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우당?

요즘 열린우리당은 너무 무력하다. 이달 들어 여당이 발의한 법안 건수는 불과 15건이다. 한나라당(40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올해 초 한 달에 평균 40건 이상씩 법안을 내며 정책경쟁에서 야당을 앞질렀던 것과는 너무 달라졌다. 작년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은 ’정책정당’을 내세우며 법안발의 건수 등에서 줄곧 한나라당을 앞서 왔다. 작년 6월부터 올해 4월 15일까지 발의된 법안 909건 중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은 465건으로 한나라당(333건)에 비해 130건 이상 앞섰다. 민노·민주당 등 다른 야당은 111건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재·보선이 시작된 4월 중에는 발의 건수가 53건으로 한나라당(65건)에 역전당했다. 물론 발의한 법안 건수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당이 맥 놓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단순 발의 건수 뿐 아니다. 질적인 면에서도 한나라당에 뒤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나라당이 낸, 병역기피 목적의 국적포기를 금지하는 국적법개정안(홍준표 의원)과 성범죄자 전자팔찌 착용 의무화 방안(박근혜 대표) 등은 상당한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한나라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6·25 참전 소년병과 국군포로, 독도수비대원, 고엽제 피해자 등에 대한 정책대안도 발표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서는 이렇다 할 정책 제안 하나 내놓지 못했다. 자칭 타칭 ‘23대0’ 후유증이다. 국회의원과 시장·군수, 시·도의원 등 정당 공천이 이뤄진 23군데 선거에서 모조리 졌으니 참담한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재·보선 전패 이후 싸움에 지고도 진 줄 모르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고작 한다는 소리가 투표율이 저조해서 졌단다. 당의 위기탈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꾸려진 혁신위원회가 지난달 17일 광주에서 열렸지만 현역의원 12명 중 7명만 참석했다. 여당 의원 상당 수가 외유중이거나 지역구에 매달려 있다. 의원들이 없어 북핵과 경제 등 현안에 대한 대책회의 소집도 쉽지 않다고 할 지경이다. ‘열린우리당’이라고 당명을 지었을 때 ‘열우당(劣愚黨)’ 또는 열우당(劣憂黨)으로 부르겠다고 야당에서 말도 많았었는데 정말 그렇게 된다면 안된다. 잘났건 못났건 여당은 여당다워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위원회공화국’

노무현 정권은 ‘위원회공화국’이다. 대통령 자문 국정과제위 소속 12개 위원회를 비롯해 정부 각 부처에 모두 350여개의 위원회가 있다. 행담도 개발 의혹에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이 연루된 위원회도 대통령 자문 국정과제위원회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또 말썽이다. 법무부가 분명히 반대한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안’을 법무부와 협의를 거친 것처럼 의견을 조작해 법제처에 넘겼다는 것이다. 문제의 법안은 국정원도 국가정보 유출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정부혁신위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위원회’는 정부의 정규 조직이 아니다. 정부조직은 어디까지나 ‘정부조직법’이 정하고 있는 내각의 각 부처다. 해괴한 것은 비정규조직인 ‘위원회’가 정규조직을 압도하고 있는 점이다. 정부 운영이 정부의 공조직에 의존하기 보단 사조직인 ‘위원회’에 의존하는 병리현상은 결코 정상적 국정운영이라 할 수 없다. 정부 부처에서 일을 하려면 시어머니들이 많아 어렵다는 소리가 들린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가 하면 무슨 ‘위원회’에서 또 걸고 넘어지기가 일쑤라는 것이다. 또 정부의 소관 사항을 해당 부처도 모르는 사이에 ‘위원회’에서 발표되기도 한다. 그래가지고 일이 잘되면 좋지만 잘 될리가 만무하다. 잘 안되면 정부 부처의 책임으로 떠넘기곤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 특히 대통령 자문 국정과제위는 일종의 비선 조직이다. 다양한 의견 수렴의 개방을 위한다는 게 ‘위원회’를 둔 명분이다. 그러나 의견 제시가 아닌 실무집행은 ‘위원회’의 한계를 일탈한다. 이런 한계 일탈의 배경은 또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천방지축이 되어서는 나라 모양새가 볼썽 사납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초 “국정 운영의 무게를 내각에 두겠다”고 했다. 지금 국정 운영의 무게가 내각에 있다고 볼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이 정권이 불행을 자초하는 덴 국무위원인 각 부처 장관을 ‘얼굴마담’으로 전락시키는 데도 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비선조직을 좋아해서 잘된 나라는 없다. /임양은 주필

황우석

세계적인 과학자, 경이적인 업적으로 한국의 명성을 드높인 황우석 박사(52·서울대 명예교수). 난치병 치료에 인류의 희망인 인간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이 구체적으로 뭔지 우리네 범부들은 잘 모른다. 자존심 높은 서구의 과학자들이 경탄, 또 경탄하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는 수의학 박사다. 수의학 박사가 그같은 인간 치료의 획기적 연구 결실을 맺은 사실이 참으로 경이롭다. 보도에 따르면 황 박사는 충남 부여의 두메산골 출신으로 무척 가난한 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소와 가깝게 지낸 게 수의학자의 꿈을 갖게 된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생물 성적이 한 땐 지금의 세계적인 학자로는 믿기지 않는 ‘수’도 ‘우’도 아닌 ‘미’였으나 졸업 무렵에는 상위 성적으로 올랐다. 주변에서는 의대를 권했으나 수의대를 끝까지 고집했다. 수의학 박사가 되고 나서도 줄기세포 연구는 파란만장의 불우한 세월속에서 지속됐다. 황소같은 뚝심이 결국 ‘인간국보’가 된 오늘의 영광을 가져왔다. 생각해 본다. 만일 의과대학에 갔더라면 지금쯤 어느 종합병원의 전문의 과장으로 인명을 치료할 것이다. 그러나 수의학으로 가 난치병 치료의 새로운 기원을 창출했다. 황 박사의 입지담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단아한 용모에 미소를 잘 머금는 그에게 그같은 뚝심이 어디에 있었던 지 정말 놀랍다. 청소년들에 많은 용기를 줄 수 있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순탄한 성공은 결코 없다. 실패와 좌절의 밑거름이 없는 성공은 일시적 성공일 뿐이다. 환경이 불우하다 하여 뜻을 가질 수 없는 건 아니다. 참다운 뜻은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황 박사의 인간승리를 통해 이런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효자로 알려졌다. 외국에 나가서도 여든 일곱인 노모에게 전화 안부를 빠뜨리지 않는 것으로 전한다. 연부역강(年富力强)하여 앞으로의 기대가 더 크다. /임양은 주필

