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공항교통이 내국인 위주라니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들이 대중교통 이용을 두려워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인천공항 택시·버스 승강장의 교통안내판이 내국인 위주인데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택시 호객행위가 지나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국인이 승강장에 오면 대기하고 있던 운전기사들이 일어·영어 등의 짧은 외국어를 외치며 동시에 몰려든다니 아마 납치 당하는 공포감에 빠질 것이다. 서울, 경기, 기타 지방 등 지역위주로 구분된 버스 승강장은 무용지물과 다름없다. 외국인들은 안내 데스크나 버스 승강장 안내원에게 의존하고 있지만 여의치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객터미널내 150여명의 자원봉사자는 영·일어 기초회화만 가능하며, 최근 급증 추세인 중국인을 맞을 준비는 거의 안돼 있는 실정이다. 특히 외국어 실력이 부족한 승강장 안내원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안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실례를 들어 서울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 말고 저렴한 쇼핑몰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 경우 남대문행 버스로 안내해 주는 것이다. 더구나 택시 승강장에는 안내원조차 없고, 대부분의 택시기사들이 서울 주요지역과 호텔 등 낱말정도만 알아 듣는 형편인 것도 문제점이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도 역시 그러하다. 택시와 ‘공항 리무진’에서 이용가능하다는 무료 통역전화 서비스도 기대할 바가 못되고 일반버스에는 이마저도 없다고 한다. 이제 인천공항에는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외국인들의 입국이 부쩍 증가할 것이다. 무용지물인 교통안내판, 의사소통이 답답한 안내원, 기대이하의 통역전화로 인해 인천공항이 더 이상 외국인들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 인천공항은 하루라도 빨리 입국절차를 마친 관광객에게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안내 데스크를 마련, 공항 건물을 나서기 직전 교통편 및 관광지 등에 관한 정보를 한곳에서 모두 알아볼 수 있도록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 특히 공항 리무진버스 티켓 판매, 공항 및 주요도시 관광안내, 렌터카와 도심 호텔 교통안내 등을 세심히 배려,궁금증을 모두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이용객이 붐빌 경우를 대비해 5∼6명이 상주하는 안내 데스크를 10여m 간격으로 배치해 놔야 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는 일은 국제적인 예의이며 국제공항으로서 당연한 책임이다. 대중교통의 국제화를 위한 인천공항의 면모 일신을 기대한다.

농어촌까지 침투한 마약

마약침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연예인, 유흥업소, 윤락가 주변에 머물던 마약사범이 최근 대학생·회사원·가정주부는 물론이고 농어민, 직업운전자·화가에 이르기까지 직업·계층 구분없이 급격히 확산되는 추세다. 대규모 마약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비교적 마약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우리 나라에 적색경보가 켜진 셈이다. 어물어물 하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진전될 수 있다. 늦기 전에 국가차원의 강력한 마약퇴치책이 절실하다. 경기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한햇동안 단속된 마약사범이 803명(570건)으로 1997년(132명·97건)이후 4년만에 6배로 증가했다는 사실이 놀라게 한다. 검거된 마약사범 중에는 직장인과 택시기사는 물론 농어민과 유치원장까지 끼어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농어민들은 쌓이는 피로감 해소와 통증완화를 위해 진통주사제인 염산날부핀을 마약대용으로 상습 투약해 왔고, 유치원장은 경영난과 과중한 업무 등 직업적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약을 사용해 왔다. 그동안 수사당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까지 퇴치운동을 벌여왔음에도 줄기는 커녕 가정과 농어촌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엔 안산의 어느 병원 간호사가 환자 처방전을 위조해 빼돌린 마약류를 자신에게 투약해 왔고, 환각상태에서 수술환자들에게 진통용 마약을 투여해 오다 적발됐다. 마약의 해독은 사용자 개인을 황폐화 시킬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해를 끼쳐 결국 사회와 나라까지 병들게 하는 등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강력한 단속과 제재를 필요로 한다. 마약사범의 급격한 증가가 국제 교류의 활성화와 외환위기사태 이후의 실직과 기업도산 등 사회불안 증가 때문이라지만 그동안 당국의 대응이 안일하고 미온적인 때는 없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지난해 8월 인천공항의 휴대품 검사가 허술한 점을 노려 100억원 어치의 중국산 히로뽕을 밀반입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힌 것도 공항 단속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마약을 퇴치하기 위해선 공항과 항만 등 유입루트의 완전 차단 등 철저한 감시와 함께 마약의 해독을 알리는 대국민 홍보 및 계도를 지속적으로 펼쳐야 한다. 수사장비의 첨단화와 수사인력의 보강을 서두르는 한편 마약사범은 중벌로 다스려야 한다. 예방·단속 못지않게 치료를 통해 정상인으로 회복시키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조례 제정권과 再議요구권

