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비만백서

해가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새해 계획을 세운다. 그중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이 ‘살빼기’다. 올해는 기필코 살을 빼겠다며 ‘살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밥 굶기ㆍ식이요법 등 음식 조절, 걷기ㆍ수영ㆍ헬스 등 다양한 운동으로 시도한다. 멋진 몸매를 위해 살을 빼는 이도 있지만 상당수는 비만 정도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뚱뚱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고도 비만 환자(체질량지수(BMI) 30 이상) 비율은 조사 첫해인 1998년 2.7%에서 2015년 4.6%로 70% 급증했다. 2030년엔 9%까지 올라갈 것으로 분석됐다. OECD는 보고서에서 “최근 20년 사이 고도 비만 환자가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난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과 노르웨이뿐”이라고 경고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7 비만 백서’를 발표했다. 19세 이상 성인 1천395만명의 건강검진 결과를 분석했는데, 지난 2016년 BMI 25 이상 비만 환자가 33.6%로 집계됐다. 남성 비만율은 41.3%로 여성(23.7%)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30~40대 남성의 비만 문제가 심각했다. 30대 46.3%, 40대 45.9%, 50대 42% 등으로 남성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중·고교생 비만율도 2005년 8.2%에서 2016년 12.8%로 꾸준히 늘고 있다. 남성은 부자일수록 여성은 가난할수록 비만율이 높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7 비만 지도’를 보면 제주도의 비만율이 전국 시도 중 가장 높았다. 제주는 남성 비만율이 48.7%로 1위다. 여성 비만율도 26.5%로 강원(27.8%)에 이어 둘째다. 그러다보니 ‘제주가 돌, 여자, 바람에다 비만까지 사다도(四多島)’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제주에 비만 인구가 많은건 대중교통이 부족해 승용차 이용자가 많고, 외식문화가 발달해 육류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제주도교육청은 올해부터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혼디 걸으멍 와바(함께 걸어요)’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비만은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고지방·고열량 음식 섭취량이 많은 반면 운동량은 줄어들면서 생긴 것이다. 덜 움직이고 더 먹어서다. 그런 면에서 살은 정직하다. 비만 환자가 늘면서 2015년 한 해 날린 돈이 9조1천506억원이다. 음주ㆍ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맞먹는다. 비만은 흡연·음주만큼이나 성인병 위험도 높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21세기 신종 감염병’으로 규정했다. 단순히 뚱뚱하다는 의미를 넘어 ‘질병’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질병은 치료해야 한다. 살 빼기, 어떤 이는 처절하게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무술년과 숫자 3

올해 경제계 화두는 숫자 3이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 경제성장률 3% 진입, 듣기만 해도 기분 좋다. 유독 숫자 3이 돋보이는 무술년(戊戌年)이다. 3이란 숫자는 사뭇 우리 역사나 동서고금사를 통해 의미가 있다. 또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친근하고 인간사를 포용하는 안전하고 넉넉한 숫자다. 중국의 노자는 “도는 하나를 창조했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그리고 셋은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말했다.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는 “3은 완전한 숫자로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모두 들어 있다”고 했다. 단군신화에서는 유난스럽게도 3의 숫자가 많다. 천부인 3개, 무리 3천 명, 3칠일간의 금기, 환인 환웅 단군의 3신 체계란 문구가 있다. 굿상에 물 3잔, 밥 3그릇, 무나물 3그릇, 신당 앞에 금줄을 치고 놓는 황토 3무더기도 찾아볼 수 있다. 또 ‘3족구’(다리 셋 달린 개)나 3족오(三足烏·태양새), 3정승, 3사, 군대 전체를 말하는 3군, 중국사에서 태평성대를 일컫는 하(夏)·은(殷)·주(周) 3대(三代) 등 3의 숫자는 한두 개가 아니다. 이뿐 아니다. 삼국지의 3고초려, 3강오륜, 이솝우화속 돼지 3형제, 완벽한 정3각뿔형형의 이집트 피라미드, 버뮤다 3각지대도 있다. 종교로 눈을 돌려보면 성부 성자 성신의 3위 일체, 불교에서는 부처, 부처의 가르침, 승려를 가리키는 3보(3개의 보물)란 말이 있다. 3의 숫자는 생활 속에서도 배어 있다. 3세판, 쓰리고, 3번의 기회, 3일장, 작심3일, 대차대조표의 3대 구성(자산, 자본, 부채), 왈츠의 3박자, 3각관계, 만세3창, 3배, 군자의 3가지 즐거움 등. 이처럼, 인류사와 함께 해온 숫자가 3이다. 많은 수학자나 철학자는 3의 숫자 의미를 안정과 완성으로 해석하고 있다.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새정부는 일자리 창출 등 경제살리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소득증대를 통해 부의 균등한 배분이 경제 기조다. 양적 팽창을 통해 질적 완성을 도모하는 원년으로 기록될 듯하다. 국민소득 3만불, 경제성장 3% 진입이란 대명제를 안고 출범한 무술년 새해, 넉넉하고 친근한 3의 숫자로 시작해 본다.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힘내라, 동네서점’

