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예산안 제출을 통한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하여 투명한 정치자금의 운용을 위한 정치개혁을 주장한데 이어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그리고 박상천 민주당 대표 역시 정치개혁을 주장하고 있어 정치권이 정치개혁에 대한 경쟁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유야 여하튼 정치개혁에 관하여 대통령을 비롯한 정당 지도자들이 이렇게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드물어 이번이야말로 정치개혁의 최적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노 대통령은 정치자금 실명제를 통하여 투명한 정치자금 제도 운용을 주장하였으며, 또한 정치자금법 위반 사범에 대한 공소시한 연장을 요청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역시 단일은행 계좌 사용을 통한 정치자금 실명제는 물론 완전 선거공영제를 주장하였으며, 더구나 정치자금 기부한도액을 300만원 이하로 하여 그동안 시민단체나 중앙선관위가 주장하던 개혁안보다 더욱 과감한 개혁안을 언급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당 또한 정치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통합신당 대표 역시 정치개혁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 정치개혁에 특별한 이견이 없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때문에 정치개혁안을 각 정파간의 합의로 국회에서 입법화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용이한 것으로 생각되므로 이를 조속히 협의하여 내년 총선부터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6개월 있으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는데도 국회는 가장 중요한 선거구 획정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치인들만의 놀음인 정쟁이 아니고 투명한 정치,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정치개혁이다. 매일같이 검찰에 불려 다니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창피하지 않은가. 국회는 소모적인 정쟁 보다는 정치자금 실명제 도입 등을 위한 정치개혁 관계법을 조속히 개정, 내년 총선거가 깨끗하고 돈 적게 드는 선거가 되도록 정치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하기를 거듭 요구한다.
‘미리내 성지(聖地)’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며 한국 근대 개화사상 선구자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연간 50만~60여만명의 국내·외 신자들이 순례하는 성지다. 이 미리내 성지 인근에 최근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아무리 경기도가 ‘골프장 천국’이라고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 골프장이 들어설 곳은 천주교의 핵심 성지 중 한 곳인데다 특히 중증장애노인들과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위한 수용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더욱 곤란하다. 그것도 어렵사리 주민들을 설득해 시설터를 확보했는데 골프장이 건설된다면 장애인 시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다. 그러나 서해종합건설 협력업체인 그랑블산업개발은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일대 30만여평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짓겠다며 지난해 11월 안성시에 사업승인 신청서를 낸데 이어 준농림지와 농림지 일부를 준도시지역으로 바꿔 달라는 국토이용계획변경 서류도 낸 상태다. 골프장이 들어설 곳은 미리내 성지로 들어가는 입구로 성지와는 직선거리로 2㎞가량 떨어져 있다. 더구나 이 성지에서 2~5㎞ 인근지역엔 이미 화산·파인크리크·신안골프장이 들어서 있어 연일 인파로 붐비고 있는 중이다. 만일 성지 어귀에 대규모 골프장이 또 들어설 경우 수도자들에게 지장을 주는 것은 물론 천주교 성지의 훼손이 가속화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문제 해결은 안성시와 경기도의 행정에 달려 있다. 이미 국토이용계획변경에 따른 한강유역환경청의 사전환경성 평가에서 골프장 예정지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장 예정지 중 산정상 부근의 녹지자연등급이 7등급으로 임상이 양호하다는 것이 주 이유라고 한다. 그런데도 안성시는 “골프장 건설에 따른 법적 하자는 없다”고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민원이기 때문에 “업체쪽이 재협의를 요구해오면 다시 사전환경성 평가를 거쳐 경기도에 국토이용계획변경 승인 신청을 내겠다”는 것이다. 골프장 사업승인은 최종적으로 경기도가 결정한다. 환경관리청과의 1차 협의결과 골프장 건설 일부 부지가 부적합한 것으로 나온 사안을 경기도가 어떻게 처리하는 지 지켜보고자 한다.
