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총선거가 내일이면 공식적인 선거일정에 돌입, 14일간의 열전에 들어간다. 이번 선거는 그 어느때 선거보다 그야말로 우여곡절이 많은 선거가 아닌가 싶다. 국회에서는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 법을 어기면서까지 지루하다 못해 국민들의 실망속에 이번 선거를 위한 돈 안드는 선거체제 및 선거구획정 등 선거관계법이 통과됐다. 곧 이어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후폭풍으로 하루아침에 정당지지도가 상전벽해(桑田碧海)하는 급랑을 겪었다. 또 선거법 개정으로 과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예비후보제도가 도입돼 정치초년병들의 사전 선거운동의 길을 열어주니까 불과 3달여만에 각종 불·탈법 선거사례가 전국적으로 2천건이 넘는 구태(舊態)와 신종 선거사범이 나타났고 선거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정의인 ‘선거는 국민 모두의 축제’라는 말은 ‘발과 입만 살아있는 그들만의 잔치’라는 정의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를 불과 한달여도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까지도 정치개혁이랍시고 시행한 당내경선을 둘러싼 잡음과 송사가 끊이질 않고 이런 과정에서 구시대의 인물은 가고 ‘우먼파워’가 빛을 발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정치권이 변하고 있구나 하는 기대감도 없지는 않지만 여전히 국민들에 혼란만 주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섣부른 판단은 금물’,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진리를 새삼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후보등록일을 앞두고 각당이 이제는 공약을 쏟아내고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러나 선거는 이제부터다. 국민들은 이미 정치권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국민의 고유권한인 참정권 마저 포기하려는 유권자가 적지않다고 한다. 왜 이렇게까지 국민들을 내몰았는지, 왜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같은 행동을 보이는지 정치권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어느 정치인은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잘 하는 정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말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대변해 올바르고, 공명정대하고, 투명하고, 민심을 따르고, 새로운 국가의 미래를 제시하고 등등… ‘국민이 바라는 정치’를 했을때 이야기다. 국민들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이번 총선에 나서는 후보들은 과연 어떤 정치를 꿈꾸고 있는지 가슴에 두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한다. 2만불시대를 열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후보자, 2천년대 동북아 중심의 밀알이 되겠다는 출마자, 지역사업의 연속성을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겠다는 현역 국회의원, 이번 만큼은 바꿔 정치개혁을 이루자는 초년생들, 이들 모두는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들에게는 ‘꿈’을 심어 주겠다는 소신들일 것이다. 일부 유권자들은 이같은 기대감에 가슴의 체증이 내려감을 느낄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정치인들은 ‘장밋빛 공약’이 아니라 ‘실천적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생동감있게 움직이는 정부, 국민을 대신해 감시하고 채찍질하는 국회, 정치를 믿는 국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제17대 총선은 상품으로 나오는 후보자들이나 그 상품을 고르는 유권자 모두에게 절차탁마(切磋琢磨·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갈듯 정성과 노력을 다함)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정일형.정치부장
오피니언
경기일보
2004-03-3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