부(富)의 상징인 빌 게이츠는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원동력으로 ‘동네 작은 도서관’을 꼽았다. 그곳에서 얻은 독서습관이 하버드 대학의 졸업장보다도 소중하다고 했다. UN 수장 자리에 앉았던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남의 말을 잘 듣는 방법을 책에서 배웠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이들이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꿨다’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도서관이 많지 않은 시절, 그 역할은 동네서점이 대신했다.▶대형 프랜차이즈와 온라인 서점에 밀려 동네서점들이 사라지고 있다. 경기도만 해도 지난 2005년 463개이던 것이 2016년 276개로 줄었다. 편리함이야 온라인 서점을 따라갈 수 없다. 오전에 클릭 몇 번만으로 원하는 책을 사면 오후에 받아 볼 정도다. 도가 지난해 ‘선호하는 서점종류’에 대해 설문한 결과만 봐도 5명 중 1명 만이 동네서점을 택했다.▶‘서점 위기론’은 현실이 됐다. ‘서점 강국’으로 불렸던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기초자치단체 1천896곳 중 420곳에서 서점이 사라졌다. 다양한 타개책이 나온다. 서점도 도서관도 없는 기초자치단체를 찾아가 책을 판매하는 ‘달리는 서점’이 대표적이다. 서점이 아닌 데서 책을 팔기도 한다. 호텔에선 여행이나 문화예술 관련 서적을, 아웃도어 매장에선 레저 관련 책을 파는 방법이다.▶국내에선 ‘희망도서 서점대출 서비스’가 인기다. 책을 도서관이 아닌 일반 서점에서 빌려주는 제도다. 지자체가 관내 서점과 제휴를 맺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원시를 비롯해 용인, 안산, 오산, 부천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이용자가 늘면서 동네서점이 활기를 되찾고 있단다. 시민들은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고 동네서점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으로 도입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동네서점은 참고서와 베스트셀러 판매에 의존한 과거에서 탈피해야 한다. 경기도가 지난해 ‘힘내라! 경기 동네서점’ 공모사업을 진행, 작지만 특색있는 서점을 선정해 건물 리모델링과 문화활동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핸 서점 운영자가 생존 전략을 찾도록 현장 위주의 맞춤형 교육도 제공키로 했다. 연초에 나온 도의 동네서점 활성화 방안이 종이 냄새만큼 향기롭다.박정임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염태영 시장, 그리고 이 前 부시장

2017년 12월10일. 염태영 수원시장이 일본을 방문했다. ‘지구환경 교토회의, 교토 +20’에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지구 온난화 대책, 저탄소 도시설계 등이 논의됐다. ‘지속 가능한 도시 문명 구축을 목표로 하는 교토선언문’도 채택했다. 행사에는 세계 각국의 대표 14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염 시장이 유일했다. 국내에서 환경 부분의 상(償)은 거의 휩쓸다시피한 수원시다. 세계도 성과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소식이다. ▶그 일본 방문길에 ‘낯은 익지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인사가 동행했었다. 이재준 전 부시장이다. 그는 오랜 세월 염 시장의 측근이다. 5년간 수원 2부시장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처지가 달라져 있다. 수원갑 지역구의 당협위원장이다. 수원시정에 어떤 보직도 없다. 여기에 수원시장 출마설까지 나돌던 터다. 그런 이 전 부시장이 염 시장의 방일(訪日)에 함께 했다. 이 전 부시장이 이렇게 설명했다. “‘바쁜 일 없으면 한번 같이 가자’는 연락이 와서 함께 다녀온 것이다.”▶일본 체류기간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사나흘 뒤 이 전 부시장이 닭갈비를 뒤척이며 이런 말을 했다. “염 시장을 열심히 도울 것이다.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염 시장의 출마 선언이 늦어지면서 온갖 추측들이 나온 것이고, 그 얘기 중에 내가 거론됐던 것뿐이다. 염 시장은 3선에 도전할 것이고, 조만간 공개적으로 선언할 것 같다.” 지역 정치권에는 ‘교토선언’보다 크게 보일 수 있는 ‘교토회동’이다. ▶어제, 염 시장이 신년사를 발표했다. 일신연풍(日新年豊: 나날이 새롭게 해서 풍요로운 시절을 연다)을 화두로 4가지 복지를 강조했다. 노동복지는 ‘일자리의 양적 확대에서 질적 확대로 전환해 가겠다’고 했다. 주거복지는 ‘수원형 주거사다리 구축해 주거 안전망을 짜겠다’고 했다. 교육복지는 ‘공교육 현실을 혁신하기 위한 변화를 일구겠다’고 했다. 육아복지는 ‘민간 가정 어린이집을 매입해 국ㆍ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현직 시장의 의례적 신년사일 수 있다. 흔히 들어온 시정 연설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의 해’ 2018년이다. 지역 정치가 보이는 대로 해석할 리 만무다. 구절구절 분해하고, 음절음절 쪼갠다. 어떻게든 ‘정치’와 엮으려는 해독(解讀)이다. 그렇게 작정하고 읽어보면, 신년사가 달리 들린다. 시종일관 미래를 말하고 있다. 2018년 너머까지 계획하고 있다. 3선 출사표일 수 있다. 여기에 ‘여전한 측근’, 이 전 부시장의 귀띔까지 되새겨 보면…. 다음 주 어느 때쯤, 염 시장은 출마 선언을 할 듯하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정 년

홋카이도 삿포로시의 운송회사인 히가시삿포로닛쓰수송은 지난해 10월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80세 정년’ 제도를 도입했다. 65세에 일단 퇴직하고 퇴직금을 정산하지만 희망할 경우 자동으로 8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안전상의 문제로 고령 직원은 운전을 제외한 영업, 총무 등의 업무를 맡게 했다. 시즈오카현 이와타시의 파이프 가공업체 고겐공업은 사원 270명 중 30%가량인 76명이 65세 이상이다. 이 회사는 버블 경기가 한창이던 30년 전 일손이 모자라 시니어 채용을 시작했는데 원하는 나이까지 일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현재 최고령 사원은 89세이며 지난해 72세 남성을 새로 채용했다. 일본 기업들이 70대 이상 고령층까지 고용에 나선 건 인구 감소로 젊은 일손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인구는 2008년 1억2천808만 명을 정점으로 2015년까지 100만 명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이보다 훨씬 많은 600만 명 줄었다. 여기에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서서히 살아나면서 지난해 말 구직자 1명당 1.56개의 일자리가 있을 정도가 됐다. 제조업의 80%가 인재 확보가 당면과제라 할 정도로 구인난이 심해진 것이다. 급기야 일본 정부가 정년 연장에 나서 2013년 기업에 65세까지 고용유지를 의무화했다. 기업 중에는 인건비 부담 때문에 일단 퇴직 후 급여를 낮춰 재고용하는 형태가 많은데, 최근엔 구인난에 70세가 넘어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회사가 늘었다. 일부 회사는 정년을 아예 없앤 ‘무한 정년’을 내걸고 있다. 고령자 고용이 늘어난데는 일본 노인들의 체력이 상대적으로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스포츠청에 따르면 70세 이상 노인의 체력은 지난 20년 동안 5세 이상 젊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노인 기준연령을 현 65세에서 70세로 늘려야 한다는 여론도 힘을 얻고 있다. 100세 시대에 시니어 세대가 계속 일을 하는 건 자신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득이 된다. 중소기업은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고, 지역경제도 고령자의 경제활동 덕분에 활기를 띠게 된다. 고령자가 적당히 일하면서 건강해져 의료비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 기업 정년을 60세로 의무화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60세 정년제 시행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는 것도 장년 10명 중 6명이 50세 전후에 퇴직하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넘쳐 정년이 연장되고, 일하고 싶은 노인은 건강하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일본의 현실이 부럽기만 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2018년 트렌드

