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지대

식물은 사람보다 먼저 태어난 생명체다. 인간이 지구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들은 숲속에서 살았으리라. 숲은 사람의 삶의 터전이었다. 숲은 사람의 마음 속 고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숲을 동경한다. 나무와 꽃은 하늘을 바라보고 땅에 뿌리를 내린, 천지와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여준다. 숲속에서도 저마다 생존의 경쟁이 있지만 숲은 전체적으로 조화와 공존을 이룬다. 神은 자연을 만들고 사람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이지만 자연은 말이 없다. 하지만 조화롭게 거대한 생명의 순환을 이어 간다. 그러나 인간 세상은 갈등과 대립으로 시끄럽고 분주하다. 도시는 삭막한 콘크리트로 상징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답답한 도시에서 자연을 그리워한다. 최근 서울 뚝섬 35만 평의 땅이 ‘서울숲’이라는 이름으로 자연공원으로 개장됐다. 서울숲은 세가지 의미를 지닌다. 여의도공원의 다섯배나 되는 크기, 유흥시설이 전혀 없는 자연공원, 서울시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건설된 게 아니라 시민들이 주도하고 참여하여 만들어 진 점이다.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을 흙으로 덮어 조성한 월드컵공원이 각종 야생 동·식물이 몰리는 생태공원으로 변모한 것도 신비롭다. 지난 5월 29일엔 용인 대지산 정상에서 환경단체인 용인환경정의와 한국토지공사, 용인시, 죽전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지산 생태공원 완공식’이 열렸다. 이날 완공식에서 사람들은 다음 세대에게 보내는 환경보전 메시지가 담긴 타임캡슐 봉안식(2030년 개봉 예정)을 가졌다. 해발 380m의 대지산은 2000년과 2001년에 걸친 그린벨트 청원운동과 시민들이 개발에 반대해 녹지 등을 사들여 영구 보전하는 운동, 즉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17일간의 나무 위 시위운동을 통해 정부의 보전 결정을 이끌어 낸 역사를 창조했다. 이 대지산이 생태공원이 되면서 오색딱따구리와 쇠딱따구리, 다람쥐 등 동물들과 은방울꽃, 현호색 등 야생화가 살고 있다고 한다. 식물이 있어 동물과 사람은 생명을 유지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싱그러운 이야기들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하나님=남성?

‘하느님’은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다.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로서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하며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선악을 판단하고 화복을 내린다고 하는 범신론적(汎神論的)인 神을 일컫는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 천도교에서는 ‘한울님’, 대종교에서는 ‘한얼님’, 도가(道家)에서는 ‘옥황상제(玉皇上帝)’, 민간에서는 ‘천신(天神)’, ‘옥황제’라고 존칭한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유일신(唯一神)으로 신봉하며 천지를 만든 창조자로서 전지 전능하고, 영원하며 인류와 만물을 섭리로써 다스린다고 믿는다. ‘의(義)’와 ‘사랑’이 충만한 인격의 존재로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삼위일체의 제1위다. 그리하여 ‘하느님 아버지’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의 뜻으로 하느님을 이른다. 성부(聖父), 천부(天父)는 같은 뜻이다. 또 ‘하느님의 독생자’, ‘하느님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르는 말이다. 천주교에서는 ‘하느님’, 개신교(改新敎·프로테스탄트(Protestant)에서는 ‘하나님’이라고 이른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에 하나님이 계심은 당연하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개역한글판, 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등 네 가지 주기도문이 번역돼 사용되고 있는데 지난해 1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공동번역해 발표한 ‘주기도문 새번역안’이 문제가 됐다. KNCC여성위원회와 한국여성신학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등 개신교 여성단체들이 “주기도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기한 것은 양성평등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주기도문 기존 개역한글판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나라이 임하옵시며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략)”인데 새 공동번역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하략)”이다. ‘아버지의’라는 말이 3개나 더 삽입됐다. 이들 단체는 보편적이고 무한한 하나님의 상(像)은 남성이나 여성 등 하나의 성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버지’라는 말을 굳이 쓰지 말고 ‘하나님’ 또는 ‘하느님’으로 존칭하면 어떨까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담바고’

담배의 어원인 타바코(tabaco)는 포르투갈 말이다. 카리브해 서인도 제도에서 원주민들이 피우던 것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1492년 서유럽에 전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콜럼버스는 원래 이탈리아 태생이었으나 항해 탐험에 나서기 전인 1478년 포르투갈로 이주했었다. 타바코는 1501년 포르투갈 선교사를 통해 인도에 전파된 게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거쳐 일본에 전해진 것이 1549년이다. 한반도에 담배가 건너온 것은 일본에 전해진 지 40여년 뒤인 임진왜란 때다. 이 무렵부터 개화기까지 타바코를 담바고(談婆姑)라고 불렀다. 담배는 담바고의 준 말이다. 담바고는 굉장히 비싸 양반계급에서만 피울 수 있었다. 조선 중기 설화문학의 대가인 유몽인(柳夢寅)이 쓴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의하면 담바고 근량과 은의 근량이 맞먹었던 것으로 전한다. 양반층의 기호품이었던 담바고가 상민층까지 대중화 된 것은 2~3세기가 지나서였다. 하지만 상민들은 양반들 앞에서는 담바고를 피울 수 없었다. 담바고 대도 양반처럼 장죽이 아닌 짧은 곰방대였다. 거족적인 금연운동이 일어났었다. 조선 순종 융희 원년(1907년)에 일본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본에 진 1천300만원의 빚을 담배 피울 돈으로 갚자며 금연과 함께 모금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황성신문과 만세보 등이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일제 통감부와 일진회의 방해로 결국 중지당하고 말았다. 이때 유행된 것으로 ‘담바고타령’이 있다. /귀야 귀야 담바귀야 / 동래 울산 뭍에 올라 / 이 나라에 건너온 담바귀야 / 너는 어이 사시사철 / 따슨 땅을 버리고 이 나라에 왔느냐 / 돈을 뿌리러 왔느냐 / 돈을 훑으려 왔느냐 / 어이구 어이구 이 담바바귀야 / 돌아보면 일본에서 건너온 담배를 일본에 진 차관 빚을 갚기위해 금연운동이 있었던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정부는 담뱃값 7월 인상 계획을 유보했지만 이 참에 담바고를 끊겠다는 애연가들이 적잖다. 이 시대에 금연운동을 벌인다면 무슨 뜻일까, 차라리 거국적인 금연운동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임양은 주필

