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

“이 것마저 안 태우면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요….” 한 자영업자의 말이다. 담뱃값이 오르면 담배를 끊겠다던 다짐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를 그는 그렇게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해 담배 국내 출하량이 1천54억700만 개비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추산하는 흡연인구 1천80만명에 비해 1인당 488갑(9천760개비)을 피운 셈이 된다. 금연운동의 확산으로 2000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담배 소비량이 경기불황이 본격화 된 2003년부터 다시 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렇지 지난해 담배 소비량은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의 1천13억4천100만 개비 보다 41억2천900만 개비나 늘어 심각한 스트레스 현상의 사회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담배만이 아니다. 소주 소비량도 엄청 늘었다. 지난해 소주 출하량 또한 전년에 비해 3.8%가 더 많은 108만1천833㎘에 이른다. 이를 시중에서 파는 360㎖들이 병으로 치면 30억509만병에 이른다. 국내 20세 이상 3천500만명에 비해 수치상으로는 1인당 87병을 마신 셈이 되지만 개인별로는 더 많은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반면에 고급주인 위스키 소비량은 줄어 불황에 만만한 소주만 작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회가 담배나 태우고 소주를 마셔야 우울한 마음이 풀리는 세태에서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심리적으로 본 흡연은 초조함을 달래고자 하는 습관성 생활처방이다. 음주는 초조함을 잊고자 하는 도피처방이다. 물론 좋거나 기뻐서 마시는 술도 있다. 하지만 과음은 좋은 일로 마시는 술 보다 울적하여 마실 때가 더 한다. 담배나 술이 지나치면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다. 다 알면서도 멀리하지 못하는 연유를 의지가 약한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살기가 너무 척박하다. 오른손엔 담배, 왼손엔 소주병을 들고 흡연을 안주삼아 소주병을 훌쩍거리는 노숙자들을 본다./임양은 주필

김진표 교육 부총리

김진표 교육 부총리 임명은 아직도 세간의 화제다. 노무현 대통령의 각료 기용은 한마디로 상식 파괴다. 그래도 그렇지 김진표 의원(열린우리당 수원·영통)기용은 하마평에도 오르지 않았다. 전혀 예상밖의 인사다. 김효석 의원(민주당 전남 담양·장성·곡성)이나 김진표 의원이나 다 경제 전문가다. 김효석 의원이 교육 부총리는 전문분야가 아니라며 고사한 자리를 김진표 의원은 겁없이 앉았다. 김 부총리가 대통령의 소명인 대학구조조정을 앞으로 어떻게 해낼지가 궁금하다. 간판 뿐인 유명무실한 대학, 대학의 범람 대학생의 범람, 이리하여 학력(學歷)만 높고 학력(學力)은 형편없는 대학 졸업생을 해마다 양산해내는 것이 국내 대학의 현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 되는 ‘이태백’ 백수가 범람한 것은 경기 불황에도 원인이 있지만 실력없는 대학 졸업생이 많은데도 연유한다. 외국의 대학에 비해 경쟁력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국내 대학에서도 경쟁력 없는 대학이 아직도 대학 간판을 달고 있는 데가 수두룩하다. 대학같지 않은 대학은 없애거나 통폐합해야 한다. 대학 다운 대학을 두는 것이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다. 무엇보다 고등학교만 제대로 나와도 사회에서 대접받고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기풍이 진작돼야 한다. 지금처럼 고교 졸업생의 81%가 대학에 진학하고도 대학 졸업자답지 않은 졸업생이 많은 것은 병리현상이다. 그러나 대학구조조정은 이해관계가 첨예하여 실로 난해하고도 난해한 작업이다. 교육 부총리의 김진표 카드는 이의 성공여부에 의해 평가된다. 예를 들어 종합병원 원장은 전공분야가 무엇이든 병원의 관리능력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외과의사가 내과진료를 할 수 없고 내과의사가 외과수술을 할 수는 없다. 만약 김 교육 부총리가 대학구조조정에 실패하는 등 교육행정에 긍정적 혁신을 가져오지 못하면 외과의사가 내과를 또 내과의사가 외과를 맡았다는 질책을 끝내 면하기 어렵다. 그가 과연 교육행정의 병폐를 치유하는 ‘교육종합병원’ 원장 노릇을 제대로 해낼 지 주목된다./임양은 주필

MBA

미국 유명 대학 MBA(경영학 석사) 획득을 목표로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난다. 미국 톱텐급 학교는 하버드·스탠퍼드·펜실베이니아·MIT·노스웨스턴·컬럼비아·시카고·버클리·미시간·다트머스를 말한다. 통상 한 해에 한국인 100~150명이 톱10급 학교 MBA에 합격했는데 지난해 가을학기에만 200명 이상이 합격했다. 하지만 톱10급 학교에 합격한 이들의 미래가 전부 밝지 만은 않다. 학업을 마친 2~3년 뒤에는 MBA 졸업생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MBA 졸업생들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미국 현지에서 영어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9·11 테러 후 안보 문제로 일부 IT기업을 제외한 현지 기업들이 외국인 채용을 줄이면서 톱10급 MBA 졸업생들 조차 대부분 국내로 돌아오고 있다. 문제는 톱10급이 아닌 학교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가을학기 미국 MBA 과정을 시작한 사람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학위를 취득하는 데 한 사람 기준으로 최소 1년, 1억원 이상의 시간적·경제적 비용이 들어가는 과정에 이렇게 많은 인력이 몰리는 것은 이유가 있다. 대기업의 적극적인 구애, 유수의 컨설팅회사 또는 투자은행 취업, 억대 연봉에 ‘프로페셔널’이라는 명성을 얻는 등 그동안 MBA학위 취득은 성공을 보장하는 보증수표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매년 70~80명을 선발, 이건희 회장의 특별지시로 만들어진 ‘외인부대’ 미래전략 그룹에 배치할 뿐 국내의 주요 대기업들이 별도로 MBA 출신자를 선발하지 않는 추세다. 대기업들이 MBA에 싸늘한 시각을 갖는 것은 학벌만큼 실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LG칼텍스정유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한 MBA 출신 지원자가 모두 탈락했을 정도다. 내부 인재를 육성한다는 방침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석학들이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건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행복론

