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청년 파산

얼마 전 한 기관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은 N포세대에 속하나요?”라는 질문에 70%가 “그렇다”고 답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3포 세대’라 한다. 여기에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세대를 ‘5포 세대’라 한다. 더 나가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 세대를 ‘7포 세대’라고 한다. 새로 ‘N포 세대’라는 말이 나왔다. 도대체 얼마를 더 포기해야 하는지 몰라 정확한 숫자가 아닌 ‘N’을 쓴다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의 우울한 자화상으로 삶의 가치마저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의 삶이 너무 고단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빚에 시달리는 청년들도 많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연체의 늪에 빠지면서 파산하거나 파산 위험에 직면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생계비, 학자금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이 대부업체에 손을 내밀고 있다. 오죽하면 청년실업자와 신용불량자를 합친 ‘청년 실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대학교에 다니면서 등록금을 대출받았으나 취업이 늦어지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 빚을 갚지 못해 신불자 낙인이 찍힌다. 취업난과 경제난이 장기화되면서 아르바이트 등과 같은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더 큰 문제는 빚을 내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으로 악화되고 있다. 20대 청년들의 대출 증가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는 최근 조사 결과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실제 과도한 빚을 갚을 수 없어 법원에 개인파산 및 면책을 신청하는 20대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금태섭 의원(민주당)이 대법원에서 받은 최근 4년간(2013∼2016년) 파산·면책 신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파산 신청자는 총 743명으로 2013년 484명에 비해 1.5배(153.5%) 증가했다. 남은 빚을 더는 갚지 않도록 해달라는 20대 면책 신청자도 지난해 730명을 기록해 2013년 628명보다 1.2배(116.2%) 늘어났다. 금 의원은 학자금 대출과 취업난에 시달리는 20대가 일부 자격취득 제한과 합명·합자회사 취업제한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개인파산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산자가 법원에 따로 면책을 신청해 허가를 받기 전까지는 이 같은 불이익을 계속 받게 된다. 20대 개인파산·면책 신청 증가는 그만큼 재정적 고통을 겪는 20대가 많다는 의미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청년들을 위해 일자리 창출 및 주거비 부담 완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독도 새우

동해는 수심이 깊다. 국토의 막내, 독도도 동해에 있다. 이곳에서 유영을 즐기는 녀석들이 있다. 엷은 붉은색에 옆구리에 큰 흰점무늬가 있다. 4살 정도까지 수컷이고, 4살 반에 성별(性別)이 바뀐다. 곤쟁이류와 갯지렁이류가 이들의 먹잇감이다. 길이는 30~40㎜ 남짓하다. 독도 인근 바다에서 서식한다고 해서 흔히 독도 새우라고 불리는 갑각류다. ▶최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를 위한 청와대 국빈 만찬 식탁에 이 녀석들이 올라왔다고 한다. 동해에서 잡히는 수산물인 만큼 우리로선 대수롭지도 않다. 그런데 일본이 트집을 잡고 나섰다. 그 까닭이 어처구니가 없다. 일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자. “죽도는 일본 영토이니 한국이 독도 명칭이 들어간 수산물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일본 관방장관도 정례 브리핑을 통해 “한·미·일 협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움직임은 피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독도 새우에 대해선 “다른 나라 접대 내용에 대해 정부 차원의 논평은 하지 않겠지만, 왜 그랬을까 싶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극우 성향의 신문은 ‘반일 만찬’이라는 헤드라인까지 뽑았다.▶트럼프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한 것을 놓고서도 한·일 위안부 합의를 거론한 뒤,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했다”며 “한국 측에 계속 모든 기회를 통해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하겠다”고 주장했다. 국빈 만찬 메뉴에 한 술 더 떠 초대 손님까지 참견하고 나섰다. 내정 간섭이 따로 없다.▶국빈 만찬 비용은 5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절차에선 빼놓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 내외를 포함해 120여 명이 참석해 150여 분 동안 진행된 만찬이었다. 청와대가 건배주부터 디저트까지 음식 하나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만찬 식재료에 일본이 죽도라고 부르는 독도 근해 새우가 들어갔으니 요즘 말로 대박이다. ▶청와대가 고심 끝에 마련한 독도 새우에는 남다른 의미가 담겼다. 이러한 의미가 발현돼 한미 관계가 더 도약하길 바라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는 심기가 불편했나 보다. 트럼프 대통령 방문 성과에 독도 새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외교적 수사(修辭)이겠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한 수 위였다면 성급한 판단일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졸(卒)에서 차(車)가 된 대한민국?

