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김영란법 ‘100일 천하’

법은 일정한 질서를 포함한다. 이 질서가 있을 때 법적 안정성이 갖춰진다. 사회적 정의(正義)보다도 법의 안정성은 앞선다. 일단 법적 안정성이 확보된 뒤, 잠재돼 있던 정의가 드러난다. 법질서를 유지할 것인가, 새로운 법질서를 형성할 것인가의 판단은 그때 한다. 소크라테스의 사형은 정의에 어긋났다. 하지만, 법은 그를 사형시켰다. 그가 희생되며 남긴 “악법도 법”이란 외침이 법의 안정성을 설명하는 더 없는 법언(法諺)이 됐다. ▶법의 안정성을 형성하는 요소가 있다. 그중에 경직성(硬直性)이 있다. 법을 담당하는 기관의 결정은 임의로 취소ㆍ변경되어서는 안 된다. 한 번 제정된 법률을 바꾸는 것도 헌법상 절차와 위헌 심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형법은 1953년 간통죄를 규정했다. 2015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폐지라는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62년 걸렸다. 시행령은 법을 적용하는 구체적 지침이다. ‘안정성’이란 기본 정신에서 모법(母法)과 전혀 다르지 않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바뀐다. 음식물, 선물, 경조사비 허용 기준이다. 애초 3ㆍ5ㆍ10에서 5ㆍ5ㆍ10으로 높였다. 음식물 접대 한도가 3만원에서 5만원으로 바뀌는 것이다. 가액 한도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정부가 판단해서다. ‘3월 초부터 시행한다’며 일정도 공개했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접대 제한이다. 그 핵심을 정한 기준이 ‘3ㆍ5ㆍ10’이다. 이 시행령의 개정은 사실상 김영란법의 개정이다. ▶간통죄 위헌 주장은 수십 년간 있었다. 실제 개정까지는 62년 걸렸다. 김영란법도 출발부터 위헌 논란이 있었다. 그 논란대로 시행령이 바뀌었다. 개정이 예고된 3월을 기준으로 하면 5개월 만의 개정이다. 법률의 개정 예고는 현실에서 미리 적용되는 특징이 있다. 현재의 ‘3ㆍ5ㆍ10’ 기준은 이미 설을 전후해 효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이를 기준 삼으면 김영란법은 100일 만에 바뀐 법이다. ‘빨리 바뀐 법률’로 가히 기록적이다. ▶법 시행 초기, 적지 않은 이들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은 말했다. ‘나아질 것이라는 게 시행령 완화라면 애초부터 잘못된 법률이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모든 것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화훼 농가, 농ㆍ축산 농가, 외식업계의 타격은 나아지지 않았다. 법-시행령-은 석 달을 못 버티고 한도를 늘려 잡았다. 법이 가져야 할 기본적 가치, 안정성을 잃었다. 이런데도 김영란법 논란을 ‘깨끗한 사회’ 대 ‘더러운 사회’로만 볼 것인가.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노부모의 명절증후군

이번 설 연휴에도 이런 저런 사건ㆍ사고가 있었다. 의정부시에서 혼자 살던 50대 남성이 단독주택 마루에서 잠들었다가 저체온증으로 설날 죽음을 맞았다. 이 남성은 2013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혼자 지내며 생활고를 겪어왔는데 설을 맞아 조카가 떡국을 주러왔다가 숨진 것을 발견했다. 역시 설날 당일 전남 영광에선 가족과 다투고 집을 나가 만취 상태에서 역주행 운전을 해 인명사고를 낸 30대 여성이 입건됐다. 29일엔 부부싸움 끝에 40대 남편이 목을 매 숨진 사건도 있었다. 의정부의 한 아파트에 사는 부부는 전날 경제적 문제로 다퉜고, 남편은 다음날 아내와 자녀들이 집을 비운 사이 자살했다. 30일 새벽엔 전북 익산의 한 도로에서 30대 남편이 주차된 아내의 승용차에 불을 질러 모두 타버렸다. 쓸쓸하고 우울한 소식들이다. 가족ㆍ친지들이 모여 화목을 다지고 즐겁게 지내야 할 명절,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가족에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평소 갈등이 생겼을 때 충분한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신체적ㆍ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명절에 묵은 감정들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명절을 지내고 난 뒤 사이가 나빠지는 부부들의 사례는 새삼스럽지 않다. 시가 및 처가와의 갈등이 부부 불화로 이어지고, 깊어진 갈등의 골은 이혼 증가로 이어져 ‘명절 이혼’이란 말까지 생겼다. 명절 이혼은 이제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 됐다. 이혼이 아니더라도 명절 후유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주부들은 여성에게 집중되는 가사 노동과 이로 인한 피로감, 고부갈등 등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남편들은 장시간 운전에 처가와의 갈등, 경제적 부담 등으로 힘겨워한다. 취준생이나 결혼 못한 젊은이들도 명절이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더욱 심하게 명절증후군을 겪는 건 고향에 남겨진 부모님이다. 명절이 끝난 후 자식들이 없는 빈자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거나 우울감 때문에 식사도 잘 못하는 부모님이 있다. 만약, 자식들을 떠나보낸 뒤 공허함이 2주 이상 이어지면서 평소보다 소화도 잘 안되고, 두통을 호소한다면 명절증후군에 의한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집에 돌아온 후에도 안부 전화를 자주 드려 부모님의 건강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자신의 병을 알리지 않는 경향이 있어 혼자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미래쇼크