2018년 무술년(戊戌年) 황금개띠 해가 밝았다. 새해 대한민국을 움직일 트렌드는 ‘꼬리’에 있다는 분석이다. 꼬리가 몸통보다 중요해져,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거세진다는 진단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8’은 올해 10대 소비 트렌드 핵심어를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는 뜻의 ‘웩더독(WAG THE DOGS)’으로 정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의미다. 사은품이 본 상품보다, SNS가 대중매체보다, 1인 방송이 주류 매체보다, 카드뉴스가 TV뉴스보다, 노점의 푸드트럭이 백화점 푸드코트보다, 인디레이블이 대형 기획사보다, 인터넷의 영향력있는 개인이 대형 스타보다 인기를 더 끄는 현상이 가속화한다는 것이다.여기에 문재인정부 출범 후 시급 노동자,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하청·협력업체 등 소외계층 권익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커지면서 웩더독 트렌드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웩더독은 정치·경제적 의미를 넘어 일상생활에서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자주 발견되고 사회적 약자인 언더독의 약진이 눈에 띄는 지금의 다양한 현상을 포괄하고 있다. 트렌드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는 데 필요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제는 마케터만이 아닌 대중들의 관심사가 됐다. 지난해엔 ‘욜로(YOLOㆍ한 번뿐인 인생, 현재를 즐기며 살자는 의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등이 유행하는 트렌드 용어였지만 이 또한 새로운 트렌드에 묻혀가고 있다.새해엔 삶의 거창한 목표나 대단한 성취감이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 ‘소확행(所確幸ㆍ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자리를 내주고, 가성비보다 ‘가심비(價心比ㆍ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를 더 중시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또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이 적당히 벌면서 잘 살기를 바라는 젊은 직장인 세대의 라이프스타일로 등장하게 된다는 전망이다. 워라밸 세대는 돈보다 스트레스 없는 삶을 추구하고 자기 자신과 여가, 성장을 중요 가치로 여기며 사회 전반적인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예전엔 최소 10년 주기의 큰 흐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면 지금은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알지 못하면 일상적 대화나 사회생활에서 소외되기 쉽다. 2~3년 단위로 변하던 트렌드는 지금은 1년도 채 안 간다. 경제 부침과 함께 세상이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다. 트렌드도 이젠 공부하고 열심히 쫓아가야 하는 시대, 이래저래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광교 화재 부상 소방관

지난 25일 오후 수원시 광교신도시의 한 오피스텔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로 1명이 목숨을 잃고 14명이 부상을 당했다. 부상자 중에는 출동한 소방관 장남일 소방위(55ㆍ경력 26년 7월)와 김록환 소방교가(30ㆍ6년6월)가 포함됐다. 이들은 화재 당일 오후 2시46분께 광교 SK뷰 레이크 타워 공사장 화재발생시 지하 4층으로 구조하러 내려가던 중 지하 2층에서 백 드래프트 현상이 발생해 얼굴과 어깨, 양손에 화상을 입었다. 김록환 소방위는 부상이 경미해 퇴원했고 장남일 소방위는 1개월 이상 장기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지난 27일 남경필 경기지사가 장남일 소방위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남 지사는 “괜찮아요. 오른손을 많이 다치신 거죠”라고 물었다. 장 소방위는 “현장에 도착해 구조자가 있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갑자기 터졌다”며 “천장을 타고 불이 번져 퇴로가 막혔다”고 설명했다. 남 지사는 부상당한 몸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장 소방위는 자신의 몸에 대한 설명은 없고 당시 상황만을 설명한다. 남 지사는 또 부인한테 질문을 던진다. “사모님 얼마나 놀라셨어요” 부인은 “저뿐만 아니라 모두들 놀라셨는데요. 살아 돌아 온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부인은 많이 다치더라도 소방관인 남편이 살아 돌아 오기만을 바란다. 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다치고 누군가 생명을 잃어야 한다. 이들은 매일 이런 불안 속에 살면서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사지로 뛰어든다. 장 소방위는 “소방관은 사명인 거 같아요. 구조자가 있는데 안 들어갈 순 없잖아요. 당연히 들어가야 하고 구해내야 하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남 지사는 “우리 사회의 영웅들이잖아요. 치료 잘 받으시고 복귀할 때 뵐게요”라며 “저희는 가서 소방관들을 위한 ‘이병곤 플랜’ 잘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제천 화재 이후 소방관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일부 나오기도 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사람들 힘 빠지게 하는 비난은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최원재 정치부 차장