지방의회가 주민들을 위해 제정한 조례가 무시된다면 과연 지방의회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 지방의회는 주민들의 대표로서 주민의 여론을 집약하여 이를 조례 제정을 통하여 반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인데, 이런 조례 제정권을 무시한다면 과연 지방의회의 존재는 무엇인가. 최근 인천시 부평구가 부평구 의회가 지난해 12월 제정한 ‘부평미군기지 이전 주민투표 조례’가 지방자치법에 위배된다면서 이에 대한 재의를 요구하였다. 부평구는 의회가 제정한 조례가 지방자치법의 조례 제정 취지에 위배되기 때문에 재의를 요구한 것은 당연한 것이며, 만약 이를 의회가 부결시킨다면 대법원에 행정소송까지도 제기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집행부의 처사에 대하여 의회는 물론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서 정책에 반영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방의회가 제정한 조례까지 무시하려고 하는 처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역에 있는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인데 집행부가 이런 주민의 요구를 수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조례에 대한 재의를 요구한 것은 한심한 졸속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례재정이 남발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주민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제정된 조례는 지방의회 본래의 업무로서 존중되어야 하며 또한 집행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해야 된다. 특히 이번 부평구의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수년간의 철야 천막농성과 각종 집회를 통하여 집약된 의견을 토대로 제정된 조례이기 때문에 이를 과도한 조례 제정취지 해석을 통하여 제약하는 것은 행정권의 남용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는 집행부와 의회가 지역주민의 여론을 얼마나 잘 집약하여 정책에 반영시키느냐에 따라 발전 여부가 결정된다. 추이가 주목된다.

