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자살 예방의 날

‘내가 쓸 자서전에는 나의 글쓰기는 이랬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장면이 담겨있을 것이다 우선 손톱이 긴 여자가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리고 야한 여자들은 못 배운 여자들이거나 방탕 끝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여자여야 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라는 즐겁지 않았어야 했다고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는 소설 속 여자이어야 했다고’ 살아있을 적,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시 ‘내가 쓸 자서전에는’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바뀌지 않는 세상을 조롱하는 시처럼 우울증에 시달리던 마 교수는 지난 9월5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채 발견됐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37.5명. 하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국인의 숫자다. 지난해에만 1만3천513명이 자살을 선택했다. 10~30대 사망원인, 40~50대 사망자 수, 65세 이상 노인의 사망원인 1위가 모두 자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자살률을 비교해 봐도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6.5명으로 2위 일본(18.7명)보다 1.4배 높고 OECD 평균 12명보다 2배 이상 높다. 한국은 15년째 OECD 국가 자살률 1위로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가와 사회가 자살을 방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에서 유독 자살률이 높은 원인으로 성공지상주의와 과도한 경쟁, 과중한 업무와 급격한 사회변화 스트레스, 청년실업률 증가, 준비 없는 중장년층 퇴직, 가족 해체, 유명 연예인 모방자살 등이 꼽힌다. 사회가 생애에 걸쳐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부추기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부 대책은 상당히 미흡하다. 일례로 올해 복지부에 편성된 자살 예방예산은 99억원이다. 자살률 2위를 기록한 일본(7천508억원)의 1.3%다. 매년 9월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에서 한해 80만명의 자살자가 발생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자살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03년 ‘자살예방의 날’을 정해 각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도 예산 확대와 함께 적극적ㆍ체계적으로 자살 예방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 ‘자살하려는 사람은 막을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사회안전망의 재편

최근 들어 대한민국에는 각종 복지 수당이 난립하고 있다. 아동 수당, 청년 수당, 노인 수당, 장애인 수당, 참전유공자 수당, 퇴직 수당 등 수당의 종류만도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다. 이런 ‘주먹구구식’ 복지 수당은 과연 누구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수당은 기준 외 보수로서 기본급을 보완해 주는 부가급(附加給)을 말한다. 다시 해석하면 기본적으로 노동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지급되는 급여가 수당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나오는 수당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미명 아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정부와 자치단체장들이 앞다투어 특정 계층을 위한 복지 수당 정책을 내놓고 있다. 과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언제까지 이들의 문제를 수당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빈민층을 돕는 것이 개인의 자선이나 지방 정부의 일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 대공황으로 대규모 실직자가 발생하면서 노동 인구의 임금에서 차감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사회 보장 제도가 마련됐다. 실업 보험, 장애 보험, 기타 지원 등을 제공했다. 이를 시작으로 미국에서도 의료 보장, 식량 배급, 저소득층에 매월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복지 수당 등의 지원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이처럼 복지 시스템이 넘쳐나자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제도 자체가 선거의 쟁점이 되기도 했다. 1992년 대선 캠페인 당시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는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빈곤층의 의존도를 높일 뿐이라는 비난은 1996년 일부 연방 프로그램의 재편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생각나는 대로 아무나 툭툭 던지는 복지 수당은 사회적 약자들의 정부 의존도를 높이고 재정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 자명하다. 사회적 약자의 사회안전보장과 고용제도 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빈곤층을 지탱할 사회안전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동 수당, 청년 수당, 노인 수당을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 빈곤층이 최소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체계적인 통합 복지 지원 시스템 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최원재 정치부차장

[지지대] 소년법

질풍노도의 시기 청소년들의 일탈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범죄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우발적 범죄로 평생 전과자의 멍에를 달고 살아야 할 청소년들을 선처하고 배려하는 법이 있다. 소년법이 그것이다. 소년법은 청소년들을 정신발육이 미숙하고 성인보다 교화 등이 쉽다는 이유 등을 들어 감형하거나 처벌을 면하기도 한다. 대상 연령은 19세 미만이고 소년법에 따른 법정 최고 형은 징역 20년으로 알려져 있다. 살인 등 흉악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청소년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최고 처벌은 징역 20년 정도라는 이야기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으로 소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은 특히 피해학생의 폭행당한 사진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공분을 샀다. 혈흔이 범벅된 피해자의 모습은 어떻게 중학생 어린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잔혹할 수 있을까 충격적이었다. 이후 강릉 여중생 폭행 사건 등 잔혹한 청소년 범죄가 추가로 알려졌다. 이처럼 청소년 범죄가 이제는 더 치밀하고 잔혹해진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국민들이 많다. 요즘 청소년범죄는 더 계획적이다. 가해 청소년들은 자신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감형이나 처벌을 안 받을 것이라고 인지하며 폭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청와대에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청원이 봇물을 이뤘다. 한때 청와대 국민청원 코너가 마비될 정도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처벌을 약하게 한다는 것은 이제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 물론 일괄적으로 소년법을 폐지할 경우 법의 애초 취지처럼 교화 계도하면 될 많은 청소년이 새 출발할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엄벌할 필요성이 있다. 소년법을 악용하는 청소년들의 범죄가 더 흉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선처하고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성인과 같이 엄벌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되기를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아동수당