청소년들

청소년들은 착했다. 부모 말 잘 안 듣는 것, 동생들하고 싸우는 것, 공부 안 하는 것 등에 대한 뉘우침이 없는 게 아니다.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다짐하면서도 되풀이하곤 하는 자신을 책망할 줄도 안다. 또 자신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려고 아버지 어머니가 말못할 고생을 하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것을 죄송하게 여길 줄도 안다. 얼마전 제2회 수원시자원봉사박람회에서 한길봉사회가 주관한 효 학생백일장 글에 나타난 청소년들의 심성은 이토록 모두 맑았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두 가지로 집약된다. 아버지 어머니가 다투는 일 없이 더 사이좋게 지내는 것 하고, 부모가 때로는 자녀들 입장도 생각하면서 대화를 나눠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글이 있다. “평생을 농사일로 / 생긴 파킨슨 병 / 몸은 흔들 흔들 깻잎을 따시지요 / 우리가 가면 머리 쓰다듬으면서 / 돈을 주시던 그 마음 알지요 / 할머니의 흔들리는 손의 사랑을 /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 파킨슨 병 으로 생긴 손이지만 / 사랑합니다 / ‘할머니의 흔들리는 손’(이종훈·잠원초3년)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다음은 제목이 ‘아버지의 발’이다. / 우리 아버지의 발이 / 우리의 가족들을 살린다 / 우리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 발에는 우리들을 살렸다는 증거가 발에 그대로 남아 있다 /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말썽만 피운다 / 이제는 내가 아버지의 발을 편안히 쉬게 해야 한다 / (유아람·송원여중2) 산문에도 감동이 가는 글이 참 많았다. 지면상 입상작의 산문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어른들이 청소년의 한 부분만 보고 편견을 갖는 것은 큰 잘못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효 백일장에 응모한 학생들의 심성이 다 맑았지만 다른 학생들도 같을 것으로 여긴다. 청소년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임양은 주필

라일락 그늘의 향기

호수문학회는 고양시 일산에 있는 문학단체다. 회원들이 모두 여성인 호수문학회는 2001년 6월 창립한 이래 그동안 회원작품집 ‘호수에 부서지는 햇살을 건져 올리며’ ‘외등보다 밝은 달빛의 고요’ ‘기차가 몰고 왔던 바람’ 그리고 ‘안개바다 가득한 꿈’을 발간하여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시인이 수필을 쓰고, 수필가가 시를 쓰면서 서로 돌려 읽는 모습이 정겨운 이 호수문학회가 지금 일산 그랜드백화점 다목적 홀에서 ‘5월의 시낭송, 시·수필 그림전’을 열고 있다. 한윤희·윤경미 씨 등이 그림을 그린 ‘시·수필· 그림전’엔 지연희(지도 교수) 송미정(전 회장) 이자숙(현 회장) 이희영 최석화 김언수 주인자 함혜성 한윤희 박상혜 윤경미 박경영 최정요 임숙영 이은영 홍승애 이 순 이경란 임은순 이애희 임병호(초대시인)씨 등이 참여했는데 작품들이 밝고 싱그럽다. 언어들이 호심을 헤엄치며 다니는 금붕어, 버들붕어, 잉어같기도 하다. “거실 벽 / 환하게 웃는 네 식구/ 뭉클 눈물이 난다 // 여보! 고마워요 / 맨 오른쪽 그이가 웃는다 // 애들아, 고맙다 / 아이들도 빙그레 웃으며 날 보고 있다 // 두 번째 앉아 있는 내가 / 아내로 어머니로 / 한발자국 뒤로 물러앉아 / 온화하게 웃고 있다 // 거울 앞에 서서 / 살며시 웃어본다 ”. 박경영씨의 詩 ‘가족사진’이다. 행복한 가정이 한 눈에 보인다. “그녀의 뒷머리는 늘 그녀 고향의 시골길 같았다 /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엔 / 감나무가 열려 있고 간이역을 지났다 / 가끔은 꽃길에 앉아 저녁 반찬 같은 / 소소한 이야기에 웃고 / 냇가의 개구리나 여름 한낮의 파리를 들먹이며 사루비아 같은 말을 했었다 / 그런 그녀가 / 그녀 이름을 고향에 묻고 난 얼마 후 / 마음을 떨어뜨리는 대신 머리카락을 떨어뜨리고 / 절벽같이 서선 내게 물었다 / ‘바람이 너무 아플 땐 어떻게 하지?’ / 난 대답 대신 / 내 아스팔트 같은 뒷머리를 어찌 해볼까 생각했다 / 그녀의 뒷머리에 코를 대 본다 / 거기엔 여직 시골길의 온기가 난다 / 내 뒷머리를 어찌하여도 / 가질 수 없는 / 그녀의 고향이 / 그녀의 뒷머리에 숨어서 운다”. 중량감있는 최석화씨의 ‘뒷머리’이다. ‘호수의 빛, 라일락 그늘의 향기’는 이달 말까지 열린다. /임병호 논설위원