어느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아서 참석한 데일 카네기는 집주인의 말도 안되는 허풍에 질린다. 참다 못한 카네기가 집주인에게 “지금 하신 말씀은 성경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햄릿에 나오는 구절이잖아요”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집주인은 흥분까지 해가며 “그럴 리가 없다”고 맞섰다. 카네기는 할 수 없이 같은 자리에 있던 셰익스피어를 전공한 친구에게 시시비비를 가려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친구는 뜻밖에 주인쪽에 손을 들어 주었다. 돌아 오는 길에 카네기는 친구에게 왜 진실을 외면하고 주인 편을 들었는 지 따졌다. 친구는 그에게 말했다. “햄릿이 맞네. 그러나 그걸 그 자리에서 밝혀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우리를 초대한 사람이 불쾌해지고 그러면 초대 받은 사람들도 불쾌해지고 자네에게는 적이 한 명 생기는 게 아닌가.” 카네기는 “ 파리 잡는데는 쓸개즙 한통보다 꿀 한방울이 효과적”이라는 격언을 세상에 퍼뜨린 장본인이다. 카네기는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은 “자기 스스로 우수한 사람이 아니라 우수한 사람을 끌어모은 사람”이라고 자신과 성이 같은 위대한 사업가 앤드루 카네기 묘비명을 예로 들었다.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변에 모이게 하는 법을 터득한 자, 이곳에 잠들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의 핵심은 칭찬이론이다. 요즘 널리 인용되는 ‘고래도 춤 추게 한다’는 칭찬이론을 정립한 사람이 바로 카네기다. 그는 당시 미국 최고 살인자들을 모아 놓은 싱싱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도 대부분 자신을 ‘악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 한다는 조사 결과를 가지고 칭찬이론을 만들었다. 그는 “비판만큼 효과없는 수단은 없다”고 단언했다. 비판은 상대를 방어적 위치에 서게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만들기 때문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토론법과 논쟁을 가르치기도 한 카네기는 “논쟁에서 이기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성경 말씀이 아니라 햄릿 구절’이라고 했던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명언이다. ‘평균의 법칙’을 주장한 카네기의 행복론 중 이런 말이 있다. “보복하지 말고 대가를 바라지 말라”/임병호 논설위원

인류애

남아시아 대재앙 ‘쓰나미’에 대하여 가톨릭은 “자연현상에 대해 흔히 신을 비난하기 쉽다. 하지만 하느님이 천상에서 모든 자연재해를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쓰나미 같은 참상에 직면한 기독교인은 이에 대응하는 행동으로 신앙심을 보여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돕는 것이 곧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피해 지역을 돕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돕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는 “자신의 업보에 따라 삶의 길이가 다르다. 희생자들은 각자의 업보에 따른 삶을 살다 갔다. 육체는 소멸하지만 영혼은 불멸이다. 이번 희생자들 역시 죽음의 충격에서 깨어나면 다시 새로운 삶을 받아 태어날 것이다. 그들의 새로운 삶은 어떤 형태든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슬람은 “모든 것이 위대한 알라의 뜻이다. 왜 무고한 사람이 많이 죽느냐는 의문이 들만 하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알라만이 안다. 이번 참사는 삶이 유한함을 일깨워준다. 동시에 짧은 삶 동안 긍정적인 일을 많이 하라는 가르침이다. 세상사는 모두 위대한 알라의 뜻이며 그 뜻은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의 보다 나은 삶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신론(한스틴손·영국인본주의협회 대표)은 “종교로 쓰나미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종교는 재앙을 막아 주지도 못 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기도가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못 된다. 종교를 초월해 인류애로 서로 도와야 한다. 쓰나미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돕는 것이 실질적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얼마 전 김 아무개의 이름을 가진 목사가 “서남아시아의 지진해일로 희생된 사람들은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은 자들”이라고 말한 것은 설교가 아니라 망언이다. 기독교인들도 경악하고 있다. 자연재앙을 종교와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무신론의 주장 가운데 “인간의 문제는 결국 인간이 단합해 인류애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은 모든 종교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짜깁기’ 현판