[지지대] 영웅은 ‘용기’가 아닌 ‘진심’이 만든다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물건인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갈 수 있을까” 기자가 20년 전 군대에 입대했을 때다. 고참들은 “이름은 잊어도 총번은 자동반사로 나와야 한다”, “총은 전쟁에서 너를 구해줄 유일한 친구다” 등등 군인에게 있어 총의 중요성을 항상 인지 시켜주곤 했다. 그렇게 세뇌된 기자는 군인과 총은 ‘바늘과 실’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군생활에 전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기자가 가졌던 ‘군인과 총’의 역학 관계를 깨버린 영화 한편을 만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를 배경으로 한 핵소 고지(Hacksaw Ridgeㆍ2016년 작품)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 채 의무병으로 참전한 데즈먼드 T. 도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무기없이 참전한 도스는 결과적으로 미군이 참패한 이 전투에서 무려 75명에 달하는 동료 병사들을 맨손으로 구했고, 또다시 의무가방 하나만 멘 채 전투에 참전했다가 결국 부상을 당하고 만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행복해야 할 연말에 연이어 비보만 날아든다. 제천 스포츠센터와 광교 신도시 건설현장의 화마(火魔)는 소중한 생명들을 앗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그 아비규환의 순간에도 동료를 먼저 구출시키려다가 목숨을 잃은 20대 젊은이가 있었고, 고가 사다리차로 고층에 갇힌 시민들을 대피시킨 업체 대표와 비상구로 탈출을 도운 사우나 이발사,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10여 명의 여성들을 구한 70대 할아버지와 중학생 손자가 있었다. ▶핵소 고지 전투에서 동료들의 목숨을 구한 데즈먼드 T. 도스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총을 들지 않은 군인 최초로, 미군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전쟁터에서 총 한번 쓰지 않고 영웅이 된, 참으로 아이러니컬 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도스는 총을 들지 않겠다는 신념의 ‘용기’를, 동료를 구해야 한다는 ‘진심’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제천 스포츠센터와 광교 신도시 건설현장 화재참사에서 나보다 먼저 타인의 안위를 걱정한 이들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나를 버리는 ‘용기’를 택해, 다른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진심’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김규태 사회부 차장

[지지대] 전해철 ‘무기’

현직 시장 A가 이렇게 말했다. “전해철 의원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당원들이 말을 못한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도당 위원장이기 때문이다. 도지사 경선에 지더라도 전 의원은 여전히 공천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만일 (경선에서) 전 의원의 반대편에 섰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겠나.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을 게 뻔하지 않겠나.”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 대한 전망이었다. ‘대부분의 당원이 이런 부담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정치인에게 공천권은 생살여탈권이다. 이 권력을 쥔 정치인은 절대 갑이다.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검찰은 공천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전후해 남양주 시장 예비 후보에게 5억5천만원, 부천시의원 출마자에게 1억3천5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의원의 지역구는 용인시(갑)다. 돈 건넨 이들은 엉뚱한 지역의 정치인들이다. 공천권이 그렇게 막강하다. ▶전해철 의원은 경기도지사 후보군이다. ‘하겠다’고 발표한 적은 없다. 언론이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본격 행보’라는 주석도 붙기 시작했다. 같은 민주당 후보로 이재명 성남시장, 양기대 광명시장이 있다. 둘 다 자치단체장이다. ‘국회의원’과 ‘시장들’로 구분된다. 이들이 경선한다면? 당원의 고민은 불 보듯 하다. 굳이 A 시장의 귀띔을 참고할 필요가 없다. 이우현 의원의 예를 들지 않아도 된다. 전 의원과 등질 배짱 좋은 당원은 많지 않을 것이다. ▶A 시장은 이렇게도 말했다. “전해철 의원이 정말 도지사에 출마할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도당 위원장직부터 내려놔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시장들이 많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우려다. 엄밀히 보면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제대로 된 운동장이 되려면 의원직까지 내놔야 한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강제하는 법(法)도 없다. 그러니 도당위원장직만이라도 내려놔야 한다는 얘기다. 가능할 수 있어 보인다. 스스로의 당당함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2014년 초, 경기고법-현 수원고법-설치가 확정됐다. 기쁨이 큰 만큼 공치사(功致辭)도 난무했다. 너도나도 일등 공신을 자칭했다. 그때 한 템포 늦게 알려진 숨은 일등 공신이 있었다. 국회와 법원행정처를 분주히 뛰었던 전 의원이다. 경기도민, 특히 경기 남부 800만 지역민에겐 더없이 고마운 추억이다. 이 추억을 더 아름답게 포장할 방법이 있다. ‘전해철 의원이 도당 위원장이란 무기를 버리고 공정한 경선을 택했다’는 한 줄 기사(記事)다. 이제 고민해야 할 때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만 13세로 낮춘 ‘형사 미성년자’

청소년 강력범죄가 갈수록 흉포해지고 있다. 지난 9월 SNS를 통해 공개된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4명의 여중생이 여중 2학년인 피해자를 벽돌과 소주병, 알루미늄 사다리, 의자 등으로 1시간 30분 넘게 때려 피범벅이 되게 한 집단폭행 사건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어 사회적 공분을 샀다. 그런데 가해자 4명 중 1명은 만 14세 미만이라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하자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엔 미성년자의 형사처벌 수위를 감경할 수 있도록 한 현행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부산 사건을 비롯해 서울 숭의초 학교폭력 사건, 울산 중학생 자살 사건, 최근의 초등학생 투신 사건까지 학교폭력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가 실효성 있는 법 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현행 만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되, 살인 같은 강력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는 형량을 무겁게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지난 22일 이 같은 내용의 ‘학교 안팎 청소년 폭력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현재 만 10~14세로 규정된 ‘촉법소년(형사 미성년자)’ 기준을 만 10~13세로 개정해 만 14세부터는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그동안 만 14세 미만은 ‘형사 미성년자’로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상 처벌하지 않았다. 나이가 어려 형사책임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형사 미성년자 기준은 1953년 형법 제정 후 바뀐 적이 없다. 정부가 65년 만에 그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이는 ‘14세까지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생각에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청소년 범죄자가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 정도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나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찰청의 ‘2013년 이후 학교폭력 적발 및 조치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경찰에 적발된 학교폭력 사범이 6만3천여 명이다. 이 중 구속된 인원은 649명이고, 만 14세 미만 ‘촉법소년’으로 법원 소년부에 송치된 인원이 5천838명에 이른다. “범죄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소년법 개정도 추진된다. 10대 소년 범죄를 다루는 소년법은 처벌을 감경하는 조항들이 있는데, 앞으로는 강력 범죄를 저지른 경우엔 형량을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초등생을 납치 살해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주범이 범행 당시 17세라는 이유로 공범(19세)보다 낮은 형량을 구형받자, 불합리하다는 여론이 인 것을 반영한 조치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법의 악용을 방치해선 안된다는 측면에서 형사 미성년자 기준 조정, 소년법 개정 등은 시의적절한 조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소확행(小確幸)

