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잡영’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은 57세 때 지금의 도산서원(陶山書院) 자리에 서당을 짓기 시작해 61세에 완성한 뒤 제자들을 양성했다. 퇴계는 57세 때부터 66세까지 10여년 간 지은 시(詩)들 가운데 서당 안팎의 모습을 읊은 40제(題) 92수(首)를 뽑아 자필로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정리했다.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퇴계가 술을 마시며 살아온 지난 날을 후회하는 인간적 면모가 ‘도산잡영’에 담겨 있다. “넘실넘실 흘러가는 저 이치 어떠한가(호호양양리약하·浩浩洋羊理若何) / ‘이와 같구나’ 일찍이 성인께서 탄식하셨네(여사증발성자차·如斯曾發聖咨嗟) / 본래부터 도의 본체 이것으로 볼 수 있으니(행연도체인자견·幸然道體因自見) / 공부 중간에 끊어지는 일 많지 않게 하려므나(막사공부간단다·莫使工夫間斷多)” ‘관란헌(觀瀾軒)’이란 제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다. 28자의 짧은 한시지만 유학 경전의 가르침이 글마다 녹아 있다. ‘관란’이란 ‘여울목(瀾)을 보다(觀)’는 뜻이다. ‘맹자’에 “물을 구경하는 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여울목(瀾)을 보아야(觀)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흐르는 물을 보고 “이와 같구나” 탄식한 성인은 공자다. ‘논어’ 자한(子罕)편에서 공자는 흐르는 시내를 보며 말했다. ”흘러간다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나!” 퇴계는 ‘물러나는(退) 시내(溪)’로 은거해 시냇가에 집을 짓고 물을 바라보며 인생을 생각했다. “물이 끊어지지 않고 흐르듯 공부도 중간에 끊어지는 일이 많지 않게 해야 한다” “좋은 밤 함께 즐겁네, 좋은 손님들 찾아오니 / 산봉우리 넘어 불러 탁주잔 기울여 마시네 / 관란헌에 셋이서 솔밭처럼 앉아 그윽한 마음 열고 / 다시 난초 배에 올라 달놀이 하다 돌아 왔네” “재주 없고 덕망 없어 어리석어졌는데 / 세상일에 대응해감에 어찌 글자 없는 비석 필요하리 / 먼지 쌓인 책상 앞에서 늘그막에 지혜 구하고자 하나 / 눈에 뿌연 안개 끼어 서로 헛갈림이 괴롭네” ’물러나는 시내’로 물을 보며 시를 읊은 퇴계의 생애가 새삼 숭고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일본의 야욕

일본 방위청이 중국에 대한 경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가까운 사키시마열도의 이시가키섬이나 미야코섬에 1개 중대 약 200명 규모의 육상자위대를 주둔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도쿄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각의에서 결정된 ‘신방위계획대강’에서 “중국군의 근대화와 해양활동 범위 확대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처음으로 중국 주시(注視) 필요성을 명기함에 따라 2009년까지 계속되는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의 하나로 나하에 주둔 중인 1천500명 규모의 제1혼성단을 2천명 규모의 여단으로 증강키로 결정한 바 있다. 이 부대가 여단으로 격상되면 늘어나는 2개 중대 가운데 1개 중대는 나하에 주둔하고 나머지 1개 중대는 이시가키섬이나 미야코섬에 배치하겠다는 것이 방위청의 계획이다. 방위청은 현재 미야코섬에는 레이더기지를 운영하는 항공자위대 경비대만 주둔하고 있어 억지력을 갖춘 실전부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대만으로부터 불과 100㎞ 떨어진 요나구니섬은 1996년 중국이 대만 근해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할 때 섬 주민들이 자위대를 배치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중국을 자극할 가능성이 커 후보지에서 제외됐었다. 방위청은 또 오키나와 방위 강화책의 하나로 나하기지의 F4 전투기를 항속거리가 길고 공중급유가 가능한 F15 전투기로 교체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방침은 가속화되고 있는 일본의 보수·우경화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독도 문제와 마찬가지로 영유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도쿄에서 남동쪽으로 1천73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키노도리는 밀물 때면 수면 아래로 잠기는, 독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암초에 불구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바다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오키노도리 주변에 콘크리트 장벽을 구축, 이 곳을 섬이라고 우기며 배타적 경제수역(EEZ) 기점으로 삼겠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중이다. 상대국을 가리지 않고 영토 확장에 혈안이 돼 있는 일본이 과거와 같이 사고를 칠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다. 한국이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운 것이 몹시 마땅치 않다./임병호 논설위원

李仲燮

반 아이크와 얀반 아이크는 14세기 중엽 네덜란드의 형제 화가다. 북유럽의 르네상스를 개막했다. 이들의 대작으로 꼽히는 ‘신비의 어린 양’은 형이 그리다가 죽자 동생이 이어받아 6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건축가로 로마 베드로 성당의 걸작을 남긴 미켈란젤로는 또 기독교미술의 거장이다. 그의 최후 조각품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89세의 작품이다. 죽기 엿새 전까지 이 조각을 위해 대리석상을 팠다. 고령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인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최후작이기 보단 미완성의 유작이라 할 수 있으나 큰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 화가 들라크로아의 작품은 처음엔 ‘술취한 사람이 회화의 물통을 캔버스에 부딪혀 빗자루로 휘둘러 그린 것’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격한 색채, 자유 분방한 화풍은 결국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의 대표적 화가로 추앙받았다. 1863년에 죽은 후다. ‘만종’(晩鐘) 등을 남긴 농민화가 밀레의 작품이 제대로 빛을 보게 된 것도 그의 사후다. 물랭 루즈의 석판화가 높이 평가된 것은 1901년 36세로 요절한 뒤다. ‘게르니카’는 1937년 스페인 내란 때 나치 독일이 무차별 폭격을 가해 2천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낸 참사를 추상화 한 20세기 최대의 화가 피카소 작품이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북부 소도시로 포격이 가해졌던 지명이다. 이 그림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돌아간 것은 1981년이다. “스페인에 민주화가 이룩되면 돌려주라”는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 유언에 따라 그가 죽은지 6년만이다. 대향(大鄕) 이중섭의 그림이 그의 일본인 부인 등 유족들에 의해 바다 건너와 국내에서 높은 가격으로 경매됐다. 유족들은 ‘이중섭 타계 5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소장하고 있던 작품 수점을 국내 미술시장에 내놨다. 그중 ‘아이들’(새로 24㎝ 가로 19㎝)은 3억1천만원에 낙찰됐다. 대향의 그림은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굵은 선으로 대담하게 시도한 단순화 화풍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평양에서 월남해 6·25동란을 겪는 동안 대구에 살면서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다방에서 담뱃갑에 소나 인물 등을 그리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1956년 마흔의 나이로 타계했다. 천재 화가는 생전에 고생을 하고 천재 작품은 사후에 빛을 뿜고 있다. /임양은 주필

