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군이전평택지원법, 한시법 개정해 계속 지원해야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최근 평택 이전을 완료했다. 1978년 창설된 이래 44년간의 용산시대를 마감하고, 평택시 팽성읍의 ‘캠프 험프리스’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캠프 험프리스는 여의도 면적의 약 5배인 14.7㎢ 규모로 주한미군과 군무원, 가족 등 8만여명이 거주하게 된다. 연합사의 평택 이전은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용산과 평택으로 나뉘어 근무해온 연합사 요원들이 한곳에서 근무하게 돼 한·미 간 협조체제가 더 공고해질 것이다. 특히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엄중해진 안보 상황에서 연합사, 주한미군사령부, 유엔사 등 한·미 연합방위의 주요 부대가 인접해 있어 작전 효율성을 증진시켜 연합대비태세 유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합사의 평택시대 개막은 한미 간 군사관계를 강화하고 발전시킬 것으로 보이지만, 평택 지역사회는 약속된 지원과 개발 등이 늦어져 주민 불만이 크다. 주한미군과 평택시민의 상생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주한미군이 이전하면서 평택지역 개발을 촉진하고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미군이전평택지원법)’이 마련됐다. 이 법에 따라 평택시는 2005년부터 국비 4조4천943억원을 포함한 총 사업비 18조9천796억원을 들여 86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협의된 사업 중 20%가량인 16개 사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미군이전평택지원법은 2026년 종료되는 한시법으로, 여러 사업이 그 안에 마무리되기 어렵다. 4년 뒤 법적 효력이 정지되면, 다시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적용을 받아 각종 규제에 묶이게 된다. 전체적인 도시계획이 흔들리고 예정된 사업들을 진행하기 힘들다. 평택 당진항 개발, 평택항과 연계한 포승~평택 간 산업철도 건설, 평택호 관광단지 농악마을 조성, 고덕신도시 국제학교 신설 등 중요 사업이 많다. 미군이전평택지원법은 주한미군 기지 이전에 따른 보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법 효력이 정지돼 예정된 각종 사업이 타격을 받으면 안 된다. 정부와 협의한 개발사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법의 연장이 필요하다. 이전에 세 차례 연장되긴 했지만 문제될 사안이 아니다. 주한미군이 평택에 주둔하는 한 계속 지원해야 하는 게 맞다. 미군이전평택지원법은 미군의 ‘이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군 주둔 이후 발생하는 각종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대책이 없다. 평택 지역사회에선 법 개정 등을 통해 미군이전평택지원법의 상시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사설] 심폐소생술은 옆 사람이 해야 산다/1천300만 도민이 다 교육 대상자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 상당수는 ‘살릴 수 있는 생명’이었다. 소방소 구급대원이나 경찰이 아닌 옆에 있던 시민의 역할이었다. 그걸 하지 못했고,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이제야 모두가 심폐소생술을 말한다. 슬픔을 누르고 차분히 볼 부분이 있다. 정작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곳은 대규모 밀집 현장이 아니다. 일반 가정에서 이뤄지는 일상 생활에서 더욱 절실하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그 근거를 보여주는 심정지 사망자 실태 자료가 있다. 하루 평균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10명이다. 하루 평균 심정지 사망자 수는 120명이다. 흔한 것으로 알려진 교통사고 사망보다 10배 이상 많다. 심정지가 발생하는 곳도 조사됐는데 집이 가장 많았다. 구급차가 출동해 도착하는 평균 시간은 7~10분이다. 심정지 골든타임으로 알려진 4분을 훨씬 넘는다. 이론적으로는 소방대원이 아무리 빨리 와도 살릴 수 없다. 결국 생명 보호의 키는 심정지 환자의 가족 등 주변인들이 쥐고 있는 셈이다. 참사 이후 지자체마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구리시의회는 심폐소생술 교육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마련했다. 권봉수 의장이 개정안 마련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로 심폐소생술 교육·캠페인이 중요해진 만큼 시 홍보물품 등을 배부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신설해 응급처치 교육을 장려하고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자 개정한 사항이다.” 다른 시·군에서도 대동소이한 심폐소생술 교육 강화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수원시의 방안도 있다. 교육 대상을 시민으로 확대해 가기로 했다. 시민들을 자주 접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을 교육 대상으로 삼았다. 대중교통 종사자, 지역 방범대원, 대리운전 종사자, 청소 노동자 등을 우선 대상으로 삼았다. 교육 대상을 일반 시민의 영역으로까지 넓게 상정했다는 점에서 평가된다. 진일보된 사고의 전환이라고 본다. 지금도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있다. 소방서가 직접 실시하는 현장 교육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가 9월까지 실시한 교육 대상자만 23만8천300명이다. 교육 장소는 지역 행사장, 경로당, 학교, 등산로 등이다. 각급 소방서나 의용대원들이 노력해서 만든 결과다. 그럼에도 일반 시민들의 심폐소생술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무것도 못하고 쳐다만 본다. 그 적나라한 증명이 이태원 참사 현장이었다. 교육 대상을 바꾸자. 전 도민을 교육해보자. 때마침 도의회에서 관련 지적이 나왔다. 박옥분 의원(민주당·수원2)이 “도민이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가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제언에 적극 동의한다. 도민에게 직접 전달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내 집에서 쓰러진 내 가족을 살려낼 방법을 모든 도민에게 알려줘야 한다. ‘1천300만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심폐소생술 능력자로 만들겠다’는 정책 목표로 바꿔야 한다. 행정조직을 이용해도 되고, 주민 자치 기구를 이용해도 되고, 첨단 인터넷망(網)을 이용해도 된다. 의지만 있으면 방법과 길은 많다.

