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곳곳에 매설돼 있는 지뢰지대의 총면적이 91㎢(2천753만평)로 서울 여의도 면적(90만평)의 30.6배나 된다는 국감자료가 놀랍다. 더구나 그중 4분의3은 정확한 매설지점조차 알 수 없는 ‘미확인 지대’라니 그야말로 지뢰밭에 살고 있는 셈이다. 안전대책 마련이 참으로 시급하다. 지뢰지대 총면적 중 전·후방의 확인된 지뢰지대 22㎢(665만평)에 무려 108만발의 지뢰가 묻혀 있고, 이중 105만발은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 등 전방 지역에, 나머지 3만여발은 영·호남, 경기, 강원, 충청 등 전역에 매설돼 있다고 한다. 국토가 분단된 상황에서 지뢰 매설은 군사적으로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확한 매설지점 등을 알 수 없다면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에게도 매우 위험하다. 미확인 지뢰지대의 경우 민통선 이북에 50개소, 민통선 이남 지역에 15개소 등 총 65개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민통선 이남 지역에 있는 15개소는 당초 민통선 이북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나 법개정에 따라 민통선이 북상하면서 민통선 이남에 위치하게 된 것이어서 위험도가 더욱 높다. 민통선 이남의 미확인 지뢰지대는 군 당국이 표지판이나 철조망을 설치, 관리하고 있지만 민간인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여름철에는 풀이 우거지기 때문에 지뢰사고 발생이 심히 우려된다. 더욱 큰 문제는 지뢰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이다. 최근 3년간(2000~2003년) 지뢰사고 관련 국가배상 및 국가소송 현황을 보면 배상 신청건수 12건 중 겨우 3건만 받아들여지고 나머지는 기각됐다. 지뢰사고 배상 집행액도 8천만원으로 국방부가 집행한 국가배상액 80억2천만원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반대로 국제지뢰제거기금은 지난 1993년 유엔 아프간원조기구(UNOCHA)에 7만5천달러를 지원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98만5천달러(12억원)를 지원했다. 국내에 매설된 지뢰제거보다 외국 땅에 묻힌 지뢰제거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쓴 것이다. 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후방지역 지뢰는 순차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특히 지뢰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국가배상이 이뤄지도록 지뢰사고 피해자 구제 기금 마련은 물론 국가배상법 개정 등 다각적인 대책 강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검찰의 정치권 비리 수사가 어느 때라고 중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SK 비자금 수사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지금의 통합신당 이상수 의원에게 건넸다는 70억원,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에게 주었다는 수십억원은 바로 당시 노무현, 이회창 두 후보의 대선자금이란 점에서 그 혐의의 죄질이 지극히 무겁다. 정경유착의 전형적 표본이다. 이른바 돼지저금통으로 선거를 치렀다며 청렴성을 과시하던 이면에 이런 사악한 뒷돈 거래가 있었다는 것은 기만도 이만 저만이 아닌 사기극의 극치다.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의 10억 수수 혐의는 대선이 끝나고 나서 거래된 점에서 또 다른 이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이 된다. 이 거액의 돈이 각종 청탁과 함께 건네진 것이라면 결코 최씨 개인을 보고 준 것으로 볼 수 없는 정황은 이 정권이 표방한 개혁성이란 게 얼마나 허황한 가를 말해 준다. 정치자금 의혹은 이밖에도 현대 비자금 등을 비롯하여 또 몇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도 특히 SK 비자금 의혹을 주목하는 것은 지나간 정권이 아닌 바로 현 정권 정상의 측근이 당사자가 되는 예민성 때문이다. 더욱이 최씨는 출국금지 기간에도 어떻게 해외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인지, 아무튼 그런 조화속 지위의 인물이다. 그리고 단돈 1원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변한다. 만일 최씨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의 소환을 예정한 검찰 수사의 엄청난 혐의 내용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겠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믿을 수는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중수부의 나라’니, ‘검찰공화국’이니 하는 해괴한 말들을 한다. 이는 정치권 비리 수사가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는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는 일종의 치기다. 정치권이 비리를 일삼지 않으면 굳이 검찰 수사의 예봉을 받을리 없고 또 이러한 정치권이 되어야 한다. 정치자금은 필요악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잘못된 인식이야 말로 조속히 청산돼야 할 개혁의 대상이다. 참신성과 개혁성을 내세우는 이 정권이 대선자금 이면 거래로도 모자라 당선 이후에 검은돈까지 뒷거래한 것은 실로 용인되기 어려운 위선이다. 국민사회는 지금 검찰에 큰 기대를 갖고 격려한다. 검찰이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은 예전의 일로 안다. 대검 중수부는 특히 최씨에 대한 수사의 어려운 시금석을 잘 극복해 내어 서릿발처럼 살아있는 검찰상을 보여주길 당부한다. 이것이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는 검찰 개혁의 길이다.