하나님은 왜 남성인가

평등에 대한 자연법적 해석은 타고난 인권이다. 예컨대 생명 존중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이에 비해 인격권은 실정법적 해석이다. 천부의 권리가 아닌 후천적 권리다. 인권은 평등하지만 인격은 천차만별이다. 이 정부는 이를 혼동하고 있다. 인권과 인격권의 평등을 동일시 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후천적 평등은 기회의 균등이 있는 것이지 능력의 균등에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공부 잘하는 학생이나 공부 못하는 학생이나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미래의 국가사회 발전을 저지한다. 인간의 불평등을 설파한 것은 프랑스 사상가 루소다. 그는 ‘인간불평등기원론’(1755년)에서 산업의 발달이 불평등을 가져왔다 면서 인성을 바탕으로 하는 정의가 이를 개조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불평등사회는 이미 인류가 단체생활을 하면서 시작됐고 불평등의 요인은 개개인의 능력이 구분지었다. 정의란 것도 그렇다. 이해관계의 대립에서 저마다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는 것이 정의다. 더욱 간과키 어려운 것은 인간 차원이 아닌 남녀의 구분에서 보는 평등론이다. 남녀의 양성평등은 인간 차원, 즉 원천적 인간 존엄성의 평등이다. 그러므로 타고난 성별역할에 평등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자연에 대한 거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랫동안 여성이 남성의 억압에 시달려온 불평등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므로 여성들이 주장하는 양성평등론에 남성들은 참을성있게 인정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남성으로 보는 것에 불만을 갖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여성부 등 여성계 일각에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기독교 교리는 양성평등에 위배되므로 ‘아버지’란 말을 빼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논리대로라면 예수가 남성인 것도 불만일 것 같다. 하나님과 예수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게 뭐 그리 문제이겠는가 싶다. 그런데도 이를 꼬투리 잡는 것은 소아병적 사고방식이다. 양성평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생각 자체가 진정한 양성평등을 저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임양은 주필

한소리회

기쁘거나 슬플 땐 노래하고 또 듣곤 한다. 그러나 자신이 노래하는 건 잘 못해도 할만 하지만 듣는 것은 좋아야 듣는다. 이래서 유명인들의 노래를 찾는다. 하지만 유명인들만이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무명인의 노래도 들을만 한 게 적잖다. 슈트라우스 작곡의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은 한 작은 마을에서 축제일에 춤추는 원무곡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던 게 독일 궁중무곡이 되면서 슈트라우스는 일약 ‘왈츠의 아버지’로 불렸다. 프랑스의 환상적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 무명가수로 출발했다. ‘지하철 음악가’는 파리의 명물이다. 비발디의 협주곡과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기찬 아코디온 독주로 행인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지하철 음악가’ 가수가 마침내 음반을 내고 본격적인 가수활동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다 보니 ‘지하철 음악가’의 연주나 노래를 담은 CD가 나와 인기를 적잖이 끈다. ‘한소리회’는 길거리 음악가 모임이다. 경기도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로 이건재(45·장애인복지과) 조기열(41·관광과) 고상범(35·의회사무처)씨 등 통기타 가수 트리오다. 지난 5년동안 약 500회의 길거리 공연을 가졌다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그동안 노래하면서 모은 성금이 1억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 돈으로 소아암 등을 앓는 난치병 어린이들을 남모르게 도왔다. 13명의 어린이들이 건강을 되찾았다는 소식으로 큰 보람을 맛보았다. 그런가 하면 7명의 어린이는 끝내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듣는 슬픔도 겪었다. 지금은 이천 세계도자비엔날레 행사장서 연주하지만 앞으로 행사가 끝나면 다시 여주 고속도로 휴게소 등지서 연주할 것이라고 한다. 레퍼토리는 주로 발라드풍의 서사적 노래를 부른다. 위대하다. 이런 길거리 자선 음악가가 지역사회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학생시절에 지녔던 ‘끼’를 의미있게 발산하는 아마추어 가수들이지만 유명가수 못지 않다. 파리의 ‘지하철 음악가’들 처럼 프로로 전향할 생각은 없겠지만 ‘한소리회’ 트리오의 노래가 널리 퍼지면 좋겠다. 앨범을 내거나 지역 음악행사에 초청하는 것은 그 같은 방법이 된다./임양은 주필

유네스코의 ‘작은누리’