문재인 정부가 만 5세 이하에 아동수당으로 월 1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0~5세 아동 1인당 월 10만원씩 가계 소득, 자녀 숫자와 무관하게 모든 가정에 주는 것이다. 내년 7월부터 250만명의 아동에게 지급할 예정으로 1조1천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이는 문 대통령의 공약으로 매년 최소 2조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정부는 아빠가 육아 휴직을 할 때 지급하는 첫 3개월간 월급 상한액도 일괄적으로 월 20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지금은 첫째 아이일 때는 150만원이고 둘째 아이 이상에 200만원인데, 모두 200만원으로 올리는 것이다. 여성 근로자의 출산 휴가 시 월급 상한액도 월 150만원에서 160만원으로 인상한다. 정부가 아동수당을 신설하고, 여성 출산 휴가와 아빠 육아 휴직의 월급액을 인상하는 것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는 현 상황을 국가적 위기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여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저출산 해결을 위해 10년간 100조원을 썼는데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국가적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출생아 수가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18만8천명으로 줄어, 합계 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1.03이 될 전망”이라면서 “이대로 몇 년 지나면 회복할 길이 없게 된다”고도 했다. 저출산 문제를 심각한 국가적 위기로 인식한 문 대통령의 현실 진단은 옳다. 그러나 과거 정부의 정책실패에서 알 수 있듯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는 매우 어렵다. 전반적인 삶의 질이 나빠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난제 중 난제다. 저출산은 아동수당을 월 10만원씩 준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월 10만원으로 젊은 부부의 출산기피 심리를 되돌릴 수는 없다. 사회 진출 이후 겪는 취업, 결혼, 가계를 위협하는 육아와 사교육비 부담, 심화되는 소득 양극화 등 현실의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젊은 부부들이 아기를 갖기 부담스러울 만큼 삶이 팍팍하다.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풍조도 영향을 미친다. 전반적인 삶의 질이 좋아져야 저출산 문제도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동수당은 변죽 울리기에 불과하다. 무상보육을 시행한 지 6년째 됐지만 저출산은 개선되지 않았다. 2012년 1.3이던 합계출산율은 더 떨어졌다. 저출산이 국가적 난제지만 ‘획일적ㆍ무차별 지원’은 바른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는 조급증을 버리고 근본 문제를 찾아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kt위즈는 그날…

시작부터 특별했다. 야구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영화 ‘귀향’의 주인공 박지희씨와 제작진이었다. 이어 시구에는 고령의 할머니가 등장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였다. 염태영 시장의 부축을 받던 할머니가 힘찬 구호를 외쳤다. “kt위즈 이겨라!” 관중들에겐 어떤 응원 구호보다 크게 다가왔다. 대형 태극기와 함께 할머니는 내려갔고 kt위즈와 sk와이번스의 경기는 시작됐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kt위즈는 다른 팀이었다. 1회부터 맹공을 휘둘렀다. 앞 선수가 출루하면 뒤 선수가 진루시켰다. 다음 선수는 어떻게 하든 홈으로 불러들였다. 방망이가 부러져도 공은 외야까지 날아갔다. 상대가 3점을 내며 턱밑까지 추격했지만 kt위즈는 곧바로 8점을 내며 달아났다. 상대는 끊임없이 투수를 교체했다. 하지만, 나오는 투수마다 안타와 홈런을 맞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날 kt위즈는 강팀이었다. ▶경기장은 축제의 장이었다. 공을 향해 몸을 던지는 로하스의 수비, 나올 때마다 안타를 때리는 윤석민의 공격, 담장을 훌쩍 넘겨버린 이진영의 홈런…. 1회부터 9회까지 기쁨의 이벤트는 이어졌다. 1루 응원석에 수원팬들은 자리에 앉을 틈이 없었다. 응원단장의 선창과 관중의 후창이 떠나갈듯했다. 우익수 너머 관중석에는 ‘줌마’ 부대의 ‘앞치마 댄스’가 이어졌다. 3시간짜리 축제가 그렇게 1분처럼 지나갔다. ▶경기가 끝났어도 관중은 남았다. 익사이팅 존 관중들과 선수들의 하이파이브가 이어졌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아기도 그 줄 속에 있었다. 감독과 선수들이 무릎을 꿇어 아기와 키를 맞췄다. 경기장 밖에도 흥분은 이어졌다. 선수단 차량을 관중들이 에워쌌다. 차에 오르는 선수 한 명 한 명을 격려했다. 무려 스물 한 개의 안타ㆍ홈런을 때려낸 선수들이다. 누가 누구인지 굳이 구별해낼 필요도 없었다. ▶kt위즈는 꼴찌다. 맥없는 공격, 엉성한 수비로 홈팬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랬던 kt위즈가 그날은 달랐다. 공격은 막을 수 없는 창이었고, 수비는 뚫리지 않는 방패였다. 시민들은 그런 kt위즈를 보며 행복해했다. 아쉽게도 2017시즌은 끝나간다. 남은 경기를 다 이겨도 kt위즈에게 가을 야구는 없다. 하지만, 날마다 새롭게 시작되는 시즌은 남아 있다. 시민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원시민만의 시즌’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전화 끊을 권리