서민의 봄은 언제?

정부는 올 1분기(1~3월)부터 경기가 완만한 회복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올 들어 경기선행지수와 소비자기대지수 등이 반등하는 모습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지방경제는 경기회복의 조짐을 실감하지 못한다. 수출기업과 대형 유통업체 상승세, 내수기업과 재래시장 하락세 등 양극화 현상은 있으나 전반적으로 지방경제는 아직도 거의 빈사 상태다. 이런 가운데 업종별 격차가 또 있다. 일반적으로 의류 등 장기성 소비품목은 더 울상이다. 그래도 좀 낫다는 것이 음식점 같은 단기성 소비 품목이다. 돈이 궁한 판에 옷 같은 건 입던 것을 더 입게 마련이지만, 먹는 것은 당장 먹지않고는 배기지 못하므로 기왕이면 기호성을 찾는다. 하지만 이도 상대적 비교일 뿐 음식업도 대체로 죽을 쑨다. 수원 인계동 먹자골목은 유명한 음식업 단지다. 전에는 밤만 되면 인파가 넘쳐났던 곳이다. 지금은 낮에도 한산할 뿐만이 아니라 밤에는 도대체가 행인들 보기가 귀하다. 시야에 들어오는 행인을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다. 날씨가 풀리면 좀 달라지겠느니 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상인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행인이 없는 판에 손님이 있을 턱이 없다. 서민들은 그저 뭐니뭐니 해도 서로 장사가 잘 되어 돈이 풀려야 살기가 나아진다. 경기가 지금처럼 얼어붙은 채 녹을 줄 몰라서는 서민사회가 각박하다. ‘고유가, 환율·주가 하락세 쏟아져 반짝 경기로 끝나나’ 이는 엊그제 경기일보 1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서민들은 체감하지 못한 정부 발표의 반짝 경기지만 이마저 멀어져가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깝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내놓은 가게 푯말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장사가 안 되어 내놓은 가게를 누군들 선뜻 인수하기가 꺼려 빈가게가 늘어만 간다. 계절은 봄 기운이 완연하다. 계절의 봄은 어김없이 왔는 데도 서민의 봄은 멀어 아직 한 겨울이다. 잘 먹고 잘 살면서 말만 앞세우는 위정자들은 서민의 이런 절박한 실정을 모른다./임양은 주필

혼인과 결혼

혼인(婚姻)이나 결혼(結婚)이나 같은 말이지만 다른 데가 있다. 결혼은 원래 일본어다. 그들 말로는 ‘개콘’이라고 한다. 혼인은 원래의 우리 말이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을 낳은 환웅(桓雄)과 웅녀(熊女)의 결합을 원문은 ‘혼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혼했다’고 돼 있지 않다. 부계(친족), 모계(외가), 처가(인척)를 가리켜 삼족(三族)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처가인 인척은 혼인에 의해 인척관계가 성립된다. 이러므로 ‘결혼=인척’보다는 ‘혼인=인척’으로 해석하는 것이 논리상 맞다. 법률상으로도 ‘혼인’이라고 하지 ‘결혼’이라고 하지 않는다. 민법 제3장 2절 혼인의 성립(807조) 조항부터 장가들고 시집가는 남녀의 부부관계에 많은 조문이 나온다. 그 조문의 모든 표현이 다 ‘혼인’이라고 하지 ‘결혼’이란 어휘는 단 한마디도 없다. 법률혼 성립을 설정하는 부부관계의 신고 역시 법률은 ‘혼인신고’라고 하지 ‘결혼신고’라고 하지 않는다. 이토록 순수한 원래의 ‘혼인’이란 말 대신 ‘결혼’이란 말이 외래어로 생활화 된 것도 따지고보면 일제 식민지 통치의 잔재다. 혼인식이라고 하면 구식혼례고, 결혼식이라고 해야 신식혼례인 것 처럼 여겼던 관념이 전해져 결국 고착화된 게 ‘결혼’이란 보편적 용어다. 지금은 거의 신식혼례를 올리는 가운데 지극히 드물게 구식혼례를 올리면서도 혼인식이라 하지 않고 무조건 다 결혼식으로 표현한다. 국어사전에도 ‘결혼’이란 단어가 우리 말로 나와 있긴하나 한 번 생각해 본다. 되도록이면 원래의 우리 말로 ‘혼인’이란 말을 쓰는 새로운 인식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결혼청첩장’이기 보단 ‘혼인청첩장’이라고 적힌 청첩장을 받아보고 싶다. ‘결혼’이란 말 보다는 ‘혼인’이란 말이 더 순수한 정감을 갖는다. 새 봄이 성큼 다가선다. 혼인이 많은 계절이다. / 임양은 주필

