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교과서

고등학교 문학교과서 ‘춘향전’에 나온 “여봐라! 서울서 동부승지 교지(校旨)가 내려왔다” 중 ‘교지’의 한자는 ‘敎旨’인데 잘못 표기됐다. 조지훈의 ‘지조론’ 중 “적빈(赤貧)이 여세(如洗)라”는 말은 ‘몹시 가난하여 마치 물로 씻은 듯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이 맞는 풀이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손씻은 물로 국을 끓여 먹을 정도로 가난함’을 비유한 말이라고 썼다. 이런 오류가 무려 100군데가 넘는다. 최근 고등학교 국어와 문학교과서의 한자 표기와 번역 등이 엉터리라는 지적이 나온 직후,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와, 교과서 검정위원이 한 말이 몹시 거슬린다. “인력과 기간이 부족한 교과서 검정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평소 절실히 느꼈습니다.”(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 “과목별로 타 영역 전문가와 협의하지 않는 현재의 검정시스템에선 교과서의 오류는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교과서 검정위원).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문제점이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정하지 않았다니 얼마나 무책임한 얘기인가. 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해 진행하는 교과서 검정작업은 투입 인력, 기간이 과목마다 다르지만 보통 3~4개월 이내로 10여 명이 수행한다. 교과서 심의가 2~3차 걸쳐 이뤄지지만, 한 번 심사하는 기간이 보통 보름 이내이기 때문에 수십 종의 책을 정밀하게 심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과서 집필자의 양식을 믿는 수준에서 심사가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검정작업을 호텔, 콘도 등에서 비밀리에 수행하는 것도 문제점이다. 검정위원들이 원전(原典) 등 충분한 자료를 참고하지 못하고 기억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실’은 보나마다이다. 특히 각 과목의 검정위원에 관련 영역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은 더욱 큰 문제점이다. 출판사들이 집필단계에서 비용을 줄이려고 타 영역 전문가들을 배제하는데 교육 당국의 검정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국어나 문학교과서 집필, 검정 과정에 한문전공 교사를 참여시키지 않는 것이다. “교과서의 오류를 확인해달라는 어느 학생과 교사의 요청에 따라 작업을 했습니다.” 이번에 한자 오류를 지적해낸 장호성 교수의 말이다. 집필위원이나 검정위원보다 부실을 먼저 발견한 학생과 교사들이 있는 게 천만다행이다./임병호 논설위원

초록 생명

식물과 관련된 주요 상징은 신령스럽다. 참나무는 로마신화에서 으뜸가는 신 제우스의 나무로 여겨졌다. 참나무는 번개에 자주 맞는데 번개는 제우스의 주요 무기이기 때문이다. 자작나무는 러시아에서 여성을 상징한다. 성령강림대축일 직전 숲에서 어린 자작나무를 잘라와 여자 옷과 리본으로 치장했다. 연꽃은 불교 뿐 아니라 힌두교에서도 신성시 했다. 열매가 익는 동안 꽃을 피우기 때문에 스스로 생성되는 우주 창조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장미는 여신들의 상징이었던 것이 이어져 훗날 사랑과 순결, 나아가 성모마리아의 상징이 되었다. 성당에는 장미무늬 창문을 달았다. 마야 문명 권에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존재로 숭배된 세이바나무는 유사이래 세계 곳곳에서 신의 메시지를 중개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맨드레이크는 뿌리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유럽에서 악마의 식물로 여겼다. 그래서 맨드레이크를 뽑아낼 때 악마가 비명을 지른다고 믿었다. 고대 인류에게 나무는 때로 신의 자격에 합당한 외경의 대상이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경외심을 일으키는 나무는 전나무였다. 성자 보니파키우스가 이교도의 성지에서 신성시 되는 참나무를 베자 그 곳에 전나무가 자라났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성탄 시즌마다 유럽에서만 2천만 파운드(약 400억원)어치의 전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된다. 고대의 왕들은 나무(숲)와 깊이 관련돼 있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桓雄)이 태백산의 박달나무(神壇樹) 아래로 왕림하였고, 어린 혁거세 부부가 성장한 곳이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 숲속(昌林)이다.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가 계림(鷄林)의 숲속에서 발견되고, 또 그래서 신라가 따로 ‘계림’이라 불렀다는 것은 나무를 신성시했기 때문이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렸지만 실은 천상(天上)의 종족이라고 믿었다. 옛날 인류는 ‘정령이 깃든 식물들을 학대하면 천벌이 내린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구상에서 식물들이 학대를 받고 있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숲이 사라지고, 산불로 수백 년 살아온 삼림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다. 그래도 봄철이면 초록 생명들이 탄생한다. 산에 들에 가득한 초록 생명들이 참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임병호 논설위원