언어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는 콜센터 전화상담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전화 끊을 권리’가 도입되고 있다. 전화상담원들은 보통,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상담사 OOO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며 친절한 목소리로 응대를 시작하지만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건 욕설일 때가 많다. ‘야 이 XXX아, 너 몇 살이야?’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 ‘영원히 사라지고 싶으냐’ ‘목소리 좋은데 밤에 한 번 만나자’….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겪어야 하는 전화상담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폭언과 욕설은 기본이고 성희롱과 협박성 발언까지 이어진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해 7월 콜센터 근무자 1천1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85%가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바 있다. 전화상담원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전화로 갑질하는 ‘진상’ 고객을 퇴치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전화 끊을 권리’다. 대형마트, 홈쇼핑업체, 신용카드사, 지방자치단체 민원센터 등에서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정신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어폭력으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하고 악성 민원 전화에 업무 시간을 과도하게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소셜커머스 위메프는 지난 7월 ‘고객의 성희롱·폭언·욕설 전화가 2회 경고 뒤에도 계속되면 상담사가 먼저 전화를 끊어도 좋다’는 매뉴얼을 도입했다. 이마트도 지난 3월 ‘폭언과 욕설 고객 상담 거부’ 내용을 담은 매뉴얼을 도입했고, 현대카드도 작년부터 폭언을 일삼는 고객의 전화는 상담사가 경고 후 먼저 끊도록 했다. 고양시 민원센터에서도 언어폭력을 일삼는 민원인에 대해선 먼저 전화를 끊도록 했다. ‘굿모닝 120 경기도콜센터’도 기존 ‘폭언ㆍ욕설, 성희롱, 고의적 괴롭힘 등 악성민원 상담에 대해 1회 경고 후 상담종료’ 항목에, 해당 민원인이 다시 전화를 걸 경우 타 상담사 및 수석 상담사로 연결해 2차 피해를 방지하는 등 운영 가이드라인을 강화했다. 막말 전화 끊기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현대카드의 경우 작년 상반기 막말 전화가 월평균 300여 건 왔지만, 올해 들어선 월평균 120건으로 60% 이상 줄었다. 기업들에서 고객들이 상담사를 정중하게 대하도록 하는 캠페인도 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사회공헌 캠페인 ‘마음이음 연결음’을 통해 직원과 통화 연결 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라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한편, 고객의 화를 유발하는 ARS(자동응답시스템) 등 상담센터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변해가는 세상

여름과 가을의 경계 선상에 있는 요즈음 날씨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된다. 특히 이번 여름은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같은 지역에서도 강수량 편차가 심하게 나타나고, 하루에도 몇 차례 비가 왔다가 그치는 게릴라성 호우를 자주 겪었다. 우리나라 여름에 자주 나타나는 국지성 호우가 점차 아열대 지방의 스콜을 닮아가고 있다. 국지성 호우가 어느 곳에 내릴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기상청도 버거운 상황이다. 날씨만큼이나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국제정세, 노동환경, 사회복지 등등… 20세기에 상상이 더해져 만든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기도 하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 역시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3대째 총수 체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 각각 행한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는 무혐의, 집행유예, 실형으로 높아졌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초대 회장은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원료 밀수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되지는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과 2007년 서로 다른 비자금 사건으로 수사를 받았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측에 100억 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이듬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로 이 회장은 2009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 원이 확정됐다. 이 회장은 두 사건 모두 1년 뒤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상속에 도움을 받는 대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433억 원 상당의 뇌물을 주거나 주기로 약속한 혐의 등으로 지난 25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국민의 높아진 수준과 잣대, 인터넷과 SNS 등으로 인한 정보의 공유,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정(情)과 의리의 문화 탈피, 김영란법으로 정점을 넘어선 투명한 사회의 요구 등에서 기인한다. 격변의 시대에 중심을 잡고 자신의 일에 충실할 때인 듯하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김진욱의 ‘100敗 위기’

프로야구 ‘막내’ kt wiz의 2대 사령탑으로 지난해 10월 지휘봉을 잡은 김진욱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인성, 육성, 근성의 감동을 주는 야구를 하겠다”고 했다. 더불어 명문팀의 기초를 다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10개월이 지난 김진욱의 ‘kt 야구’는 취임 당시 그가 밝힌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29일까지 kt가 거둔 성적은 37승81패, 승률 0.314로 1군무대 데뷔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100경기 패배의 불명예를 떠안을 위기에 놓여있다. kt가 100패를 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남은 26경기 가운데 8승 이상을 거둬야 하지만 산술적으로 쉽지 않다. 이에 구단 관계자들은 노심초사하고 있지만, 정작 김 감독은 아직도 여유있는 모습이다. ▶지난 10개월 동안 김진욱 감독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줬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거쳐 시즌 초반까지 ‘돌풍’을 일으켰던 kt의 모습은 5월 이후 월 10승도 거두지 못하는 팀으로 전락했다. 신생팀으로서 엷은 선수층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많은 어린 선수들이 많다는 점, 모기업의 구조상 일반 기업에 비해 투자가 원활치 못한데 따른 FA(자유계약선수) 및 외국인 우수선수의 영입 어려움 등을 감안하더라도 초라한 성적이다. kt의 경기 가운데 일부 경기는 일반 팬들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선수 기용과 교체, 야구의 기본을 저버린 작전 등으로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망쳐버리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때로는 김진욱 감독이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아직도 선수들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김 감독은 취임 초기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껏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야생마처럼 뛰어놀게 하겠다”고 했다. 선수들에게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많이 주겠다는 배려였다. 그러나, 그가 몸담고 있는 KBO리그는 생활체육이나 아마추어 경기가 아니다. 개인과 팀 성적에 따라 적게는 몇백만원부터 많게는 수억원의 연봉이 좌우되는 프로리그인 것이다.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계속 실험만 하면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현실을 구단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지켜볼 일이다.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황혼의 욜로