독도의용수비대

‘독도의용수비대’는 독도에서 조업하던 울릉도 어민들이 일본 순시선에 쫓기는 등 일본의 독도침략이 계속되자 어민과 독도를 지키기 위해 1953년 4월 26일 결성된 민간 수비대다. 당시 울릉도 주민이었던 홍순칠(1929~1986) 대장을 비롯, 6·25 전쟁에 참전했던 젊은이 33인으로 결성됐다. 이어 그해 6월 28일부터 7월1일까지 독도에 무단 상륙한 일본인을 몰아내면서 일본 영토 표지를 철거했고, 독도의 동도 암벽에 ‘한국령(韓國領)’을 새겼다. 이듬해 8월에는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오키호와 총격전을 벌이는 등 1956년 12월 경찰이 독도방위 임무를 떠맡기까지 3년 8개월 간 독도 지키기의 선봉에 섰다. 일본 전투기가 다가올 때는 울릉도에서 실어온 큰 나무에 검은 칠을 해 마치 대포처럼 보이며 위협하기도 했다. 보급품이 떨어져 며칠씩 굶는 것은 다반사였고 빗물을 받아 마시며 연명했다. 홍순칠 대장은 고종의 칙령을 받아 울릉도로 이주한 홍제현의 손자로 6·25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제대한 용사였다. 홍 대장은 “독도는 우리 땅이니 절대 왜놈들이 얼씬 못하게 지켜라”는 조부의 유언을 실천에 옮긴 의혈청년이었다. 홍 대장은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 부산임시청사를 다니며 독도수비대 창설을 건의했으나 성사가 안돼 울릉도 주민과 참전용사 33인을 이끌고 독도점유를 강행하였다. 독도의용수비대 33인 중 홍 대장은 1986년 척추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현재 12명이 생존해 있는데 16일 일본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를 통과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정부가 일찍이 독도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지금의 영토분쟁은 없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6·25 전쟁 직후, 한국의 혼란을 틈타 독도를 일본이 점령했을 때 일본인들을 몰아내고 영토를 사수했던 독도의용수비대원들 중 생존자 7~8명은 지금 거동도 못하는데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가는 처지다. 독도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겠다는 것을 말리지는 않지만 우선적으로 어렵게 사는 수비대원과 유가족을 돕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50년 전 그때 만일 수비대원들이 독도를 못지켰다면? 수비대원들의 애국심과 용맹이 생각할수록 훌륭하다./임병호 논설위원

문예진흥기금지원 후유증

2005년도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진흥기금 집행을 문제 삼기 위해 구성된 한국예총경기도연합회(경기예총)의 비상대책위원회가 그제 열렸다. 이보다 앞서 경기예총은 2005년 경기문화재단 공모사업이 ‘무원칙 지원정책’이며 ‘경기예총 죽이기’라고 주장하고 ▲개정된 지원공모사업이 단체나 개인을 동일시하여 40년 역사의 경기예총 정체성을 흔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경기예술세계를 전혀 모르는 심사위원들의 구성으로 지역 활성화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역연고도 없고 활동마저 전무한 단체(자)에게 지원금을 배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2005년도 지원사업에 특혜성 이의가 제기되면 재심의할 용의는 있는가 등 7개 항목의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7개 항목 중 복잡한 신청서류 제출 요구 부당, 높은 지원상한액 책정 근거 해명 등은 설득력이 부족하지만 이 질의에 대해 문화재단은 ▲양적인 면보다는 질적인 면을 우선시했다 ▲장르 중심에서 사업의 의미를 추구하는 목적별 지원체계로 변화시켰다 ▲지역안배정책에서 자유경쟁체제로 변화시켰다 ▲모든 사업과 특정단체에 특화된 별도의 입장이나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역사정에 밝은 심사위원의 경우 문화예술인과의 친소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기준과 배치된다고 판단되는 지원대상자는 사실 확인 후 지원에서 제외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경기예총 비대위는 지원 대상자의 정보 공개를 요구키로 하고 자체적으로 밝힌 부적합한 지원 단체· 개인 등의 활동상황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한편 11개 부문 지원에 일관성이 없는 점, 심사위원 위촉 문제점, 일부분 재심의 요구 등을 문화재단측에 통보키로 했다. 경기문화재단이 그동안 예술문화인들을 지원해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올해의 경우, 도내 시·군 예총지부나 문협지부 등 경기예총 회원단체와 기타 예술단체의 지원을 거의 줄였거나 형평에 맞지 않게 선정한 것을 놓고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경기문화재단은 지원부서이지 직접사업기관이나 관리·감독기관이 아닌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화예술계에 군림해서도 안 된다. 경기예총이 지적한 내용을 간과하지 않는 경기문화재단의 변화를 지켜보고자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새 지폐 인물