애견문화국

유럽의 진짜 ‘애견 선진국’은 영국이다. 워낙 온 국민이 개를 사랑하는 데다 섬이라는 특수성까지 겹쳐 ‘개들의 천국’이 됐다. 외래종의 유입이 힘든 섬에는 순종견들이 많게 마련이다. 이런 영국에선 1년에 ‘도그 쇼’가 무려 3천여 회나 열린다. 런던 피카딜리가에 있는 ‘케널 클럽(Kennel Club)’은 이렇게 유별난 영국인들의 개 사랑 전통의 최정점에 서 있는 단체다. 케널 클럽이 생긴 것은 1873년이다. 영국 여왕의 후원까지 받는 이 클럽은 영국 내 모든 견종의 혈통 등록을 주관한다. 매년 3월 세계 최대 규모의 ‘크러프츠 도그 쇼’를 열기도 한다. 케널 클럽의 독립품종 등록 심사는 매우 엄격하다. 품종의 역사와 사육 두수 및 환경은 물론 유전 질환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이 클럽이 인정하는 독립품종은 모두 196종 뿐이다. 2002년부터 삼성에버랜드와 진도군청이 힘을 합해 이 까다로운 심사에 도전, 올해 5월10일 등록증을 거머쥐었다. 케널 클럽 심사위원들은 진도를 직접 방문, 진돗개의 관리 실태를 점검하였다. 진돗개는 우선 섬인 진도에서만 철저히 격리돼 온 데다 정부까지 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해온 덕분에 종 보존이 완벽하다. 크기도 보통 정원이 딸린 서양 주택에서 기르기에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다. 게다가 영리해 배변 훈련이 쉬운 데다 서구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충성심도 아주 뛰어나다. 진돗개를 독립품종으로 인정한 케널 클럽의 심사 결과는 진돗개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뒷받침하는 보증수표가 됐다. 실제로 케널 클럽은 영국에서 유통되는 진돗개들에 보증서를 발급할 예정이다. 그동안은 진도군이 발급한 혈통보증서만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케널 클럽의 보증서도 함께 따라다니게 되는 것이다. 듬직한 ‘족보’ 하나가 더 생긴 셈이다. 진돗개는 케널 클럽으로부터 공인을 받았기 때문에 내년부터 크러프츠 쇼의 경쟁 부문에도 참가할 수 있다. 관람객만 무려 10만여 명이 몰려드는 크러프츠 쇼의 경쟁 부문은 ‘개들의 올림픽’이다. 여기서 뽑히는 ‘올해의 개’는 전 세계 주요 신문과 방송을 장식한다. 진돗개가 금메달을 딸 것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돗개가 세계 명견의 반열에 올라 우리나라는 이제 ‘보신탕國’ 오해를 씻고 명실상부한 ‘애견문화국’이 됐다./임병호 논설위원

명견 진돗개

▲진돗개와 진도개, 어느 쪽이 맞나? 표준어 표기법에 따르면 ‘진돗개’가 맞다. 그런데 진도에서는 진돗개를 ‘진도개’로 쓰기를 고집한다. 뭍의 진돗개들과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진도에 진돗개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한국진도개보호육성법’에도 진돗개 대신 진도개라는 명칭이 채택됐다. 이 법에선 ‘진도의 진돗개를 진도개라고 칭한다’고 돼 있다. ▲순종 진돗개는 돈 주고도 못 산다? 힘들지만 살 수는 있다. 진도군은 매년 3개월 미만의 순종 진돗개 3천700마리를 팔기 때문이다. 이 강아지들은 부모가 천연기념물인 순종이다. 문제는 혈통이 모든 걸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강아지들이 자라서 좋은 진돗개가 되리란 보장은 없다. 게다가 이 강아지들은 진도를 떠나는 즉시 천연기념물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진돗개는 외래종이다? 진돗개의 유래에 대해선 설이 많다. 그 중 남송 상인들이 전파했단 설과, 조선시대 몽골에서 들여왔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 유전자 검사 결과 진돗개는 동아시아견들과 비슷한 형질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북방에서 왔다는 주장이 힘을 잃은 것이다. 요즘은 한반도 토착견으로 보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진돗개는 회귀본능이 강하다? 7개월 만에 주인을 찾아온 진돗개가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이런 회귀본능은 진도의 애견문화와 관련이 깊다. 진도에선 개를 묶어 기르지 않는다. 또 집 잃은 개가 있어도 함부로 취하지 않는다. 게다가 섬이라는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달리 갈 곳도 없다. 수세기에 걸쳐 이런 환경에서 살아온 덕분에 진돗개는 강한 회귀본능을 갖게 됐단다. 지난 5월10일 영국 런던 피카딜리가에 있는 케널 클럽(Kennel Club) 본부에서 30명의 대의원이 열띤 논의 끝에 진돗개를 독립품종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외신이 전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애견단체인 케널 클럽에 독립품종으로 등록되는 것은 세계적 ‘명품견’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낯선 이의 손길을 싫어하는 진돗개는 용맹·기민하며 충성심이 뛰어나다. 특유의 강인함과 영민함으로 오랫동안 ‘국민견’으로 사랑받아 온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돗개가 이제 콜리(영국)·셰퍼드(독일)·푸들(프랑스) 같은 세계적인 명견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임병호 논설위원