세상살이가 팍팍해져서일까? 천륜이라고 하는 부모, 자식 간의 소송이 해마다 늘고 있다. 노부모가 자녀에게 부양료를 청구하기도 하고, 상속했던 재산을 돌려달라는 사례도 있다. 자녀들 교육비와 결혼비용으로 재산을 다 쓰고 정작 자신의 삶은 챙기지 못한 노인들이 빈곤 상태에 이르거나 파산하면서 경제적 도움을 받기 위해 부양료 소송에 나서고 있다. 2006년 152건에 불과했던 소송 건수는 지난해 270건으로 10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생활비 청구뿐 아니라 자녀에게 물려준 재산을 되돌려 달라고 청구하는 소송도 증가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증여한 20억원대 주택을 되돌려 주라고 판결했다.이것도 ‘부모를 충실히 부양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해도 된다’는 계약서를 써뒀기에 가능했다. 노후 봉양을 하겠다는 ‘효도 계약’의 물증이 없으면 대개 부모들이 패소한다. 이 때문에 부양 의무를 저버린 자녀에게서 재산을 좀 더 쉽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불효자 방지법’이 추진되고 있으나 몇 년째 표류 중이다. 증여재산을 둘러싼 부모와 자식간 갈등은 더 이상 드라마 속 얘기가 아니다. 부모 봉양에 각서까지 쓰는 세태, 오죽하면 부모가 소송까지 했을까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부모ㆍ자식 관계는 점점 이해타산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상당수 어르신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르신들 사이에 ‘쓰죽회’가 유행이다. 남은 인생, 가진 재산을 다 ‘쓰’고 ‘죽’자는 모임이다.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은퇴는 점점 빨라진다. 재산을 자식한테 물려준다고 대접받기는커녕 용돈도 제대로 못 받아쓰고, 궁상떨며 사느니 모아놓은 재산을 나를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주택을 보유한 만 60~84세 노년가구 4명 중 1명은 ‘주택을 자녀에게 상속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조사도 나왔다. ‘쓰죽회’는 뉴노멀 중년(New Normal middle age)의 한 현상이다. 청년들만큼 활동적이라는 의미에서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도 불린다. 많은 5070세대가 손자를 돌보는 시간보다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어울려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대학 평생교육원이나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사람들과 취미활동도 즐기고 봉사활동도 한다. 그러다 보니 BC(복지관 커플)도 늘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 지금 행복하겠다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는 더 이상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식한테 부양의 짐을 지우지 않는 것도 부모가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조동진의 詩

‘나뭇잎 사이로 하얀 가로등그 불빛 아래로 너의 여윈 얼굴’(나뭇잎 사이로). ‘소매 가득 바람 몰고 다니며묵은 햇살 다시 새롭게 하며’(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 조동진의 노랫말은 시(詩)다. 밤과 낮, 바람과 비, 하늘과 땅, 바다와 산, 시간과 공간…. 철저히 서정적이다. 가사 어디에도 현실주의는 없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그의 노랫말을 파헤쳤다. 그리곤 시대적 메시지를 찾아보려 애썼다. 독재 권력이 그런 노랫말에 ‘판금’ 딱지를 붙였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씨가 말했다. “좋은 시를 쓰는 순간 그 사람이 시인이다. 그런 관점에서 음악 가사를 시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그런 형태의 상이 있다면 수상자로 마음속에는 조동진을 품고 있었다.” 음악평론가가 아닌 문학평론가의 평이다. 드물게 남의 가사에 곡을 붙인 노래가 ‘작은 배’다. 하필 시인 고은의 시다. ▶그런 노랫말을 통기타에 실었다. 가장 통기타적인 음악을 고수했다. 코드진행도 철저히 통기타 중심이었다. 쇠줄(스틸)을 쓰지 않은 것도 특이했다. 금속성 소리를 싫어했다. 서정적 가사를 담아낼 재질이 아니라 여긴 듯하다. 피아노, 무그 등도 사용했는데, 역할은 통기타의 여백을 메우는 정도였다. 통기타 하나로 모든 연주가 가능했던 음악이다. 70, 80년대 젊은이들이 그의 음악에 빠졌던 이유다. ▶방송에 출연한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독하게 방송 출연을 꺼렸다. 1979년 1집 ‘조동진:행복한 사람’이 공전의 히트를 했다. 하지만 방송은 외면했다. 작고 카메라 없는 무대만을 고집했다. 1980년대 ‘동아기획 사단’의 수장으로 군림했다. 이때도 그는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2016년 11월 그의 마지막이 된 앨범 ‘나무가 되어’가 발매됐다. 20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음악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끝내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다. ▶28일 그가 숨졌다. 그에게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노래하는 음유시인’ ‘통기타 음악의 대부’ ‘한국의 밥 딜런’…. 어느 표현이 적절한지 따질 이유는 없다. 각자의 추억이 내릴 판단이다. 굳이 필자의 추억도 옮겨본다면 이렇다. ‘30년을 한결같이 살던 음악인이다-세상의 어떤 변화에도 기웃대지 않았던 음악인이다-웬만해선 흉내 낼 수 없는 인생이다.’ 마치 오늘을 준비한 듯 들리는 그의 노랫말이 있다. ‘부르지 말아요 마지막 노래는마지막 그 순간은 또다시 시작인데’(다시 부르는 노래). 김종구 주필