우리나라 지폐에 인물이 들어간 것은 1950년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있는 1천원권이 처음이었다. 이후 1960년에 세종대왕이 1천환과 500환에 등장했다가, 1973년부터 1만원권으로 자리를 옮겼고 1972년 율곡 이이(5천원권), 1973년 이순신 장군(500원권), 1975년 퇴계 이황(1천원권)이 등장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이씨 성(姓)을 가진 남자들이어서 편중이 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 위조지폐가 늘어나고 10만원권 발행 찬반 논란이 일면서 한국은행이 새로운 지폐 도입을 추진 중인데 새 지폐에 들어갈 역사적인 인물이 가장 큰 관심사다. 10여 명이 거론되는데 광개토대왕이 단연 으뜸이라고 한다. 한 인터넷 포털이 최근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지폐 인물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광개토대왕이 53.8%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김구(19.8%), 안중근(7.7%), 장영실, 유관순, 신사임당 순이었다. 이는 4년 전 한국은행 조사와 상당히 다른 현상이다. 당시에는 세종대왕이 1위였고 단군, 이순신, 김구, 유관순, 광개토대왕, 신사임당, 안중근, 이황, 이이 순이었다. 그동안 지폐 인물 교체 얘기가 나올 때 마다 금융권에서는 김구(10만원권)와 정약용(5만원권), 신사임당(5천원권), 장영실(1천원권) 등을 주로 거론해 왔다. 여성계에서는 신사임당을, 과학기술계는 측우기를 발명한 장영실을 추천했고, 유관순 열사나 안중근 의사 등 독립운동가를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불과 몇년 사이에 이렇게 바뀐 이유는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왜곡하고,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데 대한 반중·반일 감정으로 풀이된다. 앞면에는 어떤 인물을 넣든 상관없지만 뒷면에는 광개토대왕비, 독도, 고려청자, 팔만대장경, 금속활자 등 문화재를 함께 넣자는 주장도 많이 나왔다. 새 지폐가 나오기까지는 2 ~ 3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한데 그때 가서는 여론이 또 어떻게 바뀔는지 모르지만 최근의 한·중, 한·일관계를 생각하면 만주벌판을 호령하고 왜군을 물리치던 광개토대왕과 광개토대왕비, 이순신장군과 독도를 지폐에 넣었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김희선 의원

김희선 의원(62·열린우리당)하면 생각나는 게 그가 주장한 독립군 가계 논란이다. 독립운동가인 김학규 장군의 손녀를 자칭,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국회내 ‘민족정기를 세우는 모임’의 기세를 한껏 돋우었다. 지난해 7월의 일이다. 그러나 김 장군은 안동 김씨인 데 비해 김 의원은 의성 김씨로 본관이 다른 사실이 밝혀져 가짜 여부의 진위 논란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어느 벤처기업이 자신의 서울 동대문구 갑지구당 사무실 인테리어 공사를 해준 돈 3천만원을 회계처리하지 않아 말썽이 됐었다. 김 의원은 이에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해 회계책임자만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이의 수사과정에서 김 의원이 동대문 구청장 후보 아무개로 부터 당의 공천 대가를 전제로 1억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수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이때 본인은 차용증을 써주고 1억원을 빌린 것이지 공천 대가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몇차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온 김 의원의 구속영장 청구 내용에 적힌 증거인멸 기도가 충격이다. 1억원을 준 아무개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측근을 시켜 처음엔 돈을 건넨 자체를 부인하도록 종용했으나 뜻대로 안 되어 측근이 빌려 쓴 것으로 주장했다는 것이다. 또 측근은 그 아무개의 검찰 출석을 막기 위해 숙식을 같이 해가며 계속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는 것이다.(이 대목 역시 본인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며 부인했다) 문제는 그 아무개로 부터 받은 돈이 1억원 보다 많은 2억1천만원임이 계좌추적 등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검찰은 돈을 받은 단계별 정황을 구분하여 김 의원을 배임수재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런데 영장이 청구된 날인 바로 지난 14일 김 의원은 열린우리당 당사에서 가진 반부패 서약식에 참석, 서명서류를 들어 보이며 애써 미소 지었다.(보도사진) 김 의원의 미소는 과연 무슨 뜻이었을까. / 임양은 주필

독도

일본은 광란의 군국주의로 부활하고 있다. 제2차대전 전후 세대인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일본 사회를 이렇게 이끌고 있다. 조선 침략 및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중·일전쟁의 발발 책임을 중국에 떠넘기고, 그들이 말하는 대동아전쟁(2차대전)을 영웅시하는 등 자신들 선대(先代)의 죄업을 사죄하기는 커녕 권위화하기에 바쁘다. 자위대를 정규 군대로 개편, 핵무기급으로 중무장하고 전쟁 포기를 선언한 헌법을 뜯어고쳐 전쟁을 합헌화하는 개헌을 열심히 뜸들이고 있다. 이에 정부의 대일 자세는 너무 뜨듯미지근 하다. 일본 대사가 서울 복판에서 외신기자 회견을 갖고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고 우겨도 방관만하고 있다. 정부의 ‘조용한 해결방침’이란 곧 굴복이다. 이러다가는 날로 소리 높이는 일본인들의 목청이 기정 사실화 할 수가 있다. 그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린다. 독도는 휴전선과 같은 작전지구가 아니다. 후방의 외딴 섬이다. 도대체가 일본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독도 방문을 제한하는 것 부터가 말이 안 된다. 국민이 자기 나라 땅도 마음대로 갈 수 없게 제한하는 것은 여행의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다. 독도 관광 등 방문을 자유화하여야 한다. 현지 사정을 고려하는 인원 및 일정 조정은 안전상 필요하겠지만 독도 여행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개방돼야 한다. 자국민의 방문을 원칙적으로 불허해서는 더이상 우리나라 땅이라 할 수 있는 실질 명분을 살리기가 어렵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과를 요구한다”면서 “이상한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사과를 해놓고 또 다시 사과해야할 짓을 되풀이 하는 게 그들이다. 우리가 거듭 거듭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성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전전(戰前) 일본을 꿈꾸는 망상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우기는 강변이 일본의 위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부의 대일외교에 새로운 전환을 촉구한다. /임양은 주필