이해찬의 다변증

생각은 많으면서도 말은 적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동양적 군자 사상이다. 대인관계는 특히 그러했다. ‘군자교절불출악성’(君子交絶不出惡聲)이란, 군자는 남과 절교를 한 뒤에도 그 사람의 악평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경계하기는 서양문화도 마찬가지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바로 이를 경계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술에 취하면 과묵한 사람이 있고 다변인 사람이 있다. 평소의 다변도 쓸모 없는 터에 취중 다변은 더욱 아무 쓸모가 없다. 말이 많다보면 실언이 나온다. 이해찬 국무총리의 실언이 많다. 그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의 건강문제를 언급한 실언은 일종의 기밀 누설이다 싶었는 데 아니나 다를까 청와대의 공식 반응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허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청와대 발표가 있게 된 것은 이 총리의 다변이 유죄다. 그는 총리실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허리가 안 좋아 한 시간 이상 앉아있지 못한다’ ‘골프를 한 번 치고나면 허리 통증이 2주간 가는 모양이더라. (당선자 시절의) 디스크수술이 깨끗하게 안 된 것 같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 총리는 대통령과의 관계, 즉 그만큼 잘 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는 진 몰라도 국가 원수의 건강문제를 함부로 누설한 것은 총리로서 심히 부적절한 실언이다. 왕년의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링에 오르면 승패에 대한 초조감을 다변으로 커버하곤 했다. 말이 많은 것은 심리적 초조감의 토로라는 것이 심리학의 분석이다. 일상의 ‘다변은 소인’이라고 했다. 이 총리가 권력에 취해 초조한 진 몰라도 다변증이 국익을 해친 덴 간과하기가 어렵다. 그는 갈수록 말이 많아지는 증세가 심하다. 아울러 이런 저런 실언 또한 점점 많아진다. 이 총리의 다변은 가히 병적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 임양은 주필

북녘과 쿠바

외신이 전한 카스트로 반대 시위는 충격이다. 카스트로가 1959년 쿠바 공산화 혁명으로 집권한 46년 이래 반체제 대중시위가 지난 20일 열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수도 아바나에서 반체제 인사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가진 카스트로 비판은 민주화·경제개혁·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는 성명이 채택됐다. 카스트로는 집권 초·중반과는 달리 강성 사회주의 국가이긴 해도 상당히 느슨하게 가고 있다. 쿠바 국민들은 정치적 자유만 속박당할 뿐 생활이 자유롭고 경제적 궁핍도 상당히 면했다. 외국인 대상의 관광업 진흥으로 외국인 출입도 자유롭다. 남쪽 비료를 얻어가기 위해 지난 22일 울산항에 입항한 북쪽 선박 백두산호 선체엔 빨간 글씨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늘 함께 계신다’라고 씌어 있다. 남쪽에서 주기로 한 비료 20만t을 육로로 수송해주고 있지만 북쪽은 한시가 급하다. 모내기가 한창인 논에 적기 시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로 수송을 다 기다리기엔 시일이 걸려 8만t은 자기네들이 여섯차례에 나눠 배로 실어가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호 선원은 비료 인수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배에서 내려올 뿐 대부분의 선원들은 하선이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한다. 당장 식량난이 더욱 극심해진 북쪽은 올 농사에 한톨의 곡식이라도 소출을 더 내야할 판이다. 저 사람들에게 비료는 곧 식량과 같다. 지구촌에 남은 강성 사회주의 국가는 북쪽과 쿠바 두 나라 뿐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은 말이 사회주의 지 사실상 자본주의로 간 지가 오래다. 쿠바는 그래도 국제사회에 구걸을 요청할 정도로 심한 식량난 같은 건 없다. 그런데도 반체제 대중집회가 열렸다. 북쪽은 연일 탈북 사태가 날만큼 식량난이 갈수록 심하다. 이런데도 여전히 수령론이 지배되고 있다. 지구촌에 남은 단 두 나라의 강성 사회주의 국가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쿠바의 반체제 운동의 추이가 앞으로 주목된다. /임양은 주필

지방의원 유급화

지방의원에게 월급을 주자고 한다. 한나라당이 이를 제의하고 열린우리당이 호응하고 행정자치부는 긍정적 검토에 나섰다. 주면 얼마를 줘야 할까, 지방의원들은 부단체장급 처우를 요구하고 있다. 행자부가 어림잡은 계산만으로도 연간 최소한 1천억원의 추가부담을 안는다. 대신 전국의 682명인 광역의원을 500명선, 3천496명인 기초의원을 2천명선으로 줄이는 선거구제 개편이 논의될 것 같다. 그래봐야 엄청난 부담엔 큰 차이가 없다. 줄테면 정부 돈으로 주라는 말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중앙 정부와 중앙 정치권에서 거론했으니 너희들 돈으로 주라는 것이다. 정부 예산도 국민의 세부담이긴 마찬가지지만 지방재정이 열악하므로 지방비로서는 부담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방비 부담이 지방자치에 합당하므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해야 한다면서 정부 부담은 어림없는 소리로 치부하고 있다. 지방의원이 무급이라지만 지금도 일당 및 수당을 받고 있다. 광역의원은 연간 2천760만원, 기초의원은 1천880만원이다. 이 돈을 회의에 나가든 안 나가든 꼬박 꼬박 지급받는다. ‘의원’이란 지위로 보아 만족할 금액은 아닐지 몰라도 웬만한 월급쟁이와 맞먹는다. 아니 그보다 더 못한 월급쟁이도 많다. 궁금한 게 있다. 구조 조정이다, 군살을 뺀다하여 수많은 공무원을 감원한 게 수년 전이다. 이래 놓고 4천명이 넘는 지방의원을 부단체장급이든 국장급이든 과장급이든 유급화하면 그 많은 감원 공무원은 무엇 때문에 퇴출한 것인 지 설명이 안 된다. 지방의원 유급화는 지역주민의 자치비 부담을 무겁게 가중시킨다.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이 정부와 정치권의 선거선심으로 지역주민들 어깨만 더 짓눌린다. ‘말 타면 견마잡히고 싶어 한다’고 했다. 지방의원이 유급화되고 나면 틀림없이 비서나 보좌관 타령이 또 나올 것이다. 조그마한 나라에 하릴 없는 감투만 자꾸 늘어갈 것 같다. 이런 걸 고치는 게 개혁인 데 이 정권은 개혁을 엉뚱한 데서만 찾는다. / 임양은 주필