▲일시:2004년 10월31일 오후 3시간 ▲장소:창덕궁 후원 ▲나오는 사람:노무현 대통령·유흥준 문화재청장 유:대통령께서는 정조대왕과 비슷하다. 노:내가 어떻게 정조의 격을 따르겠나? 유:개혁(혁신)을 내 건 것, 수도 이전을 하려다가 못한 것, 소장학자들(각종 위원 등) 의견을 중시하는 세가지 점에서 같다. 노:정조에 대해서 잘 모른다…. 유:관련 책자를 보내드리겠다. 이상의 대화는 경어를 생략한 채 집약한 요지다. 여기선 노 대통령을 정조대왕과 비유한 것이 합당하지 않은 구체적 내용을 설명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또 문화재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37년 전에 한글로 쓴 ‘광화문’의 광화문 현판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한문으로 바꾸는 게 꼭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창덕궁 후원 면담이 전해진 대로 사실이라면 “정치적인 이유로 현판을 교체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는 유 청장의 말엔 설득력이 없다. 정조대왕은 인재등용에 탕평책을 쓰고 실사구시의 실학사상을 일으켜 문화적 황금시대를 이룩한 민본주의적 계몽군주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의 어필이 명필인 것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조대왕이 ‘門化光’(문화광) 현판을 쓴 사실은 없다. 대왕의 아들 되는 순조가 쓴 광화문 현판은 6·25 때 포격으로 문루가 파괴되면서 소실됐다. 정조대왕이 쓴 비석 글씨의 탁본 중에서 ‘光’자와 ‘化’자를 가려 짜깁기식으로 현판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나마 ‘門’자는 찾을 길이 없어 열개자인 ‘開’자로 ‘門’자를 만든다니 세상에 이러한 현판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싶다. 정조대왕 어필을 욕보이는 것 같아 송구스런 생각마저 든다. 현판보다 더 급한 것이 콘크리트 건물로 된 광화문을 목조로 복원하는 일이다. 현판을 바꾸더라도 짜깁기 현판은 안 된다. 박정희 흔적 지우기가 곡학아세(曲學阿世)로 흐른다는 게 세평이다. /임양은 주필

변호사

변호사 업계가 한 건만 해도 팔자를 고치는 고소득 귀족사회로 알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대중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법률서비스 정신이 없으면 설 자리가 없게 된 것이 오늘날의 변호사업계다. 이러므로 하여 재조시절의 고관현직을 관록으로 알고 행세하던 변호사들 또한 전보다 못한 사양길을 면할 수 없다. 전관 예우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자가 한 해에 불과 수 명이던 게 사법시험들어 해를 거듭하면서 지금은 1천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들이 판·검사로 다 임용될 수는 없다. 돌파구는 행정직 전환이 아니면 변호사 개업이다. 그러나 넘쳐나는 변호사 개업이 생업에 순탄할 만큼 다 돈 벌이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부천시내의 어느 법무법인이 ○○사건 99만원, XX사건 55만원의 사건 수임료 광고를 사무실 앞에 내걸었다 하여 말썽이 됐으나 이내 흐지부지됐다. 소속 △△변호사회 자체부터 금기시한 광고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서울의 한 30대 변호사들 사무실은 몸을 낮춰 불우한 사회계층의 변론을 도맡기로 했다는 신문 보도는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종전과는 달리 의문의 사건에 거는 목돈보단 소외된 사람들의 잔돈 푼 수임료를 생업의 긍지로 삼고자 하는 의식전환을 필요로 하는 시대다.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재조시절의 고관현직자들은 변호사 개업을 안 하면 그만이다. 그대신 서민층 깊숙이 파고 들고자 하는 재야 법조인의 변호사가 있다면 읍·면같은 벽촌에 법률사무소 간판을 달줄 알아야 한다. 지금처럼 법원·검찰 주변에만 빽빽하게 변호사 간판을 다는 것은 기형적 현상이다. 무엇보다 변호사가 ‘허가난 XXX’이란 옛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사건을 수임하면 소신을 갖고 변론에 성실하게 임하는 책임감 있는 변호사여야 한다. 그래야 좋은 변호사로 평판이 나 돈도 조금은 벌 것이다. 변호사들의 새로운 인식이 절실히 요구된다./임양은 주필

故 이근수 수원시의원

그는 과묵했다. 담배도 피울 줄 몰랐고 술도 마실 줄 몰랐다. 사교성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사에서 해야할 도리는 다 했다. 맛도 멋도 없긴 했지만 인간다운 면모를 지닌 무공해 인간이었다. 그가 이근수 수원시의원(장안구 조원동)이다. 선거구역인 동내를 구석구석 돌아 다니며 무던히도 살폈다고 동민들은 말한다. 그랬던 그가 고인이 됐다. 4선 의원의 부음을 친지의 전언으로 안 건 장례를 치루고난 일주일 뒤였다. 지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제 겨우 환갑을 갓 넘긴 나이에 그토록 갈 줄은 미쳐 몰랐다. 조원동을 주 행선지로 하는 시내버스가 사내 분규로 인해 3개월 이상 결행하는 바람에 동민들의 불편이 심했던 적이 있었다. “이 의원이 입원하지 않았으면 아마 대체 투입이 더 잘되어 동민들의 불편을 덜었을 것”이라고 한 동민은 말했다. 생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다 내가 부덕한 소치지요…” 수원시의회 의장 선거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다. 단 한 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던 것으로 안다. 그러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시의원인 것만으로도 자긍심을 갖는듯 했다. 이 의원은 수원이 고향이다. 특히 조원동은 대대로 살아왔던 태생지다. 그래서 선거구에 갖는 애정이 더 각별했던 것 같다. 항상 단아한 차림의 몸가짐처럼, 시정에도 연구하는 자세로 임해 의정생활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선이면서도 도의원이나 국회의원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제대로 의원노릇 하기엔 아마 시의원 하기가 국회의원이나 도의원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주민행정의 지방자치를 잘 비유한 기초의정의 이런 압권적 생각을 가졌던 분이다. 이근수 의원이 타계한 것은 지난 12일 아침이다. 유족으로는 미망인과 2남1녀가 있다. 뒤늦게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편히 잠 드소서. /임양은 주필