경기도 기념물 제69호 죽주산성(竹州山城)은 안성시 이죽면 매산리에 있는 고성(古城)이다. 비봉산정을 따라 축성한 죽주산성은 사대문지(四大門址)의 장대석(長大石)과 석재, 기왓장 등이 옛 역사를 말해 준다. 죽주산성은 통일신라 말기 진성여왕 때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군사를 모아 크게 세력을 떨친 곳이었고, 몽골군이 3차에 걸쳐 침입했던 고려시대에는 이곳에서 피어린 항몽전이 있었다. 죽주산성의 전승은 조선시대로 이어져 임진왜란 때는 왜군을 크게 격퇴시켰다. 특히 1236년(고려 고종 23) 이곳의 방호별감 송문주(宋文胄)장군이 몽골의 침략군을 맞아 백성들을 이끌고 이 성에서 항전, 승리로 이끈 죽주전투는 유명한 전사(戰史)로 기록돼 있다. 몽골군과의 전투경험이 있는 송문주 장군은 성내에 미리 포(砲)를 준비하여 맞서 싸웠다. 당황한 몽골군이 대대적인 화공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성문을 열고 나가 총공격을 가하여 몽골군을 물리쳤다. 몽골군은 갖가지 방법으로 보름여동안을 공격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퇴각하고 말았다. 죽주산성 전투는 고려군이 열세였음에도 몽골군을 분쇄한 지방군의 격전장이었다. 이 죽주산성의 원래 둘레는 3천874척에 이르렀다 하는데 지금은 본성의 둘레가 1천690m, 내성은 270m, 외성은 150m로 전란을 겪는 동안 허물어 졌다. 장대지(將臺址),사당 등이 있는 역사 깊은 이 죽주산성이 지금은 산성인지 채마밭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방치돼 있다는 보도(본보 10일,14일자 1면)는 문화재 관리에 허술한 지방자치단체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여서 매우 실망스럽다. 더구나 11억원의 예산을 투입, 지난 98년부터 복원하고 있는 성벽이 2001년에 이어 또 여기 저기 무너져 내려 윤곽조차 찾을 수 없다고 하니 안성시는 그동안 공사감독은 물론 문화재 관리를 어떻게 해 왔는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잖아도 태풍 ‘매미’로 인해 전국적으로 문화재 피해가 엄청나게 난 상태다. 국가지정문화재 관련 피해가 83건, 시·도지정 문화재도 149건이나 된다는데 피해 상황에 죽주산성이 포함됐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안성시 당국은 차제에 파괴·훼손된 부분만 응급복구할 것이 아니라 전체 시굴조사를 실시하여 죽주산성을 완전히 복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 가운데서 말한 재독학자 송두율씨의 포용 언급은 두가지 점에서 심히 당치않다. 첫째, “분단시대의 극단적 대결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법과 상황에서 거론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관점은 정치적 판단이지 법률적 판단은 아니다. 송씨가 피의자 조사를 받고있는 검찰 수사는 법률적 판단이다. 검찰이 대통령의 생각과 같은 정치적 판단에 따를 이유도 없고 대통령이 강요해서도 안된다. 만약 굳이 강요한다면 직권남용이 된다. 대통령은 “세상은 많이 바뀌고 있다”고 했지만 바뀌지 않은 것도 많다. 평양 정권이 송씨문제에 ‘남북 대결’을 강력히 시사한 것은 부당한 내정 간섭이다. 절대 불변의 대남 전략에 무한 가변의 대남 전술을 구사하는 저들이다. 불변의 전략을 위한 전술적 변화가 근본적 전략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송씨는 조금도 뉘우침이 없는 평양 정권의 이념적 충복이다. 학자적 양심이 의심되는 말 바꾸기 궤변으로 한국사회를 농락하는 그에게 관용의 가치가 있다고는 판단되지 않는다. 처음엔 우리도 당국이 선처해도 이의가 없다는 생각을 가졌던 게 크게 달라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송씨 자신의 책임이다. 이런 위인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은 대통령 말대로 “한국사회의 폭과 여유와 포용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냉소를 사기가 십상이다. 둘째, 검찰수사가 구속 기소로 잠정결론을 내린 것은 그만큼 사안이 무거운 혐의 사실이 많이 포착됐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이러한 시점에서 대통령이 우정 포용을 언급한 것은 다분한 영향력 행사다. 검찰수사에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종전의 말과는 전혀 반대로 가는 언행이다. 대통령은 문제의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비리 수사는 자신이 미리 말해 앞질러 가는 게 적절치 않다며 해명을 함구하고 있다. 이러면서 송씨 문제에 난데없이 관용을 말한 것은 최씨 수사에 간접적 영향력 행사로까지 보는 세간의 관측이 나온 것은 실로 유감이다. 심히 적절치 않은 대통령의 발언 장소가 국회인 것은 더 더욱 온당하지 않다.