전기 북송

수풍발전소는 평북 삭주군 청수읍 수풍리 압록강 하류에 있는 발전소다. 신의주와 가까워 통상 신의주 수풍발전소 라고도 했다. 1937년에서 1944년 사이에 세운 이 발전소는 최대 발전량이 70만㎾에 이르러 당시엔 동양 최대 규모로 꼽혔다. 만주와 공동 출자로 건설되어 전기를 절반씩 나눠 공급했다. 이렇게 수풍발전소 발전량의 절반만 가지고도 한반도 전력 수요를 감당했다. 1948년 5월 북측은 38선이 생기고도 3년 동안 남쪽에 공급해 온 전기를 갑자기 일방적으로 끊었다. 당시 남쪽엔 ㈜조선전기가 발전을 했으나 지극히 미미해 95.6%의 전력을 수풍발전소 송전에 의지했었다. ㈜남선전기가 있었으나 발전이 아닌 배전업무만 하였고 ㈜경성전기는 서울시내 전차운행이 주된 사업이었다. (이 전기 3사가 1980년 통합되어 국책회사로 만든 것이 한국전력주식회사다) 북측 단전은 남쪽의 산업전력은 물론이고 가정 수요까지 치명적 타격을 안겨주어 일반 가정은 낮에는 아예 전기공급이 안 되고 밤에도 초저녁만 잠깐 송전해주곤 했다. (기관장 등 고위 관료 집만 ‘특선’이라고 하여 24시간 배전됐다) 남쪽 전기가 이번 주에 개성공단으로 보내진다. 남북간 단전 57년만에 1만5천㎾를 예전과는 반대로 북녘에 송전되어 개성공단 국내업체에 공급된다. 비록 북녘 가정과 산업체엔 보내지는 게 아니지만 전기의 역류는 금석지감을 실감케 한다. 광복 당시엔 북쪽 중화학공업과 사회간접자본 분야가 남쪽을 훨씬 능가했다. 남쪽이 북녘을 추월한 것은 제3공화국 들어 시작된 산업화로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부터였다. 지금의 북쪽 발전량은 196억㎾h로 남쪽 발전량 3천224억㎾h의 6%에 지나지 않는다. 57년 전 수풍발전소 전력을 단전하던 그 무렵과 정반대의 상황이 됐다. 압록강 수풍발전소 또한 온전하지 못했다. 북쪽이 전력난을 겪는 이유는 낙후된 시설에도 원인이 있지만 수풍발전소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데 기인한다. 1948년 10월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수풍발전소 시설을 몽땅 뜯어갔다./ 임양은 주필

해수담수화용 원자로 ‘스마트’

물 부족은 세계적 문제다. 지구 표면은 70%가 물로 덮여 있으나 대부분이 바닷물이고 우리가 쓸 수 있는 물은 전체의 0.0075% 뿐이다. 현재 세계 인구 중 3분의 1가량이 심각한 물 부족 상태에 처해 있다. 한국도 유엔이 분류한 물 부족 국가다. 그러나 2002년 초 한국원자력연구소가 바닷물을 민물(담수)로 바꾸는 원자로 ‘스마트(SMART)’의 기술개발을 완료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부터 안정성을 공인받은 이 기술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관심을 받아 왔다. 우리 고유의 모델인 스마트는 1997년부터 5년간 306억원의 지원을 받아 기본 개념 설계를 마친 후 현재 기술 검증 단계에 있다. 원자로 하면 보통 전기를 생산하는 용도로 쓰이는데 스마트는 해수 담수화용이다. 해수 담수화용 스마트는 중소형 원자로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안정성도 높다. 보통 원자로는 핵연료가 든 압력용기, 증기발생기, 가압기 등이 배관으로 연결돼 있지만, 스마트는 모든 장치가 압력용기 안에 들어가 일체형이라 불린다. 스마트 1기(열 출력 330MW)로 인구 10만 명 규모의 도시에 하루 전기 10만KW와 함께 담수 4만t을 공급할 수 있다니 물 부족 해결에 지대한 역할을 할 게 분명하다. 기술 실증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 칠레 등에서 수출 제의를 받고 있어 전망이 더욱 밝다. 과학기술부는 스마트 1기 수출 시 3천억원의 수입을 예상하고 있다. 지금 원자력연구소는 2002년 7월부터 스마트 기술을 검증하기 위해 원래의 5분의 1 규모로 줄인 파일럿플랜트( 열 출력 65MW)의 건설을 추진 중이다. 수출 상대국이 신뢰를 갖기 위해서는 파일럿플랜트 건설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까지 들어갈 4천388억원의 재원 마련과 내수 뒷받침이라는 문제가 있다. 국내에서 먼저 스마트가 충분히 활용돼야 외국에서 스마트를 도입하려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스마트는 ‘바닷물을 인류의 식수로 만드는 우리의 기술’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대형 국가연구개발 실용화 사업이다. 정부의 예산 투입과 국민의 협조는 지극히 당연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바보론

‘호도(糊塗)’는 우리말로 ‘바보’라는 뜻이다. 그런데 중국 가정에서는 우리가 보통 ‘가화만사성’이니 ‘소문만복래’니 하는 글귀를 좋아하는 것 처럼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을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다고 한다. 판교 정섭(1693~1765)이 지은 ‘난득호도경’도 있다. 노자(老子)가 이미 ‘기교가 뛰어나면 어리석어 보이고 훌륭한 말일수록 어눌하게 들린다(大巧若拙 代辯若訥)’고 했으니 어리숙함이 지혜와 맥이 닿았다고 믿어온 역사는 오래다. 공자(孔子)도 ‘군자는 덕이 성대해도 겉 모습은 어리석은 자와 같다’하였고, 소동파(蘇東坡)역시 ‘참으로 용맹한 사람은 겁쟁이처럼 보이고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어 보인다’고 말했다.그러니까 덜 되 어리숙한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바보 같이 구는 것을 처세의 중요한 방편으로 여긴 것이다. 단순한 것이 자신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아예 ‘얼굴을 두껍게 하여 술 취한 척, 잘 안들리는 척, 미친 척, 죽은 척 하여 상대가 어찌할 도리가 없게 만들어야 한다. 중국 위(魏)·진(晉) 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명인 원적(阮籍)에게 딸이 있었다. 위나라의 권신 사마소(司馬昭)는 그 딸과 자신의 장자 사마염(司馬炎)을 혼인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원적은 사마소 같이 권력에 빌붙어 위세 부리는 사람과 사돈지간이 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땅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던 그는 매일 술에 취해 지냈다. 두 달 동안 찾아갈 때마다 술에 취해 있는 원적을 본 사마소는 혼사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생각을 접었다. 이 일로 앙심을 품은 사마소는 원적에게 국사에 대한 의중을 떠본 후 그걸 빌미 삼아 처벌할 계략을 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꼬투리 잡으러 갈 때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입 한 번 잘못 열었다가는 목숨 보전도 어려운 난세에서 술은 처세의 방편 정도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권력의 암투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광인인 척, 주정뱅이인 척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 주위에 원적 같은 사람이 도처에 있을 터이니 술 취했다고 사람 함부로 볼 일 아니다. 술 많이 먹는 사람의 심사도 알아줘야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시화호 조력발전소