벚꽃

대다수 사람들은 벚꽃을 일본의 국화(國花)로 알고 있지만, 아니다. 일본의 국화는 가을에 피는 국화(菊花)다. 벚꽃은 일본왕이 좋아하는 일왕가의 꽃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벚꽃심기 캠페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졌다. 미국 백악관 앞에까지 벚꽃을 보급했을 정도다. 일본인들이 벚꽃을 좋아해 일제 강점기 때 도시 미화용으로 벚나무를 많이 심은 것은 사실이지만, 벚나무 원산지는 엄연히 한국이다. 40여년 전에 우리나라 학자와 일본학자가 현장을 답사하고 “벚꽃 원산지는 제주도가 확실하다”고 판정한 사실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깊고 깊은 산속에도 벚꽃이 산재해 있다. 그 많은 벚꽃을 일본이 심었을 리는 더욱 만무하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벚나무 개체수가 많았다. 지금도 시골 야산에서는 개벚나무가 흔히 발견되고, 버찌를 따먹는 참벚나무도 많이 분포돼 있다. 다른 종보다 꽃이 화려하고 풍성해 가로수로 애용되는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도다. 진해시는 광복 후 한동안 일본인들이 심은 ‘왕벚나무 청산작업’을 벌이다 1960년대 초반 원산지가 제주도임이 확인되자 되살리는 데 주력하였다. 현재 진해 시가지를 뒤덮고 있는 30여만 그루의 왕벚나무는 시당국과 시민들의 수십 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다. 진해의 군항제 등 3월말 남쪽에서 시작된 벚꽃 축제가 어느새 서울까지 북상했다. 8일부터는 충북 제천시에서 10일 간 청풍호반 벚꽃 축제가 펼쳐졌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뒷길 윤중로에서도 벚꽃 축제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어느 지역에선 벚꽃이 눈송이처럼 난분분 흩날리며 지고, 다른 지역 한 곳에서는 벚꽃이 절정의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경기도에도 벚꽃이 사람들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곳이 많다. 그 중 수원의 팔달산 벚꽃은 특히 유명하다. 경기도청 경내외에 피어 있는 벚꽃숲과 팔달산 산책로의 벚꽃 터널은 가히 환상적이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팔달산에 벚꽃이 만개하면 지인들과 함께 꽃그늘에 앉아 술을 권커니 잣커니 마시는 것도 여유를 누리는 삶이다. 낭만적인 인생이다. 벚꽃이 질 무렵도 좋다. 술잔에 내려 앉는 꽃잎을 함께 마시면 바로 주선(酒仙)이 된다. 신선(神仙)이 된다./임병호 논설위원

이 총리의 골프 사죄

이해찬 국무총리가 양양 산불이 일어난 식목일 골프 행각에 국회서 정중히 사과해 파문을 잠재웠다. 이 총리는 “국민에게 사과한다” “근신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칼날을 세워 질책에 나선 야당 의원들을 오히려 맥빠지게 만들었다. 고위 공직자의 골프 행각이 종종 말썽을 빚는 것은 골프 자체가 지닌 사회정서의 위화감 때문이다. 흔히 골프를 이젠 대중스포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골프 한 번 치는 데 10만원 짜리 수표 너댓장이 나가는 귀족형 스포츠를 즐길 대중은 아직 없다. 장비를 갖추는 데만도 수백 수천만원이 든다. 같은 공무원이라도 중·하위 공무원은 이래서 엄두도 못낸다. 고위 공직자일 지라도 제돈 내고 골프 치는 예는 거의 볼 수 없다. 골프회동을 상납받기가 일쑤다. 제돈 내고 치는 것 같아도 월급이 아닌 업무추진비로 충당한다. 고위 공무원이 아닌 정치인의 골프 행각 역시 마찬가지다. 공직자의 골프 행각은 이래 저래 국민사회의 거부감을 사고 있다. 여기에 적절치 않은 시기에 골프 행차에 나서 더욱 말썽이 되곤 한다. 큰 비가 내려 홍수가 나거나 가물어 대지가 타는 판에 골프를 즐기기도 하고 큰 사건 사고가 나 야단인 데도 한가하게 골프를 해 말썽이 된 예가 적잖았다. 이번에 이 총리 또한 양양 산불로 동네가 불타는 등 아비규환이 벌어진 판에 ‘굿 샷’을 즐기며 노닥거렸으니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있을 수 없게 됐다. 물론 그가 산불이 그토록 크게 난 줄 알면서도 골프를 쳤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공휴일인 식목일을 골프나 치는 날로 여겼던 것 부터가 잘못된 인식이다. 그리고 산불 보고의 전후 사정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총리로서 지극히 부적절한 처신이 되고 말았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 질의를 되받아 치기로 소문난 그가 식목일 골프 질책만은 고분 고분하게 고개를 숙인 건 염치를 좀 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강조하고 싶은 건 누구든 제 돈으로 골프 칠 형편이 못되면 아예 골프를 치지 말라는 것이다. 굳이 골프가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은 많다./ 임양은 주필

찰스의 재혼

처녀 총각 시절 싹틔운 사랑을 35년의 밀애 끝에 이혼녀 이혼남이 된 50대 중반 넘어 결실을 맺었다는 찰스 영국 왕세자의 결혼 보도는 마치 한편의 영화같다. 그러나 아름다운 영화이기 보다는 더러운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찰스와 카밀라는 미혼이던 20대 초반에 서로 사랑했으나 카밀라는 찰스의 친구와 결혼했다. 따지고 보면 비운의 왕세자빈이 된 다이애나의 불행은 자유분방한 그녀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찰스·카밀라 커플의 그칠 줄 몰랐던 혼외정사에 기인했다. 찰스는 카밀라가 결혼한 뒤에 다이애나와 결혼했으나 옛 애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져왔다. 결국 찰스는 두 아들, 카밀라는 1남1녀를 두고 각각 이혼하고 동거하다시피 하면서도 결혼 발표는 차마 할 수 없었다. 실례로 1997년 다이애나의 교통사고사는 이들의 결혼에 악재가 됐다. 가까스로 결혼 발표를 한 것이 지난 2월이다. 그러나 이번엔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이 결혼식과 겹쳐 결혼식을 늦추어 지난 9일 비로소 35년만의 공식 커플이 될 수 있었다. 공식적인 부부는 됐지만 공식 석상에 카밀라는 나가지 못한다. 왕세자빈의 칭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이 왕위를 계승해도 왕비가 아니다. 영국 국민에게는 아직도 다이애나가 정신적인 왕세자빈으로 각인돼 있다. 카밀라로서는 아무리 찰스가 깐깐한 다이애나보다 포근한 자신에게 깊은 애정을 갖는다해도 그녀가 영국 왕실에 들어설 자리는 없다. 올해 찰스는 56세, 카밀라는 57세다.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황혼에 공식 커플이 된 이들의 결혼이 여론의 화살을 피하지 못한 것은 그간의 스캔들이 다이애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보는 영국 국민들의 정서 때문이다. 영국왕 에드워드 8세는 1936년 미국의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스스로 퇴위해 ‘사랑을 위하여 왕관을 버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찰스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의 압력을 받고 있다. 도덕적으로 왕이 될수 없다는 것이다. 찰스 왕세자가 과연 왕관을 포기할 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볼 일이다. /임양은 주필