“한·미관계에 있어 50년대에는 대한민국은 언제 죽어도 그만인 졸(卒)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중요한 차(車)가 돼 있습니다” 8일 아침 강의 중에 귀에 쏙 들어온 북한전문 강사의 말이다. 최근 미국의 전방위적 국방비·경제적 압박과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대한민국 곳곳에서 새우등 터지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에서 졸에서 차가 됐다니 귀가 쫑긋할 수밖에…. 미국이 러시아(구 소련)와 세계 군사 최강국 경쟁을 벌이던 50~60년대에는 미국에 있어 대한민국은 전략적으로 장기판의 졸에 불과했지만, 중국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최근에는 주포 역할인 차가 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 중국 경계 태세부터 유사(군사적 충돌)시까지 대한민국은 지리·전략적으로 꼭 필요한 요충지라는 설명이다. 언뜻 느낌처럼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나’라고 여기고 싶지만, 이내 국제 정세 변화에 따른 것일 뿐 이해가 뒤따르니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초강국에 북한까지 낀 치열한 틈바구니에서 내(대한민국) 뜻보다 사방의 이해관계를 먼저 살펴야 하는 현실이 답답스럽다. 항상 경우의 수를 달고 다니는 한국 축구처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박2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8일 떠났다. 그는 떠나기 전 대한민국 국회 연설을 통해 “우리는 군사협력 증진과 공정성 및 호혜의 원칙하에 양국간 통상관계를 개선하는 부분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가졌다”고 밝혔다. 전날 청와대 한·미 확대 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이 주문한 장비(무기)가 꽤 많다고 들었는데 이로 인해 미국의 무역적자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발언도 있었다. 미국의 대 한국 무역적자를 무기 판매로 메우겠다는 메세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도사리는 가운데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럼에도 왠지 손목 비틈을 당한 찝찝함을 지울 수 없다. 자력으로 차(車)가 될 수 있을까.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골프 또는 산책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조깅을 했다. 청와대 녹지원 트랙을 아홉 바퀴 돌았다. 한 바퀴가 265m니까 2천385m다. 나머지 두 바퀴는 걸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이날 조깅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조깅’이라는 주제까지 붙었다. 김 대통령이 “신선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일과로 조깅을 한다”고 했고, 클린턴은 “나는 20분씩 뛰는데 김 대통령이 30분씩 뛴다고 하니 그렇게 해보도록 노력하겠다”고 응대했다. ▶1993년 그때도 한ㆍ미 간에는 많은 현안이 있었다. 그 복잡함을 풀어낼 정상 회담에서 둘이 함께한 이벤트였다. 김 대통령은 민주산악회 시절부터 등산과 조깅으로 단련된 몸이다. 클린턴도 달리기를 좋아한 대통령으로 정평있다. ‘이벤트’를 함께 할 조건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언론도 이날 조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향후 국제 정세에서 함께 보폭을 맞추기로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신장 차이-김영삼 168㎝ㆍ클린턴 188㎝-가 큰 두 대통령의 보폭을 일일이 계산한 보도도 있었다. ▶일본 아베 총리의 트럼프 골프 접대가 인상 깊다. 프로골프 선수 마쓰야마 히데키까지 동반했다. 세계 랭킹 4위다. 트럼프가 좋아하는 햄버거도 간식으로 준비했다. 미국산 소고기로 패티를 만드는 정성을 보였다. ‘도널드&신조 동맹을 더욱 위대하게’라고 쓰인 골프 모자를 선물했다. 글씨는 금실로 새겼다고 전해졌다. 트럼프가 만족했던 모양이다. 트위터에 ‘아베 총리와 마쓰야마 히데키와 골프를 치고 있다. 멋진 두 사람!’이라는 글을 남겼다. ▶적지 않은 누리꾼들이 관심을 보였다. 골프를 안 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걱정하는 글도 있다. 문 대통령은 산책을 택했다. 7일 정상회담을 갖고 ‘친교 산책’을 함께 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나름의 이벤트다. 산책은 문 대통령 식 정치다. 대통령 취임 이틀째인 5월11일 눈길을 끄는 사진이 보도됐다. 청와대 참모들과 테이크 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산책하며 담소하는 모습이다. 이후에도 영부인과 함께 걸어서 출근하는 모습,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산책하는 모습 등이 보도됐다. ▶조깅을 못하거나 싫어하는 정상은 있다. 골프를 못하거나 싫어하는 정상도 있다. 하지만, 산책은 못하는 정상도 싫어할 정상도 없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차피 국민이 관심 두는 건 대통령들이 하는 이벤트 종목이 아니다. 그 이벤트에서 챙겨내는 국가를 위한 결과물이다. 골프면 어떻고 산책이면 어떤가. 김종구 주필

[지지대] 낙태죄 폐지 청원

불교에선, 사람이 죽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최소한 7번 이상을 윤회해야 인간의 몸을 받는다고 말한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다. 헌데 요즘 젊은이들은 쉽게 사랑을 나누고, 이로 인해 생기는 아이에 대해선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혼한 부부들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면 종종 낙태를 결정한다. 낙태가 불법인데도 음성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낙태율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낙태죄는 형법 제269조에 명시돼 있다. 임신여성이 낙태시술을 받으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모자보건법상 낙태시술은 정신장애, 전염성 질환, 성폭행·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 특수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정부 연구조사를 보면 연간 17만~20만명의 태아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 가톨릭 국가에서는 낙태가 중죄다. 낙태를 죄악시하는 폴란드는 지난해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어도 낙태할 수 없고, 이를 어길 경우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하는 ‘낙태금지법’ 시행을 추진했다. 그러자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광장에 모여 ‘나의 몸에 자유를 달라’ ‘나의 자궁은 나의 선택’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폴란드 정부는 낙태금지법 시행을 포기했다. OECD 국가 중 한국과 이스라엘, 일본, 칠레, 핀란드 등 9개국을 제외한 25개국에선 임신부 요청에 따라 낙태가 가능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낙태죄 폐지 논란이 뜨겁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 낙태죄 폐지 청원이 23만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원치 않는 출산은 당사자와 태어날 아이,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라며 “낙태죄를 폐지하고 먹는 자연유산 유도약(일명 미프진)을 도입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엔 미프진 합법화 요구가 추가되면서 종전의 양상과 다소 달라졌다. 청와대는 참여인이 20만명이 넘으면 응대하기로 돼있어 이달 안에 해당 안건에 대한 답변을 내놓을 방침이다. 헌법재판소도 낙태죄 규정의 위헌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접수해 심리 중이다. 낙태죄 폐지에 대해 생명경시 풍조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부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까지 의견이 다양하다. 미프진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핵심은 ‘태아의 생명권’이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냐다. 극단적인 폐지나 유지보다는 상황에 따른 탄력적인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생명존중 인식의 유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묵은쌀 220만톤