조력발전(潮力發電)은 조수(潮水)간만을 이용한 수력발전 방식으로 조석(潮汐)발전으로도 불린다. 조수의 규칙적인 운동을 이용하여 조수의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어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즉 만조의 낙차가 큰 장소에 제방을 설치하고 만조시 바닷물을 저수지에 저장하였다가 간조 시 방류하여 발전한다. 조력발전은 간만의 차가 큰 지역으로 한정되고, 조위(潮位)의 변화가 1년 동안 균일하지 않으며 조위가 일정한 시간대에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과 시설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에너지원이 고갈될 염려가 없고 공해의 원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장차 유망한 발전방법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세계적인 조력발전소는 프랑스 랭스강 어귀와 러시아의 키스라야, 캐나다의 아나폴리스 등이 있는데 현재 최대는 랭스강 조력발전소로 규모가 240MW(메가와트)급이다. 그러나 한국수자원공사가 2009년 5월 가동을 목표로 추진중인 시화호 조력발전소가 완공되면 254MW로 앞으로 세계 최대규모가 된다. 시화호 조력발전소가 완공되면 하루 두 번 밀물을 이용해 인구 50만 도시 공급 규모인 연간 5억5천200만KW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이 조력발전소가 가동되면 연간 86만2천배럴의 유류 대체효과와 15만2천t의 이산화탄소 배출저감 효과가 기대된다. 수자원공사는 조력발전을 시화호 주변 안산지역에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화호는 1994년 방조제가 완공되기 전까지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어족자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방조제 공사가 끝나면서 수질이 나빠져 더 이상 물고기가 못사는 죽음의 호수가 됐다. 결국 물막이 공사 7년만인 2001년 2월 정부는 담수화 걔획을 포기하고 수문을 열어 담수호를 바다로 흘려보냈다. 지금은 바닷물이 시화호로 드나들면서 갈매기, 도요새 등 철새가 날아 들고 물고기들도 이 곳을 다시 찾으며 이전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환경 명소로 변했다. 1967년 가동된 프랑스 랭스강 조력발전소는 청정에너지 생산 기능뿐만 아니라 댐 주변지역이 관광지로 조성돼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시화호 조력발전소도 이와 같을 것으로 기대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대마초

삼실로 짠 피륙을 삼베라 하고 마포(麻布)라고도 한다. 지금은 삼베가 무척 귀하지만 40~50년 전엔 흔해빠진 게 삼베였다. 시골에서 없는 집 사람의 여름철 잠방이는 으레 삼베였으므로 옷감을 자급자족하기 위해 그만큼 밭에 많이 재배했다. 삼에서 베를 짤 실을 뽑기 위해서는 먼저 삼 줄기인 삼대를 쪄야 한다. 드럼통을 세로로 절단한 통에 삼대를 넣어 삶으려면 물이 많이 들므로 동네 개천에서 삶고, 또 낮엔 농사일을 하고 초저녁 여가를 틈타 틈새로 하는 게 삼 찌는 일이다. ‘나 어젯밤에 도깨비를 봤다’는 말은 그 무렵 삼꾼들 입에서 가끔 나온 말이다. 자정무렵까지 삼을 찌고 집에 돌아가다 보니 ‘테트라히드로카나바놀’(THC)에 취해 환각작용이 일어나곤 한 것이다. 마취 물질인 THC는 원래 삼의 잎과 꽃에 주로 들어있지만 하도 많은 삼대를 찌므로 이같은 일시적 중독현상을 나타내곤 했던 것이다. 대마초는 삼의 잎이다. 하지만 그 당시엔 삼 잎을 흡연할 줄 몰랐다. 설령 흡연했다 하여도 삼대를 무더기로 찌는 것과는 달리 심한 환각작용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군락(群落)을 이룬 삼 잎은 THC성분이 희미하기 때문이다. 요즘 ‘대마초’로 불리는 삼 잎은 산간에 한 두줄기씩 띄엄 띄엄 여러 장소에 심은 것이다. 이를 ‘과부 삼’ ‘홀아비 삼’이라고 하는데 이런 삼 잎이라야 THC성분이 강하게 농축된다. 연예단체 일각에서 대마초 흡연의 합법화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심히 당치않다. 중독성 환각작용이 극심한 대마초 흡연은 개인의 취향과 기호로 인용될 수 없는 반사회적 행위다. 대마초는 필로폰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구사회에서도 대마초 흡연을 벌금형 등으로 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마초의 마약류 분류는 당연하다. 유엔 역시 대마를 마약류로 규정하고 있다. 세상이 시끄럽다 보니 대마초 흡연을 합법화 하자는 별 희한한 소릴 다 듣게된다. /임양은 주필

먼 나라 ‘일본’