박사

‘고구려·백제 때 학문이나 전문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벼슬’. 박사(博士)에 대한 국어대사전의 낱말 풀이다. 고구려의 ‘태학박사’ 백제의 ‘오경박사’가 이에 해당된다. 서기 286년 일본의 초빙을 받고 천자문과 논어 등을 가지고 건너가 오오진(應神) 천황의 황실 사부(師傅)되어 한문을 보급시킨 백제의 왕인(王仁)박사가 이러한 박사다. 왕인의 자손은 얼마동안 대대로 일본 황실에서 일하는 특전을 누렸다. 조선 왕조에선 성균관·홍문관·규장각·승문원에 박사를 두었다. 공통점은 고구려 백제나 조선에서나 박사는 다 학문을 가리키는 것이 소임이었다. ‘박사’라고 하면 학문의 권위자로 존경받기는 마찬가지였던 게 언제부터였는 지 흔해 빠진 게 ‘박사’가 됐다. 흔해빠진 ‘박사’를 그나마 못된 주제에 웬 시비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어떻든 어지간 해서는 존경받지 못한 것이 이즈음의 박사인 것 같다. 한 해에 수 천명씩 사태 나듯이 쏟아지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 양(量)도 문제이지만 질(質)이 더 문제다. 박사 실업자가 많은 게 박사가 많은 탓도 있겠지만 박사의 품질이 낮은 데 원인이 더 크다. 예컨대 ‘행정학 박사’라고 하면 행정학의 달인으로 알지만 그렇지가 않다. 자기가 연구한 조그마한 특정 분야만의 지식에 그칠 뿐 행정의 기초가 되는 ‘행정행위’나 ‘행정처분’ 등 하나 제대로 설명 못하는 ‘행정학 박사’가 많다. 박사의 전공을 세분해 박사 칭호를 붙이든지, 아니면 다른 대책을 세우든지 해야 한다. 여기에다가 돈 주고 박사 논문을 사는 사례까지 있어 말썽이 되곤 한다. 또 박사 논문 심사가 헤픈 것도 문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박사 남발을 막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대학 구조 조정과 함께 대학원 역시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한다. 석·박사 과정의 승인 요건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많이 뒤늦긴 했으나 지금부터라도 ‘박사’다운 ‘박사’가 나오도록 하는 것은 학문의 오염을 막는다고 보아 격려할만 하다. 지금 같아서는 박사 같은 고급 인력을 놀린다지만 박사 같지 않은 박사가 많아서 놀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다./임양은 주필

독도 역사의식

‘독도’라는 용어는 우산도(1454년) 삼봉도(1471년) 자산도(1696년) 석도(1900년) 독도(1906년)로 이름을 달리하며 문헌에 등장했다. 서양에서는 프랑스 어선 리앙쿠르호가 1849년에 독도를 발견하고 ‘리앙쿠르 록(Liancourt Rocks)이라고 좌표상에 표기했다. 독도는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방위의 극동을 표시하는 곳이다. 동도와 서도 2개의 섬과 주변의 36개의 작은 암초들로 구성돼 있다. 독도는 생태계의 보고이며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독도 근해에는 북쪽으로 ‘대화퇴’라는 얕은 바다가 있고 대마난류와 북한한류가 교차하는 지역이어서 플랑크톤이 풍부, 동해에서 가장 중요한 어장이다. 수심 200m 이하에는 해양심층수가 있으며 수심 300m 이하에는 LNG로 환산해 6억t 가량의 하이드레이트가 매장돼 있다. 이는 우리 국민이 3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쟁점은 고문헌 존재 여부, 17세기 실효적 지배, 1905년 시마네현의 고시효력,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을 들 수 있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명백하게 기술한 것은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가 처음이고 ‘신증동국여지승람’(1531) ‘은주시청합기’1667년 사이토 편찬) ‘조선팔도지도’(하야시시헤이 1785년 제작) ‘태정관 공문서(일본 최고 국가기관에서 1877년 만듦) 등의 객관적인 자료들이 있다. 도해면허(1661)를 근거로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다고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는 베트남 미얀마 필리핀 등 외국에 나가는 선박에 도해면허를 발급했다. 이것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다. 또한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울릉도를 울릉군으로 승격시키면서 당시 울릉군 관할구역으로 독도(石島)를 명시했다. 그러나 시마네현 의회가 3월16일 ’독도의 날’ 조례를 제정하고 주한 일본대사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침탈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독도 관련 부분이 크게 왜곡된 역사교과서 공민교과서 지리교과서도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했다. 독도가 한국땅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들불처럼 퍼지는 독도에 대한 사랑과 역사의식이 여름 한 때 지나가는 소나기가 돼서는 안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토요휴업제