[지지대] 개팔자도 양극화

최근 바닷가와 강·호수·계곡이 있는 주요 관광지를 중심으로 애견호텔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푸른 동해와 설악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속초에 지난 7월 초 애견호텔 ‘개편한 세상’이 생겼다. 어느 건설사의 아파트 이름 ‘이편한 세상’에서 차용했지 싶다. 개를 위한 호텔 이름으로 제격이다. 6천600㎡ 부지에 넓은 잔디밭이 있는 이 애견호텔은 내부 규모가 396㎡로 최대 20마리까지 묵을 수 있다. 휴가철 꽤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의 한 스파랜드엔 전국 최초로 애견수영장과 놀이시설을 갖춘 애견호텔이 지난 5월에 생겼다. 이곳엔 가로 5m, 세로 6m의 애견 수영장이 있어 피서객이 애견과 함께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견주(犬主)들은 애견호텔에 강아지를 맡기고 일반 수영장을 이용하거나 스파, 찜질방을 이용할 수도 있다. 호텔은 1견1실로 2대의 홈 캠까지 설치돼 있어 24시간 반려견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음성 전달도 가능해 반려견에게 말을 걸 수도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이들이 많다보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애지중지한다. 반려동물 전용 ‘펫택시’(PetTaxi)까지 등장했다. 이름은 택시지만 자가용 자동차로 반려동물을 실어 나른다. 최근 1, 2년새 펫택시 업체가 서울에만 10곳가량 생겨났다. 주인이 함께 타지 않아도 운전사가 반려동물을 맡아 목적지까지 옮겨주기도 한다. 펫택시는 기본요금이 일반 택시의 3.7배가 되는데도 성업 중이다. 어떤 개들은 이처럼 호강을 하지만, 또 어떤 개들은 학대를 받고 버려진다. 올해 들어 버려진 반려동물 수가 지난해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동물 통계 사이트 포인핸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전국에서 구조된 유기동물은 5만5천399마리로 집계됐다.하루 평균 반려동물 262마리가 버려진 셈이다. 이 가운데 주인에게 돌아간 경우는 8천323마리(15%)에 불과했으며 1만5천800마리(28.5%)는 다른 곳으로 입양됐다. 36.5%는 안락사하거나 질병으로 자연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올해 유기동물 수는 9.8% 늘어났다. 구조되지 않은 유기동물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려동물 1천만 가구 시대를 맞았다. 반려견은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분양받은 이들은 개를 끝까지 키울 수 있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학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개를 차량이나 오토바이에 줄로 연결한 뒤 끌고 다니는 끔찍한 사건이 가끔 발생한다. 동물학대에 대한 단속 및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DDT의 역습

“병아리 떼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신음했다. 재잘거리며 날던 새들도 사라졌다…” 전설적인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의 1962년 저서 침묵의 봄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녀의 평화롭던 고향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나쁜 마술적 주문에 걸린 것처럼 사방이 죽음의 장막으로 덮였다. ‘어떤 나쁜 마술적 주문’은 다름 아닌, 한때는 세기의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DDT였다. ▶이 녀석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1874년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화학자 자이들러가 독일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처음 합성했다. 살충제로서의 가능성에 대해선 주목받지 못했다. 스위스 생물학자 뮐러는 1939년 이를 효과적인 살충제로 개발한다. 여러 절지동물 접촉 독성을 보이는 효과를 발견한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 여파로 발진티푸스 등이 창궐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50대는 어린 시절 겨울마다 내복의 이와 벼룩 등을 없앤다며 선생님이 뿌려주던 분말 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썼던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다. 분말 가루를 뒤집어쓴 동갑내기 얼굴을 쳐다보며 까르르 웃던 시절이었다. 여름이면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골목을 지나가던 소독차량을 따라 달음박질쳤던 추억과 함께 말이다. 그 하얀 분말 가루가 바로 DDT였다. ▶이 녀석 덕분에 환경운동이 태동된다. 1969년 미국에선 국가환경정책법이 의회를 통과해 야생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체제가 갖춰진다. 1970년 첫 지구의 날 행사가 열리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2천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환경보호청이 설립됐고, 미국은 1972년 마침내 DDT 사용을 금지한다. 국내에서도 몇 년 뒤 같은 조치가 내려진다. 암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뒤따랐다.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경북의 모 농장 달걀은 물론 닭에서도 DDT 성분이 검출됐다. 우리가 매일 먹는 달걀이나 닭에 암을 유발하는 성분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무섭고 끔찍하다. 반세기가 흐른 뒤 한반도에서 그 주문이 부활한 것일까. 아니면 DDT의 의도된 역습일까. 아무튼, 레이첼 카슨의 경고는 그래서 아직도 유효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지구촌의 일원

내 친구 B는 무슬림이다. 185㎝의 큰 키에 쭉 빠진 날씬한 몸매를 가진 그는 아프리카 출신의 검은 피부의 젊은이다. 그는 항상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그를 생각하면 웃는 얼굴부터 떠오른다. 스웨덴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의 모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돼 수년 전에 입국했다. 나는 그와 2년 이상 매주 만났다. 그때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IS의 테러가 극심했다. 그는 “stupid(어리석은)”라는 말을 종종 했다. 이 말은 미국과 유럽은 강하며, 미국에 대항하는 것은 “stupid”하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됐다. 테러는 나쁘지만, 강자들은 또한 약자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에게 강했다. 아랍어에서 알 살라무 알라이쿰(al-salmu ‘alaykum,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이다. 답변은 와 알라이쿰 알 살람(wa ‘alaykum al-salm,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로 평화가 깃들이기를’)이다. 아랍 인사에서는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 이슬람 인구는 세계 인구 65억 가운데 약 15억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슬람은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로 부상하고 있다. 테러범의 대부분은 무슬림이지만, 유럽에 있는 이슬람 교도들의 99%는 IS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IS는 유럽의 무슬림 이민자 2세를 노린다. 그들은 사회적 소외 속에 IS에 대거 가입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유럽 테러의 원인은 유럽 젊은이들의 ‘허무주의’에 있다고 분석했다. 인간은 신이 준 특별한 속성인 자유의지로 인해 가르쳐주신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못하고 원래의 가르침에서 일탈하거나 왜곡된 길을 걷게 마련이다. 이때 하나님은 새로운 예언자를 보내 원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다시 일깨워준다. 무함마드(Muhammad: 570?~632)는 무슬림에게 오랜 역사를 통해 신성한 의무를 가지고 계시서를 가져온 수많은 사도 중 마지막 사도였다. 오늘날 모든 종교와 국가사회는 지구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다른 문화들을 관용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누구라도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설 수 없을 것이다. 김신호 인천본사 경제부 부국장

