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는 날아서말은 뛰어서거북이는 걸어서달팽이는 기어서굼벵이는 굴렀는데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빠름보다 더 빠른 느림 이라고 했던가, 그 무거운 바위는 항상 앉아서도 일등이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폭주족들은 달리면서 연애를 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현대는 속도 전쟁이다. 도대체 어디로 가자는 속도인가, 한때 속도의 주범이었던 폐타이어를 배에 부착하고 언덕을 내려가며 북북 땅에 제동을 거는 리어카를 본 적이 있다. 속도의 반성이다. 그러니까 모두들 각자의 방식대로 출발해 새해 한날한시에 도착했는데 이 작품에 사람이 없는 것은, 사람은 벌써 자동차를 몰고 새해 첫날을 쌩하고 지나쳤기 때문이다. 사람의 속도는 원래 걷는 속도이다. 걸어야 사람이 보인다. 이덕규 시인
그때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지금은 모른다눈이 길을 막아 머문 곳, 오두막에는 눈보다 따듯한 노인네가 있었다 날마다 온돌이 절절 끓어 방문을 열면 장작을 한 아름 안고 부엌으로 들어가던 노인의 모습밤이면 더욱 맑게 깔리던 고요, 백설은 스스로 빛을 뿜어 어둠을 녹였다그때 무엇을 하러 가던 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리는 없었고 빛과 온기만이 흐르던 곳, 눈이 산과 산을 덮고 오두막을 덮어 산도 오두막도, 노인과 나도 눈이었다그때 어떻게 그곳을 떠나왔는지 지금은 모른다 왜 그곳을 떠나야 했는지그때 그는 세상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 문명의 반대쪽으로 무작정 걸었으리라. 바람이 불어오는 곳, 눈보라를 뚫고 가다가 큰 눈이 막아선 곳, 거기 세상일과는 무관하게 사는 첩첩산중의 노인네 한 분을 만났으리라. 그는 그 노인과 세상 일이 아닌 먼 곳의 얘기로 밤을 지새웠으리라. 그런 밤이면 마치 선계에 내린 눈처럼 백설이 뿜어내는 흰빛들이 깊은 산중에 만건곤하여 골짜기 골짜기를 오래 포근히 안아주었으리라. 그리하여 마음의 향방을 몰라 지상에 내려앉지 못하고 떠도는 눈송이처럼 바람에 떠밀리고 떠밀리던 그는 결국 다시 그 심심산골 품으로 들어가 영 나오지 않는다는데. 이덕규 시인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했지, 산뚱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가령, 서해안 먼 바다 어디쯤, 먼 대륙의 끝자락이 보일 듯 말 듯 외따로이 낯선 곳, 혼자서 배를 타고는 아무리 가도 가 닿을 수 없는 곳, 너를 껴안고 잠든 밤 눈보라 하얀 돛배를 타고서야 갈 수 있는 곳,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을 법한 아니, 누구나 한번쯤 꿈꾸었을 그 환상의 섬, 멀리 서역 어딘가에서 사랑을 잃고 떠도는 자들의 밤바람 소리가 간간이 걱정스럽게 들려오기도 하는 곳, 영원히 유폐되고 싶은 사랑의 섬, 거기엔 불면의 입맞춤으로 날이 새는, 영원히 식지 않는 사랑의 묘약이 처마 끝 고드름에서 밤새 음악처럼 조금씩 녹아 떨어지는 곳이다. 그리하여 불멸의 사랑을 꿈꾸던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법한 그 곳, 오늘밤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고 있을 그때 그 어디쯤 청춘의 격렬비열도! 이덕규 시인
한낮에 덩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입이 뾰족한 들쥐가 마른 덩굴 아래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갈잎들은 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다오늘은 일기에 기록할 것이 없었다헐거워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다나는 식은 재를 손바닥 가득 들어 올려보았다산골에 들어 하루 종일 아무 짓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시간은 저렇게 고요히 타서 발 앞에 재로 쌓일 것이다. 너무 한가해서 오늘 무슨 일로 살았는지 모를 만큼 하루가 흘러갔다면 그곳은 이미 선계이다. 우리가 빠듯한 시간을 헐겁게 풀어 놓을 수 있다면, 저렇게 하루를 태운 시간의 재가 다시 타서 기나긴 한 생의 시간을 더 살고도 남으리. 이덕규 시인