오늘은 557돌을 맞이한 한글날이다. 재론할 여지도 없이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들도 인정하는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다. 유네스코가 1997년 ‘한글은 세계가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선포했다. ‘모든 언어가 꿈 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는 격찬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는 한글을 경시하고 있으니 실로 통탄할 일이다. 심지어 국경일이었던 한글날을 기념일로 격하시킨 어리석음까지 범했다. 자기 나라 글을 이렇게 홀대하고 있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말고는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도 우리는 한글의 강습과 보급에 목숨을 걸고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른바 문화의 세기라는 오늘날 한글이 오염, 훼손돼 간다면, 또 정부가 이를 방치한다면 민족적 죄업임을 면할 수 없다. 우리 글은 우리 말과 상통한다. 국토분단 반세기를 넘기면서 같은 글,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도 적잖은 말들이 번역 없이는 뜻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남한말과 북한말 사이에 차이가 난 것도 심히 안타까운 판국에 한글 표준어가 외래어·은어·속어 등에 밀려 거리의 간판들에서조차 푸대접을 받는 현실은 더욱 서글픈 일이다. 예를 들기도 민망하지만 ‘불타는 XXX에 OOO 조개들’ ‘골때리네 △△△’등 한국어, 한국말이 저질화돼 가고, 여기에다 인터넷 채팅이나 휴대폰 문팅 등에 등장하는 소위 ‘외계어’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즐팅(즐거운 채팅)’ ‘냉텅(내용 없음)’ ‘e렇퀘글쓰능高★로 나뽀게생각안훼(이렇게 글 쓰는 거 별로 나쁘게 생각 안해)’ 등이 도대체 어느 나라 글인가. 문제는 종이보다 컴퓨터 자판에 익숙해지는 청소년들의 우리 글 , 우리 말에 대한 사랑 결여다. 우리 글을 다 깨우치기도 전에 외계어를 배운 일부 어린이들이 원고지나 공책에 글을 쓸 때 은어와 외래어를 정상적인 것 처럼 알고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글, 우리 말 표준어는 물·공기와 같아서 일단 파괴·훼손되면 복구하기가 어렵다. ‘우리 글·우리 말은 교과서에만 있다’는 자괴감을 없애려면 정부는 물론 방송계·언론계·교육 당국의 심각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환원하는 ‘한글 사랑 마음’을 국가가 먼저 보여주기 바란다.