앨빈 토플러(1928~2016)는 1970년 발간한 그의 저서 ‘미래쇼크’에서 급속한 변화가 인간과 조직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했다. 그는 미래쇼크를 ‘너무나 짧은 기간 동안에 너무나 많은 변화에 대처하고자 노력함에 따라 유발되는 방향감각 상실과 스트레스’라고 정의했다.앨빈 토플러의 분류법에 따르면 역사는 제1물결(농업혁명), 제2물결(산업혁명), 제3물결(정보화)의 변화를 이어 왔다. 이 중에서 도시화가 시작된 제2물결 이후 변화를 따르지 못한 계층에서 ‘문화적 지체’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농업사회에서는 교류하는 사람은 적지만 지속적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도시인들은 교통수단을 통해 엄청난 이동을 하면서 임시적·비지속적 관계를 갖는다. 사람에 대한 소중함이 크게 줄어들어 비인간적이라는 느낌도 갖는다. ‘미래쇼크’는 개인이나 조직은 물론이고 국가조차도 단기간의 너무나 빠른 변화로 과부하 상태에 빠져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국가도 지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앨빈 토플러는 강조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ㆍ페이스북 등)는 특정한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구축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를 지칭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정보나 의사교환을 하지 않으면 고립되고, 급기야 문화적지체 현상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세계경제포럼(WEF)을 창설한 클라우스 슈밥(1938~독일)은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 로봇)기의 원동력인 혁신, 지능화, 연결을 위해서는 공개와 참여가 중요하다”며 “누구나 참여 가능한 오픈소스 공간정보가 4차 산업혁명기의 기술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오픈소스(=원시코드를 수정 및 재배포 가능)는 인터넷망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재검증 받아 강력한 생산력과 진실성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미래쇼크’를 경험하고 있는가? 그러나 결코 낙담할 필요는 없다. ‘미래쇼크’는 인류의 운명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조금씩 공부하며 극복해 나가자. 김신호 인천본사 경제부 부국장

[지지대] 한 방의 추억

노무현 후보에게는 두 번의 ‘한 방’이 있었다. ‘첫 번째 한 방’은 민주당 후보 경선이었다. 2000년은 이회창 대세론이 굳혀졌던 한 해다. 노무현은 간신히 6위권을 형성하는 등외(等外)주자였다. 이랬던 그가 경선을 치르면서 지지율을 높였다. 후보로 확정된 4월, 그의 지지율은 53.8%까지 올랐다. ‘대통령 된 것 같던’ 이회창(30.8%)을 두 배 가깝게 따돌렸다. 한자리 지지율이 경선 두 달여 만에 만들어 낸 후보 확정이었다. ▶‘두 번째 한 방’이 필요했다. 후보 확정과 함께 그의 지지율이 추락했다. 후보 확정(2001년 4월) 때의 53.8%가 45.9%(5월 6일), 24.2%(7월 5일)로 밀려났다. 9월 말 조사에서는 지지율 16.8%로 이회창 후보(31.3%)에 반 토막에 그쳤다. 이때 등장한 이벤트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다. 19%(11월 2일)이던 지지율이 단일화 직후(12월 2일) 43.6%로 올랐다. 그리고 노 후보는 48.5% 득표율로 16대 대통령이 됐다. 지지율 6등 후보가 1년 만에 차지한 대통령직(職)이다. ▶이후 한국 정치에는 전에 없던 유전자가 생겼다. 노무현에게서 학습된 ‘한 방의 추억’이다. 지지율이 극적으로 뒤집힐 것이라는 믿음이 선거판을 휩쓸었다. 하지만, 예외 없이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났다. 적어도 우리가 기억하는 큰 선거에서 6등이 1등 되는 ‘한 방’은 노무현 이후 없었다. ‘100년 정당’이라던 열린우리당이 ‘폐족 정당’으로 몰려 연패를 거듭하던 시절. 정장선 당시 의원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 당은 한 방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앞으로도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사라지는가 했던 ‘한 방의 추억’이 10여 년 만에 꿈틀댄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그 중 하나다. ‘최순실 게이트’로 형성된 주인 없는 정치에서 그는 ‘이재명 한 방’을 만들어가고 있다. 존재감 없던 그가 당내 지지율 2등까지 올랐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노무현 한 방’을 추억한다. 뿐만 아니다. 여권 내 잠룡들도 저마다 ‘한 방의 주인공’을 꿈꾼다. 유승민 의원은 드러내놓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2%대 지지율에서 시작해 뒤집었다”고 얘기했다. ▶때마침 등장한 미국발(發) ‘한 방의 추억’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불과 1년 전 괴변과 독설로 낙인찍힌 등외자였다. 이랬던 그가 공화당 후보가 됐고 대통령이 됐다. 사라져 가던 ‘노무현 한 방’을 살려낸 바다 건너 불쏘시개다. 제2의 노무현! 제2의 트럼프! 지금 대한민국 잠룡들이 틀림없이 꾸고 있을 ‘한 방의 꿈’이다. 다만, 앞선 두 번의 ‘한 방’을 가능하게 했던 소재-노무현의 당당한 진보ㆍ트럼프의 지독한 보수-를 얼마나 채워가고 있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한 방의 추억’에도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페이크 뉴스