한국 기부문화의 단점

미국인들이 가장 명예롭게 여기는 직업은 ‘레인메이커’라고 한다. 사회에 단비를 내리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 말은 미국에서 자선사업가를 지칭하기도 하는데 실제 미국의 백만장자 2세 등 상류층 인사들은 대부분 자선활동에서 명예를 찾는다. 앤드루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라며 생전에 자선사업의 원칙을 세우고 카네기 재단을 설립, 평생 자선사업에 5억 달러를 투입했다. 그가 건립하여 사회에 헌납한 도서관만 2천500개에 이른다. CNN 창립자 테드 터너는 1997년 미국이 납부하지 못한 유엔분담금 10억 달러를 기부해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갑부라는 명성에 걸맞게 24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액수를 재단기금으로 내놓아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사회적 책임)를 실천했다. 영국의 기부문화는 ‘채러티 숍(charity shop)’이 뿌리를 이루고 있다. 채러티 숍은 영국 길거리에 늘어선 옥스팜(Oxfam), 영국암재단, 노인구호재단 등의 이름을 내건 가게다. 우리말로 ‘중고품 자선가게로 번역할 수 있는데 쓰던 생활물품을 기부받아 수리해 일반인들에게 판매한다. 영국 전역에 무려 20만개가 있는 채러티 숍은 서민들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등 왕실 가족과 상류층도 자신들이 쓰던 물건을 자주 내놓고 또 자주 사 간다. 수익금은 불우 아동, 노인, 암환자, 이재민, 국제 난민들을 위해 쓰인다. 채러티 숍을 이용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사회적 약자를 돕는 사회연대운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중국에는 ‘하루 행복해지고 싶으면 낚시하고, 한달 행복하고 싶으면 결혼하고, 평생 동안 행복하려면 누군가를 도와주라’는 격언이 있다. 우리나라의 기부와 자선은 장학사업이나 불우이웃돕기에 집중된다. 말년에 모든 것을 털어주고 떠나는 ‘청산형 단순 기부’도 많다.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있는 자, 가진 자 보다는 없는 사람들, 못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게 특징이다. 그러나 돈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일수록 기부에 불참하거나 인색하다.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가장 큰 단점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장보고

장보고(張保皐)는 ‘해도인(섬사람)’으로 790년께 전라도 해남 완도에서 출생한 것으로 전해져 왔다. 어릴 적부터 활쏘기와 창던지기에 뛰어나 ‘활보’ ‘궁복(弓福)’ ‘궁파(弓巴)’라고 불렀다. 20대 후반에 친구 정년(鄭年)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30살 남짓에 강소성 서주에서 군사 5천명을 거느리는 무령군 군중소장이 됐다. 하지만 무장으로 출세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당나라에 거주하던 신라인과 고구려, 백제 유민들을 규합해 무역에 종사하고 산동성 적산포에 ‘법화원’을 세워 유민들과 유학승들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등 당나라에서 자치적인 집단을 이루고 있던 신라방과 신라촌을 거느리는 총수로 맹활약했다. 신라인들이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리는 참상을 목격한 장보고는 828년 귀국을 결행한다. 흥덕왕을 배알하는 자리에서 군사 1만을 주어 청해진을 건설한다면 해적을 일소하고 국제무역으로 얻은 재부를 국가에 바치겠다고 약조한다. 왕은 주청을 받아들여 그를 ‘청해진 대사’에 임명한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활동을 펼쳐 해적과 노예상들을 일격에 소탕하고 각지에 난립한 군소 해상집단을 평정한 후 중국과 일본에 흩어져 있는 신라인들과 힘을 모아 신라·당 사이 국제적인 삼각 해상무역망을 구축했다. 거기에 자위적인 군사력까지 보유하여 동북아의 해상교통권과 무역권을 완전히 거머쥔다. 중국에는 ‘견당매물사’, 일본에는 ‘회역사’란 이름의 교관선단을 파견해 동북아 뿐만 아니라 멀리 아랍-무슬람 상인들과도 교역했다. 장보고는 자의반 타의반 중앙 귀족들의 왕권쟁탈전에 휘말리면서 딸을 46대 문성왕의 두번째 비(妃)로 바치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세력 확대를 우려한 중앙 귀족들의 사촉을 받은 부하 염장에게 술자리에서 피살(846년)되고 만다. 정치의 권모술수에 희생된 장보고의 출신이나 행적, 역사적 평가에서 아직은 이의나 모호한 점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해상왕국의 건설자’, ‘해양상업 제국의 무역왕’으로서 ‘인의지심(仁義之心)’과 ‘명견(明見)’을 두루 갖춘 ‘창조적 위인’이라는 사실이다. 요즘 KBS-TV 드라마에서 장보고와 신라선단의 활동을 ‘해신(海神)’에 비유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고사성어 정치