[사설] 자고나면 좋아져 있는 용인지역 도로/시민 입장에서 본 행정의 결과다

용인특례시장과 오산시장이 ‘도로 합의’를 했다. 두 도시의 도로망 확충을 위한 의견 일치다. 국지도 23호선 안성 양성~용인 남사 구간 확장과 국지도 82호선 화성 장지~용인 남사 구간 확장이다. 앞서 ‘고기교 합의’도 있었다. 다리의 3분의 1이 용인, 3분의 2가 성남 관할인 작은 다리다. 두 지역의 이견으로 10여년을 끌어오던 난제였다. 둘 모두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도로 행정은 다른 곳에 있다. 소문 없이 펼쳐지는 작은 행정이다. 성복동 버들치 마을 사거리는 주민의 원성이 자자했다. 좌회전 대기 차량이 많고, 버스정류장까지 붙어 있었다. 시가 중앙선을 연장했고 중앙분리대 14m가량을 철거했다. 문제가 해결됐다. 죽전동 죽전교차로 인근도 주민의 불편이 컸다. 상가를 오가는 주민들의 고통이다. 시가 이곳에 횡단보도를 설치했다. 해결됐다. 죽전역 인근에 단국대 셔틀버스 전용 승하차구역이 이전 설치됐다. 시가 했다. 학생들이 길을 건너지 않고 버스를 탈 수 있게 됐다. 고기동 315-4 일대 도로는 사고 위험이 높았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에 최근 교통량까지 늘었다. 주변에 고령의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원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미인가 대안학교가 있다. 시가 이곳에 노인보호구역을 설치했다. 현재 도로 확포장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곳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구역 표시를 다시 해야 한다. 예산 낭비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시 담당자의 입장이 확고하다. “다시 설치하더라도 주민들이 겪는 현재 위험부터 막아야 한다.” 중앙분리대 조금 잘라내고, 버스정류장 약간 옮기고, 횡단보도 새로 설치하고, 노인보호구역 그려주는 일이다. 약간의 예산으로 할 수 있다. 하루 이틀이면 끝낼 수 있다. 이런 작은 작업이 주민에게 주는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 ‘어느 날 보니 길이 편해졌다’며 좋아한다. 아주 작은 사고의 전환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시민의 입장’에서 도로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수해로 난장판이 된 고기교 위에서 이상일 시장이 강조했던 것도 이거였다. 지금의 지방 행정은 도로 행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도나도 도로 공약을 내건다. 도로 신설하겠다고 하고, 철도 끌고 오겠다고 하고, 터널 뚫겠다고 한다. 유권자도 덩달아 도로 행정에 몰입되고 있다. 그런데도 시민의 불편 민원 1호는 여전히 도로다. 원인은 하나다. 시민의 입장에서 보지 않는다. 있는 도로를 다듬고, 손보고, 고쳐 나가야 하는데 이걸 안 한다. 표(票) 되는 거창한 사업에만 몰두해서다. 그런 이들에게 보여줘야 할 ‘용인 도로’다.