[지지대] 대통령의 계란 시식

통일벼를 개발한 이는 허문회 박사다. 그가 생전에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70년 초, 박정희 대통령이 시험 재배장을 찾았다. 방문에 맞춰 시식 겸 밥맛 평가회를 했다. 박 대통령과 일행이 ‘맛이 좋다’고 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당장 종자를 최대한 증식하라’고 했다. 이후 필리핀까지 오가며 종자를 대량 생산했다. 그렇게 71년 말 보급된 게 ‘통일벼’다. 원래는 몇 년 더 연구하려고 했다.” 그 시절 대통령의 시식은 국가 정책까지 좌우했다.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1984년 충남 예산군 삽교읍에 들렀다. 벼 베기 일손을 돕기 위해서였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빚은 떡을 맛본 전 대통령이 일장 훈시를 했다. “햇곡식으로 빚은 떡과 탐스럽게 영근 햇과일을 먹으니 더욱 풍년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이 마을에 풍년 축제를 갖도록 지원해주라”고 일행에게 지시했다. 참석했던 농부는 “대통령의 좋은 말씀을 하루 종일 듣고 싶다”며 화답했다. 전 대통령의 시식은 권력의 과시였다. ▶유독 시식 문화를 선호했던 게 이명박 대통령이다. 2008년 봄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전국을 강타했다. 국민 사이에 가금류 공포가 확산됐다. 소비가 급감했고 축산농이 위기에 처했다. 그즈음 이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을 깜짝 방문했다. 기자들과 함께 오찬을 했고 준비된 음식이 삼계탕이었다. 하루 전에는 전북도청을 방문해 오리 훈제를 먹었다. 닭과 오리고기를 먹는 대통령 모습이 연일 신문방송에 나왔다. ▶그랬던 이 대통령이 곤욕을 치렀던 것도 시식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정국 때다. 인터넷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미국산 쇠고기 시식을 권하자’는 청원 운동이 일었다. 식품 안전이 논란을 빚을 때마다 ‘먹어도 된다’며 시식 정치를 했던 그다. 그가 쇠고기 파동 정국에서 ‘먹어 보라’는 유례없는 역(逆) 시식 공격을 받았다. 그만큼 대통령의 시식 정치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살충제 계란’ 사태로 계란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자료를 냈다. ‘피프로닐 계란을 1~2살 영유아는 하루 24개, 성인은 126개까지 먹어도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알기 쉽게 설명한 자료다. 그런데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게 자승자박이다. ‘국내에는 살충제 계란이 없다’는 거짓말로 신뢰를 잃었다. 그런 식약처가 ‘125개는 먹어도 된다’고 하니 어느 국민이 믿고 먹겠나. 무능한 식약처 행정이 대통령의 ‘계란 시식’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대통령 우표

우표는 한 나라의 사회와 문화ㆍ역사를 표현하는 상징물이다. 특히 대통령 우표는 국가의 비전과 국민의 염원을 함축하고, 시대정신이 담겨 있어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가 처음 나온 건 1948년 7월24일이다. ‘초대 대통령 취임기념 대한민국 우표’라는 글자와 함께 한복 입은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1952년 8월15일 2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는 양복에 넥타이를 맨 이 대통령 얼굴 옆으로 ‘희(囍)’자가 새겨졌다. 광복절과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의미로 경사가 겹쳤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80번째 생일 기념 등 모두 7종의 우표를 발행했다. 4대 윤보선 대통령의 취임 우표는 없다. 대신 ‘장면 정부’ 수립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5~9대 박정희 대통령은 고속도로 배경그림을 넣어 근대화에 대한 집념을 보여줬다. 박 대통령은 취임 기념을 포함해 육영수 여사·새마을운동·해외순방 등을 소재로 24차례 우표를 발행했다. 11~12대 전두환 대통령은 7년 재임기간 중 47차례나 우표를 발행했다. 역대 최다 기록으로 해외순방 기념우표가 특히 많다. 13대 노태우 대통령부터는 취임 기념우표만 발행했다. 권위주의 청산이란 명분과 함께 대통령의 외국 방문이 더 이상 특별한 기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우표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이 등장하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을 담았다. 14대 김영삼 대통령 우표엔 백두산을 그려 넣어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담았다. 15대 김대중 대통령 우표부터는 태극기나 태극문양 배경에 대통령 사진만 넣어 단순하게 표현했다. 김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우표도 발행했다. 16대 노무현 대통령과 17대 이명박 대통령 우표엔 세계지도가 표시돼 세계화라는 시대 흐름을 엿볼 수 있다. 18대 박근혜 대통령 우표는 품귀 현상을 빚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상징성과 직전 대통령에 비해 발행량을 60%나 줄여 희소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19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문 대통령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다. 이중 인터넷 우체국을 통한 판매는 2시간 만에 완판됐다. 우체국에서 문재인 우표를 사려는 긴 줄은 ‘이니굿즈’ 열풍을 실감케 했다. 역시 완판돼 못 사고 되돌아간 이들이 많다. 대통령 우표는 취임 초 반짝 인기를 누리지만 임기 후 각기 다른 운명을 맞는다. 얼마 전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우표는 발행이 무산됐다.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해 퇴임 후까지 존경받길 기대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행복할 거니까.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집배원 과로사