‘페이크(fakeㆍ가짜) 뉴스’가 한국에도 상륙했다.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거나 있지도 않은 일을 언론사 기사처럼 만들어 유포하는 사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페이크 뉴스는 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포털을 주 무대로 하고 있다. 사실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인터넷을 타고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가 당하는 입장에선 속수무책이다. 흑색ㆍ음해 선전의 새로운 변형으로 파괴력이 대단하다. 실제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페이크 뉴스가 선거 판세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e메일 유출을 조사하던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살인을 한 뒤 자살한 채 발견됐다’ ‘힐러리 클린턴이 IS에 무기를 판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도널드 트럼프 지지 선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페이크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더 많은 반응을 얻었고, 여론 형성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도 페이크 뉴스가 정치판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에선 ‘메르켈 총리는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돌프 히틀러의 딸’이라는 페이크 뉴스가 등장했다. 이에 독일 정부는 페이크 뉴스 생산자에 대해 최대 징역 6년, 이를 싣거나 옮긴 매체는 건당 50만 유로(6억3천만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언론도 새해 들어 가짜 뉴스 근절에 나섰다. 가짜 뉴스는 보도 당사자는 물론 보도에 등장하는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고, 이를 싣는 매체의 공신력도 떨어뜨리기 때문에 절박감을 느낀 언론사들이 폐해를 막고자 ‘팩트 체커’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가짜 뉴스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세가 사납다. 대표적인 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퇴주잔 소동’이다. 선친 묘를 참배한 뒤 퇴주잔의 술을 마시는 모습의 영상이 나돌았는데 반 전 총장은 그런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상은 누군가가 짜깁기해 퍼뜨린 페이크 뉴스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문(文)씨 성을 가진 주요 인물들이 종북했다는 ‘나주 남평 문씨 빨갱이 설’에 휘말렸다. 고의로 만들어지는 페이크 뉴스는 선거의 독버섯이다. 벌써 일부 후보가 공격을 당했고, 그로 인한 후유증도 적지 않다. 다행히 중앙선관위가 나서 단속 방침을 밝혔다. 유권자를 농락하고 선거 분위기를 망치는 페이크 뉴스는 악영향을 끼치기 전에 반드시 근절시키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계란 선물세트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이 ‘금란(金卵)’이라고 불릴 정도로 비싸졌다. 물량 부족에 가격 폭등 현상이 벌어지면서 SNS엔 ‘비빔밥에 ‘화룡점정’이랄 수 있는 계란을 넣어주지 않아 황당했다’는 사연부터,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었다’고 자랑하는 인증 사진이 게재되고 있다. ‘라면에 계란을 넣어먹는 것도 사치가 됐다’는 푸념도 있고, ‘계란이 비싸 메추리알을 넣어 먹어야겠다’는 하소연도 있다. 대형 제빵업체에선 일부 품목의 생산을 중단했다. 계란 부족과 가격 고공행진은 계란을 수입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귀한 몸’을 입증이라도 하듯 비행기로 모셔왔다. 계란은 서민들에게 가장 저렴한 단백질 식품이다. 영양이 풍부해 완전식품에 가깝다. 명절에도 가장 많이 쓰이는 식재료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계란 10알이 든 짚으로 만든 계란 꾸러미는 최고의 명절 선물 중 하나였다. 1950년대 6ㆍ25전쟁 후 계란은 닭고기ㆍ돼지고기ㆍ찹쌀과 함께 설 선물 4대 인기품목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계란의 가치는 돼지고기 한 근과 차이가 없었다. 당시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책자에는 1967년 계란 한 꾸러미 가격이 110원으로 기록돼 있다. 돼지고기 한 근(600g)은 120원이었다. 당시만 해도 서민 가정에선 생일이나 잔칫날, 소풍날이라야 계란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1962년 이화여대 기숙사를 탐방한 ‘처녀들만의 보금자리’라는 신문 기사에선 ‘기숙사 식당에서 매일 하나씩의 달걀 프라이가 나온다’는 사실을 자랑거리로 소개했다. 같은 해 가을 계란 공급이 불안정해 품귀 사태를 빚자 일부 상인이 멋대로 값을 올려 받아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는 보도(조선일보 9월 5일자)도 있었다. 1968년 6월 1일 서울 서대문의 10층 건물에 문을 연 ‘뉴 슈퍼 마키트’의 개업 행사에서 당대 인기 코미디언인 서영춘·백금녀 등이 고객들에게 나눠준 선물은 1인당 계란 1개씩이었다. 궁핍한 시대의 추억으로 남아있던 계란 선물세트가 60여 년 만에 명절 선물로 다시 등장했다. 친환경 1+등급의 계란 선물세트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선물 판매대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동네 마트에선 3만원이상 설 선물을 사면 계란 세트(10개)를 덤으로 주며 고객을 유혹하고, 개업한 식당도 계란 세트를 사은품으로 주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올해는 정유년 닭띠 해라서 인가, 계란이 다른 어느 해 보다 더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계란말이가 ‘시가’인 슬픈 현실

온라인상에 떠도는 한 장의 사진이 화제다. ‘흔한 계란말이 가격’이라는 제목으로 빠르게 공유되는 이 사진은 계란말이의 가격이 적혀 있어야 할 부분에 숫자 대신 ‘시가’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계란이 신분 상승을 해 생선회와 동급이 됐다며 사회 현상을 풍자한 이 사진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기자가 자주 가는 집 근처 선술집이 있다. 그런데 그 가게 명이 ‘계란말이’다. AI 사태가 발생하기 전 알게 된 이 가게는 어떤 안주를 시키더라도 그전에 인심 좋게 계란말이를 서비스로 줬다. 하지만, AI로 인해 계란 대란이 일어나면서 행복을 주던 그 덤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가게 주인은 “안주 값이 아깝지 않으려면 메뉴판에 있는 계란말이를 선택하시면 됩니다”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지만, 그의 표정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역대 왕조 시대의 역사서나, 그를 주제로 한 소설들을 읽어보면 나라님이 국정을 잘못 운영하면 가뭄으로 인한 흉년이, 크나큰 자연재해가, 아니면 돌림병으로 불리는 전염병이 창궐해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고 기술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몇 달째 이어지는 AI 사태는 사실 국가의 큰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누구도 이 사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국정농단의 주인공인 최순실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지고, 삼성 등 대기업 사주의 뇌물죄 적용에 따른 구속 여부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장에, 모든 이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씁쓸한 현실이다. ▶국민을 보듬고, 국가의 재앙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이 있지만, 그 실패의 주인공이 국가의 지도자가 된다면, 국민이 받는 고통은 결코 성공의 토대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ㆍ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출세해 이름을 세상에 드날림)을 위해 선거 레이스에 나서는 예비 대선 주자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조기 퇴근해 줄 것을 간절히 부탁한다. 국민은 더 이상 ‘봉’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규태 사회부 차장