대한제국 워싱턴 공사관

현존하는 ‘대조선 주미국 화성돈(워싱턴) 공사관’은 미국 워싱턴 DC 로간 서클 15 주택가에 있다. 고종황제가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1891년 11월 28일 2만5천달러라는 거액을 들여 구입했다. 대한제국은 박정양을 초대 주미 공사로 임명하는 등 대미외교를 활발히 펼쳤으나 1905년 을사늑약 때 외교권을 상실, 공사관이 사실상 폐쇄됐다. 워싱턴시 토지문서와 학계는 이 공사관 건물이 1910년 6월 29일 단돈 5달러에 우치다 야수야 주미 일본공사에게 넘어 갔고, 얼마 뒤 한 미국인이 10달러에 산 것으로 돼 있다고 전한다. 일제가 사실상 조작한 형식적인 문서를 통해 공사관을 강탈해 간 것이다. 당시 워싱턴에 외교공관을 두었던 나라가 50개국도 안됐던 것을 고려하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주 외교를 펼치려 던 고종과 대한제국의 의지가 서려 있는 건물이다. 빅토리아풍의 붉은 벽돌 3층 건물인 공사관 건물은 1890년에 세워졌음에도 외관이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백악관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미국인 노부부가 1977년부터 소유하고 있으며 시가는 80달러 수준이다. 그동안 한인단체 등에서 매입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건물주가 교민들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건물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최성규 목사)가 자주 외교의 상징인 옛 공사관 건물을 사들여 역사교육과 민간교류센터로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100만명 서명과 함께 건물 매입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한기총은 건물 매입이 이뤄질 경우 층별로 일본식민지배 역사자료실, 한·미외교 120주년 기념관, 한국홍보관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미주 이민 100년의 자료를 모아 전시하고 장기적으로 이 일대를 한·미교류의 상징적인 곳으로 꾸며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공사관 건물이 워싱턴에 있었다는 사실과 이후 공사관이 겪은 비운과 곡절은 살아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다. 공사관 건물 매입은 망국의 그늘에 가려 있던 세월을 뛰어넘어 제 쉴 곳을 찾게 하는 일이다. 옛 공사관 찾기 운동의 동참도 중요하지만 먼저 외교통상부가 적극 앞장 서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단원 김홍도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는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다. 겸재(謙齋) 정선이 우리 고유의 화풍을 세워 진경(眞景)시대를 활짝 열었다면 단원은 진경 회화를 화려하게 마무리지은 화선이다. 표암(豹菴) 강세황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된 단원은 일곱살 아래인 정조(正祖)의 어진을 그리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는 산수·인물·영모·화조·사군자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신선이나 불교의 고승·나한 등을 그린 도석(道釋) 인물화에서도 모두 우리 모습, 우리 인물로 그려놓았다. 소 타고 함곡관을 나서는 노자도 주먹코에 눈 작은 조선 노인이며, 달마 역시 눈을 부라린 중국인이 아닌 조선의 선승이다. 남해 관세음보살은 우리네 어머니처럼 푸근하게 그려졌다. 조선초기 그림에 등장하던 물소가 우리의 소로 그려지게 된 것도 단원에 와서의 일이다. 단원은 중국 남종화의 영향을 받아 공간 구성에 무척 신경을 썼다고 전한다. 필묵이 현란하고 세련된 것이 특징이다. 산수보다 인물화에 더 주력한 인상인데 금강산에 직접 가서 사생을 한 그림들도 있다. 임금의 안목에 맞춰서인 지 독창성 있는 화면 구성보다는 실경들이 대부분이다. 단원은 연풍현감을 지냈지만 화원 신분에 불만도 많았던 모양이다. 중인이지만 사대부인 척 그린 그림들도 많다. “空山無人 水流花開(빈산에 사람 없어도 절로 물 흐르고 꽃 피더라)”같이 문인들의 세계를 그린 그림이 있는가 하면, 기생의 춤사위처럼 요염한 자태의 매화그림도 있다. 화원 그림이기엔 문인의 체취가 강하고, 문사들은 따를 수 없는 심오한 화기가 보인다. 만만치 않은 장난기가 드러난 작품도 많다. 진흙에서 옆걸음 치는 게를 통해 선비의 기상을 흠모하기도 하고, 호랑이 탄 스님 그림에서 호랑이를 동네 개처럼 묘사해 친밀도를 나타냈다. 단원의 작고 연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1805년까지의 행적은 보인다. 그렇다면 올해는 단원 탄신 260주년이자, 서거 200주기가 되는 해이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02-762-0442)에서 29일까지 열리는 ‘단원대전’에 가 보면 단원의 작품 120여점이 전시돼 있어 자유분방한 천재의 그림세계에 푹 잠기게 된다. 매사냥하는 그림에선 구속받지 않으려는 단원의 모습이 보인다. /임병호 논설위원