고건 총리의 움직임이 최근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번 주에 발표될 국정담화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 선언으로 야기된 국정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로서, 정부는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와는 관계없이 국무위원들이 주어진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차질 없는 국정수행을 하겠다는 다짐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국정운영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협력을 부탁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며칠간 전개된 한국정치의 변화는 실로 국민들이 미처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어 국민들은 어지러운 상태이다. 정상적인 선거로 당선되어 임기 5년동안 차질없는 국정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국민에게 선서까지 했다. 이러한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과 일부 언론의 발목잡기 행태로 인하여 더 이상 국정수행이 어려워 재신임을 국민들에게 묻겠다고 하였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번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 선언으로 국정은 상당 부분 차질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국무위원 등의 일괄 사표를 대통령이 즉시 반려하여 일단 큰 혼란을 막긴 했으나, 대통령의 리더십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과연 앞으로 국정이 어떻게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 지 염려된다. 이러한 정치 상황에서 국민들이 가장 많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고건 총리의 역할이다. 대통령 자신이 ‘개혁 대통령, 안정 총리’의 시각에서 초기 정부를 이끌어 가겠다고 약속했을 정도로 총리에 대한 기대는 크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무당적의 대통령, 재신임 문제 발표로 국정 장악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선 더 말할 게 없다. 총리가 얼마나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무위원들을 장악하여 국정을 수행하느냐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국무총리는 우선 헌법에 주어진 총리의 역할에 충실하여야 한다. 어느 때보다 총리의 역할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음을 인식하여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국무위원에 대한 통할을 통하여 안정된 국정을 수행하여 줄 것을 요망한다. 고건 총리는 책임총리로서의 위상을 확실하게 정립하여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 선언으로 야기된 국정 공백을 큰 차질 없이 수행하는 것만이 현재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재신임 문제의 국민투표에 조건이 붙어서는 안된다. 가령 지역구도 타파 등 정치개혁과 연계해 재신임을 묻는다는 것은 당치않다. 지역구도 타파 등 정치개혁을 바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이를 새삼 대통령의 정책으로 내걸어 재신임 안건으로 삼는다면 유권자는 모순된 갈등을 빚고 결과는 빗나간다. 불신임 표를 찍으면 본의 아니게 정치개혁을 반대하는 것이 되고, 정치개혁을 지지하자니 역시 본의 아닌 재신임 표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개혁과 재신임을 동시에 지지하는 유권자도 있겠지만 혼돈의 갈등을 겪는 유권자도 있을 것이므로 이는 정확한 재신임·불신임의 의사 표출을 가려내기가 어렵다. 이상의 정치개혁과 재신임 여부가 완전히 별개인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어떤 조건도 연계시켜서는 안된다. 청와대에서 검토되던 재신임 문제의 지역구도 타파 등 정치개혁 연계설을 노무현 대통령이 일축,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고 재신임 여부만 묻겠다고 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투표 시기를 오는 12월15일 전후로 제시한 것은 너무 늦다. 국가운영의 이완이나 누수를 막기 위해서는 되도록 더 앞당겨 조속히 확정지어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여부는 앞으로의 안정된 국정운영을 지금까지의 정황과 결과로 보아 과연 더 믿고 맡길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 주된 판단이 지, 앞으로 무엇을 또 어떻게 하겠다는 참고 자료가 주된 판단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이러므로 국민투표의 시기를 하루라도 더 빨리 잡는 것이 보다 정확하게 국민 의사를 묻는 것이 된다. 청와대나 정치권은 재신임 정국을 꼼수로 대해서는 안된다. 청와대가 설사 재신임 여부를 정책과 연계하지 않고 별개로 묻는다 하더라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은 역시 받아들일 수 없는 술수다. 또 통합신당은 처음에 반대하던 국민투표를 적극 지지하고, 국민투표를 환영하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모두 감각적 대응으로 국민이 보기에 좋지않다. 정견이 바로 서지 못한 감각적 대응의 일희일비로 당이 좌고우면하는 것은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정치권 역시 노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 제기에 시급히 정확한 입장을 정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지금 같아서는 정치권이 대통령의 잇단 강력한 역공 드라이브에 휘말려 휘청거리는 것 같다.