서울 중구 명동2가 50-14 한국유네스코회관 12층 옥상은 ‘작은누리’로 불리는 도시생태공원이다. 작은누리는 190평 콘크리트 바닥에 방수공사를 하고 관수·배수 시설을 만든 다음, 인공 경량토를 깔고 그 위에 들에서 퍼온 흙을 덮어 만들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개념을 도입해 텃밭이 있는 입구를 ‘전이지역’, 생태교육이 이뤄지는 풀꽃동산을 ‘완충지역’, 야생덤불숲을 ‘핵심지역’으로 정해 풀과 나무를 심고 습지를 조성했다. 텃밭에는 고추, 토마토, 박, 딸기를 가꾸고 있으며, 풀꽃동산에는 원추리, 두메부추, 하늘매발톱 등 꽃 군락이 형성돼 있다. 핵심지역에는 보리수, 개암나무와 억새가 어우러져 가을이면 여느 산야에 나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다른 데서 날아온 개망초와 쑥, 그리고 식물들을 하나도 뽑아내지 않는다.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다. 작은누리 한 귀퉁이에는 태양전시관이 있어 햇빛을 에너지로 바꿔 핵심지역에 있는 습지의 분수를 움직인다. 13층 옥탑 꼭대기에 있는 빗물 통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빗물을 받아 작은누리에 공급한다. 작으나마 재생가능 에너지를 이용하고 빗물을 재활용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천한다. 습지는 작지만 여러 생물들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보금자리다. 소금쟁이가 미끄러지듯 물 위를 다니고 잠자리가 알을 낳아 번식하며 우렁이와 물고기도 살고 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아 궁금했던 개구리가 올봄에 알을 낳아 건재함을 알렸다. 요즘은 올챙이들도 보인다. 어떤 곤충은 바다를 건너기도 한다지만 수 많은 사람과 차량으로 북적대는 서울 한복판 유네스코회관 옥상 작은누리의 곤충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신기하다. 남산이나 바로 옆 중국대사관 정원에서 이사왔을지도 모른다. 참새, 비둘기, 까치 뿐만 아니라 가끔 직박구리까지 찾아온다. 작은누리가 남산, 중국대사관 터, 명동성당, 덕수궁, 종묘,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녹색 축에서 소중한 징검다리 구실을 하는 게 분명하다. 2003년 4월 개장한 이래 현재 작은누리(홈페이지·http://nuri.unesco.or.kr)에 살고 있는 식물이 대략 200종에 이른다. 평일 낮에도 열려 있는 유네스코의 작은누리가 전국 도심으로 확산됐으면 좋겠다./임병호 논설위원

변호사

변호사업계 불황이 점점 심화되면서 변호사는 물론 판사와 검사들도 고민에 빠졌다. 현직에서 물러나면 당장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승진에서 탈락하거나 인사에서 밀리면 과감히 사표를 냈지만 지금은 신중하게 고민하는 판·검사들이 많아졌다. 더욱 큰 문제는 변호사 사회에서도 소위 ‘잘 나가는 변호사’와 ‘그렇지 못한 변호사’로 양분되는 현상이 극심한 점이다. 고위직에서 퇴직한 변호사들은 개인사무실 보다 상당한 대우를 보장받는 대형로펌이라는 ‘안전판’을 택하는 반면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변호사들은 대부분 사무실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사건수임 ‘빈곤’ 현상을 겪고 있다. 더구나 올해 600명의 신규 변호사들이 나오면서 지난해 400만원을 한계선이라고 봤던 고용변호사의 월급이 35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민사사건 1건의 최저 수임료가 400만원 정도였다면 올해는 300만원으로 낮아졌고 그 이하로도 수임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다른 변호사가 재판에 들어가지 못할 때 잠시 들어가 자리를 채우는 ‘복대리’도 경쟁이 치열하다. 복대리로 한번 재판에 참석하면 10만원 정도, 좀 먼 곳의 법정으로 가면 20만~30만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부 변호사들이 직접 범죄에 손을 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변호사수의 증가에 따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뇌물공여, 사기 등 범행에 관련되는 것은 전체 변호사의 기본 윤리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변호사협회의 자체 징계를 받는 변호사가 늘어나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우리나라의 변호사수는 지난 5월12일 현재 6천949명으로 4년 전인 2001년 4천618명보다 2천300명 가량 증가했다. 매년 600~700명의 변호사가 나오기 때문에 앞으로 5년 이내에 변호사수는 1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복을 벗은 법관은 총 63명으로 이 중 55명이 변호사로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그 어려운 과정과 의로운 법관생활을 거쳐 얻은 ‘명예’와 ‘영예’를 저버리는 변호사가 다시는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일제강점기 광고

오늘날 광고를 ‘자본주의 꽃’이라고 하지만 100년전 일제강점기에서 광고는 벌써 꽃을 피웠다. 1920년 기생들의 단체인 ‘경성오권번연합’은 ‘매일신보’에 기생 서비스 요금을 정액제로 바꾼다는 광고를 냈다. ‘한시간에 1원30전, 세시간 반에 4원30전…’식이다. 기생들이 출입하던 요릿집에서는 정초에 ‘근하신년’ 광고를 통해 손님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광고에는 요릿집 소속 기생들의 얼굴 사진, 나이, 주소가 나란히 실렸다.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벗’이란 뜻의 ‘가정화합지우’라는 제목의 광고에서 이어지는 글귀는 ‘방독미감’이다. 매독을 방지하고 느낌이 좋다, 즉 콘돔을 소개하는 광고다. 근엄했을 시절 같지만 표현은 지금보다 더 적나라하다. 식민지 시기 최대 히트상품 고무신 광고에는 왕실까지 동원됐다. “대륙고무가 제조한 고무화의 출매함이 이왕 전하께서 어용하심에…”(대륙고무신), “이강 전하(순종 동생인 의친왕) 께서 손수 고르셔 신고 계시는…”(만월표고무신) 등 고무신 회사 간의 광고가 치열했다. “강철은 부서질지 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는 비장하면서도 허풍 섞인 광고를 때린 곳은 별표 고무신회사였다. ‘영어는 출세의 자본, 입신의 기초부터 영어를’이라는 문구는 요즘 것이라해도 어색하지 않다. 코가 뭉개진 여성을 모델로 삼은 성병약, 자양강장제라고 내세운 초콜릿, 술이 아니라 청량음료라고 우긴 맥주, “치마 사면 영화 공짜”라며 영화표를 내걸고 여성들을 유혹한, 라이온치마의 광고도 흥미거리다. 일제 강점기 신문광고에서 가장 화려하게 등장했던 이는 마라톤 선수 손기정이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과 3위에 오른 남승룡은 인단·치약·약품 등 거대 광고주가 서로 잡으려고 애쓰는 최고의 인물이었다. 일간지 기자 출신 김태수씨가 쓴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책에 나오는 광고 이야기들이다. 한성순보, 독립신문 등 한말의 신문에서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강점기에 이르는 신문과 학지광 청춘, 개벽, 별건곤, 신여성, 소년 등의 잡지에 등장한 광고를 샅샅이 뒤져 역사와 풍물을 소개, 일독할만 하다. 광고내용을 보면 그때가 강점기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여서 일제의 간교한 회유책이 아니었나 싶다. / 임병호 논설위원