밥을 하루 한끼도 안 먹을 때가 종종 있다. 삼시 세끼를 다 챙겨먹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먹는다 해도 밥이 아닌 경우가 많다.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당 하루 쌀 소비량이 169.6g으로 전년보다 1.6%(2.8g) 줄었다.보통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이 100∼120g인 점을 고려하면 하루에 공깃밥 하나 반 정도 먹는다는 얘기다. 1997년에는 한 사람이 한해 102.4㎏의 쌀을 소비했다. 그러던 것이 30년 만인 지난해 61.9㎏으로 반토막 났다. 쌀이 남아돌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올해 쌀 생산량이 전년보다 20만t 줄어든 399만5천t으로 예측됐다. 연간 생산량이 400만t 이하로 떨어진 것은 저온피해가 극심했던 1980년(355만t) 이후 37년 만이다. 쌀 생산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재배면적 감소다. 지난해 77만8천700㏊였던 벼 재배면적은 올해 75만4천700㏊로 3.1% 줄었다. 봄 가뭄과 늦장마 등 고르지 못한 기후도 벼가 영그는 것을 방해했다. 과거 같으면 식량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겠지만, 정부는 여전히 쌀 재고를 걱정한다. 생산이 줄었는데도 남아도는 쌀을 주체하지 못해 고민이다. 지난 8월 기준 정부의 양곡 재고는 206만t이다. 여기에 민간 보유량(14만3천t)을 합하면 국내 쌀 재고량은 220만3천t에 육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공공비축용 35만t과 시장격리용 37만t 등 72만t의 쌀을 추가로 사들이기로 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의무 수입해야 하는 쌀 40만8천700t도 떠안아야 한다. 지금보다 재고 부담이 112만t 더 늘게 된다. 쌀 재고가 쌓일수록 정부의 관리부담은 커진다. 전국에 4천500여 개의 양곡창고가 있는데, 쌀의 변질을 막기 위해 15도 이하의 온도와 11∼12%의 곡물 수분을 유지하게 된다. 엄청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쌀 1만t을 보관하는 데 한해 7억4천만원이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양곡 보관비로 쓴 돈만 1천669억원이다. 남는 쌀은 고스란히 재고가 된다. 군납미, 가공용 쌀 등으로 유통되거나 복지용(정가의 10%가격)으로 판매되지만 일부에 그친다. 남아도는 쌀을 처분하기 위해 새로운 소비처 발굴이 절실하다. 정부는 묵은 쌀과 수입쌀을 가공·주정용으로 할인공급해 재고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식량원조협약(FAC) 가입 절차를 마무리해 한해 5만t을 해외에 원조하는 방식으로 재고를 털 계획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쌀에 편중된 농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상생(相生)

우리는 주변에서 상생(相生)이란 단어를 자주 목격한다.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덕목인 듯하다. 국어사전에는 상생을 금(金)은 수(水)와, 수는 목(木)과, 목은 화(火)와, 화는 토(土)와, 토는 금과 조화를 이룸을 말한다. 즉,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같이 잘 살아감을 의미한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유무상생’이란 구절이 나온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함께 사는 대화합의 정신을 강조한 노자사상의 하나다.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던지는 의미 있는 메시지다. 근래 들어 대기업이 주도하는 대형매장의 지역상권 침투로 말들이 많다. 자본을 앞세운 문어발식 공략이 골목 상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 유통매장으로 맥없이 주저앉은 동네슈퍼가 그 일례다. 이런 현상은 시장 자유경쟁 시대에 파생된 도도한 물결임에 틀림없다. 어쩜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사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공략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골목상권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머리띠를 둘러매고 길거리에 나서 온몸으로 저항할 수 밖에 없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올 들어 수원에서 촉발된 가구전문점 리바트, 고양의 이케아 입점 등 갈등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갈등과 마찰은 중재와 타협으로 풀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럴 때마다 나오는 단어가 상생이다. 새로운 상권을 확보하려는 대형매장, 이에 반해 이를 저지하려는 소상공인들은 상생협약을 놓고 끝장 줄다리기를 한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상생협약을 놓고 말이다. 아쉽게도 상생협약의 결론은 돈으로 귀결되고 만다. 노자사상의 결정판인 상생이 세욕의 한복판인 재화로 종착 되고 있는 것이다. 어쩜, 지금의 자본주의 시대에 당연한지도 모른다. 화폐를 매개로 하는 금력의 시대가 현시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생은 노자사상이 담고 있는 대타협이 돼야 한다. 돈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함이 전제돼야 한다.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이지만, 그래야 흔히들 말하는 ‘그래도 한번 살아볼 만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김동수 경제부장

[지지대] 가화만사성

지난 10월20일부터 26일까지 충청북도에서 열렸던 제98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체육웅도’를 자부하는 경기도가 종합우승 16연패라는 기념비적인 성적을 거뒀다. 이는 1952년부터 1967년까지 전국 시ㆍ도간 체육 불균형이 심하던 시절, 서울특별시가 작성한 역대 최다 연속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한 대기록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타 시ㆍ도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들어 당연한 결과로 평가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이유만은 아니다. 1981년 인천광역시와의 분리 이후 중위권에 머물렀던 경기도는 전국 최초의 직장운동부 창단과 우수선수 육성,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과 투자를 통해 오늘의 결과에 이른 것이지 단순히 인구가 많다고 해서 얻어진 결과라는 평은 단순 논리다. ▶하지만 경기도의 연승행진도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타 시ㆍ도의 추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종목간 전력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고, 오랜 승리 도취에서 오는 자만과 내부 갈등 등으로 인해 조금씩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종목별 성적에 해당 경기단체의 내부 사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한 마디로 내부 갈등 없이 일사불란하게 목표달성을 위해 노력한 종목들은 성적이 좋았거나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반면, 좋은 전력을 갖추고도 경기단체가 내홍을 앓고 있거나 관계자들이 성적보다 소위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종목들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이번 대회에서 경기도는 전체 45개 종목 가운데 14개 종목이 종목 1위를 차지하고, 5개 종목 2위, 2개 종목이 3위를 차지하는 등 총 21개 종목이 입상했다. 반대로 하위권에 머문 종목도 11개 종목이나 된다. 전반적으로 참가 종목들의 고른 선전 때문에 우승이 가능했던 것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우승 종목이든 하위권 종목이든 관계없이 경기단체 내부의 결속 여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이 같은 경기체육의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한 체육에서만 나타나는 현상도 아닌 일상적인 일이다. 그 일상적인 현상이 경기체육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흔히 보고 듣는 고사성어 중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다. 경기체육이 더욱 발전하고 연승행진을 이어가기 위한 제일 과제가 바로 가화만사성이다.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까마귀 똥