얼마 전 20여년 만에 재개봉된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는 이탈리아 아트무비의 진수로 꼽힌다. 나폴리 인근의 작은 섬을 배경으로 한, 망명 온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의 이야기다.네루다에게 오는 편지를 배달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고, 시인을 통해 성장해 가는 한 순수한 시골 청년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준다. 오래된 영화지만 영화음악과 함께 아직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 포스티노’는 칠레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원작이다. 영화 속 마리오처럼, 많은 이에게 우편배달부는 추억과 낭만을 선물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사랑과 희망의 전령사이자 슬픔을 함께 나누는 친구이기도 했다. 통신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아주 먼 옛날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편배달부들은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다. 이제는 집배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이들은 하루 평균 근로시간이 10.9시간에 달한다. 10명 중 4명은 하루 12~14시간, 월평균 22일을 일한다. 그렇다고 휴가를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연차휴가를 사용한 날은 평균 3.4일에 불과했다. ‘동료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 ‘업무량이 많아서’ 못 간다는 게 집배원들의 하소연이다.(한국노동연구원 설문). 이들은 질병을 달고 산다. 둘 중 한 명은 고혈압이나 심근경색, 대사증후군 등의 진단을 받았다. 분기별로 한 번씩은 근골격계 질환이나 교통사고 등 일하다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도 병가를 안 쓰는 사람이 10명 중 8명이다. ‘내가 쉬면 다른 사람이 내 일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집배원의 하루는 오전 5~7시에 시작된다. 우편물을 분류, 배달까지 마치면 오후 3~5시. 배달을 마친 뒤에도 이들은 다음 날 돌릴 우편물을 또 분류한다. 퇴근은 밤 9시를 넘기는 게 보통이다. 선거철이나 명절 때면 전쟁을 치른다. 이들의 하루 평균 이동거리는 광역시가 40㎞ 정도다. 신도시는 60㎞, 농어촌은 100㎞ 이상이다. 하루에 1천건 넘게 배달한다. 올 들어 집배원 9명이 세상을 떠났다. 위탁택배원과 계리원을 포함하면 12명이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20~50대 남성들이 뇌출혈, 동맥경화, 심근경색, 교통사고, 자살 등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집배원들의 잇단 과로사를 더 이상 간과해선 안된다. 장시간 노동, 상시적 위험, 불안정한 고용구조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골목축제’가 상표?!

‘골목’은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라는 의미의 명사다. 이 무미건조한 사전적 정의로는 골목을 오롯이 설명할 수 없다.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뛰놀았던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골목은 친구들과 거대한 상상력을 펼쳤던 세계였다. 누군가에게는 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기다리고 밀어를 속삭인 낭만적인 공간이었다. 모든 사람이 공유하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 바로 골목이다. 그래서 우리는 골목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고 친근하게 느낀다. ▶‘축제’는 시대 변화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해왔다. 종교적 권위가 드높았던 시대에는 일종의 종교적 의식이고 제사였다. 정치적경제적 변화로 사회가 분화하면서 놀이와 유희인 동시에 지역문화산업으로서 경제적 가치를 낳는 수단이 됐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구성원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인식은 축제 정의에서 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축제라는 단어 역시, 소소한 집안 행사에도 ‘축제구나!’라고 내뱉을 정도로 자주 쓴다. ▶최근 이 두 단어 ‘골목축제’에 얽힌 당혹스러운 기사를 접했다. 앞으로 ‘골목 축제’라는 명칭을 감천문화마을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부산 사하구가 ‘甘川(로고) 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甘川(로고) 골목축제’, ‘골목축제’ 3개 상표를 특허청에 상표 등록한 것이다. “2011년부터 전국 최초로 골목축제 명칭을 사용해왔는데 감천문화마을의 인지도가 상승함에 따라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모방 축제가 생”겼고, “‘골목축제’란 용어 사용에 대한 독점적ㆍ배타적 권리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유사 모방 축제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것이 상표 등록 배경과 기대 효과다. ▶특허청에 확인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대답은 더 어이없다. 타 지역축제에서는 사용할 수 있도록 심의 조정, 등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골목축제 등록 공고문에 이 상표를 사용할 수 없는 업무로 ‘마을 주민 문화 예술 활동 지원 업무, 문화 예술을 활용을 위한 마을공동체 조성 업무, 마을의 역사성과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살린 창조적 도시재생마을 조성 업무’ 등이 적혀 있다. 기자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가. 이 업무가 전국 각 지역 골목에서 이뤄지는 축제와 분리 가능한 업무인가. 바라건대, 누구라도 ‘골목축제’가 어느 한 지역의 상표가 될 수 있는지 이해시켜줬으면 좋겠다. 류설아 문화부 차장

[지지대] 불가근불가원의 절묘한 중간점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구천(句踐)이 오나라 부차(夫差)를 무너뜨렸다. 앞서 부차에게 패했던 구천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벼르던 승리였기에 그 기쁨은 더욱 컸다. 구천의 승리 뒤에는 범려(范)와 문종(文種)이라는 두 명의 책사가 있었다. 패권을 거머쥔 구천의 권력이 막강해지자 범려가 문종에게 말했다. “구천은 어려울 때 같이 할 수 있는 군주지만 태평시대에 같이 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문종에게 구천 곁을 떠나자고 했다. 문종은 거절했다. 그러자 범려는 구천의 곁을 떠나면서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 했다. 가까이할 수도, 그렇다고 멀리 있을 수도 없는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범려가 떠난 후 구천은 문종에게 물었다. “네가 가지고 있던 많은 계책 가운데 몇 개만을 사용하고도 오나라를 이겼다. 그런데 아직 나머지 계책을 말하지 않고 있다”며 “그 가운데 왕위를 찬탈하려는 계책이 있지 않겠느냐”라며 자결을 명했다. 문종은 그렇게 죽었다. 이와 유사한 논리적 표현이 있다. 바로 고슴도치 딜레마다. 겨울이 되면 고슴도치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 다가가 몸을 기대고 의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서로의 몸을 기대자니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고, 멀리 떨어져 있자니 추위를 견뎌내지 못한다. 그야말로 불가근불가원이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면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중간 지대가 없는 한 고슴도치의 겨울은 혹독하다. 정부는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 오른 7천530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최근 5년간 평균 인상률 7.4%의 두 배를 넘는 역대 최대 인상폭이다. 정부 방침대로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니 영세업자들이 고통스럽고, 그렇다고 최저임금을 동결하자니 근로자가 힘들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섬유업계 등 일부 업계가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며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나섰다. 그러자 정부는 뒤늦게 기업의 해외진출 자제와 기업의 혁신성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업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부는 지금이야말로 최저임금을 놓고 불가근불가원에 대한 절묘한 중간지대를 마련해야 한다. 상생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영수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닭 머리’ 행정