지난달 26일 처음으로 실시한 전국 초·중·고교 ‘토요휴업제’에서 빈부의 격차가 드러났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휴일을 만끽한 학생들이 있었지만 반면 부모와 함께 토요일을 보낼 수 없는 맞벌이 가정 등의 학생들은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전국 시·도 교육청과 학교들이 맞벌이·저소득층 가정 학생들을 위해 스포츠 댄스·인라인 스케이트·토론·시낭송·종이접기 등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준비 부족과 저조한 출석률로 ‘토요출석생’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단 2명이 등교한 학교에서 이미 읽은 책을 나눠주며 독서감상문을 쓰라고 했다. 수원 일부 고등학교는 자율 학습 등을 강요해 학생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담임교사가 토요출석 여부를 묻는 설문지의 ‘출석 희망’란에 강제로 기재하도록 했는가 하면 출석 거부 학생에게는 체험학습 보고서를 제출토록 해 등교를 권유했다. 문화시설 태부족도 문제점이다.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한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유명 놀이공원과 공연·관람시설로 몰려 에버랜드와 롯데월드의 경우 각각 직전 토요일의 갑절에 이르는 4만9천여 명과 2만7천여 명이 다녀갔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한 미술전시회에는 학생 관람객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 하지만 3시간 이상 줄을 서야하기 때문에 관람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문화·공연시설 등이 부족한 것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저소득층 대책이다. 중산층 이상 자녀들이 다양한 문화혜택을 누리는 데 비해 소외계층·농어촌 자녀들은 학교교육 이외의 문화적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토요휴업제 시행은 주5일 근무제의 연장이다. 우리 사회를 ‘웰빙(참살이) 공동체’로 격상시키는 일이다. 토요휴업제가 교육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정부와 지역사회가 빈곤층 학생들을 적절히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체계적인 사회복지교육시설을 마련하지 않으면 토요휴업제는 빈부감 위화감만 조성할 우려가 크다. 시행초기의 부작용을 속히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스크린 쿼터

근래 국산영화 제목이 충동적이고 엽기적 경향으로 가고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 ‘살인의 추억’ ‘여고생 시집보내기’‘주먹이 운다’ 등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외국영화 역시 잔혹한 게 많다. 걸핏하면 권총이 난무한다. 심지어는 기관총질로 인명을 삼대밭 쓸듯이 쓰러뜨린다. 그래도 제목은 충동적이거나 엽기적이진 않다. 국산영화 제목의 자극화 현상은 관객 유인 술책이다. ‘봐라, 제목이 이런데도 안 볼 수 있느냐’는 식이다. 그같은 영화의 작품성 평가는 관객의 판단에 맡긴다. 문제는 반사회성이다. 흔히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방종은 다르다. 청소년층의 모방범죄 중에 영화를 보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청소년들이 적잖다.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이다. 스크린 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제도)가 크게 줄어들 것 같다. 현행 연간 146일에서 약 반으로 줄게 될 것으로 보인다. 스크린 쿼터는 국산영화 진흥을 위해 극장마다 의무상영 일수를 지키도록 규제해온 제도다. 그동안 정부는 미국 등에서 이의 축소나 철폐를 수차 요청해 왔으나 미루어 왔다. 또 영화인들은 그 때마다 피켓 시위를 벌이곤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미룰 명분이 희박하다. 모든 교역이 개방되는 마당에 국산영화 보호를 위해 외국영화 수입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에도 맞지 않다. 스크린 쿼터는 이제 영화인들의 철밥통 챙기기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수십년동안 이의 우산속 보호를 받아왔다. 국산영화의 관객 점유율이 50%를 넘어섰다. 유수한 외국영화제에서 해마다 많은 수상작들이 나올만큼 수준도 높아졌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같은 영화는 1천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미국 등지에서의 흥행 또한 크게 성공했다. 국산영화도 자력으로 일어서야 경쟁력이 강화된다. 3류 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스크린 쿼터를 둘 이유는 없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선 공정거래위원회의 스크린 쿼터 축소 검토 결과가 주목된다. /임양은 주필

홍길동의 후예?

고대 로마군사의 후손들이 중국 간쑤(甘肅)성 융창(永昌)현 산촌에 살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흥미롭다. 제1차 삼두정치 당시 지금의 이란 및 이라크인 파르티아 왕국 정벌에 나선 로마군 1군단장 푸블리우스 크라수스가 크게 패한 끝에 병사들과 함께 탈출했으나 로마에 나타나지 않아 행방이 묘연했는 데, 간쑤성 산촌에 살고 있는 400여 명이 이들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이는 영국·미국·중국 과학자들이 DNA검사 결과 확인됐다고 외신은 전했다. 실제로 이들은 피부색이 붉고, 키도 크고, 코가 우뚝 솟은데다가 머리가 갈색이어서 여느 중국인들과 차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로마군의 후손임을 알게되자 기쁜 나머지 로마군 복장을 입고 축제를 벌인 것으로 보도됐다. 로마군의 파르티아 정벌이 있었던 것은 BC 53년이다. 그러니까 무려 2058년 만에 로마군이었던 원조를 찾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행방이 묘연한 무리 이동이 이밖에도 또 있긴 있다. 중세기 십자군전쟁 때 소년 소녀들로 조직된 소년십자군이 지중해에서 만난 풍랑으로 배가 난파되어 극적으로 살아남은 일부가 알프스산맥에서 사라진 일이 있다. 진시황이 불로초 불사약을 구하도록 남방으로 보낸 동남 동녀들도 행방이 끊겼다. 유구(琉球)는 1871년 일본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기 전까지는 독립국이었다. 오키나와 군도(群島)의 50여 개 섬으로 돼 있다. 주민들은 동양계로 체격이 우리와 비슷하다. 한땐 고려·일본·중국과 교역을 하면서 조공을 바치기도 했다. 허균(許筠)의 소설 ‘홍길동전’은 홍길동이 나중에 무리를 이끌고 유구로 건너가 유구 왕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의적활동을 하면서 반상(班常)철폐 등 인간주의 이상을 펼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픽션으로 꾸민 게 유구설일 수는 있다. 그러나 ‘홍길동전’은 전적으로 허구만이 아닌 것으로 홍길동의 실존설도 제기되고 있다. 유구로 갔다는 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 중 유별나게 한국인을 닮은 사람이 있으면 DNA검사를 해 볼만 할 것 같다. 혹시 홍길동의 후예가 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임양은 주필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시간으로 3일 오전 4시37분(현지시각 2일 밤 9시37분) 84세의 일기로 선종했다. 폴란드 출신의 교황은 재위 26년 동안 자유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세계적 애도속에 성 베드로 광장은 수만 군중의 추모 물결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오는 6일 장례식을 거행한다. 그러고 나면 곧 성 베드로 대성당내 시스턴성당의 청동문이 봉쇄된다. 모든 창문도 납으로 봉쇄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117명의 추기경들이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비밀회의를 갖는다. 비밀회의의 라틴어인 ‘콘클라베’는 열쇠로 잠근다는 뜻이다. 교황 선출이 실패한 투표용지는 불태워져 시스턴성당 굴뚝으로 검은 연기가 되어 나온다. 이윽고 교황이 선출되면 화학약품을 가미하여 만든 흰 연기가 피어 오른다. 세계 11억 가톨릭 인구의 본산, 바티칸시국(市國)은 1929년 교황 비오11세가 이탈리아 정부와 체결한 라테라노조약에 의해 땅을 사들임으로써 성립되었다. 면적은 44만㎡에 인구는 약 1천500명이다. 바티칸 궁전·성 베드로대성당·도서관·박물관·가톨릭대학·천문대·방송국 등이 있으며 자체적으로 화폐와 우표를 발행한다. 교황청의 행정기구로는 12개 성성(聖省·부처)이 있고 50여 개 나라가 대사 또는 공사를 교황청에 파견하는 등 상호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지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곳이 바티칸이다. 날씨가 좋으면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은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정상급이 대거 참석한다. 온후한 인품의 미소를 보이며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 보이곤 했던 생전의 교황 모습이 눈에 선하다. 종교를 떠나 인류의 정신적 지주였던 큰 별이 사라진 것은 불행한 일 이지만 그래도 그는 희망을 남겨주고 떠났다. 명동성당을 비롯한 국내 성당마다 애도기간을 보내고 있다. / 임양은 주필