호레이쇼 넬슨

‘영국의 이순신’이라고 할 수 있는 호레이쇼 넬슨 제독은 1758년 영국 노퍽 버넘소프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외삼촌의 소개로 해군에 입대한 넬슨은 21세 때 프리짓함 함장에 기용돼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함으로써 영국 해군사상 최연소 함장 기록을 세웠다. 이후 10년 간을 대부분 서인도제도에서 근무한 넬슨은 1793년 나폴레옹이 지배하는 프랑스와 전쟁이 발발하자 지중해 함대로 전근됐다. 나폴레옹군과 싸우면서 넬슨은 자신의 명성을 한껏 드높였다. 하지만 1794년 코르시카섬을 점령하는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었으며, 1797년 테네리페 전투에선 오른쪽 팔까지 잃는 큰 부상을 입었다. 1801년 넬슨은 발트해 함대의 부사령관으로 하이드 파커 경의 지휘 아래 덴마크 해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했다. 당시 전투 와중에 파커 경은 넬슨에게 후퇴 신호를 보냈지만, 넬슨은 전투를 계속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결국 넬슨이 후퇴하지 않고 버틴 덕택에 영국은 큰 승리를 거뒀으며 넬슨은 자작 칭호까지 받았다. 1803년 지중해 함대 사령관이 된 넬슨은 프랑스 함대를 봉쇄하며 줄기차게 몰아붙였다. 1805년 영국의 해상 봉쇄를 벗어난 프랑스 해군은 스페인 함대와 합류, 그해 10월21일 트라팔가르에서 넬슨과 역사적인 해전을 치렀다.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는 33척, 영국 함대는 22척으로 함정 수에서 차이가 났지만 전투는 넬슨의 작전대로 진행됐다. 이 결과 영국 함대는 19척의 적함을 격침 또는 나포한 반면, 단 1척의 함정만 잃었을 뿐이었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의 패배로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 야망은 완전히 좌절됐지만 넬슨은 “신에게 감사한다. 나는 내 임무를 다했노라”는 말을 남기고 전사했다. 그런데 넬슨의 삶 가운데 아이들을 생각하여 영국 역사 교과서에서 삭제된 부분이 있다. 정치적 격랑 속의 처신과 부적절한 사생활이다. 그렇다고 지금 영국 사람들은 넬슨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추앙한다. 한국 이순신 장군은 전쟁이 끝나는 날 적탄에 가슴이 관통되어 죽어가면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이순신은 전 생애를 통해 한 점 티끌이 없었다. 이것이 넬슨과 이순신의 차이다./임병호 논설위원

주부의 가사노동

주부의 가사노동엔 끝이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 잠들기까지 내내 하루의 일과가 계속되지만 잠 자다가 일어나 일을 챙길 때도 적잖다. 예를 들면 아이가 아파 돌보거나 수돗물 단수에 대비하거나 새벽 청소차에 쓰레기를 들고 바삐 나가야 하곤 한다. 이런 때 남편들은 으레 단잠에 그대로 빠져 아내가 뭘 하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어느 주부 가사노동 조사에 이런 말이 있다. ‘남편들은 아내가 집에서 드라마나 보고 빈둥댄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실제 주부들은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한다. 게다가 휴가도 없고 병가도 낼 수 없고 연금도 받을 수 없는 24시간 비상대기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이 주부다’라고 했다. 이만이 아니다. ‘아이들을 책임감있고 예의바른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내고 가정의 안정을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고도 했다. 이 조사는 남편과 자녀 두 명을 둔 가정의 주부를 표본으로 하여 분석된 것으로 가사노동 시간이 주당 100시간 이상인 걸로 나타났다. 이를 돈으로 따지면 연 13만1천471달러(약 1억3천120만원)의 노동가치를 지녔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계산이다. 맞벌이 부부들이 많다. 아내가 맞벌이 나간다고 이같은 가사노동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 귀가하면 집안 일을 또 다 챙기는 것이 맞벌이 주부들이다. 가사노동 가치와 직장소득을 생각하면 남편들은 맞벌이 아내를 업어주어도 그 노고에 다 감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다. 가정을 꾸려가는 주부의 힘이 새삼 위대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남편들은 바깥일 한다고 내세워 큰 소리 칠 일이 못된다. 아내는 연봉 1억3천만원의 주부다. 하루의 고된 일과를 밤에 잠으로 피로를 푸는 곤히 잠든 아내의 모습에 감사할 줄 아는 남편이 가정의 행복을 아는 남편이다. / 임양은 주필

청계천

청계천(淸溪川)은 이름 그대로 물맑은 내였다. 청풍계천, 옥류동천이라고도 했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남산에서 나오는 지류를 합쳐 중랑천을 거쳐 한강으로 유입된다. 조선 태종11년(1411년)에 대대적인 하천 정비사업을 했다. 양안에 본격적인 석축공사를 한 것은 영조 때다. 준설작업 또한 크게 벌였다. 청계천에 세운 광교·수표교·오간수교 등 24개의 다리는 한양 생활의 세시 풍속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청계천이 추한 ‘탁계천’이 된 것은 6·25 한국전쟁 직후다. 청계천 냇가 양쪽 길에서 하상에 기둥을 세워 달아낸 판잣집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막걸리를 놓고 작부와 함께 젓가락 장단에 맞춰 ‘굳세어라 금순아’같은 전쟁가요를 부르는 니나노집 투성이었다. 돈 많이 안 들이고 전쟁의 상흔을 달랠 수 있었지만 이 바람에 청계천은 오물로 뒤덮였다. 마침내 판잣집 철거는 다 됐으나 이미 청계천은 물맑은 옛 청계천이 아니었다. 1958년 시작하여 1961년 완공된 것이 청계천 복개공사다. 복개된 너비 50m의 청계천로 위엔 광교에서 청계천 8가에 이르른 고가도로가 건설됐다. 청계천 복원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포기했던 생태계 회복의 도전이다. 2002년 청계고가도로가 마침내 40여 년만에 철거됐다. 이어 청계천 복개도로가 뜯겼다. 그러나 속 살을 드러낸 청계천은 예전의 청계천이 아닌 것을 다듬어 정비한 것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이다. 수도 서울의 상징인 청계천을 살린 것은 잘 한 일이다. 사시사철 맑은 물 줄기를 대는 덴 물론 어려움이 많으나 어떻든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할까, 청계천 복원사업을 둘러싼 추문이 꼬리를 문다. 행정2부시장 구속에 이어 서울시 관련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다. 청계천 맑은 물 사업이 서울시 공무원들의 더러운 수뢰 추문으로 번지는 것은 정말 불행하다. /임양은 주필

특사 ‘남용’

