등학생이 몰렸다. 91개 대학과 19개 공공기관 및 전문기관이 1천580개 강좌를 운영한다. 수강신청 결과에 따라 최종 개설 강좌를 확정하고, 4월3일부터 강좌별로 개강해 10주간 운영된다. 도내 41만7천여 명의 고등학생 전 학년 대상으로 무학년제ㆍ무료로 한 학기 1인 3강좌 이내 수강이 가능하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는 덤이다. 경기꿈의대학은 명문대를 가는 사다리가 아니다. 학생 스스로 자신의 적성을 찾아가는 출발점이자, 내 꿈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과정이다.지난해 1학기 819개 강좌에 1만9천788명의 고등학생이 참여해 경기도 전체 고등학생의 4.7%가 수강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더 많은 고등학생들이 정규 수업을 마친 후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꿈의대학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 연애(戀愛)를 뛰어넘는 열애(熱愛)를 하길. 참, 고백하자면 기자도 6년째 열애 중이다. 미울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지만 열애 그 자체가 좋다. 대상은 비공개한다.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테오도르기자의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질문

한국기자협회(회장 정규성)는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수원, 세종, 안동, 대구, 부산, 제주, 광명과 인천시 등을 돌며 ‘2018 세계기자대회’를 개최했다. 특히 이번 세계기자대회에 참석한 세계 50여 개국 70여 명의 기자는 지난 10일 열린 환송 만찬에서 정규성 회장이 제안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세계기자 선언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세계기자들은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 단일팀 구성, 이후 남북한 고위급 대화를 계기로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남북한 화해 협력과 한반도 평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에 깊이 공감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세계기자들은 지난 6일 수원 화성과 해우재를 둘러보고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을 찾아 세계 IT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직접 체험했다. 만찬장에서 만난 체코 일간지 호스피아 달라 노비(HOSPODARSKE NOVINY)의 테오도르 마자노빅(Teodor Marjanovic) 기자의 질문이 인상적이었다.테오도르 기자는 김진흥 경기도 행정2부지사와 정규성 회장에게 북한이탈주민과 관련한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졌다. 북한이탈주민들의 탈북 루트를 비롯해 대한민국 입국 이후 적응 과정, 국적 취득 절차, 소득 수준, 생활 적응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만족도 등 세밀하고도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갔다.테오도르는 이번 6ㆍ13지방선거와 관련해 북한이탈주민의 투표율과 투표 성향, 지지 정당 등 우리 기자들도 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질문했다. 또 현재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생각 등 궁금한 점이 너무도 많았다.우리 기자들, 우리 사회는 왜 이런 질문이 중단된 것일까.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수 없이 다뤘고 그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었던 것인가. 테오도르의 질문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배려와 관심이 지속되길 바란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엄마 손 편지-軍

엄마는 글을 모르셨다. 찬송가로 배우신 게 전부다. 가족에만 해독되는 암호였다. 편지를 대필해 드리는 것도 아들의 일이었다. 1987년 겨울 어느 날. 일병 아들에게 편지가 왔다. 누이 편지 속에 반쯤 찢어진 공책 한 장이 있었다. 펴보곤 깜짝 놀랐다. 엄마 글씨였다. 연필로 직접 쓰셨다. 남이 볼까 봐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32년이나 흘렀다. 이제 편지는 사라졌고 내용도 잊혀졌다. 그래도 두 문장은 남아있다. ‘글 모르는 엄마가 챙피하지’와 ‘건강히 와라’. ▶술ㆍ담배를 어지간히 싫어하셨다. 하나님에게 벌 받는다고 하셨다. 술 먹은 아들은 집 주위를 한참 뛰어야 했다. 빨래에서 발견된 담배꽁초 때문에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역시 1987년 일이다. 가족이 아들 부대로 면회왔다. 음식만 한 보따리였다. 한참을 먹고서야 허리를 폈다. 엄마가 따라오라고 눈짓을 했다. 면회소 뒤편으로 갔다. 고쟁이 속에서 손수건 뭉치를 건네주시고 들어가셨다. 며칠이나 갖고 계셨던 걸까. 꼬깃꼬깃해진 ‘솔’ 담배 두 갑이었다. ▶아들이 제대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며칠 뒤다. 문산에서 서울역, 서울역에서 수원역, 수원역에서 집까지 왔다. 문을 두드렸다. 알루미늄 쪽문이 열렸다. ‘우리 ○○가 왔구나.’ 엄마가 쓰러지듯 주저앉으셨다. 아들은 눈을 의심했다. 엄마 머리가 백발이었다. 새치는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군 생활 27개월, 아들은 견딜만했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 힘드셨던 모양이다. 엄마의 손 편지는 아들에게 없다. 엄마의 백발을 볼 수 없게 된 지도 오래다. ▶군(軍) 인권을 말한다.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줄인다고 한다. 외출 외박 때 지역 제한도 없앤다고 한다. 근무가 끝나면 휴대전화도 쓸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런저런 개혁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군 인권의 주어는 늘 ‘군인’이다. ‘군인의 가족’은 말하지 않는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걱정하는 ‘엄마’ 편에서 생각하는 인권은 없다. 복무 기간 줄이고, 외출 외박 제한 풀고, 휴대전화 쓰게 한다고 ‘엄마’의 걱정이 사라질까. ‘엄마’들은 그렇지 않다. ▶그 아들의 아들이 군에 갔다. 구타 없어지고, 식사 푸짐하고, 통화 가능한 군대다. 그래도 ‘군대 좋아졌다’는 말은 못한다. 여전히 힘들다. 그때 울지 않은 후회를 안고 사는 아버지라면 더 그 맘을 안다. 외출 나온 아들의 전화다. “동기들과 삼겹살을 먹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돈을 내주셨어. 8만원이나 되는데. 철원에서 근무하는 아들 생각이 나서 내주신 거래.” 군인권과 군기강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앞으로 32년이 지나도 답은 없을 것이다. 군인이 그런거고 군 가족이 그런거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탄력적 근로시간제