“근래에 천문이 변괴(變怪)를 보이고, 뭇까마귀가 날아서 모여드니 모두 두려운 일입니다. 지금 두 도성의 역사를 일시에 일으켜 일은 벅차고 힘은 갈리니, 백성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역사도 또한 쉽게 마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태조 3년 8월2일). 간관 전백영(全伯英) 등이 태조 이성계에 올린 상언이다. 무리한 한양 천도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 논리 전개를 위해 ‘하늘의 변고’와 ‘까마귀’를 예로 들었다. ▶“뭇 까마귀가 모여서 울고, 재이(災異)가 여러 번 보였사오니, 마땅히 수성(修省)하여 변(變)을 없애야 하고, 또 피방(避方)하셔야 합니다.”(정종 1년 2월26일). 임금에게 한양을 떠날 것을 권하는 서운관의 상언이다. 좌정승 조준 등 재상들이 협의한 뒤 더하여 아룄다. “송도(松都)는 궁궐과 여러 신하의 제택(第宅)이 모두 완전합니다.” 송경으로의 환도가 그렇게 결정됐다. 한양이 불길하다는 증명에 등장한 것은 이번에도 ‘까마귀’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까마귀라는 단어가 173회 등장한다. 조선 전기에는 대체로 불길한 기운을 나타낼 때 쓰였다. 그러던 의미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까마귀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본능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명나라 박물학자 이시진이 저서 ‘본초강목’에 기록한 까마귀의 습성이다.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 ▶“신의 어미가 경상도 진주(晉州)에 있는데…신의 본직(本職)을 갈아 주시어 돌아가 봉양하여 까마귀가 반포(反哺)하는 것과 같은 구구한 사정을 이루도록 하소서”(중종 7년 2월14일). 진천군 강혼이 어머니 공양을 이유로 사직을 청했다. 임금이 감동하여 답했다. “경의 어미는 70세가 되지 못하였으므로 법에 있어서는 돌아가 봉양할 수 없거니와 가까운 도(道)의 직임을 삼는 것이라면 가하겠다. “중종실록에는 ‘까마귀’가 모두 12번 등장하는데, 6번이 이렇듯 효심을 의미했다. ▶지난해 수원지역 일대 까마귀 떼가 출몰했다. 수천 마리가 논밭은 물론 전깃줄까지 점령했다. 사람마다 감상은 달랐다. 어떤 이는 길조라고 했고, 어떤 이는 흉조라고 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사정이 달랐다. 한가로이 길ㆍ흉을 논하고 있을 수 없었다. 밀려드는 ‘까마귀 똥’ 피해 신고에 골머리를 앓았다. 딱히 대책도 낼 수 없는 희한한 민원이다. 그 까마귀 떼가 올해도 올 것 같다고 한다. 수원 공무원들이 벌써 ‘까마귀 똥’ 걱정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20대 건강 적신호

알코올에 빠져 후유증을 앓는 20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및 업무 스트레스나 불안감에 술을 자주 찾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의원(정의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통계정보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2016년 사이 30대와 40대, 50대에서 모두 알코올 중독 환자가 감소한 것과 달리 20대에서는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대 환자는 2012년 4천415명에서 2016년 5천337명으로 20.9%나 증가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나는 알콜중독자다’란 카페가 있다. 술이 인생을 흔들기 전에 금주를 다짐하며 금주 방법들을 공유하는 카페다. 회원이 7천400여 명 되는데 20대 회원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20대 청년의 건강 문제는 알코올뿐만이 아니다. 윤의원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4년 만에 20대 청년의 경추질환자와 척추질환자가 각각 27.7%, 13.0% 증가했다. 궤양성 대장염 및 크론병(41.3%), 위·식도역류병(20.6%), 장염(28.4%) 등 소화계통 질환을 앓는 20대 환자 수도 크게 늘었다. 20대 공황장애 환자도 지난해 1만3천명으로, 2012년(8천명)보다 65%나 늘었다. 20대 우울증 환자 역시 같은 기간 22.2%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건강검진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상당수다. 건강보험공단의 일반건강검진 대상에서 제외되는 20~39세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현재 418만명에 이른다. 이는 일반건강검진 대상자를 ‘지역세대주, 직장가입자 및 40세 이상 세대원과 피부양자’로 규정하고 있어 취업을 못한 20~30대 청년들이 건강검진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20~30대 맞춤형 건강검진 도입이 필요하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어.” 각박한 현실과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청년들이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놓을 때 쓰는 단어다. 먼저 취업한 친구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절망하며 하루하루 버거운 삶을 이어가는 젊은이들의 건강이 좋을 리 없다. 청년 취업률이 바닥을 칠수록 청년 우울증 비율은 치솟는다.우울증이 심해지면 술과 담배를 찾게 되거나, 타인과의 접촉을 기피하게 된다. 쉴 새 없이 스마트폰으로 취업 정보, 면접 스터디, 취업률 기사 등의 불안한 소식을 접하면서 일상에서의 불안장애까지 겪는다. 높은 실업률, 세대 간 갈등, 소통의 부재, 대인기피 등이 청년들을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20대가 건강하지 않으면 국가 미래도 건강할 수가 없다. 적신호 켜진 20대 청년의 건강, 국가가 나서서 챙겨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웰다잉법