매년 각국의 부패정도를 측정하는 국제투명성 기구의 발표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한국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부패지수’가 4.3으로서 조사 대상국 133개국 중 50위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2001년 42위 2002년 40위에 비하여 더욱 낮아진 것으로 아직도 한국은 총체적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5위), 일본(21위)에는 말할 필요도 없고 홍콩(14위), 대만(30위)에도 뒤진다. 이런 부패지수는 아프리카의 튀니지(39위)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이며, 또한 코스타리카, 그리스와 같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부패지수가 높은 것이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좋은 핀란드는 매년 1위로 나타나고 있어 부럽기만 하다. 노무현 정부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국가의 투명성을 높여 10위 이내로 향상시키겠다고 하였는데, 과연 제대로 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반부패기본법을 만들어 부패방지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돈세탁법까지 제정 투명사회 건설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국제사회가 한국을 부패지수가 높은 국가로 평가하고 있어 국가신인도가 오히려 낮아졌다. 요즈음 연일 신문에 정치인들이 현대, SK 등 국내 굴지 대기업들로부터 수억원에서부터 수백억원까지의 비자금을 받은 사건들이 보도되어 세상이 어지럽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정치인들이 검은 돈 수수문제로 검찰에 대거 소환될 예정이다. 불과 6개월 전에 퇴임한 정권 실세들의 상당수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중이고 얼마전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뇌물 수수죄에 의한 추징금부과 미납으로 가재도구까지 경매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정치인의 부패상이다. 이런 상황에도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선관위가 제출한 투명한 정치를 위한 정치개혁안에 대하여 ‘이상주의’ 등으로 비판하고 있으니, 정치인들의 부정부패가 제대로 근절되겠는가. 정치권의 부패는 가장 심각한 사회적 암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물론 국민 모두 부패근절을 위해 노력하여 부끄럼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오는 9일 개막돼 12일까지 4일간 화려한 문화관광축제를 펼치는 제40회 수원 ‘화성(華城)문화제’를 축하한다. 화성문화제는 103만 수원시민의 축제일 뿐 아니라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각광 받고 있는 경기도의 대표적인 문화예술행사다. 화성문화제는 원래 ‘화홍(華虹)문화제’로 1964년 경기도청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전함에 따라 도청 기공식이 있었던 10월15일을 기념하고 경기도 수부시민의 애향심을 높이는 뜻에서 시작됐다. 특히 조선조 21대 정조(正祖)대왕이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 영우원(永祐園)에서 수원 화산 현륭원(顯隆園)으로 천장한 뒤 화성행궁을 건립하고 전배(殿拜)했던 효심을 계승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화산릉 (융릉·건릉) 참배를 시작으로 개막된 화홍문화제의 각종 문화예술행사 중 ‘화홍상(華虹賞)’은 전국 각 시.도에서 1명씩 선발된 효자·효녀·효부들을 크게 시상한 전국 최대의 효행상이었다. 화홍문화제가 화성문화제로 행사명칭을 바꾼 것은 ‘수원성’으로 알려진 화성이 본래 이름을 찾은 1999년부터였다. 정조대왕이 축성한 ‘화성(華城)’이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행사일을 10월 10일로 변경한 것도 화성 축성 준공일이 10월 10일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화성의 역사적 의의와 정조대왕의 효심을 기리는 화성문화제가 올해는 특히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승화시키는 데 주력, 화성행궁, 동장대(연무대), 장안공원 등 화성 일원을 중심으로 마련됐다. 특히 행사시간을 시민의 참여가 용이한 저녁시간대로 주로 조정하여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식전행사로 열리는 헌다례, 행궁개관식, 과거시험, 혜경궁 홍씨 회갑연 등 정조시대의 행사 재연과 10일 오후 7시 동장대에서의 개막식 및 ‘해피 수원’ 선포식 등 모든 행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 다만 이렇게 한국적으로 특성화된 전통문화축제가 성공을 거두려면 집행부의 차질 없는 진행은 물론 수원시민과 각급 기관단체, 학생들이 그야말로 한마음 한뜻이 되어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 나갈 때 가능하다. 제40회를 맞이한 화성문화제를 거듭 축하하면서 고대와 현대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수원시의 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빌어마지 않는다.