[지지대] 그 조직의 인재는 그 안에 있다

“좋은 사람 어디 없나요?” 인천시가 2월6일자 대규모 인사를 앞두고 있다. 300만 시대에 따른 조직 확대 개편과 2017년 정기 인사까지 맞물린 이번 인사는 승진 인원만 230명(직무대리 42명 포함)에다 4급 이상 승진 자리도 39개(직무대리 9명 포함)나 되는 잔치성 인사이다. 유정복 시장 주변에서는 취임 후부터 이번까지, 인사 때마다 “좋은 사람(일 잘하고 승진할 만한 공무원) 없어요?”라는 수소문이 반복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첫 번째는 이미 결정한 승진 인사에 대한 2차 검증을 하려는 의도일 것이고, 두 번째는 정말로 승진시킬 만한 인사가 보이지 않는 경우이다. 두 번째가 문제이다. 유 시장 취임 초기에는 눈높이 문제와 시장 선거 캠프의 정치적 투서 등으로 시야가 흐렸다지만, 3년차를 맞은 이 즈음에도 좋은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좋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사권자와 조직, 조직원 간의 눈높이 차이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소통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태가 이 정도까지 라면 (보이지 않는) ‘좋은 사람’ 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조직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모를 가능성이 커 문제의 심각성이 더 우려된다. 전반적인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인사 과정에서도 최고위급 인사인 2급 배치부터 어려움을 겪은데다 주요 보직인 자치행정국장 적임자를 찾는데도 애를 먹었다는 후문도 돌고 있다. 대규모 인사에서 최고위급과 주요 보직 인사가 명쾌하지 못하다면 성공적인 인사로 보기 어렵다. 그렇게도 ‘좋은 사람’ 찾기가 어렵다면 전임 시장들의 인사 패턴에서라도 팁을 얻으면 쉽다. 그들도 정치적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좋은 사람을 찾았을 테니 말이다. 이 팁의 사용 조건은 ‘내가 9단이면 상대방도 8단은 된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가정이든 기업이든 국가이든 그 조직의 좋은 사람은 그 조직 안에 있다. 인천의 좋은 사람도 다른 곳이 아닌 인천안에 있다. 유제홍 인천본사 정치부국장

[지지대] 론스타 사건-엘리엇 사건

2006년 12월, 검찰이 론스타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여 비싼 값에 팔아치우고 달아나려 한 ‘먹튀 자본’이었다. 국부(國富) 유출이라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검찰이 나선 것이다. 검사 20명 등 100여 명 규모의 특별팀이 수사를 전담했다. 압수물이 1천 개 박스, 소환된 피조사자가 630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9개월만에 내린 결론은 기대 이하였다. 관련자들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줄줄이 기각돼서다. ▶수사 결과는 당시 대검 중앙수사본부 박영수 검사장이 맡았다. 박 검사장의 수사 평가는 ‘국익(國益)’이었다. 사법처리된 인원은 적었지만, 국부 유출의 원인을 밝혔다고 자평했다. 헐값 인수를 위해 국내 인맥이 동원된 부당한 매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언론의 평가도 대체로 박 검사장의 자평을 따랐다. ‘구속영장 기각, 핵심 관계자 조사 실패 등의 허점이 있지만, 국익 보호를 위한 검찰권 행사는 의미 있다’고 보도했다. ▶2017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 부회장이 430억원의 뇌물을 주고 기업의 이익을 취했다는 혐의다. 여기에서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등장한다. 엘리엇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강력한 반대 작업을 했다. 자칫 삼성의 경영권이 침해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삼성전자-이재용 부회장- 손을 들어준 것이 국민연금이다. 15조원의 삼성전자 주식을 가지고 있던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편을 들었고 결국 삼성물산 합병 계획은 성공했다. ▶삼성전자와 엘리엇의 대결 당시 모든 언론은 국부 유출을 얘기했다. 엘리엇이 외국인투자자들을 규합해 삼성전자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라고 평했다. 당시 삼성물산 합병의 구체적 목적은 그룹 총수 승계였다. 직접적으로 국부유출과 연결된 사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계는 당시 대결의 결과가 향후 삼성전자 경영권을 좌우할 것이라고 봤다. 이런 여론이 설득력을 얻었고 국민연금 이외 대부분의 기관 투자자들도 삼성전자 편을 들었다. ▶2006년 검찰 수사는 외국 투기 자본을 잡으려 한 거였다. 2017년 검찰 수사는 외국 투기 자본에 맞섰던 국내 자본을 잡으려 한 것이다. 재계 입장에서 보면 국부 유출 논리를 둘러싼 정반대의 사건이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다른 2개의 사건을 같은 자연인(自然人)이 수사하고 있다. 2006년에는 중수부장이었고, 2017년에는 특별검사인 박영수씨다. 물론 박영수 특검에겐 그때와 똑같은 ‘든든한 빽’이 있다. 눈앞의 여론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전당포의 진화

전당포는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사금융의 일종이다. 서민들이 패물이나 고가의 저당물을 맡기고 돈을 융통할 수 있는 유용한 급전 창구로 1960~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남의 딱한 사정을 이용해 수입을 올린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사채업자처럼 빚 독촉을 하진 않지만 물품 시세의 절반만 쳐서 돈을 빌려주고 기한내 갚지 못하면 저당 잡힌 물건을 처분해 버리는 냉혹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전당포가 사양길로 접어든 것은 1980년대, 은행 문턱이 낮아지고 신용카드가 보급되면서부터다. 자취를 감췄던 전당포가 반짝 호황을 누렸던 시절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다. 갑작스런 경기 위축으로 살림살이가 힘들어지자 명품 핸드백, 귀금속, 밍크코트 등을 들고 전당포로 나온 명품족이 크게 늘어났다. 명맥만 이어오던 전당포가 최근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낡은 상가에서 쇠창살 너머로 손님을 받던 음침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두드러진 변화는 전문화다. 예전엔 값 나가는 물건이라면 거의 받았지만 요즘은 IT 기기, 고가 브랜드 제품, 외제차 등 한 두 가지 품목에 주력하는 점포가 많아졌다. 대학가나 지하철역 등엔 ‘IT 전당포’가 성업 중이다. 주요 고객은 취업준비생이나 고시생, 대학생 등 돈에 쪼들리는 청춘들이다. 여기선 스마트폰ㆍ태블릿PCㆍ노트북컴퓨터ㆍ디지털카메라 등 IT 제품만 취급한다. 통상 물품 시세 50~60%를 현금으로 빌려주고 월 3% 정도 이자를 받는다. 연율로 따지면 무려 30%짜리 고금리다. 강남의 전당포는 고가의 명품가방이나 보석을 주로 취급한다. 정장 차림의 점원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물건을 감정해준다. ‘마이쩐’ ‘착한전당포’ 등 전국적으로 체인망을 가진 기업형 전당포도 있다. 이들은 앱을 통한 상담, 방문 감정, 위탁판매 등을 특화시켜 영업한다. 고가의 중고 브랜드 제품을 비교 거래하는 인터넷 플랫폼 ‘쩐당’처럼 핀테크 형태로 발전한 곳도 있다. 고객이 물건의 사진을 이 회사 사이트에 올리면, 제휴 전당포들이 그것을 보고 각자 대출 조건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고객은 금액과 이자율을 따져보고 전당포를 선택하면 된다. 전당포가 느는 것은 경제 불황이 원인이다. 아무래도 경제적 약자층인 서민이나 젊은이들의 전당포 이용률이 높다. 바뀌었어도 전당포는 씁쓸하고 우울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에듀 버블