절도범

도둑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범죄행위다. 두 말 할 것 없이 도둑은 사회적 일탈자다. 공동체의 질서를 교란하고 법과 규범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권위를 무시하거나 그에 항거하는 행위를 일삼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둑을 ‘양상군자(梁上君子)’라고 하는가 하면 ‘녹림호걸(綠林豪傑)’이라고도 한다. 앞의 것은 집도둑이요, 뒤의 것은 산도둑인데 군자니 호걸이니 한다. 도둑을 더욱 미화할 때는 ‘의적(義賊)’, ‘협객(俠客)’ 또는 ‘유협(游俠)’이 등장한다. 로빈 후드, 아르센 뤼펭, 조로, 홍길동, 일지매 등 가공의 인물부터 임꺽정, 장길산, 판초 비야, 푸가초프, 로브 로이 같은 실존 인물도 있다. 이들에게는 권력의 횡포 등 부당한 사회적 권위에 맞서 정의를 위해 싸우거나 약자의 편에 서서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는 등 공통점이 있다. 지난 3월 24일 서울 서교동 주택가에 침입하여 손목시계 등 100만원대의 금품을 털다 검거된 조세형씨를 예전에 ‘대도(大盜)’라고 호칭한 게 잘못이었다. 마치 의적이라도 나타난 듯 인구에 회자됐었다. 1980년대 초반을 전후해 드라이버 하나로 철옹성 같은 권력가와 재벌들의 집만 골라 턴 그를 당시 서민들은 ‘대도’라고 떠받들었다. 1983년 서울지법 구치감 환풍기를 뚫고 탈주했으나 6일만에 체포됐다.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1998년 11월 청송교도소를 출소한 후 결혼하고 1999년 4월 모 경비업체에 취직했다. 그러나 일본에 까지 도둑 원정을 가 체포돼 3년6개월을 복역한 후 2004년 출감했다. 조씨는 “돈을 마련해 일본으로 건너가 나를 총으로 쏴 장애인(4급)으로 만든 일본 경찰관에게 복수하려 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2001년 12월 일본 도쿄 시부야 소재 주택 3곳에 들어가 손목시계 등을 훔치다 체포됐고 이 과정에서 경찰관이 쏜 총탄에 맞아 오른쪽 어깨를 잘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조씨는 아마 또 뉴스의 주인공이 한번 되려고 한 모양 같은데 한낱 습관성 절도범일 뿐이다. 얼마나 또 감옥에 있을 지 모르지만 이제 67세라는 나이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쾌락을 느낀다는 도벽이 정말 무섭다. /임병호 논설위원

‘스와핑’ = 무죄?

경찰이 ‘스와핑(부부 교환 성관계)’과 ‘스리섬(2대1 성관계)을 주선한 음란사이트 개설자를 구속하고 부유층·사회 지도층이 포함된 가입 회원 5천여 명을 수사할 방침이라고 발표하자 불붙은 찬반논란이 갈수록 거세다. 또 검찰이 인터넷 음란 사이트는 물론 이를 게시한 포털 사이트에 대해서도 처벌 방침을 밝히자 역시 찬반론이 분분하다. 스와핑의 경우 처벌론자들은 “스와핑은 먼저 가족을, 그 다음에 사회를, 마지막으로 문명을 해체시켜 인간을 동물과 같은 존재로 전락시킨다”, “스와핑 규제·처벌은 문명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 “성적 쾌락은 선도 악도 아니지만 정당성을 수반하지 않는 것은 악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 “사생활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큰 도덕적 해이다. 사회 전체 질서를 와해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라는 의견도 나왔다. 반면 처벌 반대론자들은 “성인들의 자발적 행위로 법 규제는 전근대적 발상”, “스와핑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과 법적 처벌은 다른 문제이며 사적인 영역에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오버”, “왜 유독 성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똑 바른 가치관을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스와핑 처벌 반대론자들은 음란사이트나 이를 게시하는 포털사이트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다. 그러나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의 84%가 음란 사이트에 접속해 본 경험이 있고 그런 아이들의 91%가 자기 집에서 음란물을 보았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퇴폐 유흥업소나 포르노 영화관을 애들 방안에 차려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음란물에 중독된 아이들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것을 찾게 되고 나중에는 실제로 경험해 보려는 욕구를 갖게 된다. 지난 10년 간 일반범죄 증가율이 29%였는데 강제추행사범은 91%나 늘었다. 인터넷 주 이용자는 청소년들이고 인터넷 사용 연령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하기 좋은 말로 “(음란물을)비디오로 보면 합법이고 인터넷으로 보면 불법인가” 할 때가 아니다. 스와핑과 스리섬도 방치해서 안 된다. 수간(獸姦)은 인간의 자유이지만 부부 교환 성교는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왜? 인간이니까 그렇다. /임병호 논설위원