아무래도 고사성어(故事成語) 정치의 달인은 JP(김종필)가 아닌가 싶다.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영원한 2인자로 고빗길마다 변화무쌍한 고사성어로 심경과 정치를 전했다. 예컨대 김영삼(YS) 대통령 밑에서 불안한 2인자로 있던 1994년 JP는 ‘상선여수(上善如水)’를 신년휘호로 썼다. 퇴진의 벼랑에 처한 이듬해 내놓은 것은 ‘종용유상(從容有常·무슨 일이 있어도 어긋나지 않게 살다)’이다. 기사회생하여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승부를 벼를 때는 ‘줄탁동기(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를 내놨다. JP의 고사성어 정치는 운치와 여백이 있어 인기가 많았다. 5·16 이후 외유를 떠나며 ‘자의반타의반’, ‘서울의 봄’을 비유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등은 유명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조정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사구시’ 등은 선명해 힘이 있었지만 JP의 고사성어 구사는 멋이 실렸다. 그러나 올해는 침묵을 지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선진한국’을 강조했고 청와대는 “올해의 키워드는 ‘위대한 한국(great korea)’이 될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이헌재 부총리겸 경제부총리는 ‘여시구진(與時俱進)’을 걸었다. ‘여시구진’은 2002년 당시 중국의 장쩌민 국가 주석이 ‘공산주의 사상과 제도를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뜻으로 처음 사용한 뒤 중국에서 급속히 유행한 말이다. 당내 보수세력 등의 사퇴압력을 받았던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 대표는 ‘해현경장(解弦更張·거문고 줄을 풀어 팽팽하게 다시 맨다)’을 신년 화두로 던졌다. “새로운 줄이 필요하니 자신은 사퇴하겠다는 뜻”, “새롭게 시작할 테니 다시 밀어달라는 뜻”이라는 상반된 해석이 엇갈리고 있으나 요즘 한나라당의 기류가 이상하여 의미가 심장하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여운, 짧은 네 마디로 마음과 다짐을 전하고 싶은 것은 특히 말로 먹고 사는 정치인들의 욕망이겠지만 대가인 척, 억지로 멋스러움을 내는 것 같은 때도 없지 않다. 고사성어 정치에 식상했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고사성어식 화두는 왜 안나오는 지 궁금하다./임병호 논설위원

생리공결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그가 그랬다. 소속된 개별팀 국내 대회에서 게임이 수세에 몰리면 으레 기용하는 선수가 있었다. 그 선수는 소속팀의 주전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다가 코트 맛을 볼 수 있는 감독의 출전 명령을 받으면 그야말로 종횡무진으로 훨훨 날다시피하곤 했다. 수세에 몰린 팀에 활력을 불어 넣어 역전의 전기를 만들곤 하였다. 한 번은 그 팀의 게임이 부진한 데도 감독은 끝내 그 선수를 기용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오늘은 때가 아니거든요”라는 감독의 대답을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사석에서 들은 감독의 설명은 그 선수는 생리 때면 컨디션이 120%로 살아나는 특이체질이라는 것이다. 그같은 특이체질이 다른 여자배구팀, 또 다른 여자 스포츠 팀에도 더러 있는 사실을 그 때 비로소 알게 된 적이 있었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여학생의 ‘생리공결제’ 도입에 논란이 많은 것 같다. 생리통이 심해 부모의 확인서를 받아 내면 출석으로 처리하고 시험을 못 보면 먼저번에 본 시험성적을 100% 인정한다는 것이다.(지금은 의사 진단서를 첨부하여 결석계를 내면 병결로 처리하고 시험을 못 보면 전 시험의 80%만 인정한다) 이의 반대론은 우선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든다. 중간고사 성적이 좋으면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기말고사 때 ‘생리공결제’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생리공결제’는 생리통이 심한 경우로 한정하지만 심한 것을 검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 지도에 어려움이 따르는 부수적 문제점도 있다. 선진국에선 이런 제도가 없지만 제대로 잘만 되면 숭고한 ‘모성보호’ 관점의 찬성론에도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남녀 학생간에 성적의 불평등을 들기도 하나 생리는 출산과 더불어 여성만이 겪는 특유의 고통이라면 고통이다. 생리통을 짐작하긴 어렵지만 옛날과 달라서 좋은 약은 많다. 생리가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는 시대에서 보편화 시대로 가는 추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격렬한 스포츠 세계에서 특이체질은 아닐 지라도 생리 때문에 운동을 못 하는 선수는 없다. 교육부의 ‘생리공결제’ 도입은 우선 시범운영 해 볼 계획이다. 시행과 평가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안다./임양은 주필

74살의 농구감독

일본은 농구가 아주 인기있는 스포츠 종목이다. 학교나 공공장소 어디를 가든 농구 코트가 다 있을 정도다. 일본항공의 여자 농구팀이 있다. 1998년까지만 해도 3부 리그에 속했다. 이듬해 2부로 올랐다. 또 이듬해엔 1부로 승격했다. 그리고 올 연초에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제71회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머 쥐었다. 1967년 팀창단 이후 첫 우승의 감격을 안았다. 지난 16년동안 이 대회의 우승을 번갈아 가며 도맡았던 샹송화장품과 저팬에너지를 차례로 격파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3부 리그에서 1부로 올려 정상까지 정복해 일본 언론의 스폿 라이트를 받고 있는 일본항공 여자농구팀의 총감독이 올해 일흔네살인 임영보씨다. “체력과 팀 워크를 중시하는 한국식 훈련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일본항공 여자농구팀은 지금 일본여자리그에서도 2위를 달리고 있다. 1961년 동신화학에서 팀 지도를 시작한 임 감독은 올해 44년째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승부 근성을 불러 일으켜 자발적으로 뛰게 만드는 ‘코트의 마술사’로도 불린다. 자율을 인정하면서도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매섭게 추궁하는 원칙주의자다. 그러나 코트 밖에서는 선수들을 인자하게 대해 인간미를 지닌 얼굴과 호랑이 얼굴을 겸비한 카멜레온 감독으로 평판이 났었다. 술을 마시지 않은 평소에는 과묵한 성격의 호주가다. 지지대子가 스포츠 기자 시절에 맡은 종목은 농구가 아니었으나 가끔 농구장에 들르곤 했다. 그 무렵의 임 감독은 국민은행 여자농구팀을 맡고 있었다. 당시 28연승의 신화적 위업을 이룩한 장본인이다. 참 오래전의 일이다. 그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잊고 있었던 게 일본 여자농구에서 발군의 대활약을 보이고 있다는 신문 보도가 반갑게 눈에 띄었다. 생각해 보면 그만한 나이인 게 맞다. 74살의 나이에도 코트를 여전히 누비는 농구 인생이 경이롭다. 그도 아마 “노병은 죽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임양은 주필