얼마 전 육아정책연구소가 내놓은 영유아 사교육 실태 보고서는 가히 충격적이다. 지난해 8∼10월 전국의 만 2세 아동 부모 537명과 만 5세 아동 부모 704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5세 아동 10명 중 8명, 2세 아동 10명 중 3명 이상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일부는 하루 일과의 4분의 1을 사교육으로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2세 아동은 평균 1.7종의 사교육을 받았고, 5세 아동은 평균 2.2종으로 나타났다. 2세 아동이 받는 사교육은 한글ㆍ독서ㆍ논술 등 국어가 28.6%로 가장 많고 이어 체육(15.1%), 미술(14.5%), 과학·창의(10.2%), 수학(7.9%), 영어(7.7%) 순이었다. 5세 아동도 비슷했다.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영어, 수학을 가르친다고 얼마나 교육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영유아기의 무분별한 사교육은 사회·정서 발달을 방해하고 불안이나 우울, 공격성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학부모들이 과도한 사교육이 문제 행동을 유발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지금 자녀에게 시키는 사교육이 적절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유난하다. 농사짓는 데 긴요한 소까지 팔아 대학을 보낸다해서 ‘우골탑(牛骨塔)’이 생겨났고, 요즘엔 아버지 월급만으론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엄마까지 나서면서 ‘모골탑(母骨塔)’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2015년 기준 17조8천840억원에 달한다. 빚내서 교육비로 쓰는 에듀푸어가 60만6천가구로 추정된다. 사교육 광풍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공교육 불신과 경쟁에 대한 불안감, 대학 간판이 성공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선 공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부모들의 가치관도 바뀌어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7년 한국사회를 전망하면서 ‘에듀 버블(edu bubble)’을 중요 키워드로 꼽았다. 우리 사회가 높은 교육열로 인해 적정 수준을 초과하는 교육 투자를 지속하지만 경제가 저성장에 머물면서 교육 투자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사교육을 한다고 모든 아이가 대학에 잘 가는 것도 아니고 대학 졸업 후 취업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내수경제 침체의 원인이고 은퇴 준비의 걸림돌이다. 사교육 열풍이 자녀는 물론 부모의 노후까지도 망칠 수 있다. ‘에듀 버블’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제2의 不條理한 현실… 다시 이어도를 떠올리며

새해를 맞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여전히 팽팽하다. 중국은 ‘사드 배치 반대’를 내걸고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천편일률적인 헤드라인 속에서 ‘이어도’가 클로즈업된다. 그래서 ‘中 군용기, 이어도 방공구역 침범…’ 제하의 기사는 중국과의 제주도 해상 대치점에 금싸라기 같은 우리 영토 이어도의 존재를 일깨워준다.▶외신은 최근 중국 군용기 10여 대가 제주 남방 이어도 인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을 4~5시간 침범, 우리 공군 전투기 10여 대가 긴급 발진했고, 우리 공군 전투기가 중국 군용기에 경고통신을 보냈음을 알리고 있다.수중 암초로 이뤄진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 중국 동부 장쑤성 앞바다로부터 247㎞ 떨어졌다. 한국과 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중첩된다. 양국은 지난 1996년부터 해상경계획정을 협상하고 있지만, 경계선은 정하지 못하고 있다. 바다에서의 영역 다툼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중국은 지난 2013년 이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한국도 이어도를 포함, 새로운 KADIZ를 선포했다. 정부는 이어도가 우리 영토에 근접, 실질적으로 점유한다는 전략인 반면, 중국은 관할권이 자국에 있다는 주장이다. 무게 중심은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힘의 논리는 늘 정확하고 유효하기 때문이다.▶중국이 G2로 부상한 건 이미 팩트다. 지구촌은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중국 군용기의 이어도 침범을 보면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려진다. 보험회사 직원이 어느 날 일어나니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해 버린 얼개를 중심으로 얼토당토않은 현실을 고발한 1세기 전의 현실이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처음에 가족들의 관심과 보호를 받다 결국 가족들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부조리(不條理)한 현실이다. 무관심해지고 그는 잊혀진다. 이미 ‘유커(游客)’란 중국어가 ‘관광객’이란 모국어를 제치고 당당하게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우린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어도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도루묵의 수난

강원도 주문진항에 도루묵이 넘쳐 난다는 소식이다. 먼 바다에서 서식하다 알을 낳으려 수심 얕은 곳으로 몰려들어서다. 도루묵은 한때 동해안에선 ‘개도 물고 다닐 만큼 흔한 생선’이었다.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올라가면서 2000년대 초반 어획량이 급감했다. 정부가 나서 보호수면 지정과 산란장 조성 등으로 개체 수를 늘려 풍어를 맞았지만, 어민들은 ‘말짱 도루묵’이라며 가격 하락에 따른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 영·정조 때 문신 이의봉이 편찬한 ‘고금석림’(古今釋林)에 이름에 얽힌 사연이 나온다. 조선 14대 임금 선조는 피란길에 수라상에 오른 ‘묵어’라는 생선을 맛보고 감탄해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전쟁이 끝난 후 궁궐로 돌아와 먹어보니 예전과 같지 않자 ‘도로 묵이라 하라’해서 도로묵(도루묵)이 됐단다. 어부들이 묵직한 그물을 끌어올렸는데, 값나가는 생선 대신 도루묵만 가득하자 실망해 ‘말짱 도루묵’이라는 표현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등 쪽은 황갈색을 띠고 옆구리와 배는 은백색을 띤다. 산란기인 11~1월이 제철이다. 노란 배에 터질 듯 가득 찬 알은 겨울철 별미로 인정을 받는 데 한몫한다. 알의 끈끈함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점액에 있는 콘드로이틴 등의 성분은 피부 탄력과 관절에 좋은 걸로 알려졌다. 칼슘이 풍부한데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적이다.▶수분이 풍부한 흰 살 생선으로 조림이나 찌개, 구이로 먹는다. 냄비에 납작하게 썬 무를 깔고 도루묵을 얹은 다음, 파 마늘 등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낸 찌개는 비린내가 거의 없는 데다 국물이 담백한 게 특징이다. 통통하게 알이 밴 도루묵을 석쇠 위에 올려놓고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구운 다음 입안에 넣으면 부드러운 살과 톡톡 터지는 알이 오감을 자극한다.▶도루묵은 최근 북한에서도 화제다. 북한 당국이 올해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1월8일)을 ‘민족 최대 명절’로 자축키로 한가운데 주민들에게 생일선물로 도루묵을 나눠줄 거란 소문이 나돌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도루묵 조업철을 맞아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비싼 값에 대량으로 사들였던 중매인들이 손해를 보는 중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도 도루묵 신세는 처량하기만 하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국방부 항의 전화