경기도와 마찬가지로 강원도 역시 분단의 땅이다. 경기도가 장단군을 비무장지대에 묻혀 둔 채, 개성시와 개풍군을 북녘 땅에 넘겨 준 것처럼 강원도 또한 같은 처지다. 강원도는 도청 소재지인 춘천에서 삼척까지 남북이 육백리 길이다. 동서로는 대관령을 사이에 두고 있다. 경기도의 남북 교통편보다 불편하기가 이루 더 말할 수가 없다. 경기도는 의정부시에 제2청사를 두고 있다. 강원도는 이보다 격이 낮은 출장소를 동해시에 두고있다. 이런데도 강원도에선 한번도 거론된 적이 없는 분도론이 경기도에서는 걸핏하면 나온다. 무슨 경기북도분도추진위원회란 것이 이 지역 출신의 국회의원들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민망하다. 경기도의 정체성과 정서를 유린하는 분도론이 그래도 북부지역 주민들에게 실익이 돌아 간다면 이해할 수 있겠다. 일반 주민들에게 분도가 안되어 불이익한 것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흔히 민원 사무를 들지만 경기도 본청까지 진달하는 민원을 낼 주민이 연간 얼마나 될 것인 지 의아스럽다. 되레 주민 부담만 크게 가중시킨다. 도청을 운영하려면 통상 연 5천억원의 돈이 든다. 이는 인건비 등 경상비만으로 이밖에 도청·도의회 등 도단위 기관의 청사 신축비를 계상하면 이보다 더한 돈이 당장에 소요된다. 여기에 내년부터 지방의원이 유급화 하므로 이를 추가하면 연간 경상비는 훨씬 더 웃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통상비용 5천억원을 기준해도 북부지역 250만 주민 1인당 20만원이 돌아가 가구당 보통 60만원의 추가 부담을 떠 안는다. 분도가 되면 도단위 관변단체장이나 노리는 특수계층이 아닌 일반 주민들에게는 실로 유해무익한 것이 분도론이다. 이런데도 일부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내년 총선을 겨냥하여 분도론의 감각적 호응을 자극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하다. 그들이 과연 접경지역개발 등 북부지역 발전을 위해 그간 얼마나 노력했는 지를 묻고 싶다. 분도론은 시기상조가 아니라 영원히 있어서는 안되는 공멸론이다. 분도가 되어 힘이 약화된 광역자치단체가 되어서는 대내외 간에 경쟁력이 있을 수 없다. 이보다는 기전사회의 전통과 역사가 깃들고, 경쟁력있는 1천만 웅도의 공동체로 경기도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이 공영의 길이다. 강원도에선 전혀 나오지 않는 분도론이 유독 경기도에서만 간헐적으로 나오는 흰소리는 지역사회의 분할보단 단합이 중요하다고 보아 경계하며 배격한다.
손길승 SK 회장 비자금의 정치권 로비 의혹에 이어 모 그룹 대표의 대선자금 공여설이 제기되는 등 정치권이 또 다른 정치자금 회오리에 휘말리고 있다. 대검의 손 회장에 대한 수사는 분식회계에 의한 비자금 조성에 초점을 두어 수백억원의 비자금 중 100억원을 지난 대선 때 정치권에 건넨 혐의를 밝혀냈다. 이런 가운데 서울지검은 또 다른 혐의로 구속기소된 모 그룹 대표가 역시 대선 때 여당 후보 진영에 95억원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담긴 회사 내부 녹취록을 입수해 집중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사 결과가 어떤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현대 비자금 150억원 플러스 알파에 이어 잇따라 불거지는 재계의 정치권 유착은 실로 유감이다. 대검은 SK 회장의 비자금 정치권 유입에 본격적인 정치인 대상의 소환 조사에 나설 것으로 전해져 손 회장 비자금만으로도 정치권에 상당한 충격파가 예상된다. 물론 이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도 다양하다. 한나라당은 기획사정의 의혹을 드러내고 민주당은 대선 당시 선대본부를 맡은 신당 소관이라며 발뺌하는 데 비해 신당측은 영수증 처리한 후원금 외엔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이렇게 큰 소리 치지만 속으로는 대선자금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형편이다. 선거사상 가장 돈을 적게 들였다는 지난 대선마저 이토록 재계 자금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는 등 대선이 끝나고 나면 으레 문제가 되는 불법자금설은 불치의 고질병 같아 크게 개탄스럽다. 이러한 재계의 불법자금 제공은 기업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으로 말하여 정치권의 책임이 단초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종의 보험료 성격으로 건넨 면이 또한 없지않아 얼마 전에 전경련이 결의한 불법 정치자금 제공 거부가 앞으로 과연 이행될 것인지 의문이다. 재계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있을 때마다 우려되는 건 재계도 응분의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기업의 경영 위축으로 인한 경제 문제다. 그러나 철저한 수사는 마땅하다. 정치권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로 재계의 불법자금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재앙을 불러 들인다는 인식을 다시 한번 깊이 각인시켜야 한다.