드라마 ‘여인천하’의 경우

역사드라마에서 궁중이나 조정의 암투만을 집중조명한 폐해가 작금에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하나 요즘 방영되고 있는 SBS-TV ‘여인천하’는 일부 시청자의 역사관을 오도할 우려가 있을 만큼 정도가 지나치다. 잇단 게이트 의혹사건의 뇌물리스트를 빗댄 ‘치부책’등 픽션삽입의 오락화, ‘찍어낸다’ 등 감각적 대사 남용 등으로 오락물의 맛을 한껏 돋구는 것은 그런대로 보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연일 밤낮으로 이마를 맞댔다 하면 음모로 일관하는 살벌한 스토리 전개는 역사관을 그릇치기 십상이다. 이 드라마는 중종재위 38년, 인종재위 8개월, 명종 재위기간의 문정왕후 수렴청정 8년 등 근 50년을 대상으로 구성된다. 장구한 세월을 드라마로 압축하려다 보니 구성요소가 되는 권력암투를 부각시키는 것을 이해하는데 인색하고 싶지 않으나 역사적 사실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미 드라마에서 치른 ‘기묘사화’를 비롯한 ‘신사무옥’등 옥사 이외에도 심정등 ‘신묘삼간’, 경빈의 ‘동궁저주 작서의 변’, 김안로등 ‘정유삼흉’, 윤임 일족을 사사한 ‘을사사화’등을 앞두고 있으나 위국제민의 정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중종은 유교주의적 윤리정책을 정착시킨 군주로 평가된다. 향약을 전국화 하고 주자도감 등을 두어 ‘이륜행실’‘속삼강행실’등을 출간했으며, 천문 지리 및 농업관련의 과학기술 책자를 많이 간행 보급한 것은 특이한 치적으로 손꼽힌다. 경제적으로는 저화를 활성화 하고 도량형을 일원화한 것 외에도 민생유통에 적잖은 배려를 했다. 국방 또한 각별히 힘썼다. 내륙까지 침입이 잦아 행패가 극심한 왜구를 토벌, 일본과의 왕래를 단절하자 아카시마막부의 간청으로 제한적 내왕을 허용하고 육진순변사를 두는 한편 의주산성을 수축하는 등 남왜북로의 시달림에 적극 대처하기도 했다. 조정 역시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간신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예컨대 지치주의를 표방하면서 급진이 아닌 단계적 개혁을 강조한 김안국 같은 명현을 중용하기도 하였다. 대체로 조선조 역사를 중종시대 같은 권력싸움, 중종 이후의 선조시대부터는 당파싸움으로 일관한 것처럼 왜곡한 것은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다. 일제는 식민지의 역사를 비하하기 위해 ‘만선연구소’ 같은 것을 두어 조선조의 사색당쟁을 하릴없는 감투싸움으로 깎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세자책봉 등에 죽음을 각오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은 당쟁은 이합집산이 무상한 현대 정당이 오히려 배워야 할 점이다. 지금의 민주치하 정당이 본받을 점이 있는 군주치하의 사색당은 정당정치의 효시로 재조명할만 하다. 아무튼 드라마 ‘여인천하’가 시청률 경쟁을 의식, 엿가락 처럼 늘려가며 지나친 흥미위주로 흐르는 것은 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해 경계돼야 한다.