‘한민구 국방장관님!’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부처 업무 칼럼에 장관 실명(實名)을 썼다. 제목부터 끝까지 경어(敬語)로 갔다. 모두 의사 전달을 위한 꼼수였다. 국방부는 바위 같은 곳이다. 웬만해선 반응하지 않는다. 그게 국방부일 수도 있다. 수원 군 공항 이전 문제도 그랬다. 국방부를 탓하는 기사가 수없이 보도됐다. 하지만, 국방부는 속을 보이지 않았다. 별수 없이 선택한 ‘칼럼 기술’이 장관 실명과 경어 문장이었다. ▶보도 당일(12월 22일), 국방부 전화다. 전화기 너머 간부는 예의 따위는 생략키로 작정한 듯했다. “국방부를 나무라면 몰라도 장관님의 실명을 거론하면 어쩝니까.” 칼럼 속 ‘한민구 장관께서는 직무유기를 하고 계십니다’는 부분을 말하는 거였다. 이렇게 장관 실명 항의만 서너 번을 반복했다.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군 조직이다. 장관을 모시는 입장이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그래도 한 마디쯤 맞받아야 했다. “정부 부처가 욕먹는 건 괜찮고, 모시는 장관이 거론되는 건 안된다는 겁니까.” ▶법 조문에 근거한 항의도 있었다. “법 4조 3항은 안 보셨습니까. 해당 지자체와 설명회를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화성시(안산시)가 거부하고 있잖습니까. 방법이 있으면 실장께서 말해 보세요.” 내가 답했다. “3항이 합의입니까 협의입니까. 협의잖습니까. 그런데 시장 한 명이 반대한다고 10년 100년 두고만 보겠다는 겁니까.” 간부가 답했다. “그래서 화성시에도 얘기했습니다. ‘당신들이 참석하고 안 하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할 때까지는 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말미쯤엔 내가 이렇게 말했다. “국방부가 결론을 내야 합니다. 지금 지역이 혼란스럽습니다. 할거면 하고 말 거면 그만두고.” 간부가 조용하지만 분명히 말했다. “이전해야죠. 특별법은 이전하려고 만든 법 아닙니까. 다만, 이게 10년짜리 사업입니다. 정치인들 임기에 맞추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국방부)도 최선을 다해 풀어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항의 전화가 그렇듯, 그날의 전화도 격하게 시작해 웃으며 끝났다. ▶그리고 보름여 지났다. 엊그제 국방부가 화성시와 안산시에 공문을 보냈다. ‘설명회를 또 거부하면 서면으로 갈음하겠다’고 했다. 법 제4조(예비이전후보지 선정)로 넘어가겠다는 최후통첩이다. 돌아보면 그날 논쟁 속에 내비친 간부의 약속이 실행된 듯하다. ‘국방부가 손 놓고 있지 않다’는 항의도 입증한 것으로 보인다. 군(軍)에는 경직성이란 단점과 신속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정하면 빨리 바꾼다. 수원 군 공항 이전 업무엔 장점이 필요하다. ‘되든 말든’ 빨리 결판내야 지역들이 편해진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슬리포노믹스

잠은 보약이다. 일정시간 푹 자야 몸도 정신도 개운하고 하루 일과를 잘 소화해 낼 수 있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이 보약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다. 일상에 지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쓰러지듯 눕는다 해도 숙면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현대인들에게 숙면은 돈을 지불하고라도 얻고 싶은 가치가 됐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수면산업이 뜨고 있다.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등장했다. 편안한 잠자리와 숙면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니즈(needs)에 맞춰 다양한 수면 용품과 서비스가 기반이 된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초기 수면산업은 침대와 같은 단순 침구류나 불면증을 치료하는 수면제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엔 피트니스밴드와 수면센서, 수면 카페, 블루라이트 안경, 수면질환을 진단하는 수면다원검사 등 상품과 서비스 분야가 다양해졌다. 개인 맞춤 침구 슬립 코디네이터, 슬립 테라피스트, 수면컨설턴트 등도 등장했다. 미국과 일본은 1990년대부터 수면산업이 형성됐다. 미국은 성인 3분의 1이 수면장애에 시달리면서 수면시장 규모가 20조원에 이른다. 일본도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급증해 시장 규모가 6조원에 달한다. 한국도 최근 몇 년 사이 수면산업 규모가 2조원대로 성장했다. 수면산업의 성장은 불면증과 같은 수면장애 환자 증가의 영향을 받는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장애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5년 45만6천여 명으로 최근 5년간 41% 증가했다. 수면장애 관련 진료비도 매년 상승해 2012년 359억6천630만원이던 것이 2014년 463억4천590만원을 기록했다. ‘2014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성인 한국인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8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잠을 가장 적게 자는 나라로 평가된다. 이마저도 얼마나 양질의 잠을 자느냐가 중요하다. 수면장애를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스트레스 등을 받아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면 숙면은커녕 잠들기도 어렵다. 실업난에 허덕이는 청년층,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 경기 불황으로 얇아진 지갑에 신음하는 직장인들은 잠재적 수면장애 환자다. 나이가 들수록 깊은 잠을 못자는 중ㆍ장년층, 갱년기를 겪는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수면장애는 이제 단순한 질병을 넘어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잠 잘자는 것이 돈 버는 시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시민의 시대, 시민의 정부