성씨문화

호주제 폐지는 기정 사실로 됐다.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여야가 이를 합의했다. 유림의 반대가 아니어도 호주제 폐지는 법률상 가족 붕괴를 가져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다. 대법원이 대안으로 내놓은 ‘1인 1적제’라는 것도 가족의 개념을 반영하진 못 한다. 국민 한 사람마다 부모와 배우자 및 자녀만 기재되는 신분등록부로는 자신이 누구인 지를 확실히 알기가 어렵다. 할아버지 할머니나 형제자매는 신분등록부상으로는 남남이다. 본인의 신분등록부엔 출생·결혼·사망 등만 기재되기 때문이다. 성씨에 대한 관념이 희박해진다. 부모의 합의가 있으면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같은 부모의 형제자매 중에도 아버지 성씨, 어머니 성씨를 따라 성씨가 다른 경우가 없다할 수 없다. 이러니 족보인들 별 의미가 있지 않을 것 같다. 재혼 때 여성이 데려간 아이의 성을 새아버지 성씨로 고치는 편의를 돕기 위한 이런 민법 개정이 과연 합당한 건 지 의문이다. 남성을 위한 것이어도 안 되고 여성을 위한 것이어도 안 된다. 인간 중심의 가족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호주제는 일제가 남긴 유물로 일본에서는 벌써 폐지됐다고 말한다. 미국 등 서구에서는 호주제가 없어도 가족제가 살아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성씨를 제멋대로 만들 수 있다. 서구는 사촌 이상의 친족 관념은 희박하다. 이 모두가 생활문화의 차이다. 이를 구실삼아 전래 고유의 친족문화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일본이나 서구사회처럼 아내의 성씨를 남편이 빼앗지 않는다. 결혼해도 아내가 남편의 성씨를 따라 가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뿐이다. 여권 존중을 말하면 이보다 더 할 수가 없다. 다짐하는 속담으로 ‘(내 말이 거짓이면)내 성을 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성씨문화에 대한 자긍심이다. 이젠 성씨를 갈아도 몇 번을 갈수가 있도록 법률이 보장하게 된다. 호주는 가족 단위의 상징적 구심점일 뿐 무슨 실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호주제가 뭐가 그리 폐악이라고 야단들인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임양은 주필

이중국적

‘이중국적자’는 외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두 나라의 국적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이다. 예컨대 자녀로서 속지주의(屬地主義) 국가인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나면서부터 한국 국적과 미국 시민권을 동시에 갖게 된다. 또 우리 국민인 남성과 부모양계 혈통주의 국가인 일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은 한국 국적과 일본 국적을 동시에 갖는다. 현행 우리나라 국적법은 원칙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외국에서 태어나 자동으로 이중국적을 취득하는 경우처럼 국가간 제도의 불일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이중 국적자는 있지만 일정한 기한을 정해 반드시 둘 중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도록 규정했다. 물론 이중 국적을 이용해 두 나라에서 출입국의 자유나 투표권, 교육 및 복지 혜택 등 권리와 자유를 누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의무를 저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중국적자를 보는 시선은 대체적으로 따갑다. 이중국적자의 병역 의무는 특히 논란거리다. 남자의 경우 병역 의무가 생기는 18세 이전에만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병역을 면제 받는다. 18세 이후라도 가족과 본인이 모두 영주권자이면 병역을 면할 수 있다. 또 국내법은 18세 이후에는 병역을 마치거나 면제될 때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 이중국적자가 해외에 머물 경우 이중국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중국적자는 또 한국에 거주하더라도 전쟁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미국 등 해당국 국민으로서 신변안전을 보장 받고, 외국 대학에 진학할 경우 입학은 물론 학자금대출· 등록금·장학금 등 모든 면에서 외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돼 한국인이면서도 외국인으로서의 많은 지위를 누린다. 그러나 대학 특례입학·병역면제 등 혜택만 ‘곶감 빼먹 듯’ 악용하는 이중국적 문제는 시정돼야 한다. 박희태· 송자· 이기준씨는 자녀들이 이중국적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10일, 24일, 3일 만에 각각 법무부장관· 교육부장관· 교육부총리라는 좋은 자리에서 ‘아깝게’ 내려온 소위 고위층이다.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원칙은 필히 지켜져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경문왕