교단에서/소유와 존재

아주대학교 교양학부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후마다 우리사회의 각 분야에서 공로가 많은 유명인사를 초청하여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이 특강의 주 목적은 대학이란 지식과 기술의 기능적인 면만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전반적인 교양을 갖춘 인격적인 사람으로서의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5년 봄 학기의 첫 번째 인사로 시인 류시화씨가 초빙되어 강의를 하였다. 그 분의 수많은 저서들을 통해 마음을 비우는 욕심 없는 삶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고 그만의 독특한 인생철학이 각박한 세상을 사는데 청량제와 같이 내게 다가왔기에 그 특강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반가웠다. 류시화씨의 인도 이야기는 화두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고 인도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날 나는 인생에 대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시인은 북 인도 바라나시의 거리에서 한 노인 걸인을 만났다. 그 걸인이 돈을 구걸하기에 100원 정도를 주려든 것이 실수로 1천원 정도가 손에 들려 나왔고 노인은 그 돈을 냉큼 뺏어 가버렸다. 큰 돈을 뺏겼다는 생각에 한 동안 잃은 돈에 대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의 아름다운 선율에 눈을 떴고 여인숙 창밖을 내다보니 어제 그 노인이 자신만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노인은 시인이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음악으로 아침을 깰 수 있게 해 주었고 세상에 1천원으로 자신만을 위한 음악연주를 들을 수 있는 행복을 어디에서 맛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인도에 가면 바가지를 쓴다는 생각에 어느 날 한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데 열심히 값을 깎아 부르는 값의 10분의 1로 그 물건을 샀다. 실컷 흥정 끝에 그 물건을 손에 쥐니 그 상인이 ‘그래 이제 당신은 행복하냐?’고 묻더란다. 그러면서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라는 말에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꼈고 결코 경제적인 요인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고 했다. 사실 행복지수는 경제적인 요인에 달려있지 않다. 재벌들이 행복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오히려 부모가 많은 재산을 남겼을 때에 형제끼리 원수지간이 되어 싸우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이 세상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방글라데시라고 하니 정말로 경제적인 원인과 행복지수와는 동일하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너무나 ‘갖는 것(to have)’에 치중하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은 재산, 지위, 권력을 쌓으려고 허우적대다가 사실상 정말로 중요한 인간의 도리, 건강, 행복과 같은 존재(to be)의 의미를 잃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항상 죽음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란 무엇인지 어떤 삶이 목적(소유)에 이끌리는 삶이 아니라 존재에 이끌리는 삶인지 재정비해 보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남 명 자 아주대 교육학부 교수

인사청문회

미국은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비롯, 행정부의 장·차관,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주요공직자들을 모두 ‘연방수사국(FBI)의 사전 조사→대통령 면접→인준안 제출→여론 검증→상원 인사청문회’ 등 5단계의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쳐 임명한다. 각 행정부처의 장관과 부장관은 물론 차관, 차관보까지 모두 상원 인준청문회를 통과해야 하며 각국에 파견되는 대사나 연방 판사도 인준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미국의 공직자 인선 과정에선 백악관의 사전 조사가 매우 중요하다. 백악관의 사전 조사 의뢰를 받은 연방수사국은 대상자들의 학력, 경력, 병역, 납세, 재산, 가정생활 등을 각종 자료와 탐문 등을 통해 포괄적으로 조사한다. 이를 위해 백악관은 대상자들에게 ‘백악관 개인신원진술서’, ‘국가안전직위에 대한 질의서’, ‘개인재정기록조사 동의서’, ‘행정부 공무원 재산공개서’ 등 4개의 서식을 미리 작성케 하는데 이들 서식에 포함된 질문 항목만 모두 233개에 이른다. 이런 사전 조사에만 보통 50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연방수사국이 신원조사 보고서를 백악관에 넘기면, 대통령은 이를 검토하고 대상자들을 직접 면접한 뒤 적임자를 지명해 인준안을 상원에 제출한다. 상원은 상임위별 인사청문회를 거쳐 본회의 표결로 확정해 그 결과를 정부에 넘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인사청문회 대상은 너무 적다. 국회 인사청문회와 국회의 임명동의안을 거쳐야 하는 공직은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등 모두 19개에 불과하다.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도 국회 상임위의 인사청문회를 거치지만 국회의 임명동의안은 받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몇몇 권력 실세들에 의해 인사가 좌지우지되는 과거 정권의 폐단을 막기 위해 인사 추천과 검증 기능을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로 분리하고, 청와대 안에 공식 심의기구인 인사추천회의까지 설치했지만 개인적 흠으로 인해 ‘중도하차’가 잇따르자 ‘인사청문회 대상의 대폭 확대’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집안 망신 당하는 것보다 한 자리 안하는 게 낫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고위직에 있다는 건 국가적 불행이다. 인사청문회 대상은 전 국무위원은 물론 금감위원장 등 고위공직자 7명까지 확대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신현옥 화백 초대전