태풍·폭우 등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커지고 있는 것은 기상이변 탓도 있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뒷북치기식 대책 탓이 크다. 사전 예방보다는 뒷수습에만 치중,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하면서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게 지금까지의 실태였다. 때문에 완전한 재해대책을 위해서는 그 해에 일어난 피해를 복구하는 식의 임기응변 대응방식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피해시설들을 시멘트나 철근으로 원상복구하는 식의 대책은 효과도 없다. 건물 안전기준, 신호등 체계 등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전 국토를 자연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세워 전 국토를 대상으로 집중 투자하면,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내수를 살리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태풍 ‘매미’때문에 발생한 피해를 원래대로 복구하겠다는 생각으로 단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차제에 경기 침체 타개를 위한 장기적인 국토 개조 작업 차원으로 재해대책의 시야를 넓히라는 것이다. 태풍으로 해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농업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농업 부문이 재해로 입는 손실도 막대하지만 앞으로 농산물 시장이 전면 개방될 경우 우리 농업은 금융부문이 국제금융 사태때 겪었던 것과 같은 위기를 다시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농작물 피해 보상 차원을 넘어 재해 보험을 도입하는 등 농업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에 수해방지를 위한 중장기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수해방지대책기획단을 만들어 지난 4월 76개 과제를 중심으로 중장기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1999년에도 청와대 산하에 수해방지대책기획단을 만들어 119개 개선방안을 마련했으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런 계획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는 지에 달렸다. 국립방재연구소가 지난 2000년 용인시를 대상으로 모의실험한 결과 앞으로 20년 동안 145억원을 미리 투자하면 예상 피해액 중 1천760억원 정도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었다. 재해대책은 난리가 난 뒤 부랴 부랴 단순 복구식 땜질 수습에서 벗어나 재해대응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당장 예산 지출은 어렵지만 지방자치단체부터라도 시행한다면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재해복구 공사는 요즘같은 날씨가 가장 좋을 때다.
우리는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코드인사 및 측근비리 척결, 민생 챙기기 등 국정쇄신의 의지이 지, 재신임을 묻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재신임 문제 제기가 철회되기 바랐으나 기정사실화 한 마당엔 시기와 방법을 두고 고민해야 할 단계가 됐다. 이에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시사한 것은 우리 역시 국민투표의 준용만이 그래도 순리라고 밝힌 바가 있어 동의한다.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게 국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라는 일부의 부정적 견해는 법리상 지나치게 협의의 해석이라는 판단을 갖는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굳이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문제이 지, 법률적인 문제가 아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러므로 국민투표의 결과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점을 우려하는 것 역시 문제의 본질을 잘못 혼돈하는 소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표결을 통해 진퇴를 건 국민과의 정치적 약속은 역시 정치적 규제력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투표법을 보완 개정하거나 따로 특별법을 만드는 방안은 반대한다. 대통령의 임기 중 재신임 묻기는 노 대통령이 자청한 이번 한번의 정치행위로 끝나야 한다. 이번 한번을 위해 국민투표법을 보완하거나 특별법을 제정하는 건 대통령 소환을 사실상 법제화하는 것으로 장차 헌정 불안의 불씨로 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년 총선 평가를 기준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다. 당장 노 대통령은 정당을 가늠할 당적도 없거니와 나라의 안정을 위해 이 문제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하므로 내년 4월 총선까지 ‘재신임 정국’을 마냥 끌고 갈 수는 없다. 사리가 이러다 보니 국민투표법을 준용하는 것으로 안된다면 재신임 묻기는 결국 불가능하게 된다. 만약 일이 이렇게 되어 재신임 문제 발언의 실현이 불가능 해지면, 발설 자체가 자연 소멸될 것을 계산한 암수라는 말도 들을 수가 있다. 헌법은 대통령이 부의할 수 있는 국민투표 대상으로 외교·국방·통일 등을 열거하고 있으나 또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제기한 재신임 필요의 심각성 정황이 포괄적 위임의 기타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어 대통령은 이른 시일 안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 실시를 공고해야 할 것으로 안다.