석탄절 특사의 진실이 아리송하다. 대선자금 관련의 경제인 특사 사유가 경제를 위하고 사회통합을 위해서라고 한다. 이리하여 30명의 대선 불법자금 관련자들이 사면됐다. 그런데 이에 해당되지 않은 한 사람이 대통령의 특사 혜택을 받았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유죄확정은 대선자금이 아니다. 개인 비리다. 이도 경제를 위하고 사회통합을 위한다고는 절대로 말 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특사를 하기로 하면 정말로 특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강금원씨 말고도 많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는 대통령의 측근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혜택을 누렸다. 30 대 1이다. 불법 대선자금 특사 30명에 개인비리 특사가 1명이다. 이렇게 되면 도대체 누가 누구 덕을 보았는 지 분간이 잘 안 된다. 강씨 1명을 봐주기 위해 30명이 무더기 덤으로 특사됐는 지, 30명 틈에 강씨를 끼워넣었는 지는 독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그나저나 어지간하다. 처음 경제인 특사설에 엉뚱한 강씨가 포함돼 비난이 일자 청와대는 확정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 그 결과를 보면 확정된 게 아니라 그때 이미 다 확정됐던 게 뻔하다. 역대 정권마다 측근 비리는 다 있었지만 자신의 재임 중 자신의 측근을 특사하기는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이다. 국민의 눈치따윈 외면하는 어지간한 뱃심이다. 이도 개혁이라면 노 대통령의 개혁은 거꾸로 가는 개혁인 것 같다. 오는 8·15에 또 특사가 있을 것으로 보는 광복절 특사에 벌써부터 말이 많다. 안희정씨를 비롯한 다대수 여권 정치인을 양념으로 야당 인사 몇 명 섞어 대거 특사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치개혁이란 것도 다 공염불인 듯 싶다. 이리되면 재판도 무의미하다. 사법부의 독립적 판단 효과를 특사 남용으로 침해해도 너무 하기 때문이다. 유권무죄인가, 측근들은 좋겠다. 죄를 지어 유죄가 확정되어도 특사가 기다리니 말이다. 이리저리 힘없는 민초만 당하고 산다. 사회정의가 실종됐다./ 임양은 주필

혈족상잔

뱀상어는 어미 몸속 알에서 부화한 뒤 헤엄쳐 다닌다. 놀랍게도 새끼들은 자궁 속에서 서로 잡아 먹는다. 여러 개의 기다란 촉수가 자라난 배아들은 어두운 자궁 속을 돌아다니며 형제 알들을 먹어 치운다. 어느새 이빨이 자라기 시작하고 몸집이 커진 배아들은 작은 배아들을 뜯어 먹는데 한 마리만 살아남을 때까지 이 과정이 계속된다. 먼저 부화한 검은독수리 새끼 ㄱ은 새끼 ㄴ이 부화한 지 몇 시간 안에 공격을 개시한다. 특히 ㄴ이 부모가 주는 먹이에 눈독을 들일 때마다 결국은 죽음으로 몰아 간다. 이런 ‘유아살해’ ‘형제살해’는 사다새, 황제펭귄, 백로, 미국황조롱이 등에서도 나타난다. 생태계가 풍부할 때는 혈족이 서로를 존중하고 아량을 베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히려 가족 구성원이 서로 빼앗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무서운 적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단위는 진화론적 이기주의의 극한을 보여주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가족집단 안에서 유전적으로 가까운 혈족들이 틈만 나면 유한한 자원을 둘러싸고 죽음의 전쟁을 벌인다. ‘먹이싸움’ 때문이다. 형제 살해만 있는 게 아니다. 사마귀는 교미 중에 암컷이 몸을 돌려 수컷의 목을 베어버리는데, 목 잘린 수컷은 놀랍게도 교미에 더욱 힘을 쏟는다. 목이 잘리면 뇌 바로 밑 신경절의 제어기능이 사라지기 때문에 더욱 열정적이될 수밖에 없다. 암컷은 이렇게 수컷을 살해함으로써 열정적인 교미와 먹이라는 두 가지 보상을 얻게 된다. 1년생 갈라파고스 물개는 어미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갓 태어난 새끼 물개에게 사납게 덤벼 들어 목을 물어뜯는다. 어미는 동생을 죽인 1년생 새끼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한 두 해 정도 더 키워준다. 동물들은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가젤과 이를 뒤쫓는 치타처럼, 사슴이나 얼룩말을 노리는 표범이나 사자처럼 생물종 간의 사투만 벌이는 게 아니다. 혈족 간의 싸움도 치열하다. 인간도 별 다르지 않다. 자식이 아버지를, 어머니를, 부모가 자식을,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이 텔레비전의 ‘동물의 왕국’에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에로배우

좋아서 에로배우(성인영상물 배우)를 시작한 사람, 특히 여성은 없다. 거의가 급박한 경제적 이유로 에로영화판에 발을 들여 놓는다. 호기김이나 극영화 진출이 여의치 않아 시작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 옷을 벗는다. 하지만 제작환경이 열악해 수입은 시원치 않다. 에로비디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에는 수익도 괜찮았고 전문배우로서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었지만 최근엔 인터넷을 통해 원초적인 외국의 불법 포르노물이 유통되면서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출연료도 형편없다. 여배우를 기준으로 에로비디오 한편 찍는데 60만~70만원, 인터넷 성인방송 1일 출연료가 15만~20만원 정도이다. 모바일용 누드 사진이나 동영상은 1일 촬영에 100만~500만원까지도 받을 수 있지만 대개 신인시절 한 두번으로 끝난다. 가끔 돈의 유혹에 못 이겨 해외로 나가는 배우도 있다. 출연료가 낮은 남자 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투잡스족’이 된다. 에로배우들을 더 힘들 게 하는 건 사회의 곱지 않은 세상이다. “실제 정사가 아니라 연기”라고 아무리 항변해도 포르노 배우와 동일시한다. 극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옷을 벗거나 정사장면을 연기하는 사람은 스타 탤런트이고, 에로배우들은 정사장면을 실연하는 포르노배우로 여긴다. 더구나 근래 검찰수사가 겹치면서 에로배우들은 ‘죄인의 심정’이 됐다. 처음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고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까지 받았는데도 음란물로 취급해 배우나 감독이나 ‘죽을 맛’이다. 그나마 감독들이 ‘적은 돈에 옷 벗는 배우들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게 위안이다. 우리 사회는 합법의 틀에서 하더라도 성과 관련된 직업군을 천하게 여기고 터부시한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금언은 우리나라에선 통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의 섹슈얼리티의 과잉시대가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존재는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내남 없이 사람들은 에로영화를 즐기면서도 출연배우는 이상하게 보는 이중성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에로배우로 산다는 것이 어려워 “적금 만기가 돌아오면 이 생활을 접고 조그만 가게를 낼 계획”이라는 한 여배우의 꿈이 봄나무처럼 보기에 좋다./임병호 논설위원