수원 ‘영통단오제’

머리에 인 물동이 물을 출렁거리며 힘껏 내달린다. 여인들의 이마엔 이내 물과 땀이 범벅이 된다. 그래도 얼굴은 저마다 환한 미소로 가득차 달덩이처럼 밝다. 지난 11일 수원시 영통구 영통 1동(동장 박래헌)에서 있었던 ‘제1회 영통청명단오제’행사중 한 모습이다. 물동이 이고 달리기는 아파트 부녀회별로 대항전을 가진 릴레이 경기였다. 또 한편에서는 소달구지를 처음 타 보는 어린이들의 환성이 만발하기도 했다. 영통4단지 건영아파트 앞엔 500년된 느티나무가 있다. 마치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넉넉히 가지를 드리운 이 느티나무는 도심속의 휴식처가 된다. 여기서 가진 제례행사에 이어 1천여 명의 주민이 갖가지 단오제 행사에 참가했다. ▲민속놀이 마당(씨름왕 선발·그네뛰기·팔씨름·장기왕선발·사물놀이패 경연·물지게 지고 달리기·물동이 이고 달리기) ▲참여마당(창포물머리감기·봉숭아 물들이기·투호놀이·널뛰기·줄씨름·옛사진전·소달구지여행·가훈써주기) ▲어린이마당(얼굴페인팅·물병쓰러뜨리기·학생알뜰시장)외에 먹거리 장터, 떡 만들기, 아이스크림코너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이웃을 모르는 것이 도시 인심이라고 들 말한다. 시멘트 담벽을 쌓고 사는 것이 아파트 민심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뭔가 하기에 달린듯 싶다. 이날 영통 아파트단지 대표로 나온 주민들은 한결같이 이웃의 정을 나누었다. 영통 지역문화와 지역안녕을 기원하는 주민화합 마당의 구심점 하나로 뭉쳤다. 주최는 영통청명단오제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했고, 주관은 영통1동 통장친목회를 비롯한 9개 단체가 맡았다. 또 영통1동 아파트 입주자대표와 한국마사회 수원지점이 협찬했다. ‘제1회 영통청명단오제’는 도심속 행사인 점에서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꼭 단오제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절후나 명절 따라 지역에서 뜻만 모으면 이런 주민화합의 한마당 잔치를 능히 가질 수가 있다. 영통주민들은 새로운 도시권 생활문화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임양은 주필

박지성로(路)

쿠웨이트 현지서 지난 9일 가진 독일 월드컵 축구 지역 예선전에서다. 박지성 선수가 오른쪽 측면 문전서 한국팀의 네 번 째 골을 터뜨릴 때 쿠웨이트 골 키퍼는 앞쪽으로 몸을 던졌다. 직접 슈팅을 못하고 문전 패스를 할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박지성 선수의 당시 위치는 골대와 약 10도 가량으로 슈팅하기엔 무리가 가는 사각지대여서 쿠웨이트 골 키퍼의 판단은 잘못이랄 수 없었다. 그러나 직접 정확한 슈팅을 날려 상대팀의 허점을 찔렀다. 2002년 월드컵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포루투칼과의 대전에서 가슴으로 패스 받은 볼을 왼발로 때려 골을 작렬시킨 것도 오른쪽 측면 문전으로 역시 사각지대에서 였다. 한국팀은 박지성 선수가 성공시킨 이 천금의 한 골을 지켜 16강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전후반 90분을 한결같이 종횡무진으로 뛰는 강인한 체력은 뛰어난 기량과 더불어 세계적 선수로 꼽힌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벤팀에 소속된 그를 잉글랜드 맨체스터팀이 욕심을 내고 있다. 맨체스터팀이 제시한 이적료가 자그마치 500만파운드, 우리 나라 돈으로 93억원에 이른다. 올해 스물네살인 박지성 선수는 스무살의 박주영 선수와 함께 한국 축구의 ‘양 박(朴)시대를 열었다’고 들 말하는 축구 국보다. 수원 영통에 마침내 315억원을 들여 추진한 ‘박지성로’(폭 35m, 길이 1.38㎞)가 오는 27일 개통된다. 인근에 쉼터와 숲 등도 조성됐다. 세류초등학교, 안용중, 수원공고를 나온 수원이 낳은 세계적 축구 스타의 ‘박지성로’는 청소년들에게 우상의 상징이 될 것이다. 관광객들에게는 또 하나의 관광코스가 될만하다. 수원시는 앞으로 ‘박지성로’를 청소년의 거리로 만들어 더 다양한 시설을 조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축구선수가 아니라도 좋다. 무엇을 하든 불우한 환경을 극복할 줄 아는 그래서 절망과 좌절을 모르는 희망과 투지를 기르는 청소년 마당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박지성로’는 본인에겐 더 할 수 없는 영광이다. 박지성 선수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만하다. /임양은 주필