한 해가 마무리 돼가면서 많은 이들이 ‘올 한 해 행복했나?’를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내년엔, 또는 내년에도 ‘행복했음 좋겠다’라는 바램을 갖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국가 GDP(국내총생산) 순위 대비 국민행복지수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국민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의 삶의 방식은 어떨까. 덴마크인들은 ‘휘게(Hygge)’ 라이프를 지향한다. 휘게는 ‘좋아하는 사람과 거실에 앉아 장작불이 탁탁 타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일상적인 분위기다.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의 저자 마이크 비킹은 “휘게는 간소한 것, 그리고 느린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새 것보다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 단순한 것, 자극적인 것보다 은은한 분위기에서 휘게를 더 가깝게 느낀다. 스웨덴 사람들의 ‘라곰(Lagom)’은 ‘딱 알맞은 양’ ‘적당히’ ‘충분히’를 뜻한다. 그들은 라곰한 크기, 라곰한 양, 라곰한 기분, 라곰한 분위기, 라곰한 맛을 중요시하며 과한 것을 바라지 않는 편안하고 소박한 삶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라곰, 스웨덴식 행복의 비밀’의 저자 롤라 오케르스트룀은 “라곰한 삶은 어떤 상황도 받아들 수 있는 정서적 여유를 갖추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프랑스의 ‘오캄(Au calme)’은 ‘고요한’ ‘한적한’ 분위기다. 오캄 라이프는 심신이 평온한 상태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삶을 여유롭고 편안하게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일이 잘 진행되지 않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차 한 잔 들고 ‘오캄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 여유다. 일상에서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확행(所確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입을 때의 기분’이 소확행이라고 했다. 소확행은 미래보다 지금이 소중하고,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을 중시하며, 행복의 강도가 아닌 빈도를 중시하는 세계적 추세와 일치한다. 이 개념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창한 목표나 성취감보다 일상 속 행복을 찾으려는 현상이 일면서 주목받고 있다. 소확행은 내년도 소비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거창하고 요란한 것보다 ‘단순하고, 은은하고, 평온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송구영신 합시다”

정유년인 2017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희망과 기쁨, 성공보다는 슬픔과 절망, 시련과 좌절이 점철된 시간이었다. 국정농단에 이은 대한민국 사상 초유로 대통령이 파면됐다. 이와 관련한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이 이어지며 연일 우울한 소식만 전해지고 있다. 실체가 드러날수록 이미 타버린 국민들의 가슴에는 멍울만 더해질 뿐이다. 인재로 드러난 동탄메타폴리스 화재와 인천 낚싯배 전복, 반복된 타워크레인 사망 사고 같은 안전불감증 사고도 잊을만하면 터졌다. 자연재해도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피해 발생은 물론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지진의 공포도 국민들의 뇌리에 새겨졌다. 또 이로 인해 처음으로 수능시험이 연기되기도 했다. 김주혁, 샤이니 종현, 김영애, 김지영 등 유명인들의 잇단 사망사고도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같은 세태를 반영하듯 매년 전국 교수들 1천 명의 설문으로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이 뽑혔다. ‘그릇된 것을 깨트려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국정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 그리고 새 대통령 선출과 새 정부의 적폐청산 등을 일컬은 것이다. 또한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말자는 ‘현정’의 의미도 더해진 듯하다. 이를 모두 뒤로하고, 무술년인 2018년은 달라지길 기대해본다. 우선 평창올림픽을 시작으로 러시아월드컵까지 세계적인 축제가 이어진다. 잠시나마 복잡한 현실을 잊고 국민들이 행복에 빠질 수 있는 이벤트가 마련된 셈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6ㆍ13 지방선거)도 높아진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이 반영되길 기대해본다. 지난해 시작해 올해 초까지 이어졌던 촛불집회가 폭력 없는 평화적 방법으로 진행돼 전 세계가 깜짝 놀란만큼 말이다. 수년간 대한민국을 비탄에 빠지게 한 세월호가 올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년에는 모든 아픔을 뒤로한 채 희망과 행복이 솟아오르길 바라본다.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대계가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최저임금 인상 공포가 부디 엄살이기를…

“내년에도 과연 공장 기계를 돌릴 수 있을지 걱정에 숨쉬기가 힘듭니다” 이제 열흘이 지나면 희망의 무술년 황금 개띠 해가 밝아오지만 수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공포에 짓눌린 채 무거운 연말을 보내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10년째 기계 부품 제조업을 운영하고 있는 한 지인은 최근 행사장에서 만난 자리에서 “매년 심해지는 제살깍기식 납품가 경쟁 등으로 올해 내내 숨이 턱에 찼는데 당장 내년부터는 최저 인건비 상승(16.4%) 폭탄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에 잠을 자다가도 숨이 차 깨고는 한다”라며 하소연한다. 바로 옆자리에서 이 지인의 말을 귀담아듣던 또 다른 중소기업 사장님이 재빠르게 말을 받아 이어간다. 사장님은 “현재 상황에서 인건비가 1만원까지 오르면 중소기업 상당수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라며 “중소기업이 힘들어지면 소기업과 가내공업 등 3~4차 하청 일자리는 더 견디기 어려워 진다”고 열변을 토한다. 우리 동네 단골 커피집 사장님도 고민스런 연말을 보내고 있다. 현재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2명의 인건비와 가계 월세를 제외한 나머지 수익이 100만원 안밖에 불과해 본인 인건비도 제대로 못 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한계 상황에서 수익이 더 이상 감소한다면 아르바이트생을 1명으로 줄이던지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물론 정부에서 3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일자리 안정기금을 지원해 준다고는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분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아직도 밤낮 없이 차디찬 기계와 씨름을 하고도 박봉의 최저임금에 시달리는 수많은 공장 근로자들이 최소한의 행복 권리를 누리려면 최저임금 인상이 당연한 절차다.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여는 것도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이 모두 죽는다’라는 중소기업들의 공포감이 ‘남는 것이 없다’라는 장사꾼의 엄살과 같은 것으로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한계를 눈앞에 둔 중소기업은 절규와 두려움이 ‘장사꾼의 엄살’로 폄하되는 일각에 또 한 번의 공포와 분노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믿고 싶다 그 폄하를. 부디 그 공포가 엄살이기를….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허경영 4 道-남경필 5 道