1941년 7월10일 160여 명의 유대인이 나치 독일 점령하의 폴란드 예드바브네 한 농가 헛간에 갇힌 채 불타 죽었다. 2차대전 종전후 폴란드 공산정권은 폴란드와는 무관한 나치 독일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치의 묵인아래 폴란드인이 저지른 만행임이 밝혀지자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즉각 사과했다. “나는 지금 한 사람의 시민으로, 폴란드 대통령으로,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은 폴란드인의 이름으로 사과합니다”라고 했다. 2001년 7월10일 예드바브네 학살 현장에서 유대인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추모식서 있었던 일이다. 학살 당시 단 한 사람만이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페시노비츠는 “이곳까지 와 진심으로 사과하는 대통령의 용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지난 2월 2일 이스라엘 의회에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겸허하게 머리를 조아립니다”라며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사건을 사과했다. 약 30분간의 사과 연설을 하는 동안 가끔 목이 멘 듯 말문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방청석에서 남편을 지켜보는 부인 에바 여사 역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의회 연설에 앞서선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 기념관을 사죄 방문했다. 일제의 2차대전 패전 당시 지지대子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위안부로 끌려가는 것도 보고 징용으로 끌려가는 것도 보았다. 학병이나 징병의 강제 입영은 역까지 나가 거창한 환송을 하는 학생 동원을 했으면서도, 위안부나 징용은 새벽녘이나 밤에 쉬쉬해가며 끌어가곤 했다. 일본 후쇼사 역사교과서 2005년 개정판이 역사 왜곡을 시정하기는 커녕 더 심하게 왜곡하여 말썽이 되고 있다. 대동아전쟁(2차대전)을 미화하는 등 역사 왜곡의 망발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중에 “종군위안부 강제 연행은 일본을 규탄하기 위해 날조됐기 때문에 아예 다룰 필요가 없다”고 까지 어거지를 썼다. 독일 등의 과거사 사죄에 비하면 이건 완전히 적반하장이다. 위안부로 끌려가 인생을 망친 희생자가 아직도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판에 날조됐다고 우긴다. 일본사람 개인으로 만나면 그렇지 않아도 나라 얘기를 하는 덴 이토록 판이한 게 일본이다. 가깝게 하기엔 너무 먼 나라다./임양은 주필

신임 대한체육회장이 할 일

지난달 23일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된 김정길 회장이 올 상반기 중 북한에 가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공약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남북통일이 민족의 염원이기 때문이다. 김회장은 “대통령 특사로 북한 당국자를 만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북 단일팀 구성은 사전논의가 아직 없었을 뿐 아니라 남북간 예선을 치러야 하는 등 수월한 일이 아니다. 북한측 입장도 미지수다. 김회장은 또 체육 예산을 국가 예산의 1%로 끌어 올리고 체육청을 신설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전 단계로 문화관광부의 이름을 문화체육관광부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건강과 ‘웰빙’을 중시하는 시대 조류에 따라 쳬육청 신설은 필요하다. 하지만 굳이 문화체육관광부로 바꿀 것 까지는 없다. 곧 바로 체육청 신설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김 회장이 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김준용 전 회장 사퇴 이후 다소 위축된 스포츠 외교를 강화하는 것이다. 과거처럼 거의 한 사람이 하다시피 할 게 아니라 각국 대사관에 스포츠 외교 담당관을 둬야 한다. 대한체육회장은 직함 그대로 한국 스포츠를 이끌고 대표하는 자리다. 올림픽에 관련된 일을 총괄하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당연직 위원장이기도 하다. 각 종목의 협회·연맹 등 53개의 가맹 또는 준가맹 단체를 거느리는 막강한 자리다. 집행하는 예산도 막대하다. 올해엔 805억9천 600만원이 책정돼 있다. 역대 대한체육회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 낙점 형식으로 맡았던 자리였는데 중도 사퇴한 김준용 전 회장의 후임인 이연택 제34대 회장 때부터 선거로 뽑기 시작했다. 체육회장 선거 기간에 이 전 회장의 검찰 내사가 불거져 오히려 당선자가 곤혹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무튼 체육계의 화합 단결은 김정길 회장의 가장 큰 책임이기도 하다. 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비롯해 체육청 신설, 체육부 예산 증액 등은 김 회장의 추진력을 테스트 받는 사업이다.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하는 일에 정부의 특별 배려가 있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바벨탑

구약 성경 창세기 11장을 보면 사람들이 세운 최초의 탑(塔) ‘바벨’ 이야기가 나온다. 인류역사의 초기, 즉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노아(Noah)의 후손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세우기로 했다. 그들의 탑 건축 목적은 자기들의 이름을 떨치고 홍수와 같은 하느님(야훼)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느님은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물로써 대심판을 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의 표징이 무지개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느님을 불신하는 상징으로 바벨탑을 세웠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하느님은 탑을 건축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동시켜서 멀리 흩어지게 함으로써 탑 건축을 중단하게 하였다. 그래서 이 지명을 ‘바벨(Babel 또는 Babylon)’이라고 불렀다. 그 뜻은 “그가(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창세기 11:9)이다. 이 탑의 크기를 여러 고증에서 찾아 보면, 1층 길이 90m·너비 90m·높이 33m, 2층 길이 78m·너비 78m·높이 18m, 3층 길이 60m·너비 60m·높이 6m, 4층 길이 51m·너비 51m·높이 6m, 5층 길이 42m·너비 42m·높이 6m, 6층 길이 33m·너비 33m·높이 6m, 7층 길이 24m·너비24m·높이 25m로 알려져 있다. ‘바벨(Babel)’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혼란’을 의미한다. 실현성 없는 가공적 계획을 뜻하기도 한다. 하느님이 사람에게 주었던 약속을 잊고 잃어버린 사람들은 바벨탑을 세우는데 수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으며 사람의 목숨이 벽돌 한 장 보다 값없는 존재로 희생됐다. 바벨탑은 점점 높아져 꼭대기까지 걸어서 올라가려면 1년이나 걸렸다. 바벨탑은 결국 무너졌다. 바벨탑이 무너진 근본적 원인은 곧 하느님의 심판이었고 헛된 명성을 위한 사람들의 투쟁의 결과였다. 하느님은 바벨탑을 무너뜨리는 심판의 방법으로 사람들의 언어를 일순에 혼잡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물질 만능의 높은 탑이 올라가고 인간의 명성을 서로 높이려는 곳에는 언제나 무질서와 혼란의 심판이 그림자처럼 따르게 마련이다. 오늘 날 세계가 초고층 빌딩 짓는 일을 경쟁적으로 하는 것을 보면 불길하게도 바벨탑의 신화가 생각나서 언짢다. /임병호 논설위원