경기시론/미술작품 위작시비

미술계가 이중섭작품의 위작시비로 한참 시끄러웠다. 화가는 저 세상 사람이 된지 오래지만 아직도 그의 세속적 인기가 높아서 생긴 일이다. 그러나 높은 인기만큼 ‘작품의 예술성’이 뛰어난지는 좀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런 시비의 발단은 사실 어제 오늘 생긴 일이 아니다. 곰곰이 따져 보면 발단은 우리 사회가 자초한 면이 많다. 정치인의 비자금 조달이나 경제인의 자금 빼돌리기 등도 결국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있는대로 가진대로 살려 하지 않고, 도둑질을 해서라도 ‘돈의 위력, 권력의 위력’을 쟁취하려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야 행세하는 세상이다. 이중섭위작 시비의 끝은 법의 심판으로도 결판이 나기 어렵다. 또 그럴 성질의 일도 아니다. 많은 애호가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국민들에게 ‘미술분야는 그렇고 그렇다더라’는 어두운 불신을 남긴다는 점에서 후유증이 적지 않다. 이중섭이나 박수근처럼 불행한 일생때문에 오히려 신화적인 인기를 누리는 경우, 작품의 가격이나 가치가 실제보다 매우 높게 평가되어 거품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중섭의 담뱃갑 속 은박지를 이용한 손바닥만한 ‘은지드로잉’은 요즘 1점에 보통 1억원정도 호가되는데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바로 팔린다. 박수근의 유화작품은 나온다는 소문과 함께 호당(엽서 한장 크기) 1억원이상의 고가에 은밀하게 거래가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구상단계의 연필 드로잉마저도 상당한 값에 팔리는데, 아예 작품이 나오지 않거나 특정인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한다. 은지작품이나 연필화나 작품으로 보자면, 그저 본격적인 작품을 위한 초기 스케치나 작가의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습작 수준인데, 이런 것까지 본격적인 작품 취급을 받아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대가의 작품이라도 습작은 습작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좋은 드로잉작품의 수준이 일반회화 작품에 못지 않고, 오히려 일반적인 습작을 훨씬 뛰어 넘는다는 사실은 영국 조각계의 거장 헨리무어의 인물 양(羊) 드로잉연작이나 작품값이 높기로 정평이 나있는 쟈코메티의 드로잉에서 보면 분명히 확인된다. 이들은 드로잉이되 드로잉을 뛰어 넘는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뛰어난 면모를 보인다. 위작(僞作), 모작(摹作) 시비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중국 서예의 최고봉 왕희지의 저 유명한 난정서첩(蘭亭敍帖)도 현미경 조사 결과 후대의 모작으로 알려졌고, 중세유럽 대가들의 성화작품들을 베껴 더 유명해진 위작의 대가(?)도 있다. 세간에 떠들썩한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을 정밀 위작하는 대규모 조직이 국내외에 있다는 정보는 이미 비밀도 아니다. 박수근도 작품을 팔기 위한 개인전을 몇 번이나 열었지만 사주는 사람이 없어서, 60년대초 다수가 미국으로 흘러 나갔다가 최근 그의 작품값이 천정부지로 솟아 오르자 다시 고가에 역수입되고 있다. 이제 와서 한국의 대표화가, 민족화가로 박수근을 치켜 세우고 있지만, 정작 그가 생활에 쪼들려 실명에 이를 정도로 고생할 때 우리 사회는 외면했었다. 80년대중반까지만 해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그의 작품을 살 수 있었는데, 요즘 와서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문제는 공급이 막히고 수요는 급증하니 위작이 틈을 비집고 들어올 소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불행하게 일생을 마쳤던 이중섭이 행여 땅속에서 통곡하고 있지나 않을까. /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장

헤드코치

15세기 무렵이다. 헝가리의 한 소도시가 전 유럽에 명품 마차의 생산지로 유명했다. 화려했을 뿐만이 아니라 타기가 아주 편안했기 때문이다. 왕족과 귀족들의 주문이 잇따랐다. 처음엔 두 마리의 말이 끌던 쌍두마차였던 것이 네마리, 여섯마리까지 끄는 형태로 마차구조가 발전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말이 끌수록이 말을 다루는 마부의 기술도 높아져 전문화됐다. 평소엔 말을 훈련시키고 달릴 때 능수능란하게 제어하는 다두마차의 마부는 단순한 마부가 아닌 전문인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이래서 나온 마부의 새로운 명칭이 ‘코치’(coach)였다. 호화판 마차의 헝가리 소도시 이름이 코치였기 때문이다. 여러 말을 다루는 마차 운행의 기술자를 마차의 명산지 이름을 따서 그대로 불렀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스포츠에서 선수들에게 기량과 작전을 가르치는 사람을 코치로 지칭하게 된 유래다. 국내에선 코치라고 하면 감독 밑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알고 보면 이도 잘못된 일제 잔재다. 감독이란 말은 일본의 ‘간도쿠(監督·감독)로 일본에서는 지금도 헤드코치(head coach)를 감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국제스포츠에서 감독이란 말은 없다. 팀의 으뜸 되는 코치, 즉 감독을 헤드코치로 지칭하고 있다. 헤드코치의 계절이다. 독일 월드컵 예선,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를 비롯해 프로야구며 프로축구 등이 스포츠 팬들을 열광케 한다. 경기 못지않게 흥미로운 게 헤드코치의 모습들이다. 텔레비전 방송이 화면으로 이따금씩 비추는 헤드코치의 모습들도 여러가지다. 시종 긴장하고 초조해 한다. “피가 마른다”고들 말한다. 월드컵 본선 4강 신화를 이룩한 히딩크는 헤드코치의 벤치 모습을 가장 흥미롭게 제공해준 사람으로 꼽힌다. 경기 한 번 치르는 동안 희로애락이 수 없이 스쳐가는 것이 헤드코치의 얼굴이다. 감독이란 말 대신에 헤드코치란 말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일제 잔재인 감독이란 표현은 너무 권위주의적이다. /임양은 주필

‘할렘강 환상곡’