[사설] 도의회, 추경안 조속 처리해 도민 피해 최소화해야

경기도의회는 지난 9월8일 경기도가 제출한 6천282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2개월 동안 처리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도민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경기도교육청이 지난 9월 본예산 대비 5조62억원 증액한 24조2천21억원 규모의 ‘2022년도 제1회 경기도교육비특별회계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도의회에 제출했지만, 이것 역시 도의회가 처리하지 않아 학교 급식 차질 등 여러가지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1일 제365회 도의회 정례회를 개회했으며, 지난 3일 제3차 본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도와 교육청이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의 통과가 불발돼 문제가 되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석이 각각 78석 동수로 돼 있어 개원 이래 사사건건 여야 정당 간 대립해 의회 운영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번 추경안 처리 문제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 3일 김동연 지사는 도의회에서 ‘2023년 예산안 및 2022년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했다. 당일 오후 김 지사는 국민의힘 곽미숙 대표를 만나 2차 추가경정안 처리를 요청했지만 불발됐다. 특히 국민의힘은 통합재정안정화기금 9천억원의 일반회계 전출의 적법성을 문제 삼은 데 이어 버스업계 지원을 위한 유류비 지원예산이 쪽지예산이라며 예산 심의를 거부하면서 추경안 의결이 무산된 상황이다. 3일 예상했던 추경안 처리 불발로 인해 4일부터 도의회 행정감사가 시작됨으로 인해 당분간 추경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없다. 이로 인해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지역화폐 발행, 저신용과 저소득자 지원을 위한 대환대출,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등 도 자체 민생사업뿐 아니라 영유아 보육료, 긴급복지비 지원, 행복주택 건설사업 등 국고보조금 사업도 중단될 수 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 추경안 처리 불발은 당장 12월부터 일부 학교가 급식 중단 사태를 맞게 되고, 학교 신설 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해 도내 6개 학교의 개교가 불투명해졌다고 도교육청이 밝히기도 했다. 도교육청이 지난 9월 제출한 추경안에 급식경비 523억원, 학교방역사업 583억원도 포함돼 있어 추경 지연에 따라 학교기본운영비로 우선 지출해야 하는 어려운 실정이 예상되고 있다. 일부 학교는 학생들 건강에 위험 요소인 석면 교체작업이 중앙정부로부터 공사비가 교육청에 하달됐지만 추경안 불발로 겨울방학 시 시행할 공사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의회는 여야 간 정쟁보다는 민생을 우선하는 의회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행정감사 기간이라도 도의회는 초당적으로 협력해 예결위와 본회의를 조속히 개최, 추경안을 처리해 도민은 물론 학교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설] ‘건전 재정보다 급한 게 민생 재정이다’/중앙정부완 다른 2023 경기도정 예산