뺀질이 옆에뚜껑내 동생 뚜껑 옆에 아직도강력(强力)이 넘치는 엄마랑 진이 다 빠진 장구벌레같이물가에 맴돌다 버둥거리는 2분지 1 같은정호 아저씨 말을 빌자면 천사처럼 금세 없어지는 우리 아빠랑 그 옛날 빛바랜 스냅 사진 한 장 같다. 달동네 어느 집 가족사진 같다. 가장이 2분지 1 같은 반편이라 밀리고 밀리어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집이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곳에서 아빠는 왜 또 자꾸 없어지나, 사진을 찍다말고 없어진 아빠. 축대 위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뻑뻑 빨아대는 아빠. 몽글몽글 올라가는 담배연기는 허공에서 금세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천사처럼. 이덕규 시인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무엇을 채울 것인가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도 말하지 말며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살아 기다리는 것이다다만 무참히 꺽여지기 위하여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내 몸을 분질러다오내 팔과 다리를 꺽어네 꽃병에 꽂아다오그대가 들길에서 무심코 꺾어온 그 꽃은 바로 평생 당신을 기다려온 사랑이다. 고독과 담배와 커피와 시 쓰기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그녀, 어느새 만지면 바스라질 듯 바싹 잘 마른. 이덕규 시인
20세기 노르웨이 문학의 눈부신 성과로 평가받고 있는 시인 하우게는 독학으로 불어, 영어, 독일어를 습득했다. 정식 학력이 농업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이다. 그는 큰 낫을 들고 풀을 베고 눈이 오면 밤새 뛰어다니며 작은 소나무 위에 쌓인 눈을 털어주는 정원사였다. 50대까지 정신병에 시달리면서도 쉬지 않고 글을 쓴 그는 피오르드의 수정처럼 맑고 단단한 얼음의 문장으로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내면화 하면서 우주적 스케일로 펼쳐보였다. 그의 시는 마른 대지에 떨어진 이슬 한 방울처럼 구체적으로 사람에게 스며든다. 아주 겸손하면서도 도도하고 부드럽고 섬칫하게. 그리고 그 이슬 한 방울로 잠깐 엄숙해지고 충만해지는 순간을 선사한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시인은 하늘과 땅을 잇는 영매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덕규 시인)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나의 갈증에 커다란 호수를 주지 마세요,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같이,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구멍의 어둠 속에 정적의 숨죽임 뒤에 불안은 두근거리고 있다 사람이나 고양이의 잠을 깨울 가볍고 요란한 소리들은 깡통 속에 양동이 속에 대야 속에 항상 숨어 있다 어둠은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굶주림이 있는 곳 몽둥이와 덫이 있는 대낮을 지나 주린 위장을 끌어당기는 냄새를 향하여 걸음은 공기를 밟듯 나아간다 꾸역꾸역 굶주림 속으로 들어오는 비누 조각 비닐봉지 향기로운 쥐약이 붙어 있는 밥알들 거품을 물고 떨며 죽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는 아아 황홀하고 불안한 식욕밥의 길목에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세상에 그냥 거저 들어오는 밥은 없다. 밥을 버는 노동의 공력만큼이나 남의 밥을 훔쳐 먹는 것 또한 저토록 신경을 말린다. 곳곳에 지뢰처럼 매설된 덫이, 향기로운 쥐약이, 몽둥이가 언제 어디서 생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 세콤으로 겹겹이 안전장치를 해놓고도 불안한 밥의 주인만큼이나 불안한 밥이 생사의 아슬한 경계에 놓여있다. 숨겨진 밥이 주린 위장을 끌어당기는 저 황홀하고도 위험천만한 밥의 길 끝에 결국 죽음이 있다. 모두들 그때까지 조심조심 밥을 향해 나아간다. (이덕규 시인)