“새벽 두 시에 홀로 / 강으로 내려가 본 일이 있는가 / 강가에 앉아 /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일이 있는가 /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 이미 작고하신 어머니. 신이여 축복하소서 / 연인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 그 여자 태어나지 말았었기를 바란 일이 있는가 / 할렘강으로의 나들이 / 새벽 두 시 / 한 밤중 / 나 홀로 / 하느님 나, 죽고만 싶어 / 하지만 나 죽은들 누가 서운해 할까” 흑인 시인 랭스턴 휴즈의 詩 ‘할렘강 환상곡’이다. ‘나는 니그로, 밤이 검은 것처럼 검고 나의 아프리카 한복판처럼 검다’라는 시로 흑인들의 마음을 사무치게 했던 랭스턴 휴즈는 ‘나의 영혼은 강처럼 깊게 자라왔다’며 영혼(soul)이란 말을 흑인들만의 위대한 정신적 특성으로 만든 최초의 흑인 시인이며, 시 한 구절로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랭스턴 휴즈는 18세 때 ‘니그로, 강에 대해 말하다’를 썼으며 이 시는 ‘니그로’ ‘나의 동포’ 등과 함께 흑인 어린이들까지 암송하는 흑인의 고전문학으로 유명하다. 랭스턴 휴즈는 소설 ‘아직 웃음이 있다’를 썼으며 문화운동가·인권운동가로도 활약했다. 희곡·문학평론·동화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겨 후진국 문학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그가 뉴욕의 한 호텔 급사로 있을 때, 당시 유명했던 시인 린지가 무명이던 랭스턴 휴즈의 시를 극찬하며 낭송한 것이 계기가 돼 그는 하루 아침에 유명한 ‘급사 시인’이 됐다. 그는 또 니그로 르네상스의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하며 흑인 시인으로 지방 순례 시 낭송을 해서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랭스턴 휴즈는 왜 새벽 두 시에 할렘강에 나가 버림받은 기분에 젖어 세상에 없는 어머니, 연인을 생각했을까. 그리고 죽음을 떠올리며 내가 죽은 들 누가 슬퍼해 줄까 하고 비감해 하였을까. 랭스턴 휴즈의 ‘할렘강 환상곡’은 이런 저런 세상 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또는 가슴이 허전해 쓸쓸한 날 문득 문득 생각나는 영가(靈歌)다. 이래서 훌륭한 시는 영혼의 자장가라고 하였다. 새벽 두 시가 아니더라도 강가나 호수가에 앉아 인생을 가끔 돌아볼 일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적색수배자’

‘국제형사경찰위원회(International Criminal Police Organization : ICPO)’를 줄여 부르는 ‘인터폴’은 어느 나라든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범인을 잡는 국제수사관으로 착각하는 이도 없지 않으나 실체가 있는 수사관이라기보다는 범죄정보를 교환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범죄정보를 분석해 각국 경찰에 제공하는 역할에 가깝다. 국제범죄의 빠른 해결과 각국 경찰기관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56년 설립돼 현재 182개국이 가입했다. 우리나라는 1964년 제33차 인터폴 회의에서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경찰청 외사관리관실에 인터폴 대한민국 국가중앙사무국을 두고 있다. 인터폴은 국제형사경찰위원회(ICPC)에 기원을 두고 있다. ICPC는 1901년 런던경시청 총감이 범죄수사에 필요한 지문을 한 곳에 모으자고 제한한 데서 출발, 1923년 20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설립됐다. 1920~1930년대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ICPC는 1938년 위기를 맞았다. 본부가 있던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나치스가 기관내 정보를 유대인 학살에 이용한 것이다. 이후 ICPC 기능은 한동안 정지됐고 1956년 인터폴을 통해 다시 탄생했다. 현재 인터폴은 총회와 집행위원회, 사무총국으로 이뤄져 있는데 총회는 매년 다른 국가에서 열린다. 1999년 11월에는 서울에서 총회가 열려 테러리즘, 마약밀매, 조직범죄, 인신매매, 공무원 독직, 문화재 밀매 등 지구촌 범죄에 대한 대책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인터폴의 수배 유형은 5 단계다. 변사자 신원확인을 위한 흑색수배부터 황색, 녹색, 청색, 적색수배 등이 있다. 이 중 범죄용의자 체포·송환을 위해 인터폴이 내리는 가장 강력한 조치인 적색수배(red notice)는 구속 또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사람 중 살인·강도· 강간 등 강력 범죄 관련 사범이나 거액(50억원 이상) 경제 사범들을 대상으로 한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아시아자동차 수출 사기사건’의 주역 전종진, 3천700억원대의 금융사기 주범 변인호, 그리고 최근 ‘유전의혹사건’으로 주목받은 허문석씨가 적색수배자들이다. 한국인은 김 전 회장 등 21명이 인터폴에 공개수배된 상태다. 해외도피 5년 8개월째인 김우중씨가 귀국할 모양이다. 당국은 김씨가 ‘적색수배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곰돌이가 만든 꽃밭’

환경보전협회경기도지회가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5월 발간한 ‘살아나는 별’은 온 가족이 읽는 환경동화집이다. 어린이와 부모들에게 환경을 아끼고 되살릴 수 있는 마음이 생기도록 아름다운 글과 따뜻한 그림(이오연·황문희)으로 풀어냈다. ‘내가 지켜줄 게(고수산나 지음)’ ‘구멍 뚫린 하늘(권태문)’ ‘갈참나무의 꿈(박명희)’ ‘새들터(백시억)’ ‘한밤 중 욕실에서(서석영)’ ‘살아나는 별(윤수천)’ ‘곰돌이가 만든 꽃밭(이규희)’ ‘빗방울 땡글이의 여행보고서(이동렬)’ ‘알록 달록 할머니(이재희)’ ‘이모는 마음의 멋쟁이(조대현)’ 등 10편이 실린 이 동화집은 개성 있는 동화작가들이 다양한 소재를 펼쳤다. 환경보전을 주제로 한 동화는 교육적으로 흐르기 쉽지만 ‘살아나는 별’은 문학성이 높은 창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호감이 간다. 수필가 밝덩굴 선생이 동화집을 읽고 쓴 “이 책에는 생명이 있어요.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아름다운 숲이 있어요. 이 책에는 내 소중함이 함께 들어 있어요. 편하게 읽을 수 있고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림 구경도 쏠쏠하다고요. 깨끗한 환경, 소중한 자연, 우리가 지켜야 할 지구, 저 푸른 하늘에 반짝이는 별, 예쁜 새끼 붕어의 물 속 체험도 볼 수 있어요”라는 글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환경보전을 위한 각종 행사의 홍보물로 활용하고 도서관 또는 학교에 보급한 이 동화집이 전국적으로 배포되지 않은 게 아쉬웠는데, ‘곰돌이가 만든 꽃밭’으로 제목을 바꿔 한·중판, 한·영판으로 다시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수원시가 출판비를 지원했다는 ‘곰돌이가 만든 꽃밭’의 중국어 번역은 윤경애 대련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와 홍덕수 한·중미래발전연구소장이 맡았고, 영어는 최혜원 경기도공무원교육원 영어회화 강사가 번역했다고 한다. 이 한·중, 한·영 환경동화집은 원문도 함께 실어 외국어 교육면으로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원시 관내 초등학교 전 학급과 도서실, 환경단체에 보급하고 중국에서 온 손님, 미국에서 온 손님들에게도 방문기념 선물로 증정할 예정이어서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환경보전협회경기도지회의 건의를 받아 들여 예산을 선뜻 지원해준 수원시의 환경행정이 신선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자영업 종합대책’