지난 2일 오전 11시 수원역 2층 대합실에서 2017년 수원시 신년하례식이 열렸다. 신년하례식에는 염태영 수원시장을 비롯해 공무원, 시민단체 대표, 관내 22개 전통시장 상인회장, 수원시 예술단, 일반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수원시는 이날 ‘시민의 시대, 수원시민의 정부’ 원년을 선포했다. 염 시장은 신년사에서 “우리는 지난 연말 촛불시위에서 ‘시민이 곧 국가’라고 당당하게 선언했고 위대한 시민주권의 시대를 열었다”면서 “촛불민심은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오직 주권자인 시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권자인 시민의 뜻에 따라 탄생할 정부의 이름은 ‘시민의 정부’여야 한다”며 “수원시는 2017년 수원시민의 정부를 본격 추진한다”고 했다. 이어 “시민이 참여하는 정부는 시민주권이 모세혈관처럼 흐르고, 협동의 자세로 공동과제 해결에 힘을 모으는 포용의 정신을 배경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이 주인되는 수원을 만들기 위해 ‘수원 시민의 정부 기본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시민주권헌장인 자치기본조례 제정, 민주시민교육 강화, 아파트 공동체문화 활성화, 주민자치회 활성화, 민간 개방형 공직 공모제 등을 시행해 시민의 정부를 실현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신년하례식에선 각계 시민대표의 새해 소망도 들었다. 시청이 아닌,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간에서 시민과 함께 하는 신년하례식은 시정의 주인이 시민임을 알린 작지만 의미있는 행사였다. 민선 5기 수원시는 ‘사람이 반갑습니다’를 슬로건으로 시의 주인이 시민임을 이미 천명한 바 있다. 좋은시정위원회를 구성해 마을 만들기, 주민참여예산제, 도시정책시민기획단 등 시민과 함께 하는 시정을 이끌어왔다. 올해부터는 더욱 성숙해진 ‘수원 시민의 정부’를 추진할 방침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은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 불의한 권력과 재벌의 정경유착, 공적 시스템이 붕괴된 대한민국의 민낯을 지켜봐야 했다.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분노하며 촛불을 들었고, 작은 촛불은 횃불이 돼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강하게 주문했다. 우리는 국가의 주인이 시민임을 안다.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열어 나가기 위해선 시민 스스로 능동적 주체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시정에 참여해야 한다. 이는 시민민주주의를 한 뼘 더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수원시가 시민이 주인인 지방정부의 롤모델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개, 돼지, 소

새해, 어김없이 계획을 세웠다. 무려 7가지나 된다. 다이어트는 기본이다. 가족 여행도 있다. 또 하나가 한 달에 책 3권 읽기다. 야심 차게 처음 선택한 책은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모멘토 刊)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가 2011년 국내 발간한 베스트셀러다. 흥미로운 책 제목에 집어들었는데, 내용은 상당히 불편했다. 저자는 사람들이 같은 동물임에도 소나 돼지, 닭 등 ‘먹을 수 있는 동물’을 먹을 때 살아있는 그것들을 떠올리지 않고 섭취하는 사람들의 신념체계를 ‘육식주의(carnism)’로 명명한다. 이를 설명하면서 소와 돼지 등의 도축 현장을 적나라하게 전달하는데, 도통 한 문장을 읽어내려가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육식주의를 버리고 ‘채식주의를 시작해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그럼에도 책을 덮고 뒤돌아선, 먹을 수 있는 동물을 먹었다. 아니,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에 대해 저자는 설명한다. 많은 이들이 동물을 아끼면서도 먹는 것은 분명히 가치 기준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지점이다. 이 같은 불일치는 도덕적 불편함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 불편을 완화하는 세 가지 방법으로는 행동에 맞게 가치 기준을 바꾸는 것, 가치 기준에 맞게 행동을 바꾸는 것, 행동에 대한 ‘인식’을 바꿈으로써 그것이 가치 기준에 ‘맞는 듯해 보이게’ 만드는 것이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종류의 고기에 대해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동물 간 실질적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각 동물을 달리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동물을 먹을 수 있는지 결정하고 그것을 먹을 때 정서적 또는 심리적으로 불편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인식을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불현듯 그렇게 스스로 인식을 왜곡하면서까지 외면한 것이, ‘육식주의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당하지만 ‘원래 그런 것’이라며, 원칙에 어긋나지만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정당화한 것은 없었나. 상당한 불편함을 안긴 새해 첫 책은 나에게 또 하나의 목표를 세우게 했다. 주류, 이데올로기, 규범 등 상식과 보통이었던 것을 재인식해보기다. 만만치 않은 한 해가 될 듯하다. 류설아 문화부 차장

[지지대]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맨 처음을 의미하는 관형사 ‘첫’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첫 번째, 첫발, 첫눈, 마음 떨리던 첫 사랑 …. ‘첫’에는 도전과 미래, 열정의 무한 에너지가 있다. 새해도 마찬가지다. 흐르는 시간 속에 날짜가 지나 연도가 바뀌어도 살아가는 데는 별반 다를 게 없다.하지만 ‘첫’에 의미를 부여할 때는 많은 것이 변한다. 마음을 다잡아 행동과 습관이 달라져 삶을 변화시킨다. 돌이켜보면 10대에는 꿈과 패기로, 20대는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30대는 노련함으로 거침없이 달렸다.어느덧 40대를 지나니 설렘보다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보낸 시간이 소중한 추억과 어우러져 가슴 한편에 조용히 다가와 자리를 잡는다. 지난 병신년(丙申年)에도 중도 포기한 많은 다짐이 있었다.오죽하면 신년마다 떠오르는 사자성어 중 하나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일까. 그럼에도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맞아 ‘새벽을 깨우는 닭처럼 부지런하게 살자’ 결심한다. 올해도 개인적으로는 다사다난하겠지만 국가에 대선이라는 큰일이 있다. 교육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면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좌우하는 만큼 천년지대계, 만년지대계라 해도 과하지 않다.대선을 앞두고 18세 투표권에 또다시 불이 붙었다. 진보성향을 보이는 청년층의 특성을 놓고 여야 간의 해묵은 시각차 때문이다. 현 시국 탓도 있겠지만 투표 연령이 낮을수록 야권에 유리하다는 것은 선거판 정설임이 분명하다. 여당이 극구 반대할 만 하다.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18대 대선 결과로 대한민국 국격이 땅에 떨어졌다는 점이다. 권력을 맡기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자 몫이며 선택이다. 어제의 야당이 여당이 되고 오늘의 여당이 야당으로 바뀔 수 있다. 대선에서 연령은 종속 변수가 아니다. 그러기에 정치권의 ‘연령 공방’은 이제 끝을 내야 한다.정치(政治)란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정치학 대사전, 1975)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은 초심을 잃지 않고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날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새로워야 하는 이유다. 김창학 정치부장