우리는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게 세 가지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은 네 가지다. 누구나 죽고, 혼자 죽고, 죽는 순서가 없다는 것이다. 빈손으로 죽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조차 싫어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에 대해선 요란하게 떠들지만 편안함 죽음, 품위있는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 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선 외면한다.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무서워서 일수도 있다. 아니면 내겐 먼 미래처럼 들려서 일 수도 있다. 물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 사는 방법을 넘어 잘 죽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법까지 만들어졌다. ‘웰다잉법’이다. 암 말기나 회생가능성 없는 환자들이 자기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더 이상 연명치료를 받지 않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환자가 살 가능성이 없어도 의사의 사명으로 불필요한 치료를 계속해왔다. 보건복지부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웰다잉법)의 내년 2월 시행을 앞두고 3개월간의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가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후 연명의료(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이다. 시범사업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작성·등록,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및 이행 등 2개 과정으로 진행된다. 존엄사는 영국·네덜란드·대만·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처음 연 것은 대법원이다. 대법원은 2009년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가족이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 사건’에서, 본인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땐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2013년에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존엄사 제도화를 권고해 사회적 논의를 이끌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1월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하는 것이다. 물론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논란이 많았던 만큼 점검할 것들도 많다. 무엇보다 상속 목적이나 치료비 부담 등 경제적 이유로 존엄사가 악용되지 않게 해야 한다. 연명치료 중단이 생명경시로 흐르지 않도록 의료 윤리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연명치료를 거부한 환자들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의료 인프라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보수통합의 길

최근 남경필 경기지사가 페이스북을 통해 보수통합의 길에 대해 잇달아 언급하면서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3일 남 지사는 페북에 ‘유승민 의원, 분열의 정치는 그만두고 제대로 된 통합의 길로 갑시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남 지사는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개혁보수는 정치 노선이지 지고지선의 가치가 아니다. 오직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선이다. 민주적이지 않다. 이런 태도는 통합을 내치고 분열을 초래한다”며 제대로 된 통합의 길을 주장했다.다음날 남 지사는 페북을 통해 ‘홍준표 대표의 대표직을 건 승부수를 주시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남 지사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대표직을 걸고 국정농단 세력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면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어렵게 디딘 첫걸음을 응원하며 주시한다”며 함께 힘을 모으자고 글을 게재했다. 남 지사는 기본적으로 국민의당과 한국당 모두 통합의 길이 열려있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남 지사는 지역 주요일간지 기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남 지사가 직접 제안한 즉흥 설문 조사가 있었다.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기자는 모두 13명인데 남 지사의 질문은 이러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남 지사가 어떤 당으로 출마하느냐는 것이다. 객관식 질문이었다. 1번은 바른정당이 한국당과 통합해 ‘바른정당+한국당’ 후보로 나오는 것이고 2번은 ‘바른정당+국민의당’ 통합 후보 출마, 3번은 바른정당 후보, 4번은 기타 의견이다. 기자들의 의견은 의외로 일방적이었다. ‘바른정당+한국당’ 통합 후보가 9명으로 압도적이었다. 남 지사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통합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라면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충분히 고민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남 지사는 분명히 어떤 식이든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바른정당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 어느 정당과 통합할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지역정가는 내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남경필-이재명’ 양자 구도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남 지사가 어떤 보수통합의 길을 선택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원재 정치부 차장