정부의 ‘영세 자영업자 종합대책’이라는 것이 가관이다. 미용실 창업의 문턱을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자격증 시험을 세분화하겠다던 계획이 백지화 됐다. 재래시장 퇴출계획도 철회되었다. 영세 자영업을 돕는 게 아니고 되레 규제한다는 반대 여론에 밀려 없었던 일로 했다. 사정은 마찬가지다. 세탁업소와 제빵제과점은 공청회 등을 열어보고 자격증 취득자에 한 해 창업을 허용한다지만 이 역시 소용없는 짓이다. 체면상 공청회 등을 갖는다고 한 모양이나 공청회 할 일이 따로 있지 하나마나다. ‘영세 자영업자 종합대책’의 이같은 대폭 수정은 당정협의회에서 결정된 일이지만 원안은 대통령 무슨 자문위원회에서 만들어 내놨던 일이다. 서민경제까지 규제하겠다는 생각부터가 애시당초 잘못된 생각이다. 구멍가게까지 구조조정하겠다는 것 부터가 불가능한 무모한 발상이다. 권력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 자체가 독선이고 독재다. 구멍가게·서민경제가 그토록 염려되면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할 일이지, 구멍가게·서민경제를 규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경제를 살릴 생각은 않고 자영업 규제에 나서겠다는 생각은 ‘자다가 봉창 뚫는 짓’이고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와 같다. 그나 저나 돈이 아깝다. 대통령 무슨 자문위원회에서 이런 것을 내놓기까지는 회의를 해도 수 십 차례 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또 막대한 예산이 지출됐을 것이다. 대통령 무슨 자문위원회는 법외 기구여서 감사도 안 받는 치외법권 지대다. 이런데서 만든 말도 안 되는 대책이란 것을 두고 비싼 국록을 먹는 정부 고위층과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해 가며 시간을 축낸다. 국민의 혈세를 이렇게 소비해도 되는 것인지 묻는다. 세금 낭비도 낭비지만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시장경제에 위배되는 공리공론의 책상머리 잡담으로 소일해도 되는 것인지 묻는다. /임양은 주필

북의 식량난

북측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투쟁을 ‘고난의 행군’이라고 인민들에게 학습시킨다. 이를테면 ‘고난의 행군’은 인민교과서다. 지금 북에서는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식량난과 관련된 첫 번째 ‘고난의 행군’은 1994년 대기근이 들었을 때 있었다. 약 150만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지도부는 날조된 김 주석의 초인적 고난의 항일투쟁을 빗대가며 인민들도 ‘고난의 행군’을 따라 배우자며 기아를 합리화했다. 평양 주재 세계식량계획(WFP)담당관이 전하는 북측 식량난이 꽤나 심각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대로 올 8월까지 가면 360만명이 기아에 직면한다며, 지금부터 연말까지 최소한 4만t의 국제사회 식량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측이 갑자기 차관급회담을 열어 비료 20만t을 벼락같이 챙겨간 것을 보면 식량증산이 발등에 떨어진 불로 화급하긴 한 모양이다. ‘제2의 고난의 행군’ 채비에 따라 공무원인 사무직일꾼들까지 총동원되어 모내기 지원이 한창인 것으로 전한다. 아마 협동농장 사람들 만으로는 모내기를 적기에 다 마치기가 어려운 사정인 듯 싶다. 모내기를 해도 수확은 빨라도 9월말 가야 할 판이니 8월 식량위기설을 넘기기가 힘겨워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아마 시작된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중앙통신이 취재한 것을 국내 연합뉴스가 전재 보도한 사진이다. 지난 5월31일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협동농장 주민들이 손으로 모내기하는 논두렁에서 열 명의 남녀 인민군 선전대원들이 손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들려주는 모습이 있었다. 모내기를 격려하기 위해 군인들이 노래를 불러준다지만 이해가 잘 안 된다. 노래보단 차라리 함께 모를 심는 게 더 나을터인 데도 북에선 그게 아닌 모양이다.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끊겨 암시장 쌀값은 2년새 5배나 뛰는 등 식량난을 겪고 있어도 선군사상으로 군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기아에 직면한 식량난과 세계적 수준의 군수공업이 겹치는 두 면모를 어떻게 보아야 할 지 혼란스럽다. /임양은 주필