경희대 약학대 교수팀의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계란 속에서 중금속 물질인 카드뮴이 검출됐다고 했다. 양계장에서 인공사료에 의해 사육된 닭의 계란에서 0.008PPM, 일반 가정에서 사육된 재래종 닭의 계란에서 0.007PPM이 측정됐다. 연구팀은 “일본의 쌀에 대한 카드뮴 허용 기준 1.0PPM에 비하면 대단하지 않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카드뮴이 계란에서 검출될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1983년 6월에 보도된 이 기사가 국민을 계란 공포로 몰아넣었다. ▶1989년 일회용 계란포장용기가 등장했다. 경기양계협동조합이 처음으로 일회용 계란판 생산시설을 설치했다. 그때까지 계란은 플라스틱 계란판에 담아 보관, 운반됐다. 이 판을 업자들이 세척하거나 소독하지 않은 채 재사용하면서 위생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전국계우연합회는 기존 플라스틱 계란판을 자동으로 세척하는 공장을 세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명절 선물로 계란 꾸러미가 오가던 시절이다. 그만큼 계란에 대한 위생 문제는 국민의 건강과 직결됐다. ▶어제(15일) 오전, 계란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국내산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남양주 농가 한 곳에서 피프로닐이 검출됐고, 광주의 농가에서는 비펜트린이 검출됐다. 벼룩이나 진드기를 없애는 살충제에 포함된 성분이다. 정부는 15일 자정부터 모든 농장의 계란 출하를 중지시켰다. 몇 시간 뒤 대형마트들도 모든 점포에서 계란을 치웠다. 계란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간편식들도 판매 중단했다. ▶바다 건너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8일 시작된 계란 파문이다. 계란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됐고, 파문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졌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태연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가 “(우리나라는) 작년에 방송 보도 이후 양계협회나 농가에 지도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며 “농가들도 가급적 살충제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실시한 살충제 잔류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었다며 자신했다. 그러다가 이런 일이 생겼다. ▶1983년 우리 국민은 기준치 140분의 1의 카드뮴 검출에도 공포에 떨었다. 1989년 일회용 계란 포장용기 등장에도 환호했다. 30년이 흐른 지금, 그때보다 황당하고 더 후진적인 계란 행정이 등장했다. 막을 수 있었고, 예견할 수 있었던 계란 공포다. 지난해 이상 고온으로 닭에 진드기가 창출했다. 금지 살충제가 사용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일 없다’고 했고, ‘검사 결과 이상 없다’고 했다. 몇 명의 국민이, 몇 개의 살충제 계란을 먹은 것일까. 이를 파악하고 있을 리 없는 정부다. ‘닭 머리’ 행정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이다. 2011년 12월14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천회 수요집회 때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전쟁의 아픔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다. 평화의 소녀상은 조각가인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의뢰로 제작했다. 소녀상은 1920~1940년대 조선 소녀들의 일반적인 외모를 가진 단발머리 소녀로 의자 위에 손을 꼭 쥔 채 맨발로 앉아 있다. 단발머리는 부모와 고향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며, 발꿈치가 들린 맨발은 전쟁 후에도 정착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방황을 상징한다. 소녀의 왼쪽 어깨엔 새가 앉아있다. 새는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소녀상 옆에 놓인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났거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모든 피해자를 위한 자리다. 2011년 첫 설치 이후 의정부, 고양, 수원, 부산, 광주 등 국내 곳곳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ㆍ일 위안부 합의’ 이후엔 전국적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 붐이 일고 있다.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조건으로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올해 광복절 전후로 전국 11곳에 소녀상이 건립, 국내외 소녀상은 모두 58개로 늘어난다. 평화의 소녀상은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인천 부평공원에는 징용노동자상과 소녀상이 나란히 세워졌다. 부평은 일본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 군수공장이 위치했던 곳이어서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노동자들도 기리기 위해 시민성금 7천500만원으로 세웠다. 부산의 경우 중국인 소녀상도 함께 세웠다. 서울 금천구의 소녀상은 왼손엔 번데기가, 오른손엔 나비가 앉아있다. 번데기는 나비가 되기 이전의 상처받은 과거를, 나비는 미래를 뜻한다. 해외의 미국 캘리포니아와 미시간 주에도 소녀상이 세워졌다. 2015년 11월엔 화성시민 성금으로 캐나다 토론토에 소녀상을 건립했고, 지난 3월엔 수원시민 성금으로 독일 레겐스부르크시 인근 비젠트에 소녀상을 세웠다. 평화의 소녀상은 시내버스도 탄다. 서울의 동아운수는 14일부터 9월30일까지 151번 버스 5대에 특별제작한 평화의 소녀상을 태우고 운행한다. 승객 안전을 고려해 가벼운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제작했다. 소녀상 옆 차창엔 그 뜻도 새겨 넣었다. 계속되는 소녀상 건립에 일본 정부는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기 쉬운 움직임을 자제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공식 사죄부터 하는 게 우선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