일산 고봉산 보존돼야 한다

고양시 일산구 풍동 고봉산 일대에 추진하고 있는 25만평의 택지개발사업은 재검토해야 된다. 1999년 12월 고봉산 일대를 ‘일산 2지구’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한 대한주택 공사의 계획대로 올해부터 공사가 시행된다면 2006년쯤에는 6천300여구 2만여명이 입주한다. 고양시의 행정 절차는 모두 끝났고 경기도의 최종 승인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한다. 비록 법적으로는 별다른 하자가 없다지만 고봉산을 대규모 주거단지로 조성하는 것은 문제점이 크다. 해발 208m인 고봉산은 일산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비교적 산림이 잘 가꾸어져 있다. 반딧불이와 다람쥐 등 각종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곳곳에 습지가 있어 생태 환경도 아주 좋다. 고봉산은 일산에서 유일하게 자연 정화능력을 갖춘 녹지인 것이다. 지난 가을 시민단체가 조사한 결과 고봉산에는 천연기념물 322호인 애반딧불이와 환경부 지정 보호동물인 물장군 등을 비롯해 게아재비, 물자라, 붕어마름, 검정말 등 수생 동식물 60여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1991년부터 1993년 한국토지공사가 일산 신도시 저지대를 메울 토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봉산 북서방면 30만평을 마구잡이로 깎아 내 중산마을을 조성,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됐는데 또 주택공사가 남쪽 기슭 25만평을 택지로 개발한다면 ‘일산의 허파’역할을 하는 고봉산은 죽어가는 것이다. 주택공사는 당초 27만평을 개발하려고 했으나 2만6천여평의 고봉산 자락을 개발대상지에서 제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산소호흡기에 목숨을 유지하는 인체와 같은 형국이다. 만일 현행 계획대로 실시계획이 승인될 경우, 고봉산 바로 아랫부분까지 12∼15층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서 일산 신도시, 경의선 철도, 310번 지방도에서는 더 이상 고봉산을 감상할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송학정 활터 옆에 위치한 자연생태 습지가 콘크리트 등이 사용되는 인공습지로 변경돼 애반딧불이 등 천연기념물과 환경부 지정보호 수생 동식물들의 생존에 타격을 받는다. 주택공사는 물론 경기도 당국도 고봉산의 택지개발승인을 심사숙고한 후 처리해야 한다. 주거단지 조성을 위해 생태계의 보고를 마구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국무회의 활성화를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말씀’받아쓰기 금지를 지시한 것은 많이 늦긴 했으나 잘한 일이다. 국무위원들이 간간히 메모하는 것은 또 몰라도 대통령의 말 하나하나를 일일이 깨알처럼 받아쓰는 국무회의가 돼서는 헌법기구의 소임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선생님과 학생 같았던 ‘받아쓰기 국무회의’는 냉소와 비판의 대상이 됐으나 그러지 않으면 대통령에게 불경죄를 저지르는 듯한 강박관념에 쫓기어 관행화된 게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의 국무회의는 대통령의 말만 있을뿐 본연의 소임인 토의는 불가능하며 지금까지의 국무회의가 그러하였다. 국무회의는 단순한 장관회의가 아니다. 정부의 중요정책을 심의하는 합의체 기구다. 헌법이 89조1항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을 비롯, 16항의 검찰총장, 각군 참모총장, 국립대 총장, 대사, 국영기업체의 관리자 임명 등에 이르는 16개 심의사항을 예시한 것은 대통령의 일방적인 말만 들으라는 게 아니다. 심의는 어휘 그대로 토의가 전제된다. 정부조직법에 의거, 대통령령으로 정한 ‘국무회의 규정’에서 의사 및 의결 정족수를 조문화하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정부 부처의 갖가지 시책이 부처간에 상충되거나 사전 협의가 미진하는 등 시책 누수가 심했던 게 다 그간의 국무회의가 활성화되지 못했던데 연유한다. 먼저 국무위원에 임용되고 특정 장관직에 보하는 각료 임명장은 내각 구성원의 소임을 부여하는 것인데도 이와는 달리 부처(장관) 할거주의가 팽대한 것 역시 국무회의가 활성화 하지 못했던 탓이다. 국무회의는 의장(대통령)이 열고 싶으면 열고 말고 싶으면 마는게 아니다. 정례국무회의가 있고 임시국무회의가 있어 국정 전반을 부단히 검토, 점검, 확인하는 국정운영의 행정부 최고 기구다. 의안도 의결사항과 보고사항으로 구분, 개회전에 제출돼야 한다. 이러한 국무회의가 제기능을 발휘 못하고 파행 운영한 것은 물론 이 정부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시대부터 답습돼온 일종의 고질이다. 이번에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의 받아쓰기 금지를 지시한 것을 계기로 법규대로 운영하는 국무회의의 활성화를 촉구하는 것은 다음 정부에서도 계승할 수 있는 관행타파의 모럴을 기대하기 위해서다. 국무회의의 국무회의 다운 운영은 국정운영에 활기를 불어넣어 대통령의 임기 마무리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국무회의 활성화는 국무위원들이 소관 부처에 국한하지 않는 국정 전반에 책임을 함께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보복금지법’의 허구성