국정감사가 이번 주말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임과 동시에 국민의 입장에서는 행정부의 정책 잘못을 공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점에서 국정감사의 중요성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지난 보름 동안 국회의원들은 나름대로 국감을 위해 준비된 자료를 가지고 행정부의 실정을 파헤치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다. 그럼에도 이번 국감 역시 과거의 국감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여 국민들이 기대했던 국감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부 국감은 재독학자 송두율씨와 관련된 이념 논쟁으로 인하여 파행을 빚기도 했다. 송씨 사건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식되지만 그러나 국감이라는 중요한 국회 업무가 남남(南南)갈등 양상으로 변하여 국감 자체가 엉망이 된다면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국감은 신4당 체제에 의하여 처음으로 실시되는 국정감사이기 때문에 정책감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4당이 내년 총선을 의식하여 정책정당의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아 어느 때보다 정부 정책에 대해 예리한 비판을 통한 정책감사의 국정감사를 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이런 기대는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 아직도 근거 없이 호통을 치거나 질문을 하고는 막상 답변시엔 질문한 의원이 자리에 없어 무슨 의도로 질문을 했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행정부에서는 이번 국감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가장 쉬운 국감이었다고들 말한다. 그러면서도 공무원들은 국감을 위하여 준비한 수많은 자료와 복사물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해가며 국감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국회를 비판하고 있다. 물론 행정부의 부실한 준비, 소신없는 답변이나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증인 불출석도 비판 받아야 한다. 이제 불과 5일정도면 국감이 끝난다. 지금부터라도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를 정책감사 위주로 전환하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함과 동시에 대안제시를 통하여 경제문제, 민생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북의 중앙통신이 주장한 8천여개 폐연료봉 재처리는 핵 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추출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를 인용한 이같은 보도에 미국은 우려속에 의문을 표명하고 중국이나 러시아 역시 회의적이긴 하다. 그러나 6자회담 추진에 비교적 냉담해온 북측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또 협박을 일삼는 것은 이유가 없지않아 보인다. 언젠가는 있을 6자회담 속개에 대비, 북·미불가침조약 등 그들이 주장해온 선 요구 조건의 관철을 압박하려는 것은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만은 아니다. 이라크 추가 파병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 또한 다분하다. 저들은 앞서 파병을 비난한 바가 있다. 이유는 또 있다. 자신들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송두율씨에 대한 국정원 조사에 불편한 심기를 노출한 것으로 감지된다. 