우리나라는 ‘과로사회’란 오명을 쓰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가장 오랜 시간을 근무하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이 2천113시간으로 35개 OECD 회원국 평균(1천766시간)보다 20% 가까이 많다. 과로사로 사망하는 사람도 한해 300명이 넘는다.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근로시간이 크게 줄면서 과로국가란 오명에서 벗어나고, ‘저녁이 있는 삶’과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해질 것이란 기대가 크다. 줄어든 근로시간 보충을 위해 기업 신규 채용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선 한숨을 내쉰다. 주 16시간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파격적 개정안이 기업들에게 너무 버겁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우리 노동시장에 연착륙시키기 위해선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이 필요하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근로시간이 짧지만, 근로시간 상한을 단체협약 등을 통해 노사가 정하도록 하고 있다. 법을 기준으로 하되 노사에 재량권을 줘 사업장마다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독일은 1일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해선 안 된다고 법에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당 근로시간은 규정돼 있지 않다. 연장 근로의 한도도 노사 합의에 따른 단체협약에 맡기고 있다. 독일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한 만큼의 시간을 자신의 계좌에 저축해 뒀다가 휴가나 휴식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제도다. 8시간 일하기로 한 직원이 하루 10시간을 일했다면 2시간은 저축된다. ‘마이너스 통장’도 가능하다. 미리 휴가를 쓰고 나중에 초과근무를 해도 된다. 프랑스는 근로시간이 짧기로 유명하다. 노동법상 1주 35시간, 연간 1천607시간을 초과해선 안 된다. 다만 연장근로는 산별, 기업별 협약으로 정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많다. 노사 협약에 따라 하루 12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식이다. 미국은 더 자유로워 최장 근무시간 제한이 없다. 1주일에 40시간이라는 법정 근로시간만 있고, 이를 넘기는 근무는 시간외수당만 주면 된다. 일부 사무직에겐 시간외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사무직 근로시간 규제 제외업종)’이라는 제도도 운용한다. 고소득자라 법이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과로사회에서 벗어나려면 근로시간 단축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대신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도 탄력근로제, 근로시간저축제 도입 등 근무 형태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할머니 치맛바람

맞벌이하는 아들 딸 부부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가 늘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할머니 치맛바람’이 불고 있다. 예전에는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더라도 학부모 모임 같은 활동엔 부모가 나섰다면, 요즘은 손주의 유치원이나 학원, 학교 생활에도 조부모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추세다. 학부모 모임과 학원 일정 관리, 영양 관리, 쇼핑, 숙제까지 할머니 손길이 닿고 있다. 맞벌이 가정에서 조부모에게 육아를 맡기는 비율이 50%가 넘는다고 한다. 교육 현장에선 ‘할머니ㆍ할아버지 학부모’를 일컫는 ‘학조부모(學祖父母)’라는 말이 쓰인다. ‘아이 입시에 성공하려면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할머니의 운전 실력’이 하나 더 추가됐다. 할머니들은 손주가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원에 데려다주는 일을 한다. 손주 교육을 위해 자기계발도 열심이다. 관련 책을 읽거나 직접 영어ㆍ수학 과외도 한다. 문화센터도 함께 다닌다. 할머니들이 젊고 학력이 높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학원가에선 학조부모 바람이 분지 오래다. 특목고 설명회를 열 때면 조부모들이 대거 참석한다. 입시 상담에 부모 대신 오는 경우도 많다. 이미 자녀를 키우며 사교육을 경험하고 입시를 겪은 사람들이라 낯선 풍경은 아니다. 사교육 업계에선 고학력을 가진 할머니ㆍ할아버지, 특히 스스로 교육 전문가라고 자신하는 교사 출신들이 학조부모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학교에선 ‘할머니 치맛바람’이 거세다. 어떤 초등학교는 딸ㆍ며느리를 대신해 녹색어머니회 교통지도에 참석하는 할머니가 많아지자 ‘할머니 봉사단’을 꾸렸다. 녹색어머니회는 말 그대로 어머니만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의있는 할머니들은 사춘기 손주를 어떻게 키울지 상담을 오거나 시험감독에 들어오기도 한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거는 할머니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일부 학조부모는 교사를 교육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고 ‘선생님은 애를 안 키워봐서 잘 모른다’는 식으로 자신의 교육관을 내세워 힘들게 한다. 할머니들의 과도한 교육열 때문에 부모들도 속앓이를 한다. 자녀의 교육 주도권을 빼앗겨 갈등도 겪는다. 아이들 또한 조부모와 부모의 교육관이 달라 혼란을 느낀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육아ㆍ교육 경험이 풍부한 학조부모는 젊은 교사나 부모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 할머니들이 주도하는 교육 열풍은 ‘신(新)치맛바람’이다. 어차피 대세라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선 소통을 자주 하며 서로 신뢰를 쌓는게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건설인들의 절규… 적정공사비 확보해야