광명역 이용하기 운동

고속철도(KTX) 광명역이 날이 갈수록 황량해져 정말 대책이 시급해졌다. 주5일 근무제로 승객들이 늘어나야 할 금요일에도 역사(驛舍) 안팎이 한산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4월1일 고속철도 개통과 함께 문을 연 광명역사가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정부 탓이다. 당초 광명역을 시발·정차역의 기능을 모두 갖춘 수도권 남부 대표 고속철역으로 활용키로 하고 부지면적 8만평에 건축면적 1만5천평(지하 2층, 지상 2층), 역사 길이만 해도 가로 300m, 세로 150m에 이르는 초대형 건물을 총 4천68억원을 들여 완공했다. 하지만 경부선 출발역인 서울역과 호남선 출발역인 용산역 등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단순 정차역으로 개통됐다. 더구나 평일 134대의 고속철 경부· 호남 상·하행선 중 65%인 88대만 정차하고 주말에도 154대 중 98대만 정차하는 단순 정차역으로 전락했다. 광명역의 하루 평균 이용객수는 8천500여 명 안팎으로 서울역의 하루 평균 6만~9만여 명에 크게 못미치는 실정이다. 개통 때부터 문제가 됐던 연계도로망은 이처럼 저조한 이용률로 더욱 악화됐다. 현재 이 곳을 운행 중인 시내버스는 25개 노선이지만 모두 광명~안양, 광명~서울 순환노선 일색이고 그나마 수원, 의정부, 분당 등에서 광명역을 경유하는 인천공항 리무진 버스들은 광명역을 경유지에서 아예 빼버렸다. 단기간에 대중교통체계를 대폭 확충하고 광명역까지 경전철을 연계하는 방안을 빨리 추진하지 않으면 막대한 예산으로 건립된 대규모 역사가 애물단지로 변할 위기에 처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역사 인근에 위치한 안양 하수종말처리장과 근처 오리농장 도축장 등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악취가 바람을 타고 광명역으로 날아와 이용객들이 더욱 고통을 겪고 있다. 광명역사는 국책사업이 사전성 검토와 충분한 제반 여건 확보 없이 진행됐거나 목표 변경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여실히 보여 준다. 광명역사가 투자한 만큼 활용되기 위해선 우선 버스, 경전철 등 대중교통과 연계한 교통망을 확충하고 악취 제거에 주력해야 한다. 고속철도 기존선로를 활용, 경수선을 광명역사로 연결하고, 시민들이 앞장서 벌이는 ‘광명역 이용하기 운동’도 활성화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임병호 논설위원

이광재 의원

이승만 정권의 실세는 박찬일 청와대 비서관이었다. 그땐 비서실장이란 게 없었다. 그의 승인이 없으면 장관도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 말기의 실세는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그 역시 정부 요인의 대통령 면담 일정을 좌지우지하였다. 전두환 정권의 실세는 장세동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충복을 자처할 정도의 절대적 충성심은 절대 권력자의 신뢰를 사기에 충분했다. 노태우 정권의 실세는 박철언 의원이었다. 정권의 황태자라고 불렸을 만큼 대통령의 화려한 후광을 입었다. 김영삼 정권의 실세는 둘째 아들 김현철씨였다. ‘소통령’이라고 했다. 그의 주변엔 항상 해바라기족들이 들끓었다. 김대중 정권의 실세는 권노갑 의원이다. 그를 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가히 ‘리틀 DJ’라 할만 했다. 정권 말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리틀 DJ’의 막강한 실세를 이어받았다. 역대 정권의 막후 실세가 앞서 거명한 사람들만은 물론 아니다. 참으로 많다. 공통점은 집권자의 개인 연분으로 유착된 사실이다. 공조직으로 보기보단 사조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이른바 역대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름의 실세들이다. 노무현 정권의 실세인 이광재 의원의 러시아 유전 의혹사건 연루 정황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왕 아무개로부터 실세측근(이 의원)의 측근이 8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일부는 지난 총선에 유입된 것으로 전한다. 이 의원은 그래도 자신은 안 받았다며 당당하다. 물론 그 돈이 참모들에 의해 이 의원을 위해 쓰여졌는지,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는 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진 않았다. 그러나 염치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다. 적어도 자신이 부리는 사람에게 (설사 배달사고였다 해도) 뭉칫돈이 접촉된 게 밝혀졌으면 최소한 도의적 책임을 지는 태도라도 보여야 할 터인데 그렇지가 않다. “당당하다 못해 보기에 뻔뻔스럽다”는 말이 많은 게 세평이다. 역대 정권의 실세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영어의 몸이 된 사실이다. 정권이 바뀌면 허망한 권력의 힘을 신앙화하는 실세의 오만이 가련하다면 가련하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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