김동연 지사가 2023년 예산안의 집행 방향을 밝혔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위기 시대 극복을 위한 과감한 민생 재정’이다. 중앙정부의 신년 계획은 ‘건전 재정’에 방점이 찍혔다. 이로 인해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사업 예산 축소가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다. 이와 다르게 잡았다는 게 김 지사의 신년 시정연설이다. 그가 직접 정리한 신년 예산 방향은 이렇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재정이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도 예산안은 건전재정이 아닌 민생재정에 중점을 뒀다.” ‘어려울수록 과감히 풀겠다’는 설명이다. 수립된 2023년 총 예산은 33조7천790억원이다. 주거, 교통, 일자리 등 민생에 투입되는 예산 분야가 많다. 1기·3기 신도시 정비에 7천957억원, GTX 등 광역교통 기반 확충에 1조6천271억원을 배정했다. 노인 일자리와 국공립 어린이집 사업에는 2천246억원과 132억원을 확대 반영했다. 중앙정부에서 축소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두 영역이다. 우리가 주목해 볼 또 다른 예산도 있다. 김 지사를 상징하는 예산인 이른바 기회예산이다. 경기 청년 사다리, 경기 청년 갭이어 등을 챙겼다. 베이비부머에 일할 기회를 지원하는 예산도 있다. 예술인 기회소득, 장애인 기회소득도 있다. 사업명에서 보듯 청년, 노인, 예술인, 장애인 등 어렵거나 취약한 도민이다. 앞서 주거·교통 등이 사회 전반의 경쟁력 조성을 목표로 한다면 이 분야는 ‘어려움 탈출’을 분명한 타깃으로 삼는다. 건전재정이라는 합목적성만으로 결코 소홀히 될 수 없는 최소한의 복지 분야다. ‘역경 극복’의 증인인 김 지사에게 도민이 갖는 희망이기도 하다. 시정연설에서도 이 부분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복합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도민이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도의 의지를 담았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국가적으로 처한 위기를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을 그다. 그런 그가 내린 처방이다. 지방정부 예산 투입을 경제 활성화로 이끌어갈 마중물이자 생산 수단의 출발 지점으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 어려운 도민을 보듬고 있다. 이제 토론하고 완성시켜 가야 한다. 큰 방향이 옳다고 세부 사항까지 옳다고 덮어갈 순 없다. 민생 예산의 구체적 내용에 가감이 필요하고 방향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취약계층에 대한 정의나 대상 선정에서도 또 다른 판단과 이견이 제시될 수 있다. 바로 경기도의회가 할 역할이다. 그런데 걱정이다. 열흘 가까이 먹통 의회다. 추경안 처리도 못하고 있다. 도민이 뭐라 하겠나. ‘김동연 예산’을 설명받은 도민들은 이미 내년 예산에서 각자의 지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설] ‘이태원 블루’ 집단 트라우마, 적극적 심리지원 필요하다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많은 국민들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를 접하고 슬픔과 분노, 불안, 공포, 우울감 등을 느낀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태원 참사가 2014년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처럼 국가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가 도심에서 발생해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사람이 많은 데다 사고 영상과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현돼 심리적인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정보기술(IT) 강국이자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인 한국에서 이태원 참사의 걸러지지 않은 참혹한 영상이 퍼지면서 이를 본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한국인들이 참사 이후 온라인으로 전파된 끔찍한 장면들을 접하며 공포감과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하면서, 초고속 인터넷망이 잘 깔려 있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 이런 일이 일어나기 쉬웠다고 했다. 실제 극심한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며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센터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생존한 환자는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아직도 현장에 계속 있는 듯한 ‘재경험’ 증상을 호소한다. 숨쉬기 힘들다거나 불안·공포감, 불면증이 많다고 한다. 유가족과 부상자, 구조요원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심리적 충격도 크다. ‘이태원 블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울감과 무기력, 불면 등으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이가 상당수다. 트라우마 증상도 골든타임이 있다. ‘저절로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방치하면 안 된다. 증상이 계속된다면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섬세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는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밀집해 모이는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가 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민들의 사회적 고통과 트라우마가 과거 세월호 참사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주변에서 서로를 돌보고 빠르게 치유받도록 돕는 ‘사회적 연대’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국가트라우마센터에 심리지원단을 설치해 심리상담에 나섰고 위기상담전화 등 여러 채널을 가동키로 했다. 또 국민의 심리 안정을 위해 운영해온 ‘마음안심버스’를 서울시내 분향소 외에 전국 각지의 분향소 인근에서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심리적 충격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세월호 유족의 상당수가 지금도 심리 지원을 받고 있다. 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심리 지원이 절실하다.

