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불을 질렀다.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이를 피해 집을 빠져나오는 이웃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사망자 5명, 부상자 17명 등 총 22명의 인명 피해를 입히고서야 그 남자는 사회에서 격리됐다. 조현병으로 인한 무차별적인 이상동기 범죄, 바로 안인득의 이야기다. 큰 대형 사고가 나기 전에 수많은 경미한 사고, 큰 사고의 징후들이 반드시 반복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 수 건의 전과, 정신병력으로 인한 치료 이력 등이 있음에도 안인득은 관리되지 못했고 사회로부터 격리, 치료, 관리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이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과연 지금은 그때와 다를까?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명명)은 21조 1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립 또는 공립의 정신의료기관으로서 정신병원을 설치·운영하여야 한다’와 2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중략)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 중심으로 관리되도록 하여야 한다’를 통해 정신질환자를 진단 및 치료하고 관리해야 할 의무를 국가와 각 지자체에 부여하고 있다. 각 지자체는 산하에 정신건강 복지센터를 운영하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진단 및 보호, 관리 업무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강제력이 없다. 쉽게 말해 정신질환자가 치료, 입원, 관리 등을 원치 않을 경우 강제적으로 이들에 대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법은 국가와 지자체에 의무를 부여했지만 권한은 부여하지 않았다. 무분별한 강제입원이 문제가 돼 법이 개정됐다. 강제입원에 대한 절차, 요건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하지만 경찰 및 소방의 응급입원 절차는 변함이 없다. 현장에서 국가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경찰관, 소방관이 직접 맞닥뜨리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사회로부터 격리 및 치료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타의 위험성과 급박성이 있는 경우 인권침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응급입원의 강제력을 경찰관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만나는 최후의 보루 경찰관들의 현실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고위험 정신질환자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신질환자 관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고 관리하는 지자체 산하 관리기관에 적절한 권한 부여가 선행돼야 하며, 당직근무하는 의사와 입원할 병상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 경찰만의 독자적인 정책 추진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크게는 국회, 작게는 기초지자체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법률 개정, 조례 제정, 국공립 정신의료기관 설립, 당직의·예산 확보 등이 이뤄질 때 경찰, 소방, 지자체에 정신질환 원인 범죄에 대한 대응력이 진정으로 생겨날 것이며 정신질환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로 한걸음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정신질환자로 인한 관리·책임의 종착지는 국가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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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24-05-01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