‘전면적으로 무료 급식을 실시하겠다.’ 1992년 대선에서 나온 공약이다. 통일 국민당 정주영 후보의 것이다. 반값 아파트 공급, 고속도로 2층 건설 등도 그의 주장이다. 공약마다 재벌 냄새가 풀풀 풍긴다. 그 중에도 무료급식이 압권이다. 도시락을 챙겨 다니던 시절이다. 김영삼ㆍ김대중 후보는 기껏해야 ‘전면 급식 실시’를 내걸었다. 당시 사회 현실을 두세 단계쯤 뛰어넘는 공약으로 여겨졌다. ‘황당 공약’ ‘돈 질 공약’ 취급을 당했다. ▶2009년, 무료 급식이 다시 등장했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다. 진보 진영 김상곤 후보가 내놨다. 무상급식이라고 명패는 바꿨지만 내용은 같다. 그런데 반응이 17년 전과 달라졌다. 아무도 ‘황당’하다고 욕하지 않았다. ‘돈 질’이라는 비웃음도 없었다. 유권자 학부모들이 엄청나게 지지했다. 이듬해 지방 선거는 차라리 ‘무상급식 선거’였다. 지금 대한민국에 무상급식을 시행하지 않는 학교는 없다. 25년 전 공약(空約)이 행정(行政)으로 바뀐 것이다. ▶허경영씨도 대통령 후보다. 그런데 기행(奇行)이 많다. 정치인보다는 희극인에 가깝다. 내놓은 공약에도 그렇다. 유엔 본부 판문점 유치, 모든 범죄자 재산 비례 벌금형, 전 국민에 생일 케이크 배달…. 덕분에 살벌한 대선판이 즐거워진다. 하지만, 달리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결과적으로 앞서가는 공약들이라는 평가다. 출산수당 3천만원은 지금의 출산장려금 제도로, 중소기업 입사자 100만원 쿠폰 지원은 지금의 창업인턴제 80만원 지원으로 연결됐다고 해석한다. ▶그런 허경영 공약 중에 이런 게 있다. ‘전국 8개 도를 동서로 4개 도로 통폐합하여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전남과 경남을 합쳐 전경도로, 경북과 전북을 합쳐 경전도로, 충청도와 강원도를 합쳐 충강도로, 경기도와 서울을 합쳐 서울로, 제주도는 그대로 둔다.’ 이른바 ‘지역 혁명 공약’이다. 이와 비슷하게 들리는 요즘 얘기가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의 초광역권 재편 주장이다. 서울도, 대전도, 대구도, 부산도, 광주도로 나누자고 한다. ▶이 화두를 정치적 아젠다로 계속 밀어붙일 모양이다. 사회는 변하고 가치도 변한다. 비웃음의 대상이던 무료급식이 보편적 복지의 효시가 됐다. 기인(奇人) 허경영의 4개 광역 개편 공약이 남 지사의 5개 초광역권 개편으로 현실화될지 누가 알겠는가. 함부로 단정하거나 격하할 일이 아니다. 다만, 많은 도민이 서운해하는 건 이런 거다. 경기도지사가 왜 ‘서울도’를 주장하나. ‘경기도’라면 좋았을 거고, ‘한양도’라면 좀 나았을 텐데…. 김종구 주필

[지지대] 파사현정(破邪顯正)

파사현정(破邪顯正). 사견(邪見)과 사도(邪道)를 깨고 정법(正法)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원래 삼론종이라는 인도 불교 종파의 근본 교리를 계승하는, 수나라 길장이 지은 ‘삼론현의(三論玄義)’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가 불교계의 울타리를 넘어 이제 사회 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쉽게 풀이하자면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대학 교수들이 올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선정했다. 교수신문은 교수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이메일 설문조사 결과 340명(34%)이 올해를 잘 표현할 만한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꼽았다고 밝혔다. 최경봉 원광대 교수(국어국문학)와 최재목 영남대 교수(동양철학)가 나란히 파사현정을 추천했다. 최경봉 교수는 “사견과 사도가 정법을 짓누르던 상황에서 시민들이 올바름을 구현하고자 촛불을 들었고,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최재목 교수는 “올 한해 세상을 움직였고 달구었던 ‘적폐청산’이라는 이슈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사회지도층, 엘리트집단, 기득권층의 갑질, 그런 독점의 민낯이 드러났고, 국민 모두가 경악했고, 한편으로 속이 후련했다는 최 교수는 “이런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적폐청산이라는 절대정신을 다르게 표현해본 것이 파사현정”이라고 말했다. 최재목 교수는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破邪)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顯正)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했다. 파사현정은 2012년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선정된 바 있다. 그때 어느 신문 1면 제목이 ‘破邪顯正, 2012년 정의를 꿈꾸다’였다. 기사엔 ‘지난 4년간의 정책이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닌, 대통령과 가진 자들의 사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공익을 실현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도록 하는 바람 때문에 파사현정을 선택했다’고 쓰여있다. 편법·꼼수는 가고 정의가 바로 섰으면 하는 마음, 총선과 대선을 통해서 꼼수와 편법에 길들여진 정치권을 보내고 진정한 정치가 남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파사현정을 선정했던 것이다. MB 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박근혜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에서 나온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5년 만에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이 재선정됐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어 다시 출현하다니 아이러니하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여망이 담겨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통해 바른 것들을 드러내 몇 년 뒤 이런 말이 다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출가