[사설] 金지사 부인, ‘의전 없이 택시 타고 가겠다’/별스럽지 않은 말 한마디가 주목되는 사회

김동연 지사의 부인 정우영 여사가 한 행사에 참여했다. 27일 열린 ‘경기도 시·군 대항 장애인 합창대회’다. 행사 장소는 수원시 인계동에 있는 경기아트센터다. 모처럼의 행사 참여라서 도 비서진이 간단한 의전을 권했던 것 같다. 이에 정 여사가 과도한 의전을 안 받겠다고 했다. 차량에 대해서도 “조용히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거듭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최 측에서 현장 준비 요원들의 혼선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결국 택시 이용 뜻은 철회됐다. 공식 행사 참여가 뜸한 정 여사가 장애인 행사에 참석한 것 역시 주목을 끌었다. 행사를 주관한 경기도 장애인복지과도 예상하지 못한 참관이었다고 한다. 도의회 의장 등과 함께한 귀빈 차담 자리에서는 ‘조용히 있겠다’고 했다. 본 행사가 시작된 뒤에는 모든 참가자들의 경연을 보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 얘기는 도 장애인복지과 등 실무자들 입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정 여사는 물론, 김 지사도 아무 언급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현직 도지사 부인에 대한 의전은 규정에 없다. 전담 직원을 두거나, 전용 차량을 쓰거나, 사적 업무를 보는 일이 다 그렇다. 하지만 현실에서 제공되는 편의는 흔히 있다. 공식 행사에, 도지사 부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행사는 그렇다. 민선 8기까지 6명의 도지사 부인이 그 정도의 편의는 다 제공받았다. ‘혼자 택시 타고 가겠다’는 주장이 과민해 보이는 측면도 있다. 행사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도 당연한 에티켓일 수 있다. 그런데도 얘깃거리가 된다. 그렇지 못했던 전례 때문이다. 전임 도지사 부인의 경우 과한 의전이 많이 있었다. 5급 공무원을 지사 부인 전담 비서로 채용했다. 도청 내 약국에 대리처방까지 시켰다. 체어맨 관용차는 당연하듯이 사용했다. 초밥·소고기·패스트푸드 등을 법인 카드로 샀다. 대선 과정에서 ‘도지사 부인의 국무총리급 의전’이란 말이 나왔다. 지사 퇴임 이후에 경기도 감사까지 받았다. 경찰이 수사했고,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택시 타고 가겠다’는 주장과 많이 다르다. 그뿐인가. 전·현직 대통령의 부인 구설도 그치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의 부인은 야권의 표적에서 벗어 나질 못한다. 논문 표절 의혹, 주가 조작 잡음, 도사 연관 의혹 등이 있다. 법적 책임의 유무를 떠나 의혹의 빌미를 준 것은 맞다. 전직 대통령의 부인도 의상 과다 구입 논란에 호화 외유 논란까지 휘말리고 있다. 이 역시 법률적 판단을 떠나 구설의 출발은 팩트다. 비난의 대상은 정파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민 다수에 주는 ‘지도층 부인 피로감’은 매한가지다. 김동연 지사 부인의 지극히 당연한 요구와 평범한 언행이 미담으로 바꾸어 회자되는 이유일 게다.

[사설] ‘압사 위험’ 신고 묵살, 112 작동되고 있는 건가

이태원 압사 참사에서 드러난 경찰의 과오는 치명적이다. 경찰이 지난달 29일 저녁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신고를 10건 넘게 받고도 적절히 대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사고 당일 오후 6시34분부터 현장의 위험성과 급박성을 알리는 112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사고 예방 및 조치가 미흡했다”고 사과했다. 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를 자인하고, 정부 책임이 있음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경찰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압사당할 것 같다’는 첫 신고가 들어온 후 ‘사람들이 몰려 쓰러진다’ ‘통제가 안 된다’ ‘빨리 출동 해달라’ ‘아수라장이다’ ‘대형 사고 일보 직전이다’라는 신고가 연이어 접수됐다. 하지만 경찰 대응 조치는 신속히 이뤄지지 않았다. ‘살려달라’는 위급한 신고를 받고도 현장 확인조차 안 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참사 이후 정부가 면피성 해명과 책임론 방어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윤 청장은 “무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고강도 내부 감찰과 신속한 수사를 약속했다. 참사의 1차 책임자로 지목되는 경찰이 475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려 참사 원인과 책임을 규명한다고 하자, 수사 받아야 할 당사자가 수사에 나서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 무책임, 무능함이 국민 공분을 자아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역 상인단체는 ‘10만명 넘는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가 예상되니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용산경찰서 정보과도 ‘예상을 넘는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경찰은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고, 참사 당일 137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대부분은 범죄예방 활동에 집중됐고, 질서유지 담당은 58명뿐이었다. 그날 저녁 ‘압사’라는 단어가 아홉번이나 언급되는 위급한 신고가 계속됐는데 현장 대응은 허점투성이였다. 사고 방지를 위한 충분한 인원도 투입하지 않았다. 경찰의 가장 큰 임무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112신고는 위급한 상황에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참사를 보면 112신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엄청난 희생을 치른 이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하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번 대참사에 대한 냉철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대로 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112신고 체계의 재점검도 절실하다. 신고만 받고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설] 주최자 없는 집단행사도 안전관리시스템 마련해야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압사 참사는 인파 관리에 허점을 드러낸 예고된 재앙이었다. 대참사의 주원인으로 안전관리 주체가 없었다는 점이 지적됐다. 10만~13만명이 운집하는 대규모 축제에 안전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대부분의 행사는 주최나 주관이 있어 안전 문제를 책임진다. 그러나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 축제같은 경우 특별한 주최자가 없어 안전관리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이번 이태원 참사도 좁은 골목에 10만명 이상이 몰렸는데 이를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가 인파를 통제했다면 참극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주최자 없는 축제’여서 피해를 키운 것은 사실이다. 서울시와 용산구, 경찰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고 사흘 전 경찰과 구청 등이 모였지만 클럽·주점 내 성범죄 예방과 마약단속 등 치안 위주 활동만 논의했다. 군중 밀집에 따른 대피로 설치나 안전관리 인력 배치 논의는 없었다고 한다.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자칫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예측만 했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핼러윈 축제의 주최자가 없어 안전관리가 제대로 안 됐다는 설명은 궁색하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행사는 안전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방치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20만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됐던 2017년 핼러윈 당시 경찰은 도로 인근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해 보행자 통로를 넓히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번 사고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사고 전날에도 10만명 가까운 인파가 몰려 시민이 넘어지는 등 사고 조짐이 있었다. 위험 요소가 있는데도 치안과 방역에만 신경 쓰고, 군중 밀집 대책이 소홀한 점에 대해 관련 기관은 반성해야 한다. 또 압사 참사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주최자 없는 행사나 축제의 안전을 어떻게 관리하고 책임을 질 것인지 원칙을 세워야 한다. 당정이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도 안전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재난안전관리기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1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사고 예방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입법에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지자체도 다중밀집 행사의 선제적 안전관리를 위한 조례 제정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들도 이번 참사를 계기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더 높여야 한다.