신라시대 화랑 응렴은 860년 헌안왕이 베푼 연회에 참가했다가 그의 눈에 들어 아들없이 딸만 둘인 왕의 맏사위가 됐다. 이듬해 헌안왕이 죽자 응렴은 왕이 되는데 그가 48대 경문왕이다. 그런데 신라 하대(37대 선덕왕~56대 경순왕)의 정치상황은 쇠락과 멸망의 길을 걸었다. 무력해진 왕권을 놓고 음모와 암살이 난무했으며 진골귀족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는 등 골품제의 모순이 극에 달했다. 경문왕은 자신을 개혁군주로 자리매김했다. 권력의 행보에 따라 나뉜 계파를 하나로 모으고 백성들의 신앙인 미륵신앙과 선종을 끌어 안았다. 신라의 옛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황룡사탑을 재건했으며 지방세력의 독립을 막고 당나라와의 외교를 돈독히 하였다. 이 모든 것이 기득권층인 진골귀족을 배제하고 화랑과 육두품 위주로 추진됐다. 그러나 경문왕의 생애는 마치 전설처럼 전해져 왔다. 그의 재위기간은 15년이었다. 초기 5년은 개혁이 성공하고 평화로운 듯 했으나 그후에는 전염병과 홍수, 가뭄과 기근 등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경문왕은 30대 초반에 죽은 것으로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전한다. ‘삼국유사’에는 “왕이 즉위하자 그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그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두건장이는 죽기 직전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외친다. 대숲에 바람이 불 때마다 이 소리가 나자 왕은 대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했다”고 기록됐다. 이는 경문왕의 손자인 효공왕 이후 박씨 성을 가진 신덕왕이 즉위하면서 경문왕의 권위를 깎아내린 것이다. 경문왕에게는 밤에 뱀들이 둘러싸야만 잠을 잤다는 또다른 불명예도 붙어 있는데 이는 뱀이 화랑과 육두품으로 해석되는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대(竹)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도록 한 까닭은 무엇인가. 만병통치약으로 통용됐던 산수유로 잇따르는 자연재해에 지친 백성들을 구휼해보고자 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요컨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은 뱀과 함께 잠을 잤다’”는 설화는 기득권에 의헤 음해받은 정치적인 가설일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개혁 주위에는 모함이 난무한다./임병호 논설위원

나비효과

영국 자연환경센터는 1968년부터 35년여 동안 총 2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나비, 조류, 자생식물 개체수를 직접 세어 본 결과를 2004년 3월 발표했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사기간 동안 영국에서 나비의 일부 종류는 71%, 새의 일부 종류는 54%, 자생식물은 28%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곤충의 멸종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국제자연보호연맹도 전세계의 양서류 32%, 거북 종류 42%가 줄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지구 역사상 6번째 생태계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강력한 증거로 평가되고 있다. 지구에서 발생한 가장 최근의 대멸종은 6천300만년 전 백악기에 발생한 공룡멸종이었다. 그보다 앞선 4차례의 생태계 대멸종 때는 각각 지구상에서 90%의 생물이 멸종했다. 물론 6번째 생태계 대멸종이 시작된 것은 수만년 전부터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간들은 지금 당장 멸종될 염려는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인지 이라크 전쟁, 테러사건, 미국 선거 등 화끈한 뉴스들 틈에서 영국의 나비 감소와 같은 ‘한가한’뉴스는 그리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영국 자연환경센터의 집념 어린 연구결과를 ‘2004년 10대 과학 뉴스’ 가운데 7번째로 선정한 바 있다. ‘나비효과’란 나비의 날갯짓과 같은 사소한 사건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비 하나쯤 사라진다고 해서 무슨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일이냐 할지 모르지만 남아시아 지진해일처럼 나비 감소는 곧 인간에 대한 자연의 저주가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비뿐만 아니다. 새·개구리·벌레 숫자도 빠르게 줄어 들고 있음을 영국 자연환경센터가 증명한 것을 인류가 간과하거나 묵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지금 당장 오만과 탐욕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인간도 나비와 같은 신세가 된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별 탈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들이다. 나비효과의 직·간접 피해를 자손들이 입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실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지진해일 구호금

국제사회의 남아시아 지진해일 이재민 구호에도 강대국들의 이해 속셈이 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으로 실추된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절호의 이미지 회복 기회로 보고 있다. 미국은 이래서 당초 내놓기로 한 1천500만달러(155억원)보다 훨씬 많은 3억5천만달러(3천600억원)로 늘렸다. 독일과 일본은 유엔안보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려 6억7천만달러와 5억달러를 각각 냈다. 일본이 랭킹 1위의 구호금을 먼저 내자 독일이 이를 눌러 순위가 뒤바뀌었다. 중국은 6천만달러지만 극히 이례적이다. 이 역시 대국의 체모를 생각해서 큰 맘 먹고 낸 것이다. 미국 일본 독일은 구호금에 그치지 않고 구호 활동에 병력까지 파견했다. 미국은 1만2천600명 규모의 군대와 함께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외에 군함 20척과 수송기 14대, 헬리콥터 90대를 동원했다.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이 미군 동원은 평화 기여를 과시하기 위한 변신인 것이다. 일본은 800명의 군대와 군함 3척, 수송기 및 헬기 4~5대, 독일은 의무병 120명에 보급함 1척과 헬기 등 4~5대를 동원했다. 지난 6일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구호를 위한 아시안 정상회의가 열렸다. 강대국들의 구호 경쟁속에 유엔에 모아진 구호금은 세계 40여국이 참여해 40억달러를 돌파했다. 한 순간에 보금자리가 폐허화되어 가족을 잃은 슬픔속에 시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이재민들이 많다. 살았어도 엄청난 해일이 쓸어가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가운데 병마에 시달리는 이재민이 숱하다. 모든게 아쉽기만 한 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인도주의 정신이다. 일본의 한류왕 배용준도 5억원을 쾌척했고, 독일의 자동차 경주왕은 1천만달러를 기탁했다. 국제사회의 지원만 받아온 북측도 15만달러(1억8천만원)를 내놨다. 우리는 당초 60만달러에 이어 2차로 440만달러를 내고 앞으로 3년동안에 4천500만 달러를 내어 모두 중국에 버금가는 5천만달러를 내기로 했다.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우리의 처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공연한 황새(강대국) 시늉은 곤란하다. 강대국들의 속셈지원이 꼭 부정적인 건 아니다. 우리의 지원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인도주의 발현인지?/임양은 주필