지난 여름 국민행복지수 1위라는 부탄에 다녀왔다. 여행의 가이드는 한국말을 잘 하는 린첸 다와라는 청년이 맡았다. 경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린첸은 25살로 5년간 한국 생활을 했다. 린첸은 특별했다. 부탄이 불교국가여서인지 그가 갖고 있는 생각들, 삶에 대한 태도가 남달랐다. 여행에 동행했던 이들은 그가 25살이 아닌, 125살 같다고 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지보다 린첸 얘기를 더 많이 했다. 린첸이 10월 초 한국에 왔다. 서울시 한 기관이 주최하는 국제컨퍼런스 참가 등 일정이 있었다.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그는 인기가 많아 여러 곳에서 강의를 했고, 방송출연도 하는 등 재밌게 한국 생활을 즐겼다. 그래서 한번은 “한국에서 사는 게 어떠냐”고 했다.그는 “그건 순간의 행복일 뿐”이라며,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 출가를 결심했다”고 했다. 부탄에 한국문화원을 만들어 한국과 부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던 린첸은 공부를 더 해도, 사업을 해도, 정치를 해도 뭐든 잘할 것 같은 젊은이였기에 놀랐고, 맘이 좀 아팠다. 속세를 떠난 수행자의 길이 외롭고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가 더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기에 축하해 주기로 했다. 린첸은 11월 말경 부탄으로 돌아갔고, 이제 출가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카톡 대문엔 ‘2018.2.18. 상상만 해도 기쁨의 눈물’이라 쓰여있다. 부탄의 젊은 현자 린첸은 출가의 그날을 그렇게 기쁘게 기다리고 있다. 린첸이 손꼽아 기다리는 출가가 우리나라에선 점점 줄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이 급기야 ‘출가자 구인 광고’까지 냈다. 한 해 출가자 수가 100명 미만으로 줄어들 위기에 처하자 내놓은 응급처방이다. 출가자 급감은 저출산과 비구니 감소가 가장 큰 이유다. 밤 9시에 취침해 새벽 3시에 일어나 참선하는 행자 생활이 힘들어 중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내 생에 가장 빛나는 선택, 출가’라는 포스터까지 제작해 홍보에 나선 조계종은 출가 후에 필요한 주거나 의료, 교육과 함께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도 제공키로 했다. 또 청년출가자(20세 이상)에겐 대학등록금 면제, 소년출가자(13~19세)에겐 행자교육 면제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종단내 일부에선 출가자 광고를 내는 건 불교계 얼굴에 먹칠하는 것이란 주장을 한다. 수행자를 어떻게 일반 직업인처럼 모집할 수 있느냐는 반발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럴까, 종단이 살 길을 찾는 몸부림으로도 보인다. ‘내 생애 가장 빛나는 선택, 출가’ 문구를 보며 린첸을 생각한다. 출가는 바로 그런 것이어야 하는데… 하면서.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구세군 자선냄비

갑작스런 재난으로 슬픈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된 도시 빈민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한 종교인이 있었다. 19세기 말의 미국 얘기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오클랜드 부두로 나아가 주방용 큰 쇠솥을 다리를 놓아 거리에 내걸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썼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미국 남부 샌프란시스코 거리에 이처럼 특이한 물체가 등장한 건 1891년 겨울이었다. 이렇게 보면 드럼통 같고, 저렇게 보면 무슨 그릇 같았다. 그 옆에서 군인들의 정복 비슷한 붉은색 복장을 입은 사내가 종을 들고 흔들며 행인들의 걸음을 붙들었다. 검은색의 큰 쇠솥 안으로 동전들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자선냄비였다. 개신교 교파인 구세군이 연말에 진행하는 거리모금운동의 시작이었다.▶샌프란시스코의 구세군 사관 조지프 맥피(Joseph McFee)가 주창한 자선냄비는 이후 뉴욕과 워싱턴 등 미국 동부로 퍼져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선냄비는 시골 마을 곳곳에도 설치됐다. 엽서에도 겨울 풍광으로 등장하게 된다. 마침내는 오 헨리가 쓴 단편소설 ‘크리스마스’에도 익숙한 미국 도시의 겨울 아이콘으로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다.▶이처럼 이웃을 돕고자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종교인의 깊은 마음은 아시아 변방에 있었던 조선이라는 나라에까지 들어온다. 당시 조선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사관이 명동 한복판에 자선냄비를 처음으로 설치하고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모금을 시작했다. 바로 1928년 오늘이었다. 시골뜨기가 서울 구경 왔다가 내려가면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던 도시의 대표적인 겨울 풍광이기도 했다. ▶행인들이 옷깃을 꼭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귀가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바야흐로 동장군의 심술이 펼쳐지는 동지섣달이다. 경제 한파로 요즘은 뜸해졌지만, 아무튼 크리스마스트리에 캐럴까지 흘러나오면 곧 한 해가 다 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게 구세군 자선냄비다. ‘덩그렁’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가던 길을 멈추고 동전 한 닢이라도 넣는 손길이 새삼 아쉬운 계절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맥 빠진 경기천년

고려 현종 9년 수도였던 개경 외곽 지역이 있었다. 적현, 교화 등 13개 군ㆍ현을 ‘경기’라는 곳으로 명명했다. 이후 천년이란 시간이 흘렸고 2018년은 경기정명 천년이 된다. 그 많은 세월동안 경기도는 한반도의 중심이 됐다. 경기도는 지금 인구 1천300만명이 넘는 등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의 핵심 광역자치단체다. 경기천년 관련, 경기도가 관심을 갖은 것은 3~4년전 부터다. 경기정명 천년을 앞두고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경기천년학술대회 등 다양한 천년 관련 사업들이 시작됐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지는 시기가 맞물려 경기천년은 경기도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원년으로 의미가 크다. 최근 경기문화재단이 올린 경기천년 관련 예산안이 대폭 삭감됐다고 한다. 경기문화재단이 올린 경기천년 관련 사업은 경기 미래비전, 도민 공감대 형성 및 참여, 경기 문화자산 활용, 경기 문화정체성 구현 등 관련 사업으로 50억원을 올렸다. 그러나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절반도 넘는 30억원을 삭감했다.한정된 예산으로 계획한 사업을 모두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산을 심의하며 꼼꼼히 따져보고 불필요하거나 수정할 사업에 대한 예산 삭감이라면 당연히 삭감해야 한다. 그러나 천년사업 삭감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예산 항목, 사업의 필요성 등에 대한 검토도 없이 무조건 총액 5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날렸다. 황당한 예산 심의다. 예산의 필요성 등에 대한 검토 없이 묻지마식 삭감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이런 정도라면 차라리 경기천년 사업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면밀한 검토없이 예산을 가위질해 떼어내어 여기 저기 붙이고 없앤다. 이게 바로 누더기 예산과, 부실한 사업이 된다. 사업의 당초 목적은 없어지고 방향성을 잃게 된다. 경기도의 경기천년 사업도 경기천년 당해인 2018년이 오기 전에 이미 도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짓고 땡