“공사를 하면 할수록 적자입니다.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한 우리 같은 애국자들이 왜 이런 처지에 놓여야 합니까” 최근 열린 대한건설협회 정기총회에서 한 건설사 대표가 켜켜이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자 식장은 이내 숙연해졌다. 이를 듣던 100여 명의 회원사 대표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가슴 속을 후벼 파기라도 한 듯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 대표는 “공사를 따내기도 어려울뿐더러 공공공사 10건 중 4건이 적자공사”라며 “정부가 적정공사비를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도록 우리 모두 머리띠를 두르고 서울 광장이라도 나가서 투쟁하자”고 절규했다.앞서 열린 건설협회 경기도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또 다른 건설사 대표도 작년에 간신히 119안전센터 신축공사 1건을 따내 공사했지만,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 두 건설사 대표들의 목소리는 애처롭기까지 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토록 절실한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공공발주자들이 적정공사비를 책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 삭감 위주의 공사가격 과소산정과 무책임한 공기연장으로 말미암은 추가비용 미지급 등 건설업계의 불공정 관행이 깊이 뿌리박힌 탓이다. 이는 건설업과 관련한 지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건설기업의 경영여건은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악화해 건설업 매출액영업이익률은 지난 2005년 5.9%에서 2015년 0.6%로 곤두박질 쳤다.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건설산업의 청년 일자리 미래는 더욱 어둡기만 하다. 결국, 적정공사비가 확보되지 않는 한 건설업체의 수익성 악화는 지속될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는 건설산업의 붕괴뿐만 아니라 하도급ㆍ자재ㆍ장비업자의 부작용이 누적되고 특히 각종 안전사고 증가로 연결될 우려 또한 크다. 적정공사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무분별한 예산 삭감 위주의 공사비 산정으로 곪은 대로 곪아 터진 건설 환경이야말로 건설업계의 가장 큰 ‘적폐’가 아닐까. 정부는 울부짖는 건설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권혁준 경제부차장

[지지대] 장애인 감동드라마 ‘평창패럴림픽’

지난 2월 대한민국은 물론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이 17일간 많은 감동과 화제를 남긴 채 지난 2월25일 폐막됐다. 그로부터 열이틀 뒤인 3월9일 또 하나의 감동의 축제가 강원도 평창과 강릉, 정선에서 이어진다. 바로 장애인들의 ‘감동 축제’인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이 개막된다. 1988년 서울 하계패럴림픽 이후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이번 평창패럴림픽에는 49개국 570명의 선수가 참가해 6개 종목에 걸쳐 80개의 금메달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패럴림픽은 93개국 2천900여 명이 참가했던 비장애인올림픽과 비교해 규모면에서 4분의1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 가운데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선수도 있는 반면, 대다수가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 등으로 인해 후천적 장애를 갖고 사는 사연 많은 선수들이다. 이들은 비장애인도 쉽지 않은 눈과 얼음 위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남다른 용기와 도전을 펼치는 것이다. 따라서 평창패럴림픽의 모든 경기는 승패와 결과를 떠나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감동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마늘 소녀’로 대변되는 여자 컬링 대표선수들의 감동과 역사적인 첫 남북 단일팀인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투지, 스피드스케이팅 차민규ㆍ김민석의 ‘깜짝 메달’, 변방에서 이룬 윤성빈의 ‘스켈레톤 황제’ 등극, 이상화ㆍ고다이라의 아름다운 우정 등을 통해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 뜨거웠던 동계올림픽의 열기와 국민적 감동은 불과 열흘도 안돼 국내 정세와 사회적 이슈에 묻혀 식어가고 있다. 더욱이 패럴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비장애인올림픽과 비교할 때 무관심에 가깝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장애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예측불가의 운명이다. 다만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찾아온 장애 앞에 좌절해 불행한 삶을 사느냐, 아니면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면서 새로운 행복을 찾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스포츠 활동을 통해 장애를 아름다운 도전으로 승화시키는 장애인 선수들의 경연장이 될 평창패럴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이유다. 황선학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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