대남 공작에 주요 역할을 해온 송씨가 이번 서울 방문에서 또 어떤 소임이 있었는 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화 인사로만 대접받을 줄 알았던 자기네 사람이 의외로 사법처리 위기에 처한 덴 충격이 없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송씨 문제에 북측의 직접적인 표명이 있을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다. 잘못 관심을 나타내선 이미 밝혀낸 이적성 혐의 내용을 시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섣불리 나설 수도 없는 게 저들의 입장이다. 그래서 기존의 의미와 함께 송씨 문제와 관련한 불쾌한 심기를 복합적으로 드러낸 게 또 한번의 벼랑끝 전술인 것으로 능히 관측된다. 북은 핵이 없다고도 했다. 그래놓고 또 있다고도 했다. 심지어는 ‘미국과 핵 전쟁을 벌여봐야 안다’는 말을 북측 고위층이 공공연히 한 적이 있다. 없는 핵무기를 굳이 있다고 우긴다던 저들이 이제 핵을 들어 위협하는 상투적 수단은 담담타타(談談打打)와 허허실실 전법이다. 그러나 그같은 주장이 국제사회에 통하는 덴 한계가 있다. 이미 한계에 와 있다. 더 이상의 무모한 주장은 재앙을 불러들일 수가 있다. 진솔하게 나오는 게 중국이나 러시아도 더 유익하다고 보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말마다 끌려가서는 한량이 없다.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북측의 재처리 완료 발언에 대해 묵묵히 관련 정보만을 재평가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이승엽 선수(27·삼성)의 시즌 56호 홈런, 이 프로야구 아시아 신기록은 한·일 두 나라 주축의 기록이긴 하나 39년만에 이룬 위업이다. 20여년 연륜의 국내 프로야구가 40여년 전통의 일본 프로야구 대기록을 추월하였다. 지난 2일 밤 대구구장서 가진 프로야구 정규리그 롯데와의 최종전 첫타석 2회말, 마침내 터져 가운데 담장을 장쾌하게 넘기는 120m 솔로 홈런은 55호 홈런 타이기록을 세운지 꼬박 1주일의 침묵을 깬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는 철저한 프로의식의 결실이다. 신기록 달성 염원의 강박 관념에 쫓긴 이승엽 선수는 “잠 자다가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고 그의 부인 이송정씨는 전했다. 남들은 당연히 신기록 홈런을 쳐낼 것으로 믿고 있지만, 막상 당자는 그같은 기대가 크면 클 수록이 온 몸을 짓누르는 부담감으로 시달려야 했다. 이런 가운데 타석에서 보여준 초인적 침착성은 뛰어난 프로 근성을 가졌으므로 인해 가능하였다. 자신의 체격 및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기량이 곧 관중들에게 평가받는 고가 상품이라는 직업의식의 자기관리가 또한 주효한 것이다. 야구를 흔히 개인경기로 보는 것은 개인기록의 가짓 수가 특히 많아 그렇게 여겨질뿐 경기 자체는 다른 단체경기 못지않게 철저한 팀 워크를 이뤄야 하는 경기다. 이승엽 선수의 아시아 신기록 수립은 스포츠의 냉엄한 승부 세계 속에서 경쟁과 화합을 잘 도모한 팀의 단결력으로도 보아진다. 비록 대기록을 내주긴 하였으나 프로 2년차의 롯데 투수 이정민 선수(24)의 배짱있는 투구 또한 평가할만 하다. “자신있게 던진 공에 홈런을 얻어 맞았으므로 미련은 없다”라고 말한 대범함에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홈런 레이스에서 이승엽 선수를 한동안 바짝 추격하며 경합을 벌이다가 53호 홈런에 머문 현대 강타자 심정수 선수(28)는 이면의 공로자다. 대박꿈의 56호 홈런공을 잡기위한 수천·수만명의 뜰채 군단이 전국에서 이동하며 몰린 가운데, 막상 행운의 주인공은 삼성구단 이벤트 대행업체 팀이 차지한 것은 기이하다. 홈런공을 구단에 기증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삼성라이온즈역사관에 전시되어 누구든 언제나 볼 수 있는 모든 야구팬의 기념비적 홈런공이 될 것을 기대한다. 이승엽 선수의 미래는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이다.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더욱 큰 꿈을 펼치길 바라는 국민적 여망의 정진에 소홀함이 없기를 당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