짓고 땡은 노름의 한 방식이다. 다섯 장의 패를 갖고 시작한다. 우선 석 장으로 10 또는 20을 만든다. 나머지 두 장으로 끝수 게임을 한다. 당연히 석 장으로 짓는 셈법이 빨라야 한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초짜’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붙여진 세 숫자에 별칭이 재밌다. 1ㆍ2ㆍ7(삐리칠), 5ㆍ5ㆍ10(꼬꼬장), 1ㆍ9ㆍ10(알구장), 1ㆍ1ㆍ8(콩콩팔)…. 10 또는 20은 상수다. 게임에 이기기 위해 반드시 ‘짓고’ 넘어가야 할 불변의 기준이다. ▶요 며칠 숫자 논란이 있었다. 원래는 ‘3ㆍ5ㆍ10’이었다. 이걸 바꾸자고 했다. ‘5ㆍ7ㆍ10’ 얘기가 있었다. ‘5ㆍ10ㆍ10’ 얘기도 있었다. ‘10ㆍ10ㆍ10’ 얘기도 있었다. 어렵사리 결정됐다. ‘3ㆍ10ㆍ5’가 됐다. 여기에 ‘+α’가 조건으로 붙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 시행령 개정 내용이다. 국민권익위가 이 숫자의 내용을 국민에게 최종 보고했다. 법 시행 1년 만이다. ▶당초 숫자 ‘3ㆍ5ㆍ10’은 ‘식사비ㆍ선물비ㆍ경조사비’다. 외식업계, 농축산업계, 화훼업계가 난리였다. 저마다 폐업위기를 내세우며 상한선 조정을 요구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시행령 개정을 약속했다. 하지만, 권익위는 쉽게 바꾸려 하지 않았다. 결정이 무산되기도 했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결정된 게 ‘3ㆍ10ㆍ5’다. 식사비는 그대로 뒀고, 선물비는 10만원으로 올렸고, 경조사비는 5만원으로 내렸다. ▶‘18’이라는 숫자는 유지했다. 그런데 복잡해졌다. 새로 생긴 ‘조건’이 있다. 선물비 10만원에는 ‘농축산물 또는 이를 원료ㆍ재료로 50% 이상 사용한 가공품’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경조사비 5만원에는 ‘화환을 포함할 경우 10만원까지 괜찮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냥 ‘3ㆍ5ㆍ5’하거나 ‘3ㆍ10ㆍ10’했으면 국민 이해가 편했을 텐데. 법을 지켜야 하는 국민이나 집행해야 하는 사법 기관이나 모두 복잡하게 됐다. ▶농축산업계와 화훼업계는 환영한다고 했다. 외식업계는 실망스럽다고 했다. 권익위는 “가액범위 일부 조정이 법의 취지를 후퇴시키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어떤 주장이 옳은지 판단할 필요를 못 느낀다. 처벌하는 도덕의 기준이 관련 업계 매출을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외식업계가 위기에 처하면 ‘3’도 바꿀 것인가. 한번 정한 ‘10 또는 20’을 바꾸지 않는 노름판보다 가벼운 김영란법의 운명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비트코인 열풍

‘비트코인’ 열풍이 대단하다. 가히 광풍 수준이다. ‘비트코인’이라는 이름은 컴퓨터의 최소 정보처리 단위인 ‘비트(bit)’와 화폐를 뜻하는 ‘코인(coin)’에서 따왔다. 지폐나 동전과 달리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온라인 가상화폐(암호화폐)다. 미국발 금융위기때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정체불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창안해 2009년 1월 처음 선보였다. 일반적인 실물화폐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발행하지만,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컴퓨터에서 만들어진다.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개발 이후 15개월이 지나도록 한 차례도 거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황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고, 올해 가격이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올 초 한 개에 1천달러(약 120만원) 수준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이 지난달 말 1만 달러(약 1천200만원)를 돌파했다. 컴퓨터로 비트코인을 생성하는 것을 ‘채굴’이라고 한다. 광부들이 광산에서 금을 채굴하듯 어렵게 얻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사람들은 ‘마이너(miner·광부)’라고 부른다. 비트코인을 채굴하려면 일종의 ‘암호’를 풀어야 한다. 암호를 풀려면 빠른 연산 속도를 가진 컴퓨터가 필요한데, 가정용 컴퓨터로는 몇 년을 투자해도 문제를 풀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비트코인은 ‘구매’를 통해서도 가질 수 있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지갑’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뱅킹으로 계좌이체하듯 비트코인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인터넷 환전사이트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하거나 현금화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완전한 익명으로 거래된다. 때문에 돈세탁이나 마약거래에 사용되는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비트코인은 이미 유럽과 북미, 중국 등에서 현금처럼 쓰이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비트코인 거래소를 통한 거래가 꾸준히 늘고 있다. 국내 상위 3개 비트코인 거래소인 빗썸, 코빗, 코인원 기준 월평균 거래금액은 2015년 470억원에서 2016년 11월 941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비트코인 바람이 한국에서 유독 거세다. 블룸버그는 “한국만큼 비트코인에 빠진 나라는 없다.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가 됐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20% 정도가 원화로 결제되고, 국제 시세보다 20% 정도 높게 거래된다.거품 붕괴를 경고하는 전문가들도 많지만 투기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비트코인이 화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될지, 혼란만 부른 투기 자본으로 남을지 지켜볼 일이다. 거품이 꺼지면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고, 많은 사회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비트코인 시장의 투기 열기를 식히고 거래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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