[지지대] 군대 추억 하나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된다?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 흔히 수습기자들을 교육할 때 하는 말이다. 개가 사람을 무는 행위는 그만큼 흔하고 뉴스 가치가 떨어지는 당연한 현상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요즘은 개가 사람을 무는 행위가 사회부 주요 뉴스로 자리 잡았다. 유명 연예인 가족의 반려견이 사람을 물고 며칠 뒤 사망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개가 사람을 무는 행위는 왕왕 있었지만 요즘처럼 공론화된 적은 없다. 이제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된다’는 말은 수습기자들에게 하지 못할 듯싶다. ▶군 복무 시절 군견 훈련을 담당했다. 한때 군견 훈련 가운데 중요한 훈련 항목은 공격 훈련이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군견 훈련 지침이 떨어졌다.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군견 운영에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냈다고 판단한 군 부대 지휘관이 군견 공격 훈련을 강화한 것이다. 당시 특급 군견은 잘 무는 개였다. 사나운 군견을 만들기 위해 생고기는 물론 말피까지 받아 먹였다. 개들이 가장 민감한 부위인 개코를 비틀어 공격성을 높이기도 했다.필자가 운용했던 군견은 유독 사나워 사고를 내기 일쑤였는데 같은 부대 상병, 하사관, 작전 파견부대 통신병 등 적이 아닌 아군을 3~4차례 물어 난처하게 했지만 늠름한 특급 군견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휘관이 바꿨다. 신임 지휘관의 특급 군견 모델은 복종 잘하는 군견이었다. 앉아, 엎드려 군견병 신호에 따라 척척해내고 집중하는 군견이 특급 군견이 됐다. 결국 필자가 운용하던 군견은 특급 군견 자리를 복종 잘하는 군견들에게 내줘야 했다. ▶군 시절 목격한 개들의 무는 행위는 생각보다 치명적이다. 사고시 전투복이 너덜너덜해지고 피부에는 깊은 2개의 송곳니 자국이 남았다. 공격 훈련시 안전을 위해 두툼한 방어복을 착용해도 무는 힘이 그대로 팔뚝에 전달되고 멍이 들기도 했다. 과거 개를 마당에 묶어두고 잔반을 주며 집 지키는 용도로 키우던 시절도 있었지만 세월이 변해 공원, 거리에서 귀엽고 멋진 반려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반려견이 이제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만큼 사고 없이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생각하고 제도를 보완할 시점이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출근길을 막아서는 개(犬)가 있다. 하얀 털로 뒤덮인 작은 개다. 앉은 자리가 한결같다. 도로 옆 모서리다. 시간도 규칙적이다. 출근 시간에 있고 퇴근 시간엔 없다. 언제부턴가 동네 유명인사(?)가 됐다. 차를 막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혹시라도 다칠까 조심스레 지나친다. 한 달여 전, 개가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아마도 차에 치인 듯했다. 다들 안타까워했다. 이제 개는 동네의 구성원이다. 봐야 좋고 안 보이면 걱정된다. ▶개에 물린 사람이 죽었다. 유명한 식당 대표인 50대 여성이다. 동영상이 공개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작은 개가 들어왔다. 곧바로 여성의 다리를 물었다. 6일 뒤 여성이 사망했다. 개 주인이 연예인 최시원씨다. 사인을 두고 논란이 크다. 개 주인의 책임을 지적한다. 목줄을 묶지 않은 잘못이다. 직접적 사인이 아닐 수도 있다 한다. TV에 나온 전문가가 말했다. ‘사람이 개에 물려 죽는 일은 거의 없다.’ 과연 그렇게 볼 일인가. ▶권모군(9)은 가난했다. 부모님도 없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었다. 2005년 11월11일 숨졌다. 집으로 삼던 비닐하우스에서 발견됐다. 범인은 기르던 개였다. 기르던 개가 맹수로 돌변했다. 여기저기 끌려다닌 흔적이 참담했다. 아이가 마지막 숨은 곳은 출입문 뒤였다. 권군의 일기장이 발견됐다. ‘할머니가 샌들을 빨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샌들을 갖고 와서 비누를 가지고 와서 빨았습니다.’ ‘개에 물려 죽는 사람은 없다’고 얘기하니 다시 찾아본 옛날 기사다. ▶동네엔 또 다른 개가 있다. 어린 아이 몸집보다 크다. 반쯤 벌어진 입속에 송곳니가 무섭다. 연신 흘러내리는 점액질도 공포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소름 돋는다. 아침마다 주인과 산책을 한다. 목줄을 쥔 주인이 끌려가듯 뛴다. 하필 주인이 동네 ‘반장님’이다. 반상회가 열렸고 논쟁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말했다. ‘아이들이 걱정된다’ ‘어른도 무섭다’ ‘놓치면 어쩔건가’…. 주인 ‘반장님’이 말했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관리 안 된 개는 맹수다. 맹수로 돌변할 수 있다. 최시원씨에겐 사랑스러운 애견도 식당 대표에겐 맹수였다. 권군에겐 친구 같았던 개도 그날은 잔인한 금수였다. 다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다른 집 개는 물어요’란 표현이다. 그렇게 들린다. 세상에 물지 않는 개가 어디 있나. 개는 물어야 먹고, 먹어야 산다. 사람을 물기도 하고, 물린 사람이 죽기도 한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말은 옳지 않다. ‘우리 개는 관리해요’라는 말이 옳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독립운동가 김용관

지난 8월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5인의 독립운동가를 호명했다. 의열단원으로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 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 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 등이다. 김용관 선생(1897~1967)은 대한민국 최초로 ‘과학’과 ‘발명’의 중요성을 강조,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에 힘을 기울였던 과학자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인에 대한 과학기술 교육을 철저히 통제했다.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이 설립한 ‘관립 상공학교’를 단순 기능만 익히도록 교육하는 ‘공업전습소’로 격하했고, 1938년 이전까지 대학에 이공계 학과를 두지 못하도록 했다. 그 결과 조선인 의사, 변호사는 있었으나 조선인 과학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용관 선생은 1918년 경성공업전문학교 졸업 후 동경 구라마에고등공업학교 요업과에 다녔다. 유학중 일본의 빠른 성장이 과학기술의 발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돼 1924년 경성공업전문학교 동기였던 현득영, 박길룡 등과 ‘발명학회’를 설립했다. 신문과 잡지에 과학과 발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연재하고 1933년 6월엔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과학 전문지인 ‘과학조선’을 창간했다. 1934년 2월28일에는 김용관 선생 주도로 31명의 인사들이 ‘진화론’의 찰스 다윈 서거일인 4월19일을 과학데이로 정했다. 과학 대중화를 위해 과학데이 같은 행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 ‘다같이 손잡고 과학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분기하자!’는 그가 늘 외치는 구호였다. 그러나 1938년 5회 과학데이를 추진하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총독부에 체포돼 과학행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김용관 선생은 과학으로 우리 민족의 힘을 키우려 했던 인물이다. 과학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용관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정부가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에서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이란 사유로 매번 탈락시켰기 때문이다. 후손들이 백방으로 자료를 모았지만 조선물산장려회 등은 독립운동단체로 볼 수 없는 데다 수감 기록이 없어 안된다는 게 이유였다. 최근 정부가 독립운동가 발굴ㆍ포상에 적극 나서기로 하면서 이번엔 김용관 선생도 독립운동가 지정이 유력해 보인다. 과학자이고 과학으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김용관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고 합당한 예우를 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도리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깜깜이 기부