공영방송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했던 것은 오래전이다. 이러면서도 현대인들은 텔레비전 중독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현장감과 신속성, 그리고 영상감 때문이다. EBS가 ‘TV와의 이별’이라는 이색 실험을 했다. 서울·경기지역 131가구를 선정, 20일동안 텔레비전을 끈 일상생활의 변화를 관찰했다. 물론 텔레비전을 중도에 다시 켜 실험에 실패한 가구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가구에서는 텔레비전을 끄고 나니까 가족간의 대화가 훨씬 많게 나타난 것으로 실험보고서는 결론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초저녁 거실에서 가족들이 모여 앉아 멍청한 오락프로그램만 넋놓고 보다가 각자 방으로 자려고 들어가는 것이 보편적 일상생활이다. 가족간의 대화를 ‘바보상자’에게 빼앗기고 있다.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중간광고 허용 발언에 사회의 반발이 거세지자 문화관광부의 한 주무국장이 ‘덕담’으로 한 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정 장관의 말은 결국 없었던 것으로 끝났지만 장관이 언제부터 텔레비전 방송사의 수입을 위한 광고 걱정을 하게 됐는지 영 찝찝하다. 시청료까지 받는 KBS도 K2TV에서 내보내는 광고가 토막광고, 프로그램제공광고, 자막광고 등 투성이어서 시청자들의 짜증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에 중간광고까지 내보내면 방송의 품질이 떨어지는 건 자명하다. 텔레비전의 시청률 경쟁은 광고수익 때문이며 광고수익은 작품성보다는 흥미성 프로그램이 더 용이하다. 일본의 대표적 공영방송인 NHK 에비사와 회장이 사의를 표했다. 제작비와 시청료 착복사건 등 잇따른 내부 비리로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이 벌어지자 할 수 없이 도의적 책임을 지기로 했다. KBS도 지난해 무슨 해외 프로그램 제작에 출장비 물의가 일어나 담당PD를 물러나게 한 적이 있다. 얼마전에는 수신료를 인상한다고 했다. 수신료 인상을 그만 두든지 광고를 그만 두든지 해야 할 것이다. 상업방송은 몰라도 공영방송일 것 같으면 말 그대로 시청자를 바보로 만드는 ‘바보상자’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할 줄 알아야 한다./임양은 주필

대통령의 2억 연봉

정부 요인들이 월급 가지고 사는 지는 민초들이 항상 궁금하게 여기는 의문이다. 공무원 봉급 1.3% 인상에 따른 대통령 및 각료들의 보수가 발표됐다. 대통령 연봉은 418만원이 올라 1억5천621만원이다.(직급보조비 3천840만원이 따로 또 있음) 국무총리는 325만원이 올라 1억2천131만2천원이다.(직급보조비 2천64만원이 따로 또 있음) 부총리는 245만원이 오른 9천175만8천원이다.(직급보조비 1천608만원이 따로 또 있음) 장관은 228만원이 올라 8천539만2천원이다.(직급보조비 1천488만원이 따로 또 있음) 올 공무원 봉급 인상은 지급액을 기준으로 했으면서 기본급은 동결했다는 얘기는 조삼모사 같은 소리다. 이번 인상률이 지난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중앙인사위원회 발표도 하릴없는 생색 내기다. 다만 출산 장려를 위해 올 1월1일 이후에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는 4인 제한의 가족수당을 초과해 더 지급하기로 한 것은 잘 한 처사다. 경제가 어려워 올 봉급 인상을 동결하는 기업이 적잖다. 인상은 커녕 인하로 구조조정 요인을 흡수하는 민간업체도 있다. 서민층 가계는 지출 항목을 없애거나 지출액을 줄이면서도 적자가계로 허덕이는 가구수가 부지기수다. 서민층은 한 마디로 마이너스 소득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정부는 단 1.3% 인상이라 하지만 플러스 소득이다. 이처럼 이율배반의 소득 구조가 일반 공무원이 아닌 치자와 피치자 차원의 계층에서 발생하는 게 바람직 한 것은 아니다. 특히 대통령은 더욱 그러하다. 청와대서 재워주고 먹여주는 것을 국고에서 다 부담한다. 퇴임 후 역시 국고에서 모든 생활 책임을 다 진다. 직급보조비를 포함한 연봉 2억원이 굳이 필요있을 것 같지 않다. 누가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대통령일 것 같으면 연봉을 다 국고에 환납할 것 같다”고 했다. “이리하여 공무원 봉급을 동결하지 못한 공무원사회의 긴장을 촉구하겠다”고 하였다. 이 정권은, 이 정부는 피맺힌 민초의 울부짖음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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