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姜邯贊·948~1031)장군은 고려의 문신이며 명장이다. 경관직(京官職)인 내사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와 외관직인 서경유수(西京留守)를 겸직했던 현종 9년(1018), 거란의 소배알이 10만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였을 때 서북면행영도통사로 상원수가 되어 거란군을 격파했다. 특히 구주(龜州)에서의 대첩은 대외항전사상 중요한 전투의 하나다. 정예기병 1만2천 고려군은 흥화진(興化鎭·의주 위원면) 산기슭에 잠복했다. 고려군은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냇물을 막아 두었다가 때를 맞추어 큰물을 일시에 내려보내 거란군을 수장시켰다. 침입군 10만 중에서 생존자는 겨우 수천에 불과했다고 한다. 장군은 거란과의 항전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개경(開京)에 나성(羅城)을 쌓을 것을 주장하여 국방에 대하여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강감찬 장군은 낙성대(落星垈·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출생하고, 묘소는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국사리에 있는데 호국 위업을 기리는 동상(銅像)은 수원 팔달산 중턱에 있다. 장군 동상은 1971년 6월29일, 애국조상건립위원회(위원장 문화공보부장관 신범식)와 서울신문사가 공동주관, 기공한 이후 1971년 10월 준공됐으며, 1972년 5월4일 국무총리 김종필을 비롯한 정부요인과 수원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을 가졌다. 남창동 산 1번지 대지 500평에 조각가 김영준의 조각으로 세워진 장군 동상은 원상(原像)높이 4.5m, 좌대높이 5.7m, 전체높이 10.2m, 청동주물상 5t, 마상 길이 5m의 거대한 기마(騎馬)동상이다. 경기도 수부 주산(主山)에서 마상의 강감찬 장군이 당장이라도 적진을 뚫고 나갈듯한 국난극복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그런데 장군 동상이 서 있는 자리가 하필이면 최근 중건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성신사(城神祠·24일자 ‘지지대’ 참조)의 원래 터여서 이전이 시급해졌다. 한때 낙성대로의 이전설이 있었으나 그 곳 보다는 수원의 자산이므로 숙지산공원으로 옮겨 중국 대륙, 서쪽을 향해 말(馬)머리를 돌렸으면 좋겠다./임병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경기일보
2005-02-2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