중학생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35)은 자신과 딸의 희귀병(거대백악종) 치료를 핑계로 후원금을 모금해왔다. 2005년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딸을 앞세워 거액의 후원금을 모금했고, 미국까지 건너가 인형 탈을 쓰고 모금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씨는 ‘어금니 아빠의 행복’이라는 책까지 발간해 모금활동을 넓혔다. 사람들은 이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딸의 치료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던 모습은 가짜였던 것 같다. 이씨는 기부금으로 외제차를 몰고 혈통견을 분양받는 등 호화생활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성매매 등 각종 범죄 혐의와 전과 18범의 전력이 있는 것도 드러났다. 선심(善心)을 악용해 후원금을 모집해 엉뚱한 곳에 쓰면서 ‘깜깜이’ 기부금 모집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기부 포비아’(Phobia·공포증)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문제는 기부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부금 모금 단체들은 ‘어금니 아빠’ 사건으로 회원 탈퇴와 모금액 감소가 일어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새희망씨앗이 결손아동 돕기로 2014년부터 모금한 128억원을 빼돌리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상당수의 모금 단체들이 “후원을 취소하겠다”는 회원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기부 자체에 대한 불신과 함께 제도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에 따르면 연간 1천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받을 경우 기부금 모집ㆍ목적ㆍ목표액ㆍ사용계획서를 작성해 지방자치단체 등에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기부 총액이 연 1천만원이 넘은 상황에서 등록을 하지 않아도 적발이 되지 않는다. 인력문제 등 현실적 여건이 일일이 적발하기 어렵고, 제도보다는 양심에 기대다보니 불투명한 기부가 많기 때문이다. 이씨도 10년 넘도록 기부금 규모 및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았어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여중생 살인이라는 흉악범죄를 계기로 이영학 기부금 유용 의혹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문제의 기부금 모집은 계속됐을 것이다. 최근 SNS를 통해 이씨처럼 개인이 후원금을 모집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이 돈이 제대로 쓰이느냐다. 정작 기부금이 필요한 이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기부금 사용내역 검증 강화가 필요하다. 기부하는 사람도, 내가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올바른 기부문화 확립 및 신뢰도 향상을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도마뱀 꼬리

주한미군은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부터 한반도에 주둔해 왔으며, 미국은 해외파견 병력 중 한국에 3번째로 많은 2만 8천500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SOFA 협정을 토대로 한국은 매년 1조 원에 가까운 방위비 분담금을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 내에서 사용되던 군용품들의 외부 반출은 관례처럼 내려오는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오산 공군기지(K-55) 정문에 있는 중앙시장만 해도 불법 반출된 미군 군용품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그 종류만 해도 의류, 전투화 등 수십 가지에 이를 정도다. 한 달이 넘는 취재 과정에서 해마다 수백 대의 차량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물론, 미군의 주력기종인 전투기 3대가 일반 고물상에 반출된 사실도 확인됐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대한민국 군부대에서 발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수십 명의 목격자가 증언한 대로 국내 주력 비행기가 원형을 유지한 채 3등분 돼 고물 처리업자에게 넘어간 사실이 발생했다면, 아마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을지 모를 일이다. 국군 군용차량이 국내 번호판을 달고 도로 위를 질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더라도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는 등으로 난리가 났을 일이다. 취재 과정에서 국방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오히려 그런 일이 실제 발생했는지 다시 한번 취재기자에게 확인할 정도였다.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모르쇠식 태도를 보이는 주한미군의 소극적 대처다. 심지어 이를 수사하고 있는 대한민국 경찰의 협조요청에도 묵묵부답이다. 무시를 하는 건지, 절차상 시간이 걸리는 일인지는 추후 드러날 일이다. 다만 과거에도 이 같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자 한둘만 징계하거나 본국으로 소환하는 등 도마뱀 꼬리자르기식의 태도로 일관하며, 수십 년간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치외법권 지역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면 우리 사법권이 발동을 해야 할 것이다. 1조 원 가까운 혈세로 충당되는 방위비 분담금을 생각해서라도, 이번만큼은 제도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해 본다.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죄수의 딜레마

검사가 범죄를 저지른 공범 두 명을 잡았다, 이들을 기소하려 했지만 증거가 충분하지 못했다. 이들에 대한 범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자백이 필요했다. 검사는 궁리 끝에 두 명을 분리시켜 심문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제시했다. 첫째로 두 명 가운데 한 사람만 자백하고 나머지는 무죄를 주장할 경우, 자백한 사람은 무혐의 처리하고 무죄를 주장한 사람은 징역 10년을 구형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둘째로는 두 사람 모두 자백할 경우 징역 5년을, 세번째로는 둘 다 침묵하면 징역 6개월을 구형하겠다고 제안했다. 물론 이들은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격리된 상태다. 격리된 상태에서 심문을 받는 이들 두 명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침묵을 선택하자니 상대방이 자백할 것 같고, 자백을 하자니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들은 상대방이 끝까지 침묵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지면서 자백을 선택하게 된다.상대방에 대한 믿음보다는 배신을 통해 죄를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상대방이 침묵하면 침묵보다는 자백해서 자신이 석방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기게 된다. 또 자백을 해도 상대방이 자백할 경우 침묵보다 낮은 형량을 받을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있다. 죄수의 딜레마다. 죄수의 딜레마를 벗어나는 방법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사소통이다. 이들 죄수들에게 서로를 믿는 확고함이 있었다면 침묵을 선택했을 것이다. 또 이들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공간에서 조사를 받았더라도 침묵했을 확률이 높다.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됐다면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한 가지 목표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세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최고선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도 접근 방식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화두에 대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소통이 절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외적으로 북한 핵과 대내적으로는 여야간의 정쟁으로 정국이 경색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 죄수의 딜레마를 해소시키는 방법은 아닐까. 이영수 인천본사 부국장