신현옥 화백의 추상화는 대담한 구도에 섬세한 감각이 묻어난다. 점·선·면 그리고 색채 표현이 무척 다양하고 화려하면서도 정돈된 단아한 안정감을 준다. 입체적 유추는 감상을 편하게 해준다. 작품의 주제 또한 작가의 체험적 바탕으로 보아져 친근감을 더 한다. 신 화백이 4월1일부터 17일까지 초대전을 갖는다. 장소는 저명한 서울 송파구 풍납2동 388의1 서울 아산병원 갤러리다.(전화 02-3010-6869) ‘연’(45×45㎝) ‘존재의 심연’(50×50㎝) ‘존재의 의미’(72×60㎝) ‘샛감의 그리운 자리’(72×60㎝) ‘고통의 신비’(53×45㎝) ‘옛골의 사랑’(72×60㎝) ‘옛뜨락’(116×91㎝) ‘미완의 사랑’(72.5×60.5㎝) ‘포플러가 있는 고향집’(72×60㎝) 등 이밖에 다수의 작품이 전시된다. 대부분이 2004년, 2005년에 완성된 신작들이다. 신 화백은 치매를 흥미있는 그림 그리기를 유도해 예방하고 치유하는 독보적 심리요법을 창안해 냈다.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장으로 있다.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언제 자신의 분신과 같은 의욕넘친 작품을 이처럼 창출했는지 놀라운 정력이다. 시인(경기시인협회 회원)이기도 한 신 화백은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여류 중진이다. 서울 예술의 전당·롯데화랑·경기도 문화의 전당 등에서 11회에 걸친 개인전 및 초대전을 가졌다. 서울·인천·수원·광명·천안 등지서 수많은 단체전도 가졌다. 멈출 줄 모르는 실험정신이 강하다. 그러나 모험은 즐기지만 도박은 거부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림 자체가 또 그같은 작가 정신을 풍겨준다. 다만 그것이 성격 탓인 지, 기교인 지는 알수가 없다. 봄철이다. 새봄과 함께 갖는 서울 아산병원 갤러리 신현옥 화백 초대전 소식은 무척 싱그럽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본격 미술의 진수를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임양은 주필

공개재판

“…이상의 죄상을 저지른 악질 반동분자의 처분을 어떻게 하면 좋습네까?” 주동자의 이같은 말이 떨어 지기가 바쁘게 군중 속에서 “죽입시다!”하는 소리가 나오면서 여기 저기서 “악질 반동분자를 죽이자!”며 허공에 주먹질을 해댄다. 다 짜고하는 같은 패거리의 위세에 눌려 강제 동원으로 참관하는 양민들도 눈치를 봐가며 죽이자는 데 동의하는 박수를 친다. 6·25동란 때 있었던 인민재판의 목격담이다. 일본 N-TV가 입수한 북의 공개재판 동영상이 인민재판을 연상케 한다. 지난 1일과 2일 함경북도 회령시 오봉리에서 자행된 공개재판은 탈북자 등 11명에게 판사의 사형 선고가 떨어지자 이내 말뚝에 묶여 총살됐다. 항소심도 상고심도 없는 일사천리식 단심은 당초 죽이기 위해 짜고 시작한 재판 놀음인 것이다. 인민재판이나 공개재판이나 다 공개처형이 목적이다. 공개처형은 인민들에게 죽이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공민사회에 유사행위를 방지키 위한 협박 수단이다. 두만강 북단에 위치한 회령은 탈북 루트로 알려져 있다. 인민재판은 극렬분자에 의한 군중재판인데 비해 공개재판은 명목상 판사가 있지만 로동당의 하부기관인 점에서 인민재판이나 공개재판이나 다 그게 그것이다. 공개재판은 또 법정공개가 아닌 인민재판과 같은 길거리재판이다. 6·25동란이 끝난지 반세기가 되어간다. 아직도 공민사회에 인민재판 수준의 공개재판이 자행되는 북녘 인권이 말이 아니다. 한가지 다른 것은 있다. 인민재판은 죽창이나 돌멩이로 참살한 반면에 공개재판이 총살을 한 것은 돌멩이로 때려 죽이는 것보단 안락사라 할 것 같다. 동족인 북녘이 하필이면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정치집단인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민족적 수치다. 그래도 이런 북녘에 환상을 갖는 친북세력이 있어 사회가 혼란스럽다. 이토록 망각을 가져온 세월의 오랜 흐름이 실로 무섭다는 생각을 갖는다. 공개처형이 N-TV를 통해 대외에 공개된후, 회령시가지는 검문 검색이 더욱 강화되어 살벌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양은 주필

강동석 건교부 장관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의 부동산 투기의혹이 점점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인천공항 개발 직전에 1천800평의 알짜배기 땅을 사들였다. 1999년 인천공항 이사장 때 일이다. 처제와 동창 등 친구가 한 일이라 몰랐다는 게 강 장관의 투기의혹 부인이지만 그 말을 곧이 들을 사람은 드물다. 모텔 등이 들어선 노른자위 땅을 개발계획을 모르고 사두었다는 말 역시 믿기지 않는 소리다. 그렇게 절묘한 우연은 있을 수가 없다. 강 장관이 간접 투기를 하지 않았으면 개발정보를 흘렸다는 또 다른 의혹이 성립된다. 어느 모로든 공직자로서는 부적절하다. 이상하다. 도대체 이 나라의 고관들 중엔 웬 부동산 투기꾼들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근래 들어서만도 이헌재 경제부총리에 이어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이 부동산 투기로 낙마하더니 또 강동석 건교부 장관이 부동산투기로 말썽을 빚고 있다. 이들의 행태 또한 한결같다. 처음엔 ‘난 모르는 일이다’라고 했다가 ‘투기는 아니다’에 이어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는 순으로 말이 나온다. ‘도리부정관’(桃李不整冠)이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라고 했다. 복숭아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쓰지 않고 오이 밭에서는 신발을 고쳐신지 말라는 뜻이다. 공연히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인(先人)들은, 특히 벼슬아치들은 이를 생의 좌우명으로 알고 살았다. 이에 비하면 요즘 부동산 투기의혹을 받는 벼슬아치들의 군색한 변명은 듣기에 참으로 민망하다. 강 장관은 열흘 째 출근도 않고 있다.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처신이다. 청와대는 좀 더 지켜보겠다고 한다. 뭘 지켜보겠다는 것인 지 알 수 없다.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선포한 지 얼마 안 되어 잇따라 터지는 고관현직들의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고민이 없을 수 없는 것은 짐작한다. 그렇지만 단안을 내려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임양은 주필