‘소나무 에이즈’

소나무 재선충은 0.7~1㎜쯤 되는 지렁이 모양의 외래 선충(線蟲)이다. 다양한 선충 가운데 목재에 기생한다는 이유로 재선충(材線蟲)이라 불린다. 193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뒤 일본(1972) 프랑스(1979) 대만(1980) 중국 난징(1982) 홍콩(1985) 중국 선전(1988) 산둥성(1991)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재선충이 침입하면 6일 뒤부터 소나무 잎이 밑으로 처지며 20일쯤이면 잎이 시들기 시작한다. 한 달이 지나면 소나무잎이 급속하게 붉은색으로 변하고 고사가 진행된다. 재선충이 침입하는 나무는 100% 말라 죽는다. 침입한 당해연도에 90%, 그 다음해에 나머지 10%가 고사하기 때문에 불치병을 뜻하는 ‘소나무 에이즈’로 통칭된다. 문제는 퇴치 방법이 거의 없는 점이다. 일본은 방제작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중국 또한 이 병이 창궐한 황산지역에 너비 4㎞, 길이 100㎞의 ‘무송(無松)벨트’를 조성하는 등 손을 놓고 있다. 소나무가 말라 죽는 직접적인 원인은 재선충이 수액을 빨아 먹는 동안 수액 통로를 막는 바람에 솔잎 등 윗부분으로 영양이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재선충은 매개 곤충인 2.2~3㎜ 크기의 솔수염하늘소와의 공생관계에 있기 때문에 단절하기가 어렵다. 봄철 재선충의 1세대 번식기간은 섭씨 25도에서 4~5일, 30도일 경우 3일이 걸린다. 1쌍이 20일 뒤면 20만마리로 불어나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때 재선충은 번데기 상태의 솔수염하늘소의 몸에 침투한 뒤 5월 중순에서 7월 하순까지 부화하는 나방과 함께 3㎞ 이상을 날아가 새로운 소나무에 둥지를 틀게 된다. 솔수염하늘소가 없으면 재선충이 살아 있는 다른 소나무로 옮겨갈 수 없고 솔수염하늘소 또한 재선충이 고사시켜 놓은 소나무가 없으면 알을 낳을 수 없다. 이들의 공생관계를 끊지 못하는 것이 피해 확산을 막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다. 일단 걸리면 치료약이 없고 일제 예방 백신이 있기는 한데 직경 10㎝짜리 소나무에 5만원짜리 예방주사를 3병이나 놓아줘야 한다. 국산 예방 백신을 하루 빨리 개발하지 않으면 민족수(民族樹)인 한국 소나무가 멸종할 지도 모른다. 봄은 오지만 ‘소나무 에이즈’때문에 걱정이 된다./임병호 논설위원

‘강연왕’ 클린턴

빌 클린턴은 2001년 미국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그 해 인도 방문을 시작으로 중남미 등 20여국의 대학 등 특강으로 3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해외 강연에는 미국내에서의 강연료 10만 달러보다 5만 달러가 더 많은 15만 달러를 받았다. 이듬해는 호주·폴란드·중국 등 세계를 누비며 60여 차례의 강연으로 920만 달러를 벌었다. 강연마다 다 고액의 강연료를 받는 건 아니다. 클린턴의 대변인 짐 케네디는 2001년에서 2002년까지 무보수 강연도 70여회 했다고 밝혔다. 또 강연료마다 다 클린턴 개인이 챙기는 것도 아니다. 2003년 11월11일 ‘에이즈퇴치국제기금’ 회장 자격으로 중국부동산개발그룹이 베이징에서 주최한 초청 강연에서는 35만 달러의 강연료를 기금으로 기탁했다. 그러나 이에 이어 칭화대(淸華大) 강연에서는 10만 달러를 개인 수입으로 챙겼다. 클린턴은 2003년~2004년에는 2천만 달러의 강연료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 2002년엔 미국의 NBC와 CBS가 토크쇼 진행자로 집요하게 섭외했으나 클린턴측이 연간 1만5천만 달러를 제시해 결국 없었던 일로 끝났다. 전직 지도자들의 퇴임후 수입 중 영국 수상을 지낸 대처가 회고록으로 1천만 달러를 번 것을 비롯해 TV인터뷰 및 강연료 등으로 꽤 많은 수입을 올렸으나 클린턴에 미치지 못한다. 클린턴이 ‘강연왕’이 된 계기가 흥미롭다. 대통령 재임 중 르윈스키 스캔들 송사(訟事)로 짊어진 400만 달러의 빚을 갚으려면 강연이라도 많이 다니라는 힐러리의 압력 등쌀에 밀려 시작한 게 막대한 강연료 수입을 올리게 됐다고 외신은 전했다. 클린턴은 지난 2월27일 대만 외교부 산하의 한 단체 주최로 가진 자서전 ‘마이 라이프’ 출판기념회 및 강연에서 25만달러를 받았다. 이에 앞서 이틀 전인 25일에는 용인대 졸업식에 참석, 축사에 이어 재학생들의 태권도 시범을 보면서 박수를 치며 경이로운 관심을 표명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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