[사설] ‘78 대 78’ 도의회에 간 사무처장 인사권/또 안 싸우려면 이 정도 기준이 필요하다

경기도의회 사무처장 인선을 경기도의회가 갖게 됐다. 경기도는 지난달 31일 경기도의회사무처 설치 조례 시행규칙 일부 개정 규칙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되는 핵심 내용은 의회사무처장을 개방형 직위로 바꾸는 것이다. 도의회가 이를 2일 심의하고 3일 공포할 예정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무처장 공모 및 채용 절차는 도의회에서 진행하게 된다. 지방자치 정신에 입각해 지방의회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개정이다. 전국 의회에서 서울시의회에 이어 두 번째다. 타 지방의회에 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 실현이라는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사실 운영 과정에 예상되는 갈등의 소지가 없지 않다. 경기도의회는 78 대 78이라는 구도를 갖고 있다. 회기 시작 이래 도의장 선출 갈등, 각 상임위원장 배정 이견이 계속됐다. 개원도 유례없이 오랜 기간 표류했다. 최근에도 추경안 설명을 집행부가 어느 쪽에 먼저 했느냐를 두고 파행을 겪었다. 사무처장은 ‘도의회 총괄 안방지기’다. 이 자리를 두고 대립할 가능성은 많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최소한의 인선 기준이다. 여야가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이 필요하다. 하나를 꼽는다면 사무처장 직에 대한 이해도와 적응도다. 도의회 사무처장은 7개 담당관, 13개 전문위원실로 구성된 사무처 업무를 총괄한다. 집행부와의 인사 교류, 예산 편성 등의 업무가 많다. 그동안 사무처장은 일반직 2급이라는 고위직에 맡겨졌었다. 그만큼 집행부와의 역할에 비중이 컸다는 것을 반증한다. 갑(甲) 위치에서 집행부를 대하는 도의원과는 다르다. 정무적 공감력과 경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굳이 조례까지 바꾸며 변화를 준 주목적이기도 하다. 도의회는 기본적으로 정치 집단이다. 도의회의 모든 일상이 정치 행위다. 공직 경험으로만 풀어 가기 힘든 구석이 많다. 도집행부와 충돌하고 있는 작금의 추경안 갈등만 해도 그렇다. 사무처장이 도의회에서 하는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염종현 의장이 ‘정무 기능 부여’를 강조했던 것도 그런 때문으로 보인다. 정치를 이해할 능력이 꼭 필요해 보인다. 한 가지 더한다면 협치를 이끌어 낼 여건이다. 이는 도의장의 생각이 중요하다. 의장이 사무처장직을 ‘호주머니 속 인사’로 여긴다면 이 조건은 필요 없다.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상대 정당과의 협치, 후반기 연속성 등을 생각한다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고, 경기도에서 유례없는 ‘78 대 78 동수 의회’ 아닌가. 이 환경에 맞는 특별한 기준이 필요하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양해할 수 있는 인선이어야 한다. 도의회 사무처장은 도의회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 도의원 156명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다수가 공감하는 조건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그 대략의 기준을 앞에 열거한 공직 이해, 정무 경험, 협치 상징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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