6·25

한반도에서 3년동안 모두 520만명의 인명이 죽거나 다치고 또 실종됐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25편의 인명 피해를 옮겨 본다. ◇남한 총 230만명(군인 98만7천명·민간인 140만명) △군인 ▲전사 14만7천명 ▲부상 70만9천명 ▲실종 13만1천명 △민간인 ▲피학살자 12만9천명 ▲사망자 24만4천명 ▲부상자 22만9천명 ▲피랍자 22만9천명 ▲행방불명 8만4천명 ▲의용군 강제징집 40만명 ▲경찰관손실 1만7천명 ◇북한 총 292만명(군인 92만명·민간인 200만명) △군인 ▲전사 52만명 ▲부상 40만명 ◇유엔군 18만명 ▲전사 3만5천명 ▲부상 11만5천명 ▲실종 6만명 ◇중공군 92만2천명 ▲전사 18만4천명 ▲부상 71만6천명 ▲실종 2만2천명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38선에서 조선 인민군의 일제 공격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27일 자정 현 휴전선으로 전쟁이 끝나기까지 이토록 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남북으로 생이별한 1천만 이산가족을 또 냈다. 한반도 강산은 시산혈하를 이루고 도시는 파괴되어 폐허화 됐다. 일선 군인들도 군인이지만 후방의 민간인들이 숱하게 죽었다. 인심은 살벌하고 먹는 것 구하기에 바빴다. 모양새는 거의가 거지꼴이 됐다. 6·25의 포화가 멈춘지는 52년이 됐지만 휴전선엔 아직도 남북의 총칼이 대치하고 있다. 북녘은 선군사상을 강화하고 있는 판에 남쪽에서는 태평이다. 전쟁 재발을 걱정하면 역적 취급하는 세력이 있다. 1950년 6월25일 그 날도 설마하다가 당했다. 아니 전쟁이 일어났는 데도 좀 그러다 말려니 하고 처음엔 실감하지 못했다. 오늘은 제50회 현충일이다. 국군만도 98만7천명의 인명 피해를 내어 나라를 지켰다. 그리고 잿더미에서 재건했다. 나라를 지켜준 덕에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권세를 떨치는 높은 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자꾸한다. 전몰 장병들에게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임양은 주필

늘푸른소년소녀합창단

합창단을 창단, 연주회를 지원하거나, 미술관을 짓는 등 문화예술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어 매우 반갑다. 이들 기업과 기업인들은 연극·영화제나 각종 전람회 등을 주최하거나 후원하고, 젊은 예술가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준다. 기업의 문화예술 활동 지원을 담당하는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원사도 2003년 130여개사에서 190여개사로 증가했다. ‘늘 푸른 세상, 늘푸른 주택이 열어갑니다’를 기업 슬로건으로 하는 건설회사 ‘(주)늘푸른주택’도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기업 중 하나다. 독일 브레멘에서 열린 ‘2004 세계합창올림픽’에서 은메달(여성챔버 부문)을 수상한 ‘늘푸른여성합창단’을 2000년 8월 창단한 데 이어 2004년 6월 ‘늘푸른소년소녀합창단’을 창단했다. 늘푸른소년소녀합창단(상임지휘자 노기환·반주 황은영)은 그동안 20회의 합창제에서 뛰어난 역량을 과시했으며 특히 2004년에는 창단 1년 만에 독일 브레멘 세계합창올림픽에 참가, 어린이합창 부문에서 은메달을 차지하여 음악계를 놀라게 하였다. 올 1월에는 빈 소년합창단의 내한 연주회에 특별 출연하여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늘푸른소년소녀합창단의 음악활동은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더욱 푸르른 세상을 꿈 꿉니다. 맑은 햇살과 울창한 수풀, 행복한 보금자리로 넘쳐나는 세상,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배우는 아이들의 훈훈한 마음까지도 늘 푸른 세상, 늘푸른 주택이 열어갑니다”라는 늘푸른주택의 기업이상과 일치한다. 이 늘푸른주택이 적극 지원하는 늘푸른소년소녀합창단이 그제 경기도 문화의 전당 대공연장에서 제2회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맑고 순수한 멜로디가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가곡처럼 아름다운 ‘레퀴엠’을 비롯, ‘초록별 지구’등 7곡의 동요메들리 등을 불러 청중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별출연한 테너 김영환씨의 ‘뱃노래’ ‘그대에게 내말 전해주오’와 아카데미 타악기 앙상블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 프로그램이었다. 합창을 통하여 푸른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늘푸른소년소녀합창단에 박수를 보낸다. /임병호 논설위원

제대혈

‘제대혈(臍帶血)’은 태반이나 탯줄에 들어 있는 혈액이다. 제대혈 속에는 피를 만드는 조혈 모세포가 풍부하고 연골과 뼈 근육 신경 등을 만드는 줄기세포도 있어 냉동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한 시기에 녹여서 다시 사용한다. 특히 골수를 구할 수 없는 백혈병 환자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으로 제대혈이 사용되고 있으며 자신은 물론 가족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도 활용된다. 그런데 일부 산부인과 개원의들이 산모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신생아 분만 과정에서 무단 채취한 제대혈을 제대혈은행에 판매하거나 연구용으로 넘기고 있는 사실이 알려졌다. 예를 들어 A산부인과의 경우 제왕절개를 선택한 산모가 제대혈과 관련해 먼저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 마취 상태에서 제대혈을 임의 채취했다. 자연분만 때는 산모가 의식이 있어 임의 채취가 힘들기 때문에 제대혈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물어 그에 따른다. 병원측은 이렇게 채취한 제대혈을 비닐 팩에 담아 15만원 내외에 B제대혈은행(탯줄은행)에 팔았다. A산부인과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10일까지 제왕절개를 선택한 177명의 산모로부터 제대혈을 임의 채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대혈은행으로 넘겨진 제대혈은 배양 등을 거쳐 보관되며 실험용으로 사용되거나 소아암· 백혈병 등의 치료에 쓰이는데, 환자가 백혈병 등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신체 조직에 맞는 보관 제대혈을 구입하려면 1천만원 정도가 든다. 하지만 산모가 제대혈 보관을 원할 경우엔 자신이 선택한 제대혈은행에 150만원 내외의 보관료를 내고 맡기면 된다. 15년 이내에서 사용권과 소유권을 인정받는다. 문제는 산모의 동의 없이 개인의 유전정보가 담긴 제대혈이 빼내져 팔려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혈 재활용과 관련한 법적 제도적 근거가 없고, 제대혈 임의 채취를 처벌할 마땅한 근거도 없는 실정이다. 제대혈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수의대는 “불투명한 유통경로를 거친 제대혈이 그대로 치료용으로 사용된다면 에이즈나 간염 등에 감염될 우려가 있고 또 유전적인 질병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연구에 필요한 제대혈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하니까 정부는 관련법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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