볏가리 하나하나 걷힌 논두렁남은 발자국에 뒹구는 우렁껍질수레바퀴로 끼는 살얼음바닥에 지는 햇무리의下棺線上에서 운다첫 기러기떼가을걷이 끝나고 이제 막 겨울로 들어서는 텅 빈 들녘에서 해가 지는 지평 線上(선상)을 눈 가늘게 뜨고 바라본 풍경이다. 그 선상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름 아니며 그 선상에서 이제 막 울며 날아오르는 첫 기러기떼는 한 죽음 알리는 초혼의 곡(哭)이다. 관이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순간, 그러니까, 해가 지평선으로 떨어지며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순간 그 선상에서 문득 날아오르며 우는 저 첫 기러기떼는 이승에서 저승 쪽으로 한 죽음을 보내는 전갈이며 저승에선 한 영혼을 잘 받았다 응답하는 외침이다. 이덕규 시인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가을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저것 봐, 저것 봐,네보담도 내보담도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겄네.온갖 회한이 굽이쳐 흐르는 저 노을 비낀 가을 강을 보라. 첫사랑, 그 맑은 산골 물이 흘러 그 다음 두 번째 세 번째 시냇물 같은 사랑이 흘러 흘러 생애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고 흘러 흘러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저 실패한 사랑의 처연한 물빛을 보라. 아 그러나 조용히 장엄하게 죽어가는 저 사랑의 아름다운 끝물을 보라. 이덕규 시인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지금 대낮인 사람들은별들이 보이지 않는다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별들이 보인다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사는 게 팍팍했던 시절,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면 서러웠다. 가 닿을 수 없는 희망처럼 멀고 멀어서 서럽고 또 서러웠다. 그래그래 너희들 맘 다 안다는 듯이 별들도 글썽거렸다. 가끔 가녀린 숨을 고르며 간신히 어둠에 종사하던 희미한 별 하나가 어깨 너머로 튕긴 쓴 담뱃불처럼 아뜩한 현기증을 일으키며 뒷산 너머로 떨어졌다. 다음날 그걸 주우러 갔다가 엉뚱하게 이웃 동네 애들과 싸움만 하고 마음이 어둑해서 돌아오던 길, 대낮인데도 별 하나가 가만히 내려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제 한밤에도 대낮처럼 밝혀놓은 양계장의 닭처럼 우리는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환한 문명의 알전구를 낳는다. 문명의 불빛이 환해지는 만큼 별들이 사라진다. 별들의 바탕이 없어지고 있다. 우리들 가슴 속에 수없이 뜨고 지던 별들이 살 곳이 없어졌다. 별들을 낳던 무궁한 어둠의 자궁에 누가 자꾸 불임 수술용 조명을 들이대고 있다. 이덕규 시인
중략내 한때 곳집 앞 도라지꽃으로피었다 진 적이 있었는데,그대는 번번이 먼 길을 빙 돌아다녀서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내 사랑!쇠북 소리 울리는 보은군 내속리면어느 마을이었습니다또 한 생애엔,낙타를 타고 장사를 나갔었는데, 세상에!그대가 옆방에 든 줄도모르고 잤습니다명사산 달빛 곱던,돈황여관에서의 일이었습니다.전생과 내생을 거듭 살아도 만날 수 없는 그대, 한 생은 도라지꽃으로 피었다가 쓸쓸히 지고 또 한 생은 장사꾼이 되어 국경을 넘어 떠돌았으나, 늘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사랑이여! 그러니 끝내 만날 수 없는 사랑을 찾아 사막을 헤매는 저 떠돌이 낙타들은 날마다 헛걸음이네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대에게 보여주겠다고 따뜻한 봄날 외진 들판 습 찬 곳을 골라 분단장 몸단장하고 수줍게 피어나는 저 지천인 이름 모를 들꽃들의 한 생이 무색하네요. 그리하여 지금 여기 사랑은 없지만, 오늘도 여전히 사랑을 찾아 낙타는 사막을 헤매고 또 어느 허구렁에선가 수없이 꽃이 피고 지는 사랑 놀음이 바로 우리네 삶이네요. 이덕규 시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 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보이는구나미안하다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어찌하랴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차라리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어떤가 몸이여어느 지하역에 쓰러져 잠든 몸을 슬쩍 빠져나온 마음이 제 몸을 내려다보며 부르는 이 노숙자의 나직한 노래는 애달프다. 마음이 함부로 꿀렁꿀렁 굴려온 고물 자동차 같은 몸, 진땀과 악몽뿐인 풍찬노숙의 生, 따지고 보면 망가질 때로 망가진 몸의 가해자는 바로 마음 아니던가, 아직은 살아서 날것으로 가르랑거리며 끊어질 듯 몰아쉬는 병든 몸에서 내려 이제 헤어지자 묻는 야속한 마음아! 자꾸 서두르지 말아라. 길가에서 깜박 선잠 든 사이 활짝 마음 피운 민들레 홀씨 날리듯이, 언젠가 몸이, 너 마음, 가볍게 허공에 부릴 때까지. 이덕규시인