법률의 취지가 좋다 하여 반드시 실효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법률은 있으나 마나 하거나 되레 역기능을 낳을 수 있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정치보복금지법’제정이 이에 속한다. 정치보복의 금지를 반대할 사람은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로 규제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우선 정치보복의 법률적 개념 정립부터가 간단치 않다. 예컨대 정치인의 과거 비리에 대한 단죄를 보복으로 간주한다면 비리를 옹호하는 것이 된다. 다른 실정법 위반 역시 마찬가지다. 시안은 사법적 사안뿐만이 아니고 세무조사, 공정거래조사 등 행정기관의 조사 또는 감사까지 정치보복 금지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보복의 개념 정립이 더욱 난해하다. 시안 자체도 이를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정치보복의 여부를 결정하는 대법관, 헌재재판관, 국가인권위원, 변호사 등을 각 2명으로 하는 ‘정치보복금지위원회’의 구성을 두고 있으나 판단에 객관적 기준이 없어 모호하기는 매한가지다. 또 ‘정치보복금지위원회’의 수사중단 등 권고는 기소독점주의 침해로 형사소송 절차를 문란케 한다. 만약 이 법 시안의 배경이 정치인의 포괄적 비리에 유독 특정인만의 표적수사를 정치보복으로 보아 금지하는 것이라면 이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이같은 표적수사는 이 정권에서 적잖게 있었지만 지금의 야당이 집권했을 적에도 항용 수법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간의 사회정서 또한 표적수사엔 거부감을 가지면서 단죄엔 긍정적이었던 것은 정치인의 비리는 어떻든 일벌백계로 추방돼야 한다고 보아왔기 때문이다. 뇌물 비리뿐만이 아니다. 정권장악을 위한 전두환, 노태우 소장등 신군부의 국가변란 행위를 그들이 대통령을 지내고 나서도 단죄하였다. 야당의 시안은 결국 정치인 비리나 신군부 같은 변란행위에 대한 처벌도 보복금지라는 이름으로 덮어두자는 것밖에 안되는 심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굳이 위헌소지까지 짙은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를 모르지 않을 한나라당이 시안을 마련한 것은 꼭 입법화하겠다는 것 보다는 보복금지의 이미지 홍보를 노리는 정치적 의도로 해석된다. 또 여당이 반대하면 마치 정치보복을 두둔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정략적 의도 또한 깔려 있어 보인다. 참다운 정치보복 금지는 법률적 판단이 아닌 건전한 인식의 판단에 속하는 일이다. 공연히 소모적 논란만 불러일으킬 ‘정치보복금지법’의 제정 추진은 당장 철회하는게 마땅하다.

공공요금 올리기 경쟁인가

연초부터 물가동향이 심상치 않다. 국제유가 인상으로 국내 기름값이 이미 지난 연말 ℓ당 15원씩 인상된데 이어 도내 택시요금도 19%나 올랐다. 또 국·공립대 등록금이 5%가량 인상될 전망이어서 사립대들도 국립대 수준이나 그 이상 올릴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상반기 상수도 요금을 올린 오산·파주 등 5개 시·군을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들이 수도요금을 최고 39%까지 올릴 계획이며, 쓰레기봉투 값도 고양시 등 5개 시·군이 최고 40% 가량 인상할 예정이다. 이처럼 지자체들의 공공요금 인상계획은 경쟁적이다. 이제 한 자릿수 인상은 옛말이 되었다. 일단 올리기로 하면 예외없이 두 자릿수다. 지자체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상률을 욕심껏 높여 잡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서민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특히 공공요금 인상은 개인서비스 요금과 각종 생필품 가격의 편승인상을 유도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회복이 지연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가계를 생각할 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가불안의 복병은 또 곳곳에 잠복해 있다. 정부는 경기진작을 위해 중앙부처 및 지자체 예산의 60%를 상반기에 집행토록 지시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일시에 재정지출이 집중적으로 이어질 경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등 두 차례의 선거를 치러야 하는 선거일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공천단계는 물론 선거운동 과정에서 막대한 돈이 풀리게 되면 선거 인플레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와 물가의 함수관계는 그동안 너무나 많이 확연하게 검증되었기에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이같이 물가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는데도 국민이 안심할만한 정부 및 지자체의 가시적인 대책은 찾아볼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대책은 커녕 오히려 각종 물가를 자극할 공공요금을 턱없이 올릴 궁리만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한번 국민이 인플레심리에 휘말리면 백약이 무효로 경제안정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먼저 경제안정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 국민이 인플레 심리에 빠져들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솔선해야 한다. 공공요금 인상이 적정한가를 철저히 검증하고, 선거를 앞둔 선심사업을 지양,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은 억제함으로써 정부의 과소비 풍조부터 바로 잡아나가야 한다. 또 돈을 덜 쓰는 선거를 치르도록 하여 국민의 불안을 덜어주어야 할 것이다.