초고층 빌딩

1885년 시카코에 들어선 홈인슈어런스 빌딩은 세계 최초의 마천루(摩天樓·skyscraper)로 꼽힌다. 이 10층짜리 건물도 당시로선 ‘하늘을 긁어댄다’는 표현을 쓸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범선(帆船) 맨 꼭대기의 삼각형 돛을 가리키는 ‘skyscraper’가 고층 건물을 뜻하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이를 하자권에선 ‘하늘과 마찰한다’는 뜻의 ‘마천루’를 직역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는 건물 층수가 마치 국위를 과시하는 것 처럼 초고층 빌딩 건축 경쟁을 하고 있다. 지금도 초고층 빌딩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102층·381m)은 1931년 완공된 후 40년 넘게 ‘초고층 빌딩’으로 군림했다.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빌딩(110층·417m)은 1972년, 시카고의 시어스타워(110층·443m)는 1974년에 완공돼 세계 최고 자리를 차지하는 등 미국이 최고층 빌딩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1999년·88층·452m)’, 대만의 ‘타이베이 101 빌딩(2004년·101층· 508m)’ 등으로 최고층 빌딩의 주도권이 아시아로 넘어왔다. 중동의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가 두바이에 2008년 ‘사막의 꽃’이라고 별명을 단 ‘버지두바이(160층·705m)’를 짓겠다고 해 중동으로 최고층 패권이 넘어갈지도 모른다. 이 빌딩 건설에는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참여한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타워 오브 러시아(125층·649m)’, 중국 상하이 금융센터(101층·492m)’, 홍콩 ‘유니언 스퀘어(111층· 474m)’등이 지어질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초고층 빌딩 경쟁에 뛰어 들었다. 서울시가 마포구 상암동에 디지털미디어시티(DMC·130층·580m), 롯데가 ‘부산 롯데월드(107층)’ 인천 송도의 ‘국제금융센터(105층)’ 건설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롯데그룹이 서울 잠실에 200층, 800m 높이의 슈퍼타워 구상을 밝혔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8개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60층에 이르는 초고층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고층화 경쟁은 주거용 건물에도 뻗쳤다. 흙, 땅바닥을 마다하고 높은 곳으로만 오르려는 인간의 야망이 어쩐지 두렵다./임병호 논설위원

‘도산잡영’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은 57세 때 지금의 도산서원(陶山書院) 자리에 서당을 짓기 시작해 61세에 완성한 뒤 제자들을 양성했다. 퇴계는 57세 때부터 66세까지 10여년 간 지은 시(詩)들 가운데 서당 안팎의 모습을 읊은 40제(題) 92수(首)를 뽑아 자필로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정리했다.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퇴계가 술을 마시며 살아온 지난 날을 후회하는 인간적 면모가 ‘도산잡영’에 담겨 있다. “넘실넘실 흘러가는 저 이치 어떠한가(호호양양리약하·浩浩洋羊理若何) / ‘이와 같구나’ 일찍이 성인께서 탄식하셨네(여사증발성자차·如斯曾發聖咨嗟) / 본래부터 도의 본체 이것으로 볼 수 있으니(행연도체인자견·幸然道體因自見) / 공부 중간에 끊어지는 일 많지 않게 하려므나(막사공부간단다·莫使工夫間斷多)” ‘관란헌(觀瀾軒)’이란 제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다. 28자의 짧은 한시지만 유학 경전의 가르침이 글마다 녹아 있다. ‘관란’이란 ‘여울목(瀾)을 보다(觀)’는 뜻이다. ‘맹자’에 “물을 구경하는 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여울목(瀾)을 보아야(觀)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흐르는 물을 보고 “이와 같구나” 탄식한 성인은 공자다. ‘논어’ 자한(子罕)편에서 공자는 흐르는 시내를 보며 말했다. ”흘러간다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나!” 퇴계는 ‘물러나는(退) 시내(溪)’로 은거해 시냇가에 집을 짓고 물을 바라보며 인생을 생각했다. “물이 끊어지지 않고 흐르듯 공부도 중간에 끊어지는 일이 많지 않게 해야 한다” “좋은 밤 함께 즐겁네, 좋은 손님들 찾아오니 / 산봉우리 넘어 불러 탁주잔 기울여 마시네 / 관란헌에 셋이서 솔밭처럼 앉아 그윽한 마음 열고 / 다시 난초 배에 올라 달놀이 하다 돌아 왔네” “재주 없고 덕망 없어 어리석어졌는데 / 세상일에 대응해감에 어찌 글자 없는 비석 필요하리 / 먼지 쌓인 책상 앞에서 늘그막에 지혜 구하고자 하나 / 눈에 뿌연 안개 끼어 서로 헛갈림이 괴롭네” ’물러나는 시내’로 물을 보며 시를 읊은 퇴계의 생애가 새삼 숭고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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