[지지대] 94년 전 계란 수입

‘물가조절의 한 가지 방법으로 경성부에서는 계란 값을 내리게 하도록 하려는 바, 원래 계란은 그다지 일반에게 넓게 쓰이는 것은 아니나 식료품 중에 자양이 제일 풍부한 것으로 대체로 보아 일반에게 없지 못할 식료품인데…중국 등으로부터 수입되는 것도 실로 적지 아니한 터라… 수입세를 면제하는 것이 적당한 방법일 터인데… 일본서도 계란에 대하여는 재작년부터 수입세를 면제하였는 바 일본을 경유하여 조선으로 수입하는 것도 다소간 리익이 되리라.’ ▶1923년 1월 18일 동아일보 기사다. 제목은 ‘계란 수입세ㆍ값을 내리기 위하여’다. 당시 적지 않은 양의 계란이 수입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주요 공급처로 중국 청도(靑島)를 지명하고 있다. 기사의 시작은 ‘물가 안정’이지만 결론은 달라진다. 일본이 수입세를 면제해 싸니 일본에서 재(再) 수입하라는 권고가 담겨 있다. 그 통상 업무도 ‘총독부가 교섭한다’고 적고 있다. 일제가 조선을 ‘계란 소비처’로까지 삼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계란 수입세가 또 등장했다. 정부가 신선란 3만5천톤, 계란액, 계란가루 등 9개 품목 총 9만8천톤에 대한 수입을 허용했다. 관세율(기존 27%)을 0%로 낮추는 긴급할당관세를 적용키로 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이후 가격이 급등한 계란 값 안정을 위해서다. 이로써 신선란 3만5천톤(약 7억개)이 긴급할당관세의 적용을 받아 관세 없이 수입되게 됐다. 해방 이후 신선란 수입은 처음이다. ▶AI 발생 50일이다. 살처분된 가금류가 3천만 마리를 넘었다. 닭이 2천582만 마리로 가장 많다. 이중 계란을 낳는 산란계가 2천245만 마리다. 산란계 전체의 32.1%다. 계란 값이 이미 한 판(30개)에 1만원을 넘었다. ‘소고기보다 비싼 계란’이 됐다. 이나마 1인 1판으로 판매가 제한됐다. 조만간 해결될 가능성도 없다. 병아리가 산란 닭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적어도 6개월 이상 지금의 계란 파동이 이어질 전망이다. 사상 초유의 신선란 수입이 결정된 배경이다. ▶이번 계란 수입과 94년 전 계란 수입에는 차이가 있다. 그때의 명분은 물가 조절이었는데, 지금의 명분은 질병 대책이다. 그때의 결정 기관은 일본 총독부였는데, 지금의 결정기관은 대한민국 국무회의다. 그때의 속 뜻은 식민지 수탈이었는데, 지금의 속 뜻은 국민 생활 안정이다. 다만, 한 가지 사실만은 94년 전과 닮았다. 그때도 축산 농가는 무너졌고, 지금도 축산 농가는 무너졌다. 무너진 축산 농가에는 1923년 일제 침략이나 2017년 AI 침략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가히 역대급 참상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욜로(YOLO)

지난해 방송된 tvN의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편. 배우 류준열이 홀로 아프리카를 여행 중인 한 젊은 여성에게 혼자서 아프리카를 여행하다니 대단하다고 하자, 그녀가 “욜로(YOLO)”라고 답했다. 류준열의 핸드폰에 ‘You Only Live Once’라고 썼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뜻이다. 욜로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생겨난 신조어다. 2011년 인기 래퍼 드레이크의 노래에 등장하며 ‘인생은 한 번뿐이니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고 후회없이 즐기며 사랑하고 배우라’는 의미가 재조명되면서 젊은층이 즐겨 쓰는 유행어가 됐다. 실제로 해외에 배낭여행객이 주로 모이는 게스트하우스에는 ‘헬로(Hello)’나 ‘굿럭(Good Luck)’ 대신 ‘욜로’ 인사가 유행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안인 ‘오바마 케어’를 홍보한 영상에도 ‘욜로’라는 말이 등장했다. 세계적인 여행서적 론리 플래닛은 ‘yolo’를 펴내며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 기간 동안에 해볼 수 있는 일들을 실으면서 “단순한 여행을 뛰어넘어 모험으로 가득 찬 삶의 환희를 느껴보자”고 강조했다. ‘욜로’는 남이 아니라 자신, 미래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태도다. 여행이나 자신만의 취미생활에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쓰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게 욜로 열풍의 한 단면이다. 매년 소비트렌드를 예측하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욜로’를 올해의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김 교수는 “욜로와 관련한 소비는 단순히 물욕을 채우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활동을 넘어 자신의 이상향을 실천하고 구현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저성장 고착화로 장밋빛 미래 기대감이 옅어지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불안한 미래에 투자하기 보다 후회없이 현재의 인생을 즐기자는 게 욜로다. 일부에선 욜로족이 현실 즐기기에 집중하다 보니 허세적 소비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영국의 한 대출업체가 지난 9월 욜로족 1천명(18~30세)을 대상으로 ‘저축·투자 여부’를 묻자 전체 60%가 “미래 대비 없이 모두 쓴다”고 답했다. 미리미리 대신 그때그때의 욕구와 관련된 소비활동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지금을 즐겨라’라는 카르페 디엠이 하나의 삶의 태도에 대한 격언이라면, 욜로는 한 번뿐인 인생을 스스로 디자인해 살자는 현재 지향성의 라이프스타일이다. 하루하루에 충실하자는 메시지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은 희망의 주문이기도 하다. 욜로!!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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