겨울가뭄 대책 마련하라

지난 가을 가뭄에 이어 겨울 가뭄마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더구나 올 봄에도 가뭄이 계속될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가 나와 적절한 용수확보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영농에 차질이 크게 빚어질 것이 우려된다. 농업기반공사에 따르면 현재 전국 저수지 저수율은 58% 정도라고 한다. 이는 예년 평균 79%에 비해 20% 정도 낮은 수준이다. 지역별로도 전국 모두 평년 저수율에 크게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전국 농업용 저수지 3천277개 가운데 저수율이 50% 이하인 곳이 803개에 달하고 30% 이하가 272개소, 이미 고갈된 곳도 31개소에 이른다. 더구나 올 겨울동안 눈을 포함한 예상 강수량(55∼214mmm)이 가뭄을 해소할 만한 수준에 못미치고 오는 5월까지 강수량도 평년 수준(190∼214mm)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이라는 예보가 나와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강수량이 건기에 들어서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오는 봄에도 봄가뭄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기상대가 분석한 6개월간의 예보다. 경기지역의 경우 최근 3개월간 평균 강수량은 99mm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21mm에 비해 122mm가 적다. 이로 인해 농업용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도 79%로 평년의 90%에 못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실례로 동·북부지역인 여주·이천·양평 등의 지난해말 강수량과 저수지 수위를 점검한 결과 예년 평균치의 절반 수준이다. 이는 극심한 봄가뭄 홍역을 겪었던 지난해 강수량보다 20% 이상 적은 실정이다. 지금 당장은 농사철이 아니라서 농업용수의 부족을 피부로 못느끼고 있지만 겨울가뭄의 피해는 봄, 여름철로 이어진다. 항구적인 가뭄 대비 농업용수 확보 대책 마련은 그래서 시급하다. 우선 현재 추진중인 관로 및 간이양수장 설치공사를 최대한 앞당겨 끝내고 예산을 확보, 암반관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농촌형 시·군에 있는 소형관정을 개발하고 저수지 준설사업을 영농기 이전에 완료하는 것도 가뭄대책의 한 방법이라고 하겠다. 농민들 또한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천수답과 수리불안전답, 고갈 저수지 해당 논, 저수율이 낮은 지역의 논 등에서는 비와 눈 녹은 물, 소하천 계곡 등의 자연수를 최대한 이용, 해빙과 동시에 논물 가두기 작업을 미리 실시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 차원의 대책이다. 90년만에 최악의 가뭄이었던 지난 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독서교육 강화 시급하다

중·고교생들의 독서기피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경기도교육청 장학관이 독서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도내 120개 중·고교 학생 1만9천6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5%가 교과서를 제외한 책을 1년에 5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대상의 14%는 1년 내내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답변, 중·고생들의 독서량이 절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독서경향도 명작과 학술도서 보다 무협지나 통속소설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서는 교양과 재미를 제공해서 삶을 윤택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케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오늘과 같은 국제화·전문화·산업화 시대에서는 독서가 곧 생존의 수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를 적절하게 선택해서 효과적으로 체득하지 않고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첨단문화를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독서의 기능에 비추어 볼 때 중·고생들의 실정은 조사결과처럼 한심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서량도 그렇거니와 65%의 학생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중도에 그만둔다는 것은 그만큼 독서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같은 독서기피현상은 시각미디어의 보급과 함께 입시위주 학교교육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회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향락풍조가 적지 않은 작용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건전한 취미생활로 마음의 양식을 쌓기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찰나적인 쾌락만을 탐하다 보니 책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향락일변도의 그릇된 사회풍조를 바로 잡기 위해서도 국민의 책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고 학생의 독서생활화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책을 읽게 한다는 것이 강요에 의해 이뤄질 성질은 아니다. 그러나 독서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분위기 조성은 조직적인 캠페인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지식정보 사회에선 인터넷망 보급 못지 않게 독서의 중요함을 인식시켜야 한다. 각종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힘은 역시 개개인의 지적능력이 배양되어야 하며 이것은 꾸준한 독서와 학습을 통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지적능력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가 정착될 수 있도록 독서교육을 강화하는 등 21세기를 대비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학교교육은 특히 초등교때부터 독서취미를 길러주고 체계적인 교육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