장진 땅이 지붕넘에 넘석하는 거리다자구나무 같은 것도 있다기장감주에 기장차떡이 흔한데다이 거리에 산골사람이 노루새끼를 다리고 왔다산골사람은 막베등거리 막베잠방등에를 입고노루새끼를 닮었다노루새끼 등을 쓸며터앞에 당콩순을 다먹었다 하고서른 닷냥 값을 부른다노루새끼는 다문다문 흰점이 배기고 배안의 털을 너슬너슬 벗고 산골사람을 닮었다신골사람의 손을 핥으며약자에 쓴다는 흥정소리를 듣는 듯이새까만 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한다함경남도 장진 땅 아래 어느 작은 장터거리에 노루새끼를 팔러 나온 저 산골사람의 계산법을 좀 보자. 집 앞 텃밭에 강낭콩을 수확하면 예년 평균 서른닷 냥 정도가 나왔는데, 올해는 어린 노루새끼가 몰래 와서 그 콩순을 다 뜯어 먹어 농사를 망쳤으니, 이 괘씸한 노루새끼 값을 그 정도는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말이 되는지 모르지만, 콩값이 곧 노루값이 되는 저 산골 셈법은 설득력이 있다. 요즘 같이 실물은 없고 숫자놀이에 불과한 증권이니 주식이나 하는 경제논리에 비하면 얼마나 정확하게 똑 떨어지는 계산법인가, 거기다가 노루새끼를 무슨 병에 약재로 쓰는지 모르지만 쉽게 성사되지 않을 것 같은 저 지루한 흥정 끝에 백석은 덤으로 노루새끼 눈에 그렁그렁 비치는 눈물까지를 약으로 내놓았다. 이덕규 시인
십자가의 고통, 슬픔, 아픔,피흘림이시여!저를 밟고 가소서제가 드린 것은 죄밖에 없습니다어제도, 오늘도, 내일도드릴 것은 눈물밖에 없습니다당신이 걸으시는 발아래디딤돌이 되겠습니다저를 밟고 가소서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감사할 것으로만 채워주셔서제 잔이 바다가 되었습니다저를 밟고 가소서제가 드릴 것은눈물밖에 없습니다크신 사랑이시여. 정소현<시인 약력> 경북 경주 출생 / 문학공간으로 등단 / 시집 또 가을이 오나 봅니다 낡은 자전거의 일기 바람이 그린 수채화, 영역시집 꽃길 / 문학공간상좋은문학작가상 수상 / 한국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중복의 늦은 밤에누리는 홍복이던가맨살 접촉이 싫어본부인과 각방 쓰고죽부인 내 침소에 들어안겨든다 나붓이.나 그대 껴안고서 한 다리를 걸쳤어도저항 별로 없으니 싫지는 않은 게야.심장을 켜는 소리가잠겨든다 대숲에. 조홍원<시인 약력> 충북 청주 출생 / 월간문학으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경인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 시조집 순환, 그리고 소리
늘 웃고만 사는 줄 알았는데애써 보이지 않으려던 너의 눈물보니그 눈물 흠뻑젖고 싶은 이윤 무엇일까흠뻑 젖은 꽃들 볼 때찰나적인 눈부신 환상이 아니길가끔은 너도 운다는 걸 알 때내 사랑 더욱 싱그러워시인 약력 시문학으로 등단/제2회 수원시문화상 예술부문 수상/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현대 시인협회 중앙위원
섬 하나 떠오를 듯고즈넉이 앉은 바다아우성치는 허기마다만선으로 채워주고하얗게가슴사위며식탐까지 풀어주고고단한 한 생애가 실핏줄로 터졌어도달게 가슴 풀어서내주고 또 내어 주는울 엄니그대로 닮은기도 같은 바다여! 박자방<시인 약력> 충남 회덕 출생 / 시조문학으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 양평지부 부회장, 경인시조시인협회 이사
스르르 떠나는 기차부리나케 오르는 간디아뿔싸,신발 한 짝이플랫폼에 떼구루루우야꼬,집어 던지네 남은 신짝마저 벗어.맨발의 노신사에게쏠리는 승객의 눈길보이소,어떤 머스마가저 신 한 짝 주우면우짜든,그 짝 안 찾겠능교?하모, 하모짝, 짝, 짝 최오균<시인 약력> 경기 화성 출생 / 시조문학으로 등단 / 정운엽 시조문학상 수상 / 시집 산, 먼동 흔드는 / 경인시조시인협회 회장
햇살만 넘실대면 행복하다 이르는 너거만코 방자하기 곁눈질로 보았더니,행색이 범상치 않아차일 걷고 본단다.태양과 수화 하다 인내로 영근 씨앗두볼을 앙다물고 몸빛조차 후줄근해안위를 걱정하듯이모정인 양 금빛이다. 최 희 선<시인 약력> 경남진주 출생 / 현대시조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한국시조시인협회회원/경인시조인협회 감사, 현대시조동인문학회끼리창작동인회 회원 / 전국 공무원문학회 회원