보건복지부가 폭력성을 띤 불법시위에 미성년자를 동원하지 못하도록하는 아동복지법 개정 취지는 이해한다. 예컨대 위도 원전 폐기물처리장 반대 시위 군중 가운데 어린 학생들이 끼어 어른들 행태를 따라 하는 모습에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미성년자를 강제 동원하거나 참가를 강요하는 시위 주동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기로하는 입법은 신중을 요한다. 처벌 대상으로 집단적인 폭행·협박·방화 등이 일어나거나, 외교공관 100m 이내 등 장소에서 해가 진 뒤에 발생한 시위 등을 규정했으나 이 또한 해석에 모호한 점이 많다. 시위 군중의 사고는 우발적일 수도 있고 거리 제한이나 일몰 시각엔 다툼의 여지가 또 적지않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일 지라도 자발적 의사를 갖고 참여하는 경우엔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입법 취의에 비추어 모순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 판단이 아주 어려운 문제다. 자발적 참여 의사란 주관적인 것이어서 어디까지를 자발 또는 강제로 보느냐 하는 판단 역시 심히 자의적일 수가 있다. 수업시간 중 행해지는 옥외 집회나 시위에 동원되는 것도 금지시킨다는 건 마땅하나, 그럼 휴일에 동원되는 것은 묵인하느냐는 이론이 제기된다. 이 보다는 차라리 미신고 등 불법시위에 미성년자 참가를 독려하는 주동자를 처벌하는 기준이 더 객관화되지만 이 역시 자발적으로 참가했다고 하면 무위해 진다. 학생 등 미성년자의 시위 참가는 그것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간에 바람직하지 않다. 인격 형성과 판단 능력이 미숙한 미성년자들이 거리에 나서는 모습은 사회정서상 보기에 썩 좋지않은 것은 사실이다. 폭력성 시위인 경우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를 법으로 제한하는 데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을 갖는다. 왜냐하면 법은 지켜질 수 있어야 권위를 지니기 때문이다. 지켜질 수 없는 법은 되레 권위만 손상시킨다. 미성년자의 시위 참가 제한은 어려운 길이지만 기성사회의 시위문화 성숙에 맡길 수 밖에 없다. 법으로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다면 바로 미성년자 시위 주모자를 처벌하는 일이 법으로는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도덕성의 신뢰 추락으로 원만한 국정운영이 어렵게 됐다’고 밝힌 현실 인식은 적절하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잇단 측근의 권력형 비리는 더 이상 이 정권의 청렴성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신중을 요한다. 국민에 대한 재신임은 중간평가와는 다르다. 중간평가는 평가 내용을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주요 참고로 하면 되지만 재신임은 과반수의 불신이 나올 경우엔 하야해야 한다. 재신임을 묻는 방법은 내년 총선을 참작하기 보다는 국민투표로 하는 것이 옳다. 재임 중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투표의 전례가 없어 매우 난해하지만 그래도 묻겠다면 헌법이 정한 국민투표로 묻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재신임을 지금 당장 묻겠다는 것도 아니고 공론화 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재신임을 묻는 사례가 법에 없으므로 순전히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결정될 일이지 누가 어떻게 공론으로 정할 성격이 못되는 것이다. 만약 이 정권이 처한 난국을 면책키 위한 제스처라면 심히 황당하다. 그러나 어떻든 일단 대통령이 밝힌 재신임 문제를 그렇다고 흐지부지 덮어두기도 어려워 앞으로의 일이 난감하게 됐다. 대통령은 먼저 취임 이후의 실정이 누구의 탓이 아닌 바로 자신의 탓임을 깊이 뉘우쳐야 한다. 국정을 잘못 챙기고 측근을 잘못 관리한 책임은 언론환경도 아니고 지역민심도 아닌 바로 대통령 자신인 것이다. 그래서 실패한 전철을 교훈 삼아 아직도 임기가 많이 남았으므로 앞으로 더 잘 해주길 바라는 것이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불쑥 내미는 재신임 투표가 아니다. 가뜩이나 민생경제가 어려운 터에 재신임 문제로 정국이 불안해지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또 대통령의 재임 중 재신임을 묻는 일이 전례로 남는 것은 장차 헌정의 안정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충심으로 당부하는 것은 재신임을 묻고싶을 만큼 결연한 국정쇄신의 의지로 해석하고자 하므로 가급적이면 철회하기 바란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재신임을 꼭 묻겠다면 지체없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할 것이다. 공론화란 이름으로 국론을 분열하고 국력을 소진하는 것은 매우 좋지않다. 재신임 문제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하는 건 이 또한 발설한 대통령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