[지지대] 삐라 실은 드론

2017년 5월. 용인시 한 주택 앞마당에서 삐라가 발견됐다. 북한을 찬양하고 남한을 비판하는 전형적인 북한 삐라다. 놀란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곧바로 경찰관들이 방문했다. 삐라를 건네받고 정확한 수거 장소 등을 확인했다. 집주인이 농담 삼아 ‘옛날에는 삐라 한 장에 공책 한 권씩 줬는데’라고 물었다. 경찰관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다 주면 감당을 못합니다. 요즘 삐라 신고가 많아 출동 안 할 수도 없고 힘듭니다.’ ▶그도 그럴게. 용인시 수지구 일대에서 삐라가 발견되는 것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수백 장씩 뭉텅이로 떨어지는 삐라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지난해 1월에는 2만여 장의 삐라가 용인과 인근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지금도 광교산 북서면 능선에서는 곳곳에 널려진 삐라를 목격할 수 있다. 삐라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이 출동해 수거한 뒤, 군 당국에 넘긴다. 경찰로서는 본연의 임무가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고역이다. 언제부턴가 용인시가 겪고 있는 ‘삐라 공해’다. ▶16일 청와대 경내에 삐라가 떨어졌다. 춘추관 잔디밭에서 발견됐다. ‘김정은 최고영도자님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단호히 성명’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청와대 경비담당인 101단이 출동해 60여 장을 수거했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올해만 11번째고 지난해에도 8차례 발견됐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국정원과 경찰이 합동 수사에 들어갔지만 정확한 살포 경위는 오리무중이다. ▶삐라 살포는 아주 오래된 심리 전술이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위선적 행동을 일삼는 교황을 고발한 그림을 뿌린 것이 시초라는 주장이다. 우리에겐 6·25전쟁의 기억과 함께 시작했다. 우리 국군과 유엔군 측이 집중적으로 살포했다. 인민군에 대한 투항권고가 주목적이었다. ‘루터 기원說’로부터 500여 년, ‘6ㆍ25 등장說’로부터 70여 년 지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뿌려지고 있다. 그만큼 효과가 크다는 역설(逆說)일 수 있다. ▶하태경 의원(바른정당)이 떠오른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드론으로 평양 상공에 삐라 바다를 만들면 북한이 상당히 위협적이라고 느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북제재 카드는 거의 다 소진됐으니 이제 심리전만 남아 있고, 이 심리전에 효율적 방법이 드론을 활용한 삐라 살포라는 얘기다. ‘핵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세상에 웬 삐라 타령이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 경내까지 수십장의 삐라가 뿌려지는 지경에 왔다. ‘삐라 반격’이라는 전술적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삐라 실은 드론’도 방안일 수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10대들의 불법 도박

‘달팽이 경주’는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 많은 도박게임이다. 색깔이 다른 달팽이 몇 마리가 출발신호와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달팽이들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몇 명의 학생들이 PC방 모니터 앞에 앉아 주먹을 불끈 쥔 채 응원을 한다. 자신이 지목한 달팽이가 결승점에 먼저 다다르기를. 이 게임은 캐릭터만 귀여운 달팽이를 썼지 경마 도박처럼 실제 돈이 오간다. 포털에서 달팽이경주 게임 사이트를 검색하면 수십개씩 뜬다. 성인인증 절차가 없어 미성년자가 얼마든지 가입할 수 있다. ‘소셜그래프’도 중독성이 강한 도박게임이다. 게임 사이트에 들어가 계좌이체 등으로 돈을 입금하면 그래프 막대기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래프 막대기는 두 배, 세 배, 네 배로 표시된 지점 중 어디서 멈출지 모른다. 이 그래프가 배당률을 나타내는 특정 지점에 멈추기 전 ‘즉시 출금’ 버튼을 누르면 표시된 배당률에 따라 입금한 돈의 두 배, 세 배 돈을 딸 수 있다. 하지만 그래프가 멈출 때까지 출금 버튼을 누르지 못하면 입금한 돈은 날아간다. 유튜브에서 ‘소셜그래프’를 검색하면 게임 방법부터 돈 벌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영상 목록이 1만개가 넘게 뜬다. 10대 청소년들이 불법 도박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해 도박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도 많다. 상당수 청소년들이 용돈을 받아 여유자금이 생기면 친구들과 사이트에 접속해 게임을 한다. 때론 베팅금액의 몇 배를 벌며 재미를 보기도 하지만 돈을 잃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들은 게임하는 즐거움과 돈을 땄을 때의 짜릿함을 잊지 못해 갖가지 핑계를 대가며 부모한테 돈을 타내고, 친구에게 돈을 빌린다. 그러다 안되면 절도나 강도, 사기 등의 범죄까지 저지른다. 박경미 의원(더민주)이 경찰청·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 인터넷 도박으로 형사 입건된 10대 청소년이 2014년 110명에서 지난해 347명으로 3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빚을 진 상태고,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범죄에 발을 들였다. 불법 도박에 발을 들인 청소년들은 도박 중독으로 인한 우울증과 채무, 학업 부적응, 관계 단절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도박 중독으로 치료를 받는 청소년 수도 증가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도박 중독으로 외래진료를 받은 청소년이 2013년 13명에서 지난해 40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호기심에서 시작했다가 빚이 몇천만원까지 늘고, 나중엔 도박중독자 내지 범죄자로 전락하게 되는 10대 청소년들을 방관해선 안된다. 일선 